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성 금요일.. 어쩔까?

40일의 사순절 내내 잠재적으로 머리에 그려지던 광경, 성 목요일 최후만찬, 세족례, 뒤에 어두운 대성전에 앉아 새벽 1시나 2시까지 수난감실 성체조배 시간을 기다리던 나의 모습, 아니 우리의 모습들.. 어김없이 그 시간은 다시 우리를 찾아왔고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Good Friday의 답답하게 쩨쩨할 만큼 조금의 비를 뿌린 대기는 답답한 느낌만 주며 다시 ‘더운’느낌을 예고하는 내가 싫어하는 시간을 예고한다.

지난 2년간의 이 성삼일은 너무나 fresh하고 holy한 느낌을 주었기에 올해는 은근히 기대를 너무나 하였는지.. 역시 expectation game에 내가 눌리고 지고 있는 느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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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성금요일 아침, 이날 새벽 1시~2시의 수난감실성체조배를 ‘무사히’ 마치고 조금은 피곤한 몸으로 늦은 잠을 자고 ‘제시간’에 일어나서 쓴 모양이다. 성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부활절 미사를 예상하며 쓴 글이었지만 끝맺음이 없었다. 올해는 이렇게 조금은 무언가 끝맺음에서 문제가 있는 모양인가?

이제 성삼일도 일주일이나 훨씬 지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3월도 지나고 4월이 넘어가고, 내일은 4월 3일 Divine Mercy Sunday까지 코 앞에 다가왔다. 어쩌면.. 어쩌면.. 나는 놀라고 놀라고 놀란다.. 이렇게 세월이 빠를 수가 있단 말인가? 68 마일의 시간 흐름인가.. 아니면 요새 나의 생활 style이 그렇게 느끼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나 정도의 인생을 살았으면 ‘모두’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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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성삼일.. 크게 기대는 안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기대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근래 사순절은 거의 매년 나에게 무언가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고.. 그만큼 나도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다. 오늘 식사를 같이 하면서 연숙이 한 말을 다시 음미한다. 나의 요새 모습이 오래 전에는 정말 기대할 수가 없이 살았다고.. 절망적인 나의 모습을 보며 사실 큰 기대를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물론 기분이 좋아짐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도 이런 나의 현재 모습을 나의 지난 자신이 자꾸 보며 놀라는 것을 나는 그림으로 그릴 수가 있다는 사실이 더욱 재미있다. 어떻게 이렇게 내가 변할 수가 있었을까? 놀랍다. 놀랍다.

올해의 성삼일은 사실 성공작은 아니었다. 문제가 있었다. 부활 성야미사 토요일 것..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무엇이 나를 ‘미치게 화나게’ 만들었나? 우선 답답하고 숨막힐 듯 더운 공기, 성전이 그렇게 느껴져서 나는 괴롭기만 했다. 그렇게 오랜 미사는 은근히 예상은 했지만.. 나는 우선 답답했고.. 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요셉’이라는 남자.. 이렇게 표현하는 나를 용서하기를.. 아니 그 인간은 나와 무슨 연고가 있는지.. 참.. 보게 된 세월도 꽤 오래 되었지만 어쩌면 그 ‘인상’은 그렇게 나를 차갑게 만드는 것일까? 좋게 생각하려 무던히 애를 쓰기도 했지만 그 ‘묘하게 차가운’ 느낌의 얼굴과 행동을 나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날 미사 전에 만났을 때의 무표정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얼굴표정은 아직도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오래 오래 전.. 나를 싫어하고 무시하는 듯한 ‘꼰대’들의 모습을 나는 다시 떠올린다.

그렇게 시작된 부활성야미사를 나는 완전히 망친 것처럼 느껴졌다. 옆을 보니.. S 형제의 딸.. Mary .. 이미 나의 가슴은 닫히고.. 그 애의 무표정한 모습이 나를 다시 불쾌하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나는 그날 밤 ‘작은 악마’에게 시달린 꼴이 되었고.. 다음 날 아침 나는 ‘근세사 처음’으로 부활절 미사를 빠지게 되었다. 반항적인 자세로 미사를 빼먹은 것이 끝내 나를 슬프게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성모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