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유감 電話有感
몇 달 전부터 이것에 대한 것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시각적으로 눈으로 봐야 하는 나의 글이 아니고 눈을 편히 감고, 잘 안 보이는 희미한 글자나 그림 대신에 나의 살아있는 ‘육성’을 나의 그리운 가족과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 그런 꿈같은 상상을 하다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현재 내가 가장 부끄럽고 창피하고 부족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육성을 쓰는 ‘진짜 전화’ 대화임을 나는 잘 안다. 가장 싫은 것 중에 하나가 전화로 하는 대화들, 언제부터 그렇게 피하고 싫어했을까?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수도 없이 걸려오는 telemarketing, anonymous call들, 그런 것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인간’들과 말을 나누는 자체를 상상하기 싫었다. 그러다 보니 caller-id 를 보며 귀찮은 사람의 전화는 숫제 받지를 않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email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는데, 상상외로 이런 삶의 방식이 부드러운 것은 아니었다. ‘반 사회적 anti-social’ 으로 가는 느낌까지 들 때도 많았다.
나의 전화사용이 거의 내가 필요할 때만 (내가 먼저 거는 것만) 하게 되기 시작하면서, 횟수도 점점 떨어지고, 나에게 걸려오는 전화도 따라서 줄어갔다. 잘 받지 않는 전화.. 누가 하겠는가? 내가 생각해도 이것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혹시 전화로 이야기를 하게 되어도 그 대화는 내가 바라는 것처럼 편한 것들은 아니었다.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신나는 전화대화’를 ‘즐겼던 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이런 문제들이 2년 전에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을 하고 단원활동을 시작하면서 내가 풀어야 할 과제로 간주가 되었고, 약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레지오의 거의 모든 business가 ‘아직도’ 전화가 제일 효과적이기 (빠르고, 확실하고) 때문인데, 그것은 아직도 email을 안 쓰거나 못쓰는 사람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활발하게 전화 하는 것..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를 않았다. 너무나 ‘조용한’ 나만의 comfort zone 에 나는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email을 쓰는 ‘일반’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전화로 ‘실시간 real-time’ 대화가 없는 생활이 우려하는 만큼 치명적으로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말을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전화 잘 걸고 잘 받고, 잘 하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 나의 인생 반려자인 연숙이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한다. 어쩌면 그렇게 전화를 ‘용감하게’ 잘 사용할까.. 그 중에서도 제일 놀라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전화 벨이 울리면 ‘99.99% 무조건’ 받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를 제외하고는 식사를 하건, 화장실에 있건 상관이 없다. 전화를 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나에게 전화가 오면 99.9% 통화가 안 되고 연숙은 정 반대로 99.9% 받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아마도 ‘고철’같은 레지오도 초현대 디지탈의 편리함에 서서히 변할 것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email이나 instant messaging 같은 것.. 전화의 간단 편리함은 ‘절대로’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내가 레지오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려면 이 전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고, 더욱 높은 차원의 협조를 구해야 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