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일기

오랜만에 ‘성가신 아침 햇살’ 이 없는 아침을 맞는다. 왜 그렇게 나는 많은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햇살을 성가셔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의 후반부 (언제부터 인지는.. 확실치..않지만 아마도 40대 이후가 아닐까) 리고 비가 오는 그런 것을 아주 많이 좋아하였다. 이유를 따지면 사실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나의 ‘세계관’이 그랬을 것이다. 확실히 나는 어둡고 우울한 그런 인생후반을 보내고 있다.  밝음에 노출된 나의 못생긴 모습도 그렇고 아틀란타에 와서 느끼는 한마디로 지겨운 밝음에 의한 피곤도 한몫을 한 걸까. 그래 지겨운 그런 것이다. 반면, 어두움에 깔린 을씨년스러움에서 나는 안락 함을 느낀다. 어릴 때 그 추운 날 따뜻한 이불 속을 연상케 하는 걸까.

어제는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몇 주 동안 눈독을 들이던 그런대로 최신판 Mobo/cpu를 mwave.com에 order를 한 ‘사건’이다. 이게 사건이나 될까.. 이 의미는 ‘돈’을 이만큼 지출했다는 뜻에서 사건이다. 변명은 있다. 이것은 ‘오락’적인 것이 결코 아니고 ‘투자’라는 변명 아닌 변명일까…

며칠 동안 Bee Gee의 oldie, First of May 가 머릿속을 맴 돌았다. 몇 년 전부터 이것을 ‘기록’해둔 덕에 아주 이제는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듯 하다.  왜 아닐까?  거의 신화적인 기억이 되어버린 그 아름다운 시절을 왜 아니 잊으랴. 용현아, 너는 어디에서 이 시절을 보내고 있냐. 창희야,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그 아름다운 시절을 잊은 다른 사람이 되었단 말이냐.  친구야, 지금이 어쨌건 상관이 없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우리에겐 그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더냐.. 부디 어디에서 살건 잘 행복한 나날이 되어랴, 하느님의 도움이 조금 있다면 언젠가 살아서 다시 만나서 그 아름다운 추억을 이야기 해 볼 수도..있지 않을까. 그래 그것도 조그만 소망중의 하나로 만들자.  그래 1977, 1988, 1999, 2000, 2011, 2022… 그 다음의 수열은?

우리 집의 main home server ‘FS’가 아주 큰 수술을 받았다. 이것보다 더 큰 수술은 없다  아주 MoBo(Mother Board)를 바꾸어 버렸다.  그것도 아주 down-graded쪽으로.  Athlon 2400+ 에서 Intel 600로 강등이 된 것이다. 이상한 것은 이게 더 마음이 놓인다는 사실. 그 만큼 경험으로 이 Intel 600가 더 문제가 없었다. 현재의 느낌으로는 비록 느려지긴 해도 훨씬 덜 말썽을 부릴 듯 하다. 문제가 있던 Mobo 는 우선 Ubuntu-server 를 올려 놓았다. 재수가 좋아서 그대로 Linux는 쓰게 해 주실지.  문제는 Intel600가 실제적으로 512MB max라는 사실. 그러니 무제한의 VM을 쓸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대로 2 VMs가 간신히 돌게 해 놓았다. 그래서 또 잠시 ‘몽상’에 빠졌다. 최신의 Mobo/CPU의 값이 얼마나 하는지 eye-shopping을 즐긴 셈이다. 물론 priority game에서 지긴 했지만. 계산에 $250정도면 아주 그런대로 ‘최신’의 것으로 장만할 수는 있는데.. 이게 또 걸린다. 제일 슬픈 현실중의 하나다.

올해는 ‘축복의 봄’을 보내는 느낌이다. 그렇게 적절한 때에 비가 내려준 것이다. 예상 밖이다. 현재까진 그랬다. 이건 정말 정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끈끈한 밤은 지독히도 싫지만 그래도 이런 축복의 날도 곁들이니 이게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도 이렇게 감사할 일을 찾으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저 내가 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감에 너무나 동떨어진 인생을 살고 있어서 나는 감사를 못하는 것이다. 그 비현실적인 기대도 버리기 싫다. 나의 능력의 문제인데, 하느님이 나에게 그만큼은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이 60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내가 잘못 생각을 했는지도.

요새는 자주 송봉모 신부의 강론 테이프를 듣는다. 시작은 모든 home analog media의 digitize의 일환이었지만 아직도 digitize는 시작은 못하고 있지만 사실 기술적인 문제는 거의 해결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조금씩 듣게 되었다. 오래 전에 YS (이게, 영삼이도 YS구나)가 그렇게 좋다고 권했던 게 생각은 나지만 그때는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런대로 잘 들린다. 그 중에서 제일 공감이 갔던게… 꿈에 대한 의견이었다. 그는 아주 꿈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강조했다. 나도 언젠가부터 그랬다. 꿈은 아주 random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 성서에도 근거가 있지 않은가. 나도 조금 더 ‘조직적’으로 꿈을 꾸려고 노력을 하고 더 심각하게 해석을 하려고 한다. 그저 그리운 사람들이 많이 많이 나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나라니 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가면서 이사를 하는 날이다. 정말 나라니의 대학생활이 나에게는 몇 달 정도처럼 느껴진다. 정말 빨랐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래도 우리 부부 모든 자식에게 의무를 우선 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하느님의 도우심일 거다. 나라니도 그런대로 수고를 했다.

묵주기도는 다시 조용히 재개 되었고.. 정말이지 하고 나면 무언가 기분이 다르다. 무언가 있다. 무언가 있다. 나의 하느님으로 향한 마음의 문은 확실히 최고로 열려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사실 언제일지 모른다.  모든 힘을 다하여 한번 하느님께 가보자.  성모님, 예수님, 하느님..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주신 분들 특히 연숙이.. 어떻게 나의 고마움을 표현을 할까.

진희아빠가 전화를 했는데.. 이것은 완전히 shocker가 아닌가.  이동수목사가 위암에 걸려서 수술을 했다는 것인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닌가.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이번에는 정말 죽음이 나의 근처까지 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를 않은데도 그 중에 몇 명이나 벌써 갔던가.  만수아빠는 교통사고, 백명순씨(연숙의 친구), 김예순씨, 박만용씨, 최진착씨(자살), 박창우씨, 그리고 이동수씨는 위암?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이동수목사는 고생을 많이 한 편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하나님이 그 목자를 시험을 하시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위암은 그렇게 까지 치명적인 것이 아니니까.. 완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항상 수술 후 5년까지.. 정말 아찔하다.

올해는 최고로 일찍이 사순절이 시작이 되었다.  2월이 가기 전까지  Acts of Apostles, 사도행전을 다 typing을 하였다. 그것도 영어와 한글로 다 같이.  쓰는 것에 비하면 뭐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년 만에 다시 읽는 ‘사도행전’.. 마음을 열고 눈을 뜨는가… 느낌이 그렇게나 달라질까?  정말 놀랐다.  3월부터는 요한복음을 영어로 읽기 시작했다.  정말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항상 공관복음만 들었는데.. 처음으로 읽는 기분이다.  사실 일고 보니.. 그 ‘유명한’ 구절들은 거의 모두 이곳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John 3:16같은 것..

3월 3일에는 그렇게 ‘걸리던’ 고백성사를 보았다. 미국성당이라 거의 형식적인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게 아니다.  마음의 준비가 거의 99%라고 느끼니까.  그래서 너무나 홀가분 하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매년 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나의 하느님으로 향한 ‘마음의 문’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는 것을 느낀다.  이것도 작년부터 시작한 묵주기도의 ‘은사’일까.. 아니면 은총일까.  모른다..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느낀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하느님을 향해서 말이다.  그렇게 안 믿어 지던 것들도 이제는 믿어지는 쪽으로 향하는 나를 보고 나도 사실 놀란다.  이 모든 것이 그렇게 듣던 말과 같이 사실이란 말이다.  이게 모두 정말일까.  이게 다 사실이라면 앞으로는 어떨까.  나도 다시 어머니를 볼 수 있을까.  모두가 영생을 누릴 수 있고  육신을 떠난 더 높은 영혼의 세계가 앞으로 있을까.. 모든 게 신비롭게만 느껴 지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의 마음을 열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Stephen CoveyFirst Thing First를 읽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성경 다음으로 이게 나의 ‘다음성경’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다. 이 책은 아마도 성경을 배경에 두고 씌어진 기분도 드니까 (이 저자는 사실 유타주 출신의 Mormon교도)  결국은 spiritual direction/goal이 없으면 결국은 ‘허무’하다는 뜻일까.  이제는 그게 이해가 간다.  무한대와 유한공간, 영원과 현세의 찰라.. 영혼과 육신.. 이런 게 이런 게 모두 나의 살에 와서 느껴진다. 아마도 나도 죽음에 대해서 많이 실감을 하며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사람(Covey)말 대로 이제는 Leave a Legacy가 제일 중요한 관심이 되고 있다. 나의 존재의 의미를 느끼며 남겨야 하지 않을까.  이게 거의 본능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남겨야 하나.  어떻게 남겨야 하나.  누구에게 남겨야 하나.

아주 드문 일이지만 어젯밤은 연숙이 나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 침묵 피정을 다녀 온 후에 무언가 해 보려는 것 같다. 오늘도 새벽 6시 30분 전에 일어 나게 되었다. Tobey 토비를 보니, 그 net 망같이 생긴 담요를 아주 포옥 덮고 잔다. 그걸 안 덮었으면 추울텐데.. 하며, 신경을 쓰며 잤는데 그 녀석 본능적으로 그 밑으로 파고 들어가서 덮고 잔다. 역시 걱정한 내가 틀렸다. 가끔 이 녀석과 시간을 보내며 어떨 때는 이 녀석이 사람이 개가 되어서 외로운 나에게 친구로 보내 졌나.. 하는 아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말만 못 할 뿐.. 감정의 교류나 표정하며 알아 듣는 것 하며 정말 사람처럼 느낄 때도…

2월도 중순이 훌쩍 지나고 춘분을 향해 돌진 중이다. 어제 Tobey 토비와 산책을 하면서 우연히 아니 설마 하며 본 것이 그 흔하던 Bradford Pear tree의 꽃망울이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놀랐다. 진짜 초봄이.. 그러고 보니 어제가 ‘우수’ 였던가.  내가 그걸 놓쳤다. 입춘도 훨씬 전에 지났고. 그래서 기온도 거의 50도에서 60도 사이로 왔다 갔다 하는구나. 그 배꽃이 제일 먼저 필 때가 온 것이다. 봄이.구나.. 장모님의 기일도 곧 이고. 그러면 나의 사랑하는 엄마의 ..  사순절에 하려던 매일 과제는 아주 순조롭게 실행을 하고 있다. 생각 보다 시간이 더 걸리지만 오랜만에 읽는 사도행전.. 아주 좋다. 이제 확실히 초대교회의 성인/사도 들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신화’같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구약처럼).. 아주 현실감과 사실감이 많이 느껴진다. 그때 사람들도 요새 사람들과 생각 하는 게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도 해 본다.  그래도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롭다.

어제의 ‘유서’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제는 때가 온 듯 느낀다. 무언가 ‘심각’한 것을 남겨야 한다고. 더이상 미룰 수가 없다. 며칠 전 김정국씨가 운명한 것을 듣고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그는 거의 나의 ‘동료’적인 사람이 아닌가. 비록 친구는 아니었을 망정 거의 나와 같은 게 많았던 사람이 또 갔다. 그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갔다. 어떻게 이승을 떠나는 게 나에게 바람직 할까, 우선은 더 살고 싶겠지. 하지만 이것도 많이 전과 많이 달라졌다. 60을 넘긴 이상 많이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삶의 애착이 옛 처럼 많지 않다. 이렇게 외롭게 사는데 앞으로는 더 외로우리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원래가 외롭게 살았지만 지금처럼 외롭게 느껴본 적은 없다.  다 갔다. 나의 사랑하는 엄마가 없다. 유일한 혈육인 누나가 옆에 없다. 실제적으로 나는 고아다.  이세상에 현재의 ‘만들어진’ 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친구도 없다. 하나도 없다. 나는 절대적으로 혼자이다. 그저 그리운 과거들만 있다. 그게 현재로써 나의 유일한 기쁨이다.

한 마디로 왜 내가 지금과 같은 처지가 되었는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했는지 운명이란 건가.  물론 나의 선택일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전혀 ‘사고’같은 뜻밖의 인생을 산 듯한 기분이다. 이건 내가 예정하고 상상했던 나의 인생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 나의 선택이었고 시대의 선택이었고.. 그리고 운명이었다. 이렇게 살게 것이. 하지만 절대로 나 이외의 것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한마디로 ‘치사’한 짓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 행동이었고 선택이었을 테니까. 성격 탓인가. 그것도 원망하지 말자. 그건 나의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이니까.  한 마디로 현재까지 흘러온 나의 인생은 거의 ‘실패’나 ‘낙제’ 점수 일지도 모른다. 남이 볼 때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볼 때 그렇다. 의도적으로 된 게 거의 없으니까. 세파에 아니면 환경에 휩쓸리면 살았어도 그건 나의 책임이다. 패배의식은 분명히 나쁜 것이지만 솔직한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을까.  어머니를 그렇게 돌아 가게 한 것으로 나는 99.9% 불효자이고 인생 낙오자다. 암만 생각해도 그건 말도 안 되는 불효요, 무관심이요, 불성실이요, 나태요, 패배자요, 용기가 거의 제로인 인간의 행동이었다. 시간과 세월을 가지고 도박을 한 용기가 없는 패배자는 바로 나였던 것이다…

어제 김정국씨가 영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골통을 꽝~하고 치는듯한 느낌, 바보 같은 느낌.. 또 시간을 가지고 놀았다 하는 느낌.. 우리세대도 죽음의 세계로 완전히 돌입한다는 조금 과잉우려 같은 이런 저런 복잡하고 착잡한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김정국씨는 다행히도 하느님을 많이 알고 믿으면 저 세상으로 갔으리라 확신을 한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분명히 같은 분이실 거다.  김형, 먼저 가서 나의 자리 좀 잡아놓고 기다리쇼..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역시 내가 이렇게 시간을 멋대로 해석하며 사는 것에 대한 우려와 실망은 금할 도리가 없다.  아니 나의 인생이 그런 인생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보미 아빠.. 딸 손주도 못보고.. 흔히 하는 세속적인 소리지만 슬프기 그지 없소.  그 예쁜 딸을 두고 먼저 간다는 게 그렇게 슬프구료.. 정말이오..  서로가 생각도 조금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고 하지만 우리는 더 가까이 지낼 수도 있었던 그런 인연도 있었는데.. 이것도 아마도 서로가 생각만 하며 끝이 난 모양이오.  그런 면에서 김형이나 나나 비슷한 듯 하오.  분명히 더 거의 형제같이 지낼 수도 있었던 인연이 있었는데 참 서로가 무참히 도 무시하며 외면을 했구료.. 아.. 하느님.. 그를 따뜻한 손길로 받아 주시옵소서.. 김형 그곳에서 편안히 잘 지내시구료.. 우리 모두 언젠가는 다 다시 만날 꺼 아니요..

이제는 ‘명실공히’  나는 60세가 넘었다.  앗 싸리 넘어 버리니까 조금 후련한가.. 그러니까 그걸 기다리는 게 더 초조 했던가.  매도 먼저 맞고 주사도 먼저 맞으라는 것과 비교가 될라나.  아마도 남들도 그렇게 느낄지도.  마음 같아서는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보내고 싶은 심정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우선 우리 ‘극성맞은’식구들이 그렇게 놔둘 리가 없고, 나도 그건 좀 너무한 것 같은 생각도.  그래도 예상보다는 더 차분하게 그리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연숙과 나라니 가 참 정성껏 모든 것에 신경을 쓰며 보아주었다.  이번에는 나도 좀 이 ‘극성맞게’ 일을 하는 모녀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식구’의 본래가 아닌가..

십 년이 넘게 눈에 거의 보이지 않던 ‘통’ 기타를 잡아 보았다.  물론 미끄럽게 이것을 다시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좌우지간 그걸 ‘치게’도 되었다.  한마디로 감개가 무량하고 옛날의 거의 산화가 되어가는 악보를 다시 보니 그런대로 생각도 나는 듯 하였다.  엇그제 같기도 하고 아주 몇 백 년 전 같기도 하고 조금은 혼동도 되는 게.   무슨 소릴하는 건가.  다 생각이 나는데.  그냥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 뿐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10년 그러니까 나의 50대..는 정말 정말 정말 힘든 세월이었다.  거의 한번도 행복이란 걸 느낄 수 없는 세월들.  내가 인생의 어려움을 잘 감당을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때의 상황들이 그렇게도 어려웠던 것일까.  아마도 둘 다 일 거다.  하지만 어렵다는 걸 일초 일초 느끼며 살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는 뜻도 되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 치는 않지만 최동명씨의 지론에 의하면 그런걸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배가 부르다’는 뜻이란다.  하지만 사람이 배가 부른 게 다 인가 말이다.

하기야 그렇다.  배고픔 정도까지 만약에 경험을 하거나 걱정을 할 정도가 된다면 그렇게 될지도.  다행히 아직(?)  나는 그런 경험은 못했다.  한마디로 어머님의 철저한 도움으로 나는 컸으니까  생각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은 아니다.  아직도 나는 막연히 ‘누군가’ 나를 도울 거라는 거의 형편없는 ‘망상’을 가지고 사는 지도 모른다.  나도 그게 싫지만 한편으로 ‘즐기는지’ 도 누가 아는가.

강 추위 계속.. 나의 환갑생일날.. 아득한 옛날.. 엄마 고마워요..

강추위가 계속된다.  대한이고.. MLK [Martin Luther King] 휴일이고.. 나의 환갑날이다.  차분하게 느끼려고 노력 노력을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안정되지 못함을 느낀다.  나도 무언가 ‘선’을 넘는 듯 한 느낌.. 남들도 다 이랬을까.. 아니다.. 개개인 마다 다 느낌이 다를 것이다.  어머니, 고마워요.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이런 날도 맞게 해 주셔서.  아니 이세상에 ‘이경우’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가능케 해 주신 것.. 기억조차 없는 아버님께도.. 그리고 엄마 아빠를 존재케 해 주신 조상님들 모두 모두…

어제 저녁에는 모처럼 식구들과 함께 부엌에 앉아서 오늘 쓸 음식준비를 거들었다.  나라니 와도 정말 모처럼 도란도란 얘기도 했는데.. 느낌이 어쩌면 그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역시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고.. 대화도 같이 앉아야 더 재미있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더 나라니 에게 대한 나의 감정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더 느낀다.  아마도 아마도 이 모든 나의 느낌은 내가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만은 항상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할것 같다.  기도에서도 이것을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간밤에는 참 재미있는 두 가지 꿈을 꾸었다.  그게..참.. 현재 Democratic party의 John Edwards의 선거운동에 내가 참여를 한 것이다.  이게 또 무슨 개꿈일까 아니면..  최근 들어 고전을 하는 그가 불쌍해 보였는가.  아니면 암 투병으로 고생을 하는 연상의 부인 때문일까.  그 부인과 악수도 하였다.  신나게 노래도 하였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나의 잠재의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사실 그런 미국대통령선거를 피부로 느낄 정도로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다음이 더 추억거리인데.. 국민학교 6학년때 짝이었던 “이규재”를 어릴 때의 얼굴로 보았는데, 사실 너무 반가웠다.  그는 나처럼 반갑지는 않았던 듯 한데.. 그에게 다른 그때의 친구들에 대해서 물어 보려는데 거기서 끝났다.  이규재..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도 경기 중학교에 갔나.  사실 아무런 그 이후의 소식은 모른다.  그도 죽기 전에 한번 소식이나 들을 수 있으려나..

짙은 안개와 젖은 땅.. 조금씩 개이는 그런대로 포근할 것 같은 2007년 마지막 날..

결국 2007년도 마지막 날로 접어들 수 밖에 없었다. 

한 해가 슬그머니 가려고 하고 있다.  못 막는다.  이건 신이 주신 법칙이다.  거역할 수 없는 거야.  앗 사리 즐겁게 맞이 하는 게 난 것이다.  웃어라.. 웃으려고 노력이라도 해라.  무언가 티끌만한 것이라도 움직여서 하라.  무언가 먼지만한 것이라도 ‘성취’하라.

올해는 연숙과 둘이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라니가 이화친구들을 만나러 뉴저지로 갔기 때문이다.  사실 둘이서만 보내는 게 편하기는 할것 같다.  무언가 ‘부담’을 덜 느끼게 될 테니까.  휴일/명절마다 나를 짓누르는 이 ‘부담감’때문에 올해는 더 우울하게 보낸 것 같다.  이제는 아주 병적으로 부담을 느낀다.  이게 무슨 망발인가 말이다.  이래서 ‘선물’로 치장이 된 휴일들을 더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것인지도.  하지만 이건 내가 바뀌어야 할 듯 하다.  노력을 해서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서 본격적으로 Linux 를 가지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동안은 사실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이번은 최초로 ‘본격적’으로 Linux installation부터 씨름을 해서 hands-on experience를 얻어가고 있다.  우선의 목표는 multibooting from Ubuntu or Fedora인데.. 이것으로 간접적으로 다른 것도 배우게 되겠지.  아주 오래 전에 DOS 시절에 그렇게 많이 command line 을 썼건만 아주 이제는 둔해진 기분이다.  최근 들어 Linux에 관한 책도 그런대로 모았다.  물론 거의가 $10이하로 한정은 했지만 그래도 만족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hardware에 관련된 Linux는 나를 ‘살게 하려는 의욕’에 큰 보탬을 주고 있다.  사실 그건 나를 거의 즐겁게 할 정도가 아닌가.  그 다음은 새로 산 Linksys’ SPA3K VoiP Gateway이다.  거의 이상적인 device이건만 아직도 결말을 못보고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과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내가 거의 일년간 미루고 있었던 그야 말로 must-do project인데.. DotNetNuke, Polaway Database등등.. 해야 한다.  해야 한다.. 죽기 전에 해야 한다.. 나는 이것만은 해 놓고 그 다음이다.. 해야 한다.

언제부터 나는 정말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을 했더라.  분명히 나는 희망이 거의 없다고 생각할 때부터 그랬다. 희망의 부재, 모두 어두움의 자식들이다.  나는 분명히 내리막길로 맹렬히 달리고 있다고 느꼈고.. 지금도 느낀다.  부드럽게 말하면 사는 ‘재미’가 거의 없다는 생각이다.  아니 나는 분명히 거의 다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이런 상태로 산다면 60세도 많이 살았다고 생각을 해도 될지도.  물론 생명과 수명의 하느님의 권한이다.  나는 그저 생각만 할 뿐 행동은 못한다.  이제는 조금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하며 아니 그보다는 느끼고 싶다.  그게 현재 나의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이런 것으로 보면 연숙과 나의 사랑하는 두 딸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게 죄스럽고,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지난번 일기에서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느낌이다.  하지만 이틀밖에는.. 놀라운 일이다.  조금은 나도 걱정이 된다.  내가 왜 이럴까.  생각보다 심각한가.  왜 이리 우울한가.  식구가 다 모였건만 별로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무언가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 심지어 괴롭게 느껴지기까지.. 왜 이럴까.  조금 있으면 윤형 댁으로 저녁초대를 받아서 간다.  이게 그렇게 신경이 쓰이게 가기가 싫다.  왜 이렇게 이런 것들이 부담이 될까.  분명히 사람을 만나는 게.. 내가 진정으로 우울증으로 이럴까.. 조금 조금 걱정이 된다.  아니면 지금의 특별한 계절의 영향.. 환갑이 다가 오는 것 때문에.. 아니면?  정말 정말 괴롭다.  몇초만 이라도 좋으니 기분이 ‘좋게’, ‘반짝’ 할 수 없을까?

지난 며칠은 “가상적”인 병 속에서 조금 쉰 기분이다.  daily routine을 거의 중단하고 ‘아픈’상태로 살았다.  정말 아프지는 않았지만 사실 아프고 싶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꾀병일까.. 아니다.. 나는 분명히 ‘정상’이 아니다.  마음과 몸으로 아픈 것이다.  그래도 그런 중에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나의 ‘작은’ projects일 꺼다.  Linux, X10 controls, VoiP, SPA3102, Ubuntu, Fedora, etc etc..  이런 것들이 유일하게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  왜 사람들을 기피하게 되는 것일까.  내가 이 정도는 아니었지 않은가.  어떻게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어떻게 ‘큰’ 날들 (명절, 생일, 환갑 등등)을 맞이하며 보내야 하면 어떻게 하면 ‘즐겁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을까.

성탄도 5일 밖에 안 남았다.  세월과 시간은 잘도 흐른다.  더 길게 시간을 보낸다고 큰소리 치는 내 자신이 우습다.  그럴수록 더 빨리 흐름을 느끼니까.  매일 매일 ‘불안’함과 ‘미안’함.. 그리고 쫓기는 느낌 어쩔 수가 없다.  분명히 나는 우울한 것이다.  간혹 반짝하는 ‘희망’ 같은 것을 느낄 때도 있다.  그게 사실은 정상적인 느낌이 아닐까.  그래.. 희망의 부재.. 희망이 거의 없다고 느끼는 것.. 그런 것이다.  크게 기대할 것도 없고 시간이 가면 더 무언가 즐거운 일이 생길 거라는 .. 그게 희망이란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게 없어 진지 꽤 오랜가 된걸까.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 성인들의 사랑을 어떻게 하면 느낄 수 있는 것일까.  그게 나의 과제이다.  기도 밖에 없는 것일까.

최근에는 home network/system이 순조로워져서 그것은 만족이다.  이것이 심리적으로 주는 영향은 사실 나의 생활패턴에선 막중한 것이다.  이게 잘 되면 그런대로 아니 ‘아주’ 기분이 좋으니까.. 이런 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중의 하나다.  새로운 것.. (주로 역사적, 종교적)에 대해서 배우는 것도 그렇고.. 좌우지간 에 ‘배우는’것은 나를 기쁘게 하고 그 중에서도 책으로 배우는 것.. digital hardware가 관련된 모든 기술적인 것들.. 내가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을 public에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 이것들 다 나를 지탱시켜주는 조그만 행복들이다.

모처럼 몸이 나른한 게 아마도 조금은 열이 나지 안을까.. 아니면 몸살 끼.. 하지만 괴로울 정도는 아니지만 심신이 조금은 쳐진다.  이걸 아프다고 하면 분명히 꾀병이다.  아니 조금 아프고 싶다.  쉬고 싶다.  뭐 매일 쉰다고 하며 할 말은 없지만 나 나름 대로 일과가 정해진 게 있고.. 그것도 ‘일’이라면 일이다.  이제야 집에서 ‘논다’는 가정주부의 일들을 생각한다.  그게 노는 것인가.. 더 일이 많이 않은가.  그걸 논다고들 말을 했으니.

나는 더 이 일기에 솔직 해져야 한다.  ‘잔혹할’ 만큼 더 솔직해 져야 한다.  내 자신에 솔직해 져야 한다.  그게 가슴이 아프더라도 나 자신을 거짓으로 위로를 하면 안 된다.    오늘은 저녁에 우리 큰딸 새로니가 워싱턴 DC 에서 오는 날이다.  그렇게 보고 싶어야 하겠지만 사실은 그 정도가 아니다.  매일 전화를 주는 그 애.. 바로 여기서 같이 사는 느낌을 줄 정도다.  그러니까 떨어져서 산 기분이 별로.. 참, 부러울 정도로 밝은 애로 성장을 하였다.  나를 닮을까 봐 그렇게 조금 걱정을 했지만 아마도 엄마를 닮은 듯.. 모든 게 이성적, 객관적, 논리적인 것 좋지.. 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아무래도 .. 그래서 연애를 못할꺼야.. 나는 안다.  그런 것들…

어제는 아주 ‘추운’ 비가 내렸다.  아주 정말 오랜만에 보는 광경을 보았다.  구질구질한 그런 것들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게.. 가뭄 때문이다.  요새는 사실 가뭄이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심하게 느끼지 않는 게.. 물을 쓰지 않는 계절이라서 그런지도.  하지만 심각한 문제다.

나는 더 솔직해 지고 싶다.  정말이다.  이곳에서도 솔직하지 않으면 나는 가망이 없다.  다른 아무 곳에서도 나는 솔직할 수가 없다.  이곳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이 쉽지를 않다.  머릿속의 생각만 솔직한 것이다.  그게 무엇인가 밖으로 나오면 ‘색깔’을 입게 된다.    지난 며칠간도 참 바보같이 시간을 보낸듯하다.  해야 할 것만 제외하고는 다른 것만 긁적거린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성탄과 새해로부터 오는 stress도 또한 즐겁지 않다.  솔직히 하나도 즐겁지가 않은 것이다.  이게 바로 요새의 나의 불행인가.  묵주기도가 도움이 되겠지만 이것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일까.

어제는 거의 일 년 만에 P 부부와 밖에서 식사를 했다.  사실 거금을 쓴 셈이다.  연숙이 그것을 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조금 과용을 한 듯, 맛은 좋았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대화도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다.  무언가 바퀴가 어긋나게 도는듯 무언가.. 안 어울리는 대화랄까.  이게 분명히 나의 문제일 꺼다.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을 듯.. 분명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 것이다.  어찌 하면 더 즐거울수 있을까.

정말 사는 게 재미가 없다.  추억의 세계로 심하게 빠져든다.  혼수상태 같이 추억의 세계로 빠져들면.. 무슨 환각에 빠지는 듯.. 행복을 느낀다.  그게 유일한 나의 행복이다.  그 시절 그 때를 생각하는 게 나의 행복이다.  다시는 올수도 없고 갈수도 없는 그때를 나는 그리며 사는 것이다.

아침 7시가 조금 지난 컴컴하고 조용한 아침.. 나는 완전히 졌다.. 이번에는..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향기 나는 아침의 커피 맛을 내가 조금 과소평가 했던가.  아니면 나의 ‘절제’이유가 너무나 구차스러웠는지도.   기본적인 이유는.. 사실 점점 내가 ‘지고’있다는 느낌 때문이었고.. 또 나를 시험해 보려는 조금은 지나친 것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구차스러운 동기였는지도.  우선은 이런 ‘과도한 시도’를 완화하기로 했다.  우선은 조금만 절제하자.

일요일에는 정말 오랜만에 연숙과 둘만의 일요일 ‘정상 일과’를 했다.  물론 성당과 Panera (bakery) 파네라를 거치는 일정이다.  정말 오랜만인가.  이곳에서만은 커피를 거리낌 없이 즐기는 연숙.. 그래서 나도 좋다.  그날은 연숙이 ‘사회’를 보게 되어있는 이화여대 연말파티가 있었다.  사실 이번에는 정말 가기가 싫어서 이것으로 말다툼이 날까 조마조마 했는데.. 의외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연숙도 이제 많이 ‘성숙’을 했나.. 여유가 생겼나.  전 같으면 거의 확실히 따지고 들었고 나는 그것으로 또 화가 나서.. 뻔한 결과가 아닐까.  참 세월이 흐르니….  그것도 그것 이지만 ‘사회’를 보게 된 것도 그렇다.  거절을 못한 것도 그렇고.. 참 이번에는 볼수록 연숙이 놀랍다.  참 일을 잘한다.  열심히 한다.  정성껏 한다.  그리고 즐겁게 하려고 한다.  그걸 나는 그렇게 까지 인정하지를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다.  솔직히 나와는 정말 비교를 못 할 정도로. .  잘 하는 것은 잘 한다고 인정을 해야지.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spending spree… 사실 며칠 전에 거의 $140 돈이 ‘공짜’로 들어오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슨 class action lawsuit에서 $ 이 오고.. Liberty Mutual 에서 우리의 보험금이 더 charge되었다고 (정말이지 고맙게도) refund가 오게 된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Amazon에서 (from its affiliates, of course) 몇 가지 책을 order했다.  내가 책을 고르는 첫 번째 조건은 거의 $10이하 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조건이지만 직장을  떠난 뒤 생긴 것이다.  물론 필요한 것이라야 하지만..   그리고.. 정말 사고 싶었던 것 SPA3000 Voip adapter (fxo+fxs).. 거의 $80에 가까운 것이지만 총 $80이하라서 정말 ‘무섭지만’ order해 버렸다.  무슨 큰 사고를 치는 심정으로.  이것으로 ‘본격적인’ home-based Voip Service를 시도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요새는 사실 일반적으로 마음이 아주 무겁다.  아니 ‘불안’하다.  12월만 되면 근래에 들어서 생긴 일이다.  조금은 웃음도 난다.  그렇게 좋아하던 크리스마스며..연말연시가 어찌하다가 이렇게 ‘전락’을 해 버렸단 말인가.  이것을 어떻게 하면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게 대응할 수 있을까.  묵주기도 덕에 이것도 많이 좋아지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더 심하게 내가 불안해 하는 것이나 아닐까.  11월에 들어서서 여러가지로 미리 생각을 했던 것들.. (가족에게 ‘선물’ 보내기.. 연락 못하던 사람들에게 카드 보내기.. 아이들에게 선물 사두기..등등).. 역시 또 내가 100% 졌다.  하나도 못했다.  하기가 무서웠고 또 하기가 싫었다.  $$$을 쓰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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