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호형의 글이 발표되었고, 나도 볼 수 있었다. 제목은 ‘옳은 것은 흑백논리와 다원주의 중 어느 편일까?’, 부제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과학적 판단’ 으로 <김인호의 경영 경제 산책> 컬럼 11번째가 된다. 사순절 훨씬 전에 잠깐 연락이 되었지만 다시 ‘잠잠’ 했는데, ‘불현듯’ 소식이 온 것이다. 얼마나 바쁘게 사시는지 간혹 email 교환의 호흡, 박자가 어긋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50년이 가까워오는 ‘몇 달간의 만남’ (아르바이트 대학생과 까까머리 고3 수험생으로)의 인연에 별로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비록 경영학 쪽의 전문가로 성공하셨지만, 이공계의 배경은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오늘의 글은 그런 형의 단면을 보여주는 느낌인 것이다. 경제,경영에서 벗어나, 보편적 논리와 열역학적 법칙으로 본 우주의 창조론 같은 것은 기성 전문가들에게 거론하는 것 조차 거의 taboo시 될 수도 있지만, ‘좁은 과학의 눈’ 을 정면으로 도전하듯 바라보는 용기를 느끼게 한다. 1965년 형에게 몇 개월간 받았던 수험과목 이외의 ‘첨단,공상과학 강의’는 나의 머리에 아직도 뚜렷이 남아 있기에 나는 형의 열역학으로 설명이 되는 창조,진화론을 더 흥미 있게 보게 된다.
옳은 것은 흑백논리와 다원주의 중 어느 편일까?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과학적 판단
04.02.2013
세상에는 ‘끝이 좋으면 만사가 좋다’라는 입장에서 어떤 행위의 결과가 좋으면 그 행동은 좋은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결과중시론(consequentialism)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의 결과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행위 자체의 성격과 동기에서 이미 비롯된다는 비결과중시론(non-consequentialism)의 주장도 있다. 또 목적이 좋으면 그 달성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정당화(be justified)된다는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같은 것도 있다.
이들 각 의견이나 주장은 다 그 나름대로 그 주장에 대한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면 그들이 모두 옳을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볼 때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더라도 어쩌면 그 많은 주장들 중에는 아예 옳은 것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들 중에 옳은(right) 것이 있다면 나머지 것들은 다 그른(wrong)것이라는 논리적 추론이 가능해 진다. 이는 선다형문제에서 정답은 항상 정답이고 나머지들은 항상 오답인 것과 같다.
예컨대 (3)번이 정답인 선다형의 경우 다수가 (1)번을 정답으로 답했다 해서 정답이 (3)번에서 (1)번으로 바뀌겠는가? 정답과 오답은 다수냐 소수냐에 관계없이, 정답은 항상 정답이요, 오답은 항상 오답인 것이다. 정답이므로 정답이라고 받아들이고 오답은 정답이 아니기 때문에 오답으로 받아들이는 판단은 옳은 판단이다. 그런데 정답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오답인데도 불구하고 정답이라고 우긴다면 이는 모두 오류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범할 수 있는 오류에는 알파(α)오류와 베타(β)오류의 두 가지가 있다. 만약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 한다든가 또 사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실이라고 판단한다면 이는 모두 그릇된 판단이며 오류이다. 전자의 오류를 우리는 알파(α)오류, 후자를 베타(β)오류라 하는데, 오류는 반드시 오류로 판명되기 마련이다.
오류가 있는 곳에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류는 그 자체가 이미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데 있어서 오류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한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라는 흑백논리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에 관해서도 흑백논리로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며,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과 주의 주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더 바람직한 것으로까지 받아들이는 잘못을 범한다.
각자의 다양한 의견이나 주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의 다원주의(多元主義; pluralism)와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면 옳은 것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입장의 상대주의(相對主義; relativism)에 익숙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현대는 다양한 주의주장들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옳은 것뿐만 아니라 알파오류나 베타오류도 수용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오류의 견지에서 볼 때, 무신(無信; atheism)은 알파오류이며, 미신(迷信; superstition)은 베타오류이다.
잠시 다음의 실험결과를 음미해 보자.
들려주는 음악의 형태를 바로크 음악과 헤비메탈 음악으로 달리하고, 나머지 조건들은 모두 동일하게 한 상황에서 여러 씨앗들의 발아실험을 실시하였다. 일정시간이 경과한 후 조사해보니 바로크 음악을 들려준 쪽의 성장이 헤비메탈음악을 들려준 경우보다 3배나 더 자랐으며, 더 놀라운 사실은 바로크 음악을 들려준 쪽에서는 모든 싹들이 음악이 들려오는 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반하여 헤비메탈음악을 들려준 경우에는 모두 소리 반대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실험 결과를 통해서 모든 씨 안에는 절대자의 절대의지가 투영되어 있고, 그 씨들은 철저하게 절대자의 의지만을 따르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모두 그것을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있으며, 거기에는 반드시 메이커(maker)의 의도가 투영되어 있다. 어떤 물건이든 그 만든 메이커(maker)의 의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면, 그것은 좋은 존재이고, 그렇지 못하면 나쁜 존재이다.
이 명제를 연장시켜 생각해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메이커(maker)가 있듯이, 우주도 존재하는 하나의 실체이므로 그것을 존재케 한 메이커(maker)가 존재한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존재하는 조물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바로 알파(α)오류를 범하는 것이요, 한편 이상한 돌이나 나무 산 태양 별 등 심지어는 영물이라고 섬기는 우상에겐 아무런 영적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무엇이 존재한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바로 베타(β)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 창조 여부와 관련하여 세상에는 여러 주의·주장들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창조론(creationism)과 진화설(evolutionism)과 윤회설(transmigrationism)을 들 수 있다.
이제 우주의 에너지는 증감 없이 항상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1법칙과 폐쇄시스템(closed system)에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엔트로피(entropy: capacity to change 의 역수(逆數)로 표현되는 무질서의 정도를 말함)는 항상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여 그 진위를 분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열역학 법칙은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과학법칙이기 때문이다. 일명 엔트로피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열역학 제2법칙은 우주 내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높은 질서(higher order)에서 낮은 질서(lower order)로 비대칭(非對稱)의 일방적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열역학 법칙의 견지에서 볼 때 낮은 질서에서 높은 질서로 진화한다는 진화설은 열역학 제2법칙에 정면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질서가 계속 생기려면 우주에서 에너지가 계속 증가해야 하는데 이는 우주의 에너지는 증감 없이 항상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1법칙에도 상치되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높은 질서에서 낮은 질서로 때로는 낮은 질서에서 높은 질서로 지그재그(zigzag)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윤회설도 열역학 법칙의 견지에서 볼 때 자연 질서에 엄청 어긋나는 것임을 또한 알 수 있다.
글/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ihkim5611@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