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서서히, 나의 얼어 붙었던 믿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할 무렵에 연숙이 ‘조심스럽게’ 나에게 조그만 책자 하나를 건네 주었다. 오랜 만에 보는 ‘한글 소책자’, 그것의 제목이 ‘천주교를 알려 드립니다’ .. 물론 한번 보고는 ‘아.. 이런 것도 있었나..’ 하는 정도로 덮어 두었다. 물론 속으로 ‘이런 것 옛날에 다 읽었고, 이미 알고 있는 것들’ 이라고 잠깐 생각한 정도였다. 조금 독특한 것이 있었다면 ‘안중근 의사’ 와 ‘닥터 킹 목사’ 의 사진이 표지에 보였다는 정도였을까? 이들이 천주교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의아심을 가졌지만 더 이상 읽지는 않았다.
몇 년이 흐르고, 조금 가슴이 열리고 있었을 때, 그 소책자가 나의 눈에 다시 들어왔다. 우연이었을 것이다. 그 때는 표지를 넘어서 다시 읽고 있었다. 작은 양의 책자여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바로 첫 페이지에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아~ 이 소책자는 오늘 안으로 다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 당시 나는 2005년 4월에 선종하신 이 교황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게 되었고, 내가 변함없이 role model 로 삼을 수 있는 몇 분 중의 한 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분이 이 소책자 간행에 조금이라도 ‘언급’을 하셨다면 나는 이것을 ‘무조건’ 받아들일 마음이 있었다.
이 소책자의 초판이 1990년이었고, 2001년 130판으로 그 당시 470만부가 출판 되었다고 한다. 발행은 ‘한국 천주교 가두선교단’으로 이판석 신부님이 발행인이다. 이 ‘.. 가두선교단’은 무엇일까? 글자 그대로 길거리에 나와서 ‘용감하게’ 전교하는 교우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곧 바로 ‘레지오 마리애‘ 란 것이 보인다. 역시 레지오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아니고는 누가 그런 것을 하랴?
나의 손에 있는 이 소책자는 또한 ‘미국판‘임을 알았다. 그러니까 미주 지역을 대상으로 다시 조금의 ‘재 편집’ 과정을 거친 듯 하다. 역시 가톨릭신문 미주지사, 평화신문 뉴욕지사 란 말이 언급이 되고 있다. 100% 한국판과 이것의 차이가 궁금했지만, 알 길은 없었고 그것은 큰 상관이 없지 않을까.. 다만 ‘닥터 킹’ 이 언급 된 것이 그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할 정도랄까..
아주 쉽게 씌어진 관계로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음은 역시 ‘새 신자’를 찾으려는 의도 때문이었고, 나 같이 ‘얼어 붙은’ 기존 신자에게도 이것은 정말 단 비 같은 포근함을 주고, 다시 고향을 찾은 기분도 느끼게 해 주었다. 무언가 국민학교 교과서를 몇 십 년 만에 다시 잡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향수적인 느낌도 있어서 더욱 좋았다. 아~ 이런 것들 그 ‘옛날’에 다 들은 것이었지..
세 명의 ‘가톨릭 위인’ 중에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역시 우리의 빛나는 애국지사, 안중근 의사.. 나는 솔직히 그가 가톨릭 신자, 토마스 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들어 보았을지는 모르지만, 거의 잊고 살았을지도.. 추종을 불허하는 애국심, 용감성에 그렇게 깊은 신앙심을 가지 분임을 나는 미처 몰랐다. 한 ‘인간을 죽인’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 일본 정치인, 이토 히로부미(伊藤 博文, 이등 박문 )는 우리에게는 ‘전범’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쟁에서의 군인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사형되기까지의 그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들은 순교 성인의 그것을 느끼게 한다.
비록 천주교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이 소책자는 닥터 킹 목사를 그 ‘위인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미국에서 그의 위치와 역할을 충분히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링컨 대통령이 ‘전쟁으로’ 노예를 해방 시켰다면, 이 킹 목사는 ‘무저항, 비폭력’으로 ‘해방 되었던 노예’를 다시 한번 해방 시키는 거룩한 업적을 남겼기에 ‘범 종교적’인 가톨릭에서 그를 성인의 위치로 올려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오래 살면서, 킹 목사의 역사적 위상은 해가 가면서 굳어지고, 올라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흑인 중에 저런 분이 배출 되었다는 것이 솔직히 부러울 정도인 것이다. 역사는 결국 오바마를 미국 첫 흑인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았지 않은가?
이렇게 3명의 ‘유명인’으로 시작된 이 소책자는 포괄적으로 간결하게 천주교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데, 종합적으로 균형을 잘 맞춘 성공작이라고 생각이 되기는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처음에 등장하는 ‘하느님 존재 이유’ 를 너무도 짧게 다루었다는 사실이다. 비신자가 대상이므로, 교리 자체보다 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계신가’ 에 더 설득력 을 두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대체로 이 책자는 나같이 오랜 동안 기초교리를 잊고 살았던 신자에게도 새삼스러운 사실들을 많이 깨우쳐 주었다. 그런 기초 교리들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라고 하면 분명히 침묵을 지킬 것 같다.
이 소책자를 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얼마 전에 우연히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에서 ‘선교용 CD’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바로 이 소책자를 음성으로 담은 audio CD였다. 한국천주교 가두 선교단에서 professional하게 제작된 것인데, 내가 본 소책자와 조금 다른 것은 ‘한국판’이라서 빠진 것으로는 닥터 킹 목사에 관한 것과 다른 것들도 몇 가지가 빠져 있었다. CD가 제작 된 것도 소책자 보다 훨씬 뒤임을 알 수 있는 것이, 2005년에 교황이 되신 현재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CD는 copyright가 되어있지만, 선교용임으로 이것을 youtube video로 올려 놓았다. 물론 copyright는 존중하지만, 이렇게 ‘홍보’하는 것은 이 CD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영세 후 거의 30년이 지난 다음에야 이제 조금 하느님을 믿게 된 나의 경우를 보면, 조금 지나친 case일지도 모르지만, 이것도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아예 믿지도 ‘못하거나’, ‘안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그 비율은 더욱 더 늘어가는 요새 세상임을 감안하면, 이런 소책자, 작은 씨앗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싹을 내고, 궁극적으로 ‘영원한 길’로 가는 길을 열어 줄지.. 그것은 정말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