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가족

¶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래~ 전의 유행어) 그 첫 big ‘sudden’ dip이 거의 도둑처럼 밤새 찾아왔다. 거의 20도가 하루아침에 떨어진 것이고, 그것이 거의 3일째 계속되어서, 아침에 거의 3개월 만에 ‘긴 팔’ shirts를  입게 되니 그렇게 기분이 날라갈 것만 같다. ‘긴 팔’ shirts를 가 딱 좋아서가 아니라 그 지긋지긋하던 2016년 여름이 결국은 물러갔다는 그것이 그렇게 기쁜 것이다. ‘긴 팔’을 입으면서 문득 태고 적, 중고등학교 다닐 때, 10월 1일에 하복에서 동복으로 ‘일제히’ 바뀌던 그 때가 생각이 난다. 그러면 당시의 서울의 사계가 이곳 지역과 비슷한 것일까.. 물론 이곳의 평균기온이 높지만 사계가 뚜렷한 것은 거의 비슷하다.

아침 9시 Holy Family CC 평일 미사엘 가니 우리보다 나이가 더 드신 ‘어르신들, 특히 할머님들’은 숫제 ‘오바 overcoat’를 입고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을 한 것이 보인다. 체감온도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곳의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의복문화’가 더 뚜렷이 느껴지는 계절이 온 것이다.

Full time으로 돌아가던 에어컨이 갑자기 ‘조용~’ 해 지니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럴 새가 없다. 분명히 10일~20일 사이에 첫 central heating이 ‘점화’될 것이기에.. 또 crawl-space로 ‘기어들어가’, 거미줄을 헤치고 gas heater pilot- thermocouple을 ‘점화’하는 고역을 치러야 한다. 문제는 이때 문제가 발견되면.. 또 하루 이틀 고생을 할 것이다. 에어컨은 올해의 oppressive, brutal Summer heat를 잘 견디어 내었지만 올 겨울 central heating 특히 아래층 것이 항상 마음이 조린다. 위 층의 heater는 우리가 이사 온 후에 바꾼 것이라 아마도 ok일 것이다. 올해의 더위로 electric bill은 보기가 무섭지만 그것에 비해서 natural gas는 훨씬 ‘저렴’해서 겨울 몇 개월 동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춥기만, 적당히.. 적당히..

 

¶  2 feral Kittens: 지난 5월 쯤 우리 집 backyard shed에서 태어난 kittens들, 4마리였다. 그 동안 우리 집을 ‘거점’으로 들락날락하더니 결국은 모두 떠나고 kitten 두 마리가 우리 집 뒷마당에 정착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엄마와 다른 2마리는 완전히 떠난 셈이다. 하지만 가끔 엄마는 찾아와서 밥만 먹고 떠나곤 한다. 우리가 control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그들의 ‘행태’를 관망하며 먹이만 잘 챙기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조그맣던 것들이 잘 먹어서 그런지 꽤 크게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며 이제는 우리 집도 그들에게 정이 들고 있다.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먹이를 우리 집 뒤 deck에 놓아주고 하루 두 번씩 먹이를 주며 서로 얼굴을 익히며 사귀고 있는데 지금은 우리를 하나도 겁내지 않고 먹이를 가지고 나가면 발 밑에서 맴돌 정도까지 되었다.

집안에 이미 개 Tobey와 고양이 Izzie가 있지만 이 두 마리는 행동이 100% 자유스러운 feral cats들로써 앞으로 ‘불임수술’을 해야 하는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우리 집을 떠날 수도 있기에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service해야 할 부담이 되었다. 작은 딸 ‘나라니’가 county humane society에서 ‘거의’ 무료로 수술을 해 주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현재까지 이 두 마리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들도 하느님의 생명들이라는 것, 사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생명들이 아닌가? 최대한 그들도 태어난 의미를 찾아 주어야 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잇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이름이 필요했는데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던 차에 연숙이 ‘아롱, 다롱‘은 어떠냐고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분명히 순 한글이름이지만 만약 영어로 쓰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니 오래 전 고국에서 보았던 불란서 영화의 간판 배우 아랑 드롱 이름이 떠오른다. 우리 집 backyard가 그런대로 넓은 편이니까 아마도 그들은 우리 집만 떠나지 않는다면 Born Free의 사자 lion, Elsa처럼 자유스럽고 먹이 걱정하지 않고 ‘일생’을 사는 그런 삶으로 만들고 싶다. 당장 해야 할 일은 갑자기 떨어진 날씨를 상기하며 겨울을 날 조그만 shelter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  오늘은 일주일 전에 계획했던 것, 우리 집에서 거의 30 마일 떨어져 있는 Duluth, GA 에 있는 St. Monica성당을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얼마 전 부터 아틀란타 대교구 본당들에는 최근에 성녀 품에 오르신 마더 데레사 성녀 (St. Mother Teresa)를 기념하는 조그만 순회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는 거의 대부분 데레사 성녀의 일대기가 실려있는 기록사진 panels 들이라 다른 source에서 (Internet같은 곳)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본론이 아니고 성녀의 relic (유물)이 함께 전시된다는 사실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성인들의 relic은 신체의 부분을 포함해서 개인 용품들도 있는데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본 것은 성녀 데레사가 입고 있던 sari (파란 색의 사리 옷)의 일부분이었다. 그 색깔은 분명히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입고 있던 연한 파란 색, 바로 그 옷의 일부였었다. 한가한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처음에는 그 relic이 치워져 있어서 사무실에 문의를 해서 특별히 조그만 방에 임시로 보관 된 그 relic을 볼 수가 있었다. 이미 사진전시로 성녀의 일대기를 다 본 이후에 그것을 다시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Media를 통해서 이미 잘 알려진 수녀님의 모습과 그 파란 색의 옷, 바로 그것이 수녀님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날 30여 마일을 온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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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1st class relic이 전시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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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color panels: 성녀의 일대기가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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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onica 성당 내부

 

 

The Beatles – When I’m Sixty-Four

 

휴~ 이제 다 끝이 난 모양이다.  연숙의 생일 ‘먹기’. 1월 달에는 나와 큰 딸, 9월 달엔 엄마와 작은 딸의 생일이 같은 날짜 차이로 있다. 그래서 1월도 조금 바쁘고 9월 달도 마찬가지다. 올해 연숙의 생일은 조금 지나치게 보낸 것은 아닐까? 생일 전날에 Thai restaurant Lemongrass에서 ‘간단히’ 둘이 ‘먹었고’, 생일 날엔 아이들이 와서 Marietta Square에 있는 gourmet hamburger restaurant Stockyard 란 곳에서 ‘무지막지’하게 큰 hamburger와 local microbrewery 산 draft beer sampler로 배가 터지게 먹었고, 마지막으로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과 같이 한 생일회식이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그러니까.. 무려 3번 생일축하를 한 셈이다. 조금 지나친 감도 없지 않았으나.. 생각을 해 보니 올해 생일이 육십사세 란 것이 귀에 익은 숫자였다. 내가 4년 전에 1월에 친구 양건주와 나의 생일을 자축한 Beatles classic, When I’m sixty four..  생각이 나는 것이다.  4~5 년 뒤로 나를 따라오는 연숙이 64세라는 것이 조금은 실감이 안 간다. 부모세대의 64세를 생각하며, 손주들이 주렁주렁한 할머니의 모습들.. 암만 봐도 그 때의 그 모습들이 없다. 한 세대가 흐른 시점에서 세대 차를 느끼지만 그것은 모두 ‘겉 모습’에 관한 것 들이다. 아마도 세월에 의한 경험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 옛날 60년대.. 이 Beatles의 When I’m sixty four를 들었을 당시.. 기억에, 와~ 그 나이까지 살면 어떻게 하나.. 하고 은근히 기분이 쳐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부부는 ‘완전히’ 그 magic number를 모두 넘어선 것이다. 참 정직하다, 세월은.. 어김없이 일초 일초..흐른다.

 

¶  결국 7월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오고야 말았다. 표현이 아주 극적이지만 사실 하나도 극적인 것이 없는 2016년 7월이 ‘영원히’ 나로부터 떠나려 하고 있다. 올 여름의 특징이었던 ‘변화 없는 더운 날씨’ 바로 그것으로 기억에 남으리라. 어제가 그제고 오늘이 ‘아마도’ 내일일 것이다. 거의 변화를 못 느끼는 그런 날씨, 더위, 느낌들.. 지겹게도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올해의 이 여름의 지겨움은 사실 그렇게 견디기 힘든 것은 아니다. 재수가 잘 맞으면 늦은 오후에 쏟아질 수도 있는 소나기의 희망도 있고, 이제는 우리의 몸도 더위에 잘 적응이 되었고, 33일 봉헌 준비를 위해 ‘질주’하는 짧지 않은 영원과의 대화 시간도 있기에 그럴지 모른다.

7월 초에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 성당에 ‘기혼자’이신 주임신부님이 부임해서 관심과 우려를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우였다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진지하고 영성 적이고 정치, 사회에 관심이 많은, 강론이 진지하고 준비가 잘 된, 한마디로 ‘합격, 합격’ 이었다. 가정이 따로 있어서 사제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아침마다 출근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이상했지만 이제는 모든 신자들이 잘 받아드리는 느낌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전번 traditional Irish 신부님과 너무나 느낌이 다른, 너무나 ‘살아있는’ 강론, 앞으로 우리 본당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  오늘부터 우리의 일요일 routine이 조금 바뀌게 되어서 조금 더 새로운 느낌의 일요일을 맞는다. 바뀌게 된 큰 이유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10시 미사 대신에 8시 30분 미사로 바꾼 것 때문이다. 일요일의 은근한 위안이었던 ‘조금 늦게 일어나는’ 것이 없어진 것이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연숙이 한인본당 순교자 성당의 교리반 director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매 주일’ 미사에 관계없이 순교자 성당엘 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문제는 우리 둘이 어느 쪽에서 미사참례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제일 이상적이고 간단한 것은 우리 둘이 함께 순교자 성당에서 주일미사 참례를 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정든 Holy Family 동네본당의 주일미사를 못 보게 되긴 하지만 그곳은 평일 미사를 거의 매일 가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비록 순교자 성당엘 둘이 가게 되면 나는 교리반이 완전히 끝나는 시간까지 ‘할일 없이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고역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내가 조금 불편함을 참으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런 배경으로 나는 ‘거의’ 주일 미사를 순교자 성당엘 둘이 가기로 마음을 정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악마의 손길인가..

우리와는 어쩌다 보니 거의 운명적으로 incompatible한 것으로 판명이 된 인물들이 갑자기 우리 주위의 공동체(주로 구역과 순교자 주일 미사) 에 등장한 것이다. 한 명이라면 그런대로 참고 견디겠지만 그 이상은 감당하기가 힘들다. 멀리서라도 보이게 되면 간단히 피할 것인가, 이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할 것인가, 극약으로 정면으로 대할 것인가.. 어느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은 option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결국은 구역 모임, 순교자 본당 주일미사에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할 수가 없는 노릇.. 다른 것은 배를 쓸고 참을 수 있어도 멀지 않은 과거에 divide & conquer를 motto로 공동체를 사정없이 분열시키고 ‘해괴한 수준의 박학다식‘을 자랑하던 그들의 위선적인 얼굴과, 진짜 속 마음을 알 수 없는 언행 등은 정말로 참기가 힘든 노릇이니 결론은 이렇게 간단한 것이 되었다.

한때 급작스럽게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던 정들었던 구역 모임과 그곳의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던 교우들, 주일 미사에 항상 앉던 자리의 주변에서 그런대로 얼굴이 친숙해지던 형제, 자매님들.. 당분간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모르는..) 잊어야 할 듯.. 이래서 이것은 운명의 장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내가 풀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전구, 보호자이신 성령과 성모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 8월에는 조금 선선하고 신선한 쪽으로 사정이 흐르기만 바라고 있다.

 

DASUQUIN magic: 3주 전쯤 하루아침에 갑자기 거의 신체불구가 된 듯 했던 우리 집 12살짜리 ‘강아지’ Tobey는 한때 ‘장례식’을 연상했을 정도로 암울한 며칠을 보냈었다. 속으로 나는 그 녀석을 보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며칠을 정성껏 돌보았는데 문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나타내는 것을 옆에서 볼 수가 없었던 것.. 우리의 결론은 비록 ‘심한 신경통, 관절염’ 쪽이었지만 혹시 만에 하나라도 다른 것이라면.. 하는 우려가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급히 order했던 약을 먹은 그날부터 거의 기적과 같이 움직이며, 신음소리도 줄어들었다. 그 약의 이름이 바로 DASUQUIN 이었는데.. 나는 이때야 비로소 ‘약 장사’의 인상이 조금은 좋아짐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거의 ‘생과 사’의 갈림에서 기적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경험이 되었다. 생각에 그래서.. 그래서.. 약 장사 (제약회사)들이 그렇게 돈을 버는구나 하는 자명한 사실.. 내가 원래 약을 싫어하고 안 믿는 인간이라 더욱 놀란 것이다. 어떻게 거의 죽다시피 보이던 것이 그렇게 나아질 수 있었을까? 3주가 지난 지금 Tobey는 거의 전처럼 돌아왔고 우리 집의 공기는 다시 활기가 돌아오고 있다. 7월이 준 따스한 은혜라고나 할까..

 

¶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간단히 “33일 봉헌 기도” 라고 불리는 이 한 달을 넘는 준비기간이 7월 13일 시작되어서 이제 6일이 지나고 있다. 33일 중, 첫 12일간을 ‘첫째 시기 12일: 세속 정신을 끊음‘ 이라고 하는 ‘준비 전의 준비기간‘에 속하고, 나머지 3주가 사실 본론에 속한다. 첫 12일 ‘준비 전의 준비기간’ 에는 ‘세속에서 떠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2년 만에 다시 이 ‘‘을 보며 ‘묵상’을 하는 것, 새롭기도 하고 조금은 귀찮기도 하지만 이것이 나의 올해 ‘개인피정 personal retreat’ 라고 여기고 조금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현재까지 느낌은 전 보다 조금은 더 높고 넓게 주제를 받아들이는 그런 것.. 이것은 분명히 발전이다. 과연 우리가 세속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있을까? 우리가 현재 보내고 있는 초 현대는 99.99%가 세속세계가 아닌가? 깊은 산속의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마도 2중 적인 삶(생각과 행동이 같지 않은) 을 살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력은 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조금씩 이 세상을 탈 세속 사회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초자연적인 도움이 있다면…

 

¶  Tobey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누워버린 지 일주일이 지나간다. 그 애나 우리나 어떻게 보면 참 긴 시간이었다. 집안에 환자가 생기는 것이 이런 기분이겠구나.. 그렇게 주위에 아픈 사람을 많이 보았지만 집안의 개가 아픈 것을 보는 것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급하게 order한 약, 신경 관절염 치료 보조제 supplement를 기다리는 동안 증세가 조금은 호전된 듯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게나 아픈 신음소리를 내는,  말 못하는 ‘식구’를 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이틀 전에 도착한 ‘기적의 약’에 모든 희망을 걸긴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혹시 이렇게 아픈 이유가 우리가 생각한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 약을 먹은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Tobey는 다시 서서히 천천히 일어나 걷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스러운 초점을 잃었던 눈이 원래대로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본 대로 이것은 arthritis계통의 ‘노인병’일 것이다. 이것의 고통은 사람들에게 들어서 익히 알지만 그들은 말이라도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들은 그 심정이 어떨까.. 다시 한번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순간’에 대한 생각을 물리치며, 이제는 animal pain, animal theology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듯하다.

 

¶  와~~ 쳐진다.. 오랜만에 기분이 무척이나 쳐진다. 우울할 정도로 쳐지는 느낌 아주 오랜만인가? 예전에는 하루를 멀다 하고 우울한 감정과 싸우던 기억인데 이제 그것도 조금씩 추억으로 변하고 있으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왜 그렇게 ‘나아진 것’인지 그 이유는 나에게 너무나 자명하다. 바로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평화’일 것이다. 이것이 예전에 비해서 그렇게 외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런 중에도 가끔 이렇게 우울한 날이 오긴 한다. 얼마를 못 가지만 그래도 이것은 괴롭다. 어찌해서든지 몸을 바쁘게 해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이유를 생각하면 몇 가지가 분명히 있지만 나로써는 어떻게 해결할 수도, 그럴 가지도 없는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그저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  Tobey Scare: 12살 배기 male mixed Dachshund, Tobey, 이틀 전부터 거의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자는 시간 빼고 거의 모든 시간 나를 졸졸 따라오는 나의 그림자였지만 그날 아침부터 나를 따라오지를 않았다. 아니.. 아예 움직이지를 않았다. 거의 죽은 듯이 엎디어 있고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일순간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12살의 나이면.. 언제나 가능성이 있는 나이라고 서서히 우려를 하고 있던 차였다. 제 발로 계단을 못 내려가는 것이 뻔하기에 내가 앉고 나가서 bathroom처리를 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변했다. 조용해진 것은 물론이고.. 거의 초상집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처음으로 우리 Tobey와 이별할 수도 있다는 현실감도 들 정도..

주위에서 정든 pet dog을 보내며 보여준 각가지 반응들에 우리는 남의 일처럼 comment를 하곤 했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Veterinarian을 찾으면 이상적이겠지만.. 그것도 꺼려지는 것, 이것 저것 test test.. 로 개를 잡을 것이고, $$$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그것 보다는 증세가 최소한 internal한 것이 아니기에 며칠을 두고 보자고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 최소한 먹는 것과 ‘싸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까..

오늘 소식을 듣고 새로니가 부리나케 ‘병문안’을 왔고 이곳 저곳 연락을 해서 알아보니, 역시 ‘심한 신경통, 관절염‘ 계통의 증상인 듯 했다. 그렇게 잘 걷고 활발하던 애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 부리나케 신경통증을 완화하는 약을 order하고 더 지켜 보기로 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듯 하긴 하다. 새로니의 이야기가 만약 관절염계통이면 치료가 불가능하고, 통증만 control할 정도라고..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활발하던 애가.. 하지만 12살이 되는 나이를 무시할 수가 없다. 항상 이별할 준비를 하는 것은 생각하기도 괴롭지만..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  2016년 ’33일 ‘대장정’ 의 첫날을 맞이했다. 이번이 3번째의 33일 봉헌이 되기에 조금은 경험이 있다고 할까.. 처음 두 번의 것보다 조금은 느긋한 심정으로 첫 날을 맞이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며칠 전부터 뒤적거리던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책의 첫 장을 열고 첫 12일의 목표: ‘세속 정신을 끊음‘ 의 제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을 읽고 묵상을 시도한다. 12일 동안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라’ 는 과제.. 이것이 과연 그렇게 쉬울지..

사실 이 33일 과정은 이 책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guide를 받으며 독서, 묵상, 기도를 할 수 있다. 이 ‘책’을 그대로 따라가면 큰 문제없이 33일 기간을 마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실제로 독서 후에 깊은 묵상과 제시된 기도를 다 마쳐야 하는 것이다. 그것 뿐이 아니다. 33일의 기간 동안 지켜야 할 것들이 이 책에 일목요연하게 제시가 되어 있어서 그것을 ‘가급적’ 지켜야 하는 부담도 있다.

한창 더운 복더위의 여름에 이것은 무엇인가.. 시원한 beach나 산 속의 summer vacation도 아니고.. 에어컨 소음이 요란한 자기 집 방구석에 앉아서 이렇게 33일 보낸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큰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아니.. 그렇게 ‘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의미가 있는 멋진 summer ‘spiritual’ retreat, vacation 일 수 있는 것이다.

33일 매일의 실천 사항 이란 list를 보면: 거의 모두 ‘상식적’인 것들이다. 이 기간 동안 ‘대죄’를 짓지 말라는 것도 그렇고, 1시간 이상 조용한 시간을 할애하라는 것, TV같은 ‘잡 雜 것’들 을 피하라는 것, 아니 요새 나온 실천사항에는 분명히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피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듯 하다. 아마도 제일 힘든 것이 ‘조용한 1시간 이상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정말 힘들게 된 요새세상, 참 많은 사람들 ‘로봇트’ 같은 정해진 일상을 보낸다는 사실에 경악을 한다.

이 중에는 가능하면 매일미사 참례하라는 것이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것에서 ‘걸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 것 같다. 요새 세상에 매일 미사를 한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인기 있는 활동이 아닐진대.. 하지만 나는 문제가 없다. 2012년 부활시기에 이 ‘인기 없는 활동’을 시작해서 아직까지 굳건한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참 오묘한 것은, 2012년 부활시기에 연숙이 33일 봉헌을 시도하면서 ‘시험 삼아’ 평일미사를 같이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모든 ‘작은 기적들’의 시작이 되었으니 말이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33일 봉헌은 이래서 우리에게는 거의 ‘신화적 역사’가 되었다.

 

¶  휴우~ 덥다 더워.. 6월 24일!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은 웃긴다.. 임마 (이런 말 아직도 쓰나?) 6월도 24일이면 한창 여름이 무르익어가는데 그것이 정상이지, ‘빠가야로‘! 하는 등뒤의 속삭임에 내가 웃는다. 그렇지, 지금은 더운 것이 정상이지.. 그런데.. 92도 라면.. 어떨까? 아마도 옛날 옛적의 대구더위에 비길 수 있겠지. 며칠 계속된 더위지만 극적으로 때맞추어 ‘내가 고친’ 에어컨 바람이 더 나에게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럴 때는 물론 오후에 때맞추어 쏟아지는 시원한 소낙비.. 하지만 느낌에 그런 chance는 거의 zero 인가 보다. 아니면 Johnny Rivers 의 60’s classic oldie, Summer Rain을 연상케 하는 그런 추억의 비는.. 어떨까.. 하지만 이것은 거의 꿈같은 이야기다.

 

 

1968년 여름의 추억, Summer Rain – Johnny Rivers 

 

오랜만에 그 동안 바깥 구경을 못하고 살았던 우리 집 두 마리의 ‘재미있는 개’ Tobey & Ozzie, 오늘은 내가 더 쳐지기 전에 용감하게 끌고 동네를 돌았다. 거의 할아버지 나이가 된 우리의 개 Tobey가 언덕을 ‘새로니의 개’ Ozzie를 앞지르며 나를 끌고 올라간다. 얘는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이 동네 언덕을 나와 걸었기에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모른다. 공을 던지면 총알처럼 뛰어가는 다리가 긴 ‘젊은’ Ozzie, 2주째 우리 집에 머물며 자기 엄마 ‘새로니‘를 거의 잊은 듯 잘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밤에 ‘혼자’ 자야만 하는 그 녀석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 이곳을 걸었을 때 내가 열을 받았던 것, TRUMP FOR PRESIDENT, MAKE AMERICA GREAT AGAIN..이란 SIGN이 두 곳에서 나를 자극했던 것.. 오늘도 어김없이 그곳에서 ‘빠가’ 트럼프의 ‘쌍통’을 연상시킨다. 이 두 집이 바로 우리동네의 idiots, white trash인 셈이다. 이곳 East Cobb county는 물론 very conservative한 지역이고 전통적으로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잘 사는 Republican white trash’들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이런 쓰레기 같은 SIGN을 본 것이 당연한 일이건만.. 나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니.. 이건 분명히 내가 over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야말로.. I CANNOT HELP IT.. 어쩔 수가 없다. 도대체 이 덩치 큰, ‘젊은’ 나라는 어떤 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덥기만 한 날씨에 더 열을 받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래.. 이래 저래해도..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리라..

 

¶  6월 24일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  오늘 평일미사를 가면서 6월 24일이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 (Solemnity of the Nativity of Saint John the Baptist) 임을 매일 복음묵상 ‘newsletter’에서 보고 알았지만, 사실 그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 ‘사건’으로부터 였다. 바로 이날 6월 24일에 발현을 하신 메주고리예 성모님을 이 ‘대축일’ 때문에 집에서 쉬던 (놀던) 그 ‘애’들이 본 것이다. 그 당시 이 발현 과정에서 이날이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임을 누누이 밝히고 있었지만 그 때 나는 그 말의 의미조차 잘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금요일 평일 미사엘 가면 분명히 세례자 성 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하는 짧은 강론을 듣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요새 거의 본당신부님 역할을 하시는 방문 신부님 Fr. Joseph, 뜻 밖에도 새로 부임하실 본당 신부님에 관한 얘기를 하며.. 우리의 ‘이해’를 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사연은 물론 본당 Holy Family 성당에 7월 초에 새로 부임할 주임신부님이, ‘부인이 있고 가정이 있는 남자’ 라는 우리에게는 ‘폭탄’ 같이 느껴지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 방문 신부님의 설명과 ‘양해’는 나도 아는 사실이다. 바티칸에 소속된 모든 가톨릭 ‘종파’들이 모두 다른 Rite를 가지고 있는데 현재 우리의 ‘보편 된’ 것이 Latin Rite, 이곳에서는 신부님들이 결혼을 안 하지만 다른 극소수의 종파에서는 성공회같이 결혼을 한다고.. 듣던 얘기다. 이번의 새로 부임할 신부님은 Melkite 에 속한 신부님이라서 신부님들이 결혼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느낌은.. 그래도.. 하필이면.. 왜 그런 ‘소수 종파’의 신부님을 ‘주임신부’로 보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본당 Holy Family는 지역적으로도 보수적이고 Irish Catholic의 전통이 농후한 곳인데..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불만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 중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상상을 하니 아찔하다. 가족을 주렁주렁 데리고 사제관에서 생활을 하며 가족들과 같이 미사에 들어 온다는 광경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는 구역문제로 우리는 고민에 빠지고 있는 마당에 이번에는 우리의 피난처 같은 미국본당에 부인, 가족을 동반한 주임신부가 온다는 사실.. 참.. 오래 살다 보니..

 

¶  성모님, 좀 봐주세요..  근래 우리부부와 자주 보게 되고, 예전 보다 조금 더 가깝게 지내는 C 자매님,  순교자 성당에 레지오 member를 중심으로 새로 생긴 Guitar Friends 그룹에도 참여 열심히 guitar도 연습하고, Holy Family 미국본당에서는 거의 매일 미사에 보게 된 멀게도 느껴지고 가깝게도 느껴지는 자매님, stress받는 것이 제일 싫어서 많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피하며 조용히 살지만 할 것은 다 하며 열심히 사는 자매님.. 왜 하느님은 어떻게 그런 병고를 주셨을까. 병고라면 이미 오래 전에 가족을 통해서 겪을 만큼 겪지 않았을까, 공평하지 않은가? 모든 아픔이 아물어가며 어떻게 다시 이런 고통을 보냈을까? 오늘 아침 미사가 끝나며 어제 doctor visit의 결과가 조금 짐작이 되었다. 우리 부부, 너무나 안쓰럽고, 미안하며, 어쩔 수가 없어진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기도를 더 열심해 해야겠군요’ 정도였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이외에 무엇일까.. 늦은 아침을 먹으며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한다. 성모님, 좀 봐주세요…

 

¶  육이오 6.25, 66년:  66년, 허~ 66년이라.. 여기다 6 하나를 덧붙이면 666가 되는구나. ‘악+악+악’, triple ‘악’ 인가? 그래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단어가 육이오, 유기오, 융요 (박정희 대통령의 발음).. 그래, 의식이 살아있는 한 이 단어는 나를 ‘움찔’하게 만들 것이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이제는 ‘사학자’들도 총대를 멜 때가 되지 않았나? 미국의 역사 교과서는 현직 대통령도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 놓는데.. 우리나라의 ‘병신 사학자님’들은 어떠신가? 아직도, 아직도 빨갱이 운동권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 육이오의 노래

 

요사이 재동 동창 김정훈 부제의 유고집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를 읽고 읽고 읽으며.. 다시 느끼는 것, 나도 나도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아니 육이오가 없었으면, 아니 김일성 개XX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나의 인생은 아마도 김정훈 부제의 ‘사직동 김판사댁‘  못지않게 ‘원서동 이정모 교수댁‘ 이란 ‘선망의 눈초리’를 받으며 컸을 지 누가 알랴? 어떻게 육이오의 몇 개월 사이에 한 가정, 한 가족의 운명이 그렇게 뒤집어 질 수가 있을까? 물론 우리보다 더 ‘처참한’ 인생의 역전을 겪었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죄 없는 동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고 우리가 아니다. 우리 집은.. 우리 집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나고 저 세상에 가면 나는 반드시 ‘김일성’을 찾아내리라.. 그 개XX를 찾아 내리라.. 아마도 그 아들 김정일 개XX도 같이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찾기가 힘들 것이 분명히 그들은 지옥에 있기 때문이다.

 

Father's Day with a daughter

Father’s Day with a daughter

Father’s Day 2016… 어김없이 왔고 어김없이 간다.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고 생각도 안 했던 올해의 ‘아버지 날’, Father’s Day.. 왜 그랬을까? 그저 불과 며칠 전부터 아하.. 이번 일요일이 그날이었지.. 한 정도였다. 손톱을 깎을 때마다 선물로 받았던 ‘손톱깎기 set‘, case에 적혀있는 희미해진 글자들: ‘Father’s Day 2001 FROM KIDS‘ 를 볼 때 마다 조금은 젊었던 나의 모습도 추억으로 간직한다. 아이들에게 기억이 되었던 나의 아빠 모습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당연히 있어야 했던 가족의 하나, 자기들을 낳아준 협조자, 어렸을 적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었고, 낮 시간 동안 집을 비우며 돈을 벌어오고, 여행을 갈 때면 운전을 주로 하고, 무거운 것들을 들어주고.. 그 정도였을까? 지금은 그런 것들 보다는 조금 더 ‘멋진’ 것들이 기억에 남아있어 주기를 바라지만.. 글쎄..

나에게 Father란 말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올해는 그날이 되어서야 Father의 진정한 의미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올해는 그것도 조금 특이하다. 내가 나의 Father를 본 적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Father로써 처신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그저 김일성 공산당이 아버지를 끌고 갔다는 것과, 남아있는 바랜 사진 들.. 그것으로 ‘아버지 상’을 상상을 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엄마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를 다정하게 들어 올리는 그런 아버지를 본 적이 없이 그저 영화나 다른 집을 통해서 상상하는 것, 왜 집에 아버지가 필요한 지도 잘 모르던 나, 지금 생각하면 참 불쌍하게 컸다는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불운한 시대의 소산이라고 생각의 끝을 접는다.

어떤 ‘아빠’의 추억을 아이들에게, 배우자에게 남기고 갈 것인가.. 그것이 이제는 나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우리 부모들 세대처럼 불운한 시대의 고생만 하며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풀어 주었던 ‘절대적인 존재’.. 는 이제는 나도 바라지 않는다.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의 아빠 상을 남겨주고 싶다. 아니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가급적 더 많이.. 남기는 것.. 훗날 자기 아빠를 생각하면 그저 “아빠는 우리를 즐겁게 해 준 것보다 아빠 자신이 더 행복했었다” 라고 생각하기를 원한다. 궁극적으로 ‘왜 아빠는 그렇게 훗날 행복한 모습으로 변했을까”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기를 바라며..

 

¶ 첫 구역 ‘반’ 모임 shocker: 예외적으로 시원했던, Father’s Day 저녁에 구역이 2개의 ‘반’으로 나뉘어 진 후 첫 ‘반’ 모임이 있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본당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공식적인 구역조정’의 결과였다. 본당 구역체제는 변함이 없이 ‘마리에타 2구역’이지만 실제적으로 둘로 나뉘어 2개의 반으로 갈라진 것이다. 반의 이름이 재미있는데, Zip Code의 마지막 2 digits를 따와서 (300)62반, (300)68반이 되었다. 흔히 1, 2반 하면 쉽겠지만 조금 더 지역적인 특성을 살렸다는 점에서 이것도 나쁜 idea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한 구역에 ‘장’이 3명이나 된다.

모든 것이 신부님의 ‘승인’하에 이루어진 만큼 이 결과의 여파는 아마도 다른 구역에서 주시하게 될 지도 모른다. 너무 커다란 덩치 (너무 많은 구역가정) 라서 이것이 제일 쉽고 직접적인 해결책이었다. 우리가 속한 ‘반’은 62반이지만, 사실 우리는 68반으로 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첫 번 예외를 명시한 조치에 우리는 예외적으로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62반으로 간 것이다. 2 반의 규모를 조금 더 비슷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사실 여기에는 잘 안 보이는 politic이 없을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가 은근히 기대했던 것은 사실.. 62반에는 소위 말하는 trouble-maker가 안 보였다는 것.. 이곳에 나가서까지 일부러 싫은 사람들을 봐야 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싫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나의 의도를 완전히 비켜가시고.. 그곳에서 ‘다시’ 안 보아야 할 인물들을 한 명도 아니고 2명 이상 이나 만나게 되었으니.. 아마도 나는 이곳에 가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눔의 시간’ 담당이 된 연숙의 입장을 고려하니.. 나는 정말로 난처하게도 되었다. 부단한 생각과 기도 밖에 없다는 생각 뿐이다.

 

¶ 아~~ 시원하다 언제부터 시작된 ‘여름 전의 한여름 더위’ 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만큼 갑자기 ‘당한’ 열대성 무더위에 머리조차 멍~ 해진 기분이다. 특히 새벽에 느끼던 찜찜하고 끈적거리는 듯한 머리 속.. 그것이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열흘 이상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된’ 그런 것.. 하지를 며칠 안 남겨두고 한차례 한여름을 치른 것이다. 그러던 것이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조금 느낌이 달랐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조금 넘었다. 부리나케 창문을 열고 공기를 마셔보니.. 와~~ 이것이 웬 떡이냐.. 습기가 완전히 빠지고 산들바람까지 불어대는 초가을의 아침이 아닌가? 이것이야 말로 웬 떡이냐..란 탄성이 나온다. 띵~~ 하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지는 듯한 날라가는 느낌.. 아~~ Mother Nature여.. 이래서 살게 되어 있나 보다.

지겨운 일기예보를 안 보고 산 것이 몇 주가 되었나? “Donald  Duck쌍통”을 비롯한 또 다른 해괴한 뉴스들, 같은 식으로 이런 것도 안 보는 이상한 세월을 보낸다. News TV, outlet을 거의 피하며 나의 sanity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몇 개월째 그런대로 효과를 보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살다가는 나야 말로 cavemen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결론은, 요새 세상은 cavemen 쪽이 더 낫다는 것이라.. 문제가 없다.

6월도 훌쩍 반을 넘어간다. 새로니는 오랜만에 지루한 학교생활을 떠나  유럽여행으로 집을 완전히 잊은듯한 기분으로 3주 여행 중 2주째를 맞고 있다. 우리는 언제 온 가족이 여행을 같이 가보나.. 하는 바램이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지만.. 그래.. 다 때가 있는 거다.. 지긋이 기다리면 된다. 특히 ‘조직신앙’을 떠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는 그날을 기다리며, 그 때가 우리가족 여행의 적기 適期 라는 생각도 한다. 과연 그날이 올까? 기다리자.. 기다리자..

 

Vatican St. Peter's Square 에서

Vatican St. Peter’s Square 에서

 

¶ Ozzie Grounded 새로니의 ‘아들’ Ozzie, 3주간 여행 중 우리가 맡고 있다. Midtown condo에서 살던 기운이 왕성한 덩치가 큰 강아지, 다리가 유난히도 길어서 우리 집의 3′ 짜리 Tobey fence를 임시로 3′ 높여서 6′ Ozzie fence ‘사고로 뛰어 나가는 것’에 대비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Condo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mansion처럼 크게 느껴지는 우리 집에서 얼마나 뛰고 싶을까.. 오는 날부터 지겹게도 더운 바깥으로 나가자고 하루 종일 졸라대며 우리를 괴롭히더니.. 결국은 사고를 냈다. 우리가 없는 동안, Publix fried chicken, 먹고 버린 것, 쓰레기 통을 열고 모조리 먹은 것이다. 뼈 투성이의 그것을 흔적도 없이 다 먹은 것이다. 작은 뼈들을 잘못 먹으면 큰일이 난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혼비백산, 걱정을 했지만..  큰 문제가 없는 듯 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은 strict하게 하는 것으로 정하고 완전히 하루 종일 ground를 시켜 버렸는데 이것이 아주 큰 효과를 내서 이제는 아주 얌전하게 우리 집 분위기에 적응을 하고 있다. 하기야 그 동안은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왔기에 너무나 ‘풀어 주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런 것 말고는 2주를 우리 집 개처럼 Tobey와도 잘 지내고 고양이 Izzie의 territory도 잘 지켜주고.. 문제가 거의 없다. 날씨가 시원해져서 이제는 grooming도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새로니가 돌아오면 이 녀석이 자기 엄마도 몰라보고, 혹시 누군가.. 하는 것이 아닐까, 재미있는 상상도 해 본다.

guest인 Ozzie와 나란히 누워 있는 Tobey.. 모습이 너무 좋다

guest인 Ozzie와 나란히 누워 있는 Tobey.. 모습이 너무 좋다

 

Happy Note, Central A/C humming again! 올 들어서 제일 더운 거의 5일간 아래층 에어컨이 없이 살았다. 아래층은 낮에 잠깐 에어컨이 나올 정도지만 그래도 음식을 하거나 하면 83F 까지 올라가고 그 여파로 위층의 에어컨이 overworking 을 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며칠을 살고 보니 예상보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급하게 order했던 condenser fan motor, run capacitors, 그리고 제일 필수적인 tool, Fan Blade Puller가 하나하나 씩 도착을 했고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땀을 폭포처럼 쏟으며 repair mode로 돌입, 천신 만고 끝에 결국은 다시 에어컨이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 ‘이론적인 것이 거의 없는’ 거의 mechanical work에 불과했지만 그 과정에는 정말 surprise 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서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나는 더욱 stress를 받았다. 제일 나를 괴롭혔던 것은 망가진 fan motor에 완전히 녹으로 붙어버렸던 fan blade를 빼 내는 일이었다. 그것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 fan blade가 망가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만 ‘전문적’으로 빼 내는 tool이 ‘발명’이 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써야 했는데.. 그것 역시 automatic이 아니고 완전히 ‘완력 腕力’이 필요한 것, 평소에 운동을 안 했으면 아마도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천신만고 끝에 결국 그것이 빠져 나오고 새 motor에 끼운  후에는 간단하지 않은 electrical wiring까지.. 휴~~~ Power Switch를 킨 후, 다시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와 찬 바람이 느껴질 무렵에는 나는 거의 완전히 쓰러지는 느낌이었는데, 피곤함 보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만약 pro service를 받았으면 얼마나 charge를 했을까? 아마도 최소$700~$800 정도였을 것이다. 나의 이 job의 total expense는 $100 정도였으니까.. 최소한 $600 정도는 save한 셈이다.  비록 두 식구가 사는 집의 가장이지만, 집안의 환경에 대한 책임감은 정말 무거운 것이었고 그것이 주는 stress역시 상당한 것.. 하지만 기대했던 결과는 언제나 모든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것.. 그것을 바라며 땀을 흘렸던 지난 주의 한가지 happy note가 되었다.

 

Brand new condenser fan motor

Brand new condenser fan motor

Magic tool, blade puller: 드디어 fan blade가 빠졌다

Magic tool, blade puller: 드디어 fan blade가 빠졌다

 

5월의 포근한 느낌, 우리 어머니, 성모님, 그리고 나의 주위에 머물고 있는 ‘자매님’들.. 5월은 더욱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생각 속에서 ‘응석’을 부릴 수 있었던 진정 내가 좋아하는 ‘성모성월’이었다. 7순이 가까운 나이에 이렇게 ‘응석’을 부린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하지만 때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미리 알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 닥상’ 이라는 것, 나이를 먹는 혜택 중에 하나다. 신록의 나날들, 비록 가끔 가을처럼 느껴지는 싸늘한 며칠이 있었지만 그래도 여름을 예고하는 각가지 자연적 현상들이 이제는 새롭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눈에 안 보이던’ 초록색깔의 생명들이 이제는 하나 둘 씩 늘어나서 아주 친근한 친구들이 되었다.

 

Yonsook's Saybrook Trail

Yonsook’s Saybrook Trail

 

텃밭을 사랑하는’ 연숙은 backyard의 ‘원시림 our own rainforest‘를 하나하나씩 ‘갈고 닦아서’ 드디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멋진 ‘오솔길’을 만들어 주위에 자랑하기 바쁘다. 그렇게 모기에 물리며 땀을 쏟는 정성이 참 가상하다고 할까? 작년에 새로니가 Mother’s day 선물로 준 포도나무가 겨울을 견디고 살아서 올해는 드디어 arbor structure가 필요하게 되어서 부리나케 남아도는 조각 lumber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부지런히 그곳을 푸른 모습으로 덮을 것을 꿈꾼다.

 

grape vine arbor structure up!

grape vine arbor structur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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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ey sniffing chicken-wing smelling charcoal

 

Memorial Day, 우리는 누구를 기리는 날인가? 자유세계를 지키던 미국 veteran들인가, 김일성 개xx와 싸우던 veteran들인가.. 조금은 혼란스럽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정의를 위해 싸우며 우리를 직접 간접으로 지켜준 영령들을 기리면 된다. 이날은 아이들이 모이지 못해서 우리 둘이서 전에 나라니가 만들었던 chicken wing 을 grill해서 둘 만의 Memorial Day를 보냈다.

2016년의 성모성월, 그런대로 열심히 살았다. Daily priority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고, 크게 아픈 적도 없었다. 쳐 저가는 느낌의 근육들을 제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도 ‘정상적’으로 했고, 친근한 느낌이 없는 고양이 가족이 새로 생겨난 것도 놀라워하고 돕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였다. 이들이 모두 creator의 creature라는 진리를 잊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도 엄마가슴같이 포근한 달에 엄마와 아내를 졸지에 보내야만 했던 가족들과 슬픔을 나누기도 했던 것, 기억에 생생하다. 피하고 싶기만 했던 구역정치 상황도 본당과 교우들의 노력으로 안정세에 접어들어서 오랜 만에 구역 미사도 갈 수 있었고, ‘점심 부엌 봉사‘도 할 수도 있었다.

  그 와중에 가톨릭 전례력은 어김없이 부활시기에서 연중시기로 바뀌며  성탄을 예고하는 대림시기까지.. 여름과 가을을 보낼 준비를 하는, 이렇게 돌고 도는 것.. 바로 이것이 인생이다. 갑자기 찾아온 습기 섞인 무 더위에 잠을 깬 a/c 의 소음이 요란하게 들리는 5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6월 달엔 어떤 일들이.. 아니 가능하다면 2017년 5월은 어떨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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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눈을 떠보니 이번 주말이 Memorial weekend, 별로 큰 느낌 없이 ‘당한’, 기분이다. 이런 ‘휴일 주말’이 예전과 같이 기분을 좋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기야 full-retirement에서 특별한 휴일이 따로 있을까? 매일 매일이 휴일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남들이 놀 때 일을 할 수도 있는, 그야말로 자유 중의 자유.. 하지만 ‘절제 moderation와 자기수련 self-discipline’이 빠지기 시작하면 이 자유는 완전한 ‘지옥’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만간 早晩間 변한다는 사실, 뼈저린 체험으로 안다. 나는 값 비싼 대가를 이미 지불했기에, 이제는 문제가 없다.

갑자기 ‘여름 같은 밤’이 들이닥친 지난 밤, 오랜만에 아.. 드디어 여름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습기가 잔뜩 섞인 바람 한 점 없는 안 보이는 air, 피부에서 땀을 날려보낼 기운이 떨어진 듯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 공기가 움직여야 땀을 말리고, 이런 바람이 없으면 강제로 바람을 내게 해야 한다. fan 그것도 electric fan, 바로 ‘선풍기’가 필요한 바로 그때가 온 것이다. 밖으로부터 들리는 가라앉은 잔잔한 소음의 a/c compressor소리보다는 ‘앵앵’거리며 귀를 건드리는 귀여운 fan의 소리를 더 원한다. 창문을 열고 바닥에 누울 수 있다는 건 이맘때부터는 ‘특권’에 속한다. 더불어 벼락을 동반한 시원한 오후의 소나기나 소리 없이 내리는 굵은 물방울의 비.. 이것들이 모두 여름의 dreaming of white.. 인 셈이다.

 

드디어 올해  a/c unit cleanup, tune-up, test-up 할 때가 왔는가?

드디어 올해 a/c unit cleanup, tune-up, test-up 할 때가 왔는가?

 

매일 미사에도 조금 줄어든 사람들을 보며.. 아하.. 휴일에 여행들을 갔구나.. 그래서 더욱 holiday 기분이 든다. 우리는 집을 떠난 지 참 오래된 느낌.. 여행 예찬론을 귀따갑게 듣지만, 우리와는 그렇게 인연이 없나 보다. 여행을 간 듯이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 둘의 지론 持論 이다. 인생 자체가 ‘서사시’ 적인 여행이 아닐까? 새로니는 이제 학교가 방학이 되어서 완전히 몇 달 동안 자유인이 되고, 일 주일 후면 계획을 했던 ‘유럽 대장정’을 시작하게 되고, 덕분에 pet dog Ozzie 는우리 집에서 당분간 살게 된다. 몇 주일 동안 같이 살면 이 녀석 어떻게 변할까 주목이 된다. 항상 바쁜 나라니는 이번 짧은 주말, 친구와 Panama City Beach로 떠났다. 그곳은 우리 가족 오래 전 regular summer place였는데.. 그곳도 많이 변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래도.. 우리는 backyard에  ‘연숙이-오솔길’이 새로 생긴, 우리의 ‘피곤하고 낡은 집, depression-era shack’이 최고의 summer place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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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소리 없이’ 사라졌다!  우리 집 backyard shed 에서 출산 후에 계속 우리 집 backyard에서  살던 feral shed cat family (1 mom + 4 kittens)…  그날 하루 종일 섭섭하고 우리를 우울하게까지 했던 ‘그 귀여운 녀석들’..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 새벽에 쓸쓸한 심정으로 shed에 가보니.. ‘모두’ 돌아와 있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암만 추측을 해도.. 그들이 어디에 ‘하루 종일’ 갔다 왔는지 알 수가 없다. pet 특히 cat behavior의 ‘전문가’ 인 나라니에게 물어보니, 아마도 주변을 explore를 하려고, kitten들을 ‘훈련 시키려’ 외출을 했을 것이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떻게 거의 24시간을 밖에서 보냈을까.. 먹이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하지만 그런 궁금증 상관없다. 돌아온 것만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우리 집 식구가 돌아온 듯한 기분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안 떠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우리 집을 완전히 떠났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완전히 돌아온 것이 아닐까? ‘공짜’ 먹이가 ‘보장’이 된 곳을 쉽게 떠날 수가 없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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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이들이 밖에서 ‘활발하게 노는’ 모습을 back porch 안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들, 4마리의 모습이 다 다르고, 크기도 차이가 나기 시작하고, 활발한 정도도 다 다르다. 제일 활발한 녀석은 이제 shed옆에 붙어있는 높은 나무를 기어올라 shed roof까지 올라가 그곳에서 놀기도 한다. 제일 작은 두 녀석은 자기의 모습이 비슷함을 알았는지 서로 껴안고 누워있기도 하는데.. 그들의 모습은 정말 너무나 귀엽다.

문제는 이들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하숙’을 하는 셈인가.. 아니면 우리 집을 결국 떠날 것인가?

결국, 의견들을 종합하면 아마도 시간이 되면 엄마가 떠날 것이라고, kitten들을 뒤로 두고..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다. 동물들은 거의 모두 그렇게 살지 않는가? 자식들이 자립할 때까지 보아주고 떠나는 것.. 인간도 거의 마찬가지니까. 아니면.. 이 가족이 모두 이사를 갈 수도 있다. 그러니까, 하루 아침에 또 없어져서 안 돌아오는 것이다. Case마다 다르니까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당분간’, 식량이 풍부한 이곳에 계속 머무를 수도 있고..

우리가 해 주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은: 이들의 ‘불임수술: neutering, spaying‘이다. 다시는 이들이 kitten을 더 못 낳게 하는 일, 이것이 불필요하게, 비 인간적으로 이들을 ‘죽일 필요 euthanasia’가 없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Internet을 찾아보니.. 이것도 하나의 ‘사회적 정의 운동’으로 되어서.. 정말 많은 사람들, 특히 cat lover 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작은 딸 나라니도 그런 쪽에서 한 몫을 하고 있었다. Kitten들은 최소한 6개월이 되어야 불임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시간이 조금은 있는 편이지만, 문제는 mommy cat이다. 그 녀석, 또 임신을 하면 문제가 아닌가? 그 녀석은 원래 밖에서 살던 녀석이라 trap하는 것도 큰 일이라.. 우리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이 kitten들에게 adopt family를 찾아 주는 것이다. 특히 제일 귀여운 이 때에 이들의 입양 chance가 높을 것 같다. 그래도 주위에 만나는 사람마다 알리고 있지만, 글쎄.. 예상보다 이 것이 쉽지 않다. 모두들 그렇게 바쁜지.. 특히 한국사람들은 그렇게 미국에 오래 살았어도.. 전통적인 고양이에 대한 allergy가 있는 모양이다. 개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이곳의 추세도 모르는가? 먹이와 litter box만 있으면 거의 ‘공짜’로 키울 수 있는 것인데..

 

 
교황님 2016년 5월 지향기도

 

¶  성모성월:   Vatican Youtube에는 이제 매달마다 교황님의 ‘매달 지향기도 monthly prayer intention‘ video가 실린다. 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이제는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한다. 짧지만 아주 심도 있고 호소력이 있는 교황님의 ‘구수한’ Italian comment는 영어자막이 곁들여져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 달에는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 농부들’ 에 관한 것이고 이달은 ‘별로 인정 못 받고 고생하는 세계의 여성들’에 대한 기도이다. 참 계절적으로 알 맞는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5월과 여성, 특히 성모님은 어쩌면 그렇게 느낌이 일치하는 것일까? 그래서 Mother’s Day, 가톨릭 전례력으로 성모성월, 성모의 밤.. 등등이 모두 5월에 함께 모여있는 것일까?우리 어머님의 기일도 5월에 있음이 한동안 나를 슬프게 했지만 다른 편으로 생각하니 이런 포근한 기분의 5월에 있음이 조금은 나를 위로하는 셈이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사람을 노곤하게 만드는 첫 한가로운 느낌의 더위가 여름의 시작을 알리고, 재수가 좋으면 (나쁘면?) space heater를 켜야 할 정도의 싸늘한 아침도 이때에 꼭 있다. 지난 주말 경에 사실 아침에 central heating 이 요란하게 나온 적이 있었으니까.. 아마도 그것이 올 여름 전에 ‘마지막’ 난방의 소음소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첫 A/C (air conditioner)의 소음 소리를 들을 때가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이미 나의 office에는 ‘돗자리’가 자리를 잡았고 80도 이상을 웃도는 늦은 오후에는 pet dog, Tobey 와 함께 ‘오수 午睡’를 즐길 때가 되었다. 이런 5월의 모습들이 나를 즐겁게 한다.

 

 

 

¶  성모의 밤:  올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성모의 밤 행사는 우리에게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경험이 되었다. 내가 우리가 몇 년 동안 보았던 성모의 밤은 대개 5월 말 쯤에 있어서  거의 여름 기분으로 바뀐 시점으로 조금은 싱그러운 5월의 향기가 희미해진 느낌이었고, 본당 대성전 안에서 ‘경직된 행사’를 하는 느낌으로 했었는데, 올해는 ‘정식으로’ 본당 성모 동산 앞, 그러니까 야외, outdoor에서 ‘진짜 성모의 밤’을 보게 된 것이다. 커다란 가정집 mansion 뒤뜰에서 결혼식을 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거기다 시간적으로 어두움이 잔잔히 가라앉기 시작하고, 향기로운 5월의 공기까지 성모동산을 신비롭게 감싸는 것, 정말 느낌이 새로웠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자랑스런 유산, 성모동산이 촛불 행렬을 기다리며..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자랑스런 유산, 성모동산이 촛불 행렬을 기다리며..

어두움이 깔린 성모동산, 인자로운 눈이 어둠을 밝힌다

어두움이 깔린 성모동산, 인자로운 눈이 어둠을 밝힌다

 

열을 지어서 행진하는 장미꽃, 촛불들의 행렬의 위에 인자로운 미소로 내려다 보시는 성모님.. 머리 속으로 ‘분명히’ 성모님께서 지금 이 시간 시공간을 초월해서 우리 앞에 계신다는 것을 그리며 그린다. 비록 본당주최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성모신심의 본향인 레지오 단원들의 정다운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고, 특히 예년에 비해서 더 레지오에 관심을 보이시는 본당신부님들의 모습도 다정한 어머님의 눈길과 더불어 더 5월 초의 향기로운 저녁 하늘을 포근하게 느끼게 했다. Never too late라고 이제나마 ‘진짜 성모의 밤‘을 보게 해 주신 성모님께 다시 한번…

 

¶  나의 어머니 날:  2016년 5월 8일, Mother’s Day, 어떻게 올해는 오래~전 어머니 날과 날짜가 같을까? 5월 8일.. 나의 시절에는 어머니 날이었지 어버이 날은 기억에 없었다. 이날은 여러 가지가 겹친 날이기도 했다. 2번째 일요일,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 날이라 오랜만에 주일미사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하게 되어서 비록 몇 주만이지만 새로운 기분으로 본당을 둘러보고 성물방의 도서실도 기웃거리고, 이제는 낯익은 담당 자매님에게 레지오 행동단원 입단도 권유해 보는 등, 기분을 새로이 하는 날이 되었다. 이제는 예의 낯익은 얼굴이 분명히 몇 분이 꼭 있어서 예전에 비해서 마음이 덜 불편하게도 되었다.옆 동네, 마리에타 1구역 담당의 $3 점심도 비록 한 그릇이었지만 맛은 아주 감칠맛나게 좋았다.

날씨도 기가 막히게 화창한 날 예전 같으면 ‘아이들의 강요’에 못 이겨 ‘끌려서라도’ 주인공인 ‘돼지 엄마’를 ‘모시고’ classy한 곳에서 외식을 하기도 했겠지만.. 글쎄.. 이제 모두들 ‘늙었나..’ 움직이는 것 귀찮다는데 거의 동의한 단계가 되었다. 올해는 idea가 바닥이 난 아이들을 ‘구제’하려 내가 volunteer를 해서 집에서 나의 ‘특기 요리’로 이날 오후를 보내게 되었다. 나의 특기요리는 평소에 ‘돼지 엄마’가 좋아하는 ‘lots of, lots of vegetable & ground beef stir fry‘ 라고 내가 이름을 붙인 이제는 거의 classic이 된 나만의 요리이다. 그저 ‘재료만 많으면’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는 요리.. 오늘의 main dish가 되었다. 아이들은 red wine, 손수 만든 chicken wing을 밖에서 grill하고, Doraville H-mart에 있는 ‘빵집’에서 사온 ‘덜 달고, 덜 큰, 알맞은’ cake등으로, 그런대로 ‘초 간단 超 簡單, 초 저가 超 低價’ 였지만 만족스런, 즐거운 Mother’s Day late luncheon이 되었다. 주인공은 아이들의 엄마인 ‘돼지 엄마’겠지만 나의 머리 깊숙한 곳에는 나의 heroine, 나의 어머니가 더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화창한 5월 8일 어머니 날이 되었다.

 

4마리 kittens과 mother가 이 shed 밑에..

4마리 kittens과 mother가 이 shed 밑에..

일주일쯤 되었나.. 근래 가끔 우리 집 앞에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최근에는 backyard에서도 보였던 가늘고 까만 색갈의 양양이(고양이)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backyard 이웃 David 집과 경계 fence에 붙어 있는 2010년경 ‘내가 만든’ shed 뒤 쪽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 shed에 쌓여있는 ‘공구’ 잡동사니 중에서 무언가 찾으려고 그곳에 가서 혹시나 해서 (직감적인가..) 뒤쪽을 보게 되었는데.. 아니~ 귀여운 kitten 한 마리가 나를 못보고 하품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놀라게 하지 않으려 부지런히 우선 그 자리를 피하고, 이 일을 어쩌나.. 혹시 우리 집에서 kitten을 낳은 것은 아니었던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몇 달 전이었던가.. stray pet animal에 관심이 지대한 나라니(둘째 딸)가 새로 난 kitten몇 마리(4마리, nicknames: A,B,C,D)를 일주일 동안 맡아 달라고 해서 빈 방에서 돌보아 주었던 적이 있었다. kitten들이 얼굴과 색깔에 상관없이 얼마나 귀여운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나의 나이 탓인지, 어찌나 ‘귀엽고, 슬프게’ 보이는지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귀엽고, 슬프고.. 라는 상반된 감정, 기분이 특히 이상한 것이었다. 엄마와 떨어진 것,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 남을까.. 하는 우려가 더 나를 생각하게 한 것이다. 나라니의 말이: 너무나 많이 태어나는 양양이들이 우려할 만한 것이라고 ‘경고’를 하며 우리들은 어떡해서든지 그들을 ‘길거리’에서 구해서 더 이상 kitten들이 ‘안락사’를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역설을 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pro-choice 어쩌구 하며 ‘길길이 날뛰는’ feminist들의 이기적인 궤변과는 대조적인 진정 ‘every life is precious‘, humane advocates의 정신을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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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우리 집 방에서 뛰어 놀았던 그 몇 마리의 ‘아주 작은 양양이’들.. 예상은 했지만 정이 무섭게 들었고 보낼 때 기분은 너무나 쳐지는 것.. 연숙은 더 해서 하루라도 빨리 보내자고 한다. 동감이었다. 더 정이 들면 들수록 이별은 따라서 고통이 될 것이다. 그 후에 adopt가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저 부디 행복하게 건강하게 수명을 다 살게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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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이번에는 우리 차례가 된 것이다. 우리 집 property 안 에서 kitten들이 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귀찮은 생각에 안 본 것으로 하며  연숙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그저 kitten을 낳은 어미가 잠시 우리 집에서 쉬는 것으로 ‘희망적인’ 상상을 하려고 했지만.. 역시 그것이 아니고 사실은.. shed의 밑 바닥 crawlspace에서 출산을 한 모양이었다. 그곳은 사실 양양이가 머물기에 안전하고 널찍한 곳이라서 우선은 안심이 되었지만.. 집 안에서 사는 양양이에 비해서.. 축축하고 어둡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실 원래 그런 환경이 그들에게는 자연적인, 정상이 아니던가?

내가 본 kitten은 분명히 한 마리였는데, 그들이 한번 출산에 몇 마리를 낳는다는 것을 알기에 문제는 과연 몇 마리? 그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집 안에 들어와서 멀리서 shed 주변을 지켜보았더니.. 와~ 아주 귀여운 세(3) 마리가 옹기종기.. 뒹굴며 어미 앞에서 놀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면 세 마리를 낳았던가? 암만 보아도 세 마리였다. 색깔이 모두 다르지만 같은 검정색 계통이었다. 너무 어려서 사람을 안 무서워 하는 듯하였지만 소리에는 민감했다. 그러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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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숙에게 고백을 하고 대책을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우선은 ‘먹이, dry food & water 를 주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장기적인 해결책은 떠오르지를 않는다. ‘산모’의 젖이 가장 중요하니까, 우선은 잘 먹어야 할 것이니까 집안에서 사는 우리 집 양양이 Izzie가 먹는 것을 아주 많이 주기 시작했는데, 내 놓자 마자 금새 밥이 없어졌고 자세히 보니까, kitten들도 같이 먹는 듯 했다. 그것은 ‘어른 밥’인데 어떻게 먹을까 했지만 아마도 먹을 수 있는 이빨들이 나온 모양이었다. 정말 다행이 아닌가?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침 저녁 밥을 주러 갈 때나, 멀리서 shed 앞에서 엄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뒹굴고, 엉키고, 매달리며’ 노는 baby 들, 너무나 귀여운 모습들이었다. 문제는 이제부터가 아닌가.. 더 정이 들면 어쩌나, 그러면 보내거나 없어지는 것이 너무나 괴로운 일이 아닌가?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이런 ‘사사로운’ 정에 약해졌나? website를 뒤져보니 우리 같은 situation너무나 많고 그들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veterinarian 들과 이들이 더 이상 baby를 낳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며 animal shelter에서 ‘안락사’를 못 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등, 정말 humane human들의 모습을 보고 코가 찡해지는 것, 어쩔 수가 없다.

문제는 앞으로 몇 주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어쩔 것인가. Mother’s Day에 애들이 오면 분명히 무슨 좋은 idea를 줄 것으로 기대를 하지만.. 우선 website에서 본 idea, 장기적인 ‘숙박시설’, outdoor shelter를 만들기로 했다. 다행이 요사이 tool들과 아주 익숙해진 관계로 아주 크게 힘들 것 같이 않고, 나중에 얘 (kittens+mother) 들이 갑자기 이사를 가거나 아니면 adopt가 될 때까지는 우리의 책임이라는 ‘사명감’을 느끼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보기로 각오를 한다.

 

아~~ 4월도 20일이 되었는가.. 어제가 4.19 사일구 아~~ 내가 너무도 똑똑히 기억하는 그 때.. 가 이제 56년 전이었다니.. 너무하다 너무하다.

요새 습관이 된 듯한 ‘작년의 desk calendar’를 쉽게 보는 것.. Holy Family 성당 에서 준 조금은 ‘조잡하고 간단한’ 달력,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것이 정상적인 달력이고,  한반도에서 나온 달력이 오히려 이상하게 복잡하고 비싼 것이다. 좌우지간 그것을 나의 daily journal로 쓰기 시작한 것이 3년 째.. 몇 년 전에 일어난 중요한 일들은 레지오 수첩과 더불어 이것이 생명선이다.

‘고물’ Android Samsung smartphone의 camera record도 다른 중요한 나의 인생 기록을 남기고 있어서 calendar와 더불어 나는 근래 몇 년간의 삶의 모습은 그런대로 기억을 하며 살게 되었지만.. 과연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내가 조금은 ‘작은 것들’에 집착하는 쪼잔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모른다.

작년의 camera picture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비가 쏟아지는 날 front door에서 찍은 것.. Tobey가 밖을 보며 평화스럽게 누어있는 그 모습이 어쩌면 나를 그렇게 ‘천국’에 있게 하는 것인가. 4월의 모습이, 이상적인 4월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제발 잔잔한 비여.. 나를 다시금 즐겁게 만들어주라!

찐한 extreme peace를 가끔 경험하는 요새.. 비록 식사시간이 괴롭긴 하지만 (my tooth, my tooth!) 이것도 보속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리며 살게 되었다. 언제까지 견딜지 모르겠지만.. 그날까지 평화를 지키고 싶다. 왜 평화가 우리 집에 왔을까? 우연일까? 물론 이제 생각에는 ‘아니다!’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모든 곳에 내리는 절대자 주님, 하느님의 자비의 비를 나는 조금씩 맞으며 느끼게 된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내가 가슴을 열고 마음을 열고 머리를 그곳으로 돌리니까 보이며 그 단비를 맞게 된 것이다.

3월 달의 보나 자매님을 보내던 과정은 참 역사적인 것이다. 주위의 ‘귀여운’ 자매님 천사들과 같이 기도하며 정성을 들여서 보나 자매님을 천국으로 보내는 그 과정.. 당시에는 바쁘고 슬프고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 잔잔해진 시간에 생각을 한다. 비록 하느님을 맞는다는 자세로 가진 않았지만 그것이 큰 상관이 있을까? 그 자매님 우리를 고마운 심정으로 받아들였고 우리도 정성을 다 했으니까.. 여한이 없는 것이다

이것과 더불어 작년 이맘때의 ‘사건’들.. 배 자매님을 보내던 과정들이 달력에 생생하게 기록되어있다. 참 슬프고 기가 막힌 사연의 불쌍한 영혼들을 보았지만 그것도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한 심정을 억제할 수가 없다. 나와 연숙이는 최선을 다 했다는 것.. 어떨까.. 지나친 자부심일까?

그제, 새로니가 school break에 우리 집에 왔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을 나는 항상 걱정을 하는가.. 조금은 불안한 심정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나가 소심한 탓일 것이다. 어찌 우리 딸이 오는데 신경을 써야 하는가? 조금은 성숙한 새로니.. 아직도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기도를 계속하지만.. 그래도 그날 새로니는 나의 99점을 받는 시간을 보내 주었다. 우리 차도 ‘정성스레’ 닦아 주었고, Einstein Bros의 lunch 와 wine과 함께..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경제사정’을 신중하게 들어주고 조언을 하려고 하고.. 심지어는 엄마와 같이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이성적이고, 솔직하게’ 했다는 사실이 나는 믿어지질 않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 아니면.. 성모님.. 우리 어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Where have all my flowers gone?

 

꽃밭 속에 꽃들이 한 송이도 없네.. 양희은, 김민기의 ‘젊은’ 목소리가 회상되는 노래 구절이다. 없는 꽃을 기다리는 이 곡은 분명히 정치적 angle을 내재한 것이겠지만 현재 나의 꽃밭에는 멋진 꽃들이 만발함을 있음을 느낀다. 내가 꽃밭 속에 앉아 있다는 표현은 비유적으로 여자, 여성들, 그러니까 ‘자매님’들 속에 있다는 뜻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르며, 지나간 세월을 돌아다보니 과연 나의 집안이 꽃밭이었다. 나 자신의 family가 생기기 전부터도 나는 100% 꽃밭 속에서 자란 셈이다. 할아버지는 물론 삼촌이나 아버지가 안 계신, 외롭기만 한 외아들(父先亡 單代獨子), 남자 친척도 거의 없이 6.25 동란 와중에 자라난 세대.. 거리에 나가 앞뒤를 보아도 확실히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던 시절, 젊은 남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만고  萬古의 역적, 김일성 개xx 와 싸우다 죽고 불구자가 되고..

아버지 삼촌 오빠 등 남자가 없던 가정이 ‘거의’ 정상이던 그 시절에 자란 나의 주위는 모두 엄마, 아줌마, 누나, 게다가 가난에 시달려 시골에서 올라온 ‘무단 상경’ 식모 누나들.. 그러다 급기야는 훗날 내가 ‘만든’ 가족들 조차도 모두.. 여자들.. 와~~ 이러니 내가 꽃밭에 앉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이성 異性’으로 느끼는 어떠한 종류의 감정들도 많이 둔화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까운 곳, 나의 가정의 이런 꽃밭과는 대조적으로 사회적으로 나의 직장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남성적’인 engineers들의 환경들이었다. 지금은 많이 여성들에게 개방이 되어가고 1 있지만 당시에는 거의 여성을 찾을 수 없었던 그런 곳 중에 하나가 기술직이었다. 이런 대조적인 환경들을 무의식적으로 왔다갔다하며 살았지만 결국은 말년에 ‘별 수 없이’ 다시 ‘가족의 꽃밭’ 속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현재에 이른다.

하지만, 거의 기적적으로, 비록 천천히 진행이 되긴 했지만, 나의 coming home (to church & faith), 신앙적인 귀향은 뜻밖으로 ‘다른 종류’의 꽃밭을 선사해 주었다. 건전한 신앙적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멋진’ 자매님들의 꽃밭이었고2 그것은 너무나 신선하게 내 인생 마지막으로 異性적 여성을 재발견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현재 나의 꽃밭에 있는 꽃들은:

  1. 거의 다수가 나보다는 인생을 덜 살았지만 충분한 경험을 가진 나이이고..
  2. 대부분 그들의 신앙심의 깊이나 경험, 경륜은 훨씬 선배들이고..
  3. 절대 소수 minority인 나를 거의 차별하지 않은 듯 하고..
  4. 나를 opposite-gender 의 angle로 보는 듯 하지도 않는 듯..

 

결론적으로 그들, 꽃들은: 비슷한 세계관, 내세관, 가치관을 가진 ‘진정한 친구’로 나를 대한다는 사실을 5년 정도의 intensive한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게 되었다.

내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우선 참 인생이란 것.. 예측하게 힘든 숨은 즐거움이, 찾으려고 노력만 하며 어디엔 가에 숨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 꽃들과의 스스럼없는 친교와 대화가 이렇게 쉽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놀라게 한다. ‘성숙한 나이’ 탓도 있겠지만 사실은 ‘비슷한 생각, 습관, 나아가 가치관’을 가졌고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믿고 싶다.

 

 
Best Rendition: Kingston Trio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1. 어떤 것들은 조금 웃기는 현상이지만..
  2. 이 post의 직접적인 동기는, 어제와 오늘 계속 함께했던 ‘꽃’들과 가졌던 impromptu dining 에 있었다.
My favorite moment in cold, damp Winter February

My favorite moment in cold, damp Winter February

 

지난 12월 초에 12살이 된 우리 집 강아지, 내 ‘아들’ Tobey녀석.. 이제는 나보다 더 늙은 나이가 되었지만 비교적 건강하고 보기에는 아직도 어렸을 때의 모습.. 강아지, 바둑이 정도로 보인다. 다시 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본다.

하루 종일 사사건건 이곳 저곳,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나의 그림자다. 자는 시간을 빼고는 그 녀석의 눈은 나의 눈에 고정이 되어있다. 처음에는 아주 귀찮았고, 성가셨지만 고칠 수 없는 버릇임을 알고 그대로 지낸 지가 몇 년이 되어가나? 생각한다. 만약 이 녀석이 없어진다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12살이라는 나이가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장례식은 이제 익숙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나의 분신 같은 ‘말 못하는 동물’과의 영원한 이별의 준비가 덜 된 것을 절감하며, 괴롭기까지 하다. 요새 주위에서 오래 정든 pet animal (주로 개와 고양이들) 들을 떠나 보내며 겪는 stress와 ‘의외적인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듣고 나는 그들의 심정을 나의 것처럼 실감 한다. 아마도 pet과 인연이 없는 조금은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정말 이런 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pet들의 인간들에 대한 정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보고 느끼면 조금은 이해할 것인가?

평균 수명의 경고를 생각하며 오늘도 이 ‘귀찮은 녀석’과 우리는 어제까지 눈을 맞출 수 있을까.. 나에게 soul이 있다면 이 녀석의 soul은 어떤가.. 그 soul도 육체를 초월하는 transcendent state가 있을까.. 이 녀석과의 작별은 absolute한 것일까, 아니면.. 춥기만 한 2월의 한 때, 따뜻한 체온을 포근하게 느낄 수 있는 오후…

달력에서 오늘이 2016년 1월 25일임을 보면서 다시 생각에 잠긴다. 36 주년 결혼 기념일.. 어제 아이들과 Marlow’s Tavern에서 나의 ‘늦은 생일’ brunch를 먹으며 이 ‘긴 세월 36년‘이 또 언급되었다. ‘무척 오래 같이 살았다’라는 딸들의 이야기.. 별로 생각 없이 36년을 거론하곤 했지만 듣고 보니 과연 ‘우아.. 같이 참 오래 살았다…‘ 라는 탄성이 낮게 나온다. 총각 때의 자유연애 시절이 끝나는 시점인 결혼은 사실 조금은 자유가 없어지는 시점이기도 해서 결혼 전에 신경이 쓰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막상 결혼 후에는 그런 생각이 스스럼없이 사라졌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이여.. 1980년 1월 말 제주도 서귀포에서

기쁜 우리 젊은 날이여.. 1980년 1월 말  honeymoon 제주도 서귀포에서

 

36년이란 숫자의 세월은 공교롭게도 일제시대 36년 이란 말이 연상이 된다. 그 옛날 일제시대 36년 어쩌구.. 했을 때 참 오랫동안 ‘쪽바리 치하’에서 고생했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바로 그런 긴 세월의 36년이었다.

얼마 전에 25주년 결혼 은혼식 Silver Anniversary 축하를 친지들과 조촐히 했던 기억인데.. 그것이 벌써 11년 전이 되었고, 이제는 숫제 50주년 금혼식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다.   결혼 당시 흔히 듣는 주례님의 말씀 중에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하는 말로 오래 오래 같이 살라는 뜻의 주례사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런 미사여구 美辭麗句 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시간과 세월에 밀리듯이 이렇게 36년을 맞게 되니, 가급적 50주년도 기념을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긴다.

지금의 세상이 하도 요상하게 돌아가다 보니.. 예전에는 당연시 되던 ‘백년 해로’하던 미풍양속이 흡사 ‘희귀동물’ 취급으로 축하를 요란하게 받게 되고, 심지어는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 부부가 남달리 돋보일 정도로 한마디로 ‘해괴’한 추세를 느끼며.. 이런 ‘반역사적’인 것들이 과연 어디까지 ‘퇴보’할 것인가 한숨만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부부.. 36년을 맞으며 ‘자연법 인간역사‘에 일조를 했다고 자부하고 싶다. 

36년 전의 세상은.. 그 동안 강산이 3번 이상 변했다고 하면 짐작이 갈까? 잊고 살던 결혼 당시의 세상모습들이 떠오르고, 우리가 변한 모습에 또 한번 놀라고.. 이런 모든 것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크게 놀랄 것 하나도 없다. Soviet를 위시한 살기등등했던 세계 공산당들이 물러간 자리에 목을 자르는 살인강도들이 종교의 이름을 팔며 설쳐대는 그다지 나아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변했다. 자연법에 따라 우리의 자식들이 세상의 빛을 보며 커가고 그에 맞갖게 부모님 세대들이 황혼의 빛으로 사라지셨다. 그 자리로 우리가 서서히 사라지는 중.. 이것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지극히 자연적이고 순리적인 것이다. 아하~~ 이제서야 이런 변화들이 왜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라는 이유가 어설프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이렇게 큰 사고 없이 36년간 가정을 유지하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We are all alone.. Rita Coolidge의 이 oldie는 결혼 전후로 꽤나 듣고 따라 불렀던 추억의 곡이다. 이 곡은 총각시절에는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낄 때, 결혼 후에도 둘이서 외로움을 느낄 때 듣곤 했다.

 

 

We’re All Alone – Rita Coolidge

¶  Brrrr…. 와~ 어쩌면 하루아침에 늦여름에서 한겨울로 날씨가 돌변을 하나? 섭씨 영하 훨씬 밑으로 뚝 떨어진 기온에 바람까지 겹쳐서 wind chill (체감온도)은 아마도 섭씨 영하 10도 정도같이 느껴진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전후로 한여름에 연일 쏟아지는 장마 같은 비와 홍수까지 예보가 되었던 정말 ‘보기 싫은, 추억에 남지 않을’ 그런 주일들이 지나가고 결국은 mother nature의 제 모습이 찾아왔다. 한창 때를 모르고 피어나던 동백꽃들, 된 서리를 맞은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하지만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한다’ 입을 모은다. 올 겨울의 장기 일기예보에 의하면 ‘엘 니뇨’ 의 영향으로 이곳 Southeastern United States 는 평균보다 낮은 온도와 잦은 비를 예보하지만, 우리의 최대 관심사인 ‘눈 snow’ 같은 것은 아마도 크게 걱정, 기대를 안 해도 될 듯하다.

 

¶  Final closure..  어제는 3 주 이상이나 지연이 되었던 이 필립보 형제님의 장례미사가 있었다. 3주 전쯤 ‘독거사’라는 제목의 나의 blog에서 이 연세대 대 선배님의 급작스런 선종을 애도했지만, 당시에는 가족, 연고자들의 사정으로 이제서야 정식으로 장례미사가 치러진 것이다. 3주나 연기가 된 장례미사이기에 혹시 조객들이 적을까 염려도 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생각보다 많은 조객들이 큰 대성전을 거의 채웠으니까.. 이것을 보아서 이 선배 형제님 인간관계는 좋았던 느낌도 들었다. 또한 80년의 인생을 살아오며 어찌 인생이 순탄만 할 수가 있을까마는, 각가지 사연을 가지고 사는 것이 인생일진데 이런 ‘늦은 장례미사’가 크게 문제가 될까? 하지만, 부인과 아들 딸의 혈육들이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길을 걸어왔기에 이렇게 갑작스레 독거사 獨居死 로 보내는 것이 보는 주변 사람들을 을씨년스럽게만 느껴지게 한다.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는 다 큰 자녀들,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장례미사에 참례는 했지만 그래도 영어로 한마디만이라도 할 수는 없었을까? 아쉽기만 하다. 자업자득 自業自得 이란 말이 생각 나기도 하지만 어찌 쉽게 속단을 할 수가 있을까.. 그저 훗날에 저 세상에서 혈육들과 이승에서 못다한 관계를 회복하게 되시기만 어렴풋이 희망할 정도다. 이날의 장례미사를 보면서 나는 유난히도 ‘상상의 나래’를 펴서 내가 이 장례미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연극을 펴기도 했다. 아주 먼 훗날이 아닐 수도 있는 그날은 과연 어떤 것인가..

 

내일 1월 5일은 우리 집 큰딸 새로니의 33번째 생일이다. 그 옛날, 한때 뻑적지근했던 아이들의 생일이 이제는 어쩌면 그렇게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는가..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거의 신비에 가깝다. 세월의 횡포인가 마술인가, 나이를 먹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는지 싱글벙글 생일 잔치를 받던 아이들, 20대에 이르러 한결같이 시들해진 표정들로 변했고 30대에 이르러 이제는 숫제 거의 관심도 없다.

 

출산 5일 전, 신정 미사 후에 박재승 부부, 김원백 부부와.. 콜럼버스 한인성당에서.. 1983년 1월 1일

출산 5일 전, 신정 미사 후에 박재승 부부, 김원백 부부와.. 콜럼버스 한인성당에서.. 1983년 1월 1일: 2명 가족으로 마지막 모습

 

우리세대는 가난하고 찌들은 전통인지 생일날에는 그저 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을 먹던 것이 전부였고 더 나아가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께도 감사를 드리던 겸손한 전통이었는데, 그런 소박한 것들이 지금은 아주 신선하고 그립고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그것들이 이제는 세계 보편적인지 서구적인지는 잘 몰라도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앵무새처럼Happy Birthday to You..’ 를 따라 부르며 자기가 100% 주인공인 된 조금은 ‘오만한’ 생일을 맞는다. 이것이 요새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생일은 100% 자기의 날인 것이다.

Well after delivery, Riverside Hospital Columbus, Ohio Jan 1983

Well after delivery, Riverside Hospital Columbus, Ohio Jan 1983

벌써 4년이나 된 나의 blog에서 당시를 피상적으로, 감상적으로 회상을 해 보았지만, 오늘은 ‘4년 동안 더 배운’ 것으로 1983년 1월 5일.. 을 회상해 본다. 그 날은.. 우리가 만든 첫 생일이었다. 지금은 반드시 우리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begotten, not made..], 신비롭기만 한 새 생명, 그것도 ‘우리가 만든’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본 그날이었다. 이런 표현은 사실 신앙의 눈이 뜬 지금에서야 차원이 높게 표현을 하고 있지만 당시에도 과연 그랬을까? 우리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던 한 생명의 실존적 의미를 그 당시에 거의 실감을 못하며.. 그저 ‘한 인생의 자취’를 역사에 남기는 의무 정도로 생각하며 자질구레한 출산, 유아 쪽에 모든 신경과 노력이 쏟아지기 시작하던 겨울답지 않게 가랑비가 내리던 Columbus, Ohio의 1983년 1월 5일.. 이제는 조금은 더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게 되었다.

태어날 당시 새로니는 참 많은 주위의 축복을 받았기에 그 애는 ‘잘 클 것’이라고 별로 걱정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씀대로 ‘자식은 나의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을 뼈저리기 절감을 할 정도로 놀라는 순간들도 많았다. 한 마디로.. 저 애가 과연 우리의 자식인가.. 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는 세월을 거치며 지금은 체념하는 심정이 되었고.. 아하.. 이것이 순리적인 인생의 법칙이로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것과 더불어, 나의 자식들은 ‘내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든 것도 아니다‘ 라는 말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되었다. 고유한 영혼을 가진 인간을 우리가 ‘만든다는’ 것이 한마디로 어불성설 語不成說 인 것이다.

‘남아도는 풍부한 cash’가 없던 우리 집, 편안한 도움을 줄 수 없어서 거의 모든 것들을 자력으로 공부하고, 난관을 헤쳐나간 우리 큰 딸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런 사실이 우리들이 생각한 ‘간접적인 효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큰 걱정하지 않고 이 ‘애’를 두고 ‘보이는 세상’을 떠나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색다른 선물인가?

1월 3일 모두에게 편한 날을 잡아서 다시 한번 ‘미역국’을 나누며 33년 전에 일어난 이야기를 나누며 또 한번 가족의 생일을 축하한다. 이제는 ‘완전한 노처녀’가 되었다고 우리는 푸념하지만 주위 ‘선배’들의 말처럼 요새는 옛날 같은 노처녀는 아니라고 하니.. 조금은 덜 신경이 쓰일 정도다. 요새 ‘아이’들.. 그야말로 self-sufficient generation, 부족한 것이 없으니 ‘남편의 도움’이 크게 절실하지 않은 모양이다. ‘할 것 다하고’ 생각하겠다는 태도에 우리도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져서 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남은 인생은 그렇게 짧지도 않지만 그렇게 길지도 않다는 사실만 하루속히 깨닫는 순간이 오기만 바라고 있다.

 

Hold on Tight to Your Dreams – ELO – 1980년대 초 oldie

연말이라 또 그런 것일까? 아니다.. 나는 이런 참을 수 없는 가슴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나오는 뼈 저린 아픔과 그에 수반되는 참을 수 없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을 때가 적지 않다. 물론 눈물을 쏟아내면 이상하게 시원함이 따른다. 하지만 아련한 아픔은 잔잔하게 남는다. 엄마와 가족들을 그리는 원초적, 생물적인 본능일까.. 아니다 그보다는 후회와 안타까움으로부터 나오는 참회의 눈물임이 분명하다. 곁들여.. 나의 아련한 옛날 옛적, 이제는 분명히 70년에 가까워지는 길어지기만 한 나의 인생역마차, 역정, 누나와의 운명적인 이별의 인생.. 이런 것들이 나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듯 하고, 나는 ‘불행한 인간’이라는 주체할 수 없는 괴로움에 젖는다.

비록 근래에 나는 다시 찾은 신앙의 도움으로 가정과 나의 주위에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제 정신으로 돌아오고, 하느님의 세계관에 의한 인간과 인생의 근본적인 위치를 알았다고는 하지만, 나의 옛적부터 쌓인 그리움의 기억들은 ‘조금도’ 지울 수가 없다. 아니 지워서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이 나인 것을 어찌하랴? 하지만 나는 예전의 사고방식으로 이 그리움의 노예가 되기는 싫다. 새로 만난, 찾은 세계관에 의한 새로운 의미의 그리움, 그 속에서 포근한 安住感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포근한 엄마의 자상한 ‘경우야~ 걱정 마’ 하는 말씀이 듣고 싶다.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존재는 나에게 현재 없다. 엄마의 그런 따뜻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위로의 말씀을 나는 이제는 들을 수가 없다. 내가 상상할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나의 다른 어머니 성모님과 개인적으로 친해지려고 노력을 하면서 그런 ‘무조건적 사랑’의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은 한다. 우리 쓸쓸한 가족 3명이 살던 시절을 그린다. 나를 그렇게 보금자리 같은 곳으로 느끼며 자라게 해 주셨던 나의 어머님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나는 따뜻한 곳에서 이렇게 달콤하고 포근한 추억들을 만들 수가 있었다. 그것을 나는 비록 감상적이긴 하지만 나의 보물로 간직하며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느낌을 남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지만 그것이 쉬울까? 요새 우리부부가 돌아다니며 노력하고 있는 봉사활동이 그런 것에 속할까? 얼마나 우리는 그런 포근한 사랑을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일까? 어둡게 살고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기분을 알 듯하다.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그들에게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남은 삶을 사는 것이 제일 보람된 방법일까? 묵주기도 속에 그것의 해답이 있을까? 새해를 맞이하며 계속 기도를 해 보자.

¶  Unseasonal Christmas, 밤새도록 천둥과 번개, 폭우가 오락가락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성탄 eve 전날이 아닌가? Stormy holiday, 분명히 심상치 않은 성탄의 기분을 주지만, 문제는 이 stormy 란 것이 겨울이 아닌 여름, 그러니까 ‘열대성 tropical‘이란 사실이다. 이것도 몇 년 만인가? 기억에 3~4년 정도 전 이 맘 때였나? 맞다.. 2012년이었다. 그 때도,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풍우 속에서 ‘처량하게’ 가족 모두가 극장엘 가서 Spielberg의 Lincoln영화를 보았다. 왜 그랬을까? 절대로 포근한 추억이 아닌 것이다. 최소한 나의 style은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서 나갔다는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 것을 보면 싫은 추억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unseasonal holiday은 싫은 것 중에 하나다. 하지만 꼭 그럴까? Christmas란 것이 과연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람들.. 몇 초 정도라도 생각을 하며 보낼까? ‘집단’ 군중심리에 밀려서, 무슨 zombies같이 ‘shop, shop, shop, 줄을 서서’ shopping이나 하는 지독히 세속화 된 크리스마스.. 기다림(advent)이 내일로 끝난다는 단 하나의 희망, 그것이 나를 위로하는 것이 되었나?

 

¶  며칠 전 일요일 저녁에 ‘세대 차를 뛰어넘는’ ‘100% 비공식’ 순교자 성당 구역 ‘친구’들의 간단한 저녁식사와 간담회가 있었다. 나의 레지오 협조단원이기도 한 ‘다多 차원적’인 host 형제님, 무섭게 바쁜 생활에서 틈을 내어서 이렇게 ‘마음이 맞는’ 형제, 자매들을 초대한 것 감사를 안 할 수가 없다. 비록 같은 구역에서 만난 사이지만 이야기들은 구역 politic을 초월한 것들, 개인적인 것들, 신앙적인 것들로 아주 화기애애하고 유익한 것들이어서 집을 나올 때 마음이 아주 가벼웠다.

어떠한 구역모임이 “이상적인, 본당이 바라는 모습”일까.. 이런 것도 허심탄회 虛心坦懷 하게 다루어졌고, 무언가 meaningful correction의 시점에 다다르고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지만, 필요 이상의 ‘논쟁 성’ 대화는 아니었다. 이런 민감할 수도 있는 사안은 ‘순리’란 것에 맡기는 것도 좋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새해부터는 우리 구역도 조금은 “inclusive, faithful, ecclesiastical 한” 그런 쪽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이고, ‘잘 될 것’이라는 가느다란 희망도 가져본다.

 

¶  Busy busy Tuesday: 우아.. 이렇게 어깨에 천근만근 무게를 느끼며 보냈던 화요일이 있었을까? 레지오 회합으로 시작되는 화요일은 주로 봉성체로 끝을 내고 거의 저녁때 귀가하는 일정인데 이번 화요일은 그것을 넘는 일정들이 꽉~~ 차 있어서 그 전날에는 심지어 심한 stress까지 느낄 정도여서 왜 이렇게 schedule을 잡았나 하는 후회까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 좋은 것들’이란 100% 확신이 있기에 주로 ‘don’t think twice, don’t look back, just say yes‘란 말만 되뇐다.

평소의 일정에 오늘은 ‘성탄 판공성사, 신부님 면담‘, 냉담교우 형제와 점심식사 에다가 저녁에는 친지들과의 Christmas dinner party까지 겹쳤다. 조금은 아찔한 일정이었지만 끝났을 때의 ‘날라갈 듯한 기분’을 미리 그리며 나를 달래기도 했다.  판공성사는 고백소에서 줄을 서서 해도 되겠지만 언제나 그것은 무언가 미흡한 뒷맛을 주기에 올해는 따로 면담 식으로 하고, 냉담하고 있는 ‘아오스딩, Augustine‘ 형제까지 불러 점심을 하고 같이 성사도 보게 되었다. 몇 년 만에 이런 기회를 갖게 된 이 형제와 조금은 깊은 대화를 하려 했지만 의외의 불청객이 있어서 무산되고 말았다. 이 형제님, 기나긴 냉담을 하고 있지만 항상 나의 기도 속에 있기에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굳게 믿는다. 고해성사의 ‘백미 白眉’는 역시 Matthew Kelly 1의 말처럼  ‘지난 세월의 때와 먼지’가 씻겨나가는 홀가분한 뒷맛이 아닐까?

저녁에는 올해 새로 이사를 한 C 사장, 나이는 한참 밑이지만 우리 ‘동년배’ 그룹에서 당당히 끼어서 오랜 교분을 유지했던 Ohio State 동창 후배, Riverside Drive에 있는 멋진  upscale 집을 찾아가서 늦은 저녁 시간을 즐겼다.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자칭하는 이 그룹은 뒤늦은 나이에 모든 것들이 잘나가게 되는 case여서 나에게는 조금 미묘한 감정이 교차됨을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오~랜 ‘친지’들이 아닌가?

 

¶  ‘갑자기’ 커진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쁘레시디움, 비록 새 단원들이 모두 자매님들이지만 이들 덕분에 평균연령이 훨씬 떨어진 것은 감사할만한 것이었다. 무슨 ‘긴급 수혈’을 받은 느낌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밝아졌다고나 할까? 들락날락하며 전체 분위기를 흐려놓았던 눈에 성가셨던 일도 올해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을 ‘가급적 원칙대로’ 하는 우리 레지오의 전통을 모르긴 몰라도 두고두고 감사한,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체득하는 삶을 살게 하리라 나는 믿는다. 지난 9월부터 서서히 ‘수혈’을 받아오면서 현재는 출석률 100%가 새로운 정상이 되었다. 전원 출석하면 박수를 쳐야만 했던 사실, 들락날락하던 것이 정상이던 것이 이제는 출석률 100%가 정상이 된 것이다. 레지오 교본의 말씀들이 정말 100% 모두 맞는다.. 이것은 누구의 도우심인가?

 

¶  아주 아주 오랜 만에 전호배 요셉형제KaTalk으로 통화를 했다. 나와 동갑 돼지띠 전 요셉 형제님, 작년 11월 쯤에 ‘갑자기’ 귀국을 했었다. 이곳에서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랬으리라는 짐작만 할 정도지만, 그래도 그가 황량 히 떠나버린 작년 12월은 찬바람만 부는 듯한 외로운 느낌을 주었다. 우리와 가까워진 지 일년도 채 안되었을 때 홀연히 떠난 것이다. 늦은 인생의 느낌을 말없이 공감할 수 있는 영혼을 만났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조금 나에게 사치였는지.. 귀국한지 일년이 되는 지금에야 ‘무엇이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이 확실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편안히 안주해야 할 나이에 큰 변화는 사실 어렵거나 괴로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상상도 못할 심리적, 혹은 육체적인 challenge가 왜 없겠는가? 그림이 잘 그려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는 모습이 느껴진다. 인근 성당(노원성당?)의 레지오에도 가입을 해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고, ‘조그만’ 직장도 잡아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자매님은 양로원 같은 곳에서 일을 하신다고.. 정치적으로는 나와 잘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곧은 지조와 믿음으로 만사를 해결하는 돼지띠 형제님, 모든 가족이 성탄, 새해를 잘 맞으시기 빕니다.

 

super-cute Christmas tree

super-cute Christmas tree

¶  ‘역사상’ 제일 ‘늦게’ 우리 집 mini 성탄 tree가 장식이 되었다. 그러니까 성탄 2일 전이다. 아이들이 이것에 대해 불만이 많은 듯 하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나가는 두 곳의 성당이 3일 전에 장식을 했으니까 우리는 ‘당당히’ 하루가 더 늦은 ‘쾌거’였다. 진정한 대림의 정신으로 잘 견디어낸 결과였고 ‘원칙’대로 1월 10일 이후에 치울 것이다. 어제부터 그렇게 보고 싶었던 작년의 movie collection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이 The Christmas Box란 1995년 family classic. 여기 출연을 하는 Maureen O’Hara가 올해 타계를 했기에 더 이것을 보고 싶었다. 이 영화는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지루하지만 차근차근하고 자상하게 보여준다. Family의 의미를 그렇게나 강조했던 1995년은 지금 생각하며 ‘고전적’인 시대였을지도 모른다. Transgender, LGBT, SS “Marriage’new normal이 되어가는 참 해괴한 세상이 도래한 이 시점에서 무엇을 더 언급하랴? 그래서 Advent의 희망이 더 무게를 더하는 (최소한 나에게는) 그런 2015년 성탄이 내일로 다가왔다. 우리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식사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Christmas vigil Mass에 모두 간다는 사실이 거의 기적같이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이 한마디로 C&E2 Christian3이 된 사실, 역사적인 irony에 속한다. 이것이 나의 personal Advent에 속하는 것이다.

 

2015-12-24 08.13.44

Lights along the stairway to heaven

  1. Australia-born American Catholic Author, Commentator, businessman, Author of ‘The Four Signs of A Dynamic Catholic
  2. Christmas & Easter
  3. 일년에 딱 두번 미사참례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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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향한 4주의 ‘희망의 촛불’..

¶ 은근히 그 동안 기다려 오던 2015년의 대림절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나는 꼼짝없이 집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니까.. totally grounded가 된 것이다. 나의 기억 속에 이런 중요한 season에 이런 적은 한번도 없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는데.. 속으로 생각하기에 그야말로 what a lousy timing!  인가 되뇌기만 하고 현재도 계속하고 있다. 왜 하필 이런 중요한 시기에..  살아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는가?

조금은 비 전통적인 Thanksgiving holiday를 보냈던 올해, 가족보다는 친지와 어울린 것에 대한 ‘보복’인가?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무언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Thanksgiving 이 무엇인가.. 가족들과 감사를 드리는 조용한 때인가 친지들과 어울려 부어라 마셔라 고성방가를 하는 시절인가? 완전히 무언가 잘 못된 것이었다. 그것이 시발이었는지.. 그 다음날 나는 ‘허리를 다쳐서’ 드러눕는 불쌍한 신세가 된 것이 그저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등, 허리 문제는 보통 사람들도 가끔 당하는 조그만 사고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나의 ‘젊지 않은’ 나이와 그것과 겹쳐서 발생하는 다른 ‘이상한’ 고통들이 amplified가 되어서 무섭게 괴롭히는 시간의 시작된 것.. Bible 속 Job 의 고통이 생각날 정도로 이 시간들 괴롭기만 하다.  오랜 동안 ‘몸에 익었던’ 친근한 daily routines들이 100% 정지가 되고, 중요한 Advent Sunday Mass는 물론 레지오 주회합 결석까지.. 서기로서의 간부기능도 빼먹게 되었고, 이제는 금요일 봉성체 동행도 포기할 지경이 되었다. 아니.. 이번 일요일의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에 참석하는 것도 확신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작년 2014년 봄에 지독한 몸살독감으로 며칠을 누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에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레지오 주회합도 못 갔었던 나에게는 ‘대형 사고’였던 때였다. 그때에 느낀 것이 참으로 많았었다. 별로 육체적으로 고통을 모르고 살았던 나에게 처음으로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낀 것이다. 몸이 아픈 누구를 보거나 들으면 그저 ‘상상’만 할 정도였고 그 고통에 동참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나의 표정과 말에 더 신경을 써서 위로할 정도였다. 그것이 그때에 확실한 교훈을 받았고 그 이후에는 많은 노력과 발전이 있었다.

이번의 경우에는 집 밖으로 ‘자유자재’로 나갈 수 없는 교우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거동이 불편’한 형제자매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불편할까? 얼마나 나가고 싶을까? 얼마나 사람들과 만나고 싶을까? 그런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이런 고통을 받는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timing이 전혀 우연만은 아닌 듯 해서 조금 더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자유롭게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사실만은 나를 지독히 우울하게 한다.

그립다.. 공산당?

그립다.. 공산당?

¶  “공산당이 그립다..”  허~~ 이게 웬 망언인가? 근래에 들어서 이렇게 가끔씩 ‘공산당 향수’란 것이 머리에서 왔다 갔다 함을 느끼고 나도 깜짝 놀란다. 이것은 사실 사연을 알고 보면 해괴할 것까지 없다. 근래에 뉴스를 보면 ‘악 중의 최고 악’도 세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며 현재의 ‘최악’까지 온 듯하다. 현재의 최악은 물론 ‘모슬렘을 자처하는 미친 로보트’ 들이다. 솔직히 이들 존재는 내가 보기에 이미 ‘인간이기를 거부한, 악의 씨로 프로그램이 된 로보트 집단’으로 밖에 안 보이는 것이다. 이 ‘물건’들은 사실 그러니까 생각 깊이 할 필요도 없이 destroy되어야 하는 ‘물건’들인 것이다.

이 불쌍한 xx들은  이 세상이 싫어서 죽으려면 자기네들만 죽지 힘들게 남들과 함께 죽으려는 것인지.. 이런 물건들이 어떻게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는지.. 종교를 탓하지 말고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간을 탓해야 할 것인지..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그래도 ‘인간 집단’과 싸우던 공산당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그 공산당 집단도 극단적인 case에는 거의 로보트에 가까운 것들이었지만 최소한 자기와 가족들의 목숨은 아끼던 인간들이었기에 지금의 사태에 비하면 그들과 싸우던 그 시절이 조금은 그리운 것이다.

이런 ‘악에 대한 향수’ 중에는 어린 시절의 공포의 대상, ‘소련, 중공, 북괴, 일본 공산당’ 등이 떠오르는데.. 당시에는 정말 무서운 대상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최소한의 ‘전쟁법’은 지키던 집단들이었다. 그런데 요새 일어나 기가 막힌 사태들의 주범들은 도대체 우주의 어디에서 도래한 종자들인가?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Thanksgiving Holiday 2015, 올해에 나는 우리는 어떻게 누구에게 giving thanks를 해야 할 것인가? 연일 뼈가 시려오게 내리는 가랑비의 하늘은 다시 ‘기가 막히게’ 멋진 낙엽을 바라보는 드높은 가을 하늘로 변했다. 지금 seasonal holiday의 상징인 pumpkin color로 온통 주변이 덮인 이곳에서 조용히 생각한다. 올해는 어떤 감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나..

상투적인 관례로.. 가족 친지들이 모두 건강했던 것.. 물론 제일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하지만 그것들 이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있음을 안다. 아하…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는 어떤 ‘사건’ 이, 사실은 올해를 the best year of my life, our lives로 만들었다. 어떨까.. 그것이 우리의 노력이나 그저 행운의 chance로 말미암은 것이었을까? 분명히 아니다. 어떤 ‘안 보이는 손’이 우리 뒤에 있었음을 절대로 확신을 한다.  안 보이는 그것은 우리의 어머니요 하느님의 어머니였다는 사실도 거리낌없이 밝히고 싶다.

201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임신부로 계시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 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 내가 한국어미사 공동체인 그곳으로 서서히 복귀를 하며 이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예수회 사제로부터 무척 깊은 것을 배우고 소화를 시키려 했다. 그와의 3년은 나에게 무척 깊은 묵상자료가 주워졌던 시기였고, 오래 잊고 살았던 것, 안 믿었던 것, 확실치 않았던 것들에 서서히 빛이 비추어졌던 시기이기도 했다. 깐깐한 성격을 감안한다 해도 이 사제는 나에게는 ‘은인, 구원자’임에 틀림이 없고, 이곳을 이미 떠난 사실이 나를 허전하게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이 예리한 사제에게 감사, 감사 감사를 드리고 싶다.

하 신부님 뒤를 이어 새로 부임하신 주임신부 예수회 사제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도 빼놓을 수 없는 감사의 대상이다. 개인적으로 사제를 사귀는 것은 나와는 거리가 먼 ‘취미’이지만, 본당 사목 차원의 사귐은 나에게 그렇게 이상할 것 없다. 이신부님은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친숙하게 다가온다. 우선 개인적인 친근감이 사제적인 후광에 앞 서서 느껴진다. 오시자 마자 쉴 틈도 없이 ‘봉성체 환자’를 찾아 나신 것.. 그것이 우리와 같은 차를 타게 만들었고 아주 가까운 입김을 느끼게 되고 이 젊은 사제의 사사로운 따뜻한 손길도 느낄 수 있었다. 예리한 지성의 하 신부님을 대신해서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우리 성당을 3년간 감싸 주시리라 생각하며 감사를 드리고 싶다.

친지 중에 이동수 목사님을 빼놓을 수가 있을까? 일년에 한두 번 정도 잊지 않을 정도로 우리 부부들끼리 만나지만, 만나면 농도가 짙고, 심도가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거리를 전혀 느끼지 않는 허심탄회한 자세로 말하고 듣는데, 나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이야기들의 깊이는 사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의 체험적인 신앙, 영성은 하나도 빼놓을 수가 없이 진실하고 공감이 가는 것들이었다. 그리 건강하지 못한 것이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항상 밝게 살아가는 이 ‘아틀란타 한국학교’ 선생님 (한때 우리 부부는 같이 그곳에서 주말에 일을 한 적이 있다), 올해도 감사 드리고.. 부디 몸이 더 건강해 지기를 기도한다.

아차 하면 빼놓을 수 있는 우리의 ‘보금자리’가 있다. 그것은 내가 만 5년 째 몸담고 있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레지오 이다. 5년 전에 입단한 것, 엊그제 같은데 올해로 5년이 지났다. 소박한 동기로 입단 활동을 시작했고, 99%가 자매님들인 이곳에서 내가 과연 몇 달을 버틸까 생각도 했지만 나의 부질없는 걱정은 완전한 걱정으로 나타나.. 이제 5년을 넘게 되었고, 이곳은 내가 몸이 불편하거나 ‘강제로’ 퇴단을 당하기 전까지는 큰 무리, 저항 없이 몸을 담고 싶은 ‘신비로운 단체’가 되고 있다. 신비라는 표현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누가 알랴?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손길로 성당 공동체 구석구석을 위해 봉사하는 이 ‘생활 전선에서도’ 바쁘기만 한 자매님, 형제님들은 가히 배울 것의 표본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신심봉사 단체를 만들어 주신 Irish gentleman, Frank Duff 형제께 감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  어느덧 2015년 8월 31일이 되었다. 지겹게도 끈적거리던,  둔한 a/c의 소음이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듯한 그런 한 달이었다. 올해 여름의 humidity 그러니까 heat index (불쾌지수)는 아마도 기록적인 것일 하다. 공기 자체의 온도는 100도를 못 넘었어도 체감적인 온도는 거의 매일 100도를 넘나드는 그런 무더위의 몇 주를 보낸 후 몸은 적응이 되었지만 몽롱한 듯한 기분과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수십 년 동안 버티어온 고물 에어컨 clunker a/c  unit,  올해는 솔직히 간당간당한 초조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올해는 이것이 버틸까… 거의 도박하는 기분이 되지만 매년 무사히 버티어 주었다. 문제는 천문학 적인 electric bill, 이것은 옛날 ‘gas-guzzler‘ model이라서 쉽게 이해는 간다. 우리 집의 cash flow가 조금 더 편한 숨을 쉴 수 있게 되면 이 clunker들을 최신 energy-smart model로 바꾸기로 결심을 하고 결심을 한다. 그러면 조금은 편안~~하게 시원한 a/c cool air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Mother Nature는 8월 말이 되면서 며칠 전부터 계절의 신비를 과시하며 ‘찬 바람’을 ‘공짜’로 선물로 보내 주시니.. 세상은 참 공평한 것인가? 이제는 어깨를 조금 펴고 낙엽의 계절을 기다려 볼까..나?

 

8월을 작별하는 포근하고 시원한 단비가 뒷뜰을 적신다

8월을 작별하는 포근하고 시원한 단비가 뒷뜰을 적신다

 

¶  지난 며칠은 예상치도 않게 나의 ‘밝은 태양’ desktop pc와 씨름을 하며 지냈다. 이것이야말로 계획에도 없고 꿈에도 없었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어디 인생이란 것이 예상대로 굴러가나.. 온통 놀라움과 예외와 낭비적인 일들이 많은 것이 정상이란 것.. 실감하며 산지 오래 되었으니까.

이번 씨름 문제의 발단은.. 결국 나의 ‘괴벽’ 때문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까. 나의 (‘인생’이 담겨있는 virtual server를 access하는) desktop pc 가 갑자기 (최소한 내가 보기에) sleepless, hibernate-less로 변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1시간?) 자동으로 sleep mode로 들어가가 2시간 지나면 완전히 hibernate mode로 가야 정상인데.. 그것이 안 되는 것이다. 나의 괴벽은, 이런 것들이 너무나 민감하게 나를 괴롭힌다고 느끼는 것이다. 특히 windows pc에서 더욱 그렇다. 어찌나 이것이  monster처럼 복잡하게 변했는지.. 이런 문제가 생기면 정상적인 step-by-step diagnostics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눈을 감고 이것 저것 setup을 바꾸는 것이 제일 빠른 방법이 된 것이다. 문제는 setup option의 ‘조합, combination’ 숫자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럴 때 아마도 제일 현명한 방법은 그냥 두는 것인데.. pc가 sleep을 안 하면 어떻고, hibernate를 안 하면 어떤가? 그저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잊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그렇게 못했다. 완전히 내 ‘자존심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묵주기도 시간에도 이것이 생각나고 잠을 잘 때도 생각나고.. 나를 놀리는 듯한 괴로움이었다. 수십 년 동안의 computer engineer의 경험으로 이런 문제는 사실 시간만 충분히 쓰면 풀린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이다.

현재 나의 desktop pc는 Linux, (Ubuntu 14.04 LTS)와 Microsoft Windows Vista가 dula-disk/dual-boot mode로 되어 있어서 두 개의 system을 번갈아 가며 쓰는데.. 이렇게 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지겨운’ Windows를 완전히 나의 눈앞에서 제거하려는 것이지만.. 하도 오랫동안 Windows-monopoly에 길들여져 있어서 하루 아침에 그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음을 알기에 시간을 두며 적응을 하려는 것이다. 이 과정의 ‘불편함’은 아마도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의 금단현상(withdrawal syndrome)과 비슷하다고 할까.

몇 달째 Ubuntu pc를 쓰며 100% Windows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을 갖게 되어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아직도 Ubuntu로 porting이 되지 않은 전통적인, 주옥과 같은 killer apps들 (Office suite, photoshops, gom player, hdhomerun viewer 같은)은 계속 기다리거나 아니면 영원히 포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번의 episode의 결론은 happy ending이었는데.. Dual-disk/dual-boot에서 Single-disk/dual-boot로 바꾸고 나서 위에 말한 sleep/hibernate 문제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 ‘기적적인 발견‘은 정말로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는 ‘논리적인 분석‘으로는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brute-force, trial-and-error 밖에 없다. 이런 사실은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모든 것을 ‘step-by-step, top-down approach’ 로 풀려는 경험이 별로 없는 새파란 젊은 친구들.. 인생의 비밀도 바로 여기에 있음을 모를 것이다.

 

¶ 연숙의 생일이 내일로 다가왔고 최근에 정착된 우리 가족의 ‘짧은 전통’을 따라 어제 우리 집에 모여서 ‘아이들’이 요리한 southern fried chicken 으로 ‘돼지엄마’의 생일을 축하하였다. 나의 선물은 그 자리에서 줄 수 없는 rain check 으로 그녀의 home-office flooring을 새것으로 바꾸어 주기로 약속을 한 것이고, 두 딸들은 여자들에게 익숙한 것들.. purse, bag 그리고 예쁜 orchid 등이었는데, 무섭게 바쁜 시간을 보내는 작은 딸 나라니의 정성이 곱게 담긴 선물과 요리는 엄마를 너무나 기쁘게 하였다.

Job interview와 side job등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작은 딸이 그렇게 시간을 쓴 것이 나도 놀라웠다. 한마디로 참 성실한 삶을 사는 것이 보기에 그렇게 흐뭇하였고 그것이 제일 큰 생일 선물로 보였다. 또한, 최근에 있었던 job interview의 결과, 오늘 job offer를 받았다는 전화를 받고 우리는 너무나 기뻤는데.. 아마도 그것이 제일 큰 생일 선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  Report Card: Trifexis, flea wonder drug 매달 마지막 날은 우리 집 강아지 (사실은 아저씨가 된 개) Tobey가 약을 먹는다. 예전에는 heartworm 약만 먹었지만 지난 달부터는 heartworm과 flea 를 한꺼번에 ‘처치’하는 신비로운 약 Trifexis를 먹고 있는데 한마디로 결과가 너무나 놀라웠다. Heartworm은 그렇다 쳐도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니까) flea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사실 예상을 넘어서는 거의 기적적인 것이었다. 작년 여름만 생각해도.. 매일 매일 toxic하기만 한 flea spray로 ‘전쟁’을 치르곤 했던 것이 아찔한 경험이 된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약’이 어디에 있을까? 거의 하루 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벼룩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살을 물게 되면 곧바로 죽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죽은 ‘시체’라도 보여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것조차 없이 사라진 것이다.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

 

¶  이렇게 씨~원~한 일요일이 얼마만이던가? 잔잔하게 내려오는 늦여름, 아니 초가을 비의 느낌은 아마도 정말 글이나 말로 표현을 하기가 힘들 정도로 행복한  그런 것이다. 게다가 주일미사를 거른 일요일 아침의 기분은 묘하게도 색다르게 기분이 좋으니.. ‘죄스럽다고’ 해도 괜찮다.. 괜찮아..

영화 동심초 신문광고, 1959년 7월 22일자 동아일보

영화 동심초 신문광고, 1959년 7월 22일자 동아일보

 

며칠 전 오랜만에 열어본  KoreanFilm@youtube 에서 머리를 띵~ 하게 만든 영화 제목을 보게 되었다. 다름이 아닌 1959년 멜로드라마 최은희, 김진규 주연 신상옥 감독 영화 ‘동심초 同心草’ 였다. 이 동심초 영화는 당시 대한민국의 유일한 ‘라디오’ 방송 KBS의 ‘초 인기’ 일요 드라마 (당시에는 ‘방송극’이라고 했던) 를 영화화한 것이고, 당시에 어린 나도 ‘누나, 아줌마들’ 옆에 끼어서 같이 들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 방송으로 기억을 한다.

그 당시 국민학교(서울 재동 齋洞) 6학년이었던 내가 그런 ‘어른들’ 순정드라마를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당시 자세한 내용은 잘 몰랐지만 항상 흘러나오던 주제곡만은 녹음기처럼 기억을 한다. 당시 최고 인기가수 권혜경씨가 불렀던 그 주제곡이 나는  원로 김성태씨의 가곡인 것을 잘 몰랐다. 아니.. 지금까지도 그 곡이 오래 전부터  있었던 가곡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가곡이 먼저인가, 주제곡이 먼저인가.. 나의 무식의 소치였던 것이다.

이 영화를 거의 surreal한 기분으로 보는 느낌은.. 1959년 당시의 대한민국, 특히 서울을 감싸고 있던 ‘공기, 분위기’ 같은 것이 ‘어른들의 사랑’보다 더 관심이 갔다. 그 당시의 분위기, 공기는.. 어떤 것들일까?

 

당시에 TV가 없었던 때, 유일한 것이 그저 ‘듣기만 하는 라디오’.. 가 전부였다. ‘책보다 읽기 쉬운’ 라디오는 서울에서는 거의 모든 가정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듣게 되는 ‘드라마’는 참 매력적인 연예 프로그램이었기에 어린 우리들까지 ‘꼽사리’를 끼어서 듣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대부분 여자들 (누나들, 식모 누나들, 아줌마들이 거의 전부) 틈에 끼어서 들었던 기억이 너무나 즐겁기만 했다. 기억나는 것들.. ‘산 너머 바다 건너’, ‘청실 홍실’, ‘동심초’, ‘현해탄은 알고 있다’,  기독교 방송국의 ‘수정탑’, 그 후에 ‘현해탄은 알고 있다’, ‘장희빈’ 등등.. 이 당시의 성우들은 당시 영화배우에 버금가는 최고의 연예인, idol, celebrity에 속했다.

나의 1950년대 향수 nostalgia를 너무나도 자극하는 이런 오래 된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된다는 사실 자체에 나는 전율을 할 정도다. 비록 동심초 영화는 처음 보는 것이고, 그 내용의 ‘순진함, 단순함’에 코웃음이 나오지만.. 그것은 내가 인생을 그만큼 오래 살아서 그럴 것이다. 1959년, 내가 재동국민학교 6학년 시절.. 박양신 담임선생의 ‘입시지옥’ 열차를 한창 타며 고생하던 시절이다. 4.19혁명을 향한 이승만 대통령의 최후의 정권유지 안간 힘을 쓰던 시절이었다.

 

이 영화와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가진 다른 영화 ‘표류도’, 이 영화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근래에 인터넷으로 여러 번 본 기억으로 이제는 친숙하게 느껴진다. 당시의 신문을 보면 역시 1960년 12월 25일 성탄절 때 을지로 국도극장에서 개봉된 영화광고를 볼 수 있었다. 시대적으로 ‘표류도’는 4.19학생 혁명 후, 5.16 군사혁명 전 장면 내각시절인 1960년 말에 나온 것으로 동심초와 거의 비슷한 때에 나온 것이지만 동심초 처럼 라디오 방송 드라마에 근거한 것이 아닌 ‘박경리’ 여사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 다르다고 할까.. 아니면 이것도 방송극으로 먼저 소개가 된 것이었을까.. 확실할 것은 나도 모른다.

 

영화 표류도 신문광고, 1960년 12월 25일자 동아일보

영화 표류도 신문광고, 1960년 12월 25일자 동아일보

 

나에게 이 두 영화가 일깨워 준 사실은, 그 동안 잊고 살아온 자질구레한 시대적 역사보다 더 의미가 있었던 것도 있었다. 당시, 육이오 전쟁이 휴전으로 끝났던 사회적인 배경으로 이 두 영화의 ‘주인공’들, 특히 여성 protagonist들의 모습들이다. 동심초의 최은희, 표류도의 문정숙 씨들이 연기한 그 주인공들의 처지나 배경들은 모두 대학출신의 고등교육을 받은 인텔리 여성들로서, 거의 완전히 나의 어머니의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이 두 영화를 나는 더 자세히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 미망인.. 당시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던 여인들이 불리던 이름이었다. 대부분 군인으로 전사를 했던 case였지만 그 이외의 case도 부지기수.. 우리 어머님의 case는 남편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그러니까 납북(당시에는 납치라고 했다) 된 어처구니 없는 시대였다.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 있었던 그 여인들.. 전쟁으로 황폐된 땅에서 어떤 도움을 정부로부터 기대를 하겠는가? 친척들의 도움이 아니면 길거리로 나가서 돈을 벌어야 했을 것이다. 영화 동심초에서 최은희, 표류도의 문정숙 모두 그래도 버젓이 자기집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정을 떠나 살벌한 사회에 뛰어들었던 것인데.. 우리 집의 경우, 그것은 사치였다고 할까.. 자기 집이 없었기에 어린 남매를 데리고 셋집을 전전해야 했던 어머니.. 얼마나 고난의 세월을 보내셨을까?

거의 모든 것을 가장, 남편에게 의지했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다 전쟁 후의 파탄 직전의 경제 상황.. 그런 것들을 느끼기에 너무나 어렸던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피부로 조금 실감하게 되었다. 지금은 ‘상상’으로나마 나의 것으로 실감할 수 있다. 동심초의 주인공 최은희는 경제적 해결을 위하여 양장점을 경영하다가 실패로 빚을 지고 결국은 집까지 팔고 시골의 집으로 내려간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김진규와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되지만 그것조차 미망인과 총각 사이가 주는 사회적인 파장 때문에 실패를 한다. 영화 표류도에서는, 법적인 결혼 전에 아기를 낳고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후, ‘용감하게’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 다방을 경영하는 고급 인텔리 여성 문정숙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생아라는 낙인이 찍힌 딸 전영선을 데리고 ‘철 없는’ 어머니를 모신 ‘가장’이 된 문정숙, 물장수를 한다고 멸시를 주는 대학동창생들.. 그녀를 동정하다가 사랑하게 되는 동창생 남편 김진규, 당시의 사회적 윤리 도덕을 느끼며 망설이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해서 감옥엘 가고, 병보석으로 출감 후에 기적적으로 김진규와 결혼, 낙도에서 일생처음으로 행복을 맛 보지만.. 병의 악화로 세상을 떠난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이야기.. 나에게는 하나도 낯 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자식이 있는 여자가 혼자 살기가 쉽지 않고, 가장 家長 그러니까 남자주인인 남편이 가정에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가 제일 크지만 그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회적인 여건도 남자 주인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혼자 된 여자가 다시 남편을 만다 산다는 것은 힘들고 모험이기도 했다. 우리 집의 경우, 어머니가 경제활동을 하셔서 우리 가정을 지켰지만 그 30대 초의 꽃다운 나이에 ‘청혼’이 없었을까? 우리들이 너무 어려서 실감은 못했지만, 재혼의 유혹은 항상 있었을 것이고, 그 중에 한 가지의 ‘일’은 내가 어른이 된 나중에야 다시 깨달은 것도 있었다. 영달이 아저씨.. 경주출신으로 학교 선생님이었던,  잘 생겼던 아저씨였는데, 몇 번인가 우리 집에 그 아저씨의 친구와 같이 ‘초대’된 것을 기억한다. 어떻게 알게 된 아저씨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재혼까지 생각이 된 관계는 아니었을까.. 훗날 어머니는 ‘우리남매를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하신 말씀을 남기셨다. 당시의 사회적, 윤리적인 상황이 그랬다. 아마도 그때 다른 쪽으로 ‘재가’를 하셨다면 나와 우리 누나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곡선을 탔을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이후 반세기가 훨씬 넘어가는 지금은 어떤가? 가련한 남편들이 늘어가는 요즈음, 가련한 여인들이 등장하는 이런 이야기는 분명히 ‘고전 중의 고전’으로 그야말로 ‘옛 이야기’일 것이고 나 자신도 그 중에 하나.. 도대체 이 세상은 어떻게, 어데 까지 변할 것인가?

 


영화 동심초, 1959년  

6ㆍ25때 남편을 여읜지 8년. 이숙희(최은희)는 양장점을 하다가 빚을 지고, 출판사 전무 김상규(김진규)가 빚 청산을 도와주면서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상규는 사장 딸 옥주(도금봉)과 약혼한 사이고 누이(주증녀)는 그의 출세를 위해 이 결혼을 서두른다. 숙희의 장성한 딸 경희(엄앵란)는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상규와의 재가를 권유하지만, 숙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관습과 윤리적 도덕관 때문에 갈등한다. 숙희와 상규는 진실로 사랑하지만, 숙희는 헤어지는 길을 택하고 서울 집을 팔아 고향으로 떠난다. 몸 져 누워있던 상규는 이 소식을 듣고 서울역으로 나가 이 여사가 탄 기차를 바라보며 괴로워한다. 

 


영화 표류도 1960년  

사생아인 딸(전영선)과 어머니(황정순)를 부양하며 살고 있는 여인 강현희(문정숙)는 `마돈나’라는 다방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현희는 생활고에 시달리지만 자존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그녀가 사생아를 낳고 다방을 경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그녀를 무시하려 한다. 강현희는 손님 중의 한 명인 신문사 논설위원 이상현(김진규)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는 그녀의 대학동창과 결혼한 몸이다. 한편 `마돈나’의 단골손님인 젊은 시인 민우(최무룡)는 현희를 좋아하지만 현희가 받아주지 않자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린다. 민우를 좋아하는 다방종업원 광희(엄앵란)는 민우와 하룻밤을 지내고 민우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절망하여 현희의 도움도 거절하며 거리에서 몸을 팔다가 정신을 잃고 자살한다.

현희는 사랑과 윤리 사이에서 고민하면서도 상현과의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상현이 출장 차 미국으로 떠난 어느 날, 손님 중의 한 명인 통역자 최영철(허장강)이 외국인에게 자신을 팔아 넘기는 대화를 듣고 분노하여 우발적으로 화병을 던져 영철을 죽인다. 감옥에 수감되어 병을 앓던 현희는 병 보석으로 풀려나 상현과 함께 외딴 섬으로 내려가 살게 되지만 행복한 시간도 잠시, 병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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