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26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과연 유용하며 실용적인가?

2013.08.12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몇 해 전 어느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 인사교육담당 책임자라는 사람이 자사 중견간부사원을 대상으로 한 산업교육 프로그램에 동참해 달라며 강의주제를 혁신경영으로 요청해 온 적이 있었다. 그는 그 회사에서 16년간이나 인사교육에 관해 정평이 나 있는 분이라고 교육생 누군가가 필자에게 귀 뜸해 주었다.

 필자는 강의에 앞서서 그 회사의 기본정보를 알고 강의에 임하고자 그 인사교육담당 책임자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았다.

 

1) 귀사의 주종사업이 무엇이며 어떤 제품/서비스를 어느 시장의 어느 고객의 무슨 니즈를 충족시키려고 생산・제공하고 있는가?

2) 제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무엇이며 어떤 면이 고객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보는가, 그리고 타사 것보다 더 우수하거나 부족한 면은 무엇인가?

3) 제품생산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이 몇 개 정도이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디의 누구로부터 조달 받는가?

 

그런데 그의 답은 놀랍게도 이들 질문에 대해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거의 막히는 것이었다.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25

니즈맞춤혁신, 대박성공의 진원지

2013.07.31

기업이 지나치게 영리만을 꾀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가치창조(또는 부(富)창조)등의 우호적인 표현을 빌려서 기업존재에 대한 사회적 당위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지만 어떻게 표현하든 기업의 본질은 여전히 이익추구에 있다.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기업 CEO가 지녀야할 자질과 역량을 기업의 존재목적과 관련시켜보기로 하자. 기업의 궁극적 목적은 이익추구다. 기업이 지나치게 영리만을 꾀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가치창조(또는 부(富)창조)등의 우호적인 표현을 빌려서 기업존재에 대한 사회적 당위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지만 어떻게 표현하든 기업의 본질은 여전히 이익추구에 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건 리더로서 기업 CEO의 소임과 책무는 기업본연의 목적인 이익추구에 충실해야함을 강조해 준다. (여기서 이익추구에 충실해야 함에는 물론 옳은 방법으로 추구해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기업이나 이익추구란 말만 나오면 대뜸 그러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만 많이 내면 되느냐며 대드는 단세포 인간들과 또 기업은 돈 버는 조직이 아닌 사회봉사기관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얼빠진 친구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 너무 많기에 본 독자들 중에는 그런 류의 인간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익추구에 충실한 기업 CEO의 대표적 인물들은 어떤 분들일까? 물론 성공한 기업 CEO들임이 틀림없지만 가장 두드러진 분들은 아마도 자수성가(自手成家) 억만장자들일 것이다.

 

Guest Blog: 김인호의 조갑제 컬럼 2

시대사조(時代思潮) 탁류에서 우리의 선택은..

2013.07.15

시대사조(時代思潮) 탁류에서 우리의 선택은 양자역학(量子力學)에서는 원자레벨 이하에서는 확정적 질서가 아닌 다만 하나의 패턴을 갖기 때문에 거기에서의 관계는 단지 확률로서만 얘기될 수 있다고 전한다.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선의의 거짓말(a good lie)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쓰이곤 한다.

사람에 따라서 거짓말은 절대적으로 나쁜 것이기에 선의의 거짓말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유익을 가져오거나 적어도 불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한 거짓말이라도 선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아예 거짓과 거짓말을 전략・전술수단으로 활용하여 인간이 지닌 이해력과 판단력은 물론 양심을 마비시켜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옳음과 그름에 대한 인식을 헷갈리게 하여 공산주의 이념을 구현시키려고까지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을 놓고,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옳은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상대주의(relativism)와 각자마다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다원주의(pluralism)가 현대를 풍미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에서의 주장과는 달리 거짓과 거짓말을 전술적・예술적으로 구사해 온 공산권은 이미 망하는 길로 접어든 북한만 남겨두고 모두 망했거나 사라진 사실을 역사는 생생하게 전해준다.

 거짓과 거짓말 이외에도 동성애, 사형제도폐지, 안락사, 낙태, 피임, 수간 등등에 대해서도 서로 상충되는 무수히 많은 주의주장들이 세상에 난무하고 있다.

 상대주의 하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절대적으로 그른 것도 없다며 모든 게 다 수용되게 되다 보니 서로 상충․모순 된 것들도 동시에 공존하게 된다. 그리하여 상대주의가 지향하는 상호이해(相互理解)에 의한 공존(共存)은 일시적인 것으로 그치게 되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오히려 이견(異見)과 반목(反目)과 투쟁(鬪爭)과 전쟁(戰爭)을 불가피하게 만들 수 있다.

 

Guest Blog: 김인호의 조갑제 컬럼 1

하늘이여! 이 땅에 인재들을 보내소서!

2013.07.11

국익(國益)과 애국심(愛國心)이란 말을 우리들이 아닌 오히려 탈북동포로부터 듣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십 수년 전 영국 쉐필드(Sheffield)에 있는 한 단조(鍛造)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노후해 보이는 공장시설과 주로 수동(手動)으로 이루어지는 원시적인 작업방법을 보면서, 국내의 현대화된 공장과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생산시설 등을 주로 보아온 필자에게 은근히 자긍심이 솟았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의 주 생산품이 우주항공물체의 머리 부분에 들어가는 특수재질의 특수부품이며 그 납품처가 NASA라며 세계에서 자기네만이 만들 수 있다는 득의에 찬 설명을 접하는 순간 약간의 외경심이 솟으며 산업기술력(産業技術力)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새삼 되새겨본 기억이 난다.  

  25여 년 전에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기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배스또로스(Vstors)라는 곳의 한 핵연료가공(nuclear fabrication)공장을 어렵게 방문한 적이 있었다. 경계가 엄한 핵단지(核團地)인 그곳에서의 인상은 대단히 평화스러워 보였지만 장미열매를 익혀서 먹는다며 자기고장의 특징을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 주던 건장한 체구의 공장장은 대단히 거만하고 교만해 보였다. 핵연료 가공시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던 당시 비(非) 엔지니어인 필자가 던지는 우문(愚問)탓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받는 자가 아닌 주는 자의 입장에서 내보이던 여유로운 태도에서 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사실 스웨덴은 900만 명 정도의 조그마한 나라이면서도 노벨상(Nobel Prize)을 주는 나라다. 주는 자리와 받는 처지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은 그네들의 산업에서도 당시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자동차, 전기통신, 원자력발전, 항공사, 기관차 부문에서 Volvo, Saab, Ericsson, ASEA, SAS 등 유수의 세계적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당시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져있지만. 

 

  십여 년 전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철강 엔지니어링회사 Voestalpine 를 방문해서 그네들이 자랑하는 연구진의 연구결과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연구진들은 나이가 꽤 듬직한 기술자들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이도 어리고 화장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젊은 여성 엔지니어들이 상당수였던 사실에 오스트리아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일면 깨달았던 기억이 새롭다.

  시드니(Sydney)의 해수욕장이나 몰디브(Maldives)의 고도(孤島), 태국 파타야(Pataya)해변, 필리핀 보라카이(Boracay)해변 등의 요지에 의례 있기 마련인 스위스인 소유의 별장이나 빌라를 보면서 문득 커피 한 톨 생산되지 않는 나라가 향(香)으로 세계를 제패하는 역량을 지닌 스위스의 저력이 연상되었던 적도 있었다. 사실 스위스의 저력은 국토면적이 우리의 반(半)도 안 되며 인구는 1/6이 안되면서도 2012년 현재 Fortune 글로벌 500대기업에 우리보다 2개사가 더 많은 15개가 속해 있는 데서도 확연히 들어난다.

  전 세계 많은 당뇨환자들이 맞고 있는 인슐린(insulin) 주사약은 양돈(養豚)국인 덴마크에서 생산되어 미국의 제약회사를 통해 공급함으로써 고(高)부가를 이룬다는 사실은 2011년 덴마크의 1인당 국민소득 4만 불선이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특수강(特殊鋼)하면 당연히 독일 회사이려니 생각했던 필자에게 한 독일인 기술자가 특수강은 누가 뭐래도 이태리 밀란(Milan)의 다니엘리(Danielli)라며, 섬유 패션을 비롯한 전문성의 원천이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인의 후손(後孫)이라는 그네들의 자부심과 무관하지 않음도 상기시켜 주었던 적이 있다.

  유럽의 대학교 하면 제일 먼저 Oxford, Cambridge 등을 떠 올리지만 영국의 Cranfield, 네델란드의 Erasmus, 스위스의 St. Gallen, 이태리의 Bocconi 등이 굉장한 경쟁력을 지닌 학교임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호주의 소젖을 덴마크의 기술로 가공 처리하여 동남아 시장에서 판매하는 우유 사업주는 대만인 화교다.

  한국은 대(大)국도, 소(小)국도 아닌 중간 정도 국가로 작년(2012)에 50-20 (인구 5천만 일인당 소득 2만 불) 클럽에 진입한 세계 7번째 국가로 선진국(developed country)으로 불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G2를 자처하는 중국은 힘을 바탕으로 역사왜곡(歷史歪曲)을 통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진행하고 있으며 또 떼거리로 서해를 유린하면서 이어도(離於島)도 들먹이고 있고 한편 일본은 독도(獨島)의 영토관할권에 대한 도전을 통해서 그들의 패권을 신장시키려 하고 있다. 지구촌 어디에도 없는 체제세습의 북한은 핵(核)놀이를 통해 까놓고 우리의 생존을 본격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자, 이들 틈바구니에서 우리를 지키기 위한 강한 힘을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지금 우리는 글로벌 대(大)격변의 어려움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지속번영을 추구하려는 국가수호(國家守護)애국세력과 오직 지역(地域)과 이념(理念)과 과거(過去)를 붙들고 늘어지는 국가부정(國家否定)무리들, 반(反)국가세력들로 대단히 혼란스럽다.

  군복무 10년간 휴가 한번도 못나오는 군대를 오직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가려 해도 키 147cm, 체중 35kg이 못돼서 군대에도 못가는 북한의 그 수많은 피골이 상접한 젊은이들을 보면서도, 심지어는 몇 십, 몇 백만의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데도 그런 곳을 그렇게도 향모 하는 반(反)국가무리들의 광란은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가는 심각한 수준에 다 달은 느낌이다.

  국익(國益)과 애국심(愛國心)이란 말을 우리들이 아닌 오히려 탈북동포로부터 듣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이런 절박함 속에서 지역・세대・계층 간 대립(對立)대신에 화합(和合)과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며 우리의 강함을 과거(過去)가 아닌 미래(未來)에서 찾고 반(反)국가세력에 대한 정화(淨化)・순화(醇化)를 도모하면서 국력을 응집시켜 대한민국을 선(善)하고 강(强)한 나라로 키워갈 국가경영 지도자와 그를 보필할 참으로 깨끗한 인재들이 과연 이 땅에는 없는 것일까?

  하늘이여! 당신 뜻을 경외(敬畏)하며 따르는 의(義)롭고 깨끗한 지혜로운 인재들을 이 땅에 보내소서!

 

글 / 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24

울란바토르와 연변 체험에서 얻어진 메시지는?

2013.07.10

거짓과 거짓말은 불완전한 인간이 지닌 악한 심성의 산물이므로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로 악함을 누르고 선한 쪽이 이기도록 갈고 닦으면 극복될 수 있는 것이기에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명이 주어져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2007년 몽골국제대학(MIU)에서 여름계절 학기에 경영학을 지원해 달란다는 요청을 받고, 필자와 집사람이 경영전략과 기업윤리를 커버하는 과목을 공동으로 맡고 미국CPA 소지자로 회계학 전공의 경영학 박사인 필자 후배가 국제경영을 맡아, 집중강의로 진행되는 특별학사(學事)프로그램을 위해 울란바토르에 3주간 체류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몽고음식이 입에 맞질 않아 우린 비교적 자주 한식식당엘 가곤 했는데 당시 한국관광객이 많았던 탓이었는지 그곳에 의외로 한국식당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자주 가던 단골식당에서 식사하던 어느 날 15여명의 한국인 단체관광객이 밀어 닥쳤다. 그 식당에는 이런 단체손님 때문이었는지 평소 때에도 홀 서비스를 맡고 있는 몽고아가씨 종업원들이 10여명 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날 한참 주문을 받느라 씨끌 뻑정했는데 주문이 끝나고 얼마 지나 음식이 나오자 또 한번 난리가 난 듯 큰소리도 나고 고함소리도 터지고, 식당주인 아주머니가 연방 미안하다며 주문한 손님들의 성질을 누구려 뜨리려 애쓰고 있었다.

필자는 어인 일인가 흥미롭기도 해서 가만히 그 소동을 지켜보았다. 소동은 손님 몇 사람이 당초 주문 내용을 바꾸는 바람에 주문 받은 몽고 아가씨가 얼떨떨해져서 주문한대로 음식이 안 나오고 딴 게 뒤죽박죽 나오다 보니 모처럼 여행 중에 특별히 먹고 싶었던 기대가 깨지는 바람에 손님들의 불평이 터졌던 것이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손님들이 빠져나간 다음 필자가 그 여자주인에게 왜 그런 실수가 일어나느냐니까 이런 경우가 여기서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단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2007년 당시 몽고사람들은 어른이건 애들이건 머리회전(回轉)훈련이 별로 되어 있질 않아서 국내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도 하는 머리 회전이 여기서는 제대로 안 된단다. 그래서 자기도 처음엔 몽고 종업원들이 국내와 같겠거니 하고 생각했다가 여러 번 낭패를 보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시킨 것은 시킨 대로 아주 잘 하는데, 한번만 변경하면 그때부턴 걷잡을 수 없이 헷갈려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몽고인들이 대체로 센스가 약하고 집중력이 덜하면서도 정직하지도 않다는 것이 15년 가까이 그곳에 살면서 느낀다는 여주인의 설명이었다.

 

정직(正直)이라는 말이 나오니, 필자 후배교수가 미국에서 박사학위 논문심사 중에 있었던 일이라며 들려주었던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구두(口頭)심사 때 한 심사위원이 던진 질문에 잘 모르면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저리 둘러대고 있는데 갑자기 ‘너, 거짓말쟁이(You are a liar)!’ 하며 고함치더란다. 그래서 그는 결국 박사학위는 이제 물 건너가는구나 생각하며, 지체 없이 잘못을 인정했더니만 ‘그래, 자네 이게 정직한 거야’ 하더란 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박사학위를 받고 상당 시간이 흘렀어도 그때의 그 경험은 그의 일상에서 늘 정직하자는 것이 생활신조로 굳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아..향수(鄕愁), nostalgia..

nostalgia, 노스탤지어1, 향수(鄕愁).. 사전2을 보면 이것의 뜻은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 정도가 된다. 그렇게 힘든 뜻이 절대로 아닌 것이 누구나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애독’하는 New York Times, the 신문에 ‘향수, nostalgia에도 과연 바람직한 것이 있는가?‘ 란 제목의 기사가 나의 눈을 끌었다. 이 제목을 보면 우선 향수란 것은 원래 ‘바람직하지 않은 것’ 으로 암시가 되어있고 그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향수, nostalgia란 용어는 의학적인 것도 있어서, 이것은 분명히 disorder (장애 障碍) 에 속하고 따라서 그에 따르는 ‘고통’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의 어원은 ‘망향심 望鄕心’의 그리스어 nostos와 고통이라는 뜻의 algos가 합성된 말로서 17세기 어떤 스위스 의사가 ‘전쟁 중에 떠나온 고향을 그리는 군인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병’ 을 뜻하는 말로 시작이 되었다고 했고, 이후로 이 ‘병’은 부정적인 뜻으로 이해되고 쓰이고 있다.

향수(병) 연구 Constantine Sedikides
향수(병) 연구
Constantine Sedikides

이 기사의 ‘주인공’은 영국에 사는 그리스(희랍)계 (사회)심리학 교수 콘스탄틴 세디키데스 (Constantine Sedikides, University of Southampton, U.K., Ph.D Ohio State University, 1988) 인데, 그리스에서 대학을 졸업, 곧바로 미국 유학으로 사회심리학으로 연구를 계속, 현재는 영국의 University of Southampton에 재직하고 있는 사회심리학계의 권위자이다. 이런 배경이면 젊었던 시절을 포함해서 고향을 두 번씩이나 떠난 셈이고, 고향의 그리움을 분명히 느꼈을 것이고, 그것을 사회심리학적으로 파헤쳐보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날 고향 생각에 빠진 그를 보고 주위에서는 ‘우울증’으로 우려를 했지만, 그는 사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고 그가 느낀 것은 ‘고통적, 병적’인 것이 아닌 ‘포근함, 심지어 즐거움’에 가까운 것들이었고, 과연 고향과 지나온 과거가 앞으로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향수(병)이라 것은 꼭 부정적인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과연 향수(병)이 과거에 짓눌려 살아야 하는 고통인가 아니면 현재와 미래를 사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주인공 자신의 느낌으로 출발된 이 문제는 본격적으로 ‘학문적, 통계적’으로 10년 이상 연구가 되어서 그 결실을 맺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 그가 이런 향수(병)에 걸렸을 때, 그가 느낀 것은 ‘이런 향수적 감정은 내 존재의 뿌리와 연속성을 느끼게 해 주고, 내 자신과 주변과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보게 해 주었으며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였는데.. 과연 나만 그런 것일까.. 하는 선에서 출발을 했다고 한다. 연구의 결과는 그가 느낀 그대로였다. 그 골자는:

향수적 감정은 고독과 지루함, 불안함과 맞서 싸우는 힘이 된다는 것이고 나아가서 자신을 더 관대하고, 포용적이고 더욱 참게하며 특히 부부들은 공통된 향수, 기억 감정을 나누며 더욱 가까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춥고 을씨년스러운 날, 이 감정은 글자 그대로 우리를 훈훈하게 해 준다. 물론 고통스럽던 기억도 동반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이 향수감정은 우리의 인생을 더 의미 있게 보게 하고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죽음도 덜 무섭게 느끼게 한다.

 이 향수(병)이란 것은 지역적, 연령적 차이가 거의 없이 또한 생각보다 더욱 자주 겪게 된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예전, 특히 19, 20세기에는 이 감정(‘병’)이 실향민, 이민자들이 특히 많이 겪는 ‘이상 증세’라고 분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결과로는 이것은 ‘누구나’ 겪는 훨씬 보편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친구, 가족, 명절 휴일들, 결혼, 노래, 석양, 호수.. 등등의 추억으로 더욱 나타나고 특히 그것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은 항상 ‘좋은 주인공’의 역할을 했다고 기억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이상 이런 경험을 하고, 거의 반수 이상이 일주일에 3~4번 겪는다고 한다. 특히 고독을 겪는 사람이 더 자주 겪는데, ‘향수 감정’이 그런 고독과 우울의 고통을 덜어 주며 그런 데서 빨리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로 향수가 그렇게 ‘좋은 면’도 있다면, 이것을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는 없을까? 가장 빠른 방법 중에는 추억의 음악을 듣는 것이 있고 이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하며 정말로 이 ‘추억의 음악’ 효과는 대단해서 실제로 몸 자체가 따뜻해 진다고 한다. 간혹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게 되면 ‘인생의 연속성’이 끊어지는 위험도 없지 않지만 거의 대부분 오히려 과거와 현재,미래를 더욱 더 연결시켜주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연구 팀의 일원인 Dr. Routledge는 “향수 감정은 우리의 ‘실존 감’에 탁월한 도움을 준다. 내가 아끼는 귀중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며 그것이 우리가 의미 있는 생을 보내는 값진 한 사람 임도 일깨워 준다. 또한 많은 향수 감정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감정도 잘 처리한다.” 고 보고를 했다.

 다른 흥미로운 것은 이 ‘향수 감정’의 빈도나 심도는 젊은이에게 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떨어지다가 다시 올라간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젊은이들의 경우,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그 이전의 시절을 회상, 음미하며 건강한 변화를 추구하며, 가족과 보냈던 크리스마스, 애완 동물과 학교 친구들을 그리워한다. 이럴 때 바람직한 것은 좋은 추억거리가 많을 수록 좋고, 이것은 거꾸로 살아가며 좋은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향수 감정을 잘 ‘이용’하려면, 가급적 기억 속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를 하며, ‘그때가 좋았지.. ‘하는 ‘함정’을 피해야 한다고 한다. 그 대신, ‘존재적인 방법’으로 그 때의 일들이 나의 현재에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도 극단적인 것만 피하면 ‘추억 향수의 감정’을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병적인 노이로제나 극단적 성향만 없다면 이런 향수적 감정은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 일주일에 2~3번 정도 빠지는 것도 좋고, 이것을 우리가 경험으로 번 값진 상품이라는 것도 기억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다.

 이런 기사를 읽으며 나는 또 한번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몇 년 전에 이런 ‘we didn’t know then..‘ 류의 ‘연구 보고기사’ 중에 ‘내성적인 사람들의 시대’ 란 조금 걸맞지 않은 제목도 있었고 나는 ‘신나게, 열심히’ 읽었다. 내가 내성적인 사람 중의 ‘대표’이기에 그랬을까? 생각보다 더 많았던 ‘동료 내성적 인간’들을 알고 흐뭇해 하기도 했지만, 진정한 내성의 장점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회 심리학’적인 것들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지역간에도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그런 변화는 큰 것이 못 된다. 한마디로 인간은 대개 ‘공평’하다고 할까.. 그런 보편적 경험적 진리를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다.

그러면 지금 이 기사를 읽으며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이것도 ‘안도감’이었다. 일방적인 사회적 압박에 못 이겨 ‘나는 향수 감정 같은 것 별로 없다’ 하며 살고 싶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과거에 매달리는 ‘현재가 불행한 한심한 인간’이란 딱지를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이 말하면, 나는 위의 연구 결과에 있듯이 일 주일에 몇 번씩이고 그런 감정을 느끼고, 어떨 때는 즐기고 산다. 그렇다고 나의 현재가 과거에 비해서 덜 행복하거나 심지어 비참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연구 보고와 같이 나는 조금 우울해지면 ‘일부러, 자연적으로’ 향수 감정을 이용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 자신 성격의 일부가 된 것 같다. 그런 ‘추억적 행복’도 없다면 아마도 위의 연구결과에도 있듯이 괴로운 감정을 더 느끼며 살았는지 누가 알랴?

 그러면서 나의 blog을 찬찬히 뒤돌아 보면, 역시 나는 ‘과거의 좋은 추억’들을 적극적으로 총동원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현재를 더 의미 있게 ‘견디는’ 영양제가 된 것일까? 주변의 어떤 ‘골프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친지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왜 과거에 집착을 하느냐?‘ 라는 간단한 반응이다. 과연 그는 그의 ‘아름다운 추억’을 즐기지 않는 것일까?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나는 조금 평균이상으로 ‘향수 감정’을 겪고 있고, 그것으로 나의 ‘아픔’을 잊으며, 그것이 현재를 더 건강하게 살고 미래를 준비하는 원천이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1. 어차피 원어 발음이 힘들면 간단하게 그냥 노스탈자 하면 더 좋지 않을까?
  2. 네이버 사전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23

오스트리아 복지 스타일이 전하는 감동

 2013.07.02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경영학을 좀 아는 사람에게 경영학의 특징을 한마디로 얘기해 보라면 의례 능률의 학문(discipline of efficiency)이라고 한다. 이는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일어난 대량생산혁명으로 확립된 대량생산체제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2차 오일쇼크(1979)전까지 약 80여 년간 지속해 오는 동안 얻어진 경영관리의 산물이리라. 요컨대 대량생산체제에서는 동일제품(identical products)이거나 표준제품(standardized products)을 다루므로 제품에 대해서는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보니 자연히 최대관심사는 일정의 제품산출량(output)을 생산・제공하기 위해 투입되는 투입량(input)을 최소화하거나 또는 일정의 투입량을 가지고 제품산출량을 최대화시키는데 집중하기만 하면 되게 된다. 다시 말해 투입-산출 비(input-output ratio)를 높이는, 곧 능률(산출/투입으로 표시되는 양적 개념)을 향상시키는 데만 신경을 쓰면 족하단 말이다. 그래서 대량생산시대에는 더 능률적인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에 차이가 생기게 되고 더 나아가 성공기업과 실패기업이 생기므로, 이 모든 것이 능률의 차이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는 건 당연하다.

이런 배경에서인지는 몰라도 오랫동안 경영학을 가르쳐 온 필자도 알게 모르게 능률이라는 개념에 익숙해 있었던 듯 쉽다. 필자가 해외여행 중 능률의 관점에서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 몇 번의 사례를 접한 적이 있었는데 이들을 잠시 되짚어 본다.

  1.  1997년 IMF 직전에 필리핀 마닐라와 보라카이 휴양지엘 갈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필리핀에서는 아주 조그마한 상점일지라도 사설경비원과 어카운턴트(accountant)를 꼭 고용하고 있었다. 사설경비원을 두는 연유는, 사설경비원에게 밤에는 일정한 수칙에 따라 발포권(發砲權)도 주어져 있다는 걸 봐서 그곳의 불안한 치안분위기 탓으로 이해되었지만, 조그마한 구멍가게 같은 곳에서도 어카운턴트가 전표(voucher)를 써주지 않으면 절대로 물건을 건네주질 않는 시스템은 아마도 미국 식민지시절부터 정착된 선진방식이려니 이해되었다. 특히 휴양지에서는 전표를 써주는 어카운턴트와 물건을 내주는 사람의 역할이 더 철저하게 분담되어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법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관행이었는지는 당시 필자가 확인한 바는 물론 없었다.
  2. 2000년 집사람과 같이 중국연변의 한 대학교 AMP과정에 특강 차 갔을 때의 일이다. 집사람과 필자의 강의가 다 끝나자 학교 측에서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엘 가게 되었는데 예약식당 문을 들어설 때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뱅뱅 돈다. 아주 고급식당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급이었다고 느끼며 식당 문을 들어서는데 문 양쪽에 각 5명씩, 10명이 허리 굽혀, ‘어서 오십시오’ 하며 손님을 맞는 것이었다. 능률이라는 것에 늘 익숙해 있던 필자에게 이렇게까지 손님 맞는 품이 쉽게 이해되질 않았다. 물론 손님을 대하는 영업전략 차원일 것이라고 이해는 했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하는 생각이 뒤를 이었던 탓이다.
  3. 2001년 태국 방콕과 해양휴양지 부켓(Puchet)엘 다녀 온 적이 있었다. 방콕의 호텔에 도착하니 태국 아가씨들이 정문 양 옆에 각 15명씩, 30명이 도열하여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이었는데 필자가 머문 이틀 동안 지켜보니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손님에게 그들은 하루 종일 그렇게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 역시도 능률의 견지에서는 쉽사리 이해가 안 갔는데, 그들이 단순히 손님맞이 영업전략 차원에서 하는 것일 뿐일까 하는 생각을 그때에도 해보았었다.
  4. 2007년 북경에서 그리고 2011년에는 북경과 천진과 하얼빈에서 지인의 초청으로 고급식당의 별도 룸에서 식사할 경우가 몇 차례 있었는데 그 때마다 마다 유사한 경험을 했다. 매번 룸 안에 의례 젊은 청년 3명이 서있었는데 그들의 역할이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주문 받는 사람과 주문한 음식을 가져 오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는데도 그들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방을 비우질 않고 우리 곁을 줄곧 지키고 서있었던 때문이었다. 후에 그곳 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냥 영업전략 차원과 일자리 제공차원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고급식당 별실에서 식사할 정도의 손님이라면 그 정도의 추가비용을 부담시켜도 크게 문제될 게 없고 또 그렇게 함으로서 일거리 없는 청년들에게 다소의 수입이 가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강제로 하는 건지, 협약에 의해서 하는 건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하는 건지는 당시 필자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능률만이 아닌 또 다른 뜻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 조그마한 또 하나의 계기였다.
  5. 2005년 중유럽을 여행하던 일정 중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중심가에서 점심을 하려고 오후 3시 조금 전에 어떤 식당엘 들어갔는데 홀 안에 들어서자 뭔가 긴장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리일행이 들어가자마자 부랴부랴 식당주인이 식당 문을 닫는데 뭔가에 쫓기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래서 조금 지나 그 연유를 물었더니 제시간에 문을 닫지 않으면 벌칙(罰則)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문을 닫아야 하며 또 문을 제때 닫지 않으면 범칙금을 내야 하는 이유가 여행객인 필자에게는 선뜻 이해되질 않았다.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22

북경대 MBA가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가르치는 이유

 2013.06.27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근육운동을 기계로 대체시킨 산업혁명이 확산되는 가운데 19세기 경험율(rule of thumb)에 의존하던 영국의 공장관리경험을 거쳐 1900년대 초반 대량생산혁명이 미국에서 일어나면서 산업현장과 밀착한 토양 위에서 경영학이 태동하게 되었다. 미국의 산업화가 철강산업-자동차산업-전기통신 산업을 중추로 진행되어 온 탓에 경영학도 이들 각 산업현장에서의 문제해결을 돕는 산업밀착형 형태로 발전되어왔다.

 대량생산관점에서 미국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산업이 철강산업이다. 미국 US Steel사가 영국 British Steel사가 채택한 베세머(Bessemer)공법을 그대로 채택한 대량철강생산 공정을 갖추면서 철강산업이 발흥하게 되었고 그래서 경영학도 물론 철강산업에서 제일먼저 태동되게 되었다.

 경영학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Taylor하면 금방 그를 알지만 그가 1890년경 미국의 한 철강공장의 제강공정(steel-making shop)에서 압연공정(milling shop)으로 강괴(steel ingot)를 주먹구구식(rule of thumb)으로 옮기는 작업을 유심히 지켜본 후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을 주창했고 그로부터 경영학이 싹트고 자라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 나오기 전에는 주로 과거의 경험율에 비추어 일을 처리해 왔다. 이런 배경에서 테일러가 작업현장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공장의 각 작업자가 오늘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할까를 각자가 알아서 하는 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에 그는 주목했다.

 그네들의 그런 방식으로 하루 평균 작업량은 1인당 8톤 정도였다. 만약에 각자가 할 과업(task)을 정해주고 과업실적에 따라 임금을 달리 주며 일을 계획하는 기능과 작업하는 기능으로 분리시켜 각 기능의 전문성을 발휘케 한다면 얼마나 생산성이 올라갈 것인가를 그 엔지니어가 계산해 보니 최소한 49톤은 될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는 작업연구와 시간연구를 통해서 과업을 책정하고, 직능별 조직을 마련하고, 오늘날의 성과급제와 비슷한 임금체계를 갖추어 작업을 시켰더니 작업량이 평균 49-51톤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그의 확인과 확신으로부터 1911년에 과학적 관리의 원리(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란 책을 펴냈다. 이것이 그 후 Taylorism으로 더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미국 관리학으로 발전했고 이게 경영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21

“노키아 쇠락 이유 알았다” 연발하던 핀란드 교수

 2013.06.19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미국 샌디에고(San Diego)에 갈 기회가 필자에겐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007년 센디에고 쉐라튼 호텔에서 있었던 제27차 세계전략경영학회 연례회의(SMS Annual Conference)참석 때였고, 두 번째는 2011년 센디에고 근교 리조트의 LOEWS 호텔에서 열렸던 SMS 특별회의(Special Conference)참석 때였다.

 2007 년 첫 번째 센디에고 갔을 때 그곳 인상은 2008 월가 붕괴 1년 전이어서 그러했는지는 몰라도 무언가 무력감이 느껴지던 분위기였다. 약 700여명을 헤아리는 학회 참가자들로 쉐라튼 호텔 로비는 붐비고 있었는데도 호텔도 예외는 아닌 듯 생동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특히 배정받은 룸의 세면대 발브가 제대로 작동이 안 돼 물이 줄줄 새고 있어 프론트에 알리자 수리공들이 왔다 갔다 하며 손을 봤지만 임시변통도 잘 안 되는 걸 보면서는 뭔가 큰 이상(異常)이 감지되었다.

 그러함에도 SMS 연례회의 행사는 그런대로 성대하게 잘 진행되고 있었다. 필자는 그간 교분관계를 맺어 온 영국 Warwick의 John McGee 교수, 스위스 IMD의 Bala 교수, 북경대 GSM의 Changqi WU 부원장을 비롯한 10여명의 회원들과 해후의 인사를 나누며 미리 준비해 간 Dynamic Management Theory(DMT)에 대한 PPT 자료를 첫날 일정이 끝나고 저녁을 마친 후 나눠주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SMS전 회장이었던 McGee 교수가 스티븐 킴(당시 그는 필자를 그렇게 불렀음)하며 큰 소리로 필자를 부르며 필자를 일찍부터 기다렸다며 전날 준 PPT 자료에 뭔가가 잔뜩 쓰여 진 것을 들고는 질문이 있다는 것이었다. 얼른 필자에게 다가 온 생각은 McGee 교수가 DMT에 대해 대단한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가 DMT와 관련하여 필자에게 제기한 질문의 요지와 주고받은 대화는 이러했다.

 

1) 공급과잉과 수요부족 간의 불균형(imbalance)이 1929년 세계대공황을 야기 시킨 것처럼 1997년 이후 10년 사이에 미국 GDP의 25배가 넘을 정도로 급증한 파생금융상품으로 인한 금융경제(money economy)의 초거대화와 1980년대 초반부터 쇠락해 온 제조업으로 인한 실물경제의 왜소화와의 불균형으로 미국경제는 결국 머지않아 큰 파국을 맞으리라 보는 필자의 시각이 너무 지나친 건 아닌가?

 이에 대해, 아직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므로 누구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큰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선에서 일단은 봉합하였음.

 

2) 1980년부터 전략경영(strategic management)이 경영학의 한 영역을 형성하여 온지가 27년이나 되었는데 거의 같은 기간 동안(1980-2007) 미국경제가 계속 쇠락하여 온 사실을 들어 전략경영이 그간 제공해 온 이론/모델/분석도구들이 결국 실용성이 덜한 것들이라고 보는 필자의 사고 역시 논리의 비약 아닌가?

 이에 대해, 전략경영의 기본관점이 요소환원주의(reductionism: 각 요소의 총합이 전체라는 철학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어 인터넷혁명 후 상호의존성이 높아지고 상호작용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기업과 산업을 각각 하나의 전체로서(as a whole) 파악하는 개념적 틀이 요구되며 이런 면에서 전략경영은 한계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는 인식에는 공감을 표했음.

 

3) 한국의 대기업인 재벌(Chaebol)들이 잘나가는 이유가 뭔가? 특히 삼성(Samsung)이 Fortune Global 500에서 2005년에 40위권으로 진입했고 2007년에도 30위권으로 상승무드인데 그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더욱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금과옥조처럼 가르쳐 온 우리들로서는 삼성의 경우가 참으로 당황스런 면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McGee 교수와 필자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진지한 토론을 계속했고 발표세션이 시작되었는데도 발표장엔 들어가지도 않고 서로의 주장을 주고받았는데 이는 삼성성장의 면모를 몇 마디로 정리하는 게 어렵다는 선에서 얘기를 맺었다.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20

난까이대서 다이나믹 매니지먼트로 번 최초 수입

 2013.06.12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필자는 2008년 정년을 맞은 후에도 세계전략경영학회의 연례회의나 특별회의에는 가능한 한 참여하고 있다. 그건 정년 전에 수차례 참여하면서 형성된 전략경영분야 세계 석학들과 교분관계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맘에서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필자가 품어 온 하나의 의문인 ‘What is Competitive Advantage?’을 풀고픈 마음에서이기도 하다.

1980 년 전략경영이 등장한 이래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경쟁우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가 얼핏 이해되는 듯 하면서도 명쾌하게 와 닿지 않았는데 30여 년이 지난 2011년 SMS 회의의 어느 발표세션 스크린에도‘What is Competitive Advantage?’라는 것이 떠 있는걸 보면서는 이 의문이 필자에게 더 크게 다가왔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이후 전개된 초경쟁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 경쟁자보다 한 수 위의 우위(優位)를 점해야 한다는 인식이 절실하게 느껴지던 상황에서 1985년 마이클 포터 교수가 제시한 경쟁우위라는 개념이 너무 어필하게 다가왔기에 그 후 디지털화혁명-인터넷혁명-스마트혁명으로 이어지는 대변혁의 상황에서도 경쟁자와의 상대적 비교를 담고 있는 경쟁우위라는 개념은 여전히 중시되어 왔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경쟁우위를 고객에게 더 어필하는 제품/서비스를 보다 더 싸게 제공하는데 있어서 주경쟁자보다 특정기업이 지니는 우위라고 정의하고 있는 기존의 주장에 대하여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과연 주경쟁자보다 우위를 점하기만 하면 항상 우수한 기업성과가 얻어지는 걸까, 또 한발 더 나아가 아예 경쟁이 없는 상황이라면 항상 사업성공이 보장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풀리질 않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우위를 점해서 잘나간다고 회자되던 기업들이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어느 날 느닷없이 알 수도 없었던 무명의 경쟁자에게 나가떨어지는 사례가 빈발하는가 하면 완전히 독점이라고 자족하던 기업들이 문을 닫는 경우도 흔히 발생하고 있는 걸 보면서 경쟁우위로만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문제가 쉼 없이 제기된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던 기업들이 느닷없이 쇠락하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보다 더 일반적으로 산업주도권이 빈번히 이동하는 상황에서도 기업의 지속번영은 가능한 것일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 원리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 물음을 제기하고, 2011년 6월 10-12일 샌디에고에서 핵심역량이론을 주창했던 고 프라할라드의 1주년 추모를 겸해 ‘경영학은 재구축되어야 한다(Management should be reinvented)’는 주제로 열린 2011 세계전략경영학회 특별회의에서 다음의 논문발표를 통해 그에 답하고자 하였다. 즉,‘핵심역량: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촉발의 출발점(Core Competence: Starting Point to Trigger Dynamic Management based on Firm Power Theory)’이라는 논문발표를 통해 위의 물음에 답하고자 했는데 당시 발표했던 내용을 간추려 본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경영전략 전문가회의에서의 토론내용이므로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하리라 생각됩니다만 널은 이해 바랍니다.)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19

그린위치행 유람선에서의 해프닝 이후

2013.05.28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국내 한 국책(國策)연구소에 재직하던 1980년 가을 혼자 해외출장 중 불란서에서 스웨덴, 이태리를 거쳐 영국 런던에서 일요일을 맞은 적이 있었다. 주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한 후 가능한 주일미사에 참석하려고 여기저기 물어가며 가톨릭성당을 찾다가 제대로 찾지를 못하고 헤매던 중 눈앞에 갑자기 테임즈(River Thames)강이 보이고 그곳 선착장에 각 행선지를 표시한 유람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 특히 그리니치(Greenwich)행이 눈에 띄자 그냥 배에 올랐는데 아무래도 어릴 적 어느 공부시간에 배운 바 있는 그리니치 천문대가 문득 떠올랐던 때문이리라.

 배는 100명 이상을 태울 정도로 제법 컸지만 승선손님은 15명 정도로 별로 많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되자 배는 제시간에 출발하였다. 얼마 후 손님 중 중년이 넘은 한 미국인 부인이 혼자 여행 중이냐며 말을 걸어와 우리는 자연스레 같이 유람하는 입장이 되었다. 테임즈 강폭 여기저기에 전시해 놓은 Pax Britanica시대의 영국 해군력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큼직한 여러 척의 전시 군함들에 눈길을 주며 이런저런 얘길 하는 사이에 유람선은 유유히 테임즈 강 하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배는 중간 중간에 몇 군데를 들러서 가는 배였다. 중간 선착장에 들릴 때마다 배를 정박시키려고 젊은 배꾼 하나가 배가 육지에 닿기 바로 직전에 뛰어 내려 배를 고정시키려고 선착장 기둥에 밧줄을 재빠르게 묶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눈이 졸려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막 잠에 뻥 떨어지려는 것 같은 깊은 졸음에 취한 상태로 보였다.

 그러던 중 한번은 졸음에 거의 감긴 눈으로 선착장을 향해 뛰어내리다가 삐끗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강에 빠질 뻔했다. 나도 모르게‘조심해!’하고 소리를 질렀고, 그 친구는 놀라 깨면서 가까스로 몸을 가누어서 물에 빠지지는 않았다.

 ‘왜, 그렇게 졸면서 일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영국의 노동법 때문이라며 멋쩍게 웃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는 나의 물음에 그의 대답은, 바로 1년 전 1979년에 수상이 된 대처(Thatcher)가 정부를 출범시키자마자 노조(勞組)의 스트라이크(Strike)를 막기 위한 노동법을 만들었는데, 그 법에서는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72시간을 1년에 한번 인정해 주고 있다는 것이었었는데‘오늘이 바로 그 법 첫 시행의 이틀째’라는 것이었다.

이는 물론 당시 필자가 직접 확인한 바가 아니고 단지 그 친구의 설명이었기 때문에 그 법적 배경이라든가 논거는 알 수가 없고 또한 지금까지도 그와 같은 법조문이 여전히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그때 그 친구가 지난해 언젠가 선주(船主)에게 대들었던 것에 대한 보복으로 그 선주가 노동법에서의 그 취지를 십분 살려 자기로 하여금 업무를 계속하도록 명(命)했고 그래서 48시간 동안 거의 한 잠도 못자고 계속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 기간에 선주의 업무명령을 어겨서 해고를 당하면 아무런 법적보호를 못 받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당시 영국은 소위‘스트라이크(Strike)병’을 깊이 앓고 있었다. 그래서 대처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그 치유책의 일환으로 그런 법을 만들었던 것으로 유추되었다. 참으로 노사(勞使) 양측 모두에게 특히 노측에게 극단(極端)으로 치닫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이러한 나의 추론은 ‘앞으로는 절대로 선주에게 막 대들지 말아야겠다.’는 그 친구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18

다만 자연의 섭리(攝理)를 따르도록 부여된 자유

 2013.05.28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필자의 연구세계와 학문세계에서 그간 견지해 온 우주관과 세계관의 골격은 한마디로‘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인과율(因果律)이다. 요컨대 사업경영, 기업경영, 산업경영, 국가경영의 그 어느 레벨에서든 인과율이라는 확정적 질서(deterministic order)가 존재하고 있다는 인식을 기초로 필자 나름의 연구세계와 학문세계를 펼쳐왔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로 하여금 이런 인식을 굳히기까지는 몇 번의 계기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 계기는 자연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적 질서에 대한 귀납적 추론이었다. 우선,

 

1) 빨간 페인트와 파란 페인트를 섞으면 페인트 색깔은 무슨 색이 될까?

상 온(常溫)에서 보라색이 된다는 것은 물론 어린 시절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 보라색의 페인트에 열(熱)을 가하면 빨간색으로 변했다가 계속해서 열을 더 가하면 파란색이 된다는 사실과 이제 이 파란색의 페인트를 식히면 다시 빨간색이 되었다가 드디어 상온이 되면 또다시 보라색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소위 화학 시계(chemical clock)라고 불리는 범주의 것으로, 하나의 확정적 질서(deterministic order)가 무생물의 세계에도 존재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 만약 초식동물에 육식사료를 먹이면 어떻게 될까? 초식동물은 초식사료를 먹도록 조성된 자연적 존재이므로 만약 초식동물에 육식사료를 먹이면 결국 자연 질서를 어긴 탓에 그에 상응한 반대급부를 치루 게 되는 질서가 엄존할 것임도 추론 가능하므로, 소에게 육식사료를 장기간 먹이면 결국 그 소가 미칠 것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달기가 어려워진다.

 3) 또한 식물에게나 동물에게 들려주는 음악을 달리 하면 어떤 차이가 생길까? 헤비메탈을 들려주는 경우와 바로크음악을 들려주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식물의 생장(生長)에 있어서 헤비메탈의 경우가 바로크 음악의 경우보다 생장속도가 느릴 뿐만 아니라 생장 방향이 음악이 들려오는 반대방향으로 향한다는 실험이 있고, 또한 개에게 영영가가 높은 먹이를 주면서 헤비메탈을 들려주었더니 결국 그 개가 미치더라는 실험결과도 보고되고 있는 걸 보면 식물도 동물도 주어진 질서대로만 존재하게끔 되어있는 존재라는 추론도 또한 가능하다.

 4) 그리고 수간(獸姦)과 동성애로 인해 AIDS가 창궐하는 현상도 작용=반작용의 엄존하는 하나의 확정적인 자연 질서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런 몇 가지 예를 위시하여 온 우주천체의 운행과 자연계의 변화 및 계절의 변화 , 해와 달의 뜨는 시각과 지는 시각 그리고 밀・썰물의 시각 등등을 우리가 사전에 알 수 있는 것도 자연계에 내재되어 있는 확정적 질서(deterministic order)가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능케 함으로서,‘자연계내의 온 만물 안에는 어떤 의지(a will)의 자연 질서가 내재되어 있으며 만물은 오직 그 자연 질서대로만 반응한다.’는 추론이 귀납적으로 입증될 수 있다는 인식이 첫 번째 계기였다.

 

두 번째 계기는 자연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을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메이커는 존재물보다 한 차원 높은 존재이며, 각 존재물에는 그 메이커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각 존재물은 오직 그 의지만을 따른다는 귀납적 추론도 가능하다는 인식이었다. 그리고 이를 확대해 보면 자연계 자체도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물이므로 자연계를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존재할 것이며 이는 자연적 존재(natural being)보다 한 차원이 높은 초자연적 존재(super-natural being)로서 조물주 또는 창조주(Creator)라 불리어질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자연계내의 온 만물 안에는 그 창조주의 절대의지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으므로 ‘자연계내의 온 만물 안에는 어떤 의지(a will)의 자연 질서가 내재되어 있으며 만물은 오직 그 자연 질서대로만 반응한다.’는 앞의 귀납 추론은‘자연계내의 온 만물 안에는 창조주의 절대의지(absolute will of God)가 내재되어 있으며 모든 만물은 오직 창조주의 절대의지대로만 반응 한다.’것으로 보강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두 번째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 계기는 인간의 사고와 관련한 것이었다. 즉, 백만 원 빚진 사람과 천만 원 빚진 두 사람이 있는데 이들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음을 알고 돈을 빌려준 사람이 빚을 탕감시켜 주었다면, 두 사람 중 누가 더 감사해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응답과 관련하여,‘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 더 감사할 것이다.’‘아니다, 적게 탕감 받은 사람이다.’‘아니다, 금액의 다과에 관계없이 다 같이 감사할 것이다.’‘상황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각 개인마다의 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심지어는 누가 탕감시켜달라고 그랬느냐 따라서 감사할 이유가 뭐 있느냐’는 등의 의견을 내보이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17

마이클 포터 그룹이 촉발시킨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2013.05.21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필자에게 누군가가 경제학과 경영학 분야에서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 실제의 문제해결에 크게 기여한 사람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필자는 경제학 분야에서는 사회다윈주의에 기초하여‘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자유방임(laissez faire)’, ‘분업(division of labor)’의 명쾌한 세 가지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제시해준 국부론(The Wealth of the Nations: 國富論, 1776년)의 저자 아담 스미스, 그리고 1900년을 전후한 대량생산혁명에 힘입어 그간의 적체(積滯)수요가 대충 해소되면서 점차 공급과잉과 수요 부족현상을 나타내다가 결국 수요와 공급 간의 불균형(imbalance)으로 말미암아 터진 세계대공황(1929)에 대한 치유책으로 부족한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라도 해결하자는 유효수요 이론의 처방전을 제시한 케인즈를 꼽고 싶다.

 그리고 경제성장발 전의 동인인 혁신의 관점에서는 경제발전의 주역은 기업이며 기업의 진수는 혁신임을 주장한 슘페터와 더불어 생태생물학을 논거로 기술변화(돌연변이)에 적응하는 기업의 루틴(routines, 무형자산)에 의한 경쟁선택으로 산업이 진화하며 경제가 발전한다는 진화경제학을 주창한 넬슨과 윈터을 꼽고자 한다.

한편 경영학분야에서는 1900년대부터 1980년까지 80여 년간 지속되어 온 대량생산체제하에서 과학적 관리로 능률향상을 지향하는 전통경영학의 기초를 닦은 테일러와 더불어 2차 오일쇼크(1979)로 1980년대 들어서면서 환경이 격변(激變)하는 가운데 초경쟁상황이 전개되자 이에 적응하기 위한 논리/방식을 다루기 위해 등장한 전략경영분야에서 산업레벨의 5-force model과 기업레벨의 value chain 개념을 개발하고 이들을 서로 연결시키려는 본원적 전략을 제시한 마이클 포터 교수를 꼭 뽑고 싶다. 왜냐하면 역동적 환경에서 어떻게 기업성과가 얻어지는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려면 우선 산업과 기업을 동시에 다루어야하는데, 전략경영이 등장한 1980년 이래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업레벨과 기업레벨을 동시에 다루며 이들을 서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여전히 희소한 중에서도 포터의 경쟁전략 틀은 이론적으로나 실무적으로 가장 돋보인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포터의 경쟁전략 틀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대량생산체제의 연장선상에서 우선 1980년대 들어 격화하는 경쟁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논리를 다루려고 개발된 것이고 또 그 후 기업의 동태이론 추구라는 시도는 있었지만 이렇다 할 별다른 발전된 콘텐츠를 갖추지 않고 있었음에도 5-force model, value chain(가치사슬), generic strategies(본원적 전략유형)이라는 것들이 워낙 명쾌하고 창의적이어서 연구자들에게 오랫동안 어필하여 왔다.

그러다 2000년을 전후한 인터넷/스마트 혁명이 일어나면서 고객의 니즈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니즈 변화가 빈발하며 상례화 되어가며 점차 기업에서 고객으로 힘이 옮겨가는 권력이동(power shift)현상이 심화하면서 한계를 내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이들은 대량생산체제에서나 기업이 힘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유용한 전략도구로서 사용되고 있었다.

 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 틀은 2차 오일쇼크(1979)로 초(超)경쟁상황이 전개되던 상황에서 대단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1983년에 마이클 포터 교수를 비롯한 하버드 인맥의 8명이 기업 및 정부의 고위직을 상대로 하는 전략전문 컨설팅회사 Monitor Group를 설립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Monitor Group는 지난 30여 년간 포터의 경쟁전략 틀에 기초하여 전략컨설팅분야에서 독특한 브랜드를 쌓으며 Bain & Co. 와 Boston Consulting Group과 같은 세계적인 거물 컨설팅사와 경쟁하는 수준까지 성장하며 고객밀착형의 문제해결책 제시와 세계적 수준의 지적재산과 사고(思考)의 리더십을 발휘해 온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어떤 연유인지 2012년 11월 파산하여 Deloitte에 합병되는 운명을 맞았다.

 Monitor Group의 파산에 대하여 여러 가지 추측과 추정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Monitor Group이 그간 사용해 온 포터의 전략적 분석 틀과 분석도구들에 대한 논거가 2010년대의 글로벌 상황과 클라이언트들의 니즈를 제대로 충족시키기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인 듯하다.

 필자가 새삼 Monitor Group을 거론하는 이유는 1980년대 후반 한국통신공사(KTA: 현재의 KA, 한국통신의 전신)에 대한 Monitor Group의 컨설팅 결과에 대한 심사 평가에 참여했던 필자의 경험으로부터 다이나믹 매니지먼트를 주창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 하고자 함에서이다.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16

파생금융상품 망국론을 또다시 제기하는 이유

2013.05.13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필자는 2008년 이명박(MB) 정부 출범 바로 이틀 후인 2008년 2월 27일에 ‘파생상품에 대하여 주목하는 이유’라는 칼럼을 한국경제신문에 게재한 바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부터 솔솔 나오더니 MB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우리도 두바이처럼 금융허브를 만들자, 금융선진화를 이루자, 금융 산업경쟁력을 높이자, 등 금융과 관련한 주장들이 갑자기 매체에 부쩍 등장하는 형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욱 가관인 것은 지금이야말로 금융선진화를 이룰 절호의 찬스이니 법으로 규제를 완화해서 선진금융기법을 습득하자며, 당시의 금융전문가들(요즘도 여전히 이런 분들이 계시지만)의 주장이 여러 일간지의 시론란을 덮더니만 유력 일간지의 사설로까지 이를 두둔하는 희한한 작태가 연출된 얼마 후 Citi 그룹에 20억불을 투자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때 투자한 20억불은 결과적으로 몽땅 털리는 꼴을 당했지만 이런 배경에는 어떤 세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는데, 이런 나의 직감은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파산직전의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를 인수시키려는 획책을 꾀하던 세력이 거론되면서 더욱 분명해졌었는데 그 뒤 이들은 슬그머니 물밑 속으로 숨겨졌다.

파생금융상품의 위험성과 그 사기성을 지적한 필자의 경고성 칼럼에 대해 당시 관심을 두는 이는 별로 많지 않았지만 정확히 7개월 뒤 9월에 월가붕괴(Wall Street meltdown)가 터졌다. 만약 조금 더 늦게 월가가 붕괴되었다면 그래서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하였다면 어떤 파국이 초래되었을까를 생각하면 기가 차고 아찔하기까지도 하다.

 2008 월가붕괴 후 파생금융상품문제는 일단 리먼 브라더스 하나의 희생양으로 외형적으로는 일단락된 듯하지만 그 초강력 시한폭탄으로서의 본질적 문제는 2013년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나 역시 물밑에 가려진 상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강하게 이 문제를 제기하는 주장은 간혹 모기소리처럼 잠깐씩 들리곤 하다가 금방 또다시 수면 아래로 가려지는 구도가 아직도 여전히 계속 반복되고 있다.

 필자가 이를 재론하는 이유는 또다시 박근혜정부의 출범에 즈음하여 이제 금융은 실물경제 특히 제조업을 지원하는 수준에만 머물질 말고 금융과 관련한 규제를 확풀어서 금융자체를 하나의 산업으로 키워서 먹고살자는 주장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어떤 형태로든 필시 파생금융의 아이디어가 깊숙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파생금융상품 문제를 이해하려면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의 세계경제 특히 미국경제의 흐름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2차 대전(1939-1945)은 미국을 제외한 승전국과 패전국 모두에게 심대한 피해를 주었고 물자절대부족시대를 맞게 되었는데 이는 절묘하게도 대량생산혁명을 주도해 온 미국기업들로 하여금 대량생산체제를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걸쳐 미국 기업들은 산업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다각화를 통해 인류역사상 초유의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로 이어지는 대량경제시대를 주도할 수 있게 되면서 미국은 세계경제의 반(半)을 점하는 막강한 경제력을 쥐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기업들은 이런 과정에서 점점 오만/교만해 지면서 혁신노력을 게을리 하게 되었고 여기에 더해 노조가 막강한 힘을 갖게 되면서부터는 더더욱 혁신활동이 뒷전으로 밀리는 현상이 여기저기서 생기게 되었다.

 여기 에 더하여 패전국인 서독과 일본이 1950년대에 전후 복구체제를 갖추고 1960년대 들어 미국을 맹추격하자 미국의 주종산업인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며 미국의 경제력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1971년에 이르러서는 1944년 결성된 고정환율제의 브래튼 우즈 시스템이 깨지면서 변동환율제로 전환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래서 환율변동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73년에 터진 1차 오일쇼크로 환율변동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금융기관들은 위험을 잘 관리할 수 있는 헤지(hedge)형 금융상품을 개발하게 되었다. 그러다 1979년 2차오일 쇼크가 또 터지면서 세계가 초(超)경쟁상황으로 심화되는 가운데 위험변동이 더 불확실해지고 상례(常例)화되는 분위기에서 1980년대 초반 레이건 정부가 추구한 신자유주의 기치아래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완화를 단행하였다. 그러자 많은 신규 금융 중개업자들이 진입하게 되었고 이들이 컴퓨터를 활용한 정보 분석을 기초로 위험을 여러 구성단위로 쪼개어 고객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 예컨대 선물(futures), 포워드(forwards), 옵션(options), 스왑(swaps) 등의 금융상품들을 재무공학(financial engineering)이란 이름으로 제공하게 되면서 파생금융상품 시장이 형성되게 되었다.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15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생각해 본다

피의 혁명이 준 교훈

2013.05.08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필자가 40대 중반 때, 미술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도 불란서로 출장 갈 때마다 몇 차례 베르사유 궁전에 갈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그곳 파리에 살고 있는 지인 가족들과 함께 베르사유 궁전 뒤 넓은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는 십자형 인공호수의 어느 한편 잔디 위에서 바비큐를 즐긴 다음 궁전 전시관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여기저기 역사미술관을 둘러보다가 어느 전시실 입구에서 주춤 놀란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몇 번을 갔어도 그 전에는 한 번도 본바 없는 전시실에 온통 피를 뿌려놓은 듯한 그림들로만 꽉차있었던 때문이었다.

 특히 콩코드 광장에 설치해 놓은 기요틴(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장면과 목이 잘리려고 쭉 줄지어 서 있는 풀죽은 사람들의 행렬과 잘린 목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가 콩코드 광장을 지나 세느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린 그림이 제일 소름끼쳤고 또 너무나 사실처럼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방의 전시물이 전하는 시기가 도대체 언제 것들이기에, 온통 핏빛으로 장식되다시피 한 것일까? 도대체 그 시기의 상황이 피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궁금하여 설명을 읽어보니 바로 루이 왕조가 무너진 1789년 불란서 혁명 발발 때부터 나폴레옹이 등장하기까지 10여 년 간의 것이란다.

불란서는 18세기 루이 14세 때 유럽에서 최강의 국가였으나 루이 16세 치하 때인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된 불란서 혁명으로 왕정을 포함한 구체제(앙시앙레짐 Ancient Regime)가 무너지고, 민간 혁명정부가 들어섰으며 동년 10월 5일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하는 ‘인권시민장정(The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the Citizen)’이 선포되었단다. 그러나 얼마 뒤 민간 혁명정부에 의한 교회재산의 몰수, 뒤이은 중과소득세의 징수, 곡물가의 동결, 정부 가격제 불이행에 대한 극형실시, 개인 신분증 소지의 의무화, 이웃상호간의 감시제도 실시, 중상주의에 의한 경제정책의 실패와 지나친 지폐의 남발로 인한 재정혼란 등이 가중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1792년에 제1차 공공안전위원회가 발족되자마자 반역자 처단명분으로 피의 학살이 파리 시가를 휩쓸게 되었고 뒤이어 정권이 여러 번 교체되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져갔는데 불란서 대혁명 후 4만 명 이상을 죽인 이 피의 잔치는 1799년 나폴레옹의 독재정치가 등장할 때까지 10년간 지속되었다는 설명이었다. 필자는 바로 그 시기의 미술품들을 전시한 방을 본 것이었다.

 불란서가 220여 년 전 불란서 혁명을 통해 왕정에서 민정으로 또 다른 민정으로 바뀌는 와중에서 무정부 상태와 국가주의를 경험한 후 결국 전체주의의 독재로 옮겨가는 약 10년간 흘린 그 엄청난 피범벅과 살육으로 과연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결국 나폴레옹 독재체제를 얻기 위해 그 많은 피를 흘렸단 말인가?

 그리고 가깝게는 1969년부터 1975년 사이에 캄보디아 폴포트(Pol Pot)가 자행한 인종말살(genocide)획책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해골더미가 보여주듯 그 잔학상이 끔직한데 그들은 이를 통해 또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해골더미가 현재는 관광자원역할(?)을 하고 있는데 과연 지금의 관광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그토록 그 많은 살육을 자행했단 말인가?

 

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14

재벌구조의 진화논리와 기업의 지속번영 원리

2013.04.30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필자가 1969년 공군중위 제대 후 첫 직장인 KIST에서 연구를 막 시작할 때 지녔던 사고(思考)의 하나는 사회현상에도 자연 질서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인식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물은 언제 어디서나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과 같은 보편질서(universal law)와‘물살은 협곡에서는 빨라지고 강폭이 넓어지면 느려진다.’는 식의 상황적응질서(contingency laws)가 사회현상에서도 적용될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이런 인식을 기초로 1970년대 초반 KIST 경제분석실에서 필자가 실무책임을 맡아 행한 첫 연구 프로젝트가 POSCO 건설타당성 검토연구였다.

당시 국내 철강 시장규모는 왜소하고 철광자원도 희소할 뿐만 아니라 공장을 건설할 돈도 기술도 물론 없고 철강회사 경영경 험은 전무였으며 다만 있는 거라고는 당시 KIST로 영입되어 온 몇 분의 유학파 과학자들과 거의 무경험의 미숙한 국내 금속공학과 출신의 엔지니어들뿐이었는데 과연 이런 상태에서 POSCO 프로젝트가 국책사업으로서 타당성을 지니겠는가를 검토하는 연구였다.

 POSCO 건설 프로젝트는 이미 KISA (포스코 건설을 위한 국제 consortium)에서 2여 년 간 그 타당성을 검토한 바 있는 프로젝트였는데 그들이 포항제철 건설프로젝트는 그 사업타당성이 크게 뚜렷하질 않아서 차관을 못 주겠다는 결론을 내린 1969년 초반에 정부가 KIST로 하여금 독자적으로 검토하라는 배경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이런 연구 배경에서 필자는 우선 철강공장의 최소 경제적 생산규모가 얼마인가를 기술연구팀으로부터 확인한 후 최소 경제적 생산규모를 갖추려면 어느 정도로 수출되어야 할 것인가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래서 5~60년대에 걸친 세계철강재의 수출입자료를 가지고 소위 철강수출모형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당시 사업타당성검토와 관련한 기본정보와 아이디어가 전무했던 터라 이리저리 밤낮없이 고민하던 끝에 떠오른 생각이 자연법칙을 원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수 출은 수입하는 나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수출하는 나라에서 수입하는 나라로 얼마만큼이 수출될 것이냐에 대한 예측은 마치 물리학에서의 중력법칙(gravity law) 곧 두 물체간의 중력의 크기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법칙을 근거로 하여 철강수출모델을 도출하고자 했다.

 자연법칙을 논거로 한 연구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유의적인 예측치가 얻어졌는데 이는 필자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고 POSCO 사업타당성 검토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어찌 알았는지 POSCO 건설 사업타당성에 대해 미국 USX 철강엔지니어링 회사가 찾아와 득의 찬 자세로 도움을 주겠다며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제안을 다 듣고 난 후 그들에게 우리의 작업결과와 그 방법론을 보여주었더니 ‘too academic’이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는 얼굴이 벌게 가지고 도망가듯 가벼렸던 게 아직 기억난다.

 아무튼 KIST의 검토 결과대로 포항철강공장건설이 확정되고 자금 확보와 관련한 일련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순항을 거듭하여 POSCO는 드디어 1973년 첫 출선의 기쁨을 온 국민에게 주었던 것이다.

필자가 POSCO 프로젝트를 끝내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서울지하철 2호선 노선을 마련하는 새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같은 아이디어로 서울시내 교통량을 예측하여 노선확정(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런데 이번에도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영국의 한 컨설팅회사가 집요하게 제안 설명기회를 달라고 해서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우리의 연구가 거의 끝난 상황이라 기회를 주었더니 1시간 이상 득의에 찬 설명을 하면서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연구결과를 보여주자 그들도 역시 얼굴이 벌게져서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그토록 득의에 차서 설명한 방법론이 바로 우리가 이미 사용한 중력모델이었던 때문이었다.

기업번영, 사업다운 사업과 니즈맞춤혁신..

인호형의 컬럼, <김인호의 경영 경제 산책 13>이 새로 발표 되었다. 나의 경영, 경제에 대한 ‘전문지식’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덤으로 거저 받게 된 ‘나이의 선물’ 덕택으로 ‘저절로 알게 된’ 나 나름대로의 얄팍한 의견은 많이 있다. 오늘의 주제는 ‘성공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차이와 그렇게 된 원인에 대한 것으로, 기업 윤리를 염두에 두고 근대에 개발된 주요한 기업경영모델을 고찰한 것으로 저자의 독특한 ‘원리적’인 각도로 본 듯하지만 다른 글과 다르게 종교, 신앙적인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 내가 알게 된 것 중에는 여기에도 잘 알려진 80/20 Pareto rule이 적용이 되어서, ROI(return on investment)는 대강 환경, 전략, 조직 변수의 80%와 나머지 20%의 관리, 운에 따른 변수에 따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80%에 속하는 것을 ‘사업다운 사업’으로 정의하고 이런 룰은 단기적인 아닌 중, 장기적으로 적용이 됨을 밝힌다.

그래서 과연 어떤 것이 ‘사업다운 사업’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데, 비록 전문적인 용어로 풀이는 되었으나 역시 이것도 ‘직감’적으로 공감들이 가는 것들이다. 사업, 그러니까 business의 모델을 세가지로 구분을 하였는데, 사회에 유익을 주는 positive-sum, 유익도 무익도 주지 않는 zero-sum, 그리고 사회에 해를 주는 negative-sum이 그것 들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업들이 사회에 유익을 주는 것들이지만 도박, 마약 퇴페산업 등은 노골적으로 사회에 해를 주는 것들이다. 문제는 가운데 있는 zero-sum 사업들이고 저자는 이것에 초점을 맞추고 근래의 세계경제문제를 설명한다.

역시 덩치가 큰 미국경제에서 ‘고안’이 된 이 ‘신경제 상품’들, 그 중에서 ‘파생금융 상품’이 끼친 ‘악영향’은 뉴스를 본 사람들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파생금융 상품의 규모가 커지면 커 질수록 진짜 경제인 ‘실물 경제’는 그만큼 위축하게 된다고 한다. 기억에도 생생한 2008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는 아마도 이 zero-sum 사업들의 과도한 팽창에 의해서 유발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업들은 철저한 정부규제 하에 있는 것이지만 만약에 그 규제에 ‘구멍’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이해가 간다. 나도 이것은 공감을 한다. 쉽게 말해서 ‘각종 수법, 기교로 돈 자체로 돈을 버는’ 그들이 이 위기의 주범이 아닐까.

 

 

기업번영, 사업다운 사업과 니즈맞춤혁신에서만…

2013.04.19

 

김인호 명예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1980년대 후반 당시 한창 잘 나가던 어느 재벌사가 보내준 신년호 사보 첫 장을 여는 순간 거창한 고사(告祀)장면을 담은 몇 컷의 칼라사진이 실려 있었다. 약 40여개 고사용 돼지대가리를 쫙 차려 놓은 거대한 상 맨 앞줄엔 회장이라는 분이 혼자 자리하고 그 바로 뒤에 약 40여분을 헤아리는 그룹사 사장단이 정렬하여 넙죽 절하는 장면이 크게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영화‘대부(代父)’와 마피아를 다룬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동시에 떠올랐는데 왜 그랬는지 그 연유는 잘 모르겠지만 뒤이어 ‘아, 저분들이 불확실한 기업경영환경에서도 운(運)이 따라주어 별 탈 없이 우수한 기업성과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저러는구나.’하는 생각이 일견 들었지만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도저히 수긍되어 오질 않았다.

 다음 해 1학기 필자의 전공영역의 하나인 기업윤리 시간에 학생들에게 고사얘기를 들려주며 이에 대해 약간의 토론을 유도하였다. 그런 후 글로벌 레벨에서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21세기의 격변 환경에서 우수한 사업성 과를 내려면 머리를 짜고 짜내어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어려운데 운(運)이나 요행(僥倖)을 바라는 맘으로 과연 우수한 성과가 얻어질까 하는 의구심을 강조하며, 그 재벌은 분명‘올바르게 일하려 하기보다는 운이 따라 주워 사업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업임에 틀림없다.’며, 그 재벌사가 고사 같은 미신행위를 계속한다면 결국 망하고야 말 것이다, 라고 학생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상당수의 학생들이 그게 우리나라에선 관행과 관습 아니냐며 크게 필자에게 반발하던 게 생각난다.

 그로부터 10여 년 지나 1997년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고 이때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30대기업(재벌)의 거의 반(半)에 해당하는 13개가 결국 파산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 고사를 지냈던 그룹도 물론 파산했다.

 주변에서 인간사 매사에 운이 따라 주어야 일이 제대로 된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그런데 그게 과연 그럴까? 같은 맥락에서 사업경영에서도 과연 운이 중(重)하게 작용하는 걸까?

1981년부터 교직에 동참한 필자는 사업경영에 있어서도 준거해야 할 법칙성이 존재하며 따라서 그 법칙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결국 경영학자들의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 일환으로 경영전략분야에서 1970년대 초반부터 개발 사용되고 있는 PIMS(profit impact of management strategies)모델을 주시하고 있었다.

 예 나 지금이나 경영학과 관련한 대부분의 모델/이론/유형/기법들이 여전히 직관(直觀)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PIMS모델도 마찬가지지만 정성(定性)모델(qualitative model)이 아닌 정량(定量)모델(empirical quantitative model)이란 점에서 필자는 특별히 PIMS모델에 남다른 관심을 두어왔다.

 PIMS모델은 미국 전략계획연구소(Strategic Planning Institute: SPI)가 1970년대 초반부터 사업투자수익률(ROI)이 무엇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가를 밝히고자 포춘 글로벌 500대기업의 사업경험을 통해 계량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계량모델이다. 지금도 경영전략분야에서 계량모델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1970년대 당시엔 PIMS모델은 거의 유일한 계량모델이었다.

 PIMS모델은 원래 GE가 자사의 다각화(diversification)된 사업들을 종합 관리할 목적으로 내부 프로젝트로서 개발한 모델이었다. 그 개발배경을 잠시 보기로 하자.

 

Proof of Heaven, 2nd reading: part 1

A Scientist's Proof of Heaven
A Scientist’s Proof of Heaven

Eben Alexander, a neurosurgeon(신경외과전문의)의 2012년 #1 New York Times Bestseller, Proof of Heaven.. 이 책은 바쁘게도 느껴지고 피곤하기까지 한 성삼일(Paschal Triduum), 부활주일(Easter Sunday)에 걸쳐서 ‘번갯불에 콩 볶듯’ 대강 눈으로 읽은 다음, 이제 ‘정신을 가다듬으며’ 나의 보금자리 서재에 앉아 다시 자세히 읽는다.

우선, 이 책을 성삼일 전날 ‘우연히’ 사게 된 것이 절대로 ‘우연’이 아님을 이제 믿는다고 말하고 싶고, 나의 머리를 지배하는 심정은, 빠른 속도로 겉 핥기 식으로 읽는 동안 느낀 것은 복잡한 것도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흥분, 기쁨, 그리고 안도감.. 그것이었다. 이제는 조금 흥분된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더 이성적인 자세로 샅샅이 분석하며 천천히 다시 읽는다.

표지, 차례를 거치고, 기나긴 prologue도 빼놓지 않고 정성을 들여 자세히 계속 읽는다. 200쪽 미만의 책이지만, 35 chapters..라면 지루할 듯 보이지만 한 chapter가 불과 몇 쪽이 안 되기에 정말 소화하기 즐겁기까지 한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Prologue를 읽기 시작하며 다시 ‘왜 skydiving에 대한 설명이 이다지도 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 읽을 때는, 혹시 이것이 filler는 아닐까 하는 의심도 했다. 그저 page만 늘리려고 한 ‘잡소리’가 아닌가 한 것이다. skydiving에 대한 경험을 2쪽이나 계속하면서, 책의 주제인 ‘천국의 증명’에 대한 hint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설명 뒤에 간단한 몇 마디가 두 번째 읽는 나에게 납득할 만한 hint를 주긴 했다. 그러면서 조금 용기와 참을성을 더 하며 읽어 나가면, 서두의 뒷부분에는 책 전체의 결론과 맞먹을만한 ‘거창하고, 심각한’ 이 책의 결론을 조금 보여준다. 하지만 본문이 170쪽 밖에 안 되는 책에서 prologue가 10쪽이라면 서두가 길다는 느낌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미리 보여주는 결론은 이것이다.

My experience showed me that the death of the body and the brain are not the end of consciousness, that human experience continues beyond the grave. .. it continues under the gaze of a God who loves and cares about each one of us and about where the universe itself and all the beings within it are ultimately going…

This life isn’t meaningless. But we can’t see that face from here – at least most of the time… But now that I have been privileged to understand that our life does not end with the death of the body or the brain, I see it as my duty, my calling, to tell people about what I saw beyond the body and beyond this earth.

나의 경험에 의하면 육체와 뇌의 죽음이 의식의 끝이 아니고 인간적인 경험은 무덤에 묻힘의 이후로 계속되며, 우리 개개인과 우주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가호아래 영원히 계속된다. 우리의 인생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의 얼굴을 최소한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대부분 못 느낀다. 하지만 지금 육체와 뇌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게 된 이상, 내가 나의 육체와 지구를 떠난 저쪽에서 본 것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

이 서두의 결론이 일반인, 비전문가, 비자연과학자, 신앙인, 신부, 수녀, 수도자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크게 놀랄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것은 저자: 하바드 대학, 최첨단 ‘자연’ 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한 이력서를 가진 뇌신경외과 전문가 의 체험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에 의해서 나온 것이라면 아마도 귀가 솔깃해질 것이다. 현재 ‘양쪽(과학과 신앙)’ 에 어정쩡하게 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 나로써는 한마디로, ‘당혹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안도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Dr. Eben Alexander
Dr. Eben Alexander

이런 류의 NDE(Near Death Experience) 이야기에서 제일 흔히 언급되는 것이 ‘신앙적 체험’이지만 이 저자는 철저히 그것을 뒤로 미루어 놓는 ‘참을성’을 보여준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런 ‘미치게 만들 수도 있는’ 체험에서 깨어난 이후 그는 ‘지혜롭게도’ 그의 기억이 오염되는 것을 막으려 그가 겪었던 모든 체험이 글로 기록, 고정화 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체험에 대한 정보를 100% 차단을 하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런 조치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저자 ‘Eben Alexander, 에븐 알렉산더‘ 는 비록 철저히 불가사의, ‘비과학적’인 며칠의 경험을 했지만 결국은 곧 바로 다시 철저히 이성적인 과학자로 돌아 왔고, 다시 과학과 이성에 염두를 두고 분석작업에 들어갔으며 그 결과 중에 하나가 이 작은 책자이고 그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동료 과학자들과 이 ‘포복절도’할 경험을 보존하고 알리려는 노력으로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저자는 최대한 기존 신앙, 교회의 가르침, 교리를 언급 안 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가끔 ‘하느님’을 언급하지만 그 하느님은 종교관점의 하느님이 아닌 그저 ‘절대자’를 의미할 듯 하다. 지금 신앙에 눈을 조금 씩 떠가며, 과연 무엇이 ‘진리’인지, 그 진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 책의 ‘과학적 접근, 경험’을 나의 체험과 연관을 시키며 공부하고 싶다.

이번의 ‘두 번째 읽기’에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분석’하고 철저히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나와 비슷한 배경이나 신앙적, 과학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과정을 알리고 싶은 심정으로 이 multi-part blog을 쓰기로 했다.

흑백논리와 다원주의

오랜만에 인호형의 글이 발표되었고, 나도 볼 수 있었다. 제목은 ‘옳은 것은 흑백논리와 다원주의 중 어느 편일까?’, 부제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과학적 판단’ 으로 <김인호의 경영 경제 산책> 컬럼 11번째가 된다. 사순절 훨씬 전에 잠깐 연락이 되었지만 다시 ‘잠잠’ 했는데, ‘불현듯’ 소식이 온 것이다. 얼마나 바쁘게 사시는지 간혹 email 교환의 호흡, 박자가 어긋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50년이 가까워오는 ‘몇 달간의 만남’ (아르바이트 대학생과 까까머리 고3 수험생으로)의 인연에 별로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비록 경영학 쪽의 전문가로 성공하셨지만, 이공계의 배경은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오늘의 글은 그런 형의 단면을 보여주는 느낌인 것이다. 경제,경영에서 벗어나, 보편적 논리와 열역학적 법칙으로 본 우주의 창조론 같은 것은 기성 전문가들에게 거론하는 것 조차 거의 taboo시 될 수도 있지만, ‘좁은 과학의 눈’ 을 정면으로 도전하듯 바라보는 용기를 느끼게 한다. 1965년 형에게 몇 개월간 받았던 수험과목 이외의 ‘첨단,공상과학 강의’는 나의 머리에 아직도 뚜렷이 남아 있기에 나는 형의 열역학으로 설명이 되는 창조,진화론을 더 흥미 있게 보게 된다.

 

 

옳은 것은 흑백논리와 다원주의 중 어느 편일까?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과학적 판단

 04.02.2013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세상에는 ‘끝이 좋으면 만사가 좋다’라는 입장에서 어떤 행위의 결과가 좋으면 그 행동은 좋은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결과중시론(consequentialism)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의 결과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행위 자체의 성격과 동기에서 이미 비롯된다는 비결과중시론(non-consequentialism)의 주장도 있다. 또 목적이 좋으면 그 달성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정당화(be justified)된다는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같은 것도 있다.

 이들 각 의견이나 주장은 다 그 나름대로 그 주장에 대한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면 그들이 모두 옳을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볼 때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더라도 어쩌면 그 많은 주장들 중에는 아예 옳은 것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들 중에 옳은(right) 것이 있다면 나머지 것들은 다 그른(wrong)것이라는 논리적 추론이 가능해 진다. 이는 선다형문제에서 정답은 항상 정답이고 나머지들은 항상 오답인 것과 같다.

 예컨대 (3)번이 정답인 선다형의 경우 다수가 (1)번을 정답으로 답했다 해서 정답이 (3)번에서 (1)번으로 바뀌겠는가? 정답과 오답은 다수냐 소수냐에 관계없이, 정답은 항상 정답이요, 오답은 항상 오답인 것이다. 정답이므로 정답이라고 받아들이고 오답은 정답이 아니기 때문에 오답으로 받아들이는 판단은 옳은 판단이다. 그런데 정답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오답인데도 불구하고 정답이라고 우긴다면 이는 모두 오류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범할 수 있는 오류에는 알파(α)오류와 베타(β)오류의 두 가지가 있다. 만약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 한다든가 또 사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실이라고 판단한다면 이는 모두 그릇된 판단이며 오류이다. 전자의 오류를 우리는 알파(α)오류, 후자를 베타(β)오류라 하는데, 오류는 반드시 오류로 판명되기 마련이다.

 오류가 있는 곳에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류는 그 자체가 이미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데 있어서 오류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한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라는 흑백논리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에 관해서도 흑백논리로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며,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과 주의 주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더 바람직한 것으로까지 받아들이는 잘못을 범한다.

 각자의 다양한 의견이나 주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의 다원주의(多元主義; pluralism)와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면 옳은 것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입장의 상대주의(相對主義; relativism)에 익숙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현대는 다양한 주의주장들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옳은 것뿐만 아니라 알파오류나 베타오류도 수용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오류의 견지에서 볼 때, 무신(無信; atheism)은 알파오류이며, 미신(迷信; superstition)은 베타오류이다.

 잠시 다음의 실험결과를 음미해 보자.

 들려주는 음악의 형태를 바로크 음악과 헤비메탈 음악으로 달리하고, 나머지 조건들은 모두 동일하게 한 상황에서 여러 씨앗들의 발아실험을 실시하였다. 일정시간이 경과한 후 조사해보니 바로크 음악을 들려준 쪽의 성장이 헤비메탈음악을 들려준 경우보다 3배나 더 자랐으며, 더 놀라운 사실은 바로크 음악을 들려준 쪽에서는 모든 싹들이 음악이 들려오는 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반하여 헤비메탈음악을 들려준 경우에는 모두 소리 반대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실험 결과를 통해서 모든 씨 안에는 절대자의 절대의지가 투영되어 있고, 그 씨들은 철저하게 절대자의 의지만을 따르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모두 그것을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있으며, 거기에는 반드시 메이커(maker)의 의도가 투영되어 있다. 어떤 물건이든 그 만든 메이커(maker)의 의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면, 그것은 좋은 존재이고, 그렇지 못하면 나쁜 존재이다.

 이 명제를 연장시켜 생각해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메이커(maker)가 있듯이, 우주도 존재하는 하나의 실체이므로 그것을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존재한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존재하는 조물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바로 알파(α)오류를 범하는 것이요, 한편 이상한 돌이나 나무 산 태양 별 등 심지어는 영물이라고 섬기는 우상에겐 아무런 영적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무엇이 존재한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바로 베타(β)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 창조 여부와 관련하여 세상에는 여러 주의·주장들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창조론(creationism)과 진화설(evolutionism)과 윤회설(transmigrationism)을 들 수 있다.

 이제 우주의 에너지는 증감 없이 항상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1법칙과 폐쇄시스템(closed system)에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엔트로피(entropy: capacity to change 의 역수(逆數)로 표현되는 무질서의 정도를 말함)는 항상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여 그 진위를 분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열역학 법칙은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과학법칙이기 때문이다. 일명 엔트로피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열역학 제2법칙은 우주 내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높은 질서(higher order)에서 낮은 질서(lower order)로 비대칭(非對稱)의 일방적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열역학 법칙의 견지에서 볼 때 낮은 질서에서 높은 질서로 진화한다는 진화설은 열역학 제2법칙에 정면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질서가 계속 생기려면 우주에서 에너지가 계속 증가해야 하는데 이는 우주의 에너지는 증감 없이 항상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1법칙에도 상치되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높은 질서에서 낮은 질서로 때로는 낮은 질서에서 높은 질서로 지그재그(zigzag)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윤회설도 열역학 법칙의 견지에서 볼 때 자연 질서에 엄청 어긋나는 것임을 또한 알 수 있다.

 

글/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ihkim5611@dreamwiz.com)

 

Great Ubuntu Hope

Humanity towards others...
Humanity towards others…

내가 Ubuntu[표준 한글 표기는, 우분투 쯤 될까?]를 알게 된 것이 언제였던가? 생각보다 그리 오래 전은 아닐 듯하다. 아마도 2008년 경이었을까?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것이 일반에게 공개, 배포된 것은 2005년 경이었다고 한다. 이 Ubuntu란 것은 물론 Open & Free computer operating system인 Linux의 한 ‘종류’이다.

Linux의 ‘핵심(kernel)’은 ‘한가지’이지만 그것 이외 부수적인 것들은 무수히 많다. 그것이 Free & Open system의 특징일 것이다.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조금씩 바꾸어서 ‘배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Free & Open‘ 철학은 정말 처음 나올 당시에는 ‘혁명’적인 idea였다. 특허로 꽁꽁 묶어 놓거나, copy-protection으로 방어하며 ‘고가’로 팔아야만 했던 computer software (OS 포함, Windows, Apple OS, etc)를 ‘공짜로’ 주겠다는 것은 사실 얼듯 듣기에 ‘미친’ 생각으로 들렸던 때.. 참.. 지금은 많이 많이 변했다. 그 말에 ‘일리’가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Microsoft Windows 급인 Linux(리눅스)인데, 물론 이것은 ‘처음부터’ 그런 Free & Open 철학으로 시작된 것이고, 그 ‘철학’만은 굳세게 유지되고 있다. 그들의 철학은 computer software는 모든 사람이 ‘무료’로 쓸 권리가 있고, 더욱 그것을 ‘발전’시킬 권리와 의무도 있다는 것인데, 역시 이런 idea는 Microsoft나 Apple 같은 business model과는 180도 다른, 정반대의 model임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이익추구’ 성질을 어찌하랴.. 기어코 이런 free & open model에다가 profit을 가미한 model도 만들어 내서 의외로 잘 운영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Red Hat 이나 IBM 같은 큰 회사들 인데, 이들은 ‘공짜’ linux를 만들어 대기업에 service를 팔아서 돈을 번다. 그러니까 ‘물건’은 공짜지만 그것을 유지, 수리하는 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의외로 이것이 그렇게 큰 business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런 새로운 business model은 이제 아주 튼튼한 자리를 잡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위의 예들은 ‘일반대중’과는 거리가 있는 대기업의 server system들인 반면 일반 대중들이 쓰는 PC desktop system은 Microsoft 의 Windows나 ‘머리는 조금 아둔하지만 돈은 많은’ 사람들이 쓰는 overpriced Apple computer 가 든든하게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중에서도 비싼 Apple Mac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은 Windows가 거의 ‘거저’ 돈을 벌고 있었는데, 그것이 최근 2~3년 안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그 원인 중에는 mobile system(smart phone, tablet)의 폭발적 보급과 오늘의 화제인 Ubuntu system같은 open & free software 의 일취월장하는 성능의 향상.. 등이 있을 것이다. Mobile system에서는 역시 stupid but rich 를 봉처럼 생각하는Apple의 iPhone 같은 iXXX가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었지만, 현재는 Google의 Android 가 시장의 거의 3/4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기서도 역시 open system인 Android가 그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지금은 computing system history로서 아주 ‘중요한’ 시점에 있는 듯하다. 소위 말해서 post-PC era를 모두 예견하고 있는데 그 때의 ‘패자’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봐도 ‘지독히도 이기적’인 Apple model은 그들이 ‘아무리 쌓아둔 돈’이 많다고 해도 장기간 sustain하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그들의 철학은 그 옛날 ‘고철‘ mode IBM을 연상시킨다. 모든 것을 ‘우리가 발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mindset은 이제 한 물이 갔기 때문이다. 현재 Apple이 바로 같은 mindset, 아니 더 심하게 고립적이고 독선적으로 ‘돈을 긁어 모으고’ 있다. 또한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오랜 기간 (1990년 이후, 현재까지) 거의 monopoly로 monster가 되어버린 Microsoft는 이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 되어가고 있다.

개인 적으로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 처럼 Microsoft customer로 오래 있었는데, 그것은 corporation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고 지금과 같은 credible한 competition도 없었기에 한마디로 choice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corporation을 떠나게 되면서 나는 그런 무상 혜택의 제한이 없어지고, 내가 고를 수 있으면 아무 것이나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Linux가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었고 나의 ‘구세주’로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유’로운 Linux는 사람들의 구미에 따라 많은 flavor로 분열이 되어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혼란’의 상태가 뒤 따라서, 각종 flavor마다 독특한 맛이 다르고, 새로 배워야 하는 짜증도 따른다. 강력한 ‘통제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바로 free & open system의 특징이라서 이것을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는데, 결국은 최근 들어서 서서히 Ubuntu system이 ‘de facto‘ winner로 군림을 하게 되고, 많은 노력 끝에, 그것을 더욱 더 일반 대중이 쉽게 쓸 수 있게 ‘매끈하게’ 보이는 데 ‘거의’ 성공을 하는 것 같다.

특히 최근 version인 12.x는 어떤 feature들은 Windows를 능가하는 것들도 등장하고 있다. 나도 그 동안 virtual system으로 ‘가끔’쓰곤 하다가 현재는 거의 정기적으로 쓰고 있다. Windows를 쓰다가 이것을 쓰면 당장 문제가 소위 말해서 business-standard인 Microsoft Office가 없다는 어찌 보면 ‘치명적인 듯’ 한 결점이 있는데, 쓰고 나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그것과 거의 맞먹는 Libre Office 란 것이 있고 Microsoft Office과 ‘호환성’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누가 ‘꼭’ MS Office file을 원하지 않는 한 이것 또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Ubuntu all the way! Mark Shuttleworth

 

그러다가 결국은 Ubuntu의 ‘장기적’인 development model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은 앞으로는 Microsoft의 Windows desktop system를 적수로 삼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독자적인 ‘미래형’ system으로 가겠다는 정말 ‘대담한’ idea의 출현인 것이다. 이곳에 있는 Youtube video를 보면 알 수 있듯이, Ubuntu 하나로 smart-phone, tablet, desktop 전역을 ‘매끈’하게 해결하겠다는 아주 야심적인 계획.. 이것을 정열적으로 거의 맨손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이 바로 Ubuntu 창시자 Mark Shuttleworth (a South African), 그는 억만장자에다가 idea가 많은 사람이고 그야말로 ‘좋은 쪽의’ visionary에 속하는 사람이다. Ubuntu란 뜻, ‘humanity toward others‘처럼, 그는 Steve Jobs같은 egomania, megalomania가 아니며, 그의 passion처럼 모든 일이 풀려나간다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명의 혜택’을 골고루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