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unker’ furnace fires up, then..

30+ year old clunker furnace
30+ year old clunker furnace

10월 20일, 2013.. 드디어 그날이 왔다. 매년 가을 처음으로 central heating system이 ‘점화’되는 그날이.. 올해는 평년에 비해 며칠이 늦었을까.. 확실치 않지만 그럴 것이다. 일주일 전쯤 아침 기온이 떨어짐을 느끼고 thermostat를 winter mode1로 바꾸어 놓았고, 아래층 furnace(gas heater)의 pilot light도 ON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래층의 pilot light는 올해부터 여름이 시작될 즈음에 아예 꺼놓았다. 여름 동안 ‘공연히’ thermocouple, pilot light를 ‘달구어’놓을 필요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래층 furnace의 ‘점화’ system이 바로 classic system으로 pilot (gas) light를 ‘항상’ 켜 놓아야 heater가 가동되는데 이제는 조금 귀찮게 느껴진다. 2층의 system은 electronic system이라 ‘전기’만 있으면 언제고 점화가 된다. 근래의 거의 모든 natural gas system이 electronic firing인데 이렇게 ‘고물, clunker‘들이 문제인 것이다.

pilot light는 글자 그대로 ‘항상’ 아주 작은 ‘불’을 켜 놓고 점화를 기다리는 것으로 많지는 않지만 natural gas 를 소모하고 있는 셈이다. 제일 귀찮은 것은 이 pilot light가 꺼질 때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thermocouple이 오래 되면 이것이 저절로 꺼진다. 안전을 위한 장치인데.. 이럴 때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어둡고 축축한 crawl space를 ‘기어들어’ 가야 하는 고역을 겪는데.. 이런 것들을 여자 특히 ‘노인’ 혼자 살게 되면 어떻게 감당을 할까? 아마도 분명히 handyman에게 전화를 거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2 아직도 그래서 여자건 노약자건 혼자 사는 것은 ‘비싼’ 선택이거나 운명인 듯 하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 듯.. 아래층 pilot light를 ‘분명히’ 지난 주에 점화를 해 놓았는데, 오늘 아침에 아래층이 ‘썰렁하고’, heater가 켜지지 않고, 조용했으니.. 분명히, 아마도.. 그것이 무슨 이유에선가 ‘꺼졌을’ 것이다. 또 ‘기어들어’ 가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여유 있는 추측은 빗나갔다. 예상했던 thermocouple의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로 gas가 안 나옴을 알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gas valve를 control하는 24V AC power가 안 나온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transformer 문제일까? 하지만 a/c (에어컨)를 켜보니 그것은 잘 나온다. 그렇다면 transformer는 OK인데.. 그렇다면 무엇일까? ‘아깝기만 한’ service call을 할 시간이 다가오나? 하지만 아직 빙점까지는 아니고, 문제가 난 곳이 아래층이니까, 그렇게 급할 것 없다. 조금 시간을 두고 ‘연구’를 하기로 결정하고 그 어두운 ‘지하’에서 기어 나왔다.

 

30+ year old clunker furnace 본격적인 service mode, controller와 blower가 노출이 되었다

 

머리 속이 다시 ‘detective‘ research mode로 완전히 전환이 되며 열심히 googling을 하며 해답을 찾았는데.. 나의 ‘진단’은 결과적으로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우선 이번에 ‘공부’한 것으로 확실히 알게 된 것 중에 우리 집 아래층 furnace가 놀랍게도 30년이 조금 넘어가는 그야말로 ‘고물 중의 고물, clunker 중의 clunker’ 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선 와~~ 이것이 정말 오래 전에 우리들이 느꼈던 Made In USA의 perfect case가 아닐까.. 하는 것이고, 다른 쪽으로는: 큰일 났다, 드디어 꽤 많은 돈3을 써야 할 때가 왔구나..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교차하는 심정. 그러니까 우리 집이 처음 건축될 당시4에 설치했던 heating system이 이제까지 거의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24VAC transformer & fan relay한때 의심을 받았던 24VAC transformer와 blower relay

 

지금 나에게 Internet이 없었고, googling 이 없었다면 여기서 나의 story는 끝 났고, ‘아마도’ HVAC5 guy의 truck을 기다리며, 얼마나 수리비가 들어갈까 고민했을 것이지만, 이제는 ‘정보의 홍수’ 도움으로 조금은 걱정이 줄어들었다. 최소한 무엇이 문제인가는 내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1981년에 설치된 우리 집의 이 clunker가 어떤 종류인지 알았고, 어떤 ‘부품’이 쓰였는지도 조금씩 들어난다.

Brand name은 Premier Furnace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어떤 커다란 ‘공장’6에서 사다가 자기의 상표를 붙인 case였다. 1981년의 기술적인 수준은 electronic control은 전혀 쓰이지 않았던 그런대로 ‘간단한 기계식’이어서 부품만 찾으면 내가 손수 고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어떤 부품이 현재 망가지고, 그 부품을 구할 수 있을까, 그것의 값은 얼마인가.. 나의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Honeywell Fan limit switchwhole system을 정지 시켰던 장본인, Honeywell Fan limit switch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heater를 켰을 때, thermostat의 relay click 소리가 난 후에, 암만 기다려도 잠잠 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fan(blower)소리도 안 나고, 더운 공기도 안 나온다는 간단한 사실이다. 바람이 안 나온다는 것은 100% blower(fan)이 안 도는 것이고..blower가 망가졌거나, 그곳의 power가 안 들어가는 것이지만.. Fan은 manual control로 test하면 잘 들어온다. 그러니까 blower가 아니고 그것을 control하는 24VAC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세히’ 공부를 해 보니 heating mode에서만 쓰이는 또 하나의 blower control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fan limit switch란 것이었다. Honeywell에서 만든 것으로: 이것이 바로 furnace의 온도에 따라서 fan을 껐다 켰다 하는 것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Thermostat에서 heat demand 신호가 갔을 때, gas valve가 열려서 점화가 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며 furnace내부의 온도가 오르며 fan switch가 켜 지고 난방이 시작되는데.. 지금은 이 switch에 문제가 생겨서 그대로 온도는 계속 올라가다가 결국에는 ‘너무 뜨거워져서’ system이 자체로 shutdown이 된다.

결국, 수 천불을 들여서 이 ‘고물’을 교체하는가 했지만, Honeywell fan limit switch를 $70 정도로 order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아마도 며칠 뒤에 이것이 도착하면 아래층 겨울은 그런대로 ‘무사히’ 지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끝 난 것이 아니다. 올해가 지나면 우리 집 아래층 system은 한 살을 더 먹는 셈이고.. 우아.. 32살이 되나.. 나의 관심은 이 clunker가 과연 언제까지 돌아갈까 하는 것이다. 나도 늙어가고 이것도 늙어 가고.. 이 ‘고물’은 ‘새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나 자신은 어떠한가?

 

  1. 최고 68F, 최저 62F
  2. 아마도 이런 것도 최소한 $100를 받지 않을까?
  3. furnace자체 값만 최소 $1000, installation 을 더하면 최소한 수천 불?
  4. 우리 집은 1982년에 건축되었다.
  5. Heating, Ventilation, Air Conditioning, 아마도 우리말로 ‘냉열’ 쯤 되지 않을까?
  6. Consolidated Industries, 당시에 무지 큰 회사였다.

Fast Secure Contact Form, crazy..

This is just crazy. This even looks like ‘fake update’ just for getting more ‘download count’, I hope not. Here I’m talking about a small CAPTCHA ‘contact form’ plug-in for WORDPRESS which I’m using for some time. While I really appreciate for the authors’ effort giving us fair quality ‘free’ plug-in, it’s very annoying having to update every other day for months. This not only points to their sloppy and crazy software design practice, but also makes me suspect their intention, higher and higher download count. Why not just wait a month doing more careful design instead of 2-3 day debugging cycle? Maybe, it’s time to look around other alternatives out there.

 


Just take a look at their latest ‘release’ cycle to see my point.

Changelog

4.0.15

  • (12 Oct 2013) – allow HTML in “Your message has been sent, thank you.” custom label.
  • Bug fix: the attrubutes setting was not working on name, email, subject, fields.
  • Bug fix: schedule a meeting button could show when not activated.

4.0.14

  • (11 Oct 2013) – Bug fix: view /print button did not work with some plugins.
  • Bug fix: schedule a meeting button user preference default problem.
  • updated German (de_DE) translation.

4.0.13

  • (08 Oct 2013) – Bux fix: some forms would fail to import when label had some Non-US-ASCII or Chinese characters.
  • Bug fix: Form save error when tag had some Non-US-ASCII or Chinese characters.
  • Bug fix: button on the Tools tab “Import forms from 3.xx version” did not always work correctly.

4.0.11 & 4.0.12

  • (06 Oct 2013) – Improved placeholder text to work on older browsers.
  • Added new style setting for “Placeholder text” so you can change placeholder text color if you want.
  • Note: if you are using the External CSS setting you should import the new placeholder css, click “View custom CSS” on the Styles tab to see it.
  • added new setting to Advanced tab “Enable to have the email labels on same line as values”.
  • updated German (de_DE) translation.
  • Bug fix: copy styles was not copying all of the style settings.
  • Bug fix: button on the Tools tab “Import forms from 3.xx version” did not work correctly.

4.0.10

  • (03 Oct 2013) – Bug fix: Activation generates “unexpected output” notice to admin.
  • Bug fix: Could not select “Block spam messages” for Akismet.
  • Bug fix: Field Regex was always validating as if required.
  • Bug fix: Atachment file types, and file size labels were not working properly.
  • Bug fix: Field default text was not showing in form.

4.0.9

  • (02 Oct 2013) – Bug fix: PHP method of calling form display was not working.
  • Bug fix: time validation did not work on 24 hour format.

4.0.7 & 4.0.8

  • (01 Oct 2013) – Added a button on the Tools tab “Import forms from 3.xx version” for those who might be troubled by an import failure.

  • Bug Fix: fixed a couple problems with importing settings from 3.xx version.

  • Bug fix: none of the language translations were working.

  • Bug fix: there were some ui image 404 errors from includes/images

  • Bug fix: vCita setting error.

  • other minor bug fixes.

 

Voyager 1, Pale Blue Dot, 1977

NASA/JPL Voyager 1
NASA/JPL Voyager 1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리고 갈 것이 갔다. 영원히.. 1977년 9월 5일 발사 된 미국의 무인 우주 탐색선 Voyager 1.. 작년부터 이 ‘자동차 크기의 물체’에 대한 뉴스가 가끔 나오곤 했지만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오늘 뉴스는 조금 다르다. 그 전까지의 뉴스는 ‘서서히’ 태양계를 떠나는 과정과 예측이었지만 오늘 것은 ‘공식적’으로 완전히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36년이 걸렸다. 36년 만에 ‘우리 태양의 영향권, 태양이 숨을 쉬는 heliosphere라고 불리는 태양권’을 떠나, 사고만 없다면 무한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 ‘역사적 사건’을 보며, 그 모든 ‘과학적, 기술적 잔소리, 자세함’을 떠나서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 중의 압권壓卷은 두 개로 볼 수 있다. 36년 전, 그러니까 조지아 출신 Jimmy Carter와 박정희가 대통령1이었던 천-구백-칠십-칠년, 1977년의 추억이 그 하나고 조금은 비약적이지만 허공과도 같은 망망대해 무한한 우주 자체인 하느님이 그것 이다. 분명히 인간이 만든 물체가 태양계를 ‘거의’2 완전히 떠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Life-Off, Voyager 1, 9/1977
Life-Off, Voyager 1, 9/1977

이 ‘인간이 만든 물체’는 과연 어떤 것인가? 무게가 1600 파운드, 아마도 작은 차 정도의 무게가 아닐까? 크기는 7.5 ft x 12 ft x 66 ft 정도이다. 그 속에는 1977년 당시 최첨단의 기술로 만든 기재들(거의가 sensors들)로 가득 찼고 비록 요새 기준으로 보면 ‘거북이’속도3지만 지구와 통신을 유지한다.

이 물체의 속도는 시속 3만 8천 마일, 현재의 지구로부터의 거리는 120억 마일 정도다. 이런 시속 수만 마일이나 거리 백억 마일 같은 것은 사실 우리에게 실감을 주기에 부족하지만, 우주의 ‘미친 듯이 거대함‘을 조금이라도 시사하기에는 족하다. 현재의 이 물체의 지구로부터의 거리는 빛이나 전파가 도달하는 데에도 거의 16시간이 걸리고, 현재의 속도로 계속 ‘허공’을 뚫고 나르면 4만 년 뒤에나 1.6광년 거리의 ‘첫 별4 ‘을 만난다고 한다.

1977년 9월 출발 후 몇 년 후인 1979년에는 첫 번째 목표 목성(Jupiter)를 근접 탐색을 했고, 1980년 11월에는 다음 목표 토성(Saturn)을 근접 탐색을 해서 아주 커다란 수확을 얻었다. 이때 얻었던 근접 촬영 사진들은 정말 감동적인 것이었다. 10년 뒤인 1990년에는 ‘태양계 가족사진’을 찍어서 보냈는데, 여기에는 그 유명한 ‘희미한 푸른 깨알 점, Pale Blue Dot‘ 그러니까 우리의 파란 지구가 그곳에 있었는데, 이 푸른 깨알 같은 작은 점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 Carl Sagan이 ‘정치적’인 각도에서 ‘인류의 영구한 평화’를 호소하는 매체가 되기도 했다. 사실 이 작은 푸른 점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겸허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작은 점 ‘표면’ 에서 수십억의 인류가 때로는 ‘아귀다툼’을 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Carl SaganThe Pale Blue Dot

 

그 동안은 주로 태양권 내의 solar wind에 관련된 자료를 탐색해 왔고, 출발 후 몇 년 후 1979년에는 첫 번째 목표 목성(Jupiter)를 근접 탐색을 했고, 1980년 11월에는 다음 목표 토성(Saturn)을 근접 탐색을 해서 아주 커다란 수확을 얻었다. 이때 얻었던 근접 촬영 사진들은 정말 감동적인 것이었다. 10년 뒤인 1990년에는 ‘태양계 가족사진‘을 찍어서 보냈는데, 여기에는 그 유명한 ‘희미한 푸른 깨알 점, Pale Blue Dot‘ 그러니까 우리의 파란 지구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는 태양의 영향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서 무엇을 감지할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36년의 세월 뒤에 기기들이 하나 둘씩 기능을 정지하고 있어서 언제까지 탐색 자료가 송신될 지도 의문이고 2015년 경에는 data recorder기능이 정지가 되고, 궁극적으로 2025년 이후에는 전력이 소진되어서 탐색기능과 조종기능이 없어지고 완전히 ‘죽은 채 나르는’ 상태가 될 것이다.

 Voyager 1 태양계의 끝을 통과하는 Voyager 1

 

Voyager 1이 발사된 때는 정확하게 1977년 9월 5일이었다. 36년 전이다. 그때 나는 West Virginia에서 학교를 마치고 다음 학교인 Ohio State (University)에서 1978년 1월에 시작되는 graduate program 을 앞두고 ‘여름방학의 고향’인 시카고 서(충일)형의 아파트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70년대의 추억이 아롱진 시카고, 그것도 서충일 형의 Broadway에 있던 그 아파트.. 그곳은 즐거움도 있었지만 1977년 9월의 시카고 가을은 나에게 ‘어두운 밤‘이었던 시간이 많았다. 어두운 밤이라면, 실로 외롭고, 괴로운 시간들, 희망이 안 보이는 그런 시간이고, 나는 실로 그 모든 것을 그곳에서 경험하였다.

하지만 그 때는 30살도 채 되지 않았던 ‘자유로운’ 총각시절.. 상상할 여유도 있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Voyager 1이 어두운 밤의 허공을 나르는 동안 나의 반생이 지나갔다. 사랑하던 어머님도 가고, 대신 반려자를 만나고, 자식들도 세상에 나왔고, Voyager 1이 태양계와 작별을 할 즈음, 나는 인생과 삶의 목적이나 의미도 조금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이 ‘물체’는 어두운 허공으로 사라지고, 나는 ‘저 세상의 허공’을 향하여 진군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갈 허공은 ‘깜깜한 밤’의 허공이 아니고 ‘사랑의 숨결이 전 공간에 꽉 찬 하느님의 공간5‘이 될 것이다.

 

My 3 favorite oldies of ’77

 

1977 oldies, Torn Between Two LoversMary MacGregor

 

 

I’d Really Love to See You TonightEngland Dan & John Ford Coley 

 

Year of the CatAl Stewart

 

  1. 이 두 대통령은 악연이 있었는지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조지아 ‘무지랭이’,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했던 카터가 서울을 방문 했을 때 ‘노전역장’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정치학 101 기초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2. 태양계 크기의 정의에 따라서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고 하는 학설도 유력하다.
  3. 그 옛날에 즐겨 썼던 PC 용 Hayes modem의 1200 baud rate, 기억을 하는지..
  4. Gliese 445, Camelopardalis성단의 별
  5. Dr. Eben AlexanderProof of Heaven, 저자가 몸소 체험한 near death experience에서의 물리적, 신앙적 체험에서..

Luddites, 러다이트의 교훈

섬유공장 기계를 부수는 Luddites
섬유공장 기계를 부수는 Luddites, photo credit: wikimedia

Luddites..  textile workers in early 19th century England. 그들은 누구였나? 한글로는 또 어떻게 쓰는가 Naver 사전은 이것을 러다이트 로 표기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혁명의 역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Luddite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이들은 산업혁명이 최고조에 달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산업화, 기계화 되기 전 방직공장(섬유공장)의 artisan(장인)들이었는데, 과장된 표현으로 ‘하루아침’에 기계에 밀려서 직업과 직장을 잃게 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산업혁명의 ‘예기치 않았던’ 첫 희생자들이라고나 할까? 장인들.. 지극히 인간적인 손끝의 힘으로 그들은 섬유제품을 ‘뽑아내고’ 있었던 자랑스러운 집단이었지만, 효율성이 50배에서 무려 1000배까지 늘어나고 제품의 질에도 큰 손색이 없었기에 ‘공장장, 자본주’들은 그들을 가차없이 몰아냈고 결과로 그들을 길바닥으로 몰아낸 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200년 전에 시작 되었던 일이다.

 그때 길바닥으로 나 앉게 된 그들 중에 택한 방법은 극단적인 것으로, ‘무력행사’로 일관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밤 몰래 주로 섬유공장을 쳐들어가서 기계를 부수곤 나아가 공장을 부수기도 했다. 나중에는 섬유공장만이 아니고 기계화된 농기계 공장이 표적이 되었고, 이것은 하나의 ‘노동자 운동권’을 형성해서 정치성까지 보이기도 했지만 영국은 정부차원에서 그들을 법으로 가차없이 처단하였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에게 그들은 ‘전설 속의 로빈 후드’를 연상하게 하는 ‘영웅’으로 남았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그들은 역사에서 ‘혁신을 거부한 보수, 패배자’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고, 이때 이후 luddite ‘족’은 ‘기술적인 진보, 변화 등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부류를 뜻하게 되었다.

 이런 통상적이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사실 더 자세히 알고 보면 그렇게 정확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위에 나온 이야기는 ‘설화’에 가깝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믿고 싶은 그런 식의 이야기로 변한 것이다. 그 당시의 자세한 역사는 Smithsonian 지에 자세히 실렸는데Luddite들이 기계를 부수고 공장을 부순 것은 기계에 대한 원망이 아니고 그 당시 그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프랑스에서 출발한 나폴레옹 전쟁으로 영국의 경제상태는 나빴고 특히 노동자 계급은 배가 고플 정도로 가난했는데, 그들은 참다 못해서 노동임금의 인상과 더 많은 일자리를 요구하는 항의 데모를 했는데 정부는 그것을 과도하게 진압을 했고, 분격한 그들은 자기들의 일자리였던, 부의 상징이었던 공장과 기계를 부순 것이다. 이런 군중심리는 전염성이 강해서 다른 곳으로 퍼지게 되고 정부는 ‘기계를 파괴하면 사형’이란 극단 법안을 만들게까지 되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항의한 것은 기계나 기술혁명이 아니고 그것으로 말미암은 ‘노동자 멸시, 차별’이었을 것이고, 기술자체를 그들이 혐오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Luddite에 대한 역사나 ‘전설’의 여부를 떠나서, 이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나 교훈이 있을까? 노동자의 처우문제를 떠나서, 숨차게 변하는 문명, 그 중에서도 특히 digital information technology 분야를 무시하거나 등한시하며 살 수 있을까? 특히 인간을 ‘근육 노동’에서 해방시켰던 것이 19세기 초 산업혁명이었다면, 우리를 ‘두뇌 노동’에서 해방시키려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거의 매일 무의식 중에’ 쓰고 있는 PC, Internet, mobile device같은 digital information technology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듯 느껴지는’ technology는 과연 우리 인간들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기계혁명이었던 산업혁명의 역사와 현재의 ‘디지털 혁명’과 유사한 것일까?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회는 어떤 영향을 주고 주게 될 것인가? 이런 것들은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부정적’인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 를 미리 알아서 예방을 하면 좋지 않을까?

최신, 최근 luddite 중에는 ‘컴맹’ 다음으로 ‘인터넷의 레이다’에 보이지 않는 부류가 있다. 처음 인터넷이 보편화1 되기 시작 시작 되면서 사람들은 desktop pc 컴퓨터를 써야만 인터넷을 쓸 수가 있었다. 그러니 pc같은 컴퓨터를 못 쓰던 사람들이 이런 인터넷 ‘혜택’에서 소외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pc 컴퓨터의 ‘전체 기능’은 다 필요하지는 않지만 인터넷만 쓰려는 부류들이 생겼다. 그것이 지금은 mobile device, 특히 mobile phone을 쓰게 되면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연결’이 되고 있어서 이제는 전통적인 ‘컴퓨터’의 의미는 희미해 지고 있다.

이것의 의미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인터넷-privacy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의 24시간 손에 잡히는 ‘핸드폰’이 무의식 중에 ‘세계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음은 아차 하면 자기의 모든 것이 들어나는 가능성이 항상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가, 사회 안보를 의식한 듯 정부차원으로 거의 모든 ‘인터넷 활동’이 감시2되게 되어서 이제는 인터넷에서 숨어살기가 거의 불가능해 졌다. 이것이 21세기 초의 ‘불편한’ 새로운 현실, new normal이 되었다.

이런 ‘다른 얼굴의 디지털혁명’을 러다이트luddite의 역사적 교훈에 비추어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 우선 분명한 것은 이것을 예전의 luddite들 처럼 무조건 피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어떤 알고 지내는 수녀님을 나의 blog에서 ‘찰나’의 정도로 언급을 했는데, 놀랍게도 그것을 아시고 ‘간곡하게’ 이름을 지워달라고 하셔서 한동안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google-bot에 의해서 빠르게도 그 수녀님의 이름이 indexing이 되었던 모양이고 그것을 본 다른 ‘수녀님’이 귀 띰을 했던지.. 이 ‘사건’은 서로에게 불편한 화제였고 기분도 좋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개인의 privacy’와 나의 ‘표현의 자유’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케이스인 것이다. 물론 나는 수녀님의 부탁을 존중하고 ‘이름’을 지웠지만, 두고두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privacy가 그렇게 중요하면 당장 전화나 email에 더 신경을 쓰셔야 할 것이 아닐까? 모든 전화 통화기록과 email, 특히 gmail이 ‘공공연하게’ monitoring이 된다는 사실을 아실까?

이런 것을 보면서, 생각을 한다.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언제나 ‘중간 정도’에 있다는 진리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아라..는 말처럼.. 이것이 명쾌한 “명절 같은 해답”인 것이다. 그렇게 ‘무조건’ 피하지도 말고, 멋지게 보이겠다고 ‘잘 알지도 못하며’ 앞서가며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follow the crowd” 란 교훈을 잊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1. 주로 WWW:world wide web, email로 시작 된
  2. 이제는 거의 모든 통신수단이 인터넷으로 연결이 되어서 전화(landline, cellular), email, websites등이 대상이 되었다.

엔지니어가 아니었으면..

What would you do for a living if you were not an engineer? 당신의 career job 이 engineer(electrical, electronics, computer)가 아니었었다면? EDN network (Electronic Design News online) 의 community blog, Voice of the Engineer에서 이런 식으로 참 어려운 질문을 던졌고, 그에 대한 대답이 참 재미있고, 다양함을 보고 ‘인생은 engineer’가 전부가 아니었구나 하는 ‘신선함’까지 느끼게 되었다. 이 질문의 대답은 사실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engineer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같은 심리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것에 대한 생각을 별로 못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대답을 해야 했다면..예를 들면 이런 대답들이 그곳에 있었다.

  • repair person
  • swim suit model
  • teacher
  • shoe repair
  • astronomer
  • fighter pilot
  • media art
  • teaching grammar, spelling to engineer
  • ski patrol or avalanche forecasting
  • driving boat for fishing tourist in Caribbean
  • programmer
  • herb grower
  • burglar
  • psychiatric doctor
  • organic far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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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ndsca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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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in driver
  • blacksmith and farmer
  • making movie where I sing and act
  • professional musician
  • beach bum
  • architect, chef, artist , anything creative
  • commercial diver
  • teaching technical history
  • recording/mixing engineer
  • surgeon
  • military sniper
  • medical area
  • running a convenient store in a rural area
  • a problem solver
  • drinking cold beer under some enlightenment tree
  • lawyer
  • touring the world in a Rockn’roll band
  • growing medical marijuana
  • teaching engineering
  • chef
  • corpse
  • psychiatrist for engin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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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웃기는 것은 물론 corpse와 burglar.. 물론 농담이었을 것이지만, engineer말고 다른 것을 전혀 할 줄 모른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도둑질’ 밖에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대부분 외골수 인생을 사는 것일까?

 engineer와 그런대로 비슷한 방향에 있는 것으로는, general contractor, blacksmith, surgeon, medical, problem solver, teaching engineering, architect, repair person, fighter pilot, astronomer 정도가 아닐까? 나머지 것 들은 engineer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기에 아마도 해 보았자 타고난 재질과 정열이 없으면 실패할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랴 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평생직업이 되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만 돈만 많이 주면 그런 것 상관없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돈과 명예와 상관없이 그런 행운이 진정한 행복이라면 나는 사실 행운아라고 나를 위로하며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결론적으로, career electronics, computer engineer 는, 내 생각에, 불행하게도 다른 직업으로 ‘전업’하기가 참 힘들 것 같다.

 

나를 따라오는 ‘인터넷’ 광고

몇 개월 전부터 조금 이상한 ‘현상’을 인터넷 웹 싸이트(websites)나 Internet Radio들을 열 때마다 보고 듣고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주로 news site에서 senior citizen을 겨냥한 광고들, 주로 ‘피부를 젊게 보이게 하는 각가지 상품들’ 아니면 investment에 관한 상품들, 여행 안내 같은 누가 보아도 이것들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 것들이었다. 이때 느낀 것이.. 아하.. 이(놈)들이 나의 IP address와 나의 나이를 알았구나..하는 씁쓸한 심정이었다.

인터넷의 ‘매력’은 그제나 이제나 anonymity (익명성?)이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물 건너 간 것이다. 최소한 우리 집에 연결된 DSL service IP(Internet Protocol) address와 나의 신상명세가 ‘알려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미 public domain에서 찾을 수는 있지만, 이전까지는 거기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IP address와 나의 나이 pair만 가지고 각가지 ‘나이에 상관된 광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IP address 와 나의 ‘위치’를 연결시켜서 각가지 local business를 선전하는 광고다. 예전에는 이곳 local website(예를 들면 이곳의 지역 신문, 방송, 기업들) 에서만 하던 이곳 지역의 광고들이 이제는 위치에 상관없이 세계 곳곳의 website를 가더라도 나오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어떤 website를 가보아도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어떤 식당의 광고가 나오는 case다. 이런 것을 보면 사실 기분이 찜찜하고 아주 나쁘다. 그곳에서 보는 지역 광고업체는 ‘절대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기조차 하는 것이다.

이것 중에 나를 제일 슬프게 하는 것은 Internet radio 중에 Radio Mozart의 ‘돌변한 광고’였다. 이 radio service는 ‘분명히’ 프랑스어로 나온 것이고 장소도 프랑스의 어는 곳인데 언젠가부터 ‘완전히’ 내가 사는 지역에 관련된 광고를 하는 것이다. 그날로 나는 그 radio를 완전히 잊었다. 나는 그 classical music들이 불어와 같이 나오는 것을 좋아했었기에 Mozart classic과 미국 동남부(GA)의 redneck이 연관된 것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 단계는, 나의 ‘인터넷 습성’을 알아차리고 나를 ‘공격’해오는 정말 기분 나쁜 것들이다. 이것을 제일 처음으로 시도했던 것은 사실 오래 전부터 amazon.com이었다. 내가 어떤 물건을 ‘찾으면’, 즉시로 그것에 관련된 것들을 아예 email로 보내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의 인터넷 습성을 계속 ‘감시,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적응이 되었고 어떤 것들은 나에게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광고기술도 고도화 되어서 어떤 것은 우습게도 느껴진다.

 

Catholic News Service website에 '출현'한 Oscilloscope광고

Catholic News Service website에 ‘출현’한 oscilloscope광고

 

급기야, 얼마 전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내가 자주 찾아보는 미국 가톨릭 뉴스 site에 나의 ‘전공’인 electrical/computer engineering의 광고를 본 것이다. 자.. 하느님을 찾아보러 간 곳에서 Tektronix oscilloscope의 광고를 보면 기분이 어떨까? 이런 것들이 과연 어디까지 가게 될지 정말 미지수다. 내가 24시간 ‘감시’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안들 수가 없는 것이다. Enough is Enough!

 

Stupid (YouTube) ‘copyright police’ bot

얼마 전에 정말 오래된  vinyl LP record 중에서 통기타 시절 김세환 album을 digital format (mp3)으로 바꾸었다. 과정이 아주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귀찮은 job에 속한다. 이 특별한 LP record는 1975년경에 Chicago에서 산 것으로 아마 1974년경에 발표된 것으로, 김세환 특유의 ‘감미로운‘ 곡들이 실려있었다. 1970년대 후반에 자주 들었지만 Cassette tape, CD등이 나오면서 눈앞에서 거의 사라졌다가, 1990년 초에 새로 audio system을 장만하면서 큰 마음 먹고 ‘한동안 없어졌던’ LP disc turntable을 다시 사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가끔 이LP를 듣게 되었다. 문제는 그 turntable이 좋은 것이 아니어서 (너무나 fragile, 장난감 수준의 제품) LP disc를 걸 때마다 손이 떨릴 정도로 조심을 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가고, 음악 듣는 방식도 많이 바뀌어서 ‘거창한’ audio system앞에서 듣는 것도 사치로 보이게 되었다. 거의 주로 desktop pc아니면 mp3 player, smartphone으로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보물처럼 간직했던 그 많은 LP record들을 digital format으로 바꾸어야 했는데, 나 같은 older generation을 의식했는지 이제는 시장에 LP record를 ‘직통으로’ mp3로 바꾸어주는 ‘smart-turntable’이 등장을 하고, high school student들이 이것으로 돈까지 벌기도 한다.

내가 택한 방식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금은 값이 많이 떨어진 personal voice recorder를 쓰는 것이다. 요새 것들은 audio recording을 곧바로 mp3 format으로 flash card에 save를 해 주기 때문에 이 방식은 거의 ‘직통’ 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래된 analog audio, music (on cassette tape, LP record, VHS tape etc)들이 하나 둘씩 mp3 audio로 바뀌면서 제 1호가 ‘오래 된’ 조동진 album audio tape, 제 2호가 위에 언급된 김세환의 LP album 인데, 요새의 standard video cloud 의 대명사가 된 YouTube에 이것들을 upload해서 Internet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도 의외로운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저작권(copyright)문제인데, 40년 전의 analog music을 digitize한 것이 저작권 침해라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문화적 유산을 보존한 것으로 상을 받아야 할 지경이 아닐까? 제일 웃기는 것은 이것이다. 김세환 앨범에 Bee Gees의 word란 곡을 한국어로 바꾸어 부른 것이 있었다. 그 위력을 자랑하는 Google의 database 속에서 그 곡이 ‘걸려들고’ 말았다.

저작권이 ‘영국’의 어느 단체에 있다는 것이다. Bee Gees의 word를 digital format으로 그냥 올려 놓았으면 할 말이 없겠지만 그 당시(1974) 국제문화계에서 거의 ‘거지취급’을 받던(dollar 보유고가 없어서) 한국의 ‘학생가수’가 부른 곡을 40년 뒤에 mp3로 바꾸어서 인터넷에서 다시 듣겠다는데 ‘저작권 침해’라고? 웃기지 마라.. 이것은 물론 ‘사람이’ 개입이 된 것이 아니고 monster같은 YouTube의 ‘감시경찰 bot’ 이란 software가 ‘실수’를 한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이 system은 보통의 사법system처럼 ‘Innocent until proven guilty’ 가 아니고 ‘Guilty until proven innocent‘ 인 것이다. 우선 ‘죄인’으로 취급하고, 억울하면 무죄를 밝히라는 것.. 참.. 웃기는 세상이다.

 

 
김세환 Gold, 1974

 

 
조동진 47 minute classics

Great Ubuntu Hope

Humanity towards others...
Humanity towards others…

내가 Ubuntu[표준 한글 표기는, 우분투 쯤 될까?]를 알게 된 것이 언제였던가? 생각보다 그리 오래 전은 아닐 듯하다. 아마도 2008년 경이었을까?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것이 일반에게 공개, 배포된 것은 2005년 경이었다고 한다. 이 Ubuntu란 것은 물론 Open & Free computer operating system인 Linux의 한 ‘종류’이다.

Linux의 ‘핵심(kernel)’은 ‘한가지’이지만 그것 이외 부수적인 것들은 무수히 많다. 그것이 Free & Open system의 특징일 것이다.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조금씩 바꾸어서 ‘배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Free & Open‘ 철학은 정말 처음 나올 당시에는 ‘혁명’적인 idea였다. 특허로 꽁꽁 묶어 놓거나, copy-protection으로 방어하며 ‘고가’로 팔아야만 했던 computer software (OS 포함, Windows, Apple OS, etc)를 ‘공짜로’ 주겠다는 것은 사실 얼듯 듣기에 ‘미친’ 생각으로 들렸던 때.. 참.. 지금은 많이 많이 변했다. 그 말에 ‘일리’가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Microsoft Windows 급인 Linux(리눅스)인데, 물론 이것은 ‘처음부터’ 그런 Free & Open 철학으로 시작된 것이고, 그 ‘철학’만은 굳세게 유지되고 있다. 그들의 철학은 computer software는 모든 사람이 ‘무료’로 쓸 권리가 있고, 더욱 그것을 ‘발전’시킬 권리와 의무도 있다는 것인데, 역시 이런 idea는 Microsoft나 Apple 같은 business model과는 180도 다른, 정반대의 model임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이익추구’ 성질을 어찌하랴.. 기어코 이런 free & open model에다가 profit을 가미한 model도 만들어 내서 의외로 잘 운영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Red Hat 이나 IBM 같은 큰 회사들 인데, 이들은 ‘공짜’ linux를 만들어 대기업에 service를 팔아서 돈을 번다. 그러니까 ‘물건’은 공짜지만 그것을 유지, 수리하는 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의외로 이것이 그렇게 큰 business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런 새로운 business model은 이제 아주 튼튼한 자리를 잡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위의 예들은 ‘일반대중’과는 거리가 있는 대기업의 server system들인 반면 일반 대중들이 쓰는 PC desktop system은 Microsoft 의 Windows나 ‘머리는 조금 아둔하지만 돈은 많은’ 사람들이 쓰는 overpriced Apple computer 가 든든하게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중에서도 비싼 Apple Mac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은 Windows가 거의 ‘거저’ 돈을 벌고 있었는데, 그것이 최근 2~3년 안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그 원인 중에는 mobile system(smart phone, tablet)의 폭발적 보급과 오늘의 화제인 Ubuntu system같은 open & free software 의 일취월장하는 성능의 향상.. 등이 있을 것이다. Mobile system에서는 역시 stupid but rich 를 봉처럼 생각하는Apple의 iPhone 같은 iXXX가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었지만, 현재는 Google의 Android 가 시장의 거의 3/4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기서도 역시 open system인 Android가 그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으로 지금은 computing system history로서 아주 ‘중요한’ 시점에 있는 듯하다. 소위 말해서 post-PC era를 모두 예견하고 있는데 그 때의 ‘패자’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봐도 ‘지독히도 이기적’인 Apple model은 그들이 ‘아무리 쌓아둔 돈’이 많다고 해도 장기간 sustain하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그들의 철학은 그 옛날 ‘고철‘ mode IBM을 연상시킨다. 모든 것을 ‘우리가 발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mindset은 이제 한 물이 갔기 때문이다. 현재 Apple이 바로 같은 mindset, 아니 더 심하게 고립적이고 독선적으로 ‘돈을 긁어 모으고’ 있다. 또한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오랜 기간 (1990년 이후, 현재까지) 거의 monopoly로 monster가 되어버린 Microsoft는 이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 되어가고 있다.

개인 적으로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 처럼 Microsoft customer로 오래 있었는데, 그것은 corporation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고 지금과 같은 credible한 competition도 없었기에 한마디로 choice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corporation을 떠나게 되면서 나는 그런 무상 혜택의 제한이 없어지고, 내가 고를 수 있으면 아무 것이나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Linux가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었고 나의 ‘구세주’로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유’로운 Linux는 사람들의 구미에 따라 많은 flavor로 분열이 되어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혼란’의 상태가 뒤 따라서, 각종 flavor마다 독특한 맛이 다르고, 새로 배워야 하는 짜증도 따른다. 강력한 ‘통제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바로 free & open system의 특징이라서 이것을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는데, 결국은 최근 들어서 서서히 Ubuntu system이 ‘de facto‘ winner로 군림을 하게 되고, 많은 노력 끝에, 그것을 더욱 더 일반 대중이 쉽게 쓸 수 있게 ‘매끈하게’ 보이는 데 ‘거의’ 성공을 하는 것 같다.

특히 최근 version인 12.x는 어떤 feature들은 Windows를 능가하는 것들도 등장하고 있다. 나도 그 동안 virtual system으로 ‘가끔’쓰곤 하다가 현재는 거의 정기적으로 쓰고 있다. Windows를 쓰다가 이것을 쓰면 당장 문제가 소위 말해서 business-standard인 Microsoft Office가 없다는 어찌 보면 ‘치명적인 듯’ 한 결점이 있는데, 쓰고 나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그것과 거의 맞먹는 Libre Office 란 것이 있고 Microsoft Office과 ‘호환성’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누가 ‘꼭’ MS Office file을 원하지 않는 한 이것 또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Ubuntu all the way! Mark Shuttleworth

 

그러다가 결국은 Ubuntu의 ‘장기적’인 development model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은 앞으로는 Microsoft의 Windows desktop system를 적수로 삼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독자적인 ‘미래형’ system으로 가겠다는 정말 ‘대담한’ idea의 출현인 것이다. 이곳에 있는 Youtube video를 보면 알 수 있듯이, Ubuntu 하나로 smart-phone, tablet, desktop 전역을 ‘매끈’하게 해결하겠다는 아주 야심적인 계획.. 이것을 정열적으로 거의 맨손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이 바로 Ubuntu 창시자 Mark Shuttleworth (a South African), 그는 억만장자에다가 idea가 많은 사람이고 그야말로 ‘좋은 쪽의’ visionary에 속하는 사람이다. Ubuntu란 뜻, ‘humanity toward others‘처럼, 그는 Steve Jobs같은 egomania, megalomania가 아니며, 그의 passion처럼 모든 일이 풀려나간다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명의 혜택’을 골고루 받게 될 것이다

Servicing ‘Curia-PC’

Curia-PC? Curia, PC.. Curia pc.. 꾸리아 PC.. 3년 전만 해도 이것이 무엇인지 짐작 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99% 무슨 뜻인지 안다. 여기서 curia는 로마군단 내의 조직이 아니고 레지오 마리애 조직 중의 하나일 것이다. 군대로 말하면 여러 소대를 관할하는 중대 급에 속한다고 나 할까. 그러니까 꾸리아 조직에서 쓰는 컴퓨터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속한 레지오(마리애)를 관할하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를 말한다.

얼마 전, 자세히 말하면 12월 초, 그 당시에 있었던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를 치르면서 알게 된 것이 꾸리아 간부들이 쓰는 (정확히 말하면 서기가 주로 씀) Windows laptop pc가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그 Windows 7 laptop pc를 직접 내가 보게 되면서 자연스레 내가 관여하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레지오 용어로 ‘본당협조 활동’에 속하는 일을 내가 맡게 된 것이다.

나에게, 이런 종류의 일은 사실 ‘일’이라는 생각보다는 ‘시간 보내기 딱 맞는’ 그런 ‘즐거움’에 속한다. 문제가 있다면, 여기에 깊이 빠져들면, ‘실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빠져들어서 ‘해야 할 것을’ 미루거나 할 정도로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것도 잘 절충을 하는 지혜도 생겨서 예전과 같은 큰 문제는 없다. 나는 이것을 쉽게 말해서 ‘공돌이’ 기질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호기심으로 인한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기회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복잡하게 발전한 근래의 Windows PC는 깊이 알려고 하면 그 속에 무궁무진한 ‘기술’들이 축적이 되어 있어서 이것과 더불어 보내는 시간이 절대로 낭비가 아닌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1~2 년 전에 구입했다는 이 pc는 model이 HP G73-B66US, 2010년 경에 나온 것으로 Microsoft Windows 7 (64bit), 4GB, 2400 MHz Intel Core i3, 500GB HDD.. 등등으로 상당히 빠른 system이었다. 꾸리아 사무실에서 처음 보았을 때 보게 된 문제 중에는, 우선 BSOD(blue screen of death, system crash) 같은 심각한 것을 비롯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system전체가 느리게 ‘돌고’ 있었고, battery 가 너무나 빠르게 discharge되는 등.. 한마디로 무언가 큰 문제가 있어 보였다. 크리스마스 씨즌으로 접어 들면서 꾸리아의 일도 바쁘지 않아서, 아예 pc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Booting을 하면, 5분도 되지 않아 blue screen으로 crash를 한다. Safe mode로 booting을 해 보았다. 5분이 지나도 별 문제가 없었다. 분명히 Windows core system file이 corrupt된 것이다. 최소한 safe mode에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에, safe mode에서 systems diagnostic을 해 보니, 분명히 두 가지 문제가 발견 되었다. Hard-disk의 SMART built-in testing에서 disk가 error threshold를 넘어 섰는데, 한마디로 disk가 ‘죽어가고’ 있는 과정이었다. 또 다른 problem은 역시 internal battery가 이미 ‘수명’을 넘긴 상태였다.

이제는 뒤를 돌아 볼 시간이 없다. 현재의 disk data를 빨리 ‘살려서’ 옮겨야 하는 것이다. Safe mode에서 file copy는 비교적 간단하고, 더욱이 usb flash drive(thumb drive) 를 쓰면 더욱 간단하다. 또한 현재 이 pc에는 그다지 중요한 data file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이 MS Office file이어서 file의 크기가 문제가 되지를 않았다.

Data를 살려 낸 뒤에는 500GB 2.5″ hard-disk와 battery를 교체하게 되었는데, 이것으로 비용만 $100 이 쓰였다. 그 다음 과정은 사실 시간은 걸려도 비교적 straightforward한 routine으로 생각이 되었지만, 사실은 우여곡절, surprise가 참 많았다. 제일 놀란 것이, Windows 7 system recovery disk가 요새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아예 stock hard-disk의 partition 자체에 그것이 있어서 이론상으로는 다시 recovery가 가능하지만 이것은 정말 귀찮고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거기다가, 만약에 최악의 경우, 그 recovery partition이 corrupt가 되면 그때는 속수무책, HP에 연락을 해서 ‘진짜’ Windows 7 disc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최악의 사태로 가지는 않았다. 내가 손수 그 recovery disc를 ‘구워’ 냈기 때문이다. 그것만 있으면 앞으로 같은 문제가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즉시 고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과정이 참으로 시간이 ‘엄청’ 걸렸는데, 어려운 것은 아니더라도 시간으로 치면 참 ‘비싼’ 작업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새로 태어난Windows 7 system은 정말 새로 샀을 때와 같이 ‘날라가는’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로 모든 program들이 run을 했고, 그 동안 ‘이상하게 돌아가는 컴퓨터’로 고생을 하던 꾸리아 서기님도 마음을 푹 놓고 쓰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며, ‘본당협조’의 일을 끝냈다.

전화 유감 電話有感

몇 달 전부터 이것에 대한 것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시각적으로 눈으로 봐야 하는 나의 글이 아니고 눈을 편히 감고, 잘 안 보이는 희미한 글자나 그림 대신에 나의 살아있는 ‘육성’을 나의 그리운 가족과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 그런 꿈같은 상상을 하다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현재 내가 가장 부끄럽고 창피하고 부족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육성을 쓰는 ‘진짜 전화’ 대화임을 나는 잘 안다. 가장 싫은 것 중에 하나가 전화로 하는 대화들, 언제부터 그렇게 피하고 싫어했을까?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수도 없이 걸려오는 telemarketing, anonymous call들, 그런 것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인간’들과 말을 나누는 자체를 상상하기 싫었다. 그러다 보니 caller-id 를 보며 귀찮은 사람의 전화는 숫제 받지를 않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email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는데, 상상외로 이런 삶의 방식이 부드러운 것은 아니었다. ‘반 사회적 anti-social’ 으로 가는 느낌까지 들 때도 많았다.

나의 전화사용이 거의 내가 필요할 때만 (내가 먼저 거는 것만) 하게 되기 시작하면서, 횟수도 점점 떨어지고, 나에게 걸려오는 전화도 따라서 줄어갔다. 잘 받지 않는 전화.. 누가 하겠는가? 내가 생각해도 이것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혹시 전화로 이야기를 하게 되어도 그 대화는 내가 바라는 것처럼 편한 것들은 아니었다.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신나는 전화대화’를 ‘즐겼던 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이런 문제들이 2년 전에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을 하고 단원활동을 시작하면서 내가 풀어야 할 과제로 간주가 되었고, 약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레지오의 거의 모든 business가 ‘아직도’ 전화가 제일 효과적이기 (빠르고, 확실하고) 때문인데, 그것은 아직도 email을 안 쓰거나 못쓰는 사람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활발하게 전화 하는 것..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를 않았다. 너무나 ‘조용한’ 나만의 comfort zone 에 나는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email을 쓰는 ‘일반’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전화로 ‘실시간 real-time’ 대화가 없는 생활이 우려하는 만큼 치명적으로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말을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전화 잘 걸고 잘 받고, 잘 하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 나의 인생 반려자인 연숙이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한다. 어쩌면 그렇게 전화를 ‘용감하게’ 잘 사용할까.. 그 중에서도 제일 놀라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전화 벨이 울리면 ‘99.99% 무조건’ 받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를 제외하고는 식사를 하건, 화장실에 있건 상관이 없다. 전화를 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나에게 전화가 오면 99.9% 통화가 안 되고 연숙은 정 반대로 99.9% 받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아마도 ‘고철’같은 레지오도 초현대 디지탈의 편리함에 서서히 변할 것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email이나 instant messaging 같은 것.. 전화의 간단 편리함은 ‘절대로’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내가 레지오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려면 이 전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고, 더욱 높은 차원의 협조를 구해야 할 지도 모른다.

Wikipedia, If I had $100 more..

wikipedia-logo
Hope from free knowledge

오늘 우연히 Wikipedia website엘 들렸다가.. 왜 그곳에 갔던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곳 website의 top area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보였다. 이곳은 ‘절대로’ 광고 같은 것이 없는 곳인데 하며 자세히 보니 financial donation (giving)을 요청하는 글이었다. 최근에는 Massachusetts 주의 senator (상원의원) 선거에서 Elizabeth Warren이라는 용감하고 시원스럽고 귀엽게(?) 생긴 아줌마 가 출마를 하면서 역시 donation을 그녀의 공식 website에서 하는 것을 보았다.

헌금 액수를 보니 그야말로 ‘아무라도’ 할 수 있는 정도로 $5~$10 가 대부분이었다. 그 정도로 모금을 해 보니 큰 결과를 기대 못하는 듯 해도 그것이 아닌 것이 참가하는 사람의 숫자가 엄청난 것으로, 역시 online의 위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었다. 나는 물론 Massachusetts 의 유권자가 아니라 해당은 안 되었지만, 이렇게 ‘코 흘리개’ 정도의 돈으로 그녀는 당당히 당선이 되었다. 상당한 조직(공화당, who else?)의 돈으로 버티던 상대방도 이런 ‘개미 군단’의 위력에 놀랐을 것이다.

다시 Wikipedia 로 돌아와서, 나는 최근에 이 ‘free’ 백과사전을 정말로 애용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 옛날, 책으로 된 백과사전을 한번도 살 수 없었던 때를 생각하며, 나는 이곳을 자주도 찾는다. 그야 말로 ‘조그만 아무 것’이라도 궁금증이 생기면 이곳에서 해결과 해갈을 한다. 궁금증이 많은 사람들, 특히 제3세계의 ‘가난한 학생’들을 생각하면 이것은 거의 꿈과도 같은 service인 것이다. 이용자들의 조그만 헌금으로 운영이 되는 것에 비해서 이곳은 그렇게 자주 fund-raising을 하지 않는다.

그곳에 비해서 public radio/TV같은 곳은 너무도 자주해서 짜증이 날 정도다. 그들의 ‘무료’ service는 감사하지만 지나치게 liberal한 그들의 논조도 짜증이 나는데 말이다. 모든 것들이 ‘극단’으로 치닫는 풍토, 지독한 예로 Apple Co.와 같이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철면피 철학의 집단이 있는가 하면 Open Source, Wikipedia 같이 모두 잘 나누며 살자는 ‘예수님’ 철학의 집단이 공존하는 이때..결과적으로 이곳의 헌금부탁은 절대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더 Wikipedia 와 가까워 지게 되었다. 나의 재력이 100불 정도 더 많았다면.. 하는 꿈이 너무나 간절해지던 순간이었다.

Blackest, Darkest Northern..얼어붙은 북녘하늘

Satellite night view around Korean peninsula

NASA 기상관측 위성 Suomi가 본 한반도 주변의 밤 모습

 

그들의 ‘영용’한 김씨 왕조(김일성 3대, 어둠의 자식들) 60여 년이 ‘인민들의 고혈로’ 성취한 얼어붙은 북녘 하늘을 보라.. 얼마 전 공개된 NASA의 Suomi NPP polar orbit satellite가 지구의 곳곳을 돌며 찍은 ‘밤 사진’ 중에 CJK (중국, 일본, 한국)의 모습이 close-up 되었다. 한반도의 밤 사진이 그렇게 관심을 끄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휴전선 이북이 ‘완전한’ 암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족 반역자들이 몰려 사는 평양만은 5W 정도의 전등을 켜 놓아서 그런지 희미하게나마 알아 볼 수는 있다.

일본 도쿄 이상으로 밝은 서울 Metro의 lighting energy는 휴전선을 넘을 정도로 찬란하다. 이 사진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군상들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도 철없는 amateur astronomer들일 것 같다. 1000여 년 전 칠흑 같은 통일 신라의 수도 서라벌, 첨성대에서 찬란한 하늘을 보며 미래를 예측하던 신라인들 같이 빛의 공해가 없는 ‘칠흑 같은 곳, 북녘 땅’에서 그들은 별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금강산으로 주린 배를 채우던 것 비슷하게 아마도 이제는 철없는 아마추어 천문학도들 밤 관광을 시키는 것도 그렇게 나쁜 idea가 아닐 듯하다.

Ready to trash Google Chrome

For the last few months, I have been wondering what’s wrong with this Google Chrome browser. It began with the flash video (embedded), stuttering audio and video, sometimes got locked up. A few googling revealed a few tricks like “chrome://plugins” which seemed helped for a while. Now, switching between tabs is getting harder and harder, mostly the whole tab page locked up, the tab renders a ‘white’ page. So, what’s going on here? The mighty Google engineers, what the hell are you doing? The browser was a such a joy to use for long time, after Firefox. In desperation, I switched back to Firefox.. .well… it is flawless! I know I have to forgo the very convenient Chrome’s syncing tool, but I don’t care anymore.. Bye Chrome.

오월이여, 안녕!

¶  오월이여 안녕!   한 달이 온통 ‘가정, 가족, 졸업식, 어린이, 어머니, 성모님‘ 같은 정말 듣기만 해도 포근한 것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어머님께서 9년 전에 선종하셨던 달이기도 해서 가족과 삶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던 그런 한 달이기도 했다.

비록 거의 기정사실화 된 기후변동(a.k.a global warming)으로 예전의 6월 같은 날씨들이었지만,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 요새는 ‘날씨’에 둔감해 지려고 거의 ‘일부러’ 날씨에 관한 작은 뉴스는 피하고 있고, 그것이 ‘확실히’ 심리적으로 나를 편안하게 함을 느낀다. 더우면 어떻게 추우면 어떠랴.. 참거나, 잊고 살면 되는 것을.. 또한 작년에 비하면 날씨에 관한 big news는 ‘거의’ 없을 정도로 조용하긴 했다. 작년의 그 ‘monster‘ tornado등을 아직도 기억하기에 더욱 그렇다.

 

¶   Robin Gibb  5월 20일에, 오래 전 60/70시절 우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Bee Gees [BGs: Brothers of Gibbs] 형제의 중간인, Robin Gibb이 암 투병 중 합병증으로 결국은 62세란 요새 기준으로 보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을 한 것이다. 그 그룹의 세 형제 말고도 아주 오래 전에 네 번째, ‘막내 동생’ Andy는 이미 (여자문제로)사망을 했고, 2000년대 초에는 세 번째 Maurice도 병으로 사망.. 이제 맏형 Barry만 남은 것이다.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심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과 같은 ‘예술인’들은 영원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것들이 있어서 부럽기도 하다. 나에게 그들이 남긴 것 중에는 60년대의 것이 ‘진짜’의 걸작이라고 생각하고, 70년대의 ‘disco 외도’는 잊고 싶은 것들 뿐이다. 최근 몇 주간 지저분한 소식들 투성이였던 모든 news (Internet, TV etc)를 피하며 지내는 바람이 그가 운명한 소식을 이제야 알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또한 우리 세대의 인물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가고 있음을 어찌 모르랴.

 

 
Run To MeBee Gees – 1972

 

1984 model Kenmore washer¶  공돌이의 오기惡氣  얼마 전에 우리 집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세탁기(electric washer)가 말썽을 부렸다. 빨래를 할 때마다 ‘지독히도’ 요동을 치면서 그동안 아주 조금씩 새던 물이 이제는 ‘콸콸’ 샌 것이다. 공구들을 손에서 놓고 산 것이 꽤 오래 되어서 (거의 1년) 사실 이런 ‘사고’는 너무나 귀찮게 느껴졌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지 뿐이다. (1) 나보다 ‘더 바보 같은’ handyman을 불러서 고치게 하던가, (2)고칠 수 없으면 새것을 사던가, 아니면 (3) 내가 팔을 걷어 붙이던가. 1번 선택은 나에게는 거의 절대로 no no인 것이다. 대부분이 ‘엉터리, 사기꾼’ 같은 놈들 뿐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잘 모르는 바보들 뿐이기 때문이다. 2번의 선택도 가급적 끝까지 피하고 싶은 것이다. 돈을 쓰는 것 이외에, 멀쩡할 수도 있는 세탁기를 분명히 내다 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에게 choice는 역시 내가 팔을 걷고 muscle과 brain을 써야 하는 수 밖에 없다.

Washer power-train still in good orders우리의 washer는 1984년에 Columbus, Ohio에서 학생시절에 Sears에서 산 Kenmore classic model인데, 한마디로 완전한 ‘탱크’와 같이 우직하게도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절대로 고장이 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런 모양이고, 사실 거의 30년 가깝게 딱 한번 timer/controller 만 교체를 한 것으로 나머지 기계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이제 정까지 들게 된 우리 집의 ‘값싼 가보’가 된 존재인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나는 비장한 각오로 이것을 살려 보기로 하고 ‘공돌이의 오기’로 분해를 해서 살펴 보았다. 결과적으로 나의 추측이 맞았다. 크게 ‘망가진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나사 같은 것이 모조리 풀어져서 물이 샌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Washing cycle중에서 가끔 balance가 맞지 않으면 격하게 요동을 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아주 오랜 세월을 보냈으니, 그 fastener들이 모조리 풀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30년에 가까운 이 세탁기는 안락사 직전에 다시 한번 생명을 연장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딱 한가지다. 이것이 심하게 vibration을 못하게 ‘꼭 잡아주는’ 장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 되면 앞으로 최소한 몇 년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참, Sears Kenmore people들, 어쩌면 그 당시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이것이야말로 Made in U.S.A의 표본이다.

 

¶   Vice Presidency  미국의 부통령 직, 어떤 자리일까? 이것의 정의와 의미를 따지자면 책 몇 권 가지고도 부족할 것이다. 그만큼 독특한 위치이기 때문일까? 역사적으로도 그것이 증명이 된다.

Robert Caro
Robert Caro

얼마 전에 Time 잡지에 Robert Caro라는 LBJ(Lyndon B Johnson) biographer(전기작가)의 말이 등장했다. 그는 일생을 1960년대 미국 정계를 주름잡았던 부통령, 대통령 Lyndon B. Johnson의 연구로 보낸 인물이다.  ‘사고’1로 부통령에서 대통령이 되고, 다시 한번 선거로 한번 대통령을 하고 스스로 물러나 난 전설적인 Johnson 대통령, 비록 월남전에서 고전했지만, 국내 정치는 빛나는 업적이 수도 없이 많은 인물이다.

1965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그를 기억한다. 수많은 ‘오해’를 받았지만 묵묵하게 하나하나 성과에 성과를 쌓고 조용히 물러난 것, 참 멋지다. 그 인간상을 연구했던 Robert Caro의 한마디가 참 인상적이다. 지난번 선거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John McCain이 그의 running mate로 완전한 ‘들러리 간판’격이었던 Sarah Palin이란 ‘바보 같은 여자’를 선택한 것에 대한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 역사상 가장 무책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나도 절대로 동감이다. 그런데 더욱 웃기는 것은 McCain자신은 ‘아직도’ 그 선택이 자기 일생에서 가장 ‘멋지고, 신중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의 radar에서 McCain이란 인물은 완전히 사라졌다.

  1. 1962년 달라스에서의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Arctic Freeze on ’96 Honda Accord

Arctic Freeze, 이미 다가온 여름 같은 무더위에 이런 말은 듣기만해도 시원하고 만약에 이것이 무슨 상품이라면 사고 싶어질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 되었다. 이것, Arctic Freeze란 것은 자동차 에어컨 에 쓰이는 refrigerant(냉매?) Freon gas recharge kit의 상표이름인 것이다. 이 Freon gas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 조금씩 새어 나와서 압력이 떨어지고, 따라서 에어컨의 냉각기능이 서서히 떨어지며, 나중에는 시원한 바람대신 더운 바람이 나오게 된다.

얼마 전에 큰딸 새로니가 쓰던 1996 Honda Accord Ex 에 그런 문제가 생겼다. 이 차는 1996년에 우리가족의 차로 산 차로서 70,000 마일까지는 우리가 썼고 그 후에는 새로니의 차가 되었는데 현재는 대강 140,000 마일까지 되었다. 하지만 이 당시의 Accord model은 워낙 잘 만들어서 엔진은 아직도 ‘거의’ 새 차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에어컨의 Freon gas가 서서히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옛날 차 같았으면 이와 같이 에어컨의 문제가 생기기 훨씬 전에 엔진 주변 (power train) 장치에 문제가 생겼었을 것이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이런 에어컨의 문제가 계속 신경이 쓰여서 조금 googling을 해보니 의외로 고치는 방법이 간단해 보였다. 완전한 DIY (do-it-yourself) kit 가 많이 나와 있었고 그 중에 Arctic Freeze란 것이 제일 비싼 것($37)이었다. 전에는 사실 차의 에어컨에 문제가 생기면 거의 compressor같은 mechanical한 것들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짐작을 하고 몇 백불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부분은 이 Freon gas가 부족해서 생긴 것을 알게 되었고, 만약 이런 문제로 수리를 맡기게 될 때, 재수 없으면 ‘바가지’를 쓸 확률이 높은 그런 것이다.

이렇게 Freon gas를 간단히 재 충전하는 것도 대부분 $100이상을 받는다고 하니까, 집에서 자기가 이런 kit를 사서 하면 거의 $50이상은 절약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 호기심 반, 돈도 절약할 겸 반 해서 내가 재충전하는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 사실 youtube같은 곳에 많이 example이 나와 있어서 의외로 쉽게 수리를 끝낼 수 있었다.

내가 산 Arctic Freeze kit는 gas를 다 채운 다음에도 gas만 따로 사서 쓸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그냥 gas만 충전을 해도 되지만 문제는 정확한 gas pressure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압력계가 필요한 것인데, 이 kit는 편리하게도 압력계가 함께 부착이 되어있었다. 결과는 20분 만에 대 성공, 정말 ‘북극의 바람’ 같은 시원한 바람이 나왔고, 새로니는 아빠의 ‘현명한 노력’으로 ‘에어컨 수리비용’도 많이 절약할 수 있게 되어서 이것이야 말로 win-win work이 되었다.

 

DIY Freon recharge kit, Arctic Freeze on Honda Accord

Arctic Freeze recharge kit on Honda Accord hood

Arctic Freeze kit closeup

Arctic Freeze kit closeup

Arctic Freeze during recharging

파란색의 recharge connector에 연결되어 10분 정도면 끝난다

 

白手와 digital technology

나는 白手란 말을 참으로 싫어했다. 누가 좋아하겠는가? 놀고 먹는다는 뜻일 것이고, 대부분 이런 부류 중에는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남자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는 白手란 말 조차 해당되지 않는다. 놀고 먹는 여자들은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그런 것은 듣지 못했다. 전통적인 의미의 白手는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의건 타의건 간에 조직적인 곳에서 정해진 시간에 경제활동 하는 것을 떠난 남자들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밖에서 일을 했던 것이 남자들이고, 그들이 그런 일을 안 하고 산다면 그날로 白手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언젠가부터 白手가 된 것이다. 그런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할 수 없이 나는 역시 白手인 것이다. 아마도 집에서 ‘작은’ 경제적인 활동을 계속해 왔다고 해도 역시 그는 白手라고 불릴 것이다. 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한 것은 크게 상관이 없다. 간단히 말해서 남자가 ‘낮에 집에 있을 수 있으면’ 우선 그는 白手인 것이다.

 과연 요새 白手들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소일할까? 이것 또한 사람들의 성격만큼 다양할 것 같다. 서울에 계신 처남을 보면, 직장에서 일할 때보다 더 바쁘다고 한다. 거의 주일마다 정기적으로 산엘 가고, 집에 돌아올 때 술을 마신다. 직장 다닐 때도 술을 마시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지금은 일이 끝나고 올 때가 아니고 ‘놀다가’ 올 때 마시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고, 각종 ‘회포를 푸는’ 모임에는 다 나간다. 어떻게 보면 부럽게 들리기도 한다. 하기야 이런 것들은 직장시절 그렇게도 기대하고 기다리던 이상적, 환상적인 생활 들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이것이 거의 변함없이 매일 계속될 때도 그렇게 즐거울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내가 사는 이곳 아틀란타 지역의,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 중에는 白手가 의외로 드물다. 가깝게 지내는 친지 중에는 현재 한 사람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민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사업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말 체력과 의지만 허락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이럴 때, 그들이 참 부럽다.

비록 그들은 육체적으로 고달플 때도 많고, 많은 시간 동안 일을 하지만, 우선 돈, 그러니까 현금의 자유가 내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많고, 이렇게 ‘정년퇴직’ 이나, ‘명퇴’같은 음산한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그리고 하루아침에 직장이 없어지거나 하는 traumatic한 것도 없고.. 그저 단점은 사업에는 항상 기복이 있으니까, 그것이 조금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그렇게 여유 있게 돈을 번 후에 白手가 된 사람들은 위에 말한 것처럼 정말 바쁘게 산다.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가서 그곳의 사람들과 어울린다. 선교여행(성지순례), cruise여행, 골프, 각종 악기 배우기 요리 배우기, .. 열거하려면 한도 없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시간과 건강, 돈이 없으면 곤란한 것들이다.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들인가? 이것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개개인마다 여건들이 조금씩 다를 것이니까.

개인적으로 나에게 매력적인 일거리를 고르라면 글쎄, 신앙적인 것과 지적인 것들이 balance를 이루는 그런 것들이다. 예를 들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돕는 자원봉사, 컴퓨터를 위시한 매초 변하는 digital technology 그리고 자기를 포함한 ‘개개인들의 역사’ 탐구 등등이 있다. 하지만 白手들이 할 수 있는 것들도 시대에 따라서 무슨 흐름과 변천이 있었을까?

우리 부모님들의 세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세대마다 겪었던 시대적 문화가 있고, 경제적인 제약, 여유 같은 것들이 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전쟁을 몸으로 겪었고, 비록 민주적이지만, 보수적이고, 경제적으로는 항상 모자란, 그런 시대에서 사셨다. 그들에게는 白手가 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니 대부분 혼신의 힘으로 키웠던 자식세대에 ‘모든 것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자존심을 접는’ 조용한 여생을 보낸다.

손주로부터 위안을 얻고, 경로당에서 친지들과 어울릴 수 밖에 없는 것이 거의 남은 삶을 사는 방식이었다. 지금에 비해서 평균수명이 그렇게 길지 않았던 시절이고 보니, 白手로 산 기간도 길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계속 길어지는 평균수명이다. 白手가 되는 절정기인 60대가 이제는 길어진 평균 수명에 덕분에 비교적 ‘젊어’ 진 것이다. 번듯하고 의미 있는 ‘경제적인 일’을 할 수 있으면 제일 바람 직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악의 세계적 불경기가 기약도 없이 계속된다. 지금 나의 세대, 60대가 그런 변화의 최전방으로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제일 바람 직할까?

이때 나는 고국의 친지들을 부러워 하게 된다. 비록 세대는 많이 흘렀어도 이곳 미국에 비해서 그곳은 아직도 끈끈한 정으로 모두들 얽히어 산다. 학연, 혈연, 지연..등등 오래 동안 형성되어온 ‘인연’이 이 나이에는 완숙이 되어서 사는데 큰 활력소가 될 듯하다. ‘철저한 개인’의 나라 미국에 사는 한 그런 것은 완전한 희망적인 것일 뿐이다. 비교적 교민들끼리 모여 산다는 이곳에서도 큰 차이는 없다. 완전히 ‘99.9% 한국식’으로 사는 사람들은 조금 다르겠지만 대부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렇게 살려면, 아예 고국에 가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는 것이 나을 테니까.

이런 때에, 최근 20년간 급성장한 인터넷의 보급은 이렇게 ‘고립되어’ 사는 우리들에게 조금 희망적인 발전일 수 있다. 지독히도 개인적 자유와 간섭 받기 싫어하는 미국인들이 Facebook, Twitter같은 social networking에 열광하는 것도 인간의 사회적 본성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상적 공간, virtual space‘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만큼, face-to-face: 얼굴을 마주보며 만나는 것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인터넷에 의한 매체의 역할은 독특한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시간, 공간을 손쉽게 뛰어넘어, 사회생활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사람을 차별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얼마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가 하는 ‘기술의 정도’는 우리세대를 무참히 도 차별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현재 인터넷의 발전 정도로는 아직까지도 사용자는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일 큰 장애물이다. 그래도 지금은 10년 전이나 그 이전보다 훨씬 쓰기가 수월해졌다. 컴퓨터처럼 보이지 않는 기기들 (embedded devices)이 인터넷으로 연결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mobile devices, GPS, smart phone, HD-TV, car, audio system 등등인데, 이런 추세는 가속되고 있다. 본인도 모르게 인터넷을 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기들은 특별한 목적에 맞춘 것이고, desktop pc의 ‘널찍하고, 화려한 화면’ 에 나타나는 ‘화려한’ 인터넷의 효과에는 아직도 미칠 수가 없다.

 인터넷 이전에는 컴퓨터 없이 살아도 조금 자존심은 상해도 그런대로 살 수 있었다. 멋지게 프린트 해낸 편지 같은 문서들, 재미있게 ‘조작’한 사진 만들기, cd-rom등으로 백과사전 보기.. 계산을 다 해주는 가계부, 이런 것들은 생활하는데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컴퓨터를 살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다르다. 인터넷을 못쓰거나 안 쓰면 이제는 생활하는데 불편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컴퓨터를 쓰기 위해서 이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쓰기 위해서 사서 써야 하는 실정이 된 것이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추세를 실감한다. 그들도 ‘싫지만’ 이것을 써야 하게 되었고, 결국은 이제는 편리할 정도로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값싼 물건을 찾아내고, 이메일을 쓰고, 옛날에 헤어진 사람들을 찾아내고, 집에 앉아서 고국에 있는 ‘고수’들과 바둑을 두게 되고, ‘공짜’로 영화, 드라마 같은 것을 보게 되고.. 이런 것들을 어떻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그런대로 인터넷을 쓰는 우리 동료세대들의 특징은, 이들 대부분은 인터넷의 ‘소비자’ (net consumers) 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보거나, 받거나’ 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에서 ‘생산자‘ 적인 (net producer) 입장으로 능동적으로 쓰는 사람은 아직도 미미한 정도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예는 이메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의외로 직접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영어로 편지를 쓰는 것은 우리세대에선 말도 안 되고, 어차피 감정이 통하는 한글로 써야 하는데, 오랜만에 ‘한글문장’을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우선 키보드에 글자를 넣는 데서 부터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것이 현재 ‘능동적’으로 인터넷을 쓰는데 최대의 장애물인 것이다. 물론 ‘말하는 것’ 보다 ‘글을 쓰는 것’이 훨씬 힘 들기도 하다.

 내가 아는 우리 또래들도 ‘대부분’이 인터넷 소비자에 속하는, Internet radar 아래에 ‘숨어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진정한 인터넷 세대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맞는 그런 부류들일 것이다. 이곳에서 오랜 동안 살며 보아왔지만, 우리 세대(boomer)의 미국인들은 느릿느릿하지만 꾸준히 인터넷 문화에 동화하는 노력으로 이제는 ‘대부분’이 큰 문제없이 인터넷을 ‘능동적’으로 쓰게 되었다.

이메일은 그들에게도 거의 ‘필수’가 되었고, social networking에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고, 인터넷 shopping도 다른 세대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그에 대응한 한인들은 비록 느낌이지만, 훨씬 뒤 떨어진다. ‘쓰면서’ 경험하는 것은 고사하고 우선 pc조차도 쓰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인 것이다. 이것은 참, 안타까운 현실이고 너무나 바쁘게 사는 현실을 감안하면 아마도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닐 듯 싶다. 조금 더 빠른, 그러니까 현재의 3G, 4G정도보다 훨씬 빠른 mobile-based Internet으로 발전을 하면 아마도 mobile device들이 desktop PC보다 더 쉽게 쓸 수 있게 (예를 들면, keyboarding대신 voice recording, recognition, dictation같은) 될 것이다.

하지만 단점은 역시 우리 세대의 특징인 ‘떨어지는 시력‘ 이다. Mobile device들은 글자 그대로 ‘가볍고, 작은’ 것이라서 젊을 때보다 훨씬 ‘조작’하기도 불편하고, ‘보기도’ 불편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희망은 ‘보는 것’ 대신에 말하고, 듣게 하면 될 것인데 그쪽의 발전 속도는 생각보다 느려서, 과연 우리 세대들이 그것의 혜택을 본격적으로 받게 될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우리세대는 과장된 표현으로 ‘문화적 격변기’를 때 늦게 맞고 있다. 역사상 이렇게 빠른 속도로 기술에 의해 사회, 문화적 기반이 영향을 받은 적은 18세기 이후의 산업혁명 이후 처음일 것이고 질적, 양적으로 그때와는 비교를 할 수가 없다. 모든 것들이 어중간한 우리 boomer세대들, 특히 白手들, 과연 어떻게 이 격변기를 ‘안전하게’ 보낼 것인가?

Fedex service. Get your parcel NO#3229

This morning, I got a suspicious email into my Junk E-mail folder, which I would normally ignore. This time, however, it got my attention because we were indeed expecting a package delivery. Even though we already knew the package carrier is not Fedex, what if it changed the carrier? But again, it looks to me like a typical scam email because our package carrier is not supposed know my email address. The suspicious email has an attached payload zip file. The email says in not-so-perfect English:

 

Dear Customer,

The delivery service couldn’t deliver your package.
The package weight exceeds the allowable free-delivery limit.

You have to receive your packagen personally.
Print out the “Invoice Copy” attached and collect the package at our office.

Please read carefully the attached information before receiving your package.

Thank you for attention. FedEx Global.

 

The attached payload file name was: “FedEx_Invoice_Copy_N44-134.zip

The zip file was only 3 byte long.. What’s going on here? If the zip file ever gets clicked (opened), 100% virus-generating code would infect the running PC.

 The email forensic reveals that it has originated from www-data <www-data@mail.ecom.hu>. Googling reveals it is not even a legit domain name, in other words this email contains 100% lie. What kind of world are we living in these days?

 

Wolfram Alpha

Stephen_Wolfram
Stephen Wolfram

Wolfram Alpha? 이것은 한글로 어떻게 쓸까? 아마도 월프램 알파? 상관없지 않을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것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니까. Wolfram은 ‘머리가 기가 막히게 좋은 예외적인 천재 과학자’, software designer, entrepreneur..(소프트웨어 디자이너, 기업,창업가)의 수식어가 붙는 유대 계 영국인이다. Full name은 Stephen Wolfram(another Steve, oh no!).

머리가 좋은 것은 그의 이력으로 충분히 짐작이 간다. 영국에서 배경 좋고 머리 좋은 유대인가정에서 태어나 그곳 유명한 Eton school에서 아인슈타인을 능가할 정도의 두뇌로 학교와 선생님들을 ‘괴롭히며’, 어린 15세 때 이미 ‘물리 논문’을 발표했고, 곧이어 Oxford로 진학해서 particle physics (입자물리학)을 공부했는데, 그 학교 교수들의 가르침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결국 미국으로 와서 남들이 대학 3학년일 나이에 그 유명한 Caltech(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에서 Ph.D.(박사학위)를 받고, 그 3년 후에는 역시 유명한 MacArthur Prize(맥아더 賞)를 수상했다.

1959년생으로 나이 ‘겨우’ 50세 갓 넘은 그는 , 이 정도면 우선 천재 중에서도 예외적인 천재일 것이다. 수학, 물리학이 주 전공분야였지만, 나중에 그의 주관심사는 computer, computing분야가 되었다. Wikipedia로 그의 약력을 보면 전형적인 천재지만, 그는 조금은 겸손치 못한 천재인 듯 싶었다. 그 정도로 자가의 머리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머리 좋은 유대인 가정이 그러하듯이 그도 ‘머리 좋은’ 수학자와 결혼을 해서 4명의 자녀를 두었다. 생각에, 머리 좋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 자녀들의 IQ가 과연 어느 정도가 될까, 의문이 생긴다.

이 사람이 원래는 수학, 물리학으로 시작을 했지만, 점점 이론적인 computing system쪽으로 관심이 바뀌어서, Cellular Automata 분야를 그 유명한 Richard Feynman의 옆에서 연구하기도 했다. 1987년 Wolfram Research를 세우고 부터는 Mathematica 라는 symbolic mathematics (대수학)를 다루는 computer software를 개발, 판매하는 등 그만의 독특한 분야를 개척해 왔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그는 일생일대의 최대 과업을 수행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독특하고, 심지어는 논란의 여지를 낳은 저서 ‘A New Kind of Science, NKS’ 의 출판이었다. 1000 페이지가 훨씬 넘는 이 방대한 연구의 결과는 사실 그 여파를 가늠하기도 벅찰 정도다. 우주는 analog가 아니고 digital이라는 조금은 ‘유행적’으로 보이는 결론, 암만 복잡한 system도 비교적 간단한 computer software로 설명할 수 있다는 등등.. 논란의 여지가 없을 수 없는 논조일 것이다. 

그의 computer중심의 물질,우주관: universe is computer라는 말은 예전에 Sun Computer, Scott McNealynetwork is computer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다른 말로, 이들은 모든 것들을 너무 자기중심의 ‘사상’적인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이 책이 출판된 뒤 몇 개월 뒤에(2002년)Charlie Rose와 interview한 것(아래에 보이는 비디오)을 보는 것이 이 책의 골자를 빨리 이해하는 첩경인데, 물리학자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Charlie Rose Show에서 그 방대한 분량의 책을 쉽게 설명하려는 Walfram의 노력은 정말 가상할 정도다.Charlie Rose 인터뷰 video가 그 동안 server에서 사라진 관계로 대신 더 최근 video, 야심작 Wolfram Alpha를 소개하는 하바드 대학 강의를 아래에 실었다.

 

Stephen Wolfram introducing Wolfram Alpha at Harvard University

 

최근에는 그의 정열을 조금 다른 각도로 Google의 성역으로 도전을 하는 것인지, Wolfram Alpha라는 거대한 작품을 선 보였고, 결국은 다른 Steve(a.k.a., Rotten Apple)가 곧바로 이것을 Siri라는 것에서 쓰기 시작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Google의 search engine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목적과 결과가 사뭇 다르며 다른 말로 answer-knowledge engine에 가깝다.

Google은 keyword로, 찾으려는 ‘모든 관련된’ website의 location, link (address)를 알려준다. 알려준 곳을 찾아가서 ‘네가 찾는 것을 더 찾으라’는 것이다. 일단 출처를 알려주고 나면 Google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찾으려는 그때부터는 정보를 찾으려는 사람이 역량에 달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Wolfram Alpha는 한 단계 이상 더 나아가서 그 결과를 찾아내어, 자기 나름대로 ‘정리’를 해서 report형식으로 건네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하려면 ‘방대한 super computer network’이 뒤에서 찾아내서 정리를 해야 하지만, 찾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부분 거의 ‘자동적으로 불과 몇 초 만에’ 결과를 얻게 된다. 그것이 바로 rottenApple iPhoneSiri 가 ‘신기하게 답을 제공하는’ 원리인 것이다.

나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21세기의 최고의 과학자가 될 잠재력’ 을 지닌 그를 이제까지 별로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것이 불과 몇 달 전에 내가 home office에서 즐겨 이용하는 IP PBX (software-based PBX)인 PIAF (Pbx-in-a-Flash) 이라는 것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rottenApple iPhone의 Siri(이것의 발음은 일본에선 ‘엉덩이’라는 뜻이다) 처럼,이 PIAF software에서도 Wolfram Alpha에서 제공하는 service를 쓰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PIAF에 연결된 전화기에서 4747(Iris, Siri를 거꾸로 쓴것)를 누르면, ‘질문’을 말하라는 prompt가 나오고, ‘영어’로 문제나 keyword를 말하면, 그것을 copy해서 반복을 하고, 확인을 하면 곧바로 그 ‘음성질문’을 Google의 speech-to-text service로 보내어(이것은 아직까지 무료) text로 바꾸어 다시 그 text를 Wolfram Alpha로 forward를 하면 그에 대한 ‘해답’이 text로 PIAF로 return이 된다.  

그 시간이 불과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Siri와 거의 같은 PIAF만의 App인 것이다. 현재는 익숙지를 못해서, 아주 초보적인 질문 (weather, today’s history 같은) 밖에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일상적으로 유익한, 학문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정보를 computer가 아닌 ‘전화’로 얻게 되지 않을까.. 희망을 해 본다. 참, 흥미진진한 세상을 살고 있다.

 

John Glenn, the Right Stuff

John-Glenn-1962

1962년 2월 22일자 동아일보의 1면 기사, 존 글렌의 미국 첫 지구궤도비행 성공뉴스

 

The Right Stuff.. 책과 영화의 제목.. 미국의 우주개발 초창기 때에 관한 얘기들, 특히 첫 프로그램이었던 머큐리의 7인 우주비행사 (우주비행사를 미국에서는 astronaut, 당시의 소련에서는 cosmonaut라고 했다) 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바로 50년 전, 그러니까 반세기 전, 오늘이 이 프로그램의 절정에 해당하는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62년 2월 20일은 소련에게 완전히 선두를 빼앗겼던 미국의 첫 완전 지구궤도 비행이 성공한 날이다. 그 우주인이 아직도 90세로 건재한 한국전에도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해병대 중령출신인 존 글렌, John Glenn, 그는 1969년에 달에 사상 최초로 착륙한 Neil Armstrong과 같이 Ohio주 사람으로, 나중에는 오랫동안 연방 상원의원으로 정치를 했고, 한때는 미국 대통령으로 출마를 하기도 했다.

The Right Stuff의 영화를 보면 짐작이 가듯이 그는 7인의 astronaut중에서도 유별나게 ‘도덕적, 신앙적’인 사람이었고, 그런 곧디 곧은 성품으로 전 인생을 보낸 셈이고 90세인 지금의 나이에도 전혀 나이에 의한 장애를 느끼지 않는 듯한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보인다. 나는 이 미국의 첫 지구 궤도비행 성공 소식을 서울에서 중앙중학교 3학년이 시작되기 전 2월에 신문과 라디오 방송으로 들었다.

미국, 소련의 심각한 냉전의 공포 속에서 두 초강국은 우주경쟁을 전쟁의 연장으로 보았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이것은 미국의 절대 열세였다. 1957년의 Sputnik 소련 인공위성을 필두로 Yuri Gargarin의 사상 첫 소련 우주인 탄생 등등 계속 소련의 연전 연승이었다. 그럴 때, 미국은 로켓을 쏘아 올릴 때마다, 거대한 화염에 싸여 곧 추락을 하곤 했다. 한마디로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젊고도 젊었던 40대의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고, NASA가 본격적으로 가동을 하면서, 이렇게 John Glenn의 성공적인 첫 궤도비행이 탄생한 것이다.

소련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이것은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끼친 심리적인 효과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 것으로 보인다. 조금 자신감이 생긴 것이고, 케네디 대통령의 “1970년 전까지 인간의 달 착륙과 귀환” 공약까지 나오게 되고, 결국은 이것을 출발점 으로 1969년 여름에 달에 착륙을 함으로써 미국의 승리로 끝나게 된 것이다.

1962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space program은 정말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나는 곧이어 중앙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에 있던 윤태석이 수시로 가져다가 교실 뒤의 벽에 붙여놓은 우주 프로그램의 총천연색 화보 (아마도 미국 공보관을 통해서 나온 것)를 보면서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 당시의 신문을 다시 보게 되면서, 그때의 우리들을 생각한다. 그전 해(1961년)에 5.16군사혁명으로 박정희 의장시절이었다. 그러니까 민정으로 이양이 되기 전, 군사혁명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서 모든 것이 통치되던 시절이었다. 경제는 말도 아니었고, 미국 원조 수준은 떨어지고, 휴전선 너머에는 살이 더 찐 김일성 개XX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고.. 철전지 원수 일본은 우리 동족간의 전쟁 덕분으로 날로 부강해지고, 급기야 올림픽을 눈앞에 두었고, 우리는 구차스럽지만, 일본에게 돈을 꾸어달라는 외교를 해야만 했던 그런 시절.. 하지만 박정희는 ‘한가지를 향해서’ 뒤도 안 보고 달리기 시작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평화의 십자군’ 으로 보이던 미국에서 이런 신나는 소식이 온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박수 갈채를 보내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무언가 앞으로 ‘잘 풀릴’ 것이라는 그런 희망들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시절이기도 했다.

 

 Bert Kaempfert – “Wonderland By Night”
‘밤하늘의 트럼펫’, 그 당시의 hit instrumental melody  

 

썩은 사과, 황동규 시인

¶  The Rotten Apple, 이제는 완전히 부풀어 오른 monster기업, 크기가 이제는 MicrosoftGoogle을 합한 것 보다 커진 상태가 되어서 결국은 조금은 defensive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듯, 중국 내 산재해 있는 ‘조립공장’의 열악한 환경을 규탄하는 단체들과 비우호적인 언론의 압력을 의식한 듯하다. 물론 이 문제는 ‘문제의 진실’을 누가 조직적으로 파헤치지 않는 한, 어느 쪽이 옳다고 볼 수가 없는 성질의 복잡한 것이다. 이럴 때는 결국 ‘가진 자’가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금고에 넘쳐서 어쩔 줄 모르는 그 억수같이 많은 돈을 경쟁적인 기업을 소송하는 노력만큼 자기의 ‘결백’을 증명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그들의 덩치가 이제는 예전같이 빨리 움직일 수도 없고, 움직인다 해도 예전같이 ‘독립적이고 자유스러운’ 입장이 절대로 아니다. 현상유지를 하려면 ‘어떤 술수’라도 써야만 하는 아주 어려운 입장인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닥칠 필연적인 문제는 그들의 stock price가 얼마나 올라가느냐가 아니고, 엄청난 technology outsourcing (more than manufacturing) 에 의한 중국기업의 세계적인 일류기업으로 발 돋음인 것이다. 최근의 세계적인 최첨단 기업의 역사를 보면 결과가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young poet DG Hwang¶  황동규시인  너무도 오랜만에 황동규 시선 “三南에 내리는 눈” 을 꺼내어 읽어보게 되었다. 비록 vinyl cover 덕분에 겉은 멀쩡했지만 속을 펼치니 거의 目不忍見..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거의 30여 년간 빛을 별로 못 보다가 근래에 무슨 골동품 고서처럼 나의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시집에 대한 특별한 사연은 나의 2010년 blog에 이미 밝혀 두었고, 기록을 위해서 재빨리 사진까지 찍어 놓은 이후에는 항상 나의 눈에서 떠나지 않는 곳에 꽂아 놓았다. 지금 보니 2년 전보다 낱장들이 더 ‘노랗게’ 변했다. 질이 낮은 인쇄 종이를 써서 그럴까, 아니면 ‘지독히도 긴 세월’ 덕분일까.. 다른 한편으로는 무슨 ‘고서’ 같은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래서 부랴부랴 책 ‘전체’ 를 typing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황시인의 그 당시 시 세계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시대적으로도 아주 내가 회상하기 좋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그의 시 세계.. 그 시대는 나에게도 너무나 그립고, 잊고 싶지 않은 때가 아니었던가? 황시인도 이제 나이가 70세 중반으로.. 서울고, 동숭동 서울대 출신, 그때의 그 세대 선배들의 대강 몸가짐과 모습들, 그리 상상하기 어렵지 않게 그리운 모습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은 (wikipedia에서) 이 황동규시인이 바로 그 유명한 원로 소설가 황순원씨의 장남이었다는 사실.. 그 동안 왜 내가 그것을 몰랐을까? 너무나 의외롭다. 황시인과 어울리던 ‘친구’ 마종기, 김영태 제씨들.. 나도 익히 듣던 반가운 이름들.. 어떻게 이 세분이 친구가 되었는지, 그것을 찾아보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 현재의 Wikipedia의 황동규 페이지는 사실 너무나 빈약한 듯 보인다. 혹시, 희망에, 내가 더 알아내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더 멋지게 만들고 싶다

겨울밤 노래    황동규

조금이라도 남은 기쁨은 버리지를 못하던
해 지는 언덕을 오를 때면 서로 잡고 웃던
해서 눈물겹던 사내여 오라
우리 같이 흰 흙을 핥던 午後에는 배가 안
고프고
언덕에서 내려뵈던 깊은 黃昏
캄캄하게 그 黃昏 속을 달려가던 사내여 오라

겨울날 빈 터에 몰려오는 바람소리
그 밑에 엎드려 얼음으로 목을 추기고
얼어붙은 못 가에
등을 들판으로 돌리고 서서
못 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을 바라볼 때
몸과 함께 울던 우리의 옷을 보라

걷잡을 수 없이 떨리던 손
그 떨리는 손에는 네 목을 잡고
머리칼 날리며 빙판에 서서
서로 마주 보며 네 목을 잡고
내 들려주리
쓰러지지 않았던 쓰러지지 않았던 사내의
웃음을

어둡다 말하면 대답소리 들리는
쇳날을 만지면 살이 떨어지는
그런 떨리는 노래는 이제 우리에게
서로 붙잡은 우리의 어지러움
어지러움 속으로 길은 헐벗고 달려가고
그 길 끝에 열려 있는 술집은 이제 우리에게

친구여 너는 술집의 문을
닫아도 좋다
문을 닫아도 바람소리 바람소리
우리 같이 흰 흙을 핥던 午後에는
배가 안 고프고
그때 땀 흘리던 우리의 배를 記憶하라
열린 채 땀 흘리던 우리의 배를 記憶하라

하면 아침이 눈길 위로 올 때까지
우리 서로 얼음 냄새를 풍기며
때로 주먹으로 壁을 두드리고
기름냄새를 맡으며
줄어드는 심지를 바라보며
단추 떨어진 우리 젊은 날의
어둡다 말하며 벗어던진 옷을 말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