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해 (1936)

 

새 수도회

1936년 1월초, 파우스티나는 빌니우스의 로무알트 알브쥐코프스캐 대주교를 찾아갔다.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가 내리도록 기도하고, 또 이 세상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할 수도회가 있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일 년 전에도 대주교를 찾아가 예수님의 요구를 실행할 허락을 청했었는데, 그때 현재의 수녀원을 떠나려는 생각은 유혹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이때 대주교는 파우스티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곧 이루어지겠지요. 수녀님, 기도에 관한 문제라면 허락뿐 아니라 제가 부탁을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만큼 가능한 많이 내리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수도회 문제는 때가 될 때까지 잠시 기다리십시오. 그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곧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수도회의 종류는 많지만 하느님의 뜻이라면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십시오. 하느님과 보다 일치를 이루도록 애쓰고 낙담하지 마십시오”(585). 기쁜 마음으로 대주교의 방을 나설 때 마음 속으로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네 마음을 확신시키기 위해 나의 대리자로 하여금 네게 요구했던 바와 같이 말하게 하였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여라. 때로는 여러 가지 일에서 너를 반대하여 나서기도 할 것이다. 바고 그런 일을 통해 네 안에서 나의 은총이 드러나고, 이 일이 내가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명백해 질 것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내 딸아, 모든 피조물들은 자기들이 알든 모르든 또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있는 것이다”(586). 주님께서 주신 이러한 확신으로 한동안 마음은 평화로웠다.  

고통의 신비

1월 29일, 파우스티나는 환시를 통해서 본 고해신부의 고통과 그 신비에 관해 기록하였다. 파우스티나는 부분적으로나마 자기 고해신부에게 가로놓여 있는 상황과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시련을 볼 수 있었다. 고해신부가 처한 상황이 애처로워 동정을 느끼며 하느님께 “왜 신부님을 이렇게 대하십니까?” 하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것은 동정, 사제직, 순교를 뜻하는 삼중의 관이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이 지상에서 예수님을 닮는 자에게는 무한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셨다. 천상 성부께서는 우리가 당신 성자와 닮은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를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실 것이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닮을 기회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하느님께서 당신 정의를 행사하시는 순수하고 무죄한 영혼들을 본다. 이러한 영혼들은 이 세상을 지탱하는 희생자요, 예수님의 수난으로도 부족했던 것들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혼의 수는 많지 않다. 하느님께서 이러한 영혼들을 보게 해 주셔서 나는 무한히 기쁘다”(604참조).

그러나 다른 기록에서는 많은 특별한 은총을 받으면서도 성덕에의 길이 그리 쉽지는 않다고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예수님께서 제게 그토록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는데도 저는 이처럼 비참합니다. 저는 하루를 전투로 시작하여 전투로 끝냅니다. 하나의 장해를 겨우 극복하고 나면 또 다름 장해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지금은 평화의 시기가 아니라 전투의 시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겁내지 않겠습니다. 제 짐이 너무 무거울 때에는 어린 아이처럼 천상 성부의 품으로 뛰어듭니다. 오, 예수님! 저는 왜 이렇게 악에 잘 기울어지는지요? 그래서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가장 비참한 가운데서도 풍성하게 내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신뢰합니다.(606).

2월 2일, 파우스티나는 성체를 모신 후, 소포코 신부가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자 “네 요청대로 될 것이다. 그래도 그의 공로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라는 주님의 대답이 들렸다. 이 대답을 들을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에 너무나 마음이 기뻤다. 이에 파우스티나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신뢰하는 마음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 주신다”고 기록하였다(609).  

은총과 시련

1936년 3월 1일 이후 투쟁이 여러 날 계속되었다. 하느님께서 새 수도회를 설립하라고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으면서도 주저되는 바가 없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되는 투쟁이 주님께서 게쎄마니 동산에서 겪으신 그것처럼 여겨졌다. 한편으로는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꾸 뒤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주님께, “오, 예수님! 한편으로는 미시면서 왜 한편으로는 잡아 당기십니까?”하고 외쳤다(615). 이러한 정신적 고통 때문에 몸은 더욱 쇠약해졌다. 파우스티나는 이 문제를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원장 수녀는 악화된 그녀의 건강을 보고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권했고 저녁에는 우유를 한 컵씩 마시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로 그녀의 고통이 감소될 수는 없었다. 3월 18일, 아직도 아무런 해결 방법을 보지 못했다. 파우스티나는 자기 발로 걸어 나갈 수는 없으니 수녀원에서 쫓아내든지 아니면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어떤 외적인 사건이라도 생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튿날 원장 수녀는 총장 수녀가 파우스티나를 바르샤바로 데리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는 이것이 외적인 표지라고 느껴져 원장 수녀에게 그대로 말했다. 그리고 바르샤바로 따라가기 보다는 지금 이 수녀원을 떠나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다. 이 일을 들은 원장 수녀는 아무 말이 없더니 잠시 후, 이 여행을 시간 낭비로 생각하지 말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더라도 가라고 권했다. 파우스티나는 이 여행으로 인해 해야 할 일이 더 늦어질 것 같아 염려되었지만 항상 순명 하려고 했기에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날 저녁,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새 수도회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너희들의 생활은 나의 생활과 같아야 한다. 하느님과 끊임없이 일치를 이루며 조용하면서도 숨은 생활 속에서 인류를 위해 기도하고, 이 세상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재림을 준비시켜야 한다”(625). 파우스티나는 성체강복 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내 딸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모든 적들은 내 발 아래에서 흩어질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난 후 마음 속에 깊은 평화와 고요가 밀려왔다(626). 빌니우스로 떠나기 전날 저녁, 할머니 수녀 한 분이 파우스티나를 찾아와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꺼내면서 “수녀님, 주님께서 수녀님과 대화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라며 자기 문제를 예수님께 기도해 달라고 청하였다. 파우스티나는 꽉 잡힌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날 저녁 성체강복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그가 가진 불신이 그가 짓는 죄보다 내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준다고 전하여라.” 파우스티나가 이 메시지를 전하자 그 수녀는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628). 다음날 수녀원을 떠나려고 할 때 한 수녀가 다가와 그 동안 도와주지 못한 것에 대해 파우스티나에게 용서를 청했다. 그 수녀는 평소에 파우스티나를 도와 주기를 소홀히 했다기보다 오히려 파우스티나가 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려고 애썼었다. 이 일을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 속으로 그를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한 나이 드신 수녀님이 “파우스티나 수녀님, 바보가 되거나 아니면 성인이 되어야 해요. 보통 사람으로서는 그처럼 항상 심술부리는 사람을 견뎌내지 못해요” 라고 위로할 만큼 그 수녀는 나에게 인내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좋은 마음으로 대했다. 수녀님은 내가 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거나 때로는 완전히 망쳐놓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내가 떠나는 날 나를 찾아와 용서를 청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본의라기보다는 하느님께서 내게 내리시는 시련이라고 생각하였었다…. 나는 사람이 그토록 질투가 심할 수 있는가에 놀랐다. 나는 다름 사람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었고 다른 사람의 고통이 바로 나의 고통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주님과 대화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은 항상 단순하시고 양순하시면 성실하시다. 선의의 미소 속에 감추어진 모든 악과 시기와 불친절은 작은 악마이다. 성실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그것이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632-633).

파우스티나는 이때 동행자 없이 바르샤바로 혼자 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다. 빛나는 일곱 영 중의 한 영이 줄곧 불의 형태로 파우스티나와 동행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성당을 지날 때 자신과 동행하는 천사보다는 빛이 엷지만 빛나는 천사가 성당을 지키는 것을 보았고 그가 자신을 동행하는 천사에게 절하는 것을 보았다. 바르샤바의 수녀원 문에 도착하자 천사는 사라졌다. 수녀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천사를 보내시어 나를 지키게 하시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감사하였다. 천사가 항상 우리와 동행하며 모든 행동의 증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가! 죄인들도 자신들의 행동을 천사가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630).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오, 나의 예수님! 주님의 선하심을 사람들의 이해를 초월하고 그 자비하심은 끝이 없습니다. 영혼에게 내리시는 벌은 벌받기를 자초하는 사람에게나 내려지는 것입니다. 구원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대양과 같은 자비의 바다가 있습니다. 작은 그릇으로 어떻게 자비의 대양을 퍼 담을 수 있겠습니까?(631).

3월 22일, 바르샤바에 도착한 파우스티나는 먼저 성당에 들어가 안전하게 여행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고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도움과 은총을 구했다. 그녀는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승복하였다. 그때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모든 어려움은 다 내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634). 사흘 후 성모 승천 대축일에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현존에 휩싸이며 무한하신 하느님의 선하심과 창조물에 대한 그분의 존중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무서운 메시지를 내리시는 하느님의 어머니도 보았다.

“하느님의 은총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은 하느님께 얼마나 큰 기쁨을 드리는가. 나는 구세주께 이 세상을 드렸다. 너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를 알리고, 하느님의 재림을 맞도록 준비시켜라. 그분은 자비로운 구세주로서가 아니라 엄위로운 심판관으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이다. 그날은 얼마나 무서운 날이 될지! 정의의 날, 하느님의 분노의 날이 될 것이다. 천사들도 떨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직 자비의 때이니 이를 사람들에게 알려라. 네가 지금 침묵을 지키면, 그 무서운 날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원망을 들을 것이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끝까지 충실하여라. 나는 너를 연민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635).

 

새로운 과제, 바렌두프와 데르디

파우스티나는 지금은 이 수녀원을 떠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샤바에서 20km 떨어진 바렌두프에서 새로운 임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곳 수녀들은 진실하고도 기쁜 마음으로 파우스티나를 반겼다. 그리고 한 수녀가 “수녀님은 이제 모든 일을 제대로 하게 될 겁니다” 하고 말했다. “수녀님,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하고 파우스티나가 묻자 “왠지 모르지만 내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이 드네요” 하고 대답했다. 그 수녀원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수녀들은 이른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들에서 일을 해야만 했기에 정해진 기도도 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파우스티나의 건강은 다시 악화되었다. 그러자 사순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한마디 불평 없이 희생과 자기부정의 기회로 모두 받아들였다. 한 번은 원장 수녀가 벽을 닦으라고 했다. 허약해진 몸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냈으며 그보다 더 심한 일도 하였다. 언젠가 그녀가 이세상의 여왕이 되기보다는 수녀원의 신데렐라가 되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첫 금요일에 성체를 모시기 전, 파우스티나는 환시를 통해 제병이 가득 담긴 성합을 보았다. 파우스티나는 그 성합을 받아들였는데 그 안에는 천 개의 제병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를 들었다.  

“이것은 이번 사순절 동안 네가 진정한 회개의 은총을 얻어다 준 영혼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640).

  파우스티나는 성금요일이 되기 2주일 전 첫 금요일에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마음을 비우며 하루 종일 묵상에 잠겼다.  

불멸의 영혼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 인가. 밀알이 부서져야 음식이 되듯 나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교회와 영혼들을 위해 부서져야 한다. 오, 예수님! 겉으로는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하고 과자 부스러기처럼 숨어 지내지만 저는 예수님께 봉헌된 면병입니다(641).

  성지 주일에 파우스티나는,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찬미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특별한 방법으로 체험하였다. 예수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비통한 심정으로 너무도 심한 고통을 당하시고 인류의 배은망덕으로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파우스티나는 보았다. 성주간 수요일에 예수회 부코프스키 신부가 수녀들에게 고해성사를 주려고 바렌두프로 왔다. 부코프스키 신부는 파우스티나가 바르샤바 쥐트니아가의 수녀원에 있을 때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주었던 분이다. 파우스티나는 더 이상 새 수녀원 설립 문제를 미루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고백소에서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신부는 “수녀님 그곳은 환상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런 것을 요구하실 리가 없습니다. 종신서원을 한 수녀가 아닙니까? 일종의 이단을 꾸미고 있군요!” 라고 소리쳤다(643참조). 그래서 파우스티나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수녀님, 이제부터는 마음 속에 떠오르는 영감에 따르지 마십시오. 마음 안에 있는 그러한 생각들을 털어 버리십시오. 마음 속에서 들리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주어진 임무에나 충실 하십시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 마음 속에서 털어내 버리십시오.” “예, 신부님, 지금까지 저는 제 양심의 소리에 따라왔으나 이제부터는 신부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제 제 내면의 세계에 귀 기울이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말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면 나에게 알려 주고 혼자서 행동으로 옮기지 마십시오.” 파우스티나는 “예, 순명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파우스티나는 고해신부가 왜 그렇게 엄하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백소를 나오자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압박해 들어왔다. 때로는 심한 수치심까지 주었던 내면의 목소리에 더 이상 주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이상한 고통이 일었고, 신부님이 금지하는 순간부터 캄캄한 암흑에 쌓였다. 성 목요일, 고통은 더욱 심해졌고 사탄은 조롱을 퍼부었다. 파우스티나의 기록을 보면 그때의 체험을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 묵상을 하려고 하자 나는 심한 고뇌에 빠져들었다.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도 없었고 하느님의 정의만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내 자신이 세상의 죄악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탄이 조롱하기 시작했다. “보아라. 이제 너는 영혼을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었느냐! 예수님께서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보아라, 네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고 또 얼마나 더 심한 고통을 받게 될지! 고해신부가 너를 이러한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한 시간 내내 이런 무서운 생각들로 인해 무척 고통스러웠다.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미사 시간이 될 때까지 마음은 고통 속에 빠져 있었다. 수녀원을 떠나버릴까? 고해신부님이 이단이라고 했으니 내가 교회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인가? 나는 울면서 속으로 “나를 구원해 주세요” 하고 주님께 외쳤다. 그러나 마음에는 한 줄기의 빛도 없었고, 몸이 영혼에서 분리된 듯 힘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느님의 뜻에 승복하고자 계속해서 외쳤다. “오, 하느님!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제 안에 있는 생각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때 갑자기 하느님의 현존하심이 마음 깊이 느껴져 왔다. 막 영성체를 하려던 참이었다. 성체를 모신 직후 나는 내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한 의식을 잃었다. 그때 나는 상본에 그려진 모습의 예수님을 보았는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해신부에게 가서 말하여라. 이 일은 내가 추진하는 일이요, 너를 미천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나는 예수님께 말씀 드렸다. “예수님,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는 따를 ;수 없습니다. 고해신부님은 제게 모든 것이 환상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제게 하시는 말씀은 따르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주님, 고해신부님께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간절히 용서를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로 제가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 지 알고 계십니다. 고해신부님은 이제 예수님의 명을 따르지 못하도록 금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주장과 불평을 친절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들으셨다. 나는 예수님께서 크게 마음이 상하신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대로 기쁜 표정으로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내게 말하거나 명하는 것은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고해신부에게 말하여라. 그리고 그 신부의 허락을 받는 것만 실천하라. 당황하지 말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다.”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쳤고 머리를 짓누르던 모든 시름이 사라지면서 다시 확신과 용기가 생겼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예수님께서 올리브 동산에서 겪으셨던 고통을 겪기 시작했는데 이 고통은 금요일까지 계속되었다. 그날 부코프스키 신부가 데르디로 왔다. 마음에 이상한 힘이 생겨 그 동안 일어났던 일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모두 전하였다. 그리고 고해신부는 전과 다른 어조로 말했다. “수녀님,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수녀님에게는 아무 해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버려 두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녀님이 순명하는 마음으로 잘 견디면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길을 찾으실 것입니다. 항상 단순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총장 수녀님께 말씀 드리십시오. 내가 수녀님에게 말한 것은 일종의 경고입니다. 왜냐하면 환상은 거룩한 사람까지도 괴롭히고, 사탄의 유혹에 빠질 위험을 낳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에게서도 이러한 환상이 일어날 수 있으니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수녀님,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로 화를 내시지 않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수녀님의 지도신부(소포코 신부)에게도 말씀 드리십시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즉 어떤 고해신부님에게 가든지 그가 성령의 빛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고백소에 들어갔을 때에는 그 고해신부님이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644-647).

  성 금요일 오후 3시, 파우스티나는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바라보시며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 상본에서 본 것과 같이 옆구리에서 비쳐 나오는 두 줄기의 빛을 보았다. 그것을 본 파우스티나는 불쌍한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비워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파우스티나는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과 함께 자신을 천상 성부께 바쳤다. 1936년 4월 12일 일요일, 파우스티나의 마음은 주님 안에 깊이 잠겨 있었다. 하느님의 뜻이 자신 안에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찬미했다.  

오, 나의 스승이요! 지도자이신 예수님, 이 어려운 시기에 제게 힘과 빛을 주십시오. 사람들에게서는 도움을 바랄 수도 없고 모든 희망을 주님께만 둡니다. 오, 주님! ….. 주님의 요구 앞에서 가난함을 느낍니다. 주님께서 세세대대로 계획해 오신 일을 제 안에 이루십시오. 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 하느님! 하느님의 자비는 얼마나 위대하십니까! 모든 천사들과 인간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모든 천사들과 인간들은 하느님의 깊은 자비를 통해 생겨났으며 자비는 사랑의 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요, 자비는 그 표현입니다. 자비는 사랑으로 잉태되었고, 사랑은 자비를 통해 태어납니다. 제가 보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를 말해 줍니다. 정의는 사랑에서 나오기에 하느님의 정의까지도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말해줍니다(650-651).

  파우스티나의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어 부활 후 데르디로 이송되었다. 그곳은 바렌두프에서 1km 떨어진 곳으로서 수녀원은 숲 속에 있었다. 파우스티나는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분명히 느끼면서 평화로이 지낼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일을 적게 하고 대신 기도 시간을 많이 갖고 휴식을 취했다. 그곳은 파우스티나에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남겨 준 곳이다. 파우스티나는 마치 나자렛에서 지내는 것처럼 지냈고 1936년 5월 10일 소포코 신부와 편지로 기쁨을 나눌 만큼 행복해 했다. 그러나 1934년 빌니우스에서 얻은 병이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 때문에 파우스티나는 바렌두프로 갔었는데 다시 데르디로 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바르샤바와는 거리상 불편했기 때문에 의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크라쿠프로 다시 갔다. 5월 11일, 데르디를 떠나기 전 파우스티나는 유스티나 수녀에게, 자신은 2년 후 가을에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며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비밀을 지킬 것을 다짐했다. 유스티나 수녀는 파우스티나가 죽기 전까지 이 비밀을 지켰다.      

또 다른 시험

  크라쿠프에 돌아온 파우스티나는 행복했다. 이제는 예수님의 요구, 즉 새 수도회를 설립하라는 요구를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예수 성심 축일 전까지 기도와 희생을 바치면 회답을 하겠다고 한 예수회 요셉 안드레아 신부에게 자기의 영감을 털어놓았다. 파우스티나는 수녀원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껴 떠날 것을 결심했다고 말씀 드렸다. 그때 신부는 “수녀님, 수녀님 혼자서 결정을 한 일이니 혼자서 책임을 지십시오” 하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는 마침내 최종 결심을 한 것에 대해 기뻤으나 다음날 갑자기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가 없고 영혼이 암흑에 쌓여 기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드레아 신부를 다시 만날 때까지 수녀원에 남기로 했다. 신부는 이러한 변화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계획에 장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였다(655참조). 파우스티나는 모든 것을 미카엘 총장 수녀에게 고백하였다. 총장 수녀는 “예수님과 함께 감실에 가두어 두고 싶지만, 어디로 가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일 것입니다”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투쟁이 계속되었다(656). 6월 어느 날,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오, 예수님! 수녀원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셔서 무척 기쁩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수도회가 하느님께 얼마나 큰 영광을 드리게 될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 수도회는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를 드러낼 것이며 저희 자신들과 이 세상을 위한 하느님 자비의 중개자가 될 것입니다. 자비의 행위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사랑에서 흘러 나오고 그 사랑은 이 세상에 넘쳐 흐를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자비를 본받고 자비의 삶을 살며,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알리고 주님의 선하심을 믿게 할 것입니다. 이 하느님 자비의 수도회는 하느님의 교회에서 아름다운 정원의 벌집과 같을 것입니다. 수녀들은 벌처럼 이웃 영혼들에게 꿀을 날라다 주고, 밀초같은 하느님이 형광을 위해 탈 것입니다(665). …. 아무도 하느님의 뜻을 저항하거나 꺾지 못할 것이다. 어떠한 장해와 박해와 고통이 따르더라도, 내 자신이 하기 싫거나 공포를 느끼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665). 완덕과 성덕을 추구하는 길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다. 하느님 뜻의 완전한 실천은 완덕에의 길이다. 여기에는 하등의 의심도 없다. 하느님의 빛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하느님의 엄위로우심을 크게 손상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아 마땅하다. 그러한 영혼은 하느님으로부터 빛을 받고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 루치펠과 같다.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랐다고 생각하니 내 영혼에 평화가 깃든다(666).

  파우스티나는 6월과 7월 내내 웃어른들의 실망을 감수해야 했고,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냉소를 받아야 했다. 그로 인해 침묵과 평정을 잃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싶은 열망과 고해신부나 수녀원 장상들로부터의 신임을 잃은 것에 대해 심한 고통과 슬픔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파우스티나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3년 전 파우스티나는 의사에게 폐가 아프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의사는 검진 후 아무 증상도 발견하지 못했고 아무런 병이 없다고 진단하였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그래도 아픕니다” 하고 조용히 말했다. 그 어려운 시기에 파우스티나에게 뜻하지 않은 행복이 다가왔다. 1936년 8월 7일에 소포코 신부로부터 빌니우스에서 출판한 하느님 자비에 관한 소책자를 받았다. 소책자의 표지는 하느님 자비심의 상본이 있었는데 파우스티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갑자기 엄청나게 밝은 빛 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의 모습은 그림에 그려진 모습 그대로였고, 그분의 발 밑에는 안드레아 신부님과 소포코 신부님이 있었다. 두 분은 펜과 전등을 들고 있었는데 펜 끝에서 번개와 같은 불빛이 터져 나와 어디에서 온 군중들인지 그들 위를 비추었다. 이 불빛에 닿은 사람들 중에 어떤 일들은 기쁨에 넘쳤으며 또 고통 중에 후회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제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잠시 후 나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나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예수님, 이제 주님의 뜻이 이루어졌으니 저를 데려 가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안에서 내 뜻이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 너는 아직도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675).

 

폴란드에 대한 경고

  1936년 9월 첫 금요일 저녁이었다. 파우스티나는 환시를 통해 하느님의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의 가슴에는 칼이 꽂혀 있었다. 복되신 어머니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하느님의 무서운 벌이 사람들에게 내리지 못하도록 막고 계셨다. 파우스티나는 두려움에 떨며 하느님의 어미님께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폴란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모든 것이 허사였을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자기 조국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더욱더 하였지만, 퍼지고 있는 죄악에 비하면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한 방울의 물로 어떻게 파도를 막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한 방울의 물이라도 주님과 함께라면 악의 피도, 아니 지옥의 모든 악도 버틸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전능하심 앞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어머니의 기도와 당신 종의 희생을 받아들이시고 폴란드에 자비의 시간을 더 연장하신 것 같다(686). 9월 어느 날 파우스티나가 복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메시지를 주셨다.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준 자비심의 5단 기도를 끊임없이 바쳐라.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죽는 순간에 많은 자비를 얻을 것이다. 사제들은 구원에 대한 마지막 희망으로 죄인들에게 이 기도를 권하게 하여라.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이 기도를 한 번이라도 바친다면 내 무한한 자비를 얻을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무한한 자비를 깨닫기 바란다. 내 자비를 믿는 자에게 나의 무한한 자비를 내리고 싶다”(687).    

자비심에 대한 신뢰의 기회

  9월 14일, 빌니우스의 로무알트 얄브쥐코프스키 대주교가 크라쿠프를 방문하여 수녀들을 라기에브니키로 불렀다. 대주교가 머문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파우스티나는 하느님 자비심의 사업에 관해 말씀드릴 기회를 가졌다. 대주교는 호의를 가지고 대답했다. “수녀님, 마음을 편안히 가지십시오. 이것이 하느님의 섭리에서 나온 일이라면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동안 수녀님은 분명한 외적 표시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께서는 수녀님에게 그것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주실 것입니다. 기다리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모든 일이 제대로 잘 되도록 조처해 주실 것입니다”(963). 대주교는 파우스티나의 병약한 모습을 보고 원장 수녀에게 조처를 요청했다. 9월 19일, 파우스티나는 폐 전문자의 진찰을 받았다. 파우스티나가 동료와 함께 요양소의 성당에 잠깐 들렀을 때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렸다.   “내 딸아, 이제 네 잔에 몇 방울만 더 채워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기쁨을 느꼈다. 사랑하는 스승으로부터의 첫 부름이었기 때문이었다(694). 닷새 후인 9월 24일, 파우스티나는 심한 통증 때문에 잠을 깼는데 그 통증은 세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통증이 심해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침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주위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모두 맡기기로 하였다. 그토록 기다리던 죽음의 순간이 온 것으로 여겼다. 통증은 겨우 멈추었으나 땀이 계속 흘렀고,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심해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튿날 미사에도 갈 수 없었다. 그녀는 누워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한 고통을 치르고도 죽음이 오지 않는다면 임종 때의 고통은 어떠하겠는가? 오직 무한한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신뢰만이 공포를 씻어 주었다”(696참조). 이 고통을 겪은 후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자비심 축일에 관한 메시지를 일기에 기록하였다.  

“내 딸아, 온 세상에 나의 무한한 자비를 알려라. 내 자비가 모든 영혼들, 특히 죄인들의 피난처가 되기를 바란다. 그날 내 깊은 자비의 바다가 열릴 것이며 내 자비의 샘으로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바다와 같은 은혜를 내릴 것이다.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하는 사람은 모든 죄와 벌을 사면 받을 것이다. 그날 은총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지은 죄가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죄인들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여라. 내 자비는 너무도 엄청나서 누구도 그 깊이를 알지 못할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로 나의 자비에서 나온 것이다. 내 자비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영원히 내 사랑과 자비를 관상하게 될 것이다. 자비의 축일은 내 깊은 자비심에서 유래한다. 부활 후 첫 주일을 자비의 축일로 지내기를 원한다. 인류가 내 자비의 샘에 찾아 들기 전까지 그들은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파우스티나가 이 메시지를 열네 번이나 반복해서 언급한 것을 보면 주님께서 얼마나 중요시하셨는지 알 수 있다(49, 88, 280, 299, 341, 420, 570, 699, 742, 964, 998, 1072, 1082, 1109, 1517참조). 예수님께서는 그 동안 주신 이 메시지의 핵심인 당신의 자비심에 신뢰할 더 많은 기회를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계속해서 괴로워 고통을 느꼈다. 파우스티나는 어느 날 원장 수녀에게 이를 토로하였다. 원장 수녀의 대답은 고통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파우스티나는 원장 수녀의 이 말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평소에 특히, 병든 수녀를 자애롭게 대하던 원장 수녀가 자신의 호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틀림없이 주님께서 자신을 시험하시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날 파우스티나는 그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들로 일하러 나갔다. 건강한 사람도 일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뜨거운 날씨였다. 정오쯤에 파우스티나는 일손을 멈추고 일어나 하늘을 향하여 이렇게 주님께 말씀 드렸다. “예수님, 태양을 가리워 주세요. 이러한 열기 속에서는 도저히 일을 못하겠어요.” 그 순간 구름이 태양을 가리웠다. 그러나 잠시 후 파우스티나는 더위를 참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셨다. 날이 갈수록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이를 견뎌낼 은총도 그만큼 더 필요했고 하느님과의 일치로 내적인 평화와 외적인 강인함도 더해갔다. 파우스티나에게 있어서 자비로운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하루하루의 양심성찰의 주요 과제였다. 이러한 일치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파우스티나의 모든 행동은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자비심에 의해 지배되었다(701참조).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천사들이 특별한 방법으로 파우스티나를 도왔다. 9월 29일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에 파우스티나는 자기 옆에 가까이 와 있는 이 위대한 지도자를 보았다. 대천사가 말했다. “주님께서 당신을 특별히 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악으로부터 증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하고는 사라졌다. 그 후 파우스티나는 대천사의 현존을 느끼며 그의 도움을 받았다(706참조). 고통과 은총이 연속되었다. 프라드닉 요양소의 의사는 파우스티나의 병이 결핵이라고 진단했고 감염을 막기 위해 다른 수녀와 격리해 있도록 명했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수녀원의 병동에서 생활하면서도 일상적인 임무는 그대로 했다. 하루는 파우스티나가 저녁 늦게까지 계속 일할 수가 없어 주방 담당 수녀에게, 몸이 불편하여 들어가 쉬어야겠다며 일찍 식사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그 수녀는 “수녀님은 병이 난 게 아니잖아요? 그들이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니까 병이 생긴거죠” 하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가혹한 말을 침묵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모든 고통과 상처와 함께 희생으로 바쳤다(710). 10월 5일, 소포코 신부로부터 편지를 받고 파우스티나는 무척 기뻤다. 대주교의 허락이 나면 자비심 상본을 인쇄할 것이라며 그 뒷면에 넣을 기도문을 보내라고 했다. 이 편지를 받고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심의 위업을 보게 해 주시니 너무나 기쁘다. 지존하신 분의 위업은 얼마나 위대한가! 나는 하느님의 도구이다. 그 동안 하느님께서 내게 요구하셨던 하느님 자비심의 축일이 제정되기를 나는 얼마나 염원해 왔던가! 그러나 이미 나는 고해신부의 허락을 받고 혼자서 이 축일을 지키고 있지만, 내가 죽은 후에는 하느님의 뜻대로 장엄하게 거행되어야 할 것이다(711).

  10월 11일, 파우스티나가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와 이 자비가 사람들에게 내려질 은총에 관한 글을 쓰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침실에 사탄이 들어온 것을 느꼈다. 사탄은 극도로 화가 나서 파우스티나의 평화를 깨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썼다. 파우스티나는 놀랐지만 얼른 십자가를 들고 십자성호를 그었다. 그러자 사탄은 잠잠해지더니 사라졌고 다시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사탄은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해서 쓰고 있는 그녀의 평화를 깨뜨리려고 애썼으나 방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더욱 광분하였다. 10월 어느 날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수녀들과 수녀원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준 5단기도를 바치기를 원한다고 원장에게 전하여라. 성부의 분노를 풀어드리고 폴란드에 하느님의 자비가 내리도록 성당에서 9일 동안 이 기도를 바치게 하여라”(714).   파우스티나는 먼저 안드레아 신부에게 전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안드레아 신부가 왔을 때 어떤 예기치 못한 일 때문에 이를 전달하지 못하고 다음 기회에 말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일이 하느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깨달았다. 파우스티나는 그 동안 분명하게 느껴오던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고, 마음 속이 어둠으로 가득 차 과연 자신이 은총의 상태에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나흘 동안 성체도 모시지 못했다. 안드레아 신부를 만났을 때 즉시 모든 것을 말했다. 신부는 “하느님의 은총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항상 하느님께 충실 하십시오” 하고 위로했다. 고백소에서 나오자 다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되었다.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은총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시고 싶을 때 내리시는 것이며,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정도에 따라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파우스티나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하기로 결심했다(715참조). 밤에 너무나 고통스러워 잠이 깼다. 다음날 모실 성체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밤을 새웠다. 이튿날 영성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이토록 가련한 처지에 놓여 있으니 네게 은총의 바다를 열어 놓았다. 나는 너와 같은 영혼을 찾지만 많지가 않다. 내게 대한 너의 깊은 신뢰로 은총을 내리지 않을 수 없구나. 너는 나의 완전한 신뢰의 딸이기 때문에 너는 내 성심에 큰 권리를 가지고 있다”(718).   잠시 후 또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 내리는 은총은 너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다. …. 네가 아무리 비참한 심정이더라도 네 마음은 항상 나의 거처이다. 나는 너와 일치하여 네 비참함을 불식하고 내 자비를 내린다. 나는 모든 영혼들에게 내 자비를 베푼다. 죄가 클수록 자비도 크다. 내 자비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일은 모두 나의 일이며, 그의 적은 모두 내 발 아래서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다”(723).      

8일 피정

  예수회 발테르 보이톤 신부 지도로 1936년 10월 20일부터 8일 피정이 시작되었다. 파우스티나는 이 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건강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를 드리면서 마음이 밝지 못했다. 그래서 이러한 간청의 기도를 감사의 기도로 바꾸어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승복할 것을 말씀 드리며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였다. 그러자 즉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724). 주님께 이번 피정을 어떻게 보낼지 여쭈어 보았다. 마음 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렸다.   “나는 네가 완전히 사랑으로 변모하여, 순수한 사랑의 희생으로 불타기를 바란다….. 이번 피정 동안 나는 네가 내 성심과 더욱 가까이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모든 사람들, 특히 불쌍한 죄인들을 향한 내 자비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726, 730).    

지옥의 환시

  이 피정 동안 파우스티나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 그리고 수많은 고통에 시달리는 지옥의 영혼을 보았다. 그리고 예수님과 일치를 이룬 한 순간에 그녀는 그 동안 자신이 묵상과 관상을 통해 얻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체험했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의 명령으로 지옥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오늘 나는 한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지옥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온갖 심한 고문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였다. 얼마나 무섭도록 광활하고 넓은지! 나는; 온갖 종류의 고문을 보았다. 지옥의 첫째 고문은 하느님 상실이다. 둘째는 영원한 양심의 가책, 셋째는 조건의 불변이다. 넷째는 영혼을 파괴시키지는 않은 채 계속 파고 드는 불길인데, 하느님의 분노에서 나오는 영적 불로서 무서운 고통이다. 다섯째 고문은 연속적인 암흑과 질식할듯한 무서운 냄새, 더구나 그 암흑 가운데서 악마와 저주받은 영혼들이 서로 마주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섯째 고문은 사탄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시달림, 일곱째 고문은 무서운 절망감, 하느님에 대한 증오, 천한 말, 저주와 모독이 난무하는 현장이다. 이러한 것들이 지옥의 영혼들이 겪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고문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각 영혼마다 특별한 고통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감각의 고통이 있는데 개개인의 영혼은 각자 지은 죄의 양상에 따라 무섭고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각자가 고통을 겪는 동굴과 구덩이들이 각각 따로 있었다. 만일 전능하신 하느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광경을 보고 나는 까무러쳤을 것이다. 죄인들은 자기가 지은 죄에 따라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누구도 ‘지옥이 어디 있는가. 본 사람이라도 있느냐, 지옥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는 말을 못하도록 하느님의 명령에 의해 나는 이것을 기록한다. 나 파우스티나 수녀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지옥의 실체를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지옥의 심연을 방문하였다. 나는 여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다. 악마들은 나를 증오했으나 하느님의 명령으로 나에게 순종하였다. 나의 기록은 내가 본 것의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옥에 있는 영혼들은 대부분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나는 지옥에 갔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지! 따라서 나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더욱 열렬히 기도한다. 나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자비를 기도한다. 오, 예수님! 사소한 죄라도 그것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보다는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그 어떠한 고통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느님 자비심에 대한 신심

  예수님께서는 이 피정에서 하느님 자비심의 신심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 주셨다.   “내 딸아, 사람들이 나의 자비심에 대한 신심을 증진시킬 때 그것은 단지 내 자비에 대한 신뢰와는 구별된다. 나는 나에게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자비의 행동을 요구한다. 언제 어디서나 이웃에게 자비를 보여야 한다. 자비를 피하거나 변명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할 세 가지 방법을 주겠다. 첫째는 행동, 둘째, 말, 셋째, 기도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이렇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바로 내게 대한 사랑의 증거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 자비를 영광스럽게 하고 존경을 표하게 되는 것이다. 부활 후 첫 주일을 자비의 축일로 삼고, 자비의 행동을 보여라. 자비의 신심으로 축일을 장엄하게 거행하고 내 모습이 그려진 상(상)을 공경하여라. 나는 이 상을 통해 많은 은총을 내린다. 그리고 이 상은 내 자비를 상기시킬 것이다. 아무리 돈독한 신앙을 가져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742).   피정이 시작될 때,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하신 말씀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1936년 10월 25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미사 대 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불길에 휩싸이면서 영혼들을 구하고자 하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열망에 불탔다. 나는 이글이글 타는 것 같았다. 나는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악에 대항해서 자비라는 무기로 싸울 것이다. 나는 영혼을 구하는 일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라도 갈 것이다. 영혼을 구하는 일은 먼저 기도와 희생으로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비에 찬미를 드렸으면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하느님 자비의 은혜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의 성인들도 주님의 자비에 신뢰한다. 나는 하느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지금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자비에 대한 신심을 일깨우고 이를 이 세상에 전파하고 싶다.(745).

  파우스티나는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사랑의 희생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고통, 경멸, 조롱, 박해, 모욕의 길이 자신이 걸어야 할 길임을 알았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이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오! 나의 힘이요, 유일한 희망이신 예수님, 예수님께만 모든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제 신뢰는 결코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746참조).

  피정이 끝난 후 안드레아 신부는 파우스티나와 면담하면서 예수님의 요구에 대해서 파우스티나가 묻는 질문에 확고하고도 분명한 대답을 해 주었다. 마치 파우스티나와 동일한 체험을 한 것처럼 대답해 주었다. 파우스티나는 영적 지도자를 이처럼 깨우쳐 주신 하느님의 은총과 그들을 길러 주시는 성교회에 감사 드렸다. 그러나 수녀원을 떠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피정이 끝나고 10월 31일에 파우스티나는 총장 수녀에게 이 문제에 대해 말씀 드렸다. 그러나 총장 수녀도 예수님의 분명한 표지가 있을 때까지는 수녀원에 머무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하여 다시 연기되었고 파우스티나는 표지를 보여 달라고 기도하였다. 새 수도회를 창립하려는 열망 속에서도 파우스티나는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예수님께서 직접 나서실 차례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 말씀 드렸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저는 한 순간도 빠뜨리지 않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오, 예수님! 떠나라고 하시면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떠나겠습니다. 머물라고 하시면 머물겠습니다. 제가 겪는 고통은 문제되지 않습니다”(751).   어느 날 파우스티나는 원장 수녀에게, 예수님께서는 성부의 분노를 풀어드리기 위해 하느님 자비심 5단기도를 바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전하였다. 원장 수녀는 아직 인가 받지 못한 새로운 기도는 도입할 수 없다고 대답하면서 5단기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자 했다. 그리고 성체조배 때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는 “소포코 신부님께서 5단기도를 출판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수녀원에서 바치기가 쉬울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 당장은 좀 어려워요.”하고 말했다(752). 원장 수녀와 이러한 대화를 한 얼마 후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밑줄을 쳤다.  

주님의 약속: “이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치는 사람을 나는 그이 일생 동안, 특히 죽는 순간에 내 자비로 감싸리라”(754).

 

성흔(聖痕)

  1936년 11월 20일 금요일, 파우스티나는 자기가 겪고 있는 또 하나의 비밀스러운 고통, 즉 성흔을 고백했다.  

내가 처음으로 이렇나 고통을 겪은 경위는 이러하다. 서원한 후의 어느 날(1928년 4월 30일) 기도하던 중에 나는 찬란한 광채를 보았는데 거기서 나온 빛이 나를 감쌌다. 그때 갑자기 손과 발과 옆구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고 머리는 가시관을 쓴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금요일 미사 때마다 이러한 고통을 느꼈지만 통증이 순간은 짧았다. 이렇나 고통은 금요일마다 일어났었는데 얼마 전부터 사라져서 현재까지, 즉 올 9월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병(결핵)을 앓으면서 금요일이 되면 또다시 이러한 고통이 일어났고 또 가끔 은총 상태에 놓이지 못한 영혼들을 볼 때 이 고통이 일어났다. 그러나 자주 있는 것은 아니었고 고통을 느끼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그러나 이 고통이 하고 심해서 하느님의 특별한 도움이 없으면 견디지 못했다. 이렇나 고통을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후에 어떤 일이 있을지 나로서는 모른다. 그러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 모든 것을….(759).  

주님께서는 파우스티나의 장상들을 파우스티나가 겪을 시련의 원인으로 삼으신 것 같다. 1936년 11월 21일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장상들마저도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항상 이해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는다.

    다음날 고백 때, 사제 자신은 깨닫지 못하였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사제의 입을 빌어 말씀하셨다. 파우스티나는 자기가 지은 죄만 고백했기 때문에 사제는 파우스티나의 영혼 상태를 모르는데 그러나 사제는 파우스티나에게 대단히 중요한 위로의 말을 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충실히 지키십시오. 설사 사람들이 수녀님께 화를 낸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사람들의 말 따위에는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파우스티나의 마음 속에 기쁨이 솟았다. “오, 거룩한 신비여! 그 신비 속에는 얼마나 위대한 보물이 들어 있는지! 오, 거룩한 신앙이여! 나의 길잡이여!”(761-763참조) 파우스티나는 11월 24일 소포코 신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하느님 자비심에 관한 신심 전파와 새 수도회 설립에 관한 몇 가지 자세한 내용을 묻는 내용이었다. 파우스티나는 그 편지를 읽고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편지를 일고서 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께서 처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주님께서 시작하셨으니 주님께서 계속 추진하실 것이다. 어려움이 많은 수록 마음은 평온하였다. 이 모든 일들이 하느님께 영광이 되고 영혼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탄도 그토록 방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탄은 무엇보다도 자비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이 사탄에게는 가장 심한 고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다. 어떤 어려움도 하느님의 일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하느님의 일임을 드러낼 것이다….(764).

 

천국에 대한 환시

  파우스티나는 이미 연옥과 지옥을 보았고 11월 27일에는 병상에 있으면서 다음과 같이 천국에 대한 환시를 기록하였다.  

오늘 나는 영적으로 천국에 가 있었다. 나는 죽음 이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천국의 아름다움과 복락을 보았다. 모든 피조물들이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영광을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하느님 안에서의 행복이 얼마나 큰지를 보았다. 그 행복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파되어 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 행복에서 나오는 영광과 찬미는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께 되돌아간다. 그들은 영원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내적 생활,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관상한다. 그 행복의 원천은 그 본질상 불변의 것이나 항상 존재하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쏟아 부어진다. ….. 하느님께 무한한 가치를 지닌 것은 하나뿐인데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느님의 순수한 사랑에서 나온 것은 아무리 조그마한 행위라도 그 어느 것과 비교될 수 없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충실히 사랑하는 영혼에게 내리시는 은총은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다. 하느님의 엄청난 위엄을 보고도 나는 전혀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의 천사들이 자기들이 받은 은총과 계급에 따라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도 깊이 이해 할 수 있었다. 내 영혼은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 찼다. 하느님의 위대함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기쁨도 더했다. 하느님의 크심과 나의 작음이 기뻤다. 내가 작음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나를 당신 품 안으로 데려가시어 당시니 성심에 보다 가까이 안으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 하느님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 자들이옵니까? 하느님의 자비가 그들을 감싸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들을 당신 가슴에 껴안으시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될까요?(777-780).

  파우스티나는 건강이 계속 악화됨으로써 자신이 모든 일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건강할 때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문제를 가지고 요즘은 시달린다.” 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동시에 현재의 병과 신체적 불편으로 인해 숨어 계신 하느님의 발치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 드렸다. 파우스티나는 세월의 흐름을 잊고 있었다(783-784참조).      

하느님 어머니의 교훈

  파우스티나가 성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셨다. 11월 29일, 성모님께서는 아기 예수님과 함께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네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께서 휴식을 위하시도록 침묵과 겸손함을 가져라. 마음으로 그를 찬미하여라. 그리고 너의 내밀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말아라. 내 딸아, 내적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네가 맡은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는 내적 생활의 은총을 얻어 주마. 마음 안에 계신 예수님과 항상 함께 살아라. 그분은 너의 힘이 될 것이다. 피조물과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대화하여라. 너는 하느님께서 즐거이 계시는 성소이다. 하느님께서는 네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시고 생활 하신다. … 성탄 때까지 이렇게 살아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네가 하느님과 대화하고 일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실 것이다”(785). 다음날 저녁기도를 하면서 파우스티나는 이상한 고통을 느꼈다. 하느님의 은총이 크면 클수록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도 크다는 것을 알았다. 장상들의 불신과 의혹으로 인해 그들과 깊은 신뢰의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예수님, 이토록 큰 은총도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이 은총들은 제 고통의 원인일 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표시임에 틀림없습니다. …. 고통과 은총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는 동안 성모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 딸아, 나는 하느님의 어머니의 지위에까지 올라 있으면서도 일곱 개의 칼이 내 마음을 찌르는 아픔을 느꼈다. 네 자신을 결코 옹호하지 말아라. 모든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하느님께서 직접 너를 변호해 주실 것이다”(786).

  1936년 12월 1일, 하루 피정을 하는 동안 파우스티나의 주된 관심은 하느님의 뜻을 안 이상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닥쳐 올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을 키우는 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 내가 네게 고통을 허락하고 있지만 너는 그것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이 적대적인 분위기가 호의적인 분위기로 바뀔 것이다”(788).   새로운 힘을 얻은 파우스티나는 한 달 동안의 생활 규칙을 결심했다. 자기 체험을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개방적인 자세로 대하고, 자기 고통은 가능한 한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하느님 안에 숨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림절을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양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보낼 것 등이었다(792참조). 파우스티나는 큰 갈망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했다.  

모든 이들로 하여금 말씀의 강생을 준비하게 하고 싶습니다. 오, 예수님! 인류는 심각한 병에 걸려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주님의 연민이 더욱 필요하오니, 자비의 샘이 더욱 넘치게 하소서. 주님은 죄인들에게 끝없는 자비의 샘이 시오니, 우리가 비참할수록 주님의 자비는 더욱 크옵니다. 주님은 당신의 무한한 자비로 모든 피조물들을 행복하게 만드시는 자비의 샘이십니다….(793).

 

요양소에서

  1936년 12월 9일에 파우스티나는 프라드닉의 요양소로 가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치료 기간은 약 석 달을 예상했다. 파우스티나는 장상들, 특히 미카엘 총장 수녀의 배려에 감사했다. 그러나 그녀의 일기를 보면 건강의 회복을 죽음보다 더 바라지는 않았다. 파우스티나의 유일한 희망은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이었다(795참조). 요양소는 크라쿠프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예수 성심 시녀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그곳의 의사는 얼마 전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아람 실버그씨 였는데 몇 달 전에 파우스티나의 병을 처음으로 정확히 진단했던 의사이다. 파우스티나가 제법 긴 기간 동안 수녀원을 떠나 있어야 한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언제 어디서나 너와 함께 있다. …. 너를 떠나도록 하는 이는 바로 나다. ….. 내가 너를 은둔시키는 이유는 네 마음에 앞으로의 내 계획을 준비시키기 위해서이다. …. 나에게 모든 문제를 단순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말하여라. 네가 그렇게 할 때 나는 더 큰 기쁨을 느낀다. ….. 네가 단순한 마음으로 하는 말은 내 영광을 찬미하기 위해 작곡한 노래보다 내게 더 큰 기쁨을 가져다 준다. 내 딸아, 네 말이 단순할수록 나의 관심을 더 끌 것이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내 성심으로 다가 오너라. 펜을 거두고 떠날 채비를 하여라”(797).   크리소스토머 수녀가 요양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파우스티나에게 독방이 주어져 그녀는 가르멜회의 봉쇄 수도자가 된 듯한 느낌을 맏았다. 크리소스토머 수녀가 떠나고 난 뒤 파우스티나는 자기 시련과 노력을 지켜보겠다고 하신 성모님의 보호 아래 있고자 기도했다. 평화의 힘이 그텨를 채웠다. 파우스티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요양소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성당에 가서 성체조배를 했다. 그날 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의사는 나를 잘 보살펴 주었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801참조). 다음날 아침 일찍 파우스티나는 묵상을 하고 미사를 했다. 병실로 돌아왔을 때는 몸이 몹시 아파 자리에 눕지 않을 수 없었다. 간호사가 주는 약을 먹었으나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그날은 목요일이었지만 성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고통 받는 예수님과 일치하는 길밖에 없었다. 파우스티나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다음과 같은 관찰을 했다.  

내 병실은 남자 환자들의 병동 바로 옆에 있었는데 나는 남자들이 그렇게 수다스러운 줄을 몰랐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참으로 많은 말들을 했다. 여자들의 병동은 조용했으며 오히려 시끄럽다고 불평들을 했다. 농담이 계속되고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가운데서 마음을 집중시키기가 대단히 어려웠으나 하느님께서 나를 완전히 소유하실 때에는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다. “예수님, 그들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일은 얼마나 드뭅니까? 그들이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그만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 것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없으면서도 창조주이신 예수님께 대해서는 침묵뿐입니다. 예수님, 이러한 무관심과 배은망덕을 보니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오, 나의 예수님! 그들을 위해 예수님을 사랑하고 보속하고 싶습니다”(803-804).

 

중개의 시기

  다음날은 금요일이었다. 파우스티나는 미사에 참여했지만 영성체가 끝난 후 즉시 방으로 돌아왔다.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수난 때 주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잠시 느꼈다. 그때 하느님 자비에 관한 심오한 지식을 깨달았다. 그날 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곤경에 처한 어떤 사람이 기도를 청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짧지만 간절하게 그 영혼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도록 예수님께 기도했다. 이튿날 오후 병동에 갔을 때, 임종을 앞둔 한 환자가 어제 밤부터 아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으면서 어제 밤에 기도를 청해 왔던 그 시간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다. 파우스티나는 마음 속에서 갑자기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내가 가르쳐 준 5단기도를 바쳐라.”   파우스티나는 급히 묵주를 들고 와 환자 옆에 무릎을 꿇고 열심히 5단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환자가 갑자기 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파우스티나가 기도를 하고 있는 중에 이 여인은 평화로운 얼굴로 임종했다. 주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그 환자가 주님께서 하신 약속의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처음으로 입은 일이었다” 하고 파우스티나는 기록하였다. 파우스티나가 다시 자신의 병실로 갔을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임종을 앞두고 5단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내 보호를 입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5단기도를 바쳐도 같은 은사를 받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이 기도를 바치면 하느님의 분노는 누그러지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가 그를 에워쌀 것이다. 그리고 성자의 수난을 위해 나의 자비가 움직일 것이다”(808-811).   파우스티나는 아파서 의사를 만나거나 다른 병원을 찾아가는 등의 여러 이유로 3주 동안 고해성사를 받지 못하였다. 성사를 받으려고 하는 날에 꼭 무슨 일이 생겼다. 그래서 너무나 성사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날 오후 안드레아 신부가 병실로 찾아와 즉시 성사를 주었고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성사를 받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무척 기뻤다. 평소와 같이 마음을 모두 털어놓았다. 신부님은 질문마다 자세히 답변을 해 주셨다. 나는 모든 말을 다 할 수 있어 대단히 행복했다. 보속으로 예수성심 호칭기도를 바치라고 하셨다. 내가 예수성심 호칭기도를 바치기가 어렵겠다고 말하려는데 벌떡 일어나 사죄경을 해주시고는 떠나버리셨다. 갑자기 그분의 모습은 큰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때 나는 그분이 안드레아 신부님이 아니라 예수님이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분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는데 즉시 사라지셨다. 불안했던 마음이 잠시 후 평화를 찾았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고해신부와 함께 고백을 들으신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번 고해성사로 말미암아 내 마음 속에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일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817).

  12월 16일, 파우스티나는 하루의 모든 기도와 고통을 러시아를 위해 바쳤다. 영성체 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그 나라 때문에 더 이상 고통 받을 수 없다. 내 딸아, 나를 묶어놓을 생각은 하지 말아라.”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느님을 추방한 그 나라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가?(818)

  다음날은 사제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날 저녁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오늘은 그 어떤 날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았다. 사람이 하루에 이토록 많은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 나는 몰랐었다. 성시간을 가져 보려고 노력했는데 게쎄마니 동산에서와 같은 비통함을 느꼈다(823).

 

일과 사명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를 격리시키신 후 사랑하시는 당신 딸을 계속 교육시키고 불가해한 신비를 꿰뚫어 보게 하셨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주님과 나와의 일치는 하나의 신비이다. 아무도 아니 천사들까지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 신비를 말하려 해도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신비 속에 살고 또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이 신비는 이 세상에서 또 영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 짓는 특징이 될 것이다(824).

  그리고 파우스티나는 황홀경 속에서 본 자신의 죽음의 날을 이처럼 묘사했다.  

오, 내 모든 꿈이 이루어질 밝고 맑은 날이여! 오, 그토록 소망해 오던 내 삶의 마지막 날이여! 나는 예술가이신 하느님께서 내 영혼에 그으실 마지막 한 획을 기쁨 속에서 고대해 왔다. 그것은 다른 영혼들의 아름다움과 구별될 독특한 아름다움을 내 영혼에 부여해 줄 것이다. 오, 위대한 날! 그날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확인될 것이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하늘과 땅 앞에서 주님의 무한한 자비를 노래할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시초부터 주님께서 나에게 정해 놓으신 일이요 사명이다. 내 영혼의 노래는 거룩한 삼위일체께 기쁨을 드리리니, 오, 하느님의 영이시여! 저를 인도하소서. 오, 자비로우신 하느님! 인내로 무장하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 달고 단 구세주님, 죽음의 무서운 고통과 공포 속에서 주님의 자비를 신뢰하고, 주님께서 내리신 그 모든 약속을 상기합니다(825).

  파우스티나는 덕과 기도에서는 높은 경지에 올라있으나 인간적인 면은 그대로 있었다. 12월 18일, 한 주일이 지나도록 자신을 방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까닭에 그녀는 고독과 외로움을 느꼈다. 주님께 이를 불평하자 주님께서 “매일 방문하는 나 하나로 족하지 않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파우스티나가 주님께 용서를 청하자 고통은 즉시 사라졌다(827참조). 기도를 필요로 하는 임종 환자를 식별하는 은총을 받고, 자비심의 기도로서 얻는 효과를 체험한 것은 요양원에서의 일이다. 기도를 필요로 하는 환자임을 알게 되면 그 영혼에게 평화가 있을 때까지 기도하였다. 기도 시간은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달랐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임종 환자가 파우스티나와 가까이 있든, 몇 백km 떨어져 있든, 또 파우스티나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막론하고 특별한 유대를 맺을 수 있는 은총을 주셨다. 파우스티나가 기록한 다음의 기도에 이러한 특별한 은총에 대하 감사가 나타나 있다.  

“오,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무가치한 제가 기도로 죽어가는 환자를 위로하고 도울 수 있는 은총을 주셨사오니, 하늘의 별만큼 대양의 물방울 수만큼 축복해 주소서. 하느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천상 옥좌에까지 이르게 하소서. 주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찬미합니다…..”(835). “오,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당신은 비천한 저로 하여금 주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오,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예수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온 세상에 전하라고 요구하시니, 예수님의 자비로운 성심에서 흘러 나오는 두 줄기의 빛을 제 손에 담아 온 세상에 뿌리겠습니다. 그러면 모든 영혼들이 예수님의 자비를 입고, 그 자비를 입은 사람은 주님께 영원히 영광을 바칠 것입니다…..”(836).

  이와 같이 병원에 있는 두 주일 동안 파우스티나는 고통 속에서도 열심히 중개기도를 했다. 그때는 대림절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의 엄숙한 순간을 위해서도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예수님과의 내적 생활, 특히 영성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다. 1936년 12월 23일에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영성체를 통해 우리 안에 일어나는 신비는 오직 천국에서만 깨닫게 될 것이다. 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여!(840).

  12월 23일, 크리소스토머 수녀가 사과와 레몬과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가져왔다. 그리고 의사에게 파우스티나로 하여금 성탄절을 수녀원에서 보내게 하겠다는 원장 수녀의 뜻을 전하자 의사는 쾌히 승낙하였다. 파우스티나는 기뻐서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크리소스토머 수녀는 파우스티나의 변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불쌍한 파우스티나 수녀님, 마치 곧 죽을 사람 같군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모양이지요.” 파우스티나는 다른 날보다 고통이 더 심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842참조).   이튿날 오후 카제탄 수녀가 파우스티나를 수녀원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왔다. 수녀원으로 가는 차 속에서도 그의 묵상은 방해 받지 않았다. 도시를 지나갈 때 파우스티나는 베들레헴을 떠올렸다. 그녀는 서두르며 오가는 세상 사름들을 보고 놀랐다.  

이 믿을 수 없는 신비에 대해 침묵하며 묵상하는 이는 얼마나 됩니까! 오, 순결하신 동정녀시여! 오늘도 당신은 여행하고 계시겠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오, 하느님께 온전히 몰두하여 수정처럼 빛나는 동정녀시여! 저의 영성생활을 당신께 바칩니다. 당신 성자께서 바라시는 대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844).

 

1936년 성탄절

  파우스티나는 평소 습관대로 성당으로 가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부터 하나씩 떠올리며 주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박해 받는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예수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 특히 불쌍한 죄인들을 바다와 같은 자비로 감싸 달라고 기도했다. 파우스티나는 저녁식사 후 피로와 고통에 지쳐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와 함께 깨어 있으면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렸다. 자정 미사 때 거양성체를 하기 직전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어머니와 아기 예수님과 성요셉을 보았다. 성모님께서는 “내 딸 파우스티나야, 가장 소중한 이 보물을 받아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아기 예수님을 파우스티나의 품에 안겨 주셨다. 파우스티나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846). 그 다음날 오후 안드레아 신부가 고해성사를 주었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 즉 새 수녀원의 설립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그는 파우스티나의 질문에는 어떤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고 먼저 건강이 좋아져야 한다며 그 동안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잘 사용하라고만 당부하였다. 보속으로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5단기도를 바치라고 하였다. 그때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렸다.   “이 기도를 바치는 영혼에게 어떤 은혜가 내릴 것인가?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에게는 내 깊은 곳에서부터 자비가 전해진다. 내 딸아, 이 말을 받아 적어라. 온 세상에 내 자비를 전하고, 모든 인류로 하여금 내 무한한 자비를 깨닫게 하여라. 이것은 시대의 마지막 표징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정의의 날이 도래할 것이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때에 내 자비의 샘으로 다가오게 하여라. 그들을 위해 흘린 피와 물의 혜택을 입게 하여라”(848).   파우스티나는 여기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오, 인간의 영혼들이여! 하느님께서 분노하시는 그날 당신들은 어디에 숨으렵니까? 하느님 자비의 샘을 피난처로 삼으십시오. 나는 수많은 영혼들을 보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흠숭하며 영원히 찬미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848).

 

자비의 영광

  1936년 12월 27일, 다미아노 수녀가 다시 파우스티나를 요양소로 데려다 주었다. 그동안 그녀의 영혼은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 더 증가되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더욱 하느님께로 향하였다. 요양소에 온 다음날부터 파우스티나는 빌니우스의 가족과 소포코 신부를 위해 9일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대주교가 자비심의 기도와 상본을 인가하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9일기도 동안 하느님 자비심의 상을 떠올리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5단기도를 바쳤다. 9일기도를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자비심의 성화를 보았는데 수많은 촛불들이 봉헌되어 있었고 많은 군중이 몰려 왔는데 그들은 모두 행복에 넘쳐 있었다. 영성체 후 마음 속에서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내 딸아, 내가 언제 올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예수님, 그때가 언제인지 말씀해 주실 수 없으십니까?”   “내 딸아, 그것은 네게 달렸다. 너도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항상 깨어 있어라.”   “오, 예수님!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자비로운 구세주이시니 제가 죽는 순간에도 변함없이 대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특별한 사랑을 제게 보여 주시고 이토록 친밀히 저와 일치하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데 제가 죽는 순간에는 더욱더 그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오십시오. 무한히 자비하신 성부여, 성부께서 오실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854참조). 12월 30일, 하루 피정을 하면서 1936년 한 해에 하느님께서 아낌없이 내려 주신 은혜들을 생각했다. 한 시간 내내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에 몰두하였다. “올해의 모든 일들이 영원 속으로 들어갔다.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잃은 것이 없음을 생각하니 참으로 기쁘다”(885). 1936년 12월 31일 저녁, 파우스티나는 부모, 친척, 총장 수녀, 수녀원의 모든 회원들, 수녀원에 수용되어 있는 여성들, 자신을 항상 도와 주고 있는 세 명의 사제들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 드리며 온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또 그들이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린 것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자정이 되자 지나가는 한 해에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놓인 1937년 새로운 한 해의 첫 순간을 생각하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기도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 예수님과 함께 용감히 모든 갈등과 투쟁하며 나아가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성취해 나가겠습니다. 무한히 선하신 하느님, 간절히 비오니, 항상 어떤 일에서든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859). 이렇게 기도하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불안을 거두어 주시고 자비의 행위가 예수님께 얼마나 큰 영광을 가져다 주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체험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깊은 기도를 통해서만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그러한 때에 끈기 있게 참고 기도해야 함을 영혼들이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860).

 

중개의 고통과 불타는 사랑 (1937)

 

 

1937년 새해가 되자 파우스티나는 어떤 일에서든지 예수님께서 하시는 방법대로 따르면서 자비로우신 그리스도와 일치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온 세상, 특히 러시아와 스페인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고 새해에 지킬 열 세 가지의 결심을 기록했다(861참조). 그러한 결심은 보다 착실하게 완덕의 길로 나아가게 했으며 결심을 실천하는 데 있어 혹 아프다고 해서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2월 2일은 예수 성명 축일(註. 오늘날은 주님의 봉헌 축일)은 특히 많은 은총을 받은 날로서 파우스티나에게는 중요한 날이었다. 1934년의 이날은 하느님 자비심의 성화를 그릴 화가를 처음으로 만나 주님의 요청대로 하느님의 자비심을 그릴 수 있게 된 날이었다.

하느님과의 일치에 대한 갈망은 파우스티나에게 또 하나의 고통의 원천이었다. 파우스티나는 기록했다.

 

“오, 예수님! 인생이 마치 무서운 정글과 같이 느껴집니다. …… 오, 주님! 당신께서는 성체의 형상으로 제게 오셨지만 주님께서는 제 영혼 안에 더 큰 갈망의 불길만 지펴놓으셨습니다”(867).

 

1월 6일의 일기에서는 자신을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인도한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늘 미사 때 하느님의 무한한 엄위로움을 느꼈다. 하느님의 사랑이 내 영혼에 넘쳐왔다. …… 주님께서 은혜로 이 베풀어 주신 이러한 친교를 통하여 나는 온 세상을 위해 기도했다. 그 순간 온 세상이 내게 달려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870).

스승이시여, 저로 하여금 아무에게도 도움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남을 도와 주고 위로해 줄 수 있게 하소서. 제 마음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게 “쓰레기더미”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붙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모두 제 마음에 가져다 붓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항하여 제 마음을 닫아버리지 않겠습니다. …… 제가 행하는 사랑의 법칙에 조롱이 쏟아지더라도 그것이 제 마음을 협소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제 사랑의 동기는 오로지 예수님 당신입니다(871).

 

파우스티나의 이웃에 대한 사랑은 죽어가는 죄인들에게까지 뻗어나갔다. 그리하여 1월 8일은 그들을 위해 바쳤고 영성체 후 신뢰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말씀 드렸다.

 

“주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사랑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예수님, 비오니,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의 힘으로, 오늘 죽어가는 모든 영혼들이 아무리 극심한 죄인일지라도 지옥의 불을 명하게 해 주십시오. 오늘은 주님의 십자가의 비통한 고통을 상기시키는 금요일입니다. 주님의 자비는 무한하오니 그들이 구원되는 것에 대해 천사들도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를 당신의 성심 가까이로 당기시면 말씀 하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딸아, 너는 내 자비의 깊이를 잘 알고 있구나. 네 요구대로 하겠다. 그러나 너는 내 정의에 대한 보속으로 고통 받는 내 성심과 항상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너는 나에게 큰 일을 요구했지만 그것은 나에 대한 너의 순수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네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873).

 

바로 그날 파우스티나는 동료 수녀들에게서 받는 고통을 보속으로 바치라는 소명을 받게 되었다.

 

내 마음은 심한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함께 사는 다른 수녀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도록 나를 다스렸다. 한동안 고통이 내 마음을 찢어 놓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은 불쌍한 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 오 예수님! 불쌍한 죄인들을 위해 제게 힘을 주시고 가까이 계시면서 저를 도와 주소서(875참조).

 

파우스티나가 이날 깨달은 것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겪은 고통은 그녀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다. 파우스티나는 몸이 더욱 약해져서 창백해지고 열이 심하게 났다. 그래서 그녀는 이러한 신체조건하에서는 영성체를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예수님께 간청했다.

 

……….. 나의 스승이시여, 어떤 고통, 어떤 아픔이라도 주님의 거룩한 뜻이라면 밤낮 받겠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비오니 영성체 할 때만이라도 힘을 주십시오. 당신께서 알고 계시듯이 이곳에서는 병자에게 영성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영성체 때만이라도 성당에 갈 수 있는 힘을 주시지 않는다면 제가 주님을 어떻게 모시겠습니까? 제 마음이 주님을 얼마나 갈망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오, 사랑하는 정배시여! 제가 당신을 얼마나 원하는지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저를 위해 제 청을 들어 주신다면…(876).

 

이튿날 아침 파우스티나는 몸이 나아진 것 같았으나 성당에서 돌아오자마자 고통은 마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다시 시작되었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힘있는 분의 빵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것을 과감하게 바라본다. 죽음까지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876).

 

의사가 회진하는 날 (1월 12일), 파우스티나는 열이 대단히 높았다. 의사는 체온이 정상으로 떨어질 때까지 영성체 하러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우스티나와 의사는 몇 가지 문제를 상의한 후 합의에 도달했는데 그것은, 날씨가 좋고 비가 오지 않을 때나 또 파우스티나의 상태가 어느 정도 양호할 때에는 성당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파우스티나는 의사의 이 같은 배려에 만족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씀 드렸다. “예수님, 이제 어려웠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만 의지하겠습니다. 제 마음은 아주 편안합니다”(878).

파우스티나의 영성의 깊이가 더해감에 따라, 그의 밤낮은 하느님과의 친밀한 일치에서 오는 기쁨과 천국으로부터 유배된 삶을 살아가는 데서 오는 고통이 교차되었다.

 

 

순명의 가치

 

1월 22일 의사는, 파우스티나가 영성체는 해도 되지만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이 사실을 고해신부에게 알렸다. 그러자 그는 의사의 결정에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녀님,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 모양입니다. 이제 어떤 종류든 극기는 하지 마십시오. 이 명령에 순종하십시오. 주님께서 보상해 드릴 것입니다.”

파우스티나는 고해신부의 말이 마치 예수님의 말씀처럼 들렸다. 하느님께서 그 대신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은혜를 내려 주셨지만 미사에 갈 수 없는 것이 슬펐다. 그러나 모든 일에 순명 하기로 했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받은 후 기도에 몰두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았다.

 

“내 딸아, 오랜 기도와 극기를 행하는 것보다 오히려 한 번의 순명이 나에게 더 큰 영광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명심해라”(894).

 

1월 23일, 파우스티나는 지난 며칠 동안 격심해진 고통으로 인해 글을 쓸 기운이 없었다. 그때 마음 속에서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내 딸아, 너는 네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다른 영혼들을 위해 살고 있다. 그들을 위해 내 말을 기록하여라. 네가 글을 써야 한다는 내 뜻을 고해신부들을 통해서도 알았을 것이다. 너는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알고 있다. 내가 하는 말에 의혹을 지녀왔다면 누구에게 가서 물어보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내가 그에게 내 일을 판단할 수 있는 빛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지켜보고 있다. ….. 나의 모든 요구에 대한 그의 판단을 따르도록 하여라. 그가 내 뜻에 따라 너를 인도해 줄 것이다. 그가 내 뜻을 따르지 못하게 해도 염려할 것이 없다. 그것으로 인해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는 나와 그 사람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너는 오로지 그에게 순명 하면 된다”(895).

 

이틀 후 파우스티나는 더욱 심한 고통과 비통함을 느꼈다.

 

오, 예수님, 나의 예수님, 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저로 하여금 더욱 비통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들이 제 친구인지 원수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온갖 고통을 다 안겨 줍니다. ………오, 거룩한 성체여! 저를 도와주시고 제가 중얼거리거나 불평을 못하게 입을 막아 주소서(896참조).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자 병이 완전히 나은 듯 그녀의 건강은 좋아졌다. 그리하여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의 문으로 이끄셨다. 보라, 주님께서 충만한 삶을 허락하셨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주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자신이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국이 우리의 고향이기에 주님께서는 이 유배지에 우리를 한없이 버려두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향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즉 시련과 투쟁을 겪어야 한다. ……. 내가 죽음을 얼마나 동경해왔던가! 내 생애에서 하느님을 그토록 갈망할 일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 오, 천국에 비해 이 세상은 얼마나 추한가! 나는 나 자신을 부정해야만 한다. 오, 하느님의 뜻만 이 내 영혼의 자양분이다(897-899).

 

 

 

죄인들을 위한 희생

 

1월 29일, 눈이 무릎까지 닿을 정도로 내렸다. 그날 아침 파우스티나는 늦잠을 잤기 때문에 영성체를 하기 위해서는 급히 서둘러야 했다. 성당은 병동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파우스티나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실버그 의사는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병실 바깥 출입을 허락하지 않을 참이었으나 그녀는 이미 성당에 도착했다. 파우스티나는 성체를 영하고는 즉시 병실로 돌아왔다. 그때 마음 속에서 말씀이 들렸다.

 

“내 딸아, 네 노력을 잘 알고 있다”(902).

 

다음날 하루 피정을 했다. 이때 파우스티나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봉헌을 갱신했다.

 

오, 예수님! 죄인들을 생각하면 당신께 얼마나 죄송한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그들에게 회개와 보속을 허락해 주십시오. 고통스러웠던 당신의 수난을 기억해 주십시오. 저는 예수님 당신의 무한한 자비를 알고 있습니다. 그토록 크나큰 희생을 치르시고 구원하신 그 영혼들이 멸망하는 것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하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죄인들의 영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죄인들을 위해 희생제물이 되고 싶습니다. 살아 계시는 지극히 거룩한 성심이여, 희생제물로 성체 안에 숨어 계시는 주님처럼 저의 고통도 제 육신 안에 숨겨 주십시오. 오, 예수님! 살아 있는 희생의 제물, 당신께 흡족한 제물이 되도록 저를 당신처럼 변화시켜 주십시오. 매 순간 죄인들을 위해 보속하고 싶습니다. 이 희생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 순수하며 당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순수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오, 창조주시며 자비의 아버지시여! 선 자체이신 당신께 의탁합니다.

모든 영혼들이여,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말고 신뢰하여라. 그분은 선하시고 그분의 자비는 영원하시다(908).

 

파우스티나는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쳤고 하느님께서도 당신 자신을 온전히 그녀에게 내어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이때 하느님으로부터 두 가지 특별한 은총을 받았는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세 위격의 일치와 하느님과의 영적 결혼에 대한 보다 깊은 지식이었다. 그리하여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는 하느님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천국에서의 기쁨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하느님 없이 살기보다는 차라리 고통과 괴로움 속일망정 그분과 함께 살겠다”(911-912참조).

 

2월 2일에는 고통이 어느 때보다 심했지만 마음은 기쁨에 넘쳤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 때문이었는데, 하나는 미사성제의 위대한 가치를 깨달은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하느님 자비의 상 앞에서 기도했을 때 얻은 커다란 은총 때문이었다. 그날 아침 미사 때 파우스티나는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 당하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의 고통이 파우스티나의 몸과 영혼 깊숙이까지 사무쳐왔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엄청난 고통이었다. 파우스티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오, 미사 때 얼마나 무서운 신비가 일어났는가!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죽음을 지극히 진실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참여해야 한다. 언젠가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미사 때마다 우리를 위해 하신 일과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선물을 알게 될 것이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만이 이러한 선물을 주실 수 있다. 오, 예수님! 나의 예수님! 각 영혼에게 그토록 깊은 사랑과 힘을 주시는 생명의 원천을 보았을 때, 제 영혼에는 고통이 일었습니다. 오, 예수님! 그러한 영혼들을 당신 자비로 감사 주소서(914).

 

그날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의 요청으로 그려진 자비심의 성화 앞에서 기도하라는 영감을 받고 주님께 기도했다. “예수님, 당신은 이 상을 통해 많은 은혜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옆방에 살고 있는 유대인 처녀에게 성세성사의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

다음날 예수님께서는 그 처녀가 숨을 거두기 전에 성세성사를 받도록 허락해 주셨다. 그녀가 숨을 거둔 직후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천국에 오르는 것을 보고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적었다.

 

내 마음은 너무나 기뻤다. 이 성화 앞에서 이 영혼을 위한 엄청난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성화 앞에서 영혼들을 위해 받은 두 번째의 큰 은총이다(916-917).

 

파우스티나에게는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이 일종의 유배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지만 기꺼이 하느님 뜻의 포로가 되었다.

 

…….. 그러나 제가 이 세상에 살면서 고통 받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당신께서 예정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까지 이 세상에 머물게 하십시오. 이 세상 끝날 때까지라도 괜찮습니다(918).

1937년 2월 7일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에게 완전한 번제를 요구한다. 네 의지까지도 나에게 바쳐라. 그 어떤 희생도 그것과 비교될 수 없다. 나는 네가 항상 나를 위한 희생의 제물이 되고 내 뜻을 실천하도록 너를 인도하고 있다. 네가 봉헌되기 위해서 너는 십자가 위에 있는 나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나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안다. 나는 너에게 직접 많은 명령을 내리지만, 그 실천 가능성은 지연되고 있어 네 혼자 힘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네 장상들이 따르지 않더라도 나는 네 영혼 안에서 직접 이룰 것이다. 네 영혼 가장 깊숙한 곳에서 번제가 올려질 것이다. 내 딸아, 그것은 잠시 동안 일어나고 말 것이 아니라 네가 죽을 때가지 계속된다는 것을 알아라. 그러나 나는 네 모든 소망을 들어 줄 것이다. 나는 너에게서 기쁨을 느낀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것도 너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923).

 

바로 그날 파우스티나는 순명에 대한 시험을 받았다. 파우스티나는 원장 수녀로부터 이제 죽어가는 사람 옆에는 가지 말라는 쪽지를 받았다. 그녀는 원장 수녀에게 순명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한 순명은 바로 은총의 원천이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이었고 파우스티나는 그것을 성실히 이행했던 것이다. 자신이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언젠가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1937년의 사순절과 부활절

 

1937년 재의 수요일이 오기 전 사육제 기간 동안, 하느님께서는 파우스티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모든 죄를 한꺼번에 보게 해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놀라움으로 창백해졌다. 하느님의 깊은 자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류가 이토록 죄를 지어도 살 수 있게 하시는 것이 놀라웠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선택된 영혼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그처럼 선택된 사람들의 수효가 없었다면 세상은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죄인들을 위한 보속으로 영성체를 바치고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을 바쳤다. 그리고 “정의의 벌을 제게 내리시고, 불쌍한 죄인들을 자비의 바다로 감사 주소서.” 하고 주님께 애원하였다. 주님은 그녀의 기도를 들어 주셨고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왔지만 그녀는 하느님 정의의 멍에를 메고 고통을 겪었다. 자신이 지존하신 하느님의 분노의 대상이 된 것 같았다. 파우스티나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부터 신음소리가 날 정도로 황량한 지경에까지 도달했다. 파우스티나는 자기 침실 안에서 성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음과 울음이 기도의 전부였다. 그때 당신 성심 가까이로 끌어 당기며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았다.

 

“내 딸아, 울지 말아라. 네 울음을 보고 견디기 힘들구나. 네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 줄 테니 울음을 그쳐라”(927-928).

 

다음날은 재의 수요일을 하루 앞둔 화요일이었다. 파우스티나는 주님께 자기 마음의 고통과 모든 인류에 대한 관심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길게 말씀 드렸다. 예수님은 그 모든 말을 다 들으시고 대답하셨다.

 

“내 딸아, 네 말을 듣고 나니 기쁘구나! 네가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침으로써 인류를 한결 나와 가깝게 하였다”(929).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파우스티나의 사랑은 한층 더 심화되었다.

다음날 2월 10일은 재의 수요일이었고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파우스티나는 미사 때 잠시 예수님 수난의 고통을 경험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사순절은 사제들이 많이 활동해야 하는 특별한 기간이다. 우리는 영혼들을 구하는 사제들의 일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기록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전과 같이 많은 극기를 하고 싶었지만 병 때문에 생각대로 할 수 없었다. 따라서 허락을 얻어 조그마한 극기를 하였다. 즉 베개 없이 잠을 자고, 절식을 하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칠 때에 팔을 들고 기도하였다. 때로는 오랜 시간을 팔을 든 채 기도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이 사실을 알고 이에 맞갖은 행동을 하여라.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내 대리자에게 순명할 때에는 나에게 기쁨을 주고 내 눈에 큰 일로 보인다.”

 

파우스티나가 한 모든 일은 죄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내리고, 사제들로 하여금 죄인들을 참회시킬 힘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931-934참조).

금요일 미사 때, 파우스티나는 손과 발과 옆구리에 통증을 느꼈다. 그녀는 그러한 통증을 죄인들을 위해 바쳤다. 몇 분 사이의 통증이었지만 오랫동안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게다가 마치 실연당한 사람처럼 마음이 쓸쓸해지는 고통을 경험했다. 그때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외쳤다.

 

오, 죄인들의 영혼이여! 여러분이 나에게서 주님을 빼앗아 갔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바다와 같은 비통함으로 채워도 좋습니다. 나는 하느님께로부터 얻을 위로를 여러분에게 바쳤습니다.(943참조).

 

이때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호칭기도로써 의혹에 빠진 영혼들이 이것을 보고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후일에 소포코 신부는 이 기도문을 출판했다(949-951참조).

다음날 하느님께서는 파우스티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태양처럼 다가오는 하느님의 현존이 내 마음을 환하게 채웠다. 나는 하느님을 너무나 갈망한 나머지 때때로 졸도하기까지 한다. 영원한 사랑께서 내 마음에 와 닿고, 내 작은 마음이 이 사랑을 담지 못해 졸도하는 것이다. …. 영혼과 하느님 사이의 신비는 얼마나 깊은가. 무한히 엄위로우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내 영혼과 동일한 정도로까지 낮추시는 것을 보고 온통 경탄에 빠질 때가 있다(946-947참조).

 

주님의 수난 성지 주일에 비탄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파우스티나는 가시관을 쓰고 손에 갈대를 들고서 고통 당하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바라만 보셨다. 그 응시 속에서 나는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셨는지는 표현할 길이 없다. 고통 받으시는 예수님을 볼 때, 내 마음은 갈갈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죄인들이 예수님의 수난 공로를 받아 들이지 않을 때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예수님의 수난에서 큰 바다와 같은 자비를 보았다(948).

 

2월 15일 자신의 본명 축일에 파우스티나는 소포코 신부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마음이 슬펐다. 파우스티나는 그 편지에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그에 관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내적 지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소포코 신부도 파우스티나에 관해 약간의 내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소포코 신부는 파우스티나에게, 파우스티나 자신의 말이 아니고 영혼 깊은 곳에서 들린 말에는 밑줄을 그으라고 다시 부탁하였었다. 파우스티나는 전에도 여러 번 그러한 말을 들었기 때문에 서둘러 밑줄을 긋곤 했었는데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 궁금하게 여기며 신부님의 요청대로 했었다.

죄인들을 위한 중개기도는 파우스티나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파우스티나는 고통과 기도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죄인들이 회개를 위해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영성 수련을 끝낸 2월 16일,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도했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시여! 오늘 제가 코바늘로 뜨개질하는 수만큼의 영혼들에게 회개의 은총을 내려 주소서.

 

그때 영혼 속에서 말씀이 들렸다.

 

“내 딸아, 너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예수님, 적게 주시는 것보다는 많이 주시는 것이 더 쉽잖아요?” 하고 대답했다.

 

“그렇다. 적게 주는 것보다 많이 주는 것이 덜 어렵다. 그러나 죄인의 영혼을 회개시키는 데에는 그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을 모두 바치지 않습니까? 제 봉헌이 구원되어야 할 많은 수의 영혼에 비해 너무 적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삼십 년 동안 영혼들을 구하신 것도 이러한 일을 통해서가 아닙니까? 순명을 하려다 보니 많은 희생과 극기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비오니 제가 순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시고, 이 미소한 일도 큰 일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그때 파우스티나는 자기 영혼 안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내 딸아, 네 요구를 모두 들어 주겠다.”

 

그날 파우스티나는 고통에 관한 깊은 생각들을 기록하였다.

 

하느님께서 고통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보아 주시는지 깨달을 수만 있다면….. 언젠가 우리는 고통의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미 고통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현재가 바로 그것을 위한 최상의 시간이다(963).

 

다음날 미사 때, 파우스티나는 고통 받으시는 예수님을 다시 보았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의 수난의 고통을 몸으로 느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나의 비통한 수난에도 불구하고 영혼들은 멸망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마지막 구원의 희망을 준다. 그것은 바로 내 자비의 축일이다. 그들이 내 자비를 흠숭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내 자비의 종아, 내 자비에 관해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말하여라. 내 정의의 무서운 날이 다가오고 있다”(965).

 

파우스티나는 후일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내 딸아, 지금은 네가 행동할 때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너에게는 많은 박해와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일, 즉 하느님 자비의 메시지를 통해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성화된다는 것으로 위로를 받아라”(966).

 

그날 성체 대전에서 묵상을 하던 중 또 이런 말씀을 들었다.

 

“내 딸아, 다른 영혼들이 천국에 가서야 맛볼 것을 너는 이미 맛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

 

그때 갑자기 그녀의 영혼은 하느님께 대한 지식의 빛으로 충만하였다. 그러나 엄위로우신 성심 곁에 머문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한 번이라도 이와 비슷한 은총을 경험한 사람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것이다(969-970참조).

2월 19일, 4월까지는 요양원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파우스티나는 동료 수녀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이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파우스티나는 그날 동료 수녀 중 한 명이 프로츠크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그 수녀의 영혼이 자신을 방문하였기 때문이었다(972-973).

또한 파우스티나는 그 사순절 동안 사제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더욱이 “이 기간 동안, 영혼들을 얻기 위해 애쓰는 내 사랑하는 사제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여라. 너를 보니 내 마음이 기쁘다. 너 때문에 세상을 축복한다”(980). 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부터 더욱 열심히 기도했다.

1937년 2월 22일, 병원 종사자들을 위한 피정이 시작되었는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2월 18일, 파우스티나는 월피정을 그곳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 그 피정에서는 보나벤투라 신부가 한 시간씩 강론을 하였다. 마지막 강론 때 그 사제는 이 세상이 지극히 필요로 하는 하느님의 자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지금은 하느님의 자비와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때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그때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이는 너를 위한 말이다. 너는 내 자비심의 사업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라. 나는 내 자비가 경배의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인류에게 마지막 구원의 희망을 준다. 내 자비에 의존하여라. 이 축일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한다”(996).

 

파우스티나는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일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실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날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오늘 제법 긴 시간 동안 예수님의 수난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많은 영혼들이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모든 영혼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주기 위해 기도에 몰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 나의 예수님! 영혼들에게 자비를 내리신다는 조건으로 당신을 제 안에 모십니다(996).

 

그날 파우스티나는 앞으로도 때때로 경험하게 될 사건을 겪었다(1276참조).

 

지난밤에 나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심한 고통을 겪었다. 의사는 무슨 병인지 진단도 내리지 못했다. 나는 내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러한 고통은 모두 죄인들을 위해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오, 주님!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990).

 

파우스티나의 일기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부르셨듯이 “자비의 사도”인 파우스티나의 마음이 하느님의 속성인 자비로 가득 차기를 바라신 분은 주님이셨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로 하여금 자비의 사업을 펼치게 하셔서 현세에서의 위로뿐 아니라 영혼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입게 하셨다. 파우스티나의 일기의 기록을 보면 그녀의 주된 관심은 죄인들을 구원하고, 죽어가는 병자를 도우며, 연옥 영혼들을 도와 주는 것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1937년 3월 5일, 오늘 나는 긴 시간 동안 예수님의 수난을 내 몸으로 경험했다. 고통이 매우 심했으나 모두다 죄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1937년 3월 8일, 오늘 안드레아 신부님을 위해 기도할 때 나는 이 신부님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있고 하느님 눈에 흡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모든 영혼이 가능한 하느님과 일치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대단히 기뻤다(1012).

1937년 3월 12일, 오늘 나는 어느 임종 환자의 영혼이 기도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숨을 거둘 때까지 기도했다. 죽어가는 영혼은 얼마나 기도를 필요로 하는가! 오, 예수님! 사람들로 하여금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1015).

1937년 3월 15일, 나는 오늘 예수님의 수난의 비통함을 경험하였다. 나는 오직 정신적으로 그 고통을 견뎌냈다. 하느님께서는 죄악의 끔찍함을 알게 해 주셨다. 나는 아무리 사소한 죄라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무서우며, 또 예수님의 마음에 얼마나 고통을 드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사소한 소죄를 짓기보다 차라리 수천 번의 지옥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1016).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 하셨다.

 

“나는 영혼들에게 내 자신을 내어 주고 그들을 내 사랑으로 채우고 싶다. 그러나 내 사랑의 은총을 받으려고 하는 영혼들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내 은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주려고 했던 영혼이 거부하면 다른 영혼이 그것을 받을 것이다”(1017).

 

3월 21일 성지주일 미사 때,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이 겪으셨던 고통과 비통을 체험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때 얼마나 고통을 당하셨는지 그녀로 하여금 알게 해 주셨다. 그녀는 “호산나” 라는 외침이 예수님의 마음에는 “십자가에 못박아라” 하는 말로 들렸음을 알았다(1028참조).

의사가 오후의 수난 예절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파우스티나는 방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방에서 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옆방으로 가서 위독한 환자를 돌보았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다시 돌아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너는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네가 오랜 시간 기도하는 것보다 이처럼 나를 돌보는 것이 나는 더 기쁘구나.”

 

그러자 파우스티나는 “예수님, 제가 돌보아 준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환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내 딸아. 그러나 네가 이웃을 위해 한 일은 바로 나를 위해 한 일이다”(1029).

다음날 미사 때, 극심한 고통 속에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신음 소리를 내셨다. 그리고 잠시 후 말씀하셨다.

 

“목마르다. 영혼의 구원 때문에 목이 마르구나. 내 딸아, 영혼을 구하는 일을 도와라. 죄인들을 위해 네가 겪는 고통을 내 수난과 합쳐 천상 성부께 바쳐라”(1032).

 

바로 그날, 파우스티나에게 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저녁에, 한 젊은이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를 위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기도를 다 바친 후에도 그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모든 성인들의 호칭기도를 바치려고 할 때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쳐라” 하시는 말씀이 갑자기 들렸다. 그 영혼은 특별한 기도와 많은 자비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나는 그대로 병실에 있으면서 하느님께 그를 위한 자비를 간청하였다. 그때 나는 하느님의 엄위와 정의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떨었으나 그에게 자비를 내려 달라고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서원할 때 받은 가슴의 십자가를 들어 그 환자의 가슴에 얹고 주님께 말씀 드렸다. “예수님, 제가 서원하던 날 저의 희생봉헌을 보실 때와 같은 사랑으로 이 영혼을 보아 주십시오. 죽어가는 환자가 주님의 자비를 구할 때 은총을 내리시겠다던 약속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자 그의 고통이 수그러들고 그는 평화롭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해야 하는가! 하느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을 때 그것을 얻어내야 한다(1035).

사람의 일생 동안, 특히 임종 때에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점점 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듯이 이 자비심의 5단기도는 하느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린다(1036).

 

 

 

하느님 자비심의 축일

 

주님께서는 자비의 축일을 제정하기를 바란다고 반복하여 말씀 하셨다. 파우스티나도 그러한 열망으로 불타기 시작했다. 그 축일의 제정을 앞당기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였고, 그를 위해 하느님께서 사제들에게 빛을 주시고 또 성령께서 교황을 인도하시도록 9일기도를 시작하였다. 9일기도 동안 성체 대전에서 한 시간씩 성시간을 하기도 했다. 9일기도는 성목요일에 끝나는데 칠일째 되던 날, 3월 23일 화요일에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환시를 보았다.

 

갑자기 하느님의 현존이 느껴지면서 내가 로마의 베드로 대 성전과 현재 내가 사는 곳의 성당에 동시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 교황 성하와 전 세계 교회가 우리 성당과 특별한 방법으로 일치를 이루어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나는 로마와 이곳에서 동시에 의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곳의 의식과 로마의 의식은 일치를 이루고 있어서 구별할 수 없었지만 내가 본 그대로 기록한다.

나는 우리 성당의 제대 위에 성체를 현시해 놓은 성광 안에서 주 예수님을 보았다. 성당은 축일을 위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군중이 너무 많아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의식에 참여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던 것을 성취하였다. 똑같은 의식이 아름다운 로마에서도 거행되고 있었는데, 교황께서 모든 성직자들과 함께 이 축일을 지내고 있었다. 그때 교황과 제대 가운데에 서 계신 성 베드로를 보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을 수 없었지만 교황께서는 그의 말을 알아들으시는 것 같았다. ….. 그리고 안면이 없는 어떤 성직자들이 나를, 아니 내가 기록한 내용들을 시험하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를 옹호하시며 그들이 모르는 것을 이해시키시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때 갑자기 성체에서 두 개의 빛 줄기가 나와 온 세상을 비추었다. 그것은 순간적인 것이었으나 며칠 동안 계속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성당은 사람들로 넘쳤고 모두들 기쁨에 넘쳤다.

또 갑자기 제대 위에서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보았는데 상본에 그려진 모습과 똑같았다. 그러나 거기 있던 수녀들과 군중들은 내가 보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수님께서는 친절하고 기쁜 표정으로 교황과 모든 사제들, 신도들, 그리고 우리 수녀원을 내려다 보고 계셨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나는 예수님 곁으로 끌려가 제대 옆에 서게 되었다. 그때 내가 느낀 행복은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다. 내 영혼은 깊은 평화와 고요를 느꼈다. 예수님께서 나를 향해 친절하게 물으셨다.

 

“내 딸아,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나는 “하느님의 자비가 흠숭과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했다.

 

“나는 이미 이 축일이 제정되고 거행됨으로써 경배를 받고 있다. 달리 바라는 것은 없느냐?”

 

나는 하느님 자비를 경배하는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며 주님께 말씀 드렸다. “예수님, 예수님께 영광을 드리고 무한하신 자비를 공경하기 위해 여기 모인 사람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손으로 십자성호를 그으시자 그 축복이 영혼들에게 섬광처럼 비쳤다. 내 영혼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 휩싸여 소멸되는 것 같았다. 내가 내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는 마음에 평화가 넘쳤고 전에는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미소한 존재이고 하느님께서 주신 나를 전혀 변화시킬 수 없다 하더라도 무한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세라핌 천사와도 내 자리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주님께 대한 지식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주님께서 베푸신 자비에 대해서는 …. (1044-1049).

 

 

동참의 고통

 

수요일, 파우스티나는 이날도 하느님과 일치되기를 바라면서 하느님을 그리워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도와 주지 않으시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고통을 그녀는 느끼고 있었고 고뇌 가운데서도 온 교회와 특히 사제들을 위해 기도했다.

3월 25일 성목요일 미사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수난의 일부를 너에게 나누어 준다.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여라. 고통이 줄어들기를 구하지 말고, 내 뜻에 순명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 들여라.”

 

다음의 글은 자기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떠나시자 표현하기 어려운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일어났다. 몸에서 힘이 다 빠져버려 급히 성당을 나와 침대로 왔다. 나는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였다. 나는 하느님께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찼고, 하느님께서 느끼시는 비통함이 내게 전해져 왔다. 이 일은 세 시간 가량 계속되었다. 나는 주님께 주위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음식을 먹고 싶었으나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감옥과 같은 어두운 방에서 밤새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나는 열 한시까지 기도했다. 열한시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누워서 휴식을 취하여라. 내가 밤새 당할 고통을 너로 하여금 세시간 동안 당하게 하여라.”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즉시 잠자리로 갔다. 힘이 하나도 없었다. 고통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나는 거의 졸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예수님의 맥박이 내게 그대로 전해져 똑같이 뛰었다. 나 혼자 겪는 고통이라면 한결 수월할 것 같았다. 그토록 사랑하는 주님께서 고통 당하시는 것을 보고 아무런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기쁨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고통을 겪으면서 성장하였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도와 주신 것을 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한 순간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주님과 함께 특별한 방법으로 온갖 고문을 다 당했다. 그래도 세상은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의 의미를 모른다. 나는 예수님을 따라 게쎄마니 동산에까지 갔고 감옥에서 예수님과 함께 머물렀다. 나는 또 예수님과 함께 판관들 앞에 섰고 온갖 고문을 다 당했다. 이로써 나는 영혼들에게 내리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의 전능하심을 알게 되었다(1054).

 

성금요일 아침, 파우스티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자기 몸의 다섯 군데에서 통증을 느꼈다. 그 고통은 오후 세시까지 계속되었다. 상처는 눈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가해지는 고문은 고통스럽기 그지 없었다. 열한시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너는 고통 받는 내 마음에 신선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파우스티나에게 신비적인 체험을 겪게 해 주셨다.

나는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불타는 것 같았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일치될 만큼 나에게 친밀함을 보여 주셨다. 나는 예수님 심장의 고통을 느끼고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셨다. 내 사랑의 불길은 예수님의 영원한 사랑의 열정과 일치되었다. 이 하나의 은총은 다른 모든 은총을 능가하였다.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 나를 완전히 에워싸실 때 나는 완전히 하느님 안에 잠겼다. 말하자면, 미소한 존재가 불멸의 전능하신 분과 씨름을 벌인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수난으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사랑에 빠지고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 하느님과 관계되는 모든 일은 나에게도 전해졌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이러한 은총을 인식하고 예감케 해 주셨지만 오늘은 직접 경험하도록 허락해 주셨다. 나는 이웃과 접촉하고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면서도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끊임없는 황홀경에 잠길 수 있었다. 아무것도 나의 무아지경을 방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부탁 드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은총과 함께 하느님과 나를 이해할 수 있는 태양과 같은 빛을 받았다. 나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서 하느님께서 내게 마련해 놓으신 새로운 황홀경으로 나아갔다(1056-1057).

 

오후 세시에 파우스티나는 십자가 모양으로 엎드려 전 세계를 위해 기도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사랑하는 내 성신의 딸아, 무서운 고통 중에 너는 나의 위로가 되었다”(105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자비심의 축일 전에 9일기도를 바치고, 온 세상이 회개하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비를 알고 하느님의 선하심을 찬미하도록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죄인들을 위한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씀도 하셨다.

 

“….. 내 피조물들의 신뢰를 바란다. 사람들에게 내 무한한 자비를 신뢰하게 하여라. 약하고 죄 많은 영혼이라도 내게 오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라. 모래알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측량할 수 없는 내 무한한 자비에 잠길 수 있게 되리라”(1059).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9일기도를 바쳤다. 그러나 그 해 8월 1일이 지나서야 그것을 일기에 기록하였다. 소포코 신부는 그 해에 호칭기도 및 자비심 5단기도와 함께 이 9일기도를 출판할 때 이 일기를 서문으로 삼았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자, 파우스티나는 고통으로부터는 해방되는 것 같았으나 오랫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는 눈물로 위로를 찾았다. 사랑하는 분이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그녀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늦게, 라디오 방송을 통해 사제들이 시편을 읊는 소리를 듣고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고 마음의 고통이 되살아났다. 파우스티나가 고통 때문에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계속 울자 마음 속에서 다음의 말씀이 들렸다.

 

“울지 말아라. 나는 이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는다. 나와 함께 고통과 죽음을 함께 한 네 충실성 때문에 나도 네가 죽을 때 함께 하겠다. 내 사랑하는 진주야, 나는 너의 순수한 사랑, 천사들보다도 더 순수한 사랑을 보았다. 너 때문에 이 세상을 축복한다. 나를 기쁘게 해 주려는 너의 노력을 보았다. 그 노력들은 내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1062참조).

 

 

라기에브니키의 요셉의 집에서

 

3월 27일 토요일, 파우스티나는 라기에브니키의 수녀원으로 돌아왔다. 성당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온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고 새 수녀원을 창립하기까지 자신이 겪게 될 수많은 고통과 투쟁을 생각했다. 그리고 오직 주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구했다(1066참조).

부활 대축일 미시 때, 파우스티나는 아름다운 광채로 둘러싸인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께서는 “내 딸에게 평화!”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축복하고 떠나시자 그녀의 마음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일었다. 그녀의 마음은 더욱 강인해졌다. 안드레아 신부님에게 예수님께서 아침에 갑자기 나타나셨다고 말하자, 갑작스런 출현은 의혹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신앙에 어긋나거나 위반되는 일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신중을 기하고 총장 수녀가 도착하면 모든 것을 말하라고 당부하였다(1067-1068참조).

다음날 묵상 중에 주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 딸에게 평화!” 파우스티나는 주님께 대한 사랑에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오, 주님!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나지 마십시오. 제 지도 신부님이 주님의 갑작스런 출현은 환상이기 쉽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목숨보다 더 사랑하고 당신은 저의 주님이요 하느님이시지만 저는 저의 고해신부님에게 순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의 말을 신중하고도 친절하게 들으시고는 이같이 말씀하셨다.

 

“네가 내 은총을 훔쳐가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친밀한 방법으로 너와 이야기 한다는 사실을 네 고해신부에게 전하여라. 내가 너에게 모든 은총을 쏟아 붓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네가 내 은총들을 너 혼자만 간직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신중함을 내가 기꺼이 여긴다는 표시로 지금부터 너는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말한 것을 그에게 설명하기 전까지는 나도 너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106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적인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4월 2일 미사 때에 이러한 말씀을 들려 주셨다.

 

“나는 네가 이곳에 온 세상을 위한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바치기를 원한다고 네 장상에게 전하여라.”

 

파우스티나에게 이 일은 대단히 어려웠다. 왜냐하면 장상에게 주님의 요구를 전달하는 데에는 많은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도와 주시리라 믿고 장상에게 전하기로 결심했다(1070참조).

4월 3일에 또 다른 메시지를 받았다.

 

“사제에게 가서 내 자비의 축일에 나의 무한한 자비에 관한 강론하기를 바란다고 전하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은 아마도 라기에브니키 수녀원의 지도신부인 트흐헤도레 차푸타 신부였을 것이다. 파우스티나가 예수님의 요구를 전하였으나 그는 그것을 주님의 말씀으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고백소를 나올 때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내가 말하는 대로만 하면 걱정할 것이 없다. 이 문제는 나와 그의 문제이다. 그것에 대한 너의 책임은 없다”(1072).

 

다음날 4월 4일은 부활 후 첫 주일이었다. 영성체를 한 후 하느님께 대한 관상에 잠겨 있을 때 파우스티나의 마음은 바다와 같이 무한한 하느님의 자비를 얻은 것처럼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리하여 그녀는 “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세상 사람들이 알기만 한다면! 아무리 아름답고 격렬한 사랑일지라도 하느님의 사라에 비하면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텐데” 라고 기록하였다(1073참조).

주님의 요구에 따라 원장 수녀가 하느님의 자비심의 기도 시간을 가졌을 때 파우스티나는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씀을 들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이 말을 기록하여 놓아라. 오늘 내 성심은 이 수녀원에 머물러 있다. 온 세상에 내 자비와 사랑을 전하여라. 자비의 불꽃이 나를 태우고 있다. 이 자비를 나는 모든 영혼들에게 붓고 싶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내가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는지 아느냐?

내 딸아, 있는 힘을 다해 내 자비를 전하라. 네게 부족한 것은 내가 채워 주겠다. 고통 받는 인류로 하여금 내 성심 가까이 다가오게 하여라. 그들의 마음을 평화로 채워 주겠다.

내 딸아,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사랑이요, 자비 그 자체이다. 신뢰하는 마음으로 내게 오는 사람에게는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풍성한 은총을 내려 다른 사람에게로까지 흘러 내리게 할 것이다.

나는 내 자비를 전하는 사람을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기를 돌보듯이 그의 일생을 보살펴 줄 것이다. 또한 죽는 순간에 나는 그에게 심판자로서 대하지 않고 자비로운 구세주로 대할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내 자비 외에는 변명할 일이 없을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내 자비의 샘에 빠져든 사람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정의의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기록하여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기가 모태에 묻혀 있는 것보다 더 깊이 내 자비의 심연에 묻혀있다. 내 선함에 대한 불신이 나에게 얼마나 심한 고통을 주는지 아느냐? 불신의 죄는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을 가져다 준다”(1074-1076).

 

파우스티나가 잠들기 전에 주님께 인사를 드렸을 때 그녀는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내 사랑하는 딸아, 너 때문에 이 세상에 축복을 보낸다” (1078).

 

4월 10일 토요일, 원장 수녀는 파우스티나에게 1937년 4월 4일 빌니우스에서 간행된 가톨릭 주간지를 주었다. 그 잡지에는 하느님 자비심의 그림과 파우스티나의 일기에서 발췌한 예수님의 말씀이 실려 있었다. 그것을 손에 들자 사랑의 화살이 마음을 꿰뚫는 것 같았다. 그때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네 간절한 원의 내 자비의 축일 제정을 앞당기겠다.”

 

파우스티나는 이때 이 사랑의 불꽃이 타버려서 하느님 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1080-1082참조).

 

 

 

신속한 치유

 

다음날 파우스티나는 소포코 신부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편지를 부치기 전에 갑자기 목이 아팠다. 따라서 편지를 보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알기 위해 분명한 표시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의 병이 심해져서 침대에 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기침이 심하여 마치 마지막인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틀이 지나도록 병상에 누워 있었다. 기침이 너무 심해 걸을 수도 없었다. 다음날 겨우 일어나 미사에 갔다. 요양원에 있을 때보다 병이 더 심했다. 폐에서는 헐떡이는 소리와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고 이상한 통증이 느껴졌다. 영성체를 한 후에 파우스티나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예수님, 당신의 순수하고 건강한 피를 제 나약한 몸에 넣어 주십시오. 제 몸을 예수님과 같이 순수하고 건강한 몸으로 바꾸어 주시고, 맥박이 건강하고 힘차게 뛰게 해 주십시오. 제 건강을 되찾아 주신다면 제가 하려고 하는 일이 주님의 거룩한 뜻이라는 주님의 분명한 표시로 알겠습니다(1089).

 

이러한 기도를 하고 있을 때에 온 몸이 잠시 흔들거리는 것 같더니 즉시 몸이 가뿐해짐을 느꼈다. 숨소리도 고르고 아무 통증도 없었다. 이는 새 수녀원을 세우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표시였다. 이 일은 성령께 바친 9일기도의 마지막 날에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요구를 다시 한번 더 강력하게 확신시켜 주신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하루 종일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 새 수녀원에 관한 자세한 사항에 관해 예수님과 대화했다. 그때 “네 건강이 좋다는 것을 원장 수녀에게 알려라” 라는 말씀을 들었다.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분명한 뜻을 알기 위해 건강해지기를 요청했다(1091).

 

 

 

하느님의 재촉

 

 

4월 23일부터 8일간의 피정이 시작되었는데 파우스티나는 3일간의 연중 피정을 하는 대신에 그 피정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마음 속에서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내 딸아, 나는 사제들을 통한 특별한 방법으로도 너에게 말한다는 사실을 알아라. 그러면 내 소망에 관해 의혹이 덜 할 것이다.”

 

첫 강론 때 사제의 말이 파우스티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따라서 그녀는 하느님의 뜻이나 계획이 어떠한 것이든 거슬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의 확실하고 진정한 뜻을 안 이상 이제 수행할 의무만 남았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시고 또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1101참조)

4월 30일, 수녀원에 허원갱신이 있던 날, 하느님의 현존을 느껴 잠이 깨었고 하느님의 사랑이 그녀의 영혼에 넘쳐 들어왔다. 동시에 파우스티나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내 자비의 축일에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는 사람에게는 풍성한 은사를 내릴 것이다”(1109).

 

총장 수녀는 수녀들이 허원식에 참여하고 수녀원을 방문하기 위해 크라쿠프에 있었다. 5월 4일, 파우스티나는 총장 수녀에게 “제가 이 수녀원을 떠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총장 수녀는 “지금까지는 항상 제지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수녀님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줍니다. 수녀원을 떠나도 좋고 머물러도 좋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파우스티나는 “고맙습니다”라고 한 뒤 허원을 풀어 달라는 편지를 즉시 교황청에 보내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총장 수녀와 헤어지면서 영혼에 다시 암흑이 몰려옴을 느꼈다. 허락을 받을 때마다 영혼이 암흑에 휩싸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는 총장 수녀에게 즉시 그 사실을 알리고 자신이 겪는 이상한 고통을 말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총장 수녀는 “그것은 하나의 유혹입니다”하고 간단히 대답했다. 파우스티나는 총장 수녀와의 대화에서 어느 정도 위로를 얻었으나 암흑은 여전히 드리워져 있었다. 총장 수녀는 말했다. “하느님의 자비는 아름다운 것이지요. 그것은 주님의 위대한 사업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그것에 반대하여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1115).

일기에서 발췌한 다음 글을 보면 그녀가 겪은 고통의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도 내 고통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보다 더 심한 고통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순교자의 고통도 이만큼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나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영혼의 고뇌, 이 고통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1116).

 

5월 5일, 파우스티나는 자신이 수녀원을 떠나려고 할 때마다 당하는 고통에 대해 고해신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고해신부는 때가 적당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시오. 수녀님에게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1117).

파우스티나의 영성 지도자인 안드레아 신부가 몇 주 동안 로마에 다니러 갔기에 허전함도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자신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주지 않으시리라 굳게 믿으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했다. 고통과 암흑은 계속되었다. 삼라만상은 봄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었지만 파우스티나는 사랑하는 분이 모습을 감추셨기 때문에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1118-1120참조).

다음날 주님의 승천 대축일에 파우스티나는 영혼의 완전한 변화를 경험했다. 그녀는 하느님과 대면하여 잠시 동안 성부와 대화했다. 천상 성부께 대한 엄청난 사랑에 휩싸여 그녀는 이날을 사랑의 황홀경을 체험한 날이라고 말하였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인과 하느님께 대한 확신으로 영혼은 그지없이 평화로움을 느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사랑만으로 완전한 만족감을 느낀 것이다.

5월 20일, 파우스티나는 그 한 달 내내 건강이 아주 좋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병을 통해 하느님께 희생을 바치는 것과 하느님께 청했던 좋은 건강 상태에서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 중 어느 것이 하느님께 더 기쁨을 드릴 수 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하고 말씀 드렸다. 그날부터 파우스티나는 전과 같이 좋지 못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1125참조).

 

 

 

가정교사이신 하느님

 

파우스티나가 다음과 같은 일을 겪은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인 5월 22일이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자비심의 기도가 지닌 힘을 보여 주기 위해 그것을 기록하였다.

 

날씨가 더워 견디기가 힘든 날이 계속되었다. 우리 모두는 비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여러 날 구름이 덮이기는 했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비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식물들을 보자 안타까웠다. 따라서 주님께서 비를 내리실 때까지 자비심의 기도를 바치기로 했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하늘에 구름이 덮이더니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세 시간 동안 꼬박 기도했었다. 이 기도를 바치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1128).

 

중요한 축일이 계속되었다. 5월 23일은 삼위일체 대축일, 5월 27일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었다. 파우스티나는 축일 때마다 기쁨과 행복이 더했고, 하느님의 엄위로우심과 선하심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1129-1141참조).

1937년 6월 4일, 예수 성심 대축일 미사 중에 파우스티나는 중대한 메시지를 받았다.

 

“내 자비의 사도여, 온 세상에 내 자비를 선포하여라. 내 자비를 선포할 때 어려움을 겪더라도 실망하지 말아라. 이 어려움들이 큰 고통을 주더라도 너를 성화시키고 이 일이 나의 일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내 딸아, 내가 너에게 전하는 말을 부지런히 기록하여라. 많은 사람들이 네 기록을 보고 많은 혜택을 입을 것이다”(1142).

 

6월 6일 월피정 때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였다.

 

“대 죄인들이 나를 신뢰하도록 하여라. 그들은 내 무한한 자비를 신뢰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내 딸아, 고통 받는 영혼들을 위한 내 자비심에 관해 기록하여라. 내 자비에 호소하는 사람들은 나를 기쁘게 한다. 나는 그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은총을 내릴 것이다. 내 자비에 호소하는 사람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벌하지 않고 오히려 내 무한한 자비로 그를 의롭게 할 것이다. 이 말을 기록하여라. 내가 심판관으로 나서지 않고 내 자비의 문을 활짝 열 것이다. 그러나 내 자비의 문을 통과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정의의 문을 거쳐 나가야 할 것이다. ….”(1146).

 

언젠가 어떤 과제를 맡아 다른 자매들과 함께 특별 강론을 들을 수 없어 파우스티나는 화가 나 있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너는 어찌하여 사람들의 가르침과 말을 그토록 중시하느냐? 나는 너를 직접 가르치기를 원한다. 강론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너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노력하여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한 순간에 깨닫게 해 줄 것이다”(1147).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린 수련자를 계속해서 가르치셨다. 6월 20일, 파우스티나는 “이웃을 용서하는 것이 하느님을 가장 잘 닮는 일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요, 선함이요, 자비이시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114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들, 특히 모든 수도자들은 내 자비를 묵상해야 한다. 내 마음은 자비와 동정으로 넘쳐 흐른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사랑의 샘이 넘쳐 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닮은 마음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1148).

 

6월 23일, 성체 대전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파우스티나는 몸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대신 이러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나는 법칙에 구애 받지 않는다”(1153).

 

6월 27일,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새 수녀원과 그 수녀원에 살 사람들의 환시를 보여 주셨다. 그리고 파우스티나는 그 수녀회가 앞으로 펼칠 전체 사업에 관한 빛과 심원한 이해를 얻었다. 그리고 마음 안에 있는 의혹의 그림자가 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새 수녀원에 대해 당신이 가지고 계신 뜻도 알려 주셨다. 그 수녀원은 목표는 하나이지만 세 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이 세상으로부터 성별 된 이 영혼들은 하느님 대전에 희생 제물로 타 오를 것이며 이 세상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할 것이다. ….. 그리고 사제들을 위해 자비를 구하고, 기도로써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것이다.

둘째, 자비의 행위와 함께 기도를 바칠 것이다. 특히 어린이들의 영혼이 악의 세계에 물들지 않도록 기도할 것이다. 이 수도회의 입회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기도와 자비의 생활이 요구되며, 아무리 미천한 사람이라도 입회할 수 있다. 이기주의적인 이 세상에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일깨울 것이다.

셋째, 기도와 자비의 실천 외에는 특별한 서원이 필요 없다. 기도와 자비만으로도 수도자로서의 모든 자격을 갖출 수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다.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매일 한 가지 이상의 자비로운 행위를 해야 한다. 누구든지 적어도 하루에 한 가지씩의 자비로운 행동을 해야 하며 아무리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자비로운 말과 용서와 위로 등이다. 둘째는 자비로운 말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을 때에는 기도를 한다. 그곳도 자비로운 행위이다. 그리고 셋째는 자비의 행위를 실천하는 것이다. 마지막 날 우리는 자신이 자비를 얼마나 잘 실천하였는가에 따라 하느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1155-1158).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하느님의 수문이 우리에게 열려 있다. 하느님의 정의의 날이 오기 전에 이를 이용하여야 한다. 그날은 두려움의 날이 될 것이다”(1159)

 

어느 날 파우스티나는 이 세상의 그 많은 죄악과 범죄를 벌하지 않고 어떻게 참을 수 있으시냐고 주님께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다.

 

“나는 그들을 언제든지 벌할 수 있다. 그러나 죄인들이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기간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 방문의 시기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자비의 사도인 내 딸아, 너의 임무는 내 자비에 관해 기록하고 선포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내 자비를 찬미하도록 그들에게 은총을 빌어 주는 것이다”(1160)

 

파우스티나가 주님의 분부를 충실하게 따르자, 그녀는 사탄에게 있어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사탄은 “네가 전능하신 분의 자비를 거론하는 것은 내가 수천 명의 영혼에게 미치는 해악보다 더 크다. 극악한 죄인마저도 하느님을 신뢰하며 돌아가는 바람에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은 네가 전능하신 분의 무한한 자비로 나를 박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1167).

6월 29일에 안드레아 신부가 로마에서 돌아왔다. 신부는 로마에서 본 아름다운 일들에 관해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다. 파우스티나는 그의 부재 중에 자신이 겪었던 영감과 고통에 관해 말하고 싶었지만 개인적으로 그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파우스티나의 기쁨과 고통은 계속 교차되었다. 마음에 심오한 평화가 머물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계속되는 투쟁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길을 충실히 따라 걷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따라서 7월 4일 월피정 때 한 묵상의 결심과 한 달 동안의 생활 계획을 이같이 기록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든 잘하셨다. 예수님의 삶은 선함과 자비로 가득 찼다. 예수님께서는 연민을 가지고 살아가셨다. 적에게도 선함과 친절함과 이해를 보이셨다. 곤궁한 이들에게는 도움과 위로를 주셨다. 그래서 나는 이번 달에는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예수님의 그 특성을 충실히 반영하는 거울이 되기로 결심했다(1175).

 

파우스티나는 성체 대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마음 속에서 다음의 말씀을 들었다.

 

“내 딸아, 네 노력 하나 하나가 나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그 노력들은 나에게 기쁨이 되고 있다. 나를 공경하는 네 마음을 나는 일일이 지켜보고 있다”(1176).

 

그로부터 일주일 후, 당신 자비의 비서인 파우스티나에게 주니은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하셨다.

 

“내 기쁨이요 즐거움인 내 딸아, 내가 너에게 내리는 은총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이다. 네 처지가 내 자비에 장애가 되지는 못한다. 내 딸아, 불쌍한 사람일수록 내 자비를 얻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도록 하여라. 나느 그들을 구원하고 싶다. 모든 영혼들을 위한 내 자비의 샘이 십자가위에서 창끝에 의해 열렸다. 그 샘은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다”(1182).

 

예수님은 파우스티나에게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순명하고 하느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가르쳐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 나는 십자가 위의 주님을 보았다. 손과 발과 옆구리에서는 거룩한 피가 흘러 나왔다. 곧이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모든 영혼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내 딸아, 그들의 구원을 위해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아라.”

그래서 나는, “예수님, 주님의 고통을 보니 저도 그들의 구원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네가 침묵 가운데 매일 매일 모든 것을 내 뜻에 순명함으로써 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네 고통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거든 내 상처를 생각하여라. 내 수난을 묵상하면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이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1184).

 

 

 

희생적 사랑의 성장

 

7월 초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폴란드를 위하여 자주 기도하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폴란드 백성의 배은망덕에 대해 화를 내셨다. 나는 온갖 힘을 다해 변호하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하느님 자비의 약속을 상기시켜 드렸다. 나는 하느님의 분노를 보고도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자비의 심연에 내 몸을 던졌고, 폴란드를 하느님 자비의 바다에 밀어 넣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정의를 행사하실 수 없으셨다. 내 조국 폴란드여,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어야 하는가?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위해 기도하지 않은 날이 없다(1188).

 

며칠 후 파우스티나는 또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내 마음의 기쁨인 내 딸아, 나는 기쁜 마음으로 너를 내려다 본다. 나는 너 때문에 많은 은총을 내린다. 그리고 너 때문에 벌을 거둔다. 네가 막기 때문에 내 정의를 행사할 수가 없다. 너는 사랑으로 내 손을 묶는구나”(1193).

 

7월 15일에 파우스티나는 자신이 다른 수녀원으로 이동 되리라는 것을 내적으로 알았다. 그때 마음 속에서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여기에 머무는 것이 내 뜻이다. 인간의 계획은 무산될 것이다. 따라서 내 뜻을 따라야 한다”(1180).

 

닷새 후 파우스티나는 자신이 라프카에 있는 수녀원으로 갈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8월 5일까지는 떠날 수 없었다. 파우스티나는 아직 안드레아 신부가 로마에서 돌아온 후 말할 기회를 갖지 못했었지만, 원장 수녀에게 즉시 보내달라고 청하였다. 원장 수녀는 그렇게 빨리 떠나려는 파우스티나를 보고 놀랐으나 파우스티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기에 “영원히 비밀로 남길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1198).

7월 29일, 파우스티나는 산악지역에 있는 라프카로 떠났다. 그곳에는 수녀들과 여성들을 위한 휴양소가 있었다. 떠나기 전부터 공허하고 캄캄한 느낌이 들었다. 그곳 라프카의 수녀들의 따뜻한 환영에도 불구하고 고통은 배로 증가되었다. 거기서 그녀는 몸 져 누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파우스티나는, 결핵은 심한 통증을 동반하지는 않는다고 말을 들었는데 그녀는 항상 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가슴의 통증이 심해 손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움직이면 폐가 찢어질 듯 아파서 밤새 가만히 누워 있어야 했다. 그리고 밤의 긴 시간 동안 파우스티나는 그 고통들을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과 일치하여 천상 성부께 죄인들을 위해서 바쳤다. 어느 수녀는 라프카의 기후가 병자에게 좋지 않아서 파우스티나의 건강은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1199-1201참조).

이즈음에 요셉 성인이 발현하셨다. 요셉 성인은 파우스티나에게 항상 자기에게 의존하고 세 가지 기도, 즉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바치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하느님 자비의 사업을 돕고 있다고 알려 주면서 파우스티나에게 특별한 도움을 주고 보호를 하겠다고 약속했다(1203).

월피정이 있은 8월 1일은 파우스티나에게 고통의 날이었다. 그날은 기도가 전혀 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압박해오는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주님께 외쳤다. “오, 나의 예수님! 주님의 딸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고 계시겠지요”(1206참조).

8월 6일, 파우스티나는 세 가지 지향으로 성모님께 9일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즉 그것은 소포코 신부님을 보게 되고, 하느님 자비의 사업이 앞 당겨지며, 폴란드를 위한 것이었다(1206참조).

나흘 후, 파우스티나는 한 수녀와 함께 크라쿠프로 돌아갔다. 그 후 며칠을 그녀는 예수님께서 자비심의 축일 이전에 기록하라고 가르쳐 주신 하느님 자비심의 9일기도를 기록하는 데 보냈다(1207-1229참조).

그리고 왜 돌아 왔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인내심을 가지고서 “건강이 나빠져서 돌아왔다”고 대답해야 했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우스티나의 고통을 동정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고통을 더하기 위해 물었기 때문이었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만이 내가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이해하실 것”이라고 일기에 적었다(1236).

도착한지 이틀 후 소포코 신부가 지나는 길에 크라쿠프에 들린 탓에 잠시나마 그와 만날 시간이 주어졌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대단히 기뻤다. 이러한 은혜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내가 그를 만나고자 했던 것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1238).

그리고 파우스티나는 사제직의 신비에 관한 자신의 인식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당신 대리자들을 각별히 보호하신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말씀보다도 더 그들과 대단히 일치하여 계신다. 주님께서는 사제들의 의견을 더 존중하라고까지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과 사제가 얼마나 가까운지 알게 되었다. 그분은 사제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옹호하시고, 사제의 요구에 응하시는 일이 많으시며, 어떤 영혼과의 관계에서도 사제의 권고를 따르기도 하신다. 오, 예수님! 당신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사제들과 나누시는 힘과 신비는 천사들에게 하시는 것보다 더하다는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1240).

8월 15일, 묵상 중에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께서 승천하실 때 지니셨을 정도의 기쁨을 그녀로 하여금 느끼게 해 주셨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순명하지 않고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다. ….. 너도 이 점에서, 다시 말해,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데 뛰어나기를 바란다…..” 또한 파우스티나는 “네 사랑의 맹세를 보고 내가 얼마나 기뻤느니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성모님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망토로 그곳의 모든 수녀들을 감싸 안으셨다(1244참조).

 

다음날 영성체 때,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을 보았는데 이렇게 말씀하였다.

 

“내 딸아, 네가 나를 보지 못하고 내 현존을 느끼지 못하는 동안에도 나는 네가 황홀경에 빠져 있을 때 보다도 더 깊이 너와 일치를 이루고 있다. 네 기도의 충실함과 향기가 하늘에까지 닿았다”(1246참조).

 

이 말씀 후에 그녀는 하느님의 위로로 가득 채워졌고 그러한 깊은 관상의 경지는 3일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티나는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8월 22일, 파우스티나는 천국으로부터 또 하나의 환시를 보았다.

 

그날 아침 동정녀인 바르바라 성녀가 나타나 내 조국을 위해 그리고 하느님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9일 동안 영성체를 바치라고 권하였다. …. 내가 성모님을 본 일이 없었더라면 성모님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 성녀는 아름다웠다. 나는 각각의 성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 각자에게서 반사되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1251).

 

8월말 경, 소포코 신부가 다시 크라쿠프를 방문하게 되어 파우스티나는 장시간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파우스티나는 자비의 사업이 잘 진척되고 자비심의 축일에 관한 문제도 잘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포코 신부는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모든 일에 평정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9일기도, 호칭기도, 자비심의 5단 기도문을 인쇄소에 넘겼으니 교회의 인가가 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소포코 신부는 8월 30일 아침에 떠났다. 파우스티나가 예수님과의 깊은 일치감을 느끼며 그를 만나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는 내 성심을 따르는 사제이다. 나는 그가 하는 노력을 흡족하게 여기고 있다. 내 딸아, 내 뜻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으며 내가 너에게 한 약속도 너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를 통해 고통 받고 근심 많은 영혼들에게 내 위로를 전하고 있다. 그가 내 자비를 선포하는 일은 나를 기쁘게 한다. 그가 선포하는 내 자비는 그가 일생 동안 밤낮으로 고해성사를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영혼들을 나에게로 인도한다. 또한 그가 선포하는 자비는 단지 그가 일생 동안 하고 말 일을 세상 끝날 때까지 하게 될 것이다”(1254-1256참조).

 

파우스티나는 소포코 신부와 대화하면서도 특별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었고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와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그는 위로를 구했지만 십자가만 주어졌고 친구들 가운데 살았지만 예수님밖에 없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걷는 길이었다(1259참조).

1937년 9월 1일, 파우스티나는 이 세상을 엄한 눈길로 바라보시는 엄위로운 왕이신 예수님을 보았는데 그분은 성모님의 중개로 말미암아 세상에 대한 자비의 기간을 연장하셨다. 그러나 2년 후 바로 그날, 파우스티나가 선종한지 1년 후에 독일 나찌가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다(1261참조).

파우스티나는 9월 첫금요일에 성체를 모신 후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는 기도’를 바치려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 기도는 바로 이러하다.

 

봉헌기도

바로 이 순간 제 마음에 오신 주인이신 예수님,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천상 성부께 제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칩니다. 하느님의 자비롭고 거룩한 뜻을 위해 제 자신을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버립니다. 주님, 오늘부터 주님의 뜻만이 저의 음식입니다. 주님께서 저를 온전히 소유하고 계시니,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주님의 손길이 이끄시는 대로 순명 하여 평화와 기쁨으로 따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어디로 저를 이끄시든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에 힘입어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영감을 주시든 두려워하지 않고, 어디로 인도하실지 불안한 마음으로 캐묻지 않겠습니다. 오, 하느님!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사랑이시며 자비 그 자체이신 당신의 뜻에 제 모든 신뢰를 바칩니다.

이 수녀원에 머물기를 명하시면 머물겠습니다. 그 일을 시작하라고 하시면 하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저를 혼란의 상태에 버려두셔도 좋습니다. 제 목숨이 필요할 때 불러 주셔도 좋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살게 하셔도 좋습니다. 제게 건강과 힘을 주셔도 좋습니다. 일생 동안 실패와 실망만을 안겨 주셔도, 제 순수한 의도가 단죄를 받아도 저는 개의치 않겠습니다. 제 마음에 빛을 안겨 주셔도, 암흑 속에 버려두셔도 아니면 온갖 고문을 받게 하셔도 좋습니다. 이 순간부터 저는 오직 당신의 깊고 넓은 평화 안에 살겠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저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자비의 주님이신 당신께서는 제가 언제 어디서나 주님만을 바란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1264).

십자가에 팔을 벌리고 계신 예수님, 간구하오니, 언제 어디서나 성부의 거룩한 뜻을 따를 은총을 주십시오. 하느님의 뜻이 어렵고 가혹하여 따르기가 어려울 때에는 주님의 상처를 통해 제게 힘과 능력을 주십시오. 그리고 제 입술로 “오! 주님, 당신의 뜻이 이루어졌나이다” 하고 외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세상의 구세주시며 인류의 구원을 원하시는 이여, 당신께서는 영혼들을 구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그 엄청난 고문과 고통을 잊으셨습니다. 오! 지극히 자비로우신 예수님, 저도 지극히 거룩하신 성부의 뜻을 따라 주님의 구원사업을 돕고자 하오니, 영혼을 구하는 일로 인해 제 자신을 잊게 해 주십시오(1265).

 

파우스티나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하여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문지기 소임

 

파우스티나는 1937년 9월 6일 다신 건강이 악화되어 정원 일을 그만두고 문지기 일을 맡았다. 파우스티나는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새로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은총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즉시 불유쾌한 사건이 발생했다. 문지기 일을 하다 잡무가 생겨 저녁 식사에 늦었다. 그러자 주방을 담당하는 수녀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겸손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그날 밤 파우스티나는 몸이 아파 쉬어야 했다. 그래서 다른 수녀에게 대신 일을 보아 달라고 부탁하자 “피곤해서 누워야 되겠다고요?”하고 핀잔을 주었다. 그래도 파우스티나는 그 말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환자를 간호하는 수녀에게 음식을 부탁해야 했는데 그 수녀는 성당에서 복도로 뛰어나와 “왜 누우려고 해요?” 라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는 아무 음식도 가지고 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건을 일기에 적을 마음은 전혀 없었으나 병든 수녀들이 이러한 대우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파우스티나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 이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 당하는 사람을 게으름뱅이라고 하거나 짐으로 여기지 말고 그를 통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활동할 수 있는 모든 수녀들이 함께 기도하는 것보다 공동체를 위해 더 많은 축복을 얻을 수 있다. 앓는 수녀가 없는 수녀원은 불행하다. 하느님께서는 고통 당하는 영혼들 때문에 많은 벌을 미루시기 때문이다(1268).

오, 나의 예수님! 마음 속에 고귀한 동기를 가지 영혼들을 당신은 언제쯤 보시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판단이 언제쯤이면 진실해지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실천할 기회를 주셨으나 우리는 그것을 벌로 피할 기회로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수녀원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꽃피우기 위해 우리는 여기 있는 병자와 장애자와 불구자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를 당신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1269).

 

주님께서는 무심하기만 한 주위의 수녀들을 보시고 파우스티나를 동정하셨다. 파우스티나는 세계적인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지기 소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며 악한 사람들이 수녀원을 얼마나 증오하는가를 알았고 그들이 수녀원 안으로 침범해오지 못하도록 주님께 기도하였다. 그때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내 딸아, 네가 문을 지킬 때에는 케루빔으로 하여금 같이 지키게 할 테니 안심하여라.”

 

주님과 대화한 후 자신의 소임지인 현관문으로 갔을 때 작고 흰 구름 속에서 팔을 벌리고 있는 케루빔 천사가 보였다. 그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는데 하느님의 사랑이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1271).

9월 14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네가 내 자비에 관해 충분히 기록하였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기록한 것은 대양 속의 물방울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사랑이요 자비 그 자체이다. 내 자비에 견줄 만한 불행은 없다. 내 자비는 주면 줄수록 늘어나기에 고갈되지 않는다. 내 자비를 신뢰하는 영혼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돌볼 것이기 때문이다(1273).

나의 종아, 나는 의인들보다도 죄인들에게 더 자비롭다고 기록하여라. 내가 천국에서 내려온 것도 그들을 위해서이다. 내가 피를 흘린 것도 그들을 위해서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나에게 다가오도록 하여라. 그들은 나의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자들이다”(1275)

 

 

낙태를 위한 보속

 

1937년 9월 16일, 파우스티나는 또 다른 고통에 대한 놀라운 계시를 기록하였다.

 

오늘 나는 성체 대전에서 성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다. 저녁 8시쯤에 견딜 수 없도록 심한 통증을 느껴 침대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세 사간 동안이나 고통에 휩싸였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삼킨 것은 모두 토해냈다. 고통 때문에 이따금 의식을 잃기까지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나를 게쎄마니 동산에서 겪으신 당신의 고통에 참여케 해 주면서 어머니의 모태에서 살해당하는 영혼들을 위해 보속케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렇나 고통을 세 번이나 겪었다. 밤 11시가 되자 고통이 멈추었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심한 피로를 느꼈다.

이러한 고통을 처음 느낀 것은 요양소에서였다. 의사도 그 아픔의 원인을 알아 낼 수 없었고 주사도 약도 듣지 않았다. 그때는 나 자신도 그 고통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나는 이러한 고통을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고 의사 역시도 그 고통의 원인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고통을 다시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떨리고 두렵다. 그 고통이 또다시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기로 했다. 하느님께서 내리시면 순명과 사랑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당하는 그러한 고통으로 한 명의 어린이라도 죽음으로부터 구해 낼 수 있다면………! (1276)

 

 

 

신비로운 은혜

 

파우스티나는 더욱 고통 받기를 원했으나, 그녀의 일기 전편에 나타나 있듯이, 신비스럽게도 하느님과의 일치의 은혜를 끊임없이 받아왔다.

 

말하자면 나는 천사와 같은 방법으로 영성체를 했다. 내 영혼 안에는 하느님의 빛이 넘쳤고 성체를 통해 나는 양육되었다. 이때 본질적인 나의 감정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는 하느님과의 순수한 영신적 일치 때문이었다. 정신이 본성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1278).

주님께서는 내게 아낌없이 주신 은총에 대한 지식을 주셨다. 그 빛은 나를 깊이 꿰뚫고 들어와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불가사의한 호의를 이해하게 하였다. 나는 얼굴을 바닥에 대고 눈물을 흘리면서 오랫동안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일어나려 세 번이나 노력한 다음에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천상 성부께서 가지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주님께서는 나를 바닥에서 당신 성심 가까이로 이끄셨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것들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하느님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1279).

 

이튿날 파우스티나는 여전히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서 그때까지 아낌없이 주셨던 그분의 모든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시를 썼다. 즉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은혜, 갖가지 성사를 받게 하신 은혜, 주님의 사업에 참여하게 하신 은혜, 종신서원을 허락하시고 순수한 사랑의 일치를 이루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시였으나, 그것을 모두 표현하기란 힘든 일이었다(1286).

파우스티나는 풍요한 영성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평수녀로서의 일상생활도 충실히 이행했다. 파우스티나는 문지기 일을 하면서 이웃에게 애덕을 실천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할 기회가 많았다. 한 번 찾아왔던 사람이 또다시 와도 그가 당황하지 않도록 더욱 친절히 대했다. 파우스티나는 그들이 전에도 왔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파우스티나에게 자기의 문제와 욕구를 자유롭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파우스티나를 돕던 수녀들은 “거지에게 이렇게 대하면 안돼요”라며 파우스티나가 그들에게 인사도 하기 전에 문을 쾅 닫아버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주님께 하듯이 불쌍하나 사람들을 항상 친절하게 보살폈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무뚝뚝하게 주기보다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것이다(1282참조).

 

9월 19일에 주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수도자들이 영성체 할 때 다른 음식과 구별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하는 것은 내게 심한 고통이 된다고 적어라. 나는 그들의 마음에서 아무런 신앙도, 아무런 사랑도 발견하지 못한다. 나는 그러한 영혼에게는 마지못해 가고 있다. 차라리 나를 영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1288).

 

파우스티나는 즉시 응답했다.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제게 주님께 대한 사랑의 불꽃을 놓아 주시고, 주님을 닮게 해 주십시오. 제 행위를 거룩하게 하시어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해 주십시오. 매일 영하는 성체의 힘을 통해 이를 이루어 주십시오. 오, 주님! 저는 주님과 같이 되기를 너무나 원합니다”(1289).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이러한 소망을 보고 기뻐하셨고 파우스티나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나 인간이란 원래부터 연약한 존재가 아닌가? 9월 21일,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교훈이 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실수! 이것은 의도적이라기보다 불완전한 탓에 일어났다고 생각된다. 나는 마음에 고통을 느껴 잠시 성당에 들어갔다.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사랑과 고통을 느끼면서 그분께 변명하였다. 오늘 아침에 영성체를 한 후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주님께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한 터인지라 더욱 수치심이 일었다. 그런데 그때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네게 만약 사소한 불완전함이라도 없었다면 내게 올 일이 있었겠느냐? 네가 나를 찾아와 네 자신을 낮추면서 용서를 구할 때마다 나는 전보다 더 풍성한 은총을 내린다. 그리고 내 눈에는 네 불안전함은 보이지 않고 다만 너의 사랑과 겸손만이 보인다. 너는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고 얻는 것이 더 많게 되었다”(1203).

 

 

 

이레네오 원장 수녀의 역할

 

1937년 9월 25일, 이레네오 원장 수녀가 외출하려 할 때 파우스티나는 문을 열어 주면서 원장 수녀의 이 외출이 하느님의 자비심 사업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직감은 옳았다.

이틀 후 원장 수녀는 파우스티나에게 예수님 상본 뒤에 자비심의 5단기도와 예수님 자비심의 호칭기도를 인쇄할 사람을 만나러 가자고 했다. 9월 1일, 소포코 신부는 교회의 인가를 얻어냈다. 출판사에서는 <자비의 왕 그리스도> 라는 제목으로 팜플렛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9일기도와 호칭기도, 5단기도를 수록할 예정이었고 빌니우스의 어느 여자 화가가 그린 상본을 표지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파우스티나는 원본과 거의 같다는 것을 알고 기뻤다. 그 상본을 보자, 파우스티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넘쳐 잠시 무아지경에 빠졌다.

일을 정리해 놓고, 이레네오 원장 수녀와 파우스티나는 지극히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다. 미사 때 주님께서는 이 사업을 통해 구원될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가르쳐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신앙이 전파되는 것을 보여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기도에 빠져들었다.

파우스티나는 이레네오 원장 수녀의 노력에도 감사를 드렸다. 이레네오 원장 수녀는 파우스티나가 포로츠크에서 예수님의 첫 계시를 받은 2년 후 빌니우스에 있을 때 원장이 되었는데 빌니우스에서 파우스티나와 함께 예수님 자비심의 상본을 그릴 화가를 찾아간 적도 있다. 지금은 크라쿠프에서 상본과 소책자를 인쇄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원장 수녀가 주님의 마음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그리고 하느님 자비심의 사업을 실천하려는 이 어려운 시기에 이레네오 원장 수녀의 배려를 받게 해 주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님께 대한 사랑과 두려움 속에 사는 장상들을 만나게 해 주신 것에 감사 드립니다”(1300-1301참조).

 

 

숨겨진 신비

 

파우스티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숨겨진 가운데 특별한 생활을 계속했다. 9월 29일자 일기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특별한 은총을 말하고 있다.

 

나는 오늘 하느님의 많은 신비를 알게 되었다. 영성체를 하고 나서 다음 영성체 때까지 내 마음 안에 계속 예수님이 머물러 계신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저절로 깊은 관상에 잠기게 되었다. 내 마음은 예수님이 거하시는 감실 이다. 하느님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바로 내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의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도 내 존재 깊은 곳에서이다(1302).

 

함께 살고 있는 수녀들은 문지기 일을 조용하면서도 충실하게 하고 있는 이 수녀가 하느님께 선택된 영혼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오히려 기도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꾀병을 한다고 여기는 수녀들이 많았다. 이 당시에 파우스티나가 쓴 일기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가를 알 수 있다.

 

병이 나거나 몸이 약해졌을 때에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일상적으로 하는 일도 저는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상적인 일도 제대로 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얼마나 큰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시고 보상을 주시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시니 사랑으로 한 일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아침에는 왜 그렇게 몸이 좋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어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야 했고 영성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나의 하루는 투쟁으로 시작하여 투쟁으로 끝납니다. 휴식을 취할 때에는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스승이신 주님, 당신만이 이 하루의 의미를 알고 계십니다(1310).

 

9월말 경, 초췌한 모습의 젊은 청년이 수녀원 문 앞에 나타났다. 신발도 신지 않고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옷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습기 찬 날씨에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그는 먹을 것을 달라고 청했다. 파우스티나는 주방에 가서 음식을 찾았으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 놓은 음식은 조금도 없었다. 한참을 뒤지다 수프를 찾아 데워서 빵 부스러기를 넣어 그 젊은이에게 주었다. 얼마 후 파우스티나가 그 청년으로부터 빈 그릇을 받아 들자 그 청년은 자신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라고 밝혔다. 파우스티나가 그가 누구인지를 깨달았을 때 그는 곧 사라졌다. 파우스티나가 문 앞에서 방금 일어난 일을 되새기고 있을 때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내 딸아, 이 문을 지나면서 내게 축복을 구하던 가난한 사람들의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네가 순명의 범위 내에서 자비를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기뻤다. 그리고 그것은 네 자비의 결실을 맛보기 위해 내가 내 어좌에서 내려온 이유이다”(1313).

 

그 순간부터 그녀의 마음은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들에 대한 보다 순수한 사랑이 일었다. 장상들이 그 임무를 맡긴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던가! 파우스티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비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선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이렇게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까! 오, 그리스도님! 주님만이 이를 이해 하실 것입니다”(1314참조).

예수님께서 바로 대답하셨다.

 

“내 딸아, 나는 오로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친 희생만을 원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 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나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순결한 영혼이 자비를 실천하는 희생을 통해 이를 갚을 수 있다.”

 

파우스티나는 “주님, 당신의 말씀에서 저는 제가 얼마나 많은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하고 말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네가 내 말을 이해하고 또 있는 힘을 다해 자비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비로운 행위를 할 수 있는 물질적 여유가 없다고 염려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말을 기록하여라. 특별한 허가도 창도도 필요 없는 정신적인 자비가 더욱 값진 것이라고. 어떤 방법으로든 자비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심판 날에 나의 자비를 얻지 못할 것이다. 영원한 보화를 쌓는 방법을 안다면 심판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자비로 내 심판을 누그러뜨렸기 때문이다”(1317).

 

10월 10일,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다음과 같은 값진 교훈을 얻었다.

 

오, 나의 예수님! 예수님께서 내리신 많은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 제 지성과 의지, 제 마음의 감정까지 모두 당신께 바칩니다. 저는 서원을 통해 제 자신을 모두 바쳤습니다. 이제 주님께 더 바칠 것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딸아, 진정으로 네게 속해 있는 것은 아직 나에게 바치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신을 깊이 성찰하면서, ‘있는 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했는데 아직 바치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하고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주님, 그것이 무엇입니까? 즉시 바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비참한 처지를 내게 바쳐라. 그게 바로 너의 전 재산이 아니냐?”

 

그 순간 한 줄기의 빛이 내 영혼을 비추었다. 나는 비참한 내 처지를 한눈에 보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지극히 신뢰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거룩한 예수 성심께 달려들었다. 오, 예수님! 비록 제가 양심을 억누르는 무거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당신의 자비를 의심하지 않고 뜨거운 사랑으로 당신께 뛰어든다면 당신은 당신 대리자의 손으로 용서하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1318).

 

 

 

위대한 자비의 시간

 

그날 파우스티나는 주님으로부터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신심, 즉 위대한 자비의 시간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오후 세시에 나의 자비를 구하여라. 특히 죄인들을 위하여 내 자비를 구하여라. 잠깐 동안 나의 수난, 특히 고뇌의 순간에 버림받은 나를 묵상하여라. 그 시간은 이 세상을 위한 위대한 자비의 시간이다. 나는 네가 나의 엄청난 슬픔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겠다. 내가 명한 이 시간에 내 수난을 생각하며 청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1320).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기도 시간을 갖기 직전에 할 수 있는 기도문을 기록하였다.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숨을 거두셨지만 영혼들을 위한 생명의 샘은 솟아나고 온 세상을 위한 자비의 바다는 열렸습니다.

오! 생명의 샘이시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시여, 온 세상을 감싸 안으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당신으로 굶주린 자 되게 하여 주십시오(1319).

 

 

 

성인의 탄생

 

10월 20일, 파우스티나는 하느님 뜻에 완전히 승복하고, 특히 하느님께서 맡기신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결심을 글로써 표현했다.

 

오, 하느님! 저의 모든 행위를 통해 창조주이신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제 심장 박동 하나하나까지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케 하고 싶습니다. 모든 영혼들에게 주님의 선하심을 알리고,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자비를 신뢰케 하고 싶습니다. 오, 주님! 현세에서나 후세에서나 이것이 주님께서 제게 맡겨 주신 사명입니다(1325).

 

그날 파우스티나는 다른 수녀들과 함께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이 될 8일간의 피정에 들어갔다. 앞으로 일 년도 못살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이렇게 기록했다.

 

……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지라도, 장상들조차 깨닫지 못하더라도 저는 이 피정에서 성인 되어 나오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제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도록 저는 주님께 제 자신을 모두 맡깁니다(1326).

 

피정 첫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도’인 파우스티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이번 피정이 네게는 조용한 관상의 사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네게는 이번 피정이 영신적 축제가 될 것이다. 너는 내 자비로운 성심 곁에서 네가 받은 은총을 생각하게 되고, 네 영혼은 평화로 감싸일 것이다. 나는 네가 항상 나의 거룩한 뜻을 보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가장 기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희생도 이것과 비교할 수 없다. 이 피정 동안 너는 줄곧 내 성심 가까이 머물게 될 것이다. 너는 네 자신을 바꾸어 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너의 모든 생활을 이끌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피정 강론을 맡은 사제는 네게 어려움을 줄 만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다”(1327).

 

파우스티나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예수님, 저는 주님께 별로 협조하지 못했는데도 주님께서는 제게 성덕의 기초를 놓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 마음이 너무 연약하기 때문에 피조물에 의존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 나의 스승이시여! 제 마음의 고통을 무시하고 사랑의 길에 방해되는 것을 끊어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슬픔에 빠져 있을 때에 저는 주님께서 제 영혼 안에서 주님의 일을 이루고 계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을 이해하고 영신의 자유를 누립니다.”(1331).

그리고 성인이 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결함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거룩한 영혼처럼 싸워 나가고 거룩한 영혼처럼 행동하겠습니다. 거룩한 영혼에게는 그 어떤 일도 실망을 가져다 주지 못하듯이 어떤 일을 당해도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제 삶의 모범이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 눈을 고정시키고 거룩한 영혼처럼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제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 그리스도님! 지금부터 저는 가장 훌륭한 길잡이이신 주님만을 바라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제 모든 노력을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1333).

 

피정 중 어느 날 파우스티나는 성체 대전에서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바라보며 기도하였다. 각 상처를 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강한 은총의 물줄기가 자기 영혼에 쏟아져 들어옴을 느꼈고 천국의 기쁨을 맛보며 하느님의 자비심을 완전히 신뢰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기록할 때 파우스티나는 사탄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이 수녀는 모든 것을 다 적고 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잃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느님은 선하시다고 적지 말아라. 하느님은 정의밖에 모르는 분이다.” 그리고 나서 사탄은 격분하여 사라졌다.(1337-1338).

파우스티나는 다음과 같은 말로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였다.

 

오, 자비로우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저희를 천대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저희를 천국에 들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시고, 주님의 은혜를 저버린 천사들이 비운 자리를 저희가 차지하게 해 주십니다. 오,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반항하는 천사들에게서 눈길을 돌리시고 참회하는 저희를 바라보소서. 이 미천한 마음들을 멸시하지 않으시고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133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이 피정을 마칠 때에 나는 너를 완전한 영혼처럼 대할 것이다. 나는 내 일을 완성하는 데 있어 너를 가장 적합한 도구로 만들고 싶다”(1359).

 

이 말씀을 듣고 파우스티나는 이처럼 대답했다. “제 영혼 가장 깊숙한 곳까지 꿰뚫어 보시는 주님, 당신께서는 제가 어떤 어려움이나 어떤 고통 그리고 남의 이목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원하고 주님의 거룩한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1360).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인이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보니 기쁘다. 네 노력을 축복하고 네 자신을 성화시킬 기회를 주겠다. 내가 너에게 주는 성화의 기회를 잃지 않고, 내 앞에서 겸손되이 신뢰를 가지려거든 완전히 내 자비에 의존하여라. 그러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겸손한 영혼에게 나는 그가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은 호의를 베풀기 때문이다…. “(1361).

 

피정 칠일째에 파우스티나는 자신이 성덕을 얻게 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파우스티나는 그것을 예견하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차 하느님께 모든 영광을 바쳤다. 그리고 어린이와 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그 피정 동안 주님께서 이루어 주신 큰 일들을 기록하였다.

 

나는 이번 피정에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올 것이다. 나는 열심하고 용기 있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내 삶이 겉으로는 변함이 없어 내 변화를 아무도 눈치채기 못할지라도 이제 순수한 사랑이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순수한 사랑의 결심이 바로 자비이다. 나는 완전히 하느님께 감화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는 단조롭고 지루하고 힘에 겨운 일상생활을 내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 성덕으로 바꾸어 주시리라는 신뢰를 가지고 살아 갈 것이다.

이번 피정 동안 깊은 침묵 속에서 내 영혼은 자비로우신 성심 곁에서 성숙해질 것이다. 주님 사랑의 빛 속에서 내 영혼은 신맛을 떨치고 달콤하게 익은 과일이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내 개인의 성덕으로 교회의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땅이 좋은 결실을 맺게 노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지라도 많은 영혼들이 이 과일을 먹었고 또 계속해서 먹으리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1363-1364).

 

피정 팔일 째, 파우스티나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혜택을 상기하면서 하느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피정이 끝나는 날부터 칠일 동안 밤낮으로 엄위로우신 하느님 대전에서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싶었다. 외적으로는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내적으로는 항상 주님 대전에 머물며 감사하는 정신으로 보내기로 했다(1367참조).

파우스티나는 이 계획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일인지를 확인하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혹의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고해성사 때 안드레아 신부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밤에 잠자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다음날 10월 29일부터 파우스티나는 ‘위대한 감사’를 드리기 시작했다(1368-1369참조).

다음의 일기 시작 부분을 보면 성인이 되고 싶어한 것이 최근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의 예수님, 어릴 때부터 제가 성인이 되고 싶어한 것을 알고 계시지요? 저는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소망을 처음에는 당신만이 아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 마음 속에만 묻어둘 수 없습니다. 온 세상에 외치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선하시고 그 자비 크시니, 하느님을 사랑하라”고(1372).

단조로움으로 가득 찬 지루한 날들이여, 이제 나는 엄숙하고 즐거운 눈으로 너를 바라본다. 영원한 천국의 열매를 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 시간들은 얼마나 엄숙하고 위대한가! 나는 성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알게 되었다(1373).

 

피정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1937년 11월 5일 아침, 수녀원 정문을 지키던 한 수녀가 놀라운 일을 당했다. 직업 없이 떠도는 다섯 명의 청년이 문을 밀고 들어오려고 했던 것이다. 수녀는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자 원장 수녀에게 이 일을 알렸다. 원장 수녀는 파우스티나에게 해결하라고 맡겼다. 파우스티나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문으로 가는 도중에 문을 쾅쾅 치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의혹과 두려움이 일었다. 문을 열어 주어야 할지 아니면 그 수녀처럼 문에 달린 조그마한 창을 통해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 속에서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가서 그들에게 문을 얼어 주고 나를 대하듯이 친절하게 말하여라.”

나는 문을 열고 가장 험악해 보이는 사람 앞으로 다가가 조용하고 친절하게 말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라 하더니 “수녀원에서 일거리를 주지 않아 섭섭했습니다”하고 말하고는 조용히 물러갔다. 나는 한 시간 전에 영성체 때 보았던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 안에서 작용하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느님의 영감 속에 일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1377).

 

그러나 사건이 있은 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파우스티나는 아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워서 쉴 허락을 얻으려고 원장 수녀에게로 갔다. 그러나 혼자 문을 지키라는 새 임무를 받았다. 문을 지키는 일을 주던 자매가 정원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파우스티나는 그날 하루 종일 문지기 일을 맡고 있으면서 마음이 든든했다. 다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거룩한 순명으로 일한 때문이었다(1378참조).

11월 10일, 이레네오 원장 수녀는 소포코 신부가 출판한 소책자 <<자비의 왕 그리스도>>를 파우스티나에게 보여 주었다. 파우스티나가 대충 살펴보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이 상본을 통해 이미 나의 사랑에 듬뿍 빠진 영혼들이 많다. 이 사업을 통해 나의 자비가 그 영혼들에게 내릴 것이다”(1379).

 

 

고통을 이길 힘의 원천

 

11월 19일, 예수님께서는 영성체 후에 당신의 비서 파우스티나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주셨다.

 

“나는 모든 영혼들과 일치하기를 원한다. 나는 내 자신과 영혼들을 일치시키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 내 딸아, 내가 영성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 안에 들어갈 때, 내 손은 그들에게 주고 싶은 은총을 듬뿍 들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버려두고 다른 일을 하기에 바쁘다. 오, 사람들이 내 사랑을 깨닫지 못할 때 나는 얼마나 슬픈지 모른다. 그들은 나를 마치 죽은 물체를 보듯 대한다”(1385).

 

그래서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제 마음의 보물이시요, 저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시며, 제 영혼의 기쁨이신 주님, 영원한 영광 속에서 찬미를 받으시듯 제 마음 안에서도 찬미를 받으소서. 수많은 영혼들의 냉담함을 제 사랑을 통해 조금이라도 보상받으소서. 예수님, 제 마음은 주님 아니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주님만의 거처입니다. 주님만이 제 아름다운 정원에서 쉬실 수 있습니다. 오, 나의 예수님! 편히 쉬십시오. 저는 일을 하러 가야 하지만 사랑으로 일하여 주님께 대한 사랑을 증거하겠습니다. 희생을 바칠 기회를 놓치지 않겠습니다”(1384-1386).

그날 하루 동안 파우스티나에게는 희생할 기회가 유난히도 많았다. 그리고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성체성사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다음 글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좋은 점은 모두 성체를 모신 때문이다. 이 거룩한 분은 나를 완전히 변화시키셨다. 오, 주님! 제가 주님께서 머무시는 거처가 되다니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제 마음은 주님께서 언제나 머무시는 성전입니다…(1392).

숨어 계신 예수님, 예수님은 저의 힘입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은 저를 매료시키셨습니다. 제가 일곱 살이었던 어느 날, 성체 앞에서 저녁기도를 바칠 때 저는 처음으로 하느님이신 주님의 사랑이 제 작은 마음을 가득 채움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때 하느님의 일들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숨어 계신 주님께 대한 저의 사랑은 끊임없이 성장해 왔고 지금과 같은 친밀함을 낳았습니다. 제 영혼의 모든 힘은 성체성사에서 나옵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모두 당신과 대화하면서 보냅니다. 주님은 저의 스승이십니다(1404).

 

11월 26일 월피정 날, 파우스티나는 고통의 가치를 더욱 깊이 깨달았다. 즉 고통은 예수님을 닮는 길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다른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보여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고통 가운데서도 심오한 평화를 느꼈다. 하지만 평화를 느낀다고 해서 고통이 경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파우스티나는 그 상태를 “육체 고통으로 인해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져도 영혼은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다”고 기록하였다.

그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충실한 비서에게 이같이 말씀하셨다.

 

“죄인들이 내 자비를 안다면 그토록 떼를 지어 멸망의 길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죄인들로 하여금 내게 다가오는 것을 두렵게 여기지 않도록 하여라. 그들에게 내 큰 자비를 알려라. ….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잃을 때마다 나는 큰 슬픔을 느낀다. 네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그것이 나에게는 항상 위로가 된다. 나는 가장 기쁘게 하는 기도는 죄인들을 위한 기도이다. 내 딸아, 이러한 기도는 내가 항상 들어 준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1396-1397).

 

또한 그날 파우스티나는 다가오는 대립절을 위해 지극히 복되신 성모님과 일치하여 주 예수님의 오심을 침묵과 관상으로 준비하려는 결심도 했다.

11월 21일, 소포코 신부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는, 하느님께서는 행동보다 기도와 희생을 요구하신다는 것과 새 수녀원을 설립 했으면 하는 소망을 전했다. 파우스티나의 ㅇㄹ기를 보면 그의 편지를 보고 실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제 소포코 신부님의 편지를 받았다. 하느님의 사업은 진행되고 있지만 대단히 서서히 이루어짐을 알았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뻤고 기도도 배로 해야 했다. 내가 이 일에 참여하고 있는 한 주님께서는 오로지 기도와 희생을 요구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포코 신부님도 말했듯이 나의 행동이 하느님의 계획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오, 나의 예수님! 주님께 순명하는 도구가 될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 나는 이 편지를 읽고서 주님께서 사제에게 내리시는 빛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숱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를 통해 당신의 사업을 이루어가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하느님의 사업이 위대하고 아름다울수록 거기에 밀려오는 폭풍이 더 거세다는 것을 나는 안다(1401).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해도 이 지상에서는 그 결실을 맛보지 못하게 하시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천국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당신께 얼마나 큰 기쁨인지 보여주시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큰 투쟁과 시련을 위한 힘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비통함만 맛보신 구세주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일 것이다(1402).

 

파우스티나는 이제 정신적인 투쟁을 벌여야 했다. 1937년 11월 30일 저녁, 하느님과 관계된 모든 일이 갑자기 싫어졌다. 그때 사탄이 하는 말이 들렸다. “이 일에 대해서는 생각도 말아라. 하느님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마냥 자비로운 분이 아니다.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아라. 그들은 결국 단죄를 받을 것이다. 네가 자비를 외쳐도 단죄 받고 말 것이다. 네 고해신부에게, 특히 소포코 신부와 안드레아 신부에게 하느님의 자비에 관해서는 거론 하지도 말아라.” 이때 방금 전의 목소리의 주인공이 수호천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자 파우스티나가 말하였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 알아. 너는 거짓말의 아버지야.” 파우스티나가 십자성호를 긋자 사탄은 광분하며 사라졌다.

이튿날,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과, 머리카락 하나도 당신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손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405-1406참조).

12월 어느 날 영성체를 할 때, 파우스티나는 성합에 담긴 것 중 주님께서 살아 계신 성체는 하나밖에 없는 것을 보았다. 영성체를 한 후 자리에 돌아와서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주님께서는 모든 제병마다 각각 현존하시는데, 어떻게 성합 속에는 살아 계신 성체가 하나밖에 없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다. 모든 제병마다 내가 똑같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다 너와 같이 생활한 신앙으로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내 딸아, 그러므로 나는 모든 영혼 안에서 너에게서처럼 행동할 수는 없는 것이다”(1047).

 

그 후 파우스티나는 소포코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했다. 미사 때 손가락으로 그 신부의 이마를 만지시는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이 사제의 생각은 나와 일치해 있다. 그러니 내 일에 관해서는 안심하여라. 나는 그가 실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너도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파우스티나의 영혼은 모든 일에서 평온을 유지하였고 그 후부터 하느님의 사랑과 배려를 더욱 잘 깨닫게 되었다. 주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의 뜻을 따르고 시련을 겪게 하시는 것은 우리의 공적을 위해, 또한 우리의 충실성이 드러나기 위한 것임을 보다 잘 이해하게 해 주셨다. 이로 인해 파우스티나는 고통을 당하고 자기 부정을 위한 힘을 더욱 얻게 되었다(1408-1409참조).

 

 

티없으신 마리아께 대한 사랑

 

파우스티나는 열정적인 마음으로 동정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 대축일을 준비했다. 파우스티나는 그 축일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성모님의 생애에 대해 묵상하고 하느님께서 성모님께 베푸신 은총을 감사했다. 그러면서 마음은 완전히 성모님과 일치해 있었다. 파우스티나는 수녀원에서 공적으로 바치는 9일기도 외에도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9일 동안 하루에 수천 번씩 성모송을 바치며 찬미했다. 그러한 9일기도는 그녀에게 있어 세 번째였다. 앞서 두 번은 일상적인 수도생활을 할 때였고 또 한 번은 요양소에 있을 때였다. 이러한 기도를 바치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집중이 필요했지만 그것으로 티없으신 성모님을 기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축일 전날인 12월 7일 점심 때 파우스티나의 노력을 축복해 주시면서 파우스티나 자신에 관한 일들을 알려 주셨다. 즉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다시 말해 주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신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도 생생하고 분명하여 파우스티나는 오랫동안 하느님의 현존 속에 묻혀있었다. 그리고 12월 8일에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 영성체를 하기 전에 나는 무한히 아름답고 복되신 천상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내 딸아, 하느님의 명에 의해 나는 특별한 방법으로 너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러니 너도 특별한 방법으로 나의 딸이 되기를 바란다. …… 내 사랑하는 딸아,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고 나아가 하느님께도 가장 큰 기쁨이 되는 세 가지 덕을 실천하여라. 첫째의 덕은 겸손, 둘째의 덕은 순결, 그리고 셋째의 덕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다. 너는 내 딸로서 특별히 이러한 덕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 뒤 성모님께서는 당신 성심 가까이로 나를 끌어 안으시더니 사라지셨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놀랍게도 내 마음은 이 세 가지 덕으로 끌리고 있었다. 나는 이 덕을 충실하게 실천하게 되었고 내 마음 속 깊이 새겼다. 이 날은 나에게 중요한 날이 되었다. 나는 하루 종일 끊임없는 묵상에 잠겨 있었다. 이 은총에 대한 생각, 그 자체가 더욱 더 나로 하여금 묵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았다. 이 은총을 생각할 때마다 내 자신을 잊고 하느님께 대한 새로운 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

오, 나의 주님! 제 영혼은 너무도 비참한데 어떻게 이토록 큰 은총을 베푸십니까? 주님은 크신 분이시지만 저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고 저는 미소한 존재이기에 더욱 기쁩니다.

오! 고통 받으시는 그리스도님, 주님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주님의 정배로서 주님을 닮으렵니다. 주님께서 받으신 치욕의 외투를 제게 씌워 주십시오. 오, 그리스도님! 제가 얼마나 주님을 닮고 싶어하는지 알고 계시지요? 주님의 수난이 모두 제 것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슬픔을 모두 제게 부어 주십시오.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 방법으로 주님께서 제게 이루어 주시리라 믿습니다(1414-1418).

 

그 달 첫 목요일, 파우스티나는 몸이 약해져 야간 성체조배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는 수녀들과 일치하고 있었다. 새벽에 갑자기 잠이 깼을 때 4시에서 5시 사이에 기도에 참여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수녀들 중에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파우스티나는 마음으로 그 기도에 참여했는데, 몸은 침실에 있었지만 제대 위에 현시된 성체가 보였다. 그때 영광으로 가득 찬 모습을 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수녀들이 보이는 믿음직한 신앙이 나를 기쁘게 하는구나. 성체를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나는 성체 하나하나에 살아 있다. 그러나 내가 영혼 안에 들어가 활동하려면 그들이 먼저 신앙을 가져야 한다. 생활한 신앙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가”(1420).

 

그 기도 시간에는 이레네오 원장 수녀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파우스티나는 원장 수녀의 기도가 하늘에까지 닿았다는 것을 알았다. 파우스티나는 하느님께 그토록 기쁨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기뻤다.

 

 

 

영혼들을 위한 고통

 

신비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신체의 고통이 심해질수록 영혼들을 구하려는 욕망도 커졌다. 짧은 순간이기는 하지만 가시관을 쓴 듯한 심한 통증을 느낀 후에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리스도님, 저에게 영혼들을 주십시오. 저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고 대신 영혼들을 저에게 주십시오. 저는 그들의 구원을 원합니다. 그 영혼들이 주님의 자비를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제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 다 영혼들에게 주었습니다. 심판 날에 저는 빈손으로 서 있을 것입니다. 영혼들에게 모든 것을 주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저를 심판하실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며 우리는 그날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가(1426).

 

다음 발췌문을 보면 파우스티나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성체 안에 숨어 계신 주님처럼 파우스티나의 고통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숨겨져 있었다.

 

최근 한 달 동안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다. 기침할 때 마다 폐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때때로 내 몸이 완전히 썩는 것 같았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표현할 길이 없다. 내 자유의지로 받아들인 것이기는 하지만 고복을 입거나 피가 맺히도록 채찍질 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한 고통이었다. 식당에 가면 고통이 더 심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기 위해서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이때부터 장이 많이 나빠졌다. 양념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며칠 밤을 고통과 눈물로 몸부림쳐야 했다. 이러한 고통을 나는 모두 죄인들을 위해 바쳤다. 그러나 고해신부님에게, 죄인들을 위해 이러한 고통을 참아내야 할지 장상들에게 말씀 드려 좀 부드러운 음식을 처해야 할지 물어보았다. 고해신부님은 장상에게 말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청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신부님의 말씀을 따랐는데, 이러한 겸손이 하느님의 마음에 든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몸이 계속해서 썩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걸어 다니면서 일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것은 환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심한 통증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환상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수녀님이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찾아왔다. 잠깐 사이인데도 그 수녀님은 얼굴을 무섭게 찌푸리며 말했다 “수녀님, 무엇이 완전히 썩은 것처럼 여기서 송장 냄새가 나네요, 아유 무서워!” 그래서 나는 “놀라지 마세요, 수녀님, 내 몸에서 나는 냄새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 수녀님은 놀라더니 잠시도 있지 못하고 나갔다. 그녀가 나간 후 나는 하느님께서 그녀로 하여금 냄새를 맡게 하시어 나에게서 의혹을 떨쳐내고, 또 전 공동체로부터 이 고통의 의미를 숨기도록 하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오, 예수님! 오직 예수님만이 이 희생의 깊이를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에 가면 나는 내가 음식을 까다롭게 먹는다고 비난하는 시선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러한 때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성체 대전으로 나아가 하느님께로부터 힘을 얻고 했다. 여기 기록한 것은 그 전부가 아니다(1428-1431).

 

 

1937년의 성탄절

 

파우스티나는 침묵과 고통 그리고 하느님이 주시는 힘과 자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성탄 며칠 전, 안드레아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으러 갔는데 그는 자기 생각을 그녀에게 전하였다. “가능한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 하십시오. 그리고 수녀님 자신과 이 세상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비를 지극히 필요로 합니다”(1432).

성탄 이틀 전 식당에서 식사 전 독서 때 “내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여 탄생하신 날입니다” 하는 말씀을 듣고 파우스티나는 하느님께 대한 빛과 사랑으로 넘치며 강생의 신비를 깊이 통찰했다. 파우스티나는 그날의 일기를 “성자의 강생의 신비에는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넘쳐 흐르는가”(1433)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였다.

 

오늘 주님께서는 그날을 앞당겨서 인류의 죄에 대한 의당한 분노를 보여 주셨다. 그러나 이 세상은 선택된 영혼들, 즉 수도자들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도회가 없는 세상에는 화가 있을 것이다(1434).

 

성탄 전야였다. 영성체 후에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에 관해 가졌던 걱정을 파우스티나에게 알려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그것을 “그러나 그 걱정은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이라기보다 기쁨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기록하였다(1437참조).

이날 파우스티나는 저녁식사를 하러 가기 전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으로나마 웨이퍼(주, 축일을 축하할 때 나누어 먹는 과자)를 나누기 위해 성당으로 갔다. 이것은 주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다 먼저 기도를 하면서 그들 모두에게 은총을 내려 달라고 청하였고 그 다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께 기도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기도가 주님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알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도 각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대단히 기뻤다(1438참조).

식당에서 식사 전 독서를 할 때 파우스티나는 깊은 관상에 잠겨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내려다보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때 파우스티나는 천상 성부와 함께 있었다.

 

영원히 묵상해야 할 삼위일체, 수백 년을 묵상해도 극히 일부밖에 하니 못할 삼위일체께 대한 깊은 지식을 나는 얻었다. 인간으로 하여금 지존하신 하느님의 복락에 참여케 하신 하느님의 자비는 얼마나 위대한가(1439참조).

저녁식사 전에 웨이퍼를 나눌 때 온통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넘쳤다. 이레네오 원장 수녀님은 “수녀님, 하느님의 일은 서서히 진행됩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고 말했다. 모든 수녀들은 원장 수녀님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있기를 빈다고 인사하였다. 그러나 한 수녀만은 진정한 마음으로 인사하지 않았는데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에게 큰 사랑을 베풀지 않으셨다. 그것은 거룩한 일 가운데서도 자기 자신만을 찾기 때문이었다. 오, 나에게 길을 잘못 들어서지 않게 해 주신 주님은 얼마나 선하신가! 주님께서는 그가 겸손한 만큼 그를 지켜 주신다는 것을 나는 안다. 위대하신 주님께서 한 영혼과 대화를 하시는 것도 그가 겸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교만한 영혼에게서는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신다(1400참조).

 

파우스티나는 자정 미사 때까지 개어 있으려고 했으나 몸이 아파 잠이 들었다. 그러나 미사 시작 종이 울리자 즉시 깼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겨우 옷을 입고 나갔다. 파우스티나는 이때 느낀 것을 일기에 기록하였다.

 

미사가 시작된 처음부터 깊은 관상에 잠기게 되었다. 그때 찬란하게 빛나는 마굿간을 보았다. 지극한 사랑에 잠기신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고 계셨고 요셉 성인께서는 잠들어 계셨다. 잠시 후, 나는 작은 손을 나에게로 뻗치시는 아기 예수님과 함께 남게 되었다. 나는 아기 예수님을 안아 드리고 싶었다. 예수님께서는 머리로 내 가슴을 밀었다. 그 눈빛으로 보아 내 곁에 계시는 것이 좋으신 모양이었다. 그때 예수님은 사라지고 영성체 벨이 울렸다. 내 영혼은 기쁨으로 넘쳤다. 그러나 미사가 끝날 무렵에는 힘이 너무 없어 침실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함께 나누는 다과회에 참여할 수 없었으나 성탄절인 그날 내내 항상 주님과 일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쁨은 계속되었다. 나는 모든 영혼들이 하느님의 위로를 구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위로 또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두 위로는 양립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성탄절 동안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세상에서 이러한 정신적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되니 기뻤다. 오, 나의 예수님! 이 모든 일로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1442-1444).

 

파우스티나는 견디기 힘든 고통 가운데서도 예수님과는 계속 일치되어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 주러 오지 않았고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아 슬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오해하고 비난해도 개의치 않았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사람들은 영혼을 지각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육체를 보고 그것에 따라 판단한다. 천국이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만큼 하느님의 생각도 우리 생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낄 것이다(1445).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가르치셨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너는 자비와 사랑을 통해 나의 모습을 비추어야 한다.”

 

파우스티나는 “사람들은 제 선함을 악용하기도 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네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너는 사람들에게 항상 자비롭게 대하기만 하면 된다. 특히 죄인들에게.”

“사람들이 영성체 중에 나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고통이 되는지 아느냐. 나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나 그들은 나에게 무관심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들을 진실히 사랑하지만 그들은 나를 불신한다. 나는 그들에게 아낌없는 은총을 주고 싶어하는데 그들은 받아들이기를 한사코 거부한다. 내 마음은 사랑과 자비로 가득 차 있으나 그들은 나를 생명이 없는 물건처럼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자녀에게 지극한 사랑을 보이지만 자녀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어머니를 생각해 보아라. 아무도 그 어머니를 위로해 주려고 하지 않는다. 나의 사랑도 그곳과 비슷하다.

내 자비에 관해 기록하고 말하여라. 사람들이 어디에서 위로를 찾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어라. 위로 받을 곳은 자비의 법정인 화해의 성사이다. 그 곳에서는 위대한 기적이 일어나고 또 반복되고 있다. 기적을 얻으려고 순례를 하거나 거창한 행사를 벌일 필요가 없다. 다만 하느님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찾아가 자신의 비참함을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하느님의 자비의 기적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의 영혼은 썩어가는 시체와 같이 사람들이 보기에도 치유가 불가능해 보이나 하느님 앞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하느님의 자비의 기적은 영혼을 완전히 치유시킬 수 있다. 이 하느님 자비의 기적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가. 울부짖을 그때에는 이미 때가 늦을 것이다”(1446-1448).

 

이것은 예수님께서 1937년에 파우스티나에게 마지막으로 내리신 메시지였다. 새해를 맞기 이틀 전, 파우스티나는 몸이 너무 아파 침대에 누워 있었다. 심한 기침, 장의 끊임없는 통증 그리고 메스꺼움으로 몸은 탈진 상태였다. 수녀들은 새해를 맞으려고 밤 11시에 일어났다. 파우스티나는 한 해를 보내면서 드리는 그 기도에 마음으로 나마 참여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저녁부터 한밤중까지 몸부림칠 정도로 고통이 심해서, 죄인들을 대신해 하느님께 보속하는 수녀들의 기도에 자기 고통을 보태는 수밖에 없었다.(1451참조).

시계가 밤 12시를 알리자 파우스티나는 깊은 관상에 잠겼고,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혼자가 아니다. 용감하게 싸워라, 내 팔로 너를 받치고 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해 싸우고, 그들이 내 자비를 신뢰하도록 권고하여라, 이것은 이 세상과 그리고 저 세상에 가서의 너의 임무이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 말씀을 듣고 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단죄하시지 않기에 단죄를 바라는 사람만이 단죄 받을 것이다(1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