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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구상 시인
생전의 구상 시인

얼마 전에 시작된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2014년 부활영세자 교리반, 수녀님을 돕는 봉사자 역할을 시작하면서 주 교재인 ‘여기에 물이 있다1를 영세 예비자들과 같이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천주교 ‘교리’ 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게 참 ‘부드럽고, 친절하게‘ 잘 꾸며진 책이었다. 어제 교리반에서 공부 한 제2과의 서두에 오랜만에 보는 ‘구상’ 이란 이름이 보였다. 구상(具常) 님은 시인이자 천주교인으로 내가 젊었을 때 그에 관한 기사(글과 사진)들을 여러 잡지에서 많이 보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물론 내가 천주교의 ‘천’ 자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잡지에서 보았던 시인의 얼굴모습도 떠 오르고, 천주교 신앙을 깊은 묵상으로 고백하는 듯한 시와 글도 기억난다. 그것이 전부였는데, 이번에 다시 그 시인의 이름을 본 것이다.

불현듯 그 시인의 근황과 그의 시의 세계2 등이 궁금해 졌다. Quick googling으로 시인이 우리 어머님과 같이 1919년 생이시고, 어린 시절을 역시 우리 어머님 고향인 함경남도 원산 임을 알게 되어 너무나 반갑고, 어렸을 때 아마도 어머님 집안과도 장날에 만났을 수 있다고 상상하기도 했다.3 시인은 우리 어머님 보다 일년을 더 사셔서 2004년에 선종을 하신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한글 Wikipedia로 가보니 아주 실망스럽게 한 페이지도 안 되는 성의 없이 쓰여진 듯 보이는 글이 뎅그라니 보였다. 누가 이 기사의 저자인지 나는 알 길이 없지만 그의 배경이나 학식, 진솔함 등에 관한 추측은 가능했다. 한마디로 빠가.. 그것도 악질 빠기급에 속한다. 빠가. 빠가.. ‘해방 후 194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산4..’ 어쩌구 하는 글 하나로 이 빠가, 젖먹이 같이 유치한 듯 느껴지는 이 편집자가 현재 ‘한글 Wikipedia’의 대표적인 수준이라면 아뿔사.. 이곳도 역시 ‘주사파, 빨갱이’들이 득실 거리는 구나.. 하는 한숨만 나온다. 아마도 이 기사의 저자는 구상 시인이 ‘악질, 반동 천주교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생각한다.. 시인의 형님 신부님과 어머님이 빨갱이들에게 ‘처형’이 된 것을 이 빠가는 아는가? 어떻게 이런 ‘역사 수정주의 빠가’들을 한글 Wikipedia에서 몰아 낼 것인가? 으이구~~ X가 갈린다.

 

  1. 글 차동엽, 그림 김정자, 미래사목연구소 간, 예비신자 교리 & 소공동체 나눔용
  2. 이제는 나에게 시의 세계는 옛날처럼 먼 곳이 아니다.
  3. 그 당시 원산에 살던 사람들은 그런대로 서로 얼굴이 낯 설지 않을 정도로 지냈다고 들었다.
  4. 야 이 빠가야, 어째서 1946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어쩌구란 걸래 같은 말이 관계가 되냐? 구상 시인에 대한 글에, 조선민주주의인민이란 쓰레기 같은 말이 걸 맞냐?

Jim Jones, ‘신천지’, reasoning

Faith and reason are like two wings on which the human spirit rises to the contemplation of truth;Blessed John Paul II, 1998.

 

Jim Jones CREDIT: wikipedia
Jim Jones, CREDIT: wikipedia

‘이성(理性, reason)이 결여된 신앙’ 의 결과는 정말 끔찍할 수 있다. Jim Jones, Tom Jones처럼 흔한 이름이지만 이 J.J. 는 사실 이렇게 끔찍한 이름이다. 나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한 그 지옥과도 같던 사진과 TV의 광경들, 1978년 11월 늦가을이었을까? People’s Temple이라고 하는 교회의 교주가 바로 Jim Jones인데, 이 교회는 흔히 말하는 ‘예수’를 믿는 교회는 절대로 아니고 그저 ‘사회에서 소외 당하는 돈과 힘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사는 집단이었다. 그러니까 ‘사교’, 어떤 신을 믿는 집단이 아니었는데, 우리들은 그저 ‘예수님’은 믿지만 교주도 믿는다는 그 옛날 ‘박태선 장로’ 교회와 비슷한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Jim Jones의 ‘집단’은 기실은 ‘공산, 사회주의’를 믿는 실로 해괴한 집단이었지만 그 자신은 이 해괴한 집단의 ‘하느님’역할을 했다. 그 자신은 거의 ‘정신병자’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이었지만, 불쌍하고 배고픈 ‘대부분이 흑인’들은 그를 신처럼 따랐다. 하도 해괴한 집단이고, ‘공산주의’에 관련이 되다 보니 미국정부에서 가만있을 리가 없고 국회 차원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들은 ‘박해’를 받는다며 남미의 Guyana라는 곳에 집단으로 이주를 했고 그곳에서 그들의 ‘해괴한’ 집단 생활을 계속했다.

1978년 11월, 미 연방국회 조사단 일행이 그 집단을 방문하고, 그 집단을 떠나고 싶은 ‘신도’를 풀어주라고 요구하자 그들은 그 조사단 일행을 모조리 사살을 하고 그날 저녁 Jim Jones를 위시해서 그 집단 900여명, 300명의 아이들을 포함해서 집단 자살을 해 버렸다. 2001년의 9/11 사태 이전에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민간인 피해자를 낸 ‘역사적 사고’였다.

공중에서 찍은 그날의 비극적인 장면을 보면, 정말 입이 벌어져 다물 수가 없게 된다. ‘멀쩡하게 생긴 가족들’이 무슨 유태인 수용소 처럼 모두 모여서 ‘독약’을 먹고 자살한 것이다. 비록 종교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하지만 이 집단의 행동을 보면 종교적 사교집단과 구별을 할 수가 없다. 거의 같은 수법인 것이다. 이들 집단의 특징에는 ‘이성’을 철저히 배제한 무언가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란 것이 있다. 믿음과 이성은 같이 간다고 하는 비교적 쉬운 진리를 잊은 것일까?

이 밥맛 떨어지는 옛 기억을 오늘 다시 찾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제 연숙과 같이 우리는 드디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신 영세자 교리반의 봉사자 팀의 모임에 참가를 했고, 교리교사 수녀님1 의 지시와 설명을 들었다. 작년까지는 교리반 system에 봉사자란 것이 없고 그저 교리교사 몇 명이 예비자들을 가르쳤는데, 새로 수녀님이 오셔서 ‘완전히’ system을 바꾸어 수녀님 자신이 ‘유일한’ 교사가 되고 나머지는 평신도 ‘봉사자’들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왜 그렇게 바꾸셨는지 우리는 이유를 잘 모르지만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 주려는 의도로 해석을 했다.

또한 왜 우리부부가 그 봉사자 팀에 ‘불려 갔는지’ 그 이유도 사실 모른다. 그저 우리는 ‘순명’을 한 셈이다.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건강하고 팔팔하신 수녀님, 조금 성급한 성미가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그런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공기’를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주임신부님이 수녀님께 교리교육 책임을 100% 주신 것을 보면 조금은 신부님의 수녀님께 대한 신뢰도를 짐작할 수도 있었다. 우리 봉사자들이 할 일은 주로 group discussion을 돕는 것인데, 그에 따른 ‘공부’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 중에는 ‘이단 신천지 알기’ 에 대한 공부도 있었는데, 물론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idea가 없었다. 그래서 소개 받은 ‘신현욱 전도사의 신천지 폭로 youtube video’를 보며 이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나는 곧바로 1978년의 끔찍한 ‘살인사건’ Jim JonesPeople’s Temple을 기억해 내고, 결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 ‘집단’은 거의 모두 같은 ‘거짓의 원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점에서 거의 같다고 보았다.

왜 수녀님께서 그 ‘신현욱의 신천지 폭로 video‘를 보라고 했는지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예비자 중에 그런 것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우리들의 ‘사교에 대한 무식’을 피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추측을 했다. 그런 생각의 전개는 사실 다음과 같은 엄연한 ‘현실’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개신교 형제’들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도망 나간 형제’들이고 사실 최근의 교황들도 그렇게 가르친다. 언젠가 ‘돌아올 수 있는’ 형제들인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진실을 알기’ 까지 겪어야 할 위와 같은 끔찍한 비극들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교계’로부터 자유를 찾아 나갔지만 그 자유의 값은 잠정적으로 너무나 비극적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개신교라고 자처하는 형제 교회들의 분파가 도대체 몇인가, 그대들은 현실을 아는가? 이런 현실에 그들을 과연 하느님의 직접 개입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 알려진 성경의 말씀들’에 ‘100% 모든 것을 의존하는’ 개신교는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 그 말씀을 해석하는가 하는 어려울 수 있는 문제를 숙명적으로 안고 산다. 그 중에 ‘분명한 사교’ 집단이 도대체 얼마인지 누가 아는가?

Mainstream개신교 형제들, 대부분 reasonable 한 형제 자매들도 많지만 정말 ‘무식한 목회자’들도 수두룩 닥상.. 어떻게 그런 ‘목회자’가 나왔는지 나는 모르지만 진실로 불쌍한 것은 그 밑에서 그를 따르는 양들임을 알 때 정말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믿음과 이성은 신앙의 두 날개임을 그들은 쉽게 잊는다.

  1. 별 생각없이 이름을 썼다가 본인의 요청으로 삭제를 하며 생각을 했다. 아마도 소속 수녀원의 privacy policy에 저촉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참 수녀원도 luddite가 되어 가는지는 모르지만, 현 교황님도 twitter애용자임을 알면.. my right is as important as yours is

멕시코의 성체기적?

지난 주에 멕시코에서 ‘성체기적(Eucharistic Miracle)’이 일어났다고 보도가 되었다. 성모발현 같은 것은 귀에 익지만 성체기적은 상당히 생소하게 들린다. 물론 ‘옛날’에 그런 ‘현상, 기적’이 일어났다고 알려졌고, 기록도 자세히 남아있지만 근래에 그런 것이 있었을까?

성체기적은 간단히 말해서 가톨릭 전례 중의 ‘성찬의 전례’ 때 성체(얇은 조각 빵)가 실제로 물리적으로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상징적으로만 대부분 생각을 하며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시지만, 가톨릭 교리는 분명히 그 ‘빵과 포도주’가 ‘살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가톨릭 신자들은 최소한 그런 현상을 ‘상상’이라도 하며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이다.

이번에 멕시코의 ‘사건’은 발생한지 불과 며칠이 되지 않아서 진실 여부는 고사하고 자세한 것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사건’의 대강 줄거리는 다음과 같이 보도 되었다.

 

지난 7월 24일, 멕시코의 과달라하라(Guadalajara) 대교구 소속 성모마리아 성당의 호세 구디노(Fr. Jose Dolores Castellanos Gudino) 주임신부가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때, 번쩍이는 빛과 함께 말소리를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모이게 종을 쳐라”, “모인 사람들에게 하루 종일 강복을 하겠다. 성체를 모신 작은 감실을 본당 제대 위에 놓아 모든 사람들이 성체조배를 하도록 하라. 커다란 성광(monstrance)을 그 조그만 감실 옆에 놓아라. 감실을 3시까지는 열지 않도록 하라.” “성찬의 전례 때 내가 기적을 보여주겠다.” “이번에 일어날 기적은 ‘동정 마리아가 나타나는 성체의 기적’ 이라고 불릴 것이다. 지금 보여줄 광경을 복사해서 사람들에게 보여라.”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게 하는데 이 기적의 소식을 알려주도록 모든 사제들과 이 소식을 나누어라.”

이 소리를 듣고 난 구디노 신부는 “주여, 나는 종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오후 3시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 신부가 감실을 열어 보았을 때 그 성체는 피로 덮여 있었다. 신부님에 따르면,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성체 조배 chapel을 만들고, 과학적 조사를 허용하라고 했다. 이 ‘기적’이 알려지고 나서 곧 대교구 차원에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 기사를 읽고 나서, 나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예전에는 믿지 않았거나, 중립적이거나,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충분히’ 사실적이고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나의 ‘신앙의 정도’라고 하며 조금 이상한가?

여기에 물이 있다.

천주교 예비자 교리교과서 여기에 물이 있다
천주교 예비자 교리교과서
여기에 물이 있다

‘여기에 물이 있다’.. 표지가 노~란 촉감이 아주 부드러운 책의 제목인데, 이 책은 천주교 영세를 원하는 ‘예비자’들을 위한 교리 반 학생용 ‘교과서’이고 내가 가진 것은 ‘교사용’이란 말이 더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생용 책에다가 교사에게 도움이 되는 것(cheat sheet,해답) 덧붙인 책이다. 잠깐 훑어보면 교과서치고는 정말 부드럽고 읽기 쉽고, 읽고 싶어지는 그런 느낌을 준다.

이것을 어제 연숙과 같이 성당에서 받아가지고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교리교사의 역할을 ‘조금’ 맡게 된 것이다. 정식으로 는 예비자 교리반의 ‘교리반 봉사자’ 가 되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교리반은 교리교사 여럿이서 책임지고 가르쳤지만 올해부터는 ‘완전히’ 체제가 바뀌어서 새로 부임하신 수녀님이 교리반의 ‘유일한 책임 교사’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봉사자’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교리반 봉사자가 되었는지 아직도 우리는 모른다. 아니 확실치 않다. 어느 날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신부님(하태수 미카엘)께서 연숙에게 ‘제안’을 했다고만 들었고, 기왕이면 부부가 같이 ‘봉사’를 하라고 하셨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사실 ‘청천벽력’ 같이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가 속한 레지오(마리애)의 으뜸 사명인 봉사(service), 순명(obedience)을 염두에 두고 생각을 곰곰이 해보니 거절할 명분도 느낌도 없음을 알고 비교적 쉽게 OK를 하였다. 드디어 예비자 교리반이 8월 초에 시작하게 되어서 어제 수녀님을 중심으로 봉사자 모임에 참석하여, 이 책을 받아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제 수녀님께 분명히 ‘우리는 왕초보’라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왕초보라는 말에는 별로 신경을 크게 쓰지는 않으심을 알았고 ‘교리 실력’ 이 전부가 아니라는 느낌도 받았다. 보살핌과 가르치는 방법, 그리고 ‘간단한 정통교리’가 더 중요한 것을 알았고, 자칫하면 쉽게 범할 수 있는 ‘은밀한 개인적 밀착’의 위험성을 수없이 강조함을 듣기도 했다. 모두 이해가 가고, 수긍이 가는 말씀들이었다.

비록 봉사, 순명의 정신으로 (봉사자 역할을) OK를 했고, 이 ‘교리반 봉사’의 과제와 책임이 우리 둘의 신앙생활, 여정에 어떤 의미와 결과를 남길지는 미지수 이지만, 신부님께서 친히 부탁(지시)을 하신 것을 보면 조금은 자신감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A Day in the Life

Florida Keys
Florida Keys

¶  7월도 tipping point를 지나간다. 이제는 서서히 8월을 향해서 ‘쓰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요새의 한 달의 느낌은 예전의 일 주일 정도라고나 할까.. 어찌 그렇게 세월의 느낌은 나이의 느낌과 비슷할까.. Mother Nature의 축복을 흠뻑 받으며 올해의 여름은 기가 막히게도 시원하고 시원하다. 몇 년간의 갈증을 완전히 복수라도 하듯이 엄청 많은 ‘물’을 쏟아 주셨고,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나머지 여름, 기껏해야 한달 반.. 암만 더워도 달게 받으리라. 그러다 생각하니 그렇게 많이들 가는 여름휴가.. 이제는 ‘휴가’라는 말 조차 잊은 것일까. 연숙도 다 잊은 모양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우리 집 자체가 summer house같이 느끼는 것일까? 집에 있는 자체가 summer vacation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편하게 느끼면 되지 않을까?

올해는 잠시 잠시, 미국의 ‘최남단’ Florida Key West와, Hemingway의 소설이야기를 향해서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그대로 차를 몰고 집을 떠날까 하는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의 대표작, 중학교 때 영화로 보았던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 그리고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등을 최근에 다시 보게 되면서 더 그곳을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리 속에서만 머문 것이 되나 보다.. 그렇게 올해의 여름도 끝날 것인가?

 

 ¶  이동수 목사.. 이동수 선생, 어떨 때는 형제와 같이도 느껴지는 사람.. 하지만 꿈속에서나 보는 느낌으로 오랜 세월을 못 보고 지낸 그런 사람, 어제는 우리 부부가 정말 오랜만에 꿈에서 깨듯이 그 집을 방문해서 부인, 이미섭 선생이 정성스레 마련한 ‘일식’ 점심을 같이 하며 해후를 풀었다. 한마디로 ‘은혜로운’ 몇 시간을 우리들은 만끽하였다.

골방에서 거미줄을 치우며 조금씩 빛을 향해 개미행진을 시작한 지 2년여가 되어가지만 아직도 나는 그 개미행군을 계속하는 느낌이다. 1990년 초, 우리가 아틀란타에 이사온 후 시작한 아틀란타 한국학교에서 우리부부와 그 집 부부는 같은 선생님으로 만났고 그것이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서 우리들은 ‘인연’이 생기게 되었는데 교장문제 같은 하찮은 ‘정치싸움’에 우리는 본의 아니게 휘말리고 결과적으로 다 그곳을 떠났는데, 그 이후로 사실 우리 들은 헤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그야말로 생사 여부나 간신히 알 정도로 지내게 되었는데 얼마 전 연숙이 정말 우연히 이동수 목사를 보게 되었고 어제는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1990년대의 ‘지인’에 속하는 이동수 목사.. 이렇게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은 이제는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세상에는 100% 우연이란 없다는 것을..

 

¶  몇 년 전 우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얻어온 선교용 CD를 조심스레 rip해서 youtube에 올려 놓았다. youtube 를 배우려 한 목적도 있었지만 내가 들어 본 그 CD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것이라 아주 professional한 것이라 나도 다시 들은 것도 많은 수준 급이어서 혹시 천주교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큰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것이 ‘인기’가 있을 것은 절대로 기대하지 않았고, 사실 그랬다. 불과 200 views도 채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찌 문제가 되는가.. 단 한 명이라도 ‘무언가’ 느끼면 되지 않겠는가?

문제는 toxic comments에 있음을 오늘까지 몰랐다.. stupid, toxic, absurd, destructive comments..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시간을 죽이는 한가한 인간들’의 넋두리를 그대로 방치한 것이다. comment review & approval을 해야 하는데..하는 후회가 있었지만 늦었다. 어떤 ‘불쌍한 자매님’이 불쌍한 comment를 달아놓았다.

‘교황은 지옥에 있다’라고 시작된 이 Kafka-ish한 느낌은 정말 어찌 처리하는가.. 속으로는 ‘지옥은 당신들… 당신이나 잘하시오..’ 하는 감정도 잠시 치솟지만 그래도 나는 레지오(마리애)의 정신에 조금은 익숙해졌는지 곧바로 평정을 가다듬고 이 불쌍한 영혼을 위한 기도가 생각나면서 ‘아하.. 이래서 우리 레지오가 세상에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아.. 세상에는 참으로 불쌍하고 무식한 영혼들이 많이 있구나.. 하지만 무식해도 바르고 깨끗한 영혼들도 많이 있는데..

 

¶  Coursera: 약 6주전에 성당교우 설재규씨가 이곳, online university course website, coursera.org를 소개해 주었다. 이곳은 전 세계(주로 미국)의 여러 대학 online course들을 online student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비교적 새로운 academic course provider이다. 인터넷을 이용해서 computer로 강의를 듣게 하는 idea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세계 굴지의 교육기관 (주로 미국의 대학들)의 course들을 ‘한 곳’에서 제공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다.

각 대학들은 이미 자체 방식대로 그 동안 credit course들을 ‘유료’로 제공을 해 왔지만 이 coursera.org는 ‘기본적으로’ ‘무료’인 것이다. course를 제공하는 학교들과 이것을 한 곳에서 제공하는 coursera 는 어떻게 무료를 가능케 한 것일까? 특별한 ‘광고’들이 보이지 않기에 광고수입은 관계가 되지 않는데,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이 course들의 학생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고, 이것 자체가 각 대학들을 ‘선전’하는 금전적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닐까? Open & Free가 새로운 문화로 정착하는 이즈음, 이것도 그런 맥락에서 절대로 이해가 가는 시대를 앞서가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주간 나는 University of Rochester에서 제공하는 Fundamentals of Audio & Music Engineering : Part 1 Musical Sound & Electronics란 ‘거창한’ 제목의 course를 ‘경청’하려고 노력을 해 보았다. 학교 강의실이 아니고 편한 집의 cushy한 환경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사실 oxymoronic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나에게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이 course로 나의 성적표 기록이 남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이제 취직을 하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재미와 보람’만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특별히 이 sound & music course를 택한 것은 내가 이곳을 처음 찾던 날 ‘개강’을 한 것이 제일 큰 이유였지만, course description에 final project로 guitar amplifier를 설계, 조립을 한다는 것이 귀가 솔깃해진 것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요사이 나는 야마하 ‘통(acoustic)기타’를 guitar pickup과 Beringer amplifier, buzz pedal을 연결해서 쓰는 중이어서 이런 분야에 관심을 둔 것도 또한 이유가 되었다.

이것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 중에는, calculus를 포함한 대학 level 수학을 정말로 많이 잊어 버렸다는 것.. 학교를 떠난 후 이 ‘이론적 수학’을 써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는 변명만 찾기에 나는 급급하고 있을 정도로 사실 당황을 하였다. 세월이 그만큼 흐른 것 때문일 것이다. 전기공학과 2학년 수준의 AC circuit analysis도 많이 잊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생애 전공’이 거의 digital, microcontroller, embedded software였으니, 그 쪽은 정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편으로는 너무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그리움 같은 것도 느껴서 그렇게까지 괴롭지는 않았다.

My current & upcoming courses from Coursera

My current & upcoming courses from Coursera

 

3일 뒤에는 다음 course, Introduction to Guitar가 시작이 되는데, 사실 이것을 ‘청강’해 보려는 것은 과연 진짜 pro들은 어떻게 guitar를 치는가 하는 것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course의 설명을 읽어보면 ‘아마도’ 기타를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사람들을 위한 것 같아서 시간 낭비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되지만 무슨 상관.. Free & Open이 아닌가? 3주 뒤에는 올해 나의 진짜 관심사, 이스라엘의 대학에서 제공하는 A Brief History of Humankind인데, 소개 video를 보면 정말 어떤 각도로 ‘인간역사’를 조명하는가가 궁금해진다. 나의 다른 희망은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지만 어떨지 모른다.

 

 
A Day in the Life, Beatles, 1967

 

 

 

17세의 생애, viewing과 연도

김민호 프란치스코, 17세의 소년.. 어떻게 그런 100% 희망의 나이에 우리들의 곁을 떠날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우리의 머리 속을 완전히 지배하던 어제였다. 3일 전, 요사이 뜸하던 ‘위중한 환자기도’의 소식에 우리들은 ‘서서히’ 환자기도를 시작했지만 너무나 빠른 ‘병의 진행’으로 그제에는 신부님의 병자성사가 필요할 정도로 위독한 상태가 되었고 어제 아침에 그 17세의 소년은 고요히 눈을 감았다. 병명은 역시 ‘암’의 일종인 ‘투명세포육종’이라는 희귀한 것이었다.

레지오 입단 3년이 다가오는 나는 그 동안 많은 죽음을 보았고 연도, 장례미사를 하였지만, 이렇게 ‘누구나’ 100% ‘언젠가’ 거쳐야 하는 ‘과정’은 정말 100% 모두 다른 사연과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평균’ 수명을 다 채우시고 떠나는 분들은 비록 다행인 case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편으로는 그 수명 동안 겪은 수많은 사람들, 경험들과 이별을 하는 고통이 따르고, 반대로 이번의 17세 소년의 case는 평균적인 인연과 경험을 못 보고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픔의 고통이 따른다. 역시 이것도 공평하다고 할까.

이럴 때는 어떤 말로 유족들을 위로해야 할까.. 그저 간단하게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는 너무나 형식적인 것일까? ‘더 좋은 곳으로 갔을 겁니다.’ 는 사실 맞는 말인지도 모르지만 조금 오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래도 나는 그 애가 내 옆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는 반응이 나온다면 분명히 그 말은 그 부모를 더 슬프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용히 hug이나 눈의 맞춤으로 슬픔을 같이 나누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좋지 않을까. 또한 이럴 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는 것이 바로 우리 가톨릭 장례의식 중, ‘연도’임을 어제 또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들 전에 이미 떠난 그 수많은 성인의 이름을 열창하며 17세 소년을 받아 주시라는 기도는 듣거나 참가해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그 의미나 느낌을 모를 것이다.

 

장례미사를 다녀와서..

모처럼 하늘의 습기가 가신 후, 청명한 날씨가 된 오늘 정오에 고인 김군의 부모가 속한 본당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 에서 장례미사가 입추의 여지없이 대성당을 꽉 채운 가운데 치러졌다. 부모님이 성당 공동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여서 어떤 조문객이 올지 나에게는 미지수였지만, 어제 viewing에 온 상당한 숫자의 ‘미국 친구’들을 보고 아마도 반 수 이상이 ‘영어권’ 일 것이라 짐작을 하긴 했다. 나의 짐작은 맞았지만 결과적으로 ‘영어권’ 조객이 압도적으로 많이 참석을 했다.

성당 parking lot에 아틀란타의 ABC-TV affiliate(계열방송사)인 Channel-2의 crew van이 있었고 camera까지 준비하는 것을 보고, 대강 이 김민호군의 됨됨이를 짐작하게 되었다. 이태리 계통인 우리 본당 주임신부님은 아직도 영어권 문화가 서먹하신지 전례해설자에게 모든 ‘영어 소통’을 의뢰하신 모양으로 대부분의 ‘영어권 친구 친지’들은 소수의 ‘한국어’ 권 신자들을 따라서 그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로마 가톨릭 식의 미사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조금 다른 식의 미사도 사실 큰 무리가 없음을 이번에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가톨릭 전례는 한마디로 universal한 것으로 같이 동참하여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미사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고인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지만 우리들은 과연 김민호 프란치스코 군이 어떤 인물인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성전을 꽉 메운 그들을 보면 그것을 짐작하기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의 성품, 추억, 행적을 간접적으로 그들의 얼굴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사(eulogy)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알게 해 주었다. 김민호, Nicklaus, Francis군, 그는 한마디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17세였다. 한국적인 예절이 몸에 배인 것도 그렇고, 모든 일을 착실히 최선을 다하던 그였고, 그렇다고 해서 ‘지루한 공부벌레’도 아닌 유머감각이 있던 정말 크게 인생을 살 수 있을, 무언가 큰 업적이라도 낼 듯한 잠재력을 지녔던 고교생 이었던 것을 우리들은 그 조사를 통해서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안타까운 심정은, 주위의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그가 지금 ‘육체적, 물리적’으로 우리들을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는 운명 직전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I love you all..이란 말을 남겼다는 것으로 그는 사랑이 충만한 한 고귀한 젊은 영혼이었음도 알게 해 주었다.

김군을 일찍 하늘나라로 데려가게 한 직접적인 원인, ‘투명세포육종(Clear Cell Sarcoma)’ 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암, 이 비교적 희귀한 병은 그렇게 치유 율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왜 이병에 걸렸으며 왜 그렇게 1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게 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이것이야 말로 하느님 영역에 속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만 절감하게 된다.

생각한다. 아니 이제는 믿는다. 김민호 군의 ‘불멸의 영혼’은 지금 괴로웠던 육신을 떠나 (미사 후 곧바로 화장이 되었다) ‘훨훨’ 하느님의 영역에 돌아갔거나 돌아가고 있고 아마도 장례미사를 하는 우리들을 미소 머금은 모습과 마음으로 보고 있으며, 괴로워 할 가족들을 보며 위로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이제는 믿는다.

Proof of Heaven, 2nd reading: part 1

A Scientist's Proof of Heaven
A Scientist’s Proof of Heaven

Eben Alexander, a neurosurgeon(신경외과전문의)의 2012년 #1 New York Times Bestseller, Proof of Heaven.. 이 책은 바쁘게도 느껴지고 피곤하기까지 한 성삼일(Paschal Triduum), 부활주일(Easter Sunday)에 걸쳐서 ‘번갯불에 콩 볶듯’ 대강 눈으로 읽은 다음, 이제 ‘정신을 가다듬으며’ 나의 보금자리 서재에 앉아 다시 자세히 읽는다.

우선, 이 책을 성삼일 전날 ‘우연히’ 사게 된 것이 절대로 ‘우연’이 아님을 이제 믿는다고 말하고 싶고, 나의 머리를 지배하는 심정은, 빠른 속도로 겉 핥기 식으로 읽는 동안 느낀 것은 복잡한 것도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흥분, 기쁨, 그리고 안도감.. 그것이었다. 이제는 조금 흥분된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더 이성적인 자세로 샅샅이 분석하며 천천히 다시 읽는다.

표지, 차례를 거치고, 기나긴 prologue도 빼놓지 않고 정성을 들여 자세히 계속 읽는다. 200쪽 미만의 책이지만, 35 chapters..라면 지루할 듯 보이지만 한 chapter가 불과 몇 쪽이 안 되기에 정말 소화하기 즐겁기까지 한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Prologue를 읽기 시작하며 다시 ‘왜 skydiving에 대한 설명이 이다지도 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 읽을 때는, 혹시 이것이 filler는 아닐까 하는 의심도 했다. 그저 page만 늘리려고 한 ‘잡소리’가 아닌가 한 것이다. skydiving에 대한 경험을 2쪽이나 계속하면서, 책의 주제인 ‘천국의 증명’에 대한 hint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설명 뒤에 간단한 몇 마디가 두 번째 읽는 나에게 납득할 만한 hint를 주긴 했다. 그러면서 조금 용기와 참을성을 더 하며 읽어 나가면, 서두의 뒷부분에는 책 전체의 결론과 맞먹을만한 ‘거창하고, 심각한’ 이 책의 결론을 조금 보여준다. 하지만 본문이 170쪽 밖에 안 되는 책에서 prologue가 10쪽이라면 서두가 길다는 느낌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미리 보여주는 결론은 이것이다.

My experience showed me that the death of the body and the brain are not the end of consciousness, that human experience continues beyond the grave. .. it continues under the gaze of a God who loves and cares about each one of us and about where the universe itself and all the beings within it are ultimately going…

This life isn’t meaningless. But we can’t see that face from here – at least most of the time… But now that I have been privileged to understand that our life does not end with the death of the body or the brain, I see it as my duty, my calling, to tell people about what I saw beyond the body and beyond this earth.

나의 경험에 의하면 육체와 뇌의 죽음이 의식의 끝이 아니고 인간적인 경험은 무덤에 묻힘의 이후로 계속되며, 우리 개개인과 우주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가호아래 영원히 계속된다. 우리의 인생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의 얼굴을 최소한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대부분 못 느낀다. 하지만 지금 육체와 뇌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게 된 이상, 내가 나의 육체와 지구를 떠난 저쪽에서 본 것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

이 서두의 결론이 일반인, 비전문가, 비자연과학자, 신앙인, 신부, 수녀, 수도자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크게 놀랄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것은 저자: 하바드 대학, 최첨단 ‘자연’ 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한 이력서를 가진 뇌신경외과 전문가 의 체험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에 의해서 나온 것이라면 아마도 귀가 솔깃해질 것이다. 현재 ‘양쪽(과학과 신앙)’ 에 어정쩡하게 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 나로써는 한마디로, ‘당혹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안도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Dr. Eben Alexander
Dr. Eben Alexander

이런 류의 NDE(Near Death Experience) 이야기에서 제일 흔히 언급되는 것이 ‘신앙적 체험’이지만 이 저자는 철저히 그것을 뒤로 미루어 놓는 ‘참을성’을 보여준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런 ‘미치게 만들 수도 있는’ 체험에서 깨어난 이후 그는 ‘지혜롭게도’ 그의 기억이 오염되는 것을 막으려 그가 겪었던 모든 체험이 글로 기록, 고정화 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체험에 대한 정보를 100% 차단을 하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런 조치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저자 ‘Eben Alexander, 에븐 알렉산더‘ 는 비록 철저히 불가사의, ‘비과학적’인 며칠의 경험을 했지만 결국은 곧 바로 다시 철저히 이성적인 과학자로 돌아 왔고, 다시 과학과 이성에 염두를 두고 분석작업에 들어갔으며 그 결과 중에 하나가 이 작은 책자이고 그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동료 과학자들과 이 ‘포복절도’할 경험을 보존하고 알리려는 노력으로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저자는 최대한 기존 신앙, 교회의 가르침, 교리를 언급 안 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가끔 ‘하느님’을 언급하지만 그 하느님은 종교관점의 하느님이 아닌 그저 ‘절대자’를 의미할 듯 하다. 지금 신앙에 눈을 조금 씩 떠가며, 과연 무엇이 ‘진리’인지, 그 진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 책의 ‘과학적 접근, 경험’을 나의 체험과 연관을 시키며 공부하고 싶다.

이번의 ‘두 번째 읽기’에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분석’하고 철저히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나와 비슷한 배경이나 신앙적, 과학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과정을 알리고 싶은 심정으로 이 multi-part blog을 쓰기로 했다.

Good Friday, Tipping Point of..

Seven Last Words..
Seven Last Words..

¶  Good Friday..   of the Passion of the Lord. 주님 수난의 성금요일.. 바로 오늘이다. 부활 성삼일 중간에 있는 ‘조용한’ 날이기도 하다. 한글로는 성금요일인데 영어로는 Holy Friday라기 보다는 항상 Good Friday라고 부른다. 이 성삼일에 있는 천주교 전례는 모두 독특한 이름이 있다. 목요일 것은, The Mass of the Lord’s Supper, 금요일 것은 The Passion of the Lord, 토요일은 Easter Vigil.. 우리의 본당인 영어권과 한국어권 두 곳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둘 다 알고 있어야 하는 부담이 항상 있지만 나는 그것이 부담이라기 보다는 ‘더 많이 알게 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오늘이 Good Friday 인데 왜 하필 ‘Good‘ Friday라고 부르는 것일까? 오랜 전부터 나는 그것이 의아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의아스럽지 않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비록 예수님은 처참하게 죽어갔지만 그것의 결과인 부활과 그것으로 200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천주교의 ‘인류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그것은 한마디로 Good인 것이 아닐까?

얼마 전에 우리의 젊은 신입 레지오 단원 엘리사벳 자매님이 우리 Holy Family 본당에서 있었던 일일 피정에 참가하면서 그 때 교재로 쓴 Dennis Billy 저, subtitle “Meditation on the Seven Last Words of Jesus”란 가벼운 책자 하나를 나에게 빌려주었다. 이 책은 글자 그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처참하게 ‘천천히’ 죽어가면서 하신 일곱 마디 ‘말’들.. 을 가지고 reflection questions 을 제시하며 서로의 의견 나눔을 도와준다. 사순 절에 일일 피정의 교재로 쓰기에 정말 안성맞춤인 책이라고 할까. 그 일곱 마디의 말은:

 

  1. “Father, forgive them, they know now what they do.” (LUKE 23:34)
  2. “Amen, I say to you,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LUKE 23:43)
  3. “Woman, behold, your son… Behold, your mother.” (JOHN 19:26-27)
  4.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MATTHEW 27:46)
  5. “I thirst.” (JOHN 19:28)
  6. “It is finished.” (JOHN 19:30)
  7.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end my spirit.” (LUKE 23:46)

 

이 말들은 예수님의 ‘생전’에 하신 마지막 ‘역사적’인 말들이다. 그 이후, 그러니까 부활하신 후에 하신 말씀들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차원이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육신에서 해방이 되신 이후의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살과 피를 가진 상태에서 하신 이 마지막 말들은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오늘 새벽 아니 한밤중이었던 새벽 2시부터 3시까지 나는 연숙과 같이 난생 처음으로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성당에서 성금요일 성체조배(Eucharistic Adoration) 를 ‘감행’ 하였다. 연숙은 오래 전에 친지교우들과 같이 한 번 해 보았던 것을 나도 기억을 하지만 나는 처음이다.

이것은 천주교만의 전통일까.. 성목요일 최후의 만찬 미사가 끝나면 성당내의 ‘모든 전례 도구’들은 ‘철거’가 되고 성체가 모셔진 ‘감실(tabernacle)’ 도 비게 된다. 그때 성체가 성체 조배실로 옮겨지게 되고 그때부터 ‘쉬지 않고 계속’ 성체조배가 행해지는데, 문제는 이렇게 자정 이후 한 밤중에는 그것이 중지될 수도 있기에, 미리 ‘예약’을 받아두고 조금도 그 성체가 ‘방치’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지난 달 꾸리아 월례회의에서 새벽 시간의 예약을 받을 때 나는 거의 ‘무심코’ 이름을 써 넣었다. 주로 레지오 단원들이 참가하기에 나는 큰 부담 없이 한 것인데 밤 11시면 ‘세상없어도’ 잠자리에 드는 나의 육신에는 사실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무심코’ 감행을 하였고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두고두고 보아야 할 테지만 나는 ‘좋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도 사실 나의 근래의 좌우명 ‘It’s Now or Never‘ 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  Tipping Point..   한참 유행했고 이제는 ‘흔한’ 용어가 된 말이다. 무언가 ‘거대한 것, 힘든 것’이 오랜 노력과 시간 끝에 ‘움직이기’ 시작하며 뒤돌아 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현상을 말한다고 할까.. 나는 65년 일생을 통해서 이런 것을 나의 몸으로 경험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좋건 싫던 간에 나와 직접 상관이 없는 것들이 ‘넘어가는’ 것은 물론 많이 보았다. 정치적으로는 요지부동의 공산당 제국들(김일성 개xx는 제외)이 넘어가는 것도 보았고, 사회학 적으로는 ‘말단,주변 생물’이었던 ‘동성’들이 이곳 저곳에서 어깨를 펴고 기어 나오는 것도 보았고, 자연과학에서는 global warming같이 세계적 기후가 변화 되는 것도 현재 목격하고 있다. 이런 global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의 personal tipping point는 무엇일까..

요새 목격하고 있는 나 자신의 세계,우주관의 지각변동일 것이다. 이것이 tipping point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이 변동이 참 오랜 세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세계, 우주관이라고 하면 조금은 막연한 느낌도 들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표현은 ‘종교, 신앙관’이 맞을 지도 모른다. 반세기 넘게 희미하게 흩어져 있던 조그만 ‘점’들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서로 연관들이 없었던 것들이 하나 둘씩 연결되며 조금 더 큰 점으로.. 그 커진 점들이 다시 다른 것들과 연결이 되며 더욱 커지고.. 결국은 그 점들의 ‘질량, mass’가 tipping point에 다다르고 있다고 할까. 이제는 확실히 느끼며 믿게 되었다. 이 불가사의한 우주와 우리들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이것이 이번 사순절을 지내며 내가 받고 있는 ‘은총’이다.

 

꽃샘 추위, 아치에스, 판공성사

¶  꽃샘 추위   3월 25일, 어제는 Palm Sunday였고 드디어 2013년 성주간이 시작되었다. 이번 주에 ‘그 것’이 모조리 있는 것이다. Easter or Paschal Triduum이라고 불리는 성삼일(Holy Thursday, Good Friday, Easter Vigil)에 이어 부활절 일요일.. 조금 생각만해도 숨이 찬 기분이랄까..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모두 일년 내내 기다리던 그 때가 아닐까?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 없다면 사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 성주간에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아니, 사실 지나간 2월 달이 1월 보다 더 추웠고, 지금의 3월 달이 2월 달보다 더 춥다. 오늘은 낮 기온이 화씨 40도(섭씨 5도?)도 안 되는 듯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일까? 옛날 옛적 서울에서 살 때 이것을 ‘꽃샘’ 추위라고 했지만 지금 것은 조금 다르다고 할까.

제일 큰 ‘희생물’은 봄을 기다리던 꽃나무들이다. 찬란하게 초봄을 알리던 수많은 꽃, 나무, 잔디들.. 모조리 거의 ‘잠잠’하다. 아니 불쌍할 정도다. 작년을 생각해보니 너무나 대조적, 정말 찬란한 작년 3월 말을 기억하니까.. 방방에 놓여있는 space heater를 ‘거의’ 치우려고 했는데, 그랬다면 정말 큰 실수를 한 것이다. ‘동복’들도 고스란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아마도 아마도 부활절, 4월 초가 되면 정말 봄이 오지 않을까?

 

acies-2013¶  아치에스(Acies)   지난 일요일 3월 17일에는 일년에 한번씩 있는 레지오의 주요 행사중의 하나인 ‘아치에스’ 행사가 열렸다. 아치에스, Acies라는 말은 라틴어로 로마시대 군대의 전투대형을 뜻한다. 레지오 마리애 조직의 원형이 로마 군대의 것을 따랐기에 이것도 그것의 일부인 것이다. 비록 군대식으로 조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조직의 운영에 대한 것이다. 조직의 힘을 모으려면 역시 군대식이 최고일 것이다.

그래서 일년에 한번 거의 군대식으로 모두 모여서 ‘충성 서약’을 하는 것인데, 올해로 나는 세 번째 이것을 맞이한다. 지난 2년 동안 참가하고 보면서 느낌이 참 신선하고, 무엇엔가 끌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쉽게 말해서 우리의 총 사령관이신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하는 것인데, 평소에 잘 못 보던 동료 단원들을 이곳에서 모두 보게 되는 것도 그렇고 함께 묵주기도를 하는 것은 아주 감동적이기도 했다.

 

¶  부활절 판공성사   판공성사, 고백성사, 고해성사.. 이름도 다양하다. 이것은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7성사 중의 하나인 ‘성사’다. 그 중에서도 이것은 가톨릭만이 ‘자랑’하는 아주 독특한 것이고, 제일 인기가 없는 성사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자기의 ‘치부, 부끄러운 곳’을 ‘남에게’ 드러내야 하는 것이니. 영화에서 보는 듯이 그렇게 dramatic한 것도 없고,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야기되는 ‘꽤 죄죄’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고백을 할 것인가?

이 성사를 교회에서는 최소한 한 달에 두 번을 하라고(보라고) 하지만 과연 그렇게 따르는 모범신자들이 많이 있을까? 하기야, 주일미사를 빠질 때마다 이 성사를 보는 교우를 보기는 보았지만, 그것은 예외에 속할 듯 하다. 내가 본 많은 사람 중에는 ‘전혀’ 하지 않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일년에 중요한 때 (부활, 성탄 같은) ‘겨우’ 보는 사람들.. 그렇게 이것은 사실 부담스러운 것일까.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는 듯하다. 괴롭게 느껴지는 ‘죄’는 고백을 하면 시원하게 느껴질 것이고, 분명히 사제는 주님을 대신해서 ‘용서’를 하신다. 그러니까 고백성사를 하는 것은 정말 괴롭고 어려운 것이지만 이것을 마쳤을 때의 ‘환희’는 어디에도 비교하지 못한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기억을 하며 다시 성사를 준비하고 한다. 이것이 이 성사의 매력이라고 할까? 나는 최근에 신앙의 르네상스를 맞이하며 일년이 최소한 2~3번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고, 사실 나는 이것도 자랑스럽다. 특히 어둡기만 한 고백소에서 하는 것을 피하고 ‘대담하게’ 신부님의 사무실에서 면담하는 식으로 한 것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올해 부활절 판공성사는 지난 목요일에 ‘가족행사’로 보았다. 연숙의 대녀님인 권 모니카 자매를 대동하고, 게다가 올해는 오랜 지인 설재규씨가 합류를 해서 4명이 같이 보게 된 것이다. 지난 일년간 성사를 못 보았다던 설재규씨가 참가한 것은 나에게 신선한 즐거움으로 느껴졌고,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같이 하게 될 수 있을 것을 꿈꾸기도 했다.

Pope Francis from Argentina

새 교황 프란치스코, Pope Francis
새 교황 프란치스코, Pope Francis

¶  프란치스코, 프란시스, Francis  새 교황님: 드디어, 아니 생각보다 ‘훨씬’ 빨리 새 교황님이 선출되었다. 며칠 전 레지오 마리애 꾸리아 월례회에서 교황선출에 대한 특별 기도 활동이 하달 되었는데, 이틀도 되지를 않아서 ‘결말’이 난 것이다. 별로 알려진 선두주자가 없었기에 쉽게 절대다수(2/3)표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은퇴하신 베네딕트 명예교황은 사실 그 전의 요한 바오로 2세의 총애를 받았던 분이기에 예측하기에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의 교황님은 결국 12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계가 아닌 곳에서 뽑히신 분이 된다. 이것은 분명하고, 강력한 ‘신호’일 것이다. 이제 가톨릭의 본고장 유럽의 무대는 서서히 끝이 나고 있는 것이고, 신세계 그것도 남반구 쪽으로 교회의 주류세력이 내려가고 있다는 징조가 아닐까?

Vatican의 독특한 신호, 하얀연기는 교황의 선출을..
Vatican의 독특한 신호, 하얀연기는 교황의 선출을..

나이 76세면 생각보다 ‘한창의 나이’는 지나간 것이지만, 개개인 마다 활력과 건강은 다 다른 것이라 전 명예교황님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아주 아주 건강해 보이신다.

이름은 조금 이태리 냄새가 나는 Bergoglio(버골리오), 역시 이분은 이태리 이민의 후손이시다. 결국은 이태리 가톨릭의 전통으로 자랐을 것 같고, 이태리 중심인 로마 바티칸의 ‘이태리 문화’를 잘 이해하고 무리 없이 잘 교회를 이끄실 것 같은 희망은 준다.

제일 큰 관심사는 그런 주변적인 것 보다는 역시 교회의 당면한 과제들에 대한 새 교황님의 대응책인데, 이것은 역시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종교적인 문제로서 더 높은 곳에서 해결책을 찾으실 것이다. 교회의 방향을 시대에 맞게 바꾸자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답답한 것이 그들은 비록 ‘사람’들의 교회이긴 하지만 아마도 무슨 정치, 사회단체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비록 시대를 한 걸음 뒤 늦게 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바뀌어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은 시대성이라는 요구와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이 새교황님은 두 분의 전 교황님들과 그런 면에서 비슷한 견해를 가지셨다고 하고, 결국은 일반인들이 말하듯 이것은 ‘보수적’인 것이라, 당분간 교회의 전반에 걸쳐서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동포의 교황선출에 환호하는 브에노스 아이레스
동포의 교황선출에 환호하는 브에노스 아이레스

알젠티나 수도지역인 브에노스 아이레스 대교구 출신의 추기경인 버골리오, 프란치스코 새 교황님은 ‘청빈하고 단순한’ 실 생활을 하셨다고 보도가 되고 있어서 더욱 호감이 간다. New York Times는 그를 A Conservative With a Common Touch라고 평하기도 했다.가난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면에서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빠른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모처럼 나는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게 되었다. 걸핏하면 ‘평등’을 내세워 가톨릭 교회를 괴롭히던 그가 재빨리 새 교황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그래도 그의 성명서는 ‘진심으로’ 역사, 정치 속의 하느님을 ‘인정’하는 느낌을 주었기에 흐뭇한 기분을 가지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성모신심, 특히 레지오 마리애에 대한 견해와 관심도에 신경을 쓴다. 이분은 예수회 출신(SJ Society of Jesus)이라고 한다. 예수회는 비록 성모님을 주보성인으로 모신다고 하지만, 프란치스코 회 같은 그런 밀착된 관계는 없는 듯 하다. 하느님을 팔아먹는 듯한 악마 같은 존재들인 ‘성추행 사제’들을 그는 어떻게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은 물론 당면한 ‘치명적’인 과제들일 것이고, 인터넷 시대에 맞게 ‘홍보, 전교’하는 문제는 보수적인 아닌 진보적인 사고로 대응을 하는 ‘상식’을 가지고 교회를 이끌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Ash Wednesday 2013, Lenten wishes

 

For you are dust, and to dust you shall return. – Genesis 3:19

 

어느덧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이 내일, 코앞으로 다가왔다. 2013년 Lenten season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은 ‘금욕과 극기’의 40일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듯 안간힘을 쓰는 ‘살찐 화요일 , Fat Tuesday: Mardi Gras‘, 아마도 New Orleans는 이것으로 오늘 하루 종일 떠들썩 하지 않았을까?

재의 수요일, 2013
재의 수요일, 2013

나의 매년 매년 재의 수요일과, 그에 따르는 사순절은 느낌도 달라지고, 의미도 다르게 느끼며, 무언가 조금씩 ‘발전’하는 듯 느낀다. 이것은 정말 나에게 만족스러운 현상이다. 이 나이에 나에게도 이렇게 ‘발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내 자신도 믿어지질 않는다.

작년의 사순절 때와 나는 한 살 더 먹은 것 이외에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각한다. 작년에 비해 올해 나는 더 많은 영혼들과 작별을 했고, 그런 와중에 나는 ‘역사적’인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St. Louis Marie de MontFort)의 ’33일 봉헌’과 그 뒤에 따르는 우주관의 격한 변동을 경험하였다. 이것이 작년에 맞은 사순절과 올해의 차이일 것이다. 이것을 발판으로 올해 40일에 나는 무엇을 ‘바치고 바랄’ 것인가?

예년에 하던 통상적인 아침 커피 피하는 것 같은 것은 이제 조금 그 매력이 떨어졌다. 우리 Holy Family 성당 주임신부님도 ‘하지 않는 것’ 보다 ‘더 하는 것’에 신경을 쓰라고 하신다.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간다. 더 적극적인 삶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라는 뜻일 것이다. 무엇인가 절약을 했거나 삼가 했으면 그것을 누구에게 준다거나, 레지오의 정신으로 이웃에게 본격적으로 선교를 한다던가 하는 것들이 ‘적극적’인 것 들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나는 어떤 ‘적극적’인 것들을 하여야 할 것인가..

Rediscovering Catholicism작년 7월 중에 했던 위에 말한 ’33일 봉헌’.. 그것을 할 당시에 나는 더위와 싸우며, 계속되는 장례, 연도, 슬픔, 이별 등을 경험할 때였다. 그래서 그 ‘봉헌’이 의미는 더 있었을 것이겠지만 정성을 들여 집중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 사순절에 다시 그것에 ‘도전’을 할까 생각 중인데, 아마도 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 이후에 내가 ‘받았던’ 것들을 생각하면, 정말로 이것은 우선 순위 중에 으뜸일 것이다.

그 동안 ‘천천히’ 읽어오던 책, Matthew Kelly의 걸작, 책 Rediscover Catholicism을 정독, 완독을 하면 어떨까?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은퇴 선언으로 다시 교회는 앞으로 갈 길을 찾는 기로에 서있어서 이 책은 정말로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이런 것들.. 다 좋지만 역시 레지오 단원으로써 제일 값진 것은 ‘헤매는 영혼을 구하는 것’, 그러니까 새로운 ‘전사, 단원’을 찾아내는 것인데 이것은 현재 나에게는 거의 Mt. Everest처럼 높게만 보인다. 앞으로 가야 할 시간은 많지 않고, 이렇게 할 것은 많은데 어떻게 이런 것들 현명하게 풀어나갈 것인가.. 역시 어머님의 도우심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인생은 Given Way (?)

서서히 물러가는 2012년, 올해에 기억에 남는 큰 일은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1965년 초에 나를 가르쳤던 ‘아르바이트’ 대학생 김인호 형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이 그중에 하나가 아닐까?

다시 연락이 된 경위는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먼저 1960년 중반 때의 서울 일간지를 훑어 보다가 (물론 인터넷으로) 영화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그 영화의 제목이 <젊음이 밤을 지날 때>, 거기서 ‘박계형’ 이란 이름을 보게 되었다. 불현듯 스치는 것이.. 나를 가르쳤던 아르바이트 대학생의 ‘애인’이 바로 그 당시 베스트셀러 소설의 ‘대학생 저자’ 박계형 이었던 것이 기억이 난 것이었다. 그 때까지 나는 그 ‘박계형’이란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blog에 내가 기억하던 아르바이트 “서울고, 서울상대” 대학생 김인호 형을 회상하게 된 것인데 그것을 정말 정말 ‘우연히’ 인호형이 보게 된 것이다. 정말 모든 것들이 우연의 연속이었다. 이것까지 필연 이라고 우기고 싶지는 않지만, 누가 알랴. 이 세상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은 어딘가 서로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서로 email을 교환 하면서 형이 보내 준 이미 공개된 ‘글’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서울 상대 동창회지에 실렸던 글 같았다. 서울 상대에 입학하게 된 동기나 경위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 인생의 여정이 정말로 ‘웅장하게’ 압축 된 글이었다.

이미 공개된 글이라서 다시 공개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혹시 해서 나의 blog에 전재를 해도 좋겠냐고 물어 보았는데.. 답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글이 너무 솔직한 인생의 고백록 같아서 나는 ‘무엄 하게도’ 이렇게 공개하기로 했다.

 

 

+ Deo Gratias

 

인생은 Given Way (?)

 

 

김 인 호 (서울상대 상학과 19회)
한양대 명예교수 (경영학)

입학 50주년이라니 문득 서울상대를 지원하게 된 연유가 새삼 닥아 온다. 고3 내내 이과(理科)반을 듣고서 느닷없이 문과인 상대로 왔기에 말이다. 원래 성품이 온순했던 탓(?)에 여름방학 하던 날 (당시엔 실제로 이날부터 고3생의 대입특강이 본격화되는 첫날이었음) 무기정학을 당해 50일을 열외가 되다보니 대입지원서 작성 시 가장 중시되는 고3 2학기성적이 엉망일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의예과 아니면 서울공대 화공과나 기계과를 써달라는 나의 막무가내와 이 점수로는 서울대 어떤 과에도 못 간다는 담임선생님과의 승강이 끝에 ‘자네 상대가면 어때?’ 하는 급작스런 제의에 선택과목이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문과인 상대를 갈 수 있느냐고 항변하자 나의선택과목인 화학과 생물을 가지고도 서울상대에 응시가 가능하다며 지원서를 써주셨던 선생님. 전형조건이 그 전해의 것과 같을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상대지원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으므로 상대는 애초부터 전혀 고려조차 않고 있었던 터였다. 기실 그 전해뿐만 아니라 그 다음해부터도 또다시 안 되게끔 다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해엔 어쩐 일로 가능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분명 어떤 손길이 아니었나, 쉽다.

아무튼 일순간에 이과에서 문과로 나의 행로가 180도 바뀌었고, 이후 상대생활은 우리 모두가 그러했듯이 당시의 혼란한 사회분위기 덕에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인 4년을 얼렁뚱땅 마치게 되었다. 나는 곧장 국방의무를 보다 충실하게(?) 다하고자 공군장교 코스를 택했다. 소위로 임관된 지 4개월여쯤 되던 어느 날 국군의 날 행사일환으로 당시 서울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삼군사관학교 종합체육대회응원단으로 차출되어 응원을 마치고 공군장교버스를 타고 오산으로 귀대하던 중 수원 세류동 건널목에서 내가 타고 있던 공군장교버스가 서울발 하행열차에 박치기 당해 즉석에서 3명의 장교가 죽고 약 5-60여명의 중상자가 발생한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직후 난 얼굴과 몸이 묵사발이었는데도 피가 안 나는 바람에 경상자축에도 끼이지 않을 만큼 운이 좋았던 몇몇 장교 중 하나였다. 몇 십 미터 열차에 끌려가며 구겨지는 버스 안에서 순간 ‘야,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어릴 적서부터 그때까지 내가 살아 온 긴대목이 일순간에 쫙 주마등처럼 지나가던 묘한 체험을 잊을 수가 없으며 이는 나로 하여금 그 후 지금까지도 우리 삶과 또 우리의 기억이란 게 과연 무엇인가를 되새기게끔 해 준다.

아무튼 그때 그 사고는 당시 무신론자를 자처하던 나에게 삶과 죽음과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많은 사유의 계기를 던져주었다. 그때 그 충돌사고는 과연 필연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물론 사고가 난 다음에 생각이 미친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탄 장교버스와 그 기차는 노량진역을 지날 때에도 나란히 같이 가고 있었고 또 안양으로 진입하는 구름다리 위에서도 같이 마주쳤던 것이 아무래도 우연 같아 보이질 않았었다. 우리 눈에 우연처럼 보일지라도 만사가 필연 아닐까,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며 또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등등. 어느 문학도의 여유로운 넋두리가 아니라 당시 나에겐 대단히 심각한 현안이었다. 요컨대 당시의 그 사고는 나에게 삶과 죽음과 인생의 목적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사고 후 몇 달이 지나 사고후유증이 거의 가시어 갈 무렵 6.25 피난시절 대전에서 같이 초등학교 다녔던 한 여학생과의 상봉에서 그녀가 제일 먼저 던진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느냐?’는 물음은 이런 나의 사유를 더 깊이 뿌리내리게 했다.삶과 죽음의 견지에서 볼 때 내생명이 내의지로 또는 내 부모의 뜻에 따라서 생성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때 또 내 맘대로 죽을 수도 있는 존재가 아닌 한 적어도 생명을 주관하는 존재가 계시다는 사실을 내가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는 추론을 당시 난 쉽게 받아들이고 있던 터이었으므로.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합의가 이루어진 두 젊은 남녀는 그래서 자연스레 아무 장애 없이 그이후의 만남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난 공군제대를 2, 3개월을 앞둔 어느 날 내 근무지였던 공군본부로 찾아온 어느 선배의 스카웃 아닌 스카웃으로 KIST에서 첫 작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과를 듣고도 상대를 다녔던 내가 첫 직장을 이과의 본산인 KIST에서 시작하게 된 것도 과연 우연이었을까, 난 지금도 가끔 생각해 보곤 한다.

KIST에 입소한 그해 늦가을 난 아무것도 모르면서 단지 결혼하기 위해 가톨릭집안인 처갓집의 요구대로 성당에서 관면혼배라는 것을 했고 또 일반예식장에서도 결혼식을 올리는 등 두 번의 행사를 거쳐 드디어 원하던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뒤이어 제왕절개로 힘들게 얻은 첫아들은 나에게 또 한번 생명의 신비와 생명의 주관자에 대한 인식을 더욱 새롭게 해 주었다. 양수과다증이라는 특이한 상황에서 태어난 첫아들은 식도가 위가 아닌 기관지와 연결되어 있는 태중에서부터 기형이었던 것이다. 기형이란 사실을 처음 알려주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까무라쳤고 잠시 후 깨어났는데 깨어나는 바로 그 순간 느닷없이 ‘내 죄 때문에 저애가 내벌을 받고 저렇게 태어났구나, 라는 죄의식이 내 인생 안에서 최초로 강력하게 밀려왔다, 사실 난 그 전까지만 해도 단 한 번도 죄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 천방지축의 생활을 해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술시키겠다며 울부짖는 나를 진정시킨 병원 측의 말은 수술성공률은 제로이며 애를 수술시킨다는 것은 자기네에게 애를 실험용 재료로 내주는 일일뿐 아니라 수술비용도 퍽 많이 들므로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충고였다. 우리는 가족회의를 열고 의논한 끝에 결국 병원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며칠 후 졸지에 배를 가르고 첫아들을 낳았다는 기쁨에 차있던 산모의 충격을 달래며 빠른 퇴원수속을 밟던 중 이미 세상을 떴을 것으로 생각했던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접한 그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네가 뭔데 감히 한 생명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느냐? 는 음성에 난 성공가능성이 제로일지라도 수술시키기로 결정했다.

수술을 서두르는 나에게 그날이 토요일이었는데 아무리 서둘러도 월요일이라야 수술이 가능하다며 집도의사가 던진 또 한마디 말, ’수술은 내가 하지만 애가 살고 안 살고는 나의 영역이 아닙니다,‘ 란 당시엔 퍽 이해하기 어려웠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술은 잘되었다고 했다. 그간 동일한 수술에서 제일 오래 산 아이의 기록이 2주일이었는데 2주일이 지나자 국내기록을 깼다는 것이다. 약 40여일이 지나자 이 수술은 국내 최초의 성공이라며 퇴원시켜도 좋다는 집도의사의 말에 따라 집으로 데려 온 아이는 아주 강건하진 않았지만 보통아이처럼 잘 먹고 잘 자는 아이로 정상아와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mental 면에서 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내 맘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불안감을 달랠 겸 또 생명의 주관자(사실 난 그때 소위 때의 교통사고와 첫애의 탄생과정을 통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을 존재케 하는 주관자가 존재한다는 명제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도 인정할 겸 해서 난 집근처의 성당신부를 찾아갔다. 왜 왔느냐는 신부님의 물음에 ’생명을 주관하는 존재‘를 인정하고 싶어왔다는 나의 답변에 앉기를 권한 후 양주 한잔을 건네며 느닷없이 엄숙한 어조로 ’예수님은 역사적 인물입니까?‘ 라고 묻는 것이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머뭇거리는 나에게 재차 묻자 ’약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태어났던 한 청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자 ‘그러면 그분이 우리와 다른 게 뭐라고 생각하시오?’ 하며 연이은 질문에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인성(humanity)을 지닌 인간인 동시에 또한 신으로서 신성(divinity)도 지닌 분으로 듣고 있습니다.’ 란 나의 답에 ‘내일 모레 오시오 내가 영세를 주겠소. 올 때 본명(세례명)이라는 걸 하나 지어갖고 오시오.’ 하며 가도 좋다고 했다.

물론 당시엔 몰랐지만 그 분은 벨기에에서 신학을 공부한 좀 트인(?) 분이었던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옛날 서울고를 다닐 때 광화문 코너에서 언젠가 보았던 국제극장의 영화간판에서 ‘스테파노의 세레나데, 란 뮤지컬 영화제목이 퍼뜩 떠 오르길레 본명을 스테파노로 정하고 영세를 받게 되었다. 이는 최소 6개월 이상 교리공부를 거치지 않으면 영세를 주지 않던 당시의 관례로 본다면 난 분명히 엉터리로 영세를 받은 것이고 또 그 신부님은 엉터리로 영세를 주신 것임에 틀림없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공군소위 시절 당한 교통사고와 제대 후 결혼과 첫애의 태어남과 포기 그리고 그 다음 수술성공으로 인한 재탄생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던 젊은 날의 나와는 달리 생명의 원천이 어디이며 생명을 주관하시는 존재가 누구이신가의 관점에서 만물을 만드신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의 뜻을 우리가 자유의지로 어기는 것이 죄며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죄 지은 만큼 벌을 받는 정의의 질서가 온 우주 안에 꽉 차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정의의 견지에서 우리가 지은 죄가 사(赦)하여지려면 반드시 죄 없는 존재가 내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아야만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도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죄가 없으신 하느님께서 바로 육화(incarnation)되어 오시어 우리 죄의 대속(代贖)제물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이시며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의 어떤 죄도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명쾌한 논리도 쉽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느님을 알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것이 모든 지혜, 지식의 원천임을 알게 된 나에게 그분은 커다란 은총으로 내가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던 교직을 천직으로 주셨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 당시 보이는 세계의 중심이었던 미국이 수정헌법을 통해 도덕 다원주의를 그리고 영적세계의 중심인 로마가톨릭교회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자 더욱 기승을 부리며 판을 치는 대 혼란의 격랑 속에서 미국사회와 로마가톨릭교회야말로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의 최대 피해자임을 교직기간동안 확인할 수 있는 눈도 주셨다. 그래서 난 내 전공영역인 경영전략과 기업윤리에서 ‘뿌린 대로 거두는 정의의 질서가 온 우주 안에 엄존’함을 근거로 상대적 가치판단기준이 아닌 절대적 기준에 입각한 ‘Dynamic Management‘라는 새로운 경영패러다임을 정립할 수 있었고 이를 amazon.com과 해외학회에서의 발표, 세미나, 특강 등을 통해 국내?외 학계와 산업계에 보급 확산시킬 수 있는 토양도 갖추게끔 해주셨다.

상대입학 후 어느새 훌쩍 지나버린 50년 세월은, 인간은 자기의지로 뜻을 세우지만 그 뜻이 이루어지고 않고는 온전히 하느님 의지에 따라 정해진다는 사실을 터득케 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첫애가 잘못 태어났을 때 내 죄 탓임을 인정하고 통회하던 마음을 보시고 아들을 살려주셨음같이 낮 추인 마음을 그분은 아니 낮추어보신다는 성경의 경구도 참임을 굳게 받아들이게끔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난 오늘도 누구든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낮출 때라야 하느님께서 천상은총을 듬뿍 부어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매 순간순간 죄를 성찰하며 만물을 만드시고 보전하시며 다스리고 계시는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레지오 입단 2주년

우리(나와 연숙)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성모님 군단의 최전방 소대,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지난 몇 개월 동안 많이 변했고, 현재도 변하고 있다. 많이 변했다고 했지만.. 이것이야 말로 sea-change라고 부를 수 있고, 그것은 바로 perfect storm을 뚫고 나온 느낌이었다. 그중에 제일 큰 변화, 그것도 충격적인 것은 역시 우리의 사랑하는 단원, 친구, 영적 선배.. 은효순 요안나 자매님.. 영웅적인 암 투병을 하시던 용감하고 멋진 여성, 결과적으로 성모님은 그녀를 더 심한 고통에서 구해 주셨을까, 한창 더울 때였던, 7월 26일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다.

솔직히 우리들은 ‘흔치 않은’ 기적을 바라고 있어서 그랬을까.. 끝까지 더 오랜 동안 우리와 함께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서 조금은 충격적인 떠남이었다. 그 자매님은 우리, 특히 우리에게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을 어떻게 작별을 하는 가 하는 특별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도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야지’ 하는 말을 하였다. 그 짧은 말이 이 자매님이 마지막 순간들을 살아간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아닐까?

나로써는, 2년 전 레지오에 입단을 안하고 살았으면 이런 ‘귀중한 체험’들은 사실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서, 생각하면 할 수록 나를 이, ‘진리와 행동’의 집인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으로 이끌어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특히 연숙) 머리가 숙여지는 감사가 이어진다.

요안나 자매님의 선종과 거의 같은 시기에 다른 단원 자매님의 (미국인) 남편께서 선종을 하셨다. 비록 지난 몇 달간 예상을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timing이 참 놀라웠다. 그렇게 갑자기 가실 줄 몰랐던 것이다. 미국인 남편이어서 장례미사, 연도의 절차가 우리들과 달라서 조금 더 신경이 쓰였겠지만, 모든 것들이 비교적 잘 마무리를 지었고, 특히 그 무더운 날씨에도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정성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완전한 폭풍’ 같은 일들이 끝나자 마자 우리 단원들은 다시 단장, 부단장이 떠나야 하는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이것도 사실은 몇 개월 전부터 알고, 예상하던 일이었지만, 그 과정이 사실 생각만큼 부드럽지 못했다. 간부진들이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조금 더 매끄럽게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간부들, 그것도 제일 핵심인 단장 부단장이 떠난다면 그 뒤에 제일 큰 문제가 무엇인가? 당연히 새 간부진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것, 그런 변화의 준비가 비록 위에 말한 폭풍과도 같은 시련들이 있었다고 해도 별로 되고 있지 않았다. 만사가 바쁘기만 한 단장님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정들었던 곳에 조금 더 세세한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은 지금까지도 남는다.

그런 과정에서 연숙이 단장, 내가 서기로 ‘어쩔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승진’ 했던 것은 충분히 예견이 되었고 큰 무리는 없다고 하지만 나머지 부단장, 회계 직을 채우는 과정이 참.. 기가 막히게 어렵고, 심지어 놀라움과 실망의 연속이었다. 우리 부부는 최소한 ‘순명과 사명’의 의식은 잃지 않았다.

하지만 제일 놀라웠던 사실은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던 단원이었던 분들의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예상도 못했던 언행과 반응이었는데 나는 이것을 한마디로 small Kafka moment로 이름을 지었다. 그만큼 우리 부부는 놀랐던 것이다. 레지오 선서, 순명의 정신 같은 것들을 벌써 잊어버렸나 할 정도의 언행에 놀라기도 했지만, 다음은 ‘차가운 현실’을 느끼게 하는 실망으로 이어지고, 곧바로 damage control 로 이어졌다.

12명까지 불어나 ‘승승장구’하던 우리 레지오가 거의 몇 주일 만에 6명 이하로 떨어지는 쓸쓸한 공기로 휩싸이고, 심지어 적막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bible, 레지오 교본들에 언급된 ‘경고’ 들을 실감하게 되었다. 조그만 시련기인 것이다. 군대와 같은 조직인 레지오에서 leadership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가 절감하게 되는 첫 시련기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조직과 다르게 우리는 ‘사령관’인 성모님이 계시고 보호한다고 늘 생각은 하지만 우선 매주간 동안 살아 남아야 하는, survive하는 급박한 문제는 우리들이 풀어야 하는 것들이 아닌가? 군대에서 군인의 숫자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거의 치명적인 것이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새로운, 그것도 에너지가 충만한 젊은(상대적으로) 여성 단원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고, 그 단원이 씨앗이 되어서 다른 예비단원들의 입단도 어렵지 않게 꿈꾸게도 되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레지오 입단, 역사적인 2주년을 맞게 되었고, 지난 2년간 나의 ‘변화’를 조금씩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암만 생각해도 나는 참 많이 변했고, 변해가고 있다. 세속적인 자질구레한 습관들의 변화는 어렵지 않게 식구들에 의해서 발견되고 심지어 놀라워한다. 특히 연숙은 크게 나타내지는 않지만 (거의 의도적으로) 간접적으로 나의 변화를 ‘즐기고’ 있는 듯하다.

쉽게 말해서 out of closet같은 느낌.. 이제와 다른 세상을 보고 느끼는 2년 간이었다. 그전에는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할 정도였다. 급기야 그런 나의 변화를 연숙은 공개적으로 평신도 주일 강론에서 밝히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물론 2년은 어떻게 보면 아주 짧은 기간일 수도 있지만, 나의 레지오와 연관된 세월들은 참으로 귀중하고 길었던 경험의 연속이었다. 단적인 예로 새로 알게 된 성모님과 성모신심(Marian Devotion)은 나에게 새롭고 귀중한 보물이었다. 궁극적인 진리인 성삼위로 향하는 지름길, 안전한 길을 제공하는 우리의 어머님, 보호자를 찾게 된 것이다.

그곳으로 향하는 비교적 안전한 것, 묵주기도.. 그것의 진실과 참 뜻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레지오 2년 생의 초보자이지만 남은 여생의 한계를 생각하면 남보다 10배의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하며 ‘월반’을 꿈꾸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울까?

지난 8월 15일에 끝이 난 “33일 봉헌” 과정 이후에 나의 우주,세계관은 아주 폭풍과도 같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제야 무엇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지도 짐작하게 되었고, 아.. 이것이 바로 진리, 진실이었구나 하는 생각, 왜 이런 사실들을 1982년 영세 후 30년이 지난 지금에게 알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을 감사하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제는 최소한 뒤로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는 사실이다.

33일 봉헌을 위한 준비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33일 봉헌"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33일 봉헌 지침서

33일 봉헌… 오래 전, 아마도 10년 전쯤일까, 이런 말도 들었고, 책도 본 희미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물론 모두 연숙을 통해서였다. 한쪽 귀로 듣고 1초도 채 안되어 다른 쪽 귀로 내보냈을 것이다. ‘전혀’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고, 귀찮기만 한 이야기들로 들렸으니까.

그로부터 10년 뒤로 fast forward한 지금 나는 어떤가? 그것을 지금 ‘체험’적인 적극성을 가지고 대하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 나로서도 놀라운 자신의 변화라고 할 수 있고, 여기에는 더 높은 곳의 뜻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나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예전 같으면 상상이나 꿈도 못 꾸었을 그런 ‘추상적, 형이상학적, 신비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33일 봉헌, 더 구체적인 말로는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가 더 맞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간단하게 그저 ’33일 봉헌’이라고 부른다. 간단히 말하면 33일 연속으로 ‘관상,묵상,기도’를 하고 그의 결과로 ‘공적인 인정’을 받게 되는 그런 것이다. 비록 매일 혼자서(사적으로) 하는 신심행위이지만, 이 행위자체는 완전히 공개적으로 알리고, 공개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듯 하다.

그런 것이 올해 나에게 ‘분위기’가 무르익었는지, 자연스레 다가왔다. 예전 같은 콧방귀나 거부감, 무관심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고, 나는 나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보고 싶은 장난기도 발동했다. 종교를 완전히 떠난 ‘세속적인’ 것으로 말하면 Tony Robbins같은 세계적 inspirational coach가 지도하는 $$이 엄청 소요되는 seminar에 ‘개인적’으로 참석한 그런 상황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두 기본적인 것은 ‘개인적인 변화’ 그러니까 change인 것이다. 변하지 않고서는 진전이 없다는 대명제가 아닐까? 나도 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주 세속적인 ‘낮은 곳’이 아니고 천상의, 높은 곳에서 나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아주 매력적인 것이 아닐까?

 

St. Louis of Montfort best Marian classic
성 루도비코의 성모신심 best classic

이 33일의 ‘기나긴 묵상,기도’는 100% 17세기 프랑스 신부님인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 (St. Louis Marie Grignion de Montfort) 성인의 ‘작품’이다. 이 분의 성모신심(Marian Devotion)은 정말 역사적인 것으로, 20세기에 들어와서 레지오 마리애 운동으로 현실화 되었고, 근세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 일반적인 승인을 받게 되었다.

이 성인의 대표적 저서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은 저술 후 100년이 지난 후에 ‘기적적’으로 발견이 되어서 지금은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신심, 방법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 신심의 기초가 된 이 신심은, 내가 레지오에 가입하면서 이렇게 자연스레 다가온 것이다. 이것을 접하게 되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리아 신심을 비방하는 무식한 사람’들을 내가 전적으로 무시하게 되었다. 비방을 하려면 ‘좀 알고’ 하라는 소리밖에 나오질 않는 것이다.

 33일이 끝나고 봉헌하는 날이 일년에 6번으로 ‘고정’이 되어있어서 이것을 시작하는 날도 그만큼 고정이 되어있다. 내가 시도하는 때는 7월 13일에 시작이 되어서 8월 15일, 봉헌에 맞추어져 있다. 하루 최소, 약 1시간내지 1시간 반이 걸리는 이 신심 행위는 매일 미사를 강력히 권하는 조건도 있어서 아마도 ‘꽤 가치가 있는’ 무더운 여름을 예상케 한다.

나의 하루 일과를 어떻게 이것에 맞추어야 할지는 ‘무조건 해보고’ 조정해 나가기로 했고, 사실 그것이 제일 효과적인 길일 것이다. 이런 것은 ‘자세한 계획’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 자신의 ‘천상적’ 변화를 기대하며.. “Totus Tuus

 

총 33일

첫째 시기 12일

세속 정신을 끊음

1일

제 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2일

제 2일

양 진영

3일

제 3일

결단

4일

제 4일

권력과 명예

5일

제 5일

우상화된 육욕

6일

제 6일

지성주의

7일

제 7일

집단적 인간성

8일

제 8일

쾌락

9일

제 9일

거짓과 위선

10일

제 10일

자유에 대한 무절제한 갈망

11일

제 11일

삶에 대한 불안과 근심

12일

제 12일

생의 마지막 것들

 

둘째 시기 제 1주

자기 자신을 알기

13일

제 1일

자신에 대한 인식

14일

제 2일

자신의 죄에 대한 인식

15일

제 3일

내적 죽음

16일

제 4일

이기심

17일

제 5일

교만

18일

제 6일

나태

19일

제 7일

애덕이 없음

 

둘째 시기 제 2주

성모님을 알고 사랑하기

20일

제 1일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와 마리아

21일

제 2일

성령의 정배이신 마리아

22일

 제 3일

그리스도의 어머니시며 그 신비체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23일

제 4일

은총의 중개자이신 마리아

24일

제 5일

사도의 모후이신 마리아

25일

제 6일

묵시록의 여인

26일

제 7일

마리아 공경의 필요성

 

둘째 시기 제 3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식하기

27일

제 1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

28일

제 2일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

29일

제 3일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

30일

제 4일

모든 신심의 궁극 목적이신 그리스도

31일

제 5일

세례성사의 갱신인 그리스도께 의 봉헌

32일

제 6일

그리스도 안에서의 변화

33일

제 7일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로

 

아틀란타 성체대회, 2012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2012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2012

아틀란타 성체대회,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AEC 2012.. 올해의 아틀란타 성체대회가 아틀란타 국제공항 옆에 위치한 거대한 Georgia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에서 30,000+ 명이 넘는 아틀란타 대교구 지역의 가톨릭 형제, 자매들이 참가해 뜨거운 열기에 찬 파견미사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올해로 50주년이 되는 세계 성체대회, IEC 2012 가 아일랜드, 더블린 (Dublin, Ireland)에서 서서히 막을 올리고 있다.

이런 대규모 모임은 모두 예수님의 성체(성사), Eucharist에 관한 주제로 열리는 것으로, 모든 행사의 초점은 역시 ‘예수님의 몸과 피(성체, 성혈)’에 모여진다. 이런 까닭에 이 대회는 전례력으로 매년 6월 쯤에 있는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The Solemnity of the Most Holy Body and Blood of Christ“을 전후로 열리게 되고 올해는 그날이 바로 6월 10일로써 그전의 이틀, 6월 8일, 9일에 걸쳐서 열렸다.

아마도 더블린의 세계 성체대회도 이날에 맞추어 열리는 것일 것이다. 나는 작년에 ‘난생’ 처음 이곳 아틀란타 성체대회에 참가해서 기대나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얻게 되어, 올해도 꼭 가리라 계획을 했었고, 결국은 ‘무사히’ 연숙과 같이 참가를 하게 되었다.

 작년 6월 아틀란타 성체대회에서의 느낌을 적은 나의 blog에도 있었듯이, 내가 이 대회에서 제일 기대하는 것은 ‘성체’에 관한 것 보다는 그저 머리로만 알고 있는 나와 비슷한 ‘인생,세계,우주관’을 가지 형제,자매들과 그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의 ‘열기’를 느끼고 보는 것이다. 특히 근래에 들어서, ‘종교와 믿음의 자유’가 사회적, 정치적으로 제한, 차별을 당하는 느낌을 받으며 그런 생각이 더 간절해 졌다. 한마디로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라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더욱이, 소위 ‘자유세계의 지도자’라는 바락 오바마(Barak Obama) 와 조 바이든(Joe Biden) 이라는 인간들이 자기들은 ‘동성 결합’ 에 ‘절대’ 문제가 없다는 발언이 나온 뒤에는 무언가 세상이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들이 모여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올해의 성체대회는 또 다른 사명을 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6월에 이곳에서는 보기 드문 장마 monsoon 성 날씨로 수영장이 파리를 날릴 정도로 시원한 날씨가 계속되어서 더욱 쾌적한 성체 대회가 되었고, 3만+ 명, 거대한 수의 사람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아무런 사고 없이 움직이는 것도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런 것은 나의 육체를 그곳에 끌고 가지 않았으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미국본당과 한국본당 두 곳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우리들은 백인, 한국인 이외 제3의 형제,자매들을 그곳에서 경험한다. 엄청난 수의 Hispanic (주로 중남미, 카리비안), 나날이 늘고 있는 Vietnamese(월남인) 계통의 가톨릭 신자들이다. 아틀란타 대주교님까지 흑인이고 보면, 이런 경향이 미국 가톨릭의 미래 모습을 보여준다 고나 할까.

특히 작년에 이곳에 왔을 때 느낀 것이지만 월남계 가톨릭의 눈부신 발전은 정말 눈에 부시다. 그들보다 이민 역사가 더 긴 한국계나 중국계를 완전히 제치고 동양계에서, 아마도 그들이 앞서서 우리들까지 이끌고 나갈지도 모른다. 프랑스 식민통치에 의한 ‘빌려온’ 신앙이지만 그들이 이미 이곳 성체대회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따로 모임을 갖게 된 것,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다.

 한국계 신자들의 참여는 확실히 작년에 비하면 현저하게 늘었다. 본당도 한 곳에서 두 곳,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과 둘루스 성 김대건 성당, 이 되어서 그 들을 대표하는 banner를 가지고 입장도 해서, 참 보기에도 좋았다. 특히 어린애들을 가진 부모들이 많이 참여를 해서 흐뭇했는데, 그들이 앞으로 언젠가는 우리 공동체를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남는’ 나이 든 (우리를 포함) 세대와 어린애들 부모들을 제외한 주류세대(30~50대)는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물론 가정을 책임진 입장에서 시간이 남아 돌 리는 없을 것이지만.. 나도 그 당시에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은 서서히 후회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았지만,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 생산적, 의미 있게’ 쓰며 살았을까 하는 것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성체대회의 slogan은 위에 있듯이 We though many are one body under Christ 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역할이 다른 ‘지체, branch’는 여럿이지만 몸, body는 하나라는 뜻이다. 나날이 줄어드는 신학생, 목자, 사제, 수도자, 수녀님들의 수는 누구나 의 관심 사일 수밖에 없어서 작년부터는 성체대회의 모든 에너지가 ‘성소, vocation‘에 모아지고 있다.

듣기에 아프리카,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는 오히려 목자의 수가 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예외에 속할 것이다.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는 세속적, 상업적 문화는 가히 경악할 정도인 것일까? 특히 유럽의 세속화, 탈 교회 경향은 가공할 정도라고 한다. 미국도 질세라 그 뒤를 따르기 시작을 했는가.. 이것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단결된’ 교회세력, 특히 잘 조직화 된 가톨릭 교회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올해도 낯익은 얼굴이 대회를 이끌었다. 바로 local TV Fox 5의 News Anchor인 Russ Spencer, 그는 내가 기억하는 한 이 성체대회의 고정 멤버일 정도로 매년 ‘봉사’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극우적’인 Fox TV를 싫어하지만, 이 anchor는 아주 reasonable한 신앙인으로 보였다. 6명이나 되는 자녀를 둔 것을 보면 그가 어떤 천주교인인지 대강 짐작이 간다. 말도 잘하고, 용모도 좋고, 신앙심도 좋은 인기인,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대주교님도 항상 그를 my best friend라고 부른다. 대주교가 뉴스를 타게 되면 반드시 Fox news를 통해서 나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작년에는 프로그램 전부를, 점심때를 제외하고, 경청해서, 대회장 밖에서 열리는 다양한 활동을 못 보았다. 그래서 올해는 중간 중간에 hallway로 나와서 여러 가지를 보기도 했다. 대부분 수녀회,수도회, 신앙단체를 소개하는 desk였지만, 상업적인 것으로 종교서적, 각종 video, audio disc, 묵주, T-shirts등도 있어서 신선한 공기와 더불어 기분 전환을 하기에 좋았다. 특히 Adoration Chapel (성체조배실)도 올해는 잊지 않고 방문을 해 보았다. 그곳에서 우연히 우리 미국본당의 주임신부 Fr. Darragh도 볼 수 있었다.

 또한 특별 전시물도 있었는데, 그 중에 제일 인상적인 것이: ‘성체의 기적’에 관한 ‘유물’이었다. 이것은 The Real Presence Association이란 곳에서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나도 언젠가 이야기로 들었던 것이었다. 그것 중에는 ‘Miracle of Luciano’ 가 있는데, 미사 중 성체성사 때, 실제로 빵과 포도주가 ‘살과 피’로 변한 case였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예전에는 나도 쉽게 무시해 버렸던 역사적 사실이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나는 그것을 믿게 된 것이다. 쉽지 않지만, 나는 이제는 믿는다. 이래서 ‘신앙의 신비’라고 했던가?

 

Profiles of speakers, emcee

Deacon Jones, Fr. Leo, Emcee Russ Spencer

올해, 초청 speaker 중에 제일 ‘유쾌’했던 분은 바로 필린핀 출신 미국 신부님인 Fr. Leo Patalinghug, 이름의 느낌으로, 나는 태국 출신인줄 알았다. 볼티모어 Baltimore, MD 지역에서 유명한 신부님인데, 요리가 프로급으로 아마도 요리를 제일 잘하는 신부님일 것이라고 한다. 요리로 선교도 한다는데, 그것보다 ‘조그맣고 젊은’ 이 동양 사제는 정말 말을 유창한 영어로 잘, 재미있게 해서 웃음이 끝이지 않았다. 젊은 나이로 보아서 앞으로 정말 크게 기대가 되는 star라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개신교, 그것도 ‘지독한’ 쪽인 evangelical Christian에서 ‘개종’을 한 흑인 부제, Deacon Alex Jones라는 사람, 이 부제님도 참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를 ‘경험에서’ 우러나온 솔직함으로 우렁차게 전했다. 요새 개신교, 특히 ‘대형 교회’가 많은 문제를 노출하면서 신앙을 버리거나 개종을 하는 news가 종종 있다. 아마도 이 부제님도 그런 case였을 것이다.

 5시에 시작된 마감미사, 특전미사, vigil Mass가 이 성체대회의 ‘절정’이다.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이 미사의 ‘성체성사’를 기다린다. 거의 3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영성체를 하는 것은 정말 보기에도 장엄하다고 할까.. 이것을 안 하고 일찍 자리를 뜬 사람들은 사실, ‘결정적’인 것을 놓치는 것이다. 올해도 작년과 같이 영성체의 느낌이 아주 좋았다. 비록 대주교님으로부터 직접 받지는 않았어도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쾌적하게 넓고 큰 대형버스와 점심때의 맛있는 김밥까지 무료로 서비스를 해 준 우리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의 선교부 형제 자매들.. 코가 시큰하게 느껴지는, 고마움 뿐이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으면, 희망을 하고, 우리 (나와 연숙)도 또 올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본다.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2012성체대회에 참가한 성가대 그룹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2012대주교님의 개회 선언, 아틀란타 성체대회, 2012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2012아틀란타 성체대회, 입장하는 성체를 보며

 

입장하는 한인성당 Banner들수많은 Banner들과 같이 들어오는 순교자와 김대건 한인성당 들  

 

전시실에 보이는 레지오 마리애 선교단전시 홀에서 보이는 레지오 마리애 선교단

 

성체대회 merchandise and vendorsAEC 2012, merchandise and vendors in concourse area

 

 

채준호 마티아 신부님 연도

오늘은 레지오 화요일, 우리부부가 속한 레지오 쁘레시디움 (Presidium1 ‘자비의 모후’가 모이는 날이었다. 지난 몇 주간 유럽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고레따 자매님이 돌아 오셔서 조그만 성물 기념품까지 나누어 주셔서 반가웠지만, 거의 ‘영웅적으로’ 암 투병을 하시고 있는 쁘레시디움 회계 J 자매님은 회합이 거의 끝날 무렵에 얼굴을 비치셨다. 회합이 끝나면 곧 12시 정오 미사가 있는데, 오늘은 본당 신부 하태수 미카엘 신부께서 강론 대신에 4월 1일 채준호 신부님의 급작스런 선종에 대해서 개인적인 일화를 하나 하시고 사회자로 하여금 마티아 신부의 글 ‘나 왔수‘ 를 낭독하게 하셨다. 미사 후에 곧 이어서 채 신부님의 연도가 이어졌다.

나는 채준호 마티아 신부님을 본 적도 없고, 강론을 들은 적도 없다. 다만 본당의 website에서 신부님의 강론 비디오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티아 신부님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많았다. 우선 우리의 한국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2000년대 말에, 몇 년간 거주신부로 계신 것을 알고 있고2, 본당 신심단체 중의 하나인 CLC을 적극적으로 활성화 시키신 분으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얼마 전에 레지오 꾸리아에서 빌려온 다른 예수회 소속 송봉모 신부님의 저서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읽으면서 채 신부님의 글이 많이 인용된 것도 보았기에 그가 심리학적 상담의 대가인 것도 알게 되었다.

‘채준호 Googling‘ 도 이번에는 큰 수확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미국 Loyola University 심리학 박사라는 것도 알았고, 한국의 ‘초대’ 예수회 관구 장을 역임했다는 ‘빛나는’ 이력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4월 1일 선종했다는 조금은 ‘의아스러운’ 비보를 듣게 된 것이다. 의아스럽다는 표현은, 글자 그대로다. 50대 중반이긴 하지만, 요새의 50대가 어디 옛날과 같을까.. 거의 ‘청년’일 수도 있는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닐까. 확실하게 어떤 ‘병’으로 선종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사고’는 아닌 듯 싶다. 한마디로 정말 ‘아까운’ 일이다. 천주교회, 수 많은 기대를 어깨에 짊어졌을 만한 ‘인물’이었을 텐데..

본당 신부님은 예수회 입회 당시 만난 채 신부님을 조금은 ‘덜 심각한’ tone으로 들려 주셨는데, 경상도 출신으로 겪는 ‘쌀’과 ‘살’ 발음에 얽힌 유머러스한 일화였다. 솔직히 그런 것보다는 조금 더 ‘높은 차원’의 일화나 추억을 기대했는데.. 하지만 그 신부님의 기억이 그것이 전부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신부님들은 전부가 ‘서강대 사단‘의 일원이라서 이곳의 ‘서강대 친지’들에게서 다른, 더 들을만한 일화를 기대하지만.. 글쎄.. 과연 있을는지. 연옥을 지나쳐서 천국으로 직행 하셨을 신부님의 명복과 그의 가족, 친지들의 마음의 평화를 빌면서..

  1. 레지오 마리애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조직, 군대 조직의 소대에 해당함.
  2.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은 1990년 중반부터 전적으로 한국 예수회에서 파견 신부를 받아들이고 있다.

아이 트리플 이, 스펙트럼

¶  아이-트리플-이 스펙트럼.. 이것은 IEEE Spectrum의 한글 표기이다. 여기의 IEEE는 미국에 본부를 둔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전기,전자공학도 학회를 뜻하는,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의 약자이고 읽을 때는 대부분이 I triple-Eee로 말한다. 이곳에는 아주 많은 세분된 학회들이 모여있는데, 물론 전기,전자공학에 관련된 것 들이다. 이 학회의 ‘간판’ 격 회지의 이름이 바로 Spectrum magazine이다.

이 학회에 가입을 하면 (년 회비를 내면), 이 ‘잡지’는 무조건 받게 되고 분과 학회에 가입된 곳의 회보(주로 논문집)를 따로 받는다. 나는 이곳에서 학교에 다닐 때 거의 ‘자동적’으로 학생회원으로 가입을 했다가 졸업을 하면서 일반회원으로 남게 되었는데, 거의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나오게 되었다. 상당히 비싼 연회비로 그렇고, 내가 직장에서 하는 일 (embedded systems)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나오게 되면서 그리 아쉬운 것을 못 느꼈지만, 단 한가지.. 이 간판 격 월간지 Spectrum magazine만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이 월보는 상당히 그때그때의 인기를 끄는 기사들을 아주 ‘쉽게’ (일부러 ‘수학’ 공식을 피한 듯한) 계제하곤 해서 ‘누워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오랜 세월을 잊고 살다가, 며칠 전 정말 우연히 이곳을 website에서 보게 되었고, 정말 고향을 찾은 기분을 만끽하게 된 것이다.

다행인 것은 다시 회원으로 가입을 하지 않고, 아주 질 높은 technology, 특히 consumer electronics에 관련된 기사를 보게 된 것이다. 언제까지 이곳이 ‘무료’일지는 모르겠지만 (New York Times처럼), Google처럼 우리 같은 99%를 조금 더 생각해 주는 그런 ‘자선’적인 자세로 일관하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ieee-spectrum

IEEE Spectrum mag site

¶  20년 전통의 Nativity scene:  우리가 사는 subdivision에 이사온 지도 내년 3월이면 벌써 20년이 되어간다.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도 거의 다 자란 셈이고 우리도 늙은 청춘을 다 보낸 느낌이다. 별로 크지 않은 곳이라 사실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대개 알 정도가 되었고, 우리는 이제 ‘고참’ 축에 속하는 집이 되었다.

이곳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낸 지도 그렇게 오래되었는데, 그때마다 20년 동안 변함없이 앞 뜰에다가 아기예수님 태어나신 모습으로 장식을 한 집이 있었다. 물론 독실한 크리스천 일 것이고, 걷다가 인사도 자주하는데, 내가 놀라는 것은 어쩌면 20년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장식을 똑같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없어지는 날은 우리 동네의 큰 뉴스거리가 될 것이다.

20 years of Nativity

2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예수탄생 전시

 

¶  Wordle: 워들?  아마도 word riddle을 줄인 말이 아닐까? 이 site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이것은 blog site에서 많이 쓰이는 에 많이 쓰이는 computer software인데, 쓰이는 빈도에 비례해서 글자, 단어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보여준다. 이것을 보면 어떤 단어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지 한눈에 들어오는데, 문제는 아직까지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IBM에 근무를 하며, 여가시간에 이것을 만든 모양인데, 아깝게도 이것은 open source  software가 아니고 IBM에 그 copyright가 있어서, 한글용으로 바꾸거나, 한글 기능을 첨가하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하다.

My current interests in Wordle

My current interests in Wordle

 

Triple Lows: 축~ 쳐지는 그런 날

오늘은 가을 날씨로는 조금 싸늘한 편이었지만 밝은 햇살 덕분에 ‘느낌’은 그리 춥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기분은 완전히 tail spinning 하는 듯 새카만 심연 속으로 빠지는 듯한 하루였다. 이것이 오래 전 유행하던 biorhythmtriple lows에 해당하는 그런 때가 아닐까? 며칠 전 돌아가신 분들의 연도와 장례식 등으로 인한 심적인 stress로 사실 몸과 마음이 축 쳐지기 시작했고, 오늘은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나를 완전히 knockout을 시킨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일찌감치 항복을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유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영어로 말하면 unreasonable한 사람들이다. 특히 이런 ‘막무가내’한 사람이 만약 ‘중요한 일’을 하는데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예를 들어 직장 같은 곳에서 이런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면 정말 곤란할 것이다. 문제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력을 해도 안 되면 결국은 그 관계는 완전히 실패를 하고 일도 실패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그런 사람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 그것이 항상 가능하지는 않지만..

 나도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이런 상황을 많이 당해 보았다. 대부분 피할 수 없는 case여서 정면으로 맞상대로 ‘싸우거나’, 그대로 ‘당하면서’ 고민하고 속을 끓는 수 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그래도 그런 사람을 피하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았다. 그런 사람과의 관계는 전혀 가망이 없어서 노력자체가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사람을 만약 직장이 아닌 예를 들어 종교단체 같은 곳에서 만나서 같이 ‘봉사적인’ 일을 한다고 하면 어떨까? 내가 당한 case가 바로 이런 것이다. 아내 연숙은 오랫동안 이런 것으로 속을 끓고, 고민하곤 하는 것을 보아왔는데, 이번에 내가 처음으로 ‘당하게’ 된 것이다.

 

 

Gunatanamera – Sandpipers

내가 조금 관계된 아틀란타 한국성당의 전산 팀에 그런 unreasonable한 사람이 도사리고 있는데, 모처럼 마음먹고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쫓아내고 있는 셈이 된 것이다. 정면으로 대결을 해서 문제를 풀 것인가, 피할 것인가? 하지만 대결을 하려면 평균적 reasoning 하는 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 마디로 이야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 사람을 대하는 자체가 시간 낭비인 것이라서, 결국은 ‘피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이것이 과연 그리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결국 이 방법을 택하기로 오늘 마음 먹으면서, 나의 기분이 훨씬 나아지게 되었다. 이것도 오래 살면서 터득한 인생의 지혜 중의 하나다. 참, 세상 살기 힘들다. 이럴 때 특효약 중의 하나는 역시 추억의 oldies가 아닐까? 그 아득한 시절 즐겨 듣던 SandpipersGuantanamera…는 메마르고 갈라진 가슴에 촉촉이 쿠바의 야자유 향기를 뿌려 줄 듯하다.

 

 

망자(亡者)의 날

포근한 가을에서 주룩 거리는 비와 함께 싸늘한 가을날씨가 되돌아온다. 밤새 뒤척거리며 불편한 잠으로부터 싸늘하고 꾸준한 빗소리와 함께 새벽 4시에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비는 싸늘하게, 꾸준하게, 가끔 세차게, 열어놓고 잔 창문 속으로 소리를 밀어 넣는다. 정말 오랜만에 새벽 4시에 깨서 일어나 보았다. 아무리 내가 ‘아침 사람’ 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런 이른 새벽에 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시준비 때가 아니었으면..

어제는 생각해 보니 완전히 하루가 망자의 날이었다. 망자, 망인.. 이럴 때, 한자의 도움과 고마움을 느낀다. ‘죽은 이’ 보다 훨씬 느낌이 고상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지니까.. 두 사람의 고인(故人), ‘아들’ 들, 그 중 한 사람은 남편, 아버지.. 나이 61세와 48세의 남자들.. 어찌 느낌이 없겠는가? 두분 모두 나보다 늦게 태어나고 일찍 돌아가시는 형제님들이다. 한 분은 지난 주에 장례식이 있었고 어제는 연도만 드렸지만 다른 분은 연도와 장례미사가 어제 함께 치러졌다.

 두 사람 모두, ‘말기 암’ 선고 받은 지 한 달도 못 돼서 돌아가셨다. 요새는 ‘암’ 이란 것이 너무나 친숙해 진 느낌이고 감정에도 조금은 무디어지고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레 암의 공격에 항복을 하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을까? 그래서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을 조금은 더 놀라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이다. 이 분들은 나의 가족도 아니고 친지도 아니지만, 느낌은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우리 모두는 사실 하루하루가 시한부 인생을 산 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을 하는 것이다.

 

특히 48세에 운명을 하신 윤(尹) 형제님의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한창 일을 할 나이.. 여느 48세였으면, 한 가족의 가장이요, 대학에 다닐만한 듬직한 아들 딸이 있었을지도 모를 나이, 은퇴하셔서 아들과 같이 살지도 모를 부모님.. 등등이 상상이 되는 그런 나이가 아닐까.. 하지만 그런 것은 ‘통계’에서 나온 흔한 상상에 불과하다. 모든 인생은 다 다른 것이다. 이분의 경우가 그렇다. 우선 미혼이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을지도.. 또한 경제적으로 왕성하게 일을 해서 얻은 ‘부의 결과’도 거의 없다. 사실은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보였다. 유일한 보람은 서로 뭉쳐서 사는 단출한 가족이 전부였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듣고, 본 것이라 이런 ‘느낌’들이 다 맞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럴 때의 느낌은 대부분 맞는 것을 안다.

 61세에 운명하신 안(安) 형제님은 내가 속해있는 레지오와 조금은 관계가 있지만, 갑자기 운명하신 것과 집안 식구와의 종교적인 차이로 장례절차에 조금 잡음이 있었다. 내가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고인에게 종교의 차이가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발상이다. 그것을 고인이 보고 있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도 이분은 주위에 대가족의 ‘정신적 후원’이 있으니 어떻게 보면 참 행복한 이별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주위의 연고가 별로, 아니 거의 없던 윤 형제님을 보내는 것은 우리 ‘레지오가 해야 할 역할을 한마디로 보여준 케이스가 되었다. 그들은 우리 레지오의 정신적 후원과 지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연도와 장례미사, 장지(葬地)동행까지 거의 ‘완벽하게’ 레지오는 사명을 완수했다. 나도 ‘남자’라는 이유로 생애 처음 운구(運軀)의 역할도 했기에 더욱 고인을 생각하게 되었고, 쓸쓸히 보낼 뻔했던 고인도 조금은 편안하셨으리라 굳게 믿는다.

생각한다. 우리 집은 어떤가.. 가족적으로 외롭기는 아마도 위의 윤 형제님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내가 오늘 이 세상과 영원한 작별을 한다면 과연 몇 명의 지인(知人)이나 올까? 범인凡人)으로써는 지나치게 화려한 장례의식도 보았고, 다른 쪽으로는, 고인에게 미안할 정도로 지나치게 쓸쓸한 의식 얘기도 들어서 안다. 그러니까, 이것도 ‘정도껏’ 이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나치게 많지도, 그렇다고 너무나 쓸쓸치도.. 않은.. 그런 것은 없을까? 이래저래, 어제는 삶을 통한 죽음, 죽음을 통한 삶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는 날이 되었다.

 

 

인생은 미완성 – 김진관

 

사랑과 죽음을 응시하며..

사랑과 결혼, 그리고 죽음… 어제는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시점의 이 두 가지를 같이 생각하는 날이 되었다. 물론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아직까지는 예외에 속하니까, 이렇게 결혼과 죽음을 같은 위치에 놓는 것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세상이 하도 변해서, 남자끼리, 여자끼리 ‘결혼을 했다고’ 우기고, 할 것 다하며 같이 살면서 죽어도 결혼 안 했다고 우기고, 자식 팽개치고 이혼한 것이 무슨 ‘벼슬’을 한 듯, “괜찮다 괜찮아” 하며 행세하는 묘한 세상에, 이렇게 결혼과 죽음을 같은 위치에 놓아 보는 것은 사실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만큼 결혼과 죽음은 인간이기 때문에 확실히 거쳐야 하는 중대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You Don’t Bring Me Flowers
Neil Diamond, Barbara Streisand
데레사에게 주는 선물, 오랫동안 변치 않을 사랑을.. 

 

어제는 우리 집과 안면이 있는, 김찬웅(베드로)씨 딸 데레사의 결혼 피로연, 초대를 받고 갔었다. 이미 나의 오래 전 blog에서 언급이 되었던 베드로씨네, 부인인 안젤라씨는 내가 속해있는 레지오의 단장님이기도 하다. 거의 20+년 전, 우리의 두 딸들과 어울려 놀았던 데레사가 결혼을 해서 친지들이 모여서 멋진 파티를 한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우리부부가 선생님을 하던 아틀란타 한국학교에도 다니던 아이들이.. 이렇게 커서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을 보며, 또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이런 자리에 가게 되면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것은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모일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집을 안 역사는 오랜 되었지만 그것에 비해서 자세히 아는 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짐작으로, 우리의 문화적 배경인 동창회, 종교 단체 등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곳은 이민 1세의 특성상, 거의가 자영업을 가지고 있어서 직장,조직에 의한 연고는 그렇게 많지 않다. 경기, 서울대를 거치는 동창회는 그런대로 아틀란타 지역에 ‘막강’한 세력이 있는 것 같고, 베드로씨는 아마도 활동적인 멤버인 것 같아서 그곳을 통한 사람들이 많이 온 것은 짐작한 대로였다. 거기다 베드로씨는 긴 세월은 아니었지만 삼성 아틀란타 지사에서 근무를 했으니까 그곳에도 ‘동창’들이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짐작보다 사람들이 많이 참가를 한 ‘성공적’인 피로연이 되었다.

그곳에서 ‘의외’로 만나거나 본 사람 중에는: 오래 전 아틀란타 한국학교 교장 김경숙씨, 그의 남편(경기고 출신)이 있었다. 뜻밖의 마음과,보기 싫은 마음이 싸우며 결과적으로 인사를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살면서 끝맺음이 잘 못되면 이런 꼴이 된다는 것, 참 불쾌한 기억이요 잊고 싶은 추억이다. 연세대 2년 선배, 장학근 선배(건축과)를 거의 5년도 넘게 만나서 인사를 했는데..글쎄.. 나를 기억을 하는지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그의 부인이 나와 연세대 66학번(가정대) 동문이기도 했는데 어제는 인사를 못했다. 한때 잘 나가던 부동산인 김경자씨..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만났는데..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 관계를 모르겠다. 우리가 현재 사는 집은 1992년에 이분이 소개를 해 주어서 사게 된 것이라 잊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반가운 집 연세대 후배 Mr. 고, 그의 부인..이 집은 2005년 초에 우리 집 ‘깡패,귀염둥이 강아지’ Tobey를 준 집이다. 반가운 인사 전에 Tobey의 안부를 먼저 물을 정도였다. 이 집 부부도 사실 안지가 꽤 오랜 되었지만, 특별한 관계가 별로 없었다. 이 Mr.고, 김찬웅, 베드로씨와 삼성지사에서 같이 근무를 해서 아는 사이라 온 것이다. 그때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은 가끔 ‘동창회’처럼 모인다고 했는데, 이런 것도 미국인들이 이해를 잘 못하는 한국문화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연숙은 금새 잘 알아 보았는데,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할 듯.. 그만큼 내가 변했다는 표정으로 보였다. 그것도 세월의 진리일 것이다. 예전보다 많이 이런 반응에 익숙해 졌고, 익숙해 지려고 기를 쓴다.

 

Perhaps Love
John Denver & Placido Domingo

 

조금은 예상했던 집들, 설재규씨 가족도 보았다. 아직도 어떻게 설재규씨 집안이 베드로씨 네 집과 연관이 되었는지 그 사연을 모른다. 이런 ‘인연’을 추리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연숙의 이대 선배 박교수님 댁도 보았지만 인사를 못 했다. 이분들이 올 것은 쉽게 예상이 된 것이, 남편끼리는 경기고,서울대 동창이며, 부인들은 숙명여고 동창인 것이다. 이것 보다 더 연관이 된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 이외의 ‘개인적’인 친분의 정도는 정말 미지수일 수밖에 없다. 베드로씨와 ‘불알’ 친구라고 공개적으로 선포를 했던 EmCee 김용주씨, 역시 오래 전에 알게 되었지만 나이와 학벌 같은 이유로 공감대가 별로 없었다. 한때 아틀란타 본당의 ‘사목회장’까지 역임을 했었지만 요새는 조용한 듯 하다. 우리의 마리에타 2구역, 구역회장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조덕성, 바오로’ 씨를 이곳에서 볼 것이라는 것은 100% 확실했다. 며칠 전 구역미사에서 이미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토요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모여서 술과 노래를 즐긴다고 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도 Three Tenors를 모방한 연기도 있었는데, 조금은 어려운 노래, “Perhaps Love“를 고른 것이 조금은 무리였나.. 가사를 잊고 중단도 되었지만 신부 데레사가 재치 있게 이어받아 불러 주었다. 이때 데레사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반가운 사람들이 더 많았다. 물론 우리 막강한 레지오 단원들이 전원 참석해 주었기 때문이다. 단장님 딸의 경사라서 사실 ‘피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은근히 놀란 것이, 그런 자리는 사실 조금은 ‘젊은’ 취향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것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단원 자매님들의 ‘형제님(aka 남편)’들을 뵙게 되었다. ‘생각보다’ 첫 인상들이 참 좋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입단한 나의 거의 동년배인 우동춘 형제 부부가 ‘용감하게’ 참석을 하였다. 나이가 너무나 나와 비슷해서 시간만 나면 조금 가까이서 얘기를 해 보려던 참에, 이 자리는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했고, 길지 않았던 시간이었지만 인사치레를 넘어선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 세대가 바뀌는 과정을,그것도 결혼을 통해서 한 가정이 태어나는 것을 보여 주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마감되는 과정을 겪고 있었다. 이날 아침에는 말기 간암 판정을 받은 지 불과 한달 만에 불과 61세로 세상을 떠난 형제님이 있었다. 그는 다름이 아닌 우리 레지오 쁘레시디움의 부단장 자매님의 작은 시동생이었다. 얼마 전에 우리들이 병자기도를 하다가 며칠 전부터는 선종기도로 바뀐, 너무나 빨리 진행된 죽음의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비록 짧은 고통을 겪게 되고, 주위 가족에게 오랜 고통을 주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게 짧았던 이별의 시간은 어떠한가? 예전 같으면 60세가 넘었으니 우선은 살만큼 살았다고나 하겠지만 요새는 사실 빠른 죽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얼마큼 보람 있는 생을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예전에는 깊이 하지 못하며 살았다. 내가 오늘 죽으면 어떠할까? 보람이 있었을까? 알 수가 없지만 살아있는 만큼 동안은 ‘결사적’으로 ‘보람’을 만들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