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
Reading by Typing으로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 라는 긴 제목의 한국 예수회 류해욱 신부님 번역서를 5일만에 ‘무사히’ 다 읽게 되었다. 제일 확실하게 끝까지 책 하나를 정독하는 방법 중에 이렇게 typing을 해서 읽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몇 년 전에 알아내고 그 이후로 꼭 읽어야 할 것이 있으면 이런 방식으로 한다. 머릿속에 남는 것 외에 부수입으로 ‘거의 완전한’ digital softcopy가 하나 생기는 매력 있는 방법이다.
이 책도 요새 읽는 다른 좋은 책들과 마찬가지로 ‘우연히 화장실’에서 발견한 책이고, 우리가 속한 레지오 마리애의 꾸리아1 에서 구입한 책 중의 하나였고 연숙이 잠시 빌려온 것이다.
이 책이 나의 눈을 끈 것은 번역자가 류해욱 예수회 신부라는 사실과, 책의 내용이 의학적 과학과 영성적 신앙을 접목시키려는 저자, 레이첼 나오미 레멘의 ‘영웅적’인 노력과 그에 따른 무시 못할 임상, 상담적 성과가 아주 읽기 좋은 분량으로 쓰여진 사실에 있었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97년에 처음 출판된 New York Times의 bestseller였고, 2006년에는 10th Anniversary Edition(10주년 기념 판)이 나올 정도로 오랫동안 ‘생각하며 사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슴이 따뜻해 지는’ 그런 책이다. 원제목은 Kitchen Table Wisdom으로 되어있다.
제목이 풍기는 것은 ‘가까운 가족, 친지들 사이에서 얘기되는 지혜들’ 인데,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적, 과학적, 전문직에서 종사하는 저자도 그들 동료들로부터 예상되는 의심스러운 색안경 속의 눈초리를 의식 안 했을 리가 없어서 이렇게 조금은 ‘푸근하고, 덜 심각하게 느껴지는’ 제목을 택하지 않았을까?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유대인들, 그의 혈통을 지닌 저자는 비록 그의 부모는 거의 무신론자에 가깝다고 했지만, 어찌 ‘피를 속이랴’. 그를 보완이라도 하듯 그녀의 할아버지가 도맡아서 그녀 어린 시절 착실하게 ‘영성적인 세계’의 맛을 그녀에게 보여 주신 것이 아마도 현재의 그녀를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을 해 본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의학, 과학’ 위에 있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안 보이는 것’을 보이는 현실세계로 끌어 들이려 했을 것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나도 그런 것을 과학자로서 이단이라고 매도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고, 저자의 의도와 행동을 100% 이해하고 찬성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번역한 (요새는 옮긴다는 말을 더 많이 쓰는 듯), 류해욱 예수회 신부님은 이름도 얼굴도 낯 익은 ‘문학청년처럼 보이는’ 사제이다. 그는 내가 속한 이곳의 한국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한국교구 파견 사제로 2000년 대에 사목을 했었고, 올 봄에 잠깐 이곳을 다녀 가셨다. 그 당시 나는 그곳 성당을 다니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많이 그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시, 글, 그림 같은 것을 프로처럼 한다는 것을 그때 전해 들었다. 그래서 ‘글’ 과는 가까운 사제라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 배경을 알고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보며, 한마디로 이 책은 ‘두 박자’가 완전히 맞아 떨어진 ‘걸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원저자의 ‘솔직한 고백’같은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 이외에, 영어를 한국어로 옮긴 류신부님의 ‘옮긴 솜씨와 기술’은 근래 보기 드문 ‘걸작’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느낌의 번역은 참 보기 힘든 것이었다. 문제는 의역과 직역의 balance를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소화를 시키셨을까 하는 것인데, 아마도 류신부는 그런 쪽에 talent를 갖고 계신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저자는 주로 암 같은 ‘불치병’을 가진 사람들이 겪게 되는 삶에 대한 새로운 생각, 느낌들을 참 정성스럽게, 성실하게, ‘비과학적’으로 잘도 그려냈다. 내가 그런 환자라고 생각하면 그녀의 불치병으로의 접근 방식을 99.9% 찬성을 안 할 수가 없다. 인간은 한마디로 ‘느린 컴퓨터’가 아닌 그 이상, 과학이나 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삶과 죽음에는 무언가 찾을 수 있는 ‘의미’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는 것이 주제이다.
나의 주변에 알고 있는 ‘암 환자’ 들을 보면서, 이런 용감한 ‘과학자, 의사’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심정이 든다. 거의 완전히 컴퓨터에 의지하려는 (인간보다 덜 실수를 해서 그런가?) 요새의 최첨단 의술을 신봉하는 의료인들, 그들도 사실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갈등을 하고 있을 지 모르겠고, 그들도 조금은 ‘인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제넘은 생각도 들었다.
책을 다 읽고, 이 책을 추천하며 머리글을 쓴 ‘장영희’란 서강대 교수, 사람이 궁금해 져서 연숙에게 물어보았다가, 그 분이 역시 머리글에 있듯이 ‘척추암’으로 타계를 한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너무나 모르고 살았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장교수가 우리가 오래 전, 학교 다닐 당시 책 등으로 잘 알려진 서울대 장왕록 교수, 그분의 따님이었다는 사실도 뒤 늦게 알게 되었다. 아버지, 딸 모두 영문학자가 된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또한 이제 두 분다 이세상 사람이 아님에 숙연해 지는 마음, 한참 동안 떨칠 수가 없었다.
Dr. Rachel Naomi Remen – The Awe & Power of the Life
- Curia, 레지오 마리애의 군대식 조직에서 제일 낮은 등급인 쁘레시디움(소대 격)을 관할하는 상급 평의회 (중대 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