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친목회, 2012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기 시작하는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 첫째 일요일 12월 2일 오후 2시에 우리 레지오 단원들의 친교를 위한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가 열리면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은 성탄절과 송년의 분위기로 서서히 접어들었다.
나에게 이 레지오 연말 총 친목회는 올해로 벌써 3번째가 되었다. 첫해의 친목회는 입단 2개월도 못 미치는 예비단원(선서하기 전까지 단원등급)이었을 때여서 사실 레지오의 ‘문화’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저 ‘신 나게’ 노는 정도로만 알았다. 하지만 비록 ‘노는’ 시간은 있었어도 비교적 차분하고, 경건하게 진행이 되었던 느낌이었다. 레지오 교본에 의하면 이 친목회의 의도가 분명히 적혀있다. 모르는 단원들과 친교를 이루는, 바로 그것이었다.
의도적으로 군대의 체계를 갖춘 레지오에서 단원들끼리 친교를 갖는 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건전한 친교를 이루는 것도 레지오의 목적을 달성할 때 도움이 되는 정도에서 까지 중요한 것이었다. 절대로 ‘사교적’인 단체와는 달랐다.
그러다 보니 단원들 간의 교류가 비교적 적어서 그런지 만나면 서먹서먹 할 때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려는 것이 일 년에 딱 한번 있는 이 연차 총 친목회였던 것이다.
작년까지는 쁘레시디움 별로 ‘장기자랑’ 같은 것으로 했지만 올해는 완전히 바꾸어서 장기(talent) 별로 모든 단원들이 자유로이 섞여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이런 방식의 의도는 바로 ‘모르는 단원 간의 친교’를 노린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단점은 거의 전혀 모르는 단원들이 서로 모여서 ‘연습’을 하는 것이 전 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이었다.
합창, line dance, clogging(tap dance와 비슷한), 사물놀이, 청년 팀들의 ‘강남 스타일‘ 등이 있었는데,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그 흔한 합창(chorus)밖에 없었다. ‘춤 종류’는 절대 질색이기 때문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무조건’ dance를 하는 사람들에게 좀 미안하지만 조금 바보같이, 우습게 보이기 때문이었고 사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것은 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장기’는 그저 조용히 노래를 하는 합창인데, 올해는 그것마저 조금 싫증을 느꼈는데, 이곳 역시 99.9%가 female, 여성동무들.. 그들의 목소리에 남자가 맞추는 것.. 생각보다 힘들다. 여자들 속에 ‘파 묻히는 것’, 소싯적에는 대환영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내가 모르고 지내던 ‘소수민족’ 남자(들)과 중창을 하는 ‘기발한’ idea 였다. 연숙에게 의논을 하니, 의외로 대환영이었다. 모르는 ‘남자’를 알게 된다는 것도 괜찮고, 거의 여성위주인 행사에서 남자들이 모여서 노래를 한다는 것도 신선하지 않은가?
행사 한 달 전에 생각을 굳히고, 남성동무 들을 찾았는데.. 이것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요새 세상에 완전히 여자세상 이라고 는 하지만 정말 정말 남자를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특히 신앙단체에서는 그 현상이 더 심한 것이다. 그야말로 남자란 ‘것’은 희귀한 존재였던 것이다. 거의 포기를 하려 던 참에 구세주같이 한 사람을 찾았는데, 연숙이 부단장으로 있는 꾸리아의 서기였던 자매님의 남편 형제님, 그도 레지오 단원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노래를 무척이나 즐기고 잘하는 형제님 이었고 나보다 나이가 2살 정도 아래여서 노래의 세대가 거의 비슷했다.
한 가지 문제점은 진한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있고, 목소리가 나에 비해서 ‘엄청’ 우렁 찬 것… 하지만 이것들은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친목회에서 부를 곡은 모두 3 곡으로 정해졌는데, 시작할 때 다같이 부를 곡과, 정식 program에서 우리 둘이 부를 곡이 2 곡이었던 것이다.
선곡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지난 7월 초 레지오 교육 피정 당시 불렀던 복음성가 중, 2곡이 아주 가사를 포함해서 좋았다. ‘주님이 좋아요’ 와 ‘실로암’ 이 그것이었다. 나머지 한 곡은 1979년 발표되었던 그룹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이 곡은 특히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좋아했던 것이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곡이 정해지고 나서 제일 큰 문제는 60대의 머리로 3절까지 되는 가사와 기타의 코드.. 이것은 정말 큰 challenge에 속했다. 결과적으로는 그런대로 무난하게 끝을 낼 수 있었지만, 이것들을 ‘외우는’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보처럼 반복‘하는 연습.. 그것이었다. 아마도 프로들이 쓰는 방식이 그것일 것이다. 머리를 쓰는 것이 아니고, 기계적인 반복 연습인 것이다. 처음에는 악보 stand를 사용해서 악보를 보려고도 했지만, 그것은 너무나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안경’을 끼고 악보를 응시하는 ‘노인네’의 모습이 얼마나 웃기겠는가?
실제로 ‘공연’을 할 때, 역시 나의 우려가 현실로 되었다. 같이 나온 형제님의 목소리가 엄청 큰 것.. 거기다 그 형제님은 마이크를 손에 들고, 입에 대고 불렀으니.. 나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마이크 stand를 통한 관계로 뒤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나는 기타 반주자로 등장한 꼴이 된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되겠는가? 그런대로 신선하게 60/70/80 style(통기타)로 불렀고, ‘남자들’ 만의 모습도 보였고, 잘 모르던 형제님도 사귀게 되었으니.. 목적은 달성한 것이었으니까.
위에 있는 audio track은 이번 남성 이중창을 위한 연습 session중의 하나를 record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바쁜 시간에 1시간 정도 짬을 내어서 4번을 연습 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것을 다시 들으면 또 하나의 추억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