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유부인, 1956
얼마 전에, 어렸을 적에 귀따갑게 들었던 1950년대 화제의 영화, 자유부인을 기적적으로 보게 되었다. 기적적이란 표현이 과장이 아닌 것이 이 영화는 1956년에 나온 것으로 그 바로 전에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같은 이름의 정비석 원작의 신문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고, 그 당시에 불과 국민학교 2~3학년 정도였던 나까지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반세기가 지난 뒤에 실제로 그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surreal한 기분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화제의 단계를 넘어서 그 소설, 영화는 ‘문제작’의 수준까지도 올랐던 것을 기억한다. 모든 것이 ‘자유’라는 단어가 붙었던 그 당시였다. 당시의 이승만 여당도 자유당이고, 대한민국은 자유란 말만 붙으면 모든 것이 ‘멋지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거기다 급기야 ‘자유부인’이란 말까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까지만 해도 “자유와 부인“은 그렇게 잘 어울리지 않던 비교적 엄격한 ‘남녀 유별’의 전통이 있었다고나 할까.. 지금 보면 간단히 말해서 ‘남녀차별, 남존여비’의 전통이다. 나와 같은 세대는 그런 ‘구식 전통’을 보며, 느끼며 자란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 개XX’의 도움으로 6.25 사변을 거치며 거대한 미국의 ‘신식 문화’가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오면서, 이런 것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일까.. 그것을 timing좋게 당시 유명했던 대중 소설가 정비석 씨가 인기소설로 이끌어내고, ‘폭발적’인 화제가 되자 곧바로 영화가 된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서로 바람 피는 대학교수 부부의 주변을 그린 것이지만, 특히 교수부인, 춤바람 난 아내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결과는 비교적 예상하기 어렵지 않게 끝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바람 피는 여자’에 대한 질타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여자의 권리’ 같은 것도 나란히 잘 그려낸 듯 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긴장을 하곤 했는데, 이 영화에 보이는 location(로케, 촬영 장소)들이 너무도 눈에 익었던 곳이어서 나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우선 시청과 국회 의사당 주변에서 당시의 차들이 오가는 거리 풍경은 정말 내가 보고 기억한 것과 100% 일치하였다. 특히 행인들의 옷차림: 중절모의 남자, 한복의 여자들을 보면서 ‘맞다, 그때는 그랬다’ 하는 탄성이 나오곤 했다.
시발 택시도 나오기 전 차량들은 거의 ‘미제 시보레’ 급의 세단들과, 일본이 남기고 갔거나, 수입했던 ‘동글 동글한’ 시내 버스들.. 물론 그립던 ‘귀여운 에노 전차’들이 명동, 미도파 앞에서 굴러가는 모습들은 사진처럼 나의 뇌리에 남아있는 것들이었다. 동화 백화점, 남대문 시장입구, 미도파.. 심지어는 화신백화점 옆에 있었던 ‘신신백화점’이 깨끗이도 보인다. 이 영화의 보존 상태는 정말 어제 찍었던 흑백 사진과도 같이 좋았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민 이란 남자배우를 보게 되었다. 귀에 많이 남았던 배우였는데, 자세히 보니 참 잘생겼다. 왜 그 이후에 큰 스타가 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모든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간판배우 박암,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한 그의 연기는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특징이 없다. 여자 주연인 ‘김정림‘.. 정말 모르겠다.. 기억이 ‘전혀’ 없으니까.. 어떻게 그녀가 주연이 되었는지,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도 깜깜 이다. 구닥다리 안경과 새카만 콧수염의 ‘주선태‘.. 좋은 역으로 나오긴 힘든 배우고 배역이지만, 그래도 반가운 얼굴 중에 하나다.
문제는 이곳에 나오는 ‘연극배우’ 김동원.. 나는 그가 이런 ‘대중영화’에 그것도 초창기에 출연했는지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설마 저 사람이 내가 기억하는 ‘연극배우’ 김동원은 아니겠지 할 정도로 조금 닮았다고는 생각했지만.. 문제는 머리칼 머리 숱.. 내가 아는 김동원씨의 머리는 절대로 ‘대머리, 반대머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머리가 빠지다 보니, 더욱 호기심이 나서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분명히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은 ‘연극배우’ 김동원이 분명했다. 그의 머리 스타일은 반 대머리.. 훨씬 이후에 보이는 김동원씨의 모습은 절대로 대머리가 아니고 숱이 많은 모습들이다. 그러면 둘 중에 하나인 것이다. 원래 대머리였고, 그 이후에는 ‘가발’이었을 가능성과, 영화 자유부인에서 ‘역할에 의한 삭발’의 가능성..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신빙성이 있을까? 물론 100% 확신을 할 수 없지만 나는 전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자유부인 이후의 김동원씨, 가발 수준은 정말 수준 급이라고 해야 할 듯하고, 많은 fan들에게는 그렇게 상대적으로 ‘젊은’ 모습을 남기려 했던 그 노력은 참 상당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렇게까지 한 것에 100% 공감을 하지는 않지만, 직업상 어쩔 수 없었을지 않을까.. 그저 benefit of doubt을 주고 싶어진다.
춤추는 유부남과 유부녀
명동입구의 양품점 사장으로 연기하는 김동원
동화백화점 경양식집에서 김동원과 김정림, 자유부인 1956
김동원씨 가족, 1972
동아일보의 약품광고에서 ‘건강과 행복’을 전하는 듯.. 바른쪽 끝에 가수 김세환씨가 보인다
True Love – Bing Crosby & Grace Kelly, 1956
그 당시 유행하던 영화 High Society의 주제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