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이천이십 년, 마지막 날…

결국 올 것은 온다, 이것이 시간의 법칙이다. 이것은 한쪽으로만 흐른다. 절대로 쉬지 않고, 결국은 흐르고 만다. 그것도 2020년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 분, 초까지 그곳에 도착을 한다. 바로 오늘이 그 날이 되었다.

나의 느낌은 어떤가? 지나간 나날들은 이미 일기와 일지의 도움으로 virtual-space와 나의 기억세포에 아직은 건강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예년에 비해서 조금 다른 것은 이번에는 나답지 않게 조금은 ‘앞날’을 보며 그것을 그려보는 순간 순간들이 훨씬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절대로 예전의 나의 모습이 아니다. 앞, 하루도 앞을 보는 것은 나에게 괴로운 노력이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2021이란 숫자가 나에게 조금은 ‘실제,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좋은 것이다, 이런 현상은…

거의 일주일 넘게 침실 저쪽에서 나를 보고 있는 digital-clock을 보는 것,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은근히 걱정거리였다. 혹시 2:xx, 3:xx, 4:xx 이란 것이 보이면 ‘나는 죽었다’… 할 텐데 하는 우려.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보았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6:xx! 나의 끈기로 ‘건강한 생각’으로 뒤척였더니 순식간에 6:30! Yeah! 오랜만에 가뿐한 마음으로 침대를 뛰쳐나왔고, 오늘 하루 2020의 마지막 날이 비교적 상쾌한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년 이맘때 건주가 보내주었던 카톡 story, ‘우동 한 그릇‘ 비록 일본 작가의 글이었지만 우리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남겨주었던 이야기, 특히 연말, 새해 에 느끼는 추운 겨울과 따뜻한 우동의 느낌은 절묘하게 조화가 되어 가슴에 남는다. 올해도 역시 건주가 보내 주었는데…

오늘 밤 New York의 Time Square는 정말 거짓말 같은 모습을 보여줄 듯하다. 백만 명이 운집하던 곳이 거의 텅 빈 모습은 정말 100년이나 지나가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왜 이런 사태가 인간의 잘못으로 방치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코로나+트럼프 개XX의 연관은 정말 세기적인 치명적 사건으로 남기를 바란다!

올해는 거의 의도적으로 성탄장식들을 오래 오래 유지시키려고 결정을 했다. 예전에는 늦어야 1월 중순이었지만 올해는 우리의 결혼기념일 1월 25일까지 반짝이게 만들려고 한다. 의도적으로, 일부러, 일부러…

송년미사를 ‘비대면 온라인’ format으로 순교자 성당에 참례를 했다. 갑자기 텅 빈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니… 참 거짓말 같다는, 예전의 세상이 아니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그런 묘한 느낌을 신부님이 강론에 잘 정리를 해 주셨다. 정말 지나가는 일년, 우리들, 모두들 너무나 수고했다는 것, 새삼 잊고 살았던 듯하다.

오늘 밤 자정의 3-2-1 Happy New Year!를 샴페인 터지는 소리와 함께 외치려고 지금 2시간 전부터 대기하면 기다리고 있다. 꽤 오래 전 아이들이 집에 있었을 때, 나는 이것을 100% 무시하면 살았던 조금 부끄러운 시절들, 그때 나의 모습은 지금 거의 없다. Better version of myself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나를 칭찬해 주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내숭을 하나도 떨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

졸려서, 비록 ‘즐겁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나는 연숙과 샴페인 병마개를 틀고 Happy New Year!를 외쳤다. 그리고 곧바로… 너무 오랜만에 자정까지 깨어있는 것이 불편했나… 하지만 그래도 Time Square의 비교적 소란하지 않았던 곳의 모습을 보며 2021년을 맞았다.

Twenty-Twenty, 과연 나에게 무엇인가?

 

“이상한, 괴상한, 요상한”… 365일의 경험이었나? 2020, 쓰기도 발음하기도 멋진 2020년’대’의 시작이 어떻게 이런 “이상한, 괴상한, 요상한” 3가지 형용사의 왕관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숨길 수, 피할 수 없는 두 가지의 비극적 흔적은 두고 두고 젊은 새대로 넘겨질 것이다: Pandemic 그리고.. 물론 Crazy, Bizarre Politics…

 

 

Pandemic….worldwide epidemic, 거의 정확히 100여 년 전, 1920년 전 당시 pandemic, Spanish Flu, 하얀 face mask를 쓴  뉴욕시의 교통경찰들의 퇴색된 사진기록, 그것보다 더 지독한 전염병이 올해 초에 우리를 ‘갑자기’ 덮쳤다는 것. 100년 후란 것, 무슨 숫자의 장난인가? 그 당시의 의료기술과 현재의 것의 차이를 감안하면 한마디로 2020는 거의 ‘인재 인재’에 가깝다. 최강경제대국이라는 미국에서 1/1000 의 인구가 ‘죽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세계적인 수치요, 절망이다.

이런 기막힌 순간 순간에 소위 총사령관 격이라는 자리에 앉은 ‘구제 불능’의 인간은 ‘이상한, 괴상한, 요상한’ 선거투표 음모설을 주장하며 Twitter장난이나, 골프를 치고 있는… ‘비현실, 초현실’적인, 200 여 년 쌓아온 민주주의의 전형을 밑바탕으로부터 흔들고 있는 것을 목격해야만 했던 2020, 한 마디로 하루 빨리 잊고 싶은 한 해였다.

 

우리 가족이나 주변의 친지들 중에서 경제적인 고난을 겪은 사람은 거의 못 보았지만 왜 실상을 모를까. 직업의 종류에 따라서 너무나 불공평하게 피해와 고민을 주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 학교생활의 즐거움은 거의 잊고 살았다.

저소득층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특히 연로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철저한 피해를 주었다. 이럴 때 ‘돈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지만  철저한 자본주의의 맹점이 백주에 드러남을 목격하며 도대체 진정한 ‘민주주의’란 것은 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혼란을 겪는다.

우리 집, 그리고 주변의 친지들,  그런대로 상식적인 선에서 Pandemic을 견디고 있다. 도대체 ‘상식적인 선’이란 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의 무의미한 것이지만, 그것은 역시 ‘사랑이 동반된 지혜’에서나 가능한 듯 보인다. ‘무식한 것이 자랑’이 된 지난 4년간의 ‘해괴한’ 정치풍토가 이번 Pandemic에서도 무서운 괴력을 과시했던 사실, 솔직히 말해서 도망가고 싶었던 한해, 그리고 지나간 4년이었다. 나를 제일 놀라고 슬프게 했던 것은…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망상적 인간’들이 있음을 알게 된 것, 어쩌면 어린아이보다 더 심한 ‘피해’ 망상증을 앓고 있는 ‘성인’들이 그렇게 많은가…  Facebook이나 YouTube같은 곳에는 ‘망상 delusive 집단군’들이 활개를 치고, 그것에 완전히 빠져 사는 멀쩡한 인간들이 나를 무섭게 하던 세월들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조금 공평한지, 우리 집에는 2월 말에 이미 새 생명을 하나 보내 주셨고 다시 다른 생명의 모습이 초음파 사진에 또렷하게 보이는 선물을 주셨다. 그렇게 인간대사, 결혼을 미루던 딸들이 연이어 모두 짝을 만났고, 곧이어 이렇게 손주들 모습과 소식을 연달아 보내 주신 하느님께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우리들 근래의 희망과 건강의 삶을 거의 ‘보장’해 주고 있던 믿음과 생명의 전당, 도라빌 순교자 성당,  작년 가을에 새로 오신 목자의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시 Pandemic의 위력은 과학적인 것이어서 정말 우리들이 성사생활은 한때 치명적인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일년 내내 희비쌍곡선의 곡예를 하며 유지되는 교회중심의 신앙생활, 이제는 거의 고비에 오지 않았을까? 목자의 의지력은 대단해서, 이곳의 존재가 없었다면 과연 우리들 제대로, 건강하게 살았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이것도 중요한 것,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때에 오랜 세월 우리의 사회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레지오 활동’이 커다란 획을 그리며  우리를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 부부가 함께 조금은 높은 곳을 바라보며 할 수 있었던 이 Irish Frank Duff의 선교봉사단체… 비록 몸은 떠났지만 그 잠재적인 조직적 능력에 감탄한다. 개인적으로 다 다른 경험을 주겠지만 적어도 나 개인에게는 인생후반의 삶을 180도로 바꾸어 놓았던 거의 신비로운 경험을 나에게 주었다. 일생을 나나 가족들만 위해서 살았던 세상이 처음으로 이웃들의 존재를 느끼고 보게 해 준 이곳… 특히 성모님께 감사를 드린다.

드디어 2020년 마지막 주일이…

다시 warming trend가 오늘부터 시작된 듯, 조금은 덜 싸늘한 공기를 만난다. 이제는 추운 것이 예전처럼 좋지 않다. 나이 탓인가 나의 몸이 약해진 것일까? 거의 일년 동안 YMCA의 workout을 못한 탓인가? 예전처럼 bench press같은 것을 마구 마구 하고 싶다. 나의 bicep 을 손으로 만져보며 살고 싶다. 한쪽 발로 오랫동안 서 있고 싶다. … 아~ 젊음의 날들이여~~

Mental Balance, peace of mind… 그것이 나에게 며칠 동안 결여된 것들이다. 왜 그럴까? 너무나 육체적인 balance가 편해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무엇을 해야, 몸을 움직여야, 움직여야..한다…

이제 오늘을 포함해서 올해 나흘 4일이 남았다. 무척이나 빨리 오는 것 같다. 무엇을 하며 올해를 보낼 것인가… 간단하다. 나는  올해를 정리, 회고해야 한다. 이것, 간단치 않은 job같다. 너무나 밀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한 마음으로 회고, 반성, 예측 을 포함한  것들을 나의 ‘유산’ 속에 넣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아~ 나에게 나의 마음을 100% 나타낼 수 있는 표현력, 문장력을 주소서, 성모님!

 

드라마 게임 Episode ‘미혼의 뜰’, 1984년 11월 9일자 방영

며칠 전 ‘드라마게임’이란 1980년대 한국 KBS 프로그램을 download했고 지금 보게 되었다. 진부한 story인 줄은 알지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너무나 평범한 인간사를 거의 무시하며 살았구나 하는 정말 놀라운 사실, 내가 일부러 모른체하며 살았던 것들… 그것을 나는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려 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내가 너무 우물 안의 개구리? 허! 나는 지나간 10여 년 동안 삶의 진실, 의미가 무엇인지 자신 있게 찾았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이제 보니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레지오를 떠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앞으로 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것을 찾았다는 느낌인 것이다.  우리에게, 특히 나에게 남은 생을 어떤 쪽으로 향하고 살아야 하는지 그것을 이번 ‘레지오 퇴단 결단’이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나는 이것을 모른 것은 아니지만 거의 포기하며 연기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는 남들처럼 살고 싶다. 일상적 현실에 더욱 가까이 가야 한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신앙적인 진리는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의 북극성의 존재와 위치를 잊지만 말자.. 그리고 내가 잊고 살았던, 무시하려고 눈을 돌리고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알고 느끼고 이해하고 싶다. 특히 연숙과 같이 웃고 울고 싶은 그 많은 생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찾고 싶다.

학교 시험 전에 연필만 깎는다는 얘기가 문득 떠오른다. 내가 현재 그 꼴인 것이다. 첫발을 띠는 것이 정말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일단 시작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지금도 연필만 깎고 있는 것이다. 왜? 조금 더 ‘편한 포근한 것’을 찾기 때문이다. Sherlock Holms 나 전원일기 응삼이, 아니면 조금 전부터 보는 드라마 게임 들이 나를 너무나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래… 내일부터 시작해도 된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문득 문득 교성이에게 카톡을 보내는 것, 이제는 즐거운 일이 되었다. 녀석, 전에 내가 오해를 해서 그렇게 몇 달을 허비했던 것, 나 자신이 창피하기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왜 그렇게 바보 노릇을 했던 것일까? 교성이, 카톡의 느낌을 보면 생각만큼 그렇게 건강이  ‘어려운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까… 언제 한번 만날 수는 없을까? 꿈같은 느낌이다.

가능하면 이영석 신부님과 면담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앞으로의 탈-레지오 이후 성당, 성사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50대의 젊은 신부가 70대 신자의 앞날에 무엇을 하며 지낼지 도움말을 줄 수 있을까?  그래도, 누가 알랴? 나는 신앙에 관한 전반적인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새로니의 임신 후 아기 첫 초음파 사진이 왔다. 아주 정확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아직은 성별을 알 수가 없다고…

 

White Christmas, almost…

비가 세차게 점점 세차게 내리는 성탄 eve, 아차 했으면 완전한 white Christmas가 될 뻔도 했는데… 조금 아쉽다. 비와 눈의 차이가 이렇게 아쉽게 느껴지는 이런 날도 별로 없었다.

지난 밤부터 오늘 비가 세차게 오면 Ozzie녀석 아침 일을 어떻게 보나 하는 것이 그렇게 신경이 쓰였지만 다행히 비교적 잔잔하게 내릴 때 일을 보게 하여서 ‘살았다’.  오늘 Ozzie는 간다고… 새로니가 예상 밖으로 회복이 되었다고 하고, 그 애도 강아지를 데리고 있는 것이 더 좋을 듯하기도 하다.

 

오늘은 비록 가족, extended 가족이 모인다고 하지만 나는 역시 그렇게 신나는 것이 아니다. 이상하게 올해는 혼자 있고 싶어서 그러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나 혼자가 아님을 어찌하랴… 나의 100% 자유는 이제 없는 것일까? 아~ 가끔 그리운 총각시절이여… 그때가 그립다, 완전한 자유, 자유, 자유!

카톡 friend들에게 거의 다 성탄, 송년 인사를 보내고 나니 조금 우울했던 느낌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 역쉬~~~  역시 기본적인 ‘인간애, 사랑’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결여되는 곳에는 반드시 어둠이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올 성탄 선물에는 손목시계와 soap dispenser가 유별나게 돋보였다..

가족들의 성탄전야 점심이 끝나고, 선물을 교환하고나니 드디어 예보대로 비가 서서히 눈발로 변하며 ‘하얀 성탄’의 기분을 내게 하고 있다. 올 겨울 들어서 첫 눈발, 그것도 성탄 즈음의 눈발은 나을 ‘아련~’하게’ 안 만들 수가 없다. 그저 포근한 꿈을 꾸고 싶을 정도다. 그래 요상한 일들로 점철이 된 올해를 보내며 이런 포근한 순간도 우리는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아~~ 이 아늑한 느낌이여…

날씨가 생각보다 더 크게 추워지고 있다. 내일 성탄절의 최고가 32도라니… 믿어지지를 않는다. 조금 전에 그친 눈발… 조금만 더 끌었으면 함박눈이 될 뻔해서 조금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그래도 눈발을 구경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제는 내년 ‘주님공현대축일’ 즈음까지 성탄 12일을 생각하고, 세속적인 연말, 연시에 마음을 쓰며,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새해의 계획을 조금 세우면 좋을 듯하다. 계획이란 것, 이번에는 조금 자신이 생긴다. 정말 생긴다. 계획대로 큰 욕심 없이 살아보면…

 

조지아, 산지가 30년이 넘는 이곳… 그 동안 참 많이 변했지만 ‘정치판도’는 끄떡없이 보수, 그것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는데, 그 개XX가 도와주어서 상상외로 그 XX는 이곳에서 패배하고 이제는 2명의 졸개 senator들이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할 것 하나도 없다. ‘그 XX’ 냄새만 안 나면 누가 되던 상관이 없다. 과연 결과는 어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완전히 현재 national top news거리가 되고 있어서… 또 한번 가슴을 졸이는 순간이 남아있는데… 이런 ‘극적’인 사건들, 나의 건강에 도움이 안 됨을 알기에.. 정말 조심해야겠다.

 

어두웠던 해, 어두웠던 밤에…

제일 긴 밤이 시작될 무렵, 우리 집 cul-de-sac

 

Winter Begins, Winter Solstice, 2020! 결국은 여기까지 왔고 살았다… 감사합니다, 성모님, 주님!  한때는 정말 깜깜하기만 했던 올해의 해괴하고 쓰리고 어둡고 슬프고 절망적인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씻겨 내려가 저희들 이렇게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제일 어두운 날을 지낸다. 내일부터는 1초, 1분… 조금씩 밝아지는 날, 하지만 점점 더 추워지는, 하지만 수선화의 청초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나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올 12월은 평균 이하의 기온을 유지하는데, 이것이 진짜 겨울 (오늘부터)은 따뜻한 것을 예고하는 것일까? 그래, 조금은 따뜻하면서, 구름은 잔뜩 끼는 그런 날씨, 두세 번의 함박눈을 기대할 수 있을까? 태고 전설적 추억의 함박눈 싸인 고향의 정경을 다시 볼 수는 없을까? 특히 나의 73세 생일을 즈음해서.. 이것은 정말 꿈 중의 꿈이 될 것이다.

 

Hanover Wood subdivision, 1992년에 이곳으로 이사 와서 거의 30년이 가까워 오는 세월을 이곳에서 살았다. 좋던 싫던 우리 반생의 세월을 이곳에서 하루하루 숨을 쉬며 살았던 것, 아이들도 이곳에서 다 자랐고… 두 분의 어머님도 이때 다 타계하시고, 나는 40대에서 70대까지의 장구한 세월을 울고 웃고 지냈던 곳이다. 정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100% 감상적이 아니 될 수가 없다. 변한 것들은 무엇인가? 당시에 살던 많은 사람들 이사를 갔거나, 늙어 버렸다. 새로 온 사람들은 30년 때와 비슷한 ‘젊은’ 가족들이 많고… 우리만 변한 것이다. 한번도 어김없이 견디어온 정치색깔은 붉은 것[Republican] 이었지만 이번에 트럼프 개XX가 도와 주어서 파란 색[Democratic] 으로 변한 기절초풍 할 기적까지 목격하게 되었다.

 

 

그 신세대 가족들이 주동을 했는가.. 어제 저녁, 동지 전날 깜깜한 동네의 길목, 차고 가에는 귀여운 등불이 조용히 켜져서 도열을 하고 있는 장관이 펼쳐졌다. 이것도 감상적이 안 될 도리가 없다. 오징어처럼 축 쳐진 동네사람들에게 지겨운 한 해를 이렇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해준 ‘동네 젊은층’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연숙이와 둘이서 동네의 들뜬 기분을 느끼려 산책을 하였다. 많은 가족들이 삼삼오오 걷고 있었고 모두들 기쁘고 반가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모두들 ‘힘든 한 해였지만, 희망을 가지고 살자’하는 표정들. 아마도 우리가 제일 연장자에 속했을 정도로 거의 모든 가족들 꼬맹이들이 딸린 젊은 가장들.. 이래서 동네의 정치적 색깔’도 변했을 듯… Hartford Court의 한 집으로 많이들 몰려가는 것을 보니 아마도 그 집에서 주동을 한 모양일지도… 정말 싼값으로 [hamburger bag 에다 2시간짜리 초!] 축 쳐졌던 올해의 기분을 이렇게 성탄절로 향하게 한 그 젊은 ‘이성적, 상식적’인 영혼들에게 축복을 보낸다! 아! 멋진 일요일이여!

 

이틀 전,  ‘허 율리안나’ 자매가 너무나 미안하게도 ‘성탄 선물’을 집 앞까지 배달해 주고 갔다. 멋진 wine과 desktop 묵상글 모음을.. 이 자매, 참 지난 해에 우리가 알게 되었던 활달하고 융통성도 있는 ‘젊은 60세’ 가 된 자매님이다. 연숙의 교리반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데 인간관계를 퍽 사랑과 성의로 유지하는 자매님인 듯 하지 않은가? 사정이 나아지면 언제 한번 집으로 초대하라고 연숙에게 권유도 하였다. 이 자매님과 더불어 생각이 안 날 수 없는 사람, 서 소피아 자매님… 잊을 수가 있겠는가? 진귀한 한식을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선물했던가? 레지오를 얼마나 도와주었던가? 은인 중의 은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결과는 거의 대 실패가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잠적을 할 수가 있을까? 물론 개인 사정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는 조금 자기억제, 조정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해를 보내면 문득 사람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째 연속으로 나는 평상시 메뉴의 아침을 먹을 것을 거부하고 있다.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나의 아침 메뉴, 지겹다 못해서 ‘구역질’까지도 상상이 될 정도가 되었던가? 무조건 ‘묽은 밥’, 그러니까 물에 말던 국에 말던 한 그릇의 보드라운 밥을 먹고 있다.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그래, 가끔 이런 외도를 해 보는 것 대 찬성이다.

 

 

‘응삼이가 죽었다’고 연숙이 알려준다. 내가 모를 줄 알았겠지만 웬걸, 나는 이미 나의 블로그에 그를 올릴 정도로 그를 잘 보았다. 내가 고국에 살았던 시절에는 일지 못했던 TV 배우[탈렌트], ‘박응삼 역’ 박윤배,  전원일기, 그 중에서도 처가집 방문하던 episode는 나를 열광케 했다. 그 동안 나이도 몰랐지만 73세라고, 역쉬~ 나와 비슷한 세대, 나이일 듯 했다. 왜 조금 이렇게 일찍 떠났을까.. 찾으면 필요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겠지만, 피하고 싶다. 이 정도에서 그를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그 환한 소박한 웃음… 그만이 할 수 있었던 ‘나는 가진 것이 없어요~ ‘를 연발하던 그 모습… 편히 가세요,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내 동갑 박윤배 형제여…

 

다시 필사하는 ‘성바오로 출판사’의 ‘하루 한 순간을‘, 홍윤숙여사의 수필 걸작품, 뒤쪽의 출판사 안내란에 ‘無常 을 넘어서‘ 란 책 제목이 보인다. 이것은 재동 동창, 김정훈 부제의 아버님, 김홍섭 판사님의 수필집 제목인 것이다.  그곳에 소개된 안내문을 보면:

누구에게나 삶은 단 한 번만의 사건이다. 이 단 한번의 삶을 어떻게 살아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 이상으로 더 크고 더 귀한 일이 있을까. 인생과 직무 職務, 신앙, 모두에 충실 忠實했던 김홍섭 金洪燮 판사 判事, 자연과 인생을 예찬하며, 관조 觀照한 수필 隨筆과 시 詩, 일기첩 日記帖 을 모은 감동적 感動的인 명저 名著.

이것은 말로만 간접적으로 듣고 인터넷에서 조금은 더 자세히 알게 된 김정훈 아버님의 저서인 것이다. 이 책을 친지 이동수 목사가 찾고 있었던 것도 올해 여름 쯤이었나… 이 책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1960년대의 책인 듯한데… 내용이라도 어디서 볼 수가 없을까? 한번 뒤져볼까? 혹시 Internet 상에서 이것을 읽을 수는 없을까?

 

‘개XX 트럼프’의 조지아 주 ‘졸개, 떨거지’들 두 억만장자 상원의원들, 조지아가 완전히 트럼프 장례식을 치를 수 있는 chance가 1월 초 runoff 재선거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만약 이 떨거지들이 완패를 한다면 상원은 바이든의 민주당으로 넘어가게 되는 역사적 순간이 될 것이다. 어떻게 내가 30여 년을 산 곳이 이렇게 ‘흑과 백, 생과 사’의 느낌을 주는 곳이 되었을까?  나의 꿈같은 2020년 11월 초, 대선 결과의 놀라운 느낌을 이번 1월 5일 이후에 다시 볼 수 있을까? ‘두 떨거지’ 인간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기적을 바라지만… 그래, 나는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실망의 순간도 대비해야겠지… 하기야 checks-and-balance가 적당히 맞는 congress가 더 건강한 것이니까.

 

또 $600 unearned money가  Uncle Sam으로부터 오는 모양이다. 이렇게 $$을 매일 마구 찍어내는 것, 이것 참 곤란한 느낌이 아닌가? 왜 이렇게 빚 같은 것을 받아야만 하는가? 싫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리둥절할 뿐이다. 전번의 $1,200 때는 어리둥절하고,  그냥 잊었지만 이번에는 능동적으로 도의적으로 쓸 궁리를 해야겠다. 우선 생각에 charity donation과 혹시 조금 더 ‘최근의 냄새를 풍기는’ PC 정도인데…

내일은 화요일, 무의식적으로 ‘레지오’란 말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그 정도로 나, 우리의 머리에 각인된 것이었다. 이제는 부드럽게, 희망을 가지고 다음의 chapter로 넘어가게 해 달라고, 하지만 지난 10 여 년 을 은총의 세월로 기억하고 싶다. 괴로웠던 기억은 가급적 사라지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묵주의 9일기도를 시작하며…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마지막 촛불이 켜졌다…

12월이 거의 다 가고 있는 것을 조금씩 느낀다. 나는 일년을 또 회고해야 하고, 가족적 행사도 신경을 조금 써야 한다. 더 나아가서 새해를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예측하며 해야 할 일들의 계획을 조금씩 생각하려고 한다. 무언가 조금은 자유스럽고 가벼워진 어깨를 느끼기에 나는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과감하게, 피하며 살아왔던 모든 것들을 책상 위에 모두 올려놓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심사숙고 해야 한다. 이번에는 예전과 같이 더 미루면 안 된다, 절대로 절대로…

 

성모님의 뜻에 따른 묵주의 9일기도 – 성바오로 수도회

며칠 전 처음으로,  약속한 대로 , 묵주의 9일 기도 [the Novena of Our Lady’s Rosary] 를 시작하였다. 오래 전에 그렇게 귀가 익도록 들었던 바로 그 “9일기도”…  이것도 묵주를 가지고 하는 기도이기에 반갑지만, 이번에는 레지오처럼 ‘위에서 지시된 지향’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청원/감사의 묵주기도인 것이 전과 다르다.  이것으로, 앞으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청원, 감사를 반복하는 긴 저녁 가족 묵주기도의 새로운 경험이 시작되었다. 우선 첫 27일 (3차의 청원, 9×3=27일] 간은 새로니와 태아의 건강을 위한 청원으로 바치기 시작하기로 했다.  이것 9일 기도 이외의 신심기도는 각자가 다른 지향으로 개인 묵주기도로 개인별로 하기로 했다.  이렇게 ‘post-Legio’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전과 그렇게 다른 생활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본당을 중심으로 한 성사 생활은 절대로 안 변할 것이다. 성모님을 계속 든든한 우리의 전구 轉求1, 후원자로 삼으며…

며칠 동안 ‘탈脫 레지오, Lexit’ 과정을 시작하면서 나는 어떻게  우리의 이 어려운 결정을 공정하고 가급적 객관적으로 우리의 개인역사에 남길 것인가 생각하며, 이것도 괴로운 작업임을 알게 된다. 생각만 해도 몇 가지는 오랜 세월 상처로 남을 것 같아서였다. 성모님의 ‘감사의 환송’을 받고 빠져 나오고 있음도 강하게 느끼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희들  더 좋은 레지오로 탈바꿈하는 커다란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는 질책도 등으로 느낀다.  우리를 포함한 ‘직무유기 전, 현 간부들’ 은 이런 것에 대한 성모님의 추궁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솔직히 우리 순교자 성당의 레지오 앞날이 우려가 된다.

 

Joy of Commonsense, ‘commonsense news’, 특히 ‘good ole’ NBC, CBS, ABC … 도대체 얼마만인가? 안심하고 이 믿을만한 News Show 프로그램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 감사, 감사.. 물론 직접적인 이유는 그 ‘개XX’ 가 서서히 그곳에서도 안 보이기 시작 한 것, 바로 그것이다.  ‘그 얼굴’만 보아도 하루 종일 소화력이 떨어지곤 했었다. 그래서 지난 4년 동안은 영상뉴스기피증이 더욱 심해져서 완전히 나는 main stream pulse를 잊고 살았던 듯해서 솔직히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을 나는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 ‘안 보는 것’ 으로 대하고 있으니, 나 자신도 부끄럽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어떤 친지처럼 평균수명을 채우기도 전에 ‘심근경색 心筋梗塞’으로 지금 죽기는 싫은 것이다.

 

두어 달 동안 독서, 필사를 하던 Scottish doctor, author: A.J. 크로닌의 자서전, ‘천사의 선택‘의 필사가 무사히 끝났다. 시작 전개 부분에 비해서 끝 부분은 조금 너무 감상적, 추상적인 글들이라 애를 먹었지만…  크로닌의 반생을 알게 된 것, 특히 그의 종교, 교회, 신앙관을 짐작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수확일 듯하다. 이것이 끝나고 다른 것들, 미완성 된 필사본 중에서 ‘양지혜씨 어머님, 홍윤숙 여사’의 수필 걸작품,  ‘하루 한 순간을‘ 을 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차례차례로 읽지 않고 마구잡이로 흥미가 있는 것들을 골라서 읽기로 했다. 그것이 훨씬 능률적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홍 여사도 이제 타계를 하셨지만 여사의 애수에 어린 추억의 글은 너무나 공감이 가기에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틀란타 순병원에서 ‘4개월 checkup’ 하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나는 ‘못하겠다!’ 고 대답을 한 셈이다. 이번의 checkup은 다름이 아니고 그 ‘시로도 여의사, 사실은 NP [nurse practitioner] ‘의 ‘과잉, 과욕 진단 over diagnose’ 에 의한 것임을 나는 굳게 믿기에 이런 의외의 대답을 한 것이다. 혹시 내가 틀려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이미’심장에 문제 없음!’의 진단을 내린 나의 심장전문의 cardiologist 를 당신 같은 ‘준 準 의사, NP’ 보다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의한 진단, 그것도 경험이 결여된 교과서적 진단은 정말 불필요한 비용과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사은 ‘핵교’에서 안 가르쳐주나?

오늘은 너무나 평화스러운 하루가 되었다. 탈 레지오의 과정에 나만의 자상한 결론을 잡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앞을 내다보는 방향으로 나의 생각을 돌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추억은 아름답게, 그리고 남은 여생을 향한 힘찬 행진을 꿈꾸기로 했다. 앞으로 앞으로, 탈-코로나 2021년을 미리 보면서…

  1. 가톨릭 신앙에서, 성모 마리아나 천사 또는 성인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은혜를 구하는 기도

LEXIT: ‘LEGIO’ EXIT, 2010~2020

자비의 모후 성모님,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나의 예감이 어쩌면 이렇게 귀신처럼 맞는 것일까, 어떻게 그 인간이 다시 이렇게 우리 앞에 ‘뱀 같은 모습’으로…  나도 너무나 놀란다. 결정의 시간이 온 것이다. 레지오를 완전히 떠날 수 있는 확실한 여건이 되었다. 우리들 모두 조금 여한이나,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것이 성모님의 뜻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싶다. 우리 여생의 다음 장으로 과감하게 넘어가는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이제 우리의 2021년 새해가 미리 시작되었다. 자비의 모후여… 정말 고맙습니다. 성모님, 다른 기회에 성모님을 더욱 돕겠습니다. 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오늘은 원래 레지오 주회합의 날이지만 정식 주회합대신 작별모임으로 끝났고,  결과적인 느낌은 어떨까?  특히 우리 (나, 연숙, 아가다 자매) 3명은 지난 10년 이상 자비의 모후를 지키고 있었기에 조금 감상적이 안 될 수가 없다. 나에게도 정말 오랜 세월 10년, 2010~2020, 이 아닌가?

우리 둘의 레지오 퇴단 결정은 결과적으로 전 단원이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을 떠나는 case가 되었다. 이 ‘자비의 모후’ 의 향후는 거의 폐단일 것 같지만 그것까지 우리가 상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자비의 모후라는 ‘호도(이름)’가 꾸리아에 반납하는 것이 될 것이다. 지난 10년이란 세월 [연숙은 20년] 이 나에게 너무나 커다란 의미를 주기에 심리적으로 빠져 나오는데 물론 시간이 걸릴 것을 각오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장이 시작 되었다.

3년 전, 2017년 봄과 가을에 우리 자비의 모후에 일어났던 두 충격적인 사건들을 제대로 상식적으로 현명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 이것은 궁극적으로 ‘꾸리아 간부들의 단체적 책임’이었고, 그것이 오늘의 최종적인 결과로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사건의 범인 격인 당시 꾸리아 간부와 평단원, 두 명:  후에 그 평단원은 억지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소위 간부라는 사람은 사과는 고사하고 사건 자체를 무시하는 실망을 남겨주었다. 그 당시에 나는 심각하게 퇴단을 생각하기 시작하였지만 곧바로 단장으로 선출이 되어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만약이 이 인간이 다시 간부로 재 선출이 되면 그때는 완전히 퇴단을 하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고 이번에 그날이 결국은 오고야 만 것이다.

올해는 나의 레지오 활동기간이 10년째가 되는 해라서 여러 가지로 앞날을 생각할 때임을 알았지만 성모님의 뜻은 오묘한 것인가 어떻게 이런 때에 이렇게 쉽게 결단을 내릴 기회를 만들어 주셨는가.  하지만 정이 든 우리의 레지오 앞날이 진심으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이제 모두 끝났다. 1123차 마지막 특별주회, 비록 단체 기도시간을 못 가졌지만 공식적으로 작별인사를 하는 기회는 가졌다. 전 단원이 이번에 퇴단의 의사를 밝혔기에 이제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났다. 자비의 모후 성모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섭섭하고도 기쁩니다…  우리는  복 바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 송년 때를 위해 미리 사 놓은 샴페인을 터뜨렸다… 어쩔 수가 없었다. 레지오가 없는 우리 둘의 새 기원이 시작되는 양 모든 것을 이제 다시 성모님께 봉헌하는 심정으로… 하지만 고통스런 ‘불필요한 증오’가 없는 그런 새로운 삶을 앞으로 살고 싶다.

Grandson Ronan, 희망의 以心傳心

 

Ronan, Ro… 오랜만에 보는 10개월 짜리 손자 ‘산’.. 그 동안 더 자랐는지 모르지만 귀엽고 반갑다. 녀석도 한참 동안 나를 보면 꼭 웃기도 한다. 아직도 나는 멀었다. 손자녀석이라는 기분이 왜 이다지도 덜 드는 것일까? 생긴 모양새가 조금은 달라서 그런가?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섭섭해진다. 하지만, 하지만 세월이 약이 되리라… 모든 ‘문제’는 결국 다 지나가리라…

 

Young & intelligent Biden supporter, our hope

트럼프 개XX야, 고맙다!  올해는 유난히도 동네에서 많은 사람들이 holiday decoration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각종 뉴스에서도 올해 성탄장식 business가 엄청나게 잘 된다고 보도하는 것을 보고 생각을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왜? 이심전심 以心傳心 아닌가? 인간말종, 트럼프 개XX, 지겹고 지겨운 코로나바이러스, 정말 지겨운 한 해를 마감하는 자리에 희망의 상징인 예수님의 생일이 있으니 그것을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수 년째 이런 것을 잊고 살았던 우리도 올해만은 그냥 앉아 지낼 수 가 없었다. 동네를 걸으며 아이들이 있는 젊은 가정이 많이 눈에 띠였고 장식들도 주로 아이들 중심이었다.  젊어진 이 동네, 역시 트럼프를 지독히 혐오하여 30여 년 만에 정치판도가 180도 바뀌었고 이것은 우리동네, 지역의 가장 놀라운 기쁜 성탄 선물이 되었다.

 

KBS TV 문학관 1980년대 version, 그 동안 YouTube download에서 빠진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았더니 모조리 발견되어서 download를 하기 시작해서 큰 문제 없이 되고 있다. 무려 거의 280 episodes! 이것을 다 보게 되면 1980년대까지의 대한민국 문학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1980년대까지는 해결이 되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 이후의 ‘문학관’ series가 보인다. 몇 편은 나도 이미 접한 것, HD 문학관 series, 이것은 2000년 대 이후까지 방영된 것이라 이것으로 2000년 대 직전까지의 한국문학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것도 없다는 것 하나로 편하게 하루를 맞았지만.. 역시 나는 내일 예상되는 일, 그 놈이 묵직하게 짓누른다. 왜 그럴까? 왜 나는 이런 잡스러운 기억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것일까? 2017년들의 더러운 추억 두 개가 왜 나에게서 자유를 뺏어가는 것인가? 나의 문제일까? 어떻게 이것을 털어버릴까? 어떻게… 어떻게 하면 깨끗이 잊어버릴 수 있을까? 아~ 나도 참 한심하다.

요사이 묵주기도의 강도를 높이면서 다시 묵주기도의 맛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다. 횟수가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거의 필수적인 듯하다. 많을 수록 좋은 것이다. 오늘도 20단을 하며 다시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내일 벌어질 ‘우리에게는’ 큰 사건, 나에게는 2년 동안 골칫거리였던 문제, 이제는 post-LEGIO의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한다.

TV 문학관, 비철이야기, 쓸쓸한 겨울 바닷가

현재, 구약의 지혜서를 읽고 있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 주관의 ‘전 신자 성경통독’도 이제 기나긴 일년의 여정을 끝마치려고 한다. 정말 정말 ‘진짜 진짜’ 길고도 짧은 여정, 1년이 가고 있다. 1월 1일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는 새벽에 일어나자 마자 ‘무조건’ 이것을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신들린 듯 읽었다. 나의 끈질긴 성질에 나도 놀라며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연숙이도 신부님도 모두 도중에서 한때 포기할 정도로 뒤쳐졌던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희망하는 만큼 깊이 묵상하는 노력은 미흡했지만 그래도 성서 전체를 훑었다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다. 이제 나는 다시 천천히 성경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이영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과 담당 봉사자 분들… 이런 기회를 주신 것…

오늘 Ozzie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가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사실 섭섭하기도 하다. 우리모두 2주일 동안 좋은 사랑의 시간을 가졌던 것 아닌가? 하지만 자꾸 정을 나누는 것, 이제는 조금씩 두려워지는 심정 숨길 수 없다. 서로 언젠가는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하여야 하는 그것… 아~~ 왜 모든 ‘의식 있는 삶’ 이란 것은 이렇게 끝이 있는 것일까?

결국은 오늘 Ozzie를 새로니 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 녀석 집 근처에 오더니 그렇게 흥분하는 것, 감동적이라고나 할까? 우리와, 특히 나와 정답고 가깝게 지내던 ‘손자 녀석’이 새로니를 보더니 완전히 나를 잊고 다른 개가 되었다. 역시 주인은 주인인 모양이었다. 임신초기,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새로니를 꼬옥~~  안아 주었다. 머리 속은 역시 10세정도의 어린아이 새로니를 느끼고 생각하며…   간 김에 도라빌 H-mart에 들려서 항상 맛있는 food court 자장면을 둘이 시켜서 먹었고,  병 막걸리까지 사가지고 들어왔다.

Ozzie가 없는 고요함, 이상함을 안 느끼려고 routine을 완전히 바꾸어 desk 옆 sofa에서 잠도 자고 안 하던 video,특히 KBS- TV 문학관을 열심히, 무심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듯하게 멍하니 보았다. 조금은 다른 날이 되려고 했지만 그렇게 만족스러운 기분은 아니다… 그래 이럴 때는 일찍 자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자자… 자자… 코~ 자자…

 

레지오 화요일, 정말 어제 같이 느껴지는 지난 주 화요일이 벌써 왔나…. 이것으로 시간의 흐름을 또 탄식한다. 별로 한 것도 없지 않은가? 이것이 무슨 레지오 활동보고 할 주회합이란 말인가? 그래도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라던 주임신부님의 말씀을 상기하고 묵묵히 계속한다. 하지만 며칠 후 꾸리아 단장 선거 결과에 따라 우리의 향방의 모든 것이 천지개벽하듯 바뀔지도 모르니 나는 이번 주가 계속 불편하기만 하다.

이번 주도 레지오 주회합 ‘무사히’ 끝났다. 무사히? 참, 이렇게 조그만 모임에서도 ‘무사히’ 라는 말이 나온 것은 웃기지 않은가? 참, 사람들이란… 특히 여자들이란 이해를 못할 ‘동물’인가… 그래,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건너가면 성모님이 또 칭찬을 해 주시겠지…  주회합 중, 나의 옆에서 끙끙대던 Ozzie와 셋이서 산책, 그런데 찬란한 햇빛을 완전히 조롱하며 시베리아보다 더 찬 공기가 대기를 덮고 있었다. 그래… 이것이 겨울의 기분, 아니던가? 감사하게 추위에 감사하자.

 

비철이야기, 쓸쓸한 겨울 바닷가 에서..

KBS TV 문학관, 1980년대를 거스르는 당시의 문학, 문화, 사회상을 모조리 보여주는 프로그램, 가끔 정말 할 것이 없으면 이곳을 찾는다. 주사위를 던지듯 우연히 걸리는 것을 본다. 하지만 요새는 나도 약아지고 시간낭비가 싫어져서 drama의 끝 무렵을 먼저 본다. 거기서 통과되면 조금 앞쪽으로, 앞쪽으로… 그것으로 전체를 볼 것인가는 쉽게 결정이 된다. 장장 150여 편의 1980년대의 눈에서 본 대한민국 문학작품들… 이것도 사실 나에게는 큰 공부가 됨을 안다. 모르고 죽을 뻔 했던 것을 아는 것,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것보다는 덜 하겠지만 그래도 보람 있는 시간 소일 消日이다.

오늘 ‘걸린 것’은 제목이 ‘비철이야기‘, 직감에 非철이란 말이 생각났다. 수십 년 만에 듣는 말, ‘비철’… 제 철이 아닌 때 off-season… 이곳,  드라마에서도 역시 비철은 ‘여름 성수철이 아닌 때’를 말하고 역시 겨울철의 휴가, 휴양지의 이야기다. 흔히 소설의 주제로 잘 등장할 만한 소재일 것이다. 진부하고 잡다한 줄거리도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관심을 제일 끌었던 것은 역시 사람이 없는 바닷가에 즐비한 여관들… 아~ 한번 그런 곳에 가보았으면… 그것이다. 문제는 요새에 있음직한 ‘미국식, 일본식’의 모텔, 호텔, cabin등이 아니고 1970~80년대에 있었을 그 꾀죄죄하고 가난한 ‘한국식 여관’들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다, 이것은 어려운 주문일 듯하다.

 

오랜만에, 꽤 오래 전부터 필사를 시작했던 책들로 우연히 눈을 돌려, 천경자 여사의 수필집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의 필사 마무리를 시도하고 있다. 너무나 오래 전에 시작한 것인데… 이 책, 길기도 하지만 지루하기도 했다. 손을 완전히 놓았던 것, 어쩔 것인가… 하다가 심리전을 펴기로 했다. 뒷부분부터 거꾸로…거꾸로…  그러니까 뒤부터 앞으로 읽는 것, 끝내는 데는 이것처럼 좋은 방법이 없다. 한 동안 타계하신 줄도 몰랐던 천경자, 천경자… 이분의 수필은 참 나와 공감대를 많이 이룬다. 과거에 대한 애수 같은 것을 그림처럼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 나도 그렇다.

우연히 캐나다 토박이 정교성이와 다시 카톡대화를 시작했다. 생각할 수록 나의 성급한 생각을 탓한다. 몇 개월 전, 나의 판단은 거의 틀린 것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서 내가 어쩌면 이렇게도 우둔한가.. 자책감을 느낀다. 그래, 상대는 그  6년 반장, 정교성이 아닌가? 나를  어려울 때 그렇게 도와주었던 정교성, 그가 지금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딸들과 함께 사는 것,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그는 나의 친구인 것이다. 죽을 때가지 친구인 것이다.

십이월 초 스산한 斷想들…

예년에 비해서 무려 3주나 이른 holiday decoration이 시작되었다

빠삭하게 마른 공기의 추위… 습도가 30% 정도로 떨어진 이즈음의 실내공기.. 진한 향기를 내뿜는 커피의 모습을 생각하면 포근하게 편한 기분일 것이지만, 이것도 예전과 같지 않게 ‘추운 것이 귀찮게’ 느껴짐은 나이 탓일 듯하다. 노인들에게는 추위가 위험하고 불편한 것이라는 말이 실감은 가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나는 아직 노인이 아냐!’ 라는 외침인 것이다. 나에게는 죽을 때까지 ‘노인이 아냐!’ 하고 외칠 듯하다. ‘여보’라는 말과 ‘노인’이란 말은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나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단어들이리라..

요새 아침에 침대를 나올 때마다 ‘성모님’의 얼굴을 찾으려 애를 쓰지만 억지를 쓰는 나의 모습을 본다. 왜 그럴까? 그렇게 자상하게 나에게 희망을 주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질까? 지난 10여 년간 내가 쳐질 때마다 희망을 주시던 그 시절.. 어디로 갔나? 왜 이렇게 요새 희망이란 말과 느낌이 멀어진 것일까? 어떻게 희망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 추운 겨울에 따뜻한 그 희망이라는 말을 다시 찾아가게 되었으면…

새로니가 ‘입덧 처방약’을 먹어서 전보다 나아졌다고 한다. 그러면 Ozzie도 보내는 것이 어떨까, 그 녀석이 옆에서 쫄랑거리는 것이 그들의 일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조금 아침에 편한 시간을 갖고 싶은 것도 사실이 아닌가? 하지만 먼저 데리고 가겠다고 할 때까지 데리고 있음이 좋겠지…

 

One (book) down, Two (books) to GO!

드디어 이번에 새로 산 3권 책 [Biocentrism, Beyond Biocentrism, The Grand Biocentric Design]들의 첫째인 Biocentrism, 그야말로 완전히 필사 통독을 했다. 결과적으로 softcopy도 bonus로 남았고… 어쩔 것인가? 다시 읽어도 되겠지만 호기심을 누를 수가 없어서, 곧바로 다음 책 Beyond Biocentrism 을 필사 없이 독서를 시작했다. 우선 이것은 눈으로 읽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지금 현재까지 chapter 6를 읽는다. 현재까지는 거의 모든 topic이 biocentrism 이 아닌 Quantum [theory] stuff이었는데, 이전에 모든 ‘들었던’ 것들이긴 하지만 Lanza의 설명은 조금 이색적인지, 모르던 사실, 새로운 사실들까지 알게 되어서 너무나 반갑고 기쁘다. 20세기 100년 동안에 일어났던 이것 QT (Quantum Theory), 어떻게 이런 혁명적이고 지각변동적인 것을 나는 모르고 살았던가?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너무나 다행스럽고, 이것은 분명히 궁극적으로 과학은 신학의 밑바닥으로 조금씩 접근하는 것 같아서 죽기 전에라도 이것을 알게 해 준 성모님께 감사 드린다. 이것을 알게 되고 흥미를 느끼게 된 것도 사실 2010년 이후였으니까… 레지오, 과학과 신앙, 성모신심 등이 모두 관계된 것이다. 정말 정말 멋진 ideal…

한국에 계신 ‘서란재 양명’이라는 멋진 호를 가진 ‘거의’ 동년배 안 헨리코 [레지오] 단장의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현재 세상이 돌아가는, 그것도 대한민국 교회, 레지오를 포함해서, 것을 친근한 말투로 전해 주었다. 그곳 성당 내 두 곳의 Pr.[쁘레시디움]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나는 묘한 감정이 교차됨을 느낀다. 그곳도 그런데… 하는 안도감과 이거.. 이러다 100년 역사의 레지오가 건강하게 재기를 하는 것이 힘든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백신 개발소식에 지금은 그렇게 절망적은 아니다. 서광이 비추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내가 속한 우리 자비의 모후이다. 우리 개인적인 ‘거취’ 문제는 없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번 단장선거의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미지수라서… 마음이 불편한 대림절이 되고 있다.

 

Peggy Lee & Righteous Brothers on Ed Sullivan Show, 1960s

Peggy Lee with Righteous Brothers? Wow! 와~ 이것은 정말 추억의 폭탄이 아닌가? 이것은 아마도 Ed Sullivan Show 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들 모두 아득~ 한 저음과 초 고음이 멋지게 화음을 이루던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고, 그것도 같이 노래를? Peggy Lee, 우리가 그녀의 노래를 들었을 때는 거의 전설적인 저음의 Johnny Guitar, Fever 같은 것 뿐이었다. Righteous Brothers의 대표적 hit, Unchained Melody는 사실 blue-eyed soul의 대명사가 되어서 따로 기억을 할 필요조차 없었지…

 

어떻게 이렇게 날짜가 잘도 바뀌는가? 하루하루가 거의 비슷하면 사실 변화가 적을 것이고 그러면 시간도 늦게 갈 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느낌은 거의 반대다. 할 수가 없다. Biocentrism에서는 시공간은 ‘개념’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믿으려면 나는 아직도 멀었다. 금요일, 하면 breakfast pancake밖에 생각이 안 나고, 벌써 주말 주일미사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 뿐이니… 참 재미없다, 없어…

싸늘한 비가 주룩주룩, 다행히 Ozzie산책 이후부터, 하루 종일 내리는 오후, 솔직히 들뜬 마음은 거의 없고 책을 읽기는 하지만 너무나 가라앉는 나의 마음은 왜 그럴까? 즐겁거나 기쁜 느낌이 전혀 없는 이유는… 혹시 holiday blues일까? 이유를 알 것도 같지만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지도 모르니까… 그저 그저 그런 시간, 세월도 있다는 것만 알자.

비가 서서히 그치면서 다시 싸늘해지는 듯 하더니 바람이 저녁부터 세차게 분다. 오늘 밤, 내일 모두 그런 모양… 하지만 바람소리를 들으니 의외로 차분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인가? 아하, 생각이 난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오늘도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아~ 바로 그런 느낌, 엄마하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나와 같이 화로 둘레에 모여 앉아서…. 세찬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에… 아~~ 어머님, 엄마, 누나야…. 사랑해, 사랑해… 그리운 엄마야, 누나야~~~

 

Poor man’s Multi-track recording studio

Sound Mixer (제일 값싼 Behringer XENYX 502)가 나의 옆[desk file drawer]에 놓여진 후부터 나는 microcontroller대신 이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전까지는 주로 레지오 카톡 주회합 때문에 microphone setup에 주안점을 두었지만 현재는 guitar input setup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야말로 home recording setup인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것이다: multichannel recording, voice + guitar recording 인 것이다. 이제는 조금 mixer의 기능과 구조를 알게 되었기에 가능할 듯하다. 이것은 정말 완벽한 time killer역할 을 할 것이다.

12월, 2020년 달력의 마지막 장으로..

Dr. Robert Lanza’s Biocentric Realities

Biocentrism by Lanza et al…. 일단 필사가 끝났다. 비교적 읽는 것과 쓰는 것의 비율이 반반 정도라고 할까… 그러니까, 비교적 머리 속에 남을 정도로 생각하며 읽은 것이다. ‘의식’이란 것, 생물체라는 것, 의식을 가진 생물체가 없는 우주의 존재는 무의미하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것은 과학적 세계관의 대변환 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입장에서 나는 어떤가?  양자역학 결과의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라 동기는 분명한 것이다. 그 해괴한 결과를 설명하는 방법 중의 하나, 아니면 바로 이것? 하지만 현재로써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11차원 공간을 운운하는 String Theory보다는 ‘덜 억지적’이라고나 할까?

과연 어떨까? 나의 문제는 이런 모든 것들을 결국 종교적인 것으로 연결을 시키고 싶은 충동을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것이라서 나도 어쩔 줄을 모른다. …

우리의 의식으로 의식하지 못하는 것의 존재는 무의미한 것이다… 허~~ 이것을 어디까지 확장해서 생각을 할 것인가? 내가 안 본 것, 모르는 것은, 간단하게, 없는 것이다… 이것은 철학적인 말 장난은 아닐까 할 정도로 심한 상식의 비약일 것이다.

 

2020년의 마지막 한 장의 달력 12월이 나를 마주본다. 점점 빨라지는 세월, 무엇인가 많은 것을 또 미루고 놓치며 ‘겨우’ 한 달이 남았다는 사실, 왜 나는 이렇게 못 깨우치는 것일까? 불만이다, 불만이다, 나에 대해서, 나의 무기력 증에 대해서… 많은 것을 놓친 느낌이 왜 이렇게 강한 것일까? 그런대로 열심히 살았지 않았던가? 그래 마지막 31일이라도 반격을 할 수 있다는 각오와 믿음으로 하루 하루를 충실하게 살자!

예보대로 영하로 떨어진 아침, 28도라던가… 분명히 얼음도 얼지 않았을까? 유일한 관심과 우려는 밖에 있는 garden hose들인데… 그래 하루 정도는 잘 견딜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보다는 머릿속은 역시 레지오에 관한 것, 별로 사명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 멋진 나의 열기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2010년부터 시작된 10년간의 뜨거웠던 레지오 열기는 어디에 가서 찾는단 말인가? 이제는 우리도  할만큼 한 것인가? 서서히 물러나갈 때가 된 것일까? 아니 이제는 아주 쉬어도 될까…  레지오 주회합과 13일의 단장선거를 묵직하게 느끼며[‘그 인간, 왕마귀’가 선출되면 완전 퇴단을 결심하였기에] 나는 또다시 쳐지려고 하는가… 아니다, 성모님이 가만히 보고 계시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도 ‘무사히’ 주회합이 끝났다. 하지만 대 실수를 한 것은 아쉽기만 하다. 웃기게도, [영적독서]를 빼먹었다는 것은 분명히 주회합 시작의 분위기가 덜 정돈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왜 그랬을까? 아무도 지적을 하지도 않았기에 그것도 아쉽다. 그래도 모두 모두 참석해서 목소리로 성모님과 함께 했다는 그 사실이 제일 중요한 것이니까.. 무엇이 더 중요한 가를 잊지 않도록…

 

끙끙거리며 산책을 기다리는 Ozzie의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보면 볼수록 Tobey를 보는 듯하니… 그 녀석은 나를 그렇게 따른다는 뜻이다. 어쩌면 좋을까… 어찌 다시 이렇게 끈끈한 인연의 정을 쌓아가느냐 말이다… 하지만 할 수가 없다. 할 수가 없어…  Tobey와 다른 것 중에 Ozzie는 정말 산책, 걷는 것 그 자체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Tobey는 산책 자체는 빨리 끝내자.. 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거의 30분이 걸리는 우리 동네의 산책길을 날이 갈수록 우리는 감사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아~ 조카 수경이가 왔던 해, 2006년부터 나는 이 길을 걸었지… 세월이여~~

모처럼 보는듯한 Georgia Bulletin, 이제는 기다리게 된 David King의 column에다가 이번에는 bonus로 나에게 appeal하는 멋지고 유익한 기사를 보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다. 오래 오래 전 이 격주 간행되는 대교구 신문, 곧 나는 이것에 매력을 느꼈는지, 모든 기사를 정성스럽게 읽게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 준 ‘영성적 혜택’을 어떻게 정리를 할 것인가? 나도 지난 15년 동안 참 많~~이 변했다. 게다가 성모님까지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Advent 2020, 저무는 11월에…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자랑, 기쁨, 성탄구유 점등식…

2020년 대림절 Advent 의 시작을 맞아, 어제 토요 특전미사와 성탄구유 점등식에 모두 참석하고 돌아왔다.  칠흑같이 이미 어두워진 저녁 6시 쯤 나가면서 느낌이 ‘정말 오랜만에 어두울 때 나가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예전보다 운전이 익숙지 못함은 나이 때문일까 아니면 그 동안 나가질 못해서 생소하게 보여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이런 생소해짐은 더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이것이 생의 진리인 것을…

이곳,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성탄구유와 모든 장식들, 크리스마스 tree등은 정말 환상적이고 멋진 것이었다. 아마도 신부님의 특별한 관심과 지도로 봉사자들이 헌신적으로 수고를 했을 것이다.  꽤 오랜만에 볼 수 있는 그리운 모습들이 꽤 있었다. 정말 반가웠지만 예전처럼 깊은 악수나 hug을 못하는 것은 정말 이번 pandemic의 저주라고나 할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런 것인가… 별로 큰 관계도 없었던 듯 보이던 사람들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참, 사람은 서로 사랑을 하게끔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 분명하다.

오랜만에 밤늦게 집으로 들어오니 Ozzie가 그렇게 반길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고, Tobey때의 생각이 떠올라 슬퍼짐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나의 어깨로 뛰어올라오던 녀석… 정말 정말 Tobey야, 그립구나, 그리워…

특전미사 덕분에, 오랜만에 아침에 늦게 잘 수 있는 대림절 첫 주일날이 되었다. 어제 특전미사를 간 것, 여러모로 우리에게 참신한 기분을 제공하였다. 성탄구유 점등식에도 교우들과 같이 모여 섰던 것도 살아있는 기분을 더욱 고조시켰다. 모두들… 잘 살고 있음에 반가움과 감사함이 솟구친다. 그래 모두들 잘 살아보자.

 

매년 이즈음에 갑자기 요란하게 나오는 대한민국 FEBC 극동방송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사실 유별나고 유난한가? 이곳의 어느 방송에 못지않게, 아니 더 요란하게 각종 성탄기분을 자아내게 한다. 기독교 방송이라지만 문화적, 풍속적으로도 고국의 성탄은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많은 추억을 안겨주었지 않았던가… 누나와 같이 그리던 각종 성탄카드들..  코흘리개 꼬마들에게 센베이 를 나누어주던 동네 교회당의 모습, 그립다 그 시절들이…

 

예상을 초월한 평화스러운 주일 날이 되었다. Ozzie 도 행복하게 동네  산책길을 걷고, 점심도 편안하게 먹었다. 한가한 것을 기화로 나는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사치를 부렸다.

2014년에 심취하며 읽었던 Dr. Francis CollinsThe Language of God을 다시 살펴보기도 했고, 그 저자 1950년생, 에 대해서 존경심을 키우기도 했다. 그의 거의 완벽한 신앙과 과학의 접속 함의 놀라운 용기와 지식,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

또한 거의 하루 종일 Robert Lanza의 책, biocentrism 을 읽게 되었다. 아직까지 그의 논제의 기본을 향하는 과정이지만, 현재까지는 아주 흥미롭다는, 혁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관심은 현재의 가톨릭의 ‘과학교리’ 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고차원적인 희망이지만… 누가 알랴.. 이것이 나의 신앙, 믿음에 더 도움이 될는 지를..

 

오늘로서 Mr. 설 의 선물,  Bourbon 의 마지막 잔을 기울인다. 과연 얼마 만에 바닥이 난 것일까? 짐작할 수가 없다. 한 두 달 정도라는 것 밖에는.. 상관없다. 아주 감사하게 맛있게 마셨으니까. 이제 앞으로 이런 것 마실 기회가 생길까, 내가 사지 않으면 힘들지도…  과음을 하지는 못하고 찔끔찔끔 나만의 특유한 모습으로 마셨으니까, 몸에 그렇게 해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설 형제,  형제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  진심으로…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나의 가슴이 조금은 따뜻해집니다…

우리가 그래도 감사할 것은…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Ozzie 와 새벽 시간을 같이 지내는 2020년 추수감사절 아침이 되었다. 밤중에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에는 그치기를 고대했는데 그대로 되었다. 축축하게 젖은 backyard로 튀어나갈 수 있었다. 의외로 기온까지 포근한 느낌, 조금 편한 느낌…

감사절, 추수감사절, 우리가 무슨 추수를 했던가? 생각해보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손자의 생명이 세상에 나와서 무럭무럭 자라고, 다른 생명이 잉태되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른 것들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된 나, 비록 다른 경험으로 옮겨 갔지만 전의 고통에 비교를 할 수 있으랴…. 사과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심장, 혈압의 공포에서도 조금 멀어지고, 조금씩 ‘깊어가는 늙음’에 적응을 시작한 올해였다. 코로나의 공포에서도 이제는 백신의 희망이 앞으로 보이고, 지난 4년간 해괴한 정치판도의 ‘꼴보기 싫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미국의 대선, 이것도 사실 커다란 감사할 일이 아닌가?

우리 둘, 그런대로 건강하고, 먼 곳의 가족친지들도 큰 걱정이… 하지만 누나의 식구들은 풀어야 할 큰 숙제로 계속 남아 있지만.

신앙, 교회, 봉사, 세계관, 우주관, 인간관… 이곳에는 어떤 변화가? 내 삶의 의미를 조명해 주던 봉사활동은 치명상을 입었다. 나를 지탱시켜 주었던 것이 바로 봉사활동을 통한 신심이었는데… 그것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것이 성모님의 군단 레지오 였는데… 어쩔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 ‘왕마귀’가 만약에 우리 눈앞에 다시 나타나게 되면 나는 절대로 레지오에 남아있을 의미가 사라진다. 어쩔 것인가? 나에게 정답이 없다. 그저 그저 성모님의 응답만 기다린다.

 

 

몇 년 만인가? 감사절 New York Macy Parade를 편한 마음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멋진 parade를 그 옆에서 보고 있는 humanity가 거의 안 보인다. 가슴이 찡해 온다.그래도, 나의 가슴이 조금은 안도의 숨을 쉬는가?  그래, 조금은 편하게 즐기면 좋겠다. 비록 오늘 우리는 혼자 조용히 탈 脫 전통적인, 조용한 감사절을 보내기로 했지만 편한 가슴의 속을 주신 것에 감사를 더 드린다.

 

마음껏 늘어지는 늦가을 하루..

기분 좋은 꿈을 기대하고 잤건만 반대로 새벽 5시 경에 눈이 떠지더니 다시 잠이 들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일찍 깼는데 더 자려고 했지만 약간 포근한 공기에 힘입어 5시 30분경에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어제 밤에 옮겨놓은 X-10 programmer가 제대로 되는가 궁금했지만 다행히 모은 light들 제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

긴 편에 속하는 성경통독의 하루,  오늘은  ‘마카베오 上’을 계속 읽는다. 이 부분들은 거의 역사적인 것들이어서 그렇게 지루하지 않다. 시대도 로마제국과 연결이 되는 비교적 신약쪽에 가까운 때라서 더욱 흥미가 간다. 유다 마카베오… 나로서는 생소한 이름이니, 나는 정말 아직도 멀었다. 이런 것들 다시 더 계속 죽을 때까지 공부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연숙이 부득부득 혼자 Ronan babysitting하러 가겠다고… 나는 못 이기는 척 하고 물러났다. 마음은 사실 반반이다. 가도 좋고, 안 가도 좋고… 하지만 연숙에게 나의 염려되는 마음을 보이고 싶기도 했다. 반은 연극일 수도 있지만 후회는 안 한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집에서 큰 일을 할 자신도 없음을 알기에 그런 것도 있었는데, 이렇게 되니 오늘은 조금 더 느긋하게 지내고 싶은 꾀가 발동한다. 날씨도 바람이 부는 조금은 을씨년스러운 느낌, ‘추수감사절’ 휴일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껴 볼까나…

극동방송 인터넷 radio를 켜니, 아니나 다를까…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온다. 나는 이것이 이상하기만 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크리스마스 문화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고 분명히 들었는데, 아무리 기독교 계열의 방송이지만 어떻게 이렇게 일찍이 이런 곡이 흘러나오는가? 누가 설명해 줄 수는 없을까? 아마도 작년에도 이런 것을 경험했기에 생각에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지도… 아니면 이것은 극동방송만의 선택이었을까? 아~ 나는 정말 고국에서 멀어진 고아처럼 느껴진다.

 

 

오래 만에 갑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쏟아진 듯한 야릇하게 기분이 좋은 월요일 한 낮이 되었다.  분명히 편하게 지내면 한 것이 거의 없다는 느낌으로 또 기분이 쳐질 듯하지만, 오늘은 결정을 했다. 날씨가 싸늘한 것을 핑계로 늘어져보자… 하는 염원이다. 편하게 흥미롭고 유익한 ‘종교, 과학, 학문적’ 책을 필사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노년에 들어서 최고의 취미가 되었다. Robert LanzaBiocentrism, 그리고 A.J. Cronin의 저서전적 소설 ‘천사의 선택’ 이 두 권은 이제 속도가 붙었다.  추위로 완전히 손을 놓은, 밖의 일은 언제 다시 시작하나… 이것은 조금 염려스러운 것, 다시 손을 잡으려면 나는 항상 시간이 걸리니까… 하지만 일단 잡으면…

새로니가 ‘입덧’을 심하게 한다는 소식… 참, 우리 집은 엄마를 모두 닮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잘 견디리라고 확신을 한다. 이제부터 엄마의 손길이 더욱 바빠지게 될 것 같구나… 참, 여자는 불쌍하지.. 이런 고생을 하며 인간의 의무를 완수해야 하니.. 하지만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니까 순순히 순응을 해야겠지. 내년 7월이 예정이라고… 허 그렇게 오래 들 기다리더니 2020, 21년 연이어 두 명의 손주들이.. 참, 세상사는 이렇게 거대한 수레바퀴가 돌듯이 도는구나.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맛보아야 할 것들은 거의 다 나타난 모양… 이제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만 남은 듯하니…

결국은 ‘트럼프 개XX’의 모습이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모양인가? 억지를 쓰는 그 패거리들이 하나 둘씩 꺼져버리는 모양이다. 정말 이런 억지를 쓰는 그들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슬프게 느껴질까? 배웠다는 인간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해괴할 수가 있을까? 지난 4년을 지내며 나는 이런 ‘추락한 인간상’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공포.. 이 공포는 사실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모조리 없애고 싶은 상상을 하는 것, 바로 것이 나의 공포였다. 현재까지도… 하지만 하지만 서서히 사라질 희망이 보인다.

그것과 더불어 코로나 백신이 기록적인 speed로 개발이 되어서 코 앞에 보이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큰 영향은 없겠지만 그래도  내년에는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아이들의 직장도 그렇고.. 우리도 조금은 기를 피게 되고, 성당, 교회 등, 신앙생활을 안심하고 할 수 있고…  한가지 걱정은 Biden 이 교회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조금 안심은 그래도 친 교회적 생각을 가진 Republican congress가 있으니 큰 바람막이 역할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 말종 人間 末種

 

인간 말종 人間 末種1, 트럼프 개XX’  나의 가슴, 심장, 두뇌, 입술 모두 이 극단적인 말을 외치고 싶다. ‘내가 지금 어느 나라에서 살고 있지?’ 하는 바이든2의 말에 공감이 간다. 칠십 평생, 상상을 초월한, 전후 무후前後 無後 한  post modern의 시대 미국에서 이런 정신병자, 인간 말종이 4년간이나 막힘 없이 군림했었다는 사실, 이제 왜 세계사가 그렇게 많은 고통의 역사로 점철되었는지 어렴풋이 감이 잡힌다.

이 말종 인간은 사실 문자로 언급할 가치가 하나도 없지만 문제는 바로 그를 추종, 맹종하는  준 準 정신병자들, 그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들이 누구인지 대강 짐작은 간다. 배워서 남 주나? 이말 밖에 나오진 않는다. 못 배우고, 무식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준 정신병자 부족들..  ‘하얀 것’ 하나를 마지막 자산, 무기로 삼아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 발버둥치는 불쌍한 영혼들, 이들이 미국의 마지막 암의 존재로 군림 하는 초현대사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절대로 행복하지 않다.

이 말종집단들은 재교육을 시키는 수밖에 없지만, 급하면 수술하는 수 밖에 없다. Chemo (therapy) 같은 신사적인 방법이 현재는 통하지 않는 듯하지만, 그래도 ‘높은 길’을 걸어야 한다. 거의 반세기가 가까워 오는 ‘그래도 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서의 나의 삶에서 이런 사상초유의 사태를 보며,  20세기에 두 번씩이나 인류에게 고통을 주었던 ‘독일 국민성의 오류, 독일인 근성’이란 것이 그들만의 고유한 것이 아님을 알고 앞날의 희망이 훨씬 줄어드는 나의 짧은 여생이 그려진다. 유일한 처방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너무나 높은 곳에 있기에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1. 맨 마지막 종 種이라는 뜻으로, 행실이 아주 못된 인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프로 정치인이지만 자기의 확고한 신념은 있다. 탸협이 기본인 정치에서 그는 진짜 정치인이다. 게다가 가톨릭사회정의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유일한 걸림돌은 그의 초인본주의 사상, 이것이 극좌 쪽에서 잘못 사용되면 그것도 비극의 시작이다.

고마운 악몽, Vanity of Vanities…

거의 정확하게 32도, 빙점을 만나는 이른 아침을 맞는다. 며칠 동안 조금은 익숙해진 따뜻한 옷이 더욱 포근하게 느껴지는 아침, 머릿속은 꿈의 잔영으로 가득하다. 이렇게 짧지 않은, 내용이 풍부한 꿈은 정말 오랜만이지만, 그것보다도 나를 더 들뜨게 한 것은 꿈의 type 이었다. 걱정 근심 고통 속에서 깨어나는 행복감 “살았다!” 하는,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으로 나는 심지어 얌전한 악몽을 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상한 인간인가?

우리 집 옆에 우뚝 솟은 2층 집,  우리 이웃들은 모두 townhouse로 보였다. 심지어 옆의 Dave 집도 마찬가지… 우리에게 집이 두 채나 있었던 모양이지만 옆에 있던 집의 지붕이 안 보였다.  아마도 오랫동안 비에 방치된 모양으로 결국 폭삭 가라 앉았던 것… 비가 또 오면? tarp로 우선 덮어야 하지 않은가? 그것보다도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지 않은가? Handyman이나 contractor를 불러야… 아~ 이제 모든 것이 내 주위에서 주저 앉는가? 

이렇게 해서 나는 우리의 옆집에 들어가 보았고, 그곳에서는 난데없이 성당교우  서 토마스 형제까지 보았고… 이제부터 개꿈으로 접어드나? 참, 이런 꿈, 재미있다. 나는 안다. 왜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수해’에 관한 꿈을 꾸는지… 아마도 우리 집 지붕이 새는 것 때문에 더욱 자주 꾸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싫어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꿈 자체는 나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이래서 악몽도 즐거울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고조된 아침의 느낌에 힘입어 오랜 만에 mainstream TV news를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다시 그 ‘개XX’가 앞으로 4년 간 안 보일 것이 확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고, 예전보다 덜 그 XX 얼굴을 안 보아도 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기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쪽으로 나는 나 자신에 실망을 한다. 왜 이렇게 믿음, 희망과 용기가 없단 말인가? 왜? 왜?

아침 식사 전에 부지런히 오랜만에 둘이서 Sam’s Club엘 갔지만 9시가 아니고 10시에 일반입장을 시킨다고 해서 돌아왔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그럴 수도 있지… 가서 오랜만에 book section엘 가보려고 했던 것, 조금은 아쉽지만 다음에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오늘부터 성경통독은 ‘코헬렛’으로 접어들었다. Vanity of Vanities!로 유명하고  To everything, turn, turn, turn으로도 유명한 구약 지혜서의 하나다. 또한 2014~5년경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과 함께 했던 추억의 레지오 피정에서 영화를 통한 강론, 영화는 ‘바베트의 만찬’이었다. 그곳에서도 ‘그 남자’가 중얼거렸던 구절도 이 ‘허무로다, 허무…. Vanity of vanities… 였었지… 이것을 읽기 시작하면서 성경주석가들은 이것을 어떻게 평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이곳 저곳을 뒤져보기도 했다. 인생이 모두 허무하다고 외치는 것은 조금 성경의 진면목 ‘희망’ 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다른 의미가 숨어 있을 듯한데… 나의 해석은 역시 ‘하느님을 떠난 각종 세상사, 그것이 허무로다…’ 그런 것 아닐까?

레지오 화요일, 그리고 장례 미사

레지오 화요일, 장례미사, 동네방네 등의 이름이 줄줄이 떠오르는 싸늘한 아침, 거의 시계처럼 정확한 동작으로, 그야말로 시계처럼… 히터가 요란하게 나오는 소음 속에서Izzie의 아침 인사를 받으며 비교적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창문 blind를 조금씩 열어놓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나의 office의 light를 키고, 혈압약 2개를 입안으로, 계속 보채는 양양이에게 Temptation을 주고, single cup coffee maker로 coffee를 갈아 내리고, 나의 desk에 와서 coffee를 마시며 성경통독, 마지막에는 지금 읽는 시편을 나의 ‘근사한’ microphone에다가 낭독, 녹음을 하고…. 서서히 지난 밤에 도착한 email, 그리고 blog count… 이것이 나의 이른 아침 일과이지만 오늘은 레지오 주회합 준비 차 과외활동이 더 있음은 물론이다….. 아~ 너무나 틀에 박힌 일상이지만 그래도 보람된 여생의 하루여…. 주님, 감사합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하루를 올바르게, 보람되게, 건강하게 살아 보자!

오늘의 virtual 카톡 레지오 주회합, 큰 감흥은 없었지만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 아가다 자매님, 전화기를 안 가져 오셨다고 해서 빌려 쓰는 전화기로 간신히 [계]응 과 활동보고를 했는데… 참 이런 일들이 나의 기운을 빠지게 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활기찬 예전의 레지오 활동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참, 한심하기도 하고 암담하기도… 하지만 포기는 안 한다.

거의 9개월 만에 성당 내에서 장례미사 참례를 하였다. 같은 ‘전’ 구역 형제, 송 아오스딩 형제의 어머님, 큰 고통 없이 임종을 하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꽤 많이 왔고, 그 중에는 거의 2년 만에 다시 가까이 보는 구역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 어색하고 쓰라린 추억을 되살리는 듯 해서… 이제 과거지사는 뒤로 보내고 앞을 보고 살고 싶다.  장례 미사 후에 예정대로 조시몬 형제와 셋이서 동네방네에서 식사를 하였다. 현재의 Pandemic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였지만, 조금은 감개무량한 순간이 된 것은, 너무도 오랫동안 갈 수가 없었던 곳이고, 이곳에 얽힌 갖가지 추억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이곳에서 나의 지난 10년의 주옥 같은 추억이 얽혔던 것, 잊을 수도 없고 잊지 않고 싶다.

달력을 무심코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니~ 11월이 다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면 12월? 올해는 다 가는 것? 무엇인가 할 것들을 못하고 지내는 것, 그렇다 backyard의 tool shed에 관련된 일들이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날씨가 비교적 따뜻할 때 다 끝내었어야 했는데, 올해도 예년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가?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부터 priority를 모조리 재조정하고 push하면 가능할까? 그렇다. 가능한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끝내고 싶다….

창포 菖蒲 필 무렵, 꿈같은 추억이여~

 

얼마 전에 우연히 보았던 1980년대의 TV 프로그램 KBS TV 문학관 중의 ‘창포 필 무렵’이란 드라마, 1987년 경에 방영된 것이다. 이 장수프로그램  “TV 문학관”으로 나는 1980년대 대한민국의 느낌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이 ‘창포…’ 를 보면서 아득하고 아련한 어렸을 적을 추억과 맞물려 이렇게 두 번씩이나 보게 되는가.

시골이 배경이지만 우리 때보다 훨씬 기름진 부유함이 보여서 실감은 좀 떨어지지만 주인공 소년아이는 100% 내가 빨려 들어갈 듯한 동질감을 느낀다. 내가 그 녀석이 된 것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나의 눈을 끈 한 scene, 주인공 녀석이 ‘상사병’이 나서 앓아 누워있는 방의 모습이다. 아마도 내가 살았던 서울 가회동의 방도 그와 비슷했지 않았을까? 엄마, 누나, 밥하는 누나 이렇게 셋이서 나를 둘러싸고 앉아서 따뜻한 간호를 했던 기억들.  아플 때면 그렇게 사랑을 흠뻑 받아서  나는 몸이 아픈 것이 그렇게 괴롭지 않았고 심지어 그리워할 때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여동생 가진 것이 인기였지만 그 전에는 이렇게 돌보아주는 누나가 더 인기가 있었다.

 

 

‘예쁜 누나’로 나오는 처녀, 어쩌면 나도 그 나이에서 꿈 속에서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동경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그 녀석이 느끼는 아련한 연정이랄까…  이성 異姓적인 각도가 제외되었다는 것을 빼면 지금도 마찬가지 심정일 듯하다. 사춘기 전에도 그런 ‘동경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여자아이나 누나뻘, 심지어는 젊은 아줌마나 되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성에 완전히 눈이 뜨게 되면서 그런 순수한 것들은 퇴색되었지만, 완전히 모든 것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예전의 100% 순수한 사랑 같은 아련한 느낌은 지금도 건재하니… 이런 것이 정상적인 것일까?

여기에 나오는 묘령의 누나 아가씨의 이름은 ‘예명숙’으로 나온다. 이 TV 탤런트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은 궁금하기도 하다. 지금 쯤은 아줌마 세대로 접어들지 않았을까? 아~ 멋지고 달콤했던 당시의 세월이여~

 

‘일본식’ 기마전을 하는 ‘국민학교’ 아이들

이 프로그램은 손소희 원작을 드라마화 한 것이지만 원작의 줄거리를 떠난 다른 영상들, 비교적 부유한 시골의 모습과 그곳의 ‘국민학교’ 교정, 거기서 ‘기마전’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들은 거의 100% 나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서울 재동 국민학교의 그것들이었기에 나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드라마를 만들어 준 제작자들이 너무나 고맙기도 했다.

해물잡탕과 Biocentrism

9개월 손자녀석 Ronan, 이렇게 그네 타는 것, 기억에 안 남겠지..

 

해물잡탕, 연숙의 특기,  점심을 푸짐히 먹고 일찌감치 bedroom으로 가서 낮잠을 거의 2시간이나 자고 났더니 의외로 기분이 다시 밝아지는 듯했다. 그래, 변하는 것은 나의 주위 여건이 아니고 나 자신인 거야… 잊지 말자.  문득 카톡을 보니, 이게 누구인가? 교성이, 정교성? 그것도 영어 문자로… Biden이 Georgia 에서 이겼다고?  이것이 무슨 말인가? 아하… 이제에 Georgia 의 늑장 개표가 다 끝난 것인가? 아니 Canada 시민인 교성이 네가 왜 그것에 그렇게 관심이 있었단 말인가?  아하~ 너도 트럼프라면 소름이 돋는… , 반가운 마음에 답을 쓰려고 했지만 자제를 하고 있다. 그 동안 어떻게 해서 나와 연락이 다시 끊어졌는지를 되돌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 내가 오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오해… 그 녀석의 신경질적인 말 한마디를 너무나 크게 생각한 것인 아니었을까?

 

기다리던 책이 왔다. Robert Lanza의 2010년 책, Biocentrism… 과연 이 책은 어떤 것을 나에게 일깨워줄 것인가? 확실한 것은 physics보다 biology가 더 원초적primordial한 것일까?  간단히 말해서, physics가 biology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 Biology로 physics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이 모든 것이 거의 100년 전 Quantum theory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면 더욱이나 놀랄 수 밖에… 참 세상과 세계관은 최근에 더욱 더 빨리 변하는 듯하다. 몇 백 년 동안 굳세게 우리의 생각을 지켜주던 기본 중의 기본적인 ‘현실’이 흔들리고 있음은… 이것으로 또 ‘신학’의 위상이 더 값진 것이 될 것을 나는 희망하고 희망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나중에 도달하는 곳은 역시 그 궁극적인 해답, 신학이 아닐까?

이 책, 드디어 정독, 필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해야지만 나는 책을 그런대로 완독을 할 수 있음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Introduction과 Chapter 1을 시작했지만 현재까지의 ‘필체’로 보아서 내가 끝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음을 짐작한다. 혹시나 New Age 류의 책은 아닐까 했지만 이 저자는 나름대로 아주 심각한 과학자임을 알고 조금 믿음을 가지기로 했다. 거대한 가설, 그것은 역시 ‘의식, consciousness’ 였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출발했다는 것.. 참 멋지고 거대하고 신학적인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래, 앞으로 이 저자의 책들을 한번 읽고 싶다.

 

올해 11월은 아무래도 따뜻한 가을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것과,  2014년 11월 중순 Polar Vortex란 것을 경험했던 기억과 어울린다. 정말 모든 것이 무섭게 꽁꽁 얼어붙었던 광경이 떠오르고 당시의 우리 둘 의 coming out [from something] 하던 초기 과정을 잊을 수가 있으랴? 지금 생각하면 참 ‘멋진 경험’의 시작이었지… 잊지 말자, 우리어머님, 성모님을…

가랑비와 오수 午睡의 매력은..

오후의 가랑비와 낮잠은 완전한 조화를…

가랑비가 하루 종일 오락가락, 때로는 개일 때도 있는, 그런 날이었다. 낮잠을 자기에 알맞은 그런 날이어서 점심을 chicken pasta로 배를 불리고 아예 침대로 가서 낮잠을 즐겼다. 하지만, 낮잠을 자는 머리 속은 묵직한 것이었다. 가회동 골목 중앙 후배가 보내준 ‘북촌 계동’이란 짧은 video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한 탓이었을 것이다. 그 옛날이 그리운 것, 모든 것이 변한 것, 이러한 것들은 모두 평상적, 정상적인 삶의 일부분일진대 어째서 나는 그렇게 슬퍼하는 것일까? 변하는 것이 싫은 나의 원초적인 성격, 그것이 사실일까? 왜 나는 그렇게 유별나게 과거에 대한 집착과 변천하는 것에 대한 서글픔이 그렇게 큰 것일까?

올해는 깊은 가을의 색깔들이 천천히 천천히 변하고..

집 앞의 낙엽은 치우는 것이 이제 포기하고…

뒷 뜰의 낙엽도 이제는 보는 것으로 만족…

오늘 성경통독 드디어 욥기로 접어들었다. 일주일 동안 읽게 될 이 ‘고통의 말씀’, 어떤 것을 나는 얻게 될 것인가? 고통에는 이유가, 우리가 보기에, 전혀 없을 수도 있다..라는 것일까? 관건은 하느님이 일부러 고통을 주실 수도 있다는 끔찍한 진리가 아닐까? 아~ 어렵다, 고통이란 것은 반드시 우리와 상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자.

문득 생각이 났다. 레지오 카톡모임을 하면서, 혹시 우리  성당의 등대회나 고국의 친구들도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서 문자로 안부를 전하면 어떨까…  중구난방, 뜬금없이 아무 때나 발언을 하는 것, 물론 편한 시간이 보는 것은 되지만 의미 있는 대화는 안 되지 않는가? 우선 정식으로 등대회의 회의 형식으로 모여서 시도를 해 보면 실상이 들어날 듯하다. 한번 임형에게 제안을 해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