2011년 7월 20일

¶ 2011년 7월 20일, 드디어 7월의 하순으로 접어든다. 7월 4일 앞뒤로 ‘감행’ 했던 거의 무모할 정도의 water heater를 교제하는 것, 불안과 초조를 동반한 이런 일들은 아마도 그래서 pro가 ‘가치’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마디로 희망대로, 내가 바란 대로 일이 풀려 주지를 않았다. 그래서 열을 받게 되고, 그것이 악순환으로 나를 괴롭혔다.

문제의 핵심은 내가 아직도 수도관에서 의 납땜에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plumbing 에서 의 soldering technique.. 그것이다. 몇 년 전에 under-the-sink hot water dispenser를 고칠 적에 이미 경험을 하였다. 아직도 나는 ‘구리와 납’의 chemistry에 감을 못 잡고 있다. 이것은 electrical 에서와 는 거의 다른 느낌이다. 특히 open flame의 torch가 나는 아주 ‘무섭고, 싫은’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 큰일이 그런대로 순조로웠다. 문제의 마지막 5%에서 나는 시간의 압박과, 자신감의 상실 등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Sharkbite란 새로운 기술을 써서 결과적으로 살리기는 했지만,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나는 무조건 잊으려 노력을 한 결과가 거의 2주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보기도 싫고 만지기도 싫고..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큰일을 하긴 했다. 결과를 떠나서 많은 것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최소한 $300이상은 save 했다고 조금은 ‘희망적인’ 기대도 해 보면서.. 7월이 가기 전에 cosmetic한 마무리를 지으려고 희망을 해 본다.

 

¶ 어제는 우리 레지오가 이 마리아 자매님 댁에 초청을 받아서 거의 프로 실력으로 준비 된 맛있는 한식을 모두 모여서 즐기고 왔다. 예상과 다른 곳에 있는 ‘senior apartment가 특이했다. 그 금싸라기 땅인 Buckhead에 있었던 것이다. 흡사 고급 호텔을 연상 시키는 그런 환경이었다. 하지만 실내는 생각보다 좁았고, 역시 많은 살림살이들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 자리에 함께하는 것이 이제는 조금도 낯 설지 않다. 편한 것이다. 거의 누님들 같아서 더 그럴까.. 아니면 믿음으로 모인 것이라 그럴까? 남들이 경험 못하는 것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까 재미있기도 하다. 그런 나의 ‘심정’을 연숙은 알까? 그런데 연숙은 그렇게 ‘참가’하는 내가 별로 싫지 않은 듯한 모습이라, 참 다행인 것이다. 잘못 생각하면 ‘주책없는 사내’라는 인상을 풍길 가능성도 항상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먹으며’ 모여 보니 참 정이 들것 같은 분위기라서 이것도 정도가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정이 드는 것 ‘바람 직’하지 못하다고 들은 것 같아서..

 

한여름 ‘게으른 독서’의 즐거움

한 여름의 무더위가 한창이다. 고국은 아마도 이맘때 쯤이면 장마가 한창이지 않을까.. 하지만 전혀 감이 없다. 그저 수십 년 전의 서울의 모습을 회상을 하면서 떠 오른 이맘때면 아마도 매일 ‘구질구질’하게 내렸던 비, 그것이 장마가 아니었을까 하는 정도다. 이제는 해변가의 하~얀 모래 백사장을 본 것도 아주 오래되어간다. 그 찬란한 여름의 햇살아래 펼쳐진 푸른 파도와 하얀 백사장.. 그것이 여름의 맛일 것이다. 그곳에 못 갈 것도 없건만 다른 한편, 그렇게까지 가고 싶지도 않다. 한마디로 귀찮은 것이다. 이럴 때, 최고의 낙은 역시 게으르게 뒹굴며 읽는 책들이 아닐까?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summer reading이란 말 조차 있지 않던가? 오래 오래 전,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살던 중앙고 2학년 시절이 그랬다. 입시준비의 압력이 오기 전해 여름방학 때, 그야말로 시원한 마루바닥에서 누워서 읽던 책들.. 이것이 바로 ‘독서의 즐거움’의 진수일 것이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그야말로 ‘재미로서의 독서’, 그것이다. 그때 제일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그 흔하던 ‘삼국지‘였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삼국지..하면 1964년 여름의 남영동 집 마루가 생각나는 것이다.

올해 나는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몇 권의 책을 준비하고 읽고 있는데, 현재까지 거의 2권을 읽었다. ‘피서의 효과’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옛날에 느꼈던 ‘게으름’은 조금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영어 판 Dan Brown의 <The Da Vinci Code>와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의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의 한역 본이 그것인데, 두 권 다 ‘재미’ 있기는 하였으나, 끝 맛은 개운치를 않았다.

우선 2003년에 나와서 “시끌벅쩍” 하게 화제를 뿌리고 그에 따라 돈을 ‘억수’로 벌었던 다빈치 코드.. 몇 년 후에는 영화까지 나왔던 그 책이다. 왜 시끄러웠냐 하는 것은 나도 안다. 문제는 그 당시에 나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주 마음이 상한 것이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것은 좋은데, 그 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까?

거의 사실을 가장해서 쓴 ‘허구’ 이지만, 자칫하면 소설이라는 것을 잊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이것이 만약 이슬람교회를 주제로 했다면, 그들의 이제까지의 경험을 보아서 아마도 암살단이 곧바로 이 저자의 저택으로 쳐들어 갔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이 가톨릭을 이렇게 비하한 것은 기독교의 기본 사상인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사상을 역 이용했을 지도 모르겠다. 피해를 보았자 그저 흔한 ‘법정소송’ 정도였을 것이다. 이래서 나는 이 저자를 개인적으로 ‘증오’ 하기로 했다. 아무로 $$$가 좋기로 서니.. 이렇게 악랄할 수가 있을까?

시오노 나나미,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70대의 일본인 여성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의 한역 본은 우선 번역이 아주 산뜻하게 잘 되어있어서 읽는데 쾌적하였다. 아마도 일본 글과 한글의 유사성이 번역이란 거창한 과정을 아주 쉽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글이라도 원저자의 ‘문필 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배경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우선 저자가 역사학자인줄로 잘 못 알았다. 그런 시각에서 보니 아주 부자연스러운 점이 너무도 많았다. 암만 ‘이야기 체’로 썼다고 하지만 ‘객관적’인 역사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저자의 정치,역사 철학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 체로 그 긴 역사를 풀어 쓴 ‘솜씨’는 가상하지만 거의 맹목적일 정도로 ‘로마인을 찬양’ 하는 것은 조금 다시 저자의 의도를 생각하게 하였다. 역사와 문학을 거의 의도적으로 접목을 시키고 상업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듯한 냄새, 거기다 저자의 은근한 feminism까지 곁들여, ‘매력적인 로마의 남자’들을 부각시킨 것들을 보면서 참, 너무나 상업화된 출판계 현실도 거슬린다.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저자는 ‘이 남자, 저 남자’를 거론했는가. 왜 그들이 남자임을 그렇게 밝혀야만 하는가? 그것은 심지어 번역자까지도 합세해서 ‘멋진 남자’들을 강조한다. 저자가 결론으로 내놓은 것에 나는 아연실색을 하게 되었는데.. 골자는 이것이다. 현재까지의 로마 역사가 기독교의 영향으로 필요이상으로 ‘악하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공산주의적 유물론적 탈 신앙적인 저자의 발상인 듯 싶다. 그것과 더불어 로마사의 대가들을 ‘비판, 의심’하는 것은 아무리 저자가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살면서 로마를 느꼈다고 하지만 너무한 것이 아닐까.. 저자는 역사’과학’자가 아님을 자꾸 잊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