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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교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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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38; place, autobio in progress..</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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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안, 두려움, 절망감의 정체와 해답은&#82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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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Sat, 09 Dec 2023 13:28:40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Ideas & Analysis]]></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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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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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예전, 아니 오래~ 전에 스쳐갔던 생각 중에는 &#8216;현재가 힘들어도 나이가 들면 분명히 도사나 신선처럼 느끼는 잔잔한 평화, 불안이 없는 지혜와 함께 살 것&#8217;이라는 뜬구름 같은 희망이었다. 그것이 지금 눈을 떠보니, 어떻게 되었는가~ 별로 아니 전혀 나이와 편안함은 상관이 없음을 깨닫는다. 나이, 세대별로 그 성질이 달라진 차이뿐이다.  그 중에는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은 끈질기게도 따라오고 있음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3254"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3/12/fear-anxiety-1.jpg" alt="" width="650" height="291" /></p>
<p><span style="font-size: 14pt;">예전, 아니 오래~ 전</span>에 스쳐갔던 생각 중에는 &#8216;현재가 힘들어도 나이가 들면 분명히 도사나 신선처럼 느끼는 잔잔한 평화, 불안이 없는 지혜와 함께 살 것&#8217;이라는 뜬구름 같은 희망이었다. 그것이 지금 눈을 떠보니, 어떻게 되었는가~ 별로 아니 전혀 나이와 편안함은 상관이 없음을 깨닫는다. 나이, 세대별로 그 성질이 달라진 차이뿐이다.  그 중에는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은 끈질기게도 따라오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비록 육신의 건강은 점점 내리막 길을 걷게 되어도 머리 속에 펼쳐지는 세상은 점점 편해질 것이라는 희망, 바로 그 희망을 원하며 살았는데&#8230; 결과는 거의 참패에 가깝다.</p>
<p>얼마 전,  &#8216;강산이 99%  변해버린 고향&#8217; 방문 시, 처조카 딸 수경가 선물이라며 수원근교 미리내 성지 내 성물방에서 건네 준 책에서 이 급한 명제에 대한 분석적인 essay를 읽게 되었다. &#8216;잊혀진 질문&#8217; 중에 하나로 등장하는 이 질문은 바로 &#8216;불안과 두려움&#8217;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것과 더불어 &#8216;희망의 부재&#8217;까지 함께 다루었기를 바라기도 했다. 과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신부님이 제시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나에게는 50% 정도의 답은 주신 셈이니까, 이번 고국 방문의 성과 중에 하나라고 기억을 할 것이다.</p>
<p>불안, 초조, 두려움 이런 감정들을 &#8216;특권&#8217;이요 &#8216;에너지&#8217;로 승화하려는 신부님의 &#8216;성경해법&#8217;이 과연 나머지 50%의 해답을 줄 것인가?  모든 것, 아니 이 우주의 모든 것 (없는 것도 포함한)은 궁극적으로 내가 보는 세계관 안에서 내가 가진 생각의 눈으로 보는 나만의 실재,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분명히 해답은 있다. 쉽게 말하면 &#8216;세상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8217;이다.  코앞에 다가오는 물리적인 위험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머리 속 consciousness 의식체계, 아니 우리가 &#8216;상상&#8217;하는 세계일 뿐이 아닐까? 성경 속 예수님의 진복팔단 眞福八端 <em>Beatitudes</em> 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전혀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8216;긍정적인 착각의 영역&#8217;인 것이다.</p>
<hr />
<p><img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3213"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3/12/2023-11-22-12.47.22-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size: 18pt;">&#8216;불안&#8217;과 &#8216;두려움&#8217;이 끈질기게 따라올 때 극복할 방법은 있는 걸까요?</span></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두려움에 대하여 독일 소설가</span> 장 파울이 위트 있는 말을 했습니다.</p>
<p>&#8220;소심한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기 전에 무서워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무서워한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나간 다음부터 무서워한다.&#8221;</p>
<p>이 말은 그대로 진실입니다.</p>
<p>소심한 사람은 위험을 미리 걱정합니다. &#8220;어이쿠, 이러다가 뭔 일 터지는 것 아냐?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8221; 그러면서 나름 철저히 준비한답시고 우왕좌왕합니다.</p>
<p>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에 직면하여 공포에 짓눌립니다. &#8220;우와, 집채만한 호랑이잖아. 이제 나는 죽었다!&#8221; 벌벌 떨다가 그만 위험을 벗어나지 못합니다.</p>
<p>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난 다음 사태를 인식합니다. &#8220;이거 뭐야? 돌이 굴러 떨어졌잖아! 하마터면 큰일 뻔했네.&#8221;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전율에 식은땀을 흘립니다.</p>
<p>결국 두려움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말인 셈입니다.</p>
<p>&nbsp;</p>
<p>수천 년 철학사에서 근세기에 등장한 실존주의 사조는 철학적 고민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우주, 자연, 사회 등의 거창한 주제보다 더 시급한 주제가 인간의 실존이며 나아가 인간의 적나라한 감정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p>
<p>실존주의 철학 안에도 여러 색깔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인간의 숙명적인 문젯거리가 있으니 바로 &#8216;불안&#8217;입니다. 약간씩 의미상 편차가 있습니다만 두려움, 공포, 염려, 걱정 등을 아우르는 &#8216;불안&#8217;이야말로 인간 심리의 표층과 심층을 장악하고 있는 생존 인자라는 것입니다.</p>
<p>놀랍게도 이 독심술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적중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줄을 잇고 있는 통계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p>
<p style="padding-left: 40px;">&#8220;취업, 인사포털 인크루트가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2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5면 중 4명꼴인 82.1 퍼센트가 졸업을 앞두고 불안함,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일명 &#8216;4학년증후군&#8217;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했다.&#8221;</p>
<p style="padding-left: 40px;">&#8220;24일 구직포털 HR KOREA 는 지사 회원 직장인 3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8216;직장생활 스트레스&#8217;에 대해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39.3퍼센트가 미래에 대한 (관한) 불안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8221;</p>
<p>&nbsp;</p>
<p>편의상 젊은층의 &#8216;불안증후군&#8217;에 초점을 맞춰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이 습관화된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그 강도가 약해지길 기대하는 것은 경험상 무리일 것입니다. 도리어 나름 탄탄하던 사람들조차 은퇴를 기점으로 불안의 늪에 빠지는 경우를 허다합니다. 불안이야말로 예측불허로 찾아오는 불청객이며, 수시로 변색하며 살아남는 카멜레온입니다.</p>
<p>&nbsp;</p>
<p>그러면, 이 불안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p>
<p>&#8216;불안&#8217;이라는 것은 &#8216;공포&#8217;와는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8216;불안&#8217;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상태입니다. 눈앞에 주어진 자극이나 위협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생기는 감정을 &#8216;공포&#8217;라고 합니다. &#8216;공포&#8217;는 동물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8216;원초적인 본능&#8217;이거든요. 쥐는 눈앞에 고양이가 나타나면 공포에 떨면서 안절부절못합니다. 이것은 사고 작용이 없어도 생기는 일종의 반사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p>
<p>그러나 &#8216;불안&#8217;은 반드시 생각의 결과로써 생깁니다. 자신의 존재와 관련해서 어떤 위기나 피해를 미리 상상하거나 불길한 일을 예상할 때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 &#8216;불안&#8217;입니다. 동물은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동물이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불면증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동물이 느끼는 것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변화에 대한 반응, 즉 공포입니다.</p>
<p>그러므로 불안은 인간 고유의 정서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p>
<p>하버드대 정신과 교수인 필레이 박사는 수년간의 뇌 영상 연구를 통해 인간이 공포, 불안, 두려움에 반응하는 독특한 방식을 밝혀냈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아주 작은 위험도 재빠르게 감지하며 &#8216;원하는 것&#8217;보다 &#8216;피하고 싶은 것&#8217;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진화해왔다고 합니다. 이를 처리하느라 다른 일들을 뒤로 미룬다는 것입니다.</p>
<p>&nbsp;</p>
<p>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8220;그건 불가능해, 하지만 나는 이직을 하고 싶어&#8221;라고 생각한다면 뇌는 이 상충된 메시지를 받고 혼란스러워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8216;불가능해&#8217;라는 두려움을 먼저 처리하느라 진정 원하는 &#8216;이직&#8217;을 하려는 에너지를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필레이 박사는 그의 저서 &lt;두려운, 행복을 방해하는 뇌의 나쁜 습관&gt;에서 이것이 바로 뇌가 우리를 과잉보호하는 방식이라 설명합니다.</p>
<p>이 통찰은 우리가 두려움을 처리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르므로 우리는 &#8216;나&#8217; 자신의 불안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불안의 작동 방식을 확실히 파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조금 더 가까이 불안현상을 들여다보기로 하겠습니다.</p>
<p>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떤 것에 위협을 느낄 때, 우리 뇌는 0.01초 만에 두려움의 시스템을 작동시킨다고 합니다. 뇌의 편도체가 위험을 감지하고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0.01초에서 0.03초. 이후 의식적인 처리가 일어나면서 우리는 두려움과 두려움의 대상을 파악하게 됩니다.</p>
<p>이 두려움은 본래 인간이 진화하는 데 필수 요소였습니다. 두려움을 얼마나 빨리 감지하느냐가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뇌는 다른 감정들보다 위협을 먼저 처리하도록 진화한 것입니다.</p>
<p>하지만 역기능도 따랐습니다. 이 예민하고도 무의식적인 두려움에 대한 자각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파악하고 위축된 반응을 유발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p>
<p>그러기에 &#8216;두려움은 단지 이전에 기억된 정보일 뿐&#8217;이라는 자각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익사할 뻔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 중 더러는 어른이 된 뒤에도 웅덩이의 물만 보면 반사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는 어린 시절 편도체가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뇌에서 일어나는 가상의 반응일 뿐 실제가 아니지요. 다 큰 어른이 웅덩이의 물을 무서워할 이유가 얼마나 있겠습니까.</p>
<p>따라서 우리는 생각의 힘만으로도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8221;</p>
<p>&nbsp;</p>
<p>불안의 작동방식을 잠깐 짚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불안은 없어도 문제고 너무 많아도 문제라는 얘기가 됩니다.</p>
<p>이제 불안의 순기능을 클로즈업해보겠습니다. 심리분석가 프리츠 리만은 &#8216;불안의 심리&#8217;를 이렇게 요약합니다.</p>
<p>&#8220;불안은 우리의 발전에 특별히 중요한 지점들에서 제일 먼저 의식 속으로 온다. 즉 친숙한 옛 궤도를 떠나는 곳에. 새로운 과제를 감당하거나 변화해야 하는 지점에 불안이 온다. 발전, 성장, 성숙은 그러니까 명백히 불안 극복과 깊은 관계가 있다. 어느 연령에서든 그 나이에 상응하는 성숙을 위한 걸음이 있으며, 그 걸음은 있게 마련인 불안을 수반한다. 걸음을 내딛자면 그 불안을 다스려 이겨내야만 한다.&#8221;</p>
<p>프리츠 리만보다 앞서 불안의 긍정적 역할을 철학적으로 섬세하게 규명한 사람이 철학자 키르케고르입니다. &#8216;불안&#8217;을 일생의 연구 주제로 삼았던 그는 불안을 도약을 위한 계기로 보았습니다. 사람은 심미적 삶, 윤리적 삶, 종교적 삶의 3단계로 질적 성숙을 이루는데, 불안이 앞 단계에서 다름 단계로 도약하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p>
<p>우선 사람은 본능적으로 심미적인 삶을 산다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좇아 살거나 환상에 빠져서 삽니다. 삶을 기분풀이로 여기며 쾌락을 탐닉하면서 기분에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이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삶은 결국 권태와 싫증에 다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무기력한 자신의 눈에 비친 인생은 무상하며 미래는 불안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합니다. 이 절망은 새로운 삶을 찾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절망의 늪을 넘어 윤리적 삶으로 도약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p>
<p>불안으로 말미암아 이제 두 번째 단계인 윤리적인 삶이 시작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쾌락만을 좇아 무비판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보편적 가치와 윤리에 따라 생활하게 됩니다. 사람은 이제 내면의 양심에 호응하고 의무에 성실하려고 애씁니다. 이제 비로소 인간은 &#8216;되어야 할 것&#8217;이 됩니다. 그러나 이 단계도 결국 벽에 부딪치고 맙니다. 높은 도덕에 이르지 못하는 능력의 한계 그리고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무력함을 절감합니다.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이 뜻대로 잘 되지 않고, 또 윤리적으로 산다고 세상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 데다 엉터리로 사는 사람들이 망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맞서서 고뇌하는 인간은 마침내 죄의식과 불안에 빠지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 불안과 절망이 다시 도약을 만들어 사람을 신에게로 내몬다고 합니다. 이 현실의 모순을 심판해 줄 하느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p>
<p>마침내 불안은 종교적인 삶으로 옮겨가도록 사람들을 이끌어줍니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으로서 완전하고 참된 삶은 세 번째 단계인 &#8216;종교적 단계&#8217;에 와서야 비로소 실현된다고 말합니다. 스스로의 결심에 따라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고 따를 때에 인간으로서의 무력감과 허무함을 떨쳐버리고 완성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p>
<p>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의 삶으로 옮겨가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주체적 결단과 도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부모님과 선생님이 아무리 공부하라고 다그쳐도 정작 학생 자신이 공부하려고 하지 않으면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p>
<p>&nbsp;</p>
<p>불안의 역기능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p>
<p>첫째로, 불안은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하여 결국 도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공학기술자 헨리 포드의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8220;미래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활동을 제한 받아 손도 발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8221;라고 했거든요.</p>
<p>나는 해군 출신입니다. 해군 훈련 과정에서 &#8220;퇴함 훈련&#8221;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배에서 물로 뛰어 내려야 할 유사시를 대비하여, 실내 수영장 10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입니다. 적음을 위하여 먼저 5미터에서 시작해 다음 7미터, 그 다음 10미터 순으로 진행합니다. 전원이 차례로 뛰어내려야 하기에 줄을 지어서 기다립니다. 자기 차례가 오면 다이빙 대 끝에서 서서 오른손은 코를 쥐고 왼손은 낭심을 잡은 채 호흡을 가다듬고 &#8220;000 사후생 퇴함준비 끝!&#8221;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지휘관이 &#8220;퇴함!&#8221; 하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때 &#8220;퇴함!&#8221; 이라고 복창하고 뛰어내려야 합니다.</p>
<p>사람은 10미터에서 가장 큰 고소공포를 느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높이에서 그냥 뛰어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 위에는 구대장 몇 명이 지휘봉을 휘두르며 포진하고 있습니다. 훈련생들에게는 10미터 높이도 무섭지만 그 지휘봉도 만만찮게 무섭지요. 그런데 세 명이 끝내 뛰어내리지 못했습니다. 구대장들이 격려를 하고, 협박을 하고, 떼밀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난간을 붙잡고 있는 힘은 여러 장정이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초인적으로 강했습니다. 결국 그 세 명은 석식 열외에다, 완전군장 차림으로 날이 저물도록 연병장을 &#8216;평화롭게&#8217; 돌아야 했습니다. 이렇듯 두려워하는 마음을 먹으면 발이 땅에 딱 달라붙고,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요지부동하게 됩니다.</p>
<p>둘째로, 불안은 사람의 심신을 해칩니다. 제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일선에 내보내고, 염려와 불안과 근심에 빠져 심장병으로 죽은 미국 시민이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총탄이 사람을 꿰뚫어 죽인 수보다 불안과 공포가 죽인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p>
<p>&nbsp;</p>
<p>그러기에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합니다.</p>
<p>&#8220;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이다.&#8221;</p>
<p>지지 않으려면 정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p>
<p>&nbsp;</p>
<p>그렇다면 두려움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p>
<p>리처드 바크는 그의 저서 &lt;날개의 선물&gt;에서 인간이 성취를 향하여 전진하는 과정을 수영장의 다이빙대를 예로 들며 설명합니다.</p>
<p>다이빙대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은 우선, 며칠 동안 다이빙대를 올려다 만 봅니다. 이는 올라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입니다. 그 다음 단계로, 그는 드디어 젖은 계단을 조심조심 오릅니다. 어떤 일을 앞두고 결단을 내리는 단계에 해당하며, 아직 결심을 굳히지는 못한 채 불안 중에 조금씩 전진하는 단계입니다. 셋째 단계로, 그는 높은 다이빙 대 위에 섭니다. 결단 직전, 가장 불안한 단계입니다.</p>
<p>이제 그에게는 두 가지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는 다이빙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길로 이는 &#8220;패배를 향한 계단&#8221;입니다. 다른 하나는 과감하게 물속에 뛰어드는 길로 이는 &#8220;승리를 향한 다이빙&#8221;입니다. 다이빙대 끝에 선 그는 두려움에 소름이 끼쳐도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면, 후퇴는 이미 늦었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바로 이때가 인생이라고 불리는 다이빙대가 정복되는 순간입니다.</p>
<p>이처럼 불안과 두려움의 다이빙대를 한 번 정복한 사람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높은 데서 다이빙을 즐길 정도가 됩니다. 바크는 책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p>
<p>&#8220;천 번 올라가고 천 번 뛰어내리고, 그 다이빙 속으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내가 비로소 인간이 된다.&#8221;</p>
<p>&nbsp;</p>
<p>어떻게 하면 이 불안감을 덜 수 있을까요? 나는 인생의 위대한 멘토들의 지혜를 빌리는 것 자체가 지혜라고 생각합니다.</p>
<p>&nbsp;</p>
<p>첫째 방법은 강력한 희망과 꿈으로 불안을 몰아내는 것입니다.</p>
<p>몇 년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lt;인간의 두 얼굴&gt;은 꿈의 한 모습인 &#8216;긍정적인 착각&#8217;의 효과를 밝혀냈습니다. &lt;인간의 두 얼굴: 착각&gt; 편을 제작한 정성욱 PD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국내외 책과 논문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고는 인간의 착각과 행동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해줄 실험을 구상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도화지에 손가락 하나를 없는 손을 그리고, 다섯 살짜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묻습니다. &#8220;10년 후 이 손가락은 어떻게 될까요.&#8221; 일부 아이들은 어른들의 예측을 뛰어넘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8220;손가락이 자라나요!&#8221; 라고요. 실험 결과 손가락이 자란다고 대답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지능지수가 높았다 합니다.</p>
<p>이것이 바로 긍정적 착각입니다. 이는 살아가면서 겪는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정 PD는 말합니다.</p>
<p>&#8220;긍정적 착각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발전시킨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울증 환자들은 절대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보기 때문이다.&#8221;</p>
<p>그러므로 긍정적 착각을 동반하는 희망과 꿈이야말로 &#8216;실패와 좌절&#8217;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감싸는 &#8216;보호막&#8217; 역할을 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p>
<p>&nbsp;</p>
<p>둘째 방법은 불안을 신께 맡기는 것입니다.</p>
<p>토론토대학 심리학과 마이클 인즐릭트 교수 팀은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불안과 걱정에 덜 시달린다는 연구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인즐릭트 교수는 &#8220;신앙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테스트에서 실수를 하거나 잘 모르는 것이 나와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8221;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팀은 그 내용을 2009년 &lt;심리과학&gt; 온라인 판에 발표했습니다.&#8221;</p>
<p>한마디로 기도가 불안감을 해소해준다는 얘기입니다. 나 자신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어떤 사람이 옥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8220;두려워 말라&#8221;는 말씀이 수없이 기록된 것을 보고 도대체 몇 번이나 씌어 있는가를 세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꼭 365번이 기록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1년 365일 매일 한 번씩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그럴듯한 수치적 일치입니다. 우연이긴 하지만, 신은 불안에 떠는 우리를 최소한 매일 한 번씩 위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전해줍니다.</p>
<p>&nbsp;</p>
<p>뭐니 뭐니 해도 불안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그 불안을 성장의 계기로 삼는 것이겠지요. 불안하니까 더 준비하고, 불안하니까 더 정진하고, 불안하니까 더 노력하자는 얘기입니다.</p>
<p>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베로니카 웨지우드의 말을 기억해둘 것을 권합니다.</p>
<p>&#8220;불안과 무질서는 절망의 징후가 아니라 에너지와 희망의 징후다.&#8221;</p>
<p>체념한 사람에게는 불안이고 뭐고 가 없습니다. 불안은 희망을 가진 사람이 누리는 특권, 곧 생의 에너지인 것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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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trange, Manger without Baby</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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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Sun, 27 Nov 2022 03:49:13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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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계절]]></category>
		<category><![CDATA[성당]]></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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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올해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성탄구유 점등식, 대림절 전야 특전미사 등등을 나는 특별한 이유도 깨닫지 못하고 기다린 셈이 되었다. 대림의 뜻처럼, 그저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 바르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결과는 물론 기대한 그런 모습, 광경이었지만 약간 차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7시의 공식 시작시간보다 15분 일찍 시작한 것이어서 아차 했으면 시작 부분을 놓칠 뻔 했지만, 행사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30"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12/2022-11-26_192436901.jpg" alt="" width="650" height="420" /></p>
<p><span style="font-size: 14pt;">올해 아틀란타 도라빌</span> 순교자 성당, 성탄구유 점등식, 대림절 전야 특전미사 등등을 나는 특별한 이유도 깨닫지 못하고 기다린 셈이 되었다. 대림의 뜻처럼, 그저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 바르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결과는 물론 기대한 그런 모습, 광경이었지만 약간 차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7시의 공식 시작시간보다 15분 일찍 시작한 것이어서 아차 했으면 시작 부분을 놓칠 뻔 했지만, 행사가 끝나고 나니 그런 것들이 큰 문제가 될 리가 있겠는가?</p>
<p>먼 곳에서 구유를 자세히 볼 수가 없어서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구유에는 꼭 보여야 할 &#8216;아기 예수님&#8217;이 없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신부님의 간단명료한 강론에서 이것은 의도적인 것, 모두 모두 아직 안 보이는 아기예수를 성탄까지 기다리자는 취지, 의도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의도도 기억에 남을 듯하다.</p>
<p>어둠 속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보는 것도 반갑고 즐거운 것, 하지만 생각보다 교우들의 숫자가 적은 것도 그렇고, 특히 우리 또래의 교우, 친지들의 모습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역시 세월을 탓해야 할지&#8230; 이제는 이런 행사에서도 나는 동년배를 찾고 있으니&#8230; 이것, 조금 이상한 것일까, 아니면 인지상정일까&#8230; 올해의 대림절을 이렇게 시작한 것, 이제는 조금씩 불편해지는, 어둠을 뚫고 집으로 drive를 하는 것 이외에는 몇 백 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다. 감사합니다~~~</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32"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11/bernardokastrup-1.jpg" alt="" width="650" height="272" /></p>
<p><span style="font-size: 14pt;">오늘도</span> <a href="https://www.bernardokastrup.com/">Dr. Bernardo Kastrup</a>의 <a href="https://www.bigelowinstitute.org/index.php/essay-contest/">Bigelow Prize</a> Essay를 읽는다.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consciousness 주제에 대한 제일 학문적 논문급이라 더 흥미롭다. 예전에는 이 주제는 거의 금기사항이었고, 특히 (자연)과학계에서는 언급조차 못했고, 잘못하면 즉시로 학계에서 파문을 당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때와는 다르게  많이 다른 세상으로 변하고 있는 듯하다. 양자역학의 도움으로, 고전적 물질주의가 완전히 수세에 몰리는 듯하기까지 보이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나는 솔직히 가톨릭 우주관 cosmology 교리부터 출발했기에 물론 이런 추세를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만, 웃기는 것은 아직도 나 자신이 속으로 Consciousness, After Life 같은 것을 운운하는 것 자체를 피하고 싶은 심정&#8230; 이 정도면 현대가 얼마나 순수물질주의에 젖어 있는지 알만 하다. 하지만 나는 노력할 것이다. 의심을 가지고 열린 가슴으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8216;저 너머에 아롱거리는 다른 세상&#8217;에 대한 환상은 피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계속 진정한 진실을 향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p>
<p><span style="font-size: 14pt;">어제 늦게 뜻밖에</span> &#8216;가정교사&#8217; 인호 형의 카톡소식을 받았다. 소식의 문체에 잔뜩 에너지가 느껴지기에 우선 &#8216;아~ 형님 건강하시구나~&#8217; 하는 포근한 안심, 안도의 숨이 느껴진다. 소식이 서로 없음을 개탄하는 듯한 느낌이 더욱 반가운 것이다. 몸은 느려져도 머리, 영혼만은 끝까지, 끝까지 건강 그 자체라고 나는 항상 믿었기에, 형님 나이 82세라는 것이 심각하게 다가오질 않는다. 간단히 지난 2년간 우리 가정의 변화 변천사를 알려드렸지만 그 이외는 앞을 기약할 수가 없다. 언제는 형님과의 대화는 이렇게 간단히 끝이 나곤 했으니까&#8230; 인호 형, 이번에는 조금 긴 대화를 하며 삽시다!</p>
<p>한국에 계시는 연숙이 쪽 친척들, 특히 형님과 동서형님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참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그렇게 실감이 갈 수가 없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두 양반, 모두 현재 조금씩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하니&#8230; 형님은 얼굴자체가 너무나 초점을 잃은 듯하게 보인다고.. 동서형님은 다른 쪽, 그러니까 걷는데 문제가 있다고.. 아~ 80대가 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도 곧 그렇게 될 것일까? 연숙이 &#8216;이순재&#8217;씨는 88세에도 연극 활동을 한다고 몇 번이나 칭찬 말을 하는데 결국은 나이 그 자체보다는 개인적 에너지 차이도 큰 몫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33"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11/2022-11-26_192420572.jpg" alt="" width="650" height="420" /></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34"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11/2022-11-26_192414212.jpg" alt="" width="650" height="434" /></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35"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11/2022-11-26_192408844.jpg" alt="" width="650" height="430" /></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136"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11/2022-11-26_192427942.jpg" alt="" width="650" height="747" /></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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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Joy of Leftovers, Wine &#038; SPAM</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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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Sat, 26 Nov 2022 03:46:37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가족]]></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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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몇 년만인가, 우리 집에서(roasted) turkey의 모습을 본 것이&#8230; 어제 음식준비를 하면서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던가, 우리 집에서 추수 감사절의 turkey요리 가 없었던 때가 몇 번, 언제였는가..  이것은 우리의 퇴화되는 기억력의 test였다.  총각시절이었던 1974년 감사절 당시 새로 사귄 성성모형  부부의 초대로 Purdue University 어떤 선배 유학생(심리학 전공) 부부 댁에서 처음으로 각종 감사절 음식을 먹었던 것은 아직도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437"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3/02/2022-11-25-13.40.46-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몇 년만인가, 우리 집</span>에서(roasted) turkey의 모습을 본 것이&#8230; 어제 음식준비를 하면서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던가, 우리 집에서 추수 감사절의 turkey요리 가 없었던 때가 몇 번, 언제였는가..  이것은 우리의 퇴화되는 기억력의 test였다.  총각시절이었던 1974년 감사절 당시 새로 사귄 성성모형  부부의 초대로 Purdue University 어떤 선배 유학생(심리학 전공) 부부 댁에서 처음으로 각종 감사절 음식을 먹었던 것은 아직도 사진처럼 선명하다. 그 이후로는 1980년 결혼 이후 Columbus, Ohio 한인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연숙이 이봉모씨 부인으로부터 recipe를 구해서 turkey를 굽기 시작한 것, 그것이 거의 끊임없이 근래까지 지속된 것이었다.  최근에는 이런 전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올해 기적적으로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하지만 turkey자체보다 side, stuffing 등이 더 맛있는 것은 아직도 사실이고, 오늘도 그 leftover 가 어제의 main meal보다 더 맛있던 것을 재확인 하는 때가 되었다.</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1438"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3/02/2022-11-25-21.06.25-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어제 Thanksgiving leftover wine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늦은 저녁의 허기를 이 명콤비 wine &amp; SPAM으로 달랬다. &#8216;공식 금주&#8217;로 이제는 평소에는 이런 사치는 물 건너 간 것이기에 잠정적인 예외인 Thanksgiving 부터 New Years Day까지 이것은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p>
<p>빗소리를 꿈속에서 느낄 것 같은 예감이 또 빗나간 것이 조금 아쉽다. 빗소리, 빗소리&#8230; 그것을 은근히 기다렸지만 역시 희망과 기대는 그것 자체로 끝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바깥을 보니 약간 물기는 보이긴 했으니까.. 아마도 아주 가느다란 비가 왔다 갔다 했던 모양이고, 오늘도 그런 날로 끝나지 않을까&#8230; 주 관심사는 내일의 &#8216;점등식&#8217;의 성사여부지만 현재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br />
온다던 비는 거의 오지 않고, 거의 어제와 같은 holiday 의 느낌이 사라지지도 않은 날이 바로 Black Friday, 나와 아니 우리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8216;그 다음날&#8217; 정도였지만 그래도 모처럼 wine을 마시며 편하게 지내려고 기를 쓴다. 또한 모처럼 아예 침대로 들어가서 긴 낮잠까지 즐겼으니&#8230;  이것으로 어제의 &#8216;덜 즐거웠던 hangover&#8217;들을 잊는 기회로 삼는다.</p>
<p><span style="font-size: 14pt;">어제는 분명히 모든 것이</span> &#8216;천천히, 예정대로, 문제 없이&#8217; family holiday가 되었다. 하지만 무언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아직도 나의 머리에 앙금처럼 남은 것은 의외다. 별로 즐겁지 않은 감정이 나를 조금 괴롭히고 있으니.. 나의 문제일 것이다. 보기에 다른 사람들은 별다른 일 없이 시간을 즐겼던 듯 하니까&#8230; 그것으로 만족을 한다.<br />
복잡하고, 시끄럽고, 솔직히 정신이 없었던 나.. 왜 그랬을까? 모처럼 마시는 &#8216;술: wine, beer&#8217; 때문이었을까? 아이들 둘이 합세해서 그런가?  두 견공 犬公들이 합세한 것, 내가 원했던 것이지만 생각처럼 쉬운 것도 아니었고, 특히 로난의 &#8216;신경질적인 모습&#8217;은 나를 놀라게 했다. 솔직히 정이 떨어질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내가 이런 상황에 잘 적응을 못했던 것으로 결론은 맺자.  은근히 기대를 많이 했던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8230; 그래, &#8216;일은 치렀다&#8217;로 만족하자&#8230; 하지만.. 하지만&#8230; 성탄 때로 예정된 2차 모임은 이제 &#8216;절대로 기대는 하지 말자&#8217;로 생각을 바꾼다.</p>
<p><span style="font-size: 14pt;">오늘도 어제에 이어서</span> BICS prize winner essay를 읽는다. 특히 <em>Bernardo Kastrup</em>의 것은 정말 인상적으로 학구적인 것이었다. 이런 석학들이 현재 consciousness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NDE, Swedenborg&#8217;s Afterlife, Kastrup, Consciousness&#8230;. 모든 것이 함께 나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들&#8230; 이것도 분명히 성모님의 손길의 도움이라는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모처럼 맛보는 wine과 SPAM combo 의 즐거움과 함께 나는 <em>Swedenborg</em> [그리고 <em>Helen Keller</em>] 가 20년 이상 왕복했던 사후 死後의 세상을 마음껏 상상한다.</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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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Funeral Mass, still shocking &#038; sad&#8230; Swedenbor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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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Sat, 19 Nov 2022 01:04:28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성당]]></category>
		<category><![CDATA[아틀란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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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성당에서 연령행사(연도, 장례미사)가 생겼을 때, 우리에게 참석여부의 기준은 경험적인 것으로, 우선 조문객이 아주 적다는 사실이 미리 알려지면 여건을 막론하고 꼭 참석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 참석여부를 정한다는 것이다. 이번 case는 후자에 속하지만 우리는 두 번 생각도 할 수가 없이 수많은 조문객의 일원이 되었다. 오늘 C 로사 자매님 연도, 장례미사는 당연히 많은 조문객들이 올 것이라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성당에서 연령행사</span>(연도, 장례미사)가 생겼을 때, 우리에게 참석여부의 기준은 경험적인 것으로, 우선 조문객이 아주 적다는 사실이 미리 알려지면 여건을 막론하고 꼭 참석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 참석여부를 정한다는 것이다. 이번 case는 후자에 속하지만 우리는 두 번 생각도 할 수가 없이 수많은 조문객의 일원이 되었다.</p>
<p>오늘 C 로사 자매님 연도, 장례미사는 당연히 많은 조문객들이 올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지만 그래도 놀랄 정도로 성당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우리가 생각한 이유는 C 로사 자매님의 잔잔하고 정직한 성품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무슨 영웅적으로 성당에서 봉사를 한 것 보다는 항상 웃는, 친절한 모습이 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 그런 모습이 사라진 것에 따라오는 섭섭함, 슬픔 등이 무언중에 모든 사람들이 진심을 애도를 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이것은 모두가 깨달아야 할 교훈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 자매 죽음의 원인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건이라는 것에 사람들의 애도가 더해졌음도 자명한 사실이긴 하다.</p>
<p>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남편 형제님에 대한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부인 자매와는 느낌이 너무나 다른 것, 어떻게 둘이 부부가 되었는지조차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가정을 현재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도 그  부군 형제님을 멀리서 보면서 그 인상의 음양이 교차하는 느낌을 그에게서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충격적인 고통을 현재 겪고 있을까 생각하니 솔직히 말을 잊는다.</p>
<p>그제, 어제 오늘 아침까지 머릿속은 물론 차로사 자매의 얼굴, 모습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느님, 예수님께서 너무하시다는 생각뿐이다. 물론 이런 비극에도 무슨 뜻이 있는 것은 굳게 믿지만 한갓 인간의 능력으로 이런 고통을 쉽게 참는다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그래도 분노, 슬픔의 고통을 이기고 유족들은 자매님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절대적 희망을 잃지 않기를&#8230; 바라지만&#8230; 그것이 당분간은 어렵겠지~</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i>Swedenborg, Swedenborg</i>&#8230;</span> 지금 거의 우연히 나에게 다가온 이 사람, 그의 경험, 사상, 철학, 믿음.. 등등을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느끼고 공부를 하고 싶다. 분명히 나에게 우리에게 무슨 신비를 가르쳐줄 듯한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8216;이단성&#8217;은 100% 항상 조심할 것이고&#8230; 저에게 식별의 능력을 주시기를&#8230;<br />
<a href="https://swedenborg.com/"><em>Swedenborg Foundation</em> website</a>를 favorite link로 아예 설정을 해 놓았다. 이 topic은 현재 나의 영적 여정의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다만 &#8216;정통교리성&#8217;은 항상 의식해야 할 것이다. 그 외에는 나에게 모든 것이 신비적, 학문적, 혁신적, 미래적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깊이 공부를 할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br />
<em>Another</em> Swedenborg&#8230; 분명히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서 전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100% 확실하다. 문제는&#8230; 내가 어느 책에서 읽었던 것일까? 혹시 website는 아니었을까, 하지만 책에서 본 것이 더 가능성이 있는데, 도대체 어떤 책에서 보았는가? 아~ 현재 나의 책들이 완전히 혼란한 모습으로 어질러져 있으니&#8230; 어떻게 다시 깨끗하게 정리를 할 것인가?</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어제 찾아낸 <i>Humana</i></span> plan <b>H5216-XXX-1 PPO</b>, 이제까지의 plan에 비하면 완전히 우리에게 파격적으로 알맞고 좋은 것이었다. 이 plan이 과연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그것이 조금 궁금하다. Drug plan은 거의 비용의 부담이 사라지고, 치과도 전 것과 비교할 수가 없으니&#8230; 아마도 주위에서 사람들이 &#8216;자랑&#8217;하는 것은 이런 plan을 말하는 것이었는지도.. 이제까지의 plan이 2019년부터 우리가 가입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지난 3년 동안 새로 나온 것일지도 모르고, 그 동안 내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살았던 것은&#8230; 아~~ 나는 왜 이 모양인가? 왜 이렇게 게으른가, 나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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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On Quiet Rainy Autumn Day</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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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13 Oct 2022 00:29:35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날씨]]></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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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예보대로 날씨는 잔뜩 흐리고 포근한 것, 비가 예보되었지만 chance가 높지 않아서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지만 오후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잔잔한 가을비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특히 바쁘지도 않고 졸음을 참는 때, 이 고요한 빗소리와 문 밖 cul-de-sac의 모습은 가슴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이런 시간이 가급적 짧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오늘 본 비는 사실 정말 모처럼 보는 광경이어서 신기하기까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878"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11/2022-10-12-15.04.17-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예보대로 날씨는</span> 잔뜩 흐리고 포근한 것, 비가 예보되었지만 chance가 높지 않아서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지만 오후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잔잔한 가을비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특히 바쁘지도 않고 졸음을 참는 때, 이 고요한 빗소리와 문 밖 cul-de-sac의 모습은 가슴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고, 이런 시간이 가급적 짧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오늘 본 비는 사실 정말 모처럼 보는 광경이어서 신기하기까지 한 것이었다.</p>
<p>신경질적으로 피하고 싶은 새벽의 싸늘함 대신에 편안하게 포근한 새벽이 좋다. 덕분에 포근했던 이불을 박차고 6시 반이 지나자마자 일어나는 쾌거를 맛보았다. 근래에 나는 분명히 이 칠흑 같은 새벽을 못보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도 현재 나를 괴롭히고 있는 &#8216;게으름의 행진&#8217; 의 일부거나 결과일 것이다.</p>
<p>오늘은 모처럼 &#8216;정상 외출&#8217;하는 날, 아침미사와 YMCA의 일정이 잡혀있고 따라서 &#8216;제 시간&#8217;에 움직여야 하는 조금 귀찮게 느껴지는 날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를 &#8216;사회적&#8217;으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기에 가급적 이런 routine은 고수해야 하지 않을까? 노력하는 거다, 노력, 마지막 그날까지&#8230;</p>
<p>아침미사, SONATA-CAFE, YMCA, KROGER의 daily routine을 끝내고 집에 와서 모처럼 <em>Kroger</em> fried chicken으로 점심을 채운다. 예전처럼 아주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어도 모처럼 먹는 것이니까 OK.</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오늘은 비를 핑계로</span> 완전히 &#8216;일없는 날&#8217;로 미리 계획을 했는지, 나도 완전히 손을 놓았다. 그래~ 오늘까지만 쉬자~ 라는 달콤한 유혹을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 그래, 편하고 싶다&#8230;</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left  wp-image-20879"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11/Book-Exorcist-1971.jpg" alt="" width="167" height="236" />대신 어제부터 시작한 영화 <i>The Exorcist</i> 50주년 이라는 이름과 추억으로 오늘도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오늘은 영화 전에 documentary를 다시 보게 되었다. 비디오의 화질이 엉망이긴 하지만 이 영화의 &#8216;백과사전&#8217;격 정도의 자세한 정보와 역사가 그곳에 거의 전부 모여있었다. 과연 올해는 <i>Halloween</i> 전에 이것의 전부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자신이 없긴 하지만, 누가 알랴?</p>
<p>이 추억의 영화가 나 개인에게 미친 효과, 영향은 사실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해도 큰 과언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아니 우리가 Roman Catholic 천주교인을 살아가는 인생도 이 영화가 조금은 도움을 준 것을 알면 조금 나조차 놀라는 것이다. 당시 처음으로 본 천주교, 신부 사제, 수녀들의 모습과 분위기가 나중에 세례, 입교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50년 전의 이 <i>blockbuster</i> movie는 이렇게 해서 나에게는 아직도 관심의 대상이다.</p>
<p>또한 이 영화를 개봉 1년 후에야 실제로 극장에서 본 그 당시의 추억은 또 다른 개인역사의 일부로 남아있다. 그 추웠던 1974년 12월 크리스마스 직전 시카고 downtown 의 극장으로 비롯된 나의 숨기고 싶은 escapade, 이 죄스러운 짧은 실수의 역사를 나는 어떻게 묻어두고 갈 것인가?</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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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oodbye, August 2022&#82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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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01 Sep 2022 02:32:23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가을]]></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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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습기가 완전히 빠져나간 8월 마지막 날 작열하는 태양과 정말 오랜만에 보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넋을 잃고 보았다. 기온만 조금 더 내려가면 이것이 바로 9월의 세상모습인 것이다. 아~ 구월, 구월, 더운 낮과 시원, 싸늘한 밤이 교차하고 하복에서 동복을 기다리는 하루하루&#8230; 런닝셔츠 바람으로 칼 싸움을 하며 놀다가 갑자기 싸늘해진 저녁을 맞아 당황했던 가회동 골목의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20662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8/PICT0145-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습기가 완전히 빠져나간</span> 8월 마지막 날 작열하는 태양과 정말 오랜만에 보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넋을 잃고 보았다. 기온만 조금 더 내려가면 이것이 바로 9월의 세상모습인 것이다. 아~ 구월, 구월, 더운 낮과 시원, 싸늘한 밤이 교차하고 하복에서 동복을 기다리는 하루하루&#8230; 런닝셔츠 바람으로 칼 싸움을 하며 놀다가 갑자기 싸늘해진 저녁을 맞아 당황했던 가회동 골목의 9월&#8230; 어찌 어찌 그 눈물 없던 시절을 잊으랴&#8230;<br />
어제 늦은 오후에는 상당히 비가 많이 내렸다. 뒤쪽의 fence 위쪽이 다음날 아침까지 완전히 젖었다는 것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초여름에는 사실 올해 혹시 가뭄이 오는 것을 조금 걱정했지만 역시 Mother Nature는 아직도 이 지역에 은총을 계속 내려 주시고 있는 듯하다. 물론 다른 곳에서의 재난은 항상 두렵고 미안하지만&#8230;  결국 이곳은 알맞은 비와 큰 문제 없는 기후의 은총을 주신 것&#8230; 감사합니다.</p>
<p>결국은 8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구나~ 경우야, 한 달을 어떻게 살았니? 나의 &#8216;친구, 친지&#8217;들은 어떻게들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부디 건강하게,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건강을 되찾는 은총과 함께 하고 있기를&#8230; 그래, 나보다 약하고, 아픈 사람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기도하고, 돌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은데, 요새는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를 않던 것, 나에게는 사실 너무나 아쉬운 일이고, 심지어 불안, 조바심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 그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의 은총이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싶다. [나는 이런 류의 문장은 참 쓰기가 어렵구나, 자연스럽지 못하고, 나의 깊은 생각이 반영되지를 않으니&#8230;]</p>
<p><span style="font-size: 14pt;">내일은 연숙의 70세 생일</span>이다. 60세, 환갑이란 것이 10년 전, 이제는 소위 말하는 칠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둘에게 두 번씩이나&#8230;  하지만, 사실 지내고 보니, &#8216;아무것도 아니잖아?&#8217; 라는 쓴웃음만 나온다. 그래, 요새 70이란 것이 그렇게 의미가 변하고 있으니&#8230; 심지어 70이란 사실을 잊고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것은 너무하고&#8230; 그래서 내일은 모처럼 둘이서 조금 맛있는 외식을 하기로, 편하게, 부담 없이, 우리 방식으로, 조용히 보내기로 의견을 모았으니 됐다, 됐어&#8230; 연숙아, 건강하고 행복한 칠십 대를 여행해보자. 갈 때까지, 갈 때가지&#8230; 나를 먼저 보내줄 수 있는 여유와 은총을 꿈꾸며&#8230;</p>
<p><span style="font-size: 14pt;">작년에 자신 있게, 기세 좋게</span> 구입한 책 <i>Jordan Peterson, God, and Christianity</i>  오늘도 계속 읽는다. 그가 Bishop <i>Barron</i>과 그의 <i>Word On Fire Institute</i> 의 주목을 받는 이유와 그의 종교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의 시작이다. 이런 최고 지성들의 상호 분석은 한 마디로 눈부시게 신비롭기까지 하다.</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617"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9/2022-08-31-21.29.48-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오늘은 Ozzie가 집으로</span> 돌아가는 날,  산책의 기쁨을 기다리면 사는 녀석을 데리고 걸었다. 짧은 코스로&#8230; 하지만 녀석의 행복한 모습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이 녀석과는 어떤 이별을 하게 될 것인가, 미리부터 눈물이 나온다.<br />
새로니, 유나,  리처드가 와서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고 늘어지게 쉬고 갔다. 반갑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그들, 하지만 우리의 식구가 아닌가? 아쉬운 것은 이해를 하도록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타주로 이사를 가더라도, 이곳에 같이 사는 그날까지 나중에 후회가 없도록, 없도록&#8230;</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20664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8/PICT0147-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nbsp;</p>
<p>모처럼 집 앞쪽 front door로 들어오는 walkway 의 pressure washing을 끝내 버렸다. 이것을 생각하면 2018년 7월 경이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그때 구역장을 &#8216;마지막 chance&#8217;라며 겁도 없이 맡아서, 모든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에 앞도 안 보고 달렸던 시절, 과정은 좋았지만 결말은 &#8216;참담하기 까지&#8217; 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후회는 절대로 안 한다. 최선을 다했으니까&#8230; 그때 나는 구역모임을 준비한답시고 집 단장의 일환으로 오늘 한 것 같은 대청소를 한 것이다. 이재욱 신부님이 오시던 날이었지&#8230; 이제는 모든 것이 추억이고, 개인역사가 되었다. 2018년에는 구역장 연수회도 갔었지.. 그때의 추억도 어찌 잊겠는가?</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20665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8/PICT0152-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오늘 드디어 shed tool group</span>들이 garage로 &#8216;첫 입성&#8217;을 시작하였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는 겨울이 되기 전에 소중한 각종 hardware, tool들이 차고로 들어오게 될 것, 이제는 자신이 있다. 일단 시작된 것, &#8216;유기적 원리&#8217;에 의지하면 된다. 이제는 저절로 알아서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제일 큰 도전은 역시 tool bench가 아닐까? 현재로써는 구체적인 idea은 없지만 이것도.. 저절로&#8230;</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20666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8/PICT0151-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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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J. Peterson&#8217;s God and Christianity&#82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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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Fri, 26 Aug 2022 21:45:3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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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16;Jordan Peterson, God, and Christianity&#8217;,  이 책을 산지도 일년이 지나갔는데 이제야 겨우 몇 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다. 관심이나, 흥미가 적어서 그런 것보다는 다른 책들 쪽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역시 현재 인기가 많은 &#8216;인기인&#8217; 개인의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 관에 관한 것이라서 우선은 Jordan Peterson 이란 사람을 더 알아야 하는 걸림돌이 있다. 하지만 현재 YouTube를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631"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9/2022-08-26-22.11.40-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8216;Jordan Peterson, God, and Christianity&#8217;</span>,  이 책을 산지도 일년이 지나갔는데 이제야 겨우 몇 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다. 관심이나, 흥미가 적어서 그런 것보다는 다른 책들 쪽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역시 현재 인기가 많은 &#8216;인기인&#8217; 개인의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 관에 관한 것이라서 우선은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Jordan_Peterson">Jordan Peterson</a> 이란 사람을 더 알아야 하는 걸림돌이 있다. 하지만 현재 YouTube를 통해서 지성인 중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얼마 전에는 완전히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고 공언</span>을 하였기에 더 이상 이 책을 읽기를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가장 커다란 무기는 역시 그의 &#8216;첨예한 지성&#8217;이고 이 책은 그의 기본적인 성경 해석을 분석한 것이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이제 읽기를 시작했지만 현재의 느낌으로는 빠른 시일 내에 완독을 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632"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9/coursera-bible-1.jpg" alt="" width="650" height="280" /></p>
<p><span style="font-size: 14pt;">오늘은 짬이 나는 대로</span> Coursera course를 청강하는 기회를 얻었다. 바로 시작한 것, Atlanta E<em>mory University</em> 신학대학에서 제공하는 &#8216;이스라엘의 역사적, 성서적 기원&#8217;이 주제다.  이것에 관심이 간 제일 큰 이유는 구약,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prehistory 선사시기의 학문적 역사적 사실과 구약의 차이, 관계가 궁금했던 것인데, 이것도 역시 과학과 신앙의 대비, 차이, 대결이라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20669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8/PICT0107-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신기한 광경이 펼쳐진 침실</span>, 해가 중천에라도 뜬 듯한 대낮 같은 밝음, 어찌된 일인가? 시계를 보니 8시가 훨씬 넘었다. 몸이 개운한 듯 느껴진다. 아~ 그렇구나, 평상시보다 거의 한 시간 이상 늦게 일어난 것이다. 평상처럼 깜깜한 속을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나의 모습이 없어서 편하기도 하고..</p>
<p>너무나 초현실 같이 꾸었던 꿈들도 너무나 선명한데, 이번에는 거의 확실하게 뇌세포에 남아 있다. 우연인가, 이것에 무슨 뜻이 있는 것일까? 100% 분명한 것은 &#8216;박종섭&#8217;이란 동창의 얼굴과 이름 뿐이지만,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는 아마도 하루 종일 생각거리가 되지 않을까?</p>
<p>몸이 개운하고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히 어제 운동한 것과 그 후에 Tylenol 2알의 결과일 것 같다. 과도로 쌓여가는 피로가 어제 절정에 달했고, 오늘 아침의 oversleep으로 풀어졌다고 결론을 내린다.</p>
<p>오늘은 아침 미사를 못하게 되었다. 연숙이 새로니 집에 갈 약속이 되어 있기에 그렇지만,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그 &#8216;심리적 도움&#8217;을 받아 오늘 나도 편하게 피로를 풀게 되었고, 선명한 꿈까지 꿀 수도 있었으니까, 큰 불만은 없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그런데&#8230; 왜 박종섭인가</span>? 허~ 이것이 문제다. 재동국민학교, 중앙 중고등학교, 그리고 연세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동창은 사실 드문 케이스일 것이지만 그와 친해본 적은 한번도 없으니.. 키가 큰 그룹에 속했던 그와 말도 해본 적도 없다. 나보다는 조금 낫지만 그도 역시 내성적이고 조용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를 기억할만한 것이 거의 없는데, 언젠가 그가 미국에 있는 한국의 Hynix란 반도체회사의 사장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전부인데, 그의 변신이 아마도 나에게는 커다란 놀라움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물론 샘이 날 정도로 부럽고, 다른 쪽으로는 자랑스러운 그런 묘한 심정이었다. 그는 중앙고등학교 3학년 때 나와 같은 반, 그러니까 &#8216;이공계&#8217;반이었는데 어떻게 연세대에서는 인문계 (아마도 상경계) 쪽으로 공부를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정도면 크게 성공한 동문인데 동창회 쪽으로 그의 이름은 그렇게 자주 등장하지 않는 것도 조금 의아한 사실.</p>
<p>이런 배경으로 그의 모습은 뇌리의 어느 곳에 있었을 터이지만, 왜 그가 오늘 꿈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일까? 정말 우연 중의 우연일까?</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634"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9/2022-08-26-13.17.10-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오늘은 연숙의 스케줄 때문에 부득이 미사를 쉬게 되었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이런 것들도 유연성이 있어야 장기적으로 유리하니까 할 수가 없다. 대신 몇 년 동안 하지 못했던 pressure washer로 집 정문 쪽을 deep cleaning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Hedge trimming 까지 할 수 있었던 것, 오늘의 건조하고 시원한 날씨 덕분이었다.</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20670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8/PICT0108-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연숙이 Ozzie를 새로니 집에서 데리고 왔다. 새로니 식구가 내일 여행을 간다고 오늘부터 Ozzie를 봐달라고 한 것, 오늘부터 내주 수요일까지,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녀석과 매일 산책하는 것도 몸에도 좋으니까&#8230;</p>
<p>&nbsp;</p>
<p>&nbsp;</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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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oe v. Wade Collapsing, Erwin Schrödinger, IoT/MQT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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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05 May 2022 00:50:35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날씨]]></category>
		<category><![CDATA[아틀란타]]></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category><![CDATA[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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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Roe versus Wade, 이제까지 unthinkable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온다는 뉴스를 보고, 정확하게 mixed feeling의 극치를 맛본다. 1973년 이곳에 왔던 그 해 초에 이것이 헌법의 한 조항이 되었던 것, 미국 여성운동의 절정을 이루기도 했던 이것, 낙태법&#8230; 50여 년 동안 나는 이것은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솔직히 한번도 깊이 심사숙고 해본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8216;나에게 상관없다&#8217;라는 자세로.. 1975년 나의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em><span style="font-size: 14pt;">Roe versus Wade</span></em>, 이제까지 unthinkable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온다는 뉴스를 보고, 정확하게 <em>mixed</em> feeling의 극치를 맛본다. 1973년 이곳에 왔던 그 해 초에 이것이 헌법의 한 조항이 되었던 것, 미국 여성운동의 절정을 이루기도 했던 이것, 낙태법&#8230; 50여 년 동안 나는 이것은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솔직히 한번도 깊이 심사숙고 해본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8216;나에게 상관없다&#8217;라는 자세로.. 1975년 나의 부끄러운 escapade 경험까지 연관이 되어서 잊고 싶기도 했다. 그저 막연히 여성인권을 조금 더 보호한다는 차원 정도였다.</p>
<p>하지만 가톨릭 신자가 되면서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8230; 하지만  진정한 종교, 특히 천주교 신자의 의미를 생각하며 &#8216;생명의 의미&#8217;로 발전하고, 결국은 교회가 고수하는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나도 pro-life 라고 자처하게 되었다. 그것이 정치계와 연관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하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이런 big news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최근의 &#8216;DONALD 개XX&#8217;들 덕분에 조금 냉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8216;생명 경외&#8217;의 기본적인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역시  detail에 있는 것이다.</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430"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5/ErwinS-1.jpg" alt="" width="650" height="521" /></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391"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Schrodinger-1.jpg" alt="" width="650" height="466" /></p>
<p style="text-align: center;"><em>Erwin Schrödinger</em>의 묘지석</p>
<p><span style="font-size: 14pt;"><em>Erwin Schrödinger</em>:</span> Schrödinger Equation, Quantum Physics에 한때 심취하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일명 probability wave equation이라던가? 간단히 말해서 classical physics에서 Newton의 2nd equation이 소립자 세계인 quantum level에서는 이 wave equation으로 바뀌는 것이다. Uncertainty principle에 의해서 모든 입자들의 움직임은 probability wave를 따른다는 것. 크기가 작아지면 일상적인 세상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는 것, 정말 신비롭지 않은가? 거꾸로 크기가 너무 커지는 초우주 level로 바뀌면 Einstein의 general relativity theory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8230; 그러니까 인간적 눈으로 보는 것은 궁극적인 실재, 현실의 극히 일부에 한정되는 것,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이것을 실감하면 모든 것에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span>.  우리가 보고 느끼고 듣고&#8230; 이런 것들이 세상만사의 진실을 다 설명할 수 없는 것,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을 제대로 사는 방법이 아닐까?</p>
<p>이 뉴턴의 고전물리에 맞먹는 새로운 &#8216;확율파동방정식&#8217;을 유도한 Schrödinger, 그는 물론 이 방정식으로 일약 1930년대 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Quantum Physics의 거두, 거성으로 길이길이 그 이름이 남는다.</p>
<p>그는 일단 물리학의 거성이지만 다른 물리학 거성을 초월하는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독특한 실재관</span>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철학과 신비주의, 종교, 생명론 등에 첨예한 관심을 가진 &#8216;가슴이 활짝 열린&#8217; 천재라고나 할까. 그의 강의록 &#8216;<em>What is Life</em>&#8216;에서 그는 물리학과 생명의 접근을 논하고 있을 정도다.</p>
<p>문제는: 다 좋은데&#8230; 알고 보니 그는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간단히 넘어갈 수 없는 개인적인 결함의 소유자</span>였다. 그것도 지나친 것. 이럴 때 그의 모든 업적들은 어떻게 평가 절하가 되어야 할 것인가? 요새 말로 <em>cancel</em> culture가 적용되어야 할 것은 아닐까?</p>
<p>그는 한마디로 pedophile, 그러니까 어린 소녀들과 성관계를 즐겼던 것, 지금 같으면 100년 징역형은 아닐까? 그것도 모자라서,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축첩도 모자라서 아예 집에 본부인과 첩이 함께 살았고, 그 부인은 남편 동료와 관계를 맺으며 살았다고 하니</span>&#8230;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기막힌 사실은 이런 해괴한 삶이 그의 과학연구에 커다란 에너지를 주었다는 것. 이제 이 &#8216;인간&#8217;의 &#8216;파동방정식&#8217;을 흠모할 때마다 뒤에 보이는 각종 &#8216;성관계 장면&#8217;이 떠오른다면 어찌할 것인가? 시대마다 독특한 성 문화가 있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예전에는 바람 피우고 축첩을 하고 아이들과 성관계를 맺고 하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관대하게 허용이 되었던 듯한 사실이고, 대신 그 당시에는 동성문화는 완전히 범법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거의 반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8216;언어&#8217;를 만든 이 천재도 역시 도덕적 시험에서는 완전한 죄인인 것이다. 이런 사실이 서서히 들어나면서 그의 이름을 붙인 각종 장소에서 cancel culture의 영향을 받아 하나 둘 씩 사라지게  되었으니&#8230;</p>
<p>그의 고향인 <em>Vienna, Austria</em> 에 있는 그와 wife의 묘소, 그곳에 그의 wave equation이 자랑스럽게 전시가 되고&#8230;  그의 또 다른 바람둥이 wife가 제3의 mistress와 합장이 안 된 것, 다행인가 아니면? 되었다면 유례없는 <em>Three&#8217;s Company</em> 묘소가 되지 않았을까?</p>
<p><span style="font-size: 14pt;">본격적으로 어제 저녁은</span>  a/c 에어컨 계절의 서막을 장식하였고 덕분에 창문을 여닫는 수고를 몇 개월간 잊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했지만, 참 그것은 한마디로 나의 우둔한 생각이 아닌가? 무엇을 위해서 몇$$를 절약하려고&#8230; 조금 더 크게 생각하자. 너무나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자&#8230; 순리대로 살고, 조금은 나이에 맞는 편안함과 평안함을 추구하자.<br />
지난 밤에는 완전히 열대성 기후를 보는 듯한 &#8216;습기 찬 대기에 뿌린 약간의 비&#8217; 소리를 들었고, 아~ 이제 서서히 여름이 오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축축한 땅의 모습도 반갑고, 다시 출현하는 모기들, 끈끈함 들, 시원한 오후의 소낙비와 옷에 신경 안 쓰는 편안한 낮잠&#8230; 등등 모든 몸을 편히 펼 수 있는 모습이 반갑다.  하지만 평년적인 5월은 이것보다는 조금은 싸늘하고 건조한 것, 얼마나 며칠이나 계속될 것인가?</p>
<p><span style="font-size: 14pt;">몇 달 만에 체중계에</span> 올라 서 보았다. 평소 체중은 145 파운드를 오랜 세월 유지하고 있었다가 얼마 전 140으로 갑자기 줄었었다.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거의 병적인 식욕감퇴로 고생을 하던 때였기에 당연한 것으로 알았고 이제부터는 140이 정상체중으로 생각하기로 했는데&#8230; 다시 오래 전의 것으로 환원을 한 것, 좋은 것인가 아니면 별로? 나의 키의 평균은 사실 140 정도일 듯도 하지만 육체적인 노동이나 운동을 하려면 어느 정도 초과된 체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8230; 현재 나는 아주 활동적인 생활을 하기에 적당한 것이다. 이로서 우리의 식생활에도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게 되기도 했다.</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392"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5-04-10.19.58-1.jpg" alt="" width="650" height="351" /></p>
<p><span style="font-size: 14pt;">옆집 Dave 집에서 아침부터</span> 요란한 중장비 소리가 나서 보니, 나무를 자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길가 쪽으로 아주 무성하게 자란 삼림을 연상케 하는 키다리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런 자연의 모습이 잘려지고 사라지는 것은 조금 슬픈 것 아닐까? 하지만 너무 집 가까이에 서 있는 키다리 나무는 위험한 것이기에 할 수가 없다. 처음에 아틀란타로 이사오면서 놀란 것은 역시 &#8216;울창한 수목, 삼림&#8217; 그것도 주택과 섞여 있는 것은 장관에 속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로 키다리 소나무들이 송림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을 방문했던 중앙중고 동창생 호룡이가 우리 집 backyard에서  &#8216;송림욕&#8217;을 한다고 할 때 나도 실감을 했었다. 그 당시 backyard는 정말 원시림 송림 그 자체였으니까..지난 30여 년 동안 개발이 가속되면서 모습도 따라 변했지만 그래도 울창한 모습은 인상적이다. 미국의 어느 대도시를 가도 하늘에서 본 모습이 이렇게 &#8216;시골&#8217;처럼 보이는 곳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을 듯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8216;개발&#8217;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당히 균형을 지킨다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p>
<p><span style="font-size: 14pt;">IoT/MQTT: </span>IoT system에 흥미를 느낀 지도 한참이나 되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8216;무언가 재미있는 것이 나를 기다린다&#8217; 정도가 나의 자세인 것이다. 이런 상태를 나는 상당히 즐기는 편이 아니던가? 실제로 손을 대기 전의 그런 &#8216;즐거움에 대한 기대&#8217;. 이러다가 나의 인생을 수없이 &#8216;시간낭비&#8217;의 피해를 보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이 나의 본성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의 매력은 시작하는데 $$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이유도 그렇고, 실용적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으며, 제일 구미가 당기는 것은 &#8216;머리가 돌아가는 한&#8217; 이것으로 여생을 바쁘게 보낼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다.</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397"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5-04-18.24.10-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한때 잡초들로 우거진</span> 이 fence부분, 연숙이 깨끗이 정리를 한 후에 드디어 paint가 칠해지고, 이후에 screen 이 복구될 것이다&#8230; 보기에 훨씬 정돈된 모습이 되고 있다.</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393"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5-04-13.38.44-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저녁 무렵에 잠시 내린 따뜻한 비, 이후에 backyard의 모습은 실로 봄의 신록  그 자체다. 살아있는 느낌, 깨끗한 모습, 공기조차 꽃가루가 밀려난 것, 역시 비의 도움이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내려주는 비에게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인지&#8230; 성모님, 감사합니다&#8230;</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394"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5-04-18.35.13-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395"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5-04-18.35.23-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396"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6/2022-05-04-18.35.29-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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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ate, late Daffodils, Teilhard Chardin, Puti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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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Wed, 23 Feb 2022 01:21:11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computer]]></category>
		<category><![CDATA[계절]]></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category><![CDATA[종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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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매년 뒤뜰의 Tobey 무덤 앞에서 2월초를 기다리다가 피기 시작하는 수선화, 올해는 무려 2주 가량이나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왜 올해는 이렇게 늦었을까? 다른 곳의 수선화들은 2월 첫 주에 제대로 피었는데&#8230; 토양, 일광의 여건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옆에서 잠들고 있는 Tobey녀석, 아마도 이것으로 봄이 오는 것도 몰랐을 듯하다. 하지만 늦게라도 피었으니까, 봄은 역시 빠르게 오고 있는 것이다. &#160;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038"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2022-02-22-11.09.00-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매년 뒤뜰의 <em>Tobey</em> 무덤 앞에서</span> 2월초를 기다리다가 피기 시작하는 수선화, 올해는 무려 2주 가량이나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왜 올해는 이렇게 늦었을까? 다른 곳의 수선화들은 2월 첫 주에 제대로 피었는데&#8230; 토양, 일광의 여건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옆에서 잠들고 있는 <em>Tobey</em>녀석, 아마도 이것으로 봄이 오는 것도 몰랐을 듯하다. 하지만 늦게라도 피었으니까, 봄은 역시 빠르게 오고 있는 것이다.</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039"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2022-02-22-11.08.05-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정리가 안 된 나의 머리 속, 무엇이 이렇게 복잡한가? 며칠 동안hp pc box와 UBUNTU에 시간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싫어진 것이다. 아~ 복잡한 세상, 주위, 머리 속 다 지겨워지는 것이다. 시간을 선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도 못하게 하는 방해꾼으로 서서히 변하는 작은 monster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동기는 Raspberry Pi 로 시작되었지만 또 나는 &#8216;연필을 깎기&#8217; 시작한 것이다. Stop it, stop it, now! 갑자기 무겁게 느껴지는 남아도는 &#8216;black hp&#8217; pc box들을 다 치우기 시작하고, 이제부터는 RasPi 한가지만 나의 주변에 둘 것이고 그것만 만질 것이다. 단순하고, 간단하게 살고 싶다. 이제는 RasPi 하나만, 하나만, 하나만&#8230;</p>
<p>오늘은 오랜만에 로난이 오는 날이 되었다. 나라니 회사 스케줄과 <em>President&#8217;s Day</em> school break로 daycare 가 쉬기 때문에 전에 이미 예정이 된 것이다. 그래, 최선을 다해서 즐기고 즐기게 해주면 된다.</p>
<p>오랜만에 grandparents 집 에서 녀석은 산책 중, 전형적인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비가 온 후에 길가에 고인 모든 puddle 고인 물, 시궁창에서 날뛰는 모습, 나도 어렸을 적에 그것이 그렇게 재미있었던 기억, 70년 뒤에도 생생하니&#8230;  얼마나 녀석 신이 났을까?</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040"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2022-02-22-10.36.06-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어제 오랜만에 박 스테파노 형제와</span> 카톡 인사를 하면서 그의 관심 [과학과 신앙, 종교] 과 나의 그것이 아주 비슷한 것을 확인한 것, 그렇게 반갑고 기쁘다. 그의 생각과 이해는 나의 그것과 중복되는 것들이 꽤 있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Big Bang Cosmology, Quantum Physics 의 double-slit experiments, entanglement, 카프라 Capra의 동양신비사상</span> 등등..  나는 그에게 내가 심취하는 <em>Teilhard Chardin</em>의 과학적 신앙사상을 언급해서 관심을 이끌어 냈다. 과학과 신앙, 종교가 실재라는 현실을 보는 다른 두 관점이라면, 상이하게 보이는 이 두 종류의 인간이성이 절충을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 논리적으로 보아도 허점이 없다면 이제는 서로 조금 대화를 더 하면 좋지 않을까?  교회는 조금 더 과학사상, 철학을 폭넓게 인정을 하고, 과학계는 그것이 실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만 인정하면 되지 않을까&#8230;</p>
<p><span style="font-size: 14pt;">Russia Monster, <em>Putin</em>&#8230;</span> 현재 top news들,  피하고 싶은 것들 중 Donald 개XX 를 제치고 오랜만에 빨갱이들이 top으로 올라섰다. 두 빨갱이 괴수들이 다시 30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역사의 반복인가&#8230; 한때 빨갱이들은 북괴와 쿠바 정도로 안심을 했는데&#8230;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있는가. 현재는 Putin이 대표적인 bad guy로 자처를 하는데&#8230; 역시 그는 빨갱이 중의 빨갱이임을 재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그것에 맞추어 중공빨갱이들이 합세를 하게 되면</span>&#8230; 골치 아픈 세상이 오는 것인가?  1930년대 독일어를 쓰는 지역을 모두 자기 것으로 하나 둘씩 먹어 치우던 Hitler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하나 둘씩 정치적, 군사적으로 주변 지역을 &#8216;먹어 치우던&#8217; 그, 그것을 지켜본 이후 세상은 어떤 지옥의 세계를 맛보았던가?  우리 자식세대가 염려가 된다. 하지만 이제 나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8216;안 보이는&#8217; 하느님의 인간역사의 개입을 100%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것을 믿는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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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ast Week with Coursera Thomas Berry</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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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Fri, 05 Nov 2021 01:57:23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성당]]></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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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Thomas Berry Coursera course의 마지막 주를 지나고 있다. 읽어야 할 것을 필사한 덕분에 Thomas Berry Writings 책의 대부분을 나의 것으로 만들게 되었다. 책들을 읽으며 예전, 특히 2014년 전후에 열을 올리며 읽었던 책들을 꺼내어 그 당시를 회상하는 것, 나에게는 참으로 흐뭇한 시간이다. 그때가 나의 신앙의 차원이 급상승 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8216;믿게 된&#8217; 것, 아니 믿을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i>Thomas Berry</i> Coursera</span> course의 마지막 주를 지나고 있다. 읽어야 할 것을 필사한 덕분에 <i>Thomas Berry Writings</i> 책의 대부분을 나의 것으로 만들게 되었다. 책들을 읽으며 예전, 특히 2014년 전후에 열을 올리며 읽었던 책들을 꺼내어 그 당시를 회상하는 것, 나에게는 참으로 흐뭇한 시간이다. 그때가 나의 신앙의 차원이 급상승 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8216;믿게 된&#8217; 것, 아니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 그것이 현재까지 큰 무리 없이 지속된 것은 &#8216;지식적인 믿음&#8217;의 결과가 아닐까? 무조건 믿는 것, 나는 믿지 않는다.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것도 이성적, 과학적인 이유에 근거한 것들 이어야 한다.</p>
<p>Secular Media Blackout, 거의 즉흥적인 나의 반발적 행동이었지만,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나는 즐기고 있다. 아침에 무려 3시간 정도의 아주 평화스럽고 편한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 이때 평소에 못하거나 미루어 놓았던 것을 하면 더욱 보람이 있지 않을까? 첫 번째 나의 손이 간 곳은 요즘 들어서 거의 지나치고 있는 아틀란타 대교구 신문인 <i>Georgia Bulletin</i>. 내가 오랜 전 다시 성당 community로 돌아올 무렵부터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것, 어떻게 된 일인지 Pandemic이후 거의 관심이 떨어지고 front page만 흘깃 볼 정도가 되었다.</p>
<p>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가, 왜 다른가, 물론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럴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연보다는 무엇인가 원인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이 tabloid, 무엇에 홀린 듯 중요한 기사는 다 읽게 되었다. 현재 우리 대교구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드문 기회다.</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어둠 속에서 차갑게 느껴지는 비</span>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어둠이 걷히지 않은 아침, 오늘도 나는 가급적 media blackout 속을 지나갈 것이다. 대신 그 시간에 더 많은 글들을 읽을 것이다. 읽었어야 했을 여름목록 책들이 많이 밀려있다. 이제는 겨울목록으로 바뀌어야 할 판&#8230;  그렇지만 계속 조금씩이라도 읽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어려움을 견디어내는 커다란 처방전인 것이다.</p>
<p>어제 순교자 성당, 신임 구 미카엘 신부님과 개인적 대화의 통로 channel을 만들려고 카톡 연결을 시도했다. 놀란 사실: 우선 주보에 연락처 전화번호 대신에 그의 email 연락처가 덩그러니 그곳에 적혀 있었다. 흠~~ 아직 전화가 없으신가.. 그럴 리가 없는데&#8230; 할 수 없이 email을 쓰는 수고까지 한 결과는 조금 의외였고 실망까지 하게 되었다. 이전 두 신부님의 활발한 texting 하던 모습과 대비가 되면서, 아~ 내가 완전히 다른 시대감각의 신부님을 대하고 있구나 하는 탄식이 나왔다.  설마 지금 mobile phone에 texting (가급적 <em>kakao</em>) 을 안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나의 문의에 대한 답변의 느낌도 &#8216;차갑게 간단한&#8217; 것, 허~ 내가 그 동안 spoil 된 것인가, 신부님을 잘못 보고 있었나&#8230;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이래저래 전임 이재욱, 이영석 신부님들의 자상한 text message들이</span> 이 싸늘한 가을비 속에서 더욱 그리워진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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