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h Wednesday 2023, Lent Begins…

매일 참례하는 우리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아침미사가 오늘은 ‘재의 수요일 미사’가 되었다. 물론 전례가 특별하고, 다른 것은 물론이고 처음 보는 교우들도 꽤 많았다. 우리가 이곳의 주일미사에 오지 않아서 이들 대부분이 아마도 ‘주일미사 교우’들일 듯하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40일 간의 Lent 사순절, 교우 신자들의 이마에 그어진 재의 십자가,  Remember that you are dust, and to dust you shall return, Repent and believe in the Gospel…  Miguel 주임신부님, 이 두 가지 말씀을 곁들이며 이마에 재의 십자가를 그었다.  이어진 강론도 이 두 말씀에 관한 것,  인간 존재의 무상함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 antidote는 다름이 아닌 ‘복음 Gospel’이라는 간단한 진리… 아~ 이것을 잊고 살았던 것, 오늘은 진정한 사순절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Lent, 사순절 시작, 오늘과 40일간 매주 금요일은 ‘절제, 금육’이라는 교회의 지침을 나는 왜 이렇게 가볍게 알고 있었던 것인가?  절제 abstinence 는 음식을 절제, 단식하는 것이지만 우리 같은 ‘고령’은 제외되지만 [사실은 60세 미만]  금육재 禁肉齋는 예외 없이 지켜야 한다. 그래, 오늘과 금요일은 절대로, ‘한때 의식을 가졌던 생명의 살’을 취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절대로..  오늘은 비록 나이조항으로 면제는 되지만 가급적 단식을 지향한 하루가 되도록, 가급적, 될 수 있는 한…

 

오늘 뉴스를 보니 President Joe Biden의 이마에 검은 십자가 모양이 보였다. 사진 설명에 의하면 Ukraine을 깜짝 방문한 후 Poland의 hotel에서 개인미사를 하며 재의 예식을 받았다고 나온다. 역시 그는 ‘전통적 가톨릭 신자’임을 알 수가 있다. 비록 교리에 벗어난 ‘정치적’ 신념으로 논란은 있지만 역시 그는 교회를 다니는 진정한 신자인 것이다. 그것과 ‘교회 앞에서 징그러운 pose로 사진을 찍는 연극을 하는’ 정말 구제불능의 DONALD 개XX를 모습이 극적으로 비교가 되니…  정말 이것은 하늘과 땅, 아니 지옥의 차이가 아닐지..  오늘 보게 된 Boston based CatholicTV.com의 This is the Day program에 나온 regular personality들의 이마에  Biden보다 더 선명하게  ‘재의 십자가’가 보인다.

매년 재의 수요일 미사 예식에서 쓰이는 ‘재’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두들 안다. 작년 Palm Sunday에서 쓰이던 palm leaves를 신자들로부터 회수를 받아서 그것을 태워 만드는 것인데 오늘 이 Catholic TV program 에서 그 과정을 보여주었다.  거의 순식간에 재로 변한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 종려나무가지들’, 이런 상징적인 것에 예수 수난의 신학적 의미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지…

이렇게 해서 드디어 오늘부터 40일간 ‘사막의 여정’이 시작되는가? 그 첫날인 오늘, 우리에게 해당되는 Lenten regulation 중에는 No Meat 조항밖에 없지만 그래도 Fast 조항은 어떨 것인가? 비록 ‘고기’는 안 먹었어도 절제, 단식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나이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오늘따라 더 배가 고픈 듯이 느껴졌으니… 심지어 다른 때보다 더 맛있게 식사를 한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Earthquake 9 Days Later, Agony of Tech Troubles…

41,000 Turkey Syria Earthquake Death!  9 Days Later..  처음 5,000 death 로 시작했을 때 놀랐지만 이제는 조금 둔감해진 것인가? 아니다,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는 것, 지진, 자연재해, 인간이 만든 각종 부조리들이 함께 만든 것, 인간 생명의 무상함을 다시 느끼게 한다.
이제 뉴스 초점은 거의 ‘건설, 건축 과정의 결함’으로 모여지는 것 같다. 그곳과 일본의 예를 비교하면 정말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느껴지니, 분명히 ‘상식적인 국가체계’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절감하게 한다.

Back to ‘Agony of Tech Troubles’ 라고 부르고 싶은 그런 하루를 보냈다. 나에게 남은 몇 가지 tech issues, troubles 가 있다면, 아마도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desktop PC, Smartphone, Home Internet issue, 그리고 나의 blog website 정도가 아닐까? 이것이 현재 나에게 남은 잠정적인 기술적 문제의 요소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home server disk 문제들로 시간을 보냈는데, 오늘은 완전히 나의 ‘필요한 남은 인생의 동반자’ 역할을 하는personal blog website에 관한 것이었다.

두 가지 문제 중에 연숙이 10여 년 이상 매일 쓰는 Newsletter, 이것의 문제는 기술적인 것도 있지만, 이것으로 내가 너무나 stress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정말 나는 괴로워진다. 다행히도 그때 그때 문제는 해결되고 있으니까 더 이상 신경은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의 personal blog website는 조금 다르다. 누가 나를 괴롭히는 것은 없지만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이것이 며칠 간이라도 down이 되는 것을 내가 못 참는 것이다. 그 정도로 나는 이것과 함께 살아가는 셈인데… 이렇게 ‘매여 사는 것’, 어떻게 할 것인가? 서서히 winding-down을 할 것인가, 아니면 할 수 있는 한 그대로 유지를 할 것인가…  현재로서 나의 희망은 현재의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며 사는 것이다.

유지하는 것, 그 자체가 이제는 예전과 같지 않게 점점 어려워지는 듯 한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나의 ‘기술 수준’이 빠르게 변하는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blog website (server)에 대해서 오늘 알게 된 사실 중에는:

  1. 이 website server인 Linux backend PHP 를 최근 version으로 upgrade를 할 수가 없게 된 것, 이유는 다름이 아닌 현재 쓰고 있는 (10년 전의) Artisteer로 만든 WordPress Shaklee theme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2. 해결책은 PHP 8.x 과 compatible한 theme로 upgrade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복잡한 것이다. 나의 덩치 큰 website 의 frontend 격인 theme은 ‘지금은 시장에서 사라진’ Artisteer 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렇다면 어떤 theme 을 써야 하는 것인가? Free Theme 은 많지만 그것으로는 현재 site look을 유지할 수 없는데, 노력을 하며 오히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도 하다.

오늘 또 다른 big surprise가 있었는데.. 이것은 나를 정말 놀라게 한 것이었다.갑자기 내가 한 것도 없이 나의 blog site가  crash한 것이다. 아무런 장난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순간이 나를 죽인다. 이유가 분명치 않기에…

하지만 어제 오늘 새로 발견한 web hosting site의 support software (cPanel) 에는 이미 WordPress troubleshooting utility들이 있었고, 정말 하늘이 도와서 그것으로 문제를 찾고 고친 것이다. 직접 원인은 WordPress plugin의 하나인 JetPackautomatic update가 된 것이고, 그것 때문에 critical error가 생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update를 cancel을 해서 문제를 해결 했는데, 이런 backdoor utility가 없었으면 아마도 나는 완전히 포기하며 support tech과 언쟁을 벌리지 않았을까? 이것은 사실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배우게 된 일종의 수확이다. 앞으로 문제가 있으면 이런 backdoor tool 이 있다는 것을 안 것으로 나는 너무나 만족을 한다.

이런 ordeal 을 거치면서, 다시 test 전용 web server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일사천리로 그 동안 모르고 살았던 새로운 technique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는 Microsoft Windows Subsystem for Linux (WSL)이란 것이 나를 신나게 했다. 최근의 desktop Windows (10, 11) 등은 이미 Linux Kernel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예전처럼 VirtualBox같은 거추장스러운 것을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desktop PC (3 군데)는 모두 WSL 을 activate했고 그 위에 Ubuntu (terminal mode)까지 install, 이것으로 ‘공짜’ LAMP webserver stack을 구비할 준비가 되었다. 이곳에 test server를 만들면 각종 theme이나 plugin같은 것을 pre-test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것들, 엄청 시간을 ‘잡아먹는 위력’을 알기에 극히 조심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로 오늘 느낀 것은 거의 10여 년 간의 tech vacuum이 생각보다 깊고 길었던 것 같다는 것, 수많은 ‘technical term’ 들이 아예 잊혀졌거나, 서먹서먹해 졌다는 것인데, 이런 것들이 다시 잠재기억으로부터 살아나올지 궁금하기만 하다. 만약, 내가 다시 technology쪽으로 시간, 정력, 신경을 쓴다면 현재 심하게 느끼고 있는 ‘망각현상’을 조금은 완화시킬 수는 없을까?

From Guadalupe with a Miracle..

멕시코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집을 떠난 지 거의 일주일 만에 다시 느끼는 우리의 정든 아틀란타 새벽의 냄새와 촉감, 역시 이곳이 우리가 30년 이상 살아온 제2의 고향이 된 것인가… 싸늘하게 움츠리고 싶은 나의 모습을 다시 보는 연중 5주일 주일 아침… 솔직히 오늘은 주일 미사를 쉬고 싶었던 유혹이 어른거렸지만 역시 며칠 째 지켜 보는 연숙의 놀랍게 건강하고 기운찬 모습을 보며 두말없이 유혹을 접었다.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정말 그녀에게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허~ why, why not? why now, why not now?  그래, 무조건 감사를 드리고 싶은 오늘 주일미사, 가자, 가자, 가자… 나를 유혹하는 작은 악마를 밀쳐내며 나가자!

5일간의 압축된 성지순례 경험을 서서히 풀며, 정리를 해야 한다. 어떤 식, format으로  이번 성지순례를 정리할 것인가? 이 엄청난 의미의 여정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 모든 것을 문자화 하지 않으면 큰 의미를 줄 수가 없다. 멋진 글일 필요는 없지만 정확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성공한다면 나는 5일 간의 여정을 내 인생에서 제일 큰 역사적 사건으로 남길 수 있다. 어떻게? 역시 역시 과달루페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할 수밖에 없다.

이번 순례의 꽃은 역시 연숙에게 일어난 ‘작은 기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과연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렵다.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을까?  나의 믿음이 이렇게 약한 것인지… 아직도 조심스럽게 결과를 더 두고 보는 나 자신이 가련하기만 하다.

성지순례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의 주일미사, 오랜만에 김 라파엘 보좌신부님이 집전을 하셨다. 혹시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이 오셨으면 조금 더 반가웠을 듯 했는데, 미사 후에 역시 구 신부님이 문에 서계셨다.  순례 내내 가까이서 함께한 이유인지, 오늘의 인사는 더 뜻있는 것이 되어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또한 순례를 같이 했던 K 형제 부부도 우리를 보고 반갑게 웃는다. 이런 것들이 오늘은 왜 그렇게 반갑고 행복하던지…

미사 후에 오늘도 C베로니카 자매와 셋이서 Cafe 하얀풍차에서 심각하지만 여유 있는 영성적인 화제의 꽃을 피웠다. 물론 연숙의 ‘작은 기적’이 주제의 꽃이긴 했지만 그 이외에도 일반적인 성지순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화제들을 나누며 나의 머릿속은 내가 해결, 풀어야 할 ‘숙명의 과제’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낀다. 나의 여생에서 아마도 제일 힘든 과제,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것을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성모님에 나를 이끌고 가는 마지막 여정의 마지막 산봉우리라고 나는 느낀다.

올해 우리의 ‘큰 외출’은 이번 멕시코 과달루페 성지순례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숙이는 아마도 자기 가족들이 걱정이 되는 모양으로, 한국여행을 갑자기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나는 조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내가 심리적으로 준비가 안 된 상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나 가족을 만나야 하는 것은 알지만, 어쩌면 그의 식구들을 찾는 것이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나는 역시 도망, 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여생의 마지막 풀어야 할 과제일지도 모른다.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성모발현, Spain의 Garabandal 가라반달 성모발현에 대한 video를 두 개나 찾아서 download를 했다. 하나는 실화를 drama로 만든 영화, 다른 것은 documentary film인데 모두 quality가 최상급이어서 모처럼 이 ‘미지의 성모발현 사건’을 더 알 기회가 생겼다.

또 다른 것, Guadalupe documentary video를 발견했는데, 역시 아주 잘 제작한 것이어서 download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이 video를 보니 나오는 장면들 하나하나가 그렇게 가슴으로 다가올 수가 없었다. 그곳에 실제로 가 보아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현재 나의 가슴은 열릴 대로 열린 상태임을 나는 안다.

A Day in Chilly Frosty Winter

이제는 거의 만성적인 느낌이 되었는가, 새벽 특히 싸늘한 새벽에 꿈에서 벗어나면 거의 자동적으로 ‘느낄 듯 말 듯한 슬픔’을 느낀다. 거의 예외가 없이… 하지만 전 날 ‘쪼잔한 것, 잡동사니 stuffs 들 [예를 들면 repair tool work] 과 씨름을 했으면 이런 증상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너무나 머리 속이 한가하면 이런 ‘야릇한 슬픔’이 느껴지는 것이다. 처방책은 그러니까 비교적 간단한가, 머리 속을 사람들에 대한 것이 아닌 [생명이 없는] stuff들에 관한 것들로 채우면 되지 않을까…  이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나의 심리분석인지 나도 모른다, 그런 사실 조차 나를 슬프게 하는지도… 깊고 깊은 한 겨울의 curse인가…

일어나서 바깥을 보니, 내가 목타게 기다리고 싶은 ‘눈 雪’이 아니고 그것과 비슷한 ‘서리 霜’가 하얗게 보인다.  서리의 바로 위로 뽀얗게 오르는 하얀 입김 같은 것, 솔직히 이 모습이 더 나를 춥게 느끼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눈보다 서리가 더 몸을 움츠리게 한다는 사실…

왜 나는 올 겨울 이렇게도 추위를 타는 것일까? 우리 집의 heating system에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insulation이 부족한가.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근래에 변한 것들이 아니어서 결국 내가 육체적으로 변했다는 결론인가. 이 설명이 제일 큰 설득력이 있다. 나이다, 나이…  이것은 기본적인 지식에 속하는 것이어서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다. 옷을 더 끼어 입으면 되고, 몸을 조금 더 움직이고 운동까지 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이런 ‘덤의 일’들이 귀찮다는 것, 싫은 것이다.  이곳의 친지 Y형이 요즈음 아예 ‘내복’을 입고 산다고 해서,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 ‘내복’이란 것, 어렸을 적 온돌방에서 살던 시절에 입던 것 아닌가?  당시의 온돌방, 겨울에는 방안까지 영하로 떨어져서 어항의 물위가 완전히 얼었던 모습도 떠오른다. 그래서 그 당시는  겨울이 시작되어 그것을 입기 시작해서 봄이 될 때까지 거의 벗지 않고 살았던 재미있는 추억이 떠오른다. 그렇구나, 그것을 입으면 완전히 해결이 되는데, 문제는 그것을 쉽게 살 수가 없으니…

올해 장기 일기예보에서 이 지역에 ‘험한 날씨’를 예측했었다. 겨울에 험한 날씨란 분명히 얼어 붙는 눈, 진눈깨비 등이었을 것이고, 일월 말 정도가 제일 chance가 높은 때인데, 아직도 날씨는 얌전하기만 하다. 정히 나갈 일도 많지 않아서 상상으로 2014년 때의 snowmageddon, snow jam 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포근하고 얌전한 눈이 내리면 얼마나 멋질까…  백일몽을 꾸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날씨로 수입이 좌우되는 business에 촉각을 세우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너무 이기적인 어린 아이와도 비슷하니… 언제나 철이 들 것인가?

오늘은 연숙이 모처럼 혼자서 외출을 했다. 몸도 몰라보게 정상으로 보이니 전처럼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그래도 한때 ‘쓰러질 듯 했던’ 모습이 떠올라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오늘은 현 이대동창회장(성당교우 K자매)이 역대 회장님들을 대접한다고 모이는 것이라고 했고, 갔다 돌아 오더 만족스런 모습이었다. 연숙의 이대 동창들과는 나도 꽤 오래 전에는 가깝게 보기도 했는데, 이제는 정말 정말 까마득한 옛날 얘기로 회상이 되니… 아~ 세월이여, 나이여~~ 오늘 오랜만에 보게 된 동창들을 보고 와서 화제는 역시 나이와 건강에 대한 것들, 참 올 새해 들어서는 왜 이렇게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지…

모레 아침부터 집을 5일간이나 떠난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속으로나마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이런 때에 세월, 나이, 연륜의 도움을 받고 싶다. 분명히 예전과는 다르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여행이 가지는 깊은 의미를 얼마나 내가 심리적으로 감당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이것도 걱정은 안 하련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 과달루페 성모님을 뵈러 가는 것이니까, 응석으로라도 어머님이 우리를 각별히 보호해주시지 않으실까?

 

Yet Another Ohio State, Wall Clock

콜럼버스 중앙고 후배들과의 ‘가상적 재회’는 생각보다  더 깊이 추억의 늪 속을 헤매는 경험을 준 듯하다. 나도 그렇지만 연숙이도 1980년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는 느낌도 마찬가지다. 이런 뜻밖의 기회는, 정말로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것 아닌가? 한때, 그것도 긴 세월도 아닌, 계동 1번지 동창의 인연으로 또 다른 타국에서의 인연을 맺은 것, 모두들 꿈에 가까운 경험으로 느낄 것 같다. 과거뿐만 아니라 이것은 현재와 미래에도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후배 동창들의 얼굴, 이름 등을 더듬다가 생각난 것이 있다. 바로 아직도 living room 벽에 걸려있는 조그만 벽시계다. 그것도 Ohio State University 이름이 선명한… 이것은 나에게 그때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긴 했지만 사실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무감각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오늘 꺼내어 뒷면을 보니, 1988년 7월 31일 날짜와 동창들의 졸업기수, 이름이 선명하게 ‘각인’이 되어 있다. 그날이 우리가 그곳을 떠나 Madison, WI으로 간 것이고 송별모임이 있었던 날이었을 것이다.  이것으로 당시 어울렸던 모든 동창들의 신원을 100% 확인할 수가 있었다.

 

58회: 손영찬
62회: 여운광
63회: 김문경
64회: 이명성, 이성철, 이춘환, 조광동
65회: 이승명
66회: 김종수, 하재주
67회: 강행봉, 안동규, 채인돈
68회: 장경호
후배: 남윤동, 박현석 (68회 이후)

 

모두 16명이나? 그렇게 많았던가? 이 중에서 제일 어린 후배들 2명과의 얽힌 추억은 거의 없는 듯하다. 동창회에 합류했던 시간이 비교적 짧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예 명단에서 빠진, 유일한 선배 56회 야구부 출신 정근화 형, 개인 사정상 우리들과 가까울 수가 없었음을 기억한다. 학교 campus 옆에서 grocery를 하던 58회 손영찬 후배는 우리들 같은 유학생이 아니었기에 만날 기회는 많이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동창들과의 ‘재회’로 알게 된 것들은 거의 모두 우리에게는 새로운 사실이다. 당시의 거의 모든 동창들이 카카오톡 단톡방에 와 있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어떻게 그렇게 그 동안 연락을 하며 관계를 유지했을까? 그들의 관계가 유학생시절부터 형성되었고 그 관계는 건강한 것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제일 궁금했던 것 몇 가지 중에는:  성창모 후배는 이 그룹에서 빠진 듯하고, 당시 총각, 강행봉, 현재 어느 대학의 교수라는 것, 그러니까 한때 ‘사라진 듯’한 그 친구가 다른 곳으로 학교를 옮겨서 그곳에서 공부를 마친 듯 보인다.  조금 관계가 일정치 않았던 ‘조광동’도 이들과는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조금 의외의 소식이었다. 또한 궁금했던 ‘이승명’, 그는 놀랍게도 아직도 콜럼버스에 있어서 일식집을 경영하고 있었다는 반갑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제일 궁금했던 ‘김문경’의 소식은 아무도 모르는 듯 보인다.

이제 일단 안정된 단톡방이 건재 하는 한 앞으로 이들과의 관계는 이런 상태로나마 지속은 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나의 희망이지만… 그렇다면 이들과의 놀라운 관계 형성은 우리의 앞날에 어떤 영향, 의미를 줄지 그것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서로에게는 유익하고 바람직한 일이 되지 않을지…

 

일기예보대로 지난 밤부터 폭우가 쏟아졌지만 나는 그 듣고 싶은 소리를 earplug 탓으로 거의 듣지를 못했구나~~  조금 기온이 올라서 그렇게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역시 을씨년스러운 것은 마찬가지고, 오늘 미사를 쉬려는 생각도 마찬가지… 그저 무언가 쉬고 싶고, 나가기 싫고.. 내가 왜 이럴까, 그제의 ‘어두운 밤’이 아직도 거치지 않았는가… 제발, 제발…

오늘은 우리 결혼 기념일이기도 하구나, 몇 년 만인가? 1980~2023=43년! 43년, 43년… 아~ 이제는 햇수의 감각도 점점 무디어지고~~ 하지만 그렇게 기억까지 무디어진 것은 아니리라 희망, 희망… 아~ 나 좀 ‘신나게’ 해 주라, 하늘아!

오늘 아침은 미사도 쉬고, 아침 식사는 어제 사온 apple turnover, coffee ‘비상식’으로 때우고 일찍 결혼기념일 점심식사 (예전에는 집 근처의 Thai Lemon Grass였는데 최근에는 도라빌의 ‘강남일식’) 를 했다.  비가 오는 날 drive를 한다. 우선 밖에 나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부분 Duluth를 포함한 Northeast Metro 쪽으로 빠져나간 아틀란타 한인 community 추세로 한때 이 역사를 자랑하는 Buford Highway 선상의 old town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의외로 다른 문화권들이 이입되면서 건재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형 자본으로 커지는 new town과 비교하면 이곳은 역시 아직도 small, mom & pop business 가 주류인 듯 보인다. 그 한 가운데 있는 우리의 ‘본향’이 우리의 본당 도라빌 순교자 성당이라서, 이곳은 아직도 친근하고 편한 곳이다. 그 중에도 ‘하얀풍차’, ‘ 강남일식’ 같은 upscale shop들이 이 위치하고 있어서 더욱 위안을 받는다.

우리에게는 절대로 필요한 교통로가 I-285 northern perimeter인데 이곳의 traffic이 그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이곳을 관통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은근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대대적 upgrade가 이루어져서, 눈에 뜨이게 편한 drive로 변하고 있다. 문제는 bottleneck 역할을 하는 곳의 마지막 공사가 무슨 큰 난관에 봉착했는지 거의 무한정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문제가 아닐지…

 

Ah… Ohio State, Columbus Ohio 1985…

어제 저녁 나의 블로그 site에 놀랍고, 반갑게도 1980년대 Ohio State U.시절, 서울 중앙고 67회 10년 후배동창  ‘안동규’의 comment가 보였다. 짧은 글을 남겼지만, 어떻게 우연히도 이곳을 찾은 모양이었다. 일단 생각과 추억은 그때, 그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또 다른 comment, 이것은 66회 하재주 가 쓴 것이었다. 조금 놀란 사실은 당시의 핵심멤버들 모두가 가입한 단톡방을 만들어 서로 연락을 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단톡방에는 정말 반가운 이름들이 줄줄.. ’62회 여운광, 64회 이명성, 이성철, 이춘환,  66회 김종수, 하재주, 67회 채인돈, 안동규,  68회 장경호’ 등이 있다고… 9명 씩이나… 그 당시로 추억의 여행을 하려니 확실히 전보다 기억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을 얼마나 잊었는지… 그것이 궁금하기만 하다.

이번에도 하재주가 주도를 한 것인가? 하재주.. 그래 이 친구에 대한 갖가지 추억들이 적지 않구나… 즐거운 것, 아쉬운 것, 섭섭한 것 등등.. 하지만 이 긴 세월 뒤에 무엇이 상관이랴? 결국 이번에도 이 친구가 나를 카톡방으로 인도를 하는구나. 들어가보니,  이들도 모두 60대에 진입한 젊음이랄까… 느껴지기도 하고 나와는 다른 세대 차이도 새삼 떠오르고…

단톡방에 가보니 남자 것과 부부 것이 따로 있으니, 왜 그랬을까?  당시 우리들 모일 때는 100% 부부, 가족들만 모였는데… 이제는 남자만 따로 모이는 이유가 있을지.  너무나 이 재회의 소식을 반가워하는 연숙이를 부부 단톡방으로 초대를 했다. 그곳의 멤버가 20명이나 되는데.. 과연 이곳에 누구누구가 있는지 아직은 살펴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빠진 후배들이 있다. 김문경, 이승명 등을 비롯해서… 아~ 참 오래 된 추억들이구나. 

이것을 계기로 나와 우리 가족의 1980년대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 당시의 각종 사진들, 근래에는 거의 안 보고 살았고, 다시 보려니 이상하게 피하게 되는데, 왜 그럴까? 그 당시 우리, 나의 삶이 행복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럴 수가, 그럴 리가 없는데… 처음 미국직장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아이들 둘을 보았고, 성당이나 동창들과도 잘 어울리며 살았지 않았는가? 그래, 그때는 행복했던 시기에 속한다.  제일 달콤한 추억의 시기였던 1960/70년대에서 이제는 조금씩 벗어나 Columbus , Ohio 시절의 1980년대로 나의 행복한 추억의 관심을 넓히는 것은 어떨지…

 

Seventy Five Years Ago… Long Time…

일이일, 일월이십일일, 1948~2023, 정확히 75년 전… 서울의 하늘 아래..

어머님, 엄마… 그리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님, 감사합니다, 좋건 싫건 저는 그렇게 이 인간 영육, 의식계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의지는 없었다고 해도 전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75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교적 건강, 무탈한 삶을 살았던 것, 하느님께 감사 드립니다….

나의 생일을 즈음한 소한 대한 사이의 정월은 우선 추웠던 것과 눈이 강산처럼 내렸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의 느낌도 그렇고,  나이 20세 무렵에는 김신조[무장공비출신 목사님]의 모습도 떠오르고 상도동의 우리 집에서 학교서클 연호 친구[남녀]들과 생일’파티’를 벌였던 것도 기억하고 싶지만, 이런 모든 기억들이 나이 탓인지 전처럼 깨끗한 그림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안타깝구나… 앞으로 더욱 더 이렇게 되겠지만.. 

칠순의 중간 고개에 도달하니, 만약 팔순의 세월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때까지는 심리적으로 내리막 길처럼 보인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지혜, 지식도 같이 내리막 길이 되는 것은 사실 예측하기가 힘들지 않으니… 갑자기 ‘나의 원래 가족’들이 가슴 안으로 다가온다. 모두들 모두들 어디로 갔는가. 다시 볼 수 있을까, 못 보고 다음 세상으로 가게 되지는 않을까… 왜 이렇게 가족들을 떠난 긴 인생이었어야만 하나..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늦기 전에 조금은 알고 싶기도 하다.

얼마 전 연숙이 어지럼증의 악화로 ER까지 가게 된 것, 우리에게 심리적 육체적 충격을 주었지만 이제는 조금  정신과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생일 음식을 해 주었다.   특제 미역국[독특한 조리법]과 [나에게 최고 음식] 갈비찜~~ 아, 비록 두 가지의 간단한 상이었지만, 이것이  오늘 생일에는 나에게 편하고도 맛있는 생일선물이 되었다. 이런 것을 과소평가하며 살았던 적을 기억하기에 이런 기회에 나는 ‘행운의 남자’임을 깨닫고 싶다. 그래, 나는 lucky guy, husband라고 자부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그것을 많이 잊고 사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유나와 Richard 와 함께 새로니가 왔다. 며칠 전에 새로 산 Tesla electric car를 타고 왔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gas engine car와 다를 것이 없지만 속을 보니 정말 무슨 space ship의 속을 연상하게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라고나 할까…

오늘 나의 생일이라고 cake을 사오겠다고 해서 사양을 했더니.. 그러면 Krispy Kream doughnuts은 어떠냐고 나의 약한 곳을 찌른다. 오는 길에 Highway 41 까지 가서 바로 직전에 새로 만든 것을 사가지고 와서… 정말 오랜만에 따끈따끈한 doughnuts과 coffee를 모두 (유나까지) 맛있게 먹었다.

새로니에게 이번에 취직이 된 Federal government job (Dept. of Energy, remote work) 연수여행 (Washington DC) 관계를 물어 보았더니.. 아주 대 만족인 모습이었다. 거의 현재의 상황에서 perfect job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는 일 자체도 보람 있는 미래지향적인 것이 아닌가? 이것도 부럽기만 하다. Clean Energy 를 정책적으로 지원을 하는 연방정부의 일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흐뭇하게 느껴진다.

 

Bernardo Kastrup

Donald Trump [a.k.a. historic SOB] according to… Bernardo Kastrup

  1. Pathologically narcissistic,
  2. Dangerously manipulative,
  3. Clinically sociopathic
  4. Conspicuously unintelligent
  5. Sole priority is himself
  6. No scruples about lying through his teeth so to deceive and use millions of people for the sole sake of his own personal agenda.

와~~ 100년 묵은 체증이 1초도 안돼서 사라지는 기분이다.  어쩌면 내가 믿고, 느끼고, 외치고 싶은 생각을 ‘기차게도’  명확하게 요약을 해 주었는가? 미국 전직 대통령을 묘사한 이 문장이야말로 만고에 길이길이 남는 명언인 것이다.  책이나 video등을 통해서 이 사람 Bernardo Kastrup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부럽다 못해서 시기심까지 발동한다. 그의 해박한 metaphysical, 과학철학이 나의 주 관심사지만 그의 인간적 면모를 알게 되면서 더욱 나는 빠져든다. 이런 ‘빛나게 떠오르는 열린 석학’이 있는 한,  Donald Trump류 같이 ‘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 미친 세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까지 든다.

Donald Trump is a pathologically narcissistic, dangerously manipulative, clinically sociopathic and conspicuously unintelligent individual whose sole priority is himself, and who has no scruples [moral or ethical consideration] about lying through his teeth so to deceive and use millions of people for the sole sake of his own personal agenda.

Bernardo Kastrup

 

Family Memories 1988, Another Funeral Mass

우리 집 garage에 아직도 남아있는 새로니의 잡동사니들 거의 대부분 처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은 각종 paper, book 종류들, 대부분 학교시절의 notebook, painting등인데 이것이 제일 골치거리다. 버리기는 쉬운 것들이지만 아차~ 하면 후회가 되는 것들이 이런 ‘개인 기록’ 종류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은 버려야 하는 것임을 알지만 시간을 조금이라도 끌며 방관상태인데 그 중에서 오늘 우연히 찾은 것은 버리기가 아까운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분명히 후회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남겨두었던 각종 기록들이 남아있다면~ 이것은 거의 꿈같은 얘기지만.. 그래서 오늘 보는 새로니의 한글 숙제는 너무나 신기하다. 얘가 아틀란타 한국학교에 다니면서 쓴 것, 우리가족 사진과 자기의 글… 나중에 이것은 picture frame을 해서 새로니 생일선물로 주어도 되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오늘 조금 싸늘해진 날씨에 내가 입고 있는 스웨터가 바로 1988년경 찍은 이 사진 속에서 내가 입은 스웨터라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 놀랐다. 아직도 이 스웨터는 ‘건강, 생생’하기 때문이다. 입은 사람의 모습만 변한 것… 아~ 연숙이도 참 환하게 밝은 모습, 그 자체였구나… Columbus, OhioMorse Road에 있었던 Kings Hill 아파트의 뒤쪽 모습, 내가 만들어 놓았던 새집 birdie house도 보이고.. 이것은 새로니의 5살 생일 그러니까 1988년 1월 5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아~ 세월이여, 추억이여~~

 

비가 오락가락 하던 오전 시간,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 적은 김 (소화) 데레사 자매의 연도, 장례미사엘 갔다.  지난 달에 이어 또 하나의 연령행사에 임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 고인의 건강에 문제가 없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선종한 것은 또 하나의 놀람이었다. 유해의 관이 덮여 있었던 것은 조금 아쉬운 것이었다.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 끝맺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인이 현 레지오의 단장이어서, 역시 이번 장례식은 예상대로 ‘레지오 장葬’이었다.  우리의 레지오 시절에도  가끔 있었던 것으로 레지오 깃발들이 운구에 도열, 등장하는 것, 그리고 각종 레지오 기도, 단가… 아~ 정말 몇 년 만에 보게 되는 익숙한 광경들인가? 야릇한 향수마저 느껴지지만 그 만큼 갈등과 싸움을 한다. 우리도 저들과 함께… 하는 아쉬움과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찌꺼기처럼 남은 증오심 등등… 그 ‘문제의 인간’이 오늘 설쳐대는 모습은 다행히도 보이지 않고 대신 우리의 레지오 친구 격인 R 자매가 주관을 해서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예상보다 사람이 꽤 많았는데… 연도 때보다 미사 때 더욱 많았는데,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평소 적지 않은 건강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회활동이 꽤 활발했던 것. 한국(문인)화, 한인 어머니 회, 개인 business등등 아주 열정적으로 삶을 살던 자매님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남편인 S 형제님, 너무나 충격을 받았는지 힘이 없어 보였고, 조금 더 연로해 보이기도.. 자매님이 운전을 하며 살았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혼자서 사실지….   부부가 모두 레지오를 함께 했기에 우리와도 그 동안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까워질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모두 성당 시니어 그룹 등대회에 가입을 해서 피크닉에서도 만나곤 했던 것들이 추억으로 남는다.

아드님이 며칠 전 선종직전에 한국에서 와서 임종을 지켰다고 했는데, 아주 활달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조사에서도 어머님 도움으로 신앙을 찾아 서울 용산 어느 본당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고 하며,어머니는 행복을 찾는 사람이었다고 추억을 하는데, 그의 얼굴에서 아쉬움과 슬픔의 모습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던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 자매님의 이력을 보니 서울 효창국민학교 출신으로 나왔는데, 나는 분명히 재동국민학교 출신으로 알고 있어서 조금 놀랐다. 그러고 보니 전학을 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니까… 그러면 재동에서 효창으로 전학을 한 것인지.. 장례미사 후에 친교실에서 단체로 점심을 나누었는데 의외로 ‘고급 $20’ 일식 도시락이 풍성하게 준비가 되어있었다.  등대회 회원들도 전보다 더 많이 눈에 뜨였다. 이번으로 등대회 회원 장례미사가 지난 달에 이어 두 번째 임은, 역시 우리들의 나이 때문이 아닐지… 조금 외로워진다.

 

January Winter Blues…

오늘부터 Ozzie와 함께 있게 되었다. 원래는 내일 주일미사 후에 귀가하면서 데리고 오려고 했지만 내일 미사를 결하기로 해서 어쩔까 했는데 새로니가 오늘 우리 동네에 올 일이 있어서 아예 오늘 데리고 온 것이다. 내주 화요일 새로니는 새로 시작한 federal government job 의 연수차 out-of-town을 하기에 조금이라도 Richard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Ozzie를 우리에게 맡기는 것인데 사실 나도 정신이 혼란스러워 조금 부담을 느꼈지만 사실은 그것과 반대의 효과를 볼 듯하지 않을까… 이 녀석이 나를 정신적, 신체적으로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보기와 달리 매섭게 바람이 세차게 불며 40도에도 못 미치는 날씨, 녀석과 오랜 세월 걷던 같은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왜 그렇게 녀석이 그렇게도 반갑던지.. 지난 며칠 너무도 정신적으로 평화를 잃고 살아서 그런가? 구세주를 만난 듯한 기분도 없지 않았다.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감정은 100% 통하니…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은 희망도 생긴다. 또한 매일 매일 같이 걷게 될 것이니 최소한 나에게 적지 않은 활력소를 줄 것 같은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을 보러’ 매섭게 추운 깜깜한 새벽의 backyard로 둘이 뛰어나가는 것은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냐?

어제는 정말 하늘조차 암울한 그런 날씨였고, 오늘은 비록 해는 솟겠지만 기온은 전형적 겨울이다. 옷들도 모두 제일 두껍게 끼어 입고, 특히 양말은 두 겹으로 무장을 하고, space heater는 ‘강 强’으로 올리고, 모든 blind들은 깜깜하게 닫히고… 아~ 그렇구나, 이것이 이곳의 정월의 모습이었지…

어제 아침에 다시 ‘돌아온 어지럼증’에 놀란 결과 이제는 약간 이런 일들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그래, 아주 큰 일로 발전만 안 한다면 우선은 침착하게 이 작은 ‘수난의 시간’을 견디면 될 것 아닌가? 이것은 연숙의 말이었다.  문제는, 아무도 아무도 심지어 의료진 조차도 자신 있게 예측할 자신이 없어 보인다는 것, 그러니 모르는 것들은 결국 기도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래도 행운이다, 막강한 기도의 신비에 의지할 수 있으니까…

어제 그래서 문득  서울에 사는 조시몬 형제가 생각이 나서 카톡으로 ‘조용한 기도’를 부탁했고 곧바로 답을 얻었다. 처음에는 내가 아픈 줄 알았던 모양이지만 베로니카라고 정정을 해 주었다. 이 친구도 text를 성급하게 읽는 모양…  형님이 얼마 전stroke로 고생을 했지만 현재는 정상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위안과 힘을 얻는다. 고마운 사람이 바로 이런 영혼들이다.

성당에서 선종기도 요청? 허~ 누군가? 아~ 재동 2년 후배,  소화 데레사? 맙소사! 갑자기 새해가 되자마자 이런 일이? 한편으론 크게 놀랄 일만은 아니다. 그 자매님 긴 세월, 몸에 각종 병을 지니고 살았으니까…  그 남편 S 형제님이 옆에서 든든히 보살피며 살았는데… 결국은… 아~ 재동학교 추억의 자매님, 편안한 천국을 향한 여행이 되시길 바라며 선종기도를 바칩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이 자매님에게 선종하는 은혜를 주시어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영원한 천상 행복을 생각하고 주님을 그리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Yesterday, The Day After ER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 So…  큰 일 뒤에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는 이 노래가사. 연숙이의 어제 오후에 있었던 Emergency Room에서의 불안했던 시간, 어떻게 보면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길고도 불안한 긴 경험이었다. 현재 나는 그 짧았던 시간들을 냉철한 머리로  조금씩 기억, 소화, 분석, 그리고 예상의 단계로 접어든다.

일단 그 차디찬 병원의 응급실로부터 우리의 포근한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 중요하고 다음은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사실…

문제는 우리의 알량한 의학적 지식의 한계다. 육감적으로 판단하는 수 밖에 없는데, 수학적, 과학적 공식적인 의학과 우리의 경험적 육감의 밸런스를 어떻게 조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의 단계는 물론 의학, 과학에 모든 benefit of doubt를 주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일방적으로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하게 어지럽다는 ‘있을 수 있는’ 증상, 현재의 상황에서 할 것은 일단 neurologist 를 찾아서 진단을 받는 것, 물론 그것에는 MRI가 분명히 있을 것이니까… 어제의 CT-Scan의 결과와 함께 조금 더 자세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모든 것이 아마도 심장보다는 두뇌일 듯한 것이 현재의 분석결론이 아닐까? 심장이나 두뇌.. 아~ 정말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것 아닌가? 어떻게 이 위기의 도전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

일단 black & white case가 아님은 분명히 모르는 것 투성이, 그러니까 기도의 치료가 이런 case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우선 MRI 를 찍는 것이 순서라고 해서 우리 지역에 있는 것, 전에 가보았던 Kennestone Hospital 바로 옆에 있는 imaging center에 예약을 online으로 신청을 했으니까 무언가 연락이 올 것을 기대하고, 그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1월 말의 멕시코 순례여행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그것이 머리 뒤를 지긋이 누르기 시작한다.

Brazil version, JAN 6 riot & 2 SOBs

브라질, 브라질, 2명의 산토스,  Trump wannabe 볼소나로, 룰라, 펠레, 트럼프… 아~ 어찌 세상이 이럴 수가 있는가?

브라질 판 Capitol Riot를 은근히 ‘확전’의 가능성을 예상하며 지켜 보았지만 모든 사태는 급속도로 진압, 진화가 되는 듯 보인다. 이 Bolsonaro라는 인간은 그래도 SOB 트럼프 개XX 가 겪었던 과정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듯, 아예 미리부터 ‘난동을 비난’하는 듯한 모습이었으니… 그의 머리는 SOB 개XX 보다는 조금 이성적이었던가, 아니면 비겁한 것인가 누가 그 속을 알랴… 결과적으로 SOB 그 놈은 이 사건으로 또 한번 비난의 표적이 될 것을 생각하니 과히 기분이 나쁘지 않구나~ 나도 별 수가 없는 속물근성인가, 아니면…

CES 2023.. 전에 별로 이런 것들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은 조금 다르다. 이런 행사가 Pandemic으로 거의 3년 동안 중단되었기에 이번의 것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인데, 특히 이곳에 보이는 Lon.TV의 host (그의 이름도 역시 Lon…)의 YouTube podcast의 활발한 reporter의 모습이 보기에도 좋고, 나도 그들의 ‘한창 세대’로 돌아간 착각에 빠지는 즐거움도 있다. 이런 tech convention에 다니던 시절, 2000년대 초까지, 나에게 그런 때가 있었던 것이 거의 신기루처럼 보인다. 정말 내가 이들의 모습으로 각종 digital technology 의 일원으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 이제는 전설처럼 느껴진다.

벌써 1월 도 일주일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멕시코 과달루페를 향한  ‘웅비雄飛’의 그날도 정확히 3주일이 남았다. 연숙이는 벌써부터 차근차근 가지고 갈 짐들을 챙기기 시작하는데… 참, 이런 것 나는 큰 자신이 없다. 이번의 여정은 최소한 나에게는 엄청난 ‘사건’에 속한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수십 년간의 각종 기록이 일순간에 깨지는 순간인데… 어찌 아니…

 오늘부터 저녁 가족 기도를 재개 하였다. 도대체 몇 일, 아니 몇 주일만인가? 아~ 내가 목 감기가 시작되기 전날 이후 처음이다. 12월 19일 마지막으로 했구나~ 그러니까 정확히 3주 만에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조금은 생소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온 잔잔한 기쁨과 자부심도 있구나. 이런 생활이 도대체 몇 년째인가? 2007년 초부터 시작한 것이니까… 이제는 아마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죽을 때까지 계속되기를… 이것으로나마 우리는 영적, 정신건강은 물론 전체적인 생활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우리는 행복한지를 잊지 말고 살고 싶구나… 감사합니다, 성모님… 오늘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The Epiphany of the Lord, 2023

주님 공현公現 대축일 The Epiphany of the Lord.. 동방박사~ 아~ 이제는 성탄의 기분, 느낌도 다른 해보다 더 빨리 사라진 듯 한데… 아직도 동방박사라고… 오늘을 기해서 성탄장식을 내려 놓자고 했지만 사실 나의 머리 속에 이것들은 이미 멀리 사라진 듯하니.. 어떻게 이런 ‘해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타락’을 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나의 기우, 지나친 걱정이기를 바라고 바라지만… 싫은 느낌 뿐인 주일을 맞는 심정이다…

오늘 보는 성당 제대 밑의 성탄구유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고 찬란하다. 특히 옆에 앉아서 경배하는 ‘동방박사’들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 오늘의 ‘주님공현 대축일’ 미사와 잘 어울린다. 아마도 이런 성탄의 모습들도 오늘까지 볼 수 있을 것이고 다시 11월 말 대림절 시작이 되어야 다시 볼 수 있을 것… 이렇게 가톨릭 전례 절기를 따라가다 보면 일년이 흐르고, 인생도 나이도 같이 흐르고…

오늘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의 강론, 동방박사가 ‘동쪽’에서 온 사실에 주목하며 묵상한 것, 성경에 등장하는 각종 ‘동쪽’, ‘동방’을 연결한 것이 이채롭다. 

오늘부터 도라빌 순교자 본당에서는 거의 3년 간 사라졌던 ‘구역 점심 봉사’가 시작되었다. 우선은 격주로 시작을 한다고 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정든 친교실 table에 편하게 앉아서 ‘콩나물 국밥, 이른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과 마주 앉게 되었다. 반갑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하니.. 역시 신부님이라서 그런가, 세대 차이가 크게 있어도 역시 신부는 역시 신부인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Doraville] H-mart에 잠깐 드렸다. 예의 grocery shopping을 한 후 오늘은 특별히 그곳에 있는 ‘빵집’ [이름이 무엇이더라… French인데… 아하! Tous Les Jours! 이것이 무슨 뜻인가?] 에 들러서 크림빵을 사왔다. 그 동안 ‘bakery 하얀풍차’에 갈 기회가 없어져서 [유럽, 한국식] 빵이 조금 그리운 것을 숨길 수가 없었는지…

이른 시간이라 한산한 food court, 예전 특히 Pandemic이전에는 이곳에서 자주 음식을 사먹기도 했었는데.. 특히 교우 자매가 운영하는 대장금, 그리고 중식점, 그 옆의 ‘한국식 hotdog, 명랑핫도그’ 등이 일요일 손님을 대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기나긴 Pandemic 3년간의 공백을 무색할 정도로 활발한 느낌을 준다.

오늘 이곳에서 ‘가끔 또순이’ 연숙이 stick coffee를 부지런히 찾는다. 알고 보니 물론 ‘세일’ 품목, 그것도 원래 가격이 거의 $25이나 되는 것을 $10 sale로 사게 된 Maxim White Gold란 것, 집에 와서 같이 산 크림빵과 함께 마셔보니 비싼 만큼 맛이 좋았다. 하지만 이 stick coffee는 맛보다는 편리함에 그 point가 있는 것이 아닐지… 이 편리함에 ‘중독’이 될 수가 있는 것, 항상 조심해야 한다.

예정대로 오늘 오후에 집에 있던 각종 성탄 장식들을 retire했다. 올해의 성탄은 예외적으로,  ‘성스럽지 못하게’ 보낸 듯해서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께 미안하기만 하다. 올해의 성탄은 조금 다르게 맞이하면 좋을 듯. 그러니까 성탄장식을 예전처럼 아주 가능하면 늦게 하고 검소하고 조용하게 보내는 전통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이번 성탄은 솔직히 원래 의도와는 거의 반대로 아주 ‘방탕하고, 세속적으로’ 보낸 것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뜻밖에 나라니 식구의 이름으로 ‘연하장’이 배달되었다. 전에 언급을 했던가.. Pro service로 가족 card를 만든다는 것. 바로 그것이 온 것이다.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 둘째 아기를 임신을 하고 직장의 각종 산더미 같은 일들로 피곤해 보이는 나라니와 사랑하는 가족, Luke, Ronan 그리고 멋진 개 犬公 Senator 의 모습을 보니, 사진처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데…

 

오늘 우연히 마주친 흑백 사진들, 당시 추억의 노래와 함께 동영상화 하고 나니..  아~ 그립다, 그립다, 그때가 그립다… 연세대 시절 1969년의 얼굴들… 아마도 1969년 이른 봄이 아니었을까? 이 ‘괴상한 그룹’이 어떻게 비원 안쪽으로 놀러 갔을까, 아물거리기만 하다. 하지만 이곳의 얼굴들은 어제 만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선명하다. 중앙고 선배 형들: 안낙영, 오성준, 최종인 형들로부터, 중앙고 동창과 친구들: 양건주, 박창희, 김진환(일찍이 고인)… 살아 생전에 볼 수 있거나 소식을 알 수 있을는지…

 

Second Anniversary, Trump’s Capitol Attack

잊고 싶지만 절대로 잊지 못할 악몽의 그날, 한편으로 까마득한 옛날처럼 다가오고 [잊고 싶기에], 반대로 어제의 일처럼 느껴지는[잊어서는 안 될] ‘혼동과 격정, 분노, 실망, 자괴감, 살의’ 등등이 온통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맴도는 21세기 version,  Day of Infamy, 그것이 January 6 의 얼굴이 아닐까… 오늘도 아쉬운 것은 이 infamy의 ‘유일한 주범’이 자유의 몸으로 아직도 거품을 품고,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는 희극적인 사실이다.  도대체 ‘정의는 승리한다’ 라는 명언은 어떤 순진한 인간이 만든 것인가?

다시 겨울날씨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금은 따뜻한 겨울의 모습, 그러니까… 영하의 기온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central heating과 space heater가 필요한 날씨, 대신 바람이 거의 없고 햇볕이 쏟아지는 것으로 ‘조용한 겨울’의 포근함조차 느낀다. 이제 우리들은 2023년의 ‘정월’의 한 가운데로 서서히 접근하고 있다. 일월, 일월, 정월… 새로니와 나 그리고 ‘잊지 못할 친구’ 건주의 생일, 우리부부 (가족의 시작)의 43회 결혼기념일…  1월 말의 ‘눈이 내릴 가능성’, 아하~ 제일 크고 중요한 것은 역시 ‘과달루페 순례길’… 아~ 조금은 아찔하게 인상적인  정월을 보내게 될 것인가?  주님, 성모님~ , 저희를 안전하게 그곳으로 인도해 주소서…

“A man of prayer is capable of everything.” – St. Vincent de Paul

오늘 성인의 말 …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이 있을까? 그래, 현재 거의 중단된 가족 저녁기도… 어떻게 재개를 할 것인가?
어제 매일미사에 갔다가 그곳에서 받아온 책, 역시 Matthew Kelly의 ‘선물 책’이다. 제목이 The WISDOM of the SAINTS… 매일 하루 365일 동안 성인들의 짧은 어록이다. 오늘부터 하루 하나씩 읽게 되었다.

오늘은 연숙이가 Tony K 치과에 가서 아픈 이를 뽑게 되었다. 아프다 안 아프다 하는 세월이 지속되었지만 이제는 별 수가 없는 모양.. 나보고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아픈 이를 참고 살았느냐고 몇 번이고 묻는다. 사람마다 고통을 상대하는 방법이 천양지차 天壤之差 이지만 나와 그녀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아닌지?  나는 물론 치과에 가는 것이 참는 것보다 더 싫기에 그런 것이었다. 후회가 조금도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별 수가 없었음도 사실이다.  새해부터 Humana PPO dental coverage가 훨씬 나아졌기에 이제는 연숙에게 치과방문도 부담이 적어질 듯하다.  이를 뽑으면 오늘 점심 식사도 문제가 되겠기에 아침은 일부러 deluxe double mushroom/ham sandwich로 가득 채웠다.

 

Big Forty, Four Oh!

오늘은… 우리 집, 가정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던 첫딸, 새로니의 생일이다. 그런데, 그런데 나이가…. 아~~ 사십세! 그야말로 big four zero~~~  언제 이렇게 되었는가? 새로니가 마흔 살이 되었다고?이제는 40살의 느낌이 거의 희미해진 탓인지 어떤 말로 생일 축하를 해야 하는지 망설여진다. 건강하게 살아 준 것을 감사하는 것 이외에는 그저 덤덤한 느낌이다. 기껏해야 나의 마흔 살 때를 떠올리는 것으로 가늠은 하지만 세상이 그 동안 가만히 정지해 있던 것도 아니니까… 나의 40세는 아~ 서울 울림픽이 열렸던 해~~  아이들은 이미 둘이나 있었고, 대강 감이 잡힌다… 세상 그 동안 많이 변했구나…

‘지난 해’ 12월 16일 금요일에 참례했던 Holy Family CC 아침미사가 우리에게 2022년 마지막 ‘매일 미사’였다. 이후 오늘 아침까지 ‘매일미사’는 우리의 머리 속에서 짧지 않은 겨울잠을 잔 셈이다.  감기로 시작된 피치 못할 ‘결석’이었지만 이렇게 미사를 못 했다는 것이 조금 놀랍기만 하다. 감기 따위로 2주 이상 all stop이 되는 것, 이제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뿐이 아니다. 따라서 저녁기도도 같은 운명을 맞은 것… 이 사실을 잊고 살았다는 것이 또한 놀랍다. 분명히 이런 것들 우리 생활에서 많은 영적 에너지를 빼앗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긴 휴식을 취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은 다시 둘이서 YMCA를 감기 이후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또한 Sonata Cafe도 같이 재개가 되었고.. 하지만 연숙이는 오늘 pool 예약을 하지 않고 걷기만 했고 나는 다른 때와 같은 routine을 마쳤다. 이곳엘 가면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그것은 심리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bench press, 그러니까 free weight routine으로 분명히 확실히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YMCA로 걸어 들어가는 나의 그림자가 조금은 ‘꾸부정’해 보인다.  조금 허리를 펴고 걸으며 누가 때리냐? 이유는 spycam을 보며 걸어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얼마 전 새로니 집에 갔을 때 사위, Richard가 한 보따리 hardware 뭉치를 주어서 가지고 왔다. 얘기로 들었던 것, PC dual monitor/arm package다. 예전에 dual monitor를 쓴 적이 있었다.  나의 desk에는 조금 heavy하게 보이고, 한쪽으로는 ‘하루 종일’ video을 보게 되는 것도 염려가 되어서 다시 single monitor로 바꾼 상태. 하지만 오늘 test를 하며 자세히 보니… Samsung 24″ 가 현재 내가 쓰고 있는 VIZIO보다 조금 큰 것이었고, 제일 마음이 든 것은: 이것은 100% PC  VGA monitor로서 monitor screen power saver가 제대로 작동을 하는 것.  또한 built-in speaker가 없어서 오히려 잘 된 case가 되었다. 비록 external desktop speaker가 필요한 것이 귀찮기는 했지만 의외로 lab pc에서 쓰던 USB speaker가 이곳에서 잘 어울렸고 소리, volume등 모두 만점이 아닌가? 제일 마음에 든 것은 ‘진짜 analog volume wheel control’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 하나만은 나의 손으로 조절하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Screen test를 하면서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결과는 정말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화면도 전번 것보다 훨씬 robust한 것이고, 125% screen-up도 전혀 문제없이 작동을 하고… 

오랜만에 겪는 이런 system test, change, upgrade의 일들, 결과가 좋으면 나는 정말 천국을 경험하는 느낌이 든다. 나의 직장생활이 다 이런 과정, 경험의 연속이었으니까…

오늘 아침부터 Benedict XVI 장례미사 뉴스가 계속 보였다. 이번의 교황서거뉴스, 의외로 나는 전처럼 열렬하게 관심을 보이지를 못했다. 다른 것들에 더 신경을 쓰며 시간을 보내다가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이 교황님에 대한 생각하게 되었다. 이유는 2013년의 놀라운 은퇴  소식에 실망을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는 교황 이전에 진정으로 명석한 신학자, 아니 학자였기에 나는 항상 존경을 했던 기억이다. 나라니의 선물로 샀던 그에 관한 책, Dictatorship of Relativism을 다시 꺼내어 표지에 나온 교황의 모습을 다시 본다. 역시 (신)학자의 모습이다. 그 당시 그가 ‘보수적 교황’이라는 사실에 나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 교황과 비교가 되면서 아주 대조적인 ‘철학, 사상’을 새삼 깨닫게 된다. 현재의 조류인 ‘양극화 polarization’ 현상으로 이 두 교황님을 보는 것이 이제는 아주 익숙해진 뉴스가 되었다. 하지만 교황은 교황인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 신자들은 교황을 우선은 ‘이유 없이’ 신뢰해야 하지 않을까?

Basilica, Basilica…

어제 우리들에게 온 ‘과달루페 성지순례 자료’를 처음으로 자세히 보게 되었다. 일단 몇 개월 전에 보긴 했지만 이것은 최종 version이라서 조금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끼며 다시 본다. 우선 비행기 좌석을 본다. 이것만으로 나는 머리 속이 아득해짐을 느낀다. 도대체 이것이 몇 년 만인가? 몇 년? 이곳에 쓰는 것조차 꺼려지는 것은 분명히 나에게는 유쾌하지 못한 trauma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리적, 공간적 감각을 느끼고 싶어서 결국 Google Map으로 하늘에서 Mexico City를 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남쪽의 위치, 어찌 이런 것들을 내가 알 수가 있을까, 의도적으로 안 보고 살았던 장구한 세월이 아니었던가? 처음으로 보는 그곳의 모습.. 비교적 낮은 건물들, 공항에서 아주 멀지 않은 곳에 그것이 보였다! 우선 Basilica (of Our Lady of Guadalupe)는 찾았는데… 그 발현지 Tepeyac 언덕이라는 곳은 분명치 않다. 같은 이름이 이곳 저곳에 보여서 어떤 곳이 진짜 Juan Diego의 자리일까… 아니다, 천천히 관상을 하며 시간을 끌며 보기로 하자… 시간이 많으니까… 이것이 올해 첫 우리의 가족 사업이 될 것이다. 천천히 감상을 하고 싶다.

최근에 들어서 조금씩 guitar로 눈과 손가락이 자주 간다. 조금씩 아직도 귀에 익숙했던 곡들을 부르고 치고도 한다. 하지만 2016년의 기타 그룹 시절에 비하면 커다란 차이가 있다. 코드 자체는 생각이 아직도 잘 나지만 각 string의 위치를 아직도 더듬기도 하고, 리듬도 전처럼 유연하지 않고, 제일 불만은 기타의 음향이라고 할까… 그렇게 둔탁할 수가 없으니~~ 하지만 조금씩 치기 시작하면 내가 그린 악보에 있던 곡들 정도는 예전의 수준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은 있다. 희망은, 매일 매일 조금씩 ‘회상하며 즐기는’ 그런 수준과 습관으로의 회복이다.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내일부터 해야 할 것이 있다. 앞으로 가급적 세속 뉴스, 그 중에서도 정치적인 것으로부터 예전의 수준으로 멀어지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물론 가급적인 것이다. 되도록 이제는 정치 쪽은 관심을 안 두는 방향으로 살고 싶다. 현재 나는 이 쪽으로 너무 많이 들어와 있고, 남들처럼 혈압과 열을 올리는 상태가 되어 있음을 알기에 여기서 결단적으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에게 전혀 도움도 되지 않고, 시간적으로 낭비, 필요이상으로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고… 신앙적으로도 이것은 문제가 많은 것이다.

Viewing, Pope Emeritus Benedict XVI

Pope Emeritus Benedict XVI,  2022년이 저무는 날에 향년 95세로 선종하신 ‘은퇴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의 바티칸 장례식을 앞두고 viewing, 조문객들의 행렬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길어지고 있음을 본다. 처음 선종뉴스 이후에는 ‘교황직을 자의 自意로 사임한, ‘도중하차’ 한 예외적 교황’이란 제목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그의 생전 교황직에 대한 호의적인 견해들이 지배적인 것을 본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교황님은 첫째도 둘째도 ‘깊은 사상적, 철학적 신학자중의 신학자’임을 알고 있다. 그분의 사목사상의 하나가 담긴 책 The Dictatorship of Relativism은 사서 읽기도 했다.
물론 도중하차했을 그 당시에는 강인한 체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교황직 (특히 선교여행)에 역부족이었던 ‘연약한’ 모습들도 보며 걱정과 실망도 했다. 특히 왕성하고 무한한 에너지로 세계를 순방하던 전임 요한 바오로 2세와 비교가 되던 때여서 더욱 대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아가 교황님은 현재 너무나 세속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보수 중의 보수’, ‘고집불통’으로 낙인이 찍히고 있는 것을 보며… 혼란스럽다.
이분은 제2 바티칸 공의회의 ‘혁신적, 진보적’ 신학적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으니 그는 그 당시 그는 절대적으로 보수가 아니라 진보 중의 진보였는데, 이것은 사실 그가 변한 것이 아니고 세상이 이렇게 한계 없이 탈신앙, 극단세속화 된 것은 아닌가? 참, 이것이 어떤 형태의 진화인가? 아니면?

새로니의 hubby, Richard가 나와 비슷한 직종, 그도 computer engineering에 속해서, 그가 쓰다가 retire시키고 있는 각종 gadgets, computer equipments가 상태에 따라서 나에게 오는 기회가 생긴다. 며칠 전에 ‘물려받는’ 것은 보기에도 육중한 것들 Samsung Dual PC monitors 와 그것을 support하는 monitor arms (mounts)인데 이것을 누가 어떻게 쓸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연숙이 쓰기에 너무나 ‘육중하면’, 나의 lab desk에 올 가능성도 있다. 몇 년 전까지는 나도 dual monitor를 쓰며, 한쪽에서는 100% movie/video를 보게 되어 시간 낭비가 많아서 다시 single monitor로 돌아오기도 했는데… 역시 주식 stock trade같은 것이 아니면 사실 이것은 ‘한눈 팔기에’ 완전한 setup일 듯하다. 하지만 일단 나에게 왔으니 어떻게 쓰는 것이 제일 효과적인지 머리를 굴려야 할 듯…

연숙의 이빨이 계속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다. 나처럼 ‘오랜 세월, 무식하게 참는’ 습관이 전혀 되지 않은 연숙이 같은 사람들의 고통을 짐작은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해를 할 수 있다. 우리도 바쁘고 치과들도 모두 바빠서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보험plan이 바뀌어서 그렇게 크게 돈 걱정은 전처럼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 마음이 놓인다. 또한 이 지역의 치과의 숫자는 실로 엄청나고 그것도 한인 치과의사들도 거의 100군데가 넘으니, 이것은 사실 반가운 사실이다. 이곳에 처음 이사 왔을 때 한두 군데가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아졌을까… 생각하니 물론 한인 숫자가 그만큼 많아졌고, 이빨 아픈 것을 참는 사람들이 과연 나 외에 누가 있겠는가? 
몇 십 년 동안 우리 식구들의  주치의도 우리처럼 나이가 들어 retire를 준비하기에 이번에는 ‘새 치과’를 찾아야 할 때가 된 듯하다. 그런 와중에서도 새로니의 ‘원군 요청’에 두말 안하고 애보기를 하러 가는 것을 보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누구에게 질 수가 있으랴~ 나는 아직도 멀었다, 멀었어…
오늘은 새로니가 드디어 federal government [Department of Energy]  job 을 시작하는 첫날이 되었고 내일부터는 그 조그맣고 똘망똘망한 유나가 daycare 에 가게 된단다. 조금 믿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새로니가 참으로 자랑스럽게 느껴지고도 하고, 상대적으로 나라니가 조금 힘들게 보이니… 이렇게 비교가 되는 듯한 삶을 보게 되는 것이 나는 제일 무서운데… 하지만 이것은 기우 중의 기우일 것이다.

새해의 결심 중에 ‘육성 전화 voice call 무조건 받기’가 있었고 이 덕분에 오늘 처음으로 윤형의 전화를 1초도 되지 않아서 받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까, 우선 성공한 것이 아닐까? 다음에는 받는 것과 같이 거는 것에도 용기를 실어보고 싶은데, 제일 먼저 내일 교성이에게 걸어보면 어떨지… 제발 성공적인 습관이 되기를 빌어본다.

새로 시작한 ‘수난의 기도들’을 시기하는가, 연속적인 유혹이 아침부터 나를 시험하는가… 역시 사탄의 장난인가… 이런 ‘거의 미친듯한 이 기도’가 나에게 가당하고 유익한 것인가 하는 유혹이 어제의 깜깜한 시간들의 도움으로 나에게 속삭인다. 분명히 나도 현재 ‘수난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믿지만, 이 이탈리아 ‘주님의 종’ 여인의 ‘광적인 수난’과 비교가 될 수 있으랴~~ 아, 이것이 현재 나와 무슨 큰 관계가 있단 말이냐~~ 싫고 지겹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Year of Rabbit, Mary the Holy Mother of God

2023년, 계묘년 (토끼해).. 가 밝았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를 재동 국민학교 시절 회초리 앞에서 달달 외웠던 것이 지금도 100% 기억이 된 덕분에 최소한 매년 동물들의 모습은 예측할 수가 있었다. 작년이 ‘인, 호랑이’였으니 분명 올해는 ‘묘, 토끼’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가 있으니 ‘암기식 교육’도 필요하구나. 호랑이가 토끼로 바뀐 것, 글쎄 분명히 올해가 조금은 덜 사납다면.. (특히 정치적으로)
갈수록 가까워지는 고국, 모국과의 심리적 거리 때문일까,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의 정취’가 흠뻑 담긴 각종 추억의 환상적 새해인사, 연하장들이 넘쳐나고, 특히 이제는 ‘한국어 권’에서 필수도구가 된 카카오톡을 통해서 이런 것들을 볼 수가 있으니… 50+ 여 년 전 이곳에 살던 우리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역사물’에서나 볼 수가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격세지감’의 정수가 아닐까.

새해 첫날, 오늘이 2023년이라는 사실 조차 깜빡 깜빡 잊으며 살고 있었다.  아마도 어제 밤 3-2-1 HAPPY NEW YEAR!의 Time Square 를 통해서 본 세상모습을 눈을 비비며 지켜보지 못했기에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간 세월 동안 우리는 전력을 다해서 이 연말/새해 축제를 구경, 참여를 했지만 이제는 조금 피곤한 것이다. 꼭 해야만 하나~ 아니면 이제 진정으로 우리는 이런 것에서 멀어지고 있는가, 조금은 겁도 들고 슬퍼지기도 한다.

1월의 첫날, 정월 초하루는 ‘양력 설날’이기 전에 우리의 가톨릭 교회에는 다른 뜻 깊은 날이고, 의무 대축일이기도 하다. 개신교에서 ‘진저리 치는’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이 바로 ‘당신들이 그렇게도 믿는’ 예수님을 오로지 ‘순명의 정신으로’ 낳고 기르고 십자가 사건을 몸소 경험한 ‘하느님의 어머님’을 기리는 날인 것이다.

이런 중요한 날, 우리에게는 ‘신앙의 고향’인 도라빌 순교자 성당엘 2주 만에 가는 날이 되었고, 우리들 몸이 감기로부터 ‘완전히’ 회복이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다. 평소보다 성당 아침미사에 많은 교우들이 보였고, 미사 후에는 Pandemic 이후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친교실의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었다. 또한 맛깔 나는 따끈한 떡국까지 준비를 해 놓아서 오늘은 하얀풍차 cafe에 가는 대신 이곳에서 색다른 전통적 친교를 하게 되었다. 정말 모처럼 오랜만에 보는 교우들… 아~ 옛날 (3년이 지난)의 느낌이 되살아난다.
앞으로는 격주로 구역점심식사를 준비한다고 하니 우리의 이제까지의 아침미사 후의 모습도 따라서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작은 변화는 나중에 어떻게 ‘진화’를 하게 될지 흥미롭기도 하다.

이렇게 한 장소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다시 보고 느끼니 조금은 나의 ‘사람에 대한 갈망’이 충족이 되는지 모른다. 확실히 Pandemic ‘치하’의 인간 고립 경험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인간본성 진리를 재확인 해 준 셈이다.
오늘 성당 친교실에 S형제의 모습이 보여서 잠깐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놀란 사실은 그와 S자매의 관계가 눈에 뜨이게 달라진 것이다. 이것은 정말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는 눈빛조차 전과 다르게 보인 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어서, 연숙도 같이 느낀 것이다. 또한 ‘둘이 잘 지낸다’라는 이제까지 듣기 힘들었던 말도 했을 정도니…  그러니까 그 동안 둘 사이의 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사실들이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했다면 과언일지…

 

Adieu Year 2022, I Love You All…

하루가 거의 지난 이때에 처음 ‘붓을 잡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침부터 Ozzie와 유나를 보아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Ozzie는 나의 침대 바로 옆에서 너무나 조용히 잤고, 유나도 못지 않게 지난 밤 깊은 잠에 들었다. 우리도 덕택에 제때에 일어나게 된 것이지만 연숙이는 아마도 긴장을 했고 제대로 깊은 잠을 못 잔 듯하고… 아침의 모든 routine들도 유나 때문에 완전히 바뀐 것이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나지를 않았다. 하지만 역시 귀여운 모습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유나는 즐거움 자체였다. 이런 것으로 손주들을 모두 그렇게 고생 고생하며 보아주는 모양이다.

2022년 마지막 날Ozzie와 ‘연장 延長된 산책 즉, Sope Creek까지’ 을 할 수 있었다.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다행히 쏟아지는 비가 아니어서 오히려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지치지도 않고 그렇게 시간을 쓰며 곳곳에서 냄새란 냄새는 모두 맡으며 걷는 Ozzie의 모습이 그렇게 대단할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에 Emeritus Pope Benedict XVI 16 이 선종한 것을 알았다. 물론 예상은 했지만 역시 다시 생각에 잠긴다. 이 교황님은 내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려고 애를 쓰던 시기의 교황님이었고 한창 회심에 불이 붙었던 시기에 갑자기 은퇴를 한 것이 어제의 일처럼 기억에 남는 것이다. 은퇴를 한 사실이 실망적이긴 했지만 나중에 천천히 이 교황님은 내가 좋아하는 type 그러니까 심각한 신학자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이 교황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깊은 신학을 얻으려 노력을 한 기억이 남는다. 교황님의 신학사상 중 하나로부터 연유된 책, The Dictatorship of Relativism 도 ‘나라니가 성탄선물로 주었던  Barnes & Noble gift card  덕분에 사서 읽기도 했다. 나중에 알면  알 수록 이분은 역시 ‘명석한 신학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교황직을 완수하기에는 역시 ‘필수적 에너지’가 부족한 분이었고 그렇게 오늘 조금은 ‘사라지는 교황’의 모습으로 선종을 하게 된 것이 아닐지…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오늘이 2022년의 마지막 날이지만 예년과는 다른 날이 될 것이다. 3-2-1 Happy New Year! 를 올해는 안 하기로 내가 일방적으로 정했다. 연숙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이 조금 미안하기는 하다. 하지만 조금 피곤한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은 New York Time Square 광경 앞에서, 계속 눈을 비비며 그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올해는 역시 ‘아니다’ 였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 샴페인을 미리 맛을 보며 오랜만에 취기를 즐기긴 했다. 아~ 취기가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인가? 갑자기 기쁘고 세상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친 김에 갑자기 카톡에 보이는 모든 이름을 향해서 새해 인사를 모조리 쏘았다. 어쩌면 그런 들뜬 기분이 들던지… 그래서 술을 마시는구나… 가끔은 이렇게 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닌지?

 

Love Ozzie, Piccarreta, Milder Yearend…

Ozzie와 함께 아침에 일어나는 날, 이것이 바로 나에게는 ‘건강한 정상’적인 모습이다. 이것으로 나는 ‘나는 감기에서 나았다’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아침의 routine이 조금은 바뀌었지만 이것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알고 있다. 비록 연숙이 아직도 깨끗하게 완치는 안 되었어도 이제는 시간문제가 아닐까… 최소한 오늘, 내일은 분명히 ‘산책’도 할 수 있고 심지어 YMCA solo도 시도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 하는 것 OK, OK!

Luisa Piccarreta, Servant of God… 오늘로서 이 수난의 기도들 ‘고리기도’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은 ‘소개의 말’인데 12월 4일 이것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 기도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었지만 26시간 (26일)의 ‘기도’가 끝난 지금은 훨씬 알게 된 것들이 많이 생겼다.  첫 고리기도 때, 거부감과 싸우는 것으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판단이다. 하지만 미리 예상했듯이 이것 한번 하고 끝낼 것이 아니기에 시간을 두고 꾸준히 탈락,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의 흐름이 분명히 나에게 신비한 깨달음을 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오늘 모처럼 Ozzie 동네를 걸으며 새해를 맞는 동네의 모습을 천천히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집 바깥(밖)에서 (Ozzie와 함께) 산책을 했던 것, YMCA 에서 운동을 했던 것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까마득하게 오래 전으로 느껴지지만 사실 알고 보면 2주 정도밖에 되지를 않았으니, 이것은 분명히 지난 2주일이 평범했던 시간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나의 판단은 정확하다. 그 2주일 동안 우리는 감기로 모든 정상적인 생활이 멈추었던 것이기에… 100% ‘집콕, 방콕 (이제는 나도 이제 이런 최신 속어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은 아니었어도 머릿속은 그렇게 기억이 된 것이다. 문제의 시작은 역시 내가 걸린 ‘보통 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심하며 살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 감기virus가 나한테 온 것일까?  지난 20일 오후부터 목 [편도선]이 붓기 시작했으니까 잠복기를 고려하면 그 며칠 전인데… 그때는 이틀 전인 일요일 미사참례와 그 전날 혼자서 YMCA에 갔던 것인데… 그때 걸린 것은 아닐까? YMCA 에서는 가까이 접촉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weight machine등은 소독을 철저히 하기에 감염의 기회가 낮았을 듯한데, 그렇다면 주일미사 때란 말인가?  Flu vaccine shot를 맞았기에 이 정도라고 자위는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보통 감기조차 조금 무서워진다. 무엇보다 최소한 1주일 정도를 완전히 정상 생활을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것, 정말 밥맛이 없는 것 아닌가…

 

기록적으로 추운 날씨가 서서히 물러간 뒤 처음으로 동네를 걷는다. 이 느낌과 모습이 이곳의 전형적인 겨울이 아닐지… 게다가 바람도 거의 없는 날씨여서 황량한 경치와는 대조적인 날이었다. 성탄 장식, 심지어 성탄구유도 그대로 남아있는 우리 동네는 분명히 독실한 크리스천들이 많이 살고 있을 것 같다.

아직도 모두 풀지 못한 성탄 선물들이 늦게나마 오늘로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연숙이 나에게 주는 ‘내가 좋아하는’ 얇은 자주색 스웨터 와 새로니 부부가 준 실내 winter slipper, 이것은 Richard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신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뒤쪽이 아예 접혀서 신을 수 있게 만든 것이 나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새로니 딸, 우리의 손주 딸, 유나 바다… 성격이 조금 급하고 의사표시가 너무나 분명하다. 오늘 와서 하루 밤을 우리와 지내고 내일 가는데, 오랜만에 하는 애보기, 아~ 쉽지 않구나… 작년, 애를 보던 시절이 조금 잊혀져서 그런가, 무엇인가 불편하고 힘든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어떻게 다른 집에서는 애를 보는 것인지, 그래서 그렇게 daycare center가 비싼 것인지… 그래도 귀여운 순간순간이 있기에 위안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우리의 나이다, 나이… 20년 아니 10년, 아니 5년만 ‘젊었어도’ 분명히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듯하니… 이제는 늦었다, 늦었어…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제와 어제 내가 들었던 짧은 말들이 어쩌면 오징어처럼 축 쳐진 나에게 생기 돋는 힘을 주는 것인지… 이런 것, 누구에게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그래도 나는 기쁜 것이다. 그제는 이형 가게의 종업원 아저씨의 ’75세 모습의 놀라움’ comment, 그리고 어제 새로니 집에서 Richard의, ‘나이보다 10년은 젊게..’ comment,  이런 두 가지의 지나가는 짧은 언급들이 앞으로 최소한 몇 개월을 사는데 큰 힘을 줄 것이라 생각, 아니 희망을 한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다. 이렇게…

 

CANCEL & CANCELED, Family Gathering Together

결국 올 성탄, 연말 가족모임은 100% cancel되었다. 나라니가 아무래도 아직도 몸이 아픈 것이다. 그래서 재료만 준비하고 있었던 각종 음식들을 만들어서 두 집에 배달하고 선물도 교환하기도 했다. 작년에도 이렇게 했던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올해도 이렇게… 올해는 사실 나의 작은 감기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어서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새로니네 먼 곳으로 이사 안 가는 것과 나라니의 둘째 아기 가진 것 등으로 축배를 들어도 좋았을 텐데… 그래도 한번 얼굴을 보러 그곳으로 가니까… 아~ 올해는 이렇게 넘어가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성탄모임요리’를 만들어서 선물상자들을 들고 ‘거의 작년처럼’ 두 딸의 집에 가서 전해주고 들어왔다. 나는 거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기에 I-285 drive를 하는 것 큰 문제는 아니었으나,  이런 것들은 진짜 가족모임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신명 나는, 즐거운, 보람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 참 올해는 이상한 해로 끝이 나는 모양이다. 특히 전혀 happy하지 않은 모습의 나라니 인상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대조적으로 기운이 넘치게 보이는 새로니의 모습이 이런 기분을 조금 보상해 주긴 했다. 내일 새로니가 유나를 맡기러 올 것이어서 아예 오늘 간 김에 Ozzie를 미리 데리고 왔다. 그 녀석이 있어야 동네 산책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정상적 삶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는 희망도 없지는 않았다.

 

몸도 근질거리고, 어제 이형 네 그룹과 만나서 느낀 것도 있기에 오늘은 혼자서라도 YMCA gym엘 갈까 했지만,  별로 good idea가 아니라고 ‘강제성 권고’를 하는 연숙, 속으로 ‘네~ 네~’를 되뇌는 나, 그래 좋은 것이 좋은 것,물 흐르는 대로 순리대로 싸우지 말고 살자.

어제 이형네 retail store에서 나와 다른 삶들의 모습을 보고 느꼈기에 나도 조금 자극을 받은 것인지… 한편으로는 어떻게 그렇게들 사느냐 하는 놀람과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생동감, 살아있는 삶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는 극과 극의 양면성을 본다. 내가 너무 ‘게으르고 안전한 철부지 삶’을 아직까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편한 곳에 앉아서 각종 영성, 철학, 과학 책들을 읽고 사는 나의 현재의 삶,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안 됨을 사람들을 만나서 깨닫기도 한다. 나는 나의 현재 삶의 성격에 이렇게 자랑하지도 못하는 듯한, 한마디로 자신감이 없는 것일까?

그들의 삶, 나와 너무나 다르고 듣고 보기에 신선하기까지 하지만 나는 그런 삶에 그렇게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인데…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신 있게 사는 듯하게 보이는 것인지..

한마디로 내가 보기에 그들은 가급적 세상적, 세속적인 즐거움을 만끽하며 사는 듯 보인다. 즐거움 이외의 다른 세계를 모르고 사는 듯한 것이다. 어떻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조금 타협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조금 더 ‘삶이 있는 현장 드라마’를 보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어제 이형 가게에 간 것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어떤 ‘찬물’을 뒤집어 쓰는 효과를 주기도 했고, 우울한 나의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런 외출이었기에 앞으로 이런 기회를 더 갖고 싶기도 하다.

 

과달루페, 과달루페~~ 이제 새해가 이틀 앞으로 … 머리 속은 역시 1월 말 예정의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가득 차 있다. 성지에 대한 것 보다는 ‘여행 그 자체’, 집을 떠나는, 그것도 ‘멕시코’로 가는 것에 더 나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깊은 심리적 충격을 주리라 기대, 희망을 한다. 그러면 이번 성지순례는 100%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로 ‘수난의 시간들’ 묵상기도가 24시간 (24일 동안)이 지난 뒤에 있는 ‘부록’으로 넘어갔다.  ‘수난의 처참한 고통의 시간’에서 조금 숨을 돌리고 이 ‘하느님의 종’, 피카레타에 대한 공부를 조금 넓혀 보고 있다. 우선 그에 관련된 책들에 대한 조사, Amazon에서 보는 ‘서평’ 등으로 조금씩 ‘느낌’을 조절한다. 제일 관심사가  ‘이단성’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사실 전혀 문제가 없다. 이 기도서 책의 감수자 격인 ‘성인’이 그녀의 고해신부였기 때문이다. 99% 의 Amazon 독자들도 나와 마찬가지의 의견인 듯 싶다. 소수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작은 거부감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100% fiction으로 치부하기도.. 하기야 영적, 믿음에 관한 것이니 그것도 이해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