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소년 표류기”.. 까마득히 옛날 옛적, 중학교 1학년 (서울 중앙중학교) 때 읽었던 세계명작중의 하나, 정말 재미있던 모험, 소설책의 제목이다.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머리에 거의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억에 남을 정도면 이것은 참 대단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가는 인터넷에서 이것을 찾아보면 대강 짐작을 할 수 있다. 이 책은 아직도 널리 사랑을 받으며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았을 때, 만화책과 골목 밖에는 별로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재미있는 것과 곳이 없었던 그런 찌들었던 시대가 아닌, 인터넷과 컴퓨터 게임으로 밤을 새는 요새 아이들에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것은 조금 놀라운 일이다. 내가 읽었던 때 이후, 50년 뒤에도 아직도 그 나이또래들의 ‘고전적인’ 탐험 심과 호기심은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일까?
이 책은 나의 중학입시 준비를 도와주었던 (재동학교 6학년, 1959년) 가정교사였던 경기고 (김)용기형이 나에게 중학교 입학 선물로 주었던 것인데, 하도 재미있어서 하루 이틀 새에 다 읽었던 기억이 나고, 용기형 자신도 이전에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에 들어가면 거의 무슨 의식처럼 읽는 ‘명작’ 전집이 있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학원사에서 발행된 거의 100권이 넘는 것이었고, 그것도 한국 명작과 세계명작으로 따로 있었다. 중학교를 마치기 전까지 그것을 다 읽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나는 별로 그런 것들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유는 ‘만화’가 훨씬 더 재미있고 배울 것도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의 15소년 표류기는 그 ‘표준’ 명작전집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한창, 모험심, 공상적 상상이 극에 달하던 그 시절에 이 책은 사실 그렇게 ‘과학적, 공상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은 1세기 전 사람들이 겪었던 거대한 바다, 미개척 된 대륙, 특히 섬들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워 주었다. 이 책을 읽은 후, 바다를 뗏목으로 항해하는 꿈을 많이 꾸기도 했다.
특히, 실제로 구체적으로 서해안, 인천에서 출발해서 제주도 쪽으로 가는 뗏목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다. 물론 중학생에게 그것은 어림도 없는 자살행위였겠지만, 그런 구체적인 계획을 생각하는 것 만도 너무나 행복하였다.
이번에 이 책을 어렴풋이 회상하면서 과연 그것이 어떤 책이었는지 궁금해져서 조사를 해보니,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들이 너무나 많았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책의 내용에만 관심이 있어서 누가 언제 쓴 책인지도 몰랐다. 이러한 사실을 찾는데 책의 제목부터 문제였다.
도대체 ’15소년 표류기’라는 영어 제목은 어디에도 없었다. Fifteen Boys로 아무리 찾아도 없었고, 표류기 같은 castaway, adrift 로 찾아도 헛수고였는데, 혹시..하고 한글로 ’15소년’을 찾았더니 bingo! 재수가 좋았던 것이 이 책이 ‘요새에도’ 읽히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옛날에 읽었던 나 같은 나이의 ‘꼰대’들이 그런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놓았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인데, 요새는 아마도 ‘극성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생각해서 ‘권장하는 아동도서’로서 이런 ‘독후감’ 같은 것을 쓰는 모양이었다.
이런 모험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 중에서 제일 ‘웃기는’ 것이, 책의 제목이었다. 원래의 제목은 Deux ans de vacances 그러니까 프랑스에서 나온 책이었던 것이고, 영어로는 Two Years’ Vacation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저자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바로 그 유명한 Jules Verne!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Jules Verne 하면, 우선 ‘해저 2만리(Two Thousand Leagues under the Sea)’, ‘지저탐험(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 ’80일간의 세계일주’ 같은 ‘기가 막힌’ 책들의 저자가 아닌가? 나는 그 당시에 전혀 모르고 읽었던 것이다.
원제가 ‘2년간의 휴가‘인데 어떻게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15소년.. 어쩌구 로 나왔는지 궁금했지만, 이것은 쉽게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이 책은 일찍이 개화를 한 일본 아해들이 이미 열광적으로 일본어로 출판을 했었고 그 책의 제목이 바로 十五少年漂流記, 가난했던 우리 출판사 아저씨들은 ‘그대로’ 찍어낸 것이다.
일본 쪽으로 자료를 찾으면 1951년에 나온 것이 있는데 내가 읽었던 것은 분명히 이 것을 ‘100% 그대로’ 한글로 직역을 했을 것이다. 그 당시 한국 출판계는 분명히 그랬다. 거의, 아니 100% 일본 것들을 ‘베낀’ 것들 뿐이었다. 문제는 일본 판의 번역이 충실했으면 그런대로 괜찮을 법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읽었던 ‘세계명작’ 들은 완전히 ‘오역’으로 즐겼던 셈이다.
이 책의 대강 줄거리는 생생히 기억을 하지만, 자세한 지명이나 사람이름들은 거의 잊어버렸다. 분명히 생각나는 이름 중에는, 거의 주인공이나 다름이 없는 프랑스 소년 ‘브리안, Briant‘ , 나중에 등장한 ‘Friday 아줌마’ 등이 있다. 대부분이 영국소년들이고, 이들과 ‘정치적’인 갈등까지 겪지만 어른들과 다르게 그들은 빛나는 화해와 협력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하는 참 듣기 좋은 Utopia적인 얘기다.
이런 것들은 요새 생각을 해본 것이고,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은 제치고, 무인도의 동굴 속에서 2년간 살면서 겪는 각가지 탐험, 위험, 모험 등에 ‘열광’을 했었다. 특히 실감나게 잘도 그린 무인도의 지도는 흡사 ‘보물섬’ 을 연상시키는 것이라서 그 당시 나이에서는 완전히 우리를 압도하곤 했다. 1880년대에 나온 책이라 당시의 바다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 찬 이 책을 기억하면 참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기분이다. 요새의 모든 관심사는 그저 ‘우주’가 아닌가.. 바다에 대한 경외심은 이제 많이 찾아보기가 힘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