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종일 불던 시베리아성 바람은 잦아 들었지만 예보대로 새벽기온은 빙점 이하로 떨어지고 wind chill은 20도에 가까운 듯.. 하지만 심리적으로 완전히 준비가 되어서 그런지 조금 적응을 하였기에 오히려 어제보다 더 추울 것 같지는 않구나. 잠을 자면서 heater가 계속 나왔으니까 분명히 실내 기온이 64도 이하로 떨어진 것이지만 바깥의 동정은 오히려 고요함 뿐..
이번 ‘추위’는 사실 다가올 겨울의 맛 뵈기일 것이고 다시 ‘평년 기온’으로 오를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맛 뵈기 중에 조금 ‘심한 case’도 보여주면 얼마나 재미가 있을까.. 다시 소년적인 꿈을 꾸어본다.
어제 ‘끝낸 일, 보람 있는 일’을 돌이켜본다.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나에게는 사실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작은 ‘Mickey Mouse project’였기에 아직도 나는, 예상보다 ‘멋진’ 결과에 만족하고 행복하기까지.. 이제 나의 desk는 작은 data center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기대감까지 든다. 어제 하루 종일 이 일에 매달려서 ‘즉흥적, 유기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나의 ‘춤추는’ 생각에 의지한 것을 다시 돌아본다. 그것이 내가 일을 하는 독특한 방식임을 재확인 하는데.. 이제 이런 ‘나만의 비결,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쪽으로 바꿀 생각은 한층 더 사라지는 듯…
나에게 서서히 다가온 이 용어, Neural Network, 이 term의 추억을 찾으려 ‘불현듯’ ChatGPT에 물어본다. 내가 겪었던 이 term과 연관된 것은 1980년대 말 Byte magazine이었기에 그곳에 언급, 게재된 article을 찾아 달라고 했다. 이제까지 보다 심사숙고를 더 한 듯 거의 1분이나 ‘data center’의 에너지를 쓰며 찾아내었다. 역시, 역시 나는 또 즐거운 탄성, 놀라움을 연발한다. 그 결과가 완벽한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그것으로부터 시작하기에는 너무나 멋진 사실 탐구였으니까.. 이제 나도 조금씩 ‘불이 붙은’ 듯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감사합니다, 성모님…
유스티나 자매님에게서 빌려온 책, 전 교황님 친구들의 말들이 담긴 책, ‘세월의 지혜’ 중에서 보이는 구절, 영광보다는 인내의 깊은 가치, 한마디로 기나긴 우리의 삶은 도전과 고민의 연속임을 고백하는 듯하다. 특히 ‘노인의 지혜’에 대한 것이어서 더 관심이 가는 듯 하다.
“인생의 성공은 영광이 아니라 인내에 있습니다. 때대로 많은 인내가 우리에게 필요하지요. 현명한 노인의 인내력은 매우 큽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여러분을 꿈으로 인도하는 지혜입니다.”
– 프란치스코 (전) 교황



실외 온도계를 보니 분명히 30이란 숫자에 머물러 있으니 영하는 영하인데 이 정도로 물이 얼겠는가~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새들의 물그릇을 보고 깜짝 놀란 것… 살얼음이 아니고 완전히 돌처럼 단단히 모조리 얼어 버린 것, 새들이 물을 마실 수 없는 정도로… 그렇다면 지난 밤 영하로 떨어진 시간이 꽤 오래였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도 새 먹이을 먹는 것은 문제가 없을 테니까.. 아~ 이제 겨울이 오긴 왔구나.. 절기, 절기 입동의 과학적인 지혜에 다시 한번 놀라며…

이것, foot warming heating pad.. 사실 잊고 살았고 아마도 계속 그랬을 것인데 우연히 2층 작은 bed room의 closet의 안에서 무심코 위를 쳐다보다가 발견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분명히 잊고 겨울을 날 뻔 한 것… 조금 생각 좀 하고 살자, 병신아… 다시 켜 보니 분명히 발에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은 좋은데.. 솔직히 말해서 예상만큼 편한고 포근한 느낌이 아닌 것은 왜 그럴까? 따끈한 장판에서 느꼈던 옛 시절의 그 포근함과 비교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앉아서 살던 어린 시절의 그것과는 전혀 포근함의 차원이 다른 거다. 추억 속의 ‘낮은 곳의 온기’가 현재 이곳에는 전혀 없는 것, 바로 그것이 이유다. 아~ 그립구나, 포근했던 온돌 위의 두툼했던 이불 속의 따스함이~ 그립구나, 그리워… 특히 가회동의 그 온돌방~~ 장롱 대 위의 어항 물위로 살얼음이 얼었어도 온돌바닥 이불 속은 ‘펄펄’ 끓었으니…
Doshi Sushi~ 도시스시? 도시 수시? 도대체 이름이 왜 이래?
도시는 분명히 都市로 쓰긴 했으니 ‘도시형 스시’라는 뜻인가? 그러니까 시골의 스시 와 다르다는 말인가? 말장난을 하다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음운의 장난, 기억하기 좋은 ‘상호’, Doshi는 Sushi와 함께 ‘시’로 끝나는 기억하기 좋은데, 그렇다면 이곳은 전통적 일식집?
이곳에서 연숙의 이대 선배님을 10년도 훨씬 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그 동안은 연숙을 통해서 자주 들으며 살긴 했지만 나에게는 아주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2000년 직후 우리 집까지 와서 나와 함께 computer를 공부했던 시절도 있었지.
잊고 살았던 이 선배님에 관한 사실들 중에 1945년 생이라는 것, 그러니까 누나와 동갑, 그리고 창덕여고 출신, 6년 동안 반장역임의 이력 등등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따라서 생각나는 것은 이대 수학과 재학시 응원단장을 하셨다는 사실도 있구나. 2000년대 초 이대동창회 행사 등도 이제는 아련한 추억거리가 되었고…
이 일식집에서 푸짐히 대접을 받았고 옆집에 있는 ‘격조, 품위’가 느껴지는 아담한 cafe/bakery에서 지나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선배님의 인생역정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새삼 알게 되었지만, 불구하고 멋지게 바쁜 삶을 지금까지 살아가는 모습은 솔직히 부럽기만 하구나. 25개 국 여행한 사실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그 동안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 겪었던 ‘쓰레기급 인간’들 사건에 비추어서 이런 분이라면 남은 세월 동안 더 자주 만나고 싶기도 하지만 이것은 결국은 두 집 사이의 인연에 달린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