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자비 주일 2014

성인 요한 23세(왼쪽), 성인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요한 23세(왼쪽), 성인 요한 바오로 2세

2014년 4월 27일 일요일.. Divine Mercy Sunday 그러니까 2014년 자비의 주일이다. 교회 전례력으로 매년 부활주일 다음주일이 자비의 주일이지만 올해는 두 명의 새 성인이 탄생하는 날이기도 해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이런 ‘경사스런’ 날 아침에 나의 머리는 복잡하고 우울하기만 할까? 나의 무거운 머리 속은 시성식이 거행 되었던 바티칸 시국과 내가 낳고 자랐던 정든 조국의 남쪽바다, 진도의 상상된 광경으로 가득 차있다. 이렇게 대조적일 수가 있을까?

하느님의 자비가 두 명의 성인을 탄생시켰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철저히 비어있던 불쌍한 곳에서는 죄 없는 영혼들의 울음소리가 끝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구약성서 ‘욥기, Job’의 절규조차 질리게 할 만한 슬픔이 있을 수 있을까? 짧은 생을 살아야만 했던 순진한 영혼들은 다음에 어떤 ‘생’으로 이어질까..여기에도 하느님의 자비가 관계가 되어 있을까? 나는 믿고 싶다.. 이 어린 영혼들의 ‘지상에서의 삶’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 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었고 그것이 내세에서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세월호 참극 뉴스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더 피할 뻔뻔스러움이 싫어졌다. 아예 슬픈 감정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것을 알았다. 피하고 피할 수록 더 불안하고 미안한 심정을.. 아예 100% ‘가슴을 열고 슬픔에 동참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Vatican youtube site에서는 이곳 시간으로 오늘 새벽 3시에 거행된 두 분 교황의 시성식이 뒤 늦게 stream되고 있고 다른 쪽 CNN에서는 대한민국 prime minister의 사임 뉴스가 보인다. 청와대 바로 직전까지 불똥이 튄 것이다. 현재의 국민적 심리로 보아서 거의 당연한 듯 보인다. 하지만 정치적인 여파는 거기서 끝났으면 좋겠다. ‘박’씨라면 이를 가는 ‘빨갱이’들을 위시한 정적 政敵들이 이런 비극을 ‘이용’하는 것은 절대로 추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심정을 아는 듯, 부활절 때 그렇게 좋았던 바티칸의 날씨도 이번에는 흐리고 가랑비까지 내린다. 내가 그렇게 존경했던 20세기의 진정한 거목, 요한 바오로 2세와, 어렸을 때(1960년) 신문에서만 보고 들었던 요한 23세.. 이제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요한 23세는 카리스마는 없지만 천주교를 21세기로 향하는 발판을 마련한 바티칸 공의회 Vatican II를 과감하게 밀어 부친 실로 큰 일을 하였다. 라틴어로 보던 미사가 지역언어로 바뀌는 등 그는 실로 미래를 향한 초석을 깔아 놓고 간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세속화가 가속되는 초 현대를 이해하고 유럽과 남미에 치중된 천주교를 전세계로 그야말로 세계화, 지구화를 시킨,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카리스마의 인물.. 자기의 조국 폴란드에서 시작, 공산당의 그림자를 지구상에서 몰아내는 시발역할을 하였다. 그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는 서서히 21세기의 신앙 주역을 맡기 시작하게 되었다. 실로 이 두 전 교황은 성인의 요건을 100% 이상 가진 인물 들이었다.

자비는 나의 사명: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자비는 나의 사명: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자비의 예수, 상본
자비의 예수, 상본

자비의 주일.. Divine Mercy.. 사실 이것도 ‘성인’ 요한 바오로 2세의 숨결이 느껴지는 그런 축일이다. 자비의 축일의 근원은 요한 바오로 성인의 조국인 폴란드 출신의 ‘못 배우고, 가난한’ 어떤 수녀, 지금은 성녀인 성녀 파우스티나 St. Faustina였다. 20세기 초반, 2차 대전 발발 전까지 살았던 그녀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고 ‘예수님의 자비’를 온 세계에 퍼뜨리라는 사명을 받고 그것을 일기에 모두 적는다. 주위 시기에 가득 찬 동료 수녀들의 방해를 극복하고 그녀의 사명은 세상에 알려진다. 그것이 그녀의 일기였던 ‘자비는 나의 사명‘이란 책이었다. 그 책을 읽어보면 ‘인간을 사랑하고 싶고 자비를 주고 싶은 예수’가 생생하게 묘사되어있다.

2000년 초에 그녀는 동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 시성이 되었다. 자비의 축일은 사실은 예수께서 그녀에게 지시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세상에 알려진 것은 결국 그녀의 일기, ‘자비는 나의 사명’이었다. 몇 년 전에 나는 이 책을 reading by typing으로 모두 읽어 보았는데.. 신체적인 병고를 무릅쓰고 주위 수녀들의 질시, 방해를 극복하던 그 성녀, 수녀님의 모습들이 머리 속에 그려지곤 했다. 성모님의 발현도 아니고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서 예수님의 심장에서 찬란하게 퍼져나가는 ‘자비의 빛’을 상본으로 그리라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잘 믿기가 힘들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다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받은 ‘작은’ 은총일지도 모른다.

세월호, 자비 주일, 두 거대한 교황성인.. 이 세가지는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위안을 받고 싶다. 자비가 넘치는 예수님을 필두로 두 분의 성인 교황님들의 전구의 효과 등을 감안한다면 죄 없이 일찍 하늘나라로 간 어린 영혼들과 불쌍한 영혼들은 충분히 위안을 받으리라.. 또한 유족들도 그에 못지않은 천상의 위안을 받으며 슬픔이 치유되리라.. 기도하고 기도한다.

This Post Has 2 Comments

  1. 김인호 스테파노, (전)가정교사

    세월호, 자비주일, 두 거대한 교황성인
    이 세가지 사념을 통해 보여준 경우의 내면세계를 일부나마 엿본듯합니다.
    특히 바다에서 안타깝게 숨져간 어린 학생들에 애한 아타까움과 그네들을 위한 경우의 간절한 기도가 여과없이 전달되어 옵니다. 한편 이를 호기로 최대한 활용하려는 반 국가세력의 획책을 염려함도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국가전체를 패닉으로 몰고가려는 거의 모든 분야에 꽂혀있는 국가부정무리들의 교활함과 가증스러움이 끔틀거리고 있는 요즈음 때문이죠.

    오늘 기도하면서 경우에게 특별히 메일을 보내는 이유는 한가지를 같이 묵상하고 한번 더 생각해 보자고 제의하고픈 마음에서 입니다.
    오늘 5월 2일은 St. Athanasius축일입니다.
    이미 일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성인께서는 예수님의 신성(Divinity)을 부정하는 Arius 이단을 거부함으로써 성부-성자 예수 그리스도-성신의 삼위일체 교리를 위해 수차례 심지어는 피살될 뻔 할 정도의 박해와 어려움을 겪으신 성인이십니다.

    1500년대 이후 교황으로서 성인이되신 분은 단 St. Pius V와 St. Pius X 두분 뿐이십니다. St. Pius V는 16세기에 Tridentine 공의회 결정사항을 실제로 Implementation하신분이며, St. Pius X은 교황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물리치고 가난을 생활화 하시면서 누구보다도 빈자에 대한 자비를 몸소 실천하신 분이심에도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유일성에 대해 딴 소리하거나 회의적인 발언을 하는 사제들을 찾아내어 과감히 옷을 뻣긴 분이십니다.
    요컨대 지난 500여년 사이에 교황으로서 성인이 되신 두분의 역할과 소명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구원의 유일한 길이심을 알게 함으로써 참으로 구원받는 길을 많은 이들이 얻게 하시려는 데 교황으로서의 참뜻을 잘 이행하신 분들로서 성인이 되셨지요.
    물론 하느님은 자비를 가장 중히 여기십니다. 마지막 오른편 왼편으로 가르시는 심판의 기준도 자비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비는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행해지는 자비여야 합니다. 그냥 행해지는 자비는 좋은 것이며 자비를 행하면 그도 지비를 입는다고 성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서는 또한 매사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십시오, 라는 권고의 말씀도 같이 전해 줍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정의와 자비의 하느님이시지만 속성상 정의의 하느님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갓 태어나자마자 숨을 거둔 아기일지라도 모두 원죄의 후예이듯 세월호에서 숨져간 학생들도 원죄의 후예일뿐만 아니라 본죄의 주체들입니다. 내가 그네들이 죄인임으로 잘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생각 말아주세요. 엄청난 사고고 사망했지만 하느님의 견지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죄인들입니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고 All are sinners라고 성서가 여기 저기서 전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제 정리하고자 합니다.
    성 비오 5세와 비오 10세 교황님들은 가난을 실천하시고 강조하시면서도 그에 앞서 유일한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참으로 옳바르게 믿게하여 많은 이들이 구원 받을 수 있게끔 양떼를 돌보신 분들이십니다.
    그러면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는 어떤 분들인가요?
    2차바티칸 공의회를 추진하고 실행하신 분들이지요.
    종교 포괄주의(religious inclusism)라는 종교 다원주의를 교회안에 끌여들여 1960여년간 온갖 이단과 이교를 물리치며 가톨릭교회를 이끌어 오신 다른 모든 교황님들과는 달리 이들은 그간의 가톨릭교회 모든 걸 뒤집은 일을 자행한 이들입니다.
    입으로는 말로는 가난을 강조하면서도 요한 바오로 2세는 롤렉스 시계를 멀리한 적이 없으며 예수님께서 묻사람들로부터 받을 찬미와 찬양을 예수님을 증거하기 보다는 교황으로서의 온갖 혜택을 자신과 친족들에게까지 최대한 누리게 한 장본인입니다. 전세계를 다니며 각 지방 미신행위에도 동참하면서 예수님을 증거해야하는 책무와는 거리가 먼 교회를 사교 집단화에 앞장선,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임을 지켜 온 정통 가톨릭교회를 파괴시킨 장본인이라는 얘기지요.
    좀 과한 표현 같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예수님만을 증거하시다 목이짤려, 창에 찔려, 석쇠불에 구워서, 야수의 잇빨에,등등 온갖 형태의 고통에도 오직 한가지 진리를 지키기 위해 순교하신 천상에 계신 순교자분들을 욕되고 무시하고 바보로 만든 자들이지요.
    이것은 내 얘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를 경고하는 메시지는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성인은 특별한 기적이 명백하게 일어난 특수한 몇건의 경우를 제외하곤 당대에 저희들 끼리 끼리 성인품에 올리며 천상의 참 성인들을 우롱하는 작희를 벌리고 있는 일이 최근의 시성식으로 이에 대한 하느님의 응분의 조치가 뒤따르리라 생각합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Matthew 5:6, 10)

    1. Ken

      인호 형님께,
      인호 형, 반갑습니다. 박계형 님, 가족들 모두 건강하시리라 믿고, 이번 한양대에서 열리는 Dynamic Management특강의 소식을 보았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지적인 탐구심, 정력도 부럽고 부디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교회, 교리, 모두 인간들의 ‘한정 된 머리’를 위해서, 인간에게 알맞게 하느님이 ‘허락’하신 것이라고만 믿고 싶습니다. 또한 인간의 이성과 common sense, mainstream 도 저는 중요시합니다. 어차피 ‘허구’는 들어나게 마련이고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믿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과 신앙의 대선배님들께도 full benefit of doubt을 주고 싶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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