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피정에 다녀와서..

Simpsonwood Retreat Center
Simpsonwood Retreat Center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꾸리아 주최 연차 봉쇄피정이 지난 3일간 Norcross에 위치한 Simpsonwood Convention & Retreat Center에서 있었다. 나도 연숙과 같이 참가를 해서 오랜만에 집을 떠나보게 되었다. 비록 같은 지역에 있다고는 하지만 집을 떠나는 것은 먼 곳에 가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처음 가보는 피정센터는 정말로 큰 도시에 있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웠다. Chattahoochee river를 옆으로 끼고 광활한 숲 속에 위치한 이곳은 피정을 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었다.

몇 달 전부터 예정이 되어 있던 것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다가오면서 부담이 많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바꿀 그런 생각은 한번도 해 보지 않았다. 그 만큼 이번에 나의 마음가짐은 단단하였다. 어떠한 것들이 나를 기다릴까 하는 불안감만큼 어떤 것을 내가 얻고 갈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던 것이다.

갈 때는 우리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의 회계, 요안나 자매님이 같이 가자고 해서 그녀의 Lexus를 내가 운전을 해서 같이 갔다. 이번에 우리 쁘레시디움의 단원 전원이 참가를 하게 되어서 별로 외롭거나 하는 걱정은 전혀 없었다. 그 정도로 이번에 모든 여건이 좋았던 것이다. 이제는 이런 것들이 그저 우연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Norcoss,GA 에 있는 피정센터는 도시 속의 시골이라고 하기에 딱 맞는 그런 곳이었다. 식사는 전형적인 미국식 카페테리아 음식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 자매님들이 밥과 김치를 그리워 할 줄 알았는데 정 반대였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저 집에서 밥을 안 해도 된다는 해방감에 그런 것은 크게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어서 조금은 이해가 간다.

처음 전부 모여서 일정에 대한 소개를 듣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우리는 부부라서 단장께서 이런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는데.. 이유는 부부가 참가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역시 우리 쁘레시디움 단원들이, 전원 참가한 것도 특이한 것으로 소개가 되었다. 다른 곳, 콜럼버스(Columbus, GA), 헌츠빌(Huntsville, AL) 등에서 온 열성적인 단원들도 소개 되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더운 날씨에 main conference room의 에어컨이 고장이 났는데, 이런 이상고온인 날씨에 이건 좀 문제였다. 신부님께서 그 미사복을 입고 계신데 얼마나 더우실까. 결국은 임시로 장소를 옮겨서 lobby area로 모두 후퇴를 해서 강의를 들었다. 이번 피정 기간은 ‘성령강림’ 주일과 겹치게 되어서 그것에 대한 강론으로 시작이 되었지만 사실 피정의 큰 주제는 (인간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첫날은 그렇게 저녁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관심사는 나의 room mate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3명이 한방을 쓰게 되었는데 물론 남녀가 같이 쓸 수가 없어서 우리 부부도 따로 방을 쓰게 되었다. 밤에 내가 자는 방에 roommate로 아주 젊은 두 사람이 들어왔다. 아주 건실해 보였는데, 한 사람은 본당 청년회장이어서 연숙과 주보관계로 전화로 알던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도 청년회에 관여된 사람이었고, 특히 Peter Park이란 청년은 Virginia Tech출신, computer engineer로 내가 사는 Marietta에 있는 Lockheed Co. (aerospace contractor)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참 반가웠다.

피정 교본과 일정
피정 교본과 일정

알고 보니 둘 다 나이 서른이 채 안 된 ‘모범적인’ 청년들이었는데, 사실 나는 속으로 많이(즐겁게) 놀랐다. 요새 세상에 이런 젊은이가 있었던가 할 정도였다. 그 나이에 종교와 신앙에서 떠나는 것이 무슨 ‘벼슬’인 양 행세하는 그 많은 젊은이 (우리 집 딸들이나, 나의 옛날과 같이)들이 비교가 되어서 심정이 착잡하였다.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런 것이다.

 

숙소는 거의 일류 hotel급 정도로 편했지만 역시 크리스천의 배경이 흐르는 곳이라 조금은 단정하고, TV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6시 30분에 피정의 일정이 시작되어서 정말 짧은 잠을 자고 강행군의 토요일 일정이 시작되었다. 레지오의 일상 기도와 더불어 레지오 쁘레또리움 단원들이 하는 ‘성무일도’가 곁들여 졌는데, 나는 생전 처음 해 보는 것들이라 상당히 힘들었지만 열심히 따라 했다. 조금 더 이것에 대한 orientation같은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식사 전에 미사가 있었고, 식사 후에는 산책시간까지 주어졌다. 이 피정 센터에는 산책로(trail)가 울창한 숲 속에 있는데 아주 긴 편이었다. 연숙과 가벼운 마음으로 걷다가 시간이 너무 걸리고 길을 잃을 것 같아서 중간에서 돌아와야 했다 .

곧 이어서 점심식사 전까지는 ‘시범 주회’란 것이 열렸다. 그러니까 “모의(simulation)” 주 회합인 것이다. 추첨으로 뽑힌 자매님들이 (남자, 형제님들은 하나도 뽑히지 않았음) 공개적으로 주 회합을 하고 나중에 평을 듣는 것인데 나에게는 참 흥미로웠다. 다른 쁘레시디움 주회에 가서 주 회합 광경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것은 나와 비슷한 입장이었을 것이다. 꾸리아 간부가 아니면 남의 주회에 들어 갈 일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어서 ‘품평회’ 비슷한 질의응답시간이 있었는데, 대부분 조금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너무나 지나치게 레지오의 세세한 법칙에 얽매이는 느낌이었다. 대부분 ‘상식’적인 해답이 제시되고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레지오는 거의 군대식이어서 이런 세세한 규칙들은 사실은 중요한 것들이다. 문제는 명문화 되지 않은 것 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주 회합에 적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점심 후에는 연차 아치에스 행사 때 하던 봉헌식을 다시 했다. 공개적으로 레지오의 상징인 벡실리움에 손을 얹고 짧은 선서를 읽는 것이다. 3월 달에 한번 해 본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조금 나도 익숙하게 이것을 할 수 있었다. 이 시간에는 요한 바오로2세의 유언장이 낭독되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작성, 수정이 된 이 유언장은 하나의 작은 역사적 문서가 되었다. 교황즉위 후부터 암살기도, 소련(연방)의 붕괴에 이르는 역사가 이곳에 영성적인 조명을 받으며 기술이 되어서, 조금 길기는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이날은 두 차례 안정호 신부님의 강의가 있었는데, 오후에 있던 첫 강의는 그 다음날 ‘성령강림‘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이고, 저녁 식사 후에 있었던 것은 이번 피정의 ‘대 주제’인 ‘죽음’에 관한 것으로 아주 심각한 것이었다. 이 강의는 곧 이어서 있을 ‘죽음의 연습’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이라 더 뜻이 깊었다. 중요한 것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 죽음을 생각하면 대부분의 것들은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으로 보인다.
  • 죽음이란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죄에 의한 것이다.
  • 예수님과 같은 고통이 죽음의 단계에서 따를 수도 있지만 이것은 다음 단계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 지상의 삶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영원한 것을 향한다.
  • 죽음은 부활을 전제로 한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죽음은 계속 성찰을 하면서 살아야 할 과제이다” 라고 선언했다.

 

이어서 열린 ‘죽음의 연습’은 이번 레지오 봉쇄피정의 절정(climax)에 속한다. 물리적이고, 시각적, 심리적으로 죽음을 경험하게 하는데 사실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다. 관(棺)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는 것이다. 장례식에 있던 그런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출’이 되는데 천주교 식의 ‘연도’라는 것이 행해지는 것이다. 이 절정에서 나는 실패를 하고 말았다. 거의 99.9%가 ‘주저 없이’ 관 속으로 들어갔는데.. 나는 못했다. 생각해 보니 못할 이유가 없었는데.. 그저 싫었을 뿐이다. 이것이 후회로 남게 되었다. 하기야 후회가 있어야 다음에 더 잘 할 명분도 생기니까.. 대부분 사람들 생각보다 마음이 평화스러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연숙도 들어갔고 우리 단원들 모두 들어갔다. 나만 못 들어갔다.

이상이 이번 피정의 제일 중요한 행사들이었다. 밤 늦게, 헤어지기가 아쉬운지 가벼운 여흥시간이 있었는데.. 꾸리아 단장, 부단장님들의 프로에 가까운 노래와 춤 솜씨에는 나는 죽어도 저렇게 못하겠다는 한숨만 나올 정도였다. 이래서 토요일 main event는 아침 6시 반에서 시작이 되어서 밤 11시까지의 기나긴 여정이었지만 사실 정신적으로는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 일요일의 일정은 신부님의 스케줄 변동의 관계로(공항에 도착하시는 새 본당 신부님 때문이었을까?), 완전히 바뀌어서 아침 6시 30분에 미사를 하게 되었고 곧 바로 강의로 이어져서, 조금은 피곤 했지만, 역시 이것도 신선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니 하나도 문제가 되지를 않았다. 마지막 강의는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이 되고, 성모님의 레지오에서의 위치로 귀결이 되었다. 성모님과 같이 노력을 하는 레지오의 성격을 잘 이해하게 해 주는 강의였다.

이렇게 해서 대단원의 막이 서서히 내렸고, 마지막 시간에 서로의 간단한 느낌, 소감을 나누었는데, 처음에는 역시 조용하더니.. 웬걸.. ‘마이크 스타일’의 형제,자매들이 줄줄이 나와서 솔직한 소감들을 나누어 주었다. 내년에는 나도 한번 저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좋은 것은 사실 나누어 주는 것이 더 좋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나서 서로에게 작별의 인사를 악수나 hug으로 ‘모두가’ 나누었는데.. 이것도 무슨 인연이라고 가슴이 뭉클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해서 2박3일의 일정이 끝났는데.. 한마디로 ‘참, 좋았다‘.

 

레지오 피정에 들어가며..

이번 주말에는 아틀란타 본당 레지오 주최 연례 3일간 봉쇄피정이 있어서 연숙과 같이 들어간다. 둘이서 집을 같이 떠나는 것도 오랜만이지만 나에게는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피정(retreat)이라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임은 어쩔 수가 없다. 일년에도 몇 차례씩 이런 곳에 가는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노릇이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름이 아주 거창하다. 봉쇄피정이라.. 한자로 읽으면 아마도 완전히 3일 동안 외부와 연락이 차단이 된다는 뜻일까? 아니면 세상만사를 다 잊으라는 뜻일까? 아직 누구에게도 물어본 적이 없다. 들은 이야기로 이런 곳에 가려면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준비가 잘 안되어 있으면 가기 전에 꼭 무슨 유혹이 생긴다고 들었다. 나는 ‘치명적’인 유혹은 없었지만 비슷한 것은 벌써 경험을 하고 있어서 이런 말들이 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다 타당성이 있다고 믿게 된다.

나의 집을 ‘물리적’ 으로 떠나는 것이 거의 일년이 되어온다. 작년 여름 새로니가 살고 있던 Nashville, TN에 한번 놀러 갔던 것이 전부다. 비록 피정은 Atlanta Metro에서 열리지만 좌우지간 집을 떠나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피정은 조금 있으면 주임신부에서 물러나시는 안정호 이시도리 신부님이 지도를 해 주신다고 한다. 비록 새 신부님이 곧 오시게 되어서 주임신부직은 물러나지만 아직도 우리들은 그 들이 우리의 ‘영원한’ 주임신부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그분에게서 나 개인적으로 받은 은총이 많음을 느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웹싸이트를 보면 그곳 발행,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경향잡지가 1900년 초 부터 연도별로 거의 모두 수록이 되어있다. digital scanning을 한 것인데 원래 책의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있어서 읽기 힘든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특히 해방 전 것들인데 잘 보여도 읽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국어’에 비하면 거의 훈민정음 스타일의 ‘고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실 한글 맞춤법도 없었을 것이고 한자를 많이 쓰고 해서 더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 고색창연한 천주교 월간잡지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살 찌는 약!
살 찌는 약!

내가 우선 관심이 갔던 때는 해방 후와 육이오 동란 전후, 그리고 1960년대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 것들은 그 당시의 역사를 천주교의 입장에서 본 것을 알게 되어서 그렇고, 육이오 이후는 내가 어렴풋이 기억이 나던 때를 다시 간접적으로 보게 되어서 관심이 간다. 1960년대는 조금 다르지만 약간 ‘근대화’한 한국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보여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너무나 방대한 분량이라 우선은 주마간산 식으로 보았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조금은 정독을 하려는 희망도 있다.

우선 반가운 그림들을 몇 개 보았다. 광고인 것이다. 천주교 잡지에 광고가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지만 반세기 넘게 잊고 살던 ‘인기 있던’ 상품을 다시 보게 된 것이 더 반가웠다. 이것은 그 당시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던 것이기도 하다. 우선 조금 웃음이 났던 것은 “살이 찌는 약”에 대한 것이다. 요새의 기준으로 보면 과연 얼마나 이해를 할까? 나도 살찌는 약에 대한 광고를 많이 보고 자랐다. 나도 갈비씨였지만 그 당시는 갈비씨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독일회사 훽스트.. 거기서 나온 ‘고기 먹으면 필요했던’ 훼스탈.. 고기를 많이 못 먹었던 시절 그것을 소화할 효소가 제대로 안 나와서 그랬던 것일까? 기본적인 위생시설이 부족했던 그 때는 피부염, 종기가 참 많아서 그랬던지 ‘이명래 고약’은 정말 그때의 구세주 였다. 어찌 잊으랴?

 

6월을 시작하며..

5월부터 시작된 불볕더위가 거의 2주째로 접어들면서 슬그머니 6월로 접어들었다. 날씨, 기온, 기후에 조금은 둔감해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아직도 멀었다. 심할 때는 조금 내가 너무 더위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될 정도였다.  심지어 연숙에게, “더운 날씨에 대한 예보를 보면 나에게 말하지 말라” 고 간청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 한마디로 나는 기분이 쳐지는 것이 무서워서 그랬지만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는 날씨에 둔감해 지도록 의도적으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조금은 효과가 있나..

6월로 들어서면서 조금씩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제일 큰 이유는 이번 주말에 있는 3일간의 ‘레지오 봉쇄피정’ 때문일 것이다. ‘머리털 나고’ 처음 가보는 조금은 ‘겁이 나는’ 그런 곳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집을 거의 ‘못’ 떠나는 나의 생활에 이런 것도 심리적으로 아주 ‘큰 사건’이라 그런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좋던 싫던 나는 이런 것을 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이다. 아니 확고하여 지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다. 결과가 어떨지는 조금 ‘흥미’ 롭기도 하지만 연숙의 ‘예상’에 의하면 그렇게까지 기대를 하지는 말라고 하니까.. 한번 ‘당해’ 보자.

드디어 그것이 찾아왔다. 얼마 전, 비가 많이 온 이후에 차고의 water heater밑에 물이 흐른 것을 보고.. 이거.. 비가 샌 것이 아닌가 의아해 했었다. 그것이 어제 다시 보고 생각을 해 보니 이것은 water heater가 새는 것이었다. 예전 처럼 폭포수처럼 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제 그렇게 내가 예상한 대로 수명이 다 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하다. 최소한 $800이상은 ‘잡아 먹어야’ 하니.. tank 자체는 $500정도일 것이고 나머지는 labor charge일 것이다. 내가 한번 해 볼까? plumbing은 정말 간단해 보인다. 물론 실제로 해 보면 아닐 가능성이 더 많지만.. 아니면 tank-less model로 ‘내가’ 해 볼까.. 이것은 너무 비싸다. 그저 지금 쓰는 것이 제일 무난한 방법일 것이다. 문제는 내가 혼자 하기에는 너무나 무겁다는 간단한 사실이다. $300 의  labor가 과연 우리에게 적당한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지금 차고에는 책과 상자로 가득 차 있는데.. 갑자기 이것이 터지면.. 물바다가 되면.. 정말 큰일인데.. 어찌해야 하나?

현재 나를 제일 ‘괴롭히는’ 것 중은 역시 내가 ‘스케줄’ 에 따라 일을 못한다는 자책감이고, 또 스케줄에 따라 ‘정말 해야 할’ 것들을 계속 ‘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직도 일년 전에 바꾸어 놓은 나의 office room의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차고의 정리를 하나도 못했다는 사실, 따라서 지금 나의 ‘보물 같은’ 책들과 서류들의 위치가 다 같이 확실치 않다는 는 것.. 본격적으로 나만의 project을 본격적으로 못 하고 있다는 것 등등.. 그리고 집을 수리하거나 고치는 일.. 정말로 미루고 사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못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정말 없다. 할 수 있다.

 

죽는다는 것..

죽음.. 죽음이란.. 사람의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오늘 하루 종일, 생각의 주제는 죽음이었다. 사실은 근래(10여 년?)에 들어서 평소 때에도 죽음을 잊고 산 적은 거의 없었다. 그것이 특히 나이 60이 넘어서면서 더 잦아졌다.이것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조금 흥미로운 것은, 죽음을 항상 생각하며 사는 것이 그렇지 않은 때보다 훨씬 덜 죽음에 대한 걱정을 하다는 사실이다.

오늘 나에게 특별히 하루 종일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 이유는 갑자기 계획에도 없이 참석하게 된 장례미사 때문이었다. 오늘의 장례미사는 정 요한씨를 위해서 바쳐졌는데, 이분은 지난 주 내내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선종기도’를 바치던 그 분이었다. 이 분이 어제 선종을 하셔서, 어제 저녁 곧바로 연도가 바쳐졌고 오늘 오전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안정호 신부님의 집전으로 장례미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몇 개월 전, 레지오(마리애)에 들어오면서 내가 달라진 것 중에 제일 큰 것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시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태도였다. 전에는 가급적 장례식 같은 것을 모른 척하려 했고, 피했고, 잊고자 했었다. 그것이 지금과 같이 비교적 ‘고립된’ 삶이 가능한 이곳 미국에서의 생활에서는 크게 힘들지 않다. 고국에서 살았으면 그렇게 살다가는 아마도 사람취급도 못 받을 듯하다. 이제는 아니다. 적극적으로 ‘망자의 행사’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을 한다. 그만큼 예전과 같이 무섭지 않은 것이다.

특히 가톨릭적인 ‘연도’는 나를 아주 평화스럽게 만든다. 레지오 회합 참석 후에 자주 연도가 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생소하던 것이 이제는 아주 익숙해져서, 조금 더 고인에 대해 생각을 할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장례식에서 가끔 하는 viewing(시신을 직접 보는 것)같은 것은 너무나 visual해서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오늘 장례미사는 비교적 조문객이 많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우리가 그곳에 가게 된 큰 이유중의 하나가, 미리 조문객이 많지 않으리라는 귀 띰 때문이었다. 조금 이해가 가는 것은 이 고인의 가족이 현재 아무런 신앙적인 곳에 소속이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민사회에서 신앙단체의 제일 큰 역할중의 하나가, 그들에게 교민간의 친교나 사회생활의 촉매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나머지는 동창회나 사업에 관련된 단체들 밖에는 없다.

장례미사 안내문을 보고 이분이 1948년생이라는 것을 알고 반가웠다. 그래서 더 친근감이 들었는지 모른다. 우리 동갑이 먼저 나보다 저 세상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니 참 심정이 착잡하였다. 63세라면 지금 세상에서는 ‘젊다고’도 말할 정도다. 신부님도 그 점을 상기시키셨다. 하지만 언제 죽는다는 것을 어느 누가 알랴? 우리도 모르게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하느님께 돌려 드린다는 신앙의 신비를 인정하면 조금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장지까지 가게 될 줄도 몰랐지만, 무언가에 끌려서 그곳까지 갔다. 그런데 가기를 참 잘한 것 같다. 유족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위로를 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모든 행사가 끝난 후에 점심을 같이 하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 Buford Hwy의 한인타운의 중심에 있는 ‘한일관’에서 모였는데.. 이곳에서 조그만 해프닝이 벌어졌다. 식당엘 들어가려는데 아주 오랜만에 중앙고 새카만 후배 ‘선우인호’가 보여서 이 친구도 우리 장례에 관련되어 왔으리라 생각하고 무심코 그들 일행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선우인호 후배가 속한 개신교회의 다른 장례식의 뒤풀이를 하려고 모인 것이었다. 잘못했으면 다른 고인을 위한 자리에서 식사를 할 뻔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뜻하지 않게 거의 하루 반나절을 동갑내기 고인과 그 가족들을 위해서 보내고 나니 참 기분이 가벼웠다. 나도 이렇게 슬픔을 같이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하니 나 자신이 조금 대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 것이다. 가톨릭 신앙적으로도 고인은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한다. 그들이 저 세상에서 더 편히 쉬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비록 고인은 선종 얼마 전에 가톨릭으로 입교를 했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남아있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하느님을 알게’하는 커다란 선물이 될지 누가 알랴?

 

싱그러운 5월, 성모성월이여..

First of May, my friends’ forever day 다음날 아침, 조금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 올 들어 웬 놈의 찐한 뉴스들이 쏟아지는 것일까? 며칠 전부터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에 대한 뉴스가 온통 나의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는데 오늘은 난데없이 이 개** Bin Laden이 모든 뉴스를 장식하고 있으니.. 죽어서도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나의 바램은 그저 이런 **는 소리 없이 사라지면 하는 것이었다. 뉴스의 한 점도 장식할 값어치도 없는 개만도 못한 **니까..

사실 교황 시복식을 전후해서 은총이 충만한 계절임을 느끼려고 노력을 하고, 그 만큼 마음도 가벼워지고,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어제의 시복식 후에 이어지는 감사미사까지 아무 ‘잡음과 혼란’이 없이 무사히 정말 멋있는 시복식의 말미를 장식하길 바랬다. 그것이 역시.. 이 개**가 죽으면서 까지 방해를 하나.

복자품에 오르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복자품에 오르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시복식에 백오십만 명의 순례 객이 찾았다고 한다. 2005년 4월 교황 서거 이후 최대의 순례 객이라고 한다. 나는 인터넷의 CatholicTV.com에서 시복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정말 엄숙하면서도 축제분위기의 그 곳 광경을 보면서.. 처음으로 나도 저런 곳에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시복식을 가능케 한 프랑스 출신의 Marie Simon Pierre 수녀님도 close-up해서 잘 보여주었다. 우리 본당 레지오 단원 요안나 자매님께 지난 주일에 교황님께 부지런히 화살기도를, 그것도 ‘빛의 신비‘를 중점으로 하시라고 권해 드렸다. 프랑스 수녀님의 경험담을 듣고 그랬는데.. 누가 알까? 이 자매님은 비록 Parkinson’s disease가 아니고 다른 병이지만 교황님의 ‘전구 은총’에 나도 기대보려는 의도였다.

 

5월은 점점 내가 좋아하는 달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큰 원인은 기후적으로도 그렇지만 제일 큰 이유는 ‘성모성월’이기 때문이다. 세속적으로도 가정 중심, 어버이, 어린이 날 등이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이 ‘어머니’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싱그러운 달이다. 시작이 Bee Gee’s First of May로 시작이 되고, 하느님 자비의 날로 천주 교회력도 시작된다. 불교의 석가 탄신 일도 있지만 이것은 내가 고국을 떠난 아주 후에 생겨서 별로 추억이 없어서 별 기분을 느낄 수가 없다. 본격적인 여름으로 가는 때, 정말 멋진 달이다. 돌아가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을 마음껏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좋은 한달..

 

 

부활주일에..

요한 바오로 2세
요한 바오로 2세

결국은 부활주일이 되었다. 올해는 사실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부활절까지의 40일, 사순절 (Lent)이 조금 길게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짧게 느껴졌다면 아주 착실히 바쁘게 40일을 보냈을 것 같기도 한데, 그것이 아닌 것을 보니 조금 게으르게 보낸 것이 아닐까. 2008년의 사순절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 전해부터 시작된 묵주기도의 덕분일까.. 그 해의 사순절은 정말 보람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 불필요한 TV보기 등을 자제하고, 신약성경, 특히 사도행전과 바오로 서간문을 열심히 읽고, keyboarding으로 copy를 하기도 했다. 그 해부터 처음으로 성주간 4일의 미사를 빠지지 않고 갔었다. 그것에 비하면 올해는 아무래도.. 하지만 이번에는 레지오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조금 나를 안심시킨다. 비록 아직 협조,활동단원을 한 명도 이끌어 들이지는 못했지만.. 같은 구역의 ‘미영이 아빠’를 현재 계속 권면 중이라서 조금 기대를 걸어 보기도 한다.

부활주일이 시작되면서 이제는 온통 나의 관심이 5월 1일 자비의 주일(Mercy Sunday)에 이루어 질 우리의 희망 요한 바오로 2세(John Paul II)의 시복식(beatification)으로 쏠린다. 현재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중의 하나가 바로 요한 바오로 2세이시다. 역사적인 인물로도 그렇지만 신앙적인 면에서는 존경의 차원을 넘는다. 우리 천주교의 자랑이고, 천주교 ‘중흥’을 이룩하신 거룩한 ‘예수님 제자의 후예’이시다. 하지만, 완전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옥의 티라고 한다면 오늘 NPR news에서도 보여 주듯이, 일부 ‘악마가 씌운’ 신부들의 어처구니 없는 ‘성추행’.. 을 조직적으로 뿌리를 뽑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천주교의 ‘비밀’스러운 관행 때문에 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것 이외에는 정말 오류가 없다. 하느님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오류가 없을 수 있으랴. 특기할 사실은 지금 교황께서 거의 ‘오해를 살 가능성까지 감수하면서’ 초특급으로 이것(시복)을 밀어 부친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로 자신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정말 고맙고, 현명한 처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Were you there..

오늘은 이곳에서는 Good Friday, 그러니까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다. 어제부터 시작된 예수님 부활절로 향하는 성3일 중 가장 절정을 이루는 날일 것이다. 가장 어두운 날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날이 있기에 부활이 있고, 따라서 기독교가 있는 것이므로 그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제는 예수님의 제자들과의 만찬이 주제를 이루고, 미사에서는 신부님들이 12명의 신자들의 발을 씻는 의식을 한다. 오늘은 모든 신자들이 십자가 경배 (주로 십자가에 손을 대거나 입을 맞추는)가 주요 의식이다.

이렇게 우리가 성3일 미사를 가게 된 것이 몇 년이나 되었을까.. 사실, 불과 몇 년밖에 안 된다. 예전에는 부활절 미사만 갔었다. 이것은 사실 큰 ‘발전’이다. 부활절을 이렇게 ‘준비’하는 것은 정말 많은 이 날에 많은 의미를 주는 것이니까. 특히 얼마 전에 시작된 레지오 활동으로 나에게 부활절의 의미는 더 커지게 되었다. 이제는 조금 더 예수님의 passion(수난)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고 할까.. 예전에는 사실 먼 옛날의 ‘사건’ 정도, 아니면 나와는 너무나 먼 ‘끔찍한’ 이야기 정도로 느끼고 살았다. 이제는 조금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꼭 부르는 성가 “Were you there( when they crucified my Lord)” 란 곡.. 오늘 밤, 십자가 경배 중에 기타에 맞추어 불리던 그 곡, 어쩌면 그렇게 예수의 수난을 잘 그려냈을까..

 

Were You There?

 

참된 행복이란..

아틀란타 성당 소책자: 참된 행복으로 초대합니다
아틀란타 성당 소책자: 참된 행복으로 초대합니다

어제는 <<Legio Tuesday>>로 정기 레지오 회합에 참석차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엘 다녀왔는데, 그때 연숙이 조그만, 아주 조그만 pamphlet을 그곳에서 가지고 와서 나에게도 주었다. format이 아마도 선교용으로 만들어진 듯 했다. 우리에게 친근한 모습, 고 김수환 추기경의 짧은 글이 실려있었는데 제목이 ‘행복’이었다.

진정한 행복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그것을 너무나 쉽게 풀어 주셨다. 사랑과 긍정..이것이 잠시의 행복이 아닌 영원한 행복을 향하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초대라는 말.. 요새의 세속적인 행복은 주로 건강, 지위, 명예 같은 것이고, 그것은 특히 돈으로 더 가능하게 되어버린 세상에서 “짧아도 짜릿한” 행복을 맛보려는 사람들 투성이다. 생각을 해 보면 그것들은 너무나 짧고, 그 뒤의 허탈감은 사실 불행의 시작일 수 있다는 사실들을 모를까? 나는 그것보다는 지금 앞에 보이지 않아도 먼 후일에 있는 ‘영원한 행복’을 더 기다린다. 오늘부터 예수수난과 부활의 시작인 성삼일, 특히 오늘 저녁은 최후의 만찬, 세족례(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을 기념하는)로 이루어 지는 성 목요일 미사가 시작이 된다. 부활을 향한 3일간의 첫날인 것이다.

 

행복

 

추기경 김수환

 

행복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일상생활부터 생각 해보기로 합시다.

우리는 얼마 전에 신정과 구정을 지내며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를 전했습니다.

우리 문화권에 ‘복’은 ‘건강하고 무병장수 하는 것’ 이라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바라는 모든 것이 성취되길 기원해주고 축복해줍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사람답지 못할 때에도 그것이 참된 의미의 ‘행복’이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성북동의 한 음식점에 걸려있는 족자에는 아홉 개의 ‘ㅁ’자가 써있었습니다.

‘사람아, 사람아, 사람! 사람이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다! 라는 의미를 지닌 족자였습니다.

아무리 인물이 잘나고, 건강도 좋으며, 돈이 있고, 높은 직위에 있다 할지라도, 만일 그 사람이 그 삶에 있어서 ‘인간’ 답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 삶을 ‘사람답다.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비록 좋은 건강, 많은 돈, 높은 직위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참으로 인간으로서 인간답다면 ‘참사람이다!’ 라고 볼 것입니다.

 

이달 첫 주에 나온 주간지 뉴스메이커에 ‘행복하게 나이 먹기’ 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커버스토리에 실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늙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돈이 노후에 행복한 삶의 비결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우리 가운데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버드대학 성인발달 연구소에서 820명의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80년 이상의 발달 과정을 분석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성공적인 노화의 열쇠는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관리와 사랑하는 것이고, 신체적 요인들보다도 더 건강을 보장하는 것은 성숙한 [방어기제] 였다고 합니다.

[방어기제]란 불쾌한 상황에 부딪혀도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화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지난해 1월, 대구에 있는 성 베네딕트 수녀원에서 6.25 동란 동안 인민군에게 끌려가 많은 고생을 한 후 풀려나 다시 한국에 와 사시는 독일인 수녀님 두 분의 생환 50주년 축하식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분들은 자신들의 전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그 당시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을 잃고도 하느님 말씀대로 서로를 사랑하고, 심지어 자신들을 박해하는 공산당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었기에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행복에 대한 예수님의 인식은 인간 세상에서 간주되는 그것과는 다릅니다.

현세는 현세의 잣대로 행복을 말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관점으로 인간과 인생을 보기에 행복에 대한 관점이 다릅니다.

인간 존엄성과 관련하여 성경말씀을 요약해 본다면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창조의 정점에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도 당신께서 지으신 피조물이 참으로 마음에 드셨다고 합니다.

하느님은 극진한 사랑으로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특히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기까지” (요한 3,16)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영구적이고 절대적이며 극진하십니다.

인생과 그 미래는 하느님으로부터 당신과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위대하며 원대합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 존엄성의 가장 존귀하고 숭고한 이유가 있습니다. 존엄한 인간에게 [참 행복]이란 [영원하신 하느님과 하나]되는 데 있습니다.

결국은 현재 이승에서부터 [그 분 안에 살 때], [그분의 사랑 안에 살 때], 그때 우리는 [참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곳에 우리가 찾는 참된 행복이 있다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4월 초의 잡상(雜想)들

나이에 따른 기후의 변화: 봄이 본격적으로 맛을 보여주던 3월 중순 한때의 따뜻함이 거짓말처럼 거의 빙점으로 떨어지는 꽃 시샘 날씨로 바뀌어서 며칠이 되었다. 이제는 이곳의 날씨에 웬만큼 익숙해져서 그런지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젊었을 때는 그저 무관심하게 보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예전보다 훨씬 더 빨리 가는 시계처럼 변하는 기후의 거대한 pattern을 그야말로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인생의 연륜이라는 것일까? 60대에 느끼는 기후는 분명히 20대가 느끼는 기후와 다를 것 같다. 똑 같은 기후를 사람마다, 나이마다, 지역마다, 전혀 다르게 느끼는 것은 분명 비과학적인 발상이지만.. 어찌하랴.. 하느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 아닐까. 요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는 어떤 것일까?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나는 싸늘하게 비가 내리는 그런 날이 제일 좋다. 나와 TV에 나오는 weatherperson의 의견과는 ‘공식적으로 정 반대’가 된다. 이렇게 사람은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피조물인 것이다.

 

레지오와 나의 현재: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Legion of Mary] 선서를 한지 2달이 되었다. 3개월 대기단원을 포함하면 레지오 단원이 된 것이 벌써 5개월이 되어간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변했을까? 얼마나 레지오 중심의 생활이 나를 바꾸고 있을까? 매주 화요일 정기회합에 참석하는 것은 군대와 같은 규율에 따른 의무라서 기본중의 기본에 속하지만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의무가 되었다. 별로 정기적인 운전을 하지를 않았던 지난 10년간의 ‘동면’을 깨어버린 것이다. 비록 대다수가 자매님들이지만 많은 ‘사람’을, 그것도 ‘한국인’들을 만나고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외국에 온 기분까지 느끼며 불편한 적도 많았지만 그 동안 많이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성모님께 가까이 가는 지름길인 정기적인 묵주기도.. 어떻게 하면 성실하게, 경건하게, 많이 바칠 수 있는가.. 조금씩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밤 9시30분에 정기적으로 우리 부부가 하는 것 이외에, YMCA gym에서 운동을 하면서 하는 것, 아침에 Tobey(dog)와 subdivision(우리 동네)을 산책하면서 하는 것, 이제는 드디어 운전을 할 때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잘 하면 일주일에 100단의 ‘기록’을 깨기도 했다. 이런 반복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의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보라.. 모두들 다 틀렸다.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바보’들인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그 동안 나보다 뒤에 입단한 ‘후배 단원’이 들어 오기도 했다. 역시 ‘자매님’이다. 현재 우리 단원들은 내가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좋은 분들이라 이런 상태가 계속되기만 바라고 있다.

 

본당협조와 아틀란타 전산팀: 레지오 입단에 따라서 본당협조에도 신경을 더 쓰게 되었다. 비록 주일미사는 우리가 사는 곳 근처의 미국본당(Holy Family Catholic Church)에 나가지만 (거의 10년도 넘게), 역시 본당협조는 레지오가 속하는 아틀란타 순교자성당에서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지난 몇 달 동안 속한 곳이 본당 ‘전산관리팀’이었다. 줄여서 전산팀, 아니면 웹팀이라고 불린다. 성당주보에 새 팀 멤버를 찾는다는 글을 보고 자원을 한 것이 벌써 5개월이 되었다.

기대와 현실의 rollercoaster를 타고 갈등을 계속하고 있고, 이곳에서 나의 역할이 조금은 불투명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 일은 레지오의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을 했고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절대로 감정적인 결단은 최대한 피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을 해서 벌써 몇 명이 도중하차를 했지만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 현재 나에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일이다. 현재 core member들에게 큰 불만은 없다. 하지만 skill set, technical background, work experience등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고, 기존멤버들을 내가 설득하거나 할 자신이 없으면 결국은 내가 적응을 해야 하는 현실이다. 내가 보기에 현재 성당의 system이 재정상태에 걸 맞는 ‘최적’ 의 IT system과는 거리가 멀다. 나의 역할을 이것을 조금 더 professional level로 올리는 것인데.. 이것은 technical challenge라기 보다는 political challenge에 더 가깝다. 하지만, 나는 현재 그것을 쉽게 풀 자신이 없다. 그래도 레지오의 정신으로 하면 조금은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Atlanta snow to ice day..

이곳 아틀란타 수도권 지역의 폭설은 완전히 끝나고 지금은 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일째 모든 기관,학교가 문을 닫고, business도 거의 문을 닫은 듯 하다. 무슨 민방위 연습을 하는 듯 모든 곳이 정적에 잠겼다. 문제는 눈이 온 이후 영하의 기온이 계속되어서 완전히 두꺼운 얼음이 되어 빨리 녹지를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예년과 아주 다른 점이다. 이것도 혹시 global warming의 한 징조가 아닐까.. 생각을 한다. ‘극단의 기후(extreme weather)’가 온난화의 한 예라고 한 것을 어데선가 들은 듯하기 때문이다.지난 여름이 기록적인 오랜 더위여서 조금은 이러한 춥고 눈 많이 오는 겨울을 예측하긴 했다.

오늘은 우리로서는 한인성당에 레지오 정기 회합이 있던 날인데 성당 자체가 문을 닫아서 가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우선 우리 집 subdivision도 빠져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설사 레지오를 한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 무리였다. 이럴 때 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면..하고 상상도 해 본다.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생각 뿐이다. 인생에는 가끔 이런 ‘깜짝 즐거움’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그들에게 이런 것들은 절대적으로 ‘뜻밖의 즐거움’이리라.

완전히 빙판으로 변한 I-285 near spaghetti junction

완전히 빙판으로 변한 I-285 near spaghetti junction

운전을 포기하고 걸어간 사람들이 남긴 차들 near Pleasantdale Rd@I-85N

운전을 포기하고 걸어간 사람들이 남긴 차들 near Pleasantdale Rd@I-85N

Night before Atlanta snow day 2011

Night before Atlanta snow day 2011

fairly rare sight & treat for this dog in Atlanta

fairly rare sight & treat for this dog in Atlanta

Atlanta snow day fun 2011

Atlanta snow day fun 2011

What's this white stuff under my belly?

What’s this white stuff under my belly?

Never knew you can walk a cat like this

Never knew you can walk a cat like this

 

A longest day, then snow day 2011..

어제는 모처럼 아주 바쁘게 느껴지는 일요일을 보냈다. 평소 때의 일요일은 조금 relax하는 기분으로 보내곤 하는데, 어제 일요일은 조금 달랐다. 최근에 내가 경험하고 있는 out-of-closet의 한 예라고나 할까.. 처음 가보는 집도 두 군데, 처음 만났던 사람들도 꽤 많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아주 유쾌하고 진땀 나는 경험이 되었다. 단 요새 예외 없이 대부분이 즐기는 karaoke를 제외하고.. 나는 이것에 익숙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Almost empty Atlanta's I-285 morning after snow
Almost empty Atlanta’s I-285 morning after snow

이런 것들과 아울러 이곳의 날씨가 어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치도 어김없이 일기예보가 들어 맞았다. 9시경부터 snow shower/storm(눈보라?)이 이곳 아틀란타 지역에 들이 닥친 것이다. 이 눈보라 때문에 밤에 집으로 돌아올 때 완전히 눈에 쌓인 고속도로 운전을 해야 하는 모험을 하게 되었다. 시카고, 오하이오, 위스컨신에서 살 때는 이 정도는 큰 문제가 못 되었지만 이곳에선 절대로 장난이 아니다. 제설 대비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다가 지형적으로도 언덕이 많은 탓이다 (아틀란타 메트로는 piedmont, 그러니까 구릉지역에 속함).

어제 낮에는 레지오 덕분에 다시 만나게 된 설재규씨 댁으로 가서 그 집의 home network (주로 adsl modem/wifi router 같은 것들)을 손 보아 주었다. 나는 옛날 생각만 해서 설재규씨가 이런 것들 잘 했으려니 했지만 본인의 말로는 이런 것들을 하지 않은지 아주 오래 되었다고 한다. 이런 류의 일들은 언제나 깜짝 놀라게 하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Earthlink/Netopia combo.. 요새 아직도 이런 구닥다리 broadband supplier를 쓰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서도 Netopia adsl modem/router가 특이하다. 아주 요상한 setup mode가 있는데.. 이것은 정말 쓰는 사람이 아무리 ‘바보’라도 문제가 없게 만들어 놓았다. 흡사 요새의 Apple computer와도 같다고 할까. 문제는 동시에 두 대 이상의 pc에서 Internet을 쓸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정말 20세기적 발상이다. 이것을 바꾸려면 dumb mode를 full “bridge mode”로 바꾸면 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다음에 하기로 하였다.

그것이 끝나고 몇 주 전에 이미 예정된 아틀란타 한인성당 전산팀의 신년 회의/식사 참석차 Dacula, Georgia에 있는 홍보분과위원장 댁으로 연숙과 합류를 해서 설재규씨와 갔다. 그곳은 I-85 Exit 120 근처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최근 이곳은 한인들이 집단적으로 정착을 하는 곳이다. 밤 9시 이후로 예정된 대설 주의보를 염두에 두면서 전산팀 모임이 진행 되었다. 이날의 hostess인 서 안젤라 자매(본당 사목위원)의 power를 보여 주는 듯, 본당의 세 분 신부님께서 모두 오셨다. 그러니 분위기는 자연히 아주 활발하고 무게가 있었다.

이 댁의 지하에는 완전히 꾸며진 Video/Audio/Karaoke시설이 있었고, 한 쪽에는 아주 잘 꾸며진 ‘기도방’도 있었다.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와 식사가 끝나면서 Karaoke방으로 모두들 모이게 되었는데(사실은 우리 신부님들이 이런 것들을 좋아 하신다고 함).. 나와 설재규씨는 눈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미리 일찍 가자고 합의를 한 상태여서.. 9시 넘어서 조용히 빠져 나왔다. 이때부터 위에 언급한 snow adventure/nightmare 가 시작된 것이다.

20여 년이 넘게 나는 눈이 깊이 쌓인 고속도로를 운전한 경험이 없었다. 어제의 눈발은 흡사 거의 폭우와 같이 쏟아졌는데. 도로는 완전히 눈으로 덥히고, 앞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 중간쯤에 와서는 차기 조금씩 미끄러짐을 느끼게 되었다.다행히 일요일 밤이라서 그런지, 일기예보를 미리 들 보아서 그런지.. traffic은 그리 많지 않았고, 특히 집채만한 대형 트럭들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더 눈보라가 심해지고, 드디어 나는 속으로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그만큼 다급해 진 것이다. 잘못 하다가는 차를 세울 지경이 된 것이다. 이미 도로변에는 세워진 차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ramp에서는 이미 충돌사고로 엉킨 차들을 피해가야 했다. 집 근처의 완만한 언덕들을 천신만고 끝에 기어서 거북이처럼 집으로 goal-in을 하였다. 이때는 정말 ‘만세’를 불렀다. 최악의 상태가 오면 차를 버리고 둘이서 집까지 걸어 올 각오를 했을 정도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머지 사람들이 걱정이 되어서 연락을 해 보니 아직도 karaoke를 하며 놀고 있어서, 빨리들 출발 하라고 말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으로 돌아 갈 때 몇 명은 아주 고생을 하였다고.. 새벽 3시경에 도착한 형제님도 있었다. 신부님들도 역시 눈 때문에 거북이처럼 운전을 하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을 해 보니.. 이번 모임은 사실 취소하거나 연기를 했어야 했다. 정말 무모한 모험을 한 결과가 된 것이다. 만약에 더 큰 사고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하지만 다행히 이번의 모임은 추억에 오래 남을만한 것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 밖을 보니 완전히 모든 곳이 깊은 눈으로 덮여있었다. 성탄절의 눈과 더불어 이번 겨울의 제2탄인 것이다. 조금 용기를 내어서 우리 집 “깡패” Tobey(개)를 데리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다리가 짧은 Tobey가 가슴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느라 고생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오늘 월요일은 snow day, holiday가 되었다. 대부분 따뜻한 집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뜻밖의 ‘휴가’를 즐길 것이다. 이것이 snow day의 즐거움일까. 겨울에만 있는 뜻밖의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지난 밤에 쌓인 6"의 눈

지난 밤에 쌓인 6″의 눈

Walking Tobey on snow day 2011

Walking Tobey on snow day 2011

 

레지오가 만나게 해 준 세 사람

2010년의 황혼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올해 나에게 제일 크고, 중요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해 본다. 그런데.. 그것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내가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자비의 모후 레지오에 예비단원으로 입단을 한 사실이다. 물론 나는2007년 초부터 아내 연숙의 레지오 협조단원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둘이서 묵주기도를 시작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나의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시간적, 육체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오묘하게 나를 조금씩 바꾸어 주고 있었다.

올해 10월경부터 아주 조그만 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로 하여금 육체적으로 레지오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나의 10월 19일 레지오 예비단원으로의 입단이었다. 그때 받은 레지오 단원 수첩으로 기록이 된 나의 ‘활동’을 다시 본다. 비록 예비단원이라 ‘공식적 실적’에는 못 오른다고는 하나 나에게 그런 것은 별 차이와 문제가 되지를 않는다. 비록 그 이후 묵주기도의 횟수가 조금씩 많아진 것은 사실이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금씩 나의 lifestyle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신선하고, 무언가 생의 목적이 다시 보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선 새로 적응해야 할 일이, 사람들(형제,자매님들이라고 부른다)을 새로 만나게 되는 일이었다. 지난 10년간 나는 ‘새로 만난 인간’이 거의 없었다. 그런 것을 그저 편안하게 느끼면서 살았다. 심지어는 새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피해망상증까지는 안 갔어도 그 근처까지 간 것이 아닌가 나도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 배경에서 이렇게 새로 만난 사람들.. 내가 변했나.. 모두 그렇게 정답고, 친근하고, 친절하고, 죽마고우를 보는 듯한 기분까지 느끼게 되었다고 할까. 물론 그들이 변한 것이 아니고 무언가 내가 변한 것일 것이다.

그 중에서 내가 속한 곳의 자매님들(내가 유일한 남자단원 임), 대부분 나의 신앙, 인생 선배님들.. 나의 누나를 보는 듯해서 너무나 마음이 편하다. 성모신심으로 완전 무장된 그 자매님들..내가 배울 것 투성이다. 죽은 영혼들을 더 편히 보내드리는 레지오 연도에도 몇 차례 참가를 해서 그 동안 완전히 잊고 살았던 ‘죽음의 절차’를 다시 배우게도 되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3개월이 되어서 정식단원 선서의 절차를 앞두고 있지만, 나는 큰 문제없이 정식 단원이 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그런 시점에서 나는 레지오가 그 동안 다시 만나게 해 준 세 사람을 생각한다.

첫 번째 사람은 바로 우리 예수님을 낳아주신 성모 마리아님이다. 거의 신화적, 역사적, 성서적, 심지어는 추상적으로만 느껴왔던 마리아님을 이제 나의 어머니로 다시 맞아들이고,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동안 레지오 교본을 혼자서 열심히 ‘독학’을 한 덕분에 나는 모르고 있던 ‘보화’와도 같은 심오한 성모신심을 접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마리아 같은 성인의 저서 (직접, 간접으로)도 읽게 되었고.. 얼마나 내가 성모님을 슬프게 해 드렸는지도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로 돌아갈 마음은 전혀 없다. 어떠한 “무지한 가톨릭 신자, 개신교신자, 개신교 신자와 같이 행동하는 가톨릭신자”를 만나더라도 이제는 자신이 있다.

바른쪽 설재규씨 부부, Thanksgiving dinner Atlanta, 1989
바른쪽 설재규씨 부부, Thanksgiving dinner Atlanta, 1989

두 번째 사람은 본당교우이자 오래 전부터 알던 설재규, 아오스딩 (Augustine) 형제다. 설재규씨는 비록 나보다 나이가 한참 밑이었지만, 내가 이곳 아틀란타에 1989년 직장을 따라 이사를 오게 되면서 거의 처음 만나게 된 정말 오래된 형제님이다. 내가 다니던 직장, AmeriCom Corporation에서 만난 유일한 한국사람이었다. 나는 그때 software engineer였고, 그는 test engineer였는데,. 비록 같은 부서는 아니었어도 곧바로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으로 가깝게 지냈고, 더욱이 그도 우리와 같은 천주교 신자였다. 설재규씨의 부인은 우리부부와 같이 아틀란타 한국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직장도 그렇고 성당, 한국학교도 그렇고 모든 것들이 아주 오래가지를 못했다. 거의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설재규씨와는 무슨 인연이 있는지 그 후의 다른 직장이었던 Scientific Atlanta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물론 다른 부서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남다른 chemistry가 없었나 보다. 별로 더 가까워지질 못했다. 게다가 그 후 우리는 거의 완전히 한인 community와 멀어지게 되었고 서로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레지오 입단을 계기로 아틀란타 본당의 전산팀에 합류를 하게 되었는데.. 글쎄.. 거기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참, 이것도 인연이라면 어떨까? 서로가 젊은 패기는 다 수그러졌고, 조금은 완숙된 심경으로 만나면 이것도 무슨 큰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 사람은 역시 본당의 교우,형제님이었던 김찬웅, 베드로씨다. 역시 우리가 아틀란타에 이사오면서 거의 곧바로 만났다. 중앙고 후배 이성풍(aka 윤주 아빠)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분은 그 당시 아마도 삼성 지사에서 근무를 했었던가 했다. 그래서 가끔 윤주네 식구와 더불어 모이곤 했다. 가족적인 분위기가 서로 잘 맞았고, 술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하는 분위기가 우리와도 (비록 내가 나이가 제일 위였지만) 잘 어울린 것이다.

그러다가 역시 우리가 성당과 멀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중간다리 역할을 하던 윤주네가 완전 귀국을 하게 되면서 사실상 연락조차 끊긴 채 산 것이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아내 연숙과 김찬웅씨 부인 안젤라씨가 한인천주교회 레지오에서 만나 베드로씨네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다. 알고 본즉 베드로씨도 나와 같이 레지오 협조단원이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어제는 서로 부부가 만나서 점심식사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희망에 베드로씨도 언젠가는 안젤라씨와 같이 레지오를 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이고 지금은 ‘해후의 즐거움’이 더 크다.

 

Secret Santa’s, 고백성사, 올해의 마지막 일..

이것이 웬 떡이냐? 이것이야 말로 Santa’s Surprise가 아닐까? 얼마 전에 아래층 마루(IKEA Tundra)를 하면서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hallway의 조그만 closet의 바닥도 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몇 년(아마도 십여 년?)동안 쌓여 있던 각종 잡동사니가 있었다.

Secret Santa's Surprise
Secret Santa’s Surprise

주로 Halloween decoration stuff같은 것과 겨울용의 heavy jacket같은 것들이어서 평소에는 별로 열어 보지를 않던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 완전히 그곳의 모든 것들을 다 들어낸 셈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하지 않던 뚜껑도 뜯지 않은 CHIVAS REGAL Scotch Whiskey 한 병이 나온 것이다. 몇 년 동안 나는 이런 술을 사본 적이 없었고, 유일하게 집에서 마시던 맥주도 이제는 거의 사지를 않는다. $$도 그렇지만 이런 것들의 ‘단점’하나가 조금씩 이런 것에 의존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그냥 싫었다. 담배와 마찬 가지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아주 쉽게 습관성이 되어가는 것이 싫은 것이다. 담배를 끊을 때의 trick을 다시 써서, 술은 남의 집에 놀러 가서 ‘얻어’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대부분 얻어먹는 다는 사실이 ‘치사’하게 느껴져서 피하게 되곤 하고, 설사 피할 수 없게 되더라도 절대로 과도하게 마시게 되지를 않는다. 그런 배경이지만 가끔 정말 외롭게 느껴지거나 할 때, 술 생각이 나곤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확고해서 ‘절대로’ 술을 사지를 않았는데.. 그런 나를 가상히 여기셨는지.. 이렇게 뜻하지 않게 술병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Santa할아버지가 주신 것은 아니고, 사실은.. 아마도 작년에 ‘선물’로 받은 것을 그냥 그곳에 넣어두고 완전히 잊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pleasant surprise가 아닐까? 덕분에 올해 겨울 저녁은 조금 훈훈한 느낌을 받으리라 희망을 해 본다.

어제 오후에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거의 20년 만에 아틀란타 순교자 천주교회에서 ‘한국어 고백성사’ 를 하였다. 결론부터 말을 하면, 이것이다. 이것을 잘하고 못하고는 거의 ‘언어’에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준비를 잘 했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인 것이다. 그러니까 영어로 하게 되어도 조금은 ‘미묘한 표현의 제한’을 느낄지는 몰라도 시간을 두고 진심으로 뉘우치며 준비를 잘하는 것이 그저 느끼는 대로 말할 수 있는 한국어 고백성사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쉽다는 것이다. 어제의 경우가 그랬다. 모처럼 ‘자유스러운 모국어’로 하는 것이니까 그저 큰 문제가 없을 줄 잘못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과같이 준비를 철저히 하지를 못했다. 신부님께서 그것을 모르실까.. 아닐 것이다. 조금 신부님께도 미안한 심정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사제경험이 적은 ‘막내’신부님, 김영훈 스테파노 신부님에게 성사를 보게 되어서 조금은 다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이것을 피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었다. 거의 무조건 나는 고백성사를 해야만 하는 심정이었다. 그저 시작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제부터 나는 ‘정상적, 정기적’으로 고백성사를 잘 준비하고 잘 할 것이다. 이것도 레지오에 들어가면서 다시 생각한 ‘부산물’중의 하나라고 할까.. 참 성모님의 묵주기도는 오묘하다고 할까.. 정말 모른다.

The last 10% of work takes 90% of time. 이 경험적인 명언이 정확히 도 잘 들어맞는다. 물론 이것은 경험적으로 어떠한 과제를 과소평가 했을 때 꼭 들어맞는다. 년 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아래층 나무 마루 놓기, laminate flooring이 그것 중의 하나다. 비교적 작은 면적의 화장실의 마루가 그것이다. toilet 아래로 마루를 놓는 것이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던 것이다. Toilet을 분해, 그것도 완전히 들어내고, drain hole주변으로 동그랗게 cutting하는 것이 당연히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을 왜 예측을 못 했을까? 전에 toilet를 바꾸는 것을 해 본적이 있었지만 거의 10년이 되어가서 자세한 것을 다 잊어버린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drain hole에 wax ring도 필요하고, water line plumbing도 다시 해야 했다. 한마디로 조금은 ‘뼈빠지는’ 일 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것을 하고 나니 정말 보람을 느낀다. $$$도 엄청 save했겠지만 이 나이에도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나를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win-win이 아닐까?

 

雜想: 눈발이 흩날리는 일요일 오후에..

눈발이 흩날리는 일요일 오후에..  어느덧 2010년 대림 3주로 접어들었다. 그러니까 대림 초 3개가 켜지는 일요일이 된 것이다. 지난주에는 주일 미사를 빠지고 말았다. 그 전날 아틀란타 한인성당에서 있었던 레지오 마리애 연차 총 친목회에 거의 하루 종일 참석을 한 것이 조금 피곤했다는 것이 핑계가 되었다.

대림 2010 3주일
대림 2010 3주일

물론 핑계에 불과하고, 아침에 조금 피곤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명심을 하고 미국본당의 미사엘 갔고 Panera Bread (Cafe)에 들려서 평상적으로 small breakfast (bagels & coffee)를 즐겼다. 그런데 회색 빛 하늘에서 하얀 것들이 조금씩 내려옴이 보였다. 분명히 눈발이었다. 싸늘한 바람과 함께.. 아.. 기억에 남을 12월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경험적으로 십중팔구는 싸늘한 비가 올 시기에 어렸을 때 보던12월의 눈은 참 아름다운 느낌으로 과거와 함께 내려오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온다.

여기까지가 즐거운 것이고.. 다음은 다르다. 12월 자체가 완전히 무엇에 밀려가는 무거운 느낌인 것이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제일 극치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다. 그날로 그렇게 떠들고 북적대던 것들이 거짓말같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그것은 거의 고통이다. 물론 이것은 ‘세속적’인 풍경이지만, 믿는다는 크리스천들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오죽하면 유타주(State of Utah)의 한 주교는 ‘공문’으로 “12월 24일 이전에 크리스마스 기분을 즐기지 말라” 고 말까지 했을까? 나도 사실 이 말에 동감이다. 그것이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일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공인 교본: 완독(完讀)  어제로 레지오 교본을 한번 다 읽은 셈이 되었다. 비교적 얇은 종이로 된 책이라서 보기보다 분량이 많았다. 거의 500쪽이 넘는 분량이었다. 올해 10월 19일에 아틀란타 본당 꾸리아 소속의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에 예비 행동단원(공식 선서까지 3개월간의 대기단원)이 되면서 받은 책이 바로 이 공식 레지오 교본이었다. 이 책을 받으면서 단원들이나 단장으로부터 아무런 말을 들은 것은 없었다.

레지오 교본
레지오 교본

그저 공식교본이니까 읽어야 한다는 ‘묵언’ 정도만 나 나름대로 느꼈을 뿐이었다. 하기야 정기회합 중에 항상 조금씩 읽고, 돌아가면서 공부를 해 와서 발표하는 것은 보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그렇게 하다가는 시간이 너무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입단 1주일 뒤부터 미친 듯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냥 읽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지루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든 것이다. 그래서 조금 변화를 준 것이 keyboarding 으로 하는 ‘필사’였다. 한글타자를 치면서 읽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이것은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에 비해서 keyboarding을 하면 오타에 대한 신경이 쓰인다. 그러니까 더 정성을 드리게 되는데, 여기에 글이 의미를 파악하려면 더 ‘머리’를 써야 한다. 조금은 “고행”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주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거기다 다 읽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완전한 나만의 text copy가 남는 것이다.물론 이것은 copyright가 된 것이라 공개는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로 쓸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읽은 것은 ‘정독’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그저 ‘속독’ 정도가 될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읽음으로써 정말 내가 그 동안 가톨릭 신자로써 무심하거나 무식한 것들이 참 많았다는 것도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이 교본의 ‘역사’는 잘 모른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레지오의 90년에 가까운 역사를 고려한다면 이 책이 오랜 동안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에 근거해서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심오한 신학적 고찰과 거의 cookbook에 가까운 실제적 방법론이 기가 막히고 교묘하게 접목을 이루고 있는 이 책은 나에게 거의 제2의 성경에 가깝게 느껴진다. 1월 중순에 있을 정식단원 선서 전까지는 ‘완전 정독’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른 책들도 이것과 같이 잘 쓰여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Amazingly Stupid Chinese (Government)…  솔직히 말해서, 나는 ‘듕귁’ 이라는 말조차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듕귁정부라는 말은 더 좋아할 수가 없다. 더구나 빨갱이 듕귁과 듕귁정부는 지독히도 싫어했다. 각종 이유로 자기네 인민들을 수백만 명이나 굶겨 죽이고 문화혁명이라고 해서 모택동을 신격화하고.. 정말로 그들의 해괴한 행적은 끝도 없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드디어는 “인민의 적인 자본주의” 를 교묘하게 이용을 해서 흡혈귀와 같이 $$$를 거지같이 모으더니 아주 선진국같이 행세를 하려 든다. 머릿속은 19세기에 머물고 있으면서 21세기의 국제사회를 대하려 드니 문제가 없을 수가 없겠다. 그 “해괴한 행적 올림픽” 중에서 금메달은 “바티칸과 상관없이 가톨릭 신부,주교를 임명하는 것”이고 은메달은 노벨 평화상에 대해서 “몇몇 광대들에 의해서 듕귁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듕귁 외무성의 성명이다. 이들은 $$$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진 모양이다. 빨갱이 시절에는 무시무시하게 많은 인구 덕분에 핵전쟁도 무섭지 않다고 떠들더니 이제는 무시무시하게 많은 $$$ 덕분에 국제적인 관행을 마음대로 무시할 수 있다는, 역시 “빨간 짱꼴라” 적 발상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Elizabeth Edwards…  요새는 참 용감한 여성들이 많다. 과거에 비해서 더 많아진 듯 하다. 어떨 때는 남자들 보다 더 용감한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여성도 그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와 나이도 비슷해서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공적인 인물이 그것도 암과 싸우다 죽으면 더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모든 사람이 다 미리 알 수 없는 수명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모두들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산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내일 이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실감나게 든다. 물론 평균수명이라는 것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통계이고, 나는 그 통계와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나는 제일 가까운 사람, 나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느끼기 시작을 했고, 지금은 그런대로 유한하고, 비교적 짧은 인간수명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사는 셈이다.물론 이 ‘용감한’ 여성은 암이라는 병에 의해서 더 오래 살 수도 있었을 삶이 끝이 났지만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용감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arly Siberian Blast

드디어 온다. 하지만 한 달이나 일찍 온다. 진짜 추위가 Siberian Express.. 라고나 할까. 한반도에서는 Siberian Express라고 하겠지만 여기서는 Canadian Express가 더 맞는 말이다. 기온이 하루 사이에 무려 화씨 20도 이상 떨어지고 있다. 모래 새벽의 기온은 화씨로 15도까지 내려갈 예정.. 화씨로 15도면 섭씨로 얼마나 될까? 아마 영하 10도 정도가 될까? 좌우지간 이곳의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추위인데, 여기 바람까지 합세하면 wind chill(체감온도?)은 훨씬 더 심할 것이다. 12월의 이곳은 주로 싸늘한 비가 많이 오곤 하는데 12월 초에 이런 것은 나의 기억에도 거의 없는 것이다. 작년에 이런 강추위는 평년대로 1월에 시작이 되었다. 여름이 지독히 더워서 이것은 역시 예상이 되긴 했다. 연평균은 아직도 거의 일정하니까. 이곳이 이 정도면 북쪽지방인 mid west지방은 훨씬 더 추우니까.. 상상이 간다. 이런 것들 때문에 조금은 더 12월에 있는 ‘휴일’의 기분이 나긴 하지만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조금 괴로울 것이다.

어제는 나에게 조금 이색적이 날이었다. 모처럼 한국사람이 제법 많이 모이는 모임에 참석을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참가한 곳은 아틀란타 “한국순교자천주교회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제13차 연차 총 친목회”란 길고 긴 이름의 모임이었다. 이런 모임의 이름들은 사실 그렇게 생소한 것이 아닌 것이 연숙이 가끔 전에 언급을 했던 이름들이었기 때문인데 내가 그곳에 가게 될 줄은 정말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이것은 조금 신비스럽다고나 해야 할지 나도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다. 지난 10월 말 부터 나가기 시작한 레지오 회합도 이제 거의 2달이 되어오고 조금 성모님 군단 일원으로 조금씩 나의 모든 것들이 조정이 되고 있음을 느끼고, 그런 배경에서 참가한 이 연례행사는 나에게 너무나 은총과 기쁨의 시간을 주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많은 ‘전우’들을 보게 된 것도 그렇고 막강한 인원으로 같이 바치는 묵주기도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나는 사실 처음 그런 것들을 보는 것이다. 비록 동료단원들의 친목이 주 목적이겠지만 공식적인 기도, 신부님 참여 등등이 오묘하게 섞이어서 균형을 잘 맞추었다. 이런 모임이 다른 곳에 어디에 또 있을까? 물론 모두가 ‘행사의 프로’가 아니라서 모임의 진행이 100% 매끄럽지는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특히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중에 Audio system의 중요성을 이번에 느꼈는데.. 이것에 문제가 있으면 모임의 진행이 얼마나 힘든가를 절감했다. 이런 모임을 준비할 때는 이것부터 미리 점검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단원들이 열심히 참가를 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닐까?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IT support team

어제는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날이 되었다. 나로서는 너무나 오랜만에, “처음 보는 사람들”을, 그것도 한꺼번에 많이 만난 것이다. 그 자리는 한인본당 (아틀란타 한인 순교자 성당) 월례 ‘전산팀‘ 회합이 있었던 곳이다. 전산팀이란 간단히 말하면 IT support team일 것이다. 성당내의 여러 가지 technology: computer, network system, website등등을 개발 관리하는 본당 신자들의 모임인 것이다.

어제 이곳에 나가게 된 것은 역시 최근에 가입한 레지오의 영향이 지대적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레지오를 통한 “오묘한 일련의 사건의 고리”를 느끼게 되고, 이것이 현재 나를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이런 기회를 전 같았으면 무시하거나, 미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전산팀에 나가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레지오의 ‘본당협조’ 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전에도 자원봉사의 일원으로 본당을 돕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다만 그것을 이루는 다리역할을 못 찾은 것 뿐이었다. 이번에 레지오가 그 다리를 이어준 셈이다. 거의 모든 교회나 성당들이 시대의 흐름으로 IT (Information Technology)의 역할이 필수적이 되었다. 처음 주보 정도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서 신자, 회계관리 같은 것 등도 다 전산화가 되었다. Internet의 일반화로 이제는 website도 필수가 되었다. 이런 것들을 모두 맡아서 전산팀 멤버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성당의 양적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IT support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배경을 생각하며 전산팀 회합에 처음으로 참석을 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는지 참 궁금했다. 2시간 남짓의 회합은 참으로 유익한 것이었다. 나의 의문점을 거의 다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단체에서 나는 ‘은퇴세대’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곳은 조금은 그런 rule에서 예외가 아닐까 희망을 해 본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IT skill set은 지금 성당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과 많이 중복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 당장 도울 수 있는 분야는” physical” computer system, (WAN,LAN) networks, phone system intergration정도가 아닐까 생각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분명해질 것이다.

 

주민등록번호, 자비의 모후

동창회 가입을 하는데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라고? Hell, NO! 참 망할 놈의 세상이 되었다. 동문 친구의 연락처를 알아보려고 연세대 총 동문회 (http://www.yonsein.net) 를 반갑게 찾아서 회원등록을 하려다 아주 씁쓸한 심정으로 포기하고 말았다. 이게 무슨 개 같은 case란 말인가? 이곳의 social security number같은 것을 왜 동창회에서 물어 봐야 하는가 말이다.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이제는 가입해 준다고 해도 할 마음이 없다.

자비의 모후… 오늘은 드디어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소속의 “자비의 모후” 프레시디움 (레지오 마리애의 제일 작은 모임의 단위: 로마군단의 명칭에서 유래) 정기회합에 참가를 했다. 이것은 나로서는 참 힘든 일을 한 셈이다. 3년간의 연숙과 같이 집에서 한 묵주기도의 결실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는 묵주기도와 이렇게 공동체에서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 같다.

내가 가입한 “자비의 모후” 에는 현재 모두 자매님들 뿐이다. 그리고 거의 나의 인생선배들이시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모처럼 푸근한 기분을 느꼈다. 누님들을 한꺼번에 많이 만난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분들로부터 나는 신앙적으로 인생의 선배로 많이 배우고 싶다. 3개월의 “대기기간”을 마치면 정식단원이 되는 것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제 나에게 하느님을 보는 또 다른 “길”이 생긴 것이다.

 

Legio Mariae, Power of Google

레지오 교본
레지오 교본

드디어 결정의 순간이 왔다. 어제 연숙에게 돌아오는 주부터 아틀란타 한인성당의 레지오 마리애의 회합에 참석을 하겠다고 “통고”를 하였다. 내가 나의 등을 “칼”로 떠 민 것이다. 이번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간단히 때가 온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거의 3년이 넘게 뜸을 들인 결과인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그 동안 협조단원이었고 거기서 더 적극적으로 정식단원이 될 마음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상태로 3년이 지났다. 그 동안은 연숙과 같이 거의 매일 밤 묵주기도를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아주 간단한 사실이지만 결과는 나도 예상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묵주기도의 묘미를 1%나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나는 믿게 되었고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협조단원과 정식단원은 아주 다를 것이다. 우선 매주 한번씩 회합에 나가야 하니까. 우선은 그것이 제일 큰 변화일 것이다. 내가 가입하는 쁘레시디움은 현재 모두 자매님들 뿐이다. 아마도 다른 곳도 별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선 내가 망설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핑계였다. 자매님들만 있으면 어떻고 형제님들만 있으면 어떨까, 그것이 사실 무슨 문제인가? 3개월의 대기기간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끝나면 정식으로 단원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모양이다. 한번 해 보자.. 못 할 것이 무엇이냐.

 

Googling의 위력… 오늘은 아주 우연히 한국에 있는 먼 친척의 이름으로 googling을 해 보았다. 이건 전혀 우연이었다. 나의 먼 친척 동생(1살차), 유명근을 넣었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나왔다. 동명이인도 많았지만 “서울농대” 까지 넣으니까 완전히 찾아 내었다. 이것이 Google의 위력이다. 인터넷에 노출된 것은 거의 모두 그 monster server에 다 index가 된 것이다. 나의 어머님 쪽의 가계를 찾는 것은 지금 거의 불가능하다. 모두 이북 원산에 사실 것이니까. 아주 일부만 남쪽으로 내려왔다. 아버님 쪽의 족보를 찾는 것과 병행을 해서 어머님 쪽도 알아보려는 것이다.

다행히 어머님의 사촌 언니일가가 서울에 사셨다. 혈육이 거의 없어서 그런대로 서로 가까이 다닌 것이다. 그 이모님의 자녀 중에 유명근을 Google에서 찾은 것이다. 아주 성공적인 경력이 보였다. 삼성그룹 방계회사의 사장을 역임한 것으로 나왔다. 문제는 어떻게 연락처를 찾느냐 하는 것이다.

마찬 가지로 재동국민학교 시절의 친구 정문신도 이곳에 금새 보였다. 그 동안의 의문들이 모조리 풀렸다. 성동중고를 졸업하고 한양대를 나왔다. 금새 성동고 동기회로 연결이 되어서 거의 순식간에 그가 하나모듈의 사장이란 것, 큰 아들이 얼마 전에 결혼을 했다는 것.. 모두 나왔다. 거의 꿈처럼 느껴졌다. 이런 세상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조금 무서워진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Madison, Wisconsin에서 만난 중앙고 후배 강태중도 이곳에서 찾은 것이다. 교육학 전공이던 그는 비교적 공적인 삶으로 나온다. 신문의 인터뷰기사에서는 웃음을 띤 그의 얼굴도 보인다. 착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성실한 아빠고 남편이었다. 아들 “참”이의 이름이 생각이 난다. 우리 큰딸과 비슷한 나이였으니 혹시나 결혼이라도 한 것이 아닐까? 인연이 되면 알 수도 있겠지. 그는 중앙대학교의 교수로 재직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하지만 충격적인 슬픈 소식도 있었다. 중앙고 은사님, 음악선생님, 고1때의 담임 선생님 김대붕 선생님께서 2003년에 타계하신 것을 역시 이곳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물론 모른다. 최소한 그때쯤 돌아가신 것이다.이럴 수가 있나?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이곳에서 그 선생님을 추억하는 글도 썼으니.. 내가 한심하기만 하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인터넷의 점진적이고 철저한 확산으로 세상은 많이, 그리고 확실히 바뀌고 있다. 좋건 나쁘건 이제는 피할 수 없는 것들, 어떻게 이것을 유용하게 쓰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더 현명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