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의 꿈인가~

감사, 감사~ 합니다~ 무사히 ‘제시간, 6시’가 되어 일어났으니까~ 한번도 ‘그곳’도 안 가고 깬 적도 없는 숙면 급이었지만, 꿈은 다시 신비의 다른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으니, 이건 금상첨화가 아닌가?
이번 꿈은 약간 독특한 것이어서 자꾸 되돌아보는데~ 꿈 속에서 꿈을 꾼듯한 기억이 남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차원’의 꿈이 아닌가? 꿈 속에서 꿈을 꾸며 그 꿈을 그 속에서 생각했다는 ‘사실’, 물론 100% 사실이라는 객관적 증거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다고 느끼는 것, 정말 신비로운 세상은 어딘가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이른 새벽이 가볍기만 하구나, 감사, 감사!

2월 28일? 윤달이 아니면 내일이 삼일절? 결국 2월도 오늘이 마지막이란 말인가? 물론 2~3일 짧은 한 달이니, 빠를 수 밖에~ 강추위와 눈/비 같은 날씨의 뉴스, 그것이 별로 재미가 없었던 기억이 남지만 한두 번 아주 추웠던 기억은 있으니 결국 ‘보통의 2월 경험’을 한 셈이구나. 그래, 그 보통의 세월이 제일 좋은 거다.
점점 backyard의 모습이 파릇파릇하게 변하는 듯 보인다. 키다리 나무들은 아직도 겨울 나목 신세지만 땅과 흙에서는 한창 봄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상상을 하는데~~

오늘 모처럼 육체적 노동을 하게 되었다. 머리보다는 근육일 필요한 순간들, 전처럼 무심코 이런 류의 일들을 대하지 않으려 노력을 한다. 우선 나의 기본, 근본적 건강상태를 안 볼 수가 없는 나이가 된 것, 자꾸만 잊으며 사는데, 자각 증상에 너무 의지하지 않으려 기를 쓴다. 오늘도 그런 순간들.. 1992년 이곳에 이사올 당시부터 집 앞에서 우리와 함께 살았던 진달래, 그것을 오늘 뒷마당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는데 나무가 아닌 것이어서 생각보다 일찍 일은 끝이 났다.  옆 이웃 데레사네 집은 꽤 많은 꽃나무들을 옮기는 일들을 아예 handyman들을 불러서 bobcat 으로 처리하는 것을 보았지만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 다행인 거다.

로난의 여섯 살 생일날에..

오늘은 2월 27일, 하~ 우리의 첫 손주녀석 로난의 6번째 생일이구나! 억척 엄마 덕분에 무섭게 무럭무럭 행복하고 쾌활한 남자아이로 변신한 모습, 3살 밑 동생 Knox의 귀여운 모습과 함께 오늘 온 사진들을 보니 생일을 집에서 치른 모습. 그런데 도대체 6살은 어떤 나이인가?
6살, 6살은 어떤 ‘것들’이었나? 우리 아이들, 그 중에서도 첫딸 새로니의 6살은 언제였나? 1983+6=1989.. 1989년에 6살이었구나.. 그렇다면 아~ 우리가 Madison, WI에서 이곳 Atlanta, GA로 이사올 때였구나!  대강 그림이 그려진다. 나에게 6살이라면~ 1948+6=1954년, 재동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해,  당시의 기억은 의외로 생생하다. 그때를 기준으로 거슬러 올라간 기억의 한도는 아마도 4살까지가 아닐지.. 6.25 전쟁 자체는 전혀 기억에 없지만 휴전 전후의 기억은 비교적 떠오르니까.. 이런 이유로 나는 6.25 전쟁 당시를 기억하는 ‘형님세대’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우리들에게는 모두 이야기로 듣던 것들이었으니까..

사방이 고요하다. 무언가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없다는 것, 비도 완전히 그쳤는가 보다. 어제는 참 오랜만에 ‘쏟아지는’ 비를 구경할 수 있었던 멋진 늦겨울, 정녕 조금씩 봄이 오는 것인가. 그래서 어제 꽤 많은 화분들이 바깥 바람을 맞게 밖으로 이사 나갔는데, 조금 이른 듯하지만 그것이 대수인가? 나에게 포근하면 이 ‘식물’아이들도 포근할 것 아닐까?
밤 잠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아니 문제는커녕 한번도 눈을 뜬 적도 없었던 깨끗한, 완전한 수면건강~ 우선 감사하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깨어나서 머리 속은 그것과 전혀 다른 ‘불안, 초조’의 전초전이라도 벌어질 듯한 것, 감사는커녕 침대에서 쫓겨나오는 듯한 나의 모습, 왜 이럴까? 무엇이 불안하고 초조한 것일까?  이유는 알듯 하지만, 나는 맞상대, 아니 대면을 피하고 있다고 확신을 한다.

나이에 의한 기억력의 감퇴~ 그것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는 것이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이라는 것,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주서서 마주서서, 마주서서 정면으로 정면으로 confront, confront~~
거의 일주일 이상 동안 나는 반성은커녕 지난 시간을 완전히 잊으며 살아가고 있고, 그런 사실에 짓눌려서 더욱 망각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는 착각, 아니 착각이라고 믿고 싶은, 그런 것~ 왜 이렇게 나는 지지리도 못난 인간으로 삶을 마감하려고 하는 것일까, 왜? 무능력의 극치, 무기력의 극치에 짓눌려서~

오늘 손끝에 ‘잡힌’ 추억의 사진 두 장을 값싼 frame에 끼워 놓았다. 하나는 이미 frame이 되어 있었던 1996년 경 연숙의 생일 때에 찍은 가족사진이고, 다른 것은 1968년 가을 관악산에서 찍은 연세대 친구들의 모습.. 아~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리운 젊었던 시절의 모습들,  그리고 그 당시, 그때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는 거다. 이제는 꿈 속에서나, 다음 세상에서나 볼 수 있을지…
오랜 세월 텅 빈 우리 집 벽들, 그렇게 많았던 picture frame들을 모조리 철거한 이후, 거의 방치상태로 도대체 몇 년이 지난 것인가? 이유는 아마도 wall painting을 준비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기억이 안 난다. 이제 문제는 이대로 살다가 가련다~ 인가, 아니면 ‘마지막’으로 한번 이 텅 빈 벽들을 새로 채워놓을 것인가~  결국은 ‘마지막 작업’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채울 것인가~ 쉬운 선택은 물론 그 동안 제일 큰 변화사항이었던 것, grandkids 세대들의 모습들일 것이고, 다음은 아마도 우리 부부의 초창기 모습, 결혼식 사진들, 그 다음이 문제다. 1990~2020년 30년 동안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보일 것인지…

YMCA pool & gym, McDonalds‘ Fish Day… 사순1주 2번째 gym, 이것이 우리 근래 삶의 목표가 되었는데, 드디어 그 goal을 성취하는 기분, 나쁘지 않구나. 이즈음 드물게 보았던 어제의 폭우, 덕분에 흠뻑 젖은 대지는 서서히 봄의 기운을 올려주고 있는 모습, 앙상한 나무 가지들은 여전하지만 이것, 정말 시간문제가 아닐지.. 어느새 또 이런 세상으로 변하게 되었는가?
오늘 track walk 1.6마일, 그리고 조금 강도를 높인 machine routine을 했는데, 이제 새로 바뀐 이 machine들에 조금 익숙해진 듯하다. 앞으로 조금 더 강도를 높이는 것도 어렵지 않을 듯 하지만 혹시라도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은 절대로 조심을 해야~

오늘 점심은 McDonald’s의 fish sandwich (Fillet-o-fish)을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그것도 double fish아닌 것으로 해서 저녁 때 출출할 것을 예상했는지 예외적으로 ‘저녁 간식’을 먹게 되었다. 오징어와 부추로 만든 ‘해물 부추전’, 이런 것이라면 자주 먹어도 언제나 환영이다.  이것으로 하루 두 끼 식사가 끝나면 우리는 100% 자유시간이 되는데… 하루 두 끼 식사의 생활,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던가? 이것은 우리, 나의 ‘기록’을 암만 찾아도 추측할 수가 없다.

사순 1주 목요일, misty rain on & off

눈을 어슴프레 뜨고 본 시계는 4시 30분이 지난 시간, 또 고민의 시간, 미적거리다가 다행히 5시가 지나며 일어난다. 명목상 7시간은 잔 것이니까~ OK, OK… 
어제 밤 늦은 시간에 오랜만에 wine을 마신 것이 역효과를 낸 것인가, 아니면 안 먹던 도넛까지 먹고 잔 것의 영향? 아닐 것이다. 그런 것들이 무슨 영향이 있겠는지..

50도가 훨씬 넘는 것, 우선 싸늘함은 느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포근한 것도 아닌 것. 2월 말의 느낌이 이런 것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거린다. 정신을 차리니 사순절의 시작 첫 주가 이렇게 지나가는 것,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아마도 순식간에 부활절을 맞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지 조바심까지 나는데~ 하, 참 나의 소심증, 왜 그렇게 조바심 속에서 살려고 하는가? 조금 가슴을 펴고 대범하게 자신을 가지고 편하고 즐겁게 살지 못하는가?

이번에는 예보가 맞는 모양이다. ‘비’라는 예보에 얼마나 자주 콧방귀를 뀌었던가? 이 지역 날씨의 특성을 알기에 지나치게 비판적일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이것은 정말 작은 chance game인데~ 지난 번에는 아까운 ‘눈 구경’은 놓쳤지만 이번에는 ‘진짜 쏟아지는 비’구경을 실컷, 그것도 하루 종일 하게 되었으니, 공평한가.

지겨운 YouTube trash들로부터 피하고 도망한 것이 다른 쪽 Roku near-trash였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머리 속의 ‘쓰레기’ 냄새가 조금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니까~ 이곳, 저곳 정말 피할 수 없는 시청각 쓰레기들, 어떻게 알맞게 요리하며 살 수 있을지~ 길지 않은 생애가 길게만 느껴지는 날~ Obituary라는 b-movie, 그곳의 주인공, 어찌나 Dolly Parton과 닮았던지 아마도 그것이 ‘재미’있어서 끝까지 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climax는 실망 그 자체, 요즈음 나의 삶의 기복을 보는 듯해서 씁쓸하기만~

몇 달 동안 안전하지만 답답했을 2층 실내 plant room에서 대량의 화분들이 비구경과 빗물을 맞으려 이사를 나왔다. 아주 가벼운 화분들이지만 개수가 아주 많아서 이것도 아주 알맞은 exercise가 되는 것, 특히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하체 운동이 꽤 되었을 듯~  정말 이렇게 가까이서 화초생명들을 코끝에 가까이하게 된 것, 얼마만인가? 지난 해 9월 말부터 2월 말까지 잊고 살았었으니까~ 이제 이 녀석들, 제대로 신선한 공기와 물을 마음껏 맛보며 ‘시집 갈’ 준비를 할 것을 기대하니 작년 3월 말의 기억이 솔솔~ 그때 Saybook Nursery ‘tiny home business’를 나라니의 도움으로 1주일 이상 open했던 것, 올해도 그때와 비슷한 모습이 재현될 것 같은데… 그것이 3월 말이었으니 아직도 봄은 더 기다려야 하는 듯…

이즈음 마지막으로 ‘진짜 쇠고기’를 먹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전혀 기억이 없다. 몇 달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채식주의자가 된 것도 아닌데 동물성 단백질은 어디에서 얻었는지 생각해보나 거의 생선 류, 아니면 chicken류일 거다. 그러면 왜 beef (steak)는 왜 안 먹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가내 영양학도의 idea일 듯.. 나는 전혀 불만이 없는데, 그것은 과학을 초월한, 철학/신학적인 쪽에서 얻은 결론이어서 아마도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을 듯~~

Thorny Friday after Ash Wednesday

기온, 날씨, 촉감 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새벽과 아침, 60도 대의 기온과 바람과 구름이 요동을 치며 곧바로 비가 쏟아질 듯한 광경, 예보되었던 rain shower가 잠깐이라도 실현되는 듯… 하지만 곧바로 해가 뜬다고~~ 기온은 완전히 이름 봄~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다시 기온은 곤두박질~ 나의 날씨감각은 정확해서 2월 중의 놀라온 깜짝 날씨가 실현되는 듯.. 그것도 다시 영하로 떨어진다니.. 나도 며칠 전에는 추위가 사라진 듯한 착각, 잠깐 ‘속을 뻔’ 했으니.. 아직 그렇게 긴장을 풀 때가 아님을 또 잊었단 말인가~~

수면전선, 계속 이상무 異常無~ 이 정도면 무조건 감사를 해야지~ 한 밤중, 1시~3시 경에 깨어나는 ‘사고’는 아직 없으니까~  저녁 10시부터 아침 6시~ 이것이 ‘죽을 때까지’ 가능할 것인지, 나 자신도 궁금하기 짝이 없으니~~

어제 ‘외출할 예정 (이대 합창연습)’이었던 것이 바뀐 것, 일단 편하게 backyard을 하며 쉬긴 했지만 아직도 후회를 하는 듯한 ‘가노조’, 못 말린다. 몸과 타협을 하며 사는 것이 아직도 불편한가.. 나와 다른 사람이니 이해는 하지만, 이제 앞으로 이런 ‘타협의 나날’들이 점점 많아질 것을 예상하지 못하는지, 타고난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듯.. 오늘도 외출이 예정이 되었는데, 오늘은 어림도 없다는 표정이다. 아마도 ‘죽더라도 나간다’는 표정이니까..

이제 조금 빚을 갚은 안도감, 일단 끝났다. 2024년 나라니 성탄 선물로 받은 것, 이제야 install을 한 것이니~ 지독히도 미루며 살았던 인생이구나. 일명 dashcam이라는 것, 2024년 여름 대형 차사고 때문이었을까, 생각을 해서 준 이 선물을 미루고 살다가 오늘에야 제 위치를 찾고 wiring을 한 것. 일단 집안에서 test는 해보았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것. 이제 움직이는 차 속에서 video/audio recording을 시작하는데, 과연 얼마나 실용성이 있는지는 일단 이렇게 ‘달아놓고 써보는 것’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이 ‘after market’, economy gadget의 성능은 물론 minimal한 것, 유사시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큰 기대는 안 하지만 심리적으로 일단 도움을 주니까, 됐다, 됐어~  남은 문제는 back view camera의 wiring문제인데, 이것은 급한 것은 아니니 일단 시간을 두고 보기로…

오늘 backyard 일, 지난 번 같은 단순한 낙엽을 치우는 것이 아니었다. 옆집과의 사이에 ‘미개발된 땅’을 ‘개발’ 하는 첫걸음인데, 물론 대부분 잡초, 각종 뿌리 같은 것들을 ‘정지 작업’하는 것이다. 힘과 시간만 있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의외의 골치덩이들이 있었으니~~  맙소사! 가시, 까시, 가시덤불, 가시나무가 그 속에서 무성하고 있었던 것.  땅 바닥에는 물론 거의 모든 plant에게 이것들이 칭칭 감겨져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무성한 것일까,
조사를 해 보니 조금 이해가 간다. 이것은 자연재해가 아니고 인재에 가까운 것.  이것은 ‘당국’에서 땅의 erosion 대응으로 일부러 심은 것이라는 ‘설’이 있었고, 특히 property간의 경계를 표시하려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하니, 의문이 조금 풀린다. 문제는 이것들이 경계선을 무시하고 무섭게 퍼진다는 사실이니, 이렇게 고생하며 제거할 수 밖에…
이 가시덤불을 보니 timing이 적절한 느낌이 든다. 이것보다 엄청 고약하게 생겼던 가시덤불이 예수님의 이마에 얹혀 있는 그 모습이 떠오른다. 이번에 내가 직접 찔려보는 경험과 비교가 안 되는 예수수난, 특히 성금요일, Good Friday의 모든 장면들을 어찌 피할 수 있는가?

이제 Yonsook’s Garden, LOVE GROWS HERE의 표시가 눈에 ‘확’들어오는 때가 오고 있는 것인가? 수선화, 매화, 곧 벚꽃, 진달래… 결국은 사순절과 추운 봄이 섞여서 서서히 다가 오는데~ 나는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일까?

Ash Wednesday, 재의 수요일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조금 비 정상적인 수면시간이 되었구나. 어제는 연숙이 ‘잠이 쏟아지는 것, 못살겠다’ 며 저녁 묵주기도까지 마다하고, 거의 2시간 일찍 침실로 갔는데, 그것의 영향을 피하기 싫고, 나도 일찍 ‘파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6시 반, 평소보다 30분 늦게 일어난 것. 하지만 OK, 무겁던 머리가 훨씬 가볍게 된 것 감사해야지~

‘난생 처음’, 재의 수요일 미사를 한국어 미사, 순교자 성당에서? 재의 예식도 이곳에서~~ 처음, 처음.. 미국성당이나 한국성당이나 의식 자체는 다를 것이 없지만 분위기는 같을 수는 없다. 고향으로 온 것은 반갑지만 다른 고향 Holy Family 성당 아침 미사, 정말 장구한 세월의 추억이 남은 곳을 일단 떠났다는 사실은 아련한 아쉬움, 아픔으로 느껴지는 것, 어쩔 수 없다.
나도, 우리도 변하고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니 변해야 ‘산다’라는 당위성까지 느끼는 2026년의 사순절 시작을 맞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서로의 합의로 ‘난생 처음’ 순교자 성당 정오 ‘재의 수요일’ 미사엘 가게 된 것…
재의 십자가를 구 주임신부님으로부터 받은 것, 새롭고 조금은 감회에 젖기도.. 이제 이 주임 신부님도 서서히 이임을 준비하는 해를 맞고 있으니 올해가 마지막 인지도..

이제 사순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수요일을 맞으며 올해는 약간의 시상詩想까지 느끼게 되었으니~ 세월과 나이의 은총인가? 읽는 시, 시상은 수없이 보아왔지만 내가 쓰는 것은 완벽한 제로다. 하지만 팔십이라는 숫자가 지긋하게 누르기 시작하며 조금 용기가 생긴다. 나의 것, 나의 시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구질구질하게 긴, 횡설수설 산문체에서 떠날 수 없는가? 100 단어의 표현보다 5단어의 시의 위력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개인적, ‘개별적 상상의 혜택, 은총’ 같은 것.. 구체적인 것이 추상적으로 승화하는 것, 결과는~~

오늘 아침의 몇 단어는 ‘불에 탄 유해, 재로 변한 인생, 가까워지는 생의 종말..’ 등등..

재를 이마에 찍고
거울을 본다

지워지는 것은
젊음이 아니라
내가 붙들고 있던 이름들

나는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

 

늦겨울 가을 하늘, politics of contempt

‘제 시간’에 ‘정상적으로’ 제대로 일어났다. 6시, 6시의 ‘하루 시작의 빛’을 조금 기다리다가 때가 되어 일어났다. 머릿속에는 morning coffee를 만드는 나의 모습을 그리면서~  이제 조금 기온이 10도 정도 오른 것이 조금은 편한 것인가? 하지만 아직도 ‘무거운’ 옷을 찾으며~ 조금만 더 따뜻하면 어떨까~ 그래, 이제는 그쪽을 향한 긴 행군으로 가득 한 2월의 한 가운데를 가고 있으니까~ 기다리면 되는 거다.
그렇게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어제 오후 이후의 시간이 ‘무서워서’ 9시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니~ 물론 후회는 되지만, 그래 그런 때도 있는 거지, 나라고 크게 다를 것 있겠는가? 그럴 때는 그런 시간을 잊으면 되는 것 아닐까? 그래도 새벽의 routine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OK가 아닌가?

왜 이렇게 마음에 드는 글, 특히 글의 제목, 멋지고 솔직한 주옥 같은 어휘, 단어, 표현들~ 그것들이 모두 모두 나로부터 떠난 것일까? 나의 한글문장 실력은 아마도 잘 봐줘도 한국 고등학교 1학년 정도가 아닐까 하는 실망스런 생각, 예전에는 고교 3년 정도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는데 점점 내려가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다가 ‘갈 때’ 쯤이면 중학교 1학년까지 내려가지 않을까, 조금 씁쓸한 생각까지 드는데~ 이것, 조금 낫게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을까?

너무나 화창한 날씨, 오늘에야말로 ‘화창함의 정수’를 보는 듯하구나. 특히 하늘의 색깔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색깔~ 이것의 느낌, 아무리 묘사를 해도 ‘미친 문학용어’가 아니고 ‘각종 수학적 parameter’로 표현한다면 의미가 몇 %가 있을까? 이것을 경험하는 사람의 의식세계, 과연 객관화 할 수 있기나 하는 걸까? 속으로 ‘그것은 미친 짓’일 거라는 성급한 결론~~  너무나 성급한 인간들, AI 어쩌구 하며 호들갑을 떠는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나 알고 있는가, 나는 모른다. 그것이 point인 거다.
은총처럼 내리 쏟아지는 푸른 하늘의 정기를 흠뻑 받으니 저절로 손에는 yard tool들이 잡힌다. 일을 하라고 하면 반발적으로 늑장을 부리던 내가 무섭기 2시간의 ‘건강 노동’에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렇게 필요하다던 Vitamin D를 넘치게 흡수하던 고마운 오후가 되었다.

오늘의 점심~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니까.. 김치볶음밥~ 요즈음 부쩍 자주 보이는 음식이 바로 ‘김치’인데 왜 이것을 그 동안 못보고 살았던지…

FRANK BRUNI’S NYT OPINION, Chabot SUMMARIZED, politics of contempt
New York Times, Frank Bruni Newsletter를 다시 본다. 이번 issue는 ‘경멸, 무시의 정치’로 일관하는 현재 총 두목 SOB, Donald ‘일당’들의 마지막 수단에 대한 그의 분석, 논평인데 이것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물론 이 정리작업은 유명한 Chatbot의 몫이다.

이 칼럼에서 Frank Bruni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설득이나 정책이 아니라 ‘경멸(contempt)’의 정치라고 주장한다.

그는 법무장관 **Pam Bondi**가 의회 청문회에서 보여준 태도를 대표적 사례로 든다. 본디는 질문에 답하기보다 하원의원 **Jamie Raskin**과 **Thomas Massie**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발언으로 대응했다. 브루니는 이를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정치 스타일로 해석한다.

그는 Stephen Miller, JD Vance, Donald Trump, Kristi Noem, Pete Hegseth 등 행정부 핵심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비슷한 방식을 사용한다고 본다. 즉, 논리적 설득이나 책임 있는 설명 대신 상대를 악마화하고, 인신공격과 조롱을 통해 논쟁 자체를 무력화한다는 것이다.

브루니는 또한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트럼프 지지층의 일부는 과거 민주당 엘리트의 ‘오만과 경멸’에 대한 반발로 결집했다고 설명되어 왔다. 이는 **Barack Obama**의 “총과 종교에 집착한다”는 발언이나, **Hillary Clinton**의 “비열한 사람들(basket of deplorables)” 발언에 대한 반응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브루니는 트럼프 진영이 경멸을 없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정치의 중심 전략으로 ‘주류화’하고 ‘산업화’했다고 비판한다.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현재 행정부는 설득 대신 경멸을, 책임 대신 비난을 택한다. 상대를 도덕적으로 무가치한 존재로 몰아가면 자신의 실책이나 부패, 정책 실패에 대한 설명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루니는 이러한 정치가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민주적 공론장을 심각하게 훼손하며 결국 정치 자체를 ‘추한 서커스’로 전락시킨다고 결론짓는다.

이런 결론은 하나도 놀랄 것이 없다. 삼척동자라도 이제는 더 거짓포장, 거짓말, 협박, 염치불구 등으로 지속할 수 없는 그들의 시한부 운명, 한번 속지 두 번 속는가? 처음부터 안 속으면 좋겠지만 이제라도 제발 ‘우매한 1/2 국민들’이여, 잠에서 깨어나면 어떨까?

설날 합동 연령미사, 상차림 예절

꿈을 꾸다가 깨어난 5시란 숫자가 보이는 어떤 시간, 좋은 꿈을 꾸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것, 어쩌면 꿈의 방향이 또 아래쪽으로 떨어지는지~ 무엇인가 아래쪽에서 밀려 올라가며 서서히 부딪치는 곳은 ‘나이’라는 추상적인 숫자들, ‘너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구나~’ 하는 연민의 외침~ 이것은 분명히 내가 80이라는 숫자의 ‘막힘’을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생시의 의식이 돌아온다. 다른 쪽으로 ‘아~ 오늘은 7시에 집을 나가야지’ 하는 속삭임~ 그리고 어두운 비를 맞으며 ‘손님 교우을 대동하고’ drive하는 것까지 앞으로 짧은 미래의 모습이 펼쳐지는 듯..

방문교우 박 안젤라 자매님과 두 번째의 ‘동행미사 차, 30분  새벽 drive’를 하게 되었다. 비가 오는 어두운 밤을 둘이 아닌 셋이서 순교자 성당 아침미사 차, 집을 떠난다는 것이 이제는 ‘나이를 탓하는’ 듯, 조금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평소의 동행 인원 한 명과 지금의 두 명, 그것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  분명히 운전시 느끼는 ‘책임’의 무게가 다르니까~~ 우선 ‘교통안전’부터  시작해서, 미사 후 돌아오며 집까지 모셔다 주는 drive까지 완벽하게…. 이것도 작은 봉사요, 인연이라고 생각하면 예전의 레지오 봉사 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보람 있는 ‘설상차림’ 미사가 되지 않겠는지…

오늘의 주일미사는 예년처럼 설상차림 연령미사 형식, 생전 한번도 조상, 부모들을 위한 ‘전통’ 제사란 것을 지낸 적이 없었던 우리부부에게 매년 추석과 함께 우리의 뿌리와 전통을 일깨워주는 훌륭한 시간이다. 주임신부님이 예의와 격식을 모두 갖추고 상차림에 절을 하는 모습도 그렇고 같이 참여하는 교우들도 한결같이 정성스런 모습이 느껴진다.
오늘 함께 했던 동행교우 박안젤라 자매님은 아예 상차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알고 보니 이런 광경을 한국에서 본지가 아주 오래되었다고~ 그러니까 이곳이 한국보다 더 전통을 잘 지킨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고 하니 흐뭇하기도… 우리 본당 방문을 하며 사제들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에 아주 좋은 인상을 받은 듯해서 우리도 물론 안심이 되고… 게다가 미사 후 성모회 제공 ‘무우국’ 대접까지 받았는데, 이것도 한국의 그것보다 더 정이 느껴진다는 언급까지..  돌아오며 집까지 ride를 주면서 한국/미국 교회공동체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설날 연령미사, 상차림, 그리고 방문교우를 위한 ‘차량봉사’ 등등의 후광이었을까? 귀가 이후의 오후 시간은 그야말로 stress-free의 값진 시간이 되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rain shower,  진짜 비 다운 늦겨울 비가 내린 조용하고 고요한 일요일, 오후 감사하고 고맙다. 모처럼 마음도 고요해지는 듯… 감사, 감사…

2월 중순, top soil time인가~

¶  올해는 웬 이변인가? 매년 매년 이즈음이면 ‘마지 못해서, 이끌려서’ home center, nursery엘 가서 각종 garden soil를 사곤 했는데 올해는 내가 먼저 자수를 해서 이곳을 찾았다. 순수하게 도와준다는 차원의 이면에는 일단 외출, 그것도 Home Depot쪽으로 갔기에 문득 생각이 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상관없다, 계기, 동기를 넘어서 내가 주도해서 이것을 사왔던 것은 기분이 좋은 것이니까..  다른 이유가 있다면 나의 ‘삶의 근력’을 시험해보고 싶기도 앴는 데 물론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 작은 위로가 되었다.

¶  감사, 감사, 감사~~ 제 시간에 일어났지만..  미안, 미안.. 연숙아~ 지난 밤 불면증은 어땠는지? 또 꼬박 샌 것은 아니겠지~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 어제의 backyard cleanup 일 때문인가, 몸이 약간, 아니 조금 더 쑤시는데~ 이런 색다른 느낌 얼마만인가? 정말 오랜만이구나. 가을, 겨울을 살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바깥 일을 쉬고 지냈던가? 완전히 잊고 살았구나.
그런데  gym에서 의도적인 운동을 할 때는 이런 ‘근사한 근육통’을 못 느끼며 사는데 유독 집안 일, 그것도 yard work 후의 ‘아련한, 기분 좋은 통증’은 이렇게 멋있게 편한 것일까? 역시 인간의 진화를 통한 자연스런 원초적, 본능적 노동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혈압도 내려가는 듯하니~~
어제 back yard를 총정리 한 것, 별것 아니었는데~ 겨울 내내 쌓였던 낙엽, 솔가지를 dump로 옮기는 것, 완전한 늦겨울, 초봄 같은 파란 하늘, 날씨에서 보낸 한 시간, 분명히 이것이 영양제보다 훨씬 효과적인 운동이 된 것 같구나..

Jesus draws us into his space, the space of the Church. There, away from the crowd, we can immerse ourselves in the rhythm of the liturgy, listen avidly to Scripture, study the theological tradition, watch the moves of holy people, take in the beauty of sacred art and architecture. There we can hear. – Bishop Barron Word on Fire

¶  오늘 Father Robert Barron의 daily bible reflection에서 이 구절이 가깝게 다가온다. 간혹 spiritual 과 religious의 경계에서 헤맬 때마다 나도 spiritual but not religious의 함정에 빠지는 유혹을 받는다. 수많은 spiritual people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공자, 석가모니 등과 혼동을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성체, 성령, 성전, 그리고 교회를 떠난 곳에서 찾는 신앙의 위험을 경고하는 듯… 결국 ‘정통적 전통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선지자 적 주교’의 묵상인 듯…

¶  내가 좋아하는 아침식사 서비스를 받게 된 ‘금육 금요일’을 맞았다. Breakfast by Yonsook, 2 halves of boiled eggs, apples & avocado, mozzarella cheese & smoked salmon fillet on bread, very good~~~ balanced breakfast!

¶  YMCA indoor track walks(1.5 마일), gym exercises (machine), pool swim

¶  McDonald’s, Fish Friday lunch, double fish, Dr. Pepper for me

긴~ 세월 참았던 눈물의 폭소는~

몇 년, 아니 몇 십 년만인가? 얼마나 오랜만의 ‘사건’ 인가? 이렇게 눈물이 나도록 ‘혼자서’ 웃어본 적이 있었던가? 이번에 James Martin (예수회) 신부의 ‘젊은 시절 주제 ‘최신간, 자서전’, WORK IN PROGRESS의 title cover 에 보이는 그의 10대 때의 comic한 ‘selfie’ 사진을 보며 처음에는 왜 하필이면 이런 사진을 책 표지에 보여주고 싶어 했을까~ 하다가 마지막 사진, 이것을 보며 웃음이 터졌는데~ 겉잡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웃어야 할 때에도 별일 없었다는 척하며 내숭을 떨며 살아서 그런가, 정말 폭소의 한계를 넘는 순간을 맞은 것이다. 그런 다음 ‘아~ 나도 웃을 수 있었던 인간’이었구나, 안심과 감사의 순간들을 맞았고… 다음은 ‘Martin 신부님, 감사합니다’ 로 마음의 평정을 잡았다
분명한 사실은 ‘소싯적’에는 나도 이렇게 웃었던 생생한 기억이 있다는 것이고, 아마도 이후의 세월에서는 거의 잊고 살았던 것이 바로 이 ‘이빨과 혓바닥’까지 보이는 웃음을 살아본 것이 없었던 듯. 미소는 있었겠지만 폭소는 기억이 전혀 없으니~ 참, 재미없는 삶은 아니었을지도. 특히 2016년 11월 이후는 100%  웃을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기도 하다.

새벽 5시 반의 ‘그곳의 부르심’, 곧이어 기상~ 머리가 너무나 가볍게 느껴지고, ‘불안, 초조’의 그림자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예외적인 하루의 시작인가? 일어나려는데 ‘한잠도 못잤~’의 정해진 comment를 뒤로하며 느끼는 미안함, 다행히 오늘은 쉬기로 했지~ 그래,  하루 삶의 일정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이런 자유스런 삶도 나쁘지 않구나.
전형적인 2월 중순의 날씨의 느낌, 예외적이 아닌 통계적 평균, 보통의 기후 pattern, 날씨에 관한 ‘호외적’ 뉴스가 거의 없는 이 metro Atlanta 지역의 주민인 것을 감사한다.

오늘의 아침 메뉴, 색깔의 balance가 적당히 맞는가? 영양적 balance는 그런대로 pass일 듯, 그래 이 정도라도 내가 만들어 serve할 수 있는 이런 생활에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 무조건~ 무조건~~

이른 봄을 연상시키는 멋진 날씨~ 새파란 하늘~ 적당히 따뜻한 기온~ 지난 가을부터 쌓였던 낙엽들이 쌓일 대로 쌓였다. 나는 가급적 이런 ‘원시적인 모습’을 좋아하지만 꽃나무들의 향연을 그리는 연숙이는 다른 생각, 깨끗이 치우자는 지론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을 치우는 일, 주위의 이웃들은 일꾼들을 시키거나 monster처럼 소음을 내는 leaf blower를 아예 등에 메고 깨끗이 치워 그것도 모자라 아예 paper bag에 담아서 trash truck에 버리는데 우리는 다행히 backyard에 상당히 넓은 dump area가 있으니 다른 집보다 훨씬 편하구나. 감사, 감사…

Regular Checkup Day

지극히 정상적인 수면건강, 계속되는가~ 6시 직전에 pee 차 일어나서 6시 하루를 알리는 ‘복도의 불’이 켜지며 일어났다. 이제 이 6시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나의 기상 시간’이 될 듯 하구나. 어제의 ’70도 봄기운’의 덕분인지 별로 움츠리는 싸늘함이 하나도 없다. 2층 에는 아예 heating이 나오지도 않는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그곳은 조금 다른 곳인가, heating 소음이 들린다.
지난 밤, 아마도 새벽, 남아있는 꿈이 비교적 선명하구나. 하지만 이것은 싫은 것, 대학시절인가~ 괴로운 강의실 광경, 이것은 분명히 괴로운 학업성적에 의한 것인가, 그곳에서 박창희를 보았는데, 그것도 행복한 시절의 그것이 전혀 아닌 것, 왜 이 싫은 상황, 광경들이 나를 아직도 우울하게 하는가, 지금 와서 어찌하라고~~

오늘 새벽은 다른 때와 조금 다르게 정신이 조금 맑게 느껴지는데, coffee routine이 없는 것이 이렇게 다른가? 오늘 순병원 regular checkup때문에 no eat, 그 대신 혈압 약 복용 시 대량의 물을 마셨다. 지난 번 checkup때의 실수가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어서 명심을 하고~~ 지난번 urine sample 시에 그것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당황을 했었으니까..

우리 부부와 어느덧 6년째의 관계 인연을 자랑하는 이곳, AG Family Clinic (일명, 순병원), 오늘은 정기 검진의 날, 건강에 관한 큰 ‘현안’은 없다지만 어디 우리 나이에 그런 평가를 할 수 있는가? 매번 매번의 방문이 새롭고 조심스런 나이를 살고 있는데..
이곳의 staff들, 아는 얼굴들은 이제 정이 조금 들어간다. 이들 중 어떤 staff은 아예 연숙의 ‘친지, 심지어 친구’들처럼 보인다. 무뚝뚝한 정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금메달 깜 주치의, 이제는 우리도 적응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쉽고 아깝다. 내가 그의 위치에 있었다면 (심한 비약이지만), 절대로 같은 시간 동안 1000%는 더 다정하게 자상하게 할 것 같은데~ 어쩌면 그렇게 engaging, empathy가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눈도 마주치지 않고, laptop의 data가 전부인 태도, 그와 반대의 case, 즉 너무나 동네 의원 병원 아저씨 같은 style 얘기도 듣긴 했지만, 어찌 그 중간 style이면 누가 때리냐? 도대체 의과대학에서는 의사를 완전히 robot로 키워낸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점점 AI doctor들이 출현하고 있으니, 제발 좀 인간다운 의술을 다시 찾는 것이 그들의 job security에도 도움이 될 텐데..

방문교우 ‘동행’ 주일미사

주일 새벽  routine, 아예 bed room 전깃불 켜지는 시간을 6시로 10분 당겨놓았다. 그것이 오늘은 별로 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이미 그 이전에 ‘히터 소음’으로 깨어났기 때문이다. 조금 더 긴장, 신경이 쓰였던 이유는 오늘 아침 drive하는 것이 예전과 다른 것~ ‘손님’을 태우고 성당엘 가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보는 가톨릭 교우 자매님을 ‘모시고’ 가는 것.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필요이상으로 스트레스까지.. 예전 레지오 활동시절이었으면 아마도 더 적극적으로 ‘차량봉사’란 이름으로 ‘점수따기’의 차원으로 활발하게 대응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추억과 함께 다가오는 주일 새벽~ 오늘도 이 ‘손님’ 자매님의 동행에 함께 하시는 성모님을 상상하며 나갑니다…

동행 손님,  의정부 교구 소속 가톨릭 교우 박 아녜스 자매님, 정말 약속한대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때에 사위가 운전을 해  모시고 우리 집에 도착, 우리 차로 함께 성당엘 가게 되었으니~ 참, 오랜만에 에너지 충만한 사람을 만난 듯..  첫인상이 재미나 유머감각, 그리고 상식적인 60대의 모습, 알고 보니 갓 70세가 되었다고.. 처음으로 우리와 동행한 교우와 함께 미사 참례한 case가 아닐지~  어떻게 우연히 YMCA pool 에서 만났는지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한국에서 방문한 교우를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작은 인연이 아닐지…

 아~ 오늘 미사집전, 조성재 요셉 ‘젊은’ 신부님, 반가운 모습, 오늘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여전히 우리는 감탄, 감동, 안심의 연속, 이런 멋진 신부님의 강론과 함께 하는 미사는 한마디로 은총이 아닐까? 특별히 오늘 함께 동행했던 자매님이 강론에 대한 의견, 생각이 우리의 그것들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한 것..  오늘 미사 동행했던 것에 대한 감사의 표정까지~ 교구 사제와 예수회 사제의 강론이 차원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으리라 희망하는데..
이 동행 자매님 덕분에 오랜만에 ‘bakery/cafe 하얀풍차’을 가보게 되었다. 예전의 모습이 아닌 느낌, 성당 교우들의 모습은커녕 Asian들의 모습도 볼 수가 없었으니… 그래서 그런지 지나간 시절들이 그리워지기도~ 예의 바른 이 자매님이 계산까지 하였고 내가 이곳에서 제일 좋아하는, 맛 있는 팥도넛, 나에게는 special한, Americano coffee그리고 처음 만난 ‘무주 출신 자매님’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꽃을 피웠던 오늘 미사 직후의 시간은 오랜만에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듯한 신선하고 멋진 시간이 되었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 순교자 성당,  자매교우들이 이분처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부질없는 지난날의 각종 불미스런 사건들을 떨치려 노력을 하는데~~ 이제는 늦었다는 자괴감과 함께…

오늘 점심은 이것 ‘김치, 계란말이, 무 말랭이, 새우장 등이 곁들인 일요일오후형 막국수’, 이런 것 아마도 식당에서 찾기 힘든 메뉴가 아닐까?  거의 매일 늦은 점심 식사 메뉴 찾기가 힘든 ‘가정주부’에게 나의 알량한, 빈약한 menu idea가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오늘 떠오른 모습이 바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 그것도 맑은 국물이 철철 넘치는 막국수~ 완전 성공한 오후의 영앙분이 되었다. 감사, 감사…

며칠 전부터 싸늘하기만 한 backyard를 서성거리는 연숙의 모습이 그렇게 처량맞고 쓸쓸하게 보였는데, 알고 보니 거의 느껴지지 않는 봄의 냄새를 느끼려는 것, 더 나아가 갑자기 폭발하듯 피어날 각종 봄 화초들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첫 번 것, 역시 우리의 희망, 수선화였다. 이것 파처럼 꽃대가 보인 것이 며칠 되었던 듯~ 멀리서 보아도 선명한 노오란 꽃, 아~ 바로 우리 집 pet cemetery가운데서 피어난 영롱한 수선화, 건강해 보이는 이 모습, 이 녀석들이 용케도 시베리아성 추위를 견디어 냈구나! 반갑다 반가워~~ Welcome Back!!!

나무 기둥 높은 곳에 달아놓았던 새집, 내가 만든 것인데 몇 년 동안 별로 새들이 이곳에 드나드는 것을 못 보다가 얼마 전부터 보이는 것, 새집 입구가 점점 커지는 것~ 아하~ 덩치가 큰 새들이 들어가려고 쪼는 것이구나~~ 그런데 넓어지는 모양이 조금 험하게 보인다. 새들의 소행이 아니고 다람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쉬~ 어제 먼 곳에서도 다람쥐 머리가 보이는 것. 역시 새들을 쫓아내고 녀석들이 자리를 잡았구나… 이제 새가 오기를 글렀지만 그래도 이런 풍경이 더 자연스럽게 보이니까, OK, OK…

땅과 나무의 기둥을 보다가 하늘을 보니~ 아~ 아직도 멀었다~ 진정한 봄이 오려면~ 생명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고목들, 아니 봄을 기다리는 각종 꽃나무들이 거의 숨을 죽인 듯한 모습, 음산하기 그지 없는 것.. 그래, Groundhog의 예측대로 진정한 봄은 6주 뒤에나 온단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올 봄은 작년의 경험을 통해서 흥미롭기만 한데~ 작년 봄, 나라니의 tip으로 시작한 Saybrook Nursery ‘business’, 그것이 올해도 ‘성공적’인 결과를 보일 것인가? 그것이 제일 기다려지는 것이다. 거의 $1000 earned  income을 주었던 한 달 동안, 그것으로 봄이 오는 줄도 모를 정도였던 것 아닌가? 아마도 연숙이는 일년 내내 이 시기, 순간들을 기다리고 살았을 듯 하다. 힘든 것은 내가 도와주지만 모든 big idea는 그녀의 몫이어서 아주 이상적은 부부의 시간을 만들 수도 있는 이것, 아마 이 집이 우리에게 주는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것, 이런 은총이 언제까지 계속된 것인가?

경운합창동호회 첫 연습곡, 뭉게구름: 이정선….
처음 들어보게 된 이 곡, 이정선? 나는 ‘우리시대 여자가수’ 문정선의 정선만 아는데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한마디로 내가 100% 놓친 나의 이후 세대의 노래임을 나중에 알게 되며 쓴웃음이 나온다. 나에게는 100% 새로 나온 곡인 것이다. 배경설명이 곁들였기를 바랬지만 그것이 없으니, 나름대로 상상한 것.. 우선 이정선이 여자가 아니고 남자라는 사실부터.. 그는 어느 세대인지도 모르고, 이 곡이 언제 어떻게 ‘출현’한 것도 모르고… 그러면 ‘찾아보면’ 될 것, 이 곡의 genre부터, 아리송~ 짐작에 1970/80년대 folk 정도가 아닐까? 가사를 보니 이것도 아리송~ 그래 서서히 AI chatbot moment가 되었는가? 가급적 그것에 손을 대기가 싫고 피하고 싶기도 한데 (왜 그럴까, 나도 불확실)… 결국은 찾아보았고, 내가 상상, 예상한 사실들이 대부분 맞았음을 확인~~ 함… 시대는 mid late 1970 (1977 발표), folk/children song으로 분류됨…

나를 울리는 Monk Walk for Peace

나를 울리는 광경… 사람들의 생각, 마음은 인종, 국가, 지역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인가? 오늘 또다시 보는 YouTube video, Buddhist monk들의 장거리 순례 Walk for Peace, 지난 10월 Fort Worth, Texas에서 출발해서 현재 거의 Washington DC에 도착하고 있다고~~ 일년 중 제일 고약한 날씨와 싸우며 묵묵히 걷고 걷는 이들의 ‘거룩한 모습들’, 이들을 보며 ‘우는 사람들’을 보며, 사실 나도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으니~ 어쩌면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한 것일까? 묵묵히 그들이 뿌리고 다니는 것,  신앙적 강론이나 명연설보다 차원이 다른 것임을 느끼고, 이 어려운 세상에 아직도 희망은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 Washington DC에 있는 몇 명의 ‘말종 末種 인간들’의 징그러운 얼굴들을 떠올린다.

6시, 6시, 6시.. 이제는 완전히 이 시간이 나의 기상시간으로 굳어가는가 보다. 지난 밤 10시 직후부터 새벽 6시~  완전한 수면시간 아닌가~ 일단 됐다, 됐어~ 하루를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은 준비된 것이니까~
하지만 오늘도 눈이 떠지고 실제로 일어나기까지 몇 십분 동안은 ‘피하고 싶은 생각’들을 떨치려고 했으니~ 왜, 이 시간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왜 이런 쓰레기 같은 것들일까? 언제나 이런 것 같은데, 이유는 무엇인가?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이 적어도 반 반 정도 교대로 떠오르면 살맛이 교대로 나타날 것 같은데~ 모른다, 몰라, 왜 그런지~ 나의 업보, 업보 그것일 거다.

오늘부터 3일 동안 매일 매일 그것도 odd time에 외출을 한다는 사실이 조금 stress로 남고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제일 좋아하는 ‘귀가의 bliss’를 얻으려면 일단 ‘나가야 하는 외출’이란 것을 해야 하는 것을 어찌 모를까? 이것이 나의 고민이요 문제인 거다. 2010년 대에는 나를 ‘자의/타의 반’으로 이것이 절묘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는데~ 변하는 것이 세월이고,  2020년대의 세월은 아주 다른 것, 무언가 꿈에서 깨어난 듯한 이상한 decade가 되고 있으니~

Duluth의 한식당 서라벌, 경기여고 동창회 정기모임, 처음 가보는 이 모임, 예상보다 많은 동창회원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조촐한 배우자들 참석한 모임자체는 보통 동창회 정기 모임의 그런 것, 소위 ‘그 당시 일류여고’ 출신들의 모임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들의 동창회도 여느 동창회나 크게 다름이 없다.
대부분의 얼굴들 생소하지만 이것은 시간문제일 듯.. 나의 주 관심은 역시 ‘따라 나온’ 남편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이KS, 홍KS, 그리고 이SK 제씨 정도지만 나머지는 아마도 지난 연말모임에서 보았을지도 모른다. 이 중에서 은근히 놀란 사람이 있는데 나이가 90세가 넘었다는 분, 1959년에 미시간으로 오셨다는 사실,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 그 시기에 미국엘 왔을지.. 앞으로 만나면 조금씩 알고 싶기도…
의외로 떠오른 ‘불편한 생각’을 떨치느라 한동안 시간을 낭비했는데~ 나의 잠재의식일까, 무의식일까.. ‘비교의 함정’ 쪽으로 가는 나 자신, 싫은데 어쩔 수가 없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자위를 하기에 바쁘기도 했지만 결론은 이것이다. 이곳에 모인 개개인의 본성, 성격, 기본적인 예의 여부 등에 따라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함정이라는 사실…

꿈에 본 R형, 그립소이다~

꿈에서 R형을 또 보게 되었다.. 인생의 끝자락에 ‘우연히’ 만나고 알게 된 짧은 인연…. 
눈을 뜨니 ‘아이고~’ 4시가 지난 시간이 아닌가? 완전히 깨어난 듯해서 걱정이 앞서고~ 결정의 순간들인가?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6시까지 다시 잘 수 있도록 노력을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이 오가다가 결국은 6시가 지날 때까지 다시 얇고 가느다란  잠에 빠지고~ 그때 꿈을 꾸게 되었고 그곳에서 R형의 비교적 생생한 존재감을 느끼게 되었다. 역시 활발하고 외성적이지만 차분하고 침착한 행동, 활동이 잠깐 비쳤는데~ 어떤 모임에서 그가 영어로 말을 하는 듯한 상황을 느끼며 나는 깨어나고~ 그것이 전부다. 그 상황이란 것, 물론 알 수가 없지만 그 순간들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알 수 없는 진짜 동년배로써 비교적, 경쟁적인 생각도 없지 않았으니… 이것이 아직도 남은 나의 잠재의식은 아니었을까? 결론은 역시, 그립다, 왜 그렇게 빨리 떠났단 말인가~ 하는 아쉬움 뿐, 역시 이것도 나의 운명 중의 하나가 아닐까…

오늘 아침 식사 메뉴, 와~ 다르다, 달라.. 내가 아침 준비를 맡고 있다고 하지만 역시 오랜 솥뚜껑 운전 경력은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구나. 아무리 ‘남자들의 기본 요리’책까지 동원해서 ‘과학적’으로 요리 한다고 해도 이런 근본적인 차이는 극복할 수가 없는가~ 이것은 요리의 차원문제다.  프랑스 바케트에 salmon, avocado의 조합 역시 비싼 재료는 다른 것인가? 어제부터 ‘우려내기’ 시작한 left-over fried chicken soup,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고~~

Jesuitical Father James Martin, Theologian Richard Rohr, 요사이 나의 중추적 관심권에서 조금 밀려난 ‘교계적 신앙, 영성계’, 어떻게 예전 하늘을 찌를 듯했던 나의 관심과 에너지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책이 제일 가까운 방법이지만 그것 자체가 문제다. 손끝이 책을 예전보다 덜 찾고 있는 것이다. 제일 쉬운 방법은 역시 screen 에 움직이는 영상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보게 되는 James Martin Jesuitical podcast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Word On FireRobert Barron과 쌍벽을 이루는 그들의 지성적 영성은 크게 다를 것 없겠지만 그들의 주관심사, 특히 social teaching은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 어떤 쪽이 더 나에게 가르침을 줄 것인지, 솔직히 내가 이 ‘대가’들을 어찌 다 이해를 할 수 있겠는가?

와~ 이것, 순두부 찌개를 넘어서서 김치 순두부! 이 정도의 양과 성분이면 식당에서 먹었으면 꽤 비싼 외식일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식사도 푸짐했는데, 오후 마지막 식사까지~  이렇게 외식이 아닌 homemade의 나날들~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상적인 노후의 하루 하루가 되는 것 계속 되기를~ 또한 나에게는. 설거지도 간단하니 이것도 plus~~

저녁 ‘묵주’기도 전에 문득 생각이 떠오른 것, ‘구관이 명관’에서 벗어나, change, change~~
조용하고 고요한 변함없는 삶~ 이것도 ‘신선 같은’ 매력이 있지만 정 반대의 것도 다른 매력이 잇지 않을까? 기상천외한 다른 삶의 태도, 방식, 모습은 어떤가? 선택이 가능한 한도 내에게 내가 나를  바꿀 수 있는 것들은 과연 무엇들일까?  그런 여지가 전혀 없다고 단념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 그것 이외에는 무엇일 나,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일까?
오늘의 이런 ‘문득 떠오른 생각’,  우연이 아닌 것 같고, 그것도 저녁기도 직전에, 번쩍하는 듯한 것…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이미 나의 마음의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 그것의 작은 파동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니까~
어떤 변화, 어떤 선택의 여지, 어떤 모습의 나이 70/80대의 하루 하루, 어떤 주변의 영혼들~~ 어떤, 어떤, 어떤~~~ 무언가 있을 거다. 분명히 선택의 여지가 없을 리가 없다.

BIG-COPY-INTO-HOME SERVER streaming: 연숙이 하고 있었던 2000년대의 DVD copying job이 끝났다. 거의 500GB를 육박하는 거대한 양의 각종 한국 드라마 비디오 files들이 이제 disc format을 벗어나 hard-disk video file들로 안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streaming media로 둔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편하게’ home network으로 big screen TV에서 볼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다. 일단 PLEX server의 경험이 있으니까, 우선 그쪽으로 접근을 해 보는 것이 좋을 듯… 관건은 얼마나 빨리 ChatGPT의 도움으로 system을 setup하는 것인가~  기대가 되는데 과연 어느 정도까지 진전이 될 것인가?

연중4주 화요일, 아~ 잘 잤다, 편하게~

6시 이전에 일어났다. 오랜만이다. 잘 잤다, 이불이 바뀐 뒤부터 조금 ‘뒤척이는’ 느낌이 덜 한 것 같고. 비록 central heating은 켜졌지만 곧 꺼진다. 새벽기온이 확실히 상승한 것이다. 내려와 보니 역시 30도~ 예보를 보니 최고가 58도라고? 10도가 오른 ‘포근한’ 날, 흐린 것도 따뜻하게 느껴지고 저녁 때는 비가 올 chance까지~ 좋다, 좋아~

어제 저녁 연숙이 pc troubleshooting 문제로 언짢은 대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어제는 조금 뜻밖이었다. 수십 년 family IT manager의 도움으로 살아오긴 했지만 이제는 조금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도 적지 않을 텐데~ 내가 없을 때에는 어찌 하려는 것인가? 그것이 짜증으로 이어지고~ 처음에는 피하고 싶은 대화였지만 묵주기도가 끝나고 다시 ‘올 것이 왔다’로 시작해서 미안과 후회~ 최근에 이런 때 나의 행동은 내가 보아도 지나친 것임을 인정할 때가 온 것.  나의 연숙에 대한 기대감, 바램이 비현실적인 엄연한 사실을 나는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이런 ‘서로의 고통’의 원인인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제는 조금 그런 시도를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을 인정하고 이성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제 2월 2일, 놓쳤다. Groundhog Day에 대한 뉴스들~ 찾아보니 ‘미국산 두더지 녀석’이 자기 그림자를 보았다고 나온다. 앞으로 계속되는 6주의 겨울날씨라고~ 이것이 맞을 근거는 없지만 그것이 이 ‘행사’의 point가 아닌 것도 안다. 그것이 재미있는 것이다. 그 추운 새벽에 완전무장을 하고 모여든 따뜻한 사람들의 입김, 그곳에서 귀여운 두더지의 모습~ 이런 것을 보면 ‘살아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아직도 추운 2월 초를 맞는다. 이것이 point인 것이다. 물론 Bill Murray의 얼어붙은 입술도 함께…

오늘도 어제에 이어서 계속 외출/귀가의 기회를 맞는다. 오늘은 연숙의 ‘정치과, dentist’ 방문이 있었다. 이제는 혼자서 가도 되련마는 내가 같이 가는 것이 좋은지 혼자 가겠다는 말이 없으니~ 이럴 때 혼자 가라고 했다면 어땠을지~ 나에게 짧은 ‘혼자의 시간’이 주어지겠지만 아마도 뒤에 후회를 할 듯한 예감도 뿌리칠 수가 없으니~ 그래,  순리대로 살자, 장거리 drive는 내가 운전하는 것이 정답이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오늘 외출할 때의 60도라는 기온의 느낌이 이런 것인가? 날씨가 조금 풀린 것인데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는 듯한 것 같기도 하지만 꿈 깨라~ 2월 3일이면 아직도 먼 것, 그리고 2월의 악명을 잊을 수도 없지~  1월의 강추위와는 다른 다른 종류의 ‘뼈까지 스며드는 추위’가 바로 2월 중에 자주 찾아오니까.. 특히 눈이 아닌 얼어붙는 듯한 비와 바람이 함께 하는 그런 광경도 떠오른다.

오늘 점심은 Sam’s Club 에서 cheese pizza로 해결을 했다. 사실은 오늘 치과가 끝나면 한인타운에서 점심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왜 이번에는 내가 유난히 이곳에서 pizza로 ‘때우자고’ 거의 우기다시피 했는지~  나로써는 비용 절약도 없지는 않았지만 내심으로는 한번 나의 주장을 의도적으로 push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솔직히 나도 확실하지 않은데~ 정말 나이가 들수록 나 자신을 더 모르겠으니 무슨 조화일까?

예보대로 포근한 날씨에 어두워진 초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 이 정도의 비구름이 이틀 전에 왔으면 아마도 온천지가 함박눈으로 덮였을 것인데, 조금은 아쉽기도 하구나. 그래도 이것이 낫다. 안전하게 비가 오는 2월 초, 나쁘지 않다. 가슴도 차분하게 가라앉고, 시상 詩想까지 떠오르는 듯한 감정에 말려드는 듯 하고 싶은 것, 과연 이 나이에 이런 ‘문학청년’같은 모습이 가당하기나 한 것인가? 웃긴다, 웃겨~~

오늘도 default mode인가, 계속 ‘드라마 게임’ binge list의 거의 끝부분을 본다. 그러니까 나의 머리 속의 일부분은 대한민국 1980/90년대 ‘신문 社會面’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문화, 사회 공부를 하는 것인데~ 이것으로 과연 나는 얼마나 무엇을 더 배우고 발견하고 깨달을 것인지~~
지금 보는 것, 젊디 젊은 ‘송승환’이 주역으로 나오는 1989년 12월 방영 ‘존재의 끝‘이라는 episode, 당시의 기준으로 보아도 이것은 ‘신파조’를 연상하게 하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롭고 감미로운 것일 수도 있구나.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과 어떤 세월의 횡포가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

Wind Chill Holiday Muse

아주 이른 새벽부터 꺼지지 않는 히터소음을 들으며 비몽사몽의 경지를 헤매다가 6시의 불빛을 기다리다가 결국 공식 수면시간 8시간을 채운다. 2026년 2월 1일, 2월의 첫날, 이 정도면 ‘괜찮다, 괜찮아~~’. 새벽 기상 기온 16도, 섭씨로 대강 영하 10도쯤일 거라 ‘암산’을 했는데 결국 거의 맞는 수치는 영하 9도라고~ 이것, 올 겨울 제일 낮은 기온이 아니었을지~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기억력에 자신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wind chill이 문제인 거다. 아예 0F 라니까~ 그것은 아마도 영하 15도 정도? 와~ 이제 생각으로 추워진다. 오늘 정도면 아마도 Ozzie녀석과 산책은 조금 기다려볼 정도니까… 하지만 Ozzie가 없구나, 녀석 자기 집에서 얼마나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할 것인가 생각하면 조금 미안해진다. 벌써 다음에 녀석이 오늘 날이 기다려지는데~~

순교자 성당이 ‘공식적으로’ 미사를 모두 cancel한 것 때문인지 조금 어깨가 가벼워지는구나. Online 미사는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할지는 솔직히 우리들 자신이 없구나.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코로나 pandemic 시절의 online 미사였는데, 지금은 희미해지고, 실감이 나지 않는 것 때문일까? 아니면.. 실제로 성체를 손으로 받아 모시는, 영성체를 remote screen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아무리 교회가 인정을 한다고 해도 가슴 속의 느낌은 다른 것이니까…

나의 main desktop pc가 된 beelink mini-pc, 이제까지 그런대로 ‘예전 것보다는 빠르다’라는 생각으로 써왔지만, 최근 나라니가 job을 바꾸면서 주었던 Dell Latitude laptop pc의 spec을 보면서 이것이 더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안 이후, 이것을 main pc로 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아왔는데~ 오늘 드디어 본격적으로 그 migration 작업이 서서히 시작되었다. 제일 큰 변화는 물론 OneNote journaling job 이 이곳에서는 덜 괴롭다고나 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Hardware가 전번 것보다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빠른 것이니까..
OneNote의 migration만 큰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아마도 다른 것들도 모두 이사를 할 듯한데.. 그 중에서 Local AI LLM model을 host할 수도 있는 사실이 흥미롭구나. 몇 번 test를 해보니 (Notebook LM으로), 역시 이것은 functional, practical한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 laptop pc가 main desktop workhorse가 될 것은 거의 확실해 진다.

우연히 시작했던 ‘드라마 게임’ binge watching이 생각보다 더 binge수준까지 넘은 듯한데~~ 덕분에 1980/90년대 ‘우리세대의 삶’을 훨씬 가깝게 피부로 느낄 정도가 되었는데~  화제, episode 하나 하나는 나에게 작은 ‘사회학 공부’, 아니 나아가 ‘역사 공부’의 대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과 미국/이민사회의 삶의 차이는 어떤 것인지 조금 더 깊숙이 발견하게 되지 않을지…
흥미로운 것 중에는: 80/90년대를 지나면서 빠르게 증가하는 ‘국산’ 자가용 차의 모습들,  이런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그 변화양상은 충분히 간파할 수 있으니까.. 내가 거의 반세기 전, 고향 땅을 떠날 무렵에 이렇게 손수 운전을 하는  ‘진짜’ 자가용차는 한마디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당시의 국민소득을 보면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이런 mindset는 이곳에 오래 살면서도 머리 속에 굳어있었지만 다행히 이런 ‘사회공부’를 하면서 서서히 ‘아 변했구나’ 실감을 한다. 극단적으로 이제는 ‘대한민국의 soft power’ 까지 운운하는 세상이 된 것, 오래 살았기에 ‘알고 떠나는’ 혜택, 감사할 뿐이다.

날씨 뉴스, 너무나 싱겁게 끝난 것이 아쉽구나. 우리를 제외한 다른 곳, 특히 한국인들이 몰려 사는 Atlanta metro 동북쪽 지역은 눈이 사실 엄청 온 것을 알고 조금 실망, 아니 샘이 난다고 할까?  이 지역 기후적 특성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사실을 재확인.. 이것, 물론 안전성을 생각하면 좋은 것이기 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쌓이는 눈’, 아쉽기만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