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Blog: 박계형 ‘netizen’ 컬럼
오랜만에 인호 형에게서 email이 도착, 아하.. 따끈따끈하게 새로 ‘구워낸’ 김인호 칼럼이 나왔구나..하고 보니 이번은 인호 형의 인생 동반자 박계형 작가님의 ‘조갑제 netizen column’ 에 관한 것이었다. 작년에 여사님께서 손수 보내주신 친필로 쓰여진 멋진 글과 다수의 논고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처음 보게 된 것이라 아주 반가웠다. 논제는 지극히 평범할 수도 있고 진부할 수도 있지만 왕년의 실력으로 아주 설득력 있게 다가온 글이었다. 암만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 중의 으뜸이 아닐까, 이 진실과 정직이라는 것이. 거짓이 새로운 진실로 태어나는 것이 new normal이 되어가는 이 세상에 진실의 등불은 더욱 그 빛이 밝게 느껴진다. 그 ‘진실의 원천’은 무엇일까? 나는 100%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동의한다. 다만, 다만, 지나친 흑백논리에 빠지는 함정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피해야 하는 다른 ‘진실’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진실(眞實)의 가치(價値)
정치가가 가야 할 길도 첫째가 정직이고, 기업가가 가야 할 길도 우선 정직이다.
박 계 형(朴啓馨) 소설가
몇 해 전인가, 해외나들이를 위해 공항에 나가 서류를 적을 일이 있었는데, 미리 가이드가 나에게 여행목적 란에, – 관광이라고 적지 말고 다른 이유를 쓰라고 가르쳐 준다. 관광이라고 쓰면 무슨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법이 아직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수입을 만들어 국내관광지를 개발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던 방안인 모양이다.
가이드의 충고는 고마웠지만 거짓말을 써야 한다는 게 찜찜해서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관광을 나가는 길이니까 그냥 사실대로 쓰겠다, 고 말했다. 그랬더니 가이드는 마치 외계인이라도 보는 듯 아주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무엇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곧이곧대로 쓰겠다, 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알고 보니 그 세금이라는 게 겨우 만원이었다.
하마터면 나는 돈 만원에 진실을 팔아버릴 뻔 한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만은 진실이란 것이 1만 원짜리 한 장과 바꿀 수 있는 그런 정도의 값싼 것은 아니다. 사실 진실의 가치를 따지자면 무한대다. 돈 만원이 줄 수 있는 그 정도의 일시적인 쾌락이나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의 가치와 중요성을 논하고 있으면서도 진실의 가치에 대해선 자주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엄청난 교육비를 투자하며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정작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정직을 심어주는 일엔 등한히 하고 있다. 혹시나 우리는 비겁하게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정직을 가르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워낙 세상이 거짓된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 우리아이들만 정직했다간 세상에서 손해만 보고 쫓겨나는 게 아닌가, 당연히 겁이 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들에게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정직만이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인간이 제아무리 잘났다고 날뛰고 실제로 대단한 짓들을 하고 있지만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막지 못하고 결국은 그 밑에서 살고 있듯이 빛은 반드시 어둠을 이기고 만다는 섭리의 육중한 힘을 우리는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고기를 먹이니 소가 미치지 않는가.
지금은 미국도 타락하여 쇠퇴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한 때 전 세계인이 선망하는 나라가 되어 부와 힘과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도 그들 안의 정직의 정신 때문이었다, 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인들을 가장 노하게 하는 두 가지 말이 있는데, liar(거짓말쟁이)와 coward(비겁자)라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거짓말쟁이라고 하면 더욱 화를 내고 심하게 표현해 결투를 신청할 정도로 참지 못한다. 불과 몇 백 년 전만해도 수풀더미에 묻혀있던 미국을 전 세계위로 솟아오르게 만든 것은 그들의 기독신앙 안에서 피어났던 정직의 정신이었다.
정직한 나라, 정직한 정치가, 정직한 기업인만이 결국은 이 땅 위에서도 흥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건강식품을 파시는 어떤 분에게서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자기가 양심을 속여 물건을 조금 적게 가지고 가면 거의 어김없이 사는 편에서 저울로 달아보고 적발해 내는 바람에 결국 속인 것이 들통 나 고객이 떨어져 버리고 만다는 것이었다.
비록 콩나물장사를 하더라도 한군데에서 손님을 속이지 않고 오래 하다 보면 그 사람은 거기서 사람들의 신임과 지지를 얻어, 결국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내 친척동생뻘 되는 여자 하나가 시집을 갔는데, 신랑이 간신히 지방대학은 나왔지만, 체격이 너무나도 왜소하고 인물도 변변치 못해, 직장이라고 얻은 것이 작업환경도 열악한데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계 만지는 일이어서, 나를 찾아왔을 땐 이미 손가락 하나가 조금 잘린 상태였다. 그 모습이 너무 딱해 지인을 찾아가 사정사정해서 겨우 입사시험을 치르게 하였는데 성적이 하도 형편없어 우리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중견 증권사였는데 간신히 취직을 시키긴 했지만 그곳에서 과연 얼마나 견디어 낼 수 있을지, 안심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회사의 높은 분을 만났더니 그분이 하시는 얘기가 그 사람이 지금 고객들에게 대단한 인기와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용을 알아본 즉, -고객들이 와서 증권을 사자고 하면 지금 사면 안 되고, 이것을 사면 손해를 보고, 등등의 구실을 붙여 고객을 돌려보내기가 일쑤인데 계약 고를 많이 올려 회사에 득을 주어야 할 직원으로서 손님을 쫓고 있는 형상이니 말도 안 되는 짓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약삭빠르지 못하고, 일면 어리석어 보이는 그의 진실성이 오히려 고객들의 신뢰와 호감을 당하여, 모두 그에게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직접 목격한 사례이다.
그의 장모인 나의 아줌마가 죽어서 그 장례식에 갔었는데 마당에 가득한 자가용 행렬을 보고 나는 하도 오랜 만에 좋은 것을 보곤 마음이 너무나 감격해 눈물까지 흘렸었다.
안튼 슈낙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지만 나는 우리를 기쁘게 하여 주는 것들 가운데 하나로 이 이야기를 늘 떠올리곤 한다.
그렇게나 보 잘 것 없는 사람에게도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길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실의 힘인 것이다.
우리가 이 사람보다 더욱 정직하게 산다면, 이 사람이 얻은 것보다 더욱 큰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처세술과 대인관계법 등이 연구되고 있지만 정직보다 더 앞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정직처럼 쉬운 처세법도 없다. 따로 머리를 굴리고 계략을 짜내려고 골치 아프게 궁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치가가 가야 할 길도 첫째가 정직이고, 기업가가 가야 할 길도 우선 정직이다.
정직의 성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반드시 나타나고 만다. 세상에서 보라. 씨가 떨어져 열매를 맺기까지는 반드시 시간의 경과가 필요하지 않은가. 우리가 뿌린 정직의 씨도 그렇게 언젠가는 반드시 풍성한 좋은 열매를 맺어 우리들에게 되돌려 줄 것이다. 설령 우리가 정직을 택함으로써 많은 손해를 본다 해도, 슬퍼하거나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갚아주실 분이 계시다!
진실을 행하는 자는 혼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진실 안엔 반드시 동행하시는 분이 계시다.
진실이 이기고야 마는 이유도 간단하다. 전능하신 분께서 진실 안에 반드시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이다.
박 계 형(朴啓馨) 작가 소개
1943년 서울에서 출생
1961년 수도여고 졸업
1965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1963년 동양방송(현 KBS 2의 전신)개국(開局) 현상문예소설 50만원 당선작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입선작 [어떤 신부(神父)]
1999년 조선일보 선정 [한국을 이끈 50인]의 한 사람으로 뽑힘
2002년 [자랑스러운 고려대인(高麗大人)상] 수상
현재 연변과학기술대학교 겸임(兼任)교수, 성 어거스틴 회(St. Augustine Society) 대표
주요저서:
<A Life(임종의 영문판), Troubador 출판사 출간, 영국, 2007>
<留すりたかった瞬間の數數(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일어판, 新宿書房 출간, 2005>
<정(情)이 가는 발자국 소리>, <해가지지 않는 땅>, <사랑의 샘>
<자유를 향하여 날으는 새>,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어느 투명한 날의 풍경화>, <회귀(回歸)>, <환희, 구(舊)임종(臨終) 1,2>
<朴啓馨 全集> 외 약 60여권