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Blog: 김인호의 경영·경제 산책 14

재벌구조의 진화논리와 기업의 지속번영 원리

2013.04.30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필자가 1969년 공군중위 제대 후 첫 직장인 KIST에서 연구를 막 시작할 때 지녔던 사고(思考)의 하나는 사회현상에도 자연 질서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인식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물은 언제 어디서나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과 같은 보편질서(universal law)와‘물살은 협곡에서는 빨라지고 강폭이 넓어지면 느려진다.’는 식의 상황적응질서(contingency laws)가 사회현상에서도 적용될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이런 인식을 기초로 1970년대 초반 KIST 경제분석실에서 필자가 실무책임을 맡아 행한 첫 연구 프로젝트가 POSCO 건설타당성 검토연구였다.

당시 국내 철강 시장규모는 왜소하고 철광자원도 희소할 뿐만 아니라 공장을 건설할 돈도 기술도 물론 없고 철강회사 경영경 험은 전무였으며 다만 있는 거라고는 당시 KIST로 영입되어 온 몇 분의 유학파 과학자들과 거의 무경험의 미숙한 국내 금속공학과 출신의 엔지니어들뿐이었는데 과연 이런 상태에서 POSCO 프로젝트가 국책사업으로서 타당성을 지니겠는가를 검토하는 연구였다.

 POSCO 건설 프로젝트는 이미 KISA (포스코 건설을 위한 국제 consortium)에서 2여 년 간 그 타당성을 검토한 바 있는 프로젝트였는데 그들이 포항제철 건설프로젝트는 그 사업타당성이 크게 뚜렷하질 않아서 차관을 못 주겠다는 결론을 내린 1969년 초반에 정부가 KIST로 하여금 독자적으로 검토하라는 배경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이런 연구 배경에서 필자는 우선 철강공장의 최소 경제적 생산규모가 얼마인가를 기술연구팀으로부터 확인한 후 최소 경제적 생산규모를 갖추려면 어느 정도로 수출되어야 할 것인가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래서 5~60년대에 걸친 세계철강재의 수출입자료를 가지고 소위 철강수출모형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당시 사업타당성검토와 관련한 기본정보와 아이디어가 전무했던 터라 이리저리 밤낮없이 고민하던 끝에 떠오른 생각이 자연법칙을 원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수 출은 수입하는 나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수출하는 나라에서 수입하는 나라로 얼마만큼이 수출될 것이냐에 대한 예측은 마치 물리학에서의 중력법칙(gravity law) 곧 두 물체간의 중력의 크기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법칙을 근거로 하여 철강수출모델을 도출하고자 했다.

 자연법칙을 논거로 한 연구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유의적인 예측치가 얻어졌는데 이는 필자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고 POSCO 사업타당성 검토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어찌 알았는지 POSCO 건설 사업타당성에 대해 미국 USX 철강엔지니어링 회사가 찾아와 득의 찬 자세로 도움을 주겠다며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제안을 다 듣고 난 후 그들에게 우리의 작업결과와 그 방법론을 보여주었더니 ‘too academic’이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는 얼굴이 벌게 가지고 도망가듯 가벼렸던 게 아직 기억난다.

 아무튼 KIST의 검토 결과대로 포항철강공장건설이 확정되고 자금 확보와 관련한 일련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순항을 거듭하여 POSCO는 드디어 1973년 첫 출선의 기쁨을 온 국민에게 주었던 것이다.

필자가 POSCO 프로젝트를 끝내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서울지하철 2호선 노선을 마련하는 새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같은 아이디어로 서울시내 교통량을 예측하여 노선확정(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런데 이번에도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영국의 한 컨설팅회사가 집요하게 제안 설명기회를 달라고 해서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우리의 연구가 거의 끝난 상황이라 기회를 주었더니 1시간 이상 득의에 찬 설명을 하면서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연구결과를 보여주자 그들도 역시 얼굴이 벌게져서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그토록 득의에 차서 설명한 방법론이 바로 우리가 이미 사용한 중력모델이었던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