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해 (1936)

 

새 수도회

1936년 1월초, 파우스티나는 빌니우스의 로무알트 알브쥐코프스캐 대주교를 찾아갔다.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가 내리도록 기도하고, 또 이 세상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할 수도회가 있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일 년 전에도 대주교를 찾아가 예수님의 요구를 실행할 허락을 청했었는데, 그때 현재의 수녀원을 떠나려는 생각은 유혹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이때 대주교는 파우스티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곧 이루어지겠지요. 수녀님, 기도에 관한 문제라면 허락뿐 아니라 제가 부탁을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만큼 가능한 많이 내리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수도회 문제는 때가 될 때까지 잠시 기다리십시오. 그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곧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수도회의 종류는 많지만 하느님의 뜻이라면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십시오. 하느님과 보다 일치를 이루도록 애쓰고 낙담하지 마십시오”(585).

기쁜 마음으로 대주교의 방을 나설 때 마음 속으로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네 마음을 확신시키기 위해 나의 대리자로 하여금 네게 요구했던 바와 같이 말하게 하였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여라. 때로는 여러 가지 일에서 너를 반대하여 나서기도 할 것이다. 바고 그런 일을 통해 네 안에서 나의 은총이 드러나고, 이 일이 내가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명백해 질 것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내 딸아, 모든 피조물들은 자기들이 알든 모르든 또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있는 것이다”(586).

주님께서 주신 이러한 확신으로 한동안 마음은 평화로웠다.

 

고통의 신비

1월 29일, 파우스티나는 환시를 통해서 본 고해신부의 고통과 그 신비에 관해 기록하였다. 파우스티나는 부분적으로나마 자기 고해신부에게 가로놓여 있는 상황과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시련을 볼 수 있었다. 고해신부가 처한 상황이 애처로워 동정을 느끼며 하느님께 “왜 신부님을 이렇게 대하십니까?” 하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것은 동정, 사제직, 순교를 뜻하는 삼중의 관이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이 지상에서 예수님을 닮는 자에게는 무한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셨다. 천상 성부께서는 우리가 당신 성자와 닮은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를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실 것이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닮을 기회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하느님께서 당신 정의를 행사하시는 순수하고 무죄한 영혼들을 본다. 이러한 영혼들은 이 세상을 지탱하는 희생자요, 예수님의 수난으로도 부족했던 것들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혼의 수는 많지 않다. 하느님께서 이러한 영혼들을 보게 해 주셔서 나는 무한히 기쁘다”(604참조).

그러나 다른 기록에서는 많은 특별한 은총을 받으면서도 성덕에의 길이 그리 쉽지는 않다고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예수님께서 제게 그토록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는데도 저는 이처럼 비참합니다. 저는 하루를 전투로 시작하여 전투로 끝냅니다. 하나의 장해를 겨우 극복하고 나면 또 다름 장해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지금은 평화의 시기가 아니라 전투의 시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겁내지 않겠습니다. 제 짐이 너무 무거울 때에는 어린 아이처럼 천상 성부의 품으로 뛰어듭니다. 오, 예수님! 저는 왜 이렇게 악에 잘 기울어지는지요? 그래서 한시도 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가장 비참한 가운데서도 풍성하게 내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신뢰합니다.(606).

2월 2일, 파우스티나는 성체를 모신 후, 소포코 신부가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자 “네 요청대로 될 것이다. 그래도 그의 공로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라는 주님의 대답이 들렸다. 이 대답을 들을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에 너무나 마음이 기뻤다. 이에 파우스티나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신뢰하는 마음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 주신다”고 기록하였다(609).

 

은총과 시련

1936년 3월 1일 이후 투쟁이 여러 날 계속되었다. 하느님께서 새 수도회를 설립하라고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으면서도 주저되는 바가 없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되는 투쟁이 주님께서 게쎄마니 동산에서 겪으신 그것처럼 여겨졌다. 한편으로는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꾸 뒤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주님께, “오, 예수님! 한편으로는 미시면서 왜 한편으로는 잡아 당기십니까?”하고 외쳤다(615).

이러한 정신적 고통 때문에 몸은 더욱 쇠약해졌다. 파우스티나는 이 문제를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원장 수녀는 악화된 그녀의 건강을 보고 일찍 잠자리에 들도록 권했고 저녁에는 우유를 한 컵씩 마시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로 그녀의 고통이 감소될 수는 없었다.

3월 18일, 아직도 아무런 해결 방법을 보지 못했다. 파우스티나는 자기 발로 걸어 나갈 수는 없으니 수녀원에서 쫓아내든지 아니면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어떤 외적인 사건이라도 생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튿날 원장 수녀는 총장 수녀가 파우스티나를 바르샤바로 데리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는 이것이 외적인 표지라고 느껴져 원장 수녀에게 그대로 말했다. 그리고 바르샤바로 따라가기 보다는 지금 이 수녀원을 떠나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다. 이 일을 들은 원장 수녀는 아무 말이 없더니 잠시 후, 이 여행을 시간 낭비로 생각하지 말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더라도 가라고 권했다. 파우스티나는 이 여행으로 인해 해야 할 일이 더 늦어질 것 같아 염려되었지만 항상 순명 하려고 했기에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날 저녁,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새 수도회에 관해 말씀해 주셨다.

“너희들의 생활은 나의 생활과 같아야 한다. 하느님과 끊임없이 일치를 이루며 조용하면서도 숨은 생활 속에서 인류를 위해 기도하고, 이 세상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재림을 준비시켜야 한다”(625).

파우스티나는 성체강복 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내 딸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모든 적들은 내 발 아래에서 흩어질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난 후 마음 속에 깊은 평화와 고요가 밀려왔다(626).

빌니우스로 떠나기 전날 저녁, 할머니 수녀 한 분이 파우스티나를 찾아와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꺼내면서 “수녀님, 주님께서 수녀님과 대화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라며 자기 문제를 예수님께 기도해 달라고 청하였다. 파우스티나는 꽉 잡힌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날 저녁 성체강복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그가 가진 불신이 그가 짓는 죄보다 내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준다고 전하여라.”

파우스티나가 이 메시지를 전하자 그 수녀는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628).

다음날 수녀원을 떠나려고 할 때 한 수녀가 다가와 그 동안 도와주지 못한 것에 대해 파우스티나에게 용서를 청했다. 그 수녀는 평소에 파우스티나를 도와 주기를 소홀히 했다기보다 오히려 파우스티나가 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려고 애썼었다. 이 일을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 속으로 그를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한 나이 드신 수녀님이 “파우스티나 수녀님, 바보가 되거나 아니면 성인이 되어야 해요. 보통 사람으로서는 그처럼 항상 심술부리는 사람을 견뎌내지 못해요” 라고 위로할 만큼 그 수녀는 나에게 인내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좋은 마음으로 대했다. 수녀님은 내가 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거나 때로는 완전히 망쳐놓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내가 떠나는 날 나를 찾아와 용서를 청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본의라기보다는 하느님께서 내게 내리시는 시련이라고 생각하였었다….

나는 사람이 그토록 질투가 심할 수 있는가에 놀랐다. 나는 다름 사람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었고 다른 사람의 고통이 바로 나의 고통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주님과 대화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은 항상 단순하시고 양순하시면 성실하시다. 선의의 미소 속에 감추어진 모든 악과 시기와 불친절은 작은 악마이다. 성실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그것이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632-633).

파우스티나는 이때 동행자 없이 바르샤바로 혼자 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다. 빛나는 일곱 영 중의 한 영이 줄곧 불의 형태로 파우스티나와 동행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성당을 지날 때 자신과 동행하는 천사보다는 빛이 엷지만 빛나는 천사가 성당을 지키는 것을 보았고 그가 자신을 동행하는 천사에게 절하는 것을 보았다. 바르샤바의 수녀원 문에 도착하자 천사는 사라졌다. 수녀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천사를 보내시어 나를 지키게 하시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감사하였다. 천사가 항상 우리와 동행하며 모든 행동의 증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가! 죄인들도 자신들의 행동을 천사가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630).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오, 나의 예수님! 주님의 선하심을 사람들의 이해를 초월하고 그 자비하심은 끝이 없습니다. 영혼에게 내리시는 벌은 벌받기를 자초하는 사람에게나 내려지는 것입니다. 구원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대양과 같은 자비의 바다가 있습니다. 작은 그릇으로 어떻게 자비의 대양을 퍼 담을 수 있겠습니까?(631).

3월 22일, 바르샤바에 도착한 파우스티나는 먼저 성당에 들어가 안전하게 여행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고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도움과 은총을 구했다. 그녀는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승복하였다. 그때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모든 어려움은 다 내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634).

사흘 후 성모 승천 대축일에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현존에 휩싸이며 무한하신 하느님의 선하심과 창조물에 대한 그분의 존중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무서운 메시지를 내리시는 하느님의 어머니도 보았다.

“하느님의 은총을 충실히 따르는 사람은 하느님께 얼마나 큰 기쁨을 드리는가. 나는 구세주께 이 세상을 드렸다. 너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를 알리고, 하느님의 재림을 맞도록 준비시켜라. 그분은 자비로운 구세주로서가 아니라 엄위로운 심판관으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이다. 그날은 얼마나 무서운 날이 될지! 정의의 날, 하느님의 분노의 날이 될 것이다. 천사들도 떨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직 자비의 때이니 이를 사람들에게 알려라. 네가 지금 침묵을 지키면, 그 무서운 날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원망을 들을 것이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끝까지 충실하여라. 나는 너를 연민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635).

 

새로운 과제, 바렌두프와 데르디

파우스티나는 지금은 이 수녀원을 떠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샤바에서 20km 떨어진 바렌두프에서 새로운 임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곳 수녀들은 진실하고도 기쁜 마음으로 파우스티나를 반겼다. 그리고 한 수녀가 “수녀님은 이제 모든 일을 제대로 하게 될 겁니다” 하고 말했다.

“수녀님,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하고 파우스티나가 묻자 “왠지 모르지만 내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이 드네요” 하고 대답했다.

그 수녀원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수녀들은 이른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들에서 일을 해야만 했기에 정해진 기도도 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파우스티나의 건강은 다시 악화되었다. 그러자 사순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한마디 불평 없이 희생과 자기부정의 기회로 모두 받아들였다. 한 번은 원장 수녀가 벽을 닦으라고 했다. 허약해진 몸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냈으며 그보다 더 심한 일도 하였다. 언젠가 그녀가 이세상의 여왕이 되기보다는 수녀원의 신데렐라가 되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첫 금요일에 성체를 모시기 전, 파우스티나는 환시를 통해 제병이 가득 담긴 성합을 보았다. 파우스티나는 그 성합을 받아들였는데 그 안에는 천 개의 제병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를 들었다.

 

“이것은 이번 사순절 동안 네가 진정한 회개의 은총을 얻어다 준 영혼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640).

 

파우스티나는 성금요일이 되기 2주일 전 첫 금요일에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마음을 비우며 하루 종일 묵상에 잠겼다.

 

불멸의 영혼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 인가. 밀알이 부서져야 음식이 되듯 나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교회와 영혼들을 위해 부서져야 한다. 오, 예수님! 겉으로는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하고 과자 부스러기처럼 숨어 지내지만 저는 예수님께 봉헌된 면병입니다(641).

 

성지 주일에 파우스티나는,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찬미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특별한 방법으로 체험하였다. 예수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비통한 심정으로 너무도 심한 고통을 당하시고 인류의 배은망덕으로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파우스티나는 보았다.

성주간 수요일에 예수회 부코프스키 신부가 수녀들에게 고해성사를 주려고 바렌두프로 왔다. 부코프스키 신부는 파우스티나가 바르샤바 쥐트니아가의 수녀원에 있을 때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주었던 분이다. 파우스티나는 더 이상 새 수녀원 설립 문제를 미루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고백소에서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신부는 “수녀님 그곳은 환상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런 것을 요구하실 리가 없습니다. 종신서원을 한 수녀가 아닙니까? 일종의 이단을 꾸미고 있군요!” 라고 소리쳤다(643참조). 그래서 파우스티나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수녀님, 이제부터는 마음 속에 떠오르는 영감에 따르지 마십시오. 마음 안에 있는 그러한 생각들을 털어 버리십시오. 마음 속에서 들리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주어진 임무에나 충실 하십시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 마음 속에서 털어내 버리십시오.”

“예, 신부님, 지금까지 저는 제 양심의 소리에 따라왔으나 이제부터는 신부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제 제 내면의 세계에 귀 기울이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말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면 나에게 알려 주고 혼자서 행동으로 옮기지 마십시오.” 파우스티나는 “예, 순명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파우스티나는 고해신부가 왜 그렇게 엄하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백소를 나오자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압박해 들어왔다. 때로는 심한 수치심까지 주었던 내면의 목소리에 더 이상 주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이상한 고통이 일었고, 신부님이 금지하는 순간부터 캄캄한 암흑에 쌓였다.

성 목요일, 고통은 더욱 심해졌고 사탄은 조롱을 퍼부었다. 파우스티나의 기록을 보면 그때의 체험을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 묵상을 하려고 하자 나는 심한 고뇌에 빠져들었다.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도 없었고 하느님의 정의만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내 자신이 세상의 죄악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탄이 조롱하기 시작했다. “보아라. 이제 너는 영혼을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었느냐! 예수님께서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보아라, 네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고 또 얼마나 더 심한 고통을 받게 될지! 고해신부가 너를 이러한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한 시간 내내 이런 무서운 생각들로 인해 무척 고통스러웠다.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미사 시간이 될 때까지 마음은 고통 속에 빠져 있었다. 수녀원을 떠나버릴까? 고해신부님이 이단이라고 했으니 내가 교회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인가? 나는 울면서 속으로 “나를 구원해 주세요” 하고 주님께 외쳤다. 그러나 마음에는 한 줄기의 빛도 없었고, 몸이 영혼에서 분리된 듯 힘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느님의 뜻에 승복하고자 계속해서 외쳤다. “오, 하느님!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제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제 안에 있는 생각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때 갑자기 하느님의 현존하심이 마음 깊이 느껴져 왔다. 막 영성체를 하려던 참이었다. 성체를 모신 직후 나는 내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한 의식을 잃었다.

그때 나는 상본에 그려진 모습의 예수님을 보았는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해신부에게 가서 말하여라. 이 일은 내가 추진하는 일이요, 너를 미천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나는 예수님께 말씀 드렸다.

“예수님,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는 따를 ;수 없습니다. 고해신부님은 제게 모든 것이 환상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제게 하시는 말씀은 따르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주님, 고해신부님께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간절히 용서를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로 제가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 지 알고 계십니다. 고해신부님은 이제 예수님의 명을 따르지 못하도록 금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주장과 불평을 친절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들으셨다. 나는 예수님께서 크게 마음이 상하신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대로 기쁜 표정으로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내게 말하거나 명하는 것은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고해신부에게 말하여라. 그리고 그 신부의 허락을 받는 것만 실천하라. 당황하지 말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다.”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쳤고 머리를 짓누르던 모든 시름이 사라지면서 다시 확신과 용기가 생겼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예수님께서 올리브 동산에서 겪으셨던 고통을 겪기 시작했는데 이 고통은 금요일까지 계속되었다. 그날 부코프스키 신부가 데르디로 왔다. 마음에 이상한 힘이 생겨 그 동안 일어났던 일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모두 전하였다. 그리고 고해신부는 전과 다른 어조로 말했다. “수녀님,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수녀님에게는 아무 해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버려 두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녀님이 순명하는 마음으로 잘 견디면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길을 찾으실 것입니다. 항상 단순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총장 수녀님께 말씀 드리십시오. 내가 수녀님에게 말한 것은 일종의 경고입니다. 왜냐하면 환상은 거룩한 사람까지도 괴롭히고, 사탄의 유혹에 빠질 위험을 낳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에게서도 이러한 환상이 일어날 수 있으니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수녀님,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로 화를 내시지 않습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수녀님의 지도신부(소포코 신부)에게도 말씀 드리십시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즉 어떤 고해신부님에게 가든지 그가 성령의 빛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고백소에 들어갔을 때에는 그 고해신부님이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644-647).

 

성 금요일 오후 3시, 파우스티나는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바라보시며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 상본에서 본 것과 같이 옆구리에서 비쳐 나오는 두 줄기의 빛을 보았다. 그것을 본 파우스티나는 불쌍한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비워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파우스티나는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과 함께 자신을 천상 성부께 바쳤다.

1936년 4월 12일 일요일, 파우스티나의 마음은 주님 안에 깊이 잠겨 있었다. 하느님의 뜻이 자신 안에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찬미했다.

 

오, 나의 스승이요! 지도자이신 예수님, 이 어려운 시기에 제게 힘과 빛을 주십시오. 사람들에게서는 도움을 바랄 수도 없고 모든 희망을 주님께만 둡니다. 오, 주님! ….. 주님의 요구 앞에서 가난함을 느낍니다. 주님께서 세세대대로 계획해 오신 일을 제 안에 이루십시오. 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 하느님! 하느님의 자비는 얼마나 위대하십니까! 모든 천사들과 인간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모든 천사들과 인간들은 하느님의 깊은 자비를 통해 생겨났으며 자비는 사랑의 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요, 자비는 그 표현입니다. 자비는 사랑으로 잉태되었고, 사랑은 자비를 통해 태어납니다. 제가 보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를 말해 줍니다. 정의는 사랑에서 나오기에 하느님의 정의까지도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말해줍니다(650-651).

 

파우스티나의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어 부활 후 데르디로 이송되었다. 그곳은 바렌두프에서 1km 떨어진 곳으로서 수녀원은 숲 속에 있었다. 파우스티나는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분명히 느끼면서 평화로이 지낼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일을 적게 하고 대신 기도 시간을 많이 갖고 휴식을 취했다. 그곳은 파우스티나에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남겨 준 곳이다. 파우스티나는 마치 나자렛에서 지내는 것처럼 지냈고 1936년 5월 10일 소포코 신부와 편지로 기쁨을 나눌 만큼 행복해 했다. 그러나 1934년 빌니우스에서 얻은 병이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 때문에 파우스티나는 바렌두프로 갔었는데 다시 데르디로 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바르샤바와는 거리상 불편했기 때문에 의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크라쿠프로 다시 갔다.

5월 11일, 데르디를 떠나기 전 파우스티나는 유스티나 수녀에게, 자신은 2년 후 가을에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며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비밀을 지킬 것을 다짐했다. 유스티나 수녀는 파우스티나가 죽기 전까지 이 비밀을 지켰다.

 

 

 

또 다른 시험

 

크라쿠프에 돌아온 파우스티나는 행복했다. 이제는 예수님의 요구, 즉 새 수도회를 설립하라는 요구를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예수 성심 축일 전까지 기도와 희생을 바치면 회답을 하겠다고 한 예수회 요셉 안드레아 신부에게 자기의 영감을 털어놓았다. 파우스티나는 수녀원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껴 떠날 것을 결심했다고 말씀 드렸다. 그때 신부는 “수녀님, 수녀님 혼자서 결정을 한 일이니 혼자서 책임을 지십시오” 하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는 마침내 최종 결심을 한 것에 대해 기뻤으나 다음날 갑자기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가 없고 영혼이 암흑에 쌓여 기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드레아 신부를 다시 만날 때까지 수녀원에 남기로 했다. 신부는 이러한 변화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며 계획에 장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였다(655참조).

파우스티나는 모든 것을 미카엘 총장 수녀에게 고백하였다. 총장 수녀는 “예수님과 함께 감실에 가두어 두고 싶지만, 어디로 가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일 것입니다”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투쟁이 계속되었다(656).

6월 어느 날,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오, 예수님! 수녀원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셔서 무척 기쁩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수도회가 하느님께 얼마나 큰 영광을 드리게 될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이 수도회는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를 드러낼 것이며 저희 자신들과 이 세상을 위한 하느님 자비의 중개자가 될 것입니다. 자비의 행위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사랑에서 흘러 나오고 그 사랑은 이 세상에 넘쳐 흐를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자비를 본받고 자비의 삶을 살며,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알리고 주님의 선하심을 믿게 할 것입니다. 이 하느님 자비의 수도회는 하느님의 교회에서 아름다운 정원의 벌집과 같을 것입니다. 수녀들은 벌처럼 이웃 영혼들에게 꿀을 날라다 주고, 밀초같은 하느님이 형광을 위해 탈 것입니다(665).

…. 아무도 하느님의 뜻을 저항하거나 꺾지 못할 것이다. 어떠한 장해와 박해와 고통이 따르더라도, 내 자신이 하기 싫거나 공포를 느끼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665).

완덕과 성덕을 추구하는 길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다. 하느님 뜻의 완전한 실천은 완덕에의 길이다. 여기에는 하등의 의심도 없다. 하느님의 빛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하느님의 엄위로우심을 크게 손상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아 마땅하다. 그러한 영혼은 하느님으로부터 빛을 받고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 루치펠과 같다.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랐다고 생각하니 내 영혼에 평화가 깃든다(666).

 

파우스티나는 6월과 7월 내내 웃어른들의 실망을 감수해야 했고,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냉소를 받아야 했다. 그로 인해 침묵과 평정을 잃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싶은 열망과 고해신부나 수녀원 장상들로부터의 신임을 잃은 것에 대해 심한 고통과 슬픔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파우스티나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3년 전 파우스티나는 의사에게 폐가 아프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의사는 검진 후 아무 증상도 발견하지 못했고 아무런 병이 없다고 진단하였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그래도 아픕니다” 하고 조용히 말했다.

그 어려운 시기에 파우스티나에게 뜻하지 않은 행복이 다가왔다. 1936년 8월 7일에 소포코 신부로부터 빌니우스에서 출판한 하느님 자비에 관한 소책자를 받았다. 소책자의 표지는 하느님 자비심의 상본이 있었는데 파우스티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갑자기 엄청나게 밝은 빛 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의 모습은 그림에 그려진 모습 그대로였고, 그분의 발 밑에는 안드레아 신부님과 소포코 신부님이 있었다. 두 분은 펜과 전등을 들고 있었는데 펜 끝에서 번개와 같은 불빛이 터져 나와 어디에서 온 군중들인지 그들 위를 비추었다. 이 불빛에 닿은 사람들 중에 어떤 일들은 기쁨에 넘쳤으며 또 고통 중에 후회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제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잠시 후 나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나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예수님, 이제 주님의 뜻이 이루어졌으니 저를 데려 가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안에서 내 뜻이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 너는 아직도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675).

 

 

 

폴란드에 대한 경고

 

1936년 9월 첫 금요일 저녁이었다. 파우스티나는 환시를 통해 하느님의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의 가슴에는 칼이 꽂혀 있었다. 복되신 어머니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하느님의 무서운 벌이 사람들에게 내리지 못하도록 막고 계셨다. 파우스티나는 두려움에 떨며 하느님의 어미님께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폴란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계시지 않았더라면 모든 것이 허사였을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자기 조국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더욱더 하였지만, 퍼지고 있는 죄악에 비하면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한 방울의 물로 어떻게 파도를 막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한 방울의 물이라도 주님과 함께라면 악의 피도, 아니 지옥의 모든 악도 버틸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전능하심 앞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어머니의 기도와 당신 종의 희생을 받아들이시고 폴란드에 자비의 시간을 더 연장하신 것 같다(686).

9월 어느 날 파우스티나가 복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메시지를 주셨다.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준 자비심의 5단 기도를 끊임없이 바쳐라.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죽는 순간에 많은 자비를 얻을 것이다. 사제들은 구원에 대한 마지막 희망으로 죄인들에게 이 기도를 권하게 하여라.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이 기도를 한 번이라도 바친다면 내 무한한 자비를 얻을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무한한 자비를 깨닫기 바란다. 내 자비를 믿는 자에게 나의 무한한 자비를 내리고 싶다”(687).

 

 

자비심에 대한 신뢰의 기회

 

9월 14일, 빌니우스의 로무알트 얄브쥐코프스키 대주교가 크라쿠프를 방문하여 수녀들을 라기에브니키로 불렀다. 대주교가 머문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파우스티나는 하느님 자비심의 사업에 관해 말씀드릴 기회를 가졌다. 대주교는 호의를 가지고 대답했다. “수녀님, 마음을 편안히 가지십시오. 이것이 하느님의 섭리에서 나온 일이라면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동안 수녀님은 분명한 외적 표시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께서는 수녀님에게 그것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주실 것입니다. 기다리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모든 일이 제대로 잘 되도록 조처해 주실 것입니다”(963).

대주교는 파우스티나의 병약한 모습을 보고 원장 수녀에게 조처를 요청했다. 9월 19일, 파우스티나는 폐 전문자의 진찰을 받았다. 파우스티나가 동료와 함께 요양소의 성당에 잠깐 들렀을 때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렸다.

 

“내 딸아, 이제 네 잔에 몇 방울만 더 채워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기쁨을 느꼈다. 사랑하는 스승으로부터의 첫 부름이었기 때문이었다(694).

닷새 후인 9월 24일, 파우스티나는 심한 통증 때문에 잠을 깼는데 그 통증은 세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통증이 심해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침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주위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모두 맡기기로 하였다. 그토록 기다리던 죽음의 순간이 온 것으로 여겼다. 통증은 겨우 멈추었으나 땀이 계속 흘렀고,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심해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튿날 미사에도 갈 수 없었다. 그녀는 누워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러한 고통을 치르고도 죽음이 오지 않는다면 임종 때의 고통은 어떠하겠는가? 오직 무한한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신뢰만이 공포를 씻어 주었다”(696참조).

이 고통을 겪은 후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자비심 축일에 관한 메시지를 일기에 기록하였다.

 

“내 딸아, 온 세상에 나의 무한한 자비를 알려라. 내 자비가 모든 영혼들, 특히 죄인들의 피난처가 되기를 바란다. 그날 내 깊은 자비의 바다가 열릴 것이며 내 자비의 샘으로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바다와 같은 은혜를 내릴 것이다.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하는 사람은 모든 죄와 벌을 사면 받을 것이다. 그날 은총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지은 죄가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죄인들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여라. 내 자비는 너무도 엄청나서 누구도 그 깊이를 알지 못할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로 나의 자비에서 나온 것이다. 내 자비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영원히 내 사랑과 자비를 관상하게 될 것이다. 자비의 축일은 내 깊은 자비심에서 유래한다. 부활 후 첫 주일을 자비의 축일로 지내기를 원한다. 인류가 내 자비의 샘에 찾아 들기 전까지 그들은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파우스티나가 이 메시지를 열네 번이나 반복해서 언급한 것을 보면 주님께서 얼마나 중요시하셨는지 알 수 있다(49, 88, 280, 299, 341, 420, 570, 699, 742, 964, 998, 1072, 1082, 1109, 1517참조).

예수님께서는 그 동안 주신 이 메시지의 핵심인 당신의 자비심에 신뢰할 더 많은 기회를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계속해서 괴로워 고통을 느꼈다. 파우스티나는 어느 날 원장 수녀에게 이를 토로하였다. 원장 수녀의 대답은 고통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파우스티나는 원장 수녀의 이 말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평소에 특히, 병든 수녀를 자애롭게 대하던 원장 수녀가 자신의 호소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틀림없이 주님께서 자신을 시험하시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날 파우스티나는 그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들로 일하러 나갔다. 건강한 사람도 일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뜨거운 날씨였다. 정오쯤에 파우스티나는 일손을 멈추고 일어나 하늘을 향하여 이렇게 주님께 말씀 드렸다. “예수님, 태양을 가리워 주세요. 이러한 열기 속에서는 도저히 일을 못하겠어요.” 그 순간 구름이 태양을 가리웠다. 그러나 잠시 후 파우스티나는 더위를 참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셨다.

날이 갈수록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이를 견뎌낼 은총도 그만큼 더 필요했고 하느님과의 일치로 내적인 평화와 외적인 강인함도 더해갔다. 파우스티나에게 있어서 자비로운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하루하루의 양심성찰의 주요 과제였다. 이러한 일치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파우스티나의 모든 행동은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자비심에 의해 지배되었다(701참조).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천사들이 특별한 방법으로 파우스티나를 도왔다. 9월 29일 성 미카엘 대천사 축일에 파우스티나는 자기 옆에 가까이 와 있는 이 위대한 지도자를 보았다. 대천사가 말했다. “주님께서 당신을 특별히 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악으로부터 증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하고는 사라졌다. 그 후 파우스티나는 대천사의 현존을 느끼며 그의 도움을 받았다(706참조).

고통과 은총이 연속되었다. 프라드닉 요양소의 의사는 파우스티나의 병이 결핵이라고 진단했고 감염을 막기 위해 다른 수녀와 격리해 있도록 명했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수녀원의 병동에서 생활하면서도 일상적인 임무는 그대로 했다. 하루는 파우스티나가 저녁 늦게까지 계속 일할 수가 없어 주방 담당 수녀에게, 몸이 불편하여 들어가 쉬어야겠다며 일찍 식사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그 수녀는 “수녀님은 병이 난 게 아니잖아요? 그들이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니까 병이 생긴거죠” 하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가혹한 말을 침묵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모든 고통과 상처와 함께 희생으로 바쳤다(710).

10월 5일, 소포코 신부로부터 편지를 받고 파우스티나는 무척 기뻤다. 대주교의 허락이 나면 자비심 상본을 인쇄할 것이라며 그 뒷면에 넣을 기도문을 보내라고 했다. 이 편지를 받고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심의 위업을 보게 해 주시니 너무나 기쁘다. 지존하신 분의 위업은 얼마나 위대한가! 나는 하느님의 도구이다. 그 동안 하느님께서 내게 요구하셨던 하느님 자비심의 축일이 제정되기를 나는 얼마나 염원해 왔던가! 그러나 이미 나는 고해신부의 허락을 받고 혼자서 이 축일을 지키고 있지만, 내가 죽은 후에는 하느님의 뜻대로 장엄하게 거행되어야 할 것이다(711).

 

10월 11일, 파우스티나가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와 이 자비가 사람들에게 내려질 은총에 관한 글을 쓰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침실에 사탄이 들어온 것을 느꼈다. 사탄은 극도로 화가 나서 파우스티나의 평화를 깨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썼다. 파우스티나는 놀랐지만 얼른 십자가를 들고 십자성호를 그었다. 그러자 사탄은 잠잠해지더니 사라졌고 다시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사탄은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해서 쓰고 있는 그녀의 평화를 깨뜨리려고 애썼으나 방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더욱 광분하였다.

10월 어느 날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수녀들과 수녀원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준 5단기도를 바치기를 원한다고 원장에게 전하여라. 성부의 분노를 풀어드리고 폴란드에 하느님의 자비가 내리도록 성당에서 9일 동안 이 기도를 바치게 하여라”(714).

 

파우스티나는 먼저 안드레아 신부에게 전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안드레아 신부가 왔을 때 어떤 예기치 못한 일 때문에 이를 전달하지 못하고 다음 기회에 말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일이 하느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깨달았다. 파우스티나는 그 동안 분명하게 느껴오던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고, 마음 속이 어둠으로 가득 차 과연 자신이 은총의 상태에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나흘 동안 성체도 모시지 못했다. 안드레아 신부를 만났을 때 즉시 모든 것을 말했다. 신부는 “하느님의 은총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항상 하느님께 충실 하십시오” 하고 위로했다. 고백소에서 나오자 다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되었다.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은총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시고 싶을 때 내리시는 것이며,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정도에 따라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파우스티나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하기로 결심했다(715참조).

밤에 너무나 고통스러워 잠이 깼다. 다음날 모실 성체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밤을 새웠다. 이튿날 영성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이토록 가련한 처지에 놓여 있으니 네게 은총의 바다를 열어 놓았다. 나는 너와 같은 영혼을 찾지만 많지가 않다. 내게 대한 너의 깊은 신뢰로 은총을 내리지 않을 수 없구나. 너는 나의 완전한 신뢰의 딸이기 때문에 너는 내 성심에 큰 권리를 가지고 있다”(718).

 

잠시 후 또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 내리는 은총은 너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다. …. 네가 아무리 비참한 심정이더라도 네 마음은 항상 나의 거처이다. 나는 너와 일치하여 네 비참함을 불식하고 내 자비를 내린다. 나는 모든 영혼들에게 내 자비를 베푼다. 죄가 클수록 자비도 크다. 내 자비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일은 모두 나의 일이며, 그의 적은 모두 내 발 아래서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다”(723).

 

 

 

8일 피정

 

예수회 발테르 보이톤 신부 지도로 1936년 10월 20일부터 8일 피정이 시작되었다. 파우스티나는 이 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건강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를 드리면서 마음이 밝지 못했다. 그래서 이러한 간청의 기도를 감사의 기도로 바꾸어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승복할 것을 말씀 드리며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였다. 그러자 즉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724).

주님께 이번 피정을 어떻게 보낼지 여쭈어 보았다. 마음 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렸다.

 

“나는 네가 완전히 사랑으로 변모하여, 순수한 사랑의 희생으로 불타기를 바란다….. 이번 피정 동안 나는 네가 내 성심과 더욱 가까이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모든 사람들, 특히 불쌍한 죄인들을 향한 내 자비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726, 730).

 

 

지옥의 환시

 

이 피정 동안 파우스티나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 그리고 수많은 고통에 시달리는 지옥의 영혼을 보았다. 그리고 예수님과 일치를 이룬 한 순간에 그녀는 그 동안 자신이 묵상과 관상을 통해 얻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체험했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의 명령으로 지옥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오늘 나는 한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지옥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온갖 심한 고문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였다. 얼마나 무섭도록 광활하고 넓은지! 나는; 온갖 종류의 고문을 보았다. 지옥의 첫째 고문은 하느님 상실이다. 둘째는 영원한 양심의 가책, 셋째는 조건의 불변이다. 넷째는 영혼을 파괴시키지는 않은 채 계속 파고 드는 불길인데, 하느님의 분노에서 나오는 영적 불로서 무서운 고통이다. 다섯째 고문은 연속적인 암흑과 질식할듯한 무서운 냄새, 더구나 그 암흑 가운데서 악마와 저주받은 영혼들이 서로 마주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섯째 고문은 사탄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시달림, 일곱째 고문은 무서운 절망감, 하느님에 대한 증오, 천한 말, 저주와 모독이 난무하는 현장이다. 이러한 것들이 지옥의 영혼들이 겪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고문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각 영혼마다 특별한 고통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감각의 고통이 있는데 개개인의 영혼은 각자 지은 죄의 양상에 따라 무섭고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각자가 고통을 겪는 동굴과 구덩이들이 각각 따로 있었다. 만일 전능하신 하느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광경을 보고 나는 까무러쳤을 것이다. 죄인들은 자기가 지은 죄에 따라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누구도 ‘지옥이 어디 있는가. 본 사람이라도 있느냐, 지옥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는 말을 못하도록 하느님의 명령에 의해 나는 이것을 기록한다.

나 파우스티나 수녀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지옥의 실체를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지옥의 심연을 방문하였다. 나는 여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다. 악마들은 나를 증오했으나 하느님의 명령으로 나에게 순종하였다. 나의 기록은 내가 본 것의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옥에 있는 영혼들은 대부분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나는 지옥에 갔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지! 따라서 나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더욱 열렬히 기도한다. 나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자비를 기도한다. 오, 예수님! 사소한 죄라도 그것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보다는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그 어떠한 고통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느님 자비심에 대한 신심

 

예수님께서는 이 피정에서 하느님 자비심의 신심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 주셨다.

 

“내 딸아, 사람들이 나의 자비심에 대한 신심을 증진시킬 때 그것은 단지 내 자비에 대한 신뢰와는 구별된다. 나는 나에게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자비의 행동을 요구한다. 언제 어디서나 이웃에게 자비를 보여야 한다. 자비를 피하거나 변명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할 세 가지 방법을 주겠다. 첫째는 행동, 둘째, 말, 셋째, 기도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이렇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바로 내게 대한 사랑의 증거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 자비를 영광스럽게 하고 존경을 표하게 되는 것이다. 부활 후 첫 주일을 자비의 축일로 삼고, 자비의 행동을 보여라. 자비의 신심으로 축일을 장엄하게 거행하고 내 모습이 그려진 상(상)을 공경하여라. 나는 이 상을 통해 많은 은총을 내린다. 그리고 이 상은 내 자비를 상기시킬 것이다. 아무리 돈독한 신앙을 가져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742).

 

피정이 시작될 때,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하신 말씀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1936년 10월 25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미사 대 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불길에 휩싸이면서 영혼들을 구하고자 하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열망에 불탔다. 나는 이글이글 타는 것 같았다. 나는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악에 대항해서 자비라는 무기로 싸울 것이다. 나는 영혼을 구하는 일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라도 갈 것이다. 영혼을 구하는 일은 먼저 기도와 희생으로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비에 찬미를 드렸으면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하느님 자비의 은혜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의 성인들도 주님의 자비에 신뢰한다. 나는 하느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지금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자비에 대한 신심을 일깨우고 이를 이 세상에 전파하고 싶다.(745).

 

파우스티나는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사랑의 희생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고통, 경멸, 조롱, 박해, 모욕의 길이 자신이 걸어야 할 길임을 알았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이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오! 나의 힘이요, 유일한 희망이신 예수님, 예수님께만 모든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제 신뢰는 결코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746참조).

 

피정이 끝난 후 안드레아 신부는 파우스티나와 면담하면서 예수님의 요구에 대해서 파우스티나가 묻는 질문에 확고하고도 분명한 대답을 해 주었다. 마치 파우스티나와 동일한 체험을 한 것처럼 대답해 주었다. 파우스티나는 영적 지도자를 이처럼 깨우쳐 주신 하느님의 은총과 그들을 길러 주시는 성교회에 감사 드렸다. 그러나 수녀원을 떠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피정이 끝나고 10월 31일에 파우스티나는 총장 수녀에게 이 문제에 대해 말씀 드렸다. 그러나 총장 수녀도 예수님의 분명한 표지가 있을 때까지는 수녀원에 머무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하여 다시 연기되었고 파우스티나는 표지를 보여 달라고 기도하였다. 새 수도회를 창립하려는 열망 속에서도 파우스티나는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예수님께서 직접 나서실 차례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 말씀 드렸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저는 한 순간도 빠뜨리지 않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오, 예수님! 떠나라고 하시면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떠나겠습니다. 머물라고 하시면 머물겠습니다. 제가 겪는 고통은 문제되지 않습니다”(751).

 

어느 날 파우스티나는 원장 수녀에게, 예수님께서는 성부의 분노를 풀어드리기 위해 하느님 자비심 5단기도를 바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전하였다. 원장 수녀는 아직 인가 받지 못한 새로운 기도는 도입할 수 없다고 대답하면서 5단기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자 했다. 그리고 성체조배 때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는 “소포코 신부님께서 5단기도를 출판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수녀원에서 바치기가 쉬울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 당장은 좀 어려워요.”하고 말했다(752). 원장 수녀와 이러한 대화를 한 얼마 후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밑줄을 쳤다.

 

주님의 약속: “이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치는 사람을 나는 그이 일생 동안, 특히 죽는 순간에 내 자비로 감싸리라”(754).

 

 

 

성흔(聖痕)

 

1936년 11월 20일 금요일, 파우스티나는 자기가 겪고 있는 또 하나의 비밀스러운 고통, 즉 성흔을 고백했다.

 

내가 처음으로 이렇나 고통을 겪은 경위는 이러하다. 서원한 후의 어느 날(1928년 4월 30일) 기도하던 중에 나는 찬란한 광채를 보았는데 거기서 나온 빛이 나를 감쌌다. 그때 갑자기 손과 발과 옆구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고 머리는 가시관을 쓴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금요일 미사 때마다 이러한 고통을 느꼈지만 통증이 순간은 짧았다. 이렇나 고통은 금요일마다 일어났었는데 얼마 전부터 사라져서 현재까지, 즉 올 9월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병(결핵)을 앓으면서 금요일이 되면 또다시 이러한 고통이 일어났고 또 가끔 은총 상태에 놓이지 못한 영혼들을 볼 때 이 고통이 일어났다. 그러나 자주 있는 것은 아니었고 고통을 느끼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그러나 이 고통이 하고 심해서 하느님의 특별한 도움이 없으면 견디지 못했다. 이렇나 고통을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후에 어떤 일이 있을지 나로서는 모른다. 그러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 모든 것을….(759).

 

주님께서는 파우스티나의 장상들을 파우스티나가 겪을 시련의 원인으로 삼으신 것 같다. 1936년 11월 21일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장상들마저도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항상 이해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놀라지 않는다.

 

 

다음날 고백 때, 사제 자신은 깨닫지 못하였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사제의 입을 빌어 말씀하셨다. 파우스티나는 자기가 지은 죄만 고백했기 때문에 사제는 파우스티나의 영혼 상태를 모르는데 그러나 사제는 파우스티나에게 대단히 중요한 위로의 말을 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충실히 지키십시오. 설사 사람들이 수녀님께 화를 낸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사람들의 말 따위에는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파우스티나의 마음 속에 기쁨이 솟았다. “오, 거룩한 신비여! 그 신비 속에는 얼마나 위대한 보물이 들어 있는지! 오, 거룩한 신앙이여! 나의 길잡이여!”(761-763참조)

파우스티나는 11월 24일 소포코 신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하느님 자비심에 관한 신심 전파와 새 수도회 설립에 관한 몇 가지 자세한 내용을 묻는 내용이었다. 파우스티나는 그 편지를 읽고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편지를 일고서 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께서 처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주님께서 시작하셨으니 주님께서 계속 추진하실 것이다. 어려움이 많은 수록 마음은 평온하였다. 이 모든 일들이 하느님께 영광이 되고 영혼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탄도 그토록 방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탄은 무엇보다도 자비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이 사탄에게는 가장 심한 고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다. 어떤 어려움도 하느님의 일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하느님의 일임을 드러낼 것이다….(764).

 

 

 

천국에 대한 환시

 

파우스티나는 이미 연옥과 지옥을 보았고 11월 27일에는 병상에 있으면서 다음과 같이 천국에 대한 환시를 기록하였다.

 

오늘 나는 영적으로 천국에 가 있었다. 나는 죽음 이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천국의 아름다움과 복락을 보았다. 모든 피조물들이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영광을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하느님 안에서의 행복이 얼마나 큰지를 보았다. 그 행복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파되어 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 행복에서 나오는 영광과 찬미는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께 되돌아간다. 그들은 영원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내적 생활,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관상한다.

그 행복의 원천은 그 본질상 불변의 것이나 항상 존재하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쏟아 부어진다. ….. 하느님께 무한한 가치를 지닌 것은 하나뿐인데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느님의 순수한 사랑에서 나온 것은 아무리 조그마한 행위라도 그 어느 것과 비교될 수 없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충실히 사랑하는 영혼에게 내리시는 은총은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다.

하느님의 엄청난 위엄을 보고도 나는 전혀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의 천사들이 자기들이 받은 은총과 계급에 따라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도 깊이 이해 할 수 있었다. 내 영혼은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 찼다. 하느님의 위대함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기쁨도 더했다. 하느님의 크심과 나의 작음이 기뻤다. 내가 작음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나를 당신 품 안으로 데려가시어 당시니 성심에 보다 가까이 안으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 하느님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 자들이옵니까? 하느님의 자비가 그들을 감싸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들을 당신 가슴에 껴안으시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될까요?(777-780).

 

파우스티나는 건강이 계속 악화됨으로써 자신이 모든 일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건강할 때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문제를 가지고 요즘은 시달린다.” 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동시에 현재의 병과 신체적 불편으로 인해 숨어 계신 하느님의 발치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 드렸다. 파우스티나는 세월의 흐름을 잊고 있었다(783-784참조).

 

 

 

하느님 어머니의 교훈

 

파우스티나가 성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셨다. 11월 29일, 성모님께서는 아기 예수님과 함께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네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께서 휴식을 위하시도록 침묵과 겸손함을 가져라. 마음으로 그를 찬미하여라. 그리고 너의 내밀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말아라. 내 딸아, 내적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네가 맡은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는 내적 생활의 은총을 얻어 주마. 마음 안에 계신 예수님과 항상 함께 살아라. 그분은 너의 힘이 될 것이다. 피조물과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대화하여라. 너는 하느님께서 즐거이 계시는 성소이다. 하느님께서는 네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시고 생활 하신다. … 성탄 때까지 이렇게 살아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네가 하느님과 대화하고 일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실 것이다”(785).

다음날 저녁기도를 하면서 파우스티나는 이상한 고통을 느꼈다. 하느님의 은총이 크면 클수록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도 크다는 것을 알았다. 장상들의 불신과 의혹으로 인해 그들과 깊은 신뢰의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예수님, 이토록 큰 은총도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이 은총들은 제 고통의 원인일 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표시임에 틀림없습니다.

…. 고통과 은총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는 동안 성모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 딸아, 나는 하느님의 어머니의 지위에까지 올라 있으면서도 일곱 개의 칼이 내 마음을 찌르는 아픔을 느꼈다. 네 자신을 결코 옹호하지 말아라. 모든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하느님께서 직접 너를 변호해 주실 것이다”(786).

 

1936년 12월 1일, 하루 피정을 하는 동안 파우스티나의 주된 관심은 하느님의 뜻을 안 이상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닥쳐 올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을 키우는 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 내가 네게 고통을 허락하고 있지만 너는 그것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이 적대적인 분위기가 호의적인 분위기로 바뀔 것이다”(788).

 

새로운 힘을 얻은 파우스티나는 한 달 동안의 생활 규칙을 결심했다. 자기 체험을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개방적인 자세로 대하고, 자기 고통은 가능한 한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하느님 안에 숨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림절을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양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보낼 것 등이었다(792참조).

파우스티나는 큰 갈망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했다.

 

모든 이들로 하여금 말씀의 강생을 준비하게 하고 싶습니다. 오, 예수님! 인류는 심각한 병에 걸려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주님의 연민이 더욱 필요하오니, 자비의 샘이 더욱 넘치게 하소서. 주님은 죄인들에게 끝없는 자비의 샘이 시오니, 우리가 비참할수록 주님의 자비는 더욱 크옵니다. 주님은 당신의 무한한 자비로 모든 피조물들을 행복하게 만드시는 자비의 샘이십니다….(793).

 

 

 

요양소에서

 

1936년 12월 9일에 파우스티나는 프라드닉의 요양소로 가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치료 기간은 약 석 달을 예상했다. 파우스티나는 장상들, 특히 미카엘 총장 수녀의 배려에 감사했다. 그러나 그녀의 일기를 보면 건강의 회복을 죽음보다 더 바라지는 않았다. 파우스티나의 유일한 희망은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이었다(795참조).

요양소는 크라쿠프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예수 성심 시녀회 수녀들이 운영하는 그곳의 의사는 얼마 전에 가톨릭으로 개종한 아람 실버그씨 였는데 몇 달 전에 파우스티나의 병을 처음으로 정확히 진단했던 의사이다.

파우스티나가 제법 긴 기간 동안 수녀원을 떠나 있어야 한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언제 어디서나 너와 함께 있다. …. 너를 떠나도록 하는 이는 바로 나다. ….. 내가 너를 은둔시키는 이유는 네 마음에 앞으로의 내 계획을 준비시키기 위해서이다. …. 나에게 모든 문제를 단순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말하여라. 네가 그렇게 할 때 나는 더 큰 기쁨을 느낀다. ….. 네가 단순한 마음으로 하는 말은 내 영광을 찬미하기 위해 작곡한 노래보다 내게 더 큰 기쁨을 가져다 준다. 내 딸아, 네 말이 단순할수록 나의 관심을 더 끌 것이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내 성심으로 다가 오너라. 펜을 거두고 떠날 채비를 하여라”(797).

 

크리소스토머 수녀가 요양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파우스티나에게 독방이 주어져 그녀는 가르멜회의 봉쇄 수도자가 된 듯한 느낌을 맏았다. 크리소스토머 수녀가 떠나고 난 뒤 파우스티나는 자기 시련과 노력을 지켜보겠다고 하신 성모님의 보호 아래 있고자 기도했다. 평화의 힘이 그텨를 채웠다. 파우스티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요양소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성당에 가서 성체조배를 했다. 그날 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의사는 나를 잘 보살펴 주었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801참조).

다음날 아침 일찍 파우스티나는 묵상을 하고 미사를 했다. 병실로 돌아왔을 때는 몸이 몹시 아파 자리에 눕지 않을 수 없었다. 간호사가 주는 약을 먹었으나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그날은 목요일이었지만 성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고통 받는 예수님과 일치하는 길밖에 없었다.

파우스티나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다음과 같은 관찰을 했다.

 

내 병실은 남자 환자들의 병동 바로 옆에 있었는데 나는 남자들이 그렇게 수다스러운 줄을 몰랐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참으로 많은 말들을 했다. 여자들의 병동은 조용했으며 오히려 시끄럽다고 불평들을 했다. 농담이 계속되고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가운데서 마음을 집중시키기가 대단히 어려웠으나 하느님께서 나를 완전히 소유하실 때에는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다.

“예수님, 그들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일은 얼마나 드뭅니까? 그들이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그만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 것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없으면서도 창조주이신 예수님께 대해서는 침묵뿐입니다. 예수님, 이러한 무관심과 배은망덕을 보니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오, 나의 예수님! 그들을 위해 예수님을 사랑하고 보속하고 싶습니다”(803-804).

 

 

 

중개의 시기

 

다음날은 금요일이었다. 파우스티나는 미사에 참여했지만 영성체가 끝난 후 즉시 방으로 돌아왔다.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수난 때 주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잠시 느꼈다. 그때 하느님 자비에 관한 심오한 지식을 깨달았다. 그날 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는데 곤경에 처한 어떤 사람이 기도를 청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짧지만 간절하게 그 영혼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도록 예수님께 기도했다.

이튿날 오후 병동에 갔을 때, 임종을 앞둔 한 환자가 어제 밤부터 아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으면서 어제 밤에 기도를 청해 왔던 그 시간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다. 파우스티나는 마음 속에서 갑자기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내가 가르쳐 준 5단기도를 바쳐라.”

 

파우스티나는 급히 묵주를 들고 와 환자 옆에 무릎을 꿇고 열심히 5단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환자가 갑자기 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파우스티나가 기도를 하고 있는 중에 이 여인은 평화로운 얼굴로 임종했다. 주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그 환자가 주님께서 하신 약속의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처음으로 입은 일이었다” 하고 파우스티나는 기록하였다. 파우스티나가 다시 자신의 병실로 갔을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임종을 앞두고 5단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내 보호를 입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5단기도를 바쳐도 같은 은사를 받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이 기도를 바치면 하느님의 분노는 누그러지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가 그를 에워쌀 것이다. 그리고 성자의 수난을 위해 나의 자비가 움직일 것이다”(808-811).

 

파우스티나는 아파서 의사를 만나거나 다른 병원을 찾아가는 등의 여러 이유로 3주 동안 고해성사를 받지 못하였다. 성사를 받으려고 하는 날에 꼭 무슨 일이 생겼다. 그래서 너무나 성사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날 오후 안드레아 신부가 병실로 찾아와 즉시 성사를 주었고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성사를 받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무척 기뻤다. 평소와 같이 마음을 모두 털어놓았다. 신부님은 질문마다 자세히 답변을 해 주셨다. 나는 모든 말을 다 할 수 있어 대단히 행복했다. 보속으로 예수성심 호칭기도를 바치라고 하셨다. 내가 예수성심 호칭기도를 바치기가 어렵겠다고 말하려는데 벌떡 일어나 사죄경을 해주시고는 떠나버리셨다. 갑자기 그분의 모습은 큰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때 나는 그분이 안드레아 신부님이 아니라 예수님이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분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는데 즉시 사라지셨다. 불안했던 마음이 잠시 후 평화를 찾았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고해신부와 함께 고백을 들으신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번 고해성사로 말미암아 내 마음 속에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일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817).

 

12월 16일, 파우스티나는 하루의 모든 기도와 고통을 러시아를 위해 바쳤다. 영성체 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그 나라 때문에 더 이상 고통 받을 수 없다. 내 딸아, 나를 묶어놓을 생각은 하지 말아라.”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느님을 추방한 그 나라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가?(818)

 

다음날은 사제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날 저녁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오늘은 그 어떤 날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았다. 사람이 하루에 이토록 많은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 나는 몰랐었다. 성시간을 가져 보려고 노력했는데 게쎄마니 동산에서와 같은 비통함을 느꼈다(823).

 

 

 

 

일과 사명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를 격리시키신 후 사랑하시는 당신 딸을 계속 교육시키고 불가해한 신비를 꿰뚫어 보게 하셨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주님과 나와의 일치는 하나의 신비이다. 아무도 아니 천사들까지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 신비를 말하려 해도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신비 속에 살고 또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이 신비는 이 세상에서 또 영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 짓는 특징이 될 것이다(824).

 

그리고 파우스티나는 황홀경 속에서 본 자신의 죽음의 날을 이처럼 묘사했다.

 

오, 내 모든 꿈이 이루어질 밝고 맑은 날이여! 오, 그토록 소망해 오던 내 삶의 마지막 날이여! 나는 예술가이신 하느님께서 내 영혼에 그으실 마지막 한 획을 기쁨 속에서 고대해 왔다. 그것은 다른 영혼들의 아름다움과 구별될 독특한 아름다움을 내 영혼에 부여해 줄 것이다. 오, 위대한 날! 그날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확인될 것이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하늘과 땅 앞에서 주님의 무한한 자비를 노래할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시초부터 주님께서 나에게 정해 놓으신 일이요 사명이다. 내 영혼의 노래는 거룩한 삼위일체께 기쁨을 드리리니, 오, 하느님의 영이시여! 저를 인도하소서. 오, 자비로우신 하느님! 인내로 무장하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 달고 단 구세주님, 죽음의 무서운 고통과 공포 속에서 주님의 자비를 신뢰하고, 주님께서 내리신 그 모든 약속을 상기합니다(825).

 

파우스티나는 덕과 기도에서는 높은 경지에 올라있으나 인간적인 면은 그대로 있었다. 12월 18일, 한 주일이 지나도록 자신을 방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까닭에 그녀는 고독과 외로움을 느꼈다. 주님께 이를 불평하자 주님께서 “매일 방문하는 나 하나로 족하지 않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파우스티나가 주님께 용서를 청하자 고통은 즉시 사라졌다(827참조).

기도를 필요로 하는 임종 환자를 식별하는 은총을 받고, 자비심의 기도로서 얻는 효과를 체험한 것은 요양원에서의 일이다. 기도를 필요로 하는 환자임을 알게 되면 그 영혼에게 평화가 있을 때까지 기도하였다. 기도 시간은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달랐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임종 환자가 파우스티나와 가까이 있든, 몇 백km 떨어져 있든, 또 파우스티나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막론하고 특별한 유대를 맺을 수 있는 은총을 주셨다. 파우스티나가 기록한 다음의 기도에 이러한 특별한 은총에 대하 감사가 나타나 있다.

 

“오,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무가치한 제가 기도로 죽어가는 환자를 위로하고 도울 수 있는 은총을 주셨사오니, 하늘의 별만큼 대양의 물방울 수만큼 축복해 주소서. 하느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천상 옥좌에까지 이르게 하소서. 주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찬미합니다…..”(835).

“오,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당신은 비천한 저로 하여금 주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오,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예수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온 세상에 전하라고 요구하시니, 예수님의 자비로운 성심에서 흘러 나오는 두 줄기의 빛을 제 손에 담아 온 세상에 뿌리겠습니다. 그러면 모든 영혼들이 예수님의 자비를 입고, 그 자비를 입은 사람은 주님께 영원히 영광을 바칠 것입니다…..”(836).

 

이와 같이 병원에 있는 두 주일 동안 파우스티나는 고통 속에서도 열심히 중개기도를 했다. 그때는 대림절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의 엄숙한 순간을 위해서도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예수님과의 내적 생활, 특히 영성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다. 1936년 12월 23일에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영성체를 통해 우리 안에 일어나는 신비는 오직 천국에서만 깨닫게 될 것이다. 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여!(840).

 

12월 23일, 크리소스토머 수녀가 사과와 레몬과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가져왔다. 그리고 의사에게 파우스티나로 하여금 성탄절을 수녀원에서 보내게 하겠다는 원장 수녀의 뜻을 전하자 의사는 쾌히 승낙하였다. 파우스티나는 기뻐서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크리소스토머 수녀는 파우스티나의 변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불쌍한 파우스티나 수녀님, 마치 곧 죽을 사람 같군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모양이지요.” 파우스티나는 다른 날보다 고통이 더 심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842참조).

 

이튿날 오후 카제탄 수녀가 파우스티나를 수녀원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왔다. 수녀원으로 가는 차 속에서도 그의 묵상은 방해 받지 않았다. 도시를 지나갈 때 파우스티나는 베들레헴을 떠올렸다. 그녀는 서두르며 오가는 세상 사름들을 보고 놀랐다.

 

이 믿을 수 없는 신비에 대해 침묵하며 묵상하는 이는 얼마나 됩니까! 오, 순결하신 동정녀시여! 오늘도 당신은 여행하고 계시겠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오, 하느님께 온전히 몰두하여 수정처럼 빛나는 동정녀시여! 저의 영성생활을 당신께 바칩니다. 당신 성자께서 바라시는 대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844).

 

 

 

1936년 성탄절

 

파우스티나는 평소 습관대로 성당으로 가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부터 하나씩 떠올리며 주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박해 받는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예수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 특히 불쌍한 죄인들을 바다와 같은 자비로 감싸 달라고 기도했다. 파우스티나는 저녁식사 후 피로와 고통에 지쳐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와 함께 깨어 있으면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렸다.

자정 미사 때 거양성체를 하기 직전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어머니와 아기 예수님과 성요셉을 보았다. 성모님께서는 “내 딸 파우스티나야, 가장 소중한 이 보물을 받아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아기 예수님을 파우스티나의 품에 안겨 주셨다. 파우스티나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846).

그 다음날 오후 안드레아 신부가 고해성사를 주었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 즉 새 수녀원의 설립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그는 파우스티나의 질문에는 어떤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고 먼저 건강이 좋아져야 한다며 그 동안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잘 사용하라고만 당부하였다. 보속으로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5단기도를 바치라고 하였다. 그때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렸다.

 

“이 기도를 바치는 영혼에게 어떤 은혜가 내릴 것인가?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에게는 내 깊은 곳에서부터 자비가 전해진다. 내 딸아, 이 말을 받아 적어라. 온 세상에 내 자비를 전하고, 모든 인류로 하여금 내 무한한 자비를 깨닫게 하여라. 이것은 시대의 마지막 표징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정의의 날이 도래할 것이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때에 내 자비의 샘으로 다가오게 하여라. 그들을 위해 흘린 피와 물의 혜택을 입게 하여라”(848).

 

파우스티나는 여기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오, 인간의 영혼들이여! 하느님께서 분노하시는 그날 당신들은 어디에 숨으렵니까? 하느님 자비의 샘을 피난처로 삼으십시오.

나는 수많은 영혼들을 보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흠숭하며 영원히 찬미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848).

 

 

 

자비의 영광

 

1936년 12월 27일, 다미아노 수녀가 다시 파우스티나를 요양소로 데려다 주었다. 그동안 그녀의 영혼은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 더 증가되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더욱 하느님께로 향하였다.

요양소에 온 다음날부터 파우스티나는 빌니우스의 가족과 소포코 신부를 위해 9일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대주교가 자비심의 기도와 상본을 인가하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9일기도 동안 하느님 자비심의 상을 떠올리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5단기도를 바쳤다.

9일기도를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자비심의 성화를 보았는데 수많은 촛불들이 봉헌되어 있었고 많은 군중이 몰려 왔는데 그들은 모두 행복에 넘쳐 있었다.

영성체 후 마음 속에서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내 딸아, 내가 언제 올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예수님, 그때가 언제인지 말씀해 주실 수 없으십니까?”

 

“내 딸아, 그것은 네게 달렸다. 너도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항상 깨어 있어라.”

 

“오, 예수님!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자비로운 구세주이시니 제가 죽는 순간에도 변함없이 대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특별한 사랑을 제게 보여 주시고 이토록 친밀히 저와 일치하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데 제가 죽는 순간에는 더욱더 그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오십시오. 무한히 자비하신 성부여, 성부께서 오실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854참조).

12월 30일, 하루 피정을 하면서 1936년 한 해에 하느님께서 아낌없이 내려 주신 은혜들을 생각했다. 한 시간 내내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에 몰두하였다. “올해의 모든 일들이 영원 속으로 들어갔다.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잃은 것이 없음을 생각하니 참으로 기쁘다”(885).

1936년 12월 31일 저녁, 파우스티나는 부모, 친척, 총장 수녀, 수녀원의 모든 회원들, 수녀원에 수용되어 있는 여성들, 자신을 항상 도와 주고 있는 세 명의 사제들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감사 드리며 온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또 그들이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린 것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자정이 되자 지나가는 한 해에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놓인 1937년 새로운 한 해의 첫 순간을 생각하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기도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 예수님과 함께 용감히 모든 갈등과 투쟁하며 나아가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성취해 나가겠습니다. 무한히 선하신 하느님, 간절히 비오니, 항상 어떤 일에서든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859).

이렇게 기도하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불안을 거두어 주시고 자비의 행위가 예수님께 얼마나 큰 영광을 가져다 주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체험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깊은 기도를 통해서만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그러한 때에 끈기 있게 참고 기도해야 함을 영혼들이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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