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천사의 선택

ADVENTURES IN TWO WORLDS

A. J. 크로닌 지음 /  최광성 옮김

춘원

 

 

 

 

제1부

 

 

1. 임상 강당 臨床 講堂

 

그 사월의 아침, 지붕 밑 다락방에서 눈을 뜬 나는 어젯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머리가 띵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자신의 경제상태를 생각해 보아야만 했다.

고맙게도 3개월 전 해군에서 제대할 때 하사금을 받았기 때문에 대학 의학부의 수업료 만큼은 금년치를 전부 지불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아버지의 유품인 금시계줄이 있었으므로 그것을 전당포에 맡기어 필요한 물건들과 헌 교과서 정도는 살 수가 있었다. 학우회비를 일 년치 선불할 수가 있어서 학교측으로 볼 때에 나는 참으로 지불능력이 있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장부의 다른 한쪽 면을 펴보면 그리 만족할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학업을 재개하려는 각오로 분발한 나머지 생활 쪽에는 조금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한 달 동안의 ‘나’라는 사람은 가끔 간이 식당에서 가벼운 요기를 했고, 저녁때는 가까운 시장에서 괴상한 것을 사서 봉지에 담아 들고 숙소로 돌아와 그나마 영양 보충이랍시고 했었다. 더구나 방세는 벌써 2주일이나 지불이 늦어져 있었는데 전 재산이라고 하면 – 나는 돈을 또 다시 세어 보았다 – 3실링 5펜스 뿐이었다. 아무리 장래를 낙천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 돈으로는 앞으로 8 개월간 먹고 입고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도 빨리. 갑자기 나는 미치광이같이 웃어대며, 울퉁불퉁 솜이 뭉친 매트리스 위로 뒹굴었다. 그것이 어떻다는 건가. 나는 혈관에, 앞뒤 가지 않는 아일랜드 인만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넘치는 청년이 아닌가. 일을 하는 거다. 노동을 하는 거다. 일을 하면 되는 거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라도 하자.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위만은 따야 한다.

구축함 멜람프스 호를 타고 납 같은 동요가 그치지 않는 북해 수역을 감시, 경계하며 단함 單艦 을 미끼로 항해용 지도에도 없는 기뢰원 機雷原 과 잠수함이 출몰하는 바다를 얼음과 같은 물거품 속에 반쯤 언 몸으로 구두와 구명자켓을 그대로 신고 입은 채 자며, 배 멀미에 고통을 받고 온몸이 박살이 나서 날아가 버릴 것을 각오하면서 터첼링과, 제브류게와 유트랜드로 나아가던 그 지겹고 한없이 위험했던 몇 년의 일을 생각한다면, 아무튼 기적적으로 아직 살아서 자유의 몸이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 고맙게도 전쟁은 끝난 것이다 – 다시는 전쟁 같은 것은 일어날 턱이 없지. 더구나 눈부신 봄은 지금 여기 찾아와 이 글라스고의 고을은 고도를 부드러운 봄빛과 뜻하지 않던 햇볕으로 감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구나 – 이것이 무엇보다도 첫째 문제지만 –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연애를 할 타입은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날씬한 몸매, 다갈색 눈, 황색 머리, 태양에 데워진 것 같은 피부, 마음도 녹일 것 같은 가련하고 순진함을 지닌, 역시 글라스고 대학 의학부에 다니며 우간다 외지 전도회 소속 의사가 되려고 굳게 마음 먹은 열여덟 살의 아가씨였다. 몇 주일 전, 안개 짙은 2월의 어느 날, 나는 병리학 교실에서 내막염에 걸린 심장을 한눈도 팔지 않고 해부하고 있는 그녀를 우연히 보았던 것이다. 일을 마치고 얼굴을 든 그녀는 내 존재를 깨달았고, 그 눈부신 듯한 순간에 이성을 넘은 애정의 씨가 뿌려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온 최초의 말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멋쩍은 것이었다.

“무척 안개가 깊지 않습니까?”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 여학생이 메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함께 외출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잇는 이 멋없는 도시에도 두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 불과 2펜스로 맛있는 홍차를 마시며 언제까지나 눌러 앉아 있을 수 있는 훌륭한 다방과, 주위 전원의 장려한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이미 우리는 우리의 경제상태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2펜스를 써버리고 있었다 – 함께 앉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리고 토요일에는 전차로 교외에 나가 가까운 숲과 산으로 돌아다니며 황무지의 차가운 바람을 쏘이면서 천천히 몇 마일씩 걷곤 했다.

진지하게 서로 이야기할 때면 우리 두 사람의 결합에는 전혀 희망이 없어 보였다. 성격적으로도 완전히 상반되어 있었지만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든 실제적인 면에서 보아 먼 장래의 일이기는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하기에는 우리만큼 이 세상에서 동떨어진 인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메리 는 조용하고 온순하며 소극적인 처녀로서 엄격한 독립교회파의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나, 지금 콩고의 원주민을 개종시키려고 하는 열렬한 희망에 불타고 있는 여성이었다. 나는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살아나가고 있고, 그런데도 불타는 야심은 있어서 태어나면서부터의 종고라고 하면 별로 영향은 받지 않았다고 할망정, 메리 네 집 사람들에게 자신을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은 친절하게도 우리 두 사람의 어울리지 않음을 지적해 주었고, 우리도 가끔 만나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괴로움과 싸우면서 이야기하고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집어 먹으면서 맥없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약속하고 용감하게도 영구한 이별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헤어졌다가도 벌써 이튿날 아침에는 뉴턴의 인력의 법칙보다도 강한 힘으로 두 사람은 만나, 서로 일생을 떠나지 않을 증인으로서 하느님의 이름을 꺼내는 상태였다.

나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창을 열고 어리석게도 제2의 산도우[주: 건장한 육체를 가진 독일태생의 직업적 체육가로서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장하였다] 가 되려는 듯 내 야윈 몸을 단련하는 격한 체조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래층 좁은 욕실로 가서 이를 갈며 얼음같이 찬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옷을 입으려니 옛날 그대로의 해군 군복을 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한스러워졌다. 뭐 좋아서 입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청년 제독 같은 모양으로 학교에 나가고 있었다 – 제대해 보니까 한 벌 있던 옷은 좀이 먹어 못 입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복이라도 훌륭하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뾰족한 모자를 조금 삐뚤어지게 쓰고 교과서를 끼고 급하게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그런데 운수 나쁘게도 벌써 주인 아주머니가 빗자루와 물통 등을 들고 현관에 버티고 서 있었다. 아데노이드 를 않는, 부서진 고래뼈의 코르셋을 한, 안색이 나쁘고 몸집이 작으며, 일요일 오후면 응접실 오르간을 쳐서 이웃집 개들을 괴롭히는 여자다.

“굿모닝 미세스 그란트”

아주머니는 내 인사에 대답도 하지 않고 윤기 없는, 그리고 힐난하는 눈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엊저녁에 방에서 청어 요리를 했지요?”

“그게 저…. 사실은…”

“온 집안이 그 냄새로 가득 차 있어요. 인도인 손님이 화를 내고 있어요. 더구나 개스를 마음대로 쓰고…”

“조금 밖에 쓰지 않았어요 미세스 그란트, 사실은 – 나는 일부러 명랑하게 웃어 보였다 – 절반은 날 것으로 먹었으니까요.”

주인 아주머니는 재미없다는 얼굴을 하고 은근히 비난섞인 듯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뭐 당신을 원수로 삼자는 것은 아니에요. 군대에 갔다 온 당신을 말이에요. 그렇지만 방세가 밀려 있으니까, 만약 계산해 줄 수 있다면… 나가 주어야 해요.”

침묵….

나는 주먹으로 낡은 오슬러의 ‘내과학’ 표지를 탁 때렸다.

“미세스 그란트” 하며 나는 말했다. “히포크라테스[주: 기원전 4-5세기 경의 희랍 의사로서 의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에 맹세코 방세는 지불합니다. 이제 운이 트이려 하고 있어요. 그것도 가까운 장래에 말이에요.”

밖에는 살랑살랑 상쾌한 미풍이 불고 있었다. 켈빙그로브 공원을 걸어가니까 꽃나무 숲속에서 개똥지빠귀가 지저귀고, 미술관 주위의 새싹이 돋아나는 풀밭에 크로카스가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이 미술관에는 내가 갈망해 마지 않는, 렘브란트의 ‘갑옷 입은 사나이’가 진열되어 있어서 나는 감격한 나머지 정신없이 가끔 ‘아아 언젠가는 이 그림을 가질 수 있는 신분이 되고 싶구나’하고 한숨을 짓기도 했다.

저 멀리 언덕 위에는, 대학의 나지막한 윤곽이 따뜻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흡사 5백 년 역사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듯 당당하게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아침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가난하지만 향학심에 불타는 얼마나 많은 스코틀랜드의 시골 청년들이 이 회색 건물로 왔던 것일까.

그 옛날, 그들은 면학에 힘쓰며 보내야 할 몇 달 동안인가를 지탱할 오트밀을 만들기 위한 보리쌀 부대를 짊어지고 시골에서 올라왔던 것이다. 그것을 기념하여 ‘보리쌀 월요일’이라는 특별 학생의 휴일이 제정되어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야심에 찼던 청년들 중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아니 얼마나 적은 숫자의 청년들이, 겨우 학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가, 아아, 학업을 끝낸 청년들보다 얼마나 많은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거부당하여 지치고 좌절된 낙오자의 낙인이 찍혀 고향으로 돌아간 것일까.

이것을 생각하면 나는 용기가 났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실패할 수는 없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아버지의 죽음 – 이 사건 때문에 그때까지의 내 태평스럽고 응석부리던 생활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고투로 바뀐 것이다 – 에 이은 10년 간의 믿을 수 없는 고통을 통해 내 가슴 속에 심어진 지배적은 정열, 생활의 주조, 살아있는 이유 그것이었던 것이다.

가난하여, 환경에 짓눌린 청년의 불행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눈으로 뿐만 아니라, 남의 눈에도 스스로의 힘을 실증하고 싶어하는 동경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한 청년의 가슴에는 ‘승리냐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냐’하는 좌우명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심장의 고동 하나하나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이 귀에 들려오는 것같이 느껴졌다.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부귀와 높은 자리와 명성을 향하여.’

대학 건물의 남쪽 조금 나지막한 곳에 서 西 부속병원이 있었는데 거리의 시계탑에서 아홉 시를 쳤을 때 나는 학생 회관 입구를 통해 들어갔다. 오늘 아침은 외과의 대수술 강의실에서 뇌종양의 수술이 행해질 것으로 되어 있었다 – 이것은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특별증례 特別症例 였다 – 그러나 그것보다도 내 희망은 수술이 끝나면 곧 실행에 옮기기로 되어 있는 어느 계획에 집중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이 작은 북국의 대학에 남아서 학생으로서 생활할 방편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을 나도 알만큼 알고 있었다. 사실 그 유일한 기회는 부속병원의 외과의사의 ‘수술 조수’ 내지는 ‘상근 숙직’에 임명되는 것으로서, 이 지위를 차지하면 무급이기는 하지만 병원에서 먹는 것과 거처할 곳을 무료로 받는 행운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 담임인 외과조수 윌리엄 매큐엔 경의 조수가 되면 언젠가는 대학 기록관의 지위로 승진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나는 자신이 매큐엔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군에 입대하기 전에도 교수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었었고, 제대 후에 있었던 3회의 월례고사에서도 매번 나는 수석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나는 조수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강의실에는 이미 클래스의 학생이 거의 곽 차 있었고 우유 빛 유리의 천장에까지 닿아 있는 원형의 벤치도 꽉 차 있었으나 친구인 치셤이 맨 앞 중에 내 자리를 잡아 놓고 있었다. 그 곁으로 무례하게 뚫고 들어갔을 때에는, 기대에 찬 낮은 음성이 주위를 채우고 있었는데, 이미 마취를 끝낸 중년의 부인 환자가 손수레에 실려 들어오자 그 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나도 병고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편은 아니지만 축 늘어져서 위를 쳐다보고 누워 골골 숨을 몰아 쉬며 까까중으로 머리가 깍이운 채,  요듐을 발라 흡사 큰 당구공 같은 머리를 한 그 여자를 보자, 어쩐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추괴 醜怪한 것이 그 안에 있는 것 같아서 묘하게 마음이 흔들려, 과학에 전념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거의 어울리지 않는 극적인 본능으로써 그 여자의 과거를 마음 속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시초는 저 여자가 집안 일을 돌보려고 했을 때, –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남편의 점심을 준비하고 – 먼 종소리인가, 연통에서 속삭이는 바람소리 같은 희미한 소리가 귓속에서 울리고 그것이 하도 신기한 소리여서 그녀는 혼자서 킥킥 웃어 버렸을 정도였다. 다음의 몇 주일인가는 그 소리가 사이를 두고 들리기 때문에 그녀는 귓속에 데운 긺을 넣었다. 그래도 별 반 효과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눈은 희미해지고 신문 활자가 몽롱해져서 잘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아, 물론 그랬을 것이다. 왜 안경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여자는 곧 안경가게로 갔다.

그러나 돗수 높은 안경을 써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다음으로는 묘하게 기운이 없어지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머리가 아프고, 식욕이 점점 없어지고, 때로는 터널을 지나는 기차소리가 나며 귀가 심하게 울리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것일까. 걱정도 되고 기분도 나빠 그 여자는 늘상 가던 병원에 가 보았다.

의사는 동정을 하면서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청진기를 가슴에 대어보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피로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자기 몸을 너무 돌보지 않는군요.  너무 바쁘게 일하지 말고 더 신선한 야채를 먹고 가끔 주말에는 해변에라도 나가세요, 하고 의사는 말했다. 그리고 강장제를 부며 이것으로 곧 회복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귀 소제도 해 주었다.

안심하고 이 훌륭한 약에 큰 희망을 걸고 그 여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일어났을 때 어지럼증이 나서 비틀거리다가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아 침대에 쓰러졌다. 그 후 이 무서운 증세는 집요하게 더욱이 극히 은미한 중에 악화되어 갔다. 남편과 함께 새 의사에게서 새 의사한테로 진찰을 받으러 갔는데 그때마다 간장이 나쁘다든가 신경계통이 침범되어 있다는 등, 하나같이 다른 진단이 내려졌고 역시 그때마다 새로운 치료를 받았으나 도무지 효과는 없었다.

최후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는 이 대학의 부속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와서, 여태까지의 돌팔이 의사, 엉터리 의사 아닌, 버젓한 의사의 손에 몸을 맡긴 것이다. 그는 샅샅이 과학적으로 진찰을 받고 – 온갖 검사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치명적인 선고가 내려졌다.

“뇌종양 .. 유일한 희망은, 그것도 별로 확실하지는 못하지만 곧 수술을 하는 것이다.” – 얼마나 무서운 고민, 얼마나 무서운 악몽 같은 공포로 그녀는 이 선고 앞에 직면했던 것일까? 그리고 마침내 오늘 아침 미지의 세계, 예리한 메스가 머리 속에 파고들어 두개골을 가르고 생명이 사는 자리를 잘라내는, 저 견딜 수 없는 곳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갑자기 교실 안이 조용해져서 정신을 차리고 문 쪽을 보니 교수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도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으나 조용한 위엄이 주위를 에워쌌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위용은 그를 곧 이제부터 우리 눈앞에서 바야흐로 벌어지려는 극의 중심 인물로 만들었다.

당시의 윌리엄 매큐엔 경은 이미 70을 넘어 있었으나 그러한 창대같이 곧은 그 장신의 마른 몸, 균형 잡힌 깊은 눈과 우뚝한 코, 수려한 옆 얼굴, 잘생긴 관골 위에 강인한 탄력을 느낄 수 있는 피부, 그 경이적인 머리를 덮고 잇는 은발마저 억제할 수 없는 정력적인 젊음을 풍기고 있었다. 매큐엔은 얼핏 보아서도, 아직 정력이 감퇴하지 않는 위대한 인물인 것을 곧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30여 년에 걸쳐 그는 유럽에 있어서의 최고의 뇌수 외과의사로서 절대한 상찬 賞讚 으로써 인정받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 학생은 뻔뻔스럽고 만만찮은 패들이었지만 –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모두 ‘빌리’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그의 이름을 중심으로 하여 어느새 만들어졌을지 모르는 전설을 애정으로써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벌써 수술복을 입고 조용히 뢴트겐 사진을 조사한 후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음성은 조용하고 그러면서도 간결하며 태도는 친절, 정중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제군, 오늘의 우리들의 강의는’ – 그는 우리를 향해 말할 때 언제나 국왕처럼 복수를 썼다. – “틀림없이 두개골 내신경 종양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믿어지는 흥미 있는 환자에 대해서 입니다.”

그는 말을 끊고 학생들의 줄을 차례로 돌아보다가 이윽고 나에게 – 나는 맨 앞줄 맨 가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틀림없었다 – 눈을 멈추었다.

“이 병의 증세는 어떻습니까?”

“몹시 두통이 나고 아무런 뚜렷한 원인 없이 식사와는 관계없는 구토를 하고 심한 현기증이 나타납니다.”

“계속해서”

“보통 시반폐새 視盤閉塞 를 동반하는 시신경염이 나타납니다. 이 신경염의 정도를 비교함으로써 종양이 있는 쪽을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종양이 소뇌에 있을 경우에는?”

“발음이 지둔하고 그리고 경련적으로 되며, 머리가 아래로 수그러지게 됩니다. 환자는 종양과는 반대쪽으로 쓰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신불수증입니다.”

“그 다음은?”

“”희망은 거의 없습니다. 뇌저 腦底 의 종양은 보통 대체의 위치만은 알 수 있으나 거기에까지 이르기는 곤란합니다. 갑작스러운 출혈, 질식, 혹은 생명중추의 압박으로 죽음에 이릅니다.”

“좋아, 훌륭한 대답입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은, 그러나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이 순간에 자신의 열심과 실력을 빌리의 머리에 심어두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절호의 기회를 갖다 준 운명도 몹시 친절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코를 몹시 고는 듯한 환자의 호흡이 지금은 어느새 이빨 가는 듯한 소리로 되고, 간호원이 최후의 소독 거즈를 환자의 목에 끼우자 매큐엔은 잠깐 마취된 사람 쪽을 보고 나서 수술대 곁으로 다가갔다.

화가가 큰 그림의 윤곽을 잡는 것처럼 그는 란셋을 집어 들고 최초의 절개를 시작했다. 재빨리 머리의 피부를 걷고 반짝반짝 빛나는 두개골을 노출시켰다. 이윽고 그가 쟁반만큼이나 되어 보이는 뼈를 동그랗게 잘라내는 데 따라 톱질하는 소리가 실내를 메웠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기드릴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매큐엔에게 결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근대 의료기구를 멸시하고 자기의 우수한 기술에 완전히 의존해서 단순한 장치만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고등 재판소에 전문가의 증인으로 송환되어 나가, 재판장으로부터 “기구는 끓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재판장” 하고 빌리는 대답하면서 여자 손처럼 작고 섬세한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어떻게 끓일 수 있습니까?” 라고 하였다.

작은 톱을 옆에 놓고 나서 이번에는 색인기 索引器 를  집어 들고 잘라낸 뼈의 원반을 치운다. 그 밑에서 금장 터질 것 같은, 벌의 날개처럼 가느다란 혈관을 통한 분홍색 뇌막이 나타났다. 솜씨 있게 그는 그것을 쳐들었다. 그러나 절개구 切開口 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모양으로 그는 대담하게도 유유히 그것을 펼치기 시작했다. 금속의 집게를 두개골을 집어서 척추의 윗부분을 비틀어 올리는 것을 나는 생침을 삼키며 보고 있었다. 그것이 끝나고 뇌막이 열리자 거의 한숨에 가까운 나지막한 지껄임이 학생들 사이에 일어났다.

하얀 뇌 속에 염증을 일으킨 듯한 거무튀튀한 종양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교수의 반사경의 밝은 빛 아래 무서운, 고동하고 있는 구멍 속에서 집게에 잡혀, 그것은 독을 지닌 정글의 꽃이나, 물속의 광선에 흔들리고 있는 이상한 생물, 그 새빨간 촉수에 스치면 생명을 잃어 버리고 마는 말미잘 같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매큐엔은 천천히, 신중하고 종양이 달라붙어 있는 복잡한 소용돌이 같은 뇌수에서 그것을 잘라내려 하고 있다. 조금이라고 거기에 깊이 메스가 들어간다면 당장 환자는 죽어 버린다. 얼마만큼의 숙련과 지식, 얼마만큼의 판단력과 직관, 얼마만큼의 냉정과 용기가 이 가슴 속에 나타났던 것일까. 그가 생명의 금선 琴線을 만지고, 이것을 울리기 하고 있는 것을 홀린 듯 지켜보고 있으면서, 나는 마음 속으로부터 그를 그토록 유명하게 한 이러한 승리를 획득하고 싶다고 원했다. 아아, 그것은 참으로 승리의 순간이었다….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드디어 수술은 끝났다. – 석류만한 크기의 끈적끈적한 종양은 깨끗이 떼 내어져 간호원이 가지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재빠르게, 믿을 수도 없을 만큼 훌륭한 솜씨로 교수는 혈관을 손보고 깨끗이 정리한 다음 막을 원래 대로 닫았다. 두개골을 꿰매어지고, 거의 쇼크를 받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식염주사를 놓았다. 이윽고 매큐엔은 최후의 봉합을 했다.

“수고했습니다, 제군. 오늘은 그만 하겠습니다. 사흘 안으로 아마 엉킨 액을 훑어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밖에는 아무 탈없는 회복을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붕대로 커다란 터번처럼 머리를 감은 환자는 의사와 두 간호원에 의해서 손수레로 옮겨져 나갔다. 학생들은 교실을 떠나기 시작했지만, 여느 때 같으면 구두소리를 내며 떠들썩할 터인데 오늘은 흡사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 같이 정숙했다.

나중에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오후에 매큐엔이 강의에 들어오면 그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조금은 이 정숙함이 오히려 커다란 찬사로 되어 있었다.

나는 학생들이 나간 다음에도 자리에 남아, 노트를 정리하는 것 같은 시늉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제부터 벌일 계획에 정신이 없었다. 마취계원이 일어서서 기지개를 켜고 담배케이스에서 담배를 한 대 뽑아 물고 교실을 나갔다. 매큐엔은 간호원 한 사람만을 데리고 피로의 기색도 없이 조용히 손을 씻고 있었는지 그것을 보니까 그렇게 훌륭한 연기도 예사로운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이윽고 간호원도 나갔다 – 그는 혼자가 되었다.

나는 재빨리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앞으로 나갔다.

“실례합니다만 선생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는 천천히 세탁한 타월로 손을 씻으며 나를 돌아봤다.

“그러지…나는 항상 젊은 사람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까.”

그 태도와 눈동자 속의 관대함에 나는 용기를 얻었다. 다른 것은 그만 두고라도 나는 시험에서는 훌륭한 성적을 따고 있지 않은가. 병실에서는 그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에 관심을 가지는 듯 했고, 내 상상력의 대담한 비약에 그가 미소 지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지 않았는가.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은 그의 부하 중에서 가장 낮은 지위인 것이다. 용기를 내어 나는 그것을 신청했다.

잠깐 동안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왜 내 조수가 되려는 거지?”

나는 온갖 성실을 다하여 대답했다.

“저는 외과를 전공하고 싶습니다.”

침묵…. 오랜 침묵이었다. 이윽고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이미 결정됐어.”

그의 날카로운 눈은 그래도 나한테 쏠려 있었으나, 그것은 자비스러운 아버지같이, 더욱이 그가 지니고 있는 틀려본 적이 없는 판단이 담겨져 있었다.

“내과나 다른 과면 자네는 분명히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단 한 가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있지. 자네는 외과의는 될 수 없어.”

 

 

2. 정신병원에서

 

“로클리 정신병원, 임상 조수를 구함, 침식제공, 보소 100기니. 대학 재학생도 가능.”

 

매큐엔한테서 거절당하고 초조하고 우울한 2주일이 지났을 때, 외과강의, 산과과정, 시체해부 실지연습, 학년말 댄스파티 등 학우회의 게시판에 붙은 많은 게시 속에서 이 광고가 내 핏발 선 눈을 잡았다. 이 구원의 손길이 너무도 기적처럼 느껴져, 나는 만일의 요행을 바라는 기분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으나 다른 학우에게 빼앗겨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곧 길모아 힐을 뛰어내려 녹색 전차를 잡아 탔다 – 안락하고 훌륭한 전차로서, 그 당시 단 1 페니로 글라스고 시민을 실수 없이 먼 곳에까지 태워다 주는 시전 市電 이었다.

정신병원은 글라스고에서 서쪽으로 4마일. 깨끗한 나무들이 많이 들어선 전원 한가운데 있는 놀랄 만큼 당당한 건물이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성곽 같은 집으로써, 잘 손질된 정원이 있고, 풀밭과 과수원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부지 전체에 높은 돌담이 둘러쳐져 있었다. 수위실로 들어가 취직하러 왔다는 뜻을 전하자, 안내원이 나를 안내하여 함께 긴 너도밤나무 길을 지나, 아치형의 현관에서 대리석 조각으로 장식된 방을 거쳐 원장실로 들어갔다.

당시 정신병학의 태두로 인정되고 있던 거빈튼 박사는 키가 크고 마른데다가 안색이 나쁜 백발의 노인으로써, 태도는 퍽 조용해 보였으니 섣불리 가까이 할 수 없는 초속 超俗 한 점이 있었다. 책상 너머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을 때의 꿰뚫는 듯한, 최면술이라도 걸려고 하는 것 같은, 이상하게 노란 눈알이 점점 나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스스로의 단점을 의식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생각하며, 슬프게도 동요되는 마음으로 나는 엄중하고 가혹한 질문을 각오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그는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3년 전, 스코틀랜드 실드 축구팀의 주장을 했던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네, 선생님.”

하고 나는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은 저 제가 그….”

그는 지금까지의 엄한 태도를 누그러뜨려 친근감이 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 시합을 보았지. 자네는 상당히 잘 싸웠어. 그라운드가 그렇게 진흙투성이가 아니었더라면 쉽게 자네네 팀이 이겼을 거야. 자, 앉게. 그 의자도 그리 불편하지는 않을 걸세.”

나는 지금 나에게 다가온 행운이 믿기지 않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 이것이 폭우 속에서 꼭 한 번, 상대방의 반칙 때문에 지고 나서 탈의실로 들어가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머금었던 저 처참했던 시합의 보수일까?

그러나 사실이었다. 프랑크 기빈튼은 축구의 굉장한 팬으로서, 옛날에는 국제 시합 선수였고, 스코틀랜드 아마추어 클럽의 제1위, 퀸즈 파크의 정 正 선수로 함든 파크에서 두 번이나 국가 대표로서 시합에 출장한 사람이었다. 30분간이나 우리는 이 경기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는 동지의 친밀감으로 이야기를 했다. 이윽고 그는 별안간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이리로 오게. 자네라면 시간에 늦지 않겠지. 아 참.”

그는 나를 다시 불렀다.

“여기서는 급료는 선불이야, 이걸 가지고 가게…. 최초의 4반기분 급료라네.”

그는 펜을 집어 들고 무엇인가를 조금 쓰더니 내 쪽은 보지도 않고 25기니의 수표를 나한테 주었다. 나는 가슴이 뿌듯하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내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곤란해 하고 있는가를 그가 꿰뚫어 보지나 않았을까 싶었으나 –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것으로 미세스 그란트의 밀린 방세를 갚을 수 있고 시계를 찾을 수 있으며 트렁크도 찾을 수 있다. 나는 구원 받은 것이다.

이렇게 조건이 좋은 자리가 또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부속병원에 어떤 자리가 있었다 치더라도 그런 따위는 비할 바가 아니다. 오전 중은 자유 시간이어서 학업을 계속할 수가 있다. 급료는 넉넉하다. 안락의자와 난로가 붙은 기분 좋은 방, 그밖에 빨간 융단을 깐 아담한 침실, 설비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욕실, 이것이 내 방이었지만, 지금까지 살고 있던 구질구질한 하숙집에 비한다면 흡사 왕궁 같은 것이다.

로클리에서는 모든 것이 호사스러웠다. 식사도 이제는 내 주머니 사정과 관계없이 얼마든지 먹을 수 있고 또 그 메뉴가 썩 좋았다. 아침은 오트밀에 크림 – 그것도 자가 농장에서 바로 가져온 진하고 신선한 것이다 – 베이콘 에그, 향기 높은 커피, 금장 구워낸 빵, 과일, 점심은 약간 형식을 갖추어 직원들에게 내는 것인데 수프와 야채를 곁들인 큼직한 고기, 혹은 통닭, 훌륭한 디저트, 거기에 치즈. 차는 4시에 방으로 날라다 주는데, 쟁반에는 날마다 밀크와 과자,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스코틀랜드에서는 ‘프랑스 케이크’라고 불리는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올려져 있어서, 가정부의 과자 만드는 솜씨를 보여 주는 것 같다. 저녁은 흡사 날마다 축제인 것같이, 찬 요리가 몇 접시하고 식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전기접시에 놓은 캐서리, 마카로니, 혹은 카레가 나온다.

이밖에 지하실의 큰 주방에는 언제나 가서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으므로, 몇 주일 동안은 정체 모를 썩은 것 같은 빵이나 가금 차를 한 잔씩 마시는 것으로 겨우 목숨을 이어 온, 항상 배고프던 청년에게 있어서는 환경이나 장래의 희망이 아주 싹 달라졌다고 상상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원장 이외에 병원 의무담당 직원이 둘 있었다. 피터스 박사는 명랑한 얼굴을 한 푸둥푸둥 살찐 나이 든 남자로서, 그랜드 오페라에 대단한 열심을 가져, 그 때문에 회진 때도 베르디나 오펜바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젠 카마이클 박사는 아름다운 재기 넘치는 여성으로, 젊었을 때 실험 중에 사고를 일으켜 얼굴에 흉한 흉터가 있었으나 일생을 슬픔 속에 보낸다는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고 그 후 감연히 정신병 환자의 시중드는 일에 생애를 바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호원장 미스 몽고메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아주 약한 듯한 마른 모습의 백발 부인으로서, 말씨는 아주 조용하고 태도는 귀족적이며, 게다가 이 부인의 조용한 손길에 병원의 복잡한 경영사무 대부분이 맡겨져 있어, 이 부인의 단 한 마디의 달래는 말, 달 한 번의 온화한 눈길로써, 아무리 걷잡을 수 없는 환자도 조용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선량한 사람들이 모두 나한테 친절과 관용을 보였으므로 나도 이에 대하여 새로운 동료들 속에서 스스로의 직분에 알 맞는 일을 하는, 즉 자기의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써 답하려고 했던 것이다.

확실히 로클리에 있어서의 ‘임상’일은 흥미 면에 있어서나 변화에 있어서도 부족한 점은 없었다. 널리 진통제로도 쓰여지고 있는 취화 臭化 칼리움, 나트륨 취화암모늄, 포수 포수 클로랄, 패럴데히더, 그 밖에도 많은 약품의 용액을 큰 윈체스타 저장병에 조제해 두는 등 약국의 일은 모두 내 관리 아래 놓여졌다. 나는 세균학적인 일과 병리학상의 표본의 현미경 검사를 맡았다. 그리고 식사를 거부하는 환자에게 식사를 먹이는 좀 이상한 일도 맡았다. 이것은 위 속으로 관을 집어넣는 작업인데 꽤 솜씨가 필요한 일이었으나 나는 금방 이 일의 명수가 되었다. 그밖에 병상일지를 쓰고 의사의 누군가가 휴가를 갔을 때는 저녁때 대신 회진을 하기도 하는, 요컨대 선배들을 도와 죽기도 하고 박자를 맞추어 주기도 했던 것이다. 특히 가빈튼 박사가 이러한 처지에 비상한 치료상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요구에 따라 나는 환자들 사이에 들어가, 그들 속에 경기단체를 편성하여 테니스와 크리켓이나 핸드볼을 함께 하고 그들을 위하여 오락으로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음악회나 댄스파티에 가담하는 것을 요망받았다.

정신병원의 수용자에 대해서는 극히 나쁜 취미로 뿐만 아니라 질이 좋지 않은 우스갯소리가 많이 쓰여지고 있다. 한 예를 들지만, 가끔 자기를 나폴레옹이라든가, 줄리어스 시이저라든가, 고다이비아 부인 [11세기 영국의 마아샤 백작의 아내로서, 남편이 시민에게 과세한 중세 重稅 를 폐지시켜 준다는 약속을 받고 온 거리를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돌았다.] 이라든가, 역사상의 중요한 인물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그 결과로써 이러한 역할에 있어서의 상식 일탈을 대단한 위로감으로 삼고 있는 고민하는 사람들이 퍽 흥미있는 인물로 자주 쓰여진다. 사실과 동떨어진 점이 이보다 더한 것 없다. 로클리에 있는 동안 나는 한번도 그러한 어릿광대 같은 경향을 가진 환자를 만난 적은 없다. 정신병이란 항상 가엾은 것이라는 것이 엄연한 사실일 것이다. 더구나 그들을 연구하고 인간의 정신 신비를 탐구한다는, 어림없는 일을 시험하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들은 무한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로클리는 근대적인 스코틀랜드 제1의 시설의 하나로서, 불치의 환자를 적당히 할당받고는 있었으나, 특히 많은 쇠약환자, 즉 생활의 과중한 압박이나 긴장 때문에 신경이 돈 사람들도 수용하고 있었다 – 그들은 파산으로 인하여 자살을 꾀하려고 했던 실업가, 어린아이를 잃어버리고 슬프게도 정신착란이 된 가엾은 젊은 어머니, 가정의 불화나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지쳐버린 아내 따위들이었다…

이러한 환자를 치료하여 원래대로의 건강체로 돌이켜, 다시 자기 직업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인생의 싸움에 참가할 수 있는 적당한 모이 되어, 돌담에 둘러 쌓인 이 성곽에서 맑은 눈으로 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빈튼과 로클리에 있어서의 가빈튼의 협력자들의 제1의 목적이기도 하고 참 보수이기도 했다. 그것은 모든 의미에 있어서 가슴 설레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또 위험도 없지는 않았다.

로클리의 환자들 중에 나와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던 사람은 조지 블레어라는 사나이였다. 모두들에게서 ‘조디’라고 애칭되고 있는 이 청년은 애교있는 성격 때문에 한층 마음을 끌었는데, 특히 내 동정을 끈 그의 신상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5년 전에 그는 사촌을 죽였다 – 사실 목을 졸라 죽여 버린 것이다. 이 범죄가 행해진 사정은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우리 둘이서 이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 이 자기 표출 방법은 항상 장려되었다 – 조디가 고백한 바에 의하면 피해자인 청년이 그의 누이동생을 능욕했다는 것이다. 사실 – 되도록 불유쾌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한다면 – 자기의 애정을 무리하게 육체적으로 누이동생에게 떠맡기려고 했던 것이다. 일시적으로 블레어의 정신 균형을 잃어 버리게 한 것은 이 청년의 폭행이었다. 진지한 청년으로서는 그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법정에서의 판결은 ‘유죄, 단 정신착란 중의 범죄’였다. 이리하여 조디는 ‘무기한’ 구금을 선고받아, 주로 가족들의 신청에 의한 것이지만 로클리로 옮겨져 여기에서 여생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가혹하고 부당하게만 느껴졌으나 이 펼ㅇ생 걸리는 형벌의 무거운 짐을 블레어는 용감하게도 받아들였다. 이 일 때문에 처음부터 나는 한층 강하게 그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이다. 이 병원에서 그만큼 기운있고 정력적인 사람은 없었다. 음악회에서는 고운 바리톤으로 노래를 부르고, 일요일에는 반드시 성가대의 앞자리에 앉았다.  월례집회에는 스코틀랜드 고지인 고지인 옷을 입고 나타나고, 댄스파티에는 꼭 출석해서 앞장서고, 여덟 사람이 춤추는 리일 [스코틀랜드의 경쾌한 댄스] 에서는 훌륭한 춤 솜씨를 보였다. 약간 키가 작고 뭉실한 몸집이었으나 대단한 육체의 소유자로서 로클리에 조직된 모든 경기에 열심히 참가했다. 맨 처음 우리를 연결 지은 것은 이 경기에서였다.

나는 원래 모든 스포츠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는 특히 육체 단련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있어서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찬물로 목욕을 하고 그리고 30분 간 등교하기 전에 뮬러식 가벼운 체조라든가, 운동장을 달린다든가, 무슨 모양의 경기를 한다든가 하는 따위로 굉장히 열심이었다.

이리하여 조디와 나는 기운차게 자주 테니스랑 온갖 운동들을 했다. 토요일 오전 나는 시간이 있을 때 볼을 들고 나가 운동장에서 같이 차곤 했다. 그는 명랑하고 발랄한, 참으로 호감이 가는 사나이였으므로 – 거기에다가 또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나를 위해서 여러 가지로 걱정을 해주고 개인적인 볼 일까지 보아주기 때문에 – 나는 이 사나이에게 비상한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원장에게조차 그의 이야기를 했을 정도였다.

가빈튼은 하루 일이 끝난 다음 당구치는 것은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글고 피터스 박사가 하지 않기 때문에 자주 나를 자기 집으로 불렀다. 자택에는 훌륭한 당구대가 있어서 100점 게임에 20점 핸디를 나에게 주고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이렇게 당구를 치고 있다가 나는 원장에게 말했다.

“선생님, 블레어가 일생을 로클리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 도니다는 것은 가엾더군요.”

“글쎄.” 원장은 큐에 초오크를 발랐다.

“그렇다면 자네는 우리 병원을 그토록 나쁜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 셈이군.”

“아니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천만에, 천만에 말씀이지요. 어느 모로 보든지 좋은 곳입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 높은 돌담으로 세상과 격리되어 있으니까요.”

“저 담은 그래도 훌륭한 구실을 하고 있지.”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렇지만 블레에에게 대해서는 그렇지도 않지요. 여간 좋은 친구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독한 대우를 받아 왔어요. 당숙에 소청을 낸다든가 탄원한다든가 그런 일은 되지 않을까요?”

가빈튼은 곧 대답은 하지 않고, 그 사이 항상 하는 버릇으로 윗입술을 만지면서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윽고 가벼운 미소를 짓더니 당수를 치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면서 말했다.

“우리의 친구 블레어 군은 로클리에 있는 편이 유쾌하게 사는걸 거야.”

물론 이것으로써 이야기는 끝났다. 그러나 나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디를 위해서 되도록 기분 좋게 지낼 수 있도록 갖가지 신경을 써 주었다.

이 이야기가 있고 나서 몇 주일인가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피터스 박사를 대신하여 근무를 하면서 – 그는 카를로 로자 일행의 ‘라보엠’ 공연을 보러 뛰어 나가고 없었던 것이다 – 남자 병실의 회진을 갔다.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통 때보다 늦어져서 벌써 11시 가까이 되었는데, 병실 부엌에 들어가 보았더니 야근하는 카리가 뜨거운 오보말친을 만들고 있었다.이것은 규칙으로서 별로 건강하지 못한 환자에게 주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카리는 70을 넘은, 뻣뻣한 백발의 하이랜드 인 [스코틀랜드 고지 지방의 사람] 으로써 나이를 먹어 허리는 구부러져 있었지만 아직 정정했다. 거의 50년 가까이 로클리 병원의 야근을 맡아보고 있었다. 웃으면서 부드러운 인바네스 [스코틀랜드 북부지방] 사투리의 액센트로 자주 나한테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반세기 동안 별로 태양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항상 그가 만들어 주는 영양 많은 오보말친을 마시면서 나는 유쾌하게 지껄이고 있었는데 그날 밤은 그는 나를 흠칫 곁눈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조디가 오늘밤 행패를 부려서요. 모두들 붙잡아 7호실에 넣었지요.”

나는 깜짝 놀라 카리를 쳐다보았다.

‘블레어가 … 7호실에?”

“네” 카리는 끄덕였다. “아주 굉장했어요.”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 병동의 7호실이라고 하면 광폭성 환자를 넣는 병실이다. 한 순간 나는 이 노인이 농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의 표정을 보자 그런 생각은 곧 사라졌다. 여우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었고 걱정이 되어 오보말친 컵을 든 채 나는 주방을 나왔다. 만약 정말 불레어가 나빠졌다면 이것을 마시게 하면 기뻐할지도 모른다. 병실을 지나가는 도중 카리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못들은 척하고 온 병원을 이것이 없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열쇠로 문을 열고 7호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 실내의 어두움에 눈이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가슴에 맹렬한 일격을 받아, 그 때문에 뜨거운 오보말친이 눈 속으로 튀어 들어가는 것과 함께 쾅 하고 문에 몸을 부딪쳤기 때문에 그대로 문이 닫히고 말았다. 나는 거의 장님이나 마찬가지였지만 – 쇠창살을 끼운 높은 창으로부터는 겨우 조금 빛이 들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 자신의 위험을 느껴, 일부러 이러한 위험을 자초한 스스로의 바보 같은 짓에 놀았을 때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나한테 덤벼들어 빈 컵을 빼앗아 그것을 내 머리에 힘껏 내던지며 미쳐 날뛰는 블레어의 모습에는 말할 수 없는 위협이 나타나 있었다.

“조디…왜 이래…나를 모르겠어…친구가 아닌가…”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또다시 치고 덤벼들었다. 그때 나는 한 사람의 살인광과 함께 병원 안에서도 가장 위험한, 가장 무서운 장소, 고립되어 있고 절대로 말도 통하지 않는, 구원을 청하기 위해 소리를 질러도 복도까지도 들리지 않는 감방 속에 갇혀 있는 것을 깨닫고 모서리를 쳤다.

차가운 공포의 물결이 온몸에 흘렀다. 얼굴에 상처가 나고 피가 목으로 흘러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방어하지 않으며 안 된다. 블레어는 한 발자국 다가온 순간 나는 온몸의 힘을 모아 그를 후려쳤다. 그 일격으로 그는 비틀비틀 했으나 결국 맹렬하게 덤벼드는 황소를 막으려고 하는 노력과 같았다. 나는 복싱 선수라고 자칭할 수는 없다.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 나의 일상의 주장이었고, 이것은 나중 이야기지만, 용기가 모자란다는 증거를 폭로하는 처지에 빠져서 그것을 생각해 내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호신술 정도는 배운 일이 있고, 해군 근무 중 영국의 라이트급 참피온으로 그 당시 구축함 멜람프스 호에서 전우였던 시망 홀과 몇 차례 시합을 했던 것이다.

홀에게서 배운 기술을 이때 나는 맹렬하게 필사적으로 다 사용했다. 되도록 블레어에게서 멀리 떨어져 연속적으로 레프트 스트레이트와 라이트 크로스로서 그의 턱을 노렸다. 상대는 방어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이처럼 쉬운 싸움은 없었으나, 그러나 아무리 해도 그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보통 때도 그는 나보다 훨씬 세지만 현재의 정신착란 상태에 있어서는 – 이 상태로서는, 한쪽은 신경계통이 고통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되어 있고 거기에다가 근육을 자극해서 최고한도의 활동을 시키는 것이다 – 확실히 나 따위가 상대한 만한 적이 아니었다. 거듭거듭 그는 도리깨처럼 팔을 휘두르며 공격해 왔다. 그 무서운 스윙은 헛 맞을 때가 많았으나 그 공격의 중압은 압도적이었다. 거기에다가 그 우락부락한 얼굴,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흉악한 눈빛, 몸을 가까이 가져왔을 때의 쉰 듯한 헐떡거리는 호흡의 무서움, 최후의 힘을 다하여 그가 몸 전체로 나한테 부딪쳐 와서 나를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쳤을 때,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하고 머리가 띵해져 있었다. 현기증이 나고 늘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가 내 목줄기를 손가락으로 붙잡고 기관을 눌러, 아무리 발버둥쳐도 숨통을 막아 버리려고 하는 것을 나는 의식했다.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나는 그가 그의 사촌을 죽인 것을 어렴풋이 생각해 냈다.

그 순간 (의식이 아직 희미해 있을 때) 도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꿈 속처럼 이웃 병동의 젊은 남자 간호원 둘을 데리고 카리가 감방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블레어를 떠 밀치어 목구멍에 걸려 있던 괴로운 힘이 늦추어졌을 때, 나는 카리 노인이 자기 혼자 감방으로 달려오기보다도 우선 적절하게 도움을 청해 가지고 내 생명을 구해 준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대로 나는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밤, 나중에 가빈튼 박사가 내 머리를 열 바늘 꿰매주었으나 –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다 – 그 후 며칠 동안은 목이 아파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음 달의 어느 날 아침, 서 부속 병원의 스토크맨 교수의 강의에 나가려고 가로수 밑을 걷고 있을 때, 명랑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돌아보았다. 그것은 조디였다 – 전처럼 기운이 좋아 보이고 웃는 얼굴로 호의에 넘쳐 있었다. 내가 멈추어 서자 그는 달려와서 친절하게 또 기쁜 듯이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또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정말이에요, 당신을 때려 눕히다니, 미안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당신이 나쁘지요. 내 누이한테 그런 무서운 짓을 하다니.”

나는 벌어진 입이 닫혀지지 않아 멀뚱히 그를 쳐다보다가 가까스로 기지를 살려 중얼거리듯 말했다.

“안, 미안해 조디..나는 정신이 없었단 말이야…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

그 후 조디는 가끔 함께 테니스를 치자고 오기도 하고, 토요일의 경기를 부활시키려고 축구공을 들고 우울하게 서 있기도 했다. 그러나 로클리에 있는 동안 나는 그와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외아들이면서도 누이동생이 있다고 믿고 있는 사내를 신용하지 말라, 하는 것을 배웠다고 할 것이다.

 

 

3. 빈민가의 흰 장미

 

단 레거이레에서 연락선을 내려, 경쾌한 이륜마차로 시내를 향해 달리노라니까, 봄이 찾아오는 느낌과,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탄 타는 냄새와, 아일랜드의 특징이고 매력이기도 한, 푸른 풀들이 성장하는 흐뭇한 느낌으로 꽉 찬, 부드러운 저녁때의 안개 속에서 내 가슴은 부풀었다. 더블린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리피 다리를 건너 오콘넬의 로턴다 쪽으로 갈수록 내 속에 있는 아일랜드 인의 피는 흥분했다.

동행자는 급우인 휴 디바즈로서, 6월의 최종 시험을 치르기 전에 둘이서 로턴다 병원에서 3개월 간 산과 실습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이 병원은 당시 핏비본 박사를 원장으로 모신 유럽에서도 산과로서는 최고의 수업 장소였다. 로클리에서 금방 나오는 참이라, 급료 중에서 40기니는 아직 주머니에 남아 있고 해서 나는 이 여행을 마음껏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디바즈는 아메리카 인으로, 텍사스에서 개업하고 있는 그의 아벚가 전에 랄프 스토크맨 교수와 함께 연구하였던 관계로 아들을 옛 친구의 교실에서 공부시킬 생각으로 글라스고 대학에 유학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휴의 성격 속에는 긴장한 신참자다움 점은 조금도 없었다. 키가 크고 다리가 멀쑥하게 긴, 튼튼해 보이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거리낌없이 웃는 제멋대로의 누그러진 성질이었으므로, 친구로서는 이 이상 가는 사나이는 없었다.

그러고부터의 매일, 대개 휴의 제안이었지만, 우리는 강의나 과중한 실습 시간표 속에서 시간을 훔쳤다. 레파즈 타운의 아베이 극장을 기기도 하고, 경마로 몇 실링씩 손해를 보기도 하고, 클럽을 빌려 유명한 포트마노크의 링크에서 골프를 한 라운드 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오후, 보잉 강까지 마차로 드라이브를 하고, 잘 되지는 않았지만 연어의 밀어를 시험해 본 일조차 있다.

그러나 우리가 대부분의 낮 시간과 가끔 밤 시간을 보낸 것은, 더블린의 고동치는 가련한 심장부에 있는 빈민가였다. 이것은 로턴다 학생의 담당 구역이었다. 일은 매우 힘들고 괴로웠다. 가끔 분만이 시간을 끌어 거의 철야로 일을 하고 극도로 피곤해져서 돌아와 막 침대에 들려고 하면, 또 다른 여자가 산기를 일으킨다고 알려와서, 온갖 욕을 다 지껄이며 우리는 그 검은 가방을 들고 가로등이 드문드문한 거리를 걸어, 지붕 하나로 줄지어 지어진 높고 깜깜한 돌계단을 올라 겨우 한 칸 뿐인 가난한 집으로 가서 또다시 피곤한 상태로 극히 서툴게, 그러나 진정 조심해서 출산이라는 대 신비에 대한 직무를 다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후 2주일간에 걸쳐, 하루 두 차례씩 환자를 왕진하여 갓난아이의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히고, 산모와 갓난아이의 산후 치다꺼리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무서운 환경 속에서, 모성의 가엾은 현실에 이토록 가까이 접촉한 것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점점 우리는 여태까지의 발랄한 힘을 잃어 버리고, 더욱 검소한 기분으로 환경에 맞추도록 되어 갔다. 사실 내가 처음으로 빈곤의 맨 밑바닥에 잠겨 있는 사람들의 숭고할 정도로 강한 인내를 안 것은 이 더블린 빈민가에서였다. 용기와 자기 희생의 감동할 만한 실례에 여러 번 부딪쳤지만 특히 그 중에 하나는 극히 비극적이었기 때문에 잊어 버릴 수 없는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그 소녀를 만난 것은 로크랑 가 街 에서였는데, 소녀는 생후 9개월이 된 무거워 보이는 아기를 다 해어진 숄로 감싸 여린 몸에 묶어 업고는 공동수도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이름은 로즈 드네간이었고 빨간 머리털에 성숙해 보이는 작은 얼굴과 어딘가 너무 커 보이는 듯한 짙은 푸른 눈을 가진 열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또 아이가 셋, 나이는 다섯 살에서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그 소녀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있었으나, 눈과 코의 생김새가 닮은 것은 역시 빨간 머리카락인 것으로 보아 드네간 집안의 아이들인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겉의 더러움과 그 소녀의 사람을 겁내지 않는 밝은 눈길과의 대조가 우리의 호기심을 끌었다. 우리는 우선 맨 처음으로 그저 ‘안녕’하고 말을 걸었을 뿐이었지만 며칠인가 지나는 동안 그쪽에서 그럴싸하게 수줍은 듯한 웃는 얼굴로 이 이산에 대답하게 되었다. 조금씩이라고 하는 것은 그 아이의 서먹함을 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친하게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이 로즈와, 세 명의 작은 아이들과 갓난 마이클은 8개월 진에 어머니를 잃어 버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그들은 아버지 다니 드네간과 함께 로크랑 가의 사람들이 우글대며 살고 있는 건물 지하실에 살고 있었다. 다니는 가끔 부두에서 일하고 있었으나 몸이 약한 호인이었다 말씨는 조용하고 항상 선의가 넘치는데 시간과 돈을 거의 가까운 샨로크 술집에서 써 버리고 있었다. 이리하여 방 둘을 청소하고 정리한 다음 빈둥빈둥 놀고 있는 아버지를 보살펴, 그가 번 돈을 되도록 헤프게 쓰지 않도록 하면서, 식사 준비를 하고 동생들의 시중을 드는 등 집안 일의 무거운 집들이 모두 로즈의 차지였다. 로즈는 가족 모두를 아끼고 사랑하였지만 누구보다도 갓난아기 마이클을 귀여워했다. 날씨가 좋은 오후 같은 때 자주 갓난아기를 안고 페닉스 공원 부근에 나가 있곤 했으나 너무 무거워 발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로즈는 지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를 꺾을 수 없었다. 로즈가 햄조각을 살 때 고깃간 주인과 담판하기 위해서라든가, 빵집 주인을 설득해서 한 조각을 더 받기 위해서라든가, 무든 볼 일로 열심히 사람들 틈을 비집고 불결한 보도를 결연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확고한 정신에 우리는 눈을 둥그렇게 떴던 것이다. 그는 주위의 광경에 맹목적은 아니었다. 빈민가 아이들의 기본적인 지식 – 가혹한 인생의 신비에 대하여 절대로 얼굴을 돌리지 않는 이해와 숭고하기까지 한 순진함이 뒤섞인 것 – 을 가지고 있었다. 얼룩진 작은 얼굴에 커다란 사려 깊은 듯한 그 눈은 노인의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 깊은 사랑의 샘을 담고 있었다.

 이 아이에 대한 우리의 흥미는 점점 깊은 걱정으로 바뀌어져 갔다. 무엇인가 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마침 그녀의 생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콘늘 가의 양품점에서 선물을 배달시켰다. 꼭 맞는 따스한 새 옷을 입고 튼튼한 구두와 양말을 신은 로즈를 상상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2, 3일은 일부러 얼굴을 마주치지 않도록 하고 있었는데, 예쁜 새 옷을 입고 자랑스럽게 일요일 미사에 당당히 구두소리를 내며 교회의 통로를 지나가는 로즈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우리는 속으로 만족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월요일에 만나 보았더니 어떻게 된 셈인지 로즈는 여전히 다 해어진 옷을 입고 찢어진 숄로 갓난아기를 업고 있었다.

“새 옷은 어떻게 했니?” 하고 디바즈가 물었다.

로즈는 목까지 빨갛게 되더니 한참 만에 말했다.

“당신이었군요?” 한참이나 있다가 우리 쪽은 보지도 않고 그녀는 다만 이렇게만 말했다. “전당포에 넣었어요.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마이클한테 우유를 사주지 않으면 안 돼서요.”

나는 가만히 로즈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녀는 자기를 희생하여 자기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어린 남동생에게 주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막기만 하면 된다. 이튿날 나는 로크랑 가 교구를 담당하고 있는 월슈 신부를 찾아갔다.

내가 로즈 이야기를 하니까, 신부는 빛나는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 잠깐 생각하다가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얼마동안 그 아이를 시골에 보내는 것이 좋겠는데, 내 친구가 있어요…카롤이라고 하는… 좋은 사람들이지요…골웨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설득시키는 것이 큰일이군.” 문밖까지 나를 배웅하면서 신부는 익살스레 미소를 띄웠다. “그 아이는 완전히 어린 어머니니까. 그것이 그 아이의 생활을 채우고 있는 힘인데.”

일주일 후 편지가 오고 간 다음 나는 결연히 로크랑 가에 갔다. 아이들은 테이블을 싸고 둘러 앉아 있었고 로즈가 찌푸린 걱정스런 얼굴로 빵 부스러기를 얇게 썰고 있었다.

“로즈.” 하고 나는 말했다. “너는 여행을 하는 거야.” 그녀는 납득이 가지 않아 주름진 이마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면서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골웨이로 가는 거야.” 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두 주일 동안이야. 그 집은 농사짓는 집인데 너는 닭 모이를 주거나, 들판을 뛰어다니며 마음대로 우유를 먹고 있으면 되는 거야.”

순간 기대하는 빛이 얼굴에 넘쳤으나, 곧 지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아이들을 돌봐 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아버지 시중도.”

“그런 건 다 준비가 돼 있어. 부인회 사람들이 와서 시중 들어주게 되어있어. 꼭 가야 해. 로즈, 그렇지 않으면 너는 쓰러지고 말아.”

“그렇지만 안 돼요. 갓난아기를 두고는 갈 수 없으니까.”

“좋도록 해. 그럼 데리고 가면 되지 않아?” 그의 눈이 빛났다. 이튿날 우리가 로즈의 짐을 기차 안에 실을 때, 그 아이 눈은 한층 더 밝게 빛났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갓난아기를 빼빼 마른 무릎 위에 놓고 이르면서 그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음매, 음매가 있어요, 마이클…”

캬롤 가에서 두 사람의 소식을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로즈는 농장 일을 거들면서 몸무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기 혼자서 쓴 철자법이 엉터리인 엽서에서는 그녀가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이 싹트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마이클에게는 시골이 아주 썩 잘 맞는다고 기뻐하는 말투로 매듭지어 있었다.

두 주일이 금방 지났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가서 큰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캬롤 가에서 마이클을 양자로 삼고 싶다는 것이다. 그들은 중년 부부였는데 아이가 없었고 유복했다. 둘은 마이클이 점점 좋아져서 본인의 가정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의 이익을 제공해도 좋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인 다니는 물론 이 좋은 기회를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즈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결정은 로즈에게 맡겨졌다. 우리들은 그것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도, 그 결정을 하기 위해서 로즈가 얼마만한 희생을 치렀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결국 로즈는 돌아왔다 – 혼자서.

다른 동생들과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것을 기뻐하고는 있었으나, 역에서 돌아오는 동안 계속 그녀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이클을 위한 것인데 뭐.’ 하고 그녀는 마침내 한숨을 쉬었다 “마이클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

로크랑 가에 돌아오자 그녀는 점점 기운을 내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이전보다도 더 성실해진 듯이 보였다. 그녀의 격려를 받아, 다니는 금주 禁酒 서약서에 서명했다. 그의 갱생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런 보증도 없었으나 그래도 그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안에 로즈는 전당포에 넣었던 물건을 찾아올 수가 있었고 지하실의 방도 실제로 가정답게 되었다. 어느 토요일에는 벽난로 위의 물통에 몇 실링인가를 감추어 둘 수 있을 만큼 되었다.

아기의 성장에 대해서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마이클의 양부모는 그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마이클을 자기네 아이처럼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다른 편지가 날아들었다. 마이클이 폐렴에 걸렸다는 소식이었다.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을 꼭 깨물고 로즈는 꼼짝 않고 편지를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굳어진 표정으로 벽난로 위의 저금통 쪽으로 걸어가서 차비가 될 만큼의 돈을 세었다.

“마이클 있는 데를 다녀 오겠어.”

그녀는 일체의 반대를 물리쳤다. 마이클 일이라면 자기의 힘으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들 모르는 것일까 – 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영양 있는 음식을 먹이고, 보챌 때 약을 먹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마를 짚어 주는 것 만으로서 잠들 수 있게 조차 할 수 있지 않은가.

결연한 얼굴로 그녀는 길 떠날 준비를 하더니 마음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부탁한 다음, 전차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그날 밤부터 캬롤 농장에서는 그녀가 마이클의 간호부 자리에 앉았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을 우리는 월슈 신부에게서 들었다.

안심할 수 없는 증세였다. 기침이 제일 심했다. 자신이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마이클을 가슴에 끌어 안고 발작이 끝날 때까지 돌보아 주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이클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여 간호했다.

마침내 위기를 넘겼다. 마이클이 낫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로즈는 들었다. 그녀는 두 손을 이마를 짚으며 침대 곁에서 일어섰다.

“이제 나 좀 쉴래요.”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런지 골치가 빠개지도록 아파..”

그녀는 마이클의 병에 감염되어 있었다. 그러나 폐가 상한 것이 아니었다. 더욱 나쁜 일이 일어났다. 폐렴구근수막염 의 증상을 나타내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앞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그녀는 이제 만 열 네 살이었던 것이다.

그 후 몇 해가 지나서 나는 로즈의 묘를 찾아갔다. 쓸쓸한 황무지의 교회 뜰 안에는 조용한 서풍이 골웨이 만 쪽에서 불어와 근처의 흰색 칠한 농가에서 나오는 특유한 탄내를 – 아일랜드의 입김이고 정신 그것인 냄새를 – 실어왔다. 작은 파란 묘에는 꽃다발 하나 없었지만 풀 속에 절반은 가려진 가느다란 들장미의 여린 줄기가 있어 가득 침이 돋아난 가지에 새하얀 꽃이 한 송이 달려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회색 구름 사이에서 태양이 나와, 그 흰꽃과 로즈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흼 묘석을 빨갛게 비추기 시작했다.

 

 

4. 인도양의 성자 聖者

 

“잠깐, 저, 저런 이상하고 괴상한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리버풀에서 캘커타로 가는 긴 항해에, 이제 곧 출범하려는 라왈핀다 호의 일등 선객인 사치스러운 복장을 한 여자가, 날카롭고 높은 ‘세련된’ 목소리로 동행인 군인 같아 보이는, 여자처럼 모양낸 풍채의 젊은 남자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둘은 위 갑판의 바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쫓아가다가 다리는 짧고, 머리가 불균형하게 크고, 귀에서 귀 위에 걸쳐 흉터가 난, 두루뭉실한 극히 보기 흉한 토인 선원 위에 내 눈이 멈추었다. 그는 이 비에 있는 인도인의 수부장 水夫長 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는 옆으로 갔다 댄 마지 강의 작은 배에서 선창으로 짐을 옮기고 있는 인도인 수부들을 가만히 감독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같이는 안 보이는군.”하고 그 군인은 엷은 수염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거만한 미소를 짓고 그렇게 대답했다. “저것을 보면 다윈의 말도 전연 거짓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음, 뭐?”

나는 가만히 떠나 내 선실로 내려갔다. 3주일 전, 나로서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지만, 마침내 의학사의 학위를 획득했던 것이다. 조금 있던 저금도 마침내 다 써 버리고, 그만큼 노력을 – 밤마다 젖은 수건을 머리에 얹고, 해님이 높이 솟아오를 때가지 교과서와 씨름을 했던 것이다 – 그것을 또 되풀이할 만한 돈도 정력도 없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으므로, 걱정과 불안에 가슴 설레면서 대학의 게시판에 핀으로 꽂아둔 합격자 명단을 바라보았을 때, 합격했을 뿐만 아니라 시험 위원회에서 우등상을 받게 된 것을 알았을 때의, 그 숨막힐 듯한 순간은 평생 잊어 버릴 수 없을 것이다. 또 뜨거운 눈물 때문에 앞이 뿌옇게 되었던 것을 여기에 고백해도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역시 합격해서 곁에 서 있던 ‘스타일리스트’인 치셤이 내 손을 잡으면서 이렇게 비꼬았다.

“오늘 아침은 약간 누선이 활동하는 것 같군, 선생. 백분의 일의 아크로핀이라도 처방할까, 그렇지 않으면 맥주로 할까?

이 사나이에게는 농담을 할 여유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윈톤 시작이고 라프랑 제강회사의 사장이니까.

더구나 이것으로서는 아직 모자라기나 하다는 듯, 스토크맨 주임교수의 호의있는 주선으로, 다행하게도 나는 기선 라왈핀다 호의 임시 선의 船醫로 임명된 것이다. 내 구두시험을 하면서 스토크맨 교수는 내가 퍽 피로해 있는 것을 알고, 인도를 왕복하는 배 여행을 하면 틀림없이 회복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항해는 평온하고 쾌청한 기후 아래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거친 파도에도 예상 외로 고통 받는 일없이 비스케 만을 건너 이윽고 지브랄탈 해협을 지나 감벽 빛 하늘 아래 거울 같은 지중해를 가로질러 갔다.

라왈핀다 호는 완장 阮丈 한 볼품없는 오래된 배로서, 고급 선원은 백인이지만, 석탄관의 기관을 최근 조금도 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속력이 극히 느려 – 사실 겨우 10 노트밖에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나 같은 젊은 의사에게 있어서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고, 기분 좋은 미풍, 빛나는 태양, 황홀한 진기스러운 풍경에 – 화살처럼 지나는 흰 파도에 싸인 섬들, 신비로운 아프리카의 해안선, 멀리 흰 벽의 촌락, 크림 같은 지나온 뱃길 속에서 춤추는 돌고래 떼에 – 한층 흥이 돋구어질 뿐이었다.

배는 뱃머리로부터 끝까지 선객으로 꽉 차서 붐비고 있었다. 전쟁 중 4년 동안 수송이 되지 않았으므로, 평화 회복과 동시에 너도나도 여행길로 나서, 더구나 그것은 보통 여행자나 관광객에 그치지 않고, 국토방위조령에 의해서 오랫동안 본국에 발이 묶여져 있던 사업가, 캘커타나 봄베이를 목적지로 하는 면사상 綿絲商, 쥬트상, 세일론의 홍차 재비업자와 콘폴의 제분업자, 거기에 대부분 여자아이들을 동반한 주인군 駐印軍 장교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향해 첫날밤부터 배 안은 굉장한 법석이었다. 이것은 참호의 살인적인 대 희생, 학살과 진흙의 구렁과 비참과 초조와 좌절과 공포의 여러 해가 지난 다음, 온 세계가 별안간 미치광이가 되어 소생한 시체같이 무섭게 광기 들린 난잡한 혼란으로 법석거리기 시작한 전후 시대의 시작이었다. 런치 파티에 칵테일 파티, 배의 항정 航程 의 노름, 경마, 그 밖의 모든 종류의 덱 스포츠, 즉흥 음악회와 가장 무도회 – 이 따위들은 평온한 나날과 열병적인 밤마다 개최되는 놀음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향연에는 항성 선의는 출석을 요청 받기 때문에 나는 극기 내성적인 편의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이 떠들썩한 법석통에 끌려 나가는 것이었다.

사교상의 선배 – 배 안에서 ‘무엇인가 연구해 내는’ 일에 능숙한 패 – 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미스 조프스미스로서, 출범하는 날 아침 갑판에서 이야기하고 있던 그 여자였는데, 벵갈에 부임하는 기병장교인 그의 오빠 로날드와 그 여성이 재수없게 식당에서 나하고 같은 테이블이 되었다. 미스 조프스미스라는 여자는 그런대로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편이었으나 젊게 보이기 위해서 온갖 화려한 꾸밈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서른은 넘은 떠들기 좋아하는 여자였다.

식탁에 자리할 때마다 그는 자기가 페샤와나 더지링의 최고 사교계에서 얼마나 환영 받을까 하는 것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말했다. 인도 체재 중의 예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의 주제는 영국 상류사회게 훌륭하다는 것과, 이것을 예속 하에 있는 원주민들의 마음 속 깊이 새겨줄 필요가 있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는 착한 마음씨를 가졌으나 동작이 느린 파씨 족의 소년 급사를 계속 부리고 또 부려 완전히 당황하게까지 야단을 치고서는 거만한 시선을 식탁 가득히 던지는 것이었다.

“이 따위 녀석들은 마구 쥐어박아야 해요. 안 그래요, 토니?”

“그럼.” 아무 쓸모 없는 소리에도 그의 오빠는 언제나 동생의 말에 찬성했다. “네 맘대로야.”

“추켜주면 어떤 일을 생각해 낼는지 모르지.”

“아 그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튼 그 말이야…그 반란 때 놈들을 쏘아 죽이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는 거야.”

“그럼요. 그야 나라도 자유사상쯤은 가지고 있어. 그렇지만 저 친구들은 기껏 굉장한 가난뱅이들 아니야? 요만큼의 기력도 없고 성실도 없어. 언제 배신할는지 모르고…그렇지만 니 벤틀리 대령한테 언젠가 들은 것이 생각나는데…”

배는 항구에 닿았다. 모두들 가슴을 울렁거리며 상륙해서 무슨 비단 따위, 숄, 담배, 향료, 보석 등을 시몬 알츠 상점에서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날 밤 닻을 올려 배가 드 레렙스 [프랑스의 대리공사로서 수에즈 운하의 개설책을 건의하여 스스로 그 공사감독을 맡아 이것을 완성시킨 사람]의 동상 곁을 지나 수에즈 운하의 길게 뻗은 수로에 들어가자. 오케스트라는 여느 때 보다도 높이 울려 퍼지고 댄스는 한층 빨리 광조적 狂躁的 으로 되었다. 이윽고 배는 홍해를 거쳐 아덴의 황량한 암산 岩山을 지나 널따란 아라비아 해로 나갔다.

이튿날, 선실에 잇닿은 진료실에서 진찰을 하고 있으려니까, 수부장 하산이 부하 인도인 수부를 두 명 데리고 왔다. 내가 들어오라고 하기까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윽고 그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절을 하고 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음성은 바람과 파도의 포효 咆哮를 상대해 왔기 때문에 벌써 옛날에 찌부러진 것처럼 쉬어 있었으나 또랑또랑한 저음이었다.

“선생님, 이 녀석들이 아무래도 병인 것 같습니다만.”

수부들은 확실히 병든 것 같았다. 공연히 기분이 언짢고 몹시 두통이 심하며, 뼈마디가 잘려 나가는 듯 아프다는 것이다. 옷을 벗으라고 이른 다음 진찰을 시작하자 두 사람은 몹시 못마땅한 듯한 얼굴로 흰 눈을 빙빙 돌리며 겁을 내고 있었다.

둘 다 열이 있고 백티가 두껍고 피부는 버석버석 말라 손을 대도 타는 것 같았다. 이것은 자연이 주는 불길한 경고다. 폐질환 증세는 없다. 목구멍의 명증도 없다. 배에도 이상은 없다. 나는 직관적으로 말라리아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맥을 짚어보았을 때 둘 다 손목 피부 아래 흡사 납탄환 같은 단단한 작은 결절이 돌아나 있는 것이 내 손끝에 느껴졌다. 이것은 틀림없는 증세였다. 즉시 오금과 겨드랑이 밑을 잘 조사해 보았더니 둘 다 결정적인 구진성 발진 丘疹性 發疹이 나타나 있었다.

나는 아직 젊고 의사로서의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감정을 억제할 줄도 몰랐고, 죽음의 선고를 위로의 미소로 얼버무리는 방법도 익숙해 있지 않았다. 내 낯빛이 눈에 뜨일 정도로 변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수부장의 주름투성이인, 풍우에 시달려 온 얼굴이 한층 엄숙해졌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우리가 직면한 병의 성질을 나처럼 그도 알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부딪친 것은 말하자면 일종의 충격과 같은 결의와 대담한 평온함을 띄우고 있는 그의 눈길뿐이었다. 의연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로 두 사람과 함께 진료실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일렀을 때도 그는 다만 다시 머리를 숙였을 뿐이었다.

가슴의 고통을 느끼며 나는 급히 브릿지로 올라갔다. 함블 선장은 해도실에 내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뛰어들자 선장은 얼굴을 들었다.

“선장님.” – 내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배 안에 천연두가 발생한 것을 보고합니다. 수부 두 사람입니다.”

선장이 입술을 깨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는 나이 쉰 다섯으로 머리는 짧게 깎고 모래빛 뿌굴뿌굴한 눈썹에 체격이 단단한 사나이로, 냉혹할 정도로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공명정대하고 편견을 잦지 않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내 보고를 듣자 적동색 얼굴이 한층 더 붉어졌다.

“천연두.”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확실한가?”

“틀림없습니다, 선장님.”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의료품 중에는 임파액이 없습니다.”

“천 오백 명 승객분의 임파액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말아.” 그는 화가 난 듯 입술을 깨물고 더욱 얼굴을 찡그리고, 좁은 해도실 안을 여기저기 걷기 시작했다.

“자네” 하고 그는 이윽고 내 바로 곁으로 와서 말했는데 그 말에는 잘못들을 수 없는 엄숙함이 엉켜있었다. “지금 내가 한 말을 잊어 주게… 너무 놀라서. 그런 소리를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런데 자네는 이 배에 있는 사람들의 건강을 맡고 있어. 완전히 자네에게 맡겨져 있어. 고급 선원은 한 사람도 자네를 도울 수는 없어. 선객이 많아 손이 모자라는 거야. 그러나 그 수부장만은 괜찮네. 그 친구는 수부의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다 알고 있으니까. 더구나 그 친구는 훌륭한 사내야. 자네들 사이에 이 말이 퍼져 나가지 않도록 해주게. 한 마디도 새 나가지 않도록 말이야. 그러지 않았다가는 저 선객들이 큰 소동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으니까.”

나는 해도실을 나왔으나 배에서 힘이 빠진 것 같았고 스스로의 책임있는 입장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덱 체어에 기대서 피엘 로치[프랑스 근대의 소설가로서 국화 아가씨의 작자]의 작품을 읽고, 낙조를 바라보며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소설을 쓰려는 염원을 로맨틱하게 꿈꾸기도 하고, 손가락을 상했다든가 가벼운 배멀미 정도 이상의 중환자를 진찰한 적도 없었던 지금까지의 태평스럽고 안일스러움은 날라가 버리고 말았다. 아라비아 해의 한가운데서 천 오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예방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데 항차 천연두라니… 이것은 의학사전 속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인 것이다.

진료실에 돌아와 보았더니 한 사람이 굉장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경련을 일으키는 그 사나이로부터 수부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속 모를 눈은 여전히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자네는 알고 있는 거지.” 하고 나는 물었다.

“네 선생님, 이건 내가 전에도 본 적이 있는 것이어서.”

“이 사람들을 격리시키지 않으면 안 돼… 아무에게도 접촉되지 않도록…”

스스로는 그런 기분이 되지 않았지만 일부러 명랑함과 확신을 보이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하사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네, 선생님… 가능한 한 도와드리겠습니다.”

배 안에는 병실이 없었고 병실로 만들만한 선실의 여유는 1인치도 없었다. 가득 쑤셔 넣은 수부실을 한 번 보았을 뿐으로 이 전염병 환자를 승무원 방에 격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난처해진 나는, 소란도 피우지 않고 눈에 온몸의 힘을 담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수부장을 또 건너다봤다.

“갑판 뒤에 텐트를 칩시다 선생님, 거기는 여간 시원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잘 통하니까요.”

기중기와 보조 증기기관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배 뒤쪽에서 그는 일에 착수했다. 소리도 없이 움직이지만 뭉실한 몸과 큰 머리와 부드러운 긴 팔은, 정력과 냉정스러움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어 그것이 그의 평평한 흠집이 있는 얼굴에 반영되어 있었다. 한 시간 동안에 묵묵히 열심히 일하여 갑판에서부터 팽팽하게 줄을 끌어다가는 크고 튼튼한 텐트를 만들어냈다. 이불이 옮겨지고, 두 환자는 안전하게 수용되었다.

다음으로는 승무원들을 모아 철저한 검사를 해야 했다. 화부 중의 한 사람이 발열과 두통이 있었는데 전형적인 발진 초기에 보이는 전구증상 前驅 症狀 의 결절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사나이도 함께 격리되었다.

“그런데…이 친구들 간호를 누구한테 맡기면 좋을까?”

하산은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조심해야 해. 이 병은 전염성이 강하니까.”

수부장이 나라는 인간을 좀더 잘 알고 있었더라면 웃는 얼굴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는 그의 엄숙한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무섭지 않습니다, 선생님.”

하산과 나는 과망간산염 용액으로 환자를 닦고, 강한 해열제를 먹인 다음 소독제에 담갔던 천을 가장 자리에 늘어뜨리고, 이 작은 비밀 격리 병사 속에서 물을 끓이고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잇는 요리 스토브를 비치했다. 최후로 승객이 점심을 먹으러 나가 있는 틈에 야근 수부를 앞 갑판 아래에서 내쫓고 하산이 배의 비품 중에서 찾아낸 유황초로 수부방을 구석구석까지 훈증소독했다. 이것을 끝내고 나자 나는 얼마간 차분한 기분이 되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이 되자 또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새벽녘에 전원을 모았더니 수부 속에서 또 세 사람의 환자가 나온 것이다. 이미 격리한 환자들은 훨씬 악화하여 이 병의 가장 위험한 증세인 더러운 화농성 발진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득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가 되자 또 네 명의 수부가 발병했다. 우리의 임시 격리 병원에는 열 명의 환자가 수용된 셈이다. 그것은 신경의 강약을 시험하기 좋은 정황이었다. 그러나 흉터가 있는 까만 얼굴의, 볼품없는 이마 밑의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있는 수부장을 보자 나는 새로운 용기가 솟았다. 그저 그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절망 같은 것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환자를 간호하는 데도 그는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물을 먹여주고, 내가 만들어 준 세척제로 그들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피부의 가려움을 덜어주기도 하고, 임지 취사장에서 식사준비를 해주고, 더욱이 내가 거의 의식 불명인 환자를 들어올려 해면으로 몸을 씻겨줄 때는 언제나 금방 달려오고 – 이런 일을 하는데 그는 스스로의 안전 같은 것은 완전히 그리고 경멸해 버린 모양으로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심해.”

내 쪽에서 그렇게 부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너무 가가이 가는 게 아냐.”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그는 빈랑자 열매 때문에 핑크빛으로 물든 튼튼한 이빨을 드러내고는 살짝 웃는 것이었다. – 그러나 그것은 아주 희미한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였고, 거기에 인도인 특유의 우수가 뭉쳐 있어서, 불과 한 순간 그의 심연과 같은 자연스러운 조용함을 깨트렸음에 지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주의하고 계십니까?”

“그럼, 주의하고 말고, 더구나 이건 내 일이니까.”

“걱정 없습니다 선생님. 나는 강하니까요. 그리고 나도 이것이 내 일입니다요.”

이 무렵 급환이라도 없는 한, 나는 대개 격리 병실에 있었다. 선장의 지시에 따라 의혹을 일으키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감기로 드러누워 있다고 사람들에게는 발표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식당에 가지 않고 식사는 모두 쟁반으로 선실로 날라 오게 했다. 밤에 혼자 밥상을 향해 앉아 갑판의 현악단의 음악과 춤추는 사람들의 옷 스치는 소리와 발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괴상한 기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미친 듯이 춤추고 돌아가면서 그들은 위험이 가까이 있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다. 문득 나는 프랑스 왕이 아비뇽에서 개최한 ‘가장 무도회’의 일을 쓴 바르베 돌빌리 [19세기 프랑스 작가로서 ‘결혼한 파리에서’ ‘귀신들린 여자들’ 등의 작자]의 콩트를 생각했다. 파리에서 유행하는 페스트를 피하기 위하여 조정과 온 시민들이 아비뇽으로 피난했는데, 야단법석 놀이가 최고조에 달하여 모두들 마스크를 벗어 보았더니 빼빼 마른 알지 못하는 사람이 무서운 형상의 얼굴로 페스트의 치명적인 낙인이 찍힌 채 여러 사람 가운데 서 있었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상태에 빠져서, 나는 이 병의 초기 증세가 나타나지나 않았나 하고 스스로의 몸을 조사해 봤다. 그러나 그런 공포에서가 아니고 –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책임의 중압에 자신의 일과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 이상하게 초연한 기분과 틀림없이 전염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였다. 어릴 때 종두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분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차츰 높아가는 이 긴장 상태 속에 있으면서 배의 속도가 늦는 것을, 전에는 오히려 만족으로 즐기고 있던 속력의 부족을 저주했던 것이다. 전속력으로 달려도 가장 가까운 기항지인 콜롬보까지는 아직 8일을 더 달려야 하는 것이다.

하루 두 번씩 나는 선장에게 보고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선장의 심적 고통은 나 이상이었으나, 연령과 명령하는 습관이 겨우 그것을 억제하는 구실을 하고 있었다. 내 보고를 듣고는 고개를 한두 번 끄덕이고 나서 내가 앞에 있는데도 멀리 떨어진 리버풀 배 회사의 중역들이라도 보고 있는 듯한, 어쩔 줄 몰라 하며 화가 난 듯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선장은 애써 격려의 말을 하고는 나를 돌려보냈다.

“좋아, 훌륭한 처치다. 그대로 계속해 주게.”

그런데 지금까지 처럼 해도 좋은 것일까? 그 후 48시간 내에 첫 번째, 이어서 어젯밤부터 의심이 가던 세 사람의 수부가 또 뒷갑판 병실로 들어 갔다. 지금은 모두 열 네 명이다. 더구나 초기의 희생자 중 한 사람은 혼수 상태에 빠져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이러한 늘어난 무거운 책임 때문에 나는 잘 수가 없었고 낮에는 거의 격리 병실에서 지내면서 밤은 밤대로 역시 거기를 아무래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히 있을 줄로 알고 있었지만, 별빛 아래서 묵묵히 수부장이 역시 떠나지 않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조각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 난간을 배경으로 하여 생각에 잠겨 있는, 아니 오히려 우수에 잠겨 있는 그에게서 나한테로 흘러 오는 위로를 무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의 맡은 일의 상징인 은빛 호각이 융륭한 목에 긴 끈으로 매달려 있다. 비로도와 같은 하늘을 미끄러지는 열대의 달이, 정력을 감추어 둔 채로 조각한 흑단 黑檀 같은 움직일 줄 모르는 그의 얼굴의 깊은 주름을 뚜렷이 비추었다. 병인이 고문을 당하는 듯한 고통에서 정신의 아픔 때문에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면 그는 소리도 없이 다가가 시중을 든다. 그리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팔짱을 끼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육지를 떠난 한 미립자 같은, 대양 한가운데로 흘러가는 배는 조용히 움직여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불침번을 하고 있는 동안 떠듬떠듬 이지마는, 나는 조금씩 그의 신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판자브 태생으로, 거기에서 완전하고 방랑적인 파탄 [인도 서부국경에서 사는 아프가니스탄 인]이었던 양친은 남인도로 흘러갔다. 해안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가 그렇지만 그도 역시 어릴 때부터 배 타는 생활을 시작했다. 거의 40년 가까이 그는 전 세계의 대양을 돌아 다녔고, 그 중 15년을 이 라왈핀다 호에서 지낸 것이다. 그가 이 헌배를 자기 집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그에게는 따로 가정도 없고, 집도 없고, 저 인도의 광막한 지역 속에 가족도 없으며 친구도 없었다. 결혼한 적이 없는 것이다. 마스트 꼭대기에서 떨어져 얼굴에 큰 부상을 당한 이후, 여자에게 마음을 쓰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종교라고 하면 그는 자이나 교도였는데, 그에게는 그 종파의 교의를 훨씬 넘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을 승화하는 영원한 바람, 대해원의 미와 고요, 회색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야자수로 금 그어진 해안, 멀리 산꼭대기에 보이는 희푸른 눈, 열대의 낙조 속에 증기를 올리는 싱싱한 밀림, 몇 백 몇 천 번 헤아릴 수 없이 육지에 닿았다가는 또 떠나가는, 그것과 하나로 된 신비함에서 배워진 성실함이 있었다.

한평생 걸려서, 그는 아무것도, 재산도 돈도 싣지 않은 – 짐상자 속의 약간의 소지품은, 아마도 몇 루피 [인도의 화폐단위로서 1루피는 약 백원]의 가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자 나는 가슴이 아파, 그릇된 동정 끝에 소리질렀던 것이다.

“하산, 자네는 이번 사건으로 무척 열심히 일해 주었으니까 틀림없이 회사에서 특별 상여금이 나올 거야.”

그의 이마에 당황해 하는 듯한 주름이 잡혔다.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었으나 그 딱딱한 침묵을 깨뜨린 것은 느릿한 추진기의 축 軸 의 소리와 환자들의 걸걸하는 호흡뿐이었다. 이윽고 그는 대답했다.

“필요한 것을 무엇이라도 다 가진 사람에게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선생님, 지금 이대로도 훌륭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그는 확실히 진지하고, 보통의 보수에 대한 희망 따위에서는 완전히 초월하여 일체 개인적인 이익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돈은 그에게는 흥미의 대상이 아닌 경멸의 대상이었다. 돈과 떠날 수 없는 관계로 결합되어 있는 미치광이 같은 욕망 따위는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요기를, 극기심을, 성실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일하고 있던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고, 가난하게 죽었다. 내일의 일을 염려하지 않는 것이 마음의 습관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물 같은 달빛을 받고 그의 곁에 서 있는 동안 나는 묘한 고통을 받았다. 그의 그 깨끗함과 단순함에 비하여 세상의 가치라는 것이 별안간 티끌처럼 생각되어진 것이다. 색 전등으로 화려하게 조명된 살롱에서는 대 연회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흥분한 목소리, 웃음의 폭발, 샴페인의 마개를 따는 소리, 끊임없이 역행하는 것 같은 재즈의 울림을 들으니까, 인류라는 것은 안온한 생활이라든가 황금으로 살 수 있는 부자의 자유 따위로써는 환경에서 고립될 수 없는 염려가 있기 때문에, 육체를 위해서 영혼을 희생시킨다든가, 모처럼 갖추어진 덕성을 서서히 잃어 버린다든가 한다는 느낌이 내 마음 속에 한층 강해져 오는 것이었다.

 사실 자신의 장래에 대한 생각, 성공과 부에의 타는 듯한 욕망을 돌이켜 보고, 나는 속으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야단법석에 등을 돌리고, 젖빛처럼 하얀 해원에서 한숨을 쉬는 듯한 밤의 공허 속에서 저 불후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오오! 너의 믿음이 적은 자여. 무성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다음날 환자가 둘 죽었다. 그들의 수의를 만들고 이윽고 돛폭으로 싸서 발에 추를 달아 한밤중에 배 밖으로 내어 던져질 시체 앞에서 쉬고 얼빠진 소리로 ‘코란’의 일정을 높다랗게 읊은 것은 하산이었다.

새로운 환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1주일 후 새벽녘의 유황색 빛을 받고 배는 콜롬보 항에 도착, 세일론 인의 항의 港醫 와 관리가 올라와 모든 수속은 끝났다. 승객 중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사이에 노란 깃발 [선박이 입항해서 검역관이 임검을 할 때 내거는 기]이 내려지고 환자들은 병원으로 운반되었다. 환자 중 몇 사람은 위기를 넘겼으나, 나을 희망도 없고 인사불성으로 온몸이 발진투성이인 세 사람은 하산 팔에 어린애처럼 안겨서 란치로 옮겨졌다. 평평한 란치가 흔들리면서 뭍으로 나가는 것을 바라보니 하산의 검은 뺨이 눈물에 젖어 있었다.

벤갈 만은 즉시 그리고 무사히 통과했다. 나는 평온을 되찾을 겨를도 없고, 천연두 환자가 격리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의식할 겨를도 ㅇ벗었으나 배는 후그리 강의 흙탕물을 항해해서, 칼카타 부두에 닿았다. 배가 닿았다고 해서 모두 온통 떠들썩했다-울리는 사이렌, 바람에 펄럭이는 환영하는 작은 기들, 최후의 건배, 갑판은 부두에 마중 나온 친구에게 손을 흔들고 큰 소리로 인사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별안간 바로 곁에서 낯익은 미즈 조프스미스의 꽤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저기 저기를 봐요, 로니. 저기 또 그 괴상한 사내가 있어요.”

이번에도 또 나는 두 사람의 시선을 좇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 배 뒤 쪽에서 그들의 얘기 감의 대상을 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작게 보이지만, 긴 팔을 흔들며 짐을 들어 내리고 잇는 점보다도 더 볼 모양 없는 뭉실한 모습- 하산의 모습을.

첼트남의 여성 수렵가는 삥 돌아서며 그의 기지와 매력을 나한테 쏟아 왔다.

“항해 중 저 사내를 어디다 가두어 두셨어요, 선생님. 특별한 우리 같은데?”

침묵 – 수부장의 고귀한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네…어느 의미에서는…우리일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미스 조프스미스 – 동물들은 모두 우리 바깥에 있었으니 말예요.”

평정한 목소리를 내도록 애를 썼으나 내 목구멍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거기를 떠나 내 방으로 와서 주먹으로 힘껏 벽을 쳤다.

 

 

5. 첫 번째 수술

 

다시금 스코틀랜드에, 그리고 전형적인 스코틀랜드 적 날씨에 – 열대 지방의 밝고 맑은 하늘과 향기로운 산들바람과의 슬픈 대조. 단드날드 간이 역의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작은 플랫폼.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빗속에 서서 나는 마차를 대절할 것인가 어쩔 것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주머니 사정은 안 된다고 하는데 체면은 이것을 요구하고 있다 – 체면이라 해 보았자 내 자신의 체면이 아니라 새로운 지위에 대한 체면이었다.

 

 

 

 

 

 

 

 

 

 

 

 

 

 

 

 

 

 

 

 

 

 

 

 

6. 성홍열 사건 猩紅熱 事件

 

7. 기침 멎는 약

 

8. 오진 誤診 에피소드

 

9. 운명의 도박 賭博

 

10. 노의사 老醫師의 죽음

 

 

 

제2부

 

 

1. 신혼 초야 新婚 初夜

 

2. 백의 白衣의 천사

 

3. 별에서 온 전화

 

4. 동맥류 動脈瘤의 역사

 

5. 서른 여덟의 관 棺

 

 

 

제3부

 

 

1. 개업의 開業醫 가 되다

 

2. 허영의 도시

 

3. 수녀원장과 밤의 여자

 

4. 대주교와 하인

 

5. 결혼과 가정

 

6. 의사 직업을 그만 두다

 

 

 

제4부

 

 

1. 처녀작 處女作의 탄생

 

2. 시골 의사

 

3. 종교

 

4. 산상 山上의 교회

 

5. 가난한 자의 촛불

 

6. 영혼의 도시

 

7. 폐허에 싹트는 것

 

 

 

 

 

8. 신 神과 그 존재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정신의 나라는 우리에게 있어서 점점 더 중요성을 더해간다. 맹목적이고 얼뜬 바보가 아닌 이상 성숙한 나이에 이르면 인간은 가끔 이 세상의 복잡한 갈등 속에 서서 ‘왜 나는 이런 곳에 서 있을까? 그리고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하고 자문해 볼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지나는 것이 빠르고, 또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서 이런 자기 분석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의학생이란 원래 별로 신앙심이 없는 법인데, 나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는 않았다. 해부실에서 포르말린으로 소독한 시체를 해부하고 있노라면 인간의 몸도 하나의 복잡한 기계 이상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떤 해부를 할 때든지 인간 영혼의 불멸을 증명할 것을 본 적이 없다. 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예의 진부한 신화에 대한 생물학적 경멸을 나타내는 우쭐한 미소를 띄우곤 했었다.

그러나 마침내 의사의 자격이 주어져, 세상에 나가 남 웨일즈의 탄광마을로 가서 진료에 종사하면서 놀랄만한 고난과 싸우고 있는 동포들의 용기와 명랑함을 관찰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정신의 세계로 문을 열고 들어갔던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는 기적을 돕고 있을 때, 깊은 밤에 위험에 빠진 환자의 옆에 앉아 약한 죽음의 어두운 날개짓의 무자비한 퍼덕거림을 듣고 있을 때 나의 사고방식은 점점 자신을 잃어 갔다. 시시각각으로 밀려오는 경험의 고통스러움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내게도 분명해졌다. 나는 실제의 범위란 교과서가 가르쳐 준 것이라든가 전에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컨대 나는 자신의 우월감을 일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당시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신을 발견할 수 있는 제 일보였던 것이다.

나는 앞에서 올웬 디비스에 대해 독자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20년 이상에 걸쳐 견인불발의 인내력으로 그러면서도 온화함과 쾌활함을 잃지 않고 트리게니에 사는 사람들에게 봉사해 온 그 중년의 간호원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성격의 기조로 보이는 무의식 속의 무사 無私 정신은 너무도 보답되는 바 적었으므로 그것이 항상 내 마음을 괴롭혔다. 어느 날 밤 늦게 특별히 힘든 치료를 끝낸 후 나는 그녀와 함께 홍차를 마시면서 큰 마음 먹고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디비스 간호원.” 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은 왜 봉급을 올려 달라고 하지 않소? 당신이 그렇게 싼 월급으로 일하고 있다니 너무 어리석어.”

그녀는 가볍게 눈썹을 치떴다. 그러나 곧 미소 지었다.

“살아가기에는 이것으로 충분하니까요.”

“아니, 정말이지.” 나는 그래도 지지 않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일 파운드씩은 더 받아야 돼. 하나님도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계실 거야.”

그녀는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엷은 미소는 여전했지만, 시선에는 엄숙함이 가해졌으며 그 격한 눈빛은 나를 놀라게 했다.

“선생님.” 하고 그녀가 말했다. “만약 하느님이 알아만 주신다면, 그것만으로 저는 충분합니다.”

아주 적은 말수였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에 깃들어 있는 의미는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그녀는 종교적인 여성이라는 것을 나타내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녀의 전 생활, 그 봉사와 자기의 희생이 하나의 헌신, ‘지고 至高의 존재’에의 신앙에 대한 부단한 증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그녀의 생활의 풍요한 의의와 그에 비해 내 자신의 공허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신학 교수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집회에서 기도를 인도하기 위해서 일어나 달라고 요구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또한 특정한 종파라든가 교의를 끄집어내서 다른 것을 배척하는 따위의 일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단지 신 神에게 신앙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부도덕한 이야기나 하는 것처럼 이런 일에는 꽁무니를 빼는데, 이것은 인류 역사에 있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오늘날에야말로 한층 주목해 볼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참으로 여태까지 이러한 문제가 이렇게 절실하고 또한 이렇게도 중대한 것이 되어 본 적이 없다. 무신론적인 이데올로기로 맺어진 세계의 반은 종교에 대해 가차없는 공격을 가하고 있으며, 창조주에 대한 사상을 영원히 흙구덩이 속에 내팽개치려고 잔인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우리들 다른 절반의 사람들은 끝없이 마음 속에서는 괴로운 정신적 기아를 느끼면서 대다수는 신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극히 냉담하며, 지금 우리들을 협박하고 있는 정신생활에 대한 무서운 위험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생활의 진실한 의미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근대사조는 과학의 진보와 전통의 폐멸 廢滅을 강조한 나머지 신의 실재를 정면에서 의문시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의혹과 투쟁과 공포에 휩싸인 것처럼 보이는 세계를 믿지 않게 되어 여러 가지 일시적인 안심으로 미래로부터 도망치는 것만을 추구하고 있다.

나의 신앙을 형성하기에 이른 정신과정을 여기에서 밝히려고 하는 것은 인류적인 문제에 있어서의 이런 절박한 위기위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처음에 이야기해야 할 것은 초자연적인 신앙을 초래하는 동력은 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점이다. 신은 수학의 방정식처럼 증명할 수도 없고 신의 존재는 유크릿드의 기하학 문제처럼 논증할 수도 없다. 역시 분명히 무한한 존재는 유한한 조건하에서 합리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 우리들 인간의 능력으로는 신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신을 발견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두세 가지의 단순한 논점이 이기에 있다.

만약 우리들이 물리적 우주를 그 신비함과 경이스러움에 있어서, 그 질서와 착잡성에 있어서, 그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광대함에 있어서 고찰한다면 우리는 원초의 ‘창조주’란 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용한 여름 밤하늘을 우러러 저 멀리에서 빛나고 있는 별들을 보면서 이 같은 우주가 맹목적의 불확정된 어떤 우연 이상의 무엇인가에 의해 존재하게끔 되었다는 압도적인 확신을 품지 않는 자들이 있을까? 그리고 우리 자신에 세계, 정해진 리듬에 따라 공간 속을 회전하며 변함없는 계절이 운행을 계속하고 있는 이 세계가, 태양으로부터 아주 우연하기 그지없는 사고에 의해 떨어져 나온 무의미한 물질인 구체 球體 그 이상의 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품지 않을 수 있을까?

세계를 하느님이 손 댄지 6일만에 만들었다고 하는 성서 속의 하느님에 대한 설명을 단순한 공상으로서 지나쳐 버리려고 한다면 그것도 좋으리라. 아담에게, 그의 손가락에서 생명의 불꽃을 전해 주는 시스틴 성당의 미켈란젤로가 그린, 턱수염을 길게 기른 장로 같은 모습 – 과거에 소박한 신앙을 지녔던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던, ‘창조주’, ‘하느님’의 원형 – 에 대해서도 만약 웃고 싶으면 웃어도 된다. 화석이나 원종 原種에 대한 진화론, 자연계의 여러 가지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학설을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초보적이고, 그러면서도 심원한 똑같은 신비와 직면할 것이다. 우리들이 학창시절에 배웠던 라틴어 관용구에 있듯이 ‘Ex nihilonihil’ (어떤 것이든 무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이다.

몇 년 전에 나는 여가를 이용해 어느 근로 청소년들의 클럽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유명한 생물학자에게 회원들을 위한 야간 강연을 의뢰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약간 달랐지만, 그래도 역시 훌륭한 강연이었다. 분명하게 청년들은 ‘진실’을 알아야만 한다는 의도에서 그 학자는 ‘우리들의 세계의 시작에 대해서’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솔직히 무신론자적 입장에서 그는 몇 백만 년 전인지도 모르는 옛날, 원시의 땅 위에서 출렁거리고 있던 태고의 바다가 물리화학적 반응에 의해 떠다니는 찌꺼기를 발생시켜 여기에서 동물의 최원시적인 형태, 원형질 세포가 –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출현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풍요롭게 자라나지 못한 소년들에게는 무엇인가 가슴에 와 닿는 듯한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예의 바른 갈채가 일어났다. 이에 이어서 어쩐지 숨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 한 얌전하고 아주 평범한 소년이 조심조심 일어섰다.

“‘실례합니다만, 선생님.” 그는 더듬으면서 말을 했다.

“지금 하신 말씀 중에, 커, 커다란 파도가 해변에 부, 부딪쳤다고 하셨는데, 왜, 왜, 왜 그 전부터 물이 그곳에 있었습니까?” 강연의 과학적인 내용과는 정반대인 이 소박한 질문으로 장내는 아연해 졌다. 침묵이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강연자는 곤란해서 주저주저하며 점점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러자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클럽 전체가 폭소를 터뜨렸다. 이 시험관 속의 리얼리스트가 제공한 정묘한 논리 구조는 단순한 두뇌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 소년의 단 한 마디로 인해 꼬깃꼬깃 구겨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사실 이 같은 절대적인 공포감을 솟구치게 하는 과정, 우리는 도어지 볼 수 없는 저 끝없는 시간의 심연 속으로 멀리멀리 뒷걸음질 쳐가는 이 과정에 대해서, 그 성질이나 목적을 아무리 과학적으로 연구한다 하더라도 신의 존재를 거부할 수 있는 증거는 얻을 수 없다. 오히려 원초적 창조에 있어서는 또한 우주의 운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자연법칙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있어서는 또한 우주의 운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자연법칙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있어서는 항상 ‘지고의 예지’가 가해져 있다는 것, 이제까지도 그래 왔고, 또 장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결론으로 우리는 이끌려 갈 것이다.

많은 성실하고 선량한 의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신념에 대한 장애의 돌은 현세의 생활에서 이렇게도 광범위하게 지배적으로 되어 있는 악과 고통이라는 것 속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묻는다. 이렇게 괴로운 현세 – 태풍이나 홍수, 기근, 악역 惡疫, 지진, 벼락, 무서운 그리고도 아주 고통스러운 질병, 또는 극히 잔학한 죽음 등에 의해 괴롭힘 당하고 있는 세상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지금 어떻게 이런 ‘신의 존재’란 것을 믿을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신답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네가 말하는 ‘신’이란 무척 불완전한 창조자일 것임에 틀림없다고 그들은 외친다.

이런 난문에는 한 가지 대답이 있다. ‘욥기’ [신을 믿는 마음이 두터웠으며, 모든 고난에 이겨 이고의 생활을 보낸 히브리의 족장 욥의 생애를 그린 ‘구약성서’ 중의 한 대목] 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저 위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부르짖음만큼 간단하게, 또한 아름답게 이 대답이 표현되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정말 인간들의 지상에서의 순간적인 생활의 참의미와 목적을 이해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슬프게도 이 유물론적인 시대 속에 살며 쾌락의 추구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오락에의 싫증날 줄 모르는 욕망에 끌려 단순한 향락은 존재의 전부도 목적도 아니라는 것을 잊고 있다. 만약 우리들이 신과 우리들 자신의 불멸을 인정한다면, 우리들의 인생은 단순히 이 세상 구경이나 하는 것이 아닌 준비의 – 너무나도 짧은 – 기간이라는 것, 영원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들이 이른바 미래의 문턱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시련과 인내를 경험하는 한 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가 있다. 실로 우리는 괴로워하고 고민하도록 원래가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고뇌에서 도망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고뇌할 것이다. 전에 이 세상에 살고 있었던 가장 현명한, 게다가 가장 겸허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 토마스 아켐피스 [15세기 독일의 성직자이며 철학자로서 ‘그리스도를 본받다, 준주성범’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 ‘고뇌가 너희들에게 있어서 슬픈 것이라 생각되고 너희들이 그것에서 도망치려 하는 바 너희들은 괴로워할 것이며, 너희들이 도망치려 하는 가난은 어디까지라도 너희들을 쫓아올 것이다.’ 라고.

불만과 고통, 실망과 불안 과를 달게 받아들임으로써, 비애의 고배를 바닥이 드러나도록 마셔 버림으로써, 우리는 신의 의지에의 복종이라는 최고의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가 있다. 울들은 우리의 욕망의 허무함을, 우리들이 정신없이 소망하고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이 세상 재물의 허무함을 알게 될 것이다. 정신적으로 강해지고 나서 비로소 우리는 복종하게 된다. 욥의 경우, 그가 그 숭고하고 그 위대한 신앙의 행실에 있어서 드높이 외친 것은 그 같은 태도였다.

“무슨 일이든지 내게 올 테면 오너라…하느님이 우리를 죽이시더라도 나는 하느님께 부탁 드리리라.”

그리고는 새로운 환상에 황홀해지고, 기쁨에 넘쳐서 계속 소리 질렀다.

“나 ‘하느님’을 귀로 들었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을 눈으로 뵈었느니라.”

우리에게 신을 보여 주는 것은 이 ‘보아 받드는 눈’, 이 내적인 빛의 침투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약한 개미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내부에의 추구를 계속하면서, 어떻게 추리하더라도 마지막 분석에서 우리는 ‘무한이란 표면에 작은 흔적조차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의 계시는 마음 속에서만 오는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나는 어느 맑게 개인 오후 피렌체에서 페에솔레 [피렌체에서 가까운 이탈리아의 요양지] 근방의 언덕 위에 있는 유명한 수녀원으로 차를 몰았다. 이때 나는 그 아름다운 14세기의 교회당을 찾아가 정교한 장식문자로 쓰인 수사본 手寫本 을 열람하고 ‘주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진’ 훌륭한 예술의 걸작들을 볼 수 있는 특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러한 걸작들 중 최대의 보배를 발견한 것은 그 후 작은 수녀원의 뜰을 거닐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노인과 이야기했다. 고생과 류마치스 때문에 허리는 굽었지만 눈동자의 빛은 잃지 않은 이 따스한 영혼은 벌써 30년 이상이나 얼마 안 되는 토지를 경작하며 끊임없이 기도를 드려 왔는데, 내가 질문하자 그것에 대답하면서 자기가 특별히 돌보고 있는 과수원을 가리키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저 벚나무가 봉우리를 맺고, 그리고 꽃을 피운 후 열매를 맺는 것을 보아 왔지요. 그럴 때 전 하느님을 믿습니다.”

우리들이 만약 이 같은 신앙, 이 같은 신뢰의 100분의 1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만약 이처럼 완전하게 자신을 포기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또한 하느님에게로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일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자기 포기이다. 그러나 발걸음이 이 길을 따라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우리들의 자신감은 점점 커지고, 우리들의 지혜는 늘어날 것이며, 마침내는 확신에까지 도달한다. 그리하여 설사 희미하게라도, 저 궁극적인 환영의 최초의 미광을 보았을 때 이곳에 이 환영이 없는 생활의 무서운 불모 不毛, 그리고 무가치함에 대한 엄청난 자각이 찾아오는 것이다.

전에 병원을 하고 있었을 때 나는 어느 북부 지방의 마을에서 어떤 저명한 인물의 병을 보아준 것이 있었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서 자신의 무신론을 긍지로 여겨 온 사람이었다. 전에 자신의 외동딸이 아주 신앙심 깊은 교사와 결혼했다 하여 그 외동딸과 말다툼을 하고는 그녀를 내쫓아 버렸는데, 인생도 다 끝나갈 무렵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이상한 변화가 이 노老 회의주의자에게 찾아왔다.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가슴 아프게도 그들 에워싸고 있는 지금, 그는 마음의 변화보다도 딸과 사위에게는 자신이 정당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은 거의 광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다. 몇 번인가 그는 사위와 말을 하기 위해 딸의 집 주위를 서성거렸다. 마음이 동요하고 있었다 해도 그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항상 마지막에는 이렇게 내뱉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속이면 안 돼. 난 후회하고 있지 않아. 난 지금도 아직 신을 믿고 있지 않거든.”

이에 대해 어느 날 딸은 선천적인 기지를 발휘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 하느님 쪽에서 아버지를 믿고 있어요.”라고.

이 단순한 말이 노인의 마지막 저항을 무너뜨렸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상이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역시 하느님의 자식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단 한 마디의 신앙만 있으면 족하다.

아브라함 링컨은 매일 밤 꿇어앉아 자신의 생각을 하늘에 전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현명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위대한 모범에 따를 수가 없는 것일까?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인간들이 진실한 고결함과 빛나는 모범을 보여 주었고, 그들의 생애를 하느님 위에 형성해 오고 있다.

하느님은 약한 자에게 용기를, 지친 자에게 힘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마음이 찢긴 자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셨다. 하느님은 우리들의 머리 위에도, 주위에도, 바다에도, 하늘에도 모든 곳에 편재하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들 마음 속에 있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을 원하기만 한다면.

 

 

9. 나의 신조 信條

 

다시 봄이 되어 온화한 서풍으로 부드러워진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나날이 되었다. 서재에 들어가 내 책상 앞에 앉았으나 아침의 아름다움에 나는 일에서 해방되고 싶어진다. 창 밖의 파릇파릇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어느새 몽상에 잠긴다….내성적인 자기 분석의 기분이 되어 과거를 돌이켜 본다.

중년이 되어 과거를 되돌아볼 때 사람들은 분명히 그 지나온 세월이 도대체 자기한테 무엇을 가르쳐 주었을까 하고 자문해 볼 것이다. 이 세월의 빠른 물살 속에서 내가 만약 무엇인가 배웠다면 – 캘빈그로브 숲을 지나 의과의 교실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세계를 정복하려고 분발하였던 그 발랄했던 20세의 젊은 시절도 바로 이제 같은 기분이지만 – 그것은 관용의 덕, 사상과 행동에 있어서의 중용의 덕, 이웃 사람에 대한 인내의 덕이다. 이것들은 슬프게도 앞뒤를 생각하지 않던 그 청년시절에는 나에게 결여되어 있던 성질이었다.

나는 또한 순수한 물질적인 목적의 추구 속에 가로놓여져 있는 많은 미몽 迷夢 도 알게 되었다. 일시적인 명예나 세상의 화려함에는 얼마나 조금 밖에 만족하지 못했던가. 인쇄된 작은 종이다발을 쥐고 결코 채워질 리 없는 식욕을 채우려 하고 있는 이 세상의 환전 상인들에게 달라붙은 이득에의 미치광이 같은 열망이란 얼마나 슬프고 허망한 것인가! 내가 그처럼 열심히 모아 왔던 모든 물질적인 재산은 지금의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사랑의 한 조각보다도 훨씬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나는 모든 인간들의 마음 속에 잠재하고 있는 움직일 수 없는 것, 또한 도망칠 수 없는 신에의 열망을 확신하고 있다.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그치지 않는 추구에 나 자신을 잊으려 해도 우리들은 자신의 신적 근원에서 자신을 떼어 놓을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신의 대용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충분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신의 본질 속에 존재하고 있다. 신의 모습은 모든 인류 속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자신의 영원한 미래를 내다볼 수가 없어서 이 신과의 동일성의 감각을 묻어 버린 채, 인간의 생명이 의미없이 동물에서 발생하여 일체의 종말은 무에 불과하며, 내 자신이 환경에 좌우되는 장난감, 아무런 준비도 없는 우연한 희생에 불과한 것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결코 이런 생각은 할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언덕이나 계곡에서, 나는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서 자신을 형성해 가고 있는 내 생활의 양식을 본다. 이 목적은 내가 아이였을 적의 용모에도 새겨졌고, 도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씌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탄생과 함께 짊어지게 된 교의로부터는 아무래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많은 변화를 겪어 온 지금, 지상의 그 어느 것도 나로 하여금 이 교의를 버리게 하지는 못한다. 나는 스스로를, 육체도 영혼도 이미 그 손에 맡겼다. 절대 이유를 묻지 말 것,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겸손에의 자기 포기, 이것이야말로 신앙의 참된 본질이다. 사도 토마스는 믿기 전에 부활하신 주의 상처를 만질 것을 주장했지만 그야말로 이성으로써 신앙을 부드럽게 하여 이 신성한 꾸짖음 ‘보지 않고 믿는 자는 행복하도다’라나 말의 내적인 의미를 잊어 버리고 개인적 도그마의 맨 끝에 집착하는 인간의 원형이다.

그리스도교를 근대의 일시적 풍조에 접합시키려고 하는 모든 계획, 그리스도를 한 사람의 예언자, 위인으로서 합리화하여 그의 기적을 통속 과학적인 입장에서 설명하려는 계획 – 나자로 [‘요한 복음’에서 예수의 기적에 의해 죽음에서 되살아났다고 씌어있는 사람의 이름] 는 죽은 것이 아니라 혼수상태에 있었다든가, 눈이 보이게 된 사람은 단순히 일시적인 흑내장에 의한 히스테릭한 상태에 불과했었다는 등 – 이것들은 모두 우리들에게 가장 강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을 회피하려고 하는 불쌍한 얕은 꾀 이상의 그 아무것도 아니다. 나병환자가 다가와서 고쳐줄 것을 애원했을 때의 대답은 “그대의 신앙처럼 그대에게 이루어지리라”였다.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조차도 우리를 이같이 균형 있는 불안정한 상태로 두고, ‘주’의 신성을 믿으려면 아직도 더 이상의 노력을 필요로 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구세주’의 목적이었다. 우리들이 적극적인 증거를 요구할 때, 우리는 저 조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워하며 창 끝에 쓴 맛을 섞은 신 포도주에 적신 해면을 마른 입술에다 갖다 대며, “그대가 만약 하느님의 자식이라면 그대의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려무나.”하고 신앙을 불필요로 하는 궁극의 기적을 구했던 로마 병사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여기에 마지막 선택이 가로 놓여진 – 전부냐? 전무냐? 우리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저 중대한, 저 신비스러운 엠마오 [두 제자가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주 예수를 만났다고 하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마을 이름] 에의 길을 갈 때에 우리는 ‘낯선 나그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 와 함께 걷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의 알 수 없는 얼굴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신 주의 빛나는 모습을 찾아내어야 한다. 신앙을 숭고하게 하는 것은 이 스스로 나서서 행하는 인식의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한 확신의 굳셈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종을 권고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웃 사람들에게 자기네 교회에 나갈 것을 권하며 돌아다닌다거나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파멸이라고 하는 따위로 협박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만약 젊은 시절의 고생이 내게 무엇인가 가르쳐 주었으면 그것은 서로 다투는 종파들 사이에서 내가 목격한 탐욕스러운 고집과, 악의에 가득 찬 증오에 대한 혐오감이다.  교의는 우연한 출생에 의한 것이며, 인종과 조장과, 위도와 경도에 의해서조차 정해지는 것이므로 확실히 우리들의 구원에 대한 유일무이한 요인일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은 가톨릭이든지 칼빈파 이든지 간에 영원한 보수를 받을, 충분히 사라지지 않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 인간들이 모두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저 몽상, 인류의 동포애는 교의와 교의와의 다툼이 협력으로 바뀌어지는 것에 의해서만 현실이 될 수가 있다. 그때야말로 인류는 구원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세계의 마음의 변화는 개인의 마음에 있어서만 시작될 수 있으며,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그 자신의 종파에 잘난 체 하고 나만 정당하다는 입술에 발린 봉사를 그만두고 인류적 요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에 의해서만 성공할 수가 있다. 만약 우리들이 ‘산상수훈 [예수가 어느 산 위에서 완전한 덕의 요소에 대해 하신 교훈, 그리스도 교의 중핵을 이루는 것, 마태오 복음 5장]’을 실행에 옮길 수만 있으면 우리의 가엾은, 고민하는 세계의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얼핏 보아 해결 불가능한 모든 어려운 문제도 떠오르는 아침 햇살 앞에서의 이슬처럼 사라질 것이다.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 무엇도, 어떠한 철학도, 어떤 지상의 권력도, 전 인류의 무거운 짐을 골고타 [예루살렘 부근의 언덕으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 로 지고 가신 ‘주’의 가르침 없이는 공포에 떨고 있고, 이 박살 난 세계를 재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세계가 혼미와 피폐 疲弊 의 장소로 보일 때, 이것이야말로 어두운 지평선상에 나타난 한 줄기 광명이며 비참과 투쟁으로부터의 해박을 제공해 주는 치료법이다. 이런 광명을 보고, 이런 치료법을 우리들의 영혼에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우리에게 있을까? 하여간 여유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며, 그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인류가 서로 더해가고 있는 잔학성, 무관심과 혼란, 전쟁의 위협과 공공연한 적대 감정, 여러 국민을 괴롭히고 있는 파괴와 분열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상의 주님들의 도덕적 갱생에 꺼지지 않는 희망을 품고 있다.

인류의 모든 고뇌는 회개하는 행위이다. 한 방울의 회오 悔悟 의 눈물과 마음 속 깊은 곳에서의 단 한 마디의 외침만으로 충분하다. 성전 입구의 어두컴컴한 곳에 꿇어앉은 세리 稅吏는 슬픔 속에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오, 주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기도이다….나의 기도…. 또한 분명히 우리 모두의 기도이다.

 

 

 

옮긴이의 말

 

크로닌의 자서전적 소설 <천사의 선택>

 

<천사의 선택 (원제목 ‘Adventures in Two Worlds’, 1952)> 은 A. J. 크로닌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글라스고 대학 의학부의 학생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대한 저자는 정신병원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어렵게 학업을 계속한다.

대학 졸업 후, 선의 船醫 가 되었다가 다시 어느 마을의 병원에서 대진 代診 의사로 부임하는 저자. 그것을 시작으로 남 웨일즈의 탄광에서 의무부원이 되어 의사의 본분을 다하다가 마침내는 런던에서 개업의 開業醫로서 대성공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가 겪게 되는 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우리를 짜릿하게 감동시킨다.

이렇게 의사로써 훌륭하게 성공한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처방전과 학술논문 밖에는 써 본적이 없는 펜으로 소설을 쓸 결심을 한다. 이러한 결심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의사로서 가지고 있던 명예와 약속된 부 富를 팽개치고 낯선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고야 만다. 저자 자신도 그러한 결정을 ‘Adventures 모험’이라고 하였으니 그 용기는 가히 대단한 것이었다.

무모한 (?) 용기를 내어 처녀작을 쓰면서 저자는 많은 갈등을 겪게 된다. 그렇지만 성공이었다. 처녀작은 베스트셀러의 영광을 차지했다. 저자는 문학적 대성공에 따른 수많은 명예와 수입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겸손한 저자에게 허무감과 불안감만을 안겨 주었다.

이때부터 저자는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이 신 神에의 반역이었다고 자각하는 종교적 회심기를 맞아 종교적인 것들에 깊이 빠져 든다.

이상의 내용을 읽어가면서 독자들은 때로는 벅찬 감동을, 때로는 터지는 웃음을, 때로는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화하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A. J. 크로닌 이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일들을 바탕으로 인간의 고민과 갈등을 보여 주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한 촌에서 태어나 갖은 역경을 다 겪으면서 의사와 소설가로서 그 명성을 온 세계에 떨치고 있는 A. J. 크로닌. 그만이 가진 리얼한 필치로 인생에 새로운 용기와 행복을 주는 이 작품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보아야 할 걸작인 것이다.

 

** 지금도 ‘필사 筆寫’ 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Disclaimer: 여기에 실린 글은 copyright가 된 책, 기사를 ‘발췌, 전재’를 한 것입니다. 모두 한 개인이 manual typing을 한 것이고, 의도는 절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닌, fair use의 정신을 100% 살린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적인 제한, 독자층의 제한’을 염두에 두었고, 목적은 단 한 가지 입니다. 즉 목적을 가진 소수 group (church study group, bible group, book club) 에게 share가 되었습니다. password protected가 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실패를 하면 가능한 시간 내에 시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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