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bilee of Mercy at Monastery

(Extraordinary) Jubilee of Mercy, (특별)자비의 희년 喜年 2016년 (2015년 12월 8일 부터 2016년 11월 20일까지) .. 작년 말에 교황 프란치스코  Pope Francis 께서 발표했던 것, 올 들어 가톨릭 교회와 신자들의 ‘화두 話頭 talking point’ 가 되었다. 처음에 이 ‘뉴스’에 접했을 때 나는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그렇게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비의 희년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고 나와는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

솔직히.. 몇 년 동안 ‘혼신을 다해서’ 나는 ‘한때 거의 버렸던’ 가톨릭 믿음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이제는 자신까지 얻었다고 조심스런 안심까지 했지만, ‘이런 생소한 말’들에 접하며 다시 ‘나는 역시 아직도 무식하구나1‘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옴을 느낀다.

어디선가 들어보았는지 확실치 않은 이런 ‘희년’이란 말도 그렇고 게다가 ‘자비의 희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거기다 ‘전대사 全大赦 indulgence’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모두 들어보았던 단어들이지만 확실한, 자세한 의미는 사실 나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어떤 글, 사진에서 고 김수환추기경 사진의 설명에, ‘2000년, 대희년 great jubilee 의 추기경’이란 말을 기억한다. 이 ‘대희년’이란 또 무슨 말인가? ‘큰 희년’이란 말인데..

이러한 나의 ‘교리, 전승, 가톨릭 신심 문화에 무식한 배경’ 속에서 올해 ‘진짜’ 희년의 소식을 코 앞에서 접한 것이다. 어쩔 것인가? 예전처럼.. 속으로 ‘아~ 그렇구나..이런 것이 있었구나~’ 정도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이것들이 무엇인가, 더 늦기 전에 한번 알고나 죽자’하고 ‘무조건’ 덤빌 것인가? 결과적으로 근래2 나의 mottos가 된 ‘It’s now or never, don’t think twice, don’t look back‘를 다시 한번 발동해서 나는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알아보는 (study) 노력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그 노력의 백미 白眉 는 3월 14일, 화창하고 써늘했던 조용한 월요일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님들(2쌍 부부 포함)과 함께 방문했던 아틀란타 교외 Conyers에 있는 Holy Spirit Monastery ‘자비의 문 doors of mercy‘ 통과에서 이루어졌다.

 

Conyers 수도원 '자비의 문'

Conyers 수도원 ‘자비의 문’

 

이번 우리들의 ‘Conyers trip 쾌거’는 사실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쁘레시디움차원 ‘공식 활동’의 이름으로 이루어졌지만 대다수의 찬성에도 힘을 입은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새롭다. 또한, 이번 기회에 나는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자비의 희년, jubilee of mercy의 반포배경과 그 이전에 있었던 크고 작은 희년 들의 역사적 배경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무식 ignorance stupid point’가 사라지는 기회가 되었다.

 

평화스러운 수도원

평화스러운 수도원

 

이번의 자비의 희년은 Extraordinary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그 이유는 정기적으로 25년마다 찾아오는 희년과 달리 특별하게 제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특별 자비의 희년은 로마 바티칸 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각 교구마다 지정된 성전, 역사 깊은 성당에 ‘자비의 문’이 설정이 되었다. 이 자비의 문을 통과하면 전대사 全大赦를 받을 수 있는데 부수 조건은: (1)  교황님의 지향기도, (2) 고해성사, (3) 영성체, (4) 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함, 등이다.

나는 이제까지 이런 ‘교황이 선포하는’ 전대사 같은 것에 큰 의미나 흥미를 느낀 적이 사실 없었다. 솔직히 핵심 교리적인 것 빼놓고는 믿어지지도 않았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교리의 한가지는 믿고 다른 것은 안 믿는다는 것 cafeteria Catholic 은 어불성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믿으려면 다 믿고 안 믿으려면 차라리 믿는다고 ‘까불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이야 말로 ‘무조건’ 믿는다. 전대사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이제까지 ‘쌓였거나, 남아있는’ 나의 죄는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다.

생애 처음으로 전대사를 받은 우리들, 반응은 확실치 않았지만 우리는 조금 남들과 다른 ‘양도’를 하였다. 전대사를 남에게 주어도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님께 양도를 하였고 연숙은 작년에 선종하신 배 베로니카 자매님께 양도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나와 연숙은 우리 자신이 전대사를 못 받은 셈이 되었나.. 하지만 상관이 없다. 이것이 우리를 더 기쁘게 한 것이니까…

3월의 어느 평화스러운 월요일, 신앙과 사명감으로 뭉친 레지오 단원 그룹이 이렇게 자비의 해에 선포된 자비의 문을 ‘통과’ 하려고 유서 깊은 Conyers의 수도원을 방문한 것,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정오에 있는 수도자들의 기도의식에도 참여를 했고, 준비해 간 음식으로 한적한 곳에서 점심식사를 즐긴 월요일 하루, 너무나 좋았다.

  1. 나 말고도, 이런 가톨릭 전통, 신심들에 무식한 교우들 참 많이 있을 것이다.
  2. 최소한 6년 전부터, 특히 레지오를 시작하면서부터..

Growing pain

Growing pain, size matters, evolution, exclusive, divide & conquer, tribalism.. 이런 말들이 머리 속을 맴돌던 (마리에타 2) 구역모임이었다. 중대한 논의와 결정이 필요하니 ‘꼭’ 참석하라는 ‘신 新 구역장’ 클레멘스 형제의 말을 상기하면서 참석을 한 모임이라 조금은 기대, 회의, 우려, 걱정 등이 교차하는 시간을 예상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시원스럽고, 무언가 희망적인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구역모임의 특이한 점은 ‘잔칫집,상가집을 연상케 하던’ 식사와 술 마시는 시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아주 ‘가벼운 스낵 류’와 술 맛이 ‘거의’ 안 들어간 음료들.. ‘지지고, 볶고, 부어라 마셔라’ 하던 분위기가 아주 차분하게 가라 앉은 이 모습은 사실.. 믿을 수가 없는 모습..속으로 ‘자신 없다던’ 구역장.. 거침없이, 필요하고 기대하던 agenda를 밀어 부치는 것을 보고 ‘당분간’은 이 모임에 큰 문제가 없겠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결과적으로 구역문제 중 제일 심각한 ‘불어난 덩치’ 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조금 쉽게 manage할 수 있는 반쪽 크기, 둘로 나누자는 것으로 ‘표결’이 났다. 본당의 ‘사무, 행정적 문제’를 간단하게 하기 위하여 현 구역 system은 그대로 두고 ‘반 공식적’으로 1반, 2반으로 나누는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이 제일 쉽게 이행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 되었다.

나누는 방법과 절차가 신경이 쓰였지만, 우선 ‘투표’로 결정이 났기 때문에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인데.. 이것은 분명히 ‘진화적’인 변화라고 볼 수 밖에 없고, 사실 왜 ‘문제가 되기 전’에 이런 결단을 못 내렸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년간 ‘미친 듯이’ 불어난 덩치를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었던 것인가. active하게 참여를 못한 우리는 사실 할 말이 없지만.. 한가지 의문은..어찌해서 이 ‘조용하고, 평화스럽고, 한가했던 동네’에 이렇게 사람들이 들어오는가.. 하는 것이지만.. 알 수가 없다.

우엉 차 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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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 차, 언젠가 이 말을 들어보았다. 우엉으로 만든 차 茶. 그런데 우엉이 확실히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모르고 솔직히 본 적, 먹어 본 적도 없다. 이것이 우리 식탁에 등장한지 얼마나 되었나, 아마도 한 달 정도가 넘었을까? 그러니까 근래 들어서 ‘건강식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연숙이 어디에선가 (분명히 인터넷) 듣고 보고 구한 것이고 이것을 ‘우려서’ 차 비슷하게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효능 같은 것은 잘 모르고 그저 식사 후에 물 대신 맛이 괜찮기에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조금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다. 대부분 인터넷에서 이런 것들을 과대 보도하거나 선전을 하는 것을 누가 모르랴마는 우리가 직접 마셔보고 기대치도 않은 효과를 보고 나서, 모든 것들이 다 과대 보도는 아니었구나 하는 미안한 심정도 들게 되었다.

이것을 마시기 시작하고 나서 우리들의 irregularities  (변비의 고상한 표현) 문제가 거의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며칠 동안 화장실에 가지를 않던 것이 거의 하루에 한번씩 가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우엉 차의 영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몸이 적응을 해서 효과는 분명히 떨어질 것이지만, 다시 끊고 시작하는 등 변화를 주면 다시 몸이 적응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는 사람) 거의 효과가 없었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은 했지만 아마도 우엉을 말리거나, 잘게 써는 방식 등이 우리의 것과 다른 것 같았다. 아마도 그 차이 때문인가, 아니면 체질에 따라서 다른 것인가.. 알 수 없다. 이것도 그러니까 한방재료, 한약에 속할 것이고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행히 우리, 특히 나는 이것으로 몸이 가벼워진 듯 느껴짐은 물론이고, 가벼운 치질의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긴다.

7 Daffodils, 봄은 어디에..

out backyard daffodil

out backyard daffodil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봉숭아 꽃, 나팔꽃, 분꽃.. 어렸을 적에 나의 방 앞 뜰에 신나게 피어나던 꽃들을 잊고 산 지가 반세기가 훨씬 지나가며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그런 ‘신비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것’들이 눈에 다시 보이게 되는 것일까?

기계적, 강제적으로 일년 사시사철 꽃을 보고 과일을 먹는 요상한 세상에 익숙해져서 더욱 봄의 꽃들은 의미가 심장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김없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것들, 아침미사 (car) drive길에 연숙의 ‘꽃에 대한 자세한 논평’을 들어야 했다. 특히 2월 달에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꽃들은 그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나는 옆에서 안 들을 수도 없지만 과히 나쁘지 않은 자연공부를 하게 되기도 한다.

봄을 알리는 1번 타자가 바로 수선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수선화.. 그 이름부터 신비롭다. 수선.. 수선화.. 물에 관련되었나? 그렇다. Narcissus와 나르씨시즘(자기도취)의 유래도 이 꽃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 1960년대 초, Brothers Four의  folk hit, Seven Daffodils 같은 추억의 folk song도 회상이 되고.. 을씨년스러운 2월의 겨울 날씨에도 봄의 모습을 선을 보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그렇게 그렇게.. 이런 삼라만상,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겸허하게 보존하고 가꾸어야 하는가는 Pope Francis의 2번째 encyclical 회칙, Laudato Si (부제: On Care For Our Common Home, 자연환경보호)  를 보면 얼마나 커다란 신학적인 명제가 곁들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연, 환경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이런 생각의 고리를 일깨워준 ‘가냘프지만, 강건하게 보이는’ 수선화.. 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년에도 나도 너도 같은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되기를..

 

Vincent Van Gogh's rendition of daffodils

Vincent Van Gogh’s rendition of daffod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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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thers Four – Seven Daffodils

 

 

꽃밭 속에 꽃들이..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Where have all my flowers gone?

 

꽃밭 속에 꽃들이 한 송이도 없네.. 양희은, 김민기의 ‘젊은’ 목소리가 회상되는 노래 구절이다. 없는 꽃을 기다리는 이 곡은 분명히 정치적 angle을 내재한 것이겠지만 현재 나의 꽃밭에는 멋진 꽃들이 만발함을 있음을 느낀다. 내가 꽃밭 속에 앉아 있다는 표현은 비유적으로 여자, 여성들, 그러니까 ‘자매님’들 속에 있다는 뜻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르며, 지나간 세월을 돌아다보니 과연 나의 집안이 꽃밭이었다. 나 자신의 family가 생기기 전부터도 나는 100% 꽃밭 속에서 자란 셈이다. 할아버지는 물론 삼촌이나 아버지가 안 계신, 외롭기만 한 외아들(父先亡 單代獨子), 남자 친척도 거의 없이 6.25 동란 와중에 자라난 세대.. 거리에 나가 앞뒤를 보아도 확실히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던 시절, 젊은 남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만고  萬古의 역적, 김일성 개xx 와 싸우다 죽고 불구자가 되고..

아버지 삼촌 오빠 등 남자가 없던 가정이 ‘거의’ 정상이던 그 시절에 자란 나의 주위는 모두 엄마, 아줌마, 누나, 게다가 가난에 시달려 시골에서 올라온 ‘무단 상경’ 식모 누나들.. 그러다 급기야는 훗날 내가 ‘만든’ 가족들 조차도 모두.. 여자들.. 와~~ 이러니 내가 꽃밭에 앉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이성 異性’으로 느끼는 어떠한 종류의 감정들도 많이 둔화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까운 곳, 나의 가정의 이런 꽃밭과는 대조적으로 사회적으로 나의 직장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남성적’인 engineers들의 환경들이었다. 지금은 많이 여성들에게 개방이 되어가고 1 있지만 당시에는 거의 여성을 찾을 수 없었던 그런 곳 중에 하나가 기술직이었다. 이런 대조적인 환경들을 무의식적으로 왔다갔다하며 살았지만 결국은 말년에 ‘별 수 없이’ 다시 ‘가족의 꽃밭’ 속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현재에 이른다.

하지만, 거의 기적적으로, 비록 천천히 진행이 되긴 했지만, 나의 coming home (to church & faith), 신앙적인 귀향은 뜻밖으로 ‘다른 종류’의 꽃밭을 선사해 주었다. 건전한 신앙적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멋진’ 자매님들의 꽃밭이었고2 그것은 너무나 신선하게 내 인생 마지막으로 異性적 여성을 재발견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현재 나의 꽃밭에 있는 꽃들은:

  1. 거의 다수가 나보다는 인생을 덜 살았지만 충분한 경험을 가진 나이이고..
  2. 대부분 그들의 신앙심의 깊이나 경험, 경륜은 훨씬 선배들이고..
  3. 절대 소수 minority인 나를 거의 차별하지 않은 듯 하고..
  4. 나를 opposite-gender 의 angle로 보는 듯 하지도 않는 듯..

 

결론적으로 그들, 꽃들은: 비슷한 세계관, 내세관, 가치관을 가진 ‘진정한 친구’로 나를 대한다는 사실을 5년 정도의 intensive한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게 되었다.

내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우선 참 인생이란 것.. 예측하게 힘든 숨은 즐거움이, 찾으려고 노력만 하며 어디엔 가에 숨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 꽃들과의 스스럼없는 친교와 대화가 이렇게 쉽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놀라게 한다. ‘성숙한 나이’ 탓도 있겠지만 사실은 ‘비슷한 생각, 습관, 나아가 가치관’을 가졌고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믿고 싶다.

 

 
Best Rendition: Kingston Trio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1. 어떤 것들은 조금 웃기는 현상이지만..
  2. 이 post의 직접적인 동기는, 어제와 오늘 계속 함께했던 ‘꽃’들과 가졌던 impromptu dining 에 있었다.

무언가 안정이 안 된듯한..

¶ 오늘은 무언가 안정감을 못 느끼는 날로 끝나는 모양이다. 가끔 이런 날이 있긴 하지.. 하루의 반 정도는 무언가 의욕적으로 할 것들을 list로 만들며 모두 ‘끝낼 것’ 같은 희망에 쌓였다가.. 갑자기 일들이 틀어지고 예상을 빗나가는 그 사실에 화가 나며 의욕이 떨어지고 끝내 ‘아무 것도 못한 하루가 되었다’ 라는 실망감이 젖는 그런 것이다.

이런 pattern들은 대부분 computer를 가지고 ‘놀다가’ 생기는 것이 태반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갑자기 많아진 pc들을 만지며 앞으로 나에게 필요한 home system을 구상하는데.. 결국은 $$$을 최소한으로 절약하는 쪽으로 나의 모든 노력이 집중되고.. 그것도 사실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되었다. 사실은 이런 것들이 나의 자랑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나는 그런 자부감을 항상 무시하는 것 같다.

오늘은 며칠 전부터 손에 불이 붙기 시작한 soldering으로 pc power supply의 SATA connector 를 assemble해서 얼마 전에 ‘죽어버린’ home file server FS  대신 임시로 그 역할을 하게 된 나의 dadpc를 다시 찾기 위해서 kitchen-pc를 개비해서 FS로 쓰려고 하던 계획이 급속도로 진행되었지만 여기저기서 예기치 않던 문제들이 현재 나를 괴롭히고 있다. 예상이 몇 시간이면 끝날 듯하던 것이 하루 종일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결국, 오늘 해야 할 묵주기도를 놓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나를 조금은 쳐지게 한다. 나도 참 많이 변했다. 묵주기도 20단 이상을 못한 것을 가지고 그렇게 신경을 쓰는 나 자신을 보며.. 참 나.. 많이 변했다는 놀라움이다. 좋은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다. 나를 현재 살려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묵주기도, 성모님이기 때문이다.

 

¶  최근에 들어서 우리의 레지오 활동은 예전보다 조금은 더 발전을 했다고 할까.. 우리 생활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이 활동이 있고 거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이곳으로부터 나올 정도가 되었다. 솔직히 우리는 활동을 할 수 있는 한 이곳에서 못 벗어날 것 같다. 아니 못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이런 우리의 생활에서 느끼는 보람과 평화는 정말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실감을 못 할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변화를 보고 내가 계속 매일매일 놀라는 것.. 누가 상상이나 할까?

이런 생각도 요새 나의 머리에서 맴도는 것이다. 현재 내가 레지오를 비롯한 ‘신앙생활’에서 대부분 대하는 사람들은 99% 이상이 자매님들이라는 사실.. 지난 성탄 고해성사에서 결국은 신부님께도 말했지만.. 혹시 내가 자매님들과 이렇게 어울리는 것이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렇지 않는가.. 나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이제는 남자들 보다 여성들이 더 편해지고.. 대화도 잘 되고.. 심지어 즐겁기까지 한 것.. 바람직한 것인가? 혹시 이상한 것은 아닐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결론은 사실.. 내가 사람들을 대부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고 이것도 그런 것 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확실히 내가 ‘사람 자체’를 좋아하게 된 것이고 만나는 대부분이 자매님들이니.. 그들도 ‘좋아하게’ 된 ‘인간’들이기에.. 참..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까지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성모님.. 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Lunch at Don Quixote

돈키호테 점심식사Atlanta Metro, 도라빌 Buford Highway Korea town,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Don Quixote 돈키호테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은 원래 잘 알려진 일본식 분식점이었고 전통적인 돈카츠를 위시한 일본식 경양식 전문이었지만 지금은 owner가 바뀌어서 주문형 도시락을 전문으로 하는 ‘가벼운’ 한식점으로 바뀌었다.

위치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아서1 우리는 전혀 근처에도 가 본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바로 그곳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된 것이고, 그것도 이(요한) 주임신부님과 함께였다.

이날 늦은 아침에 우리(부부)는 L 바울라 자매님의 요청으로 이 신부님을 모시고 아틀란타 공항 서쪽에 위치한 어떤 깨끗한 suburban house로 한 시간여를 drive해서 S 안나 자매님 (할머님) 병자성사를 주러 갔었고 성당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이곳에 들려 같이 점심식사를 하게 된 사연이다.

‘비상적인’ 성사 (sacramental emergency)를 철저히 챙기시는 우리 주임신부님, 사실 확인여부를 떠나서 요청이 들어오면 거의 무조건 나서시는데.. 그 중 99%는 정말로 비상일 텐데.. 이번의 case는 나머지 1%에 속한 것으로 ‘다급한 비상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물어 물어’ 찾아간 곳.. 우리가 미리 들은 바에 의해서 예상한 것은:  “거의 죽음을 앞에 놓고, 아무도 정성껏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외로운 삶을 마감하는..” 등등의 scenario를 무언중에 생각하고 갔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본 것은 그런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것: 반짝이고 널찍한 저택에 ‘어떤 할머니들’보다 더 수려하고 건강하게 보이시는 분이 우리를 맞아준 것이다. 중간에 서서 ‘병자성사’를 주선하신 자매님.. 겉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당황하셨으리라.. 곧 숨이 넘을 듯한 절박감과는 서울과 부산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바울라 자매님 왈.. 이 자매님과 전화만 하면 ‘너무 외로워서 오래 못 살 것 같다.. 신부님 좀 모시고 와라..’ 고 하신다니..  신부님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예상 밖인 상황에 조금은 ‘실망 아닌 실망’일까.. 말이 별로 없으시다. 하지만 기왕 간 김에 전대사를 위시한 병자성사를 확실하게 주시고 오게 되었으니.. 그 S 안나 자매님 안심하시고 하루하루 보내시게 되었다. 사실 우리도 중간에 서서, 진실 확인 여부를 떠나서 조금은 바쁘신 신부님 시간을 빼앗은 결과에 잘잘못을 떠나서 점심식사가 생각보다 덜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럴 때..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인가.. 하나도 없다.. 누가 ‘신부님이 필요하다’고 하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모시고 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니까.

  1. 바로 근처에 adult entertainment shop이 도사리고 있는..

Love You, Tobey..

My favorite moment in cold, damp Winter February

My favorite moment in cold, damp Winter February

 

지난 12월 초에 12살이 된 우리 집 강아지, 내 ‘아들’ Tobey녀석.. 이제는 나보다 더 늙은 나이가 되었지만 비교적 건강하고 보기에는 아직도 어렸을 때의 모습.. 강아지, 바둑이 정도로 보인다. 다시 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본다.

하루 종일 사사건건 이곳 저곳,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나의 그림자다. 자는 시간을 빼고는 그 녀석의 눈은 나의 눈에 고정이 되어있다. 처음에는 아주 귀찮았고, 성가셨지만 고칠 수 없는 버릇임을 알고 그대로 지낸 지가 몇 년이 되어가나? 생각한다. 만약 이 녀석이 없어진다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12살이라는 나이가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장례식은 이제 익숙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나의 분신 같은 ‘말 못하는 동물’과의 영원한 이별의 준비가 덜 된 것을 절감하며, 괴롭기까지 하다. 요새 주위에서 오래 정든 pet animal (주로 개와 고양이들) 들을 떠나 보내며 겪는 stress와 ‘의외적인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듣고 나는 그들의 심정을 나의 것처럼 실감 한다. 아마도 pet과 인연이 없는 조금은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정말 이런 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pet들의 인간들에 대한 정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보고 느끼면 조금은 이해할 것인가?

평균 수명의 경고를 생각하며 오늘도 이 ‘귀찮은 녀석’과 우리는 어제까지 눈을 맞출 수 있을까.. 나에게 soul이 있다면 이 녀석의 soul은 어떤가.. 그 soul도 육체를 초월하는 transcendent state가 있을까.. 이 녀석과의 작별은 absolute한 것일까, 아니면.. 춥기만 한 2월의 한 때, 따뜻한 체온을 포근하게 느낄 수 있는 오후…

Very Early Tax Return

thank you freetaxusa, nice job!

thank you freetaxusa, nice job!

 

2월 17일에 Federal Income Tax Return을 끝내 버렸다. 아마도 기억에 이렇게 일찍 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대개 3월 중순이 지나고, 심지어는 4월 14일 저녁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에 집 근처 post office (before Internet era)에서 줄을 서서 tax party의 분위기를 구경한 적도 있었으니.. 참 그 동안 나도 부지런해진 것인가? 하지만 이렇게 간단히 쉽게 끝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financial situation이 그 정도로 간단해진 것을 뜻하기에 내가 더 부지런해진 것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 동안 비록 우리는 ‘진짜’ business는 안 했어도 연숙의 1099 type tax return 때문에 이 맘 때면 골치를 썩히곤 하기도 했다. 그 때에는 내가 비록 tax pro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tax document를 꼼꼼히 읽고 해서 나름대로 ‘감’을 잡고 있었지만  요새는 web-based tax return을 하게 되면서 거의 ‘자동화’가 되어 버려서 ‘글자만 잘 읽으면’ 모든 것이 큰 문제없이 끝난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freetaxUSA.com으로 return file을 하는데 다른 곳과 비교는 안 해보았지만 내가 쓰는 데는 거의 문제가 없었다. 우체국 갈 필요도 없고, return check 같은 것도 mailbox에서 도난 당할 염려도 없다. 모든 것이 online인 것이다.  

ObamaCare가 들어오면서 조금 더 복잡하게 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더 시간이 들지는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이유는 딱 한가지.. 우리의 (taxable) Income situation이 최소한으로 간단해졌다는 것.. 좋은 것인지.. 불쌍한 것인지.. 솔직히 우리들도 잘 모른다. 내년은 어떨까.. 아마도 조금은 더 복잡한 situation이 되지 않을까.. major capital spending이 필요하게 될지 모르는.. 그것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듯하니..

Einstein Revolution, HarvardX

HarvardX, Einstein Revolution

HarvardX, Einstein Revolution

Einstein 시대적 배경은 뽀앵카레 (프랑스 수학자) 의 지도로 부터 시작된다.

Einstein 시대적 배경은 뽀앵카레 (프랑스 수학자) 의 map으로 부터 시작된다

 

2월 16일은 기다리던 HarvardX  online course, EMC2x @edX,  MOOC1  The Einstein Revolution이 시작되는 날이다. 미리 preview를 보긴 했지만 그래도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 같은 심정으로 기대한 것이다. 이 course 는 Einstein의 상대성이론에 관한 것이지만 절대로 이 이론의 science 자체를 다룬 것이 아니고 이 ‘신비에 가까운 혁명적’인 idea의 역사적 의미와 인류사에 미치는 영향을 철학적,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폭 넓게 다루는 course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 배경으로 본 Einstein, 철학적인 시대적 접근은 흔히 접하기 힘든 분야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심각한 과학적 이론’을 알려면 수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했었다. 수학을 떠나서 설명을 하면 잘못하면 완전히 ‘신화’같은 결과를 얻기도 했었던 이론이기에, 나도 어렸을 때 상대성 이론에 대한 많은 공상과학적 만화 같은 이야기로 잠을 설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순진하던 시절 이후 인생, 삶의 십자가를 지면서 이런 언뜻 보기에 irrelevant 한 것은 관심에서 사라지고 조금 삶의 십자가가 가벼워질 무렵에 이것은 나의 관심을 다시 받게 되면서 이렇게 ‘쉽게 공부할 수 있는’ format으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몇 년 동안 꽤 많은 MOOC course를 ‘청강’했지만 결과는 항상 불만.. 언제나 course schedule을 따르지 못하는.. 내 탓이지만.. 하지만 이번 것은 어떨까? 지금 시작된 사순절의 깊은 의미와 배경은 Quantum Mechanic 과 더불어 이 상대성 이론의 진정한 의미와 혹시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둘 다 infinite (무한)에 도전하는 인간의 도전과 발상이므로 관계가 있음은 자명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나의 요새 나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1. Massive Online Open Courses

우리는 싼 wine을 마신다

우리는 ‘제일 싼’ wine을 마신다. 그것도 불평 한마디 안 하고 계속 그곳 supermarket에서 사서 마신다. 제일 싼 것으로.. 우리는 그런 것에서 궁합은 기가 막히게 맞는 모양. 고급..같은 것 거의 생각조차 안하고 사는 우리들.. 어떨까나? 가상하다고 할까 아니면 불쌍하다고 할까? 별로 생각조차 안 해서.. 모른다. 가상한지 불쌍한지 조차도. 하지만 지금 이 쓰기도 하고 가볍기도 한  제일 싼 것을 마시며 문득 내가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도 해 본다. 지금은 그 흔한 눈물까지 눈가에 어리는 것을 느끼고 감상적인 꼴불견까지..

어머니.. 참 나를 지지리도 어려운 것 모르고 키우셨습니다. 그런 탓입니다. 어려운 것을 실감조차 못하는 지지리도 못난 자식으로 만드셨습니다. 엄마.. 정말..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왜 그렇게 키우셨는지 이유를 내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고마워요.. 엄마!!!! 엄마..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엄마 어디 있어요? 제가 엄마를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어요? 이것만은 압니다. 제도 ‘죽어야’ 엄마를 볼 수 있다는 진리를.. 기다립니다. 그 때가 언젠가 오겠지요.

나는 과연 얼마나 더 살까? 분명히 나는 이제 죽어도 큰 여한이 없다고 믿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 내가 더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런대로 이제 죽어도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은 예전처럼 그렇게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나를 행복하게 한다. 과연 그럴까? 내가 오늘 없어진다면 그래.. 연숙은 하나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느님을 굳게 믿는 그녀는 문제가 없다. 아이들도 잠시 슬퍼하겠지만 시간문제일 것이다. 자기들 엄마를 의지하고, 나중에는 엄마를 잘 보살필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언제 세상을 뜰지 아무도 모른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성경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살다 가는 것이 제일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일까? 나는 그것을 생각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유산’을 남기고 가는 것이..

매일 매일을 살아야 하는 최선의 방법… 경제적인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건강하게 살아야 남은 식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운동을 하고 잘 먹고.. 건강한 모습으로.. 남을 위하며 사는 것이 제일 건강한 삶이다. 특히 나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 내가 따르고 실천하는 것이 예수님의 계명이다.

장례식과 선발식

¶ 장례미사 2월 12일, 금요일에 정말 난데없는 날 벼락 같은 장례미사를 참례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날 벼락일 듯 하다. 레지오에서 낯 익은 얼굴, A 자매님의 조카,  40세가 갓 넘은 ‘건강하게 보이는’ 젊은 형제가 급사를 한 것이다. 밤에 자다가 심장마비.. 와.. 이것이 날벼락이 아닌가? 놀란 것은 그 나이에.. 어떻게.. 알고 보니 평소에 심장에 지병이 있긴 한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나이에 유언도 없이 간다는 사실은.. 무섭지 않은가? 사회적으로 잘 나가던 청년이 혼자 객지에 사는 것, 멋지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류의 dark side도 있을 것이다.

자랑스럽던 아들을 그렇게 보낸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이 부모님은 2년 전에 우리가 교리반 교사로 있을 때, 통신반 교리로 세례를 받은 분들이었다. 그의 아드님, LA 지역에 있는 큰 은행 지점의 부사장, 40세에.. 그러면 크게 성공한 아들이었다고 보아야 할 텐데.. 얼마나 자랑스러웠을 텐데.. 모든 조문객들 그런 생각 속에 잠겨있었을 것이고 우리도 마찬가지.. 만약 우리 두 딸이 ‘잘 나가는 직위, 직업’으로 $$을 억수로 벌면서 객지에서 ‘건강을 챙기지 못하고’ 살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에 느껴지는 것이다. 무엇이 과연 잘 사는 인생일까? 40세면 별로 인생의 의미를 느낄 나이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먼저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것을 일깨워 주어야 할 것인데.. 그러니까, true-north principle을 알면서도 그것을 따라가는, 그것이 쉽지 않구나.

 

¶ 선발식 Cobb Galleria Centre, 2016년 아틀란타 대교구 주관 예비자 선발식이란 것이 열렸다. 2년 전에는 다른 곳에서 한 이 행사에 나는 ‘교리반 교사 도우미‘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작년부터 집에서 훨씬 가까운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의 예비자 수가 너무나 단출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꾸준히 신앙을 지킨다면 크게 상관이 없을 듯하다. 미사 중에 파견식을 하고 연숙은 그들과 먼저 성당을 떠나고 나는 꾸리아 월례회의에 단장 없이 참석을 하고 집에 먼저 왔다. 그리고 예비자 선발식이 끝날 무렵에 Cobb Galleria Centre로 가서 연숙을 데리고 왔다. 웃기는 것은.. 그곳을 찾느라 촌놈 행세를 했다는 사실.. 미리 지도를 공부한 것이 우습게 되었다. 한 번도 그곳엘 가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한 나의 실수.. 또 잊었다.. GPS가 있건 없건 이놈의 동네는 절대로 처음 찾아가는 곳은 장담하지 말라는.. 경험에 의한 교훈을..

 

Ash ash.. Wednesday, 2016

Ashes-2016

 

2월 10일, Ash Wednesday 2016 올해 재의 수요일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예년처럼 Holy Family CC 아침 9시 미사엘 가서 이마 위에 재의 십자가를 받고 왔다. 올해는 느낌이 사람이 예년에 비해서 더 많아진 듯 했다. 느낌인가.. 사실인가.. 무언가 가톨릭 교회의 근래 움직임이 활발해 진 것은 아닐까? 냉담자를 교회로 돌아오게 하려는 대교구의 운동, 물론 바티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지만.. 전 같지 않게 나는 이런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내가 변했다는 증거 중에 하나일 것이다.

올해의 40일은 어떻게 보내나.. 매년 생각하는 것들.. coffee를 줄이자.. 잠을 줄이자.. 같은 것은 이제 ‘촌스럽게’만 보인다. 더 깊은 것을 찾고 싶다. 눈에 안 보이는 것, 나의 깊은 속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고, 더 높은 것으로 바꾸고 싶고.. 어떻게? 2년 전의 사순절, 1년 전의 사순절과 비교하기도 한다. 2년 전.. 다급하지만 무언가 이루어 질 것, 성모님의 손이 나를 꼭 잡았다는 느낌 같은 것.. 결국은 그 해 9월에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들은 사순절에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작년도 마찬가지.. 비록 첫 산은 넘었지만 두 번째의 미지의 산을 기다리던 사순절이었다. 다급한 것은 큰 차이가 없었다. 올해는 어떤가? 성모님의 손에 끌려 (낯 가려운 표현이지만..) 두 번째의 산을 다치지 않고 넘었다. ‘그것’과 ‘저것’ basics들이 정말 그림같이 해결이 된.. 그런 기적의 성탄을 맞게 해 주셨다. 이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홍해바다를 건넌 심정을 잊으면 안 된다. 올해의 사순절은 이런 배경으로 묵상을 해야 한다. 우리의 앞에 있는 산은 무엇이며, 그것을 맞는 의미와 사명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며 ‘그날까지’ 하느님 앞으로 갈 것인가?

두 번째 날리는 눈발

Backyard 시야를 가리는 태고의 눈발..눈발..

Backyard 시야를 가리는 태고의 눈발..눈발..

 

드디어 올 겨울에 와야 할 것이 드디어 두 번째로 아틀란타 지역에 찾아왔다. 지난 몇 년간 이것 때문에 고생한 것은 작은 개인역사에 남게 되었고 은근히 이것을 걱정하게도 되었지만.. 사람 심리는 묘해서.. 이것이 올 때쯤에 실제로 안 오니까.. 조금은 기다리게도 되었다. wintry mix.. ice storm같은 것들은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하게 되었어도 제 때에 못 보니까 조금은 섭섭한 것이다. 이것 사실 전형적인 ‘어린이 심리’가 아닐까? 이런 것으로 ‘비상사태’가 와서 내일 아침에 학교에 안 가게 되는 꿈.. 같은 기대감. 학교에 안 가도 되고, 직장에 안 가도 되는… 인생의 황혼기에 이런 것들은 간단히 말해서 깊이 쌓여가는 경험에 의한 향수 같은 것이다.

오늘 화요일, 도라빌 소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날.. ‘죽었다 깨어나도 빠질 수 없는‘ 모임이라 이날의 겨울 날씨는 항상 신경(차의 트렁크에는 비상도구를 가지고 다닌다)이 쓰이는데.. 왜 하필 이날 일기예보가 그렇게 애매한 것일까? 분명히.. wintry mix가 예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stay home하라는 말이 전혀 없으니까. 학교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Closing이란 말이 전혀 없다. 무언가 wintry mix가 내리는 것이 시간적으로 퇴근 후로 나와서 그럴 것이다.

집을 떠날 때부터 눈발이 나리기 시작했고, 우리와 비슷한 거리를 운전을 해야 하는 단원 실비아 자매, 무서워서 못 나오겠다고 연락이 왔지만 나중에 회합이 시작되자마자 ‘용감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기쁘게 했다. 올해, 오늘의 일기예보는 정확하였고, 우리가 다시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2년 전의 악몽이 서려있는 I-285 West를 달려서 집에 무사히 왔고, 거의 즉시로 다시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와~~ 이번의 예보 정확하구나.. 시간 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때, 문제가 안 되는 양 정도 내린 셈이다. 집에 goal-in을 하고 푸근한 마음으로 창 밖을 보니.. 아름답게만 보이는 white stuff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한 때의 폭설에 대한 악몽을 제치고 잠깐이나마 시야를 완전히 가린 하아~얀 눈발은 1950년대 어린 시절, 서울 원서동에서 보던 그런 포근하기만 한 눈발을 다시 보는듯한 착각에 빠진 시간이 되었다.

Poor man’s lab bench

나는 현재의 집 saybrook court 에서 오랫동안, 25년 이상, 살면서 비록 나만의 공간, home office, study는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tinkering 용 lab-bench 같은 것은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lab 역할을 하는 것은 그저 아무 곳에나 있는 work space, extra desk, table이 전부였다. 사실 lab역할을 할 만한 bench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가 사는 집은 so called, traditional house이기에 더욱 그렇다. 모든 것이 ‘전원적, 아늑하고 조그마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와 방들.. 그 이후의 유행은 the bigger, the better 가 판을 치면서 지어진 집들은 전체 크기에 상관이 없이 모든 공간이 서로 연결이 되고 트여진 그런 구조가 standard가 되었다. 한마디로 ‘미친 듯이’ monster처럼 커진 공간으로 사람의 존재가 보잘것없게 보일 정도로.. excess of excess가 판을 치던 bubble craze 시대가 도래하고, 내가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으면 아마도 그러한 널찍한 공간에 monster workbench를 놓아도 무방했을 듯하다.

 

poor man's personal electronics work bench

poor man’s personal electronics work bench

 

운명적으로 나는 현재의 ‘작은’ 공간에 만족하는 인간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full-retirement 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책이 주로 있는 나만의 아늑한 공간에 어떻게 ‘고철이 즐비한’  lab-style 공간을 만들 것인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아주 우연한 순간에 자그마한 lab-style work ‘bench’ idea를 얻었고 ‘순식간’에 만들게 되었다. 우리 부부의 bedroom에 쓰던 옛날 ‘고리짝’ 서랍장 drawer chest와, 이제는 모두 집을 떠나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쓰던 desk hutch를 다시 recycle한 것이다. 크기가 정확히 도 잘 맞아 떨어지고 현재 나의 home office의 구석에 놓으니 크게 방이 작아 보이지도 않는다.

Basic setup, 시작은 간단했지만 진짜 문제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electronic gadget stuffs junks 를 찾아서 버릴 것은 버리고 ‘남은 여생’에서 쓸 만한 것들을 정리해서 이곳에서 ‘갖고 놀 수 있게’ 만들어 놓는 작업.. 장난이 아니다. 한 달이 훨씬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junk들이 계속 나오니.. 언제나 끝이 날지도 모르고, 언제 ‘본격적’인 joy of tinkering & making 을 할 것인지 미지수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무 크게 ‘즐거움’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남아있는 세월과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A Peaceful Saturday

오늘 토요일은 그 옛날 어릴 적 느끼던 토요일의 기분과 느낌과 견줄 수 있는 ‘기분 좋고 평화로운’ 그런 날이 되었다. 이번 주말의 schedule로 보면 무언가 stressful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기에 별로 기대를 안 해서 그런가.. 결과적으로 기대치보다 훨씬 낫게 토요일을 마감하게 된 것인데 거기다 잔잔한 평안과 평화로움까지 선물로 받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양양이의 승리 勝利 redux

백마고지를 점령한 '괴뢰군' Izzie

백마고지를 점령한 ‘괴뢰군’ Izzie

 

우리 집에서 고양이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양양이’로 불렸는데 지난 10년간 우리 집의 양양이는 Izzie라고 불리는 ‘집 고양이’다. 우리 집의 터줏대감 pet dog 은 물론 12살이 지난 수컷 강아지(Dachshund, 덩치가 작아서) Tobey이지만 5년 전부터는 무슨 천생의 연분인지 이 두 마리가 같이 우리와 살게 되었고 현재까지 ‘무사히’ 동거하고 있다.

처음에는 양양이의 천성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완전히 ‘고양이 항상 victim’ 라는 선입견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면 (TobeyIzzie를 공격하는 듯한 장면이 목격되면), 무조건 Tobey만 벌을 받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정은 거꾸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provoking하는 쪽이 ‘양양이’ 였던 것이고, 아마도 그것이 고양이의 천성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한다.

육체적인 덩치로 보아도 고양이는 개에게 못 당할 듯 보이지만 그것도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 서있는 위치에 따라서 개가 고양이에게 완전히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인 경우도 있지만. 오늘도 Tobey의 보금자리인 나의 office에 쳐들어온 양양이 Izzie, 당당하게 열어 놓았던 창문 틀에 올라가 주인을 농락하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이런 것이 pet animal 들과 함께 사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아닐까?

1월을 보내며..

¶  1월을 보내며  달력을 넘길 때가 또 왔다. 1월이 다 가고 2월 달이 내일부터 시작된다. 무언가 많고 복잡한 느낌의 1월이 가는 것, 조금은 시원한 기분도 든다. 1월의 날씨는 그런대로 큰 사고 없이 얌전한 편이었다. 이것은 물론 2년 전 이맘때의 날씨악몽을 비교한 것이다. 지난 번 약간의 눈이 왔을 때.. 차 속에 survival kit (sleeping bag, portable bathroom etc)를 꼭 챙기라고 아이들이 성화를 했는데 그 정도는 못했어도 비상용 ‘통’을 절대로 가지고 다닌다. 사실 이곳의 경험에 의하면 진짜 ‘악질적 날씨’는 2월부터 3월 사이에 있기에 drive를 비교적 많이 하는 우리는 절대로 긴장을 풀지 않기로 각오를 한다. 그래도 2월부터 가끔 ‘반짝’하는 때에 느끼는 멀리서 오는 봄의 신호들을 상상하면..

 

¶  Instant Coffee’s back!  그 동안, 꽤 오랫동안 고장이 나서 못쓰던 under-sink instant water dispenser가 $300 이상의 투자로 다시 ‘펄펄 끓는 물’을 언제라도 쓸 수가 있게 되었다. 이’문명의 이기’로 제일 먼저 즐기는 것이 바로 instant coffee다. 특히 누가 ‘발명’을 했는지는 몰라도 coffee stick이란 것 (분명히 일본아이들의 idea였을지도..) 그야말로 instant중의 instant가 아닐까? 설탕, 크림까지 섞였으니 stick의 꼭지만 뜯어서 뜨거운 물만 넣으면 그야말로 즉석 coffee drink인 것이다. 문제는 뜨거운 물을 끓여야 하는 수고인데.. 이번에 이것도 완전히 해결이 되었다. 새벽에 추운 부엌엘 내려와서 물을 끓이며 벌을 서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 되었다.

 

¶  This Old House 이번 생일에 나라니가 생일card속에 무슨 sticker를 붙여서 나에게 선물을 했는데.. 그것은 magazine, This Old House 2년치 subscription sticker였다. 몇 년 전에 Time magazine을 구독을 완전히 끊으면서 집에 오는 magazine이 하나도 없었는데.. 다시 mailbox에 잡지가 오게 되었다. 3월 달 발행 This Old House가 그제 배달이 되어서 정말 오랜만에 ‘집에 관한 잡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잡지는 PBS TV program으로 익숙하다. 다른 잡지들도, 오래 전에 잡지 전성기에는 꽤 많은 것을 구독했는데 Internet 때문인지 거의 다 사라지지 않으면 아주 축소되어서 명맥을 유지하는 듯 하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이 어떨 때는 섭섭하기도 하다. 우리의 시대가 이제는 완전히 가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든다. 이제 우리 집이야말로 Old House가 되어서 아마도 나라니가 정든 우리 집, This Old House에 조금 더 신경을 써서 This New House로 만들라는 부탁인 것으로 느껴졌다. 올해부터는 집중적으로 집 renovation, remodeling에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이것은 큰 투자이기에 계획을 잘 세워야 할 듯…

 

Rage, under-sink

Road rage.. 차를 운전하다가 ‘열 받고, 열 내고, 심지어 욕을 하고’ 흔히 듣던, 가끔 나 자신도 실제로 경험해본 것 들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행동들 참 stupid한 것들이고 듣고 싶지도 않은 ‘부족한 인간이기에 생기는’것들에 관한 것들이다. Road rage는 나이가 들면서 나와 조금 멀어진 듯한데.. road rage가 아닌, 말의 느낌도 해괴한 Under-sink rage란 것을 이번에 체험을 하고.. 휴~ 나는 아직도 멀었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멀었다 멀었어..

요리조리.. 하기 싫어서 피하던 plumbing job이 있었다. 매일매일 맞대면 해야 하는 부엌의 필수품, Under-sink food disposer와  Under-sink instant boiling water dispenser가 그것들이었다. 쉽게 말해서 수명이 다 되어서 고장이 난 것들이지만.. 그것부터가 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하필 이 때에 고장? 그것도 2개씩이나? Hot water dispenser는 사실 꼭 없어도 지장이 없지만.. 때가 추운 겨울이고 보니, 갑자기 instant coffee나 tea를 마실 때 이것처럼 편한 것이 없었는데.. 하필 why now?

Food disposer는 겨울이라서 음식찌꺼기 버릴 일이 많지 않고 잠시 옆에 두었다가 텃밭에 거름으로 주면 제격이라 없는 것이 instant coffee와 달리 그렇게 아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급히 ‘갈아버릴 찌꺼기’가 있으면 또 슬슬 ‘열을 받는다’.  요새 이것들이 나의 ‘uncontrolled‘ rage의 시발점이었고 이 episode는 다음과 같이 진행이 되었다.

  1. 전에 쓰던 것들, disposer나 hot water dispenser들은 모두 10년 이상씩이나 큰 탈 없이 잘 썼는데.. 왜 최근 것들은 모두 5년도 안 되어서 이렇게 고장이 나는가? Made in China를 의심했지만 기실은 모두 Made in U.S.A였다.
  2. 새 것들은 사려니.. $$$을 쓰는 것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둘 다 합쳐서 거의 $400.. 장난이 아니다.
  3. 집에 ‘남자’가 없으면 분명히 돈을 주고 handyman을 불러야 하지만, 대신 별로 고생하지 않고 설치를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내가 아직도 남자니까.. 고생을 할 각오가 필요.. 이것도 열을 받고.
  4. 두 개의 ‘쇳덩어리’ 물건들이 도착하면.. 설치할 준비.. 잘못하면 이제부터 악몽의 시작을 예상할 수 있다. 이것도 ‘물이 새는’ plumbing job인 것이다. 그것 뿐인가.. 그 어둡고 좁고 아픈 under sink에 sink를 보고 누워서 안 보이는 눈을 째리고, 감각이 예전 같지 않은 손가락으로 요상한 자세로 tool을 써야 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아찔한.. ‘으이구~’ 열 받는다.
  5. 몇 년 만에 필요한 plumbing tool, supply를 찾는 것..이 때 제일 ‘뜨거운’ 열을 받는다. 10년 만에 찾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이것 때문에 사실 plumber를 그 비싼 돈을 주고 쓰는 것이다. 이것을 찾는데 머리를 싸매고 며칠 걸렸고 그 동안 숫한 rage 속에서 살았다.
  6. Surprise! 이런 일을 할 때 제일 무서운 것이 바로 이 surprise!인 것이다. 암만 미리 생각하고 조심을 해도 마찬가지다. 그 중에 나를 worst rage로 이끈 것은: 새로 산 ISE(InSinkErator) 가 old WasteKing brand의 dispenser와 맞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사실!

결국은 이 #6 때문에 새로 ISE brand와 맞는 dispenser를 order해야 했고 며칠 뒤에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이렇게 ‘고생’을 하면 무슨 보람 같은 것을 느껴야 할 것이지만 솔직히 금새 모든 것을 잊어 버리게 된다. 정말 오랜만에 instant hot coffee를 타 먹는 것이 유일한 보람이라면 보람일 것이다.

 

2016-01-29 10.03.38-1

replaced ‘black’ boiling water tank

Replaced WasteKing food disposer

Replaced WasteKing food disposer

Instant 'boiling' water dispenser

Instant ‘boiling’ water dispenser

 

삼십육 년의 세월은..

달력에서 오늘이 2016년 1월 25일임을 보면서 다시 생각에 잠긴다. 36 주년 결혼 기념일.. 어제 아이들과 Marlow’s Tavern에서 나의 ‘늦은 생일’ brunch를 먹으며 이 ‘긴 세월 36년‘이 또 언급되었다. ‘무척 오래 같이 살았다’라는 딸들의 이야기.. 별로 생각 없이 36년을 거론하곤 했지만 듣고 보니 과연 ‘우아.. 같이 참 오래 살았다…‘ 라는 탄성이 낮게 나온다. 총각 때의 자유연애 시절이 끝나는 시점인 결혼은 사실 조금은 자유가 없어지는 시점이기도 해서 결혼 전에 신경이 쓰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막상 결혼 후에는 그런 생각이 스스럼없이 사라졌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이여.. 1980년 1월 말 제주도 서귀포에서

기쁜 우리 젊은 날이여.. 1980년 1월 말  honeymoon 제주도 서귀포에서

 

36년이란 숫자의 세월은 공교롭게도 일제시대 36년 이란 말이 연상이 된다. 그 옛날 일제시대 36년 어쩌구.. 했을 때 참 오랫동안 ‘쪽바리 치하’에서 고생했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바로 그런 긴 세월의 36년이었다.

얼마 전에 25주년 결혼 은혼식 Silver Anniversary 축하를 친지들과 조촐히 했던 기억인데.. 그것이 벌써 11년 전이 되었고, 이제는 숫제 50주년 금혼식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다.   결혼 당시 흔히 듣는 주례님의 말씀 중에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하는 말로 오래 오래 같이 살라는 뜻의 주례사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런 미사여구 美辭麗句 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시간과 세월에 밀리듯이 이렇게 36년을 맞게 되니, 가급적 50주년도 기념을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긴다.

지금의 세상이 하도 요상하게 돌아가다 보니.. 예전에는 당연시 되던 ‘백년 해로’하던 미풍양속이 흡사 ‘희귀동물’ 취급으로 축하를 요란하게 받게 되고, 심지어는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 부부가 남달리 돋보일 정도로 한마디로 ‘해괴’한 추세를 느끼며.. 이런 ‘반역사적’인 것들이 과연 어디까지 ‘퇴보’할 것인가 한숨만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부부.. 36년을 맞으며 ‘자연법 인간역사‘에 일조를 했다고 자부하고 싶다. 

36년 전의 세상은.. 그 동안 강산이 3번 이상 변했다고 하면 짐작이 갈까? 잊고 살던 결혼 당시의 세상모습들이 떠오르고, 우리가 변한 모습에 또 한번 놀라고.. 이런 모든 것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크게 놀랄 것 하나도 없다. Soviet를 위시한 살기등등했던 세계 공산당들이 물러간 자리에 목을 자르는 살인강도들이 종교의 이름을 팔며 설쳐대는 그다지 나아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변했다. 자연법에 따라 우리의 자식들이 세상의 빛을 보며 커가고 그에 맞갖게 부모님 세대들이 황혼의 빛으로 사라지셨다. 그 자리로 우리가 서서히 사라지는 중.. 이것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지극히 자연적이고 순리적인 것이다. 아하~~ 이제서야 이런 변화들이 왜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라는 이유가 어설프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이렇게 큰 사고 없이 36년간 가정을 유지하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We are all alone.. Rita Coolidge의 이 oldie는 결혼 전후로 꽤나 듣고 따라 불렀던 추억의 곡이다. 이 곡은 총각시절에는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낄 때, 결혼 후에도 둘이서 외로움을 느낄 때 듣곤 했다.

 

 

We’re All Alone – Rita Cooli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