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18

다만 자연의 섭리(攝理)를 따르도록 부여된 자유

 2013.05.28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필자의 연구세계와 학문세계에서 그간 견지해 온 우주관과 세계관의 골격은 한마디로‘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인과율(因果律)이다. 요컨대 사업경영, 기업경영, 산업경영, 국가경영의 그 어느 레벨에서든 인과율이라는 확정적 질서(deterministic order)가 존재하고 있다는 인식을 기초로 필자 나름의 연구세계와 학문세계를 펼쳐왔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로 하여금 이런 인식을 굳히기까지는 몇 번의 계기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 계기는 자연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적 질서에 대한 귀납적 추론이었다. 우선,

 

1) 빨간 페인트와 파란 페인트를 섞으면 페인트 색깔은 무슨 색이 될까?

상 온(常溫)에서 보라색이 된다는 것은 물론 어린 시절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 보라색의 페인트에 열(熱)을 가하면 빨간색으로 변했다가 계속해서 열을 더 가하면 파란색이 된다는 사실과 이제 이 파란색의 페인트를 식히면 다시 빨간색이 되었다가 드디어 상온이 되면 또다시 보라색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소위 화학 시계(chemical clock)라고 불리는 범주의 것으로, 하나의 확정적 질서(deterministic order)가 무생물의 세계에도 존재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 만약 초식동물에 육식사료를 먹이면 어떻게 될까? 초식동물은 초식사료를 먹도록 조성된 자연적 존재이므로 만약 초식동물에 육식사료를 먹이면 결국 자연 질서를 어긴 탓에 그에 상응한 반대급부를 치루 게 되는 질서가 엄존할 것임도 추론 가능하므로, 소에게 육식사료를 장기간 먹이면 결국 그 소가 미칠 것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달기가 어려워진다.

 3) 또한 식물에게나 동물에게 들려주는 음악을 달리 하면 어떤 차이가 생길까? 헤비메탈을 들려주는 경우와 바로크음악을 들려주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식물의 생장(生長)에 있어서 헤비메탈의 경우가 바로크 음악의 경우보다 생장속도가 느릴 뿐만 아니라 생장 방향이 음악이 들려오는 반대방향으로 향한다는 실험이 있고, 또한 개에게 영영가가 높은 먹이를 주면서 헤비메탈을 들려주었더니 결국 그 개가 미치더라는 실험결과도 보고되고 있는 걸 보면 식물도 동물도 주어진 질서대로만 존재하게끔 되어있는 존재라는 추론도 또한 가능하다.

 4) 그리고 수간(獸姦)과 동성애로 인해 AIDS가 창궐하는 현상도 작용=반작용의 엄존하는 하나의 확정적인 자연 질서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런 몇 가지 예를 위시하여 온 우주천체의 운행과 자연계의 변화 및 계절의 변화 , 해와 달의 뜨는 시각과 지는 시각 그리고 밀・썰물의 시각 등등을 우리가 사전에 알 수 있는 것도 자연계에 내재되어 있는 확정적 질서(deterministic order)가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능케 함으로서,‘자연계내의 온 만물 안에는 어떤 의지(a will)의 자연 질서가 내재되어 있으며 만물은 오직 그 자연 질서대로만 반응한다.’는 추론이 귀납적으로 입증될 수 있다는 인식이 첫 번째 계기였다.

 

두 번째 계기는 자연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을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메이커는 존재물보다 한 차원 높은 존재이며, 각 존재물에는 그 메이커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각 존재물은 오직 그 의지만을 따른다는 귀납적 추론도 가능하다는 인식이었다. 그리고 이를 확대해 보면 자연계 자체도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물이므로 자연계를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존재할 것이며 이는 자연적 존재(natural being)보다 한 차원이 높은 초자연적 존재(super-natural being)로서 조물주 또는 창조주(Creator)라 불리어질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자연계내의 온 만물 안에는 그 창조주의 절대의지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으므로 ‘자연계내의 온 만물 안에는 어떤 의지(a will)의 자연 질서가 내재되어 있으며 만물은 오직 그 자연 질서대로만 반응한다.’는 앞의 귀납 추론은‘자연계내의 온 만물 안에는 창조주의 절대의지(absolute will of God)가 내재되어 있으며 모든 만물은 오직 창조주의 절대의지대로만 반응 한다.’것으로 보강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두 번째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 계기는 인간의 사고와 관련한 것이었다. 즉, 백만 원 빚진 사람과 천만 원 빚진 두 사람이 있는데 이들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음을 알고 돈을 빌려준 사람이 빚을 탕감시켜 주었다면, 두 사람 중 누가 더 감사해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응답과 관련하여,‘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더 감사할 것이다.’‘아니다, 적게 탕감 받은 사람이다.’‘아니다, 금액의 다과에 관계없이 다 같이 감사할 것이다.’‘상황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각 개인마다의 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심지어는 누가 탕감시켜달라고 그랬느냐 따라서 감사할 이유가 뭐 있느냐’는 등의 의견을 내보이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하나의 사실에 대하여 그렇게 다양한 의견을 갖는 것일까?

이 에 대한 답으로‘온 만물 안에는 창조주의 절대의지(Will of God)가 내재되어 있으며 그들은 오직 그 의지대로만 반응 한다’는 앞의 명제는‘인간을 제외한 온 만물 안에는 창조주의 절대의지(Will of God)가 내재되어 있으며 모든 만물은 오직 창조주의 의지대로만 반응 한다.’는 것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세 번째 계기가 되었다.

 

네 번째 계기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 인류사회에 끼친 영향과 충격에 대한 인식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미 대륙발견과 Copernicus(1473-1543)의 지동설로 천동설이 무너지면서 과거의 신본주의(God-centered)가 인본주의(human-centered)로 옮아가는 가운데 등장한 뉴턴(1642-1727) 역학은 선형 확정론(linear determinism)으로 과학시대를 열면서 신본주의를 인본주의로 이행시키긴 했지만 바로 이 선형 확정론에 입각한 우주관과 세계관으로 인해 지난 300여 년간 인류사회는 그런대로 하나의 확정적 질서에 기초하여 살아올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20년대에 등장한 비결정론(indeterminism)의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은 이 세상에는 확정된 것이란 없고 온통 불확정적인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철학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절대적으로 그른 것도 없다는 혼란스런 주장을 펼치는 빌미를 제공했고 이들의 주장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히 확산되면서 급기야 1776년 독립헌법에 청교도정신(Puritanism)의 기독사상을 담고 있던 미국이 1965년에 헌법수정을 통해서 도덕다원주의(moral pluralism)를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로마가톨릭교회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도덕 다원주의 및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한 지 40여년사이에 급증해 온 미국의 범죄건수와 범죄 율, 이에 따른 변호사, 판검사의 급증, 교도시설의 거대화, law school의 호황, 비만급증과 만연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등 사회병리현상들이 과연 우연의 산물일까?

 다시 말해 전후 대량경제시 대를 주도해 오던 절대 강국 미국이 수정헌법을 통해 상대적 가치판단기준을 수용하자 옳음과 그름,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자유와 평등 등의 가치판단에 있어서 대 혼란의 수렁에 빠지며 경제적, 사회적으로 쇠락해 온 현상이 과연 기독교정신의 절대적 가치판단기준을 포기한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을 믿음의 유일한 토대로 삼아왔던 가톨릭교회가 2차 바티칸공의회(The 2nd Vatican Council)를 통해 소위 포괄주의(inclusivism)와 에큐매니즘(ecumanism, 교회일치주의)라는 이름으 로 지난 2000년 교회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모든 종교의 구원가능성을 수용하는 듯한 유사 도그마(dogma)를 채택하자 영적・물질적・육체적 타락상이 증폭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교회가 대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과연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한 행위와 무관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앞에서 얘기한 양자역학에서의 비결정론(indeterminism)과 관련하여 1990년대 들어 강력한 컴퓨터의 도움으로 역동적 비선형세계의 질서를 규명해 오고 있는 복잡성과학(complexity sciences)과 카오스이론(chaos theory)은‘온 우주 안에는 무질서란 없고 비선형 확정적 질서(non-linear determinism)로 차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이는 필자로 하여금 우주 시스템의 하부하부… 시스템인 산업/기업시스템의 경영에 있어서도 확정론(determinism)과 절대적 기준을 따라야 할 것이다, 라는 인식이 네 번째 계기였다.

 

다섯 번째의 계기는 자연계에는 정의라는 질서가 내재되어 있다는 귀납적 추론이었다. 즉, 물리학의 견지에서 작용=반작용 운동 제3법칙, 변화를 가하기 전후의 질량・에너지 불변의 법칙, E=mc**2; 세상사에서 얘기하는 적선(積善)지(之)인(人) 필(必)유명(有名)이요, 적선(積善)지(之)가(家) 필(必)유경(有慶); 성서 말씀의 견지에서 용서하면 용서받고, 심판하면 심판받고, 단죄하면 단죄를 받고, 자비를 베풀면 자비를 입고; 속담이 견지에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Give=Take의 정의(justice)의 질서가 자연계 안에 꽉차있다는 귀납적 추론이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여섯 번째 계기는 유독 인간에게만 자유의지가 부여되어있어 인간은 자유의지로 절대의지를 따를 수도 있고 또 안 따를 수도 있지만 정의의 견지에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다는 인식이었다.

 

이미 얘기한 바 있는 초식동물에 육식사료를 먹이는 경우이거나 이성이 아닌 동성끼리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경우 또는 사람이 아닌 동물과 교접하는 경우엔 창조주의 절대의지인 자연의 섭리를 거슬리는 경우로서 광우병이 생기고, 에이즈가 창궐하게 되는 결과를 피할 길이 없게 된다.

 

반면에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곤 절대로 부부간에 이혼이 불가능하다는 절대의지를 자유의지로 따르면서 부부생활 하는 이들에게는 하늘의 축복이 함께하는 삶이 주어지는 것이다.

요컨대 자유의지로 절대의지를 따를 때는 선과 진실과 아름다움과 결합되는 결과를 맞지만 자유의지로 절대의지를 거스를 때는 악과 거짓과 추함과 짝짓는 결과를 맞는다는 인식이 여섯 번째 계기였다.

 그래서‘인간을 제외한 온 만물 안에는 창조주의 절대의지가 내재되어 있으며 그들은 오직 그 의지대로만 반응 한다’는 앞의 명제에서 인간에 대해서는 ‘인간은 누구나 자유의지(free will)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이 자유의지로 창조주의 절대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자연 질서 곧 섭리(攝理)를 따를 때는 만사가 순조롭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풍파와 고통과 파멸이 따른다.’는 추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자유의지는 유독 인간에게만 부여된 특권이긴 하지만, 인간 각자가 자유의지로 절대의지를 따를 때에만 순조로운 삶이 보장되며 자유의지로 섭리를 저버릴 때는 반드시 뒤따르는 비참을 그 어느 누구든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을 굳히게 된 것이다.

이런 인식은 인간에게 자유란 다만 섭리(攝理)만을 따르도록 부여된 자유임을 절감케 해주며, 같은 맥락에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로 섭리를 따를 수 있는 자유(自由)만이 허용되어 있음을 깊이 일깨워 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말이 급작스레 on/off 라인을 통해 언론계로부터 쓰이기 시작하면서, 마치 인간의 모든 표현이 자유 인양 강조되는 분위기가 요즈음 연출되고 있음을 본다.

 

물론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가치임을 부정할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국가의 정체성마저도 부정하는 것을‘표현의 자유’라고 미화하며 우겨 되는 무지와 광란의 작태는 도를 넘은 듯하다.

다 의(多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자유의 참의미는 필자가 어디에선가 얘기했듯이 진리와 진실의 편에 섰을 때라야 참으로 옳은 자유이며, 같은 맥락에서, 진리와 진실의 편에 서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때라야만 역시 그 ‘표현의 자유’가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글 / 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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