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tecost Novena 성령강림 9일기도

오늘 아침미사에 가니 반갑게도 devout Irish couple,  ‘거꾸리, 장다리’부부가 비로소 제자리로 복귀를 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동안 불규칙한 미사참례로 걱정을 했는데, 아마도 몸이 정상으로 회복이 된 것 같다. 그 거꾸리[키가 작은] 자매님, 특유의 미소를 지며 반갑게 우리에게 다가와서 printout된 기도문을 주며 기도하라고 한다. 처음 보는 것, 그것이 ‘성령강림 전 9일기도’ 영어로 된 것이었다. 아하~ 이런 것도 있구나~  가톨릭 문화가 한국 공동체와 조금 다른 것 중에 이들은 9일기도 Novena라는 것을 때가 되면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예의상 받기는 했지만 의외로 연숙이 적극적으로 그 어려운 ‘영어기도문’을 심각하게 9일 동안 하겠다고… 나는 당연히 영어로 된 것이라 기대를 안 했는데…

집에 와서 website를 찾아보니 물론 ‘한글 version’도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영어판과 맞먹는 printout version을 아직 찾지를 못해서 그대로 영어로 된 것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다.  요즈음 머리가 하도 복잡하고 바빠서 이런 쪽을 잊고 살았는데… 아마도 성모님이 이렇게 우리를 일깨워주시는 지도 모른다… 그래, 할 수 있는 대로 노력, 최선을 다해서 성령님께 관심을 더 갖도록 하면… 이렇게 해서 9일 뒤로 다가온, 교회가 탄생하는 날, Pentecost 성령강림 대축일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주말이 벌써 Memorial Day weekend라고? 믿을 수가 없다. 믿을 수가 없다… 5월이 또 저물어 간다는 말이냐? 그럴 수는 없다, 없어… 이제는 더 미룰 수가 없다. 어질러질 대로 엉망인 주변의 모습들, 나의 책, 서류, 잡동사니, 가구, 환경… 아~ 어쩌다 이렇게까지 게으르게 놔 두며 살고 있을까? Mea Culpa, 내 탓이요~~ 바로 내 탓이다. 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인 것이다. 내 탓, 남의 탓을 절대로 하지 말라, 모두 모두 다 내 탓이라니까~~~

지난 며칠간의 Ozzie와의 산책은 아주 흥미롭고 신기하기까지 한 것이다. 무슨 비밀 통로라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Ozzie덕분에 발견한 ‘커다란 개구멍’ 덕분이라서 더 재미있기도 하다. 이렇게 새로 발견한 Azalea Spring course와 다른 곳을 연결시키면 재미있는 trail route를 만들며 걸을 수가 있게 되었으니…  최소한 1 mile의 bonus까지 얻게 되어서 더욱 유익한 코스가 되었다. 오늘은 두 apartment complex를 모두 ‘섭렵涉獵’을 한 ‘대장정’을 하는 날이 되었다.

The First of May, 우리들의 약속

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우리들의 First of May 어떻게 이렇게 한 해가 빠르게 흘러갔단 말인가? 해마다 이날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 같구나.  50년대의 오월은 원서동 개천가에서, 70년대의 오월은 담배연기 자욱한 퇴계로의 어떤 지하다방과 높고 맑은 도봉산, 치악산, 지리산 능선과 골짜기에서..

이 원서동 삼총사들과 헤어진 것도 거의 60년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이제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억들의 모습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구나… 1977년 미국에서 서로 만나자고 했던 전설적 약속, 1988년, 1999년, 2000, 2011, 2022, 2033… 등으로 햇수의 숫자를 굴리며 만나자고 하며 살았던 것이 60 여 년… 아마도 이 두 명 ‘총사’들, 현재 모두 미국 어디엔가 살고 있을 텐데… 무정하기 그지없는 ‘창희’,  연기처럼 사라진 ‘용현’이.. 어떻게 세월이 그렇게 친구들을 무심, 무정하게 만들 수 있을까? 최소한 나는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다고 자부하고 싶은데.. 이제는 남은 시간이 별로 많지 않고, 이승에서의 의미 있는 재회의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으니, 제일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다음 세상, 저승? 아~ 싫지만, 어쩔 수가 없는가?

싸늘한 아침으로 5월의 첫날을 맞이한다. 아래층은 아직도 central heating이 나올 정도니, 이런 이유로 겨울 옷을 아직도 정리를 못하는 핑계를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도 시간문제겠지.. 하루 아침에 ‘깊은 봄’ 날씨가 자리를 잡을 테니까..  아마도 1~2주 안에 겨울 내내 잠자고 있는 a/c 를 test-run을 할 때가 오지 않을까? 부디 a/c에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습관적’으로 빌어본다.
Ozzie도 신나게 뛰어내려와서 볼일을 끝난 후 ‘자진해서’ 들어오고, Izzie는 아예 식탁 위에 올라가 맛있는 pate wet food를  기다리는 모습들, 아~ 정말 사랑스럽구나. 얘들과의 시간들, 나에게는 은총이고 기쁨이 아닐까? 같이 있는 동안 사랑으로 이들을 돌보아 주고 싶은데… 특히 Izzie가 현재까지 wet food에 잘 적응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고맙고, 반갑다. 아마도 그것의 높은 영양분들이 그 동안 잘 못 먹었던 고통을 덜어줄 것이라 희망을 한다.

5월 1일, First of May, Mother’s Month, 성모 성월… 싱그러운 5월의 꽃들의 향연… 이제야 그런 멋진 모습들이 마음과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지나간 수 개월을 생각해서 그런 모양인데… 어떻게 이 ‘지나간 수 개월’의 정리가 끝날 것인가? 또한 나의 office 를 옆 방으로 옮기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나의 녹슬어가는 듯한 몸에 활력을 주어야 하지 않을지…

어제 K 세례자 요한 형제님 병세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이번 화요일로 예정된 ‘정기 봉성체’ 가 취소가 된 것. 일단 이런 소식은 우리에게 불길한 예감을 주는 것으로 다가온다. 병세가 복잡, 악화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복잡한 가족간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caregiver들이 겪는 극심한 어려움으로 보아서 그 집 베로니카 자매님이 얼마나 물심양면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조금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으면 좋을 테지만, 그것이 지금 문제가 아니고 그저 이 어려운 시간을 잘 견디기만 기도할 수밖에 없으니… 아무런 큰 문제 없이 지내는 우리의 현재 시간들이 미안해질 뿐이다.

겨울을 지내고 처음으로 driveway hedge trimming 을 했는데, 이제까지 했던 것 중에서 오늘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왜 그랬을까.. driveway 외에도 집 앞에 있는 bush도 손을 보았는데 그곳의 job은 driveway에 비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괜찮아~~

Ozzie가 온지도 일주일이 지나며 이제 Izzie와 Ozzie사이는 큰 문제가 없이 보인다. 서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싸우지도 않으니까… 전에는 먼 곳에서 노려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가까이서 서로 응시하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 오후에는 새로니와 유나가 잠깐 놀러 왔다. Richard가 친구 결혼식 참석차 out of town (Las Vegas)를 해서 유나와 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게 하려고 온 것이다. 전처럼 유나를 우리 집에 놓고 가는 것에서 함께 왔다가 가는 것을 유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녀석이 처음 오면 그렇게 서럽게 울 수가 없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까맣게 먼 옛날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녀석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엄마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이렇게 요즈음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찾아보는 노력을 할 기회가 생긴다.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살았던 것이 적지 않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Neil Sedaka’s Greatest Hits Album 1963

 

얼마 전에 추억의 LP album jacket을 생각하다가 찾은 Gordon Lightfoot album이 있었는데 오늘은 거의 우연히 1960년대 초, ‘오 캐롤, 아앰 빠다빵’을 따라 부르던 추억으로부터 Neil Sedaka와 그의 hit album jacket까지 기억을 해서 결국은 YouTube에서 그 album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1963년 나온 이 LP  album에 수록된 모든 곡들도 함께 찾았는데, 이것은 개별적으로 되어 있어서 귀찮지만 내 자신이 ‘전체 곡들’을 직접 PC에서 record한 후에 mp3로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판’의 모습, 어찌 잊으랴~  1963~4년(고1, 2) 무렵 우리가 살던 남영동 집에서 수없이 많이 듣고 듣고 했었다. 제일 유명한 곡은 물론 Oh Carol이지만 내가 좋아했던 곡은 LP SIDE-A에서 첫 곡 ‘Next Door to an Angel‘, 이 곡을 당시 유행했던 LIVING STEREO 의 효과를 만점으로 살리는 곡이어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이다.

오늘 아침 깨어나면서부터 다시 나 자신의 ‘太古 기억’을 더듬는다. 과연 어떤 기억들이 제일 오래 된 것인가, 그것은 역사적, 특히 대한민국 역사, 으로 어느 때, 어느 곳의 것들인가… 이제 완전히 망각의 세계로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 노력을 하고 싶구나, 과연 어떤 상황에서 우리 아버지는 북으로 끌려가셨던가, 당시의 모습들은 어떤 것이었고 어떻게 역사 속에 조명되고 있는가… 왜 이런 괴로운 그림들이 갑자기 이런 것들이 나에게 갑자기 다가온 것일까?

현재는 1953년 휴전 전후를 중심으로 당시의 신문들을 자세히 살피며,  우리가 그 당시에 살았다는 집과 동네를 기억해 내면서 추리를 하고 있다. 이제까지 나는 1953년, 그러니까 나의 나이 5살 때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더 알고 나는 그 이전 그러니까 1952년, 아니 1951년까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물론 100% 확실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확실한 기억은 물론 휴전 전후지만, 분명히, 거의 확실히 어느 집 골방에 숨어 살았던 어두운 모습들이 꿈꾸듯이 떠오르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 골방이란 것이 이제 보니 원서동 무당집의 뒷방인 듯한데 그렇다면 그때는 1951년 1.4후퇴 이후부터 그 해 5월경 서울 재수복 전 무렵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의 기억력은 이제 거의1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나의 기억력을 무시하면서 일생을 살았다는 것이 후회스럽구나…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NO-MEAT-DAY 금요일 아침 고정식’ pancake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제는 그야말로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게 되어서 손쉬운 요리가 되었다. 하지만 색다른 아침메뉴를 더 개발을 못하며 사는 것이 항상 불만이긴 하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할 수 있는 ‘노인 남편’이 그렇게 많을지는 의문이다.

오늘 Ozzie와 산책은 Sope Creek 의 ‘양쪽’을 모두 섭렵하는 거의 full course가 되어서 정확히 1시간을 걷게 되었다. 알맞은 시원한 봄 날씨 덕분에 하나도 피곤하지 않게 구경을 하며 걸었다.  오늘의 mileage는 어는 정도가 되려나.. .하고 Phone을 보니.. 5,500보 2 마일 가량… 예상했던 대로인데.. 생각보다 거리가 짧은 것 같아서 생각해보니 역시 Ozzie녀석이 가는 곳마다 한눈을 팔며 늦게 걸어서 그런 것이다. YMCA indoor track에서도 거의 2 마일 가량 걷는 셈인데, 그곳에서는 35분이 걸리는 것과 비교가 된다.

Bernardo Kastrup 의 ‘논문 급 essay’ Bigelow Prize paper를 모두 읽게 되었다. 명제는 간단한 것: 육체적인 죽음이 의식의 소멸을 뜻하는 것인가? 그의 해답은 물론 ‘절대로 아니다!’.. 이 얼마나 흥미롭고 행복한 결론인가?

Izzie, 양양이의 먹이가 wet food로 바뀌면서 걱정 반 희망 반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현재까지 녀석은 잘 적응을 하고 있다. 또한 토하는 것도 조금 줄었고 피가 섞여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로 감소하는데 이상한 것은 배설물의 양이 엄청 줄었다는 사실. 이것 좋은 것인지, 아니면… 체중이 분명히 최근에 많이 줄었던 것이 걱정인데… 아~ 좀 봐주세요!

아~ 이승만 대통령 할아버지~

1951년 9월 24일자 시사화보 잡지 LIFE Magazine에 실린 이 사진, 이승만 대통령의 유쾌하고 긍정적인 모습이다. 이때의 육이오 전쟁의 상황에 상관이 없이 이렇게 트럼펫을 부는 미군 장성에 맞추어 드럼을 치는 모습…  참 여유가 있어 보인다. 사진 설명에 의하면 대통령이 타고 가던 비행기가 미군 해병기지에 ‘불시착’, 그를 위로하려는 미군측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서 이렇게 드럼을 치며 흥을 돋구었다고…  1951년 가을이면 한국전쟁은 어떤 때였는가…  UN 연합군이 서울을 재탈환하고 3.8선 부근까지 북진, 그리고 그곳에서 교착상태,  각종 고지에서 혈투.. 또한 개성에서 휴전을 위한 예비협상이 시작 되던 때.. 라고 같은 LIFE 誌는 보도한다.

그 당시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미 수복이 되고 피난민들이 부산 등지에서 모두 돌아온 이후였던 그때, 아마도 원서동 ‘무당집, 병세네 집’ 골방에서 이미 납치되어 사라진 아버지 없이 누나와 함께 세 식구가 숨어 살았을 것이지만 3살이 조금 지난 나이에 그때의 기억은 거의 꿈같은 환상적인 것들이다. 이후부터의 각종 추억들, 북진통일 북진통일.. 포로 석방.. 이승만 대통령은 한마디로 구세주 미국에 못지않은 우리들의 모든 것, 할아버지였다.

 

오래 전에 읽었던 것이었는지, 제일 추웠던 느낌을 San Francisco의 한 여름에 경험을 했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이후 오랜 세월을 살면서 나도 비슷한 경험을 꽤 많이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다. 4월 27일, 5월을 코 앞에 둔 오늘, 하루 종일 흐리고 비가 온 탓이었는지 집안은 거의 냉장고 처럼 느껴지고, 급기야 space heater까지 가동, 그래도 추워서 담요까지, 나중에는 겨울 옷을 찾기까지 했으니… 이것 분명히 나이와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이런 날을 보내는 제일 좋은 방법은 ‘침대 속으로 들어가는 것’,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이런 ‘샌프란시스코의 한여름’ 같이 을씨년스러운 날 점심 메뉴가 날씨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homemade ‘수제비’와 ‘너무나 감칠맛이 나는’ 겉절이 [사전으로 겉저리가 아니고 겉절이임을 확인] ,  원래는 fast food 정도로 해결하려 했던 오늘은 이렇게 날씨의 ‘역혜택’으로 나답지 않게 거의 ‘식도락, 먹보, gluttony’ 의 ‘소죄’를 범하게 되었다. 요즈음 너무나 입맛, 밥맛이 좋은 것은 내가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매해 봄마다 겪는 ‘식욕부진’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것도 2월 초의 ‘과달루페 은총’의 여운 중의 하나인가… 그저 감사합니다, 과달루페 성모님!

Cloudy, Cool, Rainy & Wednesday

생각보다 비구름이 잔뜩 낀 오전, 비가 조금씩 뿌리는 것을 보고 ‘둘이서’ 산책을 나중에 가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우산을 가지고 일찍 나갔는데… 결국 비는 더 많이 내리고 나는 우산을 쓰고 걸었다. Ozzie는 그런대로 비를 맞고 걸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 그저 밖에서 걷는 것이 그렇게도 기쁜 모양…  오늘의 비는 아주 싸늘하게 내리는 것, 포근하고 가벼운 봄비라기보다는  추위를 예상하는 가을비의 느낌을 주어서, 아련한 감상에 젖기에 거의 완벽한 날처럼 느껴진다.

더 비가 오기 전에 산책을 시작했지만 이때부터 비는 더 많이 내리기 시작, 나는 우산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녀석은 조금씩 비에 젖으며 걷기 시작, 털이 워낙 길어서 그런지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비는 고만고만한 정도여서 큰 문제 없이 산책이 끝났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온통 초록색이 짙어지는 동네의 모습을 보는 것, 나쁘지 않구나~~

모처럼 잔뜩 흐린 새벽, 반갑다. 다시 포근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 좋다. 오늘 아침 무렵에는 가랑비까지 예상되는데 혹시 꿈 속의 April Shower 는 아닐지… 그래 오늘 새벽 잠결에서 연숙이 ‘미사 쉬자’고 말하는 것, 나도 솔직히 반가워했다. 일단 가려는 노력은 한 거니까. 아마도 밭일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만약 비가 예상보다 많이 내리면.. 그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내가 Ozzie와 알맞은 시간에 산책을 할 수만 있는 그런 비라면 쌍수로 환영한다.

이제 4월도 5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일단 ‘큰 작업’은 마무리가 되고 있으니까 조금은 안심이 되는데, 다음 것, 거의 2달 이상 밀리고 있는 것, 이것에 변화를 남겨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요즈음 ‘자신감’ 이 현저히 저하된 나의 불쌍한 모습을 본다. 꼭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쩔쩔매고, 미루고, 포기하는 악순환을 계속 경험하는 것이다. JUST DO IT, IT’S NOW OR NEVER 등등이 100% 사라진 것, 이것 어찌된 일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차근차근 하나 둘, 한걸음 두 걸음… 이것들 다 어디로 갔는가? 어디로?

비록 나의 처음 목표였던 PHP8.x compatible WordPress Theme을 찾고 setup과 install까지 끝냈지만 생각처럼 이 작업의 여운은 강한 것인지, 서서히 WordPress Theme ‘internal’ 자체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겉에서  보는 것에서 아예 development쪽으로 감히 관심이 upgrade가 된 것인데… 어쩔 것인가? 이것은 예상치도 못한 ‘시간의 도둑’이 될 터인데…  아~ 하지만 됐다, 됐어… 이제는 이런 ‘작디 작은 것들’에 관심을 더 쓸 인생의 여유가 없지 않은가? 더 크고 높고 안 보이는 것에 관심을 두고 싶다.

어제 저녁부터 download를 시작했던 YouTube 한국어 해설 일본 드라마 비디오들, 대부분 YouTube에서 잠깐씩들 본 것들이지만, 이제는 그 지겨운 광고 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놈의 ‘레본 무비톡’ 이라는 곳에서 일찍 나왔던 것들을 잠시 제목들을 보게 되었는데… 아~ 대부분의 erotic, sexual 한 것들이 아닌가? 나는 이런 것들에 약한 것을 잘 알기에 일찍 피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약한 놈일까? 나 자신의 깊은 속을 내가 무서워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런 쪽은 ‘무조건 시각적으로 피하는 것’ 밖에 나에게는 방법이 없는데… 나의 숨은 악마는 이쪽 분야에서 나를 ‘아직도’ 넘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도움의 은총’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늘 날씨는 예상을 뒤엎고 하루 종일 음산하고 싸늘하고 축축한 그런 날이 되었다. 이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 맛있는 커피 준비를 할 수 도 있었을 것 아닌가?  특별한 한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위도식한 것도 아니다. 앞쪽 잔디를 말끔히 trim 을 했으니까… 

또 조심스럽게 나를 안심시키는 것이 있다면 17살 ‘할머니’ 양양이가 wet food를 점점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점점 양도 늘어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동안 마르기 시작했던 몸집이 조금 전처럼 정상으로 돌아오기만 눈 빠지게 기다리는데… 어떻게 될 것인지..

이런 어둡고, 뼈 속이 시리듯 하게 을씨년스러운 날에는 배속까지 따뜻해지는 점심이 최고가 아닐까, 역쉬 이런 날에는 연숙의 전통적 homemade 짬뽕이 최고다. 각종 해물과 상당히 매운 국물의 조화…  이후 배가 너무 불러서 하기 싫은 것, 설거지도 간단하고…

이제는 더 미룰 수, 도망갈 수, 피할 수, 아니 그럴만한 낯짝이 없지 않은가? 1월 말부터 나의 인생살이, 어떻게 이렇게 매사를 미루며, 피하며, 못하며 사는 것인가 말이다. 유일한 이유를 찾자면 역시 과달루페의 ‘깊은 신앙적 체험’을 아직도 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면 왜? 아~ 역시 사진들을 정리할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닌가? 아~ 정말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한 인간인가? 얼마나 더 오래 살겠다고 이렇게 세월을 좀먹으며 사는가 말이다! 지금이 기회다. 하나라도 일단 시작을 하면 이후는 유기적, 자생적으로 혼자서 굴러가는  ‘일사천리’ 나의 특유의 에너지가 폭발할 것, 너도 잘 알지 않느냐?

8th Straight, Daily Morning Mass…

8일째 연속으로 계속해서 동네 본당 Holy Family  parish 아침미사엘 가는 것, 그것도 사순절이 시작되면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는 행복한 순간들을 경험한다. 8일째 연속 매일 아침미사… 이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듯한데, 조금 너무 자만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우리의 노력도 그렇지만 이런 것이 가능하게 하는 현재 우리의 하루 하루의 life style, 상황, 여건에 감사하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영육 간의 적절한, 아니 거의 완전한 조화,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은총의 삶이 이런 것인가?

이 동네 성당에서 ‘사순절 선물’로  받은 ‘the WORD among US, Praying with Jesus This Lent’ Mass Readings & Daily Meditation 사순절 매일 미사, 묵상’,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닌 소책자인 것을 보면, 올해는 이곳 성당 재정상태가 양호한 듯 보인다. 하지만 역시 ‘매일 매일’  미안한 것이, 현재 이곳에서 주일미사를 Pandemic이후 전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따라서 재정적 봉헌을 못하고  있다는 것..  솔직히 ‘반쪽’ 짜리 신자라는 사실이 조금 부끄럽기까지 하다.

A BURST OF CONSCIOUS LIGHT, 제목이 조금은 의외적으로 해괴한 이 책, 오늘 나의 손에 잡힌 바로 이 책,  전체적인 내용주제와 구성이 심도가 없이 산만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세가지 주제 [Near-Death Experience, Shroud of Turin, Universal Consciousness] 들은 모두 내가 항상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저자, Dr (physician) Andrew Silverman은 이것을 ‘빛’으로 연관을 시키는 노력을 하는데 그것이 이 책의 제목: CONSCIOUS LIGHT인 것이다. 3가지 주제 중에서 현재 나에게 다시 다가오는 것이 The Shroud of Turin… 이것과 요새 재개된 ‘성체’에 대한 활동과 관심이 엮이고 있어서 당분간 나는 이 ‘세기적 호기심’으로 다시 다가갈 것이다.

오랜만에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덕분에 기온까지 상승 하니 추위에 움츠리기만 하는 나를 결국 backyard로 내 보낸다. 지난 주일 동안 연숙의 모습이 그곳에 자주 보이긴 했지만 나는 역시 수수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결국 나도 잠깐 나가서 손에 잡히는 몇 가지 ‘육체 노동’을 한 셈이다. 햇빛의 효과도 있을 것을 안다.  지난 겨울 동안 shed에서 잠자고 있었던 피크닉 테이블 umbrella를 꺼내서 설치해 놓았고, 각종 water hose들을 다시 설치를 하기도 했다. 이것으로 연숙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기도 하고, 나도 조금 자신감이 생긴다… 아~ 드디어 3월, 봄기운이 정녕 오고 있는 것인가?

어제 Kroger에 갔을 때, 작정을 하고 dirt cheap wine한 병을 사왔다. 얼마 전부터 술 종류는 안 사기로 선언을 하고 잘 살았는데 예외가 없는 것이 조금 걸리기도 했다. 밖에 나가서 얻어 마실 거라면 필요할 때 조심스럽게 조금 마시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특히  Teriyaki chicken pasta salad에 wine의 맛이 필요함을 알기에 그렇게 결정을 한 것이다. 결국 오늘 그런 계획이 실현이 되어서 정말 오랜만에 둘이서 wine과 Teriyaki chicken pasta 점심을 즐기게 되었다.

어제 첫 손자 로난 3살 생일 모임에 가서 사위 Luke에게서 선물로 받아온 책.. 이 저자는 그의 직장 boss인데 물리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집(열역학에 관한) 의 건강’에 미친 사람이라고…  이것이 올해 우리 집의 건강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제일 관심 있는 것이 airtight house의 효과에 관한 것이라서 한번 자세히 읽어보고 싶구나… 그리고whole house  insulation도 마찬가지.. 조금 더 경제적으로 따뜻하고, 시원하게 살고 싶다.

올해 사순절에 뜻하지 않은 목표가 생겼다. 그렇게 ‘무서워서 피하던’ 것, Mel Gibson의 2004년 super hit The Passion of the Christ.. 처음 보다가 너무나 식상을 해서 잊고 살았던 것인데 다른 영화 The Exorcist와 비슷한 경험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자세로 유연하게 공부하며 묵상하는 기회로 삼고 싶은 것이다. 과연 이 목표가 성취가 될 것인가?  최근 뉴스에 의하면 이 영화의 속편 (역시 Mel Gibson제작)  Resurrection이 조금 있으면 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주연배우도 전과 같은데, 이렇게 뉴스로 나에게 다가 온 것, 우연만은 아닐 거라는 상상도 하고 싶구나…

Yet Another Ohio State, Wall Clock

콜럼버스 중앙고 후배들과의 ‘가상적 재회’는 생각보다  더 깊이 추억의 늪 속을 헤매는 경험을 준 듯하다. 나도 그렇지만 연숙이도 1980년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는 느낌도 마찬가지다. 이런 뜻밖의 기회는, 정말로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것 아닌가? 한때, 그것도 긴 세월도 아닌, 계동 1번지 동창의 인연으로 또 다른 타국에서의 인연을 맺은 것, 모두들 꿈에 가까운 경험으로 느낄 것 같다. 과거뿐만 아니라 이것은 현재와 미래에도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후배 동창들의 얼굴, 이름 등을 더듬다가 생각난 것이 있다. 바로 아직도 living room 벽에 걸려있는 조그만 벽시계다. 그것도 Ohio State University 이름이 선명한… 이것은 나에게 그때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긴 했지만 사실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무감각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오늘 꺼내어 뒷면을 보니, 1988년 7월 31일 날짜와 동창들의 졸업기수, 이름이 선명하게 ‘각인’이 되어 있다. 그날이 우리가 그곳을 떠나 Madison, WI으로 간 것이고 송별모임이 있었던 날이었을 것이다.  이것으로 당시 어울렸던 모든 동창들의 신원을 100% 확인할 수가 있었다.

 

58회: 손영찬
62회: 여운광
63회: 김문경
64회: 이명성, 이성철, 이춘환, 조광동
65회: 이승명
66회: 김종수, 하재주
67회: 강행봉, 안동규, 채인돈
68회: 장경호
후배: 남윤동, 박현석 (68회 이후)

 

모두 16명이나? 그렇게 많았던가? 이 중에서 제일 어린 후배들 2명과의 얽힌 추억은 거의 없는 듯하다. 동창회에 합류했던 시간이 비교적 짧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예 명단에서 빠진, 유일한 선배 56회 야구부 출신 정근화 형, 개인 사정상 우리들과 가까울 수가 없었음을 기억한다. 학교 campus 옆에서 grocery를 하던 58회 손영찬 후배는 우리들 같은 유학생이 아니었기에 만날 기회는 많이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동창들과의 ‘재회’로 알게 된 것들은 거의 모두 우리에게는 새로운 사실이다. 당시의 거의 모든 동창들이 카카오톡 단톡방에 와 있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어떻게 그렇게 그 동안 연락을 하며 관계를 유지했을까? 그들의 관계가 유학생시절부터 형성되었고 그 관계는 건강한 것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제일 궁금했던 것 몇 가지 중에는:  성창모 후배는 이 그룹에서 빠진 듯하고, 당시 총각, 강행봉, 현재 어느 대학의 교수라는 것, 그러니까 한때 ‘사라진 듯’한 그 친구가 다른 곳으로 학교를 옮겨서 그곳에서 공부를 마친 듯 보인다.  조금 관계가 일정치 않았던 ‘조광동’도 이들과는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조금 의외의 소식이었다. 또한 궁금했던 ‘이승명’, 그는 놀랍게도 아직도 콜럼버스에 있어서 일식집을 경영하고 있었다는 반갑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제일 궁금했던 ‘김문경’의 소식은 아무도 모르는 듯 보인다.

이제 일단 안정된 단톡방이 건재 하는 한 앞으로 이들과의 관계는 이런 상태로나마 지속은 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나의 희망이지만… 그렇다면 이들과의 놀라운 관계 형성은 우리의 앞날에 어떤 영향, 의미를 줄지 그것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서로에게는 유익하고 바람직한 일이 되지 않을지…

 

일기예보대로 지난 밤부터 폭우가 쏟아졌지만 나는 그 듣고 싶은 소리를 earplug 탓으로 거의 듣지를 못했구나~~  조금 기온이 올라서 그렇게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역시 을씨년스러운 것은 마찬가지고, 오늘 미사를 쉬려는 생각도 마찬가지… 그저 무언가 쉬고 싶고, 나가기 싫고.. 내가 왜 이럴까, 그제의 ‘어두운 밤’이 아직도 거치지 않았는가… 제발, 제발…

오늘은 우리 결혼 기념일이기도 하구나, 몇 년 만인가? 1980~2023=43년! 43년, 43년… 아~ 이제는 햇수의 감각도 점점 무디어지고~~ 하지만 그렇게 기억까지 무디어진 것은 아니리라 희망, 희망… 아~ 나 좀 ‘신나게’ 해 주라, 하늘아!

오늘 아침은 미사도 쉬고, 아침 식사는 어제 사온 apple turnover, coffee ‘비상식’으로 때우고 일찍 결혼기념일 점심식사 (예전에는 집 근처의 Thai Lemon Grass였는데 최근에는 도라빌의 ‘강남일식’) 를 했다.  비가 오는 날 drive를 한다. 우선 밖에 나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부분 Duluth를 포함한 Northeast Metro 쪽으로 빠져나간 아틀란타 한인 community 추세로 한때 이 역사를 자랑하는 Buford Highway 선상의 old town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의외로 다른 문화권들이 이입되면서 건재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형 자본으로 커지는 new town과 비교하면 이곳은 역시 아직도 small, mom & pop business 가 주류인 듯 보인다. 그 한 가운데 있는 우리의 ‘본향’이 우리의 본당 도라빌 순교자 성당이라서, 이곳은 아직도 친근하고 편한 곳이다. 그 중에도 ‘하얀풍차’, ‘ 강남일식’ 같은 upscale shop들이 이 위치하고 있어서 더욱 위안을 받는다.

우리에게는 절대로 필요한 교통로가 I-285 northern perimeter인데 이곳의 traffic이 그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이곳을 관통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은근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대대적 upgrade가 이루어져서, 눈에 뜨이게 편한 drive로 변하고 있다. 문제는 bottleneck 역할을 하는 곳의 마지막 공사가 무슨 큰 난관에 봉착했는지 거의 무한정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문제가 아닐지…

 

Seventy Five Years Ago… Long Time…

일이일, 일월이십일일, 1948~2023, 정확히 75년 전… 서울의 하늘 아래..

어머님, 엄마… 그리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님, 감사합니다, 좋건 싫건 저는 그렇게 이 인간 영육, 의식계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의지는 없었다고 해도 전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75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교적 건강, 무탈한 삶을 살았던 것, 하느님께 감사 드립니다….

나의 생일을 즈음한 소한 대한 사이의 정월은 우선 추웠던 것과 눈이 강산처럼 내렸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의 느낌도 그렇고,  나이 20세 무렵에는 김신조[무장공비출신 목사님]의 모습도 떠오르고 상도동의 우리 집에서 학교서클 연호 친구[남녀]들과 생일’파티’를 벌였던 것도 기억하고 싶지만, 이런 모든 기억들이 나이 탓인지 전처럼 깨끗한 그림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안타깝구나… 앞으로 더욱 더 이렇게 되겠지만.. 

칠순의 중간 고개에 도달하니, 만약 팔순의 세월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때까지는 심리적으로 내리막 길처럼 보인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지혜, 지식도 같이 내리막 길이 되는 것은 사실 예측하기가 힘들지 않으니… 갑자기 ‘나의 원래 가족’들이 가슴 안으로 다가온다. 모두들 모두들 어디로 갔는가. 다시 볼 수 있을까, 못 보고 다음 세상으로 가게 되지는 않을까… 왜 이렇게 가족들을 떠난 긴 인생이었어야만 하나..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늦기 전에 조금은 알고 싶기도 하다.

얼마 전 연숙이 어지럼증의 악화로 ER까지 가게 된 것, 우리에게 심리적 육체적 충격을 주었지만 이제는 조금  정신과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생일 음식을 해 주었다.   특제 미역국[독특한 조리법]과 [나에게 최고 음식] 갈비찜~~ 아, 비록 두 가지의 간단한 상이었지만, 이것이  오늘 생일에는 나에게 편하고도 맛있는 생일선물이 되었다. 이런 것을 과소평가하며 살았던 적을 기억하기에 이런 기회에 나는 ‘행운의 남자’임을 깨닫고 싶다. 그래, 나는 lucky guy, husband라고 자부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그것을 많이 잊고 사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유나와 Richard 와 함께 새로니가 왔다. 며칠 전에 새로 산 Tesla electric car를 타고 왔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gas engine car와 다를 것이 없지만 속을 보니 정말 무슨 space ship의 속을 연상하게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라고나 할까…

오늘 나의 생일이라고 cake을 사오겠다고 해서 사양을 했더니.. 그러면 Krispy Kream doughnuts은 어떠냐고 나의 약한 곳을 찌른다. 오는 길에 Highway 41 까지 가서 바로 직전에 새로 만든 것을 사가지고 와서… 정말 오랜만에 따끈따끈한 doughnuts과 coffee를 모두 (유나까지) 맛있게 먹었다.

새로니에게 이번에 취직이 된 Federal government job (Dept. of Energy, remote work) 연수여행 (Washington DC) 관계를 물어 보았더니.. 아주 대 만족인 모습이었다. 거의 현재의 상황에서 perfect job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는 일 자체도 보람 있는 미래지향적인 것이 아닌가? 이것도 부럽기만 하다. Clean Energy 를 정책적으로 지원을 하는 연방정부의 일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흐뭇하게 느껴진다.

 

Bernardo Kastrup

Donald Trump [a.k.a. historic SOB] according to… Bernardo Kastrup

  1. Pathologically narcissistic,
  2. Dangerously manipulative,
  3. Clinically sociopathic
  4. Conspicuously unintelligent
  5. Sole priority is himself
  6. No scruples about lying through his teeth so to deceive and use millions of people for the sole sake of his own personal agenda.

와~~ 100년 묵은 체증이 1초도 안돼서 사라지는 기분이다.  어쩌면 내가 믿고, 느끼고, 외치고 싶은 생각을 ‘기차게도’  명확하게 요약을 해 주었는가? 미국 전직 대통령을 묘사한 이 문장이야말로 만고에 길이길이 남는 명언인 것이다.  책이나 video등을 통해서 이 사람 Bernardo Kastrup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부럽다 못해서 시기심까지 발동한다. 그의 해박한 metaphysical, 과학철학이 나의 주 관심사지만 그의 인간적 면모를 알게 되면서 더욱 나는 빠져든다. 이런 ‘빛나게 떠오르는 열린 석학’이 있는 한,  Donald Trump류 같이 ‘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 미친 세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까지 든다.

Donald Trump is a pathologically narcissistic, dangerously manipulative, clinically sociopathic and conspicuously unintelligent individual whose sole priority is himself, and who has no scruples [moral or ethical consideration] about lying through his teeth so to deceive and use millions of people for the sole sake of his own personal agenda.

Bernardo Kastrup

 

Family Memories 1988, Another Funeral Mass

우리 집 garage에 아직도 남아있는 새로니의 잡동사니들 거의 대부분 처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은 각종 paper, book 종류들, 대부분 학교시절의 notebook, painting등인데 이것이 제일 골치거리다. 버리기는 쉬운 것들이지만 아차~ 하면 후회가 되는 것들이 이런 ‘개인 기록’ 종류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은 버려야 하는 것임을 알지만 시간을 조금이라도 끌며 방관상태인데 그 중에서 오늘 우연히 찾은 것은 버리기가 아까운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분명히 후회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남겨두었던 각종 기록들이 남아있다면~ 이것은 거의 꿈같은 얘기지만.. 그래서 오늘 보는 새로니의 한글 숙제는 너무나 신기하다. 얘가 아틀란타 한국학교에 다니면서 쓴 것, 우리가족 사진과 자기의 글… 나중에 이것은 picture frame을 해서 새로니 생일선물로 주어도 되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오늘 조금 싸늘해진 날씨에 내가 입고 있는 스웨터가 바로 1988년경 찍은 이 사진 속에서 내가 입은 스웨터라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 놀랐다. 아직도 이 스웨터는 ‘건강, 생생’하기 때문이다. 입은 사람의 모습만 변한 것… 아~ 연숙이도 참 환하게 밝은 모습, 그 자체였구나… Columbus, OhioMorse Road에 있었던 Kings Hill 아파트의 뒤쪽 모습, 내가 만들어 놓았던 새집 birdie house도 보이고.. 이것은 새로니의 5살 생일 그러니까 1988년 1월 5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아~ 세월이여, 추억이여~~

 

비가 오락가락 하던 오전 시간,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 적은 김 (소화) 데레사 자매의 연도, 장례미사엘 갔다.  지난 달에 이어 또 하나의 연령행사에 임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 고인의 건강에 문제가 없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선종한 것은 또 하나의 놀람이었다. 유해의 관이 덮여 있었던 것은 조금 아쉬운 것이었다.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 끝맺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인이 현 레지오의 단장이어서, 역시 이번 장례식은 예상대로 ‘레지오 장葬’이었다.  우리의 레지오 시절에도  가끔 있었던 것으로 레지오 깃발들이 운구에 도열, 등장하는 것, 그리고 각종 레지오 기도, 단가… 아~ 정말 몇 년 만에 보게 되는 익숙한 광경들인가? 야릇한 향수마저 느껴지지만 그 만큼 갈등과 싸움을 한다. 우리도 저들과 함께… 하는 아쉬움과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찌꺼기처럼 남은 증오심 등등… 그 ‘문제의 인간’이 오늘 설쳐대는 모습은 다행히도 보이지 않고 대신 우리의 레지오 친구 격인 R 자매가 주관을 해서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예상보다 사람이 꽤 많았는데… 연도 때보다 미사 때 더욱 많았는데,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평소 적지 않은 건강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회활동이 꽤 활발했던 것. 한국(문인)화, 한인 어머니 회, 개인 business등등 아주 열정적으로 삶을 살던 자매님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남편인 S 형제님, 너무나 충격을 받았는지 힘이 없어 보였고, 조금 더 연로해 보이기도.. 자매님이 운전을 하며 살았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혼자서 사실지….   부부가 모두 레지오를 함께 했기에 우리와도 그 동안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까워질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모두 성당 시니어 그룹 등대회에 가입을 해서 피크닉에서도 만나곤 했던 것들이 추억으로 남는다.

아드님이 며칠 전 선종직전에 한국에서 와서 임종을 지켰다고 했는데, 아주 활달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조사에서도 어머님 도움으로 신앙을 찾아 서울 용산 어느 본당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고 하며,어머니는 행복을 찾는 사람이었다고 추억을 하는데, 그의 얼굴에서 아쉬움과 슬픔의 모습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던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 자매님의 이력을 보니 서울 효창국민학교 출신으로 나왔는데, 나는 분명히 재동국민학교 출신으로 알고 있어서 조금 놀랐다. 그러고 보니 전학을 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니까… 그러면 재동에서 효창으로 전학을 한 것인지.. 장례미사 후에 친교실에서 단체로 점심을 나누었는데 의외로 ‘고급 $20’ 일식 도시락이 풍성하게 준비가 되어있었다.  등대회 회원들도 전보다 더 많이 눈에 뜨였다. 이번으로 등대회 회원 장례미사가 지난 달에 이어 두 번째 임은, 역시 우리들의 나이 때문이 아닐지… 조금 외로워진다.

 

January Winter Blues…

오늘부터 Ozzie와 함께 있게 되었다. 원래는 내일 주일미사 후에 귀가하면서 데리고 오려고 했지만 내일 미사를 결하기로 해서 어쩔까 했는데 새로니가 오늘 우리 동네에 올 일이 있어서 아예 오늘 데리고 온 것이다. 내주 화요일 새로니는 새로 시작한 federal government job 의 연수차 out-of-town을 하기에 조금이라도 Richard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Ozzie를 우리에게 맡기는 것인데 사실 나도 정신이 혼란스러워 조금 부담을 느꼈지만 사실은 그것과 반대의 효과를 볼 듯하지 않을까… 이 녀석이 나를 정신적, 신체적으로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보기와 달리 매섭게 바람이 세차게 불며 40도에도 못 미치는 날씨, 녀석과 오랜 세월 걷던 같은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왜 그렇게 녀석이 그렇게도 반갑던지.. 지난 며칠 너무도 정신적으로 평화를 잃고 살아서 그런가? 구세주를 만난 듯한 기분도 없지 않았다.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감정은 100% 통하니…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은 희망도 생긴다. 또한 매일 매일 같이 걷게 될 것이니 최소한 나에게 적지 않은 활력소를 줄 것 같은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일을 보러’ 매섭게 추운 깜깜한 새벽의 backyard로 둘이 뛰어나가는 것은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냐?

어제는 정말 하늘조차 암울한 그런 날씨였고, 오늘은 비록 해는 솟겠지만 기온은 전형적 겨울이다. 옷들도 모두 제일 두껍게 끼어 입고, 특히 양말은 두 겹으로 무장을 하고, space heater는 ‘강 强’으로 올리고, 모든 blind들은 깜깜하게 닫히고… 아~ 그렇구나, 이것이 이곳의 정월의 모습이었지…

어제 아침에 다시 ‘돌아온 어지럼증’에 놀란 결과 이제는 약간 이런 일들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그래, 아주 큰 일로 발전만 안 한다면 우선은 침착하게 이 작은 ‘수난의 시간’을 견디면 될 것 아닌가? 이것은 연숙의 말이었다.  문제는, 아무도 아무도 심지어 의료진 조차도 자신 있게 예측할 자신이 없어 보인다는 것, 그러니 모르는 것들은 결국 기도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래도 행운이다, 막강한 기도의 신비에 의지할 수 있으니까…

어제 그래서 문득  서울에 사는 조시몬 형제가 생각이 나서 카톡으로 ‘조용한 기도’를 부탁했고 곧바로 답을 얻었다. 처음에는 내가 아픈 줄 알았던 모양이지만 베로니카라고 정정을 해 주었다. 이 친구도 text를 성급하게 읽는 모양…  형님이 얼마 전stroke로 고생을 했지만 현재는 정상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위안과 힘을 얻는다. 고마운 사람이 바로 이런 영혼들이다.

성당에서 선종기도 요청? 허~ 누군가? 아~ 재동 2년 후배,  소화 데레사? 맙소사! 갑자기 새해가 되자마자 이런 일이? 한편으론 크게 놀랄 일만은 아니다. 그 자매님 긴 세월, 몸에 각종 병을 지니고 살았으니까…  그 남편 S 형제님이 옆에서 든든히 보살피며 살았는데… 결국은… 아~ 재동학교 추억의 자매님, 편안한 천국을 향한 여행이 되시길 바라며 선종기도를 바칩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이 자매님에게 선종하는 은혜를 주시어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영원한 천상 행복을 생각하고 주님을 그리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Yesterday, The Day After ER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 So…  큰 일 뒤에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는 이 노래가사. 연숙이의 어제 오후에 있었던 Emergency Room에서의 불안했던 시간, 어떻게 보면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길고도 불안한 긴 경험이었다. 현재 나는 그 짧았던 시간들을 냉철한 머리로  조금씩 기억, 소화, 분석, 그리고 예상의 단계로 접어든다.

일단 그 차디찬 병원의 응급실로부터 우리의 포근한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 중요하고 다음은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사실…

문제는 우리의 알량한 의학적 지식의 한계다. 육감적으로 판단하는 수 밖에 없는데, 수학적, 과학적 공식적인 의학과 우리의 경험적 육감의 밸런스를 어떻게 조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의 단계는 물론 의학, 과학에 모든 benefit of doubt를 주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일방적으로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하게 어지럽다는 ‘있을 수 있는’ 증상, 현재의 상황에서 할 것은 일단 neurologist 를 찾아서 진단을 받는 것, 물론 그것에는 MRI가 분명히 있을 것이니까… 어제의 CT-Scan의 결과와 함께 조금 더 자세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모든 것이 아마도 심장보다는 두뇌일 듯한 것이 현재의 분석결론이 아닐까? 심장이나 두뇌.. 아~ 정말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것 아닌가? 어떻게 이 위기의 도전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

일단 black & white case가 아님은 분명히 모르는 것 투성이, 그러니까 기도의 치료가 이런 case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우선 MRI 를 찍는 것이 순서라고 해서 우리 지역에 있는 것, 전에 가보았던 Kennestone Hospital 바로 옆에 있는 imaging center에 예약을 online으로 신청을 했으니까 무언가 연락이 올 것을 기대하고, 그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1월 말의 멕시코 순례여행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그것이 머리 뒤를 지긋이 누르기 시작한다.

The Epiphany of the Lord, 2023

주님 공현公現 대축일 The Epiphany of the Lord.. 동방박사~ 아~ 이제는 성탄의 기분, 느낌도 다른 해보다 더 빨리 사라진 듯 한데… 아직도 동방박사라고… 오늘을 기해서 성탄장식을 내려 놓자고 했지만 사실 나의 머리 속에 이것들은 이미 멀리 사라진 듯하니.. 어떻게 이런 ‘해괴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타락’을 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나의 기우, 지나친 걱정이기를 바라고 바라지만… 싫은 느낌 뿐인 주일을 맞는 심정이다…

오늘 보는 성당 제대 밑의 성탄구유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고 찬란하다. 특히 옆에 앉아서 경배하는 ‘동방박사’들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 오늘의 ‘주님공현 대축일’ 미사와 잘 어울린다. 아마도 이런 성탄의 모습들도 오늘까지 볼 수 있을 것이고 다시 11월 말 대림절 시작이 되어야 다시 볼 수 있을 것… 이렇게 가톨릭 전례 절기를 따라가다 보면 일년이 흐르고, 인생도 나이도 같이 흐르고…

오늘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의 강론, 동방박사가 ‘동쪽’에서 온 사실에 주목하며 묵상한 것, 성경에 등장하는 각종 ‘동쪽’, ‘동방’을 연결한 것이 이채롭다. 

오늘부터 도라빌 순교자 본당에서는 거의 3년 간 사라졌던 ‘구역 점심 봉사’가 시작되었다. 우선은 격주로 시작을 한다고 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정든 친교실 table에 편하게 앉아서 ‘콩나물 국밥, 이른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구 미카엘 주임 신부님과 마주 앉게 되었다. 반갑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하니.. 역시 신부님이라서 그런가, 세대 차이가 크게 있어도 역시 신부는 역시 신부인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Doraville] H-mart에 잠깐 드렸다. 예의 grocery shopping을 한 후 오늘은 특별히 그곳에 있는 ‘빵집’ [이름이 무엇이더라… French인데… 아하! Tous Les Jours! 이것이 무슨 뜻인가?] 에 들러서 크림빵을 사왔다. 그 동안 ‘bakery 하얀풍차’에 갈 기회가 없어져서 [유럽, 한국식] 빵이 조금 그리운 것을 숨길 수가 없었는지…

이른 시간이라 한산한 food court, 예전 특히 Pandemic이전에는 이곳에서 자주 음식을 사먹기도 했었는데.. 특히 교우 자매가 운영하는 대장금, 그리고 중식점, 그 옆의 ‘한국식 hotdog, 명랑핫도그’ 등이 일요일 손님을 대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기나긴 Pandemic 3년간의 공백을 무색할 정도로 활발한 느낌을 준다.

오늘 이곳에서 ‘가끔 또순이’ 연숙이 stick coffee를 부지런히 찾는다. 알고 보니 물론 ‘세일’ 품목, 그것도 원래 가격이 거의 $25이나 되는 것을 $10 sale로 사게 된 Maxim White Gold란 것, 집에 와서 같이 산 크림빵과 함께 마셔보니 비싼 만큼 맛이 좋았다. 하지만 이 stick coffee는 맛보다는 편리함에 그 point가 있는 것이 아닐지… 이 편리함에 ‘중독’이 될 수가 있는 것, 항상 조심해야 한다.

예정대로 오늘 오후에 집에 있던 각종 성탄 장식들을 retire했다. 올해의 성탄은 예외적으로,  ‘성스럽지 못하게’ 보낸 듯해서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께 미안하기만 하다. 올해의 성탄은 조금 다르게 맞이하면 좋을 듯. 그러니까 성탄장식을 예전처럼 아주 가능하면 늦게 하고 검소하고 조용하게 보내는 전통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이번 성탄은 솔직히 원래 의도와는 거의 반대로 아주 ‘방탕하고, 세속적으로’ 보낸 것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뜻밖에 나라니 식구의 이름으로 ‘연하장’이 배달되었다. 전에 언급을 했던가.. Pro service로 가족 card를 만든다는 것. 바로 그것이 온 것이다.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 둘째 아기를 임신을 하고 직장의 각종 산더미 같은 일들로 피곤해 보이는 나라니와 사랑하는 가족, Luke, Ronan 그리고 멋진 개 犬公 Senator 의 모습을 보니, 사진처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데…

 

오늘 우연히 마주친 흑백 사진들, 당시 추억의 노래와 함께 동영상화 하고 나니..  아~ 그립다, 그립다, 그때가 그립다… 연세대 시절 1969년의 얼굴들… 아마도 1969년 이른 봄이 아니었을까? 이 ‘괴상한 그룹’이 어떻게 비원 안쪽으로 놀러 갔을까, 아물거리기만 하다. 하지만 이곳의 얼굴들은 어제 만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선명하다. 중앙고 선배 형들: 안낙영, 오성준, 최종인 형들로부터, 중앙고 동창과 친구들: 양건주, 박창희, 김진환(일찍이 고인)… 살아 생전에 볼 수 있거나 소식을 알 수 있을는지…

 

Second Anniversary, Trump’s Capitol Attack

잊고 싶지만 절대로 잊지 못할 악몽의 그날, 한편으로 까마득한 옛날처럼 다가오고 [잊고 싶기에], 반대로 어제의 일처럼 느껴지는[잊어서는 안 될] ‘혼동과 격정, 분노, 실망, 자괴감, 살의’ 등등이 온통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맴도는 21세기 version,  Day of Infamy, 그것이 January 6 의 얼굴이 아닐까… 오늘도 아쉬운 것은 이 infamy의 ‘유일한 주범’이 자유의 몸으로 아직도 거품을 품고,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는 희극적인 사실이다.  도대체 ‘정의는 승리한다’ 라는 명언은 어떤 순진한 인간이 만든 것인가?

다시 겨울날씨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금은 따뜻한 겨울의 모습, 그러니까… 영하의 기온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central heating과 space heater가 필요한 날씨, 대신 바람이 거의 없고 햇볕이 쏟아지는 것으로 ‘조용한 겨울’의 포근함조차 느낀다. 이제 우리들은 2023년의 ‘정월’의 한 가운데로 서서히 접근하고 있다. 일월, 일월, 정월… 새로니와 나 그리고 ‘잊지 못할 친구’ 건주의 생일, 우리부부 (가족의 시작)의 43회 결혼기념일…  1월 말의 ‘눈이 내릴 가능성’, 아하~ 제일 크고 중요한 것은 역시 ‘과달루페 순례길’… 아~ 조금은 아찔하게 인상적인  정월을 보내게 될 것인가?  주님, 성모님~ , 저희를 안전하게 그곳으로 인도해 주소서…

“A man of prayer is capable of everything.” – St. Vincent de Paul

오늘 성인의 말 …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이 있을까? 그래, 현재 거의 중단된 가족 저녁기도… 어떻게 재개를 할 것인가?
어제 매일미사에 갔다가 그곳에서 받아온 책, 역시 Matthew Kelly의 ‘선물 책’이다. 제목이 The WISDOM of the SAINTS… 매일 하루 365일 동안 성인들의 짧은 어록이다. 오늘부터 하루 하나씩 읽게 되었다.

오늘은 연숙이가 Tony K 치과에 가서 아픈 이를 뽑게 되었다. 아프다 안 아프다 하는 세월이 지속되었지만 이제는 별 수가 없는 모양.. 나보고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아픈 이를 참고 살았느냐고 몇 번이고 묻는다. 사람마다 고통을 상대하는 방법이 천양지차 天壤之差 이지만 나와 그녀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아닌지?  나는 물론 치과에 가는 것이 참는 것보다 더 싫기에 그런 것이었다. 후회가 조금도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별 수가 없었음도 사실이다.  새해부터 Humana PPO dental coverage가 훨씬 나아졌기에 이제는 연숙에게 치과방문도 부담이 적어질 듯하다.  이를 뽑으면 오늘 점심 식사도 문제가 되겠기에 아침은 일부러 deluxe double mushroom/ham sandwich로 가득 채웠다.

 

Big Forty, Four Oh!

오늘은… 우리 집, 가정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던 첫딸, 새로니의 생일이다. 그런데, 그런데 나이가…. 아~~ 사십세! 그야말로 big four zero~~~  언제 이렇게 되었는가? 새로니가 마흔 살이 되었다고?이제는 40살의 느낌이 거의 희미해진 탓인지 어떤 말로 생일 축하를 해야 하는지 망설여진다. 건강하게 살아 준 것을 감사하는 것 이외에는 그저 덤덤한 느낌이다. 기껏해야 나의 마흔 살 때를 떠올리는 것으로 가늠은 하지만 세상이 그 동안 가만히 정지해 있던 것도 아니니까… 나의 40세는 아~ 서울 울림픽이 열렸던 해~~  아이들은 이미 둘이나 있었고, 대강 감이 잡힌다… 세상 그 동안 많이 변했구나…

‘지난 해’ 12월 16일 금요일에 참례했던 Holy Family CC 아침미사가 우리에게 2022년 마지막 ‘매일 미사’였다. 이후 오늘 아침까지 ‘매일미사’는 우리의 머리 속에서 짧지 않은 겨울잠을 잔 셈이다.  감기로 시작된 피치 못할 ‘결석’이었지만 이렇게 미사를 못 했다는 것이 조금 놀랍기만 하다. 감기 따위로 2주 이상 all stop이 되는 것, 이제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뿐이 아니다. 따라서 저녁기도도 같은 운명을 맞은 것… 이 사실을 잊고 살았다는 것이 또한 놀랍다. 분명히 이런 것들 우리 생활에서 많은 영적 에너지를 빼앗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긴 휴식을 취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은 다시 둘이서 YMCA를 감기 이후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또한 Sonata Cafe도 같이 재개가 되었고.. 하지만 연숙이는 오늘 pool 예약을 하지 않고 걷기만 했고 나는 다른 때와 같은 routine을 마쳤다. 이곳엘 가면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그것은 심리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bench press, 그러니까 free weight routine으로 분명히 확실히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YMCA로 걸어 들어가는 나의 그림자가 조금은 ‘꾸부정’해 보인다.  조금 허리를 펴고 걸으며 누가 때리냐? 이유는 spycam을 보며 걸어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얼마 전 새로니 집에 갔을 때 사위, Richard가 한 보따리 hardware 뭉치를 주어서 가지고 왔다. 얘기로 들었던 것, PC dual monitor/arm package다. 예전에 dual monitor를 쓴 적이 있었다.  나의 desk에는 조금 heavy하게 보이고, 한쪽으로는 ‘하루 종일’ video을 보게 되는 것도 염려가 되어서 다시 single monitor로 바꾼 상태. 하지만 오늘 test를 하며 자세히 보니… Samsung 24″ 가 현재 내가 쓰고 있는 VIZIO보다 조금 큰 것이었고, 제일 마음이 든 것은: 이것은 100% PC  VGA monitor로서 monitor screen power saver가 제대로 작동을 하는 것.  또한 built-in speaker가 없어서 오히려 잘 된 case가 되었다. 비록 external desktop speaker가 필요한 것이 귀찮기는 했지만 의외로 lab pc에서 쓰던 USB speaker가 이곳에서 잘 어울렸고 소리, volume등 모두 만점이 아닌가? 제일 마음에 든 것은 ‘진짜 analog volume wheel control’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 하나만은 나의 손으로 조절하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Screen test를 하면서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결과는 정말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화면도 전번 것보다 훨씬 robust한 것이고, 125% screen-up도 전혀 문제없이 작동을 하고… 

오랜만에 겪는 이런 system test, change, upgrade의 일들, 결과가 좋으면 나는 정말 천국을 경험하는 느낌이 든다. 나의 직장생활이 다 이런 과정, 경험의 연속이었으니까…

오늘 아침부터 Benedict XVI 장례미사 뉴스가 계속 보였다. 이번의 교황서거뉴스, 의외로 나는 전처럼 열렬하게 관심을 보이지를 못했다. 다른 것들에 더 신경을 쓰며 시간을 보내다가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이 교황님에 대한 생각하게 되었다. 이유는 2013년의 놀라운 은퇴  소식에 실망을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는 교황 이전에 진정으로 명석한 신학자, 아니 학자였기에 나는 항상 존경을 했던 기억이다. 나라니의 선물로 샀던 그에 관한 책, Dictatorship of Relativism을 다시 꺼내어 표지에 나온 교황의 모습을 다시 본다. 역시 (신)학자의 모습이다. 그 당시 그가 ‘보수적 교황’이라는 사실에 나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 교황과 비교가 되면서 아주 대조적인 ‘철학, 사상’을 새삼 깨닫게 된다. 현재의 조류인 ‘양극화 polarization’ 현상으로 이 두 교황님을 보는 것이 이제는 아주 익숙해진 뉴스가 되었다. 하지만 교황은 교황인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 신자들은 교황을 우선은 ‘이유 없이’ 신뢰해야 하지 않을까?

Viewing, Pope Emeritus Benedict XVI

Pope Emeritus Benedict XVI,  2022년이 저무는 날에 향년 95세로 선종하신 ‘은퇴 교황’ 베네딕토 16세, 그의 바티칸 장례식을 앞두고 viewing, 조문객들의 행렬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길어지고 있음을 본다. 처음 선종뉴스 이후에는 ‘교황직을 자의 自意로 사임한, ‘도중하차’ 한 예외적 교황’이란 제목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그의 생전 교황직에 대한 호의적인 견해들이 지배적인 것을 본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교황님은 첫째도 둘째도 ‘깊은 사상적, 철학적 신학자중의 신학자’임을 알고 있다. 그분의 사목사상의 하나가 담긴 책 The Dictatorship of Relativism은 사서 읽기도 했다.
물론 도중하차했을 그 당시에는 강인한 체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교황직 (특히 선교여행)에 역부족이었던 ‘연약한’ 모습들도 보며 걱정과 실망도 했다. 특히 왕성하고 무한한 에너지로 세계를 순방하던 전임 요한 바오로 2세와 비교가 되던 때여서 더욱 대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아가 교황님은 현재 너무나 세속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보수 중의 보수’, ‘고집불통’으로 낙인이 찍히고 있는 것을 보며… 혼란스럽다.
이분은 제2 바티칸 공의회의 ‘혁신적, 진보적’ 신학적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으니 그는 그 당시 그는 절대적으로 보수가 아니라 진보 중의 진보였는데, 이것은 사실 그가 변한 것이 아니고 세상이 이렇게 한계 없이 탈신앙, 극단세속화 된 것은 아닌가? 참, 이것이 어떤 형태의 진화인가? 아니면?

새로니의 hubby, Richard가 나와 비슷한 직종, 그도 computer engineering에 속해서, 그가 쓰다가 retire시키고 있는 각종 gadgets, computer equipments가 상태에 따라서 나에게 오는 기회가 생긴다. 며칠 전에 ‘물려받는’ 것은 보기에도 육중한 것들 Samsung Dual PC monitors 와 그것을 support하는 monitor arms (mounts)인데 이것을 누가 어떻게 쓸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연숙이 쓰기에 너무나 ‘육중하면’, 나의 lab desk에 올 가능성도 있다. 몇 년 전까지는 나도 dual monitor를 쓰며, 한쪽에서는 100% movie/video를 보게 되어 시간 낭비가 많아서 다시 single monitor로 돌아오기도 했는데… 역시 주식 stock trade같은 것이 아니면 사실 이것은 ‘한눈 팔기에’ 완전한 setup일 듯하다. 하지만 일단 나에게 왔으니 어떻게 쓰는 것이 제일 효과적인지 머리를 굴려야 할 듯…

연숙의 이빨이 계속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다. 나처럼 ‘오랜 세월, 무식하게 참는’ 습관이 전혀 되지 않은 연숙이 같은 사람들의 고통을 짐작은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해를 할 수 있다. 우리도 바쁘고 치과들도 모두 바빠서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보험plan이 바뀌어서 그렇게 크게 돈 걱정은 전처럼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 마음이 놓인다. 또한 이 지역의 치과의 숫자는 실로 엄청나고 그것도 한인 치과의사들도 거의 100군데가 넘으니, 이것은 사실 반가운 사실이다. 이곳에 처음 이사 왔을 때 한두 군데가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아졌을까… 생각하니 물론 한인 숫자가 그만큼 많아졌고, 이빨 아픈 것을 참는 사람들이 과연 나 외에 누가 있겠는가? 
몇 십 년 동안 우리 식구들의  주치의도 우리처럼 나이가 들어 retire를 준비하기에 이번에는 ‘새 치과’를 찾아야 할 때가 된 듯하다. 그런 와중에서도 새로니의 ‘원군 요청’에 두말 안하고 애보기를 하러 가는 것을 보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누구에게 질 수가 있으랴~ 나는 아직도 멀었다, 멀었어…
오늘은 새로니가 드디어 federal government [Department of Energy]  job 을 시작하는 첫날이 되었고 내일부터는 그 조그맣고 똘망똘망한 유나가 daycare 에 가게 된단다. 조금 믿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새로니가 참으로 자랑스럽게 느껴지고도 하고, 상대적으로 나라니가 조금 힘들게 보이니… 이렇게 비교가 되는 듯한 삶을 보게 되는 것이 나는 제일 무서운데… 하지만 이것은 기우 중의 기우일 것이다.

새해의 결심 중에 ‘육성 전화 voice call 무조건 받기’가 있었고 이 덕분에 오늘 처음으로 윤형의 전화를 1초도 되지 않아서 받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까, 우선 성공한 것이 아닐까? 다음에는 받는 것과 같이 거는 것에도 용기를 실어보고 싶은데, 제일 먼저 내일 교성이에게 걸어보면 어떨지… 제발 성공적인 습관이 되기를 빌어본다.

새로 시작한 ‘수난의 기도들’을 시기하는가, 연속적인 유혹이 아침부터 나를 시험하는가… 역시 사탄의 장난인가… 이런 ‘거의 미친듯한 이 기도’가 나에게 가당하고 유익한 것인가 하는 유혹이 어제의 깜깜한 시간들의 도움으로 나에게 속삭인다. 분명히 나도 현재 ‘수난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믿지만, 이 이탈리아 ‘주님의 종’ 여인의 ‘광적인 수난’과 비교가 될 수 있으랴~~ 아, 이것이 현재 나와 무슨 큰 관계가 있단 말이냐~~ 싫고 지겹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Love Ozzie, Piccarreta, Milder Yearend…

Ozzie와 함께 아침에 일어나는 날, 이것이 바로 나에게는 ‘건강한 정상’적인 모습이다. 이것으로 나는 ‘나는 감기에서 나았다’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아침의 routine이 조금은 바뀌었지만 이것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알고 있다. 비록 연숙이 아직도 깨끗하게 완치는 안 되었어도 이제는 시간문제가 아닐까… 최소한 오늘, 내일은 분명히 ‘산책’도 할 수 있고 심지어 YMCA solo도 시도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 하는 것 OK, OK!

Luisa Piccarreta, Servant of God… 오늘로서 이 수난의 기도들 ‘고리기도’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은 ‘소개의 말’인데 12월 4일 이것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 기도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었지만 26시간 (26일)의 ‘기도’가 끝난 지금은 훨씬 알게 된 것들이 많이 생겼다.  첫 고리기도 때, 거부감과 싸우는 것으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판단이다. 하지만 미리 예상했듯이 이것 한번 하고 끝낼 것이 아니기에 시간을 두고 꾸준히 탈락,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의 흐름이 분명히 나에게 신비한 깨달음을 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오늘 모처럼 Ozzie 동네를 걸으며 새해를 맞는 동네의 모습을 천천히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집 바깥(밖)에서 (Ozzie와 함께) 산책을 했던 것, YMCA 에서 운동을 했던 것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까마득하게 오래 전으로 느껴지지만 사실 알고 보면 2주 정도밖에 되지를 않았으니, 이것은 분명히 지난 2주일이 평범했던 시간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나의 판단은 정확하다. 그 2주일 동안 우리는 감기로 모든 정상적인 생활이 멈추었던 것이기에… 100% ‘집콕, 방콕 (이제는 나도 이제 이런 최신 속어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은 아니었어도 머릿속은 그렇게 기억이 된 것이다. 문제의 시작은 역시 내가 걸린 ‘보통 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심하며 살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 감기virus가 나한테 온 것일까?  지난 20일 오후부터 목 [편도선]이 붓기 시작했으니까 잠복기를 고려하면 그 며칠 전인데… 그때는 이틀 전인 일요일 미사참례와 그 전날 혼자서 YMCA에 갔던 것인데… 그때 걸린 것은 아닐까? YMCA 에서는 가까이 접촉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weight machine등은 소독을 철저히 하기에 감염의 기회가 낮았을 듯한데, 그렇다면 주일미사 때란 말인가?  Flu vaccine shot를 맞았기에 이 정도라고 자위는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보통 감기조차 조금 무서워진다. 무엇보다 최소한 1주일 정도를 완전히 정상 생활을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것, 정말 밥맛이 없는 것 아닌가…

 

기록적으로 추운 날씨가 서서히 물러간 뒤 처음으로 동네를 걷는다. 이 느낌과 모습이 이곳의 전형적인 겨울이 아닐지… 게다가 바람도 거의 없는 날씨여서 황량한 경치와는 대조적인 날이었다. 성탄 장식, 심지어 성탄구유도 그대로 남아있는 우리 동네는 분명히 독실한 크리스천들이 많이 살고 있을 것 같다.

아직도 모두 풀지 못한 성탄 선물들이 늦게나마 오늘로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연숙이 나에게 주는 ‘내가 좋아하는’ 얇은 자주색 스웨터 와 새로니 부부가 준 실내 winter slipper, 이것은 Richard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신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뒤쪽이 아예 접혀서 신을 수 있게 만든 것이 나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새로니 딸, 우리의 손주 딸, 유나 바다… 성격이 조금 급하고 의사표시가 너무나 분명하다. 오늘 와서 하루 밤을 우리와 지내고 내일 가는데, 오랜만에 하는 애보기, 아~ 쉽지 않구나… 작년, 애를 보던 시절이 조금 잊혀져서 그런가, 무엇인가 불편하고 힘든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어떻게 다른 집에서는 애를 보는 것인지, 그래서 그렇게 daycare center가 비싼 것인지… 그래도 귀여운 순간순간이 있기에 위안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우리의 나이다, 나이… 20년 아니 10년, 아니 5년만 ‘젊었어도’ 분명히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듯하니… 이제는 늦었다, 늦었어…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제와 어제 내가 들었던 짧은 말들이 어쩌면 오징어처럼 축 쳐진 나에게 생기 돋는 힘을 주는 것인지… 이런 것, 누구에게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그래도 나는 기쁜 것이다. 그제는 이형 가게의 종업원 아저씨의 ’75세 모습의 놀라움’ comment, 그리고 어제 새로니 집에서 Richard의, ‘나이보다 10년은 젊게..’ comment,  이런 두 가지의 지나가는 짧은 언급들이 앞으로 최소한 몇 개월을 사는데 큰 힘을 줄 것이라 생각, 아니 희망을 한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다. 이렇게…

 

CANCEL & CANCELED, Family Gathering Together

결국 올 성탄, 연말 가족모임은 100% cancel되었다. 나라니가 아무래도 아직도 몸이 아픈 것이다. 그래서 재료만 준비하고 있었던 각종 음식들을 만들어서 두 집에 배달하고 선물도 교환하기도 했다. 작년에도 이렇게 했던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올해도 이렇게… 올해는 사실 나의 작은 감기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어서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새로니네 먼 곳으로 이사 안 가는 것과 나라니의 둘째 아기 가진 것 등으로 축배를 들어도 좋았을 텐데… 그래도 한번 얼굴을 보러 그곳으로 가니까… 아~ 올해는 이렇게 넘어가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성탄모임요리’를 만들어서 선물상자들을 들고 ‘거의 작년처럼’ 두 딸의 집에 가서 전해주고 들어왔다. 나는 거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기에 I-285 drive를 하는 것 큰 문제는 아니었으나,  이런 것들은 진짜 가족모임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신명 나는, 즐거운, 보람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 참 올해는 이상한 해로 끝이 나는 모양이다. 특히 전혀 happy하지 않은 모습의 나라니 인상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대조적으로 기운이 넘치게 보이는 새로니의 모습이 이런 기분을 조금 보상해 주긴 했다. 내일 새로니가 유나를 맡기러 올 것이어서 아예 오늘 간 김에 Ozzie를 미리 데리고 왔다. 그 녀석이 있어야 동네 산책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정상적 삶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는 희망도 없지는 않았다.

 

몸도 근질거리고, 어제 이형 네 그룹과 만나서 느낀 것도 있기에 오늘은 혼자서라도 YMCA gym엘 갈까 했지만,  별로 good idea가 아니라고 ‘강제성 권고’를 하는 연숙, 속으로 ‘네~ 네~’를 되뇌는 나, 그래 좋은 것이 좋은 것,물 흐르는 대로 순리대로 싸우지 말고 살자.

어제 이형네 retail store에서 나와 다른 삶들의 모습을 보고 느꼈기에 나도 조금 자극을 받은 것인지… 한편으로는 어떻게 그렇게들 사느냐 하는 놀람과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생동감, 살아있는 삶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는 극과 극의 양면성을 본다. 내가 너무 ‘게으르고 안전한 철부지 삶’을 아직까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편한 곳에 앉아서 각종 영성, 철학, 과학 책들을 읽고 사는 나의 현재의 삶,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안 됨을 사람들을 만나서 깨닫기도 한다. 나는 나의 현재 삶의 성격에 이렇게 자랑하지도 못하는 듯한, 한마디로 자신감이 없는 것일까?

그들의 삶, 나와 너무나 다르고 듣고 보기에 신선하기까지 하지만 나는 그런 삶에 그렇게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인데…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자신 있게 사는 듯하게 보이는 것인지..

한마디로 내가 보기에 그들은 가급적 세상적, 세속적인 즐거움을 만끽하며 사는 듯 보인다. 즐거움 이외의 다른 세계를 모르고 사는 듯한 것이다. 어떻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조금 타협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조금 더 ‘삶이 있는 현장 드라마’를 보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어제 이형 가게에 간 것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어떤 ‘찬물’을 뒤집어 쓰는 효과를 주기도 했고, 우울한 나의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런 외출이었기에 앞으로 이런 기회를 더 갖고 싶기도 하다.

 

과달루페, 과달루페~~ 이제 새해가 이틀 앞으로 … 머리 속은 역시 1월 말 예정의 과달루페 성지순례로 가득 차 있다. 성지에 대한 것 보다는 ‘여행 그 자체’, 집을 떠나는, 그것도 ‘멕시코’로 가는 것에 더 나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깊은 심리적 충격을 주리라 기대, 희망을 한다. 그러면 이번 성지순례는 100%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로 ‘수난의 시간들’ 묵상기도가 24시간 (24일 동안)이 지난 뒤에 있는 ‘부록’으로 넘어갔다.  ‘수난의 처참한 고통의 시간’에서 조금 숨을 돌리고 이 ‘하느님의 종’, 피카레타에 대한 공부를 조금 넓혀 보고 있다. 우선 그에 관련된 책들에 대한 조사, Amazon에서 보는 ‘서평’ 등으로 조금씩 ‘느낌’을 조절한다. 제일 관심사가  ‘이단성’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사실 전혀 문제가 없다. 이 기도서 책의 감수자 격인 ‘성인’이 그녀의 고해신부였기 때문이다. 99% 의 Amazon 독자들도 나와 마찬가지의 의견인 듯 싶다. 소수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작은 거부감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100% fiction으로 치부하기도.. 하기야 영적, 믿음에 관한 것이니 그것도 이해는 간다.

Cancel Days Aftermath, Can’t Die in a Cornfield!

어제 저녁부터 점점 심해진 ‘잔잔한 우울증’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오늘 아침은 고육책으로 잠자리에서 정오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나로써는 가끔 있는 희한하게 보이는 괴벽이지만 하느님이 보시면 측은하게 보실 것이다. 다행히 연숙이 이런 나의 모습에 익숙한지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이런 와중에서 외출, 특히 오늘 예정된 S 베드로 형제집에 놀러가는 것은 물 건너 간 것이 되었다. 또 하나의 cancel 희생물이 생긴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마련한 자리였는데, 혹시 우리가 무리를 하면 못 갈 것도 없을 듯한데~ 하는 각종 후회의 느낌을 쫓는 것도 피곤할 지경이다. 아~~ 미안해~~~ 잘못했어~~~ 소리를 지르고 싶다.

한편으로 그 집에 놀러 가서 신나게 떠들며 노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얼마나 신나게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될 것인가? 특히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하지만 이제 물 건너 갔다~~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어두운 밤’ 속에 나는 각종 추억을 더듬느라 바빴다. 어둠 속의 추억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아름답고 감미롭게 남아있던 그 추억들 조차도 모두 어둡고 잊고 싶은 추억으로 변색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슬펐다. 지나간 과거지사, 추억들은 나의 보물, 자랑거리이기도 했지 않은가? 그곳으로 도망, 피난을 가면 나는 편하고 행복하곤 했는데, 이제는 이것조차 이렇게 변하고 있단 말인가? 놀랍기도 하고 사실은 정말 슬픈 것이다.

특히 1973년부터 1977년 간의 추억은 극과 극, 지옥과 천국, 천사와 악마의 경계를 오가는 시절로 다시 재조명이 되는 것이 제일 끔찍하게 놀랍다. 그렇게 ‘멋지고 행복했던’ 추억의 뒤쪽에는 이제까지 잊고 살던 악마의 모습들이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개인역사가 세월의 뒤안길에서 퇴색하고 변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사후에 ‘꼭 거쳐야 한다는’  life review가 가까워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이런 악몽의 24시간 뒤에 내가 기대하는 것은 물론 밝은 하늘, 웃는 성모님의 위로의 미소, 든든한 하느님의 보호, 은총, 자비 등등이겠지만 현재로써는 전혀 실감이 가지를 않으니~~ 아~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사랑, 현존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무엇을 나의 현재의 어려움을 초래한 것이었을까? 무엇이?

 

이제 조금씩 우리는 일어나고 있다.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내일 저녁의 진희네 그룹의 식사모임부터 약속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성사생활, 특히 매일미사, YMCA등도 재개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큰 문제가 없다. 앞으로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수요일의 가족모임과 S형제와의 약속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 새로니 식구 돕는 것으로 2022년을 안전하게 마감할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살 수 있다.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뉴스들을 보니 이번의Northeast  snow storm은 거의 50/100년만이라고 나온다. 일기예보가 조금 빗나간 것인가, 아니면 갑자기 일기가 돌변한 것인가… 지역을 보니 대부분 이런 엄청난 일기에 이미 익숙한 곳이라 별로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이제 보니 그것보다 훨씬 심한 모양~~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2014년 우리가 이곳에서 겪었던 ‘일기, 교통 대란’ 일을 생각하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좌우지간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곳의 얌전한 날씨에 계속 감사한다.

지난 밤 (거의 정오까지 계속된) ‘어두운 밤’을 지내며 특별히 집중적으로 추억을 한 것이 1973년 이즈음 때였다. 당시의 유학생, 간호사들, 이제 자세한 것들이 퇴색된 것을 알고 너무나 슬펐다. 그렇게 생생하던 것들이 그 동안 잊고 살았던 탓이기도 하고 나의 뇌세포의 노화가 이유일 것이다. 나의 고백 자전적 수기 ‘Peru, Nebraska’를 제때에 완성을 시켰으면 지금 편안하게 이용을 할 텐데, 조금 늦은 듯하다. 사람의 이름, 얼굴들은 생각이 나는데 timing들이 뒤죽박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수기를 보충하는 노력을 해 볼까… 야심 찬 생각인가?

You Can’t Die in a Cornfield!  Handel’s Messiah가 거의 영화 주제곡처럼 들리는 1980년 Holiday film, A Christmas without Snow를  또 다시 보며 다시 듣는 말이 오늘은 왜 이렇게 나의 가슴을 울리는가? 그렇다, 그렇다,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  갖가지 어려움과 사연을 안고 크리스마스 메시아 공연 직전 지휘자이자 그룹리더 (John Houseman 분) 가 중풍으로 쓰러지며 공연이 무산되는 순간 나온 이 외침,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이 Nebraska 주의 독특한 지역성 표현 덕분에 순간적으로 해결책이 발견되었던 것, 그렇다 여기서 중지할 수는 없다, 나아가야 한다.

 

Totally Grounded Christmas Day

모처럼 성탄 일요일 아침에 ‘진짜 TV’  CBS의 전통을 자랑하는 ‘SUNDAY MORNING’의 시작을 잠깐 보게 되었다. 아~ 이것 오래된 것 아닌가? 그것도 12월 25일 아침에 방영되는 것이고, 사회자로 나온 사람을 보니… 아~ 금세 알아보는 얼굴, Jane Pauley다! 비록 멋진 화장과 차림을 하고 있지만 나이는 만만치 않을 이 여성… 1974년 여름 Chicago로 기억은 돌아간다. 그 당시 처음 Chicago 의 local TV anchor로 선을 보인 것, 아직도 기억을 하니~~ 정말 청순하고 애띤 모습이었었다. 이후 그녀는 우리의 예상대로 승승장구하며 CBS national news anchor가 되어 은퇴를 했고 현재는 이렇게 special programming에서 모습을 보인다. 이 여성과 함께 기억되는 사람은 다름이 아닌 얼마 전에 암으로 타계를 한 singer Olivia Newton-John이다. 둘의 얼굴 느낌이 참으로 비슷하고 비슷한 시기에 debut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얼굴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아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크리스마스를 보낸 듯하다. 나의 감기는 이제 많이 나아가고 있지만 연숙은 지금 시작 단계라고 생각하니 모든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인데, 처음에는 잠깐 쉰다고 생각하며 편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갈 수록 화가 나며 점점 우울해지고 심지어 슬퍼지기까지 하다. 어떻게 이렇게 성스러운 날이 가장 잊고 싶은 날로 바뀌었을까? 누구의 잘못인가?

성탄절 하루의 후반부는 완전한 어둠과 사투를 하는 심정이 되었으니..  제일 괴롭히는 것은 가족들이 모이는 것이 무산된 것이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사라진 집이 어쩌면 그렇게 무덤과도 같았을까? 하느님, 어떻게 이렇게 된 것입니까?

5일 전, 지난 화요일 나로부터 시작된 목 감기로, 고해성사부터 시작해서 성탄 가족모임, 성탄미사까지 모두 사라진 모습이 처절하게만 보인다. 어떻게 이것을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럴 때 나의 모습은 비겁자의 극치로 보인다. 용기나 깡이라곤 하나도 없는 식물인간같이 축 쳐진 나의 모습이여~ 제발 사라져다오~~

뒷집 동포 방선생 댁에서 성탄선물을 보내주셨다. 우리가 어젯밤에 보낸 것을 보시고 ‘못 참고’ 답례를 하신 것, 추운 날씨에도 이렇게 예우를 하는 정성이 고맙다. 이런 것으로 같은 이웃으로 사는 보람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이런 holiday가 한 역할을 한 것 아닐까?

거의 하루의 반 정도는 (PC) monitor screen을 멍~하니 바라보며 지냈다.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괴로운 생각들을 떨치는 데 이것처럼 손쉬운 방법이 어디 있는가? 이런 것들이 없었던 시절에는 어떻게 했을까? 특히 이런 때  YouTube의 위력은 상당한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듯한 것들을 AI라도 동원된 듯 알아 맞추어가며 나를 이끌고 있는 것,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끌려가는 듯한 나의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아차! 하면 fake, disinformation에 빠질 위험도 있으니…

TV programming은 물론이고 NYT 의 작은 기사까지 하루 종일 샅샅이 읽고 있는 나, 나의 영성, 과학 서적들은 어디로 갔는가? 성탄절 날 미사는 고사하고 교우들의 모습도 하나도 못보고 이렇게 외롭게  내동댕이쳐진 듯한 느낌과 장시간 싸우고 있는가?

2019년 이후 다시 보게 된 이 Czech Republic의 Handel의 Messiah 공연모습, 3년 만인가? 비록 2011년에 실제공연 장면이지만 내가 처음 본 것은 2019년 성탄 무렵이었고 이번 성탄에 다시 보게 된 것, 우연인지…

올해는 사실 어제 영국 King’s College 의 메시아 공연 video를 먼저 보다가 문득 이 것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아직도 ‘그곳’에 video는 건재하고 있었다. Hit count도 그때 이후 많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King’s College와 이 Czech Republic의 공연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이것이 더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conductor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오늘 성탄절의 ‘만기석방’ 선물이라고 할까, 거의 한달 동안 ground되었던 Izzie를 오늘로써 용서하는 gesture를 보여주었다. 지난 며칠 동안 나에게 가까이 오려고 탐색을 하는 모습이 이제는 불쌍하게 보였기에 오늘 직감적으로 풀어준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조심을 하여야겠지만 더 이상 이런 ‘심리적’인 압박을 주지 않고 싶다.  언젠가 이별을 하는 것을 예상하면 더 이상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고 싶다.

 

COLDEST Theraflu CHRISTMAS EVE

며칠 째 이 ‘달콤한 쥬스’ 약, THERAFLU를 계속 ‘마시고 마신다.’ 이것의 성능은 얼마나 감기 증상 초기부터 끊지 않고 복용하느냐 하는 데 달려있다. 이번에는 증상이 느껴지자마자 시작을 했고 며칠 째 계속 하고 있어서 이 정도로 견딘다고 믿는다. 물론 예전에 맞은 flu shot도 크게 증상을 완화할 것이다. 비록 시간을 질질 끌어도 증상은 역시 견딜 만 하니…  이 THERAFLU를 복용할 때마다 생각나는 추억은 역시 어렸을 때 우리들의 쓰디쓴 맛의 각종 약들을 먹을 때다.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참 당시 약들, 정말 거의 독약수준의 쓴맛이었으니… 아플 때마다 아픈 것보다 약 먹는 고통이 더 컸었을 것이다. 지금 먹는 각종 ‘물약’들은 거의 달콤한 주스 수준이어서 아예 약 먹을 시간이 기다려지는 착각에 빠지곤 하니…
드디어 연숙의 감기가 현실화 되었다.  물론 나로부터 전염이 되었음을 자명한 사실이다. 목부터 아파오기 시작, 나와 100% 같은 증상인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직감적으로 최소한 2~3일 정도가 지나야 조금 나아질 것으로 보이니…  이제부터 제일 문제가 오늘의 가족모임인데… 하지만 이것은 어렵지 않게 결정이 되었다. 일단 모든 모임을 취소, 접기로 했는데,  내가 일부러 감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감기에 걸린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인 것이니.. 게다가 성탄절 미사도 거의 물 건너 간 것이 되었다… 조금 외로워진다. 다음 문제는 월요일에 서베드로 형제집에 초대를 받아 가는 것인데 그것은 50/50 정도가 되지 않을까..

지난 밤을 지나면서 드디어 single digit의 기온으로 떨어진 아침, 온도계를 보니 8도 [섭씨 영하 14도 ], central heating은 아직도 계속 나오고 모든 space heater까지 모조리 동원되었다. 혹시 물이 안 나오나 check를 해보니 이것은 문제가 없다. 이렇게 해서 오늘의 한파 첫날은 넘기는 셈인가?
어제 잠자리에 들면서 기침으로 잠을 설칠 듯했지만 거의 기적처럼 한번도 그런 문제가 없었던 것, 얼마나 고마운지.. 하지만 일어나면서 다시 나오는 기침, 그래 이렇게 서서히 없어지는 것이겠지…

아무것도 안하고, 못하고 멍하니 screen만 망연자실 처다 보며 성탄이브를 지내는 것, 나중에 어떤 추억으로 남을 것인지…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그래도 추위와 어두움을 뚫고 이웃 3집에 성탄 선물 봉지를 놓고 왔고, 덕분에 동네의 찬란한 불빛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초 Ohio State 시절 성탄전야에 Buckeye Village의 몇 친지 집을 돌며 선물을 돌리던 추억이 아름답게 아롱진다.

또 다른 Ohio State 시절의 추억, 성탄 밤 미사 이후에 집에서 Vatican Midnight Mass를 TV로 보던 것, 이번에는 집에서 거의 현지 중계로 미사광경을 지켜보았다. 로마 바티칸 현지 성당의 느낌은 100% 느낄 수 없게 되었지만 이런 것으로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 싶은 것이다.

물 건너간 가족들과의 성탄전야 모임이 cancel 이후 갑자기 생긴 많은 시간들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아니~ 지루하기까지 한 것이다. 성탄의 기분에 걸맞은 것 중에 HandelMessiah 보다 나은 것은 없지 않을까? 매년 새로 나온 것을 보곤 했는데 올해는 ‘우연히’ 영국의 King’s College것을 보게 되었다.  이제는 이 ‘대작’을 조금은 이해도 하게 되었고 어떤 부분은 익숙하게도 되었다. 물론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 이기에 아주 timing이 완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