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May 2012

¶  오월이여 안녕!   한 달이 온통 ‘가정, 가족, 졸업식, 어린이, 어머니, 성모님‘ 같은 정말 듣기만 해도 포근한 것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어머님께서 9년 전에 선종하셨던 달이기도 해서 가족과 삶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던 그런 한 달이기도 했다.

비록 거의 기정사실화 된 기후변동(a.k.a global warming)으로 예전의 6월 같은 날씨들이었지만,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 요새는 ‘날씨’에 둔감해 지려고 거의 ‘일부러’ 날씨에 관한 작은 뉴스는 피하고 있고, 그것이 ‘확실히’ 심리적으로 나를 편안하게 함을 느낀다. 더우면 어떻게 추우면 어떠랴.. 참거나, 잊고 살면 되는 것을.. 또한 작년에 비하면 날씨에 관한 big news는 ‘거의’ 없을 정도로 조용하긴 했다. 작년의 그 ‘monster‘ tornado등을 아직도 기억하기에 더욱 그렇다.

 

¶   Robin Gibb  5월 20일에, 오래 전 60/70시절 우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Bee Gees [BGs: Brothers of Gibbs] 형제의 중간인, Robin Gibb이 암 투병 중 합병증으로 결국은 62세란 요새 기준으로 보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을 한 것이다. 그 그룹의 세 형제 말고도 아주 오래 전에 네 번째, ‘막내 동생’ Andy는 이미 (여자문제로)사망을 했고, 2000년대 초에는 세 번째 Maurice도 병으로 사망.. 이제 맏형 Barry만 남은 것이다.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심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과 같은 ‘예술인’들은 영원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것들이 있어서 부럽기도 하다. 나에게 그들이 남긴 것 중에는 60년대의 것이 ‘진짜’의 걸작이라고 생각하고, 70년대의 ‘disco 외도’는 잊고 싶은 것들 뿐이다. 최근 몇 주간 지저분한 소식들 투성이였던 모든 news (Internet, TV etc)를 피하며 지내는 바람이 그가 운명한 소식을 이제야 알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또한 우리 세대의 인물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가고 있음을 어찌 모르랴.

 

 
Run To MeBee Gees – 1972

 

1984 model Kenmore washer¶  공돌이의 오기惡氣  얼마 전에 우리 집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세탁기(electric washer)가 말썽을 부렸다. 빨래를 할 때마다 ‘지독히도’ 요동을 치면서 그동안 아주 조금씩 새던 물이 이제는 ‘콸콸’ 샌 것이다. 공구들을 손에서 놓고 산 것이 꽤 오래 되어서 (거의 1년) 사실 이런 ‘사고’는 너무나 귀찮게 느껴졌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지 뿐이다. (1) 나보다 ‘더 바보 같은’ handyman을 불러서 고치게 하던가, (2)고칠 수 없으면 새것을 사던가, 아니면 (3) 내가 팔을 걷어 붙이던가. 1번 선택은 나에게는 거의 절대로 no no인 것이다. 대부분이 ‘엉터리, 사기꾼’ 같은 놈들 뿐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잘 모르는 바보들 뿐이기 때문이다. 2번의 선택도 가급적 끝까지 피하고 싶은 것이다. 돈을 쓰는 것 이외에, 멀쩡할 수도 있는 세탁기를 분명히 내다 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에게 choice는 역시 내가 팔을 걷고 muscle과 brain을 써야 하는 수 밖에 없다.

Washer power-train still in good orders우리의 washer는 1984년에 Columbus, Ohio에서 학생시절에 Sears에서 산 Kenmore classic model인데, 한마디로 완전한 ‘탱크’와 같이 우직하게도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절대로 고장이 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런 모양이고, 사실 거의 30년 가깝게 딱 한번 timer/controller 만 교체를 한 것으로 나머지 기계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이제 정까지 들게 된 우리 집의 ‘값싼 가보’가 된 존재인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나는 비장한 각오로 이것을 살려 보기로 하고 ‘공돌이의 오기’로 분해를 해서 살펴 보았다. 결과적으로 나의 추측이 맞았다. 크게 ‘망가진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나사 같은 것이 모조리 풀어져서 물이 샌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Washing cycle중에서 가끔 balance가 맞지 않으면 격하게 요동을 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아주 오랜 세월을 보냈으니, 그 fastener들이 모조리 풀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30년에 가까운 이 세탁기는 안락사 직전에 다시 한번 생명을 연장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딱 한가지다. 이것이 심하게 vibration을 못하게 ‘꼭 잡아주는’ 장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 되면 앞으로 최소한 몇 년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참, Sears Kenmore people들, 어쩌면 그 당시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이것이야말로 Made in U.S.A의 표본이다.

 

¶   Vice Presidency  미국의 부통령 직, 어떤 자리일까? 이것의 정의와 의미를 따지자면 책 몇 권 가지고도 부족할 것이다. 그만큼 독특한 위치이기 때문일까? 역사적으로도 그것이 증명이 된다.

Robert Caro

Robert Caro

얼마 전에 Time 잡지에 Robert Caro라는 LBJ(Lyndon B Johnson) biographer(전기작가)의 말이 등장했다. 그는 일생을 1960년대 미국 정계를 주름잡았던 부통령, 대통령 Lyndon B. Johnson의 연구로 보낸 인물이다.  ‘사고’1로 부통령에서 대통령이 되고, 다시 한번 선거로 한번 대통령을 하고 스스로 물러나 난 전설적인 Johnson 대통령, 비록 월남전에서 고전했지만, 국내 정치는 빛나는 업적이 수도 없이 많은 인물이다.

1965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그를 기억한다. 수많은 ‘오해’를 받았지만 묵묵하게 하나하나 성과에 성과를 쌓고 조용히 물러난 것, 참 멋지다. 그 인간상을 연구했던 Robert Caro의 한마디가 참 인상적이다. 지난번 선거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John McCain이 그의 running mate로 완전한 ‘들러리 간판’격이었던 Sarah Palin이란 ‘바보 같은 여자’를 선택한 것에 대한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 역사상 가장 무책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나도 절대로 동감이다. 그런데 더욱 웃기는 것은 McCain자신은 ‘아직도’ 그 선택이 자기 일생에서 가장 ‘멋지고, 신중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의 radar에서 McCain이란 인물은 완전히 사라졌다.

  1. 1962년 달라스에서의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
Kitchen Table Wisdom in Korean

책,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

Reading by Typing으로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 라는 긴 제목의 한국 예수회 류해욱 신부님 번역서를 5일만에 ‘무사히’ 다 읽게 되었다. 제일 확실하게 끝까지 책 하나를 정독하는 방법 중에 이렇게 typing을 해서 읽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몇 년 전에 알아내고 그 이후로 꼭 읽어야 할 것이 있으면 이런 방식으로 한다. 머릿속에 남는 것 외에 부수입으로 ‘거의 완전한’ digital softcopy가 하나 생기는 매력 있는 방법이다.

이 책도 요새 읽는 다른 좋은 책들과 마찬가지로 ‘우연히 화장실’에서 발견한 책이고, 우리가 속한 레지오 마리애의 꾸리아1 에서 구입한 책 중의 하나였고 연숙이 잠시 빌려온 것이다.

이 책이 나의 눈을 끈 것은 번역자가 류해욱 예수회 신부라는 사실과, 책의 내용이 의학적 과학과 영성적 신앙을 접목시키려는 저자, 레이첼 나오미 레멘의 ‘영웅적’인 노력과 그에 따른 무시 못할 임상, 상담적 성과가 아주 읽기 좋은 분량으로 쓰여진 사실에 있었다.

Kitchen Table Wisdom, Book

Kitchen Table Wisdom

이 책은 미국에서 1997년에 처음 출판된 New York Times의 bestseller였고, 2006년에는 10th Anniversary Edition(10주년 기념 판)이 나올 정도로 오랫동안 ‘생각하며 사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슴이 따뜻해 지는’ 그런 책이다. 원제목은 Kitchen Table Wisdom으로 되어있다.

제목이 풍기는 것은 ‘가까운 가족, 친지들 사이에서 얘기되는 지혜들’ 인데,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적, 과학적, 전문직에서 종사하는 저자도 그들 동료들로부터 예상되는 의심스러운 색안경 속의 눈초리를 의식 안 했을 리가 없어서 이렇게 조금은 ‘푸근하고, 덜 심각하게 느껴지는’ 제목을 택하지 않았을까?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유대인들, 그의 혈통을 지닌 저자는 비록 그의 부모는 거의 무신론자에 가깝다고 했지만, 어찌 ‘피를 속이랴’. 그를 보완이라도 하듯 그녀의 할아버지가 도맡아서 그녀 어린 시절 착실하게 ‘영성적인 세계’의 맛을 그녀에게 보여 주신 것이 아마도 현재의 그녀를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을 해 본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의학, 과학’ 위에 있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안 보이는 것’을 보이는 현실세계로 끌어 들이려 했을 것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나도 그런 것을 과학자로서 이단이라고 매도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고, 저자의 의도와 행동을 100% 이해하고 찬성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번역한 (요새는 옮긴다는 말을 더 많이 쓰는 듯), 류해욱 예수회 신부님은 이름도 얼굴도 낯 익은 ‘문학청년처럼 보이는’ 사제이다. 그는 내가 속한 이곳의 한국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한국교구 파견 사제로 2000년 대에 사목을 했었고, 올 봄에 잠깐 이곳을 다녀 가셨다. 그 당시 나는 그곳 성당을 다니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많이 그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시, 글, 그림 같은 것을 프로처럼 한다는 것을 그때 전해 들었다. 그래서 ‘글’ 과는 가까운 사제라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 배경을 알고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보며, 한마디로 이 책은 ‘두 박자’가 완전히 맞아 떨어진 ‘걸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원저자의 ‘솔직한 고백’같은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 이외에, 영어를 한국어로 옮긴 류신부님의 ‘옮긴 솜씨와 기술’은 근래 보기 드문 ‘걸작’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느낌의 번역은 참 보기 힘든 것이었다. 문제는 의역과 직역의 balance를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소화를 시키셨을까 하는 것인데, 아마도 류신부는 그런 쪽에 talent를 갖고 계신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저자는 주로 암 같은 ‘불치병’을 가진 사람들이 겪게 되는 삶에 대한 새로운 생각, 느낌들을 참 정성스럽게, 성실하게, ‘비과학적’으로 잘도 그려냈다. 내가 그런 환자라고 생각하면 그녀의 불치병으로의 접근 방식을 99.9% 찬성을 안 할 수가 없다. 인간은 한마디로 ‘느린 컴퓨터’가 아닌 그 이상, 과학이나 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삶과 죽음에는 무언가 찾을 수 있는 ‘의미’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는 것이 주제이다.

나의 주변에 알고 있는 ‘암 환자’ 들을 보면서, 이런 용감한 ‘과학자, 의사’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심정이 든다. 거의 완전히 컴퓨터에 의지하려는 (인간보다 덜 실수를 해서 그런가?) 요새의 최첨단 의술을 신봉하는 의료인들, 그들도 사실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갈등을 하고 있을 지 모르겠고, 그들도 조금은 ‘인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제넘은 생각도 들었다.

책을 다 읽고, 이 책을 추천하며 머리글을 쓴 ‘장영희’란 서강대 교수, 사람이 궁금해 져서 연숙에게 물어보았다가, 그 분이 역시 머리글에 있듯이 ‘척추암’으로 타계를 한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너무나 모르고 살았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장교수가 우리가 오래 전, 학교 다닐 당시 책 등으로 잘 알려진 서울대 장왕록 교수, 그분의 따님이었다는 사실도 뒤 늦게 알게 되었다. 아버지, 딸 모두 영문학자가 된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또한 이제 두 분다 이세상 사람이 아님에 숙연해 지는 마음, 한참 동안 떨칠 수가 없었다.

 

 
Dr. Rachel Naomi Remen – The Awe & Power of the Life 

 

  1. Curia, 레지오 마리애의 군대식 조직에서 제일 낮은 등급인 쁘레시디움(소대 격)을 관할하는 상급 평의회 (중대 급)
Banner in the Sky

50년만에 다시 보는 책

어렸을 적에 읽었던 책들 중에 학교나 입시공부와 관련이 거의 없이, 그저 교양, 호기심에 의지해서 접했던 것들.. 사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그런 ‘보물’들이 더 기억이 나고, 꿈에서라도 그 ‘실물’을 다시 만져보고 싶을 때도 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것들도 ‘골동품’ 류의 가치에 포함될 듯 싶고, 왜 그렇게 ‘오래 된’ 것들이 비쌀 수 있었을까 하던 의문들이 조금씩 풀린다. 내가 말하는 개인 적인 골동품은 사실 불과 50년도 채 안 되는 것들인데도 나에게는 수백 년도 넘게 느껴지기도 하니 분명히 그런 것들은 개인적인 골동품, 고서, 유물에 속한다.

그런 ‘유물’들 중에, 1964년 경, 그러니까 나의 중앙고교 2학년 시절.. 50년 가까이 되던 오랜 옛날에 읽었던 책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내가 서울 용산구 남영동 금성극장 앞쪽, 미8군 ‘연병장’옆 있던, 남산이 가까이 바로 앞에 보이던 2층집에서 살 때였다. 가회동 시절 삼청동 뒷산, 말바위, 북악산, 중앙중학교 뒤의 계산 등에서 놀았던 것과, 친구들과 남산을 오른 것 등이 그때까지 나의 등산경력의 전부였던 때, 이 ‘멋지고, 영웅 적인 산’ 에 관한 책, Banner in the Sky를 읽게 된 것이다. 당시 번역본 제목은 ‘알프스의 붉은 깃발‘ 이었을 것인데, 나는 그 오랜 동안 ‘알프스의 푸른 깃발’로 ‘잘 못’ 기억하고 살았다.

Mt. Matterhorn, Switzerland

스위스 시타델, 매터호른 산

이 책의 저자는 James Ramsey Ullman(1907~1971)이라는 미국, 뉴욕의 언론인 출신, 등산애호가였던 사람이다. 주로 산에 관한 소설 책을 많이 썼는데, 그 중에 이 책은 1955년에 출판 된 것이다. 1963년에 그는 미국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정대의 official historian (공식적인 기록자)으로 참가했지만 건강상 이유로 산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 책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은 물론 ‘가공’이지만 실제적 역사적인 사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시대적으로 19세기 중반, 스위스 알프스 중의 삼각형 모양의 Matterhorn 산이 이 책의 Citadel (시타델) 산이고, 그 것을 처음 등반한 인물인 영국사람도 이 책에 등장하는 Captain Winter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거의 50년이 지난 뒤에 과연 어떤 기억이 살아 남았을까? 10대의 소년이 아버지의 ‘원한을 풀려고’ 유럽에서 가장 어려운 산 시타델(Citadel)을 정복하는데 ‘일조’를 한다는 이야기.. 그가 살던 마을에서 제일 유능했던 mountain guide였던 그의 아버지는 ‘손님’ 인 등반자와 그 처녀 봉을 시도했으나 사고로 조난을 당하고 자기가 입었던 빨간 셔츠를 벗어서 손님 등반자를 보호하며 죽었고, 그것은 거의 전설처럼 남았고 그때 태어난 주인공 루디가 커서 아버지의 못 다한 소원을 채워준다는, 조금은 ‘고전적’인 이야기였다.  물론 자세히 읽어보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plot들이 많이 있다.

그 당시 한글 번역판으로 나온 것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고, 산의 신비로움에 대한 나의 생각이 조금씩 자리잡게도 되었다. 당시 나의 공부를 돌봐주며 우리 집에서 잠시 같이 살았던 아르바이트 대학생 용기 형도 그 책을 재미있게 읽게 되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용기 형과 나의 친구 안명성이 같이서 그 해 추운 겨울날, 난생 처음으로 북한산, 백운대로 등산을 가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등산 역사의 시작이 될 줄은 몇 년 후까지도 실감을 못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시작되어 미국에 오기 전까지 거의 10년 간 나의 ‘뜨거운 등산 경험들’은 사실 그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Disney movie, Third man on the Mountain

디즈니 영화, ‘산의 제 3의 사나이’

그리고 그 책을 완전히 잊고 살다가, 1980~1990년대에(아마도 1980년대 말) 아주 ‘우연히’ TV에서 Disney movie를 보게 되었는데, 등산에 관한 영화였다. 사실 미국에 살면서 거의 ‘등산’이란 것을 잊으며 살았고, 또한 등산에 관한 영화도 드문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무언가 어디에선가 본 듯한 story였고, 곧 바로 이 책을 기억해 내었다. 바로 그 책의 내용과 비슷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책의 영어제목을 모른 다는 사실이라 더 이상 그 책을 ‘구입’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물론 B.I. (Before Internet) 시절이라 Googling같은 것은 상상도 못할 때여서 곧바로 포기를 했던 것이다. 그 Disney movie도 두 편으로 나누어 방영을 했는데 후편은 볼 수가 없어서 아쉽기만 했다. 그리고 또 잊었다.

몇 개월 전에, 또.. 우연히 그 책이 나에게 다가왔다. 운명인가.. 큰 딸 새로니가 이번 여름에 ‘아르바이트’로 ‘책 읽기’ 강사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책이 교재로 선택되어서 집에 가지고 왔는데, 그 때 처음으로 영어 ‘원서’를 실제로 보게 된 것이다. Paperback의 작은 책이었고, 생각보다 조금은 ‘볼품이’ 없었다. 이제 원래의 책이 있고 제목도 있으니, 다음은 Googling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게 되었다. 우선 그 책의 story로 만든 Disney영화를 찾았다. 제목은 Third man on the Mountain이었다. 다행히 DVD로 나온 것이 있어서 곧 바로 구입을 해서 오랜 전에 TV에서 ‘전 편’ 만 보았던 것의 전체를 보게 되었다. Paperback으로 된 책은 비교적 분량이 적은 것이라 며칠 만에 읽어보게 되었다. 모든 story들이 살아났는데, 내가  어렴풋이 기억한 것들이 거의 모두 맞았다. 나의 기억력은 크게 나빠진 것이 아니었다. 특히 bad guy character로 나오는 mountain guide의 이름, 쌕소(Saxo)를 나는 기억을 해 냈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nostalgic mystery가 풀리게 되었다. 참.. 오래 살고 볼 것이다.

Atlanta Night of Virgin Mary

아틀란타, 성모의 밤

우리의 또 하나의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지난 5월 24일 저녁에 연례 성모의 밤 행사 (May Rosary Procession and May Crowning) 가 있었고, 나도 ‘난생’ 처음으로 참석을 해 보았다. 대강 무엇인지 짐작은 했으나, 결과적으로 참 느낌이 좋았던, 기대보다 알찬 행사였다.

비록 본당의 전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지만 성모님이 행사의 중심에 있어서 역시 성모 마리아를 ‘총사령관’으로 모시는 레지오 마리애가 주관을 했고, 올해는 연숙이 레지오 꾸리아의 간부인 부단장의 위치에 있어서 더더욱 적극적으로 참석을 한 셈이 되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나도 꾸리아의 정회원 (지단, 쁘레시디움의 회계)이 되어서 조금은 참가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성모님께 전구(intercession)기도를 바치는 묵주기도로 나는 사실 ‘상전벽해’ 같은 개인적인 변화를 느꼈고, 이제는 뒤로 한발자국도 물러설 수 있는 ‘사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성모님의 존재와 의미를 믿게 된 것이다. 성모신심을 ‘거의 장난 삼아’ 놀리는 인간들을 보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바보같이 느껴지고,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만, 그런 구차스러움 보다 한마디만 한다면, ‘Never Say Never’ 라는 것 뿐이다.

이런 행사들은 그렇게 ‘절차’가 복잡하지는 않지만 조그만 실수는 곧바로 ‘신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많기에 치밀하게 계획을 하는 것을 이번에 옆에서 보게 되었다. 성당 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행사들, 모두 그런 과정을 거칠 것이고 그것을 위해 수 많은 ‘봉사자’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땀을 흘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도 나에게는 신선한 놀라움이었고, 그들을 다시 보게도 되었다. 한마디로 하면, ‘말 많은 몇 사람들 보다 묵묵히 신앙심 하나로 거북이처럼 움직이는 일꾼 봉사자들’ 을 보게 된 것이고 나도 그렇게 묵묵히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성모님께 ‘바치는’ 수 많은 뜨거운 촛불과 장미꽃들의 행렬,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수 많이 모여있는 촛불 옆에서 더운 날씨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한복을 곱게 입고 봉사하던 자매님들,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을까, 그것이 성모님을 연상시킨다면 지나친 비약이었을까. 사회를 경건하고도 활발하게 잘 이끌어 준 자매님과 Ave Maria를 ‘기가 막히게’ 잘 불러 준 자매님과 젊은 냄새가 풀풀나는 성가를 선사해준 청년 성가대원들, 끝까지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행사에 참여한 형제,자매님들, 모두 멋들어진 교향악단원 들이었다.

하지만, 굳이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신부님께서 조금 더 그 특유의 ‘학구적인 접근’으로 성모의 밤을 해석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분의 성모신심을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조금 아쉬운 감은 감출 수가 없다. 또한, 본당 사무실이 조그만 신경을 더 쓴다면 이럴 때 에어컨을 ‘빵빵’ 틀어주어서 수 많은 촛불과 사제복 속에서 땀을 흘리시는 신부님과, 성장을 한 한복의 자매님들을 편안하게 해 주었으면 아쉬움도 있었다.

 

Marian Hill at Korean Martyrs Catholic Church in Atlanta아틀란타 성모신심의 결정체, 순교자 성당의 아름다운 ‘성모동산

 

 
Shubert’s Ave Maria – Andrea Bocelli 

yet another stupid presy

바보들의 행진, 미 대통령

Stupid, stupid Bush 되 뇌이며 고개를 절래 절대 흔들며, 거의 ‘무조건 적인 신앙심’을 가지고 오바마의 이름을 외치던 때가 거의 4년이 흘러간다. 그 후, 그 동안 남았던 그 ‘신앙심’은 어떻게 되었나? 그는 그렇게 He is notBush.. 하나로 수 많은 피곤했던 사람의 기대를 받으며, 혜성같이 등장했던, ‘전통적인 흑인’ 같지 않은 흑인 대통령이었다.

완전 ‘잡종’이라고 할까, 그만이 새로 ‘개척한 새 종자’ 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 이것도 요새 유행하는 A New Normal 중의 하나일지 모르지만. 역시 미국만이 할 수 있던 쾌거인지, 아닌지 라고나 할까.. 하지만, 짧았던 4년이 지나가며 그가 남겼고, 남기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2000년 선거(대선)때 거의 50/50로 정확히 갈라졌던, 거의 150년 전의 남북전쟁 직전을 연상시켰던 미국의 정치여론, 그렇게 잡음 없는 여유를 자랑하던 선거 체제가 정확히 갈라지면서 삐거덕 거리고, 후진국 선거 시스템을 연상시킬 정도로 추악하게 변했다.

그 이후 비록 2001년의 최악의 테러 사태를 겪었다고는 하지만, 책임질 만한 지도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자기의 자리를 지키려는 소인배 적인 정치인들과 증오로 똘똘 뭉친 극우파들이 완전히 워싱턴을 점령하고, 그것이 10년 이상 지속되고 있을 즈음 오바마 란 미지의 흑인이 무거운 짐을 지고 희망의 워싱턴 입성을 했다.

그는 엄청난 경제적 파탄으로 치닫는 미국 건국이래 최악의 상황에서 무거운 임무를 시작해야 했다. 그는 과연 비장의 무기와 그것을 적절히 쓸 수 있는 경험과 ‘신앙심’이 있었을까? 그저 nice guy 의 인상을 유지하려는 노력에 급급했고, 그것으로 무슨 후세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거의 ‘깡패’와 같이 그를 ‘무조건’ 방해하던 정치세력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약했다’.

비록 시험기간은 짧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지금 필요한 인물, 그러니까 50/50으로 갈라진 미국 유권자들을 다시 뭉치는 인물로서 역부족인 듯 싶다. 직장을 가졌던 중산층들이 길거리로 내 몰릴 정도의 경제 위기에서 그는 먼저 의료개혁을 밀어 붙였는데, 과연 그것이 그 정도로 급박했을까? 그것은 여론을 더욱 분열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을 뿐이고, 심지어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까지 되었다.

역부족이었던 의회 다루기에서 그는 ‘쉽게’ 그저 ‘말 잘하는 재능을 가지고’, 직접 유권자들에게 호소했지만, 그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1960년대 말의 LBJ (Lyndon B. Johnson)대통령의 탁월한 ‘의회 다루기’ 능력을 그리워 하게 되었다. 그가 통과시킨 ‘실질적, 상징적’ 법안은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상태는 그것이 아니고, 바로 이것이다. 소신껏 일을 못하게 되면 다시 출마하지 않겠다고 ‘호언’을 하던 그는 슬그머니 자기가 시작한 일들을 끝내겠다고 하며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완전한 ‘정치역학’을 배운 듯이 행동하며, 거의 모든 노력을 ‘표밭이 많은 곳’으로 집중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진짜 모습’이 조금씩 노출되고 있는데, 내가 제일 놀란 것이 정부통령 두분 모두 ‘변태’적인 결혼관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나는 오바마 는 ‘절대로’ Christian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고, 그의 morality는 정말 오리무중 속에 있다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항상 엉뚱한 언행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Biden(부통령)은 어떠했던가? 그는 전통적인 가톨릭 정치인인데 어떻게 법적인 동성결합(결혼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을 ‘절대적’으로 찬성한다고 언명을 했을까? 그러면서 ‘관의 뚜껑을 완전히 닫는’ 행동이 오바마의 법적인 동성결합 지지 성명… 게임은 이제 완전히 끝난 것이다.

이 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미국 분열’의 시작을 자초한 ‘엄청난 고백, 발언’ 이다. 더 이상 분열을 막아야 할 ‘대통령’이, 왜 지금 그런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해석은 구구하지만, 그는 분명히 세속적인 의미에서 ‘바보’는 아니다. Harvard 졸업생은 우선 ‘바보’는 아닐 것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정치적인 쪽으로 보면, 그는 ‘무조건 평등 교육’으로 ‘세뇌’된 젊은 유권자를 노렸을 것이다.

그는 지난번 대선 당시 그들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함을 어찌 그가 모르랴? 그것 이외에 나는 이것으로 그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된 듯싶다. 그는 정말 ‘과거의 변태가 현재에는 정상’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이것이 사실 나를 제일 놀라게 하는 것이고, 그 동안 설마 하던 사람들 이제 조금씩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변태’들을 ‘동정’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것을 ‘정상’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어떨까? 이것도 new normal이란 말인가?

Arctic Freeze, 이미 다가온 여름 같은 무더위에 이런 말은 듣기만해도 시원하고 만약에 이것이 무슨 상품이라면 사고 싶어질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 되었다. 이것, Arctic Freeze란 것은 자동차 에어컨 에 쓰이는 refrigerant(냉매?) Freon gas recharge kit의 상표이름인 것이다. 이 Freon gas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 조금씩 새어 나와서 압력이 떨어지고, 따라서 에어컨의 냉각기능이 서서히 떨어지며, 나중에는 시원한 바람대신 더운 바람이 나오게 된다.

얼마 전에 큰딸 새로니가 쓰던 1996 Honda Accord Ex 에 그런 문제가 생겼다. 이 차는 1996년에 우리가족의 차로 산 차로서 70,000 마일까지는 우리가 썼고 그 후에는 새로니의 차가 되었는데 현재는 대강 140,000 마일까지 되었다. 하지만 이 당시의 Accord model은 워낙 잘 만들어서 엔진은 아직도 ‘거의’ 새 차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에어컨의 Freon gas가 서서히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옛날 차 같았으면 이와 같이 에어컨의 문제가 생기기 훨씬 전에 엔진 주변 (power train) 장치에 문제가 생겼었을 것이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이런 에어컨의 문제가 계속 신경이 쓰여서 조금 googling을 해보니 의외로 고치는 방법이 간단해 보였다. 완전한 DIY (do-it-yourself) kit 가 많이 나와 있었고 그 중에 Arctic Freeze란 것이 제일 비싼 것($37)이었다. 전에는 사실 차의 에어컨에 문제가 생기면 거의 compressor같은 mechanical한 것들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짐작을 하고 몇 백불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부분은 이 Freon gas가 부족해서 생긴 것을 알게 되었고, 만약 이런 문제로 수리를 맡기게 될 때, 재수 없으면 ‘바가지’를 쓸 확률이 높은 그런 것이다.

이렇게 Freon gas를 간단히 재 충전하는 것도 대부분 $100이상을 받는다고 하니까, 집에서 자기가 이런 kit를 사서 하면 거의 $50이상은 절약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 호기심 반, 돈도 절약할 겸 반 해서 내가 재충전하는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 사실 youtube같은 곳에 많이 example이 나와 있어서 의외로 쉽게 수리를 끝낼 수 있었다.

내가 산 Arctic Freeze kit는 gas를 다 채운 다음에도 gas만 따로 사서 쓸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그냥 gas만 충전을 해도 되지만 문제는 정확한 gas pressure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압력계가 필요한 것인데, 이 kit는 편리하게도 압력계가 함께 부착이 되어있었다. 결과는 20분 만에 대 성공, 정말 ‘북극의 바람’ 같은 시원한 바람이 나왔고, 새로니는 아빠의 ‘현명한 노력’으로 ‘에어컨 수리비용’도 많이 절약할 수 있게 되어서 이것이야 말로 win-win work이 되었다.

 

DIY Freon recharge kit, Arctic Freeze on Honda Accord

Arctic Freeze recharge kit on Honda Accord hood

Arctic Freeze kit closeup

Arctic Freeze kit closeup

Arctic Freeze during recharging

파란색의 recharge connector에 연결되어 10분 정도면 끝난다

¶  2012년 5월 17일, 지난 목요일, 그러니까 천주교 전통적 전례력으로 “예수 승천 대축일(Ascension of the Lord)” 인 그날 저녁에 아주 이색적인 매일미사가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집전이 되었다. 아마도 평생, 40명 사제가 드리는 미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그 사제, 신부님들은 올해 이곳 아틀란타에서 개최된 (한’민족’) 북미주 지역 사제회의에 참석한 신부님들의 일부였고 그들이 회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떠나면서 드린 일종의 ‘파견’ 미사였고, 덕분에 우리 본당이 큰 ‘은총’을 받은 셈이 된 것이다. 결코 작지 않은 우리 본당의 좁게 느껴질 정도로 꽉 차고, 열기 넘치던 한마디로 ‘장엄미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40여명의 사제들, 갓 신품 받은 젊은 신부부터 노익장들까지.. 그들은 어떻게 저런 ‘어려운’ 소명을 받아드렸을까? 

북미주 한인사제 중 40 신부님의 미사처음에는 ‘혹시라도’ 참가 사제 수에 비해서 빈약한 신자들의 참여를 염려했는지, 주임신부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 그 동안의 비교적 ‘점잖은’ 태도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각종 channel을 통해서 ‘홍보’ 활동을 하시고, 결과적으로 대 성공적인 추억의 미사가 되었다. 인천교구에서 오신 해외사목담당 주교님을 비롯해서 북미주 지역 구석구석에서 한인들의 영혼의 건강의 맡고 있는 120명이나 되는 사제들.. 참 인상적이다.

대한민국의 사제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120명의 사제가 북미주에서 사목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커다란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부부가 속한 레지오는 숫제 이번 미사참가가 ‘활동’으로 배당이 되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얼마 전에 분가한 형제 본당 (김대건 성당) 소속 레지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소식에 흐뭇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   故 채준호(마티아) 신부님희재 연도가 2012년 5월 18일, 신부님이 한때 ‘머무셨던’ 이곳 미국 아틀란타 한인 순교자 성당에서 있었다. 희재 연도라 함은, 나에게는 귀에 익지 않은 용어지만, 대한민국(한국) 전통적 불교 장례의 49재와 비슷한 것으로 ’50재’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신부님 선종일로부터 50일째가 되는 날 드리는 연도인 것이다. 3월 말에 선종을 하셨으니 아마도 그쯤 되었다고 생각이 되는데, 이것은 확실치는 않지만 ‘본당차원’으로 가지는 것으로 다른 개인연도와는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알 기회가 없었던 이 채 신부님은 시간이 갈 수로 더 알고 싶어지는 그런 삶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일찍 선종하신 확실한 이유가 시원스레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조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죽음은 궁극적으로 ‘개인적이고, 홀로 겪은’ 엄숙한 과정 (천주교 교리에서의, “다음 세계로 가는”)이긴 하지만 이 채 신부님같이 널리 알려진 ‘공적인 삶’이라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희미하게나마 ‘아주 어려운 case의 암 투병‘ 이었다고 듣기는 했지만 누구도 확실하게 장담을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게 어려운 투병은 일반 평신도들은 원하면 누구나 널리 ‘기도의 요청’을 하며 같이 견디는데, 어찌해서 그런 지도자의 위치에서 그런 ‘공적인 도움’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속단은 금물이고, 결국은 신부님이나 그의 가족만의 privacy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도 나누며 견디면 그만큼 덜하다고 하던데..

Mothers-day, 2012

2012년 Mother’s Day

오늘은 2012년 5월 두 번째 일요일, 그러니까 어머니 날이었다. 먼 옛날, 고국에서는 5월 8일이 어머니 날이었는데, 나중에 그날이 어버이 날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이름을 바꾼 것, 별로 생각 없이 받아들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은 엄연히 성격이 다름을 뒤 늦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아버지 날이 따로 있는 이곳이 ‘선견지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버이 날로 묶어놓은 것.. 사실 부모 두 분의 독특하게 다른 역할을 완전히 혼동시킨 것이다.

나에게 이 날은 ‘가까운 엄마’들은 모두 생각을 해야 한다. 나를 낳아준 하늘같은 나의 어머니, 사랑하는 반려자를 낳아주신 장모 어머님, 우리 자식들을 낳아준 아내인 연숙.. 모두가 어머님들이지만 연숙 말고는 모두 하늘나라로 먼저 가셨다.

두 분의 어머님들은 영적인 선물을 드릴 수 밖에 없지만, 연숙에게는 그런대로 무언가 ‘일년 동안 집안의 엄마’로 수고한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에 미숙한 나는 사실 신경이 쓰인다. 전에는 ‘애’들이 극성으로 도맡아서 다 준비를 해 주었지만, 그런 시절도 다 지나간 것 같아서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다.

올해는 그래도 하느님이 도우셔서 내가 Publix에서 ‘억지로’ 꽃도 사고, chocolate도 사오는 용기도 생겼다. 하고 보니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님을 알아서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겠다고 자신까지 생겼다. Holy Family 성당의 주일 미사에서 신부님의 특별 강복도 받았고, 저녁때는 근처에 있는 Thai restaurant인 Lemon Grass에서 새로니와 같이 맛있는 저녁식사도 해서 모두 만족할만한 Mother’s Day를 보낸 셈이 되었는데, 옆에서 보니 연숙은 아무 만족한 모습이었다.

작은 딸 나라니는 여행 중이라서 참석을 못했지만 special delivery로 맛있게 보이는 ‘먹는 선물’을 보내 주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독특한 위치를 다시 한번 느끼고, 나를 낳아주신 어머님이 지금 나의 옆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들떴던 마음이 점점 가라 앉음을 느낀다.

Painting 'Mary, Undoer of Knots' since 1700

1700년경 독일에서 그려진 매듭의 성모님 상

지난 2012년 2월 사순절(Lent)부터 우리부부는 ‘시험적인 기분’ 으로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우리가 15년간 소속되어 있던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매일 미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우선 목표는 사순절 시기에만 빠짐없이 매일 미사를 보는 것이었다.

이런 ‘어려운 목표’를 이루려면 사실 미사참석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게 life style을 바꾸어야 가능하다. 예를 들면 어떤 날 저녁 ‘술좌석’에 끼어서 밤 늦게라도 들어오는 것이 있다. 술에 덜 깬 기분으로 다음 날 아침 9시에 맞추어 미사에 가는 것은 사실 힘들다. 이런 것 등을 조금 ‘정신적으로 무장’을 하면 이것이 ‘듣기보다, 보기보다’ 훨씬 쉬워짐을 이번에 크게 깨닫게 되었다.

성당으로 가는 15분의 drive는 사실, 무슨 별장에 가는 것 같은 멋진 풍경들과, 골프장, 산장과 같이 생긴 예쁜 동네들을 거치게 되어서 30분여의 짧은 미사와 더불어 하루를 시작하는 것으로 아주 근사한 일과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야말로 하늘이 도와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금 같아서는 아마도 ‘무한정’ 계속되지 않을까 서로 기대를 할 정도까지 되었다.

매일 미사에 관한 우리의 ‘통속적인 인상과 기대’ 중에는 틀린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선 성전이 텅텅 빌 정도로 극소수의 신자들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우리의 기우였다. 비록 넓은 성전이 듬성듬성 채워지긴 했지만, 거의 다 채워지는 꽤 많은 숫자였다.

다음은 신자들의 연령대..인데, 역시 ‘할일 없는 고령자’들일 것이라 추측했지만, 이것도 틀렸다. 꽤 적지 않은 젊은이를 포함해서 직장인들, 우리 같은 중년들도 꽤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물론 그보다 더 나이든 Irish 파란 눈의 ‘아줌마, 할머니’들은 빼놓을 수 없다.

매듭 푸시는 성모님의 9일 기도 소책자

매듭 푸시는 성모님의 9일 기도 소책자

이곳, 매일 미사에서 보는 신자들이 주일미사와 근본적으로 다른 느낌은 역시, ‘주일미사, 성탄절 미사 신자’들과는 그 신앙심에서 차이가 난다고 할까.. 이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매일 미사에 나온다는 그 자체가 차원이 다른 신앙심일 테니까. 그 중에 한 그룹의 신자들은 미사시작 20~30분 전쯤에 일찍 나와서 같이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우리는 항상 그것이 시작된 조금 뒤에 도착을 해 그들과 같이 앉곤 해서 아주 친숙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영어로 묵주기도를 하므로 우리는 사실 듣기만 하지만 계속 듣게 되면서 이제는 거의 저절로 외우게 될 지경이 되었다. 묵주기도는 반복적으로는 길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비교적 짧은 기도가 반복되기에 금새 외울 수가 있다. 한마디로 ‘시간문제’인 것이고, 그것이 묵주기도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들 중에 한 멋지고, 예쁘게 생긴 ‘아줌마’가 우리보고 ‘독실하게’ 보인다고 과분한 칭찬을 하더니, 조그만 책자를 주며 너무나 좋은 기도이므로 해보기를 권한다고 친절하게 말했다. 그것은 제목이 ‘Mary, Undoer of Knots’ 라는 소책자였다. 아마도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이란 뜻일까? 이것도 역시 ‘성모신심 (Marian Devotion)’ 을 위한 또 다른 기도일 것이라 짐작이 되었는데, 책자는 이 기도의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고 비교적 간단한 매듭 푸시는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와, 이 기도로 하는 9일기도를 설명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매듭처럼 얽힌 인생의 고통과 고민거리’ 를 성모님께 호소하며 도움을 청하는 ‘직설적’인 청원기도인 것이다. 그 기도의 원문은 아래와 같은데, 이것이 한글로 옮겨진 것을 찾으려 goolging을 했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다른 언어로 옮겨지면 아마도 해당 지역 교구의 인가(NIHIL OBSTAT, IMPRIMATUR)를 얻어야 할 것이다.

 

Prayer to
Mary the Undoer of Knots!

 

Virgin Mary, Mother of fair love, Mother who never refuses to come to the aid of a child in need, Mother whose hands never cease to serve your beloved children because they are moved by the divine love and immense mercy that exists in your heart, cast your compassionate eyes upon me and see the snarl of knots that exist in my life.

 You know very well how desperate I am, my pain and how I am bound by these knots.

 Mary, Mother to whom God entrusted the undoing of the knots in the lives of his children, I entrust into your hands the ribbon of my life.

 No one, not even the Evil One himself, can take it away from your precious care. In your hands there is no knot that cannot be undone.

 Powerful Mother, by your grace and intercessory power with Your Son and My Liberator, Jesus, take into your hands today this knot… I beg you to undo it for the glory of God, once for all. You are my hope.

 O my Lady, you are the only consolation God gives me, the fortification of my feeble strength, the enrichment of my destitution and with Christ the freedom from my chain.

 Hear my plea.

 Keep me, guide me, protect me, o safe refuse!

 Mary, Undoer of Knots, pray for me.

 

 

이 기도문을 한글로 옮긴다면 어떤 모양일까? 아마도 서강대 예수회 류해욱 신부님이 옮기면 금상첨화일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것이 가능할지, 아니면 이미 옮겨져서 기도문으로 쓰이고 있는지도 모를지도. 의미는 모두 금방 들어오지만 정확한 ‘한국어 어휘’를 구사할 자신은 없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한글어휘 실력은 1970년대 초에 머물고 있고, 그 이후의 ‘생기 넘치는’ 21세기 말투들도 자신이 없다. 그만큼 초보적인 한글실력으로 어찌 이런 초월된 의미의 기도문을 옮길 수 있을까? 하지만, 하지만, 초보적 수준으로 기도문의 ‘의미’는 전할 수 있을지도.. 다음과 같이.. (더 낫게 옮길 수 있는 분은 고치셔서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매듭 푸시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동정녀 마리아, 지극히 크신 사랑의 어머니, 도움을 청하는 자녀들을 항상 도우시는 어머니, 당신 가슴의 성스러운 사랑과 바다같이 넓으신 자비로 언제나 자녀를 끊임없이 보호하시는 어머니, 인자로운 눈으로 저희를 굽어보시고, 저의 인생에 얽혀있는 고통의 매듭을 풀어주소서.

당신은 제가 얼마나 이 얽혀있는 인생의 매듭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다.

마리아,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의 고통의 매듭을 풀어 주시도록 의탁하신 어머니의 손에 저의 인생을 의탁합니다.

아무도, 악마까지도 당신의 보호 하심을 빼앗지 못합니다. 당신 손으로 풀지 못할 매듭은 하나도 없습니다.

강한 어머니,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당신의 아들 예수님의 전구자시여, 오늘 이 매듭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 손으로 풀어주소서. 당신은 저의 희망이옵니다.

저의 성모님, 당신은 주님께서 주신 유일한 위안이고, 허약한 저를 강하게 하시고, 가난한 저를 풍요롭게 하시고, 예수님과 함께 저의 사슬을 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저의 간청을 들어주소서.

계속 저를 인도해 주시고, 안전한 피난처에서 보호해 주시옵소서!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이시여, 저를 위해 빌어주소서!

 

 

이 기도의 역사적 배경, 신학적인 정당성, 9일 기도의 형식과 내용 등은 다음에 계속 research를 해서(그런 자료가 있다면) 그것을 blogging 할 예정인데, 그것을 기다리느니 우선 급한 것, 매일 매일 우리를 ‘죽이도록 괴롭히는’ 매듭을 풀어달라고 어머님께 간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듯 하다.

 

올해 들어서 실망과 의혹의 연속극을 연출하던 미국 최초의 “쌔카만” 대통령 바락 오바마가 드디어 3년 동안 숨겨두었던 마각을 들어내는가? 희망의 상징으로 기대되던 그가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최악의 연출이 바로 동성결혼 지지.. 란 목불인견, 꼴불견인, 실로 해괴한 것이다. 동성결혼.. 이것도 말이 되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더냐? 선거를 앞두고 발표를 한 것을 보니 분명히 정치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일부일 것이다.

아마도 그는 ‘두뇌 속 깊이’ 진정으로 동성도 결혼을 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이것을 보고 느끼는 것은 딱 한가지다. 정말 오랜 동안 ‘꼰대’들이 흔히 말 하던 ‘말세다..’ 라는 것 뿐이다. 세상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을까..결국, 바락 오바마는 극단적 인본주의에 그의 운명을 건 것이다.

 목불인견, 꼴불견이 더 많이 보이고, 느껴지는 것도 나이가 듦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이가 듦을 싫어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그저 막연히, 나이를 먹음은 인생을 좀더 거시적, 폭넓게, 긍정적으로 보는 지혜를 줄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더 많은 것을 ‘저절로’ 이해하게 되고 따라서 더 폭넓게 인생사를 보고, 특히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관용적으로 볼 것도 기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낀다. 하지만 인간 역사는 말한다. 두고두고 ‘옳은 것’은 결국 옳았고, 두고두고 틀린 것은 결국은 틀린 것이다. 남편과 남편이 결혼을 하고 아내와 아내가 결혼을 하는 세상, 절대로 올바른 세상은 아닐 것이다.

¶  어린이날 유감   달려라, 냇물아~ 오월은 푸르고나~ 반세기전 어린이날이면 목청이 터져라 신나게 부르던 어린이날 노래, 참으로 (19)50년대의 어린이날은 신바람 나던 하루였다. 실제로 그날 집안에서도 학교에서도 ‘물질적인 대우’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날을 만든 방정환 선생님께 마음 속으로 감사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이날이란 것도 역시 ‘표절’ 이었다. 일본 아해들 것을 그대로 날짜도 똑같이… . 서슬이 푸르게 벤또, 구루마, 도라무 깡 같은 일본 말을 금시 시키고, 화강암 중앙청(일제 강점 때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리면서, 어떻게 날짜도 똑같은 일본의 어린이날은 그대로 두었을까? 혹시 아니면 방정환 선생의 5월 5일 어린이날을 우리가 먼저 만들고, 일본 아해들이 나중에 표절을 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동양에서 제일먼저 개화를 한 그들이 먼저 만들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일년에 하루를 ‘어린이 전용’의 날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않을지.

 

¶  푸르고, 따뜻한 어머님 같은 5월 인가, 온통 포근한 어머님의 손끝과 숨결을 느끼고 싶은 그런 달이 바로 5월이다. 날씨 또한 가족과 가정이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기에 어울리는 화창하고, 포근하고, 때로는 비에 젖는 잔잔함과 외로움까지 멋지게 조화를 이루어준다.

가톨릭의 삶을 다시 살게 되면서 5월은 또한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님(마리아)의 달, 그러니까 ‘성모성월’ 임을 느낀다. 또한 나의 그립고 사랑하는 어머님의 기일도 5월이어서 불효자로서 감정적으로 거의 주체하기 힘들 때도 있다. 나는 ‘가장’ 아버지의 기억이 전혀 없고 (6.25때 납북) 따라서 어머니란 존재는 나의 생명, 가족의 생명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쟁 후의 험난한 세상에서 만약에 어머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친척이 거의 없었던 우리 집 남매는 하루아침에 길거리의 고아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육이오 전쟁 후에 가장, 아버지를 잃은 집이 부지기수로 많았고, 그래서 아버지가 있던 집은 우선 행복한 가정이었다지만 그에 못지않게 절대다수 홀 어머니들의 가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은 지금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한, 전설적이고 초인적인 것이었다. 최소한 우리 세대는 ‘절대로’ 그 고귀한 사랑, 헌신, 희생의 역사를 잊지 못하고 또한 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조금 접으면 갑자기 싸늘한 현세의 현실로 돌아온다. 요새의 부모님들, 특히 ‘엄마’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또한 그들의 자식들은 어떤 인간들인가.. 부모들은 자식들을 예전처럼 별로 보살피는 것 같지도 않고, 자식들 역시 부모 세대를 우습게 보는 것이 거의 전염병같이 cool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도대체 요새의 이상적인 부모와 자식의 모습은 무엇인가? 돈 많은 부모, 돈 잘 버는 자식인가?

 

 
1950년대 ‘국민학교’시절의 동요, 어머님 은혜 

5월 1일을 향한 달, 4월, 그것도 특별히 오래 전 1970년의 4월을 더 기억한다. 연세대 4학년이 되던 그 해의 4월, 지나간 3년간 나와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던 중앙고 동창들, 특히 양건주와 이윤기가 모두 군대로 갔고, 사실 조금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던 때였고, 비록 다른 동창, 죽마고우 박창희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조금 다른 위안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 해 초에 친구 유지호의 도움으로 박창희와 같이 원서동에 살았던 다른 죽마고우 손용현과 거의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거의 10여 년 만에 ‘불알친구’ 삼총사가 다시 모인 것이다. 당시 용현이는 건국대학교 영문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미국과 영어를 그렇게 좋아했던 그에게 영문과는 아주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 이후 우리는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오랫동안 헤어졌던 시간을 만회 하려는 듯,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그 당시 그 나이또래가 갈 곳이 어디겠는가.. 거의 다 다방, 아니면 술집이었는데, 모두 담배연기가 자욱한, 건강한 곳들은 아니었다.

그것 대신, 값싸고 건강하게 모여 즐기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산, 그러니까, 등산이었다. 특히 박창희는 거의 프로 급에 가까운 산 사나이였고, 요델 산악회의 멤버이기도 해서, 우리들에게는 조금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고, 그런 이유로 우리 셋은 같이 등산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 당시 그것은 대학생들에게 유행이기도 했다.

그래서 셋이서 서울 근교의 산들(특히 도봉산)을 다시기 시작하다가 그 해, 4월 초에 장거리 산행을 하게 되었다. 육이오 때 김일성 공산당의 공비, 빨찌산들의 오랜 거점으로 유명하던 지리산엘 가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전해(1969년)에 박창희와 같이 여름방학때 소백산 등산의 경험이 있었지만 용현이는 이런 산행이 처음이었다.

나와 박창희는 비록 연대 전기과 졸업 수학여행을 빼먹고 간 것이었지만,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그 산행은 일생을 통해 길이 남을 추억거리가 되었다. 당시는 color film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라서 거의가 흑백의 사진으로 그 추억이 담겼다. 그 당시 우리들이 좋아했던 Bee GeesFirst of May, 지리산 등반, 그리고 그 속의 세 죽마고우들.. 비록 모두 헤어져 살았지만, 항상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친구들… 건강하기를 빈다.

 

 

First of May, friends foreve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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