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간 60년의 세월은..

이제는 ‘명실공히’  나는 60세가 넘었다.  앗 싸리 넘어 버리니까 조금 후련한가.. 그러니까 그걸 기다리는 게 더 초조 했던가.  매도 먼저 맞고 주사도 먼저 맞으라는 것과 비교가 될라나.  아마도 남들도 그렇게 느낄지도.  마음 같아서는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보내고 싶은 심정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우선 우리 ‘극성맞은’식구들이 그렇게 놔둘 리가 없고, 나도 그건 좀 너무한 것 같은 생각도.  그래도 예상보다는 더 차분하게 그리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연숙과 나라니 가 참 정성껏 모든 것에 신경을 쓰며 보아주었다.  이번에는 나도 좀 이 ‘극성맞게’ 일을 하는 모녀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식구’의 본래가 아닌가..

십 년이 넘게 눈에 거의 보이지 않던 ‘통’ 기타를 잡아 보았다.  물론 미끄럽게 이것을 다시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좌우지간 그걸 ‘치게’도 되었다.  한마디로 감개가 무량하고 옛날의 거의 산화가 되어가는 악보를 다시 보니 그런대로 생각도 나는 듯 하였다.  엇그제 같기도 하고 아주 몇 백 년 전 같기도 하고 조금은 혼동도 되는 게.   무슨 소릴하는 건가.  다 생각이 나는데.  그냥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 뿐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10년 그러니까 나의 50대..는 정말 정말 정말 힘든 세월이었다.  거의 한번도 행복이란 걸 느낄 수 없는 세월들.  내가 인생의 어려움을 잘 감당을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때의 상황들이 그렇게도 어려웠던 것일까.  아마도 둘 다 일 거다.  하지만 어렵다는 걸 일초 일초 느끼며 살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는 뜻도 되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 치는 않지만 최동명씨의 지론에 의하면 그런걸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배가 부르다’는 뜻이란다.  하지만 사람이 배가 부른 게 다 인가 말이다.  하기야 그렇다.  배고픔 정도까지 만약에 경험을 하거나 걱정을 할 정도가 된다면 그렇게 될지도.  다행히 아직(?)  나는 그런 경험은 못했다.  한마디로 어머님의 철저한 도움으로 나는 컸으니까  생각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은 아니다.  아직도 나는 막연히 ‘누군가’ 나를 도울 거라는 거의 형편없는 ‘망상’을 가지고 사는 지도 모른다.  나도 그게 싫지만 한편으로 ‘즐기는지’ 도 누가 아는가.

 

환갑 생일의 추위는..

강 추위 계속.. 나의 환갑생일날.. 아득한 옛날.. 엄마 고마워요..

강추위가 계속된다.  대한이고.. MLK [Martin Luther King] 휴일이고.. 나의 환갑날이다.  차분하게 느끼려고 노력 노력을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안정되지 못함을 느낀다.  나도 무언가 ‘선’을 넘는 듯 한 느낌.. 남들도 다 이랬을까.. 아니다.. 개개인 마다 다 느낌이 다를 것이다.  어머니, 고마워요.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이런 날도 맞게 해 주셔서.  아니 이세상에 ‘이경우’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가능케 해 주신 것.. 기억조차 없는 아버님께도.. 그리고 엄마 아빠를 존재케 해 주신 조상님들 모두 모두…

어제 저녁에는 모처럼 식구들과 함께 부엌에 앉아서 오늘 쓸 음식준비를 거들었다.  나라니 와도 정말 모처럼 도란도란 얘기도 했는데.. 느낌이 어쩌면 그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역시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고.. 대화도 같이 앉아야 더 재미있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더 나라니 에게 대한 나의 감정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더 느낀다.  아마도 아마도 이 모든 나의 느낌은 내가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만은 항상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할것 같다.  기도에서도 이것을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간밤에는 참 재미있는 두 가지 꿈을 꾸었다.  그게..참.. 현재 Democratic party의 John Edwards의 선거운동에 내가 참여를 한 것이다.  이게 또 무슨 개꿈일까 아니면..  최근 들어 고전을 하는 그가 불쌍해 보였는가.  아니면 암 투병으로 고생을 하는 연상의 부인 때문일까.  그 부인과 악수도 하였다.  신나게 노래도 하였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나의 잠재의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사실 그런 미국대통령선거를 피부로 느낄 정도로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다음이 더 추억거리인데.. 국민학교 6학년때 짝이었던 “이규재”를 어릴 때의 얼굴로 보았는데, 사실 너무 반가웠다.  그는 나처럼 반갑지는 않았던 듯 한데.. 그에게 다른 그때의 친구들에 대해서 물어 보려는데 거기서 끝났다.  이규재..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도 경기 중학교에 갔나.  사실 아무런 그 이후의 소식은 모른다.  그도 죽기 전에 한번 소식이나 들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