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Moon Rising..

문득 ‘소싯적’ 뜻도 잘 모르고 열광하던 CCR의 pop oldie, Bad Moon Rising이 생각이 난다. 가급적 ‘세속적’ 뉴스를 피하고 살려고 하지만 요새 며칠 동안 쌓이는 괴로운 소식들을 피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런대로 안 보는데 큰 문제가 없는 ‘세속적’ 뉴스 중에는 정박아 김씨 왕조 북괴에 관한 것도 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oversize stupid한 모자들을 쓴 ‘한심한 괴뢰군 장성’들에게 둘려 쌓여 앉아 있는 ‘어둠의 자식 3대, 정박아, 김정X‘ 의 꼴을 보는 것은 한마디로 surreal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의 image에 Korean이라는 말이 붙어서 뉴스에 나오는 것은 참기도 힘들고, 어느 외딴 섬으로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다.

Boston boming, 2013하지만 Boston bombing으로 시작된 일련의 큰 뉴스들은 2001년 9월 이후를 연상시키는데 힘들지 않았고, 이것들마저 피하는 것은 ‘세상을 등지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 1초도 안 걸린 보스턴 마라톤 폭발 후에 생긴 그 후유증을 누가 알겠는가? 비록 사망자가 3명이라고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뛰기 힘든 불구자’가 되었고, 그들로써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인생이 바뀔 수도 있게 되었다. 그놈은 과연 어떤 놈일까? 왜 마라톤, 보스턴 을 택했을까? 시기적으로 4월 초, 8일은 무슨 상징적 의미가 있었나? 암만 생각해도 내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gut feeling은 있다.. 밖에서 온 놈(들)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 그러니까.. 미국 내(domestic)에 있는 ‘정신이상, 불평불만, 반정부, 총기류를 숭배하는 한심한 racist..’ 가 아닐까 하는 생각..

하지만 누가 알랴? 뉴스매체를 즐겁게라도 하듯 곧바로 ricin 이라는 독극물(병균?)을 편지로 보낸 놈이 등장해서 911사태 이후의 암울했던 anthrax 사건을 기억하게 한다. 이놈은 조금은 지능이 떨어지는지 곧 바로 체포가 되었다. 배경을 들으니 역시 ‘말단 종자’ 에 가까운 놈이어서 크게 놀라진 않는다. 역시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큰 나라’ 텍사스에서 ‘엄청 큰 비료공장 폭발’ 사건이 터졌다. 역시 텍사스답게 이런 것도 엄청나다. 제발 계획적이 아닌 사고이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것이 바로 bad moon rising에 해당할 것이다.

모두 모두.. 무언가 잘못된, 인간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Bad Moon의 제일 뒤에 등장하는 것이 ‘빠가’들의 집단(GOP)과 그에 동조한 ‘준 빠가‘들이 만들어낸 작품.. 정신병자들이 총을 못 사게 하려는 법을 죽여버린 것.. 이것은 아마도 미국의 치부를 들어낸 단적인 예로 길이길이 남을 듯 하다. 이제야 비로소 CCR의 oldie, Bad Moon Rising의 가사가 더 귀에 들어오는 듯하다.. I see the bad moon rising

 

 

Bad Moon Rising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1969

빌어먹을 세상이다

요새도 ‘빌어먹을’ 이란 말을 쓰나.. 우리 때는 참 이런 표현을 많이 하며 살았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그저 가벼운 욕에 속했지만 이 말을 쓰면 속이 한결 시원해지곤 했다. 그 옛날, 또 다른 유행어로 ‘아더메치’ 란 것도 있었다.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다 에서 따온 말이었다. 지금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그때 그때 유행하는 ‘씨원한 욕’ 들이 있었다. 

어제 다시 그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지금이 바로 빌어먹을 세상이 아닐까?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6~7세 아이들 20명을 쏘아 죽이는 미친 세상이 바로 빌어먹을 세상이 아닐까?

하지만 다른 생각에, 이제 이런 미친 짓들이 너무나 익숙해 진 것이 더 놀랍다고나 할까? 아마도 다음에는 30명, 50명, 100명.. 아니면 3000+.. 너무나 ‘독해진’ 최신 무기들이 미국 헌법에 의해 가질 권리를 보장 받은 이 나라는 역시 하느님의 ‘공정’하심을 다시 느끼게 한다.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하느님은 미국의 ‘인간적 완전 자유’에 제동을 거신 것일까?

A Memorial site near Sandy Hook Elementary
A Memorial site near Sandy Hook Elementary

이번 Sandy Hook Elementary School (Newtown, Connecticut) 참사는 다른 쪽으로 그 잔인함에 놀라게 된다. 그 코흘리개 어린 아이들을 골라서 죽인 잔인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것으로 극단화 된 정치인들을 자기 자리를 고수하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우선 제일 쉬운 것이 무기, 그것도 ‘총’의 규제일 것이지만 이것은 ‘재앙적’인 미국 헌법에 엄연히 보장된 권리이고 보니.. lawyer 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그것이 쉬울까? 무법천지의 미국 서부시대에서 제일 존경을 받던 것이 바로 이 ‘총’이 아니던가? 역시 ‘정당 방위’용으로만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미국과 미국인들의 고뇌를 알 수 있다. 개인적 자유냐.. 공공 안전이냐.. 역시 절묘하고 고도의 정치력을 요구하는 정책적 균형, 그것을 과연 어떤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이끌 것인가? Obama 는 틀렸다. 그는 그만한 의지와 정치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가 이끄는 liberal 들은 그저 쉽게 보이는 direct gun control만 주장할 것이고, 반대 편에서 결사적으로 ‘나는 총을 가질 권리가 있다’.. 문제는 총을 잘못 쓰는 ‘썩어가는 가정’ 에 있다고 부르짖을 것이다.

이 병신들아.. 그대들은 모르는가? 해결책은 바로 양쪽에 다 있다는 사실을.. 자유와 방종의 극단으로 치닫는 미국의 family value system, 이것을 무시할 수 있을까? 이런 잔인한 ‘아이’들을 만드는 곳은 바로 그런 가정인 것이다. 그런 반면에 그런 가정에 어찌해서 그런 ‘무시무시한’ 무기들을 가질 권리가 있단 말인가?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을 모르는가? 모르는가.. ‘타협과 절충과 이해’만이 이 미국의 비극을 해결하는 열쇠인 것을..

Tax time again..

It's Tax Time
일년 내내 Tax service 업소들이 기다리던 때

Tax Day, 2012: 4월.. 중순.. 정확히 15일은 이곳에선 조금 떠들썩한 날이다. 15일까지 income tax (소득세) 서류를 IRS (Federal Internal Revenue Service) 보내야 하는 날이고 이것만으로도 수억 명의 ‘개인 들’에게 큰 일과 부담을 주기에, 이 ‘마지막’ 날은 조금 특별한 날로써, 각가지 ‘흥미로운’ 행사 (세금에 불만을 나타내는)까지 열리고, 어떤 곳은 숫제 축제분위기까지도 보인다. 세금에 대한 미국적 정서를 이 ‘마지막’ 날에 잘 볼 수 있는 것이다. 하기야 자고로 어느 누가 땀 흘려 번 돈을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하랴? 이것은 사실 성서에서도 나와 있듯이 ‘세금을 걷어 가는 인간’을 최하의 인간으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이것은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와 국가’가 있는 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실감 한다. 우리가 공기를 마셔야 살 듯이,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인간에게 이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100%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죽음과 세금” 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Income Tax를 처음으로 ‘납부’를 하던 시절 (80’s), 이 ‘서류’를 손으로 작성해서 ‘우편’으로 보내던 시절을 기억한다. 어떨 때는 4월 15일 마지막 날, 자정이 가까울 무렵에 우체국에서 줄을 서서 보내던 기억도 있었다. 나에게 ‘소꿉 장난이 아닌’ Income이 생기고, 거기에 따른 ‘세금’이 ‘공제’되기 시작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하면 많이 (이미 공제된 세금을) ‘돌려 받을까’ 하는 것에 머리를 짜내느라 사실 며칠씩 걸리며 공부를 하기도 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나오기 전의 일이다. 나와 같은 ‘월급쟁이’들은 비교적 이것이 간단한 편이라 사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항상 나는 ‘법이 허용하는 것’ 보다 더 많이 세금을 낸다는 불만은 있었지만, 그것의 ‘내막’ 을 알아내는 것은 나의 머리로는 거의 불가능하고, tax professional을 동원할 용기도 없지만 그것에 쓰는 돈이 더 아까웠다.

매년 거의 ‘기계적’으로 하던 이 부담스러운 이 일이 연숙이 business를 하게 되면서 조금 복잡하게 되었다. 정석적으로 하면, 이때야 말로 tax professionals (주로 CPA들) 들을 동원해야 할 정도지만, 우선 그렇게 ‘큰’ business도 아니고, 그들에게 쓰는 돈이 도저히 정당화 될 수가 없어서 ‘모조리’ 나의 ‘제한된 머리’ 로 해결을 했다. 조금 더 공부를 해서 한 것이지만 오늘날까지 솔직히 이것이 정확한 것인지, 얼마나 ‘손해’를 보는 것이지도 모른다.

세월이 가면서 그렇게 복잡하던 tax return 서류가 아이들이 다 크게 되어서 성인이 되고, 모든 것들이 ‘안정’이 되면서 훨씬 간단하게 되었다. 게다가 calculator와 paper 로 하던 것들이 거의 Internet 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제공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훨씬 ‘정확하고,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작년보다 더 간단해 질 것을 예상하지만, 문제는 timing이다. 예년에는 나는 3월 중에 이것을 끝마치곤 했는데, 올해는 우선 ‘하기 싫어서’ 계속 미루다가 deadline이 코 앞으로 다가왔고, 요새 매일 조금씩 stress를 받으며 하루하루 미루고 있다가 오늘이 4월 13일, deadline이 이틀 남았음을 알고, 부지런히 IRS.gov으로 찾아가니.. 이것이 웬 떡인가? 올해의 tax day(deadline)이 15일이 아니고 17일이 아닌가? 우선 이틀을 ‘번’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15일이 우선 일요일이라 하루가 연기되어서 16일이 되어야 하는데 왜 17일? 그것은 16일이 Washington DC의 holiday이라서 그런단다. 16일.. Emancipation Day? 이것은 ‘노예해방’에 관한 것인가.. 자세한 역사는 잘 모르지만 우선 2일의 bonus day가 생긴 것이 좌우지간 신선하고, 즐겁기까지 하다. 재미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것을 무시하고 오늘 끝내야겠다는 ‘의지’가 갑자기 불타오른다.

 

Florida 사건의 비극

그래도 개운치 않다… 요새 가끔 보는 뉴스 (TV nightly news, Web outlets)에는 Florida에서 있었던 어떤 ‘치명적인 사고’에 대해서 떠들썩 하다. 사건자체는 시간이 꽤 흘렀지만, 문제가 커지지 시작한 것은 그다지 최근이다. 물론 이것도 그 ‘자랑스러운’ social media의 역할이 한 몫을 했다. 사건 자체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정당방위로 사람을 죽인’ case였고, 문제 핵심은 과연 정당방위 (self-defense) 였는지 아닌지 하는 것이고, 기름에 불을 붙인 것은 역시 ‘당한 쪽은 흑인, 가해자는 비흑인(Hispanic)’ 이라는 미국에서 제일 골치 아픈 문제인 것이다.

각주마다 ‘정당방위’의 법적인 뜻이 조금씩 다르다는데, 사건이 일어난 Florida주는 그 중에서 제일 ‘적극적’인 쪽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쫓아가면서’ 까지 자기 방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무조건 ‘도망’만 가는 것이 아니고, ‘복수적인 정당방위’를 허용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의 ‘피해자’는 사실 ‘가해자’로 바뀌어서 ‘범인’을 쫓아가서 죽인 case가 되었다. 죽은 사람이 보기에도 ‘흉악하게 생긴’ 강도처럼 생겼었으면 별 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착하게 생기고, 연약하게 보이는1‘ 흑인 고교생이었다. 여러 가지 증거로 보아서 이번에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피해자’는 너무 심해서 가해자처럼 보이긴 했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통설에 젊은 흑인들이 너무도 그렇게 ‘오해’를 받고 피해를 입는다는 통계와, 피해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CSI(crime scene investigation)-style로 밝혀내지 않는 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영원히 밝힐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그저 소문과 편견, 군중심리만 작용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비극이다.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무엇이던 다 다른 것들끼리 법이라는 테두리 하나에 묶여서 공존한다는 것, 거의 ‘기적’과 같은 Utopian system이 아닐까?

나의 생각도 복잡하다. 심지어는 이번 사건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고, 모두가 피해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졸지에 ‘착하게 생긴’ 아들을 잃어버린 가족의 충격과 슬픔도 그렇고, ‘흑인 아이’들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침묵의 대중들의 고뇌도 그렇다. 나도 media에서 ‘체포되어서 끌려가는 흉악하고, 철면피처럼 보이는 범인의 대다수가 까만 색’ 이라는 ‘경험적 사실’ 때문에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머리를 가진 흑인지도자들 중에 자아비판을 하는 극소수를 보면 반갑기까지 하다. 그들도 바뀌어야2 한다.

  1. 그런 그도 들추어내 보니 마약에 관한 행적이 있었지만..
  2. 그들이 열광하는 sports나 연예 쪽보다는 이제는 조금 더 언론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