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極)에 달한 좌익(左翼)분탕질…

 

극(極)에 달한 좌익(左翼)분탕질, 구조적으로는 소멸된다

태평로포럼 2014. 9. 24

조영환 대표 (올인 코리아)

 

 대한민국은 비록 남북한 좌익선동세력의 억지와 깽판으로부터 협공 당하고 있지만, 결국은 이를 극복하고 정치적 선진국가로 발돋움할 것으로 낙관한다. 그 이유는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정치적 적폐는 군중사회의 마지막 병리증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군중현상’은 김대중-노무현 좌익세력이 침투한 상층부에 깊이 남아있다. 김대중-노무현 좌익세력은 군중인간들을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는 물론이고, 교육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에 심었기 때문에, 군중현상이 한국사회의 저변에는 잘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상층부에 나타난다. 여기서 말하는 ‘군중현상’이란 오르테가 가세트, 윌리엄 콘하우저, 데이비드 앱터, 사무엘 헌팅턴, 로버트 니스벳 등이 지적한 군중의 파괴성을 뜻한다. 공동체(국가)에 대한 감사와 의무를 모르는 방자하고 무책임한 사회구성원을 ‘군중’이라고 부른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완전한 직접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를 초청할 것이라고 했는데, 전체주의적 선동꾼 김대중은 ‘아테네 이후에 최고의 직접 민주주의’라는 구호로써 2008년 광우병 촛불폭동을 부추겼다. 광우병 촛불폭동은 김대중의 선동능력이 구현된 반란현상이다. 김대중은 무자격적 군중인간에게 주권행사를 강조하면서, 오르테가 가세트가 말한, ‘민주적 폭군(democratic tyranny)’을 길러낸 민주주의 파괴범이었다. 오르테가 세세트는 군중인간을 문명파괴적 인간으로 봤다. 한국사회에서 광우병 촛불폭동, 국정원 댓글과 세월호 참사를 악용한 깽판극들을 벌이는 군중인간들은 사실상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는 미개한 군중인간들이다. 정몽준 전 수울시장 후보자의 막내아들이, 성숙한 국민을 대변하여, 세월호 사건에 대한 군중인간들의 대응방식을 놓고 ‘미개인’이라고 지적한 것은 박원순 지지자들의 정치적 미개성과 기만성을 잘 지적한 것이다.

오그스트 콩트가 지적한 것처럼, 이런 군중인간들이 설치는 시대에 새로운 의식(정신)혁명이 없으면, 대한민국은 재앙을 맞을 수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니체가 말한 ‘니힐리즘의 홍수’가 김대중-노무현 좌익세력에 의해 군중현상의 형태를 띠면서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오르테가 가세트가 지적한 것처럼, 옛날 제왕보다 더 풍족하게 살아가는 무자격적 군중인간들이 무의미성에 시달리면서 자신과 국가공동체를 파괴하는 자해극을 벌인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김대중-노무현 추종 좌익세력이 반정부 깽판질을 하는 한 심리적 원인 중에는 배부른 군중이 복에 겨워 지랄 발광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좌익세력이 김대중-노무현 집권 기간에 분에 넘치는 부를 축적하여, 그 넘치는 자금으로 반국가적 억지와 깽판을 맘껏 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지금 우익단체보다 좌익단체들이 더 군중 선동과 동원 자금을 풍족하게 확보해서 쓰고 있다는 사실도 자유민주체제 위협요인 중에 하나다.

그 결과 지금 한국사회에는 정상적으로 명령하고 정상적으로 복종하는 공권력이 약화된 상태가 됐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군중의 반란’이라는 책에서 “국가는 정상적으로 명령하고 정상적으로 복종하는 것보다 더한 자유와 행복을 줄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상층부에 뿌리내린 군중인간들에게 정상적으로 명령하고 정상적으로 복종하는 공권력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국사회의 교육계, 입법계, 사법계, 종교계, 언론계, 문화예술계에 주도권을 장악한 군중인간들에게 정부도 정상적인 공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좌익교육감, 좌익국회의원, 좌익 검판사, 좌익기자, 좌익교사, 좌익연예인들은 정부의 공권력이나 국민의 상식과 국가의 법치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등장했다. 저변 국민들은 애국심으로 국가공권력 유지에 애를 쓰는데, 상층을 장악한 좌익세력의 군중인간들이 자해적으로 공권력 파괴에 주범 역할을 하고 있다.

군중은 ‘양적인 떼’를 지칭하지 않고, ‘질적인 성격’을 의미한다. 물론 군중인간들이 떼법의 횡포를 보여주지만, 군중인간은, 오르테가 가세트가 지적한 것처럼, ‘아무런 권위나 외부인의 충고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한 자족적 인간이라고 착각해서 억지부리는 방자한 인간’을 뜻한다. 전통사회(유교사회)가 붕괴되면서 어떤 사회적 권위나 통제도 무시하고 부자집 망나니처럼 불평과 불만에 찌든 인간이 바로 ‘군중인간’이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군중인간’에 대해 “군중들의 토론 없는 직접적 의사표시는 문명을 파괴하는 폭력행사로 나타난다”며 “군중은 사회적 제약, 기준, 예절, 간접적 소통방식, 정의, 이성 등을 모조리 파괴하고 오직 단순화된 이분법적 구호를 사회적 난제에 대한 해답으로 강요한다”고 규정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폭동’,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침몰사건’ 등에는 ‘군중인간의 이분법적 판단과 파괴적 횡포’가 두드러졌다.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군중현상에서 군중의 속성은 바로 ‘극단주의’다. 극단적 좌절감과 소외감과 박탈감(‘을’의 콤플렉스)에 찌든 군중인간들이 갑자기 자신을 절대적 ‘갑’이라 되는 것처럼 폭력을 행사하는 양극적 행동양태를 군중인간들이 보여줬다. 과격한 ‘갑질’은 ‘을의 열등감 폭발’일 뿐이다. 에릭 호퍼는 이런 군중인간에 대해 “좌절과 소외에 시달리는 마음을 가진 군중은 모든 것을 자신이 신봉하는 망상에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자포자기의 확신범”으로 봤다. 이런 군중인간이 도덕적 성실성을 무시하고 후안무치 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에릭 호퍼는 봤다. 광우병 촛불난동, 국정원 댓글, 세월호 사건 등에는 자신의 도덕과 체면을 무시하는 군중인간들이 정치적 광신도가 되어서 법치와 공권력을 부정했다. 구스타브 르 봉이 지적한 것처럼, 한국사회에 나타난 군중인간들은 자신의 체면과 개성을 잃고 파괴적 집단의식에 예속된 익명의 노예들이었다.

이렇게 파괴적 감정에 취하여 충동성, 과잉반응, 추론능력 결핍, 비판정신의 부재, 과장된 감정표현의 노예가 된 군중인간들이 파괴적 수구꼴통이 되어 반정부 횡포와 난동을 부리니, 국가의 공권력은 부재상태로 전락되었다. 이런 군중인간의 위험성에 대해 윌리엄 콘 하우저는 ‘사회적 다원주의(자유민주주의)에 가장 해로운 적’으로서 ‘군중인간’을 지목했다. 그는 “군중운동은 자유민주적 정치체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졌다”고 ‘군중사회의 정치학(The Politics of Mass Society)’에서 주장했다. 그는 현대사회의 저변에는 ‘군중성향’과 ‘다원주의성향’이 경쟁한다고 봤다. 주어진 자유와 민주를 잘못 작동시키면, 다원주의적 자유민주체제는 쉽게 군중의 난동질이 난무하는 무정부상태가 되고 이런 무질서가 지속되면 전체주의적 선동꾼이 민심을 얻으면서, 전체 국가가 전체주의사회로 전락할 수 있다. 민주화는 흔히 과잉민주화와 공권력붕괴로 실패한다.

군중인간들에 의한 공권력 혹은 법치의 파괴를 군중연구가들을 모두 우려했다. 윌리엄 콘 하우저는 군중사회의 특징으로 ‘권위의 상실’를 주목하면서 ‘군중의 떼법이 교양인(엘리트)의 법을 대체하는 것이 군중사회의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앱터도 ‘정당한 공권력의 부재’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군중현상의 적폐로 보면서 ‘권위적 정부의 부재가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데에 적’이라고 주장했고, 구스타브 르 봉은 ‘문명을 무너뜨리는 수단으로서 군중 혹은 야만주의의 물결’을 지적했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무자격적 주권 행사로써 군중은 사회적 권위를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콘 하우저는 “군중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상실’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상실한 군중인간들과 지도력을 상실한 엘리트(사실상 군중인간)들은 사회를 원자화(파편화)시켜서 공동체로서 역할 하지 못하게 한다고 콘 하우저는 걱정했다.

한국사회에서 지도층이 깽판꾼이 되고 군중의 떼법에 공권력이 무력화 되는 현실은 전형적인 군중현상의 적폐다. 사무엘 헌팅턴은 ‘교육을 많이 받은 지식군중인간이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주범이 되는 현상’을 주목했다. 한국사회에서 공권력을 마비시키는 과잉민주주의는 지식군중인간들의 법치파괴에 따른 병리증상에 가깝다. 좌익지식인들이 주도한 법치파괴에 대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정상적 공권력을 작동시키지 못했다. 언론계, 법조계, 입법계, 교육계, 종교계 등에 뿌리 내린 김대중-노무현 좌익세력은 정상적 법치를 거부했다. 한국사회에서 국가사회를 파괴하는 군중현상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김대중-노무현 좌익세력의 척결은 필수적이다. 김대중-노무현 좌익세력은 대한민국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좌우익에 연합한 추상적 연방제국가에 정서적으로 소속된 망상가들이다. 그래서 북괴의 독재와 폭압에는 침묵하고 대한민국의 넘치는 자유와 민주에는 불평하는 정치행태를 보여준다.

나쁜 군중사회를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이 만들어가는 것은 각성된 국민과 민주적 정부는 제압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탈몬이 지적한 것처럼, 완전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전체주의적 선동꾼의 군중 장악과 예속의 음모를 제압해야 한다. 이른바 ‘완전한 민주주의’를 외치는 좌익선동꾼들은 전체주의사회를 구축하려는 발악을 하고 있다. 2008년 남북한 좌익선동세력이 전개한 ‘광우병 촛불폭동’을 ‘아테네 이후에 최고의 직접 민주주의’라고 칭송한 김대중은 완전한 민주주의를 외치는 전체주의 선동꾼에 불과하다. 아직도 새정치민주연합이 김대중과 노무현을 민주주의의 화신으로 착각한다면, 이는 군중을 악용한 전체주의 추구세력으로 낙인 되어 마땅하다. 광주사태나 광우병 촛불폭동을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군중선동현상으로 비판하지 않는 한, 한국사회는 전체주의 선동세력에 취약하다. 김일성-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은 대한민국의 안녕과 번성에 장애물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파괴적 군중선동에 기댄 김대중-노무현 좌익선동세력에 의해 자멸하는 군중사회로 악화될 것인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한국사회가 좌익선동세력의 억지와 깽판을 극복할 수 있는 두 가지 요인을 주목하는데, 하나는 바로 ‘군중현상은 시대적으로 일시적이라는 점’과 다른 요인은 ‘저변 한국인들 수준 높은 정치의식과 윤리성’을 꼽고 싶다. 망국적 군중현상이 ‘민주팔이’로 집권한 김대중-노무현 좌익세력의 쇠퇴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좌익세력이 그렇게 언론계, 문화예술계, 교육계, 법조계 등을 장악해서 군중을 기만하고 미혹했지만, 선거전에서 번번히 패배한 것은 남한 좌익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각성과 반감이 고조되기 때문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팔이, 통일팔이, 복지팔이는 서울이나 호남에서는 먹혀 들지만, 다른 지역들로부터 점점 배척되고 있다. 이정현 의원의 경우, 호남에서도 지역주의는 바람직하게 극복되고 있다.

저변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과 도덕성은 언론계, 교육계, 법조계, 정관계를 장악한 좌익세력의 조작과 선동과 억압을 극복하는 주요 원인이 될 것 같다. 비록 서울과 호남에서 낡은 좌익이념과 지역주의에 찌든 군중인간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저변 민중들은 무섭고도 급격하게 각성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한국의 저변 민중들이 월남 패망 전의 월남인들 처럼 거짓과 자멸의 좌익선동꾼들에게 깊이 홀렸다면, 지금 한국의 정치상황은 내전적 상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저변 국민들이 언론계와 교육계의 좌익선동꾼들에게 홀리거나 눌리기 않아서 대한민국은 서서히 좌익선동세력이 물러나고 있다. 언론계의 좌익선동세력이 광적으로 선전선동하지 않으면, 장차 선거들에서도 좌익선동세력은 패배를 거듭할 것이다. 지금은 중도인 것처럼 위장한 박원순 같은 좌익선동꾼들의 정체도 날이 갈수록 더 드러날 것이다. 박원순의 역할은 박헌영 같아 보인다.

그리고 사회구조적 혹은 시대추세적으로 군중들을 미혹하는 좌익선동세력은 설 땅이 좁아질 것이다. 과학의 발달로 사회구성원들이 정치의식적 측면에서 미개해진다는 우려도 있지만, 워낙 통신과 교통이 발달해서 전체주의적 선동세력은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을 장악해도, 워낙 신속하고 대대적인 정보유통 때문에, 끝내 저변 국민들을 다 속이진 못할 것이다. 그 결과 좌익선동세력은 가파른 언덕을 기어올라가는 이념전쟁을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가 퇴조하면서, 남북한 좌익선동세력도 고립무원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막강한 자금력과 선동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좌익세력은 집권에 막대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추종 좌익선동세력은 한국사회에서 퇴조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좌익선동세력을 퇴조시켜야, 대한민국이 다원주의적 민주사회를 유지시킬 것이다.

한국사회는 김대중 집권 후에 상층부가 좌경화, 군중화, 망국화, 무정부화 되었다. 지도층이 저변 민중들보다 정직성, 정의감, 민주의식, 애국심 등이 더 없다. 국가권공력은 입법부, 사법부, 언론계, 교육계, 종교계 등을 주도권을 장악한 좌익세력에 의해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떼법이 국법을 농락할 정도로 한국의 준법정신과 사법문화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간첩을 간첩으로 판결하지 못하는 판사들이 버젓이 법복을 입고 기업가들만 엄벌하고 있다. 우익세력의 도움으로 집권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껍데기만 집권했지, 사실상 반국가세력을 제압할 통치력을 구사하지 못했다. 집권은 했는데, 통치력이 없는 중도세력의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남북한 좌익세력의 준동을 보면, 대한민국이 내전적 상황으로 전락할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군중 선동력과 동원력의 측면에서 좌익선동세력은 우익애국세력을 압도한다. 이번 점은 대한민국의 장래에 비관적 변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구조적으로 잘 유지될 것이며, 민심도 국가를 번성시킬 정도로 수준이 높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 구축한 자유민주체제’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저변 국민’에 의해 대한민국은 건재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좌익선동꾼이 두 번이나 대통령이 되어도, 국가를 지탱시킨 튼튼한 자유민주체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자유민주체제를 한국사회에 깔았던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기운은 지금도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지킨 박정희와 전두환도 군중선동세력에 맞서서 지금도 대한민국을 지키는 수호의 기운을 남겼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핵심적 변수는 바로 누구도 함부로 대항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자유민주체제인 것이다. 우리 헌법과 체제를 생뚱 맞은 핑계를 들이대면서 함부로 손대려는 좌익선동꾼들을 사회교란범이나 망국노로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저변 국민들은 상부 지도층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광우병 촛불난동, 국정원 댓글사건, 그리고 세월호 침몰사건 등을 정권타도로 악용하려던 좌익선동세력을 제압한 주체는 언론인도 정치인도 교육자도 검판사도 아닌 바로 저변 민중들이었다. KBS, MBN, YTN, JTBC 등을 비롯한 좌익선동매체들이 아무리 사실을 왜곡해도, 저변 택시기사들의 현명한 판단을 유린하지는 못했다. 지식과 정보를 직업으로 다루는 전문가들이 무책임한 군중선동꾼으로 전락되어 있는 한국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저변 민중들이었다. 물론 서울과 호남의 일부 미개한 군중인간들이 골칫거리이긴 하지만, 한국의 전반적 민중들은 서서히 각성되어서, 이제는 좌익세력의 거짓선동이 민중들에게 쉽게 먹혀 들지 않는 것이다. 좌익세력의 준동 앞에, 상층부의 관군은 도피하고 저변 민병이 대한민국을 지킨다.

눈에 두드러진 두 현상이 있다. 하나는 요즘 대학가에서 좌익세력의 거짓선동이 먹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세월호 참사가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서울을 제외하고 먹혀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두 현상은 군중선동세력의 퇴조를 의미하는 사회변화의 징조로 보인다. 민주화를 빙자한 좌익세력에 의해 조장된 ‘군중사회’는 서서히 ‘선진사회’로 바뀌고 있다. 한국민들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원주의적 사고’로써 ‘복합적으로 판단’한다. 좌익선동세력의 이분법적 반미-반일-반한선동은 성숙한 국민들에겐 미개한 정치선동으로 취급되고 있다. 자유민주체제와 선진국민이 망국적 군중선동을 제압하니, 대한민국의 미래는, 군중의 난동질과 지도층의 무책임 등의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으론 낙관적이다. 아니 정부와 국민이 대한민국의 장래를 낙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의 comment:    위의 글, 논설은 인호 형(한양대 명예교수, Dynamic Management학회장)이 보내 준 것이다. 주로 경영학 쪽의 논설을 발표하시던 형이 근래에 들어서는 부쩍 정치, 사회 쪽의 글들을 나누어 주시는 것을 보고 조금은 현재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꼴’을 의식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류의 논설을 접하게 되는데 두드러진 특징 중에는 부쩍 늘어난 ‘강도 높은 표현들’인데, 이런 류의 단어들은 ‘좌익’이 즐겨 사용하던 것들이라.. 조금은 의아해지기도 한다. 그 정도로 대한민국의 정치현실도 미국 못지않게 polarized가 되어간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모든 나라들이 ‘돈’을 쫓는 자본주의의 ‘후기’로 치닫는 시점에 100년이 넘는, 실패한 ideology의 흙탕물 속에서 싸우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나는 그 동안 그런 ‘꼴’을 피부로 못 느끼고 살아서 왈가왈부할 자격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의견과 느낌은 다른 사람들에 못지않게 유지하며 살았다. 좌익, 우익 하지만 그것은 조금은 ‘정제, 순화 된’ 표현일까.. 나의 집안을 100% ‘파괴’했던 김일성 개XX 집단’이 좌익이라고 순화 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위의 논설에서 자주 사용한 ‘강도 높은 표현’의 ‘강도’를 100배 이상 거세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자주 생각하는 것 중에 가장 쉽게 이들의 ‘행태, 작태’를 노출 시키려면 이들을 돈을 많이 주어서 (세금으로) 그들이 ‘선망하는’ 김씨 왕조의 나라에 ‘이민’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들 미숙집단의 몇 %가 과연 이민 신청을 할 것인지.. 상상만 해도 즐겁기만 하다.

Google Voice XMPP live & well?

piaf20650오늘 ‘또 우연히’.. 요새는 이렇게 우연히 란 말이 강한 느낌을 다가올 때가 많이 있지만 이것도 정말 우연히.. 모두 Google탓으로 돌려야 하나?  이것이야 말로 ‘우연히’를 더욱 많이 쉽게 접하게 하는 monster인 듯 하다. 모두 알다시피 Google은 그 massive한 network server power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 그 중에는 ‘자선적’인 것도 있다. 그 예로 Google Voice internet phone service가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 ‘무료’ 전화를 제공한다. gmail account만 있으면 된다. voice quality도  Bell network에 못지 않다. 단점은 ‘거의’ pc같은 computer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computer앞에 있는 사람은 큰 문제가 없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성가신 일이다. ‘보통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던가..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gadget이 곧바로 나왔고 ‘불티 돋치듯’ 팔렸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조금 computer를 아는 사람은 그런 것도 필요가 없다. Linux computer에서 pbx-in-a-flash/Incredible PBX같은 software를 사용하면 그야말로 ‘무료’가 된다. 나는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Google Voice의 애용자가 되었는데.. 세상에 진짜로 공짜가 무제한으로 있을까? 지난 5월 중순부터 Google에서는 생각을 바꾸어 이런 제3의 gadget이나 software를 사용하는 방식을 없앤다고 ‘엄포, 공포’를 놓았다. 그 ‘방식’이란 것이 바로 XMPP란 것인데 이것이 Google Voice와 3rd Party gadget을 연결해 주는 connector protocol software인데 이것이 support가 안 되면 그런 gadget들은 일순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no more free lunch인 셈이 되어서 실망이 대단했지만 그렇게 하겠다는데..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5월 중순이 되기 전에 미리 ‘보통 전화기’를 사용하는 Google Voice service를 나의 home pbx server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대치용으로 ‘아주 싼’ voip service인 voip.ms란 곳에 sign-up을 하였다. 이것으로 long distance와 international call을 하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잊어 버렸는데.. 오늘 우연히 XAPP가 Google Voice에서 그대로 살아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부리나케 pbx에서 test를 해 보았는데.. Bingo! It still works!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왜 Google은 마음을 바꾸었을까? 나는 Google Voice account(그러니까 phone numbers)가 3개나 있어서 정말 편리했지만 한동안 ‘성급하게’ 그것을 포기했던 것이다. PC에서 가끔 쓰긴 했지만 어찌 그것이 ‘진짜 전화’와 같은 기분일까? 이제는 다시 ‘진짜 전화기’로 Google Voice를 쓰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다.  참고로 Google Voice XMPP service가 없어 지는 것을 예감하며 5월초에 썼던 unpublished blog post를 아래에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2014년 5월 15일.. 이날이 무슨 날인가? 몇 년 동안 ‘공짜’로 전화 service를 해 주던 Google Voice에서 XMPP connection 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날이 바로 이날이다. Google Voice core service 자체는 그대로 있지만 그 동안 이것을 ‘진짜 전화 같은 느낌을’ 주게 하던 service가 없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Google Voice를 계속 쓰려면 ‘다시’ desktop PC 앞에 앉아서 웃기는 PC 용 headphone이나 더욱 웃기는 plastic mic/speaker를 써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Google Voice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 그런 식으로 썼을 것이다. 생각을 해보라.. 전화를 걸고 쓰는데 누가 ‘반드시’ 컴퓨터 앞에서 앉아서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쓰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나 같은 사람은 사실 큰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은 안 그럴 것이다.

 언젠가부터 Google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XMPP란 ‘connector’를 이 service에 연결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 XAMPP가 연결되면서 우후죽순같이 3rd party device들이 등장하고 거의 완전히 ‘보통 전화’같이 이것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책상의 PC 앞에 붙어 앉아서 쓸 필요가 없고, ‘보통 전화기’같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전화국’의 전화를 쓰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를 지경이 된 것이다. 분명히 ‘거의 공짜’ 전화 service가 된 것이다.

공짜라면 꼼짝 못하는 사람들.. 거의 공짜라는 것은 미국 내에서의 모든 long distance call을 말한다. 국제전화는 공짜가 아니지만 아주 싼 값이다. 이런 service를 쓰려면 cable TV를 보듯이 device를 사야 했지만 별로 비싼 것이 아니었다. 조금 기술적인 사람들은 그것도 필요 없었다. 이미 집에 있었던 Asterisk 라는 iPBX software를 쓰면 되었고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새로 생긴 Google Voice전화번호를 걸면 집에 있는 iPBX로 자동 forward가 되고 voice mail이나 fax로 연결까지 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happy days는 다 지나간 것이다.

 이 우울한 소식을 듣고 나는 몇 달 전에 이미 다시 desktop PC mode로 전환을 시작해서 이제는 ‘완전히’ 준비가 되었다. 최소한 나의 desk앞에 앉으면 이 ‘free service’를 계속 쓸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나의 life-style을 바꾸면 어려울 것이 없다. 그래도 서운한 것은 Google Voice 전화번호 (DID)를 걸면 이제는 우리 집에 있는 iPBX에서 받지를 못하는 것인데.. 할 수가 없지 않은가?

extreme multitasking, 친전, sad vindication…

¶  Extreme multitasking

끈적거리는 올해의 여름이 끝나가던 무렵부터 나는 ‘본의 아니게’ 갑자기 시간이 황금같이 느껴지게 바빠짐을 느낀다. 우리의 일상적인 routine을 제외한 예외적인 ‘일’들이 하나 둘씩 더해지더니 급기야 과장해서 수없이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내가 ‘좋아서’ 만든 일들은 결코  아니다. 급하거나 꼭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그렇게 한꺼번에 생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큰 불평은 없다. 이것이 내가 사실은 가장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보다, 두 가지, 두 가지보다 세 가지… 등등으로 나는 많을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훨씬 ‘즐겁고 능률적’으로 느껴지고 실제로 결과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일의 성질이 ‘비슷한 것’이면 그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된다. 한마디로 adrenaline이 샘 솟듯 솟구치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현재 나는

  1. 일생 일대 ‘가장 중요한 서류’를 찾는 일,
  2. 나의 서재가 될 아래층 거실의 flooring을 교체하는 일,
  3. front door의 ‘무너지는 듯 한’ structure를 고치는 일,
  4. backyard vegetable garden의 완전 ‘자동화’ , drip watering irrigation works,
  5. garage major cleanup..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나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연숙은 이런 나를 의아스러운 눈으로 보는 듯하다. 자기는 한가지를 ‘완전히’ 끝내야 다음 일에 착수한다고 하니까. 내가 이런 extreme multitasking을 하는 것은 아주 정연한 내 나름대로의 ‘이론’이 있다. 과학적인 것은 물론 아니지만 나에게는 과학적인 것이다.  나는 분명히 믿는다. 이런 방식이 전체적인 시간을 ‘훨씬’ 줄여 준다는 사실을.

 

Scan10061¶  친전 親傳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 친전이란 말은 ‘아마도’ 한자로 親傳을 말 할 것이다. ‘친히 전한다’는 말이니까, 이 친전의 글을 읽으면 김 추기경이 바로 나의 옆에서 말하는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  이것은 얼마 전 연세대 이원선(도밍고) 동문의 부인 이 베로니카 자매가 연숙에게 빌려 준 것을 내가 다시 빌려서 읽어 보게 된 책의 제목이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것이라 문득 내가 알고 있는 추기경님은 어떤 분일까 생각을 해 보았다. 별로 자세히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기억에 나는 것으로는 내가 대학을 다닐 시절에 대한민국에 첫 추기경이 나왔고 그분의 이름은 김수환 신부였다 정도다. 그 당시 추기경이란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길이 없었고 사실은 관심도 없었다. 나와 천주교는 너무나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천주교는 고사하고 종교, 신앙에 전혀 눈이 뜨이지 않았을 때 김수환 추기경님이 뉴스에 나온 것이다.

 그 이후 미국에 살며 더욱 더 잊고 살다가 ‘간신히’ 내가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면서 추기경의 뜻도 가깝게 느껴지게 되고 김수환 이란 이름도 친숙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이 전부랄까.. 그저 반정부 데모 때에 데모 학생, 군중을 지지하는 ‘민중의 편’에 섰던 천주교를 초월한 민중의 지도자라는 것도 뉴스를 통해 간간히 듣게 되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선종’을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분의 죽음은 ‘전 국민의 슬픔’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비교적 객관적인 ‘김수환 론’은 한글 Wikipedia에 잘 나와있는데, 조금 읽기 거북한 ‘반 김수환 평’이 균형을 맞추려 실렸는데.. 참 비신자도 아니고.. 신앙인을 이끄는 사목자라고 하는  이름도 비꼬인듯한  ‘함세웅‘이란 인간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답답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시대적 사상이 인간 기본적인 가치를 넘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시대착오적인 사제가 ‘원로’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나는 사실 철저한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에 ‘친전’ 책을 통해서 생생한 그분의 ‘육성’을 대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그분의 인간적인 면모, 추기경 재직의 역사적 의미, 신앙적인 측면, 인간애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비록 철저하게 천주교에 근거한 신앙관, 도덕관, 정치, 세계관으로 삶을 살려고 했지만 그가 산 시대는 그를 만성 불면증으로 시달리게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한 그의 삶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주위에서 본 그의 인간상이 적나라하게 적혀있는 것이다. copyright에 구애 없이 나는 또 reading by typing으로 나 이외에도 한 사람이라도 더 그의 삶을 보여주고자 이곳에 남겨 두었다. 시간 날 때마다 한 구절 한 단락,한 페이지씩 읽으면 매일 묵상거리로도 좋을 듯 하다.

 

 ¶  Sad Vindication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구역 미사를 보았다.(미사를 ‘보았다’ 라고 하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만 그렇게들 쓰는 것 같고 영어에서는 미사를 ‘말한다, say mass’ 라고 하니.. 무슨 차이일까?) 우리가 속한 구역은 아틀란타 Metro 중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주로 Civil war에 관련된) Cobb county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리에타 2구역’ 이다. 역사적인 전통은 그렇다지만 사실 살기에 편한 곳이라고 볼 수는 없을 정도로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은 ‘덜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곳이다. 다른 쪽으로 말 하면 family를 키우기에는 조금 더 안전한 곳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계 사람들에게는 지금은 거의 ‘bedroom community’ 로 ‘전락’한 느낌도 든다.

이곳의 유일한 매력은 아직도 ‘학군’의 가치에 있는 듯하지만 우리는 1992년 이사올 당시 이 지역의 ‘학군’이 그렇게 좋은 것을 모른 채 ‘나의 새 직장의 위치’때문에 이사를 왔었다. 하지만 아틀란타 올림픽 이후 급속도로 증가한 한인들이 99% 우리가 사는 곳의 ‘반대쪽’으로 정착을 하면서 이곳의 몇 안 남았던 business를 모두 그곳으로 흡수하게끔 만들어서 지금은  ‘무언가 하려면’ 거의 30 miles drive해서 Korea town으로 가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 ‘불편’함은 확실히 있지만.. 그래도 이곳에 살다 보니 ‘지나치게 밀집된 minority들’ 이 없는 이곳의 장점도 적지 않다.

우리는 3년 전부터 내가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 하면서 구역모임에는 거의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가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실은 항상 우리를 우울하게 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간단히 말하면 ‘안 나가는 것이 편하다’라는 사실 하나였다. 우리가 구역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 2006년경이었고 한 동안은 그런대로 참가를 해서 몇몇 친근한 교우들도 생겼지만.. 차츰 차츰 구역모임의 성질이 변질하는 듯 하더니.. 급기야 이곳 저곳에서 이상한 말들을 들렸다. 의도는 좋을지 몰라도 지나친 socializing 에는 항상 위험한 요소가 있는 법이다.  특히 순교자 성당에 소속된 한 구역이라는 정체성(과 제한성)을 벗어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솔직히 우리는 그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예를 다른 구역에서 듣기도 했지만 설마 ‘조용하게만 보이는’ 우리구역에서 그런 잡음이 발생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우려대로 모든 것은 최악의 상태로 치달은 듯 보였고 피할 수 없는 ‘희생자’까지 발생한 듯 했다.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구역미사에 참가를 해서 그 ‘결과’를 우리 눈으로 목격을 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 항상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안 보였던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우리는 vindication이란 말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그것도 때 늦은  sad vindication이라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였다.

C’est Si Bon Redux

둘루스 명소, 아틀란타 쎄시봉 70/80 Live!
둘루스 명소, 아틀란타 쎄시봉 70/80 Live!

나의 눈앞에 다시 ‘다가온’ 아틀란타 ’70/80 style’ Live music restaurant 세시봉.. 거의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추억의 음악과 추억의 경양식의 멋진 곳, 세시봉.. 어제의 일이었다. 자기 집안 식구 ‘전부, 아내와 딸’이 사업상 해외 여행을 떠난 renaissance guy 최형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서 다음 날 저녁 7시까지 세시봉으로 나오라고 해서 예의 모이던 그룹이 다시 모였다.

이번이 나에게는 세 번째인가.. 하지만 항상 머리 속에 잔잔한 흥분의 여운을 남기던 그런 곳이라 하나도 생소하지 않았다. Owner이며 performer인 Mr. 김도 예전과 같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같은 미소를 간직하며 우리 그룹을 기억하는 듯 했다. ‘사업’이 잘 되시느냐 물었더니 ‘우리들이 이렇게 너무 가끔 찾아주니 잘될 리가 있겠습니까’ 하는 농담 섞인 응답이었다. 실제로 지난 7월 8월은 ‘너무나 slow’ 했다고 한다. 하기야 그렇게 더운 때 대부분 vacation을 떠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이곳에 들어갈 때 입구에 조그만 종이글씨가 붙어 있었는데 잠깐 보니 ‘오늘은 나도 가수 왕‘ 이란 글이었다. 언뜻 아하.. 이곳에서도 손님이나 아마추어 들이 노래라 연주를 하는 program을 마련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나도 주인에게 그런 comment를 한 기억이 있었다. 이런 곳을 아틀란타의 ‘명소’로 만들려면 고정적인 fan group을 형성하고, 그들 중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무대에 올라가게 하면 어떤가 하는 idea였다. 쉽게 말하면 amateur night 같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는 대답을 들었다. 잘못하면 분위기 찾으러 온 손님들을 쫓는 결과도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날 가서 음식 menu를 보니.. 전에 비해서 음식 가지 수가 너무나 많이 늘었다. 전통적인 ‘일본식 경양식, donkatsu‘에서 출발해서 나는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전에는 owner의 부인이 chef라고 알았는데 이번에 들으니 chef가 따로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주 전문적인 chef를 포함해서 추억의 음악, 연주,분위기..등등을 조금은 고급스럽고 exclusive한 전통을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다. 이렇게 다른 곳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를 계속 유지시키면 ‘아틀란타 명소’가 될 가능성이 꽤 높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Owner는 Smartphone으로 손님들이 찾아와 남기 여러 가지 ‘논평, comment’ 들이 Yelp에 나온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부분 음식에 대한 사진과 평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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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돈까스, 생각보다 큰..(credit Yelp)

 멋 모르고 소문이나 겉 모습을 보고 찾아온 ‘젊은 세대’들의 평이 대부분인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대부분 contemporary favorite 예를 들면 ‘빙수‘, 오늘 처음 알게 된 New York strip steak 같은 것들이지만 우리 세대는 예외 없이 서울거리에서 60~70년대 맛을 보았던 ‘일본식 경양식’들, 예를 들면 ‘함박스테이크, 돈까쓰‘ 를 찾는다. 기억에 희미해졌지만 당시에 느꼈던 음식의 분위기를 너무나도 잘 ‘재현’해 놓았다. 특히 portage cream soup은 그 중에 제일 추억을 되 새기게 하는 것이다. 비교적 경제적인 wine과 추억의 생음악, 자유자재로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owner performer, 깨끗한 환경들.. 이곳은 확실히 두고두고 아틀란타의 명소가 될 potential이 있다.

그 동안 performer들, 특히 거의 pro에 가까운 ‘인재’들이 이곳을 찾았고 연주, 노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찾았던 금요일 저녁에는 ‘자칭 아마추어’ 들이 나온다고 했다. 물론 미리 audition 받고 무대에 올라갈 듯 했다. 우리가 간 날에는 retire한 남자 분이 saxophone을 들고 출연을 해서 기대보다 수준 있는 연주를 들려 주었다. 내가 보기에 이런 case가 바로 ‘좋아서 하는’ 진정한 amateur’ 정신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저 좋으니까.. 사랑하니까..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다.

 

크지는 않지만 격조있는 분위기의 performing stage

크지는 않지만 격조있는 분위기의 performing stage (credit Yelp)

 

Music Live! 왼쪽에 owner Mr김이 보인다(credit Yelp)
Music Live! 왼쪽에 owner Mr김이 보인다 (credit Yelp)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그룹에서도 언제 한번 아마추어로 무대에 올라가 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언뜻 윤형의 saxophone이 생각나고 그의 ‘연주 수준’이면 큰 무리가 없을 듯 해 보였다. 문제는 그 동안 얼마나 연습을 했는가 하는 것이고 작년 이맘때부터 부부가 완전히 full-time 으로 일을 하게 되어서 그 전과 같은 여유가 없어 보인 것도 있었다. 그러다가 화살이 우리에 오더니.. 순식간에 언젠가 한번 올라가라는 ‘강요’까지 나왔다. 속으로 it’s now or never라는 말도 있는데.. 못할 것도 없다는 오기를 달랬지만, 과연 그럴까? 최형의 idea는 우리 둘이 Everly Brothers의 classic oldie  (All I have to do is) Dream dream 과 ‘젊은 연인들‘을 부르라는 것이었다. 하기야 이 두 곡은 눈을 감아도 언제라도 할 수는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 허.. 그런 ‘장난스러운 생각’과 놀아 보는 것도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고 그곳의 분위기와 너무나 어울려서.. 역시 다른 세시봉 추억을 만들고 금요일 저녁을 보냈다.

고온 다습한 늦여름에..

¶  고온 다습 高溫多濕.. 요사이 이 지역의 날씨를 보면 가관이다. 한 여름 중에는 가을 같이 이상하게 싸늘하더니 9월도 넘어선 늦여름은 그야말로 ‘hot and muggy, 고온 다습한’ 한 여름이 되었으니 말이다. 최근 들어서 날씨에 둔감해지려고 안간힘을 쓴 결과 많이 침착해 졌지만 요새의 기후만은 언급을 피하기가 힘이 들었다. 올해는 조금 a/c(air conditioning) 에서 $$을 절약하는가 은근히 쾌재를 불렀지만 mother nature는 역시 그런 ‘공짜’가 없나 보다.

‘고온 다습’이란 귀에 익은 말이 딱 들어 맞았지만 이 말을 쓰고 보니 그 옛날 고국의 한창 여름에 많이도 듣던 기상용어가 아닌가? 고온 다습한 태평양 고기압.. 바람이 남쪽, 그러니까 멀리 있는 태평양에서 부는 바람.. 그것이 서울에서 겪었던 한증막 같은 더위의 원인이었다. 장마도 마찬가지로 그 ‘고온 다습’ 한 것.. 그것이 지금은 Gulf of Mexico 멕시코 만灣의 고온 다습한 바람으로 바뀐 것이다. 요새의 공기는 그야말로 에어컨이 없으면 괴로운 그런 것.. 그 옛날 서울에서 어떻게 에어컨이 없이 살았던가?

 

  Crumbling infrastructure.. 이런 표현 근래에 national 뉴스에서 많이 접하곤 했다. 그런 뉴스에서는 주로 bridge같은 것이 너무나 낡아서 위험하다는 것들이었는데.. 요새 나는 우리가 사는 집이 그런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의 겉모습은 물론 페인트가 벗겨지고 siding같은 것은 숫제 새들과 ‘기후’의 공격으로 구멍이 생기는 것도 목격이 되었다. 하지만 제일 충격적인 것은 집의 얼굴인 front door 쪽의 brick, concrete들, 그리고 front door threshold(문지방)등의 모습이 정말 목불인견이라는 사실..

집의 구조상 garage(차고)로 출입을 하니.. 앞문 쪽은 거의 사용을 안 하니 자주 볼 수도 없다. 손님들이 가끔 그곳을 쓰지만 대부분 어두울 때에 사용을 하니 자세히 볼 기회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앞 문 쪽으로 gutter물이 떨어져서 water damage를 예상은 했었다. 이번에 자세히 보게 되니.. 정말 ‘뚱뚱한 사람’이라도 그곳을 쓰게 되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정도다. 썩어버린 문지방은 wood filler를 쓰면 고칠 수 있을 듯하고 떨어져나가는 벽돌도 큰 비용은 들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concrete slab도 조금 노력을 하면 내가 모두 고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리고 대대적 수리의 준비에 돌입을 하였다. 오랜 만에 집 앞쪽이 대대적 face-lifting service를 기다리고 있다.

 

 

¶  앓던 이(이빨)가 빠질 때.. 지난 4월부터  앓았던 독감 중에 지독한 치통이 나를 괴롭혔고 독감이 나은 이후에도 통증의 차이는 있었어도  계속되고 있었다. 치과를 가면 분명히 ‘고쳐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곳이 바로 그 치과이기에 ‘가급적’ 나는 참는 것이 오히려 덜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번에 느끼는 치통,구강 통증은 보통을 훨씬 넘게 나를 ‘매일’ 괴롭혔다. 분명히 이것은 ‘민간 요법’도 없을 듯 하고 ‘자가 요법’도 없을 것이었다. 내가 고작 하는 것은 ‘소금물 양치’가 전부였다. 보통 때는 그런대로 잊고 지낼 수가 있었지만 식사시간이 문제였다.

무언가 닿은 듯 하면 통증이 온다. 나의 나이에 내 치아의 상태는 보통 정도.. 일 듯한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대학 2학년 때 ‘병신 같은 사고’로 앞니에 ‘큰 문제’가 생긴 이후 나는 사실 항상 ‘치과’에 가게 되는 사태를 피하려 전전긍긍하며 살았던가.. 마지막으로 치과에 갔던 것이 거의 8년 전.. 이후 나는 그곳을 피하며 산다. 이번의 통증은 물론 윗니 중의 하나 (사랑니 근처)가 빠지려고 발버둥치는 결과였는데..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날로 치과에 가서 그것을 뽑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저절로’ 그것이 얌전하게 빠졌다. 거의 순식간에 그 지독한 통증이 100% 사라졌다. 비록 이빨 하나를 잃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날라 갈듯한 기분.. 이래서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라는 표현을 너무나도 절감, 실감, 만끽하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 나는 치과의사를 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것은 ‘우선’ 지금엔 문제가 전혀 되지를 않는다.

 

¶  Show Stopper.. 며칠 전에 처음으로 성령대회란 것을 가 보았다. 오랜 전, 1988년과 1989년에 우리는 인디애나 주에 있는 노틀담 대학, University of Notre Dame (South Bend, Indiana) 에서 열렸던 미국 성령쇄신대회 (Charismatic Renewal Convention)에 참석을 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이번 것은 순전히 한인들이 주관하는 미국 동남부지역의 것, ‘제5차 미 동남부 성령대회‘였다.

성령에 관한 경험과 기억이 그렇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올해는 그 옛날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알게 된 최 데레사 양이 음악 지도자로 와서 정말 오랜만에 재회를 하게 되어서 한번 가 보자.. 하는 다분히 즉흥적은 결정을 하게 되었다. 매년 Labor Day에 맞추어서 열리는 비교적 큰 대회라 많이 알려지고 듣곤 해서 사실은 기대보다 생소하지는 않았다. 최 데레사의 12 string guitar 연주도 멋졌고 음악, 율동 팀들, 조직적으로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던 red shirts의 봉사자들.. 모두 좋았다. 심지어 부산 교구에서 초빙된 주관 신부님의 ‘통성기도, 심령기도’ 소개,실습까지도 나는 거의 거부감을 느끼지 못해서.. 이제 나도 많이 ‘마음과 가슴’이 열렸구나 하고 만족한 심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복병이 나의 다리를 잡았는데.. 결과적으로 한마디로 최소한 나에게는 show stopper, disaster가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2일 간의 행사였지만 우리 부부는 이틀 째날 행사는 모조리 포기하고 말았다. 이유는? 나의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던 작은 Satan이었을까? 이유는 우습게도 첫날 두 번째로 ‘등단’했던 신부의 ‘지겨운 performance’ 에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이 ‘사람’이 어떻게 ‘신부’가 되었을까 할 정도로 혼란한 시간과 싸우게 된 것이다. How did he ever become a priest? 저 사람이 신부인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음담패설’과 해외교민만이 겪는 아픈 곳들만을 철저하게, ‘밥맛 없고 저질적으로’ 찌르던 그의 강론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뒤늦게 나온 지독히도 짧은, 본론이라고 나온 것은 전혀 무게가 없고 깊이가 없던.. I’m Joseph..you’re.. 어쩌구 하는 전혀 새로울 것 하나도 없던 넋두리들.. 옆자리에 앉아있던 자매님들만 없었으면 자리를 박차고 자리를 떠날 생각도 있었지만..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 김영훈 스테파노 신부님과 같은 맑은 영혼의 느낌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올해의 성령대회는, 결과적으로 거의 완전히 실패한 나의 ‘첫 성령대회 체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