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이여, 사요나라
이제는 최소한 한여름의 냄새가 완연히 가신, 하지만 가을의 맛은 아직 덜 익은 듯한 그런 시점이고, 느낌조차 많이 다른 9월과 10월의 사이까지 왔다. 이제는 세월이 빠르다는 둥, 느리다는 둥 하는 말이 지겹게 들려서 그런 것 많이 느끼지 않으려 노력을 한다. 올해 여름은 근래에 드물게 ‘땀을 흘리는’ 육체노동을 안 했다. 그 대신 밀려있는 책들을 비록 해변에서는 아니지만 집에서 실컷 읽어서 큰 후회는 없다. 그러다 보니, 거의 무의식 중에 생각을 해오던 1950년, 구일오 인천상륙, 구이팔 서울 수복 기념일들도 다 지나갔다.
만약 그 때의 역사를 계속 따라간다면 조금 있으면 UN군이 한 맺힌 삼팔선을 지나 노도와 같이 북진을 하게 될 것이다. 올해는 어쩐지 그 때의 <1급 전범, 민족반역자, 김일성 개XX>를 ‘죽이거나, 사로 잡거나, 만주로 쫓아내려는 국군과 유엔군을 계속 따라가며 그 당시의 역사를 더 생각을 해 보고 싶다. 여기에는 그 유명한 미 해병대의 장진(Chosin Resevior) 저수지 사투와 흥남 철수, 일월 사일 서울 철수(일사후퇴) 등이 포함될 것이다.
며칠 전, 인터넷을 통해서 중앙고 동창 이성복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다시 한번 ‘비대칭적 추억‘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 비대칭적 추억이란 간단히 말하면 사람에 따라서 같은 추억을 서로 아주 다른 정도로 간직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첫 경험한 것이, 10여 년 전, 고교, 대학시절의 친구 이윤기와 연락이 되었을 때였다. 분명히 나의 이윤기에 대한 추억과 그가 간직하고 있던 추억에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나는 이런 경험을 그 전에는 별로 못 했기 때문에 사실 무척 당황하고, 심지어는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두고 두고 생각을 해 보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그것은 나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부작용’ 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보다 더 그 당시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더 뚜렷하게 기억을 한 것이 사실은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습지만 이것은 ‘나의 문제’일 지도 모른다. 내가 이것을 ‘대칭적인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서 나의 기억과 추억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이번에 이성복을 통해서 조금은 느끼게 되었는데, 이미 경험을 한 바가 있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이런 것의 극단적인 case는 한번 알던 사람이 나를 완전히 잊은 경우다. 1974년 경에 시카고에서 잠깐 만났던 연세대(철학과) 동문 신경시 씨 부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가까이 알고 지냈는데, 나중에 연락을 해 보니, 나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사진까지 보여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것은 조금 심한 case라서 나는 물론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의 기억력의 문제인가, 아니면 잠깐의 인연을 완전히 무시하며 살아서 그랬을까.. 이것은 사실 조그만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