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 것들..

2016년 7월 24일, 봉헌을 위한 33일 준비기간 중 제12일째, 묵상 주제는: 생의 마지막 것들. 결국 12일 간의 ‘세속정신을 끊음’의 끝은 바로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과 묵상으로 끝이 난다. 오늘의 논제는 이것이다: 죽음은 한 번이고 그것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기 항상 이것을 염두에 두고 살면 이 세상의 ‘헛된’ 것들에서 벗어난다.

 

a beautiful final sunset ..

a beautiful final sunset ..

 

이것은 우선 개인적, 사회적인 배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철학적으로 더 깊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성적, 신학적으로 결론을 맺어야 하는 정말 거창한 화두요 주제다. 우리의 보이는 생의 결말이 죽음이라는 신비는 누구나 피하고 싶기에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 인생에서 잠재적으로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것에 대한 걱정과 고민에서 자유스러워 질 수 없기에 아예 정면으로 도전을 하는 것은 어떨까..

오늘의 묵상 논제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기 생의 마지막을 예견하고 준비 없이 기습을 당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때 비로소 이 세상의 헛된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늘의 말씀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가 된다.

하루라도 더 살 줄을 분명히 모르면서 모든 사람들이 죽음으로 끝을 맺으니, 사람의 생명은 그림자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네가 죽은 다음에 누가 너를 기억하여 주며, 누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랴! 사랑하는 이여, 네가 무엇이든지 할 만한 것이 있으면 지금 하라. 이는 네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또한 네가 죽은 후 사정이 어떻게 될는지 모르는 까닭이다.

너는 이 세상을 지나는 순례자와 나그네로 여겨 세상의 모든 사정에 상관치 말아라. 네 마음은 아무것도 거리낌없이 자유스러이 보존하고 하느님께로, 위로 향하여 둘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며 산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유산 정리, 유언, 장례식의 절차 같은 것을 말하는 너무나 물질주의적 냄새가 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주위를 눈 여겨 살펴보면, 평균 수명을 채우건 못 채우건 사람들은 모두 하나 둘 씩 ‘사라져’ 간다. 이별을 겪고 난 이 세상은 한때 우리와 같이 숨을 쉬었던 그들을 일상적으로 결국 잊는다. 가끔 기도 중에 기억하기도 하고, 주기 연도 같은 것을 통해 그들을 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물질적 요소들’은 우리의 감각에 더 이상 이세상, 즉 물리적인 세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세속에 파묻혀 오랜 세월을 산 사람들, 나도 포함되는, 이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어떻게 대응하는 것일까? 아마도 대부분 ‘세속의 잡음과 잡념’이 이 궁극적인 난제를 가려주고 곧 잊게 해 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세속사회에서 부지런히 활동을 할 때가 가능했지만, 칠순이 가까워 오는 그 이후는 점점 어려워지는 ‘조금씩 다가오는 공포의 그림자’ 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물질적 세속적 사고방식에서는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못 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올 것이고, 잘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더 오래, 거의 영원한 세월을 원할 것이다. 여기서 세계관의 차이가 나머지 인생을 좌우한다. 나를 제일 괴롭히던 생각은: 가족 친지들과의 ‘영원한’ 이별? 죽을 때의 육체적 고통? 어떤 방식으로 죽는 것이 편한가?  주위에 필요이상의 괴로움을 주는 것? 이런 것도 괴로운 사실이지만 사실은 ‘이 우주에서 나 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 바로 그것이 제일 괴로운 사실이었다.

6년 전부터 ‘부지런히’ 장례, 고별, 연도 등으로 ‘내가 잘 모르는 가족들’의 슬픔에 동참하려고 무척 애를 쓴 보람이 있었는지 이제는 예전처럼 죽음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실제로 당해보지 않은 것이기에 물론 확신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교리적, 신앙적 죽음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아가기에 조금은 더 당당하게 죽음이라는 문제와 맞대면을 할 용기도 생겼다. 아마도 이것 근래 5~6년 동안에 내가 경험한 ‘깜짝 놀랄만한 진리’ 일 것이다. 이제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아니 너무나 간단하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 대로 살고 죽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