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wfw="http://wellformedweb.org/CommentAPI/"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xmlns:sy="http://purl.org/rss/1.0/modules/syndication/"
	xmlns:slash="http://purl.org/rss/1.0/modules/slash/"
	>

<channel>
	<title>60/70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atom:link href="https://serony.com/ken/tag/6070/feed/"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 />
	<link>https://serony.com/ken</link>
	<description>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38; place, autobio in progress..</description>
	<lastBuildDate>Mon, 02 May 2022 01:33:59 +0000</lastBuildDate>
	<language>en-US</language>
	<sy:updatePeriod>
	hourly	</sy:updatePeriod>
	<sy:updateFrequency>
	1	</sy:updateFrequency>
	<generator>https://wordpress.org/?v=6.9.4</generator>

<image>
	<url>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5/08/cropped-2014-07-01-10.08.14-2-32x32.jpg</url>
	<title>60/70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link>https://serony.com/ken</link>
	<width>32</width>
	<height>32</height>
</image> 
<site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71724475</site>	<item>
		<title>Another First of May</title>
		<link>https://serony.com/ken/2022/05/01/another-first-of-may/</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22/05/01/another-first-of-may/#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Mon, 02 May 2022 01:33:59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60/70]]></category>
		<category><![CDATA[Pop songs]]></category>
		<category><![CDATA[원서동]]></category>
		<category><![CDATA[일기]]></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category><![CDATA[친구]]></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20246</guid>

					<description><![CDATA[﻿ 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이제는 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친구들아!  용현아, 창희야, 잘들 살아 있는가? 이제 다시 연락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들 혹시 못 알아 보는 것은 아닐까? 거울을 보기가 무서운 것,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닐까? 아~ 내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친구들아,  작년 5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eNbOOvQ-fqk" width="650" height="420"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span data-mce-type="bookmark"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0px; overflow: hidden; line-height: 0;" class="mce_SELRES_start">﻿</spa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p>
<p><span style="font-size: 14pt;">이제는 꿈에서조차</span> 보이지 않는 친구들아!  용현아, 창희야, 잘들 살아 있는가? 이제 다시 연락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들 혹시 못 알아 보는 것은 아닐까? 거울을 보기가 무서운 것,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닐까? 아~ 내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br />
친구들아,  작년 5월 1일 이후 또 일년이 흘렀구먼~ 일년? 허~ 하지만 일년이 세월의 축이 끼기라도 하는가?  하지만 그 짧은 일년 동안이었어도  꽤 일들이 모이고 쌓이고 해서 몇 가지는 알려주고 싶구나.</p>
<p>지난 해에는 둘째 손주를 보아서 이제는 명실공히 진짜 할아버지가 되었다. 할아버지 역할, 노릇을 하는 것도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고, 제법 즐길 줄도 알게 되었고.. 역시 이런 인간사는 다 자연적으로 풀리는 것인 모양이야. 너희들은 지금 손주들 상황이 어떤지 전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와 비슷한 것은 아닐지.<br />
너희들도 알다시피 작년 이후 제일 큰 세상의 변화는 역시 Pandemic이 거의 뉴스에서 사라지고 대신 Putin 괴물의 출현이 아닐까? 그것과 더불어 끊임없이 설치고 있는 다른 괴물 Trump의 정치변수 정도. 너희는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을 듯 보이지만 만만치 않는 나이 탓으로 별수없이 정치동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정도껏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 잊지 마라. 나도 가끔 지나친 흥분을 하며 심장에 무리를 주고 있지만 어느 정도 자제를 하며 살고 있으니까&#8230;<br />
또 일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8230; 열심히 봉사를 하며 살 수 있는 여건을 거의 10여 년 동안 주었던 순교자 성당 (특히 레지오 마리애), 여러 가지 사정 (역시 인간관계) 으로 하나 둘씩 역할을 내려놓게 되었지. 나이를 탓할 수도 있지만 역시 인간관계의 변수는 예측할 수가 없더군. 조금 참을성을 가졌다면 더 버틸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피곤하구먼&#8230; 피곤해..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이제 괴로움으로 남게 되고&#8230;</p>
<p>아~ 그래도 우리들의 시절만 생각하면 이런 현재의 관심사들은 다 사라진다. 그 시절은 무조건 살맛이 넘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그 몇 년의 세월들을 잊을 수가 없으니, 이것도 나의 병인데, 너희들은 나와 다를지도 모르지. 그 시절의 절정은 1970년 4월부터 5월 사이가 아닐까? 그래서 5월 1일을 잊을 수도 없고&#8230; 봄이 한창 올라오던 그 해 4월 중순, 잔설이 깊이 쌓여있던 지리산 능선을 어찌 꿈속에서조차 잊겠니?  데모 덕분에 등산을 시작했던 그 시절, 요델 산악회 창희 덕분이었지. 나와 용현이는 그저 창희의 멋진 등산실력을 따라갔던 것 뿐이야.  아련하고 아름답던 1970년 봄, 봄, 봄&#8230; </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22/05/01/another-first-of-may/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20246</post-id>	</item>
		<item>
		<title>Glen Campbell morning</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8/11/15/glen-campbell-morning/</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8/11/15/glen-campbell-morning/#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15 Nov 2018 18:00:01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Memoir]]></category>
		<category><![CDATA[60/70]]></category>
		<category><![CDATA[Oldies]]></category>
		<category><![CDATA[날씨]]></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4818</guid>

					<description><![CDATA[며칠 동안 쉬지 않고 쏟아지던 싸늘~한 가을비가 오늘 이른 아침부터 조금씩 잔잔해지는 느낌이더니 결국은 멈추었다. 하지만 빗물에 완전히 젖은 낙엽들이 내뿜는 냉기는  온통 나의 몸을 움츠려 들게 한다.  작년에 연숙이 Costco 에서 사준 실내용 warm pants 로 하체는 해결이 되었는데 shirt는 고르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일기예보를 보니 올해 첫 winter storm, Avery 의 소식이 나오고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며칠 동안 쉬지 않고 쏟아지던</strong></span> 싸늘~한 가을비가 오늘 이른 아침부터 조금씩 잔잔해지는 느낌이더니 결국은 멈추었다. 하지만 빗물에 완전히 젖은 낙엽들이 내뿜는 냉기는  온통 나의 몸을 움츠려 들게 한다.  작년에 연숙이 <em>Costco</em> 에서 사준 실내용 warm pants 로 하체는 해결이 되었는데 shirt는 고르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p>
<p>일기예보를 보니 올해 첫 winter storm, <strong><em>Avery</em> </strong>의 소식이 나오고 있다. 첫 눈의 소식, 물론 이 지역이 아니고 <em>Midwest, Northeast</em> 쪽이었지만 &#8216;눈 소식&#8217;을 들으니 벌써 &#8216;<em>Holidays</em>, the <em>best</em> time of year&#8217; 란 숙어가 떠오른다.</p>
<p>작년 가을에 나의 work/study room을 아래층으로 옮긴 후 첫 겨울은 추위를 느끼며 살아야 했다. 위층에 비해서 훨씬 냉기가 대단한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올해 다시 맞는 큰 아래층 공간의  &#8216;냉기&#8217;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여름에 우리를 영원히 떠난 나의 <em>Tobey</em>가 없는 이 큰방, 그 사실이 추위의 냉기보다 나를 더 춥고 쓸쓸하게 만든다. <em>Tobey</em>대신 &#8216;양양이 <em>Izzie</em>&#8216; 가 나의 주변을 맴돌지만 &#8216;개와 고양이의 차이&#8217;는 그렇게 큰 것인가? 하지만 &#8216;5개월이란 세월의 약&#8217;이 작용을 하며 <em>all shall pass, all shall pass</em>&#8230;</p>
<p>이른 아침 ritual (<em>stick</em> coffee, today&#8217;s scripture, email, <em>New York Times</em> newsletter, blog counts etc)을 끝내고 우연히 (사실은 며칠 전에 잠깐 보았던) 1960년대 말의 미국 TV show였던<em>The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Glen_Campbell">Glen Campbell</a> Goodtime Hour</em> (<em>variety</em> show format)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 감미로운 추억이여! 아무리 잇몸이 쑤셔도 이런 60년대 말의 추억은 모든  불편함을 한때나마 잊게 해 준다. 그의 음악에 심취했던 시절, 60년대 말은 나에게 절대로 잊을 수도 놓칠 수도 없는 보물중의 보물로 남아있다. 서울에 있던 &#8216;미8군 방송국&#8217;이었던 <strong><em>AFKN</em> </strong>에서 이 program을 정기적으로 방영을 했고 나도 기회가 되는 때에 보곤 했었다.  연세대 전기과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기타귀재 심재흥</span>의 영향과 도움으로 한창 기타를 배우던 시절, 이 <em>Glen Campbell</em>의 folk, country, rock style은 거의 교과서적인 도전을 나에게 주곤 했다.</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JS1fzlfgcBg" width="540" height="30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p>&nbsp;</p>
<p>한때 <em>Elvis Presley</em> 의 guitarist였던 그가 어떻게 그런 많은 재능을 가졌는지.. 그의 vocal style은 기타 솜씨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다만 그도 연약한 인간이었는지 &#8216;유명세&#8217;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으로 그의 말년이 기억되는 것은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그 당시에 우리는 그의 노래 <em>A Place in the Sun</em> 을 &#8216; 따라 부르며 guitar chord와 rhythm 을 연습했다. 특히 당시 <em>Bobbie Gentry</em>와 duet으로 부른 <em>Let it be me</em> 는 당시의 시내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면 항상 흘러나오던 hit song 이었고, 그 뒤로 듣던 <em>Gentle on My Mind, By the Time I Get to Phoenix, Wichita Lineman, Galveston</em>&#8230; 수많은 hit after hit..  훨씬 뒤에 미국에서 TV로 보고 들었던 그의 &#8216;대작&#8217;, big orchestra와 협연으로 부른 <em>MacArthur Park</em>은 정말 그만이 남겨준 영원한 classic이 되었다. 아~ 추억에 젖은 이른 아침이여&#8230;</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gaPeO0IwIfE" width="540" height="30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p style="text-align: center;"><em><strong>MacArthur Park</strong></em> &#8211; Glen Campbell</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title="YouTube video player" src="https://www.youtube.com/embed/t12LDTxP6to" width="540" height="30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strong><em>Let it be me</em></strong> &#8211; Glen Campbell &amp; Bobbie Gentry &#8211; 1969</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8/11/15/glen-campbell-morning/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4818</post-id>	</item>
		<item>
		<title>Next stop 1969</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7/10/28/next-stop-1969/</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7/10/28/next-stop-1969/#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Sun, 29 Oct 2017 00:58:42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60/70]]></category>
		<category><![CDATA[역사]]></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category><![CDATA[평창이씨]]></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2367</guid>

					<description><![CDATA[1969 1969 1969 1969 &#8230;. &#160; 나는 지금 한창 &#8217;20세기&#8217;, 1969년 경으로 돌아가 그때의 개인역사, 내 주변의 세계를 머리를 쥐어 짜며 기억하려고 각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나의 본격적 시대별 회고록 series blog: memoir 가 3년 전쯤 1968년경을 마지막으로 멈추었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도에서 나이 20세가 되던 1968년경까지는 글로 남긴 셈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12368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7/10/life-1969-12-1.jpg" alt="" width="650" height="509" /></p>
<p style="text-align: center;">1969 1969 1969 1969 &#8230;.</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나는 지금 한창</strong></span> &#8217;20세기&#8217;, 1969년 경으로 돌아가 그때의 개인역사, 내 주변의 세계를 머리를 쥐어 짜며 기억하려고 각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나의 본격적 시대별 회고록 series blog: <em>memoir</em> 가 3년 전쯤 1968년경을 마지막으로 멈추었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도에서 나이 20세가 되던 <a href="http://serony.com/ken/2014/10/15/%ec%97%b0%ec%84%b8%eb%8c%80%ed%95%99%ec%9d%98-%ec%b6%94%ec%96%b53-2%ed%95%99%eb%85%84-1968-2/">1968년경까지는 글로</a> 남긴 셈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그 이후에서 현재까지 것들, 세월로 보면 엄청 길었던 시절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다.</p>
<p>얼마 전부터 더 이상 1968년에서 멈추어 있을 수 없다는 우려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그 당시가 명료하게 기억이 나던 것들이 이제는 급속도로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위기의식을 갑자기 느낀다&#8230; 내일 아침을 내가 못 본다면.. &#8216;나,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平昌李氏,  이경우 李炅宇</span>&#8216;라는 인간의 역사는 하느님만 아실 수 있는 영역에만 속하게 된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p>
<p>1969년은 내가 연세대 3학년 시절인데, 오랫동안 머리 속에 그 당시의 기억을 조금씩 정리하고는 있었다. 문제는 얼마나 정리가 되고 정확한가 한 것이다. 당시의 개인 일기는 물론 남아 있을 리가 없고(사실 일기가 있었지만), 사진 몇 장 정도로 상상력을 동원하면 대부분 &#8216;희미한&#8217; 회상이 가능하다. 게다가 당시의 신문들, 특히 국제적인 역사는 미국의 대표적 화보잡지 <em>LIFE</em> magazine 에 의지하면 된다. 하지만 이 작업은 거의 나 자신과의 싸움에 가깝다. 이것도 기적과 같은 높은 곳의 도움이 필요한데.. 어떨까?</p>
<p><em>Neil Armstrong</em> 의 잡음이 섞인 달착륙 당시의 육성, 소백산 연화봉 정상의 운해,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3선 개헌 반대 데모</span> 때 최루탄이 나르던 연세대 굴다리, 기타귀재 鬼才 보성고 심재흥과 <em>YMCA</em> sing-along-Y 전석환, 미국 <em>Woodstock </em> (rock) festival,  Pop, Folk &amp; Rock music에 심취하던 시절 등등 거의 생생하게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비록 이 작업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보내는 시간 그 자체는 즐거움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로 &#8216;기쁜 우리 젊은 날&#8217; 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이니까..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이것도 &#8216;세월의 선물: 늙음만이 주는 특혜&#8217; 중에 하나</span>일 것이다.</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com/embed/iDRXADEJuKo" width="650" height="28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strong><em>Galveston</em></strong> &#8211; Glen Campbell &#8211; 1969</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com/embed/1vhFnTjia_I?rel=0" width="650" height="28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strong><em>Sweet Caroline</em></strong> &#8211; Neil Diamond &#8211; 1969</p>
<p style="text-align: left;"> </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7/10/28/next-stop-1969/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2367</post-id>	</item>
		<item>
		<title>1st of May, 2017</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7/05/01/1st-of-may-2017/</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7/05/01/1st-of-may-2017/#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Mon, 01 May 2017 17:10:22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60/70]]></category>
		<category><![CDATA[Oldies]]></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category><![CDATA[친구]]></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1854</guid>

					<description><![CDATA[2017년 &#8216;우리들의 5월 1일&#8217;이 되었다. 친구들이여, 지난 한해 잘 살았던가? 아니.. 큰 변화는 없었던가? 창희는 물론 교회를 맴돌며 보람 있는 나날을 보냈을 것 같고, 용현이는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전혀 idea가 없구나. 나와 나의 가까운 사람들은 비교적 잘 살았던 듯하다. 우리들의 5월 1일은 어제였던가? 아마도 1970년부터 1973년 사이가 아니었을까?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적 경제발전의 서막이 시작되던 때에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2017년 &#8216;우리들의 5월 1일&#8217;</strong></span>이 되었다. 친구들이여, 지난 한해 잘 살았던가? 아니.. 큰 변화는 없었던가? 창희는 물론 교회를 맴돌며 보람 있는 나날을 보냈을 것 같고, 용현이는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전혀 idea가 없구나. 나와 나의 가까운 사람들은 비교적 잘 살았던 듯하다.</p>
<p>우리들의 5월 1일은 어제였던가? 아마도 1970년부터 1973년 사이가 아니었을까?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적 경제발전의 서막이 시작되던 때에 우리들 모두 생의 진로를 놓고 방황하며 불투명한 미래를 잊고자 발버둥 치지 않았던가?</p>
<p>당시에 느꼈던 우리들의 세상은 아무리 아무리 하늘이 어두웠어도 그 저쪽에는 밝은 태양이 맴돌고 있었지 않았던가? 젊음의 선물인 &#8216;이유 없는 희망&#8217;, 바로 그것을 우리들은 만끽하며 길게만 느껴지던 몇 해를 보냈지.</p>
<p>그 &#8216;어린&#8217; 나이에 세계관이 변할만한 신앙을 찾았던 창희, 당시에 &#8216;우리 들&#8217;은 이해를 못할 수 밖에 없었다. &#8216;신나고 멋지게 오래 오래 살자&#8217; 가 전부였던 나이였기에 &#8216;죽음&#8217;의 세계는 우주의 저~ 편으로 느끼던 20대 초.. 그런 느낌의 세월들이 우리들의 5월 1일,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8216;거의&#8217; 사라져 가고 있구나.</p>
<p>비록 3총사가 뿔뿔이 흩어져서 소식도 모르며 숨어 살고 있지만 이런 추억으로 인한 꿈속의 세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함이 없구나. 이런 pace로 세월이 흐른다면 이제는 서로 죽는 날도 모르고 뜨겠다는 자괴감에 젖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언제나 작은 기적이 있다는 경험을 가지며 살고 있으니까.. 내년 5월 1일, 다시 보자.. 멋진 친구들이여!</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eNbOOvQ-fqk?rel=0&amp;showinfo=0" width="480" height="360"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창희야, 용현아 그립구나.. 행복하게 살기를..</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7/05/01/1st-of-may-2017/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1854</post-id>	</item>
		<item>
		<title>The Guitar Handbook</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6/05/26/the-guitar-handbook/</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6/05/26/the-guitar-handbook/#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hu, 26 May 2016 16:41:12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60/70]]></category>
		<category><![CDATA[Oldies]]></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1320</guid>

					<description><![CDATA[오래~ 오랜 만에 이 &#8216;번쩍거리는 표지&#8217;를 가진 책의 먼지를 털고 책상 위에 꺼내 놓았다. 1990년경에 산 책이다. Atlanta 지역으로 이사온 즈음에 산 것인데, Internet 이 일반인들에게 &#8216;유행&#8217;하기 전이고, 그러니까 Amazon.com 같은 것은 물론 없었고, 집 근처에 있는 &#8216;정다운&#8217; bookstore에서 산 것이다. 당시 나는 Norcorss와 Doraville 이 마주 닿는 곳, Pleasantdale road@I-85 (near Spaghetti junction) 에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left size-full wp-image-11322"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6/05/Scan10004-1.jpg" alt="Scan10004-1" width="293" height="381" srcset="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6/05/Scan10004-1.jpg 293w, https://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6/05/Scan10004-1-231x300.jpg 231w" sizes="auto, (max-width: 293px) 100vw, 293px" />오래~ 오랜 만에</strong></span> 이 &#8216;번쩍거리는 표지&#8217;를 가진 책의 먼지를 털고 책상 위에 꺼내 놓았다. 1990년경에 산 책이다. <em>Atlanta</em> 지역으로 이사온 즈음에 산 것인데, Internet 이 일반인들에게 &#8216;유행&#8217;하기 전이고, 그러니까 <em>Amazon.com</em> 같은 것은 물론 없었고, 집 근처에 있는 &#8216;정다운&#8217; bookstore에서 산 것이다. 당시 나는 <em>Norcorss</em>와 <em>Doraville</em> 이 마주 닿는 곳, <em>Pleasantdale road</em>@I-85 (near <em>Spaghetti</em> junction) 에 직장, <em>AmeriCom</em> 이 있었고 그곳에서 5분 떨어진 <em>Four Seasons</em> Apartment에서 살 무렵이었으니까.. 거의 분명히 가장 가까운 <em>Jimmy Carter Blvd</em>에 있었던 <em>Green&#8217;s Corner</em> shopping center에 있던 <em>Green&#8217;s Corner bookstore</em>에서 샀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런 &#8216;조그만 책방&#8217;은 다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big-name bookstore가 나오기 전이었고 비교적 작은 local bookstore 가  &#8216;동네 근처&#8217;에 많았다.</p>
<p>이 guitar에 대한 책을 왜 그때 샀을까.. 아직도 머리를 굴리지만 특별한 기억이 없다. 그때에 나는 분명히 &#8216;머리를 식히려&#8217; 가끔 &#8216;고물&#8217; <em>YAMAHA</em> acoustic guitar를 만지작거리며 살았을 것이고, 1969년 부터 연세대 같은 과의 &#8216;기타 귀재 鬼才&#8217; 심재흥에게 자극을 받아, 등 넘어 배우며 즐기기 시작해서 그런대로 중년 때까지 명맥을 이어온 나의 &#8216;알량한&#8217; 기타솜씨를 조금이라도 낫게 하거나 잊지 않게 하려는 &#8216;처량한&#8217; 희망에서 그 glossy한 책을 샀을 듯 하다.</p>
<p>당시에 나는 그 책의 &#8216;사진, 그림들&#8217;을 다 즐긴 후에 곧바로 책을 덮고 서재의 깊은 곳에 내동댕이를 쳤는데.. 이유는 기타 technique 을 다룬 &#8216;소위&#8217; magic technique 들은, 암만 보고 읽어도 알 수가 없는 난해한 것들 투성이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8216;콩나물 대가리&#8217;들로 각종 전문용어를 쓰며 해설을 했던 기타 가르침.. 나에게는 한마디로 무용지물 無用之物 이었다.</p>
<p>그리고.. fast forward해서 25년 뒤에 그 책의 먼지를 털고 다시 나의 시야에 들어오게 하였는데.. 이유는 25년 전과 같은 것, &#8216;혹시, 혹시, 혹시&#8217; 이 책에 무슨 &#8216;하루아침에 기타 귀재가 되게 하는&#8217; 그런 보물이 없을까 하는 가느다란 희망은 아니고.. 그럴만한 이유가 갑자기 생겼기 때문이다.</p>
<p>얼마 전 성당에서 가밀라 자매님의 장례미사 후 식당, 본가설렁탕, 에서 만났던 레지오 은총의 모후 자매님 두 분이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말과 혹시 내가 시간이 될지를 물었었는데, 그 자리에는 진희아빠의 누님인 프란체스카 돼지띠 자매님도 있어서 일언지하 一言之下 로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이 &#8216;그룹&#8217;은 오래 전에 어떤 &#8216;기타 전문가&#8217; 30대 청년으로부터 9개월 이상 강습을 받았다고 했고, &#8216;발표회&#8217;까지 했다는데 (이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진희아빠가 그 중에 하나였으니까) 아마도 그 이후에는 별로 활동이 없었고 실제로 &#8216;코드, guitar chord&#8217;도 많이 잊은 듯했다. 하지만 다시 도전하고 싶다고 그 관심과 열의 (그들의 gesture나 face expression)를 나도 느낄 수가 있어서 나도 관심이 갔던 것이다.</p>
<p>우리부부의 레지오 &#8216;활동&#8217;도 이즈음에는 조금 덜 바빠졌고, 나도 자꾸만 rusty해지는 손가락이 근질근질하기도 했기에 이번에는 깊이 생각 안 하고 이것도 <em>It&#8217;s Now or Never, Before it&#8217;s too late</em> 의 하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2주 뒤에 그러니까 지난 화요일 레지오 회합이 있던 날 드디어 &#8216;동호인&#8217; 2명과 만나서 잠깐 나의 guitar 치는 style (acoustic, picking) 을 보여 주었고 그들도 큰 하자가 없는지 계속해서 모임을 추진하자고 했다.</p>
<p>그날 그 자매들이 가지고 나온 &#8216;강습 Note, 악보&#8217; 잠깐 훑어보니, 다행히 나에게도 친근한, 생소하지 않은 곡들이 실려 있었다. 그러니까 늦어야 80년대 folk-ballad style 대부분은 아마도 70년대 &#8216;젊은이들의 노래&#8217;가 아닌가 싶었다. 그 정도라면 내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인데, 문제는 과연 이들이 지난번에 어떤 format으로 배웠냐는 것인데.. 아무도 친절히, 자세히 설명하는 자세가 아니어서 조금 실망을 했다. 그러니까.. &#8216;무조건, 적당히..&#8217; 해 달라는 것인가?</p>
<p>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내가 조금 성급하게 승낙을 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걱정이 든 것이.. 내가 반세기 전에 기타를 &#8216;치기&#8217; 시작한 이후, 남에게 &#8216;정식으로&#8217; 가르쳐본 적이 없다는 것을 &#8216;처음으로&#8217;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대부분 &#8216;등 넘어 로&#8217; 배웠으니 그들도 등 넘어 로 가르쳐 줄 수가 있는지..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8216;기타 경험자&#8217;를 가르칠까 하는 것,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p>
<p>이런 연유로 기타에 대한 개인적 추억과 역사를 더듬게 되었다. 사실, 앞으로 써야 할 <em>memoir</em> blog 중에는 연세대 3학년 시절, 1969년이 다음 차례인데 그 1969년 일년의 대부분이 guitar에 얽힌 것들이다.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들.. YMCA에서 하던 전석환 씨의 <em>Sing-along-Y</em>란 곳에도 갔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전석환씨가 가르치던 YMCA guitar class에서 한 달 강습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그러니까 비록 등 넘어 배웠다고는 하지만 사실 나는 &#8216;정식으로 시작&#8217;은 한 셈이었다. 처음에는 통 acoustic기타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electric guitar로까지 발전을 했지만 결국은 통기타로 돌아와서 현재에 까지 이른 셈이다. 그러니까 나는 비록 intensive하게 배우고 멋지게 연주는 못 했어도 그 오랜 세월 한번도 이 것에서 멀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p>
<p>근래에는 즐기는 노래들의 chord를 악보를 안 보고 치는, 그러니까 완전히 &#8216;외우는&#8217; 는 쪽으로 노력을 해서 많은 성과를 얻었다. 바로 이것이 끈기 있게 guitar를 &#8216;즐기는&#8217; 비결이었음을 이제야, 황혼기에 깨달은 것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으니.. 게다가 나에게 배우겠다는 &#8216;자매님&#8217;들이 생겼으니 이것도 내실 흐뭇한 일이 아닌가? 간바로!!</p>
<p>&nbsp;</p>
<p>P.S., 아래에 보이는 video, <em>The ventures</em>의 <em>walk don&#8217;t run</em>은 당시 electric guitar를 배우는 사람들의 standard였다.  이들이 rock-style instrumental guitar 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한 것이다.</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owq7hgzna3E?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p style="text-align: center;"><strong><em>Walk Don&#8217;t Run</em></strong> &#8211; <strong>The Ventures</strong> &#8211; early 60&#8217;s</p>
<p style="text-align: center;"> </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6/05/26/the-guitar-handbook/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1320</post-id>	</item>
		<item>
		<title>화창한 5월 두째 주말은..</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6/05/16/%ed%99%94%ec%b0%bd%ed%95%9c-5%ec%9b%94-%eb%91%90%ec%a7%b8-%ec%a3%bc%eb%a7%90%ec%9d%80/</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6/05/16/%ed%99%94%ec%b0%bd%ed%95%9c-5%ec%9b%94-%eb%91%90%ec%a7%b8-%ec%a3%bc%eb%a7%90%ec%9d%80/#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Tue, 17 May 2016 01:19:26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60/70]]></category>
		<category><![CDATA[Oldies]]></category>
		<category><![CDATA[성당]]></category>
		<category><![CDATA[아틀란타]]></category>
		<category><![CDATA[천주교]]></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1238</guid>

					<description><![CDATA[¶  5월 13일.. 2016년 5월 13일 Friday.. 아하 &#8216;또&#8217; Friday the 13th 인가.. 하였지만 곧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금요일 13일은 맞았지만 문제는 5월 13일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맞다 바로 Fatima.. Fatima.. Portugal, 1917년 5월 13일인 것이다. &#8216;묵주의 성모님&#8217;으로 일컬어지는 파티마 성모님 정확히 99년 전 5월 13일에 3명의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다. 그리고 확고한 역사로도 자리를 잡았다.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  5월 13일.. 2016년</strong></span> 5월 13일 Friday.. 아하 &#8216;또&#8217; <em>Friday the 13th</em> 인가.. 하였지만 곧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금요일 13일은 맞았지만 문제는 5월 13일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맞다 바로 <em>Fatima.. Fatima.. Portugal</em>, 1917년 5월 13일인 것이다. &#8216;묵주의 성모님&#8217;으로 일컬어지는 파티마 성모님 정확히 99년 전 5월 13일에 3명의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다. 그리고 확고한 역사로도 자리를 잡았다. 당시 Lisbon의 유력 정부기관지였던 <em>the Seculo</em>에 보도가 되었을 정도로 큰 &#8216;사건&#8217;에 속했다.</p>
<p>기록(그러니까 역사)에 근거한 영화나 책들이 많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8216;흥행성&#8217;을 의식한 영화들은 너무나 &#8216;색깔&#8217;들이 끼어있다. 근래에 발견한 &#8216;고서&#8217; 중에 <a href="http://wp.me/P4QWOn-2Hs"><em>The True Story of Fatima</em></a> 가 있는데 이 책은 주로 목격자 중 제일 오래 생존했던 Lucia수녀님의 증언에 의한 것이고 발현 당시 다른 일반인들의 증언에 의한 교회의 치밀한 발현승인 과정을 거친 것이라 거의 정확한 역사서라고도 볼 수 있다.</p>
<p>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적인 발현이었지만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 의미를 주는 것일까? 발현 성모님의 모든 예언들이 역사적으로 다 실현이 된 것을 보면 &#8216;등골이 써늘해 짐&#8217;을 느낄 때도 있다. 일관되게 비교적 간단한 요구사항을 요구하시는 성모님의 message들, 과연 쉽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 message 의 중심에서 초 현대의 세속세계는 내가 보아도 &#8216;너무나 너무나&#8217; 멀어져 있고 무섭게 멀어져 간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그래도 성모님은 희망의 상징이다</span>. 희망은 원하면 언제나 자비와 함께 우리가 받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닌가?</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  마리에타 2구역 점심봉사</strong></span>: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구역미사에 이어서 곧바로 구역이 담당하는 &#8216;의무적&#8217;인 순교자 천주교회 본당 점심봉사 날이 다가왔다. 이것이 주는 stress로 구역장을 못하겠다는 의견도 많이 있을 정도로 사실 이것은 큰 일이다. 200여 개 이상의 serving을 예상하는 것으로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 한마디로 장난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서 각가지 knowhow가 축적이 되었을 것이고 어느 정도 &#8216;공식&#8217;같은 것도 있음 직하다.</p>
<p>우리는 <em>advanced</em> age라는 이유로 봉사의 의무에서 excuse가 되고 있었지만(우리가 희망하기에), 이번에는 조금 사태가 다르게 되었다. 구역이 둘로 나뉘고 우리가 속한 &#8216;반&#8217;은 숫자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특히 형제님의 숫자가 안심할 정도가 못되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8216;무조건&#8217; 이번에는 봉사하기로 하고 준비하는 날, 점심 봉사하는 날 full-time으로 일을 하였다. 솔직히, 기분 좋게 일을 해서 그런지 일은 비록 많았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 동안 못 했던 미안한 심정도 어느 정도 위안을 받게 되고,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p>
<p>하지만 &#8216;호사다마 好事多魔&#8217;라고 하던가.. 모든 것이 끝나고 <strong>하얀풍차</strong>에 몇 명이 모여서 뒷풀이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즐겁지 않은 뉴스, <em>persona-non-grata</em> 를 접하면서 조금은 흥이 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었고 main event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끝이 나서, 이틀간의 service는 우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  감사합니다, 예수님!</strong></span> 메주고리예:  매달 2일에 메주고리예에서 <em>visionary</em> Mirjana에게 &#8216;공개적으로 publicly&#8217; 발현하시는 성모님, 이제는 게으르지만 않으면 <em>Youtube</em>를 통해서 주로 Italian pilgrim들과 함께하는 group이 찍은 video를 볼 수 있게 되었다. 5월 달은 초부터 무언가 바빠서 깜빡 하고 이것을 check하는 것을 잊었다. 이제야 보니.. 무언가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렸다. 바로 &#8216;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8217; 하는 우리말 노래가 아니었던가. 비록 영어 accent가 섞였지만 아주 정확한 우리말 노래, 그것도 통역을 전담하는 형제가 유창하게도 불렀다. 어떻게 이렇게 우리말 노래가 불려지도록 주선이 되었을까? 추측에 대한민국도 &#8216;메주고리예 신심&#8217;이 상당해서 이곳 메주고리예에서도 인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완전한 나의 상상, 추측에 불과하지만..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듯하다.</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o0_L1Df4HeQ?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28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br />
성모님 발현 &#8211; 메주고리예 2016년 5월 2일</p>
<p>&nbsp;</p>
<p><strong><span style="font-size: 14pt;">¶  <em>The Seekers</em>:</span></strong> <em>I&#8217;ll Never Find Another You</em> 1967,  우연히 우연히 이 노래 video를 보게 되었다. 요새 비교적 잊고 살았단 나의 지난날의 추억이 나를 아득~하게 만든다. 나에게도 그런 꿈같던 시절이 있었지.. 하는 조금은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운 나만의 추억들.. 추억의 얼굴들.. 이런 것들이 다 그 당시에 유행했던 것, 특히 &#8216;유행가&#8217;와 연관이 되어서,  뇌세포 깊숙한 곳에서 꺼떡없이 안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옛 유행가를 그렇게 아직도 좋아하나 보다.</p>
<p>오늘 본 것은 Australian vocal group, <em>The Seekers</em>의 경쾌한 country style ballad &#8216;<em>I&#8217;ll Never Find Another You</em>&#8216;. 가사야 큰 의미가 없지만 이 노래의 lead singer의 목소리가 이 노래의 tone과 style을 그렇게 classic으로 만들었나 보다. <em>Judith Durham</em>, 바로 이 그룹의 간판 격 &#8216;청순한 tone&#8217;.. 몇 년 뒤에 미국의 The Carpenters의 <em>Karen Carpenter</em> 가 바로 이런 독특한 음성의 소유자였고 역시 그녀의 모든 노래들, 주옥같이 역사에 남는다.</p>
<p>이 모두 1960년대 말 경이었다. 그 시절, 그 시절, 어떻게 time travel을 꿈 속에서라도 할 수 있을까? The Seekers의 경우, 그 lead singer, <em>Judith Durham</em>의 얼굴과 자태가 내가 한때 &#8216;좋아했던&#8217; 어떤 아가씨와 그렇게 닮았다. 키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그 때의 그 노래가 그래서 그렇게 그리운가 보다.</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hqMZePE7SQk?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28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br />
<em>The Seekers</em> &#8211; <strong>I&#8217;ll Never Find Another You</strong> &#8211; 1967</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6/05/16/%ed%99%94%ec%b0%bd%ed%95%9c-5%ec%9b%94-%eb%91%90%ec%a7%b8-%ec%a3%bc%eb%a7%90%ec%9d%80/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1238</post-id>	</item>
		<item>
		<title>First of May, 2016</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6/05/01/first-of-may-2016/</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6/05/01/first-of-may-2016/#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Mon, 02 May 2016 01:25:40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60/70]]></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category><![CDATA[친구]]></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1197</guid>

					<description><![CDATA[5월 1일의 친구들이여 용현아, 창희야.. 잘들 있었는가? 다시 5월 1일이 일년을 지나서 우리를 이렇게 &#8216;허공&#8217;에서 만나게 하는가? 허공에서라도 큰 문제는 없지 않는가? 생각과 의식적 역학으로 우리는 일년 동안 계속 만날 수 있으니까. 이래서 일년의 흐름을 가늠하며.. 자네들의 지난 지난 일년, 옛 친구의 정을 이런 찬란한 어머님의 계절에 다시 한번 추억하는 것.. 나쁘지 않네.. 코흘리개 원서동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5월 1일의 친구들이여</strong></span> 용현아, 창희야.. 잘들 있었는가? 다시 5월 1일이 일년을 지나서 우리를 이렇게 &#8216;허공&#8217;에서 만나게 하는가? 허공에서라도 큰 문제는 없지 않는가? 생각과 의식적 역학으로 우리는 일년 동안 계속 만날 수 있으니까. 이래서 일년의 흐름을 가늠하며.. 자네들의 지난 지난 일년, 옛 친구의 정을 이런 찬란한 어머님의 계절에 다시 한번 추억하는 것.. 나쁘지 않네..</p>
<p>코흘리개 원서동 개천시절부터 연인들까지 합세한 대학시절들까지.. 우리의 시대, 역사 속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지만.. 사진 같은 그런 추억들은 &#8216;절대로&#8217;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이제는 다시 이 세상의 친구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지나가는 생각이 들 때는 하찮은 &#8216;느끼고 보여야만 하는&#8217; 이 세상이 지나면 다른 그림들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p>
<p>지난 일년 어디서라도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냈으리라 믿고 싶고, 우리 집도 하느님의 보호로 비교적 건강한 세월을 보냈다고 말 하고 싶다. 너희들은 분명히 출가한 자식들이 있으리라 추측을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모두 single을 고수하는 이상한 풍조에 휩쓸려 편안한 &#8216;혼자의 인생&#8217;을 고집하고 있으니.. 하지만 나는 이것만은 조금 progressive한 쪽인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기들의 인생은 이미 우리에게서 떠난 것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8216;올바른&#8217;것인지 그것은 공식이 없지 않은가?</p>
<p>70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자네들은 나머지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을 하며 사는가? 나는 아직도 뚜렷한 계획이 없지만 조만간 어떤 &#8216;계시&#8217;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예전에 그렸던 노후인생의 모습들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전혀 예상치 않았던 다른 세계관에 의한 것들이 우리의 앞에 나타나는구나. 아마도 그것이 진정한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도,</p>
<p>아무리 &#8216;나의&#8217; 세계관이 엄청 변했어도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은 역시 &#8216;우리들의 시대&#8217;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일 것이다. 내년 2017년 5월 1일에 다시 만나자! Adios Amigo!</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eNbOOvQ-fqk?rel=0&amp;showinfo=0" width="480" height="360"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strong>창희야, 용현아</strong> 그립구나.. 행복하게 살기를..</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6/05/01/first-of-may-2016/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1197</post-id>	</item>
		<item>
		<title>feast of flowers</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6/03/31/feast-of-flowers/</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6/03/31/feast-of-flowers/#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Fri, 01 Apr 2016 02:40:38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60/70]]></category>
		<category><![CDATA[Oldies]]></category>
		<category><![CDATA[Pop songs]]></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1326</guid>

					<description><![CDATA[내가 예전에 알았고 사귀었던 그 모두들 어디로 갔나?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며 특히 그들이 완전히 나에게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놀란다. &#8216;모두들 다 어디로 갔나?&#8217; 하는 생각..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나에게 보이지 않게 된 것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 그들이 나의 옆에 없음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험이다. 이것은 Charles Dickens의 holiday classic, A Christmas Carol 에서 Scrooge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내가 예전에 알았고 사귀었던</strong></span> 그 모두들 어디로 갔나?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며 특히 그들이 완전히 나에게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놀란다. &#8216;모두들 다 어디로 갔나?&#8217; 하는 생각..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나에게 보이지 않게 된 것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 그들이 나의 옆에 없음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험이다. 이것은 <em>Charles Dickens</em>의 holiday classic, <em>A Christmas Carol</em> 에서 <em>Scrooge</em>가 Spirit of Christmas Past를 따라서 자기의 과거로 돌아갔을 때의 경험이라고나 할까? 나 정도의 나이가 되면 사실 모두들 그런 경험을 조금씩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은 역사 고금을 통해서 짧지 않은 과거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라면 다들 겪을 듯 싶지만 나는 더 예민하게 느끼는 모양인데 이런 경험과 생각들이 때로는 아주 괴롭기까지 하다.</p>
<p>이런 생각과 비슷한 &#8216;내용,가사&#8217;를 가진 folk song이 있다. 그것이 바로 <em>Pete Seeger</em>의 1960년대 초 hit song인 <em>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em> 이란 노래다. 처음에 2절이던 곡이 나중에 3절이 더해져서 무려 5절이나 되는 긴 노래이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8216;구성&#8217;이다. 처음에 flowers로 시작되어 마지막도 flowers로 끝난다. 그 동안 이 flowers가 주인을 옮기는 과정이 5절에 걸쳐 나온다. 처음에 flowers가 young girls로, young girls가 husband(man)로, husband(man)이 soldiers로, soldiers가 grave yard로, grave yard가 결국 flower로 돌아온다는.. 불교의 윤회설을 연상시키는, 인생의 여정을 생각하게도 만드는 곡으로 1960년대에는 월남전과 어울려 반전 反戰 곡으로 크게 각광을 받았던 <strong>불후의 classic</strong>이 되었다.</p>
<p>내가 이 곡을 알게 된 때도 바로 1960년대의 war protest song 시절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pop chart에 올려놓은 <em>Kingston Trio</em>의 경쾌한 곡으로 들었지만 나중에 이 곡의 원조인 <em>Pete Seeger</em>의 banjo 반주로 된 것을 듣고 역시 그의 것이 이 곡의 진정한 정신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수 많은 국제적인 가수들이 불렀고 record로 취입을 했다. 그 중에도 <em>Johnny Rivers</em>와 <em>Searchers</em> 것은 완전히 Go go style로서 옆에 있으면 춤이라도 추어야 할 듯하게 경쾌하기만 하다. 나머지 것들은 그 가수 나름대로 &#8216;해석&#8217;을 잘 한 듯해서 모두 천천히 감상을 하면 이 곡의 &#8216;진수&#8217;를 맛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의 마음에 드는 것을 뽑으라면.. 글쎄 아마도 60년대 대표적 folk, rock stars 였던, <em>Kingston Trio</em>와 <em>Johnny Rivers</em> 가 아닐까..</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 <iframe loading="lazy" src="//www.youtube.com/embed/SOxErh1AvCA?rel=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www.youtube.com/embed/xmloS6gcbc4?rel=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www.youtube.com/embed/Xsx5Z55DU78?rel=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www.youtube.com/embed/whz45F897gk?rel=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www.youtube.com/embed/zZtdIJQWQTA?rel=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www.youtube.com/embed/myTbWtS2L8M?rel=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6/03/31/feast-of-flowers/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1326</post-id>	</item>
		<item>
		<title>7 Daffodils, 봄은 어디에..</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6/02/29/7-daffodils-%eb%b4%84%ec%9d%80-%ec%96%b4%eb%94%94%ec%97%90/</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6/02/29/7-daffodils-%eb%b4%84%ec%9d%80-%ec%96%b4%eb%94%94%ec%97%90/#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Mon, 29 Feb 2016 21:33:44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60/70]]></category>
		<category><![CDATA[Oldies]]></category>
		<category><![CDATA[날씨]]></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1145</guid>

					<description><![CDATA[out backyard daffodil &#160;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봉숭아 꽃, 나팔꽃, 분꽃.. 어렸을 적에 나의 방 앞 뜰에 신나게 피어나던 꽃들을 잊고 산 지가 반세기가 훨씬 지나가며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그런 &#8216;신비의 모습&#8217;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8216;그런 것&#8217;들이 눈에 다시 보이게 되는 것일까? 기계적, 강제적으로 일년 사시사철 꽃을 보고 과일을 먹는 요상한 세상에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11147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6/02/2016-02-27-10.45.10-1.jpg" alt="out backyard daffodil" width="650" height="384" /></p>
<p style="text-align: center;">out <em>backyard</em> daffodil</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strong></span>.. 봉숭아 꽃, 나팔꽃, 분꽃.. 어렸을 적에 나의 방 앞 뜰에 신나게 피어나던 꽃들을 잊고 산 지가 반세기가 훨씬 지나가며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그런 &#8216;신비의 모습&#8217;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8216;그런 것&#8217;들이 눈에 다시 보이게 되는 것일까?</p>
<p>기계적, 강제적으로 일년 사시사철 꽃을 보고 과일을 먹는 요상한 세상에 익숙해져서 더욱 봄의 꽃들은 의미가 심장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김없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것들, 아침미사 (car) drive길에 연숙의 &#8216;꽃에 대한 자세한 논평&#8217;을 들어야 했다. 특히 2월 달에 &#8216;처음&#8217;으로 선을 보이는 꽃들은 그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나는 옆에서 안 들을 수도 없지만 과히 나쁘지 않은 자연공부를 하게 되기도 한다.</p>
<p>봄을 알리는 1번 타자가 바로 수선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수선화.. 그 이름부터 신비롭다. 수선.. 수선화.. 물에 관련되었나? 그렇다.<em> Narcissus</em>와 나르씨시즘(자기도취)의 유래도 이 꽃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 1960년대 초, <em>Brothers Four</em>의  folk hit, <em>Seven Daffodils</em> 같은 추억의 folk song도 회상이 되고.. 을씨년스러운 2월의 겨울 날씨에도 봄의 모습을 선을 보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그렇게 그렇게.. 이런 삼라만상,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겸허하게 보존하고 가꾸어야 하는가는 <em>Pope Francis</em>의 2번째 encyclical 회칙,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Laudato_si'"><em>Laudato Si</em> </a>(부제: <em>On Care For Our Common Home</em>, 자연환경보호)  를 보면 얼마나 커다란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신학적인 명제</span>가 곁들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연, 환경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이런 생각의 고리를 일깨워준 &#8216;가냘프지만, 강건하게 보이는&#8217; 수선화.. 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년에도 <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나도 너도 같은 모습으로</span> 볼 수 있게 되기를..</p>
<p>&nbsp;</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11149 size-full"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6/02/gogh-daffodils-1.png" alt="Vincent Van Gogh's rendition of daffodils" width="650" height="264" /></p>
<p style="text-align: center;"><em>Vincent Van Gogh&#8217;s</em> rendition of daffodils</p>
<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11148"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6/02/2016-02-27-10.45.38-1.jpg" alt="2016-02-27 10.45.38-1" width="650" height="384" /></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 <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f8Y4l4JKPsE?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38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strong><em>Brothers Four</em></strong> &#8211; Seven Daffodils</p>
<p style="text-align: center;"> </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6/02/29/7-daffodils-%eb%b4%84%ec%9d%80-%ec%96%b4%eb%94%94%ec%97%90/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1145</post-id>	</item>
		<item>
		<title>깡패 유감 有感</title>
		<link>https://serony.com/ken/2015/12/21/%ea%b9%a1%ed%8c%a8-%ec%9c%a0%ea%b0%90-%e6%9c%89%e6%84%9f/</link>
					<comments>https://serony.com/ken/2015/12/21/%ea%b9%a1%ed%8c%a8-%ec%9c%a0%ea%b0%90-%e6%9c%89%e6%84%9f/#respond</comments>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Mon, 21 Dec 2015 15:24:22 +0000</pubDate>
				<category><![CDATA[Daybook]]></category>
		<category><![CDATA[Memoir]]></category>
		<category><![CDATA[60/70]]></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추억]]></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serony.com/ken/?p=11166</guid>

					<description><![CDATA[깡패.. 흠.. 참 더럽고 싫은 말 중에 하나다. 귀여운 깡패도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99.99999% &#8216;증오의 대상&#8217; 중에 하나다. 이 말이 주는 &#8216;더러운&#8217; 느낌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고 요새도 있는 것으로 보아서 참 잘 만들어진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어원은 무엇일까? 깡+패.. 그러니까 &#8216;깡, 오기&#8217;를 부리는 &#8216;패, 거리&#8217; 정도 아니었을까? 소리지르고 깡만 부리면 통한다고 생각하는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left size-full wp-image-11168"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5/12/bully-1.png" alt="bully-1" width="185" height="180" /><span style="font-size: 14pt;"><strong>깡패.. 흠.. 참 더럽고 싫은</strong></span> 말 중에 하나다. 귀여운 깡패도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99.99999% &#8216;증오의 대상&#8217; 중에 하나다. 이 말이 주는 &#8216;더러운&#8217; 느낌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고 요새도 있는 것으로 보아서 참 잘 만들어진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어원은 무엇일까? 깡+패.. 그러니까 &#8216;깡, 오기&#8217;를 부리는 &#8216;패, 거리&#8217; 정도 아니었을까? 소리지르고 깡만 부리면 통한다고 생각하는 불쌍한 쓰레기들인가.. 상관없다. 싫고 증오스러운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p>
<p>나의 blog에서 &#8216;회고록 류&#8217; 그러니까 memoir 는 가장 쓰기 힘든 것이지만, 그만큼 쓰는 보람은 그에 비례해서 제일 크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회고가 즐거운 것인가, 괴로운 것인가.. 에 따라서 일어나는 감정은 참 다르다. 그러니까 즐거운 추억이나 개인 역사를 더 잊기 전에 더 쓰고 남기고 싶었고, 나의 blog에서도 대부분 아련한, 즐거운, 포근한 그런 추억들을 주로 쓰곤 했다.</p>
<p>반대로 기억하기 괴로운 것들은 어쩔 것인가? 당연히 요리조리 피하며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것인데,그 중에서 &#8216;깡패의 추억&#8217;은 가히 괴로운 것 중에 괴로운 것, 잊고 싶은 것이다. 어떤 &#8216;개인적 사건들&#8217;은 가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잊고 싶었던 것들인데 분명히 나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 버젓이 살아 있어서 그럴 것이다.</p>
<p>하지만, 하지만 나의 나이가 70에 육박하면서, 조만간 早晩間 에 나는 이것을 정리하여야 한다는 강박감은 항상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사실 불편한 것이어서 성당에서 고해성사 告解聖事하는 기분으로 깡패의 추억들을 다 &#8216;정리 해고&#8217;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것, 숨어있는 &#8216;이글거리는&#8217; 증오심도 나의 dark side의 일부가 되었다면 나는 이것을 가끔 하는 고해성사에 포함시켰어야 되었을 것이지만 그만한 값어치 조차도 나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싫었다.</p>
<p>깡패, 깡패들.. 내가 말하는 깡패는 100% 소위 말하는 &#8216;조무래기, 피래미 급&#8217;으로 이들의 특징은 철저히 &#8216;약육강식&#8217;의 쓰레기 철학으로 무장하고 자신들의 불만과 욕구를 철저히 채우려는 한마디로 &#8216;불쌍한 쓰레기&#8217;급 인간들이다. 문제는 그들의 연령층인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말하는 인간들은 모두 미성년이거나 지독히 젊었던 깡패들이어서 이것은 지금은 조금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떠한 환경이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들었을까 하는 사실이다. 그 &#8216;쓰레기&#8217;들이 과연 자기들이 하는 짓이 옳은 것인가.. 한번이라도 생각을 해 보고 한 것이었을까.. 집단심리에 의한 불우하거나 불행한 자기 환경의 산물이었을까.. 하는 것이다.</p>
<p>내가 자라던 6.25 이후의 역사적인 환경은 사실 어쩔 수 없는 깡패들을 무수히 배출하여야만 했던 암울하고 가난하고, 법 이전에 주먹이 훨씬 효과적이었던 그런 시절이긴 했다. 게다가 급수가 아주 높았던 &#8216;정치깡패&#8217;들이 판을 치던 그런 시절도 겪었다. 한마디로 &#8216;법치국가&#8217;란 것은 말 뿐이던 &#8216;폭력의 사회&#8217; 가 생활의 일부가 되었던 6.25 전쟁 후의 대한민국 실정.. 나는 그런 &#8216;남자들의 험악한&#8217; 환경에서 알맞게 적응을 못했던 것이었을까? 특히 가부장제가 굳건하였던 그 시절 아버지 없었던 집의 내성적인 남자아이가 사회적으로 겪었던 것은 남들보다 더 심각한 경험들이었다.</p>
<p>이번에 더 미루지 못하고 &#8216;깡패의 추억&#8217;을 논하게 된 마지막 계기는, 얼마 전 같은 성당구역의 교우형제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그 형제님 왈 曰.. 자기가 &#8220;깡패였다&#8221;고 서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도 주저함이나 부끄러움이 그 태도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나이 탓인지 예전에 보던 그런 &#8216;나쁜 깡패&#8217;의 인상을 풍기지도 않았다. 모두들 오래 전의 아련한 추억 정도로 무협영화를 보는 정도로 들은 듯 하였지만 나는 복잡한 생각 뿐이었고, 이렇게 &#8216;정리해고&#8217;를 더 미룰 수는 없다.. 는 생각을 굳힌 것이다. 옛날 옛적의 &#8216;나쁜 놈들&#8217; 이들을 용서할 것인가, 죽을 때까지 증오할 것인가?</p>
<p>내가 반세기도 넘는 옛날 옛적 70년대 초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느낀 것도 깡패에 관한 것이었다. 이 나라 이 땅에는 주변에 추악한 깡패들이 안 보였던 것이다!  최소한 나의 눈앞에 그 놈의 &#8216;쌍판&#8217;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하! 내가 살 곳은 바로 이곳이로구나.. 쾌재를 불렀고 그 이후에도 나의 주변에는 깡패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인가? 왜 이렇게 같은 지구 위에서 사는 곳이 다른가?  경제적인 요인이 제일 먼저 떠 오르고 다음은 사회, 문화적인 것 등이 있지만 결과는 모두 &#8216;종합판&#8217;일 것이다. 복합적인 것들..</p>
<p>미국에도 bully 정도의 &#8216;순한 깡패&#8217;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경험했던 &#8216;한국판 bully&#8217;와는 game이 안될 정도다. 욕을 하는 정도가 하늘과 땅의 차이고, 폭력의 정도도 마찬가지다. 모든 &#8216;불운과 잘못&#8217;을 남에게 전가하며 남을 괴롭혔던 대한민국 조무라기 깡패들, 한마디로 &#8216;쓰레기 중의 쓰레기&#8217;였다. 내가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정말 무서웠던 사실은 &#8216;맞아서 아프고 수치심을 느끼고&#8217; 하는 것 보다는 &#8216;꿈에라도 기관총으로 이들을 모조리..&#8217; 하는 생각이 들 때였다. 상상이지만.. 이것이 상상에서 벗어나는 것도 상상을 했기 때문이었다.</p>
<p>이런 나의 괴로운 추억들도 나이가 들면서 다 수그러지고 조금씩은 &#8216;자비&#8217;의 심정으로 그 쓰레기들을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8216;반전 scenario&#8217;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역시 &#8216;나는 절대로 그런 쓰레기가 될 수가 없다&#8217;.. 였다. 그 쓰레기들.. 환갑을 넘기고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기들의 과거를 어떻게 회상을 하며 손주들에게 이야기를 해 줄까.. 재미있는 상상도 꼬리를 문다. &#8216;할아버지가 옛날에 깡패였고, 누구누구를 매일 패 주었다&#8217; 고 자랑을 할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괴롭힘을 당한 애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심정이 들었다면 괜찮은 노후를 맞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p>
<p>꿈 속에 &#8216;기관총으로 모조리..&#8217; 라는 표현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한번 놀란다. 미국은 근래에 들어서 &#8216;깡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아이&#8217;들이 실제로 &#8216;기관총 급의 무기&#8217;로  깡패들은 물론 옆에 있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쓸어버리는 mass shooting이 다반사로 일어나는데.. 나는 100% 그 &#8216;정신병자, 피해자&#8217;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mindset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 모두 극단적인 case이지만.. 원인을 따져보면 &#8216;쓰레기급 깡패&#8217;에게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p>
<p>이제는 정말로 나의 마음 속 깊이 수십 년간 눌려있었던 나쁜 추억, 잠재의식, 분노..등을 &#8216;정리해고&#8217;할 때가 왔다. 나를 괴롭혔던 &#8216;쓰레기&#8217;들.. 용서하고 싶고 그들도 진정한 회개를 하며 노후를 맞이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을 용서하려는, 하는 나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 혼자의 힘으로 안 되면 &#8216;높은 곳&#8217;의 도움을 청하고 싶다.</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iframe loading="lazy" src="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7CHiUN8XTWs?rel=0&amp;showinfo=0" width="650" height="28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 <br />
Sam the Sham &amp; Pharaohs &#8211; <strong><em>Wooly Bully</em></strong> &#8211; 1965 </p>
<p style="text-align: center;"> </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s://serony.com/ken/2015/12/21/%ea%b9%a1%ed%8c%a8-%ec%9c%a0%ea%b0%90-%e6%9c%89%e6%84%9f/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post-id xmlns="com-wordpress:feed-additions:1">11166</post-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