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wfw="http://wellformedweb.org/CommentAPI/"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xmlns:sy="http://purl.org/rss/1.0/modules/syndication/"
	xmlns:slash="http://purl.org/rss/1.0/modules/slash/"
	>

<channel>
	<title>중앙중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atom:link href="https://serony.com/ken/tag/%EC%A4%91%EC%95%99%EC%A4%91/feed/"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 />
	<link>https://serony.com/ken</link>
	<description>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38; place, autobio in progress..</description>
	<lastBuildDate>Sun, 01 Feb 2026 14:43:00 +0000</lastBuildDate>
	<language>en-US</language>
	<sy:updatePeriod>
	hourly	</sy:updatePeriod>
	<sy:updateFrequency>
	1	</sy:updateFrequency>
	<generator>https://wordpress.org/?v=6.9.4</generator>

<image>
	<url>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5/08/cropped-2014-07-01-10.08.14-2-32x32.jpg</url>
	<title>중앙중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link>https://serony.com/ken</link>
	<width>32</width>
	<height>32</height>
</image> 
<site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71724475</site>	<item>
		<title>Glimmer of Hope</title>
		<link>https://serony.com/ken/2025/08/22/glimmer-of-hope/</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25/08/22/glimmer-of-hope/#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Fri, 22 Aug 2025 23:14:40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雜記]]></category>
		<category><![CDATA[영화]]></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category><![CDATA[중앙중]]></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serony.com/ken/?p=25820</guid>

					<description><![CDATA[갑자기 습해진 대기, 태양열이 사라진 덕분에 기온은 거의 10도나 떨어졌으니 이것은 끈끈한 것 보다는 시원하다는 칭찬을 하고 싶다. 앞으로 며칠 최고 기온이 low 80s! 와~ 매일 비가 올 chance까지~ 이렇게 8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 아닐지~~ OK, OK&#8230; 이 표현, glimmer of hope 구절이 떠오른다. 요즈음 아주 아주 드문 일이다. 내일이 반갑지 않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갑자기 습해진 대기</span>, 태양열이 사라진 덕분에 기온은 거의 10도나 떨어졌으니 이것은 끈끈한 것 보다는 시원하다는 칭찬을 하고 싶다. 앞으로 며칠 최고 기온이 low 80s! 와~ 매일 비가 올 chance까지~ 이렇게 8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 아닐지~~ OK, OK&#8230;</p>
<p>이 표현, <em>glimmer of hope</em> 구절이 떠오른다. 요즈음 아주 아주 드문 일이다. 내일이 반갑지 않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현재 마주하며 하고 있는 각종 일들로 내일을 잊고 사는 것, 그것은 사실 &#8216;없는 희망&#8217;의 두려움 때문이라는 싫은 현실 때문일지도~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8230;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내일의 희망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것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바로 &#8216;희망의 부재, 절망&#8217;이 아닐까? 내가 강제로 만들 수 없는 것이 바로 희망의 현실인 것이다. 그러니 역시 지속적인 희망은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p>
<p>3주가 넘는 긴 세월을 잠깐의 유혹으로 Extremely <em>Narcissistic</em> JK-stuffs binge watching으로 보낸 후유증인가, 이제 조금씩 나의 제 모습으로 돌아오며 뒤를 조금씩 돌아본다. 완전한 시간낭비는 물론 아니다. 그 정도로 내가 무절제했던 것이 아닌 것이다. 조금씩 돌아보며 그때 심리를 조금씩 재조명하는 것, 보람 있고 재미도 있을 듯&#8230;  이 수렁을 빠져나오며 반작용으로 daily journal back posting에 몰입할 수 있게 된 것은 의외적인 수확일 거다. 2023/4 에 수많은 개인역사들이 다시 알알이 나의 digital history에 남게 되었고, 그 뒤 진짜 목표인 everyday life와 함께 하는 삶, 그것을 바라보게 되었으니까&#8230;</p>
<p><span style="font-size: 14pt;">점점 나의 사회적 반경이</span> 극도로 축소되는 것,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며 대응하는 것이 좋은지, 정답이 없다. 그것이 ~ 마지막 그룹다운 그룹, 그것도 마지막, 경운합창모임마저 나를 떠난다면?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어서 조금은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때가 아닐지. 한 달에 2번 차로 왕복 60마일, 그곳에서 발성연습으로부터 시작해서 2시간의 &#8216;사회활동&#8217;이 없어진다면~ 섭섭한 것은 당연하지만 나의 건강에는 영향이 없을지&#8230; 외출, 귀가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쩔 것인가?<br />
홍 후배와의 정기적 만남의 문제로 어제부터 작은 갈등을 겪는 우리들, 이것도 정답이 없는 것이 문제다. 조용히 살아도 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되고, 어떤 것이 더 좋은가? 나의 솔직한 대답은 무엇인가? 상황에 따라 둘 다 맞을지도 모르지만, 가슴 속으로 나오는 답은 &#8216;좋은 관계를 가진 관계&#8217;라면 그것이 외로운 것보다는 1,000배는 좋다는 것이다.</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YouTube Treasure, Glorious Black &amp; White, again<br />
</span><em>William Holden</em>, <em>Deborah Kerr</em>, WW2 movie<br />
<em>The Proud &amp; Profane<br />
</em>드물게 보는, 콧수염이 있는 <em>William Holden</em>, 그의 독특한 매력은 이곳에 없지만 <em>Deborah Kerr</em>는 더욱 이곳에서 유난히 매력적이구나. 무슨 이유였는지 확실치 않지만 중고시절 (특히 중학교)에 그녀를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em>Marilyn Monroe</em> 매력의 정반대 형이어서 그랬던가?</p>
<p><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5821"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6/02/2025-08-22-08.28.34-1.jpg" alt="" width="56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또  self-cooked mini-pancake</span>, no-meat 금요일인가~ 오늘 아침에는 무엇을 먹는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은 있는데, 금요일이라는 것은 no-meat와 나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mini pancake이 떠오르고, 이후는 완전 automatic mode. 요새 만드는 이것,  연륜이 쌓이며 점점 퇴보하는 듯한 느낌인데, 모양새가 점점 보기가 싫은 것이다. 완전한 동그란 모양에서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맛과는 상관이 없겠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 이것 혹시 나의 나이와 건강상태에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과연 그럴지&#8230;</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25/08/22/glimmer-of-hope/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25820</post-id>	</item>
		<item>
		<title>Sah-Il-Gooh! Student Phenomenon, RIDGID compressor</title>
		<link>https://serony.com/ken/2022/04/19/sah-il-gooh-student-phenomenon-ridgid-compressor/</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22/04/19/sah-il-gooh-student-phenomenon-ridgid-compressor/#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Wed, 20 Apr 2022 00:01:41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computer]]></category>
		<category><![CDATA[Home Improvements]]></category>
		<category><![CDATA[역사]]></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category><![CDATA[중앙중]]></category>
		<category><![CDATA[책]]></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20226</guid>

					<description><![CDATA[사일구, 사일구.. 아~ 그런데&#8230;  춥다, 아니 싸늘하다, 싸늘해~~ 4월 19일, 아하 &#8216;우리 들&#8217;의 사일구였지.. 1960년 4월 19일 아침도 이렇게 싸늘했을까? 그날 아침의 날씨는 분명히 해가 뜨는 전형적 4월 말 서울의 날씨였었다. 중앙중학교 입학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당시는 4월 초에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등교를 하자마자 퇴교를 당했다. 물론 그보다 더 &#8216;신나는 달밤&#8217;을 없었고 곧바로 재동국민학교 앞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227"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4/dontshootus-1.jpg" alt="" width="650" height="366" /></p>
<p><span style="font-size: 14pt;">사일구, 사일구.. 아~</span> 그런데&#8230;  춥다, 아니 싸늘하다, 싸늘해~~ 4월 19일, 아하 &#8216;우리 들&#8217;의 사일구였지.. 1960년 4월 19일 아침도 이렇게 싸늘했을까? 그날 아침의 날씨는 분명히 해가 뜨는 전형적 4월 말 서울의 날씨였었다. 중앙중학교 입학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당시는 4월 초에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등교를 하자마자 퇴교를 당했다. 물론 그보다 더 &#8216;신나는 달밤&#8217;을 없었고 곧바로 재동국민학교 앞 만화가게로 돌진을 해서 &#8216;정의의 사자, 라이파이&#8217;나 &#8216;철인 28호&#8217;에 심취했을 즈음에 근처의 종로경찰서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경무대 근처에서 총소리 [그것은 카빈소총]가 나기 시작하고&#8230; 생후 처음으로 방송극에서나 들었던 진짜 총소리를 들었던 신비하기도 했던 그 시간에 데모 형님들이 쓰러지며 부정선거를 규탄했던 때&#8230;  종로경찰서 쪽 신작로[비원 앞에서 안국동 쪽 길, 당시에는 길 이름이 없었음]에 나가보니 트럭에 가득 탄 대학생 형님들의 고함소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고..  운집했던 어른들, 발을 동동 구르며 자녀들의 생사를 애타게 기다리던&#8230; 그날은 결국, 사일구라고 즉시 불리기 시작한 역사적인 날이 되었고 나중에 미국의 <i>LIFE</i> magazine은 <i>Student Phenomenon</i>이란 논설로 그날을 보도하기도 했다. </p>
<p><img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228"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4/student-phenomenon-1.jpg" alt="" width="650" height="311" /></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성당에서 집으로 오는</span> 길목에서 순간적으로 아침 식사를 <i>McDonalds</i>에서 결정하고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특별히 아침 식사를 만드는 것이 귀찮은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런 순간적인 생각이&#8230; 이런 것들, 선택, 결정, 자유의지 등등 과학적인 분석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이유가 결여된 갖가지 선택과 결정들</span>&#8230; 하지만, 오늘 억지로 만든 이유는 &#8216;이대로 집으로 들어가는 것&#8217;이 싫어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i>McCafe</i> coffee의 향기도 있고, 다른 분위기에서 둘이 있고 싶었던 것, 그것이었다.</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229"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4/2022-04-19-10.23.05-2.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며칠 전에 fence screen을</span> 고치면서 알게 된 사실은, <em>Harbor Freight</em> 의 cheap Chinese-made 4 gallon air compressor가 죽어 있었다는 것, 나에게는 첫 air compressor였기에 정이 들대로 들었던 pro tool이 아닌가? 2000년대에 산 것이니까 도대체 얼마나 쓴 것인가? 자주 쓴 것은 아니더라도 나에게 자부심을 주었던 tool이었다. 한번 pressure switch가 고장이 나서 교체를 하기도 한 것인데..  다시 이것을 서야 하는데, 이번에는 <em>Harbor Freight</em>로 가고 싶지 않았다. 잠재적으로 Chinese를 피하고 싶기도 했고, 처음으로 유명 name brand를, 그것도 <em>Home Depot</em>에서 사고 싶었다. 며칠 전, garage door sealer를 online으로, 그것도 free deliver service을 경험하고 보니 Amazon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고, 별도로 shipping charge가 없는 것이 아닌가? 값도 값이지만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오늘 $140 정도로 <i>RIDGID</i> 6 gallon 150 PSI compressor를 order해 버렸다. 무언가 큰일을 한 기분까지 든 것, 처음으로 non <i>Harbor Freight</i> product를 산 것이 어쩌면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230"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4/ridgid-compressor.jpg" alt="" width="650" height="665" /></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오늘로서 며칠 동안 골머리를 쓰며</span> 준비했던 PC system <em>emergency</em> recover &amp; migration plan을 일단 끝내게 되었다. 계기는 우연히 &#8216;당했던&#8217; ransomware-malware 의 추악한 모습에 질려서 시작된 것이다. 매일 쓰던 나의 필수품 desktop pc가 순간적으로 못쓰게 된다면, 제일 아쉬운 것이 무엇인가&#8230; 그것은 Microsoft Office 2008 <i>OneNote</i> [with Korean Language Pack]과 open-source email client <i>Thunderbird</i> 두 가지였다. 비상사태 발생시 이것만 즉시 다시 쓰게 된다면 과도한 stress는 피할 수 있을 것인데&#8230;  하지만 critical personal data는? 일단 거의 매일 usb flash stick으로 manual backup이 되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Stop right here! 더 이상 이것에 신경을 쓰지 말자! 이것도 과분한 것이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최악의 경우 모두 잃는다고 해도 어쩔 것이냐</span>? 그것이 나의 생명과 관계라도 있단 말이냐? Ok, Ok, Forget it!</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231"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4/2022-04-19-12.38.56-2.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지난 성주간 동안 나는</span> &#8216;소죄 小罪&#8217;를 짓고 살았다. 제일 가까이 해야 했을 &#8216;영성적 서적&#8217;들은 물론이고 나를 흥분시키는 다른 책[주로 과학과 신앙]들을 더 멀리하며 산 듯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조용하게 명상을 할 침묵의 시간을 못 만들고, 심지어 신앙심이 해이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럴 리는 없다고 강변을 하고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말 책에 손이 가지를 않았다. 책상 오른쪽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8216;책더미&#8217; 사진을 찍은 후에 가만히 보니 모두 읽고 싶었던 것들인데 왜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것인지&#8230; 자세히 보기조차도 미안해서 흑백으로 바꾸어서 보니 조금은 덜 미안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도.</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22/04/19/sah-il-gooh-student-phenomenon-ridgid-compressor/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20226</post-id>	</item>
		<item>
		<title>Spring&#8217;s Coming at Saybrook Court</title>
		<link>https://serony.com/ken/2022/03/31/springs-coming-at-saybrook-court/</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22/03/31/springs-coming-at-saybrook-court/#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Fri, 01 Apr 2022 01:35:45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계절]]></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category><![CDATA[중앙중]]></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20105</guid>

					<description><![CDATA[어제의 거세고 훈훈했던 비바람이 서서히 물러가고 나머지 구름도 함께 사라지는 하늘에는 서풍의 서늘한 공기가 밀려오며 산책길을 서늘하게 만들어준다.  오늘은 원래 새로니 식구가 거의 정기적으로 놀러 오는 목요일이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유나를 못 보게 되었고 Ozzie와 한 시간 반 걸리는 산책을 못하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조금 몸이 불편하다고 하더니 오늘은 외출하는 것이 &#8216;귀찮다&#8217;고, 그러니까 몸이 안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106"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4/2022-03-31-12.37.18-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어제의 거세고 훈훈했던 비바람이</span> 서서히 물러가고 나머지 구름도 함께 사라지는 하늘에는 서풍의 서늘한 공기가 밀려오며 산책길을 서늘하게 만들어준다.  오늘은 원래 새로니 식구가 거의 정기적으로 놀러 오는 목요일이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유나를 못 보게 되었고 <em>Ozzie</em>와 한 시간 반 걸리는 산책을 못하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조금 몸이 불편하다고 하더니 오늘은 외출하는 것이 &#8216;귀찮다&#8217;고, 그러니까 몸이 안 좋은 것이다. 감기, 몸살 류일 듯한데 아니면 어쩔 것인가&#8230; 아니다, 지나가는 감기 정도일 것이다.  갑자기 <em>Sope Creek</em>이 그리워진다. <em>Ozzie</em>와 마지막으로 산책을 한 것이 언제였던가&#8230; 최소한 2주일은 되었을 듯한데&#8230;  오늘 갔으면 또 그곳의 모습에서 더 진한 봄기운을 느꼈을 것인데&#8230; 대신 오늘은 일찌감치 연숙과 둘이서 동네만 간단히 산책을 했는데,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어제까지 이곳으로 불었던 남풍이 서서히 서풍으로 바뀌면서 그렇게 훈훈했던 공기가 싸늘한 느낌으로 변하는 것, 그것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낀 것, 날씨와 온도의 변화가 신기하기만 하다.</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108"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4/2022-03-31-12.19.35-1.jpg" alt="" width="650" height="312" /></p>
<p><span style="font-size: 14pt;">2022년 우리 집 앞에 봄이</span> 오는 길, 수선화가 서서히 물러가고 진달래, 튤립, 그리고 서너 그루의 dogwood가 낮과 밤의 모습을 서서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우리 집 앞의 이 이른 봄의 모습도 이제 30년째가 되는구나&#8230; 사순절, 부활절과 더불어 dogwood의 예수십자가 전설<sup class='footnote'><a href='#fn-20105-1' id='fnref-20105-1' onclick='return fdfootnote_show(20105)'>1</a></sup> 을 떠올리면 더욱 우리 집 앞이 부활절의 의미를 더해준다.</p>
<p><span style="font-size: 14pt;">3월의 마지막 날, 내일은</span> 4월 1일 &#8216;만우절&#8217;, 정말 세월 빠르다. 작년의 기억이 생생한 즈음에 또다시 4월의 노래를 준비해야 하니&#8230; 작년의 일지를 보면 더욱 더 생생해진다, 기억들이&#8230; 일년 전 이즈음은 성삼일이 지나가고 있었고, 우리 집의 &#8216;대공사&#8217;가 끝났던 때였다. 작년과의 제일 큰 변화는 역시 Pandemic의 느낌, 이제는 뉴스조차도 그 가치와 흥미를 거의 잃어가고 있으니까.. 앞으로 또 나올 것이라는 예보조차 실감이 안 갈 정도다. 이것은 현재의 big news인 Ukraine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p>
<p><span style="font-size: 14pt;">짬이 나거나 심심한 듯 느껴지면</span> &#8216;조중동&#8217; websites,  조심스레 열어본다. 이 &#8216;조중동&#8217;이란 약어는 2년 전쯤  조시몬 형제로부터 전해 들었다.  유학생 아들 뒷바라지 차 이곳에 임시 거주하고 있던 성당교우, 그에게 &#8216;고국소식을 알려면 어떤 뉴스매체가 좋은가&#8217; 라고 물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8216;조중동&#8217;이란 말을 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의 모습이 정말 웃긴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국의 세가지 신문들의 이름이었다.  2000년대 초에  김대중의 열렬한 fan으로 보이던 사람의 권유로 &#8216;한겨레 신문&#8217;이란 것을 잠깐 보기도 했는데 워낙 &#8216;로동신문&#8217;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의 구미에 맞지 않아서 더 이상 보는 것을 포기한 이후, 나는 거의 모든 관심과 뉴스를 내가 사는 이곳의 NPR이나 New York Times 쪽으로 바꾼 이후&#8230; 몇 십 년이 흘렀나?  20여 년 동안 너무나 변해버린 고국, 이제는 염치를 조금 찾으려고 여기까지&#8230; 앞으로는 주위, 특히 동년배들이 나누는 고국의 정치얘기의 의미를 조금은 알아듣게 되려나&#8230;</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109"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4/2022-03-31-11.46.02-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서서히 비워지는 우리 집 garage</span>, 시간이 감에 따라 나의 소망이 이루어질 날이 다가온다. 현재 집 뒤뜰에 덩그러니 홀로 외롭게 서있는 tool workshop에 있는 많은 tool들을 garage로 옮겨오고 이곳에 tool shop을 만드는 꿈, 그것이 올해에는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빈 corner가 우선 tool, hardware parts들이 shelving될 곳이다.</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110"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4/2022-03-30-22.38.26-1.jpg" alt="" width="650" height="315" /></p>
<p><span style="font-size: 14pt;">월광곡을 시작된 음악교사</span> 김상을 金相乙 음악선생님의 추억을 찾으려 정말 오랜만에 먼지에 쌓인 중앙중학교 졸업 앨범을 꺼내서 본다. 마지막을 본 것이 10년 전 쯤 아니었을까? 중앙고 앨범은 이미 pdf file로 scan이 되어서 가끔 보기도 하지만 중학교 것은 그렇게 인기가 없는가&#8230; 하기야 그곳의 동창들의 많은 수가 졸업 후 다른 학교로 갔을 것이니까&#8230;  이곳에 보이는 모습은 그러니까&#8230; 1962년 가을, 겨울이 아니었을까? 아~ 1962년 중학교 3학년 때의 추억&#8230; 1963년 봄 졸업 때까지의 가회동 추억들이 나를 짜릿한 신비의 세계로 이끈다&#8230;</p>
<div class='footnotes' id='footnotes-20105'>
<div class='footnotedivider'></div>
<ol>
<li id='fn-20105-1'> 이 나무가 예수님이 처형된 십자가였다는 것, 예수 시대에 dogwood는 지금 것보다 훨씬 크고 견고했고, 당시 예루살렘지역에서 제일 큰 나무였다고 한다. 또한 십자가 처형, 부활 이후 예수님이 이 나무를 다시는 십자가 형에 쓰이지 못하도록 크기와 모양을 작고 구부러지게 만들었다는 전설, 또한 꽃봉오리 모양을 십자가, 성혈과 가시관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변화시켰다는 전승 <span class='footnotereverse'><a href='#fnref-20105-1'>&#8617;</a></span></li>
</ol>
</div>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22/03/31/springs-coming-at-saybrook-court/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20105</post-id>	</item>
		<item>
		<title>Red Monster Putin, Moonlight Sonata</title>
		<link>https://serony.com/ken/2022/03/30/red-monster-putin-moonlight-sonata/</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22/03/30/red-monster-putin-moonlight-sonata/#comments</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31 Mar 2022 00:53:57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Politics]]></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category><![CDATA[중앙중]]></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20112</guid>

					<description><![CDATA[UNICEF USA 에서 보내주는 newsletter를 유심히 본다. 얼마 전에 이곳에 Ukraine 난민들 그 중에서 어린이들을 특별히 돕는 곳에 small cash donation을 했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이 피난민들, 어찌 남 같으랴? 오늘 소식에서 우크라이나 Yuliya라는 어떤 임산부가 이틀이나 위험을 무릅쓰고 &#8216;들판과 삼림&#8217;을 걸어서 수도 Kyiv 까지 와서 아기를 안전하게 무사히 낳았다는 것. 물론 UNICEF가 지원하는 어떤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113"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4/unicefusa-ukraine-1.jpg" alt="" width="650" height="292" /></p>
<p><span style="font-size: 14pt;"><em>UNICEF USA</em> 에서 보내주는</span> newsletter를 유심히 본다. 얼마 전에 이곳에 Ukraine 난민들 그 중에서 어린이들을 특별히 돕는 곳에 small cash donation을 했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이 피난민들, 어찌 남 같으랴? 오늘 소식에서 우크라이나 <em>Yuliya</em>라는 어떤 임산부가 이틀이나 위험을 무릅쓰고 &#8216;들판과 삼림&#8217;을 걸어서 수도 <em>Kyiv</em> 까지 와서 아기를 안전하게 무사히 낳았다는 것. 물론 UNICEF가 지원하는 어떤 open medical center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포탄과 폭격 속을 걸어온 이 임산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p>
<p>이 진 빨갱이, Putin이란 놈은 도대체 어떤 놈인가? 비록 70여 년이지만 우리 가족들도 Monster Putin이 아닌 Monster Stalin의 꼬붕격 다른 빨갱이 새끼 Monster  김일성 개XX의 소련제 녹슨 중고 탱크에 짓밟히지 않았던가?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짱깨 빨갱이들에게까지&#8230;  이 빨갱이 집단들은 유전적으로 Dracula와 비슷해서 그런지, 아까이 빨강색, 피를 그렇게도 좋아하는가&#8230; 비록 Karl Marx는 그런 살인자들의 출현을 예상하지는 않았어도 결과적으로 그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살인, 파괴집단으로 20세기 역사를 장식했으니..  공산당 빨갱이들의 실패한 실험이 일단은 사라졌다고 안심하고 산 지도 몇 십 년이 되었지만, 결과는 Not So Fast~ 인가?  흡사 2차 대전 후, 냉전시작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참담한 느낌까지 드는데. 전쟁은 절대로 피하고 싶지만 어차피 해야 한다면 무슨 수단을 가릴까? 이번에는 아주 실패한 공산집단을 지구상에서 멸종을 시킬 명분이 서지 않았는가? 결국,  유일한 희망은 역시 미국밖에 없는가?</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 <iframe loading="lazy"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ohF-ttDjsiw" width="650" height="315"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a href="https://en.wikipedia.org/wiki/Piano_Sonata_No._14_(Beethoven)"><span style="font-size: 14pt;">Beethoven&#8217;s Moonlight Sonata</span></a>, 월광곡 月光曲&#8230; (Beethoven&#8217;s Piano Sonata No. 14 in C-Sharp minor)  나의 눈을 &#8216;YouTube 쓰레기 급 video&#8217; 에서 멀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ambient music, 그것도 조금은 알만한 classical 쪽을 찾아 GOM Audio player를 setup하며 우연히 듣게 된 곡이 바로 이것 &#8216;월광곡&#8217;, 그 중에서도 간판 격인 도입부, Adagio 의 은은한 흐름이었다. 월광곡으로 배우고 알던 이 곡, 어찌 추억이 없으랴~~ 중앙중학교 시절 (아마도 2학년 무렵, 그러니까 1961년 경) 당시 음악선생님, 솔직히 중학교 수준에는 걸맞지 않게 중후하고 나이도 젊지 않았던 김상을 선생님, 이 곡을 소개해주시고, 당시 흔치 않았던 멋진 &#8216;전축&#8217;으로 들려 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 귀한 record 판을 소중한 가보를 다루듯이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우단으로 만든 dust cleaner 로 먼지를 닦던 모습이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그려진다. <br />
<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size-full wp-image-20114 alignleft"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4/2022-03-30-22.37.39-1-1-rotated-e1648861461169.jpg" alt="" width="200" height="233" />하지만 이것보다 더 생생한 기억은 그 &#8216;월광곡&#8217;인가 뭔가 하는 고전음악을 듣던 우리들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와~ 재미없다! 졸리다~ 당시 중학생이 그 베토벤의 소나타를 얼마나 알고 이해하며 감상 할 수 있겠으랴? 그 이후로 남은 생각은, &#8216;유명한 고전음악일수록 재미없고 괴롭다~&#8217; 라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 세기적인 고전음악을 듣기에 우리는 너무나 어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김상을 선생님의 고전음악에 대한 열정은 지금 새삼 고마움은 느끼고 있지만&#8230; 타이밍이 맞지를 않았다.<br />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며 다시 듣게 된 이 곡은 한마디로 환상적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같은 귀로 듣던 같은 선율이 이렇게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선율을 듣고 느끼던 &#8216;원자 분자&#8217;로 이루어진 두뇌세포의 차이란 말인가? 결국은 음악의 감상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경험적 사실, 비약적으로 말하면 영혼만이 들을 수 있는 느낌일 수도 있다 라는 생각도 해 본다.<br />
Adagio 도입부, 이 곡의 간판 격, 이곳의 느낌이 과연 달빛 月光의 그것일까? 이런 명칭은 나중에 비평가의 느낌에서 생겨났으니까, 사실 베토벤이 작곡할 당시 그의 머리 속에는 &#8216;달빛&#8217;이란 것은 없었을 듯하다.  중학생일적 그렇게도 &#8216;멋대가리 없었던&#8217; 것이 이렇게 가슴을 쥐어짜게 <a href="https://www.npr.org/templates/story/story.php?storyId=18577817">아련하고, 기쁘고, 눈물이 나도록 행복하게</a>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 내재의 영혼의 능력임을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는 긴 여정에서 알게 된 것만해도 너무나 기쁜 것이다.</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22/03/30/red-monster-putin-moonlight-sonata/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2</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20112</post-id>	</item>
		<item>
		<title>Groundhog Day, Farewell Hemingway&#8230;</title>
		<link>https://serony.com/ken/2022/02/02/groundhog-day-farewell-hemingway/</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22/02/02/groundhog-day-farewell-hemingway/#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03 Feb 2022 00:59:14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Reviews]]></category>
		<category><![CDATA[계절]]></category>
		<category><![CDATA[영화]]></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category><![CDATA[중앙중]]></category>
		<category><![CDATA[책]]></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9971</guid>

					<description><![CDATA[Groundhog Day, 2022&#8230; 올해는 잊지 않고 언급을 한다. 오늘 이 유명한 두더지가 자기 그림자를 보았을까? 작년에는 그의 기후예보가 거의 정확히 맞았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이것 거의 &#8216;복권&#8217;추첨을 보는 듯 해서 이제는 재미도 있고.  Bill Murray 주연의 영화 The Groundhog Day가 암시하는 메시지, 매일매일 쳇바퀴 도는듯한 우리의 &#8216;지겨운 매일&#8217;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극을 받는 위안도 받는다.  1993년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9982"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groundhogday-2022-1.jpg" alt="" width="650" height="311" /></p>
<p><span style="font-size: 14pt;"><em><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left  wp-image-19986"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groundhog-day-again-1.jpg" alt="" width="164" height="151" />Groundhog Day</em>, 2022</span>&#8230; 올해는 잊지 않고 언급을 한다. 오늘 이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유명한 두더지</span>가 자기 그림자를 보았을까? 작년에는 그의 기후예보가 거의 정확히 맞았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이것 거의 &#8216;복권&#8217;추첨을 보는 듯 해서 이제는 재미도 있고.  <i>Bill Murray</i> 주연의 영화 <i>The Groundhog Day</i>가 암시하는 메시지, 매일매일 쳇바퀴 도는듯한 우리의 &#8216;지겨운 매일&#8217;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극을 받는 위안도 받는다.  1993년 이 <i>midwinter</i> classic film은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이제 아련~ 한 추억거리로 남게 되어</span>, 내가 살아 있는 한 이날은 재미있는 날로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오늘 이 유명한 두더지는 과연 보았을까?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아~  보았다</span>, 자기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앞으로 6주 간은 겨울이 계속</span>된다&#8230; 허~ 올해도 이것이 맞을 듯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구나.</p>
<p>거의 10도 정도가 올라간 비교적 포근한 날씨일 것이지만 역시 그 뒤에는 빗방울의 그림자가 없을 리가 없다. 구름이 있어야 포근함의 가능성이 있음을 안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거의 3한 4온</span>, 그리고 정확한 주기로 찾아오는 비를 동반한 구름들&#8230; 그래, 최소한 이 지역 U.S. Southeast 는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Global Warming의 느낌이 없는, 거의 정상적 기후 패턴을 유지</span>하고 있다. 감사, 감사&#8230; 하지만 한가지,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눈발을 다시 보는 행운은 있을까, 언제일까, 꿈은 버리고 싶지 않다.</p>
<p><span style="font-size: 14pt;">TV news <em>front</em></span>&#8230;  나의 favorite &amp; trustworthy channel은 전통적으로 NBC 인데 이유는 나에게 그들의morning show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음이 들고 news 보도도 비교적 이성적, 객관적인 것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요새는 난항을 겪고 있는데 두 가지 &#8216;사건&#8217; 때문이다. 하나는 최근에 들어,  &#8220;<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입만 열면 거짓말이 나오는</span>&#8220;, &#8216;개XX DONALD&#8217;에 대한 보도를 지나치게 자세히 하고 있는 것[왜 그XX의 새빨간 거짓말을 cover하는지&#8230;]이고 다른 것은 &#8216;<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중공, 빨갱이 짱깨</span>&#8216; 들의 다른 <i>fake</i> show, Olympic을 [상업적이 이유지만] 전면 cover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한 유일한 선택은&#8230; 그것들을 아예 &#8216;꺼버리는 것&#8217;,  그렇게 어렵지 않은 선택이다.</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오늘 이른 아침 TV에서</span> 우연히 잠깐 본 영화에 낯익은 얼굴이 나온다. <em>Rock Hudson</em>, 1957년 개봉된 이 <em>Hollywood</em> 영화, 한글 제목은  &#8216;<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무기여 잘 있거라</span>&#8216;, 귀에 익숙한 이 구절.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A_Farewell_to_Arms">헤밍웨이의 유명한 소설</a>과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A_Farewell_to_Arms_(1957_film)">영화의 제목 <i>A Farewell To Arms</i></a>.. <br />
이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61년 때 학교에서 단체로 가서 보게 된 영화[<em>Rock Hudson, Jennifer Jones</em>] 때문이었다. 중학교 [서울 중앙중학교] 2학년 생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그 나이 코흘리개들이 과연 이 이야기를 어느 정도 이해할 것인가? 물론 전쟁의 모습들은 흥미 있게 보았겠지만, 당시 우리의 화제는 한가지였다. 주인공Rock Hudson[ <em>Frederic Henry</em>역] 과 그의 연인 Jennifer Jones[<em>Catherine Barkley</em>역] 가 과연 &#8216;그것을&#8217; 했을까.. 하는 것이었고 아직도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 원래 소설에는 그렇다고 나오지만 아마도 검열에서 삭제가 되었을 것이다. 좌우지간, 그 나이에 벌써 우리들의 hormone level은 왕성했던 것인가.</p>
<p>나중에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서 잠재의식, 기억이 하나 둘씩 되살아 나왔다. 눈이 덮인 높은 알프스 산등성이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하는 군인들, 폭탄이 떨어지는 병원에 누워서 &#8216;마지막&#8217; 기도를 합창하는 부상병들, 후퇴하는 민간인들의 처참한 모습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길가에서 군법 즉결재판 후 총살 당하는 군인들</span>,  그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에 맞서서 연합군 측에 가담한 이태리 군인들의 알프스 작전을 포함한  1차대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배우게 되었고 요새는 그것, 전쟁의 실제 모습&#8217; 을 직접 경험했던 Hemingway의 생각과 기억을 생각하게 되었다.</p>
<p>하지만 당시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Ernest_Hemingway">헤밍웨이의 행적</a>을 묘사한 다른 책[실화]과 영화[실화에 근거한]가 있었던 것은 오늘에서야 비교적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가19살에 혈기왕성한 미국청년으로서 이태리 군대의 위생병, ambulance driver로 참전한 경험은 나중에 그가 쓴 각종  베스트셀러 걸작 소설의 배경이 되는데, 특히 그가 사랑에 빠져서 결혼까지 하기로 했던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또 다른 미국출신 7년 연상의 간호원 <em>Agnes</em>는 위에 말한 영화의 여자 주인공의 model이 된다. &#8216;무기여 잘 있거라&#8217; 같은 소설과는 달리 실제의 이 연애 스토리는 전쟁이 끝난 후 서로 헤어지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그가 나중에 노벨상을 받게 되는 세계적 문인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전쟁중의 사랑이야기는 유명한 것은 고사하고 진부하고 흔한 이야기 중의 하나였을 것인데</span>, 헤밍웨이와 <em>Agnes</em>의 운명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8216;평범한&#8217; 사랑이야기는 1960년 이후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해서 1990년대에는 책과, <em>Chris O&#8217;Donnell, Sandra Bullock</em> 주연의 영화, &#8220;<i>In Love and War</i>&#8220;로 알려지기도 했다.</p>
<p>헤밍웨이의 운명, 아니 행운은 1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연합군 측으로 참전한 이태리에 외인부대 위생장교로 참전한 것으로, 그것은 그의 일생을 좌우하는 사건이었다.  위에 말한 <em>Agnes</em>라는 연상의 여인과 흠뻑 사랑에 빠진 것, 그 젊은 나이의 열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탁월한 문필가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이태리 무대가 모든 베스트셀러, 노벨상 등으로 이어지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을까? 그 이후에도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그는 각종 분쟁, 전쟁지역을 돌아다니며</span> &#8216;아마도&#8217; 이태리 때의 사랑의 경험을 다시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까?</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9972"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Farewell-Arms-1.jpg" alt="" width="650" height="241" /></p>
<p style="text-align: center;">1차대전 말 이태리의 <em>Alps</em> campaign의 시작..</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9973"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Farewell-Arms-2.jpg" alt="" width="650" height="271" /></p>
<p style="text-align: center;"><em>Frederic</em>과 <em>Catherine</em>의 우연한 첫 만남</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9974"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Farewell-Arms-3.jpg" alt="" width="650" height="224" /></p>
<p style="text-align: center;">알프스 산맥 정상으로 쳐들어오는 독일군을 향해 올라가는 이태리 군인들</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9975"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Farewell-Arms-4.jpg" alt="" width="650" height="237" /></p>
<p style="text-align: center;">독일군 spy로 오인되어 총살 위기에 몰린 Frederic </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9976"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Farewell-Arms-5.jpg" alt="" width="650" height="230" /></p>
<p style="text-align: center;">구사일생으로 위기모면 후 중립 스위스로 탈출하는&#8230;</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9977"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Farewell-Arms-6.jpg" alt="" width="650" height="235" /></p>
<p style="text-align: center;">스위스 동네 경찰이 이민관 역할을.. 여권은 검사하지만 속 뜻은&#8230;</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9978"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Farewell-Arms-7.jpg" alt="" width="650" height="235" /></p>
<p style="text-align: center;"><em>Catherine</em>은 출산의 후유증으로 세상을&#8230;</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9980"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Farewell-Arms-8.jpg" alt="" width="650" height="228" /></p>
<p style="text-align: center;">결국 그는 전쟁과 사랑의 비극을 몸소 안은 채&#8230;</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9990"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22/02/hemingway-2-1.jpg" alt="" width="650" height="289" /></p>
<p style="text-align: center;"><em>Ernest Hemingway</em></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22/02/02/groundhog-day-farewell-hemingway/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9971</post-id>	</item>
		<item>
		<title>종로구 계동 1번지</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9/02/18/%ec%a2%85%eb%a1%9c%ea%b5%ac-%ea%b3%84%eb%8f%99-1%eb%b2%88%ec%a7%80/</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9/02/18/%ec%a2%85%eb%a1%9c%ea%b5%ac-%ea%b3%84%eb%8f%99-1%eb%b2%88%ec%a7%80/#comments</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ue, 19 Feb 2019 03:58:57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중앙고]]></category>
		<category><![CDATA[중앙중]]></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5222</guid>

					<description><![CDATA[2년 전 아래층으로 &#8216;이사&#8217;를 내려온 나의 office에 있는 bookshelf 에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책들을 섞는 중에 눈에 띈 책이 있었다. 오래 전에 읽다 말다 하다가 놓은 책, 동아일보사 간행, &#60;인촌 김성수&#8217;&#62; 란 책이었다.  김성수, 동아일보사 모두 나와는 자연스레 친근한 이름들이다. 1960년대 나의 모교였던 서울 중앙학교(중-고등)를 &#8216;인수, 경영&#8217;했던 &#8216;만석군 부호의 아들&#8217;이었던 인촌 김성수, 귀공자 답지 않게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2년 전 아래층으로</span> &#8216;이사&#8217;를 내려온 나의 office에 있는 bookshelf 에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책들을 섞는 중에 눈에 띈 책이 있었다. 오래 전에 읽다 말다 하다가 놓은 책, 동아일보사 간행, &lt;인촌 김성수&#8217;&gt; 란 책이었다.  김성수, 동아일보사 모두 나와는 자연스레 친근한 이름들이다.</p>
<p>1960년대 나의 모교였던 서울 중앙학교(중-고등)를 &#8216;인수, 경영&#8217;했던 &#8216;만석군 부호의 아들&#8217;이었던 인촌 김성수, 귀공자 답지 않게  <em>Bill Gates</em>같이 &#8216;돈을 현명하게 쓸 줄&#8217;  알았고, 당시로서는 선지자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 말년에 정치계에서는 &#8216;이승만의 독재&#8217;를 정말 싫어했고, 아마도 그로 인해 화병을 얻었는지도 모른다.</p>
<p>오늘 읽은 부분에서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 계동 1번지에 중앙학교가 위치한 사연을 읽게 되었다.  1960년 중앙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코흘리개 우리들에게 학교는 &#8216;민족학교의 역사&#8217;를 정식으로 가르쳤었다. 무언가 민족적 사립학교의 전통을 남기려는 것을 우리들도 숙연하게 받아들였던 기억이 남는다.</p>
<p>&nbsp;</p>
<p>&nbsp;</p>
<p><strong>책,  &#8220;인촌 김성수의 사상과 일화&#8221; 중에서</strong></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15238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9/02/Scan10180-1-1.jpg" alt="" width="650" height="648" /></p>
<p style="text-align: center;">중앙학교 교장 재직 당시의 인촌 김성수</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새 요람, 계동 1번지 중앙학교</strong></span></p>
<p>&nbsp;</p>
<p>&nbsp;</p>
<p><strong>조선의 새 인맥(人脈)</strong></p>
<p>새로운 교사가 들어설 땅을 백방으로 물색하던 인촌 仁村 은 1917년 6월, 계동 1번지인 지금의 중앙중고등학교 자리를 터로 정하고 4천 3백 평을 사들였다. 당시 이곳은 북악산 줄기를 뒤로 한 계곡으로 울창한 송림만 들어찬 산골짜기였다.  민가도 없었고, 다만 학교 터 뒤편 숲 속에 당시 육군연성학교(陸軍硏成學校; 훈련소) 교장이었던 노백린(盧伯麟; 후에 上海 臨政 軍務總長 역임)  참령(參領)의 집이 있을 뿐이었다. 인촌이 이 땅을 사들이려 하자  고하 古下 (송진우) 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p>
<p>&#8220;숯막 짓고 참숯 구워 팔려나? 이런 깊은 산골짜기에 학교를 지어 어떡하겠다는 거여?&#8221;</p>
<p>&#8220;어째 그렇게 자넨 발등만 보고 사는가?. 자, 보라고! 앞으로는 서울 장안이 한 눈에 굽어 보이고 뒤에는 북악의 줄기가 아닌가! 그 정기를 받아 청년의 이상을 꽃피우기 위한 배움의 터로서는 이만한 명당이 없네. 얼마나 시원한가, 젊은이들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울 만 허네&#8221;</p>
<p>&#8220;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먼? 이 보게, 큰 길에서 너무나 들어온 골짜기야, 학생들 통학도 생각해야지?&#8221;</p>
<p>&#8220;지금은 좀 불편하겠지만 앞으로 십 년만 지나보게. 서울은 지금 새 시대를 맞이하여 커지고 있어. 모르기는 해도 십 년 뒤면 학교 주변이 주택들로 차게 될걸?&#8221;</p>
<p>멀리 앞을 내다보는 인촌의 안목은 정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과연 십 년이 채 안되어 개발이 되고 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훗날 고하는 인촌의 선견지명에 혀를 찼다고 한다. 땅을 사들이자 즉시 새 교사를 짓기 위해 터를 닦기 시작했다. 인촌은 공사장에 나가 감독 뿐만 아니라 일꾼들과 함께 흙을 고르며 땀을 흘렸다. 교장이 솔선수범하니 고하를 비롯한 교사들까지 수업이 끝나면 함께 땀을 흘렸다. 스승들이 일을 하자 학생들도 부지런히 삽질을 하고 돌을 나르며 일을 도왔다.</p>
<p>그 보람이 있어 나무만 울창하던 산골짜기에 건평 2백여 평의 붉은 2층 건물이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서울 장안(長安)의 이목이 쏠리고 김성수라는 이름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붉은 벽돌 2층의 이런 신식 건물은 그때까지만 해도 장안에서는 볼 수 없는 멋진 신식 교사인 데다가 그것을 짓고 있는 인물이 같은 동포인 김성수라는데 화제가 됐던 것이다.</p>
<p>뒷날 동아일보 사옥을 신축할 때나 보성전문 교사를 신축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인촌은 틈만 나면 공사장에 나가 일꾼과 함께 살았다. 자재에서부터 설계, 혹은 대목(大木) 등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   건축을 공부해서가 아니고 공사장에 가서 몇 번만 보면 다 터득하여 현장 감리(監理)들이나 목수들의 탄복했다고 한다.</p>
<p>어쨌든 장안의 화제였던 계동의 중앙학교 신교사는 5개월만에 그 웅자를 드러내게 되었다. 그 해 11월에 준공을 끝내고 12월 1일에  화동(花洞) 구교사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15240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9/02/Scan10179-1-1.jpg" alt="" width="650" height="364" /></p>
<p style="text-align: center;">계동 1번지에 세워진 중앙학교 새 교사 낙성식, 1917년</p>
<p>&nbsp;</p>
<p>폐교 직전의 중앙학교를 인촌이 인수하자 비상한 관심을 가진 것은 당시의 조선인 사회 뿐이 아니었다. 총독부 관리들이 주시하고 있었다. 돈 있으면 금광이나 하라며 백산학교(白山學校) 설립계획을 까뭉개고 돌려보낸 학무국장 &lt;세끼야&gt; (關屋)는 조선인의 실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던 터라 무명청년 김성수가 말썽 많고 경영난으로 쓰러져 가던 중앙학교를 인수했지만 결과는 뻔한 것으로 추측했다.  시골 부자 아들이라니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지만 깨진 독에 물 붓기로 얼마 안 가서 재산 다 날리고 주저 앉으리라고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전연 예상 밖이었다. 붉은 2층 벽돌의 신식 교사가 모습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80여명 정도였던 학생이 이제는 3백여 명으로 불어나고 교사들 역시 대학을 나온 조선인들이 거의 전부 일 만큼 탄탄하게 성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p>
<p>그러던 11월 하순, 어느 날 &lt;세끼야&gt;는 비서가 전해준 초청장을 받아 들고 얼굴이 이지러졌다.</p>
<p>&#8220;뭐라구? 중앙학교 신교사 낙성식? 그 낙성식에 오라구? 으음&#8221;</p>
<p>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무시했던 무명청년은 새 교사를 당당하게 지어 놓고 그 잔치마당에 자신을 초청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인촌을 김군(金君)이라고 불렀고, 심지어 학교설립을 신청했을 때는 부모의 승낙을 얻었느냐며 어린애 취급을 하고 얕보던 &lt;세끼야&gt;도 낙성식에 참석하게 되었다.</p>
<p>원파공과 지산공을 상석에 모시고 낙성식은 성대하게 열렸다. 조선인의 힘으로 만들어진 학교였기 때문에 장안의 시민들도 구름처럼 모였다. 학무국장 &lt;세끼야&gt;는 금줄이 번쩍이는 제복에 긴 칼을 늘어뜨리고 식장에 나타나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꿔 &lt;긴센세이&gt; (김선생)라 존대하며 몇 번이나 장한 일을 했다고 치켜 세우고, 조선인의 힘으로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게 된 것은 일시동인(一視同仁)하시는 천황폐하의 홍은(鴻恩) 때문이라며 판에 박은 공치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로부터 총독부 관리들이 인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조선의 젊은 민족지도자로 지목하고 경계하게 되었던 것이다.</p>
<p>인촌은 어진 성품과 큰 도량을 지녔기 때문이었는지 젊어서부터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 떠날 줄을 몰랐다.</p>
<p>인덕(인덕)을 타고남도 하늘의 도움이다. 인촌은 늘 인덕이 있었다. 당시 그의 주위에도 제제다사(濟濟多士), 많은 인재들이 그를 돕고 있었다.  중앙학교와 인연이 깊었던 최규동, 이중화, 이광종, 이규영, 권덕규 등 대가 이외에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송진우, 최두선, 현상윤, 이강현 등과 국내에서 명성이 높던 변영태, 유경상, 유태노, 조철호, 고희동, 나원정, 박해돈 등 신진기예들이 차례로 교편을 잡게 된 것이다. 총독부로 볼 때 인촌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학교의 인맥과 존재는 조선 사회에서 무시 못할 민족 지도자 그룹으로 비치게 되었다.</p>
<p>&nbsp;</p>
<p>&nbsp;</p>
<p><strong>무명 교복과 교지(敎旨)</strong></p>
<p>&#8216;웅원(雄遠), 용견(勇堅), 성신(誠信)&#8217; 의 3대 교훈은 인촌 스스로 정한 것이며 인촌 스스로 정성스럽게 써서 남긴 진적(眞迹)이다.</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15241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9/02/Scan10179-2-1.jpg" alt="" width="650" height="366" /></p>
<p style="text-align: center;">아직도 기억하는 세 가지 중앙의 정신: 웅원, 용견, 성신</p>
<p>&nbsp;</p>
<p>이 중앙학교의 교지는 인촌의 교육이념을 집약하는 동시에 그의 가치관을 나타낸 것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70여 년 동안 1자의 수정도 없이 지켜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인촌의 교육관은 백년대계의 큰 안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p>
<p>그리고 중앙학교를 인수한 후 인촌은 특히 학생들의 옷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p>
<p>&#8220;그 하찮은 걸 뭘 그렇게 골똘하게 생각하시오? 다른 학교와 학숙의 학생들처럼 그냥 입히면 되는 거지?&#8221;</p>
<p>보다 못한 안재홍이 그렇게 말하자 인촌은 고개를 흔드는 것이었다.</p>
<p>&#8220;결코 하찮은 문제가 아니오, 학교 모자와 학교 옷은 바로 그 학교의 얼굴이며 상징입니다. 관립 일반학교마냥 일제(日製) 광목으로 된 옷을 입히고 그들의 씌운 모자를 그대로 씌울 수는 없는 일이요. 조선학생은 조선학생 티가 나야지요.&#8221;</p>
<p>고심하던 인촌은 검은 천을 댄 교모(校帽)에 무명으로 지은 교복을 입히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질 좋고 맵시 나는 일제 광목을 두고 왜 하필이면 손으로 짠 그 투박한 무명베로 교복을 하느냐며 못 마땅해 했다. 광목(廣木)은 개화 이후 일본 상인들이 들고 들어와 가장 재미를 본 생필품이었고 널리 판을 치고 있었다.</p>
<p>&#8220;값 싸고 질긴 우리 전래의 무명베가 있는데 왜 비싼 일제 광목을 쓴단 말이오? 우리가 우리 것을 쓰지 않으면 누가 쓴단 말이오?&#8221;</p>
<p>인촌은 국산품을 애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찍부터 &#8216;산업장려&#8217;나 &#8216;국산품 애용&#8217;을 구국운동의 하나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찮은 교복에까지 신경을 쓴 것은 바로 자기학교 학생들 한테 만이라도 그러한 민족의 얼을 심어주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p>
<p>&nbsp;</p>
<p>&nbsp;</p>
<p><strong>참성단(塹星壇) 수학여행</strong></p>
<p>&nbsp;</p>
<p>당시 인촌 밑에서 중앙학교를 거쳐 나온 인사들의 회고만 보더라도 인촌이 평소 얼마만큼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민족사상을 불어 넣었는지를 알 수 있다.</p>
<p>&nbsp;</p>
<p>&nbsp;</p>
<p><strong>유홍 柳鸿  회고</strong></p>
<p>나는 1916년 그러니까 인촌 선생께서 학교를 인수하신 그 다음 해에 중앙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한 후 첫 소풍을 강화도로 갔었는데 그때의 일은 오래도록 나에게 어떤 충격처럼 남아 있었다. 전교생이 함께 갔었던 것 같다.</p>
<p>유근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 중에는 물론 인촌 선생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에 올라갔다.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 단군 성터에서 단군설화를 얘기하면서 목이 메었으며, 인촌 선생님께서도 소리 없이 눈물을 짓고 있었다. 학생들도 그제서야 나룻배까지 빌어 타고 강화도에 소풍을 온 까닭을 깨닫고는 모두 함께 울었다. 그때 교장 선생님 바로 옆에서 단정한 자세로 눈물 지그시 감은 채 눈물을 흘리시던 인촌 선생님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p>
<p>&nbsp;</p>
<p>&nbsp;</p>
<p><strong>신도성 愼道晟 회고</strong></p>
<p>중학교 입학 당시(1930년) 나는 제일고보(第一高普)와 중앙학교 두 군데 시험을 쳤는데 두 군데 다 합격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상식은 당연히 제일고보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학교를 가느냐의 선택에 있어 어리고 철이 없으므로 선친께 의논을 드렸더니 중앙학교를 택하라 하셨다. 경남 거창에서는 우리 집이 대지주에 속했으므로 인촌의 경방, 동아일보 설립할 때 주식투자 권유를 받아 우리 선친과 인촌은 교분이 있었다. 투자는 안 하신 것 같지만 마음 속으로 인촌을 퍽 존경하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중앙학교를 들어 가게 되었다. 그런데 학교를 들어가 보니까 역시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한 민족주의적인 분위기가 살아 있었고, 김성수 선생께서 교장을 하시며 수업에 들어 오시기도 했다. 그것도 좋았지만 조철호, 박용희 선생 등으로부터 훈련을 단단히 받았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권덕규(역사), 문일평(한국사; 동양사), 이윤제(한글) 선생 등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다. 일제하에서 배우기 힘든 보통의 교양교육을 다 배웠다. 학교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인촌 선생은 수신시간에 교재를 뒤로 제쳐놓고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해 주셨는데 은근히 민족정신을 불어 넣어주곤 했다. 예를 들면 영국에 가서 하숙을 하는데 한국에서 하던 버릇대로 화장실을 갔다 오면서 불을 안 끄고 나왔더니 주인이 잔소리를 하더라. 전력을 낭비하지 않고 물자를 절약하며 잘 살면서도 검약하더라. 우리는 전등불도 안 끄고 잠을 자고 그러는데 그래서는 안 되다고 충고를 하시기도 했다. 한번은 외국을 가시는데 여권에 적어야 하는 국적이 남의 나라 이름으로 되어 나라 없는 백성의 서러움을 실감했었다. 배 안에서 식사를 할 때 식탁에 승객들의 국기를 꽂는데 그 국기 가운데 태극기가 없었다는 울분을 얘기하셨다.</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15242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9/02/Scan10180-2-1.jpg" alt="" width="650" height="354" /></p>
<p style="text-align: center;">3.1운동의 실제적 모의 장소: 중앙학교 숙직실</p>
<p>&nbsp;</p>
<p>그리고 3.1운동 때의 말씀도 하셨는데 중앙학교에서 모의하던 얘기를 하셨다. &#8220;3.1운동이 파고다 공원에서 일어난 줄만 알고 있지? 사실은 중앙학교에서 시작된 거야. 계획도 세우고 유인물도 만들고 그랬는데 바로 그거 한 집이 바로 저 집이야!&#8221; 하고 우리학교 숙직실을 가리켜 주셨다. 중앙학교가 민족주의 본거지임을 일깨워 주셨고 우리는 자부심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다. 그때 받은 느낌이 그 후에도 남아서 일제 말기에 학생의 몸으로 항일투쟁은 못 했지만 은근히 &#8216;일제에 협력해서는 안 된다&#8217; , &#8216;지원병이니 학병이니 그런데 끌려가서는 절대 안 된다&#8217; 는 것은 확고했다. 해방될 때가지 일제가 강요하던 국민복은 한번도 입지 않았고 &#8216;전투모&#8217;와 &#8216;각반&#8217;도 한 번도 매보지 않았는데, 그것은 인촌 선생의 교육 영향이었다.</p>
<p>&nbsp;</p>
<p>&nbsp;</p>
<p><strong>김승태 金昇泰 회고</strong></p>
<p>그때 중앙학교는 마치 기사(기사)를 양성하는 도장(도장)과 같은 분위기였다. 또한 그 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가 되었고, 6.10만세 사건의 중추적 역할도 담당했다. 이것이 모두가 선생께서 웅원(雄遠)한 포부와 용견(勇堅)한 의지, 성실(誠實)한 행동을 가르치신 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마치 학교는 도장과 같았고, 배우는 우리는 기사와 같은 흥분 속에서 지냈다. 예를 들면 동지섣달 눈이 쌓였어도 팬츠 하나만 입고 운동장을 달리게 했다. 그것은 독립정신을 갖게 하기 위한 단면이었으며, 정신과 육체의 극기(극기) 훈련이기도 했다.</p>
<p>&nbsp;</p>
<p>&nbsp;</p>
<p><strong>채문식 蔡汶植 회고</strong></p>
<p>나의 인생은 중앙학교 5년 동안 교육을 받을 때 인촌의 정신, 인촌의 손길에 의해서 키워졌고 해방 후 지금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시대 문경(聞慶)의 산골에서 태어나 중앙고보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1930년대 말 일제는 국어상용 이라 하여 학교에서는 일본 말만 쓰게 했다. 중앙학교에서 가까운 어떤 학교가 있었는데 그 학교에서 한국인 교사가 학생 하나를 정학 시켰다. 그래서 부모가 찾아 왔는데 그 아버지는 일본 말을 모르는 시골 노인이었다. 한국인 담임선생은 우리말을 쓰지 않기 위해 통역을 하게 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처벌을 받게 된 것은 점심으로 빵을 하나씩 나눠 주었는데 &#8216;아, 빵이다!&#8217; 하고 외쳤는데 그 말이 한국말이라 해서 정학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오직 한 곳, 중앙고보만은 일본어를 쓰지 않았다. 그 시절에 일본어를 쓰지 않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대게 중앙학교 선생은 1년은 학교에 계시고 1년은 감옥에 가 계시는 게 보통이었다. 중앙학교에 입학하면서 매를 많이 맞았다. 입학 첫 날부터 영어시간에는 회초리 하나씩을 집에서 준비해 가지고 오라는데 집에 갈 때는 그게 다 꺾여질 지경이었다. 출석을 부르는데 선생님은 우리 말로 &#8216;채문식!&#8217; 하고 부른다. 그때 국민학교에서는 일본어만 배웠으므로 부지불식간에 &#8216;하이!&#8217;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무조건 앞으로 나오라 해서는 회초리로 때렸는데 왜 맞는지 몰랐다. 선생님이 매를 들고 또 &#8216;채문식!&#8217; 하면 &#8216;하이!&#8217; 하게 되고 &#8216;하이!&#8217; 하면 도 맞는 것이었다.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자기가 가져간 회초리가 다 부러질 때 쯤 되면 뭔가 가슴에 뿌듯한 게 있어서 &#8216;예&#8217; 하고 우리말로 대답하게 되는 것이었다. 인촌 선생이 아니면 못할 것이었다. 인촌을 보고 더러 총을 들고 독립운동도 안 했고, 외국에 가서 항일운동도 안 하지 않았느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시대의 한국 땅에서 인촌이 아니고 누가 그같이 민족의식이 맥박 치는 그런 학교를 경영했던가를 생각한다면 그런 말은 못할 것이다. 선생은 완전한 한국 사람이었고 그 같은 한국 사람을 기르려고 무척도 애를 썼다. 그 회초리를 맞아 가면서 1학년에서 5학년이 될 때는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뭔가 쯤은 깨닫게 되었으니 참으로 위대한 애국자라 아니할 수 없다.</p>
<p>&nbsp;</p>
<p>&nbsp;</p>
<p><strong>퇴교생(退校生)이 모이는 곳</strong></p>
<p>&nbsp;</p>
<p> 인촌은 제자들에게 민족혼을 심는데 심혈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일인교사(일인교사)의 배척운동이나 저항운동을 하기 위해 스트라익을 벌이다가 퇴학을 당한 학생들에게 항상 중앙학교는 문을 열고 너그럽게 받아 들였던 것이다. 당시 인촌이 중앙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보성학교와 경신학교에서 일인교사 배척운동이 일어난 일이 있었다. 인촌은 이때 처벌 받은 학생들을 모두 받아 들였다.</p>
<p>&nbsp;</p>
<p><strong>서항석 徐恒錫 회고</strong></p>
<p>나는 1918년에 중앙학교를 졸업했는데 따지고 보면 1년도 못 다니고 졸업한 셈이다. 나는 보성학교를 다니다가 퇴학을 당하여 중앙학교로 편입학하게 됐던 것이다. 인촌 선생의 항일적이며 애국적인 용단을 잊을 수가 없다. 보성학교 2학년에서 문제가 생겼다. 초조시간이 되어 모두 웃옷을 벗고 나가게 되었다. 물론 교실에는 당번이 지키게 돼 있었다. 그런데 벗어 두었던 옷 속에서 시계가 없어졌던 것이다. 담임선생이 여러 방법으로 시계를 찾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마침 보성학교에는 &lt;고마쯔자끼&gt;라고 하는 일본인 교사가 있었는데 그 일본선생이 종로 경찰서에 연락을 했다. 그래서 형사가 와가지고는 학생들을 죄인 다루듯 했다. 우리는 4학년으로 최고 학년이었는데 이 같은 사태에 크게 분개했다. 학교에서 도난사고가 생겼다면 선생들이 자기네 잘못을 느끼고 쉬쉬하며 잡을 일이지 그것을 경찰을 불러 몸수색을 했으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분개하여 일어섰던 것이다. 2, 3, 4학년의 전 학생이 들고 일어났다. 교장은 최린 선생이었는데 전교가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소란해 졌다. 더 이상 사태가 키질 것 같아 2, 3 학년들을 누르고 우리 4학년 학생 8명이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하고 교장선생께 자퇴서를 냈다. 교장선생은 제발 이러지 말라달라고 하셨지만 우리의 기세는 당당했다. 학교측에서는 퇴학을 명함 이라 내붙이게 되었다. 최린 선생은 안 되겠던지 인촌 선생에게 전화를 거셨다.</p>
<p>&#8220;요새 우리학교 사건 생긴거 하시지요? 정말 진퇴유곡입니다. 총독부에서 퇴학을 시키라 하니 그럴 수 밖에 없어 퇴학을 시켰소만 정말 우수한 애들인데 버리자니 가슴이 아프오.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젊은 애들의 장래를 막아 놓을 수는 없지 않소?&#8221;</p>
<p>&#8220;좋습니다. 그럴 수는 없지요. 싹을 자를 수는 없습니다. 퇴교생 전원을 저희 학교로 보내 주십시오. 소생이 맡아 가르치겠습니다.&#8221;</p>
<p>그래서 중앙학교로 가게 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후에 생각하니 인촌 선생의 애국자로서의 일면을 보여 준 것이라 생각되었다.</p>
<p>&nbsp;</p>
<p>이 사실을 알게 된 총독부의 학무국장 세끼야 는 화가 나서 인촌을 소환했다.</p>
<p>&#8220;김선생, 이번 일은 좀 경솔했던 거 아니오? 여러 말 하고 싶지 않소. 불온 학생 여덟 명은 받아 들이지 말구 당장 내쫓으시오!&#8221;</p>
<p>&#8220;무슨 말씀인지 알겠소만 가령 일본인 학교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하면 경찰이 학교 구내에 들어가사 학생들을 죄인 다루듯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스승을 배척했다면 당연히 교칙에 따라 퇴학을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은 그것으로 벌은 충분히 받은 거 아닙니까? 배우는 학생에게 퇴학 이상의 중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벌을 받은 학생이 다른 학교에 가는 것까지 총독부가 나서서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교육적 견지에서 하는 처벌이 아니라 어떤 민족적 견지에서 하는 보복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8230;&#8221;</p>
<p>인촌의 말을 들은 세끼야 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까지 자기 앞에 와서 그렇게 당당하게 자기 할 소리를 하는 조선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비록 총독부 관리라 하지만 그 역시 이런 사리를 모른다 할 수는 없었다.</p>
<p>&#8220;김선생의 체면을 봐서 이번 일은 불문에 붙이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우리 학무국 과 상의해서 처리하시오.&#8221;</p>
<p>그것은 은근한 협박이기도 했다. 총독 정치하에 있어서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있어 사학(私學)의 문을 닫게 하는 것쯤은 간단했다. 인촌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민족교육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뻔해 보이지만 트집을 잡으려 해도 구실을 주지 않는 인촌이야 말로 다루기 어려운 상대였다. 친일인사(親日人士)로 만들려고 유혹도 해 보고 구실을 붙여 위협도 해 보았지만 언제나 그는 정정당당했다. 그러한 편입학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게 아니고 또 있었다.</p>
<p>&nbsp;</p>
<p>&nbsp;</p>
<p><strong>정문기 鄭文基 회고</strong></p>
<p>고향인 전남 순천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인성학교에 들어갔다. 그 학교를 나와 서울로 올라왔다. 경신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공부를 하게 되었다. 경신학교는 미국 선교사였던 언더우드 가 세운 기독교계 학교였다. 4학년에 진급하자 학교에서 스트라익이 일어났다. 나는 주동 학생으로 몰려 퇴학을 당했고 중앙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 전부터 사실은 인촌선생 밑에서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경신학교에서 처벌을 받고 쫓겨난 학생은 1, 2, 3, 4 학년 합쳐서 수십 명에 이르렀다. 중앙학교에서는 그들을 모두 받아 주었던 것이다. 이젠 끝장이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촌 선생이 용단을 내려 받아 주시니 우리들의 사기는 충천할 뿐이었다. 당시 경신학교 교장은 미국인 선교사였는데 화가 났던지 전화로 인촌 선생께 따졌다고 한다.</p>
<p>&#8220;이거 보시오, 김성수 선생! 선생께서 그렇게 분별 없으신 교장이신 줄 몰랐습니다.&#8221;</p>
<p>&#8220;무슨 말씀이오?&#8221;</p>
<p>&#8220;같은 교육자끼리 그럴 수 있습니까? 우리 학교에서 처벌한 학생들입니다. 잘못해서 처벌한 학생들이라 그겁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을 중앙학교에서 그냥 받아주면 우린 뭐가 되지요? 학생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8221;</p>
<p>&#8220;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처벌된 학생 전원을 저희 학교로 오라고 한 일 없습니다. 학생들 스스로 찾아와서 저희 학교에서 공부하게 해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물론 잘못 해서 벌을 받은 것이니 반성을 하고 다시 돌아가 공부하라고 엄하게 꾸짖었소만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그 중에서 1, 2, 3학년 학생들은 나의 설득대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있었으나 4학년들은 누구도 못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4학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8221;</p>
<p>&#8220;어찌 하시겠습니까?&#8221;</p>
<p>&#8220;다른 방법으로 가르쳐 사람을 만들어 볼 테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8221;</p>
<p>인촌 선생은 결국 4학년 학생만 중앙학교에 남게 하고 그 이하 하급생들은 모두 돌아가게 하셨다. 나는 공부는 좀 소홀히 한 편이지만 야구나 축구 등 스포츠를 좋아했다. 동급생 중 일석(일석: 이희승)은 모범적인 노력가였고 보성학교에서 퇴학을 당해 중앙학교로 온 서항석은 머리가 우수하고 작문을 잘 했다. 둘이서 늘 1, 2등을 다투었다. 인촌 선생은 은근히 경쟁심을 고취했는데 학생들을 친자식처럼 대하셨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든다시며 늘 체력단련을 권하셨다. 일본인과 겨루려면 머리도 우수해야지만 몸도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스포츠를 좋아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건강을 겸했다고 늘 사랑해 주셨다. 한번은 계동 신교사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는 걸 들었다.</p>
<p>&#8220;공부를 한다는 것도 경쟁이니 두각을 내려는 것은 인지본능이며 두각을 쉽게 내는 방법을 알켜 줄까? 남들이 모두 몰리는 유행학과를 전공허지 말아야 돼. 진리탐구를 하는 학문은 어떤 학문이든 똑 같은 벱이여. 지금의 유행 학과가 후엔 무실해지고 지금 유행하지 않는 학과가 인기를 얻을 지 모르는 일이거든? 학문에는 우열이 없느니께 남이 않는 것을 해보라 이말이여&#8221;</p>
<p>나는 그 말씀을 명심하고 일본 유학을 가서 &lt;송산고&gt;(松山高)를 졸업하고는 곧바로 동경제대 수산과에 시험을 치뤄 합격을 했다. 그때 수산과를 택한 것은 인촌 선생의 영향이었다. 그때는 문과를 해야 대학생인 줄 알았지 수산학을 한다는 것은 좀 엉뚱한 것이었다.</p>
<p>&nbsp;</p>
<p>&nbsp;</p>
<p><strong>韓紙 한지에 싸 준 인절미</strong></p>
<p>중앙학교 교장 당시의 인촌이 우리 민족정신과 기상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증명해 준다. 일제는 한반도 강점 후 구정(舊正)인 &lt;설&gt;을 쇠지 못하게 하고 저희들의 명절인 신정(新正)설을 쇠게 했다. 이른바 &lt;양력설&gt; &lt;일본설&gt;을 쇠게 한 것이다.</p>
<p>해마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총독부에서는 신년 하례식을 하고 천황의 하사품이라 하여 일본 왕실의 문장(紋章)인 국화꽃 무늬가 든 이른바 &#8216;모찌&#8217; (흰 찹쌀떡)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아직 소년들이라 그 떡 받아 먹는 것을 모두 좋아했다.</p>
<p>그러나 중앙학교만은 그와 같은 &#8216;모찌&#8217;를 주지 않고 해마다 신년 초하루가 되면 콩가루 고물 묻힌 인절미를 주는 것이었다. 그것도 인촌 댁에서 직접 떡을 하여 그것을 한지(한지)에 싸서 나눠주는 것이었다. 조선학생이 정월 초하룻날부터 나라 잃은 것만도 서러운 데 일본 떡을, 더구나 일본 왕실의 문장이 찍힌 &#8216;모찌&#8217;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철 없는 학생들은 집에서 먹어보지 않은 그 일본 떡이 먹고 싶어 불평하는 측이 있었지만 인촌은 씁쓸하게 웃기만 하는 것이었다.</p>
<p>&#8220;명절이면 집에서 먹는 그 흔한 인절미, 잔치 때면 흔하게 먹는 인절미라고 그러는 지는 모르겄다만 너희들도 학교를 나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왜 우리 한지에 인절미를 싸서 주는지 그 뜻을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8221;</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9/02/18/%ec%a2%85%eb%a1%9c%ea%b5%ac-%ea%b3%84%eb%8f%99-1%eb%b2%88%ec%a7%80/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1</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5222</post-id>	</item>
		<item>
		<title>Last Leaves, leaf &#038; O Henry</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7/12/06/last-leaves-leaf-o-henry/</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7/12/06/last-leaves-leaf-o-henry/#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07 Dec 2017 00:15:45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가을]]></category>
		<category><![CDATA[날씨]]></category>
		<category><![CDATA[중앙중]]></category>
		<category><![CDATA[책]]></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2651</guid>

					<description><![CDATA[&#160; 어제 우리 집 Saybrook court driveway로 들어오는 cul-de-sac  에서 집 쪽을 바라보니 눈에 익은 듯한 광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아~ 올해 우리 집, &#8216;마지막 잎새 들&#8217;이 로구나..  하며 &#8216;마지막 잎새&#8217;란 생각이 들고,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슬픔을 느꼈다. 결국은 다~ 떠나는구나.. 보통 12월 초 이맘때가 되면 이렇게 &#8216;마지막 추수&#8217; 가 수북이 쌓임을 이제 경험적으로 알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2652"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2/2017-12-05-15.06.23-1-1.jpg" alt="" width="650" height="227" /></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어제 우리 집</strong></span> <strong><em>Saybrook court</em></strong> driveway로 들어오는 <em>cul-de-sac</em>  에서 집 쪽을 바라보니 눈에 익은 듯한 광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아~ 올해 우리 집, &#8216;마지막 잎새 들&#8217;이 로구나..  하며 &#8216;마지막 잎새&#8217;란 생각이 들고,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슬픔을 느꼈다. 결국은 다~ 떠나는구나.. 보통 12월 초 이맘때가 되면 이렇게 &#8216;마지막 추수&#8217; 가 수북이 쌓임을 이제 경험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젊은 앞집의 <em>Josh</em>는 아마도 올 가을에 걸쳐서 수십 번은 power blower로 낙엽들을 치우고 있는데.. 도대체 그 <em>wasted</em> time &amp; energy aching muscle등등은 둘째치고 그는 &#8216;낙엽을 즐길 수 있는 여유&#8217;가 그렇게 없다는 사실에 솔직히 &#8216;비웃음&#8217;이 나온다.</p>
<p>세월은 흐르고 올해도 한 달도 채 남지 않고, 깊은 겨울로 들어가며 새해 2018년을 맞는다. 칠십 70이란 숫자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나의 처지는 감정을 달랜다&#8230; 그래도, 그래도, &#8216;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8217;,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70년의 세월은 나에게 과분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8216;여한이 없다&#8217; 라고 위로를 받는다.</p>
<p>&nbsp;</p>
<figure id="attachment_12653"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2653" style="width: 125px" class="wp-caption alignleft"><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 wp-image-12653"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2/ohenry-1.jpg" alt="" width="125" height="143"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2653" class="wp-caption-text">pen name <em>O Henry</em></figcaption></figure>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마지막 잎새,</strong></span>  명작 단편의 제목이었다. 필명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O._Henry"><em>O Henry</em></a>라는 미국 단편 작가가 20세기 초에 발표한 그야말로 &#8216;짧은&#8217; 단편 그것이 바로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The_Last_Leaf"><em>The Last leaf</em></a> 였다. 낙엽 중에서도 제일 마지막에 떨어지는 &#8216;놈&#8217;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마지막 잎.. 그러면 세상은 갈색에서 하얀 색으로 변하고 겨울잠을 자야 하는 때, 이 소설의 주인공 여성, 폐렴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하나 하나 떨어지는 낙엽을 자기의 운명과 연관이 있음을 느낀다. 결국 마지막 잎이 떨어지면 자기도 &#8216;따라 떨어진다&#8217; 믿는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잎새는 &#8216;절대로&#8217;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도 안 떨어졌다. 대신 그 마지막 잎새를 &#8216;살려준&#8217; 아름다운 마음씨의 친구 화가 할아버지가 대신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얼마나 아름답고 운명적인 단편이었던가..</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12655"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2/ohenry-3-300x167.jpg" alt="" width="650" height="285" /></p>
<p>&nbsp;</p>
<p>왜 이 단편이 나의 기억에 그렇게도 남았는가. 1960년 57년 전 서울 중앙중학교 1학년 때 국어 담당 &#8216;<strong>소재영</strong>&#8216; 선생님 때문이었다. 소재영 소재영 선생님&#8230; 그 어린 나이의 눈에도 이 선생님의 &#8216;학자적 겸손, 능력, 품위&#8217;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8230; 나에게는 멋진 선생님이셨다. 교실에 들어오실 때는 책을 한 꾸러미를 들고 오셨는데, 그 두꺼운 국어사전으로부터 시작해서 각종 참고자료들을 가지고 국어시간에 가르치신 것이다. 그 때가 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입시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때) 그 선생님은 완전히 우리에게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국어라는 학문</span>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 중에 바로 이 &#8216;<strong>마지막 잎새</strong>&#8216;에 관한 공부도 들어있었고 그것이 반세기 뒤에도 뚜렷이 남아 있게 되었다.</p>
<p>&nbsp;</p>
<figure id="attachment_1265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2659" style="width: 170px" class="wp-caption alignleft"><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 wp-image-12659"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2/ohenry-2-249x300.jpg" alt="" width="170" height="205"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2/ohenry-2-249x300.jpg 249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2/ohenry-2.jpg 392w" sizes="auto, (max-width: 170px) 100vw, 170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2659" class="wp-caption-text"><em>The Gift of the Magi</em></figcaption></figure>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크리스마스 &#8216;사랑의 마음&#8217;을</strong></span> 적절히 묘사한 <em>O Henry</em>의 다른 단편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The_Gift_of_the_Magi"><em>The Gift of the Magi</em></a>, (한글제목은 생각이 안 난다) 도 기억에 남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젊은 &#8216;신혼&#8217;부부 Jim과 Della의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이야기.. 서로를 위해서 Della는 머리를 팔아서 Jim의 watch chain을 샀고, Jim은 watch를 팔아서 머리 빗을 샀다는 슬프지만 너무나 사랑스런 이야기였다. 이것이 바로 the <em>Magi</em>(동방박사)의 아기예수에게 드리는 선물과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p>
<p>그렇게 해서 <em>O Henry</em>라는 이름을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지만 인생의 항해를 하며 모든 것을 잊고 살다가 우리 집 앞에 쌓인 마지막 잎새들을 보며 회상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이 작가에 대해서 자세히 알 길이 없었지만 알고 보니 사실은 그렇게 &#8216;존경할 만한&#8217; 인물이 아님을 알고는 조금 실망을 했다. 많은 유명한 단편은 남겼지만, 그의 비교적 짧았던 생(47세)은 각종 색깔의 행적을 남겼다. 그 중에는 우리가 살았던 <em>Columbus, Ohio</em>의 감옥에 죄수로 수감되었던 것도 있다. 물론 폭력적인 범죄는 아니었고 비교적 가벼운 &#8216;사기 횡령죄&#8217;로 복역을 한 것이다.  말년에 마음과 행동을 가다듬고 쓰기 시작한 단편들, 바로 그것이 그에게 커다란 이름을 남겨주게 되었다. 한마디로 &#8216;역량, 잠재성&#8217;이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콜 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타계한 것을 보면 말년이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em>O Henry</em>라는 이름을 사랑한다. 나도 그 중에 하나고, 그것은 중학교 1학년 국어, <strong>소재영</strong> 선생님의 고귀한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 <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com/embed/UqDfDTp1ICw?rel=0" width="650" height="28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em>The Last Leaf</em> &#8211; <strong>The Cascades</strong> &#8211; 1963</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7/12/06/last-leaves-leaf-o-henry/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2651</post-id>	</item>
		<item>
		<title>民族 의 悲劇, 1961</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7/11/08/%e6%b0%91%e6%97%8f-%ec%9d%98-%e6%82%b2%e5%8a%87-1961/</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7/11/08/%e6%b0%91%e6%97%8f-%ec%9d%98-%e6%82%b2%e5%8a%87-1961/#comments</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Wed, 08 Nov 2017 21:39:39 +0000</pubDate>
				<category><![CDATA[Memoir]]></category>
		<category><![CDATA[50/60]]></category>
		<category><![CDATA[가족]]></category>
		<category><![CDATA[가회동]]></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원서동]]></category>
		<category><![CDATA[중앙중]]></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category><![CDATA[친구]]></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2392</guid>

					<description><![CDATA[&#8216;민족의 비극&#8217;, 1962년 1월..  내가 55년 전에 &#8216;탈고 脫稿&#8217;한 50여 페이지의 &#8216;먹물로 그린&#8217; 만화 漫畵 의 제목이다. 그러니까 서울 중앙중학교 2학년 시절 1961년에 그렸던 &#8216;자작 自作 만화&#8217; 인 셈인데 이것이 거의 기적적으로 그것도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이것은 나에게는 &#8216;가보 家寶&#8217;에 상당하는, 돈을 주고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개인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figure id="attachment_12399" aria-describedby="caption-attachment-12399" style="width: 278px" class="wp-caption alignleft"><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 wp-image-12399"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59-1.jpg" alt="" width="278" height="401"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59-1.jpg 512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59-1-208x300.jpg 208w" sizes="auto, (max-width: 278px) 100vw, 278px" /><figcaption id="caption-attachment-12399" class="wp-caption-text">만화, <strong>민족의 비극</strong> 표지, 1961</figcaption></figure>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8216;민족의 비극&#8217;, 1962년 1월.. </strong></span> 내가 55년 전에 &#8216;탈고 脫稿&#8217;한 50여 페이지의 &#8216;먹물로 그린&#8217; 만화 漫畵 의 제목이다. 그러니까 서울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중앙중학교</span> 2학년 시절 1961년에 그렸던 &#8216;자작 自作 만화&#8217; 인 셈인데 이것이 거의 기적적으로 그것도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이것은 나에게는 &#8216;가보 家寶&#8217;에 상당하는, 돈을 주고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개인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p>
<p>지금 이 만화 책의 &#8216;외형적, 물리적&#8217; 상태는 그렇게 양호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신경을 안 쓰고 조금 험하게 다루면 망가질 염려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자주 만지지도 않고 &#8216;신주단지&#8217; 모시듯 모셔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이에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모셔둘 수가 없어서 결단을 내려서 fully digitized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p>
<p>당시에 그렇게 &#8216;희귀&#8217;했던 stapler, 현재 몇 불 弗이면  살 수 있는 그것을 구할 수가 없어서 나는 역시 전통적인 공구였던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동네가게에서 가는 철사를 사다가 이 책을 엮었다. 그것이 현재 그대로 남아있는데.. 문제는 이 <em>homemade</em> staple에 손을 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1961년 경 서울 <strong>가회동</strong> 잡화상(철물도 취급하는)에서 산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true antique value가 있는 것, 돈을 주고 어디에서도 살 수 가 없는 것이니.. 쉽게 바꾸거나 손을 대는 것이 망설여진다.</p>
<p>우선 몇 page를 scanner에 책갈피를 강제로 펴서 scan을 해 보았다. 역시 보기가 안 좋다. 하지만 그것이라도 이렇게 55년 만에 세상에 빛을 보았다는데 만족감을 느낀다. 당시 이 만화를 &#8216;애독&#8217; 해 주었던 몇몇 원서동 苑西洞 죽마고우 竹馬故友 (안명성, 유지호, 김동만 등등) 이 자신들이 직, 간접적으로 관계가 되었던 역사를 재발견하게 되면 감개가 무량할 것이라 믿는다.</p>
<p>이 만화의 그림 technique을 보면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 그것들은 거의 99%가 당시 만화계의 영웅 &#8216;<strong>산호</strong>&#8216; (선생님)의 bestseller 우리의 영웅 &#8216;만화 <strong>라이파이</strong>&#8216;를 비롯한 다른 &#8216;전쟁, 역사 물&#8217;에서 온 것이다. 24시간을 그런 그림을 보며 살았던 당시에 그것을 흉내 내어 그린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랑스런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것을 거의 중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까지 그렸으니.. &#8216;공부, 공부, 입시&#8217; 지옥이었던 당시, 우리 집에서는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이고 결국은 이 만화가 나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p>
<p>내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그렸던 만화가 이 만화 바로 전에 완성이 되었는데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없어졌고 나중에 알고 보니 &#8216;불에 타서&#8217; 없어진 것을 알았다. 어머님의 지나친 간섭이었지만&#8230;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서 항변을 할  수 없었다. &#8216;굶어 죽는 만화가&#8217;가 될 것으로 염려가 되셨다는 것을 어린 나이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없어진 그 만화, 나에게는 아련한 아쉬운 추억으로 남았다. 그 없어진 만화작품의 그림 기법, story 같은 것이 나의 머리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저 어린 나이에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날랐던  그 만화시절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잊고 싶지 않다.</p>
<p>이제 남은 것은: 이 만화책을 완전히 &#8216;해체&#8217;해서 full scanning을 한 후에 <em>pdf</em> book format 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것이 완성 되면 나의 serony.com blog에 &#8216;영구히&#8217; 남길 것이다.</p>
<p>&nbsp;</p>

<a href='https://serony.com/ken/2017/11/08/%e6%b0%91%e6%97%8f-%ec%9d%98-%e6%82%b2%e5%8a%87-1961/scan10065-1/'><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12" height="767"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5-1.jpg" class="attachment-full size-full" alt=""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5-1.jpg 512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5-1-200x300.jpg 200w" sizes="auto, (max-width: 512px) 100vw, 512px" /></a>
<a href='https://serony.com/ken/2017/11/08/%e6%b0%91%e6%97%8f-%ec%9d%98-%e6%82%b2%e5%8a%87-1961/scan10061-1/'><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12" height="718"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1-1.jpg" class="attachment-full size-full" alt=""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1-1.jpg 512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1-1-214x300.jpg 214w" sizes="auto, (max-width: 512px) 100vw, 512px" /></a>
<a href='https://serony.com/ken/2017/11/08/%e6%b0%91%e6%97%8f-%ec%9d%98-%e6%82%b2%e5%8a%87-1961/scan10063-1/'><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12" height="702"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3-1.jpg" class="attachment-full size-full" alt=""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3-1.jpg 512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3-1-219x300.jpg 219w" sizes="auto, (max-width: 512px) 100vw, 512px" /></a>
<a href='https://serony.com/ken/2017/11/08/%e6%b0%91%e6%97%8f-%ec%9d%98-%e6%82%b2%e5%8a%87-1961/scan10062-1/'><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12" height="720"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2-1.jpg" class="attachment-full size-full" alt=""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2-1.jpg 512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2-1-213x300.jpg 213w" sizes="auto, (max-width: 512px) 100vw, 512px" /></a>
<a href='https://serony.com/ken/2017/11/08/%e6%b0%91%e6%97%8f-%ec%9d%98-%e6%82%b2%e5%8a%87-1961/scan10060-1/'><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12" height="765"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0-1.jpg" class="attachment-full size-full" alt=""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0-1.jpg 512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0-1-201x300.jpg 201w" sizes="auto, (max-width: 512px) 100vw, 512px" /></a>
<a href='https://serony.com/ken/2017/11/08/%e6%b0%91%e6%97%8f-%ec%9d%98-%e6%82%b2%e5%8a%87-1961/scan10064-1/'><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12" height="512" src="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4-1.jpg" class="attachment-full size-full" alt=""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4-1.jpg 512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4-1-150x150.jpg 150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1/Scan10064-1-300x300.jpg 300w" sizes="auto, (max-width: 512px) 100vw, 512px" /></a>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7/11/08/%e6%b0%91%e6%97%8f-%ec%9d%98-%e6%82%b2%e5%8a%87-1961/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2</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2392</post-id>	</item>
		<item>
		<title>4.19 아침인가..</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6/04/19/4-19-%ec%95%84%ec%b9%a8%ec%9d%b8%ea%b0%80/</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6/04/19/4-19-%ec%95%84%ec%b9%a8%ec%9d%b8%ea%b0%80/#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ue, 19 Apr 2016 12:40:28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Memoir]]></category>
		<category><![CDATA[50/60]]></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역사]]></category>
		<category><![CDATA[중앙중]]></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1139</guid>

					<description><![CDATA[아침에 달력을 보니 4월 19일.. 화요일, 물론 4.19라는 숫자는 56년이나 지났어도 어제처럼 느껴짐을 피할 수가 없다. 그만큼 비록 세월의 깊이에 맞게 뇌의 깊숙한 곳에 잠겨있어도 아주 &#8216;큰&#8217; 세포에 간직된 것이라 그럴 것이다. 그리고 화요일.. 이었다. 1960년의 4월 19일도.. 99% 화요일이었다는 기억. 56년이란 세월이 지났다는 사실에 조금은 실망을 함은, 그 세월이 그렇게 역사 책에서나 볼 수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아침에 달력을 보니 4월 19일</strong></span>.. 화요일, 물론 4.19라는 숫자는 56년이나 지났어도 어제처럼 느껴짐을 피할 수가 없다. 그만큼 비록 세월의 깊이에 맞게 뇌의 깊숙한 곳에 잠겨있어도 아주 &#8216;큰&#8217; 세포에 간직된 것이라 그럴 것이다. 그리고 화요일.. 이었다. <a href="http://wp.me/p4QWOn-3z">1960년의 4월 19일</a>도.. 99% 화요일이었다는 기억. 56년이란 세월이 지났다는 사실에 조금은 실망을 함은, 그 세월이 그렇게 역사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긴 세월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어렸을 때 일제 36년, 유럽의 100년 전쟁.. 등에서 느꼈던 그 햇수는 너무도 길었던 것이지만 내가 이런 56년을 어제처럼 기억하게 살면서 느낀 것은 너무나도 짧았다는 사실이 조금은 등골이 오싹한 것이다.</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11140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6/04/4-19-2.png" alt="'전투' 대학생, 고대 형님들의 절규의 함성, 국회 의사당 앞에서" width="650" height="479" /></p>
<p style="text-align: center;">&#8216;전투&#8217; 대학생, <strong>고대 형님들</strong>의 절규의 함성, 국회 의사당 앞에서</p>
<p>당시의 데모 열기 함성과 카빈 소총 소리, 어는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수 많은 군중들.. 그렇게 찬란한 4월의 계절은 소음과 정적이 교차하는 순간들이었다. 모든 학생들의 새카만 교복의 물결, 심지어 대학생 형님들까지도..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서 뛰고, 트럭을 타고, 소방차를 타고 서울의 중심가를 돌고 도망가고 숨고 쓰러지던 그 때.. 모습들.</p>
<p>우리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이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공격을 받던 날 우리 중학교 1년생의 혼란한 심정.. 누가 누구를 쫓아가고 쫓겨가던가.. 누가 우리의 역적이던가? 우리들은 그저 놀란 얼굴로 바라만 보았다. 난생 처음으로 들려오던 요란한 카빈 소총 소리들.. 종로 경찰서 지붕에 설치된 만화에서만 보던 &#8216;기관총&#8217;들.. 곧 이어 아스팔트 길에 우람한 바퀴자국을 내며 웅장하게 들어오던 탱크의 무리들.. 4월 달.. 4월 달 ,1960년의 찬란한 꽃이 만발하던 4월 달이었다.</p>
<p>쓰러진 형님, 누나들.. 그렇게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싸우던 그들.. 지금은 다 어디에 가셨는가? 그들은 과연 그들이 싸우던 목적을 이루며 살았던가? 혹시 그들도 나중에는 &#8216;역적&#8217;들과 같은 무리를 닮아가지는 않았던가?</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11141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6/04/4-19-1.png" alt="Axis of Power, 권력의 축: 이승만, 프란체스카, 이강석, 이기붕, 박 마리아" width="650" height="295" /></p>
<p style="text-align: center;"><em>Axis of Power</em>, 권력의 축: 이승만, 프란체스카, 이강석, 이기붕, 박 마리아</p>
<p>이승만, 이기붕, 이강석, 프란체스카, 장면, 윤보선, 허정, 그리고 장도영, 박정희..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억의 열차에 남았던 역사 속의 그들.. 모두 어디에 있는가? 젊으셨던 우리 어머니, 그래도 이승만의 잘못을 지적하시던 지성을 가지고 침묵으로 우리를 가르치셨고, 우리는 아직도 그 말의 뜻을 새기고 감사하며 산다. 역사는 돌고 돌지만 그것에서 배우고 최소한 되풀이 하지 않는 &#8216;자유의지&#8217;를 가진 인간들이기에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2016년 4월 19일, 싸늘한 아침에 머리를 맴도는 넋두리, 이렇게 정리를 하지만 전혀 정리가 되지 않음을 안다. 그것이 정상이다.</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6/04/19/4-19-%ec%95%84%ec%b9%a8%ec%9d%b8%ea%b0%80/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1139</post-id>	</item>
		<item>
		<title>고금소총과 벌레 먹은 장미</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3/05/23/%ea%b3%a0%ea%b8%88%ec%86%8c%ec%b4%9d%ea%b3%bc-%eb%b2%8c%eb%a0%88-%eb%a8%b9%ec%9d%80-%ec%9e%a5%eb%af%b8/</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3/05/23/%ea%b3%a0%ea%b8%88%ec%86%8c%ec%b4%9d%ea%b3%bc-%eb%b2%8c%eb%a0%88-%eb%a8%b9%ec%9d%80-%ec%9e%a5%eb%af%b8/#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23 May 2013 20:54:41 +0000</pubDate>
				<category><![CDATA[Memoir]]></category>
		<category><![CDATA[50/60]]></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중앙중]]></category>
		<category><![CDATA[책]]></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p=5133</guid>

					<description><![CDATA[고금소총(古今笑叢).. 벌레 먹은 장미..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에 생각하고 조심스레 써본 조금은 &#8216;숨기고 싶은&#8217; 이름들이다. 고금소총은 아마도 태고 적부터(아마도 고려시대?) 있었을 &#8216;고전&#8217; 책 이름일 것이고, &#8216;벌레 먹은 장미&#8217; 는 1950년대에 나왔음직한 책의 제목이었다. 옛날 옛적을 추억하며 이 책 두 권을 언급하지 않으면 사실, 너무나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두 권의 책은 &#8216;절대로&#8217; 도서관에서 찾을 수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고금소총</strong>(古今笑叢).. <strong>벌레 먹은 장미</strong></span>..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에 생각하고 조심스레 써본 조금은 &#8216;숨기고 싶은&#8217; 이름들이다. 고금소총은 아마도 태고 적부터(아마도 고려시대?) 있었을 &#8216;고전&#8217; 책 이름일 것이고, &#8216;벌레 먹은 장미&#8217; 는 1950년대에 나왔음직한 책의 제목이었다. 옛날 옛적을 추억하며 이 책 두 권을 언급하지 않으면 사실, 너무나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두 권의 책은 &#8216;절대로&#8217; 도서관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책들이 어디 한 두 권이겠는가? 한마디로 그 당시 도덕적, 사회적 기준에서 들어내 놓을 수 없는 책들인 것이다. 그런 것들은 사상에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여기의 이 책들은 사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8216;풍기문란&#8217; 죄에 해당하는 것들이다.</p>
<p>내가 이 책들을 읽고 본 것이 중학교(서울 중앙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1962년 경인가.. 여학생들은 모르겠지만 남학생들은 그 나이 정도에서 이런 &#8216;금기 도서&#8217; 목록을 조금씩은 거쳐 나갔을 것인데, 조금 조숙한 아이들은 그 훨씬 이전에 읽었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나이에서야 읽게 되었다. 물론 친한 친구들의 &#8216;권유&#8217;로 알게 되고 읽게 되는데, 아직도 생생하게 그 읽던 때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이런 것들은 사실 &#8216;충격&#8217;적으로 받아들였음이 분명했다.</p>
<p>아주 옛날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1960년 대 만 해도 고등학교까지는 철저한 &#8216;남녀유별&#8217;의 사회적 규율이 엄존했다. 남녀공학은 &#8216;거의&#8217; 없었고, 만약 공개적인 연애를 하다 &#8216;걸리면&#8217; 정학처분 같은 벌을 받곤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발동하는 남성 호르몬의 영향은 자연스레 &#8216;지하&#8217;로 들어가며, 음성적, 비공개적, 밀담 같은 것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조금만 노출된 여자들이 나오는 영화는 물론 &#8216;학생입장불가&#8217; 라는 말이 붙어서 그저 영화광고 벽보 앞에서 침만 흘리는 것이 고작이었다.</p>
<p>그런 환경 하에서 비밀리에 돌려가며 읽는 책 중에 아마도 위의 두 책이 제일 유명했을 것 같다. 나의 또래 사람들에게 나중에 물어보니 예외 없이 모두 보았다고 했으니까.. 또한 같은 또래의 여성들에게 은근히 물어보면 &#8216;그것이 무엇이냐?&#8217; 하는 예상하기 쉬운 반응을 보곤 했다. 이렇게 여자와 남자가 다른가.. 놀라기만 했다.</p>
<p>고금소총은 글자 그대로 &#8216;옛날과 오늘날의 웃음거리 이야기를 모은 책&#8217; 인데, 100%가 &#8216;성(性)&#8217; 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들은 요새도 인터넷에 가면 특히 <strong>dirty old men</strong>들이 즐기는 소일거리이지만 그 옛날에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노골적인 묘사를 피하며 교묘하게 그것도 &#8216;한자&#8217;가 많이 섞인 글을 읽으면 아닌 게 아니라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p>
<p>아직도 기억나는 어휘들, &#8216;<strong>양물, 옥문</strong>&#8216; 같은 말들.. 처음에 읽을 때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는 놀라다가 웃게 되었다. 또한 옛 사람들의 과장법도 상당해서 그 당시 남녀는 모조리 &#8216;성 중독자, 도착증 환자&#8217;로 묘사가 되어 있었다. 모든 이야기들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그렇게 성이 억압을 받던 시대에도 그렇게 모두 &#8216;숨어서&#8217; 이런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폈을 것이라는 것이다.</p>
<p>이런 전통을 잇거나, 아마도 일제시대에 흘러 들어온 일본의 개방적인 성 문화의 영향까지 겹치고, 6.25 전쟁의 상처가 아물던 1950년대에 그런 &#8216;삶의 돌파구&#8217;가 없을 리가 없었다. 비록 책방에서 들어내 놓고 팔 수는 없었어도, 길거리의 <strong>카바이드 등불</strong> 아래 &#8216;포장마차&#8217; 책방에서 이런 종류의 책들은 잘 팔렸을 것이고, 이제는 일본 이외에 미국문화가 전쟁 후에 쏟아져 들어오며 한창 잘 나가던 미국 판 잡지들 (대부분 <em>PLAYBOY</em>같은) 까지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그 시절 굶주린 남성들을 유혹하곤 했고, 학생들도 거기서 자유스러울 수는 없었다.</p>
<p>그 중에 나에게 &#8216;흘러 들어온&#8217; 책이 바로 그 유명한 &#8216;현대고전&#8217;, &#8216;벌레먹은 장미&#8217;였다. 중학교 3학년 내가 가회동에 살 때, 골목 친구가 시간제한을 두고 빌려주었던 책이었다. 불과 몇 시간 밖에 없어서 빠른 속도로 읽고 돌려준 책이었다. 그런 책의 내용이 반세기가 훨씬 지난 후에 거의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을 알고 나도 놀란다. 그 정도로 &#8216;강하게&#8217; 뇌리의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고금소총과 달리 완전히 이야기의 배경이 현대, 그것도 6.25 이후의 사회적 풍경을 담아서 그야말로 100% 실감이 갔던 이야기들.. 당시로써는 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요 묘사였다. 이 책의 저자는 분명히 그 유명한 &#8216;<strong>방인근</strong>&#8216; (일제 당시 소설가) 선생이었지만 소위 문학의 대가가 그런 책을 썼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돈이 필요한 선생께서 이름을 빌려 주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p>
<p>그 이후에도 이런 종류의 책들을 접할 기회가 적지 않게 있었고, 그런 것을 내가 피했다고 하면 그것은 나의 위선에 불과할 것이다. 이전에는 그런 것들을 &#8216;자라면서 꼭 거치는 자연스러운 행동&#8217;이라고 자위하며 &#8216;괜찮다&#8217; 로 일관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후회가 되는 것이다. 꼭 그렇게 &#8216;음성적&#8217;으로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8216;지하, 음성적&#8217;인 습관이 깊어지면 아마도 소위 말하는 중독증으로 빠질 것이다.</p>
<p>특히 인터넷의 &#8216;도움&#8217;으로 요새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런 것들을 &#8216;통제&#8217;하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sup class='footnote'><a href='#fn-5133-1' id='fnref-5133-1' onclick='return fdfootnote_show(5133)'>1</a></sup> 한마디로 이제는 &#8216;장난&#8217;이 아닌 것이다. 동네 골목에서 숨어서 몇 시간 동안에 보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편하게 집에 &#8216;숨어서&#8217; 24시간이고 보고, 듣고, 보내고, 받고.. 이것이 바로 우리 신부님<sup class='footnote'><a href='#fn-5133-2' id='fnref-5133-2' onclick='return fdfootnote_show(5133)'>2</a></sup>이 말하는 &#8216;어두운 밤&#8217;의 시작일 것이다.</p>
<div class='footnotes' id='footnotes-5133'>
<div class='footnotedivider'></div>
<ol>
<li id='fn-5133-1'> 최근 영국에서 이런 것을 대처하는 법안이 나옴. <span class='footnotereverse'><a href='#fnref-5133-1'>&#8617;</a></span></li>
<li id='fn-5133-2'>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하태수 미카엘 주임신부님. <span class='footnotereverse'><a href='#fnref-5133-2'>&#8617;</a></span></li>
</ol>
</div>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3/05/23/%ea%b3%a0%ea%b8%88%ec%86%8c%ec%b4%9d%ea%b3%bc-%eb%b2%8c%eb%a0%88-%eb%a8%b9%ec%9d%80-%ec%9e%a5%eb%af%b8/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5133</post-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