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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교성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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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38; place, autobio in progress..</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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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그리운 친구 정교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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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Sun, 17 Oct 2010 17:43:52 +0000</pubDate>
				<category><![CDATA[Memoir]]></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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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캐나다에 살고 있는 동창친구 정교성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 전날 &#8220;Google Voice@Asterisk PBX&#8221; 를 시험하면서 갑자기 교성이 생각이 났다. 물론 그 동안도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나 우리 집의 long distance service를 몇 년 전에 끊어버린 관계로 phone card를 쓰지 않으면 장거리 전화를 하기가 조금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구세주같이 Google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캐나다</span>에 살고 있는 동창친구 정교성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 전날 &#8220;Google Voice@Asterisk PBX&#8221; 를 시험하면서 갑자기 교성이 생각이 났다. 물론 그 동안도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나 우리 집의 long distance service를 몇 년 전에 끊어버린 관계로 phone card를 쓰지 않으면 장거리 전화를 하기가 조금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구세주같이 Google Voice가 나타난 것</span>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무료이고 한국도 대부분이 분당 2센트면 ok인 것이다.(mobile phone은 5c/min) 이것을 계기로 교성이와 더 많이 전화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p>
<figure id="attachment_1015"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15" style="width: 204px" class="wp-caption alignleft"><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0/10/Scan10352-1.jpg"><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class="size-medium wp-image-1015" title="중앙고3 반장나리들, 1965년"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0/10/Scan10352-1-204x300.jpg" alt="중앙고3 반장나리들, 1965년" width="204" height="300" /></a><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15" class="wp-caption-text">중앙고3 반장나리들, 정교성 뒷줄 바른쪽, 1965년</figcaption></figure>
<p>정교성은 이승만 정권 당시 부통령이었고 4.19 학생혁명 이후 5.16 군사혁명 전 까지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장면박사의 조카</span>다. 그러니까 교성이 어머님이 장면박사의 여동생인 것이다. 집안은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전통적인 천주교도 집안</span>이었고, 교성이는 분명히 태어날 때 유아영세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을 한다. 중앙고 졸업 앨범을 보면 교성이는 천주교 반에 있었다. 그것은 공식적인 학교내의 서클중의 하나였다.</p>
<p>사실 나는 중앙고 재학 당시에 교성이와 개인적인 친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교성이는 나를 몰랐어도 나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그는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목소리가 삼국지의 장비같이 천둥벼락과 같았고 통솔력이 뛰어나</span> 중앙 중, 고등학교 6년간 반장을 하는 신기록을 깬 나에겐 참 부러운 존재였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것은 사실 꿈에도 상상을 못하던 &#8216;업적&#8217; 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그 당시 나와 개인적인 친구가 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대학 3학년 쯤에 다른 친구, 김호룡을 통해서 교성이와 바로 &#8220;눈 앞에서&#8221; 만나게 된다.</p>
<p>우리들 또래 보다 도 훨씬 믿음직하고 성숙한 그는 참 어울리기 편한 친구가 되었다. 어떨 때는 그가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나의 형처럼 느껴질 때도</span> 있었다. 집안, 가문 같은 것을 풍기지 않던 그런 모습도 보기에 참 편하였다. 서울 외대 독문과에 다니던 그는 재학 시 공군에 입대를 해서 나와 처음 만날 당시에 공군에 복무 중이었다. 내가 여자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그는 형같이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나는 항상 도움을 받기만 했다. 그는 그 70년대 격동기 세대의 일원으로 열심히 정석대로 산 모범적인 친구다. 그런 그가 언젠가 캐나다로 아주 이주를 해 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투병을 하던 부인의 타계를 겪었다. 두 딸을 훌륭히 거의 혼자서 키워냈다.</p>
<figure id="attachment_1020"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020" style="width: 300px" class="wp-caption alignleft"><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0/10/Scan10345.jpg"><img decoding="async" class="size-medium wp-image-1020" title="교성이네 집에서, 1970년"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0/10/Scan10345-e1287336856854-300x224.jpg" alt="교성이네 집에서, 1970년" width="300" height="224" /></a><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020" class="wp-caption-text">교성이네 집에서, 1970년</figcaption></figure>
<p>몇 년 전에 거의 우연히 한국에서 나오는 천주교 잡지 &#8220;생활성서&#8221; 1992년 호를 보다가 어떤 글을 읽었다. 아무래도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그런 글이었다. 저자는 &#8220;정광숙&#8221; 씨.. 글을 읽고 더 심증이 굳어졌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바로 교성이의 누나인 것이다</span>. 우리가 처음 만날 당시 그 누나는 미국유학 중이었다. 나는 그때 그 누나가 쓰던 책을 빌려보기도 했다. 그래서 교성이에게 확인을 해 보니 99% 맞는 것 같아서 그 기사의  copy를 보내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행을 못하고 서로가 잊어버리고 말았다.</p>
<p>그 기사를 보내려 하니 문제가 있었다. 생활성서에서 그 기사를 다시 찾으려고 하니 무려 6년치의 생활성서가 책장에서 먼지를 쓰고 있었다. 6년치면 거의 72권이나 되는 것이다. 한참 씨름을 하다가 결국은 그 기사에 book mark가 붙어 있어서 생각보다 빨리 찾아서 부지런히 scan을 했다. 문제는 거의 컴맹인 그가 이것을 어떻게 쉽게 보게 할까 하는 것이다. 그 동안 한번도 그를 코앞에서 본 적은 없었지만 그를 잊은 적은 한번도 없다. 나의 형같이 나의 식구같이 느낀 친구였으니까. 지금은 새로이 부인을 맞고, coffee shop을 운영하며 잘 살고 있다. 언젠가는 볼 날이 있겠지만 그 전이라도 더 자주 연락을 하면서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 본다.</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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