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wfw="http://wellformedweb.org/CommentAPI/"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xmlns:sy="http://purl.org/rss/1.0/modules/syndication/"
	xmlns:slash="http://purl.org/rss/1.0/modules/slash/"
	>

<channel>
	<title>재동학교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atom:link href="https://serony.com/ken/tag/%ec%9e%ac%eb%8f%99%ed%95%99%ea%b5%90/feed/"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 />
	<link>https://serony.com/ken</link>
	<description>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38; place, autobio in progress..</description>
	<lastBuildDate>Mon, 09 Feb 2026 14:19:10 +0000</lastBuildDate>
	<language>en-US</language>
	<sy:updatePeriod>
	hourly	</sy:updatePeriod>
	<sy:updateFrequency>
	1	</sy:updateFrequency>
	<generator>https://wordpress.org/?v=7.0</generator>

<image>
	<url>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5/08/cropped-2014-07-01-10.08.14-2-32x32.jpg</url>
	<title>재동학교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link>https://serony.com/ken</link>
	<width>32</width>
	<height>32</height>
</image> 
<site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71724475</site>	<item>
		<title>우수, 오늘이 우수란다</title>
		<link>https://serony.com/ken/2025/02/18/%ec%9a%b0%ec%88%98-%ec%98%a4%eb%8a%98%ec%9d%b4-%ec%9a%b0%ec%88%98%eb%9e%80%eb%8b%a4/</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25/02/18/%ec%9a%b0%ec%88%98-%ec%98%a4%eb%8a%98%ec%9d%b4-%ec%9a%b0%ec%88%98%eb%9e%80%eb%8b%a4/#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ue, 18 Feb 2025 23:28:03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雜記]]></category>
		<category><![CDATA[계절]]></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category><![CDATA[재동학교]]></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serony.com/ken/?p=25947</guid>

					<description><![CDATA[오늘이 &#8216;우수&#8217;란다.. 빗물 雨, 물 水.. 2월의 눈발이 아니고 빗물이란 소린가? 어릴 적 이 계절이름을 듣고 떠오른 생각은 한완수의 형 이름 &#8216;한우수&#8217;가 먼저 떠오르는데.. 어린 시절 새 단어가 나오면 동음 이어 를 떠올리곤 했는데 그 당시는 한우수라는 이웃집 형의 이름과 연관이 되었던 것,  참, 향수와 추억 그리고 기억은 무섭구나&#8230; 재동국민학교 동창 한완수보다 그의 형 한우수,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오늘이 &#8216;우수&#8217;란다..</span> 빗물 雨, 물 水.. 2월의 눈발이 아니고 빗물이란 소린가? 어릴 적 이 계절이름을 듣고 떠오른 생각은 한완수의 형 이름 &#8216;한우수&#8217;가 먼저 떠오르는데.. 어린 시절 새 단어가 나오면 동음 이어 를 떠올리곤 했는데 그 당시는 한우수라는 이웃집 형의 이름과 연관이 되었던 것,  참, 향수와 추억 그리고 기억은 무섭구나&#8230; 재동국민학교 동창 한완수보다 그의 형 한우수, 그들은 어떤 생애를 살았고 살고 있을까?<br />
특별하게, 예외적으로 추운 날씨가 뉴스로 느껴지는 2월 하순 입구, 며칠 후에는 20도 대로 추워진다고&#8230; 언제나 이런 식의 2월이었지만 대부분 또 이런 사실을 잊고 살아서 그런지 새롭기만 하구나. 사실 자주 3월 중에도 엄청난 추위와 눈이 오기도 했었지 않았나?<br />
난방비용이나 쓰러지는 나무들 걱정 이외, 크게 상관할 것도 없고, <i>Ozzie</i>는 산책의 즐거움이 추위의 괴로움과 비교가 되지를 않으니 그것도 OK.. 나는 이런 &#8216;날씨 뉴스&#8217;의 시간을 은근히 즐기는 편이어서 그것도 문제가 없고&#8230; 추억의 상대로도 멋진 기억들 뿐이니 오히려 즐기는 편&#8230; 그래 즐기자, 즐기자..</p>
<p><span style="font-size: 14pt;">어제 경운합창단에서</span> 이兄이 했던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나이 특히 우리들의 나이를 사는 사람들의 행복함은 나이의 숫자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예로 이형이 현재 &#8216;행복에 부족한 여건이 거의 없다&#8217;는 말, 그는 과연 정말 완전한 행복의 여건을 지니며 살고 있는 듯한 말, 조금 부러워진다. 그는 고민거리가 거의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이 정도면 행복하다는 뜻인가&#8230; 그것이 나는 자신이 없는데.. 이형의 성격이 이 정도로 낙천적인지도 모른다. 조금 부럽구나, 부러워&#8230; 나는 상대적으로 &#8216;비관적&#8217;인 성향일 거다. 두 가지 중에서 먼저 &#8216;안 되는 쪽&#8217;을 먼저 걱정하는 삶이었으니까~~</p>
<p><span style="font-size: 14pt;">IMMANUEL KANT&#8230;</span> <br />
언젠가 나는 이곳을 찾을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고 살았다. 교회, 신앙, 과학, 이성, 종교철학, Quantum Physics, metaphysics, Analytic Idealism의 오묘한 단계적 인도로 결국 이곳, 이 &#8216;난해한 주제&#8217;를 바라보게 된 것, 이것은 신비요, 기적이요, 즐거움이다.<br />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무시무시한 이름, 어찌 잊겠는가? 태고적 시절 대학 철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하고 보면 꼭 <em>Kant</em>와 이 이름들이 보이곤 했지.. 조금 깊이 알고 보면 그렇게 해독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들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8216;쉽게&#8217; 알 방법이 흔치 않았으니&#8230; 지금의 <i>Wikipedia</i>가 그 당시에는 없었으니, 이런 책을 보려면 도서관을 꼭 가야만 했던 것, 그것이 20대의 나이에 쉬웠을까&#8230; 철학은 역시 어렵고 먼 곳에 있는 것이었고&#8230;  세월과 나이 듦의 덕분에 결국은 &#8216;이성&#8217;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으니 이것도 작은 은총일 거다.</p>
<p><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48"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6/02/2025-02-18-10.20.39-1.jpg" alt="" width="56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WALK OZZIE, 1.5 마일<br />
</span>오늘 산책, 아침 식사 후 즉시 걸었다. 오늘은 <i>Azalea</i> Apt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i>Sope Creek</i> 까지 갔다가 짧은 코스로 돌아왔다. 아마도 이곳을 찾은 것이 거의 2개월은 되었으리라..</p>
<p><img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49"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6/02/2025-02-18-10.21.11-1.jpg" alt="" width="560" height="315" /></p>
<p><img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50"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6/02/2025-02-18-10.21.45-1.jpg" alt="" width="560" height="315" /></p>
<p>이곳에 오면 1860년대 초 미국역사를 가름하는 남북전쟁 시 <em>Union</em> (Northern) army가 <em>Atlanta</em> (downtown쪽) 를 바라보며 진군할 때 &#8216;도강 渡江&#8217;을 했던 바로 그 지점에 있는 역사적 유물을 다시 읽고 본다. 각종 정치적, 역사적 갈등의 결과로 생긴 전쟁, 현재의 미국의 상황도 그때와 비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놀라운 생각에 미치면 정말 우울해지는데&#8230;</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51"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6/02/2025-02-18-10.21.58-1.jpg" alt="" width="560" height="315" /></p>
<p>건강하고 힘차게 나를 이끌며 걷고 쉬며 줄기차게 자연의 냄새를 맡는 녀석을 보는 것은 나의 행복이요 기쁨이 아닐 수 없구나&#8230; 제발 우리 영원히 같이 살자&#8230;</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52"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6/02/2025-02-18-10.22.35-1.jpg" alt="" width="560" height="315" /></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53"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6/02/2025-02-18-10.24.57-1.jpg" alt="" width="560" height="315" /></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54"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6/02/2025-02-18-10.41.55-1.jpg" alt="" width="56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2pt;"><span style="font-size: 14pt;">집 앞쪽 동산에 홀로 피어난 수선화</span>, 조금 쓸쓸해 보이는구나&#8230; 앞으로 계속 깜짝 강추위 속에서 견디어야 하는데&#8230; 그래도 이 녀석은 추위에 강하다고 하니까..</span></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955"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6/02/2025-02-18-16.42.46-1.jpg" alt="" width="56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관절통증 후유증이 거의</span> 사라진 듯한 녀석, 보기에도 편하고 즐겁다. 밥도 거뜬히 맛있게 먹는다. 나이를 생각해서 항상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이렇게 &#8216;소강&#8217;을 주셨으니&#8230; 녀석, <i>Ozzie</i>야 그날까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자꾸나..</p>
<p><span style="font-size: 14pt;">오늘은 오랜만에 family room에서</span> 녀석과 함께 포근한 이불을 덮고 늦은 낮잠까지 청하며 <i>Kant/Hegel</i> video, <i>Gary Cooper</i> 주연의 <i>Croak &amp; Dagger</i>란 1946년  classic 흑백영화까지 편하게 보았다. 누워서 잠을 청하며 drama video를 보는 것,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데&#8230; 잠에 완전히 빠지지 않고 보는 이런 것들은 독특한 점이 있는데.. 그 보는 영상물이 꿈을 꾸는 듯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100% 생시, 온 정신을 가지고 보는 것과 확실히 다른 기억으로 남는데&#8230; 간단히 말하면 &#8216;신비스런 느낌, 기억&#8217;으로 남는데&#8230; 왜 그럴까, 알 수는 없지만 심지어 영적, 신비스런 이런 것들&#8230;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 것인지&#8230;</p>
<p><span style="font-size: 14pt;">평화방송, <em>Catholic TV</em>,  <em>YouTube</em> 매일미사, 감사와 추억으로~~<br />
</span>4~5년 전에 어쩔 수 없이 보았던 이 평화방송 online holy mass, 오늘 갑자기 성령의 도움으로 다시 보고 참례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작은 기적이 아닐까?<br />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가끔 보는 <i>Boston</i>소재 <i>Catholic TV</i> <em>YouTube</em> channel에서는 아예 주교님 담당하시는 <i>Divine Office</i> (이것의 한글 용어는 무엇인가, 또 잊었다, 봐주라, 이것을 잊으면 안 되지.. 찾았다, &#8216;성무일도&#8217; 다, 성무일도&#8230; ]까지 경청하게 되었으니, 내가 어찌된 일인가? 이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닐 거다. 아니야&#8230; 더 은총을 느끼는 것은&#8230; 이런 것들을 &#8216;다시 찾고 보며&#8217; 가슴에 평화의 강이 서서히 차오르는 것 같은 편안함이 서서히&#8230; 아~ 성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곳이 저의 고향임을 잊고 사는 저를 이끌어주소서~~~</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25/02/18/%ec%9a%b0%ec%88%98-%ec%98%a4%eb%8a%98%ec%9d%b4-%ec%9a%b0%ec%88%98%eb%9e%80%eb%8b%a4/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25947</post-id>	</item>
		<item>
		<title>원서동, 계동, 중앙고, 가회동이 만나는 곳</title>
		<link>https://serony.com/ken/2024/02/01/%ec%9b%90%ec%84%9c%eb%8f%99-%ea%b3%84%eb%8f%99-%ec%a4%91%ec%95%99%ea%b3%a0-%ea%b0%80%ed%9a%8c%eb%8f%99%ec%9d%b4-%eb%a7%8c%eb%82%98%eb%8a%94-%ea%b3%b3/</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24/02/01/%ec%9b%90%ec%84%9c%eb%8f%99-%ea%b3%84%eb%8f%99-%ec%a4%91%ec%95%99%ea%b3%a0-%ea%b0%80%ed%9a%8c%eb%8f%99%ec%9d%b4-%eb%a7%8c%eb%82%98%eb%8a%94-%ea%b3%b3/#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01 Feb 2024 22:56:50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원서동]]></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category><![CDATA[재동학교]]></category>
		<category><![CDATA[중앙고]]></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serony.com/ken/?p=24711</guid>

					<description><![CDATA[조카 은지가 최근에 찍은 듯한 이 camera shot을 보내주었다. 작년 10월 은지의 gift shop이 있던 계동골목을 갔었지만 그 당시 나는 시간이 없어서 이곳, 바로 이곳, 오랜 추억이 어린 &#8216;교차로&#8217;를 가지 못한 대실수를 저질렀다.  1954년부터 1966년 초 까지 이곳을 정기적으로 지나다녔는데, 국민학교 시절 원서동에서 재동국민학교까지, 이후 가회동에서 중앙중고를 다녔던 길, 이곳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머리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4712"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5/07/KakaoTalk_20240201_094113195-1-rotated-e1752964241300.jpg" alt="" width="650" height="747" /><span style="font-size: 14pt;">조카 은지가</span> 최근에 찍은 듯한 이 camera shot을 보내주었다.</p>
<p>작년 10월 은지의 gift shop이 있던 계동골목을 갔었지만 그 당시 나는 시간이 없어서 이곳, 바로 이곳, 오랜 추억이 어린 &#8216;교차로&#8217;를 가지 못한 대실수를 저질렀다.  <br />
1954년부터 1966년 초 까지 이곳을 정기적으로 지나다녔는데, 국민학교 시절 원서동에서 재동국민학교까지, 이후 가회동에서 중앙중고를 다녔던 길, 이곳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머리 속에 남은 예전의 모습은 &#8216;물론&#8217; 개발의 힘으로 모두 깨끗하고 예쁘게 화장은 했지만, 사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추억을 되살리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었으니&#8230;</p>
<p><span style="font-size: 14pt;">확실하지 않지만</span> 아마도 나는 지난 밤 잠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기억이 희미하다는 것은 나의 변명, 위로일 것이고 혹시 꼬박 샌 것은 아니었을까? 잠에서 깨어난 기억이 없으니 분명히 생각을 하며 지샌 것이라면&#8230; 아, 싫다, 왜 이렇게 잠까지 나를 괴롭히는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침 혈압은 극히 정상이 아닌가? 혈압이란 것은 매번 이렇게 예상을 뒤엎는 것인가? <br />
아~ 다시 찾아온 괴로운 생각들이 머리를 채우고 있다. 이 악귀 같은 &#8216;부정적 생각, 슬픈 생각, 우울한 생각들&#8217; 또 나의 새벽시간을 좀먹고 있다. 도망가려고 거의 생각도 없이 electronics parts, breadboard 를 만지며 잊으려 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나를 비하하는 듯한 나의 악마, 이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의 존재를 거의 부정하는 듯한 이 괴물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 도망가려는 마음뿐이니..  정말 어렵고 괴롭고&#8230; 이것이 혹시 성녀 마더 데레사가 겪었다는 기나긴 어두운 밤의 경험이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그 성녀의 고백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싶다.</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24/02/01/%ec%9b%90%ec%84%9c%eb%8f%99-%ea%b3%84%eb%8f%99-%ec%a4%91%ec%95%99%ea%b3%a0-%ea%b0%80%ed%9a%8c%eb%8f%99%ec%9d%b4-%eb%a7%8c%eb%82%98%eb%8a%94-%ea%b3%b3/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24711</post-id>	</item>
		<item>
		<title>분꽃의 추억, Dead Watch Batteries,, Stock/Inflation Woes&#8230;</title>
		<link>https://serony.com/ken/2022/06/26/%eb%b6%84%ea%bd%83%ec%9d%98-%ec%b6%94%ec%96%b5-dead-watch-batteries-stock-inflation-woes/</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22/06/26/%eb%b6%84%ea%bd%83%ec%9d%98-%ec%b6%94%ec%96%b5-dead-watch-batteries-stock-inflation-woes/#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Mon, 27 Jun 2022 00:47:04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가회동]]></category>
		<category><![CDATA[성당]]></category>
		<category><![CDATA[원서동]]></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category><![CDATA[재동학교]]></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20445</guid>

					<description><![CDATA[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backyard엘 나가니 비록 비는 오지 않았지만 진초록의 한여름 모습이 장관이었다. 특히 거의 매일 피어나는 듯한 선인장 하루살이 꽃들, 그리고 근래에 여름에 만발하는 분꽃의 특히 인상적이다. 비록 가뭄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애처롭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자연의 섭리라는데&#8230; 옛날 옛적, 재동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원서동, 가회동 집 앞마당에 피던 각종 꽃들 중에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446"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6-26-06.58.42-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447"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6-26-06.59.28-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span> backyard엘 나가니 비록 비는 오지 않았지만 진초록의 한여름 모습이 장관이었다. 특히 거의 매일 피어나는 듯한 선인장 하루살이 꽃들, 그리고 근래에 여름에 만발하는 분꽃의 특히 인상적이다. 비록 가뭄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애처롭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자연의 섭리라는데&#8230;</p>
<p>옛날 옛적, 재동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원서동, 가회동 집 앞마당에 피던 각종 꽃들 중에 분꽃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나이가 들면서 한번도 볼 수가 없었는데, 몇 년 전 연숙이 그 씨앗을 구해와서 뿌린 것이 지금은 뒷마당에서 여름한철 만발을 하고 있다. 꽃 자체보다 추억이 더 감미로웠지만 오늘 알고 보니 &#8216;한방효과&#8217;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6%84%EA%BD%83">Wikipedia에는 그 쓰임새는 다음과 같이</a> 나온다.</p>
<blockquote>
<p>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한국에서는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고 있다. 꽃에서는 명반을 매염제로 하여 남색에 가까운 색깔의 염료를 뽑을 수 있다. 씨는 가루를 내어 얼굴에 바르는 분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뿌리에는 이수·해열·활혈·소종의 효능이 있어, 한방에서는 자말리근이라고 부르며 소변불리·수종·관절염·대하 등의 치료제로 사용한다.</p>
</blockquote>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448"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6-26-12.46.38-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아침에 손목시계를 차려고</span> 설합에서 꺼내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시간을 보니&#8230; 1시 34분 24초에 멈추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가 고른 것, <em>STÜHRLING ORIGINAL</em> 저렴한 가격에 비해 꽤 고급처럼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왠지 재수가 좋아서 오래오래 문제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벌써 문제가? 구입할 당시 사진으로 본 것보다 실물의 크기가 너무 큰 것에 조금 놀라긴 했는데 금세 적응이 되었고 점점 정도 들기 시작했는데, 아하~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어도 battery문제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8230; 근래에는 electric car, mobile devices 등으로  더욱더 battery가 필수적 제품 요소가 되는 듯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찍 멈춘 것은 조금 실망이다. 역시 DIY의 정신으로 내가 battery를 교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8230; 전에 쓰던 <em>VICTORINOX</em>의 battery replacement에서 실패를 한 경험이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서, 이번에는 조금 research를 한 다음 시도하는 것이 좋을 듯하고, 이것이 성공하면 <em>VICTORINOX</em>도 재도전해보는 것은 어떨지&#8230; 그것이 성공하면 쾌재를 부를 것인데&#8230;</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지난 주일미사에</span> 가지 못한 것 때문인지 오늘의 주일미사가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졌으니&#8230; 장기간 냉담 신자들이 다시 돌아올 때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옛날에 나도 그랬으니까.. 정든 우리자리도 정겹게 보이고 특히 우리 주변의 고정멤버들의 동향도 관심이 간다.</p>
<p>특히 우리 바로 뒷자리의 고정멤버 자매님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름도 세례명도 모르지만 이제는 눈인사를 넘어서 정식으로 인사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 자매님은 어떤 교우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는데 물론 시간이 더 지나가면 자연히 의문은 풀어질 것이다.</p>
<p>아가다 자매님 그룹과 두 명의 베로니카 자매님들, 같이 어울리며 아침 coffee를 마셨지만, 역시 나는 조금 외롭기도&#8230; 남자라서 그런 것보다 얘기 상대가 없는 듯 느껴지는 것.  이것도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에 현재의 상황으로 만족하기로 했다.</p>
<p><span style="font-size: 14pt;">예외적으로 오늘은</span> 돌아오는 길에 <em>Sam&#8217;s Club</em>엘 들렸다. 명목상 &#8216;우유&#8217;를 사려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다른 &#8216;필수품&#8217;들도 몇 개를 사긴 했다. 이제는 &#8216;술과 단 것들&#8217;을 안 사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나는 살 것이 없었지만 AAA battery는 앞으로 필요한 것들이라 $20 넘는 것, shelf life가 10년을 보증한다는 문구를 보고 사버렸다. 이것은 두고두고 쓰게 될 것이라서 과용한 것은 아니다. 미친듯한 소비품 inflation이 이제는 신경이 쓰이는 것이라서 cash를 쓰는 것도 따라 신경이 쓰인다.</p>
<p>오늘 coffee 모임에서 안나자매가 &#8216;주식시장이 엉망,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졌다&#8217;고 걱정하는 얼굴에서 비로소 현재의 경제동향의 흐름을 느끼게 되었다. 전문적으로 장기투자에만 전념하는 그들 &#8216;주식부부&#8217; 가 그런 걱정한다는 것은  정말 문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도 긴축 긴축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무엇을 사고 무엇은 절약해야 하는지 조금 심각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22/06/26/%eb%b6%84%ea%bd%83%ec%9d%98-%ec%b6%94%ec%96%b5-dead-watch-batteries-stock-inflation-woes/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20445</post-id>	</item>
		<item>
		<title>김정훈 부제의 행복한 고민</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9/05/04/%ea%b9%80%ec%a0%95%ed%9b%88-%eb%b6%80%ec%a0%9c%ec%9d%98-%ed%96%89%eb%b3%b5%ed%95%9c-%ea%b3%a0%eb%af%bc/</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9/05/04/%ea%b9%80%ec%a0%95%ed%9b%88-%eb%b6%80%ec%a0%9c%ec%9d%98-%ed%96%89%eb%b3%b5%ed%95%9c-%ea%b3%a0%eb%af%bc/#comments</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Sun, 05 May 2019 02:37:26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Reviews]]></category>
		<category><![CDATA[재동학교]]></category>
		<category><![CDATA[책]]></category>
		<category><![CDATA[천주교]]></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5400</guid>

					<description><![CDATA[오랜 만에 &#8216;초록색 책&#8217;을 나의 눈과 손에 가까운 곳에 두었다. 빌려온 지 꽤 시간이 지난 책, 이거 혹시 너무나 오래된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되었다. &#8216;대출기간 초과 과태료&#8217;가 붙지는 않을까.. 하지만 &#8216;나이든 어르신&#8217;을 상식적으로 &#8216;봐 주는&#8217; 우리 고마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도서실 관리자 자매 형제님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8216;그래 더 가지고 보자&#8217;, 걱정을 접는다. &#8216;山 바람 하느님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오랜 만에 &#8216;초록색 책&#8217;을</span> 나의 눈과 손에 가까운 곳에 두었다. 빌려온 지 꽤 시간이 지난 책, 이거 혹시 너무나 오래된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되었다. &#8216;대출기간 초과 과태료&#8217;가 붙지는 않을까.. 하지만 &#8216;나이든 어르신&#8217;을 상식적으로 &#8216;봐 주는&#8217; 우리 고마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도서실 관리자 자매 형제님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8216;그래 더 가지고 보자&#8217;, 걱정을 접는다.</p>
<p><a href="http://serony.com/ken/2016/01/17/%E5%86%8A-%E5%B1%B1-%EB%B0%94%EB%9E%8C-%ED%95%98%EB%8A%90%EB%8B%98-%EA%B7%B8%EB%A6%AC%EA%B3%A0-%EB%82%98/">&#8216;山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8217;</a>.. 초록색의 표지는 고 김정훈 부제의 그림에서 온 것이라 더 친근감이 간다.  1978년 유학 중 오스트리아의 어떤 산에서 실족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던 나의 재동국민학교 동기&#8217;반&#8217; 동창, 김정훈 부제의 유고집, 몇 년 전에 빌려와서 <a href="http://serony.com/ken/2016/06/13/%eb%8f%85%ed%9b%84%ea%b0%90-%e8%ae%80%e5%be%8c%e6%84%9f-%ec%82%b0-%eb%b0%94%eb%9e%8c-%ed%95%98%eb%8a%90%eb%8b%98-%ea%b7%b8%eb%a6%ac%ea%b3%a0-%eb%82%98-part-1/">&#8216;독후감&#8217; [첫 편]</a>을 남긴 적도 있었고 이후 계속 읽으며 후편을 쓰려고 했지만 &#8216;세월의 마술&#8217;로 성사가 되지 못했다. 대신 이런 식으로 눈에 띌 때마다 가끔 읽기를 계속한 지 몇 년이나 되었나?</p>
<p>오늘 우연히 펼친 1975년 마지막 부분의 일기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한마디로 정훈이의 &#8216;행복한 고민&#8217;이라고 할까&#8230; 이 일기를 통해서 얼마나 정훈이가 한국천주교회의 기대와 희망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을 하게 되었다. 본인이 그것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이렇게 부담으로 느껴졌던 것.. 나는 &#8216;행복한 고민&#8217;이라고 했지만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항상 &#8216;공부를 잘 하는 학생&#8217;이었기에 칭찬도 그렇게 기쁘지 않을지도 모른다.</p>
<p>정훈이가 사고로 그렇게 일찍 타계를 안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히 그는 한국천주교회의 &#8216;거목&#8217;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 실린  김수환 추기경의 &#8216;추도사&#8217;를 보아도 그가 얼마나 한국교회의 촉망과 기대를 받았었는지 이해가 간다. 애석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하느님은 그를 그렇게 일찍 데려가셨을까&#8230; 분명히 무슨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8230;</p>
<p>&nbsp;</p>
<hr />
<blockquote>
<p>12월 2일 (1975년)</p>
<p>&nbsp;</p>
<p>나는 별제(別製)된 인간이고 싶지 않다.</p>
<p>그냥 가만히 놔둔 그런 완전히 보통 사람이고 싶다. 모든 이들의 감시 속에서 &#8211; 자신은 엉망으로 감당 못 하면서 &#8211; 별나게 고고해야 하고, 상냥한 행동거지, 우아한 품위를 지닌&#8230;</p>
<p>모든 이들이 저 아래에서 쳐다보면서 저희들끼리 냉소하며 비웃음과 욕설로 나를 샅샅이 훑어내어 분해하려 한다.</p>
<p>아! 나는 그런 별제된 인간이고 싶지 않다. 무조건,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p>
<p>엄청난 철학의 이론 &#8211; 신학의 체계 &#8211; 학문의 상아탑, 한국 교회의 기둥, 서울 교구의 인재,</p>
<p>&#8220;장래를 걸고 우리 모두에게 줄 복음을 연구하러 유학갔대. 훌륭히 되어 돌아와서 우리에게 굉장한 걸 줄 거야.&#8221;</p>
<p>아! 당장 앞에 다가온 세미나, 그게 도대체 뭐냐?</p>
<p>나는 미사 드리는 사람보다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하느님을 모르겠다는 것은 아니다. 절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 한 톨 밀알을 조심스레 뿌리고, 조그만 의미를 그냥 혼자서 체득하고 싶은 거다. 가만히 혼자서 하느님을 기리고 싶다는 거다. 아! 나는 조용히 모르면 모른다고, 좋은 건 좋다고, 재미있는 건 재미있다고 하고 싶은데&#8230; 왜 모르는 것도 아는 것같이 해야 하고, 좋은 것도 내색을 해서는 안 되고, 재미있을 때도 웃으면 안 된다는 건가?</p>
</blockquote>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9/05/04/%ea%b9%80%ec%a0%95%ed%9b%88-%eb%b6%80%ec%a0%9c%ec%9d%98-%ed%96%89%eb%b3%b5%ed%95%9c-%ea%b3%a0%eb%af%bc/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2</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5400</post-id>	</item>
		<item>
		<title>First of May, 2019</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9/05/01/first-of-may-2019/</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9/05/01/first-of-may-2019/#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02 May 2019 01:41:14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연세대]]></category>
		<category><![CDATA[원서동]]></category>
		<category><![CDATA[재동학교]]></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category><![CDATA[친구]]></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5397</guid>

					<description><![CDATA[창희야, 용현아 또 일 년이 흘렀구나.. &#160; &#8216;말대가리&#8217; 용현아, &#8216;박하사탕&#8217; 창희야.. 또 일년이 흘렀구나. 먼지가 뽀얗게 거리를 덮었던 그 시절 무언가 건설의 굉음 속에서 하루가 모르게 변하던 우리의 거리, 서울거리를 누비던 시절.. 그것도 5월의 서울 퇴계로 거리와 칠흑같이 어둡던 지하다방에서 듣던 불후의 명곡들, classic pop 그 중에서도 어떻게 Bee Gees의 first of may를 잊을 수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eNbOOvQ-fqk?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창희야, 용현아 또 일 년이 흘렀구나..</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8216;말대가리&#8217; 용현아</span>, &#8216;박하사탕&#8217; 창희야.. 또 일년이 흘렀구나. 먼지가 뽀얗게 거리를 덮었던 그 시절 무언가 건설의 굉음 속에서 하루가 모르게 변하던 우리의 거리, 서울거리를 누비던 시절.. 그것도 5월의 서울 퇴계로 거리와 칠흑같이 어둡던 지하다방에서 듣던 불후의 명곡들, <em>classic</em> pop 그 중에서도 어떻게 <em>Bee Gees</em>의 <em>first of may</em>를 잊을 수 가 있으랴&#8230; 이제는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곳이 되었지만, 그래도 뇌 세포가 아직도 그 당시로 꿈속에서나마 보고 느끼게 해 준다.</p>
<p>지난 일년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구나. 창희야 LA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상상은 간다만 용현아, 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구나. 재동학교, 휘문중고교, 건국대 를 통해서 찾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제는 늦어가고 있다는 생각뿐이다. 그래 늦었어&#8230; 상상과 추억 속의 너희들 모습이 나는 사실 더 매력적이니까..</p>
<p>나의 지난 일년이 이곳에 &#8216;적나라&#8217;하게 남아 있지만 그래도 나는 &#8216;진화&#8217;하고 있다는 자부감으로 산다. 나의 북극성은 분명히 같은 곳에 있고 나는 그것을 한번도 놓치지 않고, 잊지 않고 방향을 잃지 않으며 산다. 그것이 나의 나머지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래.. 그것이 바로 &#8216;희망&#8217;이란 것.. 그것만 놓치지 않으면 내가 태어난 생의 의미는 확실히 구현된다고 믿는다.</p>
<p>그래.. 우리의 50년 전의 아름다운 추억이 머리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 희망은 항상 있는 거야.. 나는 믿는다. 모두들 건강하게 살기를&#8230;</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9/05/01/first-of-may-2019/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5397</post-id>	</item>
		<item>
		<title>5月 &#8211; 千鏡子</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8/05/15/5%e6%9c%88-%e5%8d%83%e9%8f%a1%e5%ad%90/</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8/05/15/5%e6%9c%88-%e5%8d%83%e9%8f%a1%e5%ad%90/#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ue, 15 May 2018 18:00:12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재동학교]]></category>
		<category><![CDATA[중앙고]]></category>
		<category><![CDATA[책]]></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3485</guid>

					<description><![CDATA[주로 1980년대 책들, 그것도 거의 &#8216;대한민국&#8217;에서 출판된 책들만 꽂혀있는 bookshelf 가 우리 집에 하나 있다. 거의 &#8216;고서&#8217;에 가깝게 된 이 책들은 분명히 우리 주위의 어딘가에 항상 있었겠지만 나의 관심과 눈을 끈 것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이 책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살 만한 책들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서 &#8216;선물&#8217;로 받은 몇 백 권인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left wp-image-13486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8/06/2018-06-01-13.04.41-1.jpg" alt="" width="252" height="245" /><span style="font-size: 14pt;">주로 1980년대 책들</span>, 그것도 거의 &#8216;대한민국&#8217;에서 출판된 책들만 꽂혀있는 bookshelf 가 우리 집에 하나 있다. 거의 &#8216;고서&#8217;에 가깝게 된 이 책들은 분명히 우리 주위의 어딘가에 항상 있었겠지만 나의 관심과 눈을 끈 것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p>
<p>이 책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살 만한 책들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서 &#8216;선물&#8217;로 받은 몇 백 권인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책을 받았을까? 추억을 더듬어 보니 1990년 전후로 우리가 아틀란타에서 처음 살았던 <em>Norcross</em> 에 있는 <em>Four Seasons</em> 아파트 이웃에서 살았던 &#8216;선경 지상사원&#8217;의 wife가 영구귀국을 하면서 우리에게 준 것이었다. 그 집 아이들 (경윤이와 동생)과 우리 집 아이들이 어울리고, 그 집 wife는 알고 보니 나의 재동국민학교 동창 후배였고, 나의 서울 중앙고 57회 동창 박우윤의 친 동생 임도 알게 되기도 했다.</p>
<p>한글로 쓰인 책을 거의 잊고 살았던 시절에 이렇게 무더기로 얻은 책들, 나는 거의 못 읽고 살았지만 요새 들어서 하나 둘 씩 눈에 뜨이고 어떤 책은 나의 &#8216;필사&#8217; 원본이 되기도 했다. 완전히 잊고 살았던 1980년대 이후의 조국과 그 냄새가 훈훈히 풍기는 고국문화의 정수인 책들, 이제 남은 시간에 하나 둘 씩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p>
<p>오늘 우연히 발견한 책, 천경자 화백의 수필집 &#8216;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8217;, 선명하고 강렬한 색깔의 그림들과 글들, 이제는 이런 &#8216;여자&#8217;의 글들 나도 익숙해 졌다. 그 중에서도 &#8216;5월&#8217;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8216;나에게도 5월에 얽힌 romance 가 있었지..&#8217; 하는 아련한 추억을 찾기도 했다.</p>
<p>&nbsp;</p>
<hr />
<p>&nbsp;</p>
<blockquote>
<p><span style="font-size: 18pt;"><strong>5월 &#8211; </strong>천경자</span></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left wp-image-13487"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8/06/Scan10138-1.jpg" alt="" width="192" height="287"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8/06/Scan10138-1.jpg 256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8/06/Scan10138-1-201x300.jpg 201w" sizes="auto, (max-width: 192px) 100vw, 192px" />라일락이 향기를 잃어 버린 밤이다. 장미가 부풀었던 가슴을 헤치고 이제 요염한 자세를 일으키는지 화사한 날개로 숨소리를 덮는 듯 짓눌러 오는 밤, 내 심장의 고동이 어둠 속에서 이따금 날개를 터는 십자매(十姉妹)의 동작과 더불어 호수의 파동처럼 주름을 잡는다.</p>
<p>고요하고 화려한 환상도 무너지고 시든 라일락의 영혼마저 증발하는 것 같은 쓸쓸한 5월의 밤이다.</p>
<p>이렇듯 식물성(植物性)의 생명들이 시들어 가고 또 새로운 생명을 노래도 하고&#8230;</p>
<p>5월의 생리(生理)는 슬픔과 환희를 한꺼번에 쏟아 놓는다. 이 밤도 가고픈 옛날의 논두렁 길에선 개구리들이 녹색의 소리로 울어대고 있을 것인데 덧없는 인생이 취한 내 가슴엔 이슬 같은 것이 괴고 있다.</p>
<p>5월은 인생에서 어떤 피하지 못할 인과(因果)를 지어 주는 것 같다. 지열(地熱)에 익은 포플라가 상기한 풋냄새를 피우고 태양의 직사(直射)를 받아 떨어뜨린 선명한 그림자에 바람이 깃들면 5월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알지 못할 5월의 회화(會話)에 귀를 기울이고 풀지 못할 인과에 마음을 태워야 한다.</p>
<p>나는 5월이 오면 옛날의 추억을 더듬어야 했고, 내일을 위해서 화필(畵筆)을 들어야 했다.</p>
<p>5월을 불러 누구나 다 아름답다고 한다. 꽃들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견주는 것도 5월이요, 신록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것도 5월이고 보면 5월의 자연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p>
<p>그러나 그 아름다움들은 여인들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그리고 눈물도 얼마나 괴이게 했는지 모른다.</p>
<p>옛날 젊은 시절 어느 5월에 나는 여인네들끼리 가족적으로 들놀이를 가는데 권함을 받아 바람을 쐬러 따라간 일이 있었다. 지금 같으면 소풍을 갔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p>
<p>그 무렵 나는 인생의 시련 같은 것을 단단히 믿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p>
<p>어떤 인연의 줄기가 나의 운명 앞으로 뻗어왔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p>
<p>여인네들 가운데는 인텔리 오뎅집 마담 형제 일행과 인생면에서 나와 비슷한 환경의 직업 여성인 Y양도 나처럼 &#8216;옵서버&#8217; 격으로 얼굴을 내놓고 있었다.</p>
<p>나무 위로 무척이나 왕개미 떼가 올라가는 송림(松林)의 구릉(丘陵)이 목적지었던가 그들과 나는 거기에 올라가서 잡초가 무성한 어느 무덤 위에 앉았었다.</p>
<p>화제는 어느덧 막연한 사랑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나중엔 두 여인이 서로 제각기 자기가 사모한다는 것보다 상대의 이성(異性)이 자기를 사모하여 늘 전화가 걸려온다는 등 아베크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등의 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야기라기보다 자기 자랑을 하는 것으로 그들의 표정은 해당화처럼 활짝 피어 있는 것이었다. 여인들이 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있던 상대방 주인공은 아마도 동일한 남성인 것 같았고 Y양의 것이 농도가 더 짙은 모양이었다.</p>
<p>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뒤로 구릉을 내려와 논두렁에서 와글거리는 개구리를 수십 마리 잡아서 손수건에 싸 들었다.</p>
<p>그 후 그 개구리들은 나의 화재로서 희생이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그 여인네들의 대화가 잊혀지지 않고, 그때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얘기의 주인공은 나의 애인이었기 때문이다.</p>
<p>나는 그때 개구리에 대해서 나의 슬픔을 호소(呼訴)하고 싶지는 아니했지만 개구리들의 녹색의 울음 소리가 나의 심경을 한결 더 구슬프게 울려 주었다. 나는 어쩐지 5월이 오면 개구리의 울음 소리와 함께 마음이 설렌다.</p>
<p>그러나 나는 이 밤에 시든 라일락의 향기를 슬퍼만 할 수는 없다.</p>
<p>내일 아침이면 화사하게 피어났을 장미의 붉은 정열과 견주기 위해서 이 밤이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p>
</blockquote>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8/05/15/5%e6%9c%88-%e5%8d%83%e9%8f%a1%e5%ad%90/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3485</post-id>	</item>
		<item>
		<title>First of May, 2018</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8/05/01/first-of-may-2018/</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8/05/01/first-of-may-2018/#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Wed, 02 May 2018 00:20:13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원서동]]></category>
		<category><![CDATA[재동학교]]></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category><![CDATA[친구]]></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3261</guid>

					<description><![CDATA[창희야, 용현아 그립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160; May Day friends: 손용현, 박창희&#8230; 용현아, 창희야.. 2018년 5월 1일 다시 한번 정다운 이름들을 조용히 불러본다. 또 일년이 흘렀구나. 또한 우리들 우정의 원년 元年 1970년 5월, 48년 전 &#8220;우리들의 오월&#8221;로부터는 거의 반세기가 지나가고 있구나. 이제 2년 뒤면 정확히 반세기&#8230; 참 우리는 오래 살아왔다. 지나간 일년 너희들 어떻게 지냈는지 이제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eNbOOvQ-fqk?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창희야, 용현아 그립구나.. 행복하게 살기를..</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May Day friends: 손용현, 박창희</span>&#8230; 용현아, 창희야.. 2018년 5월 1일 다시 한번 정다운 이름들을 조용히 불러본다. 또 일년이 흘렀구나. 또한 우리들 우정의 원년 元年 1970년 5월, 48년 전 &#8220;우리들의 오월&#8221;로부터는 거의 반세기가 지나가고 있구나. 이제 2년 뒤면 정확히 반세기&#8230; 참 우리는 오래 살아왔다. 지나간 일년 너희들 어떻게 지냈는지 이제는 전혀 &#8216;감&#8217;이 잡히질 않고 그림도 그려지지 않으니..  지금 어떤 모습의 얼굴들인지도 모른다. 그저 너희들의 이름과 반세기 전의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만 생생하게 기억할 뿐이다.</p>
<p>너희들은 일년가량 기다려야 하지만 나는 올해 먼저 70이라는 고개를 넘어섰으니 우리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8216;남아있는 미지의 세월&#8217;을 탐험하게 될 듯하다. 몸만 제대로 도와준다면 우리가 앞으로 맞을 이 시간들은 우리들이 70년을 살아온 경험으로 멋진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너희들의 영육간의 건강상태는 전혀 모르지만 나 자신은 최소한 그런대로 영육적으로 &#8216;정상적, 양호한 상태&#8217;라고 말하고 싶다.</p>
<p>1970년 5월과 2018년 5월.. 그 사이에 무엇이 변했을까 새삼스럽게 물어본다. 20이 갓 넘은 시절에서 칠순을 넘은 것도 그렇지만 그 동안 세상도 참 많이 변했구나. 그렇게 찬란했던 당시의 5월의 기억이 이제는 전처럼 찬란하지 않으니 기억력의 한계인 듯 하다. 이제 너희들이 살아온 흔적이나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 것, 그런 것에 더 이상 호기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이제 와서 그렇게 중요할까? 나에게는 그 &#8216;눈물 없던 시절&#8217;만 기억할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족할 것이다. 내년의 5월 1일은 어떤 것인지 그것이 더 궁금할 뿐이다.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다오, 친구들아.</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8/05/01/first-of-may-2018/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3261</post-id>	</item>
		<item>
		<title>교동학교 , Only God &#038; Spring roll</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8/04/07/%ea%b5%90%eb%8f%99%ed%95%99%ea%b5%90-only-god-spring-roll/</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8/04/07/%ea%b5%90%eb%8f%99%ed%95%99%ea%b5%90-only-god-spring-roll/#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Sun, 08 Apr 2018 00:16:45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생일]]></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성당]]></category>
		<category><![CDATA[아틀란타]]></category>
		<category><![CDATA[재동학교]]></category>
		<category><![CDATA[친구]]></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3228</guid>

					<description><![CDATA[¶  교동학교 형제  Birthday Party Hangover: 새로 사귄 형제친구, 서울에서 아래 윗동네에 위치한 두 국민학교를 같은 시기에 다니던 동갑을 만난다는 것은 나의 경험으로 참 희귀한 일 중에 하나다. 몇 년 전에 성당에서 우연히 돼지띠 동갑도 만났던 즐거운 경험이 있었지만 곧 헤어지게 되어서 너무 아쉽기만 했다. 왜 이렇게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없을까 의아했는데 의문이 풀렸다. 알고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  교동학교 형제  Birthday Party <em>Hangover</em>:</span> 새로 사귄 형제친구, 서울에서 아래 윗동네에 위치한 두 국민학교를 같은 시기에 다니던 동갑을 만난다는 것은 나의 경험으로 참 희귀한 일 중에 하나다. 몇 년 전에 성당에서 우연히 돼지띠 동갑도 만났던 즐거운 경험이 있었지만 곧 헤어지게 되어서 너무 아쉽기만 했다. 왜 이렇게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없을까 의아했는데 의문이 풀렸다. 알고 보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공동체 이곳 저곳에 적지 않게 그들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였다. 내가 그들을 못 찾은 것이고, 대부분은 신심단체가 아닌 친교단체에 속해 있었기에 그 동안 그들이 &#8216;숨어 보였던&#8217; 것이다.</p>
<p>사람은 왜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나이고하 高下 를 막론하고 잘도 어울리던데, 나는 그것이 체질적으로 불편한 것.. 자라난 환경 때문인가?  작년에 &#8216;우연인지 필연인지&#8217; 알고 &#8216;입회&#8217;를 한 60+ group 등대회, 나에게는 한마디로 awakening 같은 것이었다. &#8216;다른 세계&#8217;를 보는 듯한 그 느낌, 아직도 계속되는 것이며 나는 사실 &#8216;즐거운 우려&#8217;의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p>
<p>동갑류 형제, 자매들을 &#8216;무더기&#8217;로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 timing이 아주 좋았다. 명색이 신심단체라는 곳에서 ugly하고 극단적인 위선을 통째로 경험을 했기에 아예 내숭떠는 모습이 훨씬 적은 친교단체에 신선함을 느끼게 되어서 그런가?</p>
<p>서울 종로구의 노른자위에 위치했던 국민학교, 교동학교 출신, 그것도 동갑의 형제님을 이곳에서 만난 것,  오랜만에 가물에 단비가 내린 듯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내가 다니던 재동국민학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같은 때, 비록 짧았던 시절이었지만 같이 뛰고 놀고 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나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뒤 덮인다.</p>
<p>교동국민학교는 나의 원서동 죽마고우 유지호와 &#8216;시자 누나&#8217;가 다녔고,  천도교 건물, 덕성여대, 우리들의 &#8216;문화전당&#8217;, 문화극장이 바로 앞에 있어서 사실 그 시절 그 주변의 광경들은 꿈에서도 나타날 정도로 익숙한 곳이었다.</p>
<p>나는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꼭 &#8216;어느 국민학교 나왔느냐&#8217; 는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을 하곤 해서 어떤 사람들은 웃기도 한다. 중 고교나 대학교를 묻는 것은 당시의 &#8216;입시지옥&#8217; 풍토를 생각하면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국민학교는 전혀 문제가 없는<sup class='footnote'><a href='#fn-13228-1' id='fnref-13228-1' onclick='return fdfootnote_show(13228)'>1</a></sup> 순진한 화제가 아닐까?</p>
<p>이렇게 새로 만난 &#8216;교동형제님&#8217; 의 칠순 생일 party에서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푸짐한 음식, 술, 얘기를 즐겼는데.. 문제는 남자들만 앉았던 table에서 &#8216;예의 정치, 시사토론의 함정&#8217;에 빠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술을 평소보다 더 마셨던지, 그 다음날은 하루 종일 멍~한 기분으로 &#8216;반성, 자숙&#8217;의 날로 보냈다. 피곤하긴 했지만, 동갑류 모임의 즐거움은 아직도 잔잔히 남고, 무척 오랜만에 느끼는 것, fraternity 형제애, 남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정은 여자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하고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또 오면 적극적으로 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  <em>Only</em> God &amp; Time:</span>  지난 목요일은 4월 첫 목요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저녁 미사 후에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성시간</span>이 있는 날이었고 연도가 있던 날이었다. 전날 &#8216;음주&#8217;의 여파로 꼼짝하기 싫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8216;나가라, 나가라..&#8217; 하는 음성이 계속 들리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이날은 빠질 수가 없었다. 미사나 성시간을 그렇다 치고 연도는 빠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p>
<p>이날 연도는 20대 중반의 한창 나이에 &#8216;요절 夭折&#8217;을 한 청년을 위한 것이었다. 그 젊은 나이로 잠자는 중에 사망을 했다는 사실이 사실은 정말 믿기 힘든 것이었다. 사연이야 어떻다 치고 그 부모들의 심정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사고, 사고 하지만 이런 사고는 부모로써 정말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나의 딸이 이런 일을 당했다는 끔찍한 상상은 사실 상상을 하기도 벅찬데..</p>
<p>이 부모님들은 사실 우리가 아틀란타로 내려오기 전에 잠깐 살았던 <em>Madison</em> (Wisconsin)에 사셨다고 해서 반가웠다. 물론 우리가 그곳을 떠난 후부터 그곳에 사셨고, 같은 한인성당에도 다녀서 우리가 알고 지내던 분들을 많이 알고 계셨던 인연이 있다.</p>
<p>작년 이맘때에도 비슷한 사고로 아드님을 잃었던 자매님이 있어서 연도를 했지만 사실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연도의 위력은 참 대단한 것인가.. 그렇게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지만 유족들도 마찬가지라 생각 되었다. 그저 생각한다&#8230; 왜 그런 고통이.. 그래서 하느님만이 &#8216;왜?&#8217; 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는 것, 또한 하느님의 선물인 &#8216;시간&#8217;이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참, 사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것인가?</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  <em>Spring roll</em> &amp; wine,  <i>Impromptu</i> style:</span> 어제는 성당 휴무관계로 연기된 레지오 주회합이 있던 날이었다. 화요일에서 금요일로 바뀐 것은 이미 전에 경험을 해서 별로 다른 느낌이 없는 것인데, 어제는 조금 달랐다. 정오 미사 후 맛있고 푸짐한 점심<sup class='footnote'><a href='#fn-13228-2' id='fnref-13228-2' onclick='return fdfootnote_show(13228)'>2</a></sup> 생각을 하며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다른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는 아주 희귀한 것이다. 저녁 초대를 받기는 해도 평일에 점심초대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p>
<p>성당에 부부신자는 많지만 항상 같이 다니는 case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이 couple이 그 중에 하나다. 우리보다 나이는 한참 밑이지만, 그 동안 우리와 그런대로 &#8216;웃는 모습&#8217;으로 대하던 부부, 요새 보면 전 보다 더 사이가 좋아 좋아 보여서 보기에도 좋았다. 자매님은 본당의 각종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고, 신심은 참 부러울 정도다.</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3232"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8/04/spring-roll-1.jpg" alt="" width="650" height="249" /></p>
<p>&nbsp;</p>
<p>전에는 성당 근처에 살았지만 년 전쯤 비교적 먼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도 불구하고 자주 보는 부부, wife끼리 우연히, 그야말로 impromptu, 지나가는 말로 같이 점심을 먹자고, 그것도 자기의 집에서.. 이런 것도 사는 재미가 아닌가? 거창하게 계획 만들지 않고 스쳐가는 생각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과 식사 하는 것.  비교적 drive 하는데 시간을 좀 걸렸지만 멋진 country club 내에 있는 예쁜 집에서 한가하게 <i>Spring roll</i> 과 wine으로 시간을 보낸 것, 두고 두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 될 것이다.</p>
<p>&nbsp;</p>
<div class='footnotes' id='footnotes-13228'>
<div class='footnotedivider'></div>
<ol>
<li id='fn-13228-1'> 하기야 이곳도 그 후에 사립국민학교가 나타나며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8230; <span class='footnotereverse'><a href='#fnref-13228-1'>&#8617;</a></span></li>
<li id='fn-13228-2'> 우리는 평소에 저녁을 안 먹기 때문에 점심이 제일 양이 많고 푸짐하다. <span class='footnotereverse'><a href='#fnref-13228-2'>&#8617;</a></span></li>
</ol>
</div>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8/04/07/%ea%b5%90%eb%8f%99%ed%95%99%ea%b5%90-only-god-spring-roll/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3228</post-id>	</item>
		<item>
		<title>휴우~ 덥다 더위.. 6월 24일!</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6/06/24/%ed%9c%b4%ec%9a%b0-%eb%8d%a5%eb%8b%a4-%eb%8d%94%ec%9c%84-6%ec%9b%94-24%ec%9d%bc/</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6/06/24/%ed%9c%b4%ec%9a%b0-%eb%8d%a5%eb%8b%a4-%eb%8d%94%ec%9c%84-6%ec%9b%94-24%ec%9d%bc/#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Fri, 24 Jun 2016 21:27:48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Politics]]></category>
		<category><![CDATA[가족]]></category>
		<category><![CDATA[날씨]]></category>
		<category><![CDATA[레지오]]></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육이오]]></category>
		<category><![CDATA[재동학교]]></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category><![CDATA[한국전쟁]]></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1398</guid>

					<description><![CDATA[¶  휴우~ 덥다 더워.. 6월 24일!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은 웃긴다.. 임마 (이런 말 아직도 쓰나?) 6월도 24일이면 한창 여름이 무르익어가는데 그것이 정상이지, &#8216;빠가야로&#8216;! 하는 등뒤의 속삭임에 내가 웃는다. 그렇지, 지금은 더운 것이 정상이지.. 그런데.. 92도 라면.. 어떨까? 아마도 옛날 옛적의 대구더위에 비길 수 있겠지. 며칠 계속된 더위지만 극적으로 때맞추어 &#8216;내가 고친&#8217; 에어컨 바람이 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  휴우~ 덥다 더워.. 6월 24일!</strong></span>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은 웃긴다.. <strong>임마</strong> (이런 말 아직도 쓰나?) 6월도 24일이면 한창 여름이 무르익어가는데 그것이 정상이지, &#8216;<strong>빠가야로</strong>&#8216;! 하는 등뒤의 속삭임에 내가 웃는다. 그렇지, 지금은 더운 것이 정상이지.. 그런데.. 92도 라면.. 어떨까? 아마도 옛날 옛적의 <strong>대구더위</strong>에 비길 수 있겠지. 며칠 계속된 더위지만 극적으로 때맞추어 &#8216;내가 고친&#8217; 에어컨 바람이 더 나에게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럴 때는 물론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오후에 때맞추어 쏟아지는 시원한 소낙비</span>.. 하지만 느낌에 그런 chance는 거의 zero 인가 보다. 아니면 <em>Johnny Rivers</em> 의 60&#8217;s <em>classic</em> oldie, <em>Summer Rain</em>을 연상케 하는 그런 추억의 비는.. 어떨까.. 하지만 이것은 거의 꿈같은 이야기다.</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y6ifoJ2Pb9A?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p style="text-align: center;"><strong>1968년 여름의 추억</strong>, <em>Summer Rain</em> &#8211; Johnny Rivers </p>
<p style="text-align: center;"> </p>
<p>오랜만에 그 동안 바깥 구경을 못하고 살았던 우리 집 두 마리의 &#8216;재미있는 개&#8217; <em>Tobey &amp; Ozzie</em>, 오늘은 내가 더 쳐지기 전에 용감하게 끌고 동네를 돌았다. 거의 할아버지 나이가 된 우리의 개 <em>Tobey</em>가 언덕을 &#8216;새로니의 개&#8217; <em>Ozzie</em>를 앞지르며 나를 끌고 올라간다. 얘는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이 동네 언덕을 나와 걸었기에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모른다. 공을 던지면 총알처럼 뛰어가는 다리가 긴 &#8216;젊은&#8217; <em>Ozzie</em>, 2주째 우리 집에 머물며 자기 엄마 &#8216;<strong>새로니</strong>&#8216;를 거의 잊은 듯 잘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밤에 &#8216;혼자&#8217; 자야만 하는 그 녀석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p>
<p>얼마 전에 이곳을 걸었을 때 내가 열을 받았던 것, <em>TRUMP FOR PRESIDENT, MAKE AMERICA GREAT AGAIN..</em>이란 SIGN이 두 곳에서 나를 자극했던 것.. 오늘도 어김없이 그곳에서 &#8216;빠가&#8217; 트럼프의 &#8216;쌍통&#8217;을 연상시킨다. 이 두 집이 바로 우리동네의 idiots, <em>white</em> trash인 셈이다. 이곳 <em>East Cobb</em> county는 물론 very conservative한 지역이고 전통적으로 &#8216;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8217; 그런 &#8216;잘 사는 <em>Republican</em> white trash&#8217;들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이런 쓰레기 같은 SIGN을 본 것이 당연한 일이건만.. 나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니.. 이건 분명히 내가 over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야말로.. I CANNOT HELP IT.. 어쩔 수가 없다. 도대체 이 덩치 큰, &#8216;젊은&#8217; 나라는 어떤 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덥기만 한 날씨에 더 열을 받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래.. 이래 저래해도..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리라..</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  6월 24일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strong></span>  오늘 평일미사를 가면서 6월 24일이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 (<em>Solemnity of the Nativity of Saint John the Baptist</em>) 임을 매일 복음묵상 &#8216;newsletter&#8217;에서 보고 알았지만, 사실 그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strong>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strong> &#8216;사건&#8217;으로부터 였다. 바로 이날 6월 24일에 발현을 하신 메주고리예 성모님을 이 &#8216;대축일&#8217; 때문에 집에서 쉬던 (놀던) 그 &#8216;애&#8217;들이 본 것이다. 그 당시 이 발현 과정에서 이날이 &#8216;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8217;임을 누누이 밝히고 있었지만 그 때 나는 그 말의 의미조차 잘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금요일 평일 미사엘 가면 분명히 세례자 성 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하는 짧은 강론을 듣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요새 거의 본당신부님 역할을 하시는 방문 신부님 <em>Fr. Joseph</em>, 뜻 밖에도 새로 부임하실 본당 신부님에 관한 얘기를 하며.. 우리의 &#8216;이해&#8217;를 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사연은 물론 본당 <em>Holy Family</em> 성당에 7월 초에 새로 부임할 주임신부님이, &#8216;부인이 있고 가정이 있는 남자&#8217; 라는 우리에게는 &#8216;폭탄&#8217; 같이 느껴지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p>
<p>오늘 방문 신부님의 설명과 &#8216;양해&#8217;는 나도 아는 사실이다. 바티칸에 소속된 모든 가톨릭 &#8216;종파&#8217;들이 모두 다른 Rite를 가지고 있는데 현재 우리의 &#8216;보편 된&#8217; 것이 <em>Latin</em> Rite, 이곳에서는 신부님들이 결혼을 안 하지만 다른 극소수의 종파에서는 성공회같이 결혼을 한다고.. 듣던 얘기다. 이번의 새로 부임할 신부님은 <em>Melkite</em> 에 속한 신부님이라서 신부님들이 결혼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느낌은.. 그래도.. 하필이면.. 왜 그런 &#8216;소수 종파&#8217;의 신부님을 &#8216;주임신부&#8217;로 보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본당 <em>Holy Family</em>는 지역적으로도 보수적이고 <em>Irish</em> Catholic의 전통이 농후한 곳인데..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불만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 중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상상을 하니 아찔하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가족을 주렁주렁 데리고 사제관에서 생활</span>을 하며 가족들과 같이 미사에 들어 온다는 광경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는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구역문제로 우리는 고민에 빠지고</span> 있는 마당에 이번에는 우리의 피난처 같은 미국본당에 부인, 가족을 동반한 주임신부가 온다는 사실.. 참.. 오래 살다 보니..</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  성모님, 좀 봐주세요..</strong> </span> 근래 우리부부와 자주 보게 되고, 예전 보다 조금 더 가깝게 지내는 C 자매님,  순교자 성당에 레지오 member를 중심으로 새로 생긴 <em>Guitar Friends</em> 그룹에도 참여 열심히 guitar도 연습하고, <em>Holy Family</em> 미국본당에서는 거의 매일 미사에 보게 된 멀게도 느껴지고 가깝게도 느껴지는 자매님, stress받는 것이 제일 싫어서 많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피하며 조용히 살지만 할 것은 다 하며 열심히 사는 자매님.. 왜 하느님은 어떻게 그런 병고를 주셨을까. 병고라면 이미 오래 전에 가족을 통해서 겪을 만큼 겪지 않았을까, 공평하지 않은가? 모든 아픔이 아물어가며 어떻게 다시 이런 고통을 보냈을까? 오늘 아침 미사가 끝나며 어제 doctor visit의 결과가 조금 짐작이 되었다. 우리 부부, 너무나 안쓰럽고, 미안하며, 어쩔 수가 없어진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8216;기도를 더 열심해 해야겠군요&#8217; 정도였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이외에 무엇일까.. 늦은 아침을 먹으며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한다. 성모님, 좀 봐주세요&#8230;</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  육이오 6.25, 66년:</strong></span>  66년, 허~ 66년이라.. 여기다 6 하나를 덧붙이면 666가 되는구나. &#8216;악+악+악&#8217;, triple &#8216;악&#8217; 인가? 그래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단어가 육이오, 유기오, <strong>융요</strong>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박정희 대통령의 발음</span>).. 그래, 의식이 살아있는 한 이 단어는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나를 &#8216;움찔&#8217;하게 만들 것이다</span>. &#8220;<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8230;</span>&#8221; 이제는 &#8216;사학자&#8217;들도 총대를 멜 때가 되지 않았나? 미국의 역사 교과서는 현직 대통령도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 놓는데.. 우리나라의 &#8216;병신 사학자님&#8217;들은 어떠신가? 아직도, 아직도 빨갱이 운동권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가?</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6tryQ1fnuxg?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p style="text-align: center;">아직도 귀에 생생한, <strong>육이오의 노래</strong></p>
<p>&nbsp;</p>
<p>요사이 <strong>재동 동창 김정훈 부제</strong>의 유고집 &#8216;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8217; 를 읽고 읽고 읽으며.. 다시 느끼는 것, 나도 나도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아니 육이오가 없었으면, 아니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김일성 개XX가 태어나지 않았으면</span>.. 나의 인생은 아마도 김정훈 부제의 &#8216;<strong>사직동 김판사댁</strong>&#8216;  못지않게 &#8216;<strong>원서동 이정모 교수댁</strong>&#8216; 이란 &#8216;선망의 눈초리&#8217;를 받으며 컸을 지 누가 알랴? 어떻게 육이오의 몇 개월 사이에 한 가정, 한 가족의 운명이 그렇게 뒤집어 질 수가 있을까? 물론 우리보다 더 &#8216;처참한&#8217; 인생의 역전을 겪었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죄 없는 동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고 우리가 아니다. 우리 집은.. 우리 집을 말하는 것이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이 세상이 끝나고 저 세상에 가면 나는 반드시 &#8216;김일성&#8217;을 찾아내리라</span>.. 그 개XX를 찾아 내리라.. 아마도 그 아들 김정일 개XX도 같이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찾기가 힘들 것이 분명히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그들은 지옥에 있기 때문이다</span>.</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6/06/24/%ed%9c%b4%ec%9a%b0-%eb%8d%a5%eb%8b%a4-%eb%8d%94%ec%9c%84-6%ec%9b%94-24%ec%9d%bc/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1398</post-id>	</item>
		<item>
		<title>독후감 讀後感 &#8220;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8221;  Part 1</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6/06/13/%eb%8f%85%ed%9b%84%ea%b0%90-%e8%ae%80%e5%be%8c%e6%84%9f-%ec%82%b0-%eb%b0%94%eb%9e%8c-%ed%95%98%eb%8a%90%eb%8b%98-%ea%b7%b8%eb%a6%ac%ea%b3%a0-%eb%82%98-part-1/</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6/06/13/%eb%8f%85%ed%9b%84%ea%b0%90-%e8%ae%80%e5%be%8c%e6%84%9f-%ec%82%b0-%eb%b0%94%eb%9e%8c-%ed%95%98%eb%8a%90%eb%8b%98-%ea%b7%b8%eb%a6%ac%ea%b3%a0-%eb%82%98-part-1/#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ue, 14 Jun 2016 00:50:44 +0000</pubDate>
				<category><![CDATA[Ideas & Analysis]]></category>
		<category><![CDATA[50/60]]></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재동학교]]></category>
		<category><![CDATA[책]]></category>
		<category><![CDATA[천주교]]></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category><![CDATA[친구]]></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1365</guid>

					<description><![CDATA[2주일 대출기한이 수개월을 지나가면서 이 책을 우선 반납하여야 한다는 stress를 느끼며 이제까지 &#8216;시간이 날 때마다&#8217; 이곳 저곳을 훑어보고, 비교적 가볍게 접한 이 책에서 나의 재동 齋洞 동창, 김정훈 부제에 대해서 알게 되고 느낀 것을 정리한다. 이 책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제일 궁금했던 사실은 정훈이가 어떻게 그렇게 일찍 타계 他界 를 했던가 하는 것보다는 그가 생전에 어떻게 살았는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p.me/p4QWOn-2Rv"><span style="font-size: 14pt;"><strong>2주일 대출기한이</strong></span> 수개월을 지나가면서</a> 이 책을 우선 반납하여야 한다는 stress를 느끼며 이제까지 &#8216;시간이 날 때마다&#8217; 이곳 저곳을 훑어보고, 비교적 가볍게 접한 이 책에서 나의 재동 齋洞 동창, <strong>김정훈 부제</strong>에 대해서 알게 되고 느낀 것을 정리한다.</p>
<figure id="attachment_11373"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1373" style="width: 215px" class="wp-caption alignleft"><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11373"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6/06/Scan10008-2.jpg" alt="신학생 김정훈" width="215" height="249"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1373" class="wp-caption-text">신학생 김정훈</figcaption></figure>
<p>이 책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제일 궁금했던 사실은 정훈이가 어떻게 그렇게 일찍 타계 他界 를 했던가 하는 것보다는 그가 생전에 어떻게 살았는가, 그의 집안, 가족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신앙, 성소를 가지게 되었는지..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가 20대를 훨씬 넘은 시절부터 쓰여진 일기 형식이기도 하고 자기의 생각이 정성스럽게 담겨진 &#8216;문학적 냄새&#8217;가 나는 글로써,  꼼꼼히 &#8216;정독&#8217;을 하지 않는 한 그러한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p>
<p>처음 대강 책을 훑으며 느꼈던 감정은 의외로 반갑지 않는 나의 반응이었다. &#8220;좋은 집안, 머리가 좋은 덕으로 선택된 선망의 대상으로 어려움과 고민 같은 것 별로 없이 유럽 유학 중, 좋아하는 등산을 하다가 조난사고로 운명&#8221;.. 비록 너무나 이른 인생의 비극적인 마감이지만 이러한 피상적인 이력서적인 눈에 쉽게 뜨이는 사실들 만으로는 정훈이 이야기가 왜 이렇게 &#8216;김수환 추기경의 서문&#8217;이 실릴 정도로 큰 화제나 영원히 남을 만한 책으로의 가치가 될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물론 이 책을 계속 읽으며 이것은 나의 &#8216;너무나 성급한&#8217;, 생각임을 알게 된다.</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 &#8220;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8220;</strong></span> 김정훈 유고집의 제목인데.. 과연 이것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이 궁금증은 19 쪽을 보면 간단한 설명이 나온다. 이 대목은 김정훈의 신학교 영적 지도 신부인 <em>Stefan Hofer</em>신부의 추모의 글에 있는데 그 신부님은 김정훈이 조난을 당한 사고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p>
<blockquote>
<p>우리는 별이 총총한 밤에 세르레스(<em>Serles</em>)에 등반하였던 적도 있었다. (중략) 베텔풀프(<em>Bettel Wurf</em>) 정상 정복자가 된 우리는 그 곳의 방명록에 우리들의 이름도 기록하였다. 베드로(김정훈)는 이름뿐만 아니라 한국 말로 무엇인가 썼다. 내가 무엇을 썼는지 그에게 묻자 그는 독일어로 그 밑에 주를 달았다.</p>
<p>&#8220;<strong>산, 바람, 하느님과 나, 김 베드로</strong>.&#8221;</p>
<p>이처럼 베드로는 단순한 산에의 낭만주의뿐만 아니라 그때 그때의 깊은 종교적 느낌 속에서 산을 찾고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p>
</blockquote>
<p>&nbsp;</p>
<p>이런 &#8216;회고&#8217;를 보며 생각한다. 정훈이는 진정으로 산을 사랑하고 등반을 했지만 단순히 산이 좋아서, 산이 그곳이 보이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깊은 종교적 체험을 통한 등반을 더 사랑하였던 듯 싶다. 나도 대학시절 참 산을 많이 찾아 다녔지만.. 어떨까, 종교적인 체험을 하였던 기억이 거의 없음에 정훈이의 나이에 비해 &#8216;성숙한&#8217; 인생체험은 더욱 돋보인다.</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 정훈이의 가족관계는 어떤가?</strong></span> 이것은 사실 기본적인 호기심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재동 동창생이지만 &#8216;공부를 잘 해서 경기중학교에 갔다&#8217;는 사실 이외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재동학교 졸업 후 중학교 시절, 파고다공원 수영장에서 그가 아이(아마도 동생)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던 기억.. 그것이 전부다. 그러니까 남자 동생은 있었을 듯 하다. 이 책에 가족에 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간단히 이곳 저곳에 나오기에 한 눈에, 명확하게 알기는 힘이 들었다. 우선 자신이 묘사한 가정은 204쪽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p>
<blockquote>
<p>사직동 김판사네 가정도 한국에서는 신앙으로 가꾸어진 훌륭한 이상적인 가정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일이 잘 풀려 나가지 않는 면들도 보인다. 아이들이 제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자기가 사리를 스스로 옳게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부모가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들의 인생관과 신앙에 근거해서. 그런데 압도적으로 비중이 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만 손보기가 어려워져 버린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중략) 곧 아버님 돌아가신 지 10년째가 된다. 벌써 그렇게. 강산이 정말로 크게 변했다. 아버지의 그 보화를 캐내어 나눠 줘야 할 큰 책임은 바로 나에게 있는 것이 이 순간 확연해진다. (1975년 3월 10일)</p>
</blockquote>
<p>이 글은 1975년 3월 10일 일기에 나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친구 클레멘스의 가정을 부러워하는 글 뒤에 나온 것이다. 그 친구의 가정이 부러운 이유 중에는 &#8216;아버지가 높은 지위에 있고 건강한 아이들, 높은 교육을 받은 것, 3남 2녀라는 것.. 이런 것과 더불어 잘 화합된 부모의 교육, 그것도 참된 신앙에 의한 것.. 이라는 사실. 아마도 김정훈의 가정도 이에 뒤지지 않았던 이상적인 가정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10년 전에 돌아가신 &#8216;김판사&#8217; 아버님의 비중이 너무나 컸기에 가정은 &#8216;난맥상&#8217;이 드러났다는 판단이다. 그러니까.. 1965년 경에 아버님이 타계를 하셨으니까, 정훈이 경기고 3학년 때였을 것이다. 혹시 그런 충격이 정훈이에게 깊은 성소의 뜻을 남긴 것은 아니었을까? 사회적 지위가 높고, 신앙심이 깊고, 가정을 사랑하는 아버님을 가진 정훈이었다. 아버지 없이 자란 나로써는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히 천주교 가정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천주교인이었을 정훈이네 가정, 혹시 대대로 내려온 &#8216;박해 받았던 가문&#8217;은 아니었을까? &#8216;비중에 컸던 아버지&#8217;에 대한 회고는 이곳 저곳에 나온다.</p>
<blockquote>
<p>나가이 다카시의 &#8216;만리무영&#8217;에서 여러 대목을 읽었는데 느끼는 점이 많다. 우선 그 글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차분하고, 원만하고, 노력을 기막히게 많이 한 신앙인인 것을 알게 해 준다. 내게 특히 좋게 여겨지는 것은 그 글의 분위기와 저자가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진지하고 신념에 찬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그러하고, 어투며 그 상황까지 어쩌면 그렇게 흡사할까. 공감 가는 점이 정말 많다. 자식에 대한 배려, 아내 생각 등도 아버지 경우와 같다. 동시에 그 사람의 아들들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부쩍 동하는데, 많은 사람이 우리 집안이나 나에게 대해 갖는 기대와 주시도 그런 종류일 것이다. 불쌍하신 아버지, 죽음을 앞두고 아내를, 자녀들을 그대로 놔두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슨 생각에 젖으셨을까? 얼마나 우심 憂心 이 크셨을까? (1972년 6월 11일)</p>
</blockquote>
<p>위의 일기에서, 아버지가 권해준 책을 읽으며 그 책의 저자가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8216;좋은 점&#8217;들을 열거한다. 여기서 보아도 그 아버지는 정말로 존경 받을 만한 가장이었음이 짐작이 된다. 일찍 운명을 하신 아버지, 아마도 불치의 병으로 돌아가신 듯하다. 장남일 것 같은 정훈이, 이때부터 아마도 가장으로써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하지 않았을까?</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 20대를 꽉 차게 살아오던 정훈이의 모습</strong></span>,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언행, 성품 등은 어땠을까?</span> 이것은 친구들이 본 것이 아마도 제일 정확한 것이 아닐까? 일찍 타계한 친구를 보내며 친구 대표 &#8216;기헌&#8217;의 &#8216;조사&#8217;에 잘 묘사되어 있다.</p>
<blockquote>
<p>너는 너의 가족들이 기도하며 바랐던 대로, 평소에 너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친구들이 기대했던 대로, 너의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훌륭한 재능과 착하고 인간미 넘치는 성품</span>이 더욱 닦아지고 완성되어 이 한국 교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어야 하는데.. 이제 겨우 서른 해를 넘기고 가다니.. (중략)</p>
<p>너는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순진하고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사람</span>이었어. 너의 신심 생활의 진보는 언제나 앞서 있었고, 너의 정신적인 사고력은 언제나 예리하게 우리를 압도했었지.</p>
<p>책 읽기를 그렇게나 좋아하고, 깊은 명상과 기도의 생활을 너는 얼마나 사랑했었니? 그러면서도 네 마음은 언제나 뜨거운 인정이 넘치고 있었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친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낀 너</span>였는지 우리는 잘 안다. 모든 친구들에게 한결같이 잘 해 주었어. 특히 괴로운 일을 당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 주고 싶어하던 너였지. 너의 특징인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두 눈을 껌벅거리던 너. 어떻게 해서라도 그 괴로움을 나누고 싶어 너는 애썼지.  (중략) 그러기에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친구이면서도 우리는 너를 존경하였고</span>, 우리를 대신해서 큰 일을 해 주리라 믿었다. (중략) 착하고 아름답게 산 너의 영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백 배의 보상을 틀림없이 천국에서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너와 영결하는 이 마지막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다. (1977년 6월 7일, 정훈이를 보내며.. 친구대표 기헌이가)</p>
</blockquote>
<p>비록 고인을 기리는 조사이긴 하지만 이 글에서 정훈이의 이목구비, 면모, 표정, 성격 들이 직접 간접적으로 다 보인다. 나로써는 이것이 &#8216;성인&#8217; 정훈이를 상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친구들에게 그렇게 기대를 받았던 &#8216;장래가 촉망되던 큰 재목&#8217; 이었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p>
<p style="margin: 0in; font-weight: bold; font-family: Calibri; font-size: 10.0pt;"> </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 가톨릭 신부와 여성, 신부 지망생</strong></span> 그러니까 신학생이었던 김정훈은 어떤 여성관, 여성 경험을 가졌을까.. 20대 중반의 혈기왕성한 &#8216;멋진 남자&#8217;에게 여성과의 교제가 없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된다. 나와 동갑(돼지띠) 이기에 1970년대 중반의 나를 생각하면 너무나 쉽게 상상이 가는 것이다. 다만 나의 background와 그 이외 많은 것들이 아마도 나와는 &#8216;하늘과 땅&#8217; 같은 차이가 있었음을 생각한다.</p>
<p>우선 절대자 하느님, 예수님을 자연스레 알고 믿는 그, 완벽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유복한 가정.. 등을 생각하면 정말 &#8216;자격을 갖춘 멋진 여성&#8217;이 그의 주변이 있었을 듯 하다. 다만 이 유고집에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여성, J 라는 여성만이 눈에 뜨인다. 과연 J란 여성은 누구일까? 거의 한 chapter &#8220;<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strong>J와 인생</strong></span>&#8221; 이 J 라는 여성에 관한 일기인 것을 보면 &#8216;신부와 결혼&#8217;에 대한 그의 결심에서 가장 심각한 인물이었음 에는 틀림이 없다.</p>
<p>J에 대한 나이, 출신배경, 알게 된 경위 같은 것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집 식구들에게는 알려진 사람, 공개된 데이트였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신부를 지망하는 신학생과 데이트를 하는 여성은 어떤 여성들일까? 결혼을 전제로 할 수가 없는 100% 순수한 지적인 만남이었을까? 계속되는 깊어지는 만남에 자신에게 제동을 거는 자신의 결심도 보인다.</p>
<blockquote>
<p>J와의 문제에 단안을 내려야 하고, 내렸으면 확실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p>
<p>&#8216;그래야 하는 까닭&#8217;</p>
<p>1. 실험적인 사귐은 있을 수 없다.</p>
<p>2. 그렇지 않으면 내 자신이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하게 됨.</p>
<p>3. 그녀를 위해서도 더 깊어지지 않는 것이 좋다. 실제로 나의 결론은 지어졌는데, 실행은 빠를수록 좋다.</p>
<p>4. 언젠가 끝에 가선 내가 당황하게 될 것이다.</p>
<p>이 문제는 내 햄, 내 의지만으로 될 수 없는 것이니 주님, 빛과 길을 주소서. 이럴 때 주님을 찾는다고 나무라지 마소서.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p>
</blockquote>
<p>이 일기에서 그는 &#8216;조직적&#8217;으로 차근차근하게 문제의 본질과 방향을 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문제의 심각함과, 어려움을 알고 그는 결국 &#8216;절대자&#8217;의 힘을 기대하고 있다. 그 당시, 나의 모습을 여기에 비추며 돌아본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나는 절대로 혼자였다. 절대자가 절대로 나에게는 없었다. 혼자였던 나는 모든 것을 &#8216;나침반&#8217;이 없이 헤매며 허우적거린 세월들이었다. 나와 정훈이의 20대 중반은 이렇게 하늘과 땅만큼 멀리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8216;은총을 일찍 받았던&#8217; 영혼이었다.</p>
<p>곧바로 그는 J에게 쓴 &#8216;헤어짐의 편지&#8217;를 쓴다. ;7월 23일자 일기에 편지가 실려있다. 분명하지 않은 것이.. 이 편지는 일기인가 아니면 실제로 J에게 보내진 편지인가 하는 것이다. 이별의 편지, 참 balance와 courtesy, essence가 모두 있는 편지가 아닐까?</p>
<blockquote>
<p>J씨 귀하,</p>
<p>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있어야 할 순간이고 또 그 때는 빠를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이며 글 같은 것이 부질없는 것이고 오히려 없느니만 못한 것이라고도 생각됩니다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시 글로 써야 제 뜻을 그래도 명확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p>
<p>그 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동안 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주로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주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줄 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p>
<p>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기존의 길이란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도 자기가 뜻을 정하고 온 가능성을 모으고 있는 터에 이와 상치되는 사상 (事象)을 지닌다는 것은 일을 이루지 않겠노라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p>
<p>그리고 저의 목표가 확실한데 이런 상태를 계속한다는 것은 저로써 더 이상 용납 못 할 일입니다. 그것은 제 자신과 J씨를 크게 속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쓰라림만 커질 것입니다. 여기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항상 이것을 알면서도 갈팡질팡하며 생각을 모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기다린 거지요.</p>
<p>지금 이 글월을 쓰면서 저는 이 글의 의미가 엄청난 데 스스로 놀랍니다. 이는 우리의 사귐에 대한 결단일 뿐 아니라 저로서는 제 삶의 의미를 향해 다시 한 번 크게 내딛는 순간이기도 한 때문입니다. 이런 결정이 일방적이고, 제게 있어서는 쉬운 일이고 또 회피가 아니냐고 하지 마십시오. 또 이 일이 그런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고, 단안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냐고 도 하지 마십시오. 제가 얼마나 힘들게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또 그런 만큼 얼마나 정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려 하고 있는지를  J씨라면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에 몇 번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를 만나고, 또 한 번 내린 결정은 단호히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J씨는 제게 너무도 과분하고 소중한 분이었습니다. &#8216;두 번 다시 그런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8217; 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지금의 제 심정도 몹시 단호함으로 차 있습니다. 아니, 단호하려고 애써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교 주소도 아시고 또 9월에 학관에도 나가겠지만 제게 소식 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언젠가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이 말했다고 한 것처럼 저도 J씨가 그 근본을 향한 고귀하고 투철한 노력을 조금도 흩뜨리지 않고, 그 동안 얘기했던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으며, 용맹스럽게 전진하시기를 진정으로 빕니다.</p>
<p>&#8211; 김정훈</p>
<p>이 책은 그 동안의 우정에 대한 저의 기념의 선물입니다. 기꺼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p>
</blockquote>
<p>&nbsp;</p>
<p>이 작별편지를 보면, 그의 확고한 결심을 J에게 전하며 다시는 연락을 하지 말라는 부탁을 한다. 이 정도만 아주 단호한 결심이 아니었을까? 이런 것으로 보아서 J라는 여성은 &#8216;적극적&#8217;으로 정훈이를 만나는 사람으로 느껴지고, 아주 나이에 비해서 성숙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8216;9월에 학관에도 나간&#8217;다는 구절을 보아서 이들은 아마도 같은 &#8216;학관&#8217;에 다녔던 것은 아닐까? 학관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대강 그 당시에는 &#8216;학원&#8217;이라는 말을 썼는데.. 학관은 종류가 다른 것이었을까? 마지막 구절에 &#8216;근본을 향한 고귀하고 투철한 노력을 &#8230; 용맹스럽게 전진하시기를..&#8217; 이것으로 J라는 여성도 무슨 뚜렷한 목표를 향한 &#8216;지식층&#8217; 여성이었을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p>
<p>이 &#8216;편지 일기&#8217; 이후에도 그는 사실 J를 잊은 것이 아닌 것 같다. 계속 J를 만나며 그녀에 대한 글이 나오니까.. 아마도 서로가 &#8216;가벼운 마음&#8217;으로 &#8216;결혼의 가능성을 배제한&#8217;, &#8216;진정한 친구&#8217;로써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8월 21일의 일기는 J에 대한 끈질긴 미련과 자신의 필연적인 결심에 대한 분석이 나온다.</p>
<blockquote>
<p>J를 본 지 열흘이 지났다. 지난 금요일과 월요일에도 만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면서도 보고 싶다.</p>
<p>그냥 당겨지는 이 마음은 무엇인가? 왠가? 누가 무엇이라 한다 해도 이런 마음은 참 순수한 것이다. 그리고 자연적 현상이다.</p>
<p>간단한 기록으로 끝나려 했는데 또 길어진다. 내심에 잠겨 있는 것이 들고 일어나는 까닭이다. 파헤쳐 본다는 것도 힘에 겨웁다.  문제는 결단만이 해결의 관건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한 결단을 내렸으면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고, 끝까지 충실해야 한다.</p>
<p>그런데 결혼도 포기하고, J와 같은 사람과의 사귐도 금기(禁忌)인 신부가 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신부행(神父行)을 결심한다는 것은 그만한 의미가 있어서일 터인데 과연 그런가? 어째서 내 단 하나뿐인 인생을 사제에다 걸었는가? 사제가 무엇인가? 그 본질을 분명히 보고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비교적 분명하게 문제점들이 드러난다.</p>
<p>내가 보는 신부에 대한 정의, 그 신원(身元)은? 고전적 정의로서는 내게 그 의미가 약하다.</p>
</blockquote>
<p>위의 일기로 나는 그가 아직 신부가 되려는 결정을 하지 못한 것을 안다. 하지만 계속 내면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자연적으로 생리적으로 끌리는 사랑을 느끼는 이성, 그것도 20대 중반의 나이에.. 어찌 간단히 결단을 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과정에서 김정훈의 &#8216;결단의 힘&#8217;을 볼 수 있다. 한 인간인 여성에 대한 사랑, 관심, 끌림 등과 신부가 되려는 성소의식이 치열하게 싸우는 듯한 몇 개월로 1973년의 마지막을 보내는 김정훈, 드디어 무서운 결단을 내리며 편지를 쓴다. 신부가 된다는 확고한 결심이다.</p>
<blockquote>
<p>J씨 귀하.</p>
<p>이 시각을 위해 사귐을 해 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는 초조하리만치 이 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뜻밖의 이 글월을 받고 놀라시리라 믿습니다만 끝까지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이 가능한 근거는 우리가 하느님을 지고(至高)로 모시고 있고, 그 동안 J씨나 저나 거짓 한 점 없이 서로 성실하였다는 사실 자체에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벌써 짐작을 하실지 모르나 정말 그렇습니다. 결단을 지금 내려야 합니다. 일찍이 저는 신부행(神父行)을 결단했습니다. 설령 각 사람에게 이미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도 저의 그 선택에는 후회나 변함이 없습니다. J씨는 제게 너무나도 소중한 분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J씨가 말한 뜻대로 그 동안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성실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는 것 자체가 피치 못할 불성실의 시작입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제가 J씨를 아끼는 그만큼 이 문제는 절실합니다. 이 문제는 누가 무어라 해도, 어떤 식으로 가설을 세운다 해도 사실입니다. 이 점을 항상 의식한 저는 두려워하면서도 이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껏 회피하려 했으나 결단은 있어야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빠를수록 좋을 것입니다. 비참하고 단호한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가 쉬웠고, J씨는 어렵다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만남, 사귐이 그렇게 순수했던 것처럼 이 시작도 서로에게 순수해야 하고, 전적인 동의로써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J씨는 J씨의 길을 힘차고 명랑하게 가십시오. 저도 제 길을 용기 있게 웃으면서 가렵니다. 이상이 제가 쓰고 싶은 전부입니다. 사실 J씨는 이 글의 진의(眞意)를 잘 알고 계십니다. 저의 집 전화번호도 알고 또 찾을 수도 있지만 저를 찾지 마십시오. 이별은 엄청난 사건이지만 한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저도 결코 J씨를 찾지 않겠습니다.</p>
<p>1973년 12월 26일 김정훈</p>
</blockquote>
<p>정중하고 진심이 우러나오는 글이지만, &#8216;영원히&#8217; 남녀로써 헤어져야 한다는 냉혹한 진실 또한 외면하지 않았다. 미련을 0%도 남기지 않고 그는 &#8216;결코 J씨를 찾지 않겠습니다.&#8217;라는 작별인사로 끝을 내는 그.. 얼마나 괴로웠을 결단이었을까? 그 나이에 나라면 &#8216;절대로 절대로&#8217; 못하였을 것이고 그렇게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해 1974년 봄 무렵 유럽 유학을 떠나는 그는 아마도 그 때서야 J씨를 조금은 더 쉽게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남녀관계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니까..  (Part 2로 계속 됨)</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6/06/13/%eb%8f%85%ed%9b%84%ea%b0%90-%e8%ae%80%e5%be%8c%e6%84%9f-%ec%82%b0-%eb%b0%94%eb%9e%8c-%ed%95%98%eb%8a%90%eb%8b%98-%ea%b7%b8%eb%a6%ac%ea%b3%a0-%eb%82%98-part-1/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1365</post-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