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Trinity Sunday 2026!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 지난 주일의 Pentecost 성령강림 대축일에 이어 2번째 연속 대축일을 맞는구나. 삼위일체 대축일, 이날이 되면 가톨릭 교회, 전통적으로 많은 교구사제들이 골머리를 앓게 된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만큼 설명하기 힘든 교리이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어떤가? 꽤 오래 전에 나는 다행히 이 난관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다사 원점으로 돌아오고 있는 끔찍한 느낌, 없지 않다.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 것 아닐까? 하지만 아마도 머리 좋은 신부님, 예를 들면 ‘한국 서강대 예수회 석학, 송봉모 신부님’은 어떨까? 한번 그분의 ‘해석’을 알아보고 싶은데~ 

오늘 새벽 일어나며 머리를 무겁게 하던 것은 오늘 주일 아침미사, 구 신부님의 ‘이임, 작별 미사’일 것이다. 조용히 살려고 애를 쓰는 우리에게는 ‘갑자기’ 다가온 이 소식, 4년 이상 줄기차게 들어왔던 ‘그 예수신학 강론’을 이제는 못 듣는 세월이 시작된다는 생각의 진정한 의미를 찾느라 애를 쓰는 나의 모습이 조금 ‘병신’ 같지 않은가?
최소한 나에게는 오늘의 주임사제가 바뀌는 사실로 지난 4년간의 성당 공동체 생활이 아쉬움의 연속이었다는 고백을 숨길 수가 없다. 어렵던 시기에 마음 편하게 사제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싶었던 때마다 따뜻한 사제의 눈길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으니~ 예수신학도 중요하지만 인간 대 인간의 따뜻한 눈길, 손짓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을까?
거시적 사목방침도 마찬가지, 차세대를 겨냥한 우선권의 조정도 중요하지만 다른 세대들에게도 같은 정도의 할애는 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았을까? 낙동강 오리처럼 외로운 세대들이 점점 더 ‘안 보이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다음 차기 신임 신부님(들), 사목기간을 시작하며 현재 본당의 실체를 조금 더 넓게, 공평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도 한가지 박수를 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성당 사무실, 사무장 문화가 180도 혁신적으로 ‘하루 아침’에 바뀌게 된 것, 이것은 전임 사제들도 어려워했던 일이었기에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구나.

이즈음 나를 안심, 편안케 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빌어먹을’ 혈압 수치가 아닐까? 몇 년 전 한때나마 primary care clinic의 어떤 ‘왕초짜 NP’ [이후 NP라면 과잉 discount’하게 되고] 의 과잉, 교과서적 진단으로 이 수치에 얼어붙었던 trauma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서 그런가, 이것이 ‘정상’이면 나는 우선 기쁜 것이다. 최근에 다시 약 Amlodipine을 조절한 이후 일주일 넘게 수치는 그야말로 120/80공식보다 훨씬 밑도는 것이 그렇게 통쾌한 것, 참 이런 나의 모습에 내가 (비)웃는다. 나도 별수 없는 ‘살고 싶은’ 인간임을 어찌 부정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