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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서동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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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38; place, autobio in progress..</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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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서동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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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서동, 계동, 중앙고, 가회동이 만나는 곳</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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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01 Feb 2024 22:56:5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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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조카 은지가 최근에 찍은 듯한 이 camera shot을 보내주었다. 작년 10월 은지의 gift shop이 있던 계동골목을 갔었지만 그 당시 나는 시간이 없어서 이곳, 바로 이곳, 오랜 추억이 어린 &#8216;교차로&#8217;를 가지 못한 대실수를 저질렀다.  1954년부터 1966년 초 까지 이곳을 정기적으로 지나다녔는데, 국민학교 시절 원서동에서 재동국민학교까지, 이후 가회동에서 중앙중고를 다녔던 길, 이곳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머리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4712"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5/07/KakaoTalk_20240201_094113195-1-rotated-e1752964241300.jpg" alt="" width="650" height="747" /><span style="font-size: 14pt;">조카 은지가</span> 최근에 찍은 듯한 이 camera shot을 보내주었다.</p>
<p>작년 10월 은지의 gift shop이 있던 계동골목을 갔었지만 그 당시 나는 시간이 없어서 이곳, 바로 이곳, 오랜 추억이 어린 &#8216;교차로&#8217;를 가지 못한 대실수를 저질렀다.  <br />
1954년부터 1966년 초 까지 이곳을 정기적으로 지나다녔는데, 국민학교 시절 원서동에서 재동국민학교까지, 이후 가회동에서 중앙중고를 다녔던 길, 이곳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머리 속에 남은 예전의 모습은 &#8216;물론&#8217; 개발의 힘으로 모두 깨끗하고 예쁘게 화장은 했지만, 사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추억을 되살리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었으니&#8230;</p>
<p><span style="font-size: 14pt;">확실하지 않지만</span> 아마도 나는 지난 밤 잠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기억이 희미하다는 것은 나의 변명, 위로일 것이고 혹시 꼬박 샌 것은 아니었을까? 잠에서 깨어난 기억이 없으니 분명히 생각을 하며 지샌 것이라면&#8230; 아, 싫다, 왜 이렇게 잠까지 나를 괴롭히는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침 혈압은 극히 정상이 아닌가? 혈압이란 것은 매번 이렇게 예상을 뒤엎는 것인가? <br />
아~ 다시 찾아온 괴로운 생각들이 머리를 채우고 있다. 이 악귀 같은 &#8216;부정적 생각, 슬픈 생각, 우울한 생각들&#8217; 또 나의 새벽시간을 좀먹고 있다. 도망가려고 거의 생각도 없이 electronics parts, breadboard 를 만지며 잊으려 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나를 비하하는 듯한 나의 악마, 이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의 존재를 거의 부정하는 듯한 이 괴물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 도망가려는 마음뿐이니..  정말 어렵고 괴롭고&#8230; 이것이 혹시 성녀 마더 데레사가 겪었다는 기나긴 어두운 밤의 경험이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그 성녀의 고백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싶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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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분꽃의 추억, Dead Watch Batteries,, Stock/Inflation Woes&#82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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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Mon, 27 Jun 2022 00:47:04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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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추억]]></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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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backyard엘 나가니 비록 비는 오지 않았지만 진초록의 한여름 모습이 장관이었다. 특히 거의 매일 피어나는 듯한 선인장 하루살이 꽃들, 그리고 근래에 여름에 만발하는 분꽃의 특히 인상적이다. 비록 가뭄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애처롭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자연의 섭리라는데&#8230; 옛날 옛적, 재동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원서동, 가회동 집 앞마당에 피던 각종 꽃들 중에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446"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6-26-06.58.42-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img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447"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6-26-06.59.28-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span> backyard엘 나가니 비록 비는 오지 않았지만 진초록의 한여름 모습이 장관이었다. 특히 거의 매일 피어나는 듯한 선인장 하루살이 꽃들, 그리고 근래에 여름에 만발하는 분꽃의 특히 인상적이다. 비록 가뭄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애처롭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자연의 섭리라는데&#8230;</p>
<p>옛날 옛적, 재동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원서동, 가회동 집 앞마당에 피던 각종 꽃들 중에 분꽃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나이가 들면서 한번도 볼 수가 없었는데, 몇 년 전 연숙이 그 씨앗을 구해와서 뿌린 것이 지금은 뒷마당에서 여름한철 만발을 하고 있다. 꽃 자체보다 추억이 더 감미로웠지만 오늘 알고 보니 &#8216;한방효과&#8217;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6%84%EA%BD%83">Wikipedia에는 그 쓰임새는 다음과 같이</a> 나온다.</p>
<blockquote>
<p>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한국에서는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고 있다. 꽃에서는 명반을 매염제로 하여 남색에 가까운 색깔의 염료를 뽑을 수 있다. 씨는 가루를 내어 얼굴에 바르는 분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뿌리에는 이수·해열·활혈·소종의 효능이 있어, 한방에서는 자말리근이라고 부르며 소변불리·수종·관절염·대하 등의 치료제로 사용한다.</p>
</blockquote>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448"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6-26-12.46.38-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아침에 손목시계를 차려고</span> 설합에서 꺼내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시간을 보니&#8230; 1시 34분 24초에 멈추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가 고른 것, <em>STÜHRLING ORIGINAL</em> 저렴한 가격에 비해 꽤 고급처럼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왠지 재수가 좋아서 오래오래 문제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벌써 문제가? 구입할 당시 사진으로 본 것보다 실물의 크기가 너무 큰 것에 조금 놀라긴 했는데 금세 적응이 되었고 점점 정도 들기 시작했는데, 아하~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어도 battery문제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8230; 근래에는 electric car, mobile devices 등으로  더욱더 battery가 필수적 제품 요소가 되는 듯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찍 멈춘 것은 조금 실망이다. 역시 DIY의 정신으로 내가 battery를 교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8230; 전에 쓰던 <em>VICTORINOX</em>의 battery replacement에서 실패를 한 경험이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서, 이번에는 조금 research를 한 다음 시도하는 것이 좋을 듯하고, 이것이 성공하면 <em>VICTORINOX</em>도 재도전해보는 것은 어떨지&#8230; 그것이 성공하면 쾌재를 부를 것인데&#8230;</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지난 주일미사에</span> 가지 못한 것 때문인지 오늘의 주일미사가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졌으니&#8230; 장기간 냉담 신자들이 다시 돌아올 때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옛날에 나도 그랬으니까.. 정든 우리자리도 정겹게 보이고 특히 우리 주변의 고정멤버들의 동향도 관심이 간다.</p>
<p>특히 우리 바로 뒷자리의 고정멤버 자매님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름도 세례명도 모르지만 이제는 눈인사를 넘어서 정식으로 인사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 자매님은 어떤 교우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는데 물론 시간이 더 지나가면 자연히 의문은 풀어질 것이다.</p>
<p>아가다 자매님 그룹과 두 명의 베로니카 자매님들, 같이 어울리며 아침 coffee를 마셨지만, 역시 나는 조금 외롭기도&#8230; 남자라서 그런 것보다 얘기 상대가 없는 듯 느껴지는 것.  이것도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에 현재의 상황으로 만족하기로 했다.</p>
<p><span style="font-size: 14pt;">예외적으로 오늘은</span> 돌아오는 길에 <em>Sam&#8217;s Club</em>엘 들렸다. 명목상 &#8216;우유&#8217;를 사려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다른 &#8216;필수품&#8217;들도 몇 개를 사긴 했다. 이제는 &#8216;술과 단 것들&#8217;을 안 사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나는 살 것이 없었지만 AAA battery는 앞으로 필요한 것들이라 $20 넘는 것, shelf life가 10년을 보증한다는 문구를 보고 사버렸다. 이것은 두고두고 쓰게 될 것이라서 과용한 것은 아니다. 미친듯한 소비품 inflation이 이제는 신경이 쓰이는 것이라서 cash를 쓰는 것도 따라 신경이 쓰인다.</p>
<p>오늘 coffee 모임에서 안나자매가 &#8216;주식시장이 엉망,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졌다&#8217;고 걱정하는 얼굴에서 비로소 현재의 경제동향의 흐름을 느끼게 되었다. 전문적으로 장기투자에만 전념하는 그들 &#8216;주식부부&#8217; 가 그런 걱정한다는 것은  정말 문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도 긴축 긴축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무엇을 사고 무엇은 절약해야 하는지 조금 심각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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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nother First of May</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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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Mon, 02 May 2022 01:33:59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60/70]]></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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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이제는 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친구들아!  용현아, 창희야, 잘들 살아 있는가? 이제 다시 연락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들 혹시 못 알아 보는 것은 아닐까? 거울을 보기가 무서운 것,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닐까? 아~ 내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친구들아,  작년 5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eNbOOvQ-fqk" width="650" height="420"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span data-mce-type="bookmar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0px; overflow: hidden; line-height: 0;" class="mce_SELRES_start">﻿</spa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p>
<p><span style="font-size: 14pt;">이제는 꿈에서조차</span> 보이지 않는 친구들아!  용현아, 창희야, 잘들 살아 있는가? 이제 다시 연락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들 혹시 못 알아 보는 것은 아닐까? 거울을 보기가 무서운 것,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닐까? 아~ 내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br />
친구들아,  작년 5월 1일 이후 또 일년이 흘렀구먼~ 일년? 허~ 하지만 일년이 세월의 축이 끼기라도 하는가?  하지만 그 짧은 일년 동안이었어도  꽤 일들이 모이고 쌓이고 해서 몇 가지는 알려주고 싶구나.</p>
<p>지난 해에는 둘째 손주를 보아서 이제는 명실공히 진짜 할아버지가 되었다. 할아버지 역할, 노릇을 하는 것도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고, 제법 즐길 줄도 알게 되었고.. 역시 이런 인간사는 다 자연적으로 풀리는 것인 모양이야. 너희들은 지금 손주들 상황이 어떤지 전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와 비슷한 것은 아닐지.<br />
너희들도 알다시피 작년 이후 제일 큰 세상의 변화는 역시 Pandemic이 거의 뉴스에서 사라지고 대신 Putin 괴물의 출현이 아닐까? 그것과 더불어 끊임없이 설치고 있는 다른 괴물 Trump의 정치변수 정도. 너희는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을 듯 보이지만 만만치 않는 나이 탓으로 별수없이 정치동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정도껏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 잊지 마라. 나도 가끔 지나친 흥분을 하며 심장에 무리를 주고 있지만 어느 정도 자제를 하며 살고 있으니까&#8230;<br />
또 일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8230; 열심히 봉사를 하며 살 수 있는 여건을 거의 10여 년 동안 주었던 순교자 성당 (특히 레지오 마리애), 여러 가지 사정 (역시 인간관계) 으로 하나 둘씩 역할을 내려놓게 되었지. 나이를 탓할 수도 있지만 역시 인간관계의 변수는 예측할 수가 없더군. 조금 참을성을 가졌다면 더 버틸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피곤하구먼&#8230; 피곤해..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이제 괴로움으로 남게 되고&#8230;</p>
<p>아~ 그래도 우리들의 시절만 생각하면 이런 현재의 관심사들은 다 사라진다. 그 시절은 무조건 살맛이 넘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그 몇 년의 세월들을 잊을 수가 없으니, 이것도 나의 병인데, 너희들은 나와 다를지도 모르지. 그 시절의 절정은 1970년 4월부터 5월 사이가 아닐까? 그래서 5월 1일을 잊을 수도 없고&#8230; 봄이 한창 올라오던 그 해 4월 중순, 잔설이 깊이 쌓여있던 지리산 능선을 어찌 꿈속에서조차 잊겠니?  데모 덕분에 등산을 시작했던 그 시절, 요델 산악회 창희 덕분이었지. 나와 용현이는 그저 창희의 멋진 등산실력을 따라갔던 것 뿐이야.  아련하고 아름답던 1970년 봄, 봄, 봄&#8230; </p>
<p>&nbsp;</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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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First of May, agai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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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Fri, 01 May 2020 15:14:2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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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원서동]]></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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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160; 용현아, 창희야~ 또 일년이 흘러갔다. 나이에 정비례해서 흐르는 세월 흐름의 느낌으로 현재 우리들은 시속 70+ 마일로 질주하는 인생열차를 타고 &#8216;그곳&#8217;을 향해서 꾸준히 가고 있는 중일 거다.  관심사는 각자가 탄 열차가 언제까지 갈까 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운명과 우리들의 삶에 대한 생각과, 의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아마도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eNbOOvQ-fqk?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용현아, 창희야~</span> 또 일년이 흘러갔다. 나이에 정비례해서 흐르는 세월 흐름의 느낌으로 현재 우리들은 시속 70+ 마일로 질주하는 인생열차를 타고 &#8216;그곳&#8217;을 향해서 꾸준히 가고 있는 중일 거다.  관심사는 각자가 탄 열차가 언제까지 갈까 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운명과 우리들의 삶에 대한 생각과, 의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아마도 창희는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더 잘 알 거야. </p>
<p>어렸을 적에 생각했던 중년, 노년의 삶이란 것, 그저 세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모든 것들이 점점 조용해지는 듯한 수도자 같은 삶을 연상하기도 했지.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지.  자연의 아름다움도 그대로, 옛날에 이성을 볼 때의 감정 지금도 전혀 다름이 없고, 선과 악은 존재도 전혀 변함이 없고&#8230; 하지만 의아했던 것은 우리보다 젊고 멋지게 보이는 사람들이 세월이 갈수록 많아지는 사실만은 어쩔 수가 없었지.</p>
<p>우리들, 우리 세대들은 분명히 부모님 세대보다는  조금 더 잘 먹고 자라서 그들보다 건강하고 오래 살 것은 분명하지만, 나머지는 그때나 별로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6.25 나 4.19같은 민족의 격동기를 다른 의미로 고스란히 겪었고, 우리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의 변치 않는 정체성도 같은 시각으로 보았지. 하지만 우리가 보는 앞에서 우리들 자식세대들이 서서히 우리와 생각을 달리함을 보는 것이 이제는 그다지 이상하지 않게 되었구나.  국가관, 정치적인 idea를 떠나서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란 것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할 때가 아닐까?  나무만 보지 말고 숲, 산, 우주를 보는 조금 더 넓은 &#8216;나이 듦의 아량&#8217;을 자식세대에게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p>
<p>친구들, 올해 나는 드디어 할아버지가 되었다. 너희들의 소식은 전혀 알 길이 없지만 분명히 벌써 잘하면 증손주까지 보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 또래에서는 그렇게 이상하지 않으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우리 또래들이 초비상이지만 모두들 조심하며 충분히 오래 살다 가면 좋겠다. 원서동 죽마고우들, 내년 <em>May Day</em>에 또 만나자&#8230;</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17448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0/05/Scan10519-2.jpg" alt="" width="540" height="414"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0/05/Scan10519-2.jpg 540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0/05/Scan10519-2-300x230.jpg 300w" sizes="auto, (max-width: 540px) 100vw, 540px" /></p>
<p style="text-align: center;">지리산 정상, 천왕봉에서</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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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First of May, 201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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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02 May 2019 01:41:14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연세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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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창희야, 용현아 또 일 년이 흘렀구나.. &#160; &#8216;말대가리&#8217; 용현아, &#8216;박하사탕&#8217; 창희야.. 또 일년이 흘렀구나. 먼지가 뽀얗게 거리를 덮었던 그 시절 무언가 건설의 굉음 속에서 하루가 모르게 변하던 우리의 거리, 서울거리를 누비던 시절.. 그것도 5월의 서울 퇴계로 거리와 칠흑같이 어둡던 지하다방에서 듣던 불후의 명곡들, classic pop 그 중에서도 어떻게 Bee Gees의 first of may를 잊을 수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eNbOOvQ-fqk?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창희야, 용현아 또 일 년이 흘렀구나..</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8216;말대가리&#8217; 용현아</span>, &#8216;박하사탕&#8217; 창희야.. 또 일년이 흘렀구나. 먼지가 뽀얗게 거리를 덮었던 그 시절 무언가 건설의 굉음 속에서 하루가 모르게 변하던 우리의 거리, 서울거리를 누비던 시절.. 그것도 5월의 서울 퇴계로 거리와 칠흑같이 어둡던 지하다방에서 듣던 불후의 명곡들, <em>classic</em> pop 그 중에서도 어떻게 <em>Bee Gees</em>의 <em>first of may</em>를 잊을 수 가 있으랴&#8230; 이제는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곳이 되었지만, 그래도 뇌 세포가 아직도 그 당시로 꿈속에서나마 보고 느끼게 해 준다.</p>
<p>지난 일년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구나. 창희야 LA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상상은 간다만 용현아, 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구나. 재동학교, 휘문중고교, 건국대 를 통해서 찾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제는 늦어가고 있다는 생각뿐이다. 그래 늦었어&#8230; 상상과 추억 속의 너희들 모습이 나는 사실 더 매력적이니까..</p>
<p>나의 지난 일년이 이곳에 &#8216;적나라&#8217;하게 남아 있지만 그래도 나는 &#8216;진화&#8217;하고 있다는 자부감으로 산다. 나의 북극성은 분명히 같은 곳에 있고 나는 그것을 한번도 놓치지 않고, 잊지 않고 방향을 잃지 않으며 산다. 그것이 나의 나머지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래.. 그것이 바로 &#8216;희망&#8217;이란 것.. 그것만 놓치지 않으면 내가 태어난 생의 의미는 확실히 구현된다고 믿는다.</p>
<p>그래.. 우리의 50년 전의 아름다운 추억이 머리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 희망은 항상 있는 거야.. 나는 믿는다. 모두들 건강하게 살기를&#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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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First of May, 201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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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Wed, 02 May 2018 00:20:13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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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창희야, 용현아 그립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160; May Day friends: 손용현, 박창희&#8230; 용현아, 창희야.. 2018년 5월 1일 다시 한번 정다운 이름들을 조용히 불러본다. 또 일년이 흘렀구나. 또한 우리들 우정의 원년 元年 1970년 5월, 48년 전 &#8220;우리들의 오월&#8221;로부터는 거의 반세기가 지나가고 있구나. 이제 2년 뒤면 정확히 반세기&#8230; 참 우리는 오래 살아왔다. 지나간 일년 너희들 어떻게 지냈는지 이제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eNbOOvQ-fqk?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창희야, 용현아 그립구나.. 행복하게 살기를..</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May Day friends: 손용현, 박창희</span>&#8230; 용현아, 창희야.. 2018년 5월 1일 다시 한번 정다운 이름들을 조용히 불러본다. 또 일년이 흘렀구나. 또한 우리들 우정의 원년 元年 1970년 5월, 48년 전 &#8220;우리들의 오월&#8221;로부터는 거의 반세기가 지나가고 있구나. 이제 2년 뒤면 정확히 반세기&#8230; 참 우리는 오래 살아왔다. 지나간 일년 너희들 어떻게 지냈는지 이제는 전혀 &#8216;감&#8217;이 잡히질 않고 그림도 그려지지 않으니..  지금 어떤 모습의 얼굴들인지도 모른다. 그저 너희들의 이름과 반세기 전의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만 생생하게 기억할 뿐이다.</p>
<p>너희들은 일년가량 기다려야 하지만 나는 올해 먼저 70이라는 고개를 넘어섰으니 우리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8216;남아있는 미지의 세월&#8217;을 탐험하게 될 듯하다. 몸만 제대로 도와준다면 우리가 앞으로 맞을 이 시간들은 우리들이 70년을 살아온 경험으로 멋진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너희들의 영육간의 건강상태는 전혀 모르지만 나 자신은 최소한 그런대로 영육적으로 &#8216;정상적, 양호한 상태&#8217;라고 말하고 싶다.</p>
<p>1970년 5월과 2018년 5월.. 그 사이에 무엇이 변했을까 새삼스럽게 물어본다. 20이 갓 넘은 시절에서 칠순을 넘은 것도 그렇지만 그 동안 세상도 참 많이 변했구나. 그렇게 찬란했던 당시의 5월의 기억이 이제는 전처럼 찬란하지 않으니 기억력의 한계인 듯 하다. 이제 너희들이 살아온 흔적이나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 것, 그런 것에 더 이상 호기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이제 와서 그렇게 중요할까? 나에게는 그 &#8216;눈물 없던 시절&#8217;만 기억할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족할 것이다. 내년의 5월 1일은 어떤 것인지 그것이 더 궁금할 뿐이다.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다오, 친구들아.</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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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民族 의 悲劇, 196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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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Wed, 08 Nov 2017 21:39:39 +0000</pubDate>
				<category><![CDATA[Memoir]]></category>
		<category><![CDATA[50/60]]></category>
		<category><![CDATA[가족]]></category>
		<category><![CDATA[가회동]]></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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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16;민족의 비극&#8217;, 1962년 1월..  내가 55년 전에 &#8216;탈고 脫稿&#8217;한 50여 페이지의 &#8216;먹물로 그린&#8217; 만화 漫畵 의 제목이다. 그러니까 서울 중앙중학교 2학년 시절 1961년에 그렸던 &#8216;자작 自作 만화&#8217; 인 셈인데 이것이 거의 기적적으로 그것도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이것은 나에게는 &#8216;가보 家寶&#8217;에 상당하는, 돈을 주고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개인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figure id="attachment_1239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2399" style="width: 278px" class="wp-caption alignleft"><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 wp-image-12399"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59-1.jpg" alt="" width="278" height="401"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59-1.jpg 512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59-1-208x300.jpg 208w" sizes="auto, (max-width: 278px) 100vw, 278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2399" class="wp-caption-text">만화, <strong>민족의 비극</strong> 표지, 1961</figcaption></figure>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8216;민족의 비극&#8217;, 1962년 1월.. </strong></span> 내가 55년 전에 &#8216;탈고 脫稿&#8217;한 50여 페이지의 &#8216;먹물로 그린&#8217; 만화 漫畵 의 제목이다. 그러니까 서울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중앙중학교</span> 2학년 시절 1961년에 그렸던 &#8216;자작 自作 만화&#8217; 인 셈인데 이것이 거의 기적적으로 그것도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이것은 나에게는 &#8216;가보 家寶&#8217;에 상당하는, 돈을 주고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개인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p>
<p>지금 이 만화 책의 &#8216;외형적, 물리적&#8217; 상태는 그렇게 양호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신경을 안 쓰고 조금 험하게 다루면 망가질 염려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자주 만지지도 않고 &#8216;신주단지&#8217; 모시듯 모셔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이에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모셔둘 수가 없어서 결단을 내려서 fully digitized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p>
<p>당시에 그렇게 &#8216;희귀&#8217;했던 stapler, 현재 몇 불 弗이면  살 수 있는 그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 나는 역시 전통적인 공구였던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동네가게에서 가는 철사를 사다가 이 책을 엮었다. 그것이 현재 그대로 남아있는데.. 문제는 이 <em>homemade</em> staple에 손을 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1961년 경 서울 <strong>가회동</strong> 잡화상(철물도 취급하는)에서 산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true antique value가 있는 것, 돈을 주고 어디에서도 살 수 가 없는 것이니.. 쉽게 바꾸거나 손을 대는 것이 망설여진다.</p>
<p>우선 몇 page를 scanner에 책갈피를 강제로 펴서 scan을 해 보았다. 역시 보기가 안 좋다. 하지만 그것이라도 이렇게 55년 만에 세상에 빛을 보았다는데 만족감을 느낀다. 당시 이 만화를 &#8216;애독&#8217; 해 주었던 몇몇 원서동 苑西洞 죽마고우 竹馬故友 (안명성, 유지호, 김동만 등등) 이 자신들이 직, 간접적으로 관계가 되었던 역사를 재발견하게 되면 감개가 무량할 것이라 믿는다.</p>
<p>이 만화의 그림 technique을 보면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 그것들은 거의 99%가 당시 만화계의 영웅 &#8216;<strong>산호</strong>&#8216; (선생님)의 bestseller 우리의 영웅 &#8216;만화 <strong>라이파이</strong>&#8216;를 비롯한 다른 &#8216;전쟁, 역사 물&#8217;에서 온 것이다. 24시간을 그런 그림을 보며 살았던 당시에 그것을 흉내 내어 그린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랑스런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것을 거의 중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까지 그렸으니.. &#8216;공부, 공부, 입시&#8217; 지옥이었던 당시, 우리 집에서는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이고 결국은 이 만화가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p>
<p>내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그렸던 만화가 이 만화 바로 전에 완성이 되었는데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없어졌고 나중에 알고 보니 &#8216;불에 타서&#8217; 없어진 것을 알았다. 어머님의 지나친 간섭이었지만&#8230;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서 항변을 할  수 없었다. &#8216;굶어 죽는 만화가&#8217;가 될 것으로 염려가 되셨다는 것을 어린 나이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없어진 그 만화, 나에게는 아련한 아쉬운 추억으로 남았다. 그 없어진 만화작품의 그림 기법, story 같은 것이 나의 머리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저 어린 나이에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날랐던  그 만화시절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잊고 싶지 않다.</p>
<p>이제 남은 것은: 이 만화책을 완전히 &#8216;해체&#8217;해서 full scanning을 한 후에 <em>pdf</em> book format 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것이 완성 되면 나의 serony.com blog에 &#8216;영구히&#8217; 남길 것이다.</p>
<p>&nbsp;</p>

<a href='https://serony.com/ken/2017/11/08/%e6%b0%91%e6%97%8f-%ec%9d%98-%e6%82%b2%e5%8a%87-1961/scan10062-1/'><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12" height="720"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2-1.jpg" class="attachment-full size-full" alt=""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2-1.jpg 512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2-1-213x300.jpg 213w" sizes="auto, (max-width: 512px) 100vw, 512px"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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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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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서동,  苑西洞.. 195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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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Sat, 25 Jun 2016 11:58:17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Memoir]]></category>
		<category><![CDATA[50/60]]></category>
		<category><![CDATA[원서동]]></category>
		<category><![CDATA[육이오]]></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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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서울 특별시 종로구 鍾路區 원서동 苑西洞 비원 秘苑의 서쪽 담장을 따라 맑은 시냇물 (당시에는 개천 이라고 불린)을 따라 아늑하게 남북으로 펼쳐진 그 옛날 1950년대의 종로구 원서동, 전설의 고향 같은 느낌으로 나의 기억 제일 깊숙한 곳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그곳.. 특히 1954년 경 그 동네의 모습은 아마도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기억하며 그릴지도 모른다. 육이오 6.25란 글자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서울 특별시 종로구 鍾路區 원서동 苑西洞</strong></span> 비원 秘苑의 서쪽 담장을 따라 맑은 시냇물 (당시에는 개천 이라고 불린)을 따라 아늑하게 남북으로 펼쳐진 그 옛날 1950년대의 종로구 원서동, 전설의 고향 같은 느낌으로 나의 기억 제일 깊숙한 곳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그곳.. 특히 1954년 경 그 동네의 모습은 아마도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기억하며 그릴지도 모른다.</p>
<p>육이오 6.25란 글자가 보이면 원서동에 연관된 추억들이 왜 그렇게 지워지지 않고 생생하게 나를 깨우는가. 이런 이유로 나의 blog 특히 memoir 에는 이곳의 추억이 이곳 저곳 산재해 있다. 그만큼 이곳은 나의 추억에서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곳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 된 것들이 이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p>
<p><strong>오늘  6.25 동란, 66주년 아침</strong>에, 남기려는 것들, 6.25 동란 기록영화의 추억,  &#8216;<strong>더 늦기 전에</strong>&#8216;라는 말을 되뇌며 생각하고 기억력을  총동원한 것이다. &#8216;원서동 극장, 한성택, 조흔파&#8217; 정도가 keywords가 될 듯한 오늘의 추억은 정말로 아련한 추억들이다. 뒤 늦게 연대를 찾아보니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분명히 1954년 에서 1955년 사이 정도</span>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6.25 동란이 일단 끝난 휴전 바로 다음해 쯤이었다.</p>
<p>내가 너무 어려서 기억할 수 없었던 때, 전쟁 이후 휴전이 될 무렵까지 우리는 원서동의 아래쪽, 휘문중고교 바로 옆, 동섭이네 집이라고 불리던 집에서 살았는데, 그 집의 주인이 휴전 이후에 피난에서 돌아왔기에 우리 3식구 (아버지는 전쟁 초에 납북)는 가까운 곳, 아주 작은 &#8216;무당집&#8217; 단칸 방으로 이사를 갔는데 이때의 기억들은 <a href="http://wp.me/p4QWOn-cN">나의 오래 전 blog</a><sup class='footnote'><a href='#fn-11415-1' id='fnref-11415-1' onclick='return fdfootnote_show(11415)'>1</a></sup>에서 이미 회상을 하였다. 그 이후, 우리 세식구는 1954년 초에 이곳, 승철이네 집의 건넌방으로 이사를 왔고 본격적인 &#8216;재동국민학교 1~2학년&#8217; 시절의 &#8216;평생 기억&#8217;을 만든다.</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승철이네 집</strong></span>.. 최승철.. 어찌 잊으랴.. 나보다 2살 밑이었지만 그 나이에 나의 제일 친한 &#8216;한 집&#8217; 친구가 되었다. 안 방 주인집은 양 부모가 있는 &#8216;정상적&#8217;인 주인이었지만 나는 우리 아버지가 없는 것이 그렇게 부끄럽거나 그 집이 부럽지는 않았다. 그저 다른 집이라고만 생각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비록 큰 집은 아니었어도 승철이네 집에서 보낸 2년 정도는 한마디로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집의 위치도 원서동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북쪽과 서쪽은 비원의 담으로 완전히 가로막힌 아늑한 곳, 여름에는 비원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로 잠을 설칠 정도였고, 겨울에는 가운데로 흐르는 개천 (청계천으로 흐르는) 에서 썰매를 타는 그곳은 어린이들의 천국이었다.</p>
<p><strong>승철이네 엄마</strong>는 우리 엄마와 나이도 비슷하고 친절한 분이셨다. 큰 딸 시자누나는 나의 누나와 동갑이었는데, 어머님이 재혼을 하셨는지 성이 &#8216;주&#8217;씨여서 원래는 주시자 누나로 통했는데 나중에는 성을 최씨로 바꾸었다. 그러니까 두 남동생인 승철이와 승관이는 현재 아버지와의 자식인 것이다. 당시에 그런 것이 그렇게 관심은 없었지만 기억에 뚜렷이 남은 것은 왜 그런 것일까?</p>
<p>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5명 그것도 두 누나들까지 포함 된.. 그런 승철이네 집은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추억이 많은 곳이었다. 승철이 아버지는 경찰출신으로 (해방 전에도 그랬는지는 몰라도) 훤칠한 키의 호남형, 하지만 사나운 사나이 기절도 있었다. 일정한 직장이 없으셔서 거의 집에 계신 것이 특이한 점이었지만 그래도 부지런하셔서 놀지는 않으셨다. 항상 무언가 하신 것 같았다. 기계 쪽에 관심과 특기가 있으셨는지, 엔진 같은 것을 집에다가 갖다가 놓으시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얼음을 만드는 냉동기였다. 그것을 가지고 후에는 경기도 연천 인가 하는 곳으로 가셔서 가게를 차리셨다. 물론 아이들은 집에다 두고 부부만 가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내가 그 집에서 이사 나온 후의 일이었지만.</p>
<p><strong>구파발의 추억:</strong> 가끔 승철이 아빠는 우리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고향인 경기도 구파발로 놀러 가시기도 했다. 여름 겨울 모두 갔었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즐겁고 신기한 추억이 되었다. 구파발.. 어찌 잊으랴.. 그것이 그러니까 1954, 5년 경이었을 것이다. 서울역 염천교 옆에서 시외 버스를 타고 &#8216;한없이&#8217; 달려서 간 곳.. 구파발, 구파발.. 그곳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가보게 된 &#8216;시골&#8217;이었다. 시골, 시골,.. 처음으로 &#8216;쌀나무, 벼&#8217;를 보았고, 논을 보았고 &#8216;진짜 초가집&#8217; 안에 들어가서 자 보았다. 처음으로 알았다.. 그곳은 아름답기 전에 너무도 가난한 곳이었음을.. 서울에 비해서 그런 것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8216;원시적&#8217;인 것인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아름다운 곳, 진짜 시냇물에서 수영, 미역을 감고, 미꾸라지를 잡고, 차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깜깜한 밤에 술래잡기를 하고, 한없이 많았던 메뚜기를 잡으려 이리 뛰고 저리 뛰고..</p>
<p>우리가 가서 자던 초가집이 승철이 아빠와 어떤 친척인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지만 아주 가까운 사이였을 것이다. 그 집에 &#8216;희덕이&#8217;라는 우리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남자아이도 있었는데..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져서 그것이 전부다. 겨울에 놀러 갔을 때는 얼어 붙은 논에서 &#8216;한 없이 하루 종일&#8217; 썰매를 타는 황홀에 빠지기도 했다. 승철이 아버지, 감사 드립니다. 셋방에 사는 아이까지 데리고 가신 것..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 황홀경의 추억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당시 기억에 뚜렷한 것 중에, 그곳 (구파발)에서 나올 때 어떤 초가집을 지나가는데, 비명소리 울음소리가 나고 어떤 사람이 승철이 아빠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던 것, 그러니까 그 집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던 것, 그 아내가 살려달라고 울며불며 승철이 아빠에게 매달리던 것, 잊을 수가 없다. 어느 정도 해결이 된 후 그 집을 떠나는데 또다시 그 집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우리를 쫓아오던 모습.. 어린 나이에도 그것은 한마디로 공포의 장면이었다. 그것을 만류하고 해결해 주었던 승철이 아빠.. 존경을 받을 만 했다.</p>
<p>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어두운 쪽도 있다. 다른 기억에, 한 때 어떤 &#8216;장판지 외판원&#8217;을 구타했던 사건이 있었다. 나는 분명히 기억을 하는데, 한번 장판을 파는 젊은 청년이 왔었는데, 무언가 잘 못 되어서 승철이 아빠가 그 청년을 거의 구타하다시피 해서 쫓아 낸 것이다. 나는 너무나 혼동스러웠던 것이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는가, 그리고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심하게 대할 수 있는가 하는 것. 어린 나이에 그것은 나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아버지의 상에 흠이 간 것이다. 그런 아버지는 없는 것이 낫다 라는 생각까지도 한 것이다. </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작가 조흔파: </strong></span> 집에서 북쪽으로 50m 정도 올라가면 조금 더 좋은 집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 바로 &#8216;작가 조흔파&#8217; 선생의 집이 있었다. 당시에 솔직히 조흔파가 누구인지 잘 몰랐지만 그 집의 둘째 아들 &#8216;조영환&#8217;과 같이 놀았기에 그 집엘 놀러 가며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소설가라는 것, 학생잡지를 보면 그의 이름이 눈에 뜨일 정도였지만 그런 것을 읽기에는 너무나 어렸다. 그 집의 큰 아들이 이름, 그러니까 조영환의 형의 이름이 조영수였다. 나중에 휘문중학교에 들어간 것도 기억이 난다. 조영환은 장난이 조금 심한 애였고 우리들을 조금 괴롭힌 기억도 나는데.. 의문은.. 분명히 나와 같이 재동국민학교에 다녔을 텐데.. 졸업 앨범에 그의 모습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졸업하기 전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을 것이다.</p>
<p>그 집에 몇 번 놀러 갔을 때 느낌은..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어린 나이에도 무언가 다른 집이다</span>.. 그러니까.. &#8216;작가, 문필가 소설가&#8217;의 집이란 느낌을 받은 것이다. 물론 그 아빠 조흔파 씨는 집에 없어서 못 보았다. 그리고 그 엄마도 못 보았는데.. 그 집 툇마루에서 이상한 것을 본 기억, 바로 수영복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남자 수영복을 보았다. 그리고 들었던 소문이 있었다. 그 집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고, 후처였다는 사실.. 어린 나이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다. 게다가 그 후처는 당시에 숙명여대 학생이었고 조영환이 엄마는 &#8216;쫓겨 났다&#8217;는  이야기도 듣고 자랐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하~ 그 새 엄마는 조흔파씨가 아마도 숙명여대에서 가르친 학생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 아마도 맞지 않았을까? 그 이후 &#8216;사라진&#8217; 조영환이네 기억은 서서히 사라졌지만 TV가 나오면서 가끔 조흔파씨가 출연하는 game show 같은 것을 보게 되면 그 집 생각이 나곤 했다. 또한 알게 된 것은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조흔파씨의 이름은 생각보다 훨씬 유명한 이름</span>이었다는 사실이었다.</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김관형, 종맹이 형들</strong></span>:  집 바로 앞, 골목길 건너에 붙어있는 두 집이 있었다. 한 집에는 어머니와 아들, (김) 관형이 형 살고 있었고 (나머지 가족은 기억이 안 남) 또 한 집은 &#8216;원서동 극장&#8217; 이라고 내가 기억하는 집, 종맹이 형이 사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관형이형, 종맹이 형으로 기억이 나는 두 집이다. 관형이 형, 어린 눈에도 그 형은 여자처럼 예쁘게 생긴 형이었다. 말도 부드럽고 우리들, 나와 같은 동생뻘 아이들을 잘 돌보아 준 형.. 가끔, 옆집인 종맹이 형네 집에서는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극장처럼 영화를 상영하였다</span>. 아마도 종맹이 형의 아버지가 기록영화에 관련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심심하면 여름 밤에 우리를 포함한 동네 사람들 몇 집을 불러다가 대청 마루에서 영사기를 돌렸다. 극장가는 것 당시에 그렇게 쉽지 않았는데 &#8216;활동사진&#8217;을 집에서 본다는 것은 참 희귀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8216;영화&#8217;라는 것이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모조리 6.25 전쟁 기록영화</span>였다는 사실.. 대부분 모인 사람들이 동네 아낙네들인데 그들이 그것에 열광할 리는 없었다.</p>
<p>하지만 우리 같은 아이들은 아주 달랐다. 만화를 보아도 전쟁, 군인들에 관한 것만 보는데.. 실제 전쟁 기록 영화를 집에서 생생하게 본다는 것은 완전히 꿈같은 일이었다. 심심치 않게 많이 보았던 6.25 기록영화들.. 군대 사열식하는 것부터 실제 대포를 쏘는 것, 군인들이 쓰러지는 것.. 그것은 당시 여름 밤을 다시 회상할 수 있는 멋진 추억으로 남았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종맹이 형은 그 이후 다시 볼 수 없었지만 관형이 형은 나중에 중학교까지 가서도 멀리서 가끔 본 기억이 난다</span>. 나를 특별히 잘 돌보아 주었다는 나만의 상상인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이름이 되었다.</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한성택 형</strong></span>.. 집 옆에 흐르는 개천 건너 쪽에 있는 나즈막 한 집들에 &#8216;한씨 일가&#8217;가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에 나의 다른 기억을 만들어준 성택이 형이 있었다. 그 나이가 얼마 정도 였을까? 아마도 중학생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 집에는 사촌으로 알려진 한성우도 있었는데 그는 나와 동갑으로 재동국민학교도 같이 다니고 졸업도 같은 때 하였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성택이 형, 전형적인 &#8216;형 type&#8217; 이라면 어떨까</span>.. 동생뻘 아이들을 아주 능숙하게 다루고 &#8216;조종&#8217;을 하는 type, 나와 승철이는 그를 &#8216;하느님&#8217;처럼 따르기도 했지만 내가 훨씬 더 &#8216;보살핌&#8217;을 받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돈을 갖다 바쳤기 때문이었다</span>. 지금도 생각하면 웃긴다.. 그 나이에 어떻게 야쿠자도 아니고, 그런 &#8216;돈 관계&#8217;가 있을 수 있었을까? 나의 사고방식은 간단했다. 그 형에게 더 보호를 받고 싶다는 일념으로 내가 받는 용돈을 그에게 바치곤 한 것이다.</p>
<p>덕분에 동네에서 나는 주먹 같은 아이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어린 나이에도 &#8216;돈의 위력&#8217;을 실감하게도 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 형만 보면 고맙다고 칭찬을 하곤 했다. 그 성택이 형의 심정은 어땠을까? 돈을 받으니 좋았을 것이고, 졸졸 따라다니며 &#8216;숭배&#8217;를 하는 꼬마가 있었으니 좋았을지 모른다. 한번은 한 겨울에 눈이 왔을 때, 그 형을 따라서 &#8216;<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한없이 걸어서&#8217; 썰매를 사러 간 적</span>이 있었다. 그 위치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마도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삼선교 부근</span>이 아니었나.. 돈화문, 창경원 앞 전차 길을 따라 걸어 간 곳, 눈부신 쌓인 눈을 밟으며 걸었던 그 추억.. 결국 간 곳에서는 썰매를 살 수가 없었다. </p>
<p>6.25의 기억을 다시 생각하면 100% 생각나는 원서동 어린 시절, 그 중에서도 1954년 무렵의 승철이네 집 주변의 추억들은 나의 6.25에 대한 심각한 역사를 조금은 부드럽게, 포근하게 만든다.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 인물들.. 지금 다 어떻게 살고들 계신지..</p>
<p>&nbsp;</p>
<div class='footnotes' id='footnotes-11415'>
<div class='footnotedivider'></div>
<ol>
<li id='fn-11415-1'> 육이오, 원서동, 동섭이네집, 영구차 귀신 <span class='footnotereverse'><a href='#fnref-11415-1'>&#8617;</a></span></li>
</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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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216;팔도 사나이&#8217;와 원서동 &#8216;사이다 공장&#821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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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Mon, 25 Aug 2014 21:31:18 +0000</pubDate>
				<category><![CDATA[Memoi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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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원서동]]></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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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얼마 전에 정말로 우연히 1969년 (국산)영화 &#8216;팔도八道 사나이&#8216;란 것을 YouTube에서 download해서 보았다. 그 당시 1960년대 말, 유행하던 영화, 가요 등에 &#8216;팔도&#8217;란 단어가 붙은 것이 많았다. 팔도란 대한민국 행정구역의 8도를 말하고, 그저 &#8216;우리나라 전역&#8217;을 뜻했을 것이다. 그것의 선두주자가 &#8216;팔도강산&#8216;이란 영화, 그리고 같은 이름의 주제가였다. 한창 서구, 특히 미국의 유행음악, pop song, pop culture에  심취해 있던 대학생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figure id="attachment_9728"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9728" style="width: 191px" class="wp-caption alignleft"><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8/paldo-guys-2.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wp-image-9728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8/paldo-guys-2.jpg" alt="paldo-guys-2" width="191" height="448" /></a><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9728" class="wp-caption-text">1969년 1월 21일자 동아일보</figcaption></figure>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얼마 전에 정말로 우연히</strong></span> 1969년 (국산)영화 &#8216;<strong>팔도八道 사나이</strong>&#8216;란 것을 YouTube에서 download해서 보았다. 그 당시 1960년대 말, 유행하던 영화, 가요 등에 &#8216;팔도&#8217;란 단어가 붙은 것이 많았다. 팔도란 대한민국 행정구역의 8도를 말하고, 그저 &#8216;우리나라 전역&#8217;을 뜻했을 것이다. 그것의 선두주자가 &#8216;<strong>팔도강산</strong>&#8216;이란 영화, 그리고 같은 이름의 주제가였다. 한창 서구, 특히 미국의 유행음악, pop song, pop culture에  심취해 있던 대학생 시절  &#8216;촌스럽게만&#8217; 느껴지던 그런 영화를 보았을 리가 없었지만 세간에서 많이 유행하던 것들이고 그 주제가를 <strong>당시 최고가수 최희준씨</strong>가 &#8216;덩실거리며&#8217; 불러서 기억에는 또렷이 남았다. 다른 쪽으로는 유행어 &#8216;팔도의 원조&#8217; 팔도강산은 사실 당시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해외수출정책, 외화, 국민소득증대정책 등과 묘하게 엮이기도 했다.</p>
<p> 그런 &#8216;팔도&#8217;란 말이 거의 유행어처럼 다른 영화에도 붙어서 <sup class='footnote'><a href='#fn-9584-1' id='fnref-9584-1' onclick='return fdfootnote_show(9584)'>1</a></sup> 나오고 했는데 이 &#8216;팔도 사나이&#8217;도 그 중에 하나였을 것이라 짐작이 갔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를 보니.. 나의 빠른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팔도 사나이의 팔도는 팔도강산의 팔도와 배경과 의미가 100%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액션영화에서 잘나가던 <strong>장동휘</strong>씨와 새로 나온 신선한 모습의 <strong>윤정희</strong>, 그리고 조금은 중견배우의 무게가 실려있는 <strong>태현실</strong>이 등장하며,  &#8216;싸움질 하는 영화의 고정 급&#8217;들이 모조리 출연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8216;의협심,애국심 있는 깡패들 이야기&#8217;영화라고나 할까..</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1969년 영화지만</strong></span> 영화 줄거리의 배경은 일제시대(허.. 요새는 점잖게 &#8216;일제 강점기&#8217;라고 하던가..), 고아출신의 싸움 잘하는 소년이 서울 중심가 거리에서 일본 야쿠자, 고등계 형사들과 맞서서 싸운다는 이야기..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8230; 이것은 거의 분명히 항일투사 김좌진의 아들, <strong>반공깡패 김두한</strong>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활동무대 중에는 내가 국민학교 시절 많이 갔던, 극장 <strong>우미관</strong>도 나온다. 그러고 보니, 1980년대의 영화 &lt;장군의 아들<sup class='footnote'><a href='#fn-9584-2' id='fnref-9584-2' onclick='return fdfootnote_show(9584)'>2</a></sup>&gt; 도 김두한의 이야기였다. 그러니 아마도 이 &lt;팔도 사나이&gt;는 전설적 &#8216;정치, 반공깡패&#8217; 김두한 영화의 원조가 될지도 모른다.</p>
<p> 영화자체는 1960년대 말, 대한민국 영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정도라고 생각 되었다. 장동휘의 연기도 평균수준.. 조금은 김빠지는 인상도 받았고, 윤정희의 연기도 별로 크게 뛰어나지 않았다. TV 쪽으로 많이 얼굴이 보이던 오지명, 그는 원래부터 액션물에 맞아서 그런지 의협심 있는 깡패 역에 잘 어울렸다. 하지만 일본 깡패들로 등장한 황해, 허장강.. 너무나 맡았던 역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들의 익숙한 역과 맞지 않아서였을까? 오히려 100% 악역 전문인 &#8216;장혁&#8217;은 오히려 일본 헌병 역에 잘도 어울렸다.</p>
<p>하지만 이영화가 나를 정말로 놀라게 했던 이유는 내 추억의 황금기였던 서기 1969년의 영화라는 사실 보다 이 영화 첫 장면이 찍힌  location에 있었다. 처음 이 영화를 보는 순간, 거의 순간적으로 나는 이 첫 장면이 찍힌 곳을 알게 되었다. 마치 10여 년 전에 TV 드라마 &lt;겨울연가&gt;를 보았을 때, 나의 모교 중앙고교의 웅장한 campus를 순간적으로 알아 보았던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다. 그 장면이 찍힌 곳은 나의 어린 시절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원서동 이었다. 내가 8살 때부터 10살 때까지 살았던 곳이 이 장면에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나의 가슴을 울렸던 것은 그 오래된 추억만이 아니었다. 그곳 그곳에 나의 집이 없었던 사실이 나를 울리게 한 것이다.</p>
<p> <span style="font-size: 14pt;"><strong>그 한길에서 장동휘가</strong></span> 싸우던 그 &#8216;넓은&#8217; 길 그 자리에 바로 우리 집이 있었다. 바른쪽 비원 담 옆에 도열한 집들을 따라 원서동 개천이 흐르고 그 개천과 왼쪽에 있는 집들 사이에 우리 집이 있었다. 이 우리 집은 내가 국민학교(재동) 2학년 이후부터 4학년 1학기까지 살았던 우리가족 3식구가 살았던 유일한 단독 주택이었다. 나의 추측에 아주 헐값으로 그 단독주택을 사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에는 사연이 있었는데, 그 집은 흔한 말로 &#8216;도시계획&#8217;<sup class='footnote'><a href='#fn-9584-3' id='fnref-9584-3' onclick='return fdfootnote_show(9584)'>3</a></sup>에 의해서 나중에 &#8216;철거&#8217;가 되어야 하는 운명에 있었던 것이다. 어머님이 어떤 재주로 그 집을 사셨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셋집이 아닌 우리 집이라는 사실 하나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이후로는 세운상가 아파트를 사기 전까지 우리는 전세로 남의 집에 살았다. 이 집에서의 추억은 참으로 거의 사진처럼 선명하다. 개천 옆이라 밖에 나가면 모두 여름 겨울 모두 우리의 놀이터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곳에서 원서동의 죽마고우들이 나에게 많이 생기기도 했다. 승철이네 집, 명성이, 동만이, 창희, 용현이.. 꿈에도 잊지 못할 죽마고우들을 다 이곳에 살 때 만난 것이다.</p>
<p>바른 쪽 전주(그 당시에는 <strong>전보산대</strong>라고 불렀다) 에 거의 붙어 있는 집이 나의 잊지 못할 죽마고우 박창희, 손용현이 살던 집이었다(<strong>창희야, 용현아, 너희가 살던 집이 영화에 나왔다!</strong>). 그러니까..그들의 집은 1969년 당시까지 &#8216;건재&#8217;했던 것이다. 또 그 옆쪽으로 초가집도 보인다. 내가 살 당시만 해도 원서동에는 초가집이 참 많았고 1969년까지 그렇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8216;복개공사&#8217;가 된 원서동을 1967년 경에 마지막으로 보았고 그 뒤에는 꿈에서나 보게 된다. 나의 집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그러니까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꿈 속에는 그대로 남아있다. 왼쪽에 무슨 &#8216;공장&#8217;처럼 생긴 건축물이 바로 우리가 어렸을 때 &#8216;사이다 공장&#8217;으로 불리던 곳인데.. 정말 1969년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바로 집 옆에 있던 그곳 공터에서 많이 놀았다. 특히 그곳에 있던 &#8216;열린 계단&#8217;은 내가 &#8216;낙하산 실험&#8217;을 하며 놀던 곳이다. 높은 곳에 오를 길이 없어서 낙하산을 만들어 던질 곳이 없었던 차에 그 열린 계단은 안성맞춤이었다. 그때가 아마 1955~1956년경 이었을까.. 참 오래 전의 모습들이다. 지금 이곳도 &#8216;상전벽해&#8217;가 되었을까? 하지만 걱정은 없다. 나의 머리 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의문이 남는다. 그 당시 우리들은 &#8216;공장&#8217;을 사이다 공장이라고 불렀는데.. 과연 그곳은 사이다를 제조하던 곳이었을까? 원서동의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 향토역사가들 고수들은 아마도 아실지도 모를 일이다.</p>
<p>&nbsp;</p>
<p><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9/paldo-guys-1969.mp4_000131464.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9592"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9/paldo_guy_000131464.jpg" alt="행인들이 지나가는 길 바로 옆의 집이 '창희와 용현이'가 살던 집이었다." width="520" height="207" /></a></p>
<p style="text-align: center;">행인들이 지나가는 사진 정 가운데의 집이 &#8216;창희와 용현이&#8217;가 살던 집이었다.</p>
<p><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9/paldo_guy_000134267.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9585"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9/paldo_guy_000134267.jpg" alt="이 모습은 우리집 자리에서 보이는 사이다 공장의 입구의 모습이기도 했다." width="520" height="207" /></a></p>
<p style="text-align: center;">이 모습은 우리집 자리에서 보이는 사이다 공장의 입구의 모습이기도 했다.</p>
<p><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9/paldo_guy_000162962.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9586"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9/paldo_guy_000162962.jpg" alt="바른쪽 장동휘씨가 서있는 그 자리에 바로 우리집이 있었고 그 옆으로 원서동 개천이 있었다." width="520" height="207" /></a></p>
<p style="text-align: center;">바른쪽 장동휘씨가 서있는 그 자리에 바로 우리집이 있었고 그 옆으로 원서동 개천이 있었다.</p>
<p><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9/paldo_guy_000179612.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9588"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9/paldo_guy_000179612.jpg" alt="사이다 공장 뒤로 '낙하산' 돌계단이 선명히 보인다" width="520" height="207" /></a></p>
<p style="text-align: center;">사이다 공장 안쪽 사람들이 모인 고 왼쪽 옆으로 &#8216;낙하산&#8217; 돌계단이 선명히 보인다</p>
<p><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9/paldo_guy_000172572.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9587"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4/09/paldo_guy_000172572.jpg" alt="원서동 사이다 공장.. 나의 기억 속의 모습도 이 모습이었다." width="520" height="207" /></a></p>
<p style="text-align: center;">원서동 사이다 공장.. 나의 기억 속의 모습도 이 모습이었다.</p>
<hr />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com/embed/dV9gK6GU68s?rel=0" width="520" height="28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p style="text-align: center;">1969년 영화 &lt;<strong>팔도 사나이</strong>&gt;</p>
<div class='footnotes' id='footnotes-9584'>
<div class='footnotedivider'></div>
<ol>
<li id='fn-9584-1'> 예를 들면 &#8216;<strong>팔도 며느리</strong>&#8216; <span class='footnotereverse'><a href='#fnref-9584-1'>&#8617;</a></span></li>
<li id='fn-9584-2'> 이 &lt;장군의 아들&gt;을 만든 개XX는 완전히 X-rated 를 능가하는 섹스 scene을 겁도 없이 보여주었다. 이 미친 &#8216;제작, 감독&#8217; XX들은 자기 가족, 아이들과 같이 그 영화를 볼 생각을 했을까? <span class='footnotereverse'><a href='#fnref-9584-2'>&#8617;</a></span></li>
<li id='fn-9584-3'> 간단히 말하면 원서동 개천을 복개공사를 하며 개천 &#8216;위&#8217;에 걸쳐진 모든 집을 철거하는 것. <span class='footnotereverse'><a href='#fnref-9584-3'>&#8617;</a></span></li>
</ol>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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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First of May</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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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ue, 01 May 2012 16:59:2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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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Memoi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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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5월 1일을 향한 달, 4월, 그것도 특별히 오래 전 1970년의 4월을 더 기억한다. 연세대 4학년이 되던 그 해의 4월, 지나간 3년간 나와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던 중앙고 동창들, 특히 양건주와 이윤기가 모두 군대로 갔고, 사실 조금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던 때였고, 비록 다른 동창, 죽마고우 박창희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조금 다른 위안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span style="font-size: 14pt;">5월 1일을 향한 달, 4월</span></strong>, 그것도 특별히 오래 전 <strong>1970년의 4월을 더 기억한다</strong>. 연세대 4학년이 되던 그 해의 4월, 지나간 3년간 나와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던 중앙고 동창들, 특히 양건주와 이윤기가 모두 군대로 갔고, 사실 조금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던 때였고, 비록 다른 동창, 죽마고우 박창희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조금 다른 위안일 수 밖에 없었다.</p>
<p>그러다가 그 해 초에 친구 유지호의 도움으로 박창희와 같이 원서동에 살았던 다른 죽마고우 손용현과 거의 <strong>극적인 재회</strong>를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거의 10여 년 만에 <strong>&#8216;불알친구&#8217; 삼총사</strong>가 다시 모인 것이다. 당시 용현이는 <strong>건국대학교 영문과</strong>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미국과 영어를 그렇게 좋아했던 그에게 영문과는 아주 자연스럽게 보였다.</p>
<p>그 이후 우리는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오랫동안 헤어졌던 시간을 만회 하려는 듯,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그 당시 그 나이또래가 갈 곳이 어디겠는가.. 거의 다 다방, 아니면 술집이었는데, 모두 담배연기가 자욱한, 건강한 곳들은 아니었다.</p>
<p>그것 대신, 값싸고 건강하게 모여 즐기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산, 그러니까, 등산이었다. 특히 박창희는 거의 프로 급에 가까운 산 사나이였고, 요델 산악회의 멤버이기도 해서, 우리들에게는 조금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고, 그런 이유로 우리 셋은 같이 등산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 당시 그것은 대학생들에게 유행이기도 했다.</p>
<p>그래서 셋이서 서울 근교의 산들(특히 도봉산)을 다시기 시작하다가 그 해, 4월 초에 장거리 산행을 하게 되었다. 육이오 때 김일성 공산당의 공비, <strong>빨찌산들의 오랜 거점</strong>으로 유명하던 지리산엘 가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전해(1969년)에 박창희와 같이 여름방학때 <strong>소백산</strong> 등산의 경험이 있었지만 용현이는 이런 산행이 처음이었다.</p>
<p>나와 박창희는 비록 연대 전기과 졸업 수학여행을 빼먹고 간 것이었지만,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그 산행은 일생을 통해 길이 남을 추억거리가 되었다. 당시는 color film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라서 거의가 흑백의 사진으로 그 추억이 담겼다. 그 당시 우리들이 좋아했던 <strong><em>Bee Gees</em>의 <em>First of May</em></strong>, 지리산 등반, 그리고 그 속의 세 죽마고우들.. 비록 모두 헤어져 살았지만,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항상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친구들</strong></span>&#8230; 건강하기를 빈다.</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eNbOOvQ-fqk" width="650" height="28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p style="text-align: center;"><strong>First of May</strong>, <em>friends forever</em> day </p>
<p style="text-align: cente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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