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사월’을 보내며

April shower brings May…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없는 무지개 계절아..’ 

—  ‘4월의 노래’ 중에서

 

‘사월의 노래’가 서서히 사라지는 2020년 사월의 마지막 날,  시인 詩人은 이렇게 생명, 꿈, 무지개등을 노래하는데..  이천이십 년의 사월은 어찌하여 이렇게 상상도 못했던 상처[코로나바이러스] 의 기억과 추억을 남긴 것일까? 내년의 사월은 ‘사월의 노래’ 속의 모습으로 다시 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듯…

지난 밤에 또 2시간밖에 못 잤다고 실망한 연숙, 그래도 7시 30분에 깨워달라고 한 약속을 지키려 눈을 비비고 일어나 Sam’s Club으로 ‘먹을 것’ shopping을 하러 갔다.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평상시 같았으면 100% 나하고 함께 가야 하는 것이었는데… 고맙고 미안하다… 더구나 요즘에는 엄마,아빠 먹을 것 챙겨주느라 (밖에 나가지 말라고)  큰 딸 새로니가 신경을 너무 써주어 ‘늙어 가는 것’,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예상을 뒤엎고 날씨가 아주 음산하다. 거의 비가 올 듯하지만 안 내리고 센 바람은 아니지만 아주 싸늘하게 느껴지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수그러드는 그런 날씨. 연숙이 Wendy’s Dave Single burger를 먹고 싶다고 해서 혼자서 drive-in 까지 가서 사가지고 왔다. 역쉬~~  이런 fast-food 먹었던 것이 꽤 오래 전인 듯 느껴진다. 최소한 2달을 넘었을 것이다.

 

¶  COVID-19 Pandemic을 치료하는 ‘희망의 백신 vaccine’ 개발에 큰 진전이 있었다는 뉴스를 보고 있다. 과연 희망은 있을까… 과학과 이성에 덧붙여 자비의 성모님과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기를…  관건은 ‘국가경제 와 개인경제’, 과연 이것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적게 먹고 적게 쓰는 것 우리는 그런대로 단련이 되어있어서 크게 걱정하지는 말자.

 

¶  ‘코로나 여가선용’의 하나로 10여 년간 질질 끌어오던 TOOL SHED가 그 모습을 잡아가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찾고 싶은 tool들을 1분 이내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오랜 만에 1970년, 50년 전의 추억을 더듬으려 LIFE magazine을 portrait mode  (vs. landscape mode) monitor 를 꺼내어 그 위력을 보게 되었다. 책이나 magazine은 portrait format으로 되어 있기에 이것이 있으면 scan을 할 때 너무나 편리하다.

 

LIFE digital copy in full on portrait mode

 

¶  이번 코로나 사태 이후로,  거의 30년 살아온 정든 우리의 subdivision 동네를 걸으면서 느낀 것은 ‘아마도’ 우리가 이 동네에게 몇 번째로 가장 오래 산 고참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것이다.  손꼽아 우리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집은 몇이 안 되니까… 나머지는 모두 나중에 이사 온 사람들인데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가진 젊은 층인 듯했다. 그것은 평소에 school bus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알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 이후로 모든 아이들이 집에 머물게 되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볼 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평소에 조용하게만 보였던 집들이, 가족들이 나와서 집 앞을 가꾸는 모습들을 보면서, 다시 바빠지는 세상이 오더라도 그런 모습이 계속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고참 중의 고참, 전 airline pilot이었던 Mr. Johnson 집의 소나무들을 제거하는 tall crane.

 

¶  얼마 전, 요새 자주 보게 되는 Roku TV에 눈에 익은 장면이 나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확히 40년 전의 Steven King 원작 Stanley Kubrick 감독 영화 psychological horror classic, The Shining, 바로 그것이었다. 나올 당시 연숙과 같이 극장에서 본  이후로는 오래 전 VHS format으로 조그만 analog TV로 본 것, 그것을 이제는 극장과 같은 화면으로 보게 된 것이다.

Story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이 영화의 cast들과 감독의 다양한 혁신적인 기법 등의 도움으로 후에 greatest and most influential horror films ever made란 극찬의 평을 얻게 되었다. 

1980년, 우리는 신혼 때 본 영화로서 추억과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이 영화는 사실 graphic한 것 보다는 psychological한 공포로 진정한 terror의 효과를 남겼다. 코로나 사태 중에 이런 영화를 보니, 현재의 virus terror를 일 순간이나마 깨끗이 잊게 되는 장점도 있었다.

 

사람의 핏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악령들린’ Hotel의 로비

호텔 악령의 영향으로 서서히 가족 살인자로 변하는 주인공 Jack Torrance

영를 볼 수 있는, the shining, 능력을 가진 아들 Danny

Psalm 119 Morning

The Longest Verse, Psalm 119

 

새벽에 눈을 뜨니 희미한 빛 뿐, 분명히 7시 훨씬 전인 줄 알았지만 틀렸다. 시계를 보니 7시도 훨씬 넘었다. 더 자세히 밖을 훔쳐보니 흐린 날씨였다. 오늘 이른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벌써 구름이 낀 것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시작된 ‘1년간 성경통독‘, 기적적으로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야망의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본당 행사에 기여, 참여를 하고 있는데, 이제는 거의 robot처럼 눈을 비비며 instant ‘stick‘ coffee를 cup에다 부어 넣고, 나의 ‘cocoon‘ desk에 앉아서 성경을 편다.  4개월 동안 완전히 ‘습관화’가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신부님!

오늘로서 구약, 창세기 Genesis의 거의 끝부분에 가까워졌다. 창세기의 climax격인 ‘요셉’의 이야기가 드라마 중의 드라마처럼 매듭을 지어간다. 이 이집트에서의 요셉 이야기는 아무리 보아도 기억 중의 기억을 남기고, 곧 이어 나타날 모세 보다 더욱 더 공부할 요소가 많다.

이어서 총 150편이나 되는 시편 Psalm 중 119편을 읽게 되었다. 매일 1편씩을 읽게 되는 이 시편, 어떤 날은 몇 줄도 안 되는 짧은 것이고 어떤 날은 비교적 긴 것도 있다. 그런데 오늘 것은 암만 보아도 너무한 것이다. 무려 전체 176절, 7 쪽이 훨씬 넘는 것이 아닌가?

한꺼번에 모두 읽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에 기를 쓰며 ‘머리가 띵~’ 해지도록 비슷한 말들이 계속되는 이것을 읽고 나니… 남는 것은 몇 가지 밖에 없다. 모두 하느님의 ‘법’에 관한 용어들이다.  ‘법규’, ‘법령’, ‘계명’, ‘규정’, ‘규범’… 등등…  그러니까, 하느님이 주신 율법 law을 지키라는 것이 골자가 아닐까?

나중에 알고 보니, 역쉬~~~ 이 시편 119편이 성경 전체를 통 털어서 제일 긴 chapter로 아예 꼽혀 있었다. 그것을 오늘 아침에 멋모르고 건들인 것이다. 처음에는 지루하고, 괴롭기까지 했지만 이런 모든 것들을 알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지고 ‘성경통독’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깨닫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법대로 살자….’, 하지만 사람이 만든 법은 결함과 한계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자.

 

영어로 번역된 이 법에 관한 용어들과 한글번역을 비교해 보면..

 

law, testimony

규정

precept

법령, 규범

statute

계명

commandment

법규

judgment

 

이 단어, 용어들을 영어성경과 한글번역을 비교해보며 느낀 것은, 언어의 번역, 통역이란 것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영어본과 한글본을 비교한 것부터가 옳은 방식이 아닐 것이: 영어본의 원전은 히브리어나 그리스, 라틴어 들에서 나온 것들인데 그것이 ‘한자 어원’을 가진 한글로 1:1 맞추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위험할 수 있지 않을까?

 

Holy Communion, Virtual & Spiritual

평화방송 매일미사 성찬례

¶  Virtual Holy Communion, Spiritual Communion, 신영성체?   기억을 더듬는다… 마지막으로 성체를 손으로 받아 모셨던 ‘진짜’ 영성체를 했던 것이 언제였더라… 책상 위에 있는 일지/달력을 뒤져본다. 그때는, 지금은 거의 태고, 골동품, 녹슨 느낌이 드는..  3월 14일 토요일, 동네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아침미사 때, Father Junot 로부터 성체를 손을 받아 모셨던 것, 바로 그때.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에서의 마지막 영성체는 그 보다 4일 전, ‘레지오 화요일’ 정오 미사 때, 임기를 모두 마치고 이임준비를 하시는 ‘착한목자’ 김형철 시메온 신부님으로부터였다.  그 이후로 세상은 급변해서, 한번도 성체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평소에 성체신심이 그렇게 출중했던 것도 아닌데, 이제는 사실 그리워지기도 한다. 아니 그리워 해야 한다는 조바심도 난다. ‘성체에 현존하는 예수님’ 은 가톨릭 교리의 핵심부분이다. 동물적오감 五感으로 믿기건 안 믿기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이 ‘성체성사’를 못하게 되므로, 해괴한 전염병 때문이 이 가톨릭 핵심교의가 치명타를 입는 것인가?

그 대안이 사실은 교의적으로 타당한 방법이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 동안 이렇게 세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뿐이다. 미국 예수회 Society of Jesus의 월간지 America Magazine 에 비교적 자세히 설명이 된 기사가 있었다. 2020년 3월 31일자의 Colleen Dulle 의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Coronavirus has cancelled public Masses. How can we participate in our own homes? Ms. Dulle 은 본인이 겪는 경험과 더불어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집에서 참례하는 미사를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가를 survey하고 있는데 그 중에 미사의 정점, 절정인 성찬례와 영성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 신령성체(신영성체) spiritual communion 은 성찬례를 갈망하며 드리는 기도의 형식으로 중세로부터 내려온 가톨릭 전통이며, 이 가르침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 St. Thomas Aquinas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성체를 모시는 것은 ‘영적 spiritually‘인 것과 ‘물질적 physically ‘인 것 두 가지가 있음은, 지나간 몇 세기 동안에 대부분 신자들은 일년에 몇 번 정도 실제적 영성체를 했고, 나머지 주일에는 신부가 성체거양 聖體擧揚을 할 때에  ‘영적’인 영성체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전통에 근거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영상에 의한 성체거양 시에 ‘합법적’인 영성체를 할 수 있음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회전통이 있음을 알고 매일미사에 참여를 하는 것,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미사 ‘시청’시 마음의 자세가 전혀 다른 것이다. 수수방관하는 입장에서, 시청자의 입장이 아닌 실제 미사와 깊숙이 연대관계를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경험들은 사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없었으면 죽을 때까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조국 대한민국의 가톨릭 계, 문화, 흐름, 맥박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매일 바뀌는 평화방송 미사 주재 신부님들, 대부분 어쩌면 그렇게도 ‘애 띤 얼굴’들일까.. 감탄을 한다. 대부분 노인사제들인 이곳의 환경과 너무나 대조적이 아닌가? 거의 손자들 같이 느껴지는 이 사제들, 참 대한민국의 수많은 순교성인들이 뿌린 씨앗일까… 복 받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 요새 집의 뒤쪽, yard에서 간간히 목공 일을 하며 라디오 뉴스로 조지아의 코로나 사태에 관련된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이발소 같은 곳이 문을 열기시작 했다는 소식이었다. 성급한 느낌은 떨칠 수는 없지만 다른 쪽으로는 심리적으로 무엇인가 평상으로 돌아 간다는 느낌도 있었다. ‘과학적’으로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 그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면 이것도 이해는 된다. 먹고 사는 것, 그것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런 문제를 피부로 못 느껴도 머리로는 알 수 있지 않을까?

 

¶ 내친 김에 서둘러, 최인호의 1990년대 수필집,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필사를 바로 전에 끝냈다. 지난 9일부터 시작한 것, 하루 평균 20 쪽 이상을 필사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거의 매일 했으니까, 이 평균은 정확할 것이다. 신 神 들리듯 한 기분으로…   읽으며 제일 공감이 안 갔던 것 중에는 그 놈의 ‘초등학교’라는 어휘였다. 시대적, 상황적으로 어쩌면 그렇게 둔감한 표현을 썼을까… 하지만 혹시 이것 편집자들의 횡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추억은 역사다. 역사를 소급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수정하는 버릇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한마디로 그 단어, ‘초등학교’는 나의 기분을 크게 상하게 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해인 수녀님의 수필집에서 그녀는 추억의 창경 ‘국민학교’임을 분명히 회고하고 있다. 이제 이 책을 중심으로 나의 생각과 추억을 정리하고 싶다. 어떻게?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배경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라서, 소재는 얼마든지 널려있는 것이다.

 

¶ 날씨도 꾸물거리는 아침 무렵에 ‘걷기는 뒤로 미루고…’, 하다가 오늘은 못 걸을 가능성이 있다. 정말 비가 쉬지 않고 나리던 날 빼고는 99.99% 우리는 동네 trail을 걸었다. 정말 이것은 최고의 기분전환, 운동 까지 되는 완벽한 우리의 일과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걸을 수 있을 까? 또 부른다, 백년설의 나그네 길,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 일요일 아침이 빨리 지나갔다. 하지만 벌써 1. french toast아침 먹고, 2. 온라인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를 10:30분에 봉헌했고, 3. 곧바로 걸으러 나갔다.  이 정도면 일요일의 start가 꽤 좋았던 셈이다. 할렐루야!

미사 후 공지사항에서 ‘아틀란타 대교구의 공식적 미사는 5월 말까지 계속 중단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각보다 좀 긴 느낌도 들었다. 사업체들이 조금씩 open을 하는 마당에 한 달은 긴 것이다. 하지만 이유는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성사생활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그것을 가늠하여야 할 듯, 특히 레지오는 특히 우리에게 큰 관심사이지만 현재로서는 조금 먼 곳에 있는 듯 느껴지기만 하니… 이러다가 레지오 마리애의 위상이 크게 떨어지지나 않을지 그것이 우려가 된다.

 

¶ 레지오 꾸리아에서 개인연도 공지가 왔다. 주일 온라인 미사 중에 연미사 명단에서 들었던 인천교구의 어떤 몬시뇰 monsignor 이었는데, 알고 보니 하필이면, 2017년 가을에 우리 레지오를 엉망으로 짓밟아 놓고 사라진 어떤 ‘미친x  단원’의 작은 시아버지라고… 허~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음을 느낀다.  개인적인 상처도 그렇지만 어떻게 충성을 맹세한 성모님의 군단을 그렇게 짓밟을 수 있는지, 또 일거리가 생겼구나… 어찌할 것인가? 오늘 미사 강론에서 그렇게 또 ‘용서 용서, 화해’를 강조하던데…  하지만 그 미친x은 ‘공적인 용서’는 가능할지는 몰라도,  사적인 진정한 용서는 99.9999% 불가능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가급적 잊고 살기로 했다.

 

Ubuntu Linux ecosystem으로 서서히 들어서고 있다. 6년 이상 동안 잊고 살았던 것이 ESP32의 매력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고, command line의 위력도 다시 찾게 되었다. 이것으로 나의 여가시간이 100% 활용되면 얼마나 좋을까?

꽤 긴 시간이 걸렸다. Ubuntu upgrading (18.04 LTS에서 20.04 LTS로) 하는 것.. 왜 내가 이것을 하고 있을까? 꼭 필요해서였을까? 물론 아니다. 시간을 죽이려고? 물론 그것도 있다. 하지만 그저 신나고, 좋고, 흥미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머리를 쓰는 것이 그 흔한 치매방지 하려고 하는  웃기는 퀴즈 같은 것 보다 낫지 않을까? 지난 밤에는 어깨가 쑤시고, 꿈까지 그것도 생생한 것들을 많이 꾸었다. 하지만 일어나면 급속도로 사라지는 그런 것, 아쉽다. 예전에는 기억에 꽤 남기도 했는데… 이것도 나이 탓인가? 하기야 요새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것, 익숙한 단어들이 생각이 안 나는 것, 조금은 나를 무섭게 하지만, 아닌 척 하며 살기로 했다. 어쩔 것인가? 도밍고 형제처럼 그 웃기는 ‘퀴즈’를 풀며 시간을 보내라고? 나는 절대로 그렇게 머리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나에게 머리를 쓰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Ubuntu Desktop LTS 20.04 on VirtualBox

결과적으로 Ubuntu 20.04 desktop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일반적으로 모든 것들이 더욱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이 정도면 매일 매일 쓸 수 있는 main desktop pc로서 큰 문제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killer apps, 나에게는 역시 Microsoft Office, OneNote인데 이것을 대체할 만한 open source app은 없는 듯 보인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VirtualBox에 의존하며 관망을 하는 입장이다.

이번에 upgrade를 하면서 골치를 썩은 것, 시간을 낭비한 것은 의외로 ‘한글 system’에 관한 것이었다. 한글의 위력인지 이제는 한글 쓰는 것 거의 문제가 없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있었다. 한글입력 system에 아직도 작은 glitch가 있는지,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야 겨우 한글입력이 가능해 졌다. 이것이 바로 시간낭비의 좋은 예가 아닐까? 해결책은 역쉬~~~ 겨우 2 lines의 command-line solution 이었다.

ANNOYING!!! IBUS-HANGUL NOT SHOWING!

UBUNTU IBUS-HANGUL SETUP: -> it works now! on Ubuntu 20.04

sudo apt-get update -y

sudo apt-get install -y ibus-hangul

 

바람 부는 마지막 토요일에..

 

거짓말 같이 평화로운 2020년 4월의 마지막 토요일은..

 

¶  구름과 해가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살살 불더니 해가 떨어지면서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눈치를 미리 채고 backyard의 picnic table의 파라솔을 접어 놓았는데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심하게 바람이 분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한 것이다. 다행히 기온이 그렇게 낮지 않아서 밖에서 걷거나 일 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이런 ‘비상적’인 날씨를 무척 좋아하기에 속으로는 쾌재를 부를 정도다.

4월도 거의 저물어 간다. 벌써 마지막 토요일을 맞은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뉴스가 온통 우리의 머릿속을 맴돈 지도 2달에 가까운 것이다.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어서 이것이 new normal이 아니고 그냥 normal인 것처럼 느껴진다.

 

¶  코로나19, COVID-19, 이름도 부자연스러운 이것, 언제까지 우리의 주위에서 맴돌 것인가? 장기적인 여파는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 가족부터 시작해서 주위의 모든 (사회) 공동체들, 특히 신앙공동체들,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지역, 나라 아니 나아가서 NOOSPHERE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우선 과학적으로 알고 싶고 다음은 영적인 눈으로…

 

나를 ‘살려준’ Tech Guy podcast, 과학적인 코로나 뉴스를…

 

이것에 관한, 요새 나의 안도감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은 바로 tech-guy style podcaster들이다. 코로나19 뉴스는 이들의 의견으로 간접적으로 듣게 되는데 이것이 (빠가, 또라이) 트럼프의 웃기는 발언들이나, major news outlet들의 조금은 과장된, dramatic한 style들보다 훨씬 믿음성이 있고 공감이 가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tech news podcast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로 코로나 사태의 모든 것을 가늠할 것이다.

 

Backyard에 있는 open shed를 tool, workshop shed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  어제 밖 backyard에서 일을 하며 라디오로 조지아 주의 코로나19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이발소 같은 곳이 문을 열기시작 했다는 소식이었다. 성급한 느낌은 떨칠 수는 없지만 다른 쪽으로는 심리적으로 무엇인가 평상으로 돌아 간다는 느낌도 있었다. ‘과학적’으로 아직 business 를 열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 그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면 이것도 이해는 된다. 먹고 사는 것, 그것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런 문제를 피부로 못 느껴도 머리로는 알 수 있지 않을까?

 

¶  오늘 우리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본당 레지오의 꾸리아에서 한국 서울 세나뚜스 단장의 글을 forward 보내왔다. 레지오 마리애 잡지에 난 기사를 보낸 것인데,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레지오의 시련, 도전, 그리고 희망에 관한 메시지였다. 교회전체가 겪고 있는 시련과 도전에 못지 않게 레지오도 앞으로의 운영과 선교 방향이 미지수인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회적 거리두기, social distancing’ 와 레지오의 (대인 선교) 활동방식을 어떻게 지혜롭게 절충하느냐 하는 것인데, ‘쫄짜’ 단장인 나도 요새 이것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올 지경이다. 이것이야 말로 올해 우리들의 풀어나가야 할 제일 큰 도전인 듯하다.

 

¶ 故 최인호 (연세동문선배, 작가) 의 1990년대 말 자전적 수필집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 요새 신들린 듯이 필사를 하며 읽고 있고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읽으며 생각하는 것, ‘젊은 날의 약속’ 이 제목인 데.. 이것을 아마 언젠가 한번 읽었고 그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다. (서울)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던 이야기였다. 당시에 나는 ‘꿈속에서나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그리운 동창회 광경이었다. 한마디로 슬프기만 했던 심정이었다.  이 글은 그가 50세가 넘으며 쓴 것인데, 어쩌면 그렇게들 그 당시에 벌써 ‘늙음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부러운 것이다.

 

50년 前 4월을 가며…

2020 이라는 숫자와 더불어 ‘0 제로’로 끝나는 지나간 해들을 중에서 1970이라는 숫자는  반백 半百 50 오십 이라는 숫자와 맞물려 ‘반세기’라는 특별한 세월의 흐름을 만나게 된다.  나에게도 반세기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해당이 된다는 것, 반세기란 세월이 오래 전, 소싯적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장구하고, ‘영원스러운 [이런 말도 있나?]’ 시간은 아닌 듯 느껴진다. 물론 50년은 결코 짧은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이 기억에 의하면 바로 엊그제의 일들로 느껴지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특히 나에게 1970년 4월의 대한민국은  더욱 그렇다.  잊으려 해도 잊으려 해도 안 잊어지는 듯, 이렇게 끝까지 남아서 ‘즐겁고, 괴롭게’하는 것들,  9년 전에 이 당시의 추억을 blog post로 남기기도 했었다. 

 

귀환 후 축하 파티에서: Fred Haise, Jim Lovell, Jack Swigert (l to r)

 

¶  Apollo 13:  50년 전 1970년 4월, 그 유명한 ‘Houston, We have a problem‘, 아폴로 Apollo 13의 ‘무사귀환’ 사건이 있었다. 4월 11일 시작된 Apollo 13의 달로 향한 여정은 13일에 산소탱크가  폭발하는 사고를 맞았다.  Thirteen, 13이란 숫자의 무서운 위력을 보여주는 case였다.  재수없게 운석隕石에 맞았던 것으로 처음에 추측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 ‘인재 人災’였다. 부랴부랴 달의 중력의 힘으로 달을 선회한 뒤 귀환하는 과정은 사실 극적이었다. 하지만 NASA engineer를 비롯한 전체의 팀이 인간 이성과 과학적 방법을 총 동원해서 17일에 무사히 귀환을 시켰다. 

 

산소탱크 폭발 후 표면이 떨어져나간 Service Module, 대기권 들어오기 전에 분리된 후

손에 땀을 쥐게 한 대기권 재진입 이후, 무사히 귀환된 commander Jim Lovell

인류 사상, 처음 달에 착륙했던 Apollo 11 이후 대중적인 관심도가 떨어진 때라서 처음에는 TV 중계조차 없었지만, 이 사고와 극적인 생환 덕분에 3명의 우주인 astronaut들은 하루아침에 세계적 관심을 받게 된 영웅이 되었다. 이 당시 전 세계사람들의 관심과 우려가 대단했던지, 바티칸의 교황님이 공개적인 무사귀환 기도를 드릴 정도였다.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달에 첫 착륙을 했던 아폴로 11호 보다 이들이 더 기억에 남는 ‘전설’ 이 되었고, ‘가장 성공적인 실패‘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1970년 4월,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  아~ 지리산:   극적인 세상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던 시기에 나는 백두대간 白頭大幹 의 마지막 자락에 우뚝 솟은 [빨갱이 중의 빨갱이, 공비共匪들로 유명했던] 지리산 전全 코스 능선 종주등반을 하고 있었다. 연세대 4학년이 시작되었던 때, 학교의 소속과 (전기공학) 의 제주도 졸업여행을 사양하고[빼먹고] 친구들과 3명이 거의 일주일 동안 지리산 등반에 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나도 철이 없었다. 일생의 단 한번 대학 졸업반 여행이었는데, 그것을 빼 먹고… 지금 되돌아 보면 후회가 되지만 그 당시에는 사실 조금도  다른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청춘의 멋과 내음새’ 로 머리가 가득 찼던 ‘4월의 노래’였다.

그 당시의 세상은 사실 미국의 counterculture와 맞물린 격동의 시기였고 우리들도 박정희 정권 타도 데모, 빨갱이를 의식한 학원내의 교련 강요 등등으로 소란했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격동의 시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학생데모가 터지면 휴교를 틈타서 ‘산 행’을 생각하며 즐겁기까지 했던, 참 지금 생각하면 철 없고 어렸던 시절이었다.

 

1970년 4월 22일 첫 지구의 날 행진, 차가 완전히 사라진 뉴욕 맨해튼 거리에 운집한 군중들

 

대조적인 대한민국, 늘어나는 자동차가 자랑이던 때, 초라한 지구의 날 보도

¶  Earth Day 50주년: 그 해 4월 22일에는 아폴로 13호 와 다른 미국발 뉴스가 있었다. 바로 Earth Day ‘지구의 날’, 민간인[사실은 정치인] 의 자발적 운동으로 시작된 날이 바로 4월 22일었다.  창시자는 비록 정치인이었지만 순수한 의도로 개인적 신념으로 시작, 결과적으로 전세계적인 ‘환경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주로 교육과 계몽을 목적으로 시작된 이 지구의 날 행사는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로 전 세계로 알려졌고 특히 뉴욕에서의 행사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반응을 일으켜서 이날, 지구의 날의 장래가 아주 순조롭게 계속됨을 예고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대한민국에서다. 환경오염 같은 것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발전구상에 전념하던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 부자나라들의 사치 정도로 비쳐졌던 것이다. 사실 나도 그랬으니까… 가난해서 먹을 것이 우선인 곳에서 조금 더 맑은 공기는 사실 사치에 가깝게 들렸다. 하지만 50년 뒤의 결과를 보면, 이날의 창시자들의 원대한 꿈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First Earthday activists, volunteers in Washington DC, 1970

 

A day under pandemic

 

¶  어제 일기예보는 거의 정확했다. 아침 9시경에 드디어 꾸르릉거리며 새카만 하늘로부터 빗물이 쏟아질 태세를 잔뜩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열대성 기후 같은 소리지만 밖에 나가보니… 이건 아주 싸늘한 공기였다. 오늘 하루 종일 온다고 하는 비, 내일이면 개일 듯…  갑자기 초록색의 농도가 진해지는 뒷마당을 보니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듯한 느낌,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로 시작되는, 김대붕 선생님의 추억이 어린 ‘4월의 노래‘ 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제 4.19 학생혁명의 추억도 색깔이 바래지고, 모든 것들은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Tobey Trail, 2년 전 떠난 나의 분신 dog, Tobey가 묻힌 곳으로..

 

¶  일요일마다 오랜만에 이영석 신부님 얼굴을 ‘화면’으로 ‘제 시간’에 보게 되는 것, 솔직히 즐거운 일이다. 가급적 주일미사 기분을 느끼게 해 주려는 ‘생방송’ 미사, 얼마나 멋있고 효과적인가? 신부님, 정말 정말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편한 곳에서 편하게 미사 봉헌하는 것,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한국본당 도라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우리에게는 거의 순례자적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곳,  예의 주일 교중 미사 YouTube Live stream 으로 주일미사 참례를 마치며,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우리 신임 주임신부님, 정말 멋진 사제로구나 하는 것. 처음보다 더욱 이곳에 적응하며 잔잔한 빛을 발하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어떻게 그렇게 ‘양떼들, 전 신자들’의 고민과 관심에 공감, 동참하는 것일까… 그렇다. 진정한 목자라는 것은 이래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의 공지사항으로 알게 된 것, 궁금하던 것,  언제 아틀란타 대교구의 미사가 재개 되는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결국은 ‘무기한 미사 중단’이란 답을 듣게 되었다. 우선 당분간 우리의 적당히 적응된 daily routine에 변동이 없는 것은 마다할 것은 없으나, 이것 좀 이 지역의 코로나 사태가 이 정도인가 하는 의구심과 걱정되는 마음은 떨칠 수가 없다.

 

¶  요새 열심히 읽고 있는, 연세대 동문선배, 최인호 님의 수필집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손을 놓을 수가 없다. 흡사 나의 분신, 아니 다른 이상형이 쓰는 듯한 그런 감정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동류의식’… 이것이야 말로 지금이라도 찾고 보는 보물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벌써 반 정도 독파를 하는데, 이 수필에 열거되는 각가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나의 추억과 생각을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야무진 생각까지 치솟는다. (또 다른 서울고교 출신) 인호(형), 고맙습니다!

 

¶  어둠 속에서 central heating의 저음 소리를 들으며 침대를 기어 나오면 또 습관적으로 ‘성모님, 하루 또 부탁합니다!’. 생각보다 싸늘한 날로 시작되는 모양, 비가 완전히 그치지 않은 모양으로 그래서 더 춥게 느껴지고 아래층에도 히터가 요란하게 나오고 있다. 그래, 4월에도 이렇게 추운 느낌이 있었어… 하지만, 곧 따뜻해질 거야…

곧이어 월요일 새벽을 알리는 trash truck 요란한 저음의 진동, 또 한 주일이 시작되는구나… 저 청소부 아저씨들, 가랑비를 맞으면서 거의 로봇처럼 일을 하는데,  저들이 요새 우리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시켜주는 ‘천사’들이 아닐까?

 

¶  어제 어떤 자매님이나의 blog에서 성녀 파우스티나 Faustina 의 冊 ‘자비는 나의 사명‘을 smartphone에서 볼 때 글자를 더 크게 볼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이 분야는 나의 약점이다. 나의 브로그 는 사실 작은 화면을 의도적으로 염두에 안 두었다고나 할까… 커다란 screen위로 멋지게 design된 것으로부터 ‘초라하게 작은 창’으로 그것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이게 한단 말인가? 이런 추세가 시작되면서 이렇게 ‘싸가지 없게’ 걸어가며 webpage를 보는 것을 상상하며 ‘치를 떨었다’. 하지만 역쉬~~ 세상은 나의 뜻대로, 나의 마음대로 가만히 있어주지 않는가? 더 많은 사람들, 주로 ‘게으른?’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 어쩔 수가 없다.

부랴 부랴 나의 phone으로 나의 website를 보니, 요지부동, 전혀 글자나 화면의 모든 것들을 크게 작게 할 수가 없다. 다른 site들은 손가락 두 개로 pinch-zoom 자유자재로 크기가 control이 된다. 왜 그럴까? 나의site의 technology가 또 뒤쳐진 것인가? 그렇다. 나의 것도 기왕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여야 하고 (선교의 차원), 이 문제를 풀어보자.

오늘의 pop project, pinch & zoom function on touchscreen device… 결국은 한가지 방법을 찾았다. 문제는 나의 Artisteer theme 들의 <head> tag에 있는 viewport meta data 에 있었다. 하지만 다른 문제는 이 head meta tag을 바꿀 방법이 한마디로 더럽다는 것이다. 일일이 server에 이미 있는 theme folder에 가서 header.php 를 reedit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바꾸어서 test를 해보니 정말 와~  pinch & zoom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급할 때 글자나 모든 것들을 크게 볼 수 있을 것이다.

Code:

<meta name=”viewport” content=”initial-scale = 1.0, width = device-width” />

 

 

Omega Seamaster, ticking & live again!

 

¶  Omega ‘wrist’ watch: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shelter-in-place 의 결과로 수난을 겪는 것 중에 하나가 나의 손목시계였다.  Pandemic 전의 ‘정상적인 생활’에서 나는 이 손목시계를 아침에 꼭 끼고 외출을 하였는데 외출이 거의 없어지니까 이것의 ‘죽어버린’ 것이다. 40년 전 결혼선물로 받았던 이 Omega Seamaster, 결혼 초에 쓰다가 값싼 Timex 같은 것 때문에 보석상자 속에 보관을 하였던 것을 몇 년 전부터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계는 automatic이라서 어느 정도 움직여 주지 않으면 서버리는 불편함이 있었기에 사실 실용성에는 문제가 있었다.  한때는 Electric motor를 사용해서 움직여주는 gadget을 살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사치다.

요새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아하! 아침에 일과를 시작하면서 그것을 손목에 차면 간단히 해결된다는 사실…  그래서 집에서도 오전 8시에 꼭 차고 오후 5시에 벗는 습관이 지금의 코로나사태의 선물로 남게 되었다.

 

돌아온 공동배당 묵주기도

어제는 조금 변칙적인 날인가…  평소에 아침잠을 즐기는 연숙이, ‘새벽’  7시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부리나케 차를 몰고 아침 8시에 문을 연다던 도라빌 Doraville H-Mart로 간 것이다. 무엇을 sale을 하는지 모르지만 집에 있는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가보니 9시로 시간이 바뀌었다고 울상, 결국은 기다리다가 장을 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모든 하루 일과가 조금씩 늦게 진행되는 하루가 되었다. Grocery shopping이 거의 모험이 된 듯한 요즈음, 다시 깨닫는다. 아… 먹는 것이 이렇게도 중요한 의무요 책임이었구나…

 

‘연세대 선배, 인기작가’ 고 故 최인호 님의 ‘필사’ 중인,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를 읽으며 지금은 ‘아버지 상像’에 대한 글을 읽고 있다. 어찌 나의 아버지 상에 대한 의견이 없겠는가… 자상한 아버지의 함정, 단점, 허구성이랄까… 그도 아마 자상한 아빠였을 듯 보이지만 자책적으로 너무 감정적이라고 했다. 그런가, 바로 그것이다. 자상한 것은 감정적이라고…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고..  오히려 엄격한 것이 낫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니 공감이 간다. 우리 아이들도 그 집의 애들과 비슷하게 느꼈을 것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최인호 님와 비슷하게 나에게도 본받을 만한 아버지상을 배울 여건이 아니었지 않은가? 곧바로 나의 입에서는 자동적으로 ‘김일성 [왕조] 개새끼.. ‘소리가 다시 나온다.

 

어제 저녁부터 ‘레지오 공동배당’ 묵주기도를  5단으로 시작을 하였다. 감개가 무량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아련하고 그리운 추억과 생각에 잠긴다. 이 공동배당…을 얼마나 오랜 세월 나는 ‘신 들린 듯’ 하였던가…  이것을 거의 한 달 이상 못하며 살았다. 아니 거의 잊었다. 일주일에 거의 90단 이상 씩 하던 것인데… 이것은 안 된다. 안돼…. 무조건 시작하자. 어제는 5단이고 오늘도 5단, 아니면 10단… 이것의 ‘위력’을 나는 잊었단 말인가? 무조건 무조건 하고 보자.

 

 

흘끗 본 일기예보대로 정확하게 오늘 이른 새벽에 꾸릉거리면 잔잔하게 비가 내렸다. 어제 gutter를 청소한 후라서 조금은 기분이 가볍다. 그래 이것은 은혜로운 비라고 할 수 있다. 꽃가루 특히 송학가루 앨러지 의 귀찮음을 덜해주는 것이리라.

 보니, 토요일이다. 하지만 토요일이 무슨 큰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요새는 정확하게 모든 요일이 똑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예외는 일요일 주일 온라인 미사와 쓰레기를 버리는 일, 그것 뿐이 아닐까? 예전의 규칙적인 요일 별 외출, 활동이 제로가 된 상태가 이런 것이구나. 재미있기도 하다.

날짜를 보니… 18일… 그것도 4월 18일. 그렇다 내일은 4.19가 아닌가? 요새 대한민국에서 4.19는 어떻게 기억이 되고 있을까? 물론 googling을 하면 조금은 알 수 있겠지만 그런 overinformation 은 피하고 싶다.  99.9% 불필요한 그야말로 trash급일 것이다.  나는 나만의 4.19를 기억하고 생각하고 싶다. 역사는 계속 흐르고 보는 관점도 변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남은 4.19의 기억은 절대로 안 변할 것이다.

 

몇 달 만에 내가 우리의 점심을 준비하였다. 아침은 통상적으로 내가 준비하지만 점심은 아직도 우리의 ‘주부’인 연숙이 긴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든다. 하루 아침과 늦은 점심 두 끼를 먹기에 이 점심은 사실 다른 집에 비해서 훨씬 양과 질이 높다.

지나간 십여 년을 넘게 내가 만드는 음식 중에, 아침에는 pancake 그리고 점심에는 vegetable/ground beef stir fry, 우리는 그저 간단히 ‘소고기 볶음’이라고 하는,  이 두 가지는 이제 완전히 감이 잡혀서 눈을 감고도 만들 정도가 되었고, 맛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 평은 모두 연숙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과장된 표현일 것이다.

이렇게 같이 준비하고 같이, 편하게 먹는 두 끼의 식사는 정말 이런 코로나 사태 같은 비상시국에는 더욱 더 빛을 낸다. 동시에 이렇게 평화스럽고 맛있는 시간에도 걸리는 것은, 역시 현재 고생하고 있는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고, 그저 모든 것이 순리대로 하느님의 섭리대로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What now, after plateau…

코로나 사태의 희생제물, 동네 성당의 sanctuary가 굳게 문을 닫았다

코로나 사태의 선물: 가족들과의 즐거운 시간이 보이게 늘어났다

 

¶  그제의 열대성 stormy day 이후에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 바람이 그렇게 싸늘할 수가 없다.  이른봄에  흔히 보는  바람이 싸늘한, 하지만 찬란한 태양이 작열하는 날, 무엇인가 빠진 듯한 느낌을 달래기 위해서 거의 한달 여 만에 동네본당 Holy Family성당으로 차를 몰았다. 차로 1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 거의 10년 가깝게 정든 이 차길, traffic은 한산하였지만 계절의 신호는 현 사태와 전혀 상관없이 뚜렷하였다.

 

8여 년 동안 거의 매일 drive하면 다니던 Robinson Road, 한 달만에 주위의 초록색이 더욱 진해졌다

 

비록 공개적 모임은 없지만 그래도 성전 내부 자체는 open한 것으로 안 우리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신부님 차가 보이길래 반가웠지만 성당 입구는 굳게 닫혀있었다.  한 달에 한번씩 봉사단체에 food donation하려고 가지고 간 것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데 누가 나오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물건을 전해 주고 대성전 sanctuary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물으니, 모두 close되었다고 알려준다.

 

14처, 십자가의 길로 들어가는 입구

 

도라빌의 한국 순교자 성당은 성전의 문은 열어놓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곳은 닫았을까… 아쉽기만 하다.  대신 성당 뒤쪽의 수풀 속에 마련된 14처, 십자가의 길 station of cross 을 오랜만에 걷고 나왔다.  돌아오면서 다시 느낀다… 이런 상태로 더 오래가는 것, social distancing 은 흔히 아는 것같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사람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에 틀림이 없다는 엄숙한 사실을.

 

Thanks, Uncle Benjamin!

 

¶  Stimulus Gift: 평상시 오늘은 일년의 Tax Return을 하는 마감날이었는데, 그것이 코로나 사태로 7월 15일로 연기가 되었다.  IRS (Internal Revenue Service)에 세금보고를 하는 대신에, 오늘 Bank account를 보니 IRS에서, 예상하던 대로 deposit한 돈이 얌전히 들어와 있었다. 결국 지난 몇 주 동안 congress에서 그렇게 토론하던 것이 현실화 된 것이다. 완전히 정지된 경제활동으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Stimulus Package, 이것은 한글로 어떻게 표현하나… 요새는 이런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 고등학교 수준의 한글단어가 머리에 맴돌고 있는데 이런 전문용어는 무리다. 좌우지간 ‘경제활동 촉진을 위한’ 그런 정부지원책이 하나다. 2 Trillion Dollars, 이것은 그러니까… 2000, 000,000,000 dollars! 20조 달러인가… 이번에 완전히 all stop된 경제활동을 그야말로 구원하기 위한 단기 대응책이다. 이것이 모자라면 같은 규모의 2차 지원을 할 모양이다. Dollar는 미국 돈이니까, 하기야 찍어내는 것은 우선 큰 문제가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것 모두 자가적 빚이 아닌가? 누가 갚을 것인가? 아마도 우리 딸들의 세대가 아닐까…

 

¶  Plateau, 코로나19의  최악 사태를 지나가며:  비록 어제부터 코로나에 대한 ‘난잡한 뉴스, 선동적인 것들’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지만 아주 믿을 만한 단편 소식은 접하고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블로그 source가 하나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retire한 대학교수 출신, computer scientist, engineer  Michael Covington 박사, 그의 블로그 로부터 나는 간접적으로 이 미국과 이 조지아 지역의 코로나 확산뉴스를 접하는데, 이번의 post 에서 그는 현재의 코로나 pandemic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었다.

 

1.  What is vital is to stay in touch with reality. Coronavirus is not a piece of political ideology that somebody made up. It is a real, physical enemy. Those deaths in hospital corridors are real. Dr. Fauci really does know more about viruses than you do. And so on.

Our enemy is speculation — people who can’t distinguish “it might be” from “it certainly is,” and who promote unconfirmed possibilities as if they were confirmed truth. See also (9) and (10) below.

현실을 직시하는 것, 코로나바이러스는 사상적, 정치적이 아니고 물리적인 적이다. 병원에서 수없이 죽어가는 것도 사실, Dr. Fauci (NIH 전염병, 바이러스 책임자) 가 우리보다 이 병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음도 사실이다. 우리의 적은 근거 없이 추측하는 것, 실증되지 않은 사실을 부추기는 것들이다.

2.  Ignoring the virus was never an option. We’ve had 22,000 deaths. Would you rather have had half a million? You could easily have had that, if there had been no restrictions.

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시하는 것, 언어도단이다. 22,000 명이 벌써 죽었다. 50만 명이 죽는 것, 사회적 제한 조처가 없었으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3.  Our restrictions have paid off. Quite possibly, hundreds of thousands of lives have been saved. The national new-case rate peaked a few days ago. State by state, some states are going to have much later and lower peaks, which is a good thing.

[Afterthought: Models may have been inaccurate, but there’s no denying that the virus spread a lot less with our lockdowns than it would have without them.]

이런 사회적 제한조치는 성과가 있었고 수십만의 생명을 보호했다. 확진자의 수가 이제 고비를 지나고, 각 주에 따라서 늦게 완만한 고비가 올 것인데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바이러스 확산 정도는 확실히 사회적 제한, 봉쇄조처와 비례하고 있다.

4. The virus would have damaged our economy no matter what we did (even if we had ignored it and just let a lot of people die). The reason you didn’t hear economists objecting to those stimulus payments is that knowledgable people recognized that a rise in the national debt would be better than sudden mass poverty.

어떤 조처를 취했든 간에 경제적 타격의 정도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만 감염자, 사망자의 숫자는 상관이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모든 시민들에게 보조금을 준 것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알만한 사람이면 모두 동의하듯이 ‘빚을 지는 것이 갑자기 모두가 가난해 지는 것보다 낫다’ 라는 논리 때문이다.

5.  Our economy can’t sustain forever what it sustained for a month. Damage to the economy itself causes deaths, not only here but (perhaps even more so) in poorer nations that rely on us for trade.

현재 몇 개월 지속되는 경제적 타격은 무기한 오래갈 수는 없다. 이런 피해는 다른 사망자를 유발하기 때문이고,  무역에 유지하는 빈곤국은 더욱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6.  We are going to have to do some kind of gradual, careful reopening of the economy, starting with businesses that don’t involve crowds of strangers.

이런 상태의 경제는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시 가동시켜야 한다. 특히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그런 사업, 가게 부터 제한을 풀어야 한다.

7.  With the wider availability of coronavirus tests, some experts are recommending a shift to a strategy of restricting only people who are known to be infected and their immediate contacts. I hope this proves feasible.

바이러스 테스트가 광범위하게 실시될 때, 관계자들은 감염자나 그와 접촉한 사람들만 골라서 거주제한을 하여야 한다고 권하고 있고, 이런 방법의 실행이 어렵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8.  The virus will linger. For a couple of years, we are going to have to behave as if we were in a bad flu season, continuing to take some precautions.

코로나 바이러스는 질질 끌며 계속될 것이다. 몇 년 후에는 이것도 보통 독감 같이 취급을 하며 살게 될 것이고 이에 대해 조심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9. I know you’ve heard that some people say the virus escaped from a lab in China. Please be assured that many governments around the world are looking at this, and that they know more about it than you do, and are going to pay attention. In the meantime, it doesn’t affect what we need to do going forward.

[Afterthought: The lab thing is a red herring. Even if it was just bad sanitation, it was an international hazard that came from China. Flu epidemics have been coming from China with some regularity. This can’t go on.

사람들은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의 어떤 연구소에서 새어 나온 것으로 많이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보다는 이미 세계의 많은 정부기관들이 이것을 조사하고 있고, 그들이 우리들 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알려질 때가지 우리들은 현재 하고 있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비록 이 중국 연구소 이야기는 확실한 것은 아니더라도, 중국으로 부터 출발한 많은 위험들, 특히 독감 역병 같은 것은 거의 정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이렇게 계속 갈 수는 없는 것이다.

10. There is research on hydroxychloroquine and other drugs that might kill the virus. Please let medical research proceed, and don’t spend your time trumpeting one success story without knowing whether others have gotten the same results.

[빠가 또라이] 트럼프가 ‘자기의 직감으로’ 코로나 특효약처럼 볼 때마다 언급하던 이것 [읽기도 힘든 화학용어]은 그야말로 먹을 때 기도를 잘 하면 낫게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인데… ‘과학적’으로 확인이나 증명이 되기 전에는 선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 먹고 5년 후에 ‘확실히’ 사망에 이르면…  [이것은 나의 철저한 상상적 의역에 불과함]

 

Near perfect Monday after…

동네를 걷다가 하늘을 보니.. 지난 밤의 폭우성 구름이 걷히며 청명한 하늘이…

 

봄바람이 시속 10+ 마일 정도로 불며,  갑자기 파래진 나무 이파리들이 계속 살랑거린다. 꽃, 나무, 송학가루가 진해지기 시작하기만 하면 시원한 바람과 빗물로 씻어 진다. 이것이야말로 천혜 天惠 라고 하던가… 거의 완벽한 날씨가…

2020년 부활절 바로 다음날, 그러니까 부활주일 월요일인 셈이다. 가톨릭 전례용어로,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영어로는 ‘Monday within the Octave of Easter‘ 인 셈이다. ‘그 망할 놈’의 pandemic 코로나 바이러스만 빼면 near perfect,  gorgeous day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날, 지나간 한 주일, 특히 성주간, 성삼일 을 되돌아본다.

 

성목요일 온라인 미사, 이날은 각자의 가정에서 ‘세족례, 발씻김’ 의식을 했다

 

제일 큰 관심사였던 성삼일 Triduum  미사와 부활절 낮 미사는 예정된 대로 online live YouTube stream 으로 각자 집에서 참례할 수 있었다. 매일 미사를 이미 online으로 하고 있어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모두 live라서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TV/Monitor앞에 있어야 한다. 매일미사 (대부분 cpbc, 평화방송) 는 사실 on demand format이라 우리에게 편한 시간에 했지만 Live Format은 모든 신자들이 같은 시간에 참례하는 것이라 더욱 큰 의미와 무게를 가진다.

이번에 아틀란타(나는 ‘애틀랜타’라는 ‘괴상한’ 이름을 지독히 싫어함, 언제 누가 왜 바꾸었나?)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주임신부님 (이영석 세례자요한 신부)을 비롯한 봉사자들이 4일 동안 정말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은 듯 보인다. 아마도 주임신부님의 의지였을 듯 하다. 또한 부활절 낮 미사의 강론은 정말 근래에 보기 드문,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명 강론으로 꼽고 싶다.

안방 TV screen 위로 4일 동안 계속 마주보게 되는 주임신부님의 얼굴은 ‘교우 여러분들, 그립습니다…’ 그 자체였고 그것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눈물이 날 정도였다. 어려운 시기에 어떤 목자가 진정한 목자인가는 이런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코로나 사태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미사 자체는 순교자성당의 대성전에서 평소에 하던 그대로 집전이 되었지만 일반 신자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그저 ‘쓸쓸한’ 그런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부님을 보좌하는 사람들과 성가대의 보조를 최소한 인원으로라도 참여시켰으면 어땠을까 아쉽기만 하다.

 

현재의 Shelter In Place (Stay Home, 칩거?) life style도 거의 한 달에 가까워 온다. 지난 주일 날, 성지주일 Palm Sunday에는 ‘용단을 내려’,  새로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손자를 보러 20 마일 떨어진 곳까지 외출한 것을 제외하면 사실 그야말로 ‘칩거생활’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Social Distancing 같은 New Normal에 아주 적당하게 적응을 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너무나 평화스럽고 건강한 나날들이 된 듯하다. 

한때 ‘난무하는’ YouTube의 함정에 빠져 우울하기도 하고 기운도 빠지곤 했었다.  그곳에 잘못 빠져서 하루 종일 코로나19 뉴스를 보게 되면 정말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오늘부터는 ‘완전히’ 그곳에서 빠져 나오니, 정말 세상이 다르게 보이며 살 맛도 제자리로 오는 듯 하다. 그래… choice다, choice… 이제는 지긋지긋한 또라이 트럼프가 10대 깡패의 얼굴로 기자들을 위협하는 희귀하고 희한한 광경을 안 보게 될 희망이 생긴다.

 

우리 subdivision의 30분 walking course ‘trail’ roadway, Guilford Circle

 

이제는 연숙과 30분 걸리는 우리 동네 Hanover Wood trail (사실은 roadway)를 걷기 시작한지 한 달도 넘는다. 이번에 느낀 사실은 이 walking trail course가 정말로 우리 나이에 알맞은 코스 [거리나 경사] 라는 사실이다. 이것으로 나는 물론이고 연숙에게 나타나는 ‘건강의 신호’는 정말 놀랍기만 하다. 고질적인 불면증도 아주 안정이 되어 혈압수치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걷는 그 자체보다 그것에서 얻는 평화의 느낌 때문일 것이라고 우리는 진단한다. 게다가 그 동안 각종의 외출로 힘들었던 뒤뜰의 텃밭을 가꾸는 일은 이럴 때 정말 완벽한 소일거리가 되었다.  이런 것도 어떻게 보면 코로나19가 준 good side effect가 아닐까? 하지만 이런 모든 예상치 못했던 ‘좋은 점’들에도 불구하고 우울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Work from Home

remote class 준비 중에 Ozzie가 학생 역할을…

 

Work from Home:  이번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이제까지 niche technology에 속했던 remote commuting이 하루아침에 신경제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다행인 것은 data network infrastructure 역할을 하는  세계적 Internet backbone이 큰 무리 없이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실한 data는 모르지만 아마도 full-capacity를 testing 할 만한 엄청난 data traffic이 현재 전세계를 흐르고 있을 것이다.

한 국가별로 보면 인터넷 기술을 발명하고 발전시켰던 미국은 비교적 작은 나라들에 비해서 뒤쳐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연방차원의 기술보급의 주도가 없었기에 여기서도 역시 빈부의 차이가 확실하다. 이런 것들을 보면 비록 현재 출마를 포기했지만 혁신적인 ‘사회주의 적 발상’을 선거 이슈로 떠올린 Bernie Sanders의 아이디어는 큰 설득력이 있다. 건강보험과 인터넷 이용을 특권이 아닌 기본권리, 혜택으로 보는 것, 이것은 사실 다수가 선택을 해야 하는, 간단하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일 듯하다. 

요새 주변을 보면 사실 코로나 사태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전 보다 더 ‘편한 생활방식’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적으로 사람들과 접촉, 접근만 못한다 뿐이지 그 이외는 사실 더 편할 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몸을 때우는’ 사람들, 그들의 정 반대의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아무래도 무언가 불공평한 것 같지 않은가? 사실 그렇다.

큰 딸 새로니, private elementary school teacher로 현재 역시 집에서 ‘가르치고’ 있고, 그 애는 사실 요새 ‘일하기 편한’ 부류에 속한다. 대부분의 잘 사는 집의 아이들이 대부분인 이 학교는 remote class 의 준비가 비교적 잘 되어 있는 모양이다. 올해 년 말까지 이런 식의 가르침을 대비하고 있다고 하니…  새로니 약혼자도 Verizon (communications)의 software engineer로 역시 ‘편하게’ 집에서 일을 한다.  이 친구 말이 코로나 사태로 인한 피해는 커녕 더욱더 business가 잘 된다고… 역쉬~~ 왜 안 그렇겠는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Internet service가 필요하니까. 

문득,  Aldous Huxley의 futuristic classic novel,  Brave New World 의 그림이 떠오른다.  그렇다, 인터넷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라서 이것이 어떻게 쓰이느냐는 전적으로 인류의 책임이다.

Corona List

 

평소에 독서의 [특히 양서良書 의] 기쁨과 효과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즐거움에 비례할 만큼 많은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것은 언제나 힘들었다. 그것도 대충 읽은 것과 꼼꼼히 읽은 것, 더 나아가서 ‘공부하는 자세’로 읽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책 읽기를 시작하면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우고 끈질긴 노력을 해야 끝을 내는데, 하루 하루가 뭔가 그렇게 바쁜 것인지 생각보다 힘들었다.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터득한 것 중에 하나는: ‘쓰면서 읽는 것’, 필살비법 必殺秘法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쓴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힘들고 typing을 하는 것이다.  편히 앉아서 편하게 눈으로 읽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겠지만, 조금 덜 편함을 택한 이 방법의 큰 장점은 ‘끝까지 다 읽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 그리고 끝이 나면 softcopy 하나가 거뜬히 남는다는 사실이다.

눈으로 읽는 것에 비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는 문제는, 시간을 좀 더 많이 쓰면 되는 것인데, 이번 코로나 사태가 바로 그것을 대폭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이 갑자기 ‘엄청’ 많아진 것이다. 이것으로 ‘실업자’인 내가 그 동안 그렇게 바쁘게 살았다는 즐거운 놀라움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앞으로 얼마간 이런 ‘한없이 긴 여유시간’이 계속될 지는 모르지만, 그 동안 끝내지 못한 책들을 하나 하나 모두 읽을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이름도 웃기는, 코로나 독서목록,  Corona List를 만들었다.  현재 진행중인 shelter-in-place lifestyle 이 끝날 때까지 이것만으로도 나는 절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1. A BURST OF CONSCIOUS LIGHT (Dr. Andrew Silverman)
  2. THE TURNING POINT (Fritzof Capra)
  3. THE TAO OF PHYSICS (Fritzof Capra)
  4. The Systems View of Life (Fritzof Capra & Pier Luigi Luisi)
  5. GENIUS (James Gleick)
  6. MY GRANDFATHER’S BLESSINGS (Rachel Naomi Remen, M.D.)
  7. TO LIGHT A FIRE ON THE EARTH (Bishop Robert Barron)
  8. 꽃삽, 이해인 글 모음 (수녀 이해인)
  9.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대표 에세이 (화가 천경자)
  10.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수필집 (최인호)

 

성 월요일 雜記

비교적 산뜻하고 편한 마음으로 일어난 성주간 월요일 아침.. 오늘은 어떤 날이 될 것인가? 요새 아침을 같이 먹으면서 내가 바보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바로 ‘하루 또 살아보자!’ 다. 그래 하루 하루 현재를 충만하게 사는 것이 나머지 인생을 충만하게 사는 것이다.

어제 성지주일, 머리에서 많이 떠난 사순절, 성주간의 느낌을 되 찾으려 부리나케 교황님의 쓸쓸하고 피곤한 모습을 보며 가슴이 저려온다. 교황님의 모습은 그야말로 고통 받는 쓸쓸한 목자의 모습이다. 그래도 우리 같은 양들은 조금 그런 모습으로 위안을 받는다. 

Palm Sunday 성지주일 일요일 낮미사, 이영석 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

 

어제 3주 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나라니 집, 산이를 보러 간 것이다. 로난, 산, 루크, 모두 조금은 아직도 생소한 느낌이지만 시간과 세월이 약일 것이다. 산이른 안고 보니, 어쩜 그렇게 귀여운지… 하지만 나는 예의 ‘참을성’을 발휘, 그저 지긋이 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나는 무엇이든지 무엇이든지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려다오..

운전을 하는 것이 이때처럼 즐거운 순간이 있었을까? 흡사 새벽 3시경에 freeway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그것 빼고는 모든 산천초목이 전혀 다른 것이 없다. 빛나는 태양도 마찬가지, 모든 건물들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정말 ‘혼이 빠진’ 듯 보인다.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그렇고 business들도 비록 일요일이기는 하지만 달랐다.  하지만 이것도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문득, 나의 산성 山城, 나의 보배 레지오 (마리애) 를 떠 올린다. 99% 잊으며 살아간다. 나를 10년 동안 ‘구원의 뚝’ 위 로  올려 놓으신 성모님,  성모님께 선서, 맹세, 약속한 것은 어디로 갔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인가? 레지오 단원으로서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기쁘게 하는 것 중에 ESP32란 것, 어제 Sparkfun board 를 ‘재빠른’ amazon delivery 로 받았다. 어쩌면 그렇게 빨리 올 수가 있었을까? 요새 이렇게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 customer를 상대하는 사람들, 거의 영웅처럼 보인다. 그들을 보통, 평소 때에 이렇게 감사하며 살았을까? 그들의 minimum wage, 이곳에서는 아직도 $6 이 안 된다는 사실이 더욱이 놀라게 한다.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이래서 Bernie Sanders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번 코로나 사태를 당하고 보내면서 이런 사회적 문제와 목표가 다시 재조명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럴 때 교회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

 

Corona Beer보다는 Heineken Beer가…

Heineken beer, 부대찌개, 알맞게 따뜻한 화창한 날씨…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우리 집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이상으로 자기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 다는 사실과 우리가 현재 시간 시간 보내는 것을 비교해서 그런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연숙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일까?

 

며칠 전부터 말썽을 부리던 bidet가 설치된 ‘나의’ toilet (stool) 이 완전히 막혀버렸다. 정말 신경질이 나긴 했지만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일을 벌렸다. 무언가 ‘꽈~악~’ 막혔다는 결론에서 그것을 ‘뚫어야’ 겠다 는 일념으로.. 시작했다. 호기심이 불편함을 이긴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 일을 한 결과는, 역쉬~ 냄새 나는 ‘그것’, 아마도 수십 년 동안 막혀있었던 것들이 하나하나씩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물리적’ 방법보다는 ‘화학적’인 방법이 더 빠르고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안심하고’ 나의 bidet toilet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휘파람이 나온다.

 

total plumbing & cleaning toilet stool

 

Wild Turkey 그리고…

 

¶  이른 아침에 놀랍게도 wild turkey가 우리 집 정문 앞에 서있었다. 그렇게 가까이 야생칠면조를 보는 것은 물론 처음이다. 하지만 곧바로 나는 ‘얘가 어디서 살다가 길을 잃었나..’ 하는 지나친 연민을 떨치려고 애를 쓴다.  나중에 창문 틈 사이로 살펴보니 이미 떠난 후였다. 어디로 갔을까? 얘들은 이 동네의 어느 곳에서 사는 것일까? 왜 내가 이렇게 ‘animal, bird lover’가 된 것일까? 나는 이것도 분명히 성모님이 나를 ‘질책’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약한 것에 대한 무관심, 학대’에 대한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성모님, 이제 그만 하셔도 됩니다. 나는 이미 그들을 나의 몸이라고 믿으니까요… 앞 집에 사는 Josh가 전화와 text로 친절히 알려 준 덕분이었다.

 

¶  이 조지아 지역도 드디어 어제부터 general lockdown 이 선포되었다. 우리에게는 물론 큰 차이는 없지만, 글쎄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조심조심 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일부러’ 밖에 나가는 것을 조심하라는 의도라고 생각하자. 아직도 직장이나 가게에 꾸준히 나가는 사람들, 꽤 주변이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너무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면 조금은 고개가 수그러지기도 한다. 이럴 때 재미로 나갈 사람은 없지 않을까? 설 형제와 이형의 얼굴이 떠오른다.

New York, New York!

 

이제 조금 습관이 되어가고 있는 cpbc (평화방송) online mass, 오늘 아침도 거르지 않고 둘이서 참례를 한다. 이제까지 주로 집전신부들은 거의 ‘젊디 젊은’ 모습들이어서 조금 나에게는 생소한 느낌이었지만 다른 쪽으로는 내가 그 동안 많이 못보고 살았던 ‘젊음의 피’를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매일 참례하는 신영성체, 평화방송, 목요일 미사

 

오늘 미사를 마치며 문득 현 사태의 모습이 떠나질 않고 잡념으로 들어온다. 오늘 것은 바로 New York, New York이란 것, 함께 Frank Sinatra의 classic hit 의 율동이 느껴지면서 곧바로 2001년 9/11의 치솟는 불길과 굉음이 귓전을 때린다. 역시 지금 그곳이 겪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시장의 환영을 받으며, 뉴욕 harbor에 도착한 병원선, USNS Comfort

 

미국의 얼굴, 미국의 저력, 미국의 허점, 미국의 역사… 모든 것이 똘똘 뭉쳐있는 그곳, 현재는 어떤가? 매일 매일 세상을 떠나는 불쌍한 영혼들의 숫자가 예전의 모든 사태를 완전히 넘어서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요인들은 이론적으로 설명이 될 것이지만, 나는 그 이상의, 높은 곳의 요인들을 생각하며 ‘운이 없었다’는 말은 그렇게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아침 cpbc onliine 미사가 끝나면서 그곳에서 현재 고통 속에서 사투를 벌리는 모든 New Yorker들을 생각하니 눈물까지 흐른다. 오늘 매일 미사의 결과인가… 강론 때문인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응원을 그들에게 보내고 싶다. 그야말로 fighting, fighting, 화이또, 파이팅 New York, New York!!

 

April’s Fools…

 

¶  Psalmy Morning:  4월이 시작되는 이른 아침은 밝지만 겨울처럼 싸늘한 느낌을 준다.  지나간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어온 순교자 성당의 야심에 찬 yearly project, 성경통독, 이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어둠 속에서 성경을 펼친다.

거침없이 정직하게 흐르는 세월은 결국 우리 모두 신약성경을 모두 읽게 만들었다. 이것을 계기로 조금 신약의 전체 흐름과 느낌을 새롭게 하였다. 매일 복음과 더불어 이것은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너무나 감사한 것이다.

오늘 아침에 펼친 시편, 91편… 어쩌면 timing이 이렇게도 맞아 떨어지던가… 어둠과 두려움은 한마디로 악, 악의 표현, 구현이니까… 궁극적인 피난처를 우리는 믿는다.

 

나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밤의 공포도

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어둠 속에 돌아다니는 흑사병도

한낮에 창궐하는 괴질도.

네 곁에 천 명이,

네 오른쪽에서 만 명이 쓰러져도

너에게는 닥쳐오지 않으리라.

오히려 네 눈으로 바라보리라.

악인들이 벌받음을 너는 보리라.

이는 네가 주님을 너의 피신처로,

지극히 높으신 분을 너의 안식처로 삼았기 때문이다.

너에게는 불행이 닥치지 않고

재앙도 네 천막에는 다가오지 않으리라.

 

<시편 91편 중에서>

 

¶  April’s Fools:  H 자매로부터 S 형제의 소식을 잠깐 들었다. 다시 비관적인 평가를 시작하는 것이, 옛날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  Counselor 상담사를 만나기 시작한 이후 일말의 희망을 건 것이 사실이었는데… 근본적인 변화는 전혀 없었던 것인 듯하다. 그렇다면 그 나름대로 ‘꾀’를 부리며 주변 사람들을 오도 誤導한다는 느낌도 없지 않으니…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단 말인가? 본인이 전혀 문제가 없다는 병적인 집착이 모든 비극의 원인일 듯하다. 나의 말대로 이것은 한마디로 ‘하느님의 영역’이다. 어쩔 수가, 기도 외에는, 없다.

 

3월을 결산하며 가능한 한 많은 ‘묵상, 단상, 기록, 일기’를 블로그에 남기려고 ‘이를 갈고’ 있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 내가 나 자신을 sabotage 하며 지낸 것이 거의2주가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노력할 것이다. 의미 있는 나의 깊은 생각을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나 자신이나 우리가족에게 어떤 후유증을 남겨놓을 것인가? 내가 걸리면, 우리 가족이 걸리면, 아니 주변사람들이 걸리면, 심지어 죽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는 ‘설마, 설마, 설마’하고 외치지만 자신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나이를 의식하며 걱정해야 될 운명이지만 아직도 큰 걱정은 안 하고 있다. 경제적인 것이 더 관심이 가고 있지만, 더 이상 어떻게 최선을 다 한단 말인가?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가끔 그립고,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문제가 없으니까 성당도 가고 하고 싶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제를 한다.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내가 나를 막는 것, 큰 자신은 없지만 이것이 모든 것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 참자.. 연숙이가 손자를 보러 나라니에게 가는 것도 사실 조금 걱정이 되지만 그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라니가 그렇게 엄마를 찾는다는 것은 흐뭇하기도 하고, 아직도 나이는 들었어도 변함없는 막내라는 느낌도 든다.

 

근래에 우연히 성당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시몬형제, 나이는 10년 아래이지만 ‘교회적, 성사적 신심’은 놀랄 정도로 투철한 형제다. 특히 성사, 미사참례를 절대적으로 여기는,  요즘 주변에서 보기 드문 남자라고 할까. 알 수 없는 면이 더 많은 듯한데 우선 친근감을 주며 우리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느낌에 ‘알 부자’인 듯 하기에 조금은 우리와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면도 없지는 않다.

이 형제가 어제 밤에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기대했던 것이라 놀라진 않았다. 하지만 나 같으면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고 조금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부자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듯한 것, 왜 나는 그런 것들에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냥 받아들이면 되지 않는가?

 

이것과 연관되어서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도 곁들여 반성을 하고 싶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South Korea는 과연 현재 나에게 어떤 나라인가 하는 절대적 명제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왜 그렇게 씨름을 하는 것일까?

오늘 이런 나의 어려움과 씨름하며 문득 깨우치는 것이 있었다. 왜 나는 현재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닐 수가 없지 않은가? 미국의 좋은 점, 조국의 좋은 점 모두 나에게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하며 산 것일까?

이제는 아무래도 더 늦기 전에 조국과 더 친하게 되어야 하는 것인 아닌가? 어떻게? 연숙의 수준 정도로 조국의 참 실상을 서서히 알아 보면 된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고, 우선 실상을 알아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