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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말바위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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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38; place, autobio in progress..</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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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양병환 형을 생각하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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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Fri, 24 Jul 2009 19:10:0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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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반세기만에 써보는 양병환 이란 이름. 그 50년 동안에 비록 머릿속에서 아주 가끔 생각은 했을지 몰라도 이렇게 &#8220;써&#8221;보기는 처음 인 것 같다. 아마도 손을 쓰는 일기장에도 쓴 기억이 없다. 그만큼 오래전의 일이다. 하지만 일단 생각이 날라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8216;즐거운&#8217; 추억이 샘솟는다. 나이는 아마도 (100% 확실치 않으니까) 나보다 최소한 3살이 위였지 않았을까. 나의 누나보다 한 학년이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반세기만에 써보는 양병환 이란 이름</span>. 그 50년 동안에 비록 머릿속에서 아주 가끔 생각은 했을지 몰라도 이렇게 &#8220;써&#8221;보기는 처음 인 것 같다. 아마도 손을 쓰는 일기장에도 쓴 기억이 없다. 그만큼 오래전의 일이다. 하지만 일단 생각이 날라치면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꼬리에 꼬리를 물고 &#8216;즐거운&#8217; 추억이</span> 샘솟는다.</p>
<p>나이는 아마도 (100% 확실치 않으니까) 나보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최소한 3살이 위였지</span> 않았을까. 나의 누나보다 한 학년이 위였으니까. 처음 알게 된 것은 내가 중앙중학교 2학년 때, <strong>가회동 재동국민학</strong>교 뒤에 살 때였다. 그 형은 우리가 살던 집에 그 형의 누님과 같이 방 하나를 빌려 자취를 하였다. 그 누님은 그때 벌써 숙명여대생 이었다. 남매가 단둘이 자취를 한 이유는 물론 집이 서울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전라도에서 서울로 유학</span>을 왔기 때문이다.</p>
<p>양병환 형은 그 당시 한국의 최고명문(그때는 그저 일류라고 불렀다) <strong>경기고등학교</strong>에 다니고 있었다. 그 두 남매는 인물도 훤칠하고 행실도 좋아서 모두가 호감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도 없고 누나 하나 밖에 없어서 &#8216;형&#8217;이나 &#8216;선배&#8217;란 존재는 대부분 든든하게 느껴지는 &#8216;좋은&#8217; 존재였다. 아마도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나를 가르쳤던 가정교사  &#8216;김용기&#8217; 형 (그 형도 경기고등학교 생) 이후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8216;형&#8217;이었던 셈이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그 당시는 지역편견과 감정이 아주 적나라하게</span> 표현되던 그런 시기였고, 특히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서울에서 전라도사람들에 대한 편견</span>이 그중에 제일 심하였다. 군사혁명의 주체가 아마도 경상도출신이 많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어린 나이에도 거의 피부로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나로서는 &#8216;드디어&#8217; 전라도 사람을 바로 옆에서 대하게 된 것이었다. 특히 그때의 말들이 &#8220;<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전라도 사람들은 처음 사귈 때는 좋아도 끝날 때는 아주 나쁘다&#8221; 그런 식</span>이었다. 물론 그 당시 나의 나이는 그런 편견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 나이에 어찌 그런 &#8216;나쁜&#8217; 생각이 수긍이 되겠는가. 하지만 주위의 어른들은 아마도 지금 표현을 빌리면 &#8216;색안경&#8217;을 끼고 바라보지는 않았을까.</p>
<p>처음 양병환 형과의 만남은 내가 친구 안명성(100% 확실치는 않지만)과 집 마당에서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그 형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8216;<strong>훈수</strong>&#8216;를 두기 시작하면서</span>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당시는 우리 같은 애들 에게는 주거 여건상 날씨만 허락하면 방보다는 바깥에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다. 집 마당이나 골목 같은 곳은 그런 &#8216;사귐&#8217;이 이루어지던 최고의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천성적으로 수줍어하는 성격이라서 먼저 다가가서 사람을 사귀는 것은 힘이 들었는데 이때에는 그 형이 먼저 닥아 온 것이었다.  장기 두는데 여러 가지 비결을 가르쳐 주면서 나의 장기 실력도 덕분에 늘어갔다.</p>
<p>방과 후에 그 형이 자취방에 있으면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곧잘 그 형 방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곤</span> 했다. 그때 내가 흥미롭게 느끼곤 하던 것은 그 형의 &#8216;공부습관&#8217; 이었다. 물론 그 형이 경기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주의 깊게 보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책꽂이에 있는 &#8216;참고서&#8217;를 비롯해서 내가 옆에 있는데도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며 열심히 공부하던 그 버릇이 나는 그렇게 부러웠다.  물론 &#8216;무례&#8217;하게 나를 장시간 기다리게 하지는 않았다.  반드시 무언가 한 가지를 끝내곤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그때 나는 그 형에게서 참 무언가 많은 것을 듣고 배웠다. 물론 다 생각은 안 나지만 아직도 뚜렷이 남는 것 중의 하나가 &#8220;<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span>&#8221; 이었다.</p>
<p>물론 그 나이에 그 어려운 이론을 이해 한다는 것은 힘들지만 그런대로 그 형은 그것을 이해한 듯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뫼비우스</strong> 띠를 종이로 접어서</span> 나에게 보여주던 그 진지했던 모습. 이런 것들은 그 당시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형의 진지함과 거의 매료 된 듯 한 인상. 나에게는 참 신선하고도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 상대성원리만 접하게 되면 그때 소년기에 마음 설레며 감동을 받았던 추억을 떠 올리게 되었다.</p>
<p>그 때 그 형이 방과 후에 꼭 공부하던 책이 있었는데 그 당시부터 인기 있던 책 &#8220;<strong>삼위일체 영어</strong>&#8221; 이었다. 꼭 사전처럼 작고 두껍고 단단하게 생겼던 그 책은 그 이후로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수험생들에게는 거의 classic이</span> 되었다. 그 당시에는 삼위일체란 게 단순히 문법, 해석, 작문의 세 가지를 뜻하는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그게 기독교의 교리 (성부, 성자, 성령)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웃기도 했다. 아마도 첫 과가 이렇게 시작 되었지. <em>A Newton cannot be a Shakespeare</em> (Newton과 같은 과학자는 Shakespeare와 같은 작가가 될수 없다) 나중에 내가 중 3이 되었을 때 나는 감히 &#8216;무례&#8217;하게도 그 책을 공부하려고 하였다. 물론 결과는 거의 zero에 가까웠지만 내가 얼마나 그 형의 흉내를 내려고 했나 하는 한 예였다.</p>
<p>또 한 가지 즐거운 추억은 그때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태어나서 처음으로 철야(밤을 꼬박 새우는 것)를 했던 것</span>이다. 물론 그 형과 같이 &#8216;<strong>거행</strong>&#8216;을 한 것이다. 왜 둘이서 그 형 자취방에서 밤을 새우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아마도 그 형의 누님이 집에 없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도. 그 형은 예의 바르게도 나의 어머님에게 미리 허락까지 받았다. 그런 행동도 나에게는 그렇게나 어른스럽게 보였다.</p>
<p>그러니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몸이 &#8216;비정상&#8217;적인 routine으로 들어가게 된 것인데..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신체적인 충격보다는 심리적인 충격이 더 컷다</span>. 그러니 아직도 이 나이가 되도록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지 않는가. 졸림을 참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장기도 두고 책도 읽고 옛날 얘기도 하고 재미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통금시간이 지나면서 (그때는 물론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가 있었다) 그런대로 훤한 새벽을 가로지르면서 신나게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삼청공원을 지나 말바위까지</span> hiking을 하였다. 그 형은 커다란 나무칼(검도와 비슷한)을 가지고 갔는데 아마도 나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 같다. 새벽의 그 시간에 삼청동 산과 말바위를 간다는 것은 참 그렇게 신선하고, 무슨 아주 큰일을 한 듯한 자신감을 나에게 주었다.</p>
<p>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그 형네는 근처의 옆 동네로 이사를 갔다.  아마도 자취방을 비워야 했던 것 같다. 새로 이사 간 곳은 다행히 중앙중학교로 통하는 계동골목이었다. 이발소가 붙어있는 곳이라고 들어서 나는 어딘지 알았다. 이사 가기 전에 그 위치를 그 형에게 가르쳐 주었는데 그만 그게 틀린 이발소였다. 나중에 들으니 그 형이 그 틀린 이발소 있는 집에 가서 자취방을 찾았는데 물론 없었겠지. 나중에 알고 보니 조금 더 중앙중학교 쪽에 있는 다른 이발소였다. </p>
<p>그 형네가 이사를 간 후에는 한번 놀러 갔었다. 내가 조금 더 숫기만 있었다면 더 자주 놀러가면서 더 친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성격이 그렇지 못하였다. 그 후로 소식이 끊어지고 그게 거의 50년이 되어간다. 그 당시 그 형은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서울의대를 지망</span>한다고 들었고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후에 합격을 하였다고</span> 들었다. 아마도 훌륭한 의학인 이 되었는지 모른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경기고교 동창회</span>를 통하면 아마도 소식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오래 산 보람중의 하나가 Internet이 아닌가. 값이 싼 search engine의 덕을 보면 그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백일몽일까..</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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