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Father’s Day

주일날 아침. 거의 잊고 살았던 2020년 Father’s DayOzzie와 같이 우리들, 시원한 아침에 걸었다. 연숙과 걸음을 맞추는 것, 오늘은 전혀 문제가 없다. Ozzie가 오랜만에 고향에 온 듯이 산책길 곳곳의 냄새를 기억하며 시간을 끌었다. 정말 평화로운 산책이었다. 어찌 평안함과 푸근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무서운 고통, 실망, 우울 등에서 갑자기 해방된 기분을 누가 이해를 할 수 있을까? Father’s Day라고 몇 가지 message도 받았고 새로니와 Richard로부터는 TACKLIFE Laser Distance Meter를 선물로 받았다. Tool을 좋아하는 Richard로부터 그 동안 받은 선물은 대부분이 tool종류였고,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맞게 선택을 한 편이었다.

TACKLIFE laser distant meter

오늘 아침에 배달 된 따끈따끈한 매일 성경묵상글을 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구절이었다. 마태오 복음 10장의, 아하! 이 구절은 그 유명했던 Billy Graham 전도대회에서 끝 무렵에 신앙개종권유의 메시지였다.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그렇게 익숙했던 것. 그 목사님, 정말 한세기에 한번이나 나올 까 말까… 젊었던 시절 나도 그의 집회 중계를 많이 보았고, 영향도 많이 받았다.  ‘믿음은 공적, 공개적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Everyone who acknowledges me before others

I will acknowledge before my heavenly Father.

But whoever denies me before others,

I will deny before my heavenly Father.

Mt 10:26-33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지난 주일 미사, 예의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신부님의 강론, 그 ‘독특한’ 스타일은 계속된다. 아마도 이임할 때까지 이런 식의 강론은 안 변할 듯 하다. 비록 의도적으로 깊은 학문적 신학 대신 개인적, 사회적 신학은 풍부하다. 서로를 위한 기도를 잊지 말고, 제발 모두들 행복하게 살라는 신신당부의 강론은 가끔 가슴을 저리게 한다. 감사 합니다. 신부님, 신부님도 행복하세요…

 

 

교구청에서 공식적으로 7월 말까지 주일미사 의무를 면제한다고 공문이 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요새의 코로나 현황을 의식한 듯하다. 안전한 쪽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주임신부님의 희망은 그것이 아닌 듯 들린다.  짐작에 제발 빨리 많이들 나오라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어려운 개인적 판단이 필요한 것,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성당 공동체에서 너무 오래 떨어지는 것, 나는 사실 경계하고 싶다. 현재의 상황이 우선은 편하기도 하지만 나는 너무 오래 이렇게 사는 것, 개인적으로도 문제다. 옛날에 이미 쓰라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절대로 신앙공동체에서 멀리, 오래 떨어지면 위험하다. 그것이 ‘불완전한 인간의 본성’임을 잊지 말자.

오랜만에 우리 가족 저녁기도를 했다. 거의 5일이나 되어가나… 하지만 나 혼자의 묵주기도는 아직도 못하고 있다. 내일부터는 할 수 있겠지. 문득 생각한다… 나의 신앙심이 혹시 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전처럼 영적독서를 안 하고 있는 것이 증거다. 다시 2010년대 초에 내가 심취했던 것들, 특히 과학과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apologetics, 그것들이 그립다. 정말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아니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분명히, 기필코, 결사 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