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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history &#8211; Serony&#039;s Friend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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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38; place, autobio in progress..</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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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any Men Came her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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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Ken]]></dc:creator>
		<pubDate>Wed, 06 Jun 2012 19:43:4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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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160; 6월 6일, 달력이 빨갛다. 바보 같은 본당(that is,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달력이 &#8216;고국에서 주문을 받아와서&#8217;, 친애하는 고국의 국경일이 모두 빨갛게 표시되어 있다. 그러니까 올해 (최소한) 한해는 고국의 국경일을 &#8216;느끼며&#8217; 살게 되었다. 고국에 달력을 주문해서 얼마나 돈을 절약했는지는 몰라도, 참 해도 너무했다. 그곳의 국경일들을 빨갛게 &#8216;강조&#8217; 했으면, &#8216;고객이 거의 일년 열두 달 사는&#8217; 현지의 국경일,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2/06/The_Longest_Day_1962_000357399.jpg"><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4040 size-full" title="The Longest Day, 1945"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2/06/The_Longest_Day_1962_000357399.jpg" alt="The Longest Day, 1945" width="520" height="221" /></a></p>
<p>&nbsp;</p>
<p><span style="font-size: 14pt;"><strong>6월 6일, 달력이 빨갛다</strong></span>. <strong>바보 같은 본당</strong>(<em>that is</em>,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strong> 달력</strong>이 &#8216;고국에서 주문을 받아와서&#8217;, 친애하는 고국의 국경일이 모두 빨갛게 표시되어 있다. 그러니까 올해 (최소한) 한해는 고국의 국경일을 &#8216;느끼며&#8217; 살게 되었다. 고국에 달력을 주문해서 얼마나 돈을 절약했는지는 몰라도, 참 해도 너무했다. 그곳의 국경일들을 빨갛게 &#8216;강조&#8217; 했으면, &#8216;고객이 거의 일년 열두 달 사는&#8217; 현지의 국경일, 기념일도 그랬으면 누가 때리냐? 6월 6일 현충일에 동작동 국군묘지라도 참배해야 한단 말인가?</p>
<p><strong>6월 6일을 왜 이승만 대통령께서 현충일로 정했는지</strong> 유래는 확실치 않아도, 이곳에서 6월 6일은 1944년 6월 6일을 기념하는 날이고, 그날은 2차 대전시 <strong>3백만의 연합군</strong>이 프랑스의<em>Normandy</em> 해안으로 육,해,공의 &#8216;<strong>사상 최대의 작전</strong>&#8216;이 시작된 날이다. 바로 <strong>D-Day</strong>인 것이다. 그 날이 없었으면 간접적으로라도 우리의 광복절도 연기가 될 수도 있었던 그렇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인 것이다. 그것도 본당 달력에 &#8216;정확히&#8217; 빠져있었다.</p>
<p>2004년에 이미 반세기, 50주년이 지났고 이제는 사실 60주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특별히 이날을 생각하는 것은 역시 개인적인 추억과 그것과 관련된 영화, <em><strong>The Longest Day</strong></em>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1948년 생인 내가 그날을 어찌 기억하랴마는, 사실처럼 그려낸 영화의 역할이 내가 직접 그때를 겪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데 한 몫을 했다는 데도 있다.</p>
<p>여기서 말하는 영화, <em>The Longest Day</em>는 컴퓨터로 특수효과를 &#8216;조작&#8217; 한 만화 같은 요새 영화들이 아니고, &#8216;정직하고, 우직하게&#8217; 만든 1962년 미국 &#8216;흑백&#8217; 영화 &#8216;<em>The Longest Day</em>&#8216; 인 것이다. 이 &#8216;두고두고 기억에 남을&#8217; 영화를 나는 1963년도 중앙고 1학년 때, 남산 밑, 퇴계로에 있던 &#8216;개봉관&#8217; <strong>대한극장</strong>에서, 학교에서 단체로 가서 보았다.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궁금해서, 그 당시의 일간지를 찾아보았지만, 그 영화의 광고를 찾을 수가 없었다. 1962년의 영화이기 때문에 일본을 거쳐서 들어오려면 빨라도 1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고, 고1때 본 기억이 분명해서, 1963년일 것인데.. 왜 그 영화의 광고는 신문에 없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p>
<p>&nbsp;</p>
<p style="text-align: center;"> <iframe src="https://www.youtube.com/embed/hpaTwpWt8BQ?rel=0" width="650" height="28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allowfullscreen"></iframe></p>
<p style="text-align: center;"><em><strong>The Longest Day</strong></em>, the theme song &#8211; <strong><em>Paul Anka</em></strong> &#8211; 1962</p>
<p style="text-align: center;"> </p>
<p>그 당시에 이 영화의 &#8216;역사적 의미&#8217;를 다 알지는 못했지만, 그저 &#8216;우리의 <strong>멋진 친구인 미국이 주도한&#8217; 연합군이 &#8216;나쁜 놈들, 나치 독일&#8217;을 패배</strong>시키는 기분 좋은 스토리라는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당시에 우리들은&#8217;그 영화를 <strong>참 재미없게 보았다</strong>는 사실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영화는 재미있게 만들어진 얘기 같은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직하게 &#8216;역사적 사실&#8217;을 그대로 기록영화처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있는 climax같은 것도 그 영화에는 없었고,특히 끝나는 장면은 덜 인상적이었다.</p>
<p>하지만, 그것을 보완이라도 해 주듯이, 엄청나게 많은 당대의 최고 배우들이 동원되었고, <strong>Paul Anka</strong>의 영화 주제곡은 영화의 심각성을 잘 나타낼 수 있어서, 조금은 덜 지루할 수 있었다. 이 주제곡은 다른 영화 &#8216;콰이강의 다리&#8217; 와 같은 정도로 우리들이 두고두고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기에 좋았다. 특히 기억에, 우리 반에 &#8216;<strong>조광순</strong>&#8216;이라는 친구, 원래 노래를 잘 부르는데, 이 영화를 보고 학교로 돌아와서부터 복도건 교실이건 가리지 않고 따라 부르곤 했다.</p>
<p>다른 기억으로는, 우리 학교에서 단체로 대한극장에 들어갔을 때, 이미 전회의 상영이 끝나고 있었는데 보니까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또래의 여학생들이었다. 과연 그 &#8216;여학생&#8217;들이 이 영화를 &#8216;졸지 않고&#8217; 보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또한, 다른 생각에 이 영화는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크기 돈을 못 벌었을 것이라는 사실.. 그것이 아마도 신문광고를 찾기가 힘들었던 이유가 아닐까..</p>
<p>&nbsp;</p>
<p>이 영화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면,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이 있다. 그것 중에는:</p>
<ol>
<li><em><strong>The Longest Day</strong></em>는 1959년 저자 <strong>Cornelius Ryan</strong>이 저술한 1944년 6월 6일 &#8216;하루 동안&#8217; 일어난 연합군의 Normandy 상륙작전에 관한 역사책의 제목이다. 그러니까 non-fiction, fiction도 아닌 <em>history</em>book인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적 사실과 아주 가까운 실화들인데, 이것이 영화화 되면서 판권이 당시의 금액 $175,000 (십칠만 오천 불)에 달했다.</li>
<li>영화에 사용된 언어들은 모두 각국의 언어를 쓰고 있고, 모두 영어로 자막을 넣었다. 하지만 배우들이 모두 영어를 쓰는 다른 것도 동시에 찍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영화의 두 가지 version이 존재하는 셈이다.</li>
<li>당시의 인기인 중에 주제곡을 부른 <strong>Paul Anka</strong>는 예상 외로 그는 멋지게 army ranger역할을 해 냈다.
<p>&nbsp;</p>
<p><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2/06/The_Longest_Day_1962_000030196.jpg"><img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4053 size-full" title="Paul Anka &amp; Robert Wager in the Longest Day"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2/06/The_Longest_Day_1962_000030196.jpg" alt="Paul Anka &amp; Robert Wager in the Longest Day" width="480" height="272" /></a></p>
<p style="text-align: center;">Paul Anka</p>
</li>
<li>실제 인물인 <strong>Benjamin Vanderboort</strong> (중령, 82nd Airborne, 공정단)로 연기를 한 당대의 인기배우 <strong>John Wayne</strong>, 원래 이 역할은 <strong>Charlton Heston</strong>이 원하던 역이었지만 John Wayne에게 넘겨진 것이다. 대부분의 주역 배우들이 25,000불의 연기료를 받았지만 John Wayne만은 그것의 열 배인 250,000불을 요구하고 받았다고 한다.
<p><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2/06/The_Longest_Day_1962_002377419.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4055 size-full" title="John Wayne as Lt. Col. Vanderboort"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2/06/The_Longest_Day_1962_002377419.jpg" alt="John Wayne as Lt. Col. Vanderboort" width="480" height="272" /></a></p>
<p style="text-align: center;">밴더브루트 중령 역의 존 웨인, 공수부대장</p>
</li>
<li> 82nd 낙하산 공정대가 투하되었던 프랑스의 마을 (Sainte-Mere-Eglise)의 교회당 꼭대기로 &#8216;잘 못&#8217; 투하되었던 사병(Red Button의 역할)을 기념하는 실제 인형이 아직도 그곳에 걸려있다고 한다.</li>
<li> 연합군 최고사령관 (Allied Supreme Commander) 였던 <strong>General Eisenhower</strong>의 역할은 처음에 실제 인물인 미국 전 대통령의 역임했던 President Eisenhower를 고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그는 D-Day로부터 거의 20년이나 지나서 비교적 젊었던 그 당시의 역을 맡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연기 경력이 전혀 없었지만 그와 비슷하게 생겼던 decorator Henry Grace를 기용했다. 그의 연기를 영화에서 보면 꽤 성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p><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2/06/The_Longest_Day_1962_002092592.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4057 size-full" title="연기경력 제로의 아이젠하워 역의 Henry Grace"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2/06/The_Longest_Day_1962_002092592.jpg" alt="연기경력 제로의 아이젠하워 역의 Henry Grace" width="480" height="272" /></a></p>
<p style="text-align: center;">연기경력 제로의 아이젠하워 역의 Henry Grace</p>
</li>
<li>공포영화, <strong>드라큘라</strong>(Count <em>Dracula</em>)로 잘 알려진 경력 영국배우였던 <strong>Christopher Lee</strong>는 영국군으로 등장을 하려 연기심사를 받았지만, &#8216;군인처럼 생기지 않았다&#8217;고 낙방을 했다고 한다. 사실 그는 2차대전시 영국 공군 정보장교로 복무를 했다고 한다.</li>
<li> 영국 사병 Private <em>Flanagan</em>으로 등장을 하는 <strong>Sean Connery</strong>(숀 코네리), 특별한 연기는 아니었지만, 이 영화가 그에게는 <strong>007 James Bond</strong>로 가는 마지막 출연이 되었고, 그 이후 그는 100% James Bond가 되어 버렸다.
<p><a href="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2/06/The_Longest_Day_1962_004079913.jpg"><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class="aligncenter wp-image-4059 size-full" title="영국측 군인 Sean Connery 숀 코네리" src="http://serony.com/ken/wp-content/uploads/2012/06/The_Longest_Day_1962_004079913.jpg" alt="영국측 군인 Sean Connery 숀 코네리" width="480" height="272" /></a></p>
<p style="text-align: center;">영국측 군인 Sean Connery 숀 코네리</p>
</li>
<li>Normandy의 상륙 해변 중의 하나인 <strong>Omaha Beach</strong> 상륙을 촬영할 때, 미군들 역할을 하던 extra(엑스트라)들이 시퍼런 물에 질려서 물 속으로 뛰어들지를 않았고, 이에 질려버린 <strong>Robert Mitchum</strong> (로버트 밋첨, Army General <strong>Norman Cota</strong>역)이 먼저 뛰어들고, 엑스트라들이 서서히 뛰어들었다고 한다.</li>
<li>총 제작비, $10,000,000(<strong>천만 불</strong>)은 1993년 이전(<strong>Steven Spielberg</strong>의 <em>Shindler&#8217;s List</em>가 나올 때까지)의 흑백 영화로써는 제일 비싼 제작비였다. 그 동안의 inflation을 감안한다면 천만 불은 그 당시로써는 큰 돈이었다.</li>
<li>낙하산 특공대, paratrooper들이 낙하하던 때 숲과 습지에서 요란히 들리던 개구리 소리는 사실 프랑스에는 없는 개구리의 소리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미 녹음이 된 &#8216;미국 개구리&#8217; 소리였던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사실 쪼잔한 것 들이지만 나중에 이렇게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li>
<li>미국 해군당국이 이 영화를 만드는데 전함과 상륙정 등으로 지원을 해 주었지만, 그 당시 &#8216;빌려준&#8217; 함정들은 이미 1960년 이후의 것으로 1944년 당시의 함정들에 비하면 훨씬 현대적인 함정들이고, 자세히 관찰을 하면 쉽게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li>
</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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