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정확하게 32도, 빙점을 만나는 이른 아침을 맞는다. 며칠 동안 조금은 익숙해진 따뜻한 옷이 더욱 포근하게 느껴지는 아침, 머릿속은 꿈의 잔영으로 가득하다. 이렇게 짧지 않은, 내용이 풍부한 꿈은 정말 오랜만이지만, 그것보다도 나를 더 들뜨게 한 것은 꿈의 type 이었다. 걱정 근심 고통 속에서 깨어나는 행복감 “살았다!” 하는,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으로 나는 심지어 얌전한 악몽을 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상한 인간인가?
우리 집 옆에 우뚝 솟은 2층 집, 우리 이웃들은 모두 townhouse로 보였다. 심지어 옆의 Dave 집도 마찬가지… 우리에게 집이 두 채나 있었던 모양이지만 옆에 있던 집의 지붕이 안 보였다. 아마도 오랫동안 비에 방치된 모양으로 결국 폭삭 가라 앉았던 것… 비가 또 오면? tarp로 우선 덮어야 하지 않은가? 그것보다도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지 않은가? Handyman이나 contractor를 불러야… 아~ 이제 모든 것이 내 주위에서 주저 앉는가?
이렇게 해서 나는 우리의 옆집에 들어가 보았고, 그곳에서는 난데없이 성당교우 서 토마스 형제까지 보았고… 이제부터 개꿈으로 접어드나? 참, 이런 꿈, 재미있다. 나는 안다. 왜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수해’에 관한 꿈을 꾸는지… 아마도 우리 집 지붕이 새는 것 때문에 더욱 자주 꾸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싫어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꿈 자체는 나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이래서 악몽도 즐거울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고조된 아침의 느낌에 힘입어 오랜 만에 mainstream TV news를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다시 그 ‘개XX’가 앞으로 4년 간 안 보일 것이 확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고, 예전보다 덜 그 XX 얼굴을 안 보아도 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기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쪽으로 나는 나 자신에 실망을 한다. 왜 이렇게 믿음, 희망과 용기가 없단 말인가? 왜? 왜?
아침 식사 전에 부지런히 오랜만에 둘이서 Sam’s Club엘 갔지만 9시가 아니고 10시에 일반입장을 시킨다고 해서 돌아왔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그럴 수도 있지… 가서 오랜만에 book section엘 가보려고 했던 것, 조금은 아쉽지만 다음에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오늘부터 성경통독은 ‘코헬렛’으로 접어들었다. Vanity of Vanities!로 유명하고 To everything, turn, turn, turn으로도 유명한 구약 지혜서의 하나다. 또한 2014~5년경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과 함께 했던 추억의 레지오 피정에서 영화를 통한 강론, 영화는 ‘바베트의 만찬’이었다. 그곳에서도 ‘그 남자’가 중얼거렸던 구절도 이 ‘허무로다, 허무…. Vanity of vanities… 였었지… 이것을 읽기 시작하면서 성경주석가들은 이것을 어떻게 평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이곳 저곳을 뒤져보기도 했다. 인생이 모두 허무하다고 외치는 것은 조금 성경의 진면목 ‘희망’ 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다른 의미가 숨어 있을 듯한데… 나의 해석은 역시 ‘하느님을 떠난 각종 세상사, 그것이 허무로다…’ 그런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