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이천이십 년, 마지막 날…

결국 올 것은 온다, 이것이 시간의 법칙이다. 이것은 한쪽으로만 흐른다. 절대로 쉬지 않고, 결국은 흐르고 만다. 그것도 2020년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 분, 초까지 그곳에 도착을 한다. 바로 오늘이 그 날이 되었다.

나의 느낌은 어떤가? 지나간 나날들은 이미 일기와 일지의 도움으로 virtual-space와 나의 기억세포에 아직은 건강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예년에 비해서 조금 다른 것은 이번에는 나답지 않게 조금은 ‘앞날’을 보며 그것을 그려보는 순간 순간들이 훨씬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절대로 예전의 나의 모습이 아니다. 앞, 하루도 앞을 보는 것은 나에게 괴로운 노력이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2021이란 숫자가 나에게 조금은 ‘실제,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좋은 것이다, 이런 현상은…

거의 일주일 넘게 침실 저쪽에서 나를 보고 있는 digital-clock을 보는 것,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은근히 걱정거리였다. 혹시 2:xx, 3:xx, 4:xx 이란 것이 보이면 ‘나는 죽었다’… 할 텐데 하는 우려.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보았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6:xx! 나의 끈기로 ‘건강한 생각’으로 뒤척였더니 순식간에 6:30! Yeah! 오랜만에 가뿐한 마음으로 침대를 뛰쳐나왔고, 오늘 하루 2020의 마지막 날이 비교적 상쾌한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년 이맘때 건주가 보내주었던 카톡 story, ‘우동 한 그릇‘ 비록 일본 작가의 글이었지만 우리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남겨주었던 이야기, 특히 연말, 새해 에 느끼는 추운 겨울과 따뜻한 우동의 느낌은 절묘하게 조화가 되어 가슴에 남는다. 올해도 역시 건주가 보내 주었는데…

오늘 밤 New York의 Time Square는 정말 거짓말 같은 모습을 보여줄 듯하다. 백만 명이 운집하던 곳이 거의 텅 빈 모습은 정말 100년이나 지나가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왜 이런 사태가 인간의 잘못으로 방치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코로나+트럼프 개XX의 연관은 정말 세기적인 치명적 사건으로 남기를 바란다!

올해는 거의 의도적으로 성탄장식들을 오래 오래 유지시키려고 결정을 했다. 예전에는 늦어야 1월 중순이었지만 올해는 우리의 결혼기념일 1월 25일까지 반짝이게 만들려고 한다. 의도적으로, 일부러, 일부러…

송년미사를 ‘비대면 온라인’ format으로 순교자 성당에 참례를 했다. 갑자기 텅 빈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니… 참 거짓말 같다는, 예전의 세상이 아니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그런 묘한 느낌을 신부님이 강론에 잘 정리를 해 주셨다. 정말 지나가는 일년, 우리들, 모두들 너무나 수고했다는 것, 새삼 잊고 살았던 듯하다.

오늘 밤 자정의 3-2-1 Happy New Year!를 샴페인 터지는 소리와 함께 외치려고 지금 2시간 전부터 대기하면 기다리고 있다. 꽤 오래 전 아이들이 집에 있었을 때, 나는 이것을 100% 무시하면 살았던 조금 부끄러운 시절들, 그때 나의 모습은 지금 거의 없다. Better version of myself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나를 칭찬해 주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내숭을 하나도 떨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

졸려서, 비록 ‘즐겁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나는 연숙과 샴페인 병마개를 틀고 Happy New Year!를 외쳤다. 그리고 곧바로… 너무 오랜만에 자정까지 깨어있는 것이 불편했나… 하지만 그래도 Time Square의 비교적 소란하지 않았던 곳의 모습을 보며 2021년을 맞았다.

Twenty-Twenty, 과연 나에게 무엇인가?

 

“이상한, 괴상한, 요상한”… 365일의 경험이었나? 2020, 쓰기도 발음하기도 멋진 2020년’대’의 시작이 어떻게 이런 “이상한, 괴상한, 요상한” 3가지 형용사의 왕관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숨길 수, 피할 수 없는 두 가지의 비극적 흔적은 두고 두고 젊은 새대로 넘겨질 것이다: Pandemic 그리고.. 물론 Crazy, Bizarre Politics…

 

 

Pandemic….worldwide epidemic, 거의 정확히 100여 년 전, 1920년 전 당시 pandemic, Spanish Flu, 하얀 face mask를 쓴  뉴욕시의 교통경찰들의 퇴색된 사진기록, 그것보다 더 지독한 전염병이 올해 초에 우리를 ‘갑자기’ 덮쳤다는 것. 100년 후란 것, 무슨 숫자의 장난인가? 그 당시의 의료기술과 현재의 것의 차이를 감안하면 한마디로 2020는 거의 ‘인재 인재’에 가깝다. 최강경제대국이라는 미국에서 1/1000 의 인구가 ‘죽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세계적인 수치요, 절망이다.

이런 기막힌 순간 순간에 소위 총사령관 격이라는 자리에 앉은 ‘구제 불능’의 인간은 ‘이상한, 괴상한, 요상한’ 선거투표 음모설을 주장하며 Twitter장난이나, 골프를 치고 있는… ‘비현실, 초현실’적인, 200 여 년 쌓아온 민주주의의 전형을 밑바탕으로부터 흔들고 있는 것을 목격해야만 했던 2020, 한 마디로 하루 빨리 잊고 싶은 한 해였다.

 

우리 가족이나 주변의 친지들 중에서 경제적인 고난을 겪은 사람은 거의 못 보았지만 왜 실상을 모를까. 직업의 종류에 따라서 너무나 불공평하게 피해와 고민을 주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 학교생활의 즐거움은 거의 잊고 살았다.

저소득층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특히 연로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철저한 피해를 주었다. 이럴 때 ‘돈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지만  철저한 자본주의의 맹점이 백주에 드러남을 목격하며 도대체 진정한 ‘민주주의’란 것은 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혼란을 겪는다.

우리 집, 그리고 주변의 친지들,  그런대로 상식적인 선에서 Pandemic을 견디고 있다. 도대체 ‘상식적인 선’이란 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의 무의미한 것이지만, 그것은 역시 ‘사랑이 동반된 지혜’에서나 가능한 듯 보인다. ‘무식한 것이 자랑’이 된 지난 4년간의 ‘해괴한’ 정치풍토가 이번 Pandemic에서도 무서운 괴력을 과시했던 사실, 솔직히 말해서 도망가고 싶었던 한해, 그리고 지나간 4년이었다. 나를 제일 놀라고 슬프게 했던 것은… 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망상적 인간’들이 있음을 알게 된 것, 어쩌면 어린아이보다 더 심한 ‘피해’ 망상증을 앓고 있는 ‘성인’들이 그렇게 많은가…  Facebook이나 YouTube같은 곳에는 ‘망상 delusive 집단군’들이 활개를 치고, 그것에 완전히 빠져 사는 멀쩡한 인간들이 나를 무섭게 하던 세월들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조금 공평한지, 우리 집에는 2월 말에 이미 새 생명을 하나 보내 주셨고 다시 다른 생명의 모습이 초음파 사진에 또렷하게 보이는 선물을 주셨다. 그렇게 인간대사, 결혼을 미루던 딸들이 연이어 모두 짝을 만났고, 곧이어 이렇게 손주들 모습과 소식을 연달아 보내 주신 하느님께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우리들 근래의 희망과 건강의 삶을 거의 ‘보장’해 주고 있던 믿음과 생명의 전당, 도라빌 순교자 성당,  작년 가을에 새로 오신 목자의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시 Pandemic의 위력은 과학적인 것이어서 정말 우리들이 성사생활은 한때 치명적인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일년 내내 희비쌍곡선의 곡예를 하며 유지되는 교회중심의 신앙생활, 이제는 거의 고비에 오지 않았을까? 목자의 의지력은 대단해서, 이곳의 존재가 없었다면 과연 우리들 제대로, 건강하게 살았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이것도 중요한 것,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때에 오랜 세월 우리의 사회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레지오 활동’이 커다란 획을 그리며  우리를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 부부가 함께 조금은 높은 곳을 바라보며 할 수 있었던 이 Irish Frank Duff의 선교봉사단체… 비록 몸은 떠났지만 그 잠재적인 조직적 능력에 감탄한다. 개인적으로 다 다른 경험을 주겠지만 적어도 나 개인에게는 인생후반의 삶을 180도로 바꾸어 놓았던 거의 신비로운 경험을 나에게 주었다. 일생을 나나 가족들만 위해서 살았던 세상이 처음으로 이웃들의 존재를 느끼고 보게 해 준 이곳… 특히 성모님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