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ongest day, then snow day 2011..

어제는 모처럼 아주 바쁘게 느껴지는 일요일을 보냈다. 평소 때의 일요일은 조금 relax하는 기분으로 보내곤 하는데, 어제 일요일은 조금 달랐다. 최근에 내가 경험하고 있는 out-of-closet의 한 예라고나 할까.. 처음 가보는 집도 두 군데, 처음 만났던 사람들도 꽤 많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아주 유쾌하고 진땀 나는 경험이 되었다. 단 요새 예외 없이 대부분이 즐기는 karaoke를 제외하고.. 나는 이것에 익숙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Almost empty Atlanta's I-285 morning after snow
Almost empty Atlanta’s I-285 morning after snow

이런 것들과 아울러 이곳의 날씨가 어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치도 어김없이 일기예보가 들어 맞았다. 9시경부터 snow shower/storm(눈보라?)이 이곳 아틀란타 지역에 들이 닥친 것이다. 이 눈보라 때문에 밤에 집으로 돌아올 때 완전히 눈에 쌓인 고속도로 운전을 해야 하는 모험을 하게 되었다. 시카고, 오하이오, 위스컨신에서 살 때는 이 정도는 큰 문제가 못 되었지만 이곳에선 절대로 장난이 아니다. 제설 대비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다가 지형적으로도 언덕이 많은 탓이다 (아틀란타 메트로는 piedmont, 그러니까 구릉지역에 속함).

어제 낮에는 레지오 덕분에 다시 만나게 된 설재규씨 댁으로 가서 그 집의 home network (주로 adsl modem/wifi router 같은 것들)을 손 보아 주었다. 나는 옛날 생각만 해서 설재규씨가 이런 것들 잘 했으려니 했지만 본인의 말로는 이런 것들을 하지 않은지 아주 오래 되었다고 한다. 이런 류의 일들은 언제나 깜짝 놀라게 하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Earthlink/Netopia combo.. 요새 아직도 이런 구닥다리 broadband supplier를 쓰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서도 Netopia adsl modem/router가 특이하다. 아주 요상한 setup mode가 있는데.. 이것은 정말 쓰는 사람이 아무리 ‘바보’라도 문제가 없게 만들어 놓았다. 흡사 요새의 Apple computer와도 같다고 할까. 문제는 동시에 두 대 이상의 pc에서 Internet을 쓸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정말 20세기적 발상이다. 이것을 바꾸려면 dumb mode를 full “bridge mode”로 바꾸면 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다음에 하기로 하였다.

그것이 끝나고 몇 주 전에 이미 예정된 아틀란타 한인성당 전산팀의 신년 회의/식사 참석차 Dacula, Georgia에 있는 홍보분과위원장 댁으로 연숙과 합류를 해서 설재규씨와 갔다. 그곳은 I-85 Exit 120 근처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최근 이곳은 한인들이 집단적으로 정착을 하는 곳이다. 밤 9시 이후로 예정된 대설 주의보를 염두에 두면서 전산팀 모임이 진행 되었다. 이날의 hostess인 서 안젤라 자매(본당 사목위원)의 power를 보여 주는 듯, 본당의 세 분 신부님께서 모두 오셨다. 그러니 분위기는 자연히 아주 활발하고 무게가 있었다.

이 댁의 지하에는 완전히 꾸며진 Video/Audio/Karaoke시설이 있었고, 한 쪽에는 아주 잘 꾸며진 ‘기도방’도 있었다.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와 식사가 끝나면서 Karaoke방으로 모두들 모이게 되었는데(사실은 우리 신부님들이 이런 것들을 좋아 하신다고 함).. 나와 설재규씨는 눈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미리 일찍 가자고 합의를 한 상태여서.. 9시 넘어서 조용히 빠져 나왔다. 이때부터 위에 언급한 snow adventure/nightmare 가 시작된 것이다.

20여 년이 넘게 나는 눈이 깊이 쌓인 고속도로를 운전한 경험이 없었다. 어제의 눈발은 흡사 거의 폭우와 같이 쏟아졌는데. 도로는 완전히 눈으로 덥히고, 앞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 중간쯤에 와서는 차기 조금씩 미끄러짐을 느끼게 되었다.다행히 일요일 밤이라서 그런지, 일기예보를 미리 들 보아서 그런지.. traffic은 그리 많지 않았고, 특히 집채만한 대형 트럭들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더 눈보라가 심해지고, 드디어 나는 속으로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그만큼 다급해 진 것이다. 잘못 하다가는 차를 세울 지경이 된 것이다. 이미 도로변에는 세워진 차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ramp에서는 이미 충돌사고로 엉킨 차들을 피해가야 했다. 집 근처의 완만한 언덕들을 천신만고 끝에 기어서 거북이처럼 집으로 goal-in을 하였다. 이때는 정말 ‘만세’를 불렀다. 최악의 상태가 오면 차를 버리고 둘이서 집까지 걸어 올 각오를 했을 정도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머지 사람들이 걱정이 되어서 연락을 해 보니 아직도 karaoke를 하며 놀고 있어서, 빨리들 출발 하라고 말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으로 돌아 갈 때 몇 명은 아주 고생을 하였다고.. 새벽 3시경에 도착한 형제님도 있었다. 신부님들도 역시 눈 때문에 거북이처럼 운전을 하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을 해 보니.. 이번 모임은 사실 취소하거나 연기를 했어야 했다. 정말 무모한 모험을 한 결과가 된 것이다. 만약에 더 큰 사고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 하지만 다행히 이번의 모임은 추억에 오래 남을만한 것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 밖을 보니 완전히 모든 곳이 깊은 눈으로 덮여있었다. 성탄절의 눈과 더불어 이번 겨울의 제2탄인 것이다. 조금 용기를 내어서 우리 집 “깡패” Tobey(개)를 데리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다리가 짧은 Tobey가 가슴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느라 고생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오늘 월요일은 snow day, holiday가 되었다. 대부분 따뜻한 집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뜻밖의 ‘휴가’를 즐길 것이다. 이것이 snow day의 즐거움일까. 겨울에만 있는 뜻밖의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지난 밤에 쌓인 6"의 눈

지난 밤에 쌓인 6″의 눈

Walking Tobey on snow day 2011

Walking Tobey on snow day 2011

 

Retiring HP LaserJet 6L

Venerable HP LaserJet 6L
Venerable HP LaserJet 6L

며칠 전에 우리 집의 역사 깊은 printer 하나가 퇴역을 하게 되었다. 1997년 6월에 무려 $400을 주고 산 HP LaserJet 6L.. 처음 나올 당시에 가정용으로 쓰기에는 조금 과분하던 아주 단단한 레이저 프린터였다. 이런 제품들은 문제가 생기면 제일먼저 paper handling mechanism에 문제가 생긴다. 제일 많이 움직이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그런 문제가 한번 있어서 내가 한번 고친 적이 있었다. 워낙 ‘비싼’ 것이라서 부품을 내가 사서 고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거의 9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그런대로 문제가 없더니 며칠 전에 드디어 paper feed가 되지를 않았다. 이번에도 전과 같이 부품을 사서 고쳐도 안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동안 세월이 흐르면서 computer hardware의 값이 말도 안되게 떨어졌다. 이제는 새것을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인 것이다. 성능이 훨씬 좋고, 심지어는 wireless network까지 support되는 model이 $100정도인 것을 보고 참.. 좋은 시절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새로 order한 printer model은 HP LaserJet Pro P1102w 인데 shipping 까지 포함해서 $100 정도다. 이제부터는 printer를 home network에 직접 연결을 해서 쓰게 되므로 따로 printer server PC를 쓸 필요가 없어서 정말 편리하게 되었다.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IT support team

어제는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날이 되었다. 나로서는 너무나 오랜만에, “처음 보는 사람들”을, 그것도 한꺼번에 많이 만난 것이다. 그 자리는 한인본당 (아틀란타 한인 순교자 성당) 월례 ‘전산팀‘ 회합이 있었던 곳이다. 전산팀이란 간단히 말하면 IT support team일 것이다. 성당내의 여러 가지 technology: computer, network system, website등등을 개발 관리하는 본당 신자들의 모임인 것이다.

어제 이곳에 나가게 된 것은 역시 최근에 가입한 레지오의 영향이 지대적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레지오를 통한 “오묘한 일련의 사건의 고리”를 느끼게 되고, 이것이 현재 나를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이런 기회를 전 같았으면 무시하거나, 미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전산팀에 나가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레지오의 ‘본당협조’ 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전에도 자원봉사의 일원으로 본당을 돕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다만 그것을 이루는 다리역할을 못 찾은 것 뿐이었다. 이번에 레지오가 그 다리를 이어준 셈이다. 거의 모든 교회나 성당들이 시대의 흐름으로 IT (Information Technology)의 역할이 필수적이 되었다. 처음 주보 정도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서 신자, 회계관리 같은 것 등도 다 전산화가 되었다. Internet의 일반화로 이제는 website도 필수가 되었다. 이런 것들을 모두 맡아서 전산팀 멤버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성당의 양적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면서 IT support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배경을 생각하며 전산팀 회합에 처음으로 참석을 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는지 참 궁금했다. 2시간 남짓의 회합은 참으로 유익한 것이었다. 나의 의문점을 거의 다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단체에서 나는 ‘은퇴세대’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곳은 조금은 그런 rule에서 예외가 아닐까 희망을 해 본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IT skill set은 지금 성당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과 많이 중복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 당장 도울 수 있는 분야는” physical” computer system, (WAN,LAN) networks, phone system intergration정도가 아닐까 생각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분명해질 것이다.

 

MicroCenter, naked DSL, 거북이 마라톤

MICROCENTER… 어제는 오랜만에 근처에 있는 MicroCenter 에 다녀왔다. 나의 home office를 지난 6월초에 옮기면서 computer desk를 없애고 (방을 조금 더 넓게 쓰고 싶어서) lawyer style의 main desk하나만 쓰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렇게 넓은 곳이 아니라서 아주 작은 computer keyboard를 사서 쓰고 있었다. 보통의 laptop pc보다도 작은 것은 좋았는데 문제가 있었다. 거의 모든 key들의 ‘촉감’이 정말 엉망이었다. 어떤 key들은 누르는데 힘이 너무나 들고 어떨 때는 숫제 접촉이 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불량품’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자꾸 쓰면 길이 들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견뎠지만 나아지지를 않았다. 그래서 조금 비싼 것을 사려고 MicroCenter엘 간 것이다

MicroCenter는 나에게는 남다른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만큼 역사가 깊다는 말도 된다. Computer retail store로 이만큼 역사가 있는 곳이 사실 없다. 거의 30년이 가까워 오니까. 내가 오랜 전에 살았던 Columbus, Ohio에서 시작된 곳이 그 오랜 세월을 견디고 아주 건실하게 성장을 해 온 것이다. Ohio State University campus의 바로 옆에 첫 store가 있었고 주요 고객이 그때 시작된 microcomputer의 customer들이었는데 주로 교수, 학생들이 많았고, IBM PC가 자리잡기 전이라서 주로 Apple II가 주 판매 종목이었다. 이 store의 특징은 computer book store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을 비롯해서 computer hardware, software, 그리고 service, 심지어는 training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시간만 나면 이곳에 가서 그냥 구경만 하곤 하기도 했다.
이때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retail store가 우후죽순처럼 솟아 났지만 몇 해를 가지를 못했다. 너무 성급히 확장을 하려다 못 견딘 것이다. 하지만 MicroCenter는 10년 가까이 거의 같은 종목만 고집하며 확장을 하지 않고 내실을 기하더니 우리가 Atlanta로 이사 올 즈음에 이곳에 처음으로 분점을 낸 것이다. 나에게는 참 묘한 인연이 되었다. 물론 그 이후로 다른 곳으로 많이 분점이 퍼져 나갔다. 유행과 불경기를 아주 잘 견디고 현재도 착실하게 business를 하고 있다. 이런 류의 technology retail store의 역사가 거의 30년에 가깝다면 사실 요새로써는 믿기가 힘든 업적이 아닐까?

NAKED DSL… 우리 집의 Internet access는 현재 AT&T (formerly Bellsouth), 그러니까 phone company의 aDSL 을 1999년부터 쓰고 있다. 우리 집은 원래부터 cable TV service가 없어서 (의도적으로) cable modem을 쓰는 DOCSIS based Internet은 쓸 수가 없다. 그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DSL based Internet service가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Cellular mobile phone service 의 사용료가 많이 떨어지고 질도 많이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하면 이제까지 쓰던 landline based phone service가 없어도 될 지경이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음질과 재해 발생시에 cell phone service는 아직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이런 추세와 최근의 나빠진 경제사정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전화 서비스를 중단하고 cell phone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전화회사에서 그것을 잠자코 보고만 있을까? 별로 큰 투자 안 하고 앉아서 돈을 벌고, 세는 곳이 이런 전화회사인 것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DSL 인터넷과 음성 전화 서비스를 묶어 놓고, 만약 전화를 끊으면 DSL Internet도 끊어 버리는 식이었다. 한마디로 “나쁜 놈“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개 같은” 관행(business practice)이 2년 전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많이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전화’선’을 “끊어” 버리고 있다. 한마디로 전화서비스가 없어도 DSL 인터넷이 가능해 진 것이다. 이것을 “Naked DSL” 이라고 부른다.다른 말로: dry loop, stand-alone DSL이란 말도 있다. 보통, 전화와 인터넷을 같이 쓰면 한달 사용료가 거의 $80에 가까운데 이것을 “naked DSL” 로 바꾸면 거의 반으로 줄어든다. 참 매력적인 선택인 것이다.이렇게 바꾸기 전에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오래~~~ 쓰던 그 귀에 익은 자기의 전화번호를 잊어버려야 한다. 아주 없어지니까. 그리고 fax를 쓰려면 조금 골치가 아파진다. 물론 Internet fax를 써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래도 한 달에 $40이상 save한다면 한번 심각하게 고려해 볼만 하지 않을까?

거북이 마라톤… 어제도 참 날씨가 좋았다. perfect Ten 이라고나 할까. 하기야 요새의 날씨는 매일 매일이 거의 perfect Ten이긴 하지만.. 지독한 지난 여름의 ‘괴로움’을 만회하기라도 하듯이 Mother Nature는 참 자비하시다. 그런 와중에 Buford Highway 한인 타운에서는 아주 조용히 흐뭇한 행사가 열렸다. 이름이 아주 재미있었다. 거북이 마라톤.. 얼마나 이름이 재미있는가? 다른 말로, 빠르게 걷는 마라톤..그것도 5 마일 정도의 거리를 자선의 이름으로.. 얼마나 좋은가?
이곳의 Asian community의 봉사단체, 그것도 “여성의 쉼터”라는 단체를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열린 행사다. 순교자 천주교회와 이곳의 제일 큰 개신교회 “한인교회”의 공동주최로 열렸는데, 이것은 의미가 더한 것이다. 구교와 신교가 같이 뭉친 것이니까. 원래 천주교는 교황청의 정책으로 다른 종파의 개신교, 심지어는 비 기독교파까지 포용하는 추세다. 하지만 개신교는 아직도 천주교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많이 남아있고 극단적으로 천주교는 ‘사교’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 한인교회 목사도 있는 지경이다. 어떻게 이런 ‘무식한‘ 목회자가 아직도 있는지 참 한심한 노릇이다.천주교회의 안정호 신부님과 한인교회의 김정호 목사님.. 참 진정한 종교 목회자의 밝은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분들이 뭉쳐서 이런 ‘거북이 마라톤’ 을 성사시키신 것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니 나도 그곳에서 거북이 처럼 걸어볼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이번에는 그 바쁜 연숙이 용감히 참가를 해서 이런 배경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Summer Office with Home Cloud

old office before moving
old office before moving

작은 딸, 나라니가 이사를 나가면서 방이 비게 되었다. 그 방은 동북쪽으로 창이 있는, 여름에는 비교적 시원한 방이고 나의 전 office 보다 조금 더 넓다. 단점은 조금 어둡고 겨울에는 조금 더 춥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은 두 딸들이 얼마 동안(mostly during elementary school years) bunk bed를 놓고 같이 자던 bedroom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난 6월초부터 방을 옮기기 시작해서 거의 한 달을 걸려서 끝이 났다. 이렇게 오랫동안 방을 옮겨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나이에 의해서 느려진 동작, 짐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 (이럴 때 많이 버려야 한다),6월 달의 ‘살인적’인 더위.. 등등으로 나름대로 핑계가 있다.

짐을 정리한 것은 단순히 책이나 서류 같은 것들을 내다 버린 것 이외에도 등치가 아주 큰 computer work desk 두 대를 해체하는 작업도 있었다. 이것은 particle board로 만든 정말 신경질 나게 무거운 monster급인데 disassemble자체는 비교적 간단하나 그것들을 garage로 옮기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평소에 weightlifting이라도 가끔 해둔 것이 이럴 때 톡톡히 도움이 되었다. 그것 두 대가 빠져나가니까 방들이 비교적 크게 보였다.

new 'lawyer' office
new ‘lawyer’ office

이래서 나의 new office는 정말 무슨 lawyer office같이 단정한 desk하나만 중앙에 놓인 그런 아담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monster tube(glass) monitor가 flat screen monitor로 바뀌어서 더 그런 것이 가능했다고나 할까. 3 unit book shelves, drawer chest, file drawer 그것이 전부가 되었다. desk를 벽에 붙이지 않으니까 computer wiring이 조금 문제가 되었다. 절대로 pc box를 desk 옆에 놓기 싫었기 때문이다. 보기에도 그렇고, fan의 소음도 그렇고, desk를 조금씩 옮길 때도 지장이 있다.

Desk 가 과히 넓지를 않아서 가급적 pc peripherals의 크기가 작으면 좋다. pc monitor는 이미 17″로 고정적이고 mouse도 마찬가지다. PS/2 connection도 거의 모두 usb로 대체가 되어서 과제는 조금 간단해 졌다. usb hub을 monitor뒤나 옆까지 끌어오면 된다. 그래서 이제까지 쓰던 ps/2 keyboard를 정말 small footprint usb keyboard로 바꾸었다. 이것은 정말 작아서 보통의 laptop keyboard보다 작다. 나머지 할 일은 video(VGA) 와 usb cabling을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pc box에서 desk/monitor까지는 비교적 가깝지만 만일을 위해서 12′ 정도는 필요하다. usb의 경우는 이미 16′ active extension cable이 있어서 해결이 되었고, 문제는 long VGA cable인데.. 이번에 googling을 해보니 classic한 thick vga cable 외에도 impedance matching vga-to-CAT5 converter가 보였다. idea가 좋았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vga cable 대신에 Ethernet cable을 쓰는 것이다. pricing이 눈을 끌었다. $20~$30 range였다. high quality vga cable과 큰 차이가 없었고 cabling range도 보통 20’가 넘는다. Too good to be true.. 임에 분명 하지만 모험을 하는 셈 치고 order를 하고.. 써 보았는데, 역시 too good to be true ..였다. 문제는 connector가 너무나 motion sensitive한 것이다. 조금만 건드려도 video가 흔들렸다. 웬만하면 ..하고 생각했지만 역시 안되겠다 싶었다. 결국은 12′ classic thick vga cable을 쓰게 되었다. 이것은 예상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직 분명하지 않은 것은 혹시 그 converter가 1280×1080이하의 resolution에서는 ok일까..하는 것이다. return하기 전에 한번 test를 해 보아야겠다.

kitchen Summer office
kitchen Summer office

이런 작업이 끝나고 새office에 앉아 보니 경치가 훨씬 좋았고, 조금은 덜 더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미 더워진 날씨에는 새 office도 마찬가지.. 2층 이라 더위를 피할 도리는 없다. 6월 달 거의 3주간 계속 최고온도가 95도(~35C?)였다. 이것은 조금 예상을 했던 것이다.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 때문이다. 평균온도를 유지하려면 이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피난을 간 곳이 역시 아래층의 kitchen이다. 그곳에는 먹을 것이 옆이 있고,밝고, pc/tv monitor가있다. 그러니까 TV도 볼 수 있고, home server에 있는 video를 볼 수도 있다.

현재 나의 laptop pc는 사실 prime time이 훨씬 지난, 그러니까 ‘고물’에 속한다. 나라니가 쓰던 것을 물려 받았기 때문이다. 겨우 1.5GHz/768MB 정도.. 겨우 mid-size video를 간신히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desktop replacement로는 사실 horsepower 가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good news는 이 정도면 소위 말하는network thin client로는 적격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client-server/remote desktop mode를 쓰는 것이다. 물론 network speed가 관건이지만 이미 우리 집은 이미 gigabit Ethernet network이 깔려 있어서 전혀 문제가 없었다.

현재 우리 집에는 physical pc (laptop포함) 7대가 gigabit network에 연결되어서 돌고 있다. 그 중에 3대는 server closet에 있고 하나가 연숙의 office, 또 하나가 나의 office, 그리고 kitchen에 하나, 그리고 나의 mobile laptop이다. Server closet(at garage)에 있는 3대 pc server는 모두 VMware server 가 각종 virtual machine을 가지고 있다.

home server closet
home server closet

여기서 핵심은 이곳 virtual machine에 있다. 나는 99.9% 이 virtual pc를 main desktop pc로 쓰고 있는 것이다. 현재 도합 8대의 virtual machine이 항상 running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Asterisk pbx도 포함되어있다. 이 Asterisk pbx는 우리 집의 phone (including VOIP phones) 전체를 control하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Microsoft Windows XP, English & Korean 이고, Ubuntu Linux도 있다. 그리고 각각 virtual pc는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email 전용이고, 어떤 것은 web browsing, 어떤 것은 download전용, media server, Photoshop editing 이런 식이다. 이런 approach의 특징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like malware, spam, worm, virus infection etc) 그 특정한 virtual pc를 지우고 다시 만들면 된다. 이것은 사실 요새 많이들 말하는 cloud computing과 다름이 없다. 다만 public이 아니고 private, home cloud인 것이다. 이 home cloud 덕분에 out-of-office에서도 별 문제없이 ‘같은’ computer를 쓸 수가 있게 되었다.

 

Whispering piano가

Whispering piano가 the Whispering Piano Internet channel에서 감미롭게 굴러 나온다. 어쩌면 그렇게 피아노 소리가 감미로울까. 하지만 이렇게 듣기 좋은 것도 오랫동안 들으면 영락없이 시끄러운 ‘소리’로 변하고 만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화창한 월요일 아침 또 Cobb Central로 drive해서 왔다. 이제는 아주 친숙해진 곳.. 어쩌면 그럴까.. 예전에 이곳을 오면 그렇게 ‘빌려온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가는 시간만 기다렸지 않은가. 그때는 누구와 같이 왔었고 분명히 내가 ride를 주었을 그런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좋아하는 책을 보는 것은 즐거웠지만 나의 마음가짐이 전혀 달랐다. 오죽하면 가족들이 나보고 왜 그 많은 시간을 좁은 나의 방에만 처박혀 있냐고 의아한 눈초리를 보냈지 않았나. 이유는 없었다. 그냥 ‘결단’을 못 내렸던 것뿐이다. 나의 세상만사가 거의 그런 식이었을 것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렇게 된 것 투성이일 것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나의 차’가 없어졌다는 것일까? 교훈은 “남의 말을 진정으로 생각해 보자” 라는 것일 게다.

현재 나를 조금이라도 지탱해 주는 것 “dadpc-2: Compaq Presario X1300″ laptop이다. 비록 거의 6년이나 된 ‘고물’ 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쌩쌩’한 보물인 것이다. 다행히 이것을 나라니가 살 당시에 wide-screen으로 비교적 비싼 model이었기 때문에 현재도 거의 문제가 없다. 그런데 역시 문제가 있다. 다행히 external한 것이라 조금은 다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조금은 화가 난다. 이것은 거의 예측이 가능한 고질적인 laptop mechanical weakest link 라고 해야 할까? 바로 power (from charger) connection problem이다. 전번에 새로니가 쓰던 것도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charger를 쓸 때 이 connector에 아주 예기치 않게 stress가 가는 것을 mechanical designer들이 몰랐을 리가 없는데 어쩌면 아직도 이것을 더 잘 만들지 못했을까. 문제는 charger connector에 연결된 pc board에 damage가 간다는 것이다. 이곳에 monster-class strain-relief mechanism이 필요한 것을 왜 그들은 더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좌우지간 이것이 더 악화되기 전에 손을 보아야 할 듯 하다.

지난 주말에는 예정대로 새로니가 다녀갔다. Vanderbilt University에 campus tour에 참가를 했는데 갔다 온 인상이 아주 좋았던 것 같고 financial aid이 더 좋게 되면 그곳으로 가기로 마음을 굳히는 모양이다. Vanderbilt하면 물론 아주 오래 전 김수근 씨가 생각이 나곤 하는데.. Oklahoma에서 조금 신세도 지고 알고 지내던 그분은 거의 공부를 끝낸 상태의 유학생이었지만 그 당시 Sherman의 조그만 college에서 가르치던 아주 ‘우수’한 경제학도였다. 그가 바로 Vanderbilt에서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그때 그 이름을 알았다. 남부의 명문사립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학교자체는 나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아직까지 조금 이해하기 힘든 것은 현재의 job을 ‘버리고’ elementary school teacher가 되기 위해 Master’s degree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사실이다. 조금은 나의 머리로는 앞뒤가 맞지를 않아서.. 나의 희망은 그곳에서 공부를 하다가 더 ‘재미’가 붙게 되어서 higher degree에 도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조금은 우리부부의 ‘염원’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이런 논리는 이제 너무나 구식이 (여기나 고국이나) 되어서 남에게 말하는 것은 조금 치사한 일이다.

나의 지금은 어떠한가? 이게 무슨 해괴한 질문인가? 그래.. 나의 현재 건강상태는 A-minus정도는 될 것이다. 그냥 A라고 해도 되겠지만 조금은 자신이 없다. 아침에 일어난 후의 기분 나쁜 두통과 계속 느껴지는 얼굴의 경련 (연숙은 분명히 눈 주의의 경련이라고 하지만) 등등 그리고 계속 ‘악화’되는 시력.. 등등 때문이다. Physical checkup없이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 나의 주위에 또 있을까? 조금은 창피해서 말을 못한다. 하지만 나나 연숙은 상식적인 건강보험을 규칙적으로 들고 있지 않은가?  거의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life style또한 건강한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도 모르게 몸 안에 무언가 ‘자라고’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조금은 체념을 한 상태다. 우리의 경제력으로는 조금은 말이 안 되는 ‘사치’처럼 보인다. $1000씩 한 달에 지불하고 ‘안심’을 한다는 것 말이다. 이것도 사실 우리가 좋아하던 Obama때문에 얼마나 갈지 의문이다.

 

2000년대의 마지막 해,마지막 달…

2000년대의 마지막 해, 마지막 달이 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별로 생각 없이 그저 또 ‘부담스러운’ 성탄의 달이 왔구나 생각을 하다가.. 생각해보니 2009년이 지나가려고 하고 있음을 알고 조금 더 부담을 느낀다. 그리고 2000년대가 그러니까 decade가 저물고 있음을 생각하고.. 2000년대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또 생각을 한다.

올해 Thanksgiving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사랑하는 작은 가족이 같이 turkey를 먹을 수 있었다. 새로니가 큰 언니답게 부지런히 움직여 주어서 10시간 넘게 drive를 해서 모이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가 구해 주었던 Izzie[kitten, cat] 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게 ‘인연’, ‘운명’, 아니면 ‘숙명’이 아닐까. Tobey & Izzie는 아마도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하는 하느님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부디 행복한 삶을 우리와 살기를 기원한다. 나에게는 나의 오래 전의 끔찍한 ‘죄’를 보속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그런 하느님의 배려라고 나는 믿고 싶다.

나의 수중에는 Cash $450의 ‘거금’이 있다. 아마도 연숙도 짐작은 할지도 모르지만 그 액수는 확실히 모를지도. 그것은 상관이 없다. 유혹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VT-enabled CPU/PC를 살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인가..도 생각했지만 거의 포기를 한 상태이다. 그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훨씬 더 많음을 실감한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을 떠난다면 제일 아쉬워할 것이 무엇일까? 가족이겠지. 그 다음은 … 아마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그 중 에서도 우리 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 그것이 지금은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아니 그렇게 느끼고 싶다. 그렇다. 그 돈은 이번에 오는 성탄을 생각하면 써야 한다. 가족들의 선물과, 자선단체, 조금이라도 우리와 연관된 친지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쓰리라.. 다짐을 하는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러니까 역시 devils in the detail이 아닐까..

 

지금 이 entry는 사실 조금 ‘과장’된 system environment에서 씌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나에게 자만심을 줄 만큼 사실 convoluted 된 remote access 인 것이다.  지금 나는 Cobb Central Library에서 우리 집에 있는 VM-WINXP-EN-2라는 virtual machine 을 remote desktop으로 access하면서 거기에 있는 OneNote로 이 entry를 edit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사실 조금 과장하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technique 이 아닐까? 최소한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하던 그런 쾌거이다. 정말 it’s a wonderful life가 아닐까?  물론 이것은 Hamachi VPN의 덕분에 가능한 것이지만 역시remote desktop mode는 정말 필요할 때만 쓸 것이, speed penalty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한다. 이 speed bottleneck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Hamachi VPN 자체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Cobb Central wireless에 있는 것일까.. 이것은 다른 곳에서 test해 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젠가 Panera에 laptop을 가지고 가서 test를 해 보면 조금 더 idea를 얻을 수 있겠지.

오늘도 비가 많이 온다. 예보처럼 ‘폭우’는 아니고 그냥 잔잔하게 꾸준히 내린다. 경우야, 너는 언젠가부터 rain person이었지 않니? 그냥 비가 좋았지. 환경 탓으로 눈은 포기한지 오래지만 비만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해 주었지. 하지만 올해는 조금 신경이 쓰인다. 아늑한 실내가 있어야만 비를 즐길 수 있는 것인데, 그게 gutter가 주룩주룩 새는 바람에 꿈이 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나의 차 Voyager가 비가 새고 있으니..조금 ‘아늑한’ 꿈은 깨어지고 말았다. 해결책은 모두 손을 쓰면 된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니까.. $$도 크게 필요하지 않으리라 희망을 한다. 다만 그 놈의 사다리를 타는 게 겁도 나고, 따라서 일을 하는데 신이 나지를 않는다.

 

9월을 보내면서…

Come September……란 미국노래가 있었지. 멜로디는 금방 생각이 안 난다. 그리고 Try to Remember란 노래에도 9월이 나온다.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아…… 또 지나가는 9월.. 이렇게 또 세월은 지나가는 건가.  별로 한 일도 없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이것저것 연결이 잘 안 되는 그런 잡스러운 것들을 조금씩은 했을 꺼다.  하지만 그것들이 제대로 서로 연결되는 것이 없는 게 내가 하는 일들의 특징이고 내 인생의 특징이고.. 나의 최대의 문제점이다. 이걸 나는 이렇게 애도하지만 사실은 잠재적으로 즐기고 있다고 생각도 한다.

 이번 이 blog은 처음으로 OneNote로 부터 출발을 시도한다. 그러니까 Word Press의 조잡한 editor를 쓰지 않고 이 powerful OneNote를 base camp로 쓴다는 말이다. 오래 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나의 특유의 ‘생각만 하고 실행을 안 하는’ 그 골칫거리 덕분에 이제야 시도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나마 하는 것이 또한 나의 특징이라고 할까.  참 나란 놈은 내가 생각해도 우습 기만하다.   이것은 나의 home server의 My Little Corner(MLC) 의 blog에 Diary tag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9월 15일이 최근 것인데 제목이 “한 줄 이라도 쓰자” 이었다…… 후후후.. 보름 동안 한 줄은커녕 한자도 못썼지 않은가? 왜 이렇게 쓰는 것이 힘 드는 것일까? 나의 매일 routine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하지만 그 동안에 serony.com blog의 new entry를 썼는데 아직 upload는 못했다. 제목은 “아…재동학교” 이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것들을 정말 두서없이 썼다. 조금은 속이 후련했다.

 그 이후로는 사실 나의 머릿속은 이곳의 날씨로 가득했다. 작년의 정말 ‘즐겁던’ 가을 날씨만 그리며 기대를 했는데 정반대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밤까지 계속되는 끈적거리는 날씨를 보내더니 결국에는 ‘장마 형’ 홍수까지 보게 되었다. 6월부터 시작되던 나의 날씨혐오증의 거의 터지기 일보직전 이었다. 그런 게 결국은 Mother Nature의 도움으로 그제부터 하루아침에 가을이 와버렸다. 조금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변화가 심했지.  나의 지금 사는 방식이 나를 이렇게 한 가지, 그것도 쓰잘 것 없고, 소용없는 것에 매달리게 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내가 바쁘지 않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이런 것들을 경험한 기억.. 거의 없으니까.

 연숙의 2009 Sonata의 license tag은 결국은 tag office에 가서야 받을 수 있었다. 예전의 기억만 의지해서 우편으로 오는 것만 기다리던 내가 조금 우습기도 했다. 이제 Sonata는 100% 연숙의 차가 되었다. 내 이름은 그것에 아무데도 없다. 조금 섭섭할까 우려했지만 반대로 기분이 좋다. 왜 그럴까?  또한 번개처럼 떠오르는 것..을 사고야 말았다. Arduino라는 Made In Italy embedded board인데 $30정도 이었다. 물론 작은 돈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것도 드물다. 언젠가는 깊게 가지고 놀 그런 고급 toy가 아닐까?

 그 동안 또 한 가지 routine이 된 것이 있다. 아침마다 Tobey walk을 할 때 cell phone으로 나의 Google Voice phone #로 전화를 거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PIAF-GV  home pbx를 test하려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다. 이것으로 전화를 하면 Ext 104 (@DADPC)의 voice mail로 연결이 된다. 그러면 maximum 3분 가량 이야기를 record할 수 있다. 이것을 거의 매일 하다 보니까.. 이게 일기처럼 느껴진다. 나의 목소리도 생각보다 초라하게 들린다. 조금 실망을 했다. 그리고 참 내가 말을 정말 안 하고 사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렇게도 말하는 게 힘이 든단 말 인가. 하지만 거꾸로 생각을 해 보면 이것을 매일 하면 ‘연습’이 되어서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지난 8월초에 구역교우 엄 형제가 귀국하면서 송별 구역모임에서 뜻밖에 guitar로 우리부부가 노래를 불렀는데.. 그걸 계기로 다시 guitar를 잡게 되었다. 물론 거의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조금씩 생각이 나는 걸 보고 조금 놀랐다. 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완전히 갔다는 것을 알았다. 목소리를 거의 죽이고 살았지 않은가. 조금은 겁도 나고 해서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돋운다. 밤마다 하는 묵주기도에서도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게도 되었다.

 한 가지 good news라면 정말 우연히.. 조금은 계획적이기도 했지만.. 현재 쓰고 있는 Actiontec internet modem을 오래 전에 쓰던 Alcatel SpeedTouch Home과 거의 버리기 직전의 Dlink router로 바꾸어 보았는데…… 이게 그때부터 Internet speed가 눈에 뜨이게 빨라졌다는 것 인데… 이게 우연인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요새는 web browsing이 조금은 즐거운 일이 되었다. 동기는 물론 router에 있다. QoS 가 VoiP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러려면 QoS router가 필요했다. 그래서 또 거의 돌발적으로 Linksys WRT54GL router를 사고 말았다. 이것은 embedded LINUX firmware를 쓰는데 open source QoS router firmware가 이곳 저곳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계획은 이것을 router로 쓰려는 것이다. 그러면 VoiP을 쓸 때 outgoing voice quality가 많이 나아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조금 $$을 쓰고 말았는데…… 나도 excuse가 있다. 그 동안 allowance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올해는 yard work도 별로 없어서..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