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쇠락 이유 알았다” 연발하던 핀란드 교수
2013.06.19
미국 샌디에고(San Diego)에 갈 기회가 필자에겐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007년 센디에고 쉐라튼 호텔에서 있었던 제27차 세계전략경영학회 연례회의(SMS Annual Conference)참석 때였고, 두 번째는 2011년 센디에고 근교 리조트의 LOEWS 호텔에서 열렸던 SMS 특별회의(Special Conference)참석 때였다.
2007 년 첫 번째 센디에고 갔을 때 그곳 인상은 2008 월가 붕괴 1년 전이어서 그러했는지는 몰라도 무언가 무력감이 느껴지던 분위기였다. 약 700여명을 헤아리는 학회 참가자들로 쉐라튼 호텔 로비는 붐비고 있었는데도 호텔도 예외는 아닌 듯 생동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특히 배정받은 룸의 세면대 발브가 제대로 작동이 안 돼 물이 줄줄 새고 있어 프론트에 알리자 수리공들이 왔다 갔다 하며 손을 봤지만 임시변통도 잘 안 되는 걸 보면서는 뭔가 큰 이상(異常)이 감지되었다.
그러함에도 SMS 연례회의 행사는 그런대로 성대하게 잘 진행되고 있었다. 필자는 그간 교분관계를 맺어 온 영국 Warwick의 John McGee 교수, 스위스 IMD의 Bala 교수, 북경대 GSM의 Changqi WU 부원장을 비롯한 10여명의 회원들과 해후의 인사를 나누며 미리 준비해 간 Dynamic Management Theory(DMT)에 대한 PPT 자료를 첫날 일정이 끝나고 저녁을 마친 후 나눠주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SMS전 회장이었던 McGee 교수가 스티븐 킴(당시 그는 필자를 그렇게 불렀음)하며 큰 소리로 필자를 부르며 필자를 일찍부터 기다렸다며 전날 준 PPT 자료에 뭔가가 잔뜩 쓰여 진 것을 들고는 질문이 있다는 것이었다. 얼른 필자에게 다가 온 생각은 McGee 교수가 DMT에 대해 대단한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가 DMT와 관련하여 필자에게 제기한 질문의 요지와 주고받은 대화는 이러했다.
1) 공급과잉과 수요부족 간의 불균형(imbalance)이 1929년 세계대공황을 야기 시킨 것처럼 1997년 이후 10년 사이에 미국 GDP의 25배가 넘을 정도로 급증한 파생금융상품으로 인한 금융경제(money economy)의 초거대화와 1980년대 초반부터 쇠락해 온 제조업으로 인한 실물경제의 왜소화와의 불균형으로 미국경제는 결국 머지않아 큰 파국을 맞으리라 보는 필자의 시각이 너무 지나친 건 아닌가?
이에 대해, 아직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므로 누구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큰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선에서 일단은 봉합하였음.
2) 1980년부터 전략경영(strategic management)이 경영학의 한 영역을 형성하여 온지가 27년이나 되었는데 거의 같은 기간 동안(1980-2007) 미국경제가 계속 쇠락하여 온 사실을 들어 전략경영이 그간 제공해 온 이론/모델/분석도구들이 결국 실용성이 덜한 것들이라고 보는 필자의 사고 역시 논리의 비약 아닌가?
이에 대해, 전략경영의 기본관점이 요소환원주의(reductionism: 각 요소의 총합이 전체라는 철학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어 인터넷혁명 후 상호의존성이 높아지고 상호작용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기업과 산업을 각각 하나의 전체로서(as a whole) 파악하는 개념적 틀이 요구되며 이런 면에서 전략경영은 한계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는 인식에는 공감을 표했음.
3) 한국의 대기업인 재벌(Chaebol)들이 잘나가는 이유가 뭔가? 특히 삼성(Samsung)이 Fortune Global 500에서 2005년에 40위권으로 진입했고 2007년에도 30위권으로 상승무드인데 그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더욱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금과옥조처럼 가르쳐 온 우리들로서는 삼성의 경우가 참으로 당황스런 면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McGee 교수와 필자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진지한 토론을 계속했고 발표세션이 시작되었는데도 발표장엔 들어가지도 않고 서로의 주장을 주고받았는데 이는 삼성성장의 면모를 몇 마디로 정리하는 게 어렵다는 선에서 얘기를 맺었다.
다만 당일 필자는 삼성 PR Man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필자가 삼성자동차 비상임감사를 몇 년 맡았던 경험에 비춰볼 때 삼성은 부정부패(不正腐敗)와 노조(勞組), 이 두 가지가 없는 참으로 남다른 기업임을 역설했다. 부정부패가 없다 보니 조직구성원들이 딴 생각을 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으니 자연히 주인의식을 갖게 되고 주인의식을 지닌 그런 종업원들이다 보니 왜 노조가 필요하겠는가, 라는 필자의 설명에 McGee 교수는 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대목 같다고 해서 둘은 큰 소리를 내며 한껏 웃었다.
아무튼 그날의 그 화끈한 토론은 그 후 McGee 교수와 필자가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가깝고 격의 없는 사이가 되었는데 2011년 후반 어느 날 그는 자기가 2013년 여름에 발간되는 ‘Wiley-Blackwell Encyclopedia of management 3rd Edition’에 실릴 Strategic management의 편집총책임을 맡았다며 자기의 필진으로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해 왔다. 필자는 쾌히 응한다는 답신을 보냈더니 곧 이어 Wiley-Blackwell 출판사에 서 재벌구조(Chaebol Structure)에 대해 1800-2400자 이내로 10개월 내에 정리해 달라는 내용의 논문청탁계약서를 보내왔다. 그래서 계약대로 2012년 하반기에 재벌구조의 형성과 진화(Emergence and Evolution of Chaebol Structure)라는 논문을 보내주었더니 고맙다며 논문 원안대로 게재키로 했다는 결정을 통보해 왔다.
필자가 샌디에고에 두 번째 간 때는 2008 월가붕괴(Wall Street meltdown)라는 금융위기가 터진 지 3년 뒤인 2011년 여름 바캉스시절이었다. 2010년에 타계한 핵심역량의 주창자인 Prahalad 교수의 거주지가 새디에고 였던 탓에 샌디에고 근교의 고급 레조트에서 그의 1주기 추모를 겸한 SMS Special Conference가 열린 것이었는데 회의주제가 핵심역량이라는 특수한 탓에 학회 참석자는 70여명에 불과했다.
3개의 논문발표세션이 동시에 진행되는 어느 세션에서 필자는 ‘Core Competence: Starting Point to Trigger Dynamic Management based on Firm Power Theory’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제목 탓이었는지 참석자의 반이 넘는 40여명을 헤아리는 회원들이 들어와 경청하였다. 필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쓰고도 모자라 양해를 구해가며 얼마의 시간을 더해 얘기를 끝내니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느껴졌는데, 이는 발표 때 모두 숨을 죽이고 경청했고 토론 때에도 누구 하나 딱 부러지는 질문보다는 새로운 시각과 이론체계에 놀랍다는 찬사만을 보내는 걸 보면서 그런 감이 들었었다.
발표와 토론이 끝나 필자가 발표장을 나오자 참석자의 상당수가 필자를 따라 나와 명함을 주면서 필자의 논문 내용에 깊이 감명되었다는 찬사를 연발했다. 그런데 그 중에는 핀란드 어느 대학교 수와 그의 여자 박사과정학생도 있었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뜨길 기다리며 필자와 좀 더 이야기하길 원했다. 그 연유인즉슨 필자가 발표 중에 핀란드 Nokia의 쇠락현상을 예로 든 바가 있었는데 자기가 현재 Nokia의 경영자문을 맡고 있으며 이번 회의 참석도 Nokia 쇠락이유를 알고자 함에서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이나믹 매니지먼트에 대해 오늘 발표한 것을 한 번 더 차근차근 설명해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그에게 들려준 내용을 요약해 본다.
기업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주체(Profit-Seeker)이다. 이익은 수익(revenue)과 비용(cost)의 차이이며 수익은 오로지 고객으로부터만 오기 때문에 리더는 그 많은 이해관계자(Stakeholder) 중에서도 고객 특히 지불의향을 지닌 고객만이 기업수익의 유일한 진원지라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불의향을 지닌 고객니즈는 언제나 니즈속성의 집합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이들 니즈속성들은 크게 고객만족을 가져오는 어필니즈속성(appeal needs attributes: ANA)과 그것이 결여될 때 고객은 아예 관심조차도 갖지 않게 하는 기본니즈속성(basic needs attributes : BNA)으로 구분될 수 있다.
고객은 우선 기본속성이 최소한 100% 충족되어 관심을 갖는 상태에서 어필속성이 충족되어 만족을 느낄 것으로 기대되는 순간부터 지불의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지불의향수준은 고객의 만족수준에 따라서 정해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지불의향수준은 현시수요의 크기, 니즈의 성격, 어필속성의 결여 정도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지불의향수준은 기본속성이 100% 충족된 상태에서 어필속성이 많이 충족될수록 높아지고 덜 충족될수록 낮아진다.
그런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어필속성의 결여(lack of ANA)가 적으면 적을수록 지불의향수준은 높아지고 어필속성의 결여가 크면 클수록 지불의향수준은 낮아지므로 지불의향수준은 어필속성의 결여에 대한 역(逆)함수로 표시될 수 있다.
이 명제를 기초로 지불의향모델을 유도할 수 있다. 지불의향모델에서 고객만족영역(customer satisfaction zone: 기본속성이 100%충족되면서 어필속성이 0%에서 100%충족되는 영역) 내에서 어필속성의 결여에 대해 고객이 얼마나 민감한 반응을 내보이느냐에 따라서 우(右)로 하향(下向)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지불의향곡선(WTP curves)이 얻어지게 된다.
즉, 어필속성이 조금만 결여되어도 지불의향수준이 민감하게 반응을 내보이는 명품 니즈와 같은 경우와 그 반대로 비교적 둔감하게 반응하는 생필품 니즈와 같은 경우 그리고 그 중간형태 등 여러 형태의 지불의향곡선이 있을 수 있다.
기본속성 100%로 충족된 상태에서 어필속성도 100% 충족되면 고객은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감동(customer excitement)을 느끼면서 최대지불의향수준을 내보이게 된다.
고객이 내보이는 최대지불의향수준이란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이 사업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수익 기대치이다. 이는 곧 사업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으로서의 당위(norm as ideal)이며 이런 의미에서 사업성공을 보장하는 모범답안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산업(시장)레벨에서 고객으로 하여금 최대의 지불의향을 갖게 할 니즈속성의 집합을 찾고(Seek Norm), 기업이 니즈맞춤혁신(needs-focused innovation)을 통해 이를 충족시켜줄 제품/서비스를 생산·제공하기만 하면(Get-to-Norm) 어느 기업이든 사업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고객이 최대의 지불의향수준을 내보일 모범답안으로서의 제품/서비스가 무엇인가를 찾는 데서부터 기업은 사업경영을 착수하게 된다.
고객은 무한한 잠재니즈(latent needs)를 갖고 있지만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 고객에게 기업이 혁신을 통해 신제품/서비스로 새로운 어필속성을 촉발시키는 그 순간부터 고객은 지불의향을 갖게 되며 새로운 어필속성이 등장하면 기존의 어필속성은 기본속성으로 바뀌면서 고객니즈는 진화해 간다.
니즈진화는 환경변화의 충격에 따라서 크게 몇 가지 형태로 구분될 수 있는데 잠시 정보전달에 대한 니즈진화의 예를 보자.
과학시 대 이전에는 봉화라든가, 새 또는 연을 이용하는 방법 등을 통해서 정보가 전달된 적도 있었지만 과학기술시대가 열리면서 부호(code)에 의한 정보전달의 니즈가 구매력을 지니며 현재수요(explicit demand: 구매력도 지불의향도 지니고 있는 고객집단의 크기를 말함)가 형성되는 시기에 Morse code로 전신시대가 열렸고 이는 1840년대 이후 100여 년 이상 주종의 정보전달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전신시대가 열린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보전달의 니즈는 Code에서 직접 목소리(voice) 를 통해서 정보를 주고받고자 하는 대도약 니즈진화(quantum needs evolution)로 엄청난 대기수요(waiting demand)가 형성되던 시기에 Alexander Graham Bell이 1876년에 빅뱅혁신(big bang innovation)인 전화를 발명하자 정보전달의 대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일단 목소리에 의해 정보를 주고받는 전화시대가 열린 후 100여 년간 전송방식, 교환방식, 전화기 모델 등에서 때론 소폭의 니즈진화(minor needs evolution)가 또 때론 대폭의 니즈진화(major needs evolution)가 진행되어왔는데 그때마다 니즈맞춤혁신으로 이를 충족시킨 기업들이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여 왔다.
이제 전화시대가 100여 년 이상 지속되다 보니 언제 어디서든 기동성(mobility)있게 음성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대도약 니즈진화가 형성되게 되었다. 그런데도 2차 대전 후 미소양극체제하에서 무선은 오직 군용 전유물이었으므로 엄청난 대기수요(waiting demand: 구매력은 있으나 기술력이 없으므로 대기해야 하는 수요를 말함)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1980년대 중반 들어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미소양극체제가 끝나면서 군전용이던 무선(wireless)통신이 민간용으로 상용화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자 군(軍)통신을 독점하고 있던 Motorola가 1990년대 중반까지 이동통신시장을 선점하면서 cellular phone강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Motorola가 AMPS라는 저급의 주파수 사용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동안 그 10배의 효율을 갖는 GSM(TDMA) 기술(Radical Innovation)로 무장한 Nokia에게 1990년대 중반에 나가떨어지게 되었으며 이후 Nokia는 엄청난 R&D투자를 통해 음성위주의 소폭, 대폭 니즈진화에 걸 맞는 Feature Phone을 계속 선보이면서 2000년대를 군림해 왔다. 특히 2008-2009년에는 Fortune Global 500의 80위권에까지 진입하였었는데 이후 반전을 기대할 수 없는 급강하가 계속되어 2011년에는 140위권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유무선기반의 음성위주의 전화시대에서 어플리케이션 위주의 새로운 대도약 니즈진화(quantum needs evolution)가 진행되던 시기에 여기에 초점을 맞춘 Apple이 Smart Phone 혁명(Big Bang Innovation)을 주도하며 급부상하는 것과는 달리 Nokia는 이에 대한 안목과 준비가 없었던 탓에 2009년 이후 하강세(downturn)로 돌아서게 되었다.
이상 정보전달 니즈진화의 예가 보여주듯이 일단 Morse Code, Telephony, Mobile Phone, Smart phone 등과 같은 빅뱅혁신(big bang innovation)에 의해 대도약 니즈진화(quantum needs evolution)가 일어나면 기존의 기술경제패러다임은 전혀 다른 새로운 기술경제패러다임으로 이동하게 된다. (여기서 기술경제패러다임은 기술과 경제와의 상호작용 틀로 이해해 주기 바람)
그리고 일단 새로운 기술경제패러다임이 정착되면 그 내에서 점진혁신(incremental innovation)에 의해 현존하는 기술시스템을 보강·개선함으로써 점진소폭(gradual minor) 니즈진화가 일어나게 되고, 급진혁신(radical innovation)에 의해 기술시스템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점진대폭(gradual major) 니즈진화가 한 동안 진행되게 된다.
그러다가 또 다시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어필 니즈속성이 등장하는 타이밍에 이를 충족시킬 빅뱅혁신(big bang innovation)이 나오면 다시 다음 단계의 대도약 니즈진화(quantum needs evolution)로 진행해 가게 된다는 것이 당일 필자의 설명이었다.
그러자 그 핀란드 교수는 니즈진화형태에 따라 그에 부합하는 니즈맞춤혁신을 전개해야 하는데 Nokia는 혁신투자를 엄청 많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플리케이션 위주의 대도약 니즈진화에 부합하는 니즈맞춤혁신(smart phone)을 제때 못해서 Nokia가 쇠락해지는 것이 이해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실제로 smart phone을 제일 먼저 만든 회사는 Nokia가 아니었느냐고 묻자 그 핀란드 교수는 다이니믹 매니지먼트에서 강조하는 니즈의 기본속성조차도 충족시키지 못하다 보니 고객은 아예 관심조차도 내보이질 않게 된 탓에 Nokia가 어렵게 되었다는 얘길 연발하며,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이론으로 기업의 부침(浮沈)이 명쾌하게 설명된다며 필자에게 여러 번 고마움을 표했다.
글 / 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