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서원 (1928~1932)

 

바르샤바에서

1928년 10월 31일, 파우스티나는 바르샤바의 수녀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그녀가 지원자로 있으면서 처음으로 주방일을 했던 곳이다. 그러나 파우스티나의 건강은 장상들의 보살핌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지지 않았다. 한 달이 넘도록 입원해 있으면서 다른 동료 수녀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난처라고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길밖에 없었다. 파우스티나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주님께서는 한 영혼을 당신 가까이로 이끌고자 하실 때에 그에게서 외적인 것들은 모두 제거하신다. ……… 장상들은 아픈 사람을 열심히 간호해 주지만, 주님께서는 내버려두신다.

하루는 미카엘 원장 수녀가 파우스티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녀님을 십자가를 진 사람으로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실지 모르니 주님께 충실하십시오”(149).

그러나 수녀원 내에서는 파우스티나가 꾀병을 앓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소문은 파우스티나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한동안 그것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면서 파우스티나를 괴롭혔다. 파우스티나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될 뿐이라고 예수님께 불평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영혼들이 네 고통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 네가 받는 그 오랜 고통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내 뜻을 받아들일 빛과 힘이 주어진다”(67).

어는 원로 수녀는 파우스티나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다는 말을 듣고, 하느님께서는 성인들과는 그러한 관계를 맺으시지만 죄인들과는 그렇치 않으신다며 그것은 분명히 환상일 것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젊은 파우스티나가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다소 불신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침 대화 때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예수님, 이 모든 것이 환상은 아닌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사람은 아무도 속이지 않는다”(29).

파우스티나는 자기 영혼 안의 의혹이 짙어지자 놀라움도 심해졌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의혹이 더욱 심해져 고해신부와 장상들에게 빛과 조언을 구했지만 아무런 만족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한 장상만은 파우스티나의 영혼 상태와 하느님께서 그를 위해 마련한 길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위로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 장상은 파우스티나로부터 보다 솔직한 고백을 듣더니 과연 이러한 은총이 있을 법한 일인가 하고 이상하게 여기고 더 이상 도울 방법이 없다며 파우스티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당신 피조물과 이러한 식으로 대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수녀님이 겁나요. 일종의 환상이 아니겠어요? 사제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러나 사제들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문제는 장상들과 의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서 장상에게서 사제로, 사제에게서 장상에게로 찾아다녔으나 아무런 평화도 얻을 수 없었다. 주님의 은총은 파우스티나에게 오히려 고통의 원천이 되었다. 그래서 “주님, 저는 주님이 두렵습니다. 제게 나타나시는 당신은 유령이 아닙니까?” 하고 묻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주님이심을 확신시키려 애쓰셨지만 그녀의 두려움은 여전했다. 파우스티나가 불신하면 할수록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일들이 틀림없이 당신 자신이 하시는 일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시려 하셨다.’

파우스티나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장상과 다른 수녀들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실제로 오랜 기간 동안을 악령들린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연민의 눈길을 받기도 했다. 또한 장상들은 다른 수녀들에게 파우스티나를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기도했다. 동료들조차도 자신을 악령들린 자로 여기자 파우스티나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은총을 피히려 해도 그것은 자기 능력 밖의 일이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하느님 현존 안에 깊이 잠기며 주님께 완전히 의존되기 때문이었다(122-123참조).

 

 

폴란드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시에나의 가타리나, 쟌 다크 등 대부분의 성인들의 삶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듯이 파우스티나의 영성생활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과 성모님으로부터 조국, 폴란드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원장 수녀에게 허락을 받아 매일 한 시간씩 9일기도를 바치되 성모님과 일치하여 바치라고 요구하셨다.

“성모님과 함께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여라. 또한 이때 십자기의 길도 바쳐라.”

파우스티나는 한 시간의 시간을 얻어내지 못할 때는 일과를 더 부지런히 하고 시간을 내어 조국을 위한 9일기도를 바쳤다. 이렛째 되던 날, 파우스티나는 성모님을 보았다. 그때 흰옷을 입은 성모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가운데 서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계셨다. 가슴에서는 찬란한 빛이 나왔는데 한 빛줄기는 폴란드를 감싸고 있었다(32-33 참조).

한번은 예수님께서 폴란드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소돔과 고모라에 내렸던 벌로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분노를 보여 주셨다. 그것을 본 파우스티나가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며 조용히 기도드리자 잠시 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미사 때 나와 일치하여, 그 도시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내 피와 상처를 성부께 바쳐라.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쉬지 않고 계속하여라. 이러한 기도를 칠 일 동안 계속하여라.”

이렛째 되던 날, 파우스티나는 또다시 흰구름 위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보았는데 파우스티나는 벌하시려던 그 도시와 자기 조국을 자비로이 보아 주시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내려다 보셨다. 파우스티나가 예수님의 친근한 표정을 보고서 축복해 달라고 다시 간청하자 예수님께서는 “너를 위해 그 나라에 축복을 내린다”고 말씀하시면서 폴란드를 향해 십자 성호를 그으셨다. 하느님의 선하심에 파우스티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쳤고 그때부터 조국을 위해 더욱 열렬한 마음으로 매일 기도하였다(39참조).

 

 

새로운 과업

1929년 2월 21일, 파우스티나는 세 번째 서원갱신을 위해 바르샤바로 돌아오는 페트로넬라 수녀를 대신해서 빌니우스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두 달 동안 파우스티나는 주방 소임을 맡았다. 그곳의 분원장인 이레네오 크쥐자노프스카도 파우스티나가 그곳에 오래 머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파우스티나는 4월 11일, 바르샤바의 쥐트니아가(가)로 되돌아 갔고 6월에 다시 바르샤바의 한 귀퉁이에 있는 크라쿠프의 헤트만스카가 44의 유세피넥에 갔다. 그곳에서도 역시 주방일을 했다. 새로 지은 집은 쥐트니아가의 원장이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파우스티나는 7월에 포츠만 부근의 키네르크쉬로 갔다. 그곳에 있는 므데스타 제트코프스카 수녀가 앓아 누웠기 때문이었다. 10월까지 그곳에 있다가 그로후프에 와서는 정원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또다시 파우스티나는 쥐트니아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때 파우스티나를 돕던 처녀들이 같이 따라가겠다고 나섰는데, 이를 보면 그녀의 성격이 좋았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왜 이동이 잦았을까? 혹자는 파우스티나가 그렇게 하기를 좋아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파우스티나는 그렇게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이 대단히 괴로운 일이나 하느님의 뜻을 믿고 그것을 거역하지 않는다고 동료에게 말한 적이 있다. 미카엘 총장 수녀는 같은 일을 여러 번 시켜도 파우스티나는 아무런 군말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파우스티나는 바르샤바에 돌아온 후 다시 질병에 시달렸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자기 임무를 다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지는 예수님만이 아실 것이다. 그곳은 수녀들 외에도 다른 식구들이 스무 명이나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욱 견디기 어려웠던 일은 하느님께 충실하기 위해 자주 명상에 잠기고 좋은 지향을 가지고 일하는 것들을 동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경멸하는 것을 참아내는 일이었다. 또 한편 파우스티나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장상 수녀들까지도 자기 말을 믿지 않고 더구나 무슨 환상에 빠진 사람처럼 취급하는 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왜 일일이 장상에게 보고하라고 명령하시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38참조).

 

 

티없는 순결

1929년 4월말경,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당신의 영원한 사랑을 주어 그녀의 순결이 때묻지 않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유혹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 하시며 그 증거로 금빛 띠를 파우스티나의 허리에 감아 주셨다. 이 일은 수녀들이 서원을 갱신하던 날 영성체 전에 일어났다. 말씀 그대로 파우스티나는 그후로 전혀 유혹을 느끼지 않았는데 그것을 그녀는 성모님의 중개로 얻은 특별한 은혜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이미 여러 해 동안 파우스티나는 성모님께 그것을 위해 기도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성모님께 대한 신심도 더욱 돈독해졌다(40참조).

 

프로츠크에서

1930년 5월경 파우스티나는 프로츠크로 갔다. 그곳은 조용하고 별로 활기가 없어 보이는 중소도시였지만 지에린스키와 신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엄청난 장서를 보면 한때 이름있는 도시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장터 부근의 프에카르스카 거리 끝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수호천사의 집이 있었다.

파우스티나는 처음에는 그곳에서 주방 일을 하였으나 몇 개월 후 더 이상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10km 떨어져 있는 시골, 비알라에 있는 수녀들의 휴양소로 가게 되었다. 파우스티나는 거기서 1930년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내면서 몸이 좀 나아지나 다시 빵굽는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은 몸을 피곤하게 하고 마음을 산만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다. “일에 빠져 하느님을 잊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성체 안에 숨어 계신 주님의 발 아래서 보내겠다. 주님께서는 나를 아주 어릴 때부터 이끌어 주신 분이 아니신가”(82). 파우스티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주님의 힘과 지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느님 자비의 상(像)에 대한 계시

1931년 2월 22일, 파우스티나는 자신의 사명에 관한 첫 계시를 받았다. 그것은 하느님의 친구요, 비서요, 자비의 전달자로서의 사명이었다. 파우스티나는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저녁에 내 침실에서 나는 흰 옷을 입으신 주님을 보았다. 한 손은 가슴에 얹으시고 한 손은 축복을 하시려는 듯 들고 계셨다. 가슴에서는 두 줄기의 빛이 비춰 나왔는데 하나는 붉은 빛이었고 또 하나는 엷은 빛이었다. 나는 아무 말없이 주님을 바라보았다. 내 마음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큰 기쁨에 넘쳤다. 잠시 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본 대로 상(상)을 그려라. 그리고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라는 말을 넣어라. 나는 이 상이 먼저 네가 있는 성당에서 공경받기를 원하고 그리고 전 세계에서도 역시 공경받기를 원한다.
나는 이 상을 공경하는 자들이 멸망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부터 특히 임종 때에 적으로부터 승리하도록 하겠다. 나는 이 상을 내 영광으로서 지킬 것이다.”

내가 이 말을 고해 신부님에게 전했을 때 “그것은 당신 영혼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마음 속으로 그 상을 그려 보십시오”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고백소에서 나올 때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렸다.

“네 영혼 속에는 이미 내 상이 들어있다. 나는 자비의 축일이 제정되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붓으로 그린 내 상이 부활 후 첫 주일에 축성되기를 바란다. 그 주일은 자비의 축일이 될 것이다.
사제들이 내 큰 자비를 죄인들에게 선포하기 바란다. 죄인들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여라. 내 자비의 불길이 나를 태우고 있다. 나는 이 자비를 죄인들에게 쏟아부어 주고 싶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당신의 불만을 호소하셨다.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선택된 자들의 불신은 나에게 더 심한 고통을 가져다 준다. 내 넘치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를 믿지 않는다. 나의 죽음으로도 그에게는 충분하지 못한 모양이다. 슬프구나. 나의 이 ‘선물’을 낭비하는 자들아!”

주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원장 수녀님에게 전했더니,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할 만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께 “발현하신 분이 진정 나의 하느님이요 주님이신지, 이 요구가 과연 주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마음 속에서 이러한 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 상을 통해 내리게 될 은혜를 보면 원장 수녀도 보다 확실히 믿게 될것이다.”

내가 이러한 내적인 영감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자 하느님께서는 “심판날에 수많은 영혼들의 구원이 너에게 달려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47~52).

 

 

비난의 시련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상을 그리라는 말씀이 있은 직후부터 수녀들은 드러내놓고 파우스티나를 히스테리 환자나 몽상가로 보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금방 퍼져 나갔다. 파우스티나를 동정하는 한 수녀가 심각하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수녀님이 공상에 빠져 있다고들 말해요. 환상을 보고 있는 모양인데 정신을 차리세요.”

파우스티나는 매일 이러한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침묵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그에 관해서는 어떠한 질문을 해와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떤 수녀들은 그러한 침묵에 화를 내기도 했다. 호기심이 많은 수녀들이 특히 더 그러했다. 그러나 사려깊은 수녀들은 “파우스티나가 저토록 심한 고통도 견뎌내는 것을 보면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것이 사실인가봐” 하고 말하기도 했다. 마치 두 딥단의 심판관들 사이에 서있는 것 같았다. 파우스티나는 수녀들이 직접 물어도 자기 자신에 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인내가 그들의 속을 태웠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일을 조용히 견뎌낼 내적인 힘을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 영적 지도자를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때까지도 파우스티나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시오. 당신은 지금 바른 길을 걷고 있소”라든가 “주위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시오.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말들이 아니오”라는, 정작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한 불확실한 상태가 계속되자 파우스티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기도했다. “주님, 간청하오니, 제 영혼을 이끌어 주시고 제 영혼과 함께 하소서.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25~127 참조).

얼마 동안 수녀들의 비방이 잠잠해지고 고통스럽던 마음도 평온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심한 불신이 다시 일어났던 것이다. 수녀들은 과거의 의혹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규탄을 일삼았다. 더욱이 파우스티나가 하는 일마다 실수가 잦아 그로 인해 수녀들로부터 더욱 오해를 받았다.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나는 하느님만이 아실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128).

하루는 어떤 원장 수녀가 “히스테리칼한 공상가는 이 방에서 나가시오”라고 말했다. 그로 인해 심한 굴욕감을 느낀 파우스티나는 머리 속이 온갖 상념으로 가득 차서 견뎌내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모든 것을 감추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사탄은 그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여 그녀로 하여금 좌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파우스티나는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이것이 주님께 드린 충실과 성실에 대한 보답인가? 이렇게 오해를 받는데도 어떻게 성실할 수 있단 말인가?’ 파우스티나는 침실로 가서 십자가에 얼굴을 대고 “예수님, 이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외쳤다. 식은 땀이 나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럴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마음속에서 이런 말씀이 들렸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이상한 빛이 마음을 비추었고 슬픔 속에 자신을 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힘이 솟아 어떤 고통도 감내하겠다는 용기를 가지고 파우스티나는 밖으로 나왔다.

파우스티나는 환상의 제물이 되지는 않겠다는 생각에서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영감을 떨쳐 버리려고 때때로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프로츠크에서 보낸 2년 반 동안 계속 환시를 볼 수 있는 은혜를 내려 주시면서 기쁨과 고통을 번갈아 체험토록 하셨다. 그러나 고통이 절정에 달하자 파우스티나는 어느 날 종신서원을 하기 전에 모든 의혹을 떨쳐 버리기로 결심했다(130~132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